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권, 스완네 집 쪽으로 Du côté de chez Swann by 마르셀 프루스트 Marcel Proust

팔만대장경 프로젝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고려 시대에 우리 조상들은 당대의 지식을 집대성하여 팔만대장경을 편찬하였습니다. 오늘날의 팔만대장경은 동서양의 수많은 고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21세기의 팔만대장경을 만들어 고전 문헌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자 합니다.

생성형 AI 기술인 LLM의 발전으로 팔만대장경 프로젝트가 가능해졌습니다. LLM은 거의 전문가 수준의 매끄러운 번역을 제공하며, 이를 통해 한국어 사용자 누구나 고전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OpenAI 의 GPT-4o, Anthropic의 Claude-3.5 Sonnet Google의 Gemini-1.5 Pro와 Gemini-1.5 Flash, Stable Diffusion 의 Stable Image Ultra 및 Microsoft의 Text 분석 기술을 MAIDEPOT의 AI 자동 융복합 기능으로 결합하여 활용하였습니다. 번역에 사용된 도구와 프롬프트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링크: PDF 300페이지 번역 전문가 수준의 초벌 번역"

물론 LLM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생성형 AI의 특성상 일부 어색하거나 틀린 번역이 있을 수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우리의 목표는 최대한 많은 고전 서적을 번역하여 지식의 문턱을 낮추는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날 것의 상태로 프로젝트의 양과 질과 높이는 일에 여러분들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프로젝트에 번역 또는 편집으로 도움을 주실 수 있다면 contact@maidepot.com 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원문 정보: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권, “스완네 집 쪽으로” 프랑스어 원문입니다. 이 텍스트는 주인공이 어린 시절의 기억과 감각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소설의 첫 부분인 만큼 주인공의 내면세계와 주변 인물, 환경에 대한 묘사가 자세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문체는 서술적이며 섬세한 심리묘사와 긴 문장이 특징입니다.

번역 시 고려사항:

  1. 주인공의 내면 묘사: 주인공의 복잡하고 섬세한 내면세계를 잘 드러낼 수 있도록 심리 묘사에 신경 써야 합니다. 특히 기억과 감각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는 부분을 자연스럽게 번역해야 합니다.
  2. 긴 문장: 프루스트 특유의 긴 문장을 한국어 어순에 맞게 자연스럽게 풀어서 번역해야 합니다. 문장의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하면서도 원문의 분위기를 유지해야 합니다.
  3. 문화적 요소: 프랑스 문화와 관련된 요소들 (예: 지명, 음식, 예술 작품, 문학 작품 등)을 한국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적절한 주석을 달거나 맥락에 맞게 풀어서 설명해야 합니다.
  4. 고유명사: 인명, 지명, 예술 작품명 등 고유명사의 표기를 일관성 있게 유지해야 합니다. 필요한 경우 원어를 병기할 수 있습니다.
  5. 시제: 과거 회상과 현재 시점이 혼재되어 있으므로 시제 변화에 유의하여 번역해야 합니다.
  6. 문체: 원문의 서술적이고 섬세한 문체를 살리면서도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읽히도록 번역해야 합니다. ‘-했다.’와 같이 짧게 끝나는 문체로 번역해야 합니다.

모든 등장인물 정보:

  • Marcel Proust: 마르셀 프루스트 –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 어린 시절의 기억과 감각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며, 예술과 사랑에 대한 깊은 사색을 펼칩니다.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으로, 내면세계가 복잡하게 묘사됩니다.
  • Grand-mère: 할머니 – 주인공의 할머니. 온화하고 현명하며 주인공을 깊이 사랑합니다.
  • Maman: 엄마 – 주인공의 엄마. 주인공을 엄격하게 교육하려 하지만, 동시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 Père: 아빠 – 주인공의 아빠. 현실적이고 규칙을 중시하는 성격으로, 주인공의 예민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면모를 보입니다.
  • Grand-tante: 큰고모 – 주인공의 큰고모. 꼼꼼하고 규칙을 중시하며, 허영심이 많고 세속적인 면모를 보입니다.
  • Tante Léonie: 레오니 고모 (Léonie) – 주인공의 고모. 남편의 죽음 이후 칩거하며, 몸이 약하고 신경질적인 성격으로 변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가지고, 사소한 일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 Françoise: 프랑수아즈 (Françoise) – 레오니 고모의 하녀. 나중에는 주인공의 가족을 위해 일하게 됩니다. 헌신적이고 부지런하지만 고집이 세고, 자기만의 엄격한 규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 Oncle Adolphe: 아돌프 삼촌 (Adolphe) – 주인공의 삼촌. 군인 출신으로 은퇴 후 칩거 생활을 합니다. 예술에 조예가 깊고, 주인공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어 줍니다.
  • M. Swann: 스완 씨 (Swann) – 주인공 가족의 친구. 예술에 조예가 깊고 상류 사회에 속하지만, 오데트에게 빠져 고통받는 인물입니다.
  • Odette de Crécy: 오데트 드 크레시 (Odette de Crécy) – 스완의 연인. 처음에는 스완의 취향이 아니었지만, 점차 그를 사로잡습니다. 허영심이 많고, 거짓말을 쉽게 하며, 스완에게 끊임없는 고통을 안겨줍니다.
  • M. et Mme Verdurin: 베르뒤랭 부부 (Verdurin) – 예술 애호가 부부. 자신들만의 예술적 취향을 가진 ‘작은 그룹’을 이끌며, 스완을 그 그룹에 끌어들입니다.
  • Docteur Cottard: 코타르 박사 (Cottard) – 베르뒤랭 부부의 친구. 의사지만 세속적이고, 남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믿는 단순한 면모를 보입니다.
  • Le peintre: 화가 – 베르뒤랭 부부의 친구. 예술에 대한 허세가 심하고, 말을 과장되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Saniette: 사니에트 (Saniette) – 베르뒤랭 부부의 오랜 친구. 학식이 풍부하고 부유하지만, 소심하고 수줍음이 많아 사람들의 무시를 받습니다.
  • Comte de Forcheville: 포르슈빌 백작 (Forcheville) – 오데트의 새로운 연인. 속물적이고 허영심이 많으며, 스완에게 질투심을 불어넣습니다.
  • M. Legrandin: 르그랑댕 씨 (Legrandin) – 주인공 가족이 사는 콩브레 마을의 사람. 학식이 풍부하고 교양 있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속물적인 면모를 감추고 있습니다.
  • M. Vinteuil: 뱅퇴유 씨 (Vinteuil) – 콩브레 마을에 사는 전직 피아노 교사. 딸에게 헌신적이며,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가졌지만, 딸의 행동으로 인해 고통받습니다.
  • Mlle Vinteuil: 뱅퇴유 양 (Vinteuil) – 뱅퇴유 씨의 딸. 거칠고 남성적인 외모와 달리, 내면에는 여리고 예민한 면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동성애적 성향을 보이며, 아버지에게 고통을 안겨줍니다.
  • Bloch: 블로슈 (Bloch) – 주인공의 친구. 문학적 취향이 독특하며, 베르고트를 숭배합니다.
  • Bergotte: 베르고트 (Bergotte) – 주인공이 동경하는 작가. 섬세하고 예리한 문체와 예술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으로 유명합니다.
  • Mlle de Stermaria: 스테르마리아 양 (Stermaria) – 주인공이 한때 짝사랑했던 소녀.

모든 중요 용어 번역어:

  • 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Du Côté de Chez Swann: 스완네 집 쪽으로
  • COMBRAY: 콩브레 – 주인공이 어린 시절을 보낸 마을.
  • Grand-Pré: 그랑프레 – 콩브레 마을 근처의 큰 초원.
  • Petit-Pré: 쁘띠프레 – 콩브레 마을 안에 있는 작은 초원.
  • rue Saint-Hilaire: 생틸레르 거리 (Saint-Hilaire) – 레오니 고모의 집이 있는 거리.
  • rue Saint-Jacques: 생자크 거리 (Saint-Jacques) – 레오니 고모의 집이 있는 거리.
  • rue Sainte-Hildegarde: 생트일데가르드 거리 (Sainte-Hildegarde) – 레오니 고모의 집 정문이 있는 거리.
  • rue du Saint-Esprit: 생테스프리 거리 (Saint-Esprit) – 레오니 고모의 집 뒷문이 있는 거리.
  • Église de Combray: 콩브레 교회 – 콩브레 마을의 교회. 주인공에게 과거의 시간을 느끼게 해주는 중요한 장소입니다.
  • Golo: 골로 – 르그랑댕 씨가 주인공에게 보여준 환등기 속 인물.
  • Geneviève de Brabant: 브라방의 쥬느비에브 (Geneviève de Brabant) – 르그랑댕 씨가 주인공에게 보여준 환등기 속 인물.
  • Barbe-Bleue: 푸른수염 (Barbe-Bleue) – 르그랑댕 씨가 주인공에게 보여준 환등기 속 인물.
  • M. Swann le père: 스완 아버지 – 스완 씨의 아버지. 아내의 죽음 이후 슬픔에 잠겨 지내지만, 엉뚱한 행동을 보이는 인물입니다.
  • Jockey-Club: 조키 클럽 – 프랑스 상류층 남성들이 모이는 사교 클럽.
  • faubourg Saint-Germain: 생제르맹 구역 – 파리의 귀족 거주 지역.
  • boulevard Haussmann: 오스만 대로 – 파리의 고급 주택가.
  • avenue de l’Opéra: 오페라 거리 – 파리의 고급 주택가.
  • Entrepôt des vins: 와인 창고 – 파리의 와인 창고 지역.
  • marrons glacés: 마롱 글라세 – 설탕에 절인 밤.
  • Sacré-Cœur: 사크레쾨르 – 프랑스 파리에 있는 성당.
  • Marquise de Villeparisis: 빌파리지 후작 부인 (Villeparisis) – 귀족 가문 출신의 여성.
  • Maréchal de Mac-Mahon: 막 마옹 원수 – 프랑스의 군인이자 정치가.
  • sauce gribiche: 소스 그리비슈 – 다진 계란과 케이퍼, 허브를 넣어 만든 프랑스 소스.
  • salade à l’ananas: 파인애플 샐러드 – 파인애플을 넣어 만든 샐러드.
  • Aristée: 아리스테우스 –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양봉과 목축의 신.
  • Thétis: 테티스 –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바다의 여신.
  • Ali-Baba: 알리바바 –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이야기의 주인공.
  • Duc de X…: X 공작 – 루이 필립 시대에 활동했던 정치가의 아들.
  • Molé: 몰레 (Molé) – 프랑스의 정치가.
  • Duc Pasquier: 파스키에 공작 (Pasquier) – 프랑스의 정치가.
  • Duc de Broglie: 브로이 공작 (Broglie) – 프랑스의 정치가.
  • “les honneurs” du Figaro: 피가로 지의 “영광” – 신문에 이름이 언급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 Corot: 코로 (Corot) – 프랑스의 화가.
  • Duc d’Audiffret-Pasquier: 오디프레 파스키에 공작 (Audiffret-Pasquier) – 프랑스의 정치가.
  • Maubant: 모방 (Maubant) – 프랑스의 배우.
  • Mme Materna: 마테르나 부인 (Materna) – 오스트리아의 오페라 가수.
  • Saint-Simon: 생시몽 (Saint-Simon) – 프랑스의 귀족이자 작가. ‘회상록’으로 유명합니다.
  • Maulevrier: 몰르브리에 (Maulevrier) – 생시몽의 ‘회상록’에 등장하는 인물.
  • cognac: 코냑 – 프랑스의 브랜디.
  • Roussainville-le-Pin: 루생빌 르팽 – 콩브레 근처의 마을.
  • iris: 아이리스 – 꽃의 한 종류.
  • cassis sauvage: 야생 까치밥나무 – 검은 열매를 맺는 나무의 한 종류.
  • Débats roses: 데바 로즈 – 프랑스의 신문.
  • hirondelle de mer: 바다제비 – 바닷가에 사는 새의 한 종류.
  • mésange: 박새 – 작은 새의 한 종류.
  • vétiver: 베티버 – 향기로운 풀의 한 종류.
  • lanterne magique: 환등기 – 빛을 이용하여 그림을 벽에 비추는 장치.
  • Golo: 골로 – 환등기 속 인물.
  • Geneviève de Brabant: 브라방의 쥬느비에브 (Geneviève de Brabant) – 환등기 속 인물.
  • Mérovingien: 메로빙거 왕조 – 프랑크 왕국의 왕조.
  • bœuf à la casserole: 쇠고기 스튜 – 냄비에 쇠고기와 채소를 넣어 끓인 프랑스 요리.
  • voilette: 베일 – 얼굴을 가리는 얇은 천.
  • Théodore: 테오도르 – 콩브레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
  • pepsine: 펩신 – 소화를 돕는 효소.
  • élévation: 성체 거양 – 미사 중에 성체를 들어 올리는 의식.
  • Maguelone: 마글론 – 마을 사람 이름.
  • docteur Piperaud: 피프로 박사 – 마을 의사.
  • Mme Rousseau: 루소 부인 – 마을 사람 이름.
  • Octave: 옥타브 – 레오니 고모의 남편.
  • Rogations: 로가티오 – 기독교 축일의 하나.
  • œufs à la crème: 크림 달걀 – 달걀 요리의 한 종류.
  • Alibaba et quarante voleurs: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 Aladin ou la Lampe merveilleuse: 알라딘과 요술램프
  • Eulalie: 묄랄리 (Eulalie) – 레오니 고모의 친구. 다리를 저는 여성으로, 레오니 고모에게 마을 소식을 전해줍니다.
  • Mme de la Bretonnerie: 브르토느리 부인 – 묄랄리가 과거에 일했던 집의 여주인.
  • bifteck saignant: 레어 스테이크 – 덜 익힌 스테이크.
  • Mme Sazerat: 사즈라 부인 (Sazerat) – 콩브레 마을 사람.
  • M. Vinteuil: 뱅퇴유 씨 (Vinteuil) – 콩브레 마을에 사는 전직 피아노 교사.
  • Gilbert le Mauvais: 길베르 르 모베 (Gilbert le Mauvais) – 콩브레 교회 스테인드글라스에 그려진 인물.
  • Sanctus Hilarius: 성 힐라리우스 (Saint Hilarius)
  • Saint-Illiers: 생틸리에
  • Saint-Hélier: 생텔리에
  • Saint-Ylie: 생틸리
  • Sancta Eulalia: 성 묄랄리아 (Saint Eulalia)
  • Saint-Eloi: 성 엘로이 (Saint Eloi)
  • Théodebert: 테오데베르 – 역사 속 인물.
  • Thiberzy (Theodeberciacus): 티베르지 (테오데베르시아쿠스) – 콩브레 근처 마을.
  • Burgondes: 부르군트족 – 게르만족의 일파.
  • Charles le Bègue: 샤를 르 베그 (Charles le Bègue) – 역사 속 인물.
  • Pépin l’Insensé: 페팽 랭상세 (Pépin l’Insensé) – 역사 속 인물.
  • Guilôme (Guillaume Le Conquérant): 귈롬 (정복왕 윌리엄) – 영국의 왕.
  • Roussainville: 루생빌 – 콩브레 근처 마을.
  • Entrée de Louis-Philippe à Combray: 루이 필립의 콩브레 입성 – 루생빌 교회 스테인드글라스에 그려진 그림.
  • Chartres: 샤르트르 – 프랑스의 도시. 샤르트르 대성당으로 유명합니다.
  • Verneuil: 베르뇌유 – 프랑스의 도시.
  • Vivonne: 비본느 강 – 콩브레 근처를 흐르는 강.
  • fossés de Saint-Assise-lès-Combray: 콩브레 근처 생타시스의 해자
  • canaux de Jouy-le-Vicomte: 주이 르 비콩트의 운하
  • Jouy-le-Vicomte (Gaudiacus vice comitis): 주이 르 비콩트 (가우디아쿠스 비체 코미티스) – 콩브레 근처 마을.
  • M. Legrandin: 르그랑댕 씨 (Legrandin) – 콩브레 마을 사람.
  • Balbec: 발벡 – 프랑스의 해안 도시. 주인공이 동경하는 장소입니다.
  • niche: 틈새 – 작고 아늑한 공간.
  • Paul Desjardins: 폴 데자르댕 – 프랑스의 작가.
  • cinéraire: 시네라리아 – 꽃의 한 종류.
  • Colonne Moriss: 모리스 기둥 – 파리에 있는 광고 기둥.
  • Testament de César Girodot: 세자르 지로도의 유언 – 연극 작품.
  • Œdipe-Roi: 오이디푸스 왕 – 연극 작품.
  • Opéra-Comique: 오페라 코미크 극장 – 파리의 오페라 극장.
  • Comédie-Française: 코메디 프랑세즈 극장 – 프랑스의 국립극장.
  • Domino Noir: 검은 도미노 – 오페라 작품.
  • Diamants de la Couronne: 왕관의 다이아몬드 – 오페라 작품.
  • riz à l’Impératrice: 황후의 밥 – 쌀 요리의 한 종류.
  • crème au chocolat: 초콜릿 크림 – 디저트의 한 종류.
  • Maubant: 모방 (Maubant) – 프랑스의 배우.
  • Théâtre-Français: 프랑스 극장 – 파리에 있는 극장.
  • Got: 고 (Got) – 프랑스의 배우.
  • Delaunay: 들로네 (Delaunay) – 프랑스의 배우.
  • Febvre: 페브르 (Febvre) – 프랑스의 배우.
  • Thiron: 티롱 (Thiron) – 프랑스의 배우.
  • Coquelin: 코클랭 (Coquelin) – 프랑스의 배우.
  • Sarah Bernhardt: 사라 베르나르 – 프랑스의 배우.
  • La Berma: 라 베르마 – 프랑스의 배우.
  • Bartet: 바르테 (Bartet) – 프랑스의 배우.
  • Madeleine Brohan: 마들렌 브로앙 (Madeleine Brohan) – 프랑스의 배우.
  • Jeanne Samary: 잔 사마리 (Jeanne Samary) – 프랑스의 배우.
  • cocotte: 코코트 – 고급 매춘부.
  • “bleu”: 푸른색 쪽지 – 짧은 편지.
  • Victor Hugo: 빅토르 위고 – 프랑스의 작가.
  • Vaulabelle: 보라벨 (Vaulabelle) – 프랑스의 역사가.
  • Bhagavat: 바가바드 – 힌두교 경전.
  • Levrier de Magnus: 마그누스의 그레이하운드 – 문학 작품.
  • Apollôn: 아폴론 –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의 신.
  • Nuit d’Octobre: 10월의 밤 – 알프레드 드 뮈세의 시.
  • “O Dieu de nos Pères” de la Juive: 유대 여인의 “오, 우리 조상의 신이시여” – 오페라 ‘유대 여인’의 아리아.
  • “Israël romps ta chaîne”: “이스라엘이여, 너의 사슬을 끊어라”
  • “Archers, faites bonne garde! Veillez sans trêve et sans bruit”: “궁수들이여, 경계를 게을리하지 마라! 끊임없이 조용히 지켜보라”
  • “De ce timide Israëlite Quoi! vous guidez ici les pas!”: “이 소심한 이스라엘 사람의 무엇이! 당신은 여기서 발걸음을 인도합니까!”
  • “Champs paternels, Hébron, douce vallée”: “아버지의 들판, 헤브론, 달콤한 계곡”
  • “Oui, je suis de la race élue”: “그래, 나는 선택받은 민족이다”
  • kriss malais: 말레이 단검 – 말레이시아의 전통 단검.
  • pommes de terre béchamel: 베샤멜 감자 – 베샤멜 소스를 곁들인 감자 요리.
  • purée: 퓌레 – 삶은 감자나 채소를 으깬 요리.
  • Giotto: 조토 – 이탈리아의 화가.
  • Arena: 아레나 예배당 – 이탈리아 파도바에 있는 예배당.
  • Caritas: 카리타스 – 라틴어로 ‘사랑’을 의미합니다.
  • Padoue: 파도바 – 이탈리아의 도시.
  • luette: 목젖
  • Saint Théophile: 성 테오필 – 기독교 성인.
  • quatre fils Aymon: 네 아들 에몽 – 프랑스의 전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 rage de dents: 치통
  • Molière: 몰리에르 – 프랑스의 극작가.
  • rince-bouche: 구강청결제
  • “granité”: 그라니테 – 얼린 디저트의 한 종류.
  • “palace”: 팰리스 – 고급 호텔.
  • valet de pied: 시종 – 귀족의 개인적인 시중을 드는 하인.
  • tripots: 도박장
  • Bec: 가스등
  • chasseur: 사냥꾼 –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 심부름을 하는 사람.
  • Petites Madeleines: 쁘띠 마들렌 – 조개 모양의 작은 과자.
  • valve rainurée d’une coquille de Saint-Jacques: 가리비 껍데기의 골이 있는 면
  • tilleul: 린덴 – 나무의 한 종류.
  • Mare au Diable: 악마의 웅덩이 – 조르주 상드의 소설.
  • François le Champi: 프랑수아 르 샹피 – 조르주 상드의 소설.
  • Petite Fadette: 꼬마 파데트 – 조르주 상드의 소설.
  • Maîtres Sonneurs: 마스터 링거 – 조르주 상드의 소설.
  • Musset: 뮈세 (Musset) – 프랑스의 시인.
  • Rousseau: 루소 (Rousseau) – 프랑스의 철학자.
  • Indiana: 인디아나 – 조르주 상드의 소설.
  • Jouy-le-Vicomte: 주이 르 비콩트 – 콩브레 근처 마을.
  • Titien: 티치아노 – 이탈리아의 화가.
  • Cathédrale de Chartres: 샤르트르 대성당 – 프랑스 샤르트르에 있는 대성당.
  • Grandes Eaux de Saint-Cloud: 생클루의 분수 – 프랑스 생클루에 있는 분수.
  • Vésuve: 베수비오 화산 – 이탈리아의 화산.
  • Turner: 터너 (Turner) – 영국의 화가.
  • Cène: 최후의 만찬 –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
  • Léonard: 레오나르도 다 빈치 – 이탈리아의 화가.
  • Morgan: 모건 (Morgan) – 미국의 금융가.
  • frangipane: 프랑지판 – 아몬드 크림을 넣어 만든 과자.
  • “Champi”: 샹피 (Champi) – 소설 ‘프랑수아 르 샹피’의 주인공 이름.
  • Giotto: 조토 – 이탈리아의 화가.
  • Bellini: 벨리니 (Bellini) – 이탈리아의 화가.
  • Mahomet II: 메메드 2세 – 오스만 제국의 술탄.
  • mandarine: 귤 – 과일의 한 종류.
  • “cup of tea”: 차 한 잔
  • “home”: 집
  • smart: 멋진, 세련된
  • Ver Meer de Delft: 델프트의 페르메이르 – 네덜란드의 화가.
  • “home”: 집
  • grenouille devant l’aréopage: 아레오파고스 앞의 개구리 – 아테네의 최고 법원인 아레오파고스 앞에서 쓸데없는 말을 하는 사람을 비유하는 표현.
  • bibelots: 장신구 – 작고 아름다운 장식품.
  • “fishing for compliments”: 칭찬을 구걸하다
  • Walkyrie: 발퀴레 –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에 등장하는 여전사.
  • Tristan: 트리스탄 –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주인공.
  • Neuvième: 베토벤 교향곡 9번 –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
  • Les Maîtres: 바그너의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 faribole: 허풍 – 과장된 이야기.
  • Gambetta: 감베타 (Gambetta) – 프랑스의 정치가.
  • Danicheff: 다니셰프 – 연극 작품.
  • Sarah Bernhardt: 사라 베르나르 – 프랑스의 배우.
  • Voix d’Or: 황금 목소리 – 사라 베르나르의 별명.
  • “brûler les planches”: 무대를 불태우다 – 배우의 열정적인 연기를 비유하는 표현.
  • Potain: 포탱 (Potain) – 프랑스의 의사.
  • Académie: 아카데미 – 프랑스 학술원.
  • Fontainebleau: 퐁텐블로 – 프랑스의 도시.
  • Bellini: 벨리니 – 이탈리아의 화가.
  • Ronde: 렘브란트의 그림 ‘야경’
  • Régentes: 렘브란트의 그림 ‘포목상 조합 이사들의 초상’
  • Hals: 할스 – 네덜란드의 화가.
  • Rembrandt: 렘브란트 – 네덜란드의 화가.
  • “cher”: 비싼, 고급스러운
  • “public”: 대중적인
  • di primo cartello: 최고의, 일류의
  • “lâcher”: 놓아주다, 포기하다
  • Auvergne: 오베르뉴 – 프랑스의 지역.
  • “faire manger par les puces et la vermine”: 벼룩과 해충에게 먹히다
  • Noël: 크리스마스
  • Salade japonaise: 일본식 샐러드 –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희곡 ‘프랑실롱’에서 언급된 샐러드.
  • Francillon: 프랑실롱 –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희곡.
  • Serge Panine: 세르주 파닌 – 조르주 오네의 소설.
  • Georges Ohnet: 조르주 오네 – 프랑스의 작가.
  • Le Maître de Forges: 대장장이 – 조르주 오네의 소설.
  • “pschutt”: 세련된, 멋진
  • Herbinger: 에르뱅제 – 가상의 인물.
  • “Bal des Incohérents”: 앵코에랑들의 무도회 – 파리에서 열렸던 전위 예술가들의 무도회.
  • “hiérarchie” des arts: 예술의 “계층” – 예술의 우열을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 Reines de Chartres: 샤르트르 대성당의 여왕 – 샤르트르 대성당에 있는 조각상.
  • “speech”: 연설
  • platine: 백금 – 귀금속의 한 종류.
  • “damner le pion”: 앞지르다
  • “Se non e vero”: 사실이 아니라면
  • “Une nuit de Cléopâtre”: 클레오파트라의 밤 – 빅토르 마세의 오페라.
  • Victor Massé: 빅토르 마세 – 프랑스의 작가.
  • Clapisson: 클라피송 (Clapisson) – 프랑스의 작곡가.
  • Bayreuth: 바이로이트 – 독일의 도시. 바그너 축제로 유명합니다.
  • “Toilette de Diane”: ‘다이아나의 화장’ – 그림 작품.
  • Mauritshuis: 마우리츠하이스 – 네덜란드의 미술관.
  • Nicolas Maes: 니콜라 마스 – 네덜란드의 화가.
  • “gens de la campagne”: 시골 사람들
  • “gens de chez Belloir”: 벨루아 출신 사람들 – 벨루아는 파리의 연예 기획사.
  • Liszt: 리스트 – 헝가리의 작곡가.
  • “Saint François parlant aux oiseaux”: ‘새들에게 설교하는 성 프란체스코’ – 리스트의 피아노곡.
  • Chopin: 쇼팽 – 폴란드의 작곡가.
  • Giotto: 조토 – 이탈리아의 화가.
  • Primavera: ‘봄’ – 보티첼리의 그림.
  • bella Vanna: ‘아름다운 반나’ – 보티첼리의 그림.
  • Vénus: ‘비너스’ – 보티첼리의 그림.
  • Botticelli: 보티첼리 – 이탈리아의 화가.
  • Sandro di Mariano: 산드로 디 마리아노 – 보티첼리의 본명.
  • Zéphora: 십포라 (Zipporah) –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 Chapelle Sixtine: 시스티나 예배당 – 바티칸에 있는 예배당.
  • Doge Lorédan: 도제 로레단 – 베네치아 공화국의 통치자.
  • Antoine Rizzo: 안토니오 리조 – 이탈리아의 조각가.
  • Ghirlandajo: 기를란다요 – 이탈리아의 화가.
  • Tintoret: 틴토레토 – 이탈리아의 화가.
  • “Noli me tangere”: 날 만지지 마라 –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말.
  • Mégère: 마녀, 악녀
  • “entre le zist et le zest”: 이도 저도 아닌
  • ménager la chèvre et le chou: 양쪽을 다 만족시키다
  • “cure-dents”: 이쑤시개 – 식사 후에 초대하는 손님.
  • Henri Plantagenet: 앙리 플랜태저넷 – 영국의 왕.
  • Saint-Denis: 생드니 – 프랑스의 도시.
  • Suger: 쉬제 – 프랑스의 성직자.
  • Saint Bernard: 성 베르나르 – 프랑스의 성직자.
  • “Serpent à Sonates”: ‘소나타 뱀’ – ‘방울뱀’을 뜻하는 ‘serpent à sonnettes’를 이용한 말장난.
  • “Sonate Clair de lune”: ‘월광 소나타’ –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 Samothrace: 사모트라케의 니케 – 그리스 조각 작품.
  • “Un amour de Swann”: 스완의 사랑 –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권의 제목.
  • “faire catleya”: ‘카틀레야 하다’ – 스완과 오데트가 육체적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하는 은어.
  • Pieter de Hooch: 피터르 드 호흐 – 네덜란드의 화가.
  • “Maison Dorée”: 황금의 집 – 파리에 있던 유명한 레스토랑.
  • Tagliafico: 탈리아피코 (Tagliafico) – 작곡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스완네 집 쪽으로

가스통 칼메트 씨에게

깊고 애정 어린 감사의 표시로,

마르셀 프루스트.

제1부 콩브레

I.

오랫동안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때로는 촛불을 끄자마자 눈이 너무 빨리 감겨서 “잠이 든다”라고 말할 틈도 없었다. 그리고 30분쯤 후, 잠을 청해야 할 시간이라는 생각에 잠에서 깼다. 나는 아직 손에 들고 있다고 생각했던 책을 내려놓고 불을 끄려고 했다.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방금 읽은 내용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생각들은 다소 특별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내가 책에서 읽은 내용 그 자체가 된 것 같았다. 교회, 현악 4중주, 프랑수아 1세와 카를 5세의 경쟁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러한 믿음은 깨어난 후 몇 초 동안 지속되었다. 그것은 이성에 어긋나지는 않았지만, 눈에 비늘처럼 덮여 있어서 촛대가 더 이상 켜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했다. 그러다가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기 시작했다. 마치 환생 후 이전 삶의 기억처럼 말이다. 책의 주제는 나에게서 떨어져 나갔고, 나는 그것에 집중할지 말지 자유로워졌다. 곧 시야가 회복되었고, 주변의 어둠이 눈에 부드럽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마도 내 정신에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것은 원인 없는,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정말로 어두운 것처럼 말이다. 몇 시일까 궁금해했다. 기차의 기적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가깝게, 마치 숲속 새의 노래처럼 거리를 알려주며, 여행자가 다음 역으로 서두르는 텅 빈 시골의 풍경을 그려냈다. 그가 따라가는 작은 길은 새로운 장소들, 익숙하지 않은 행동들, 최근의 대화, 그리고 밤의 고요 속에서 여전히 그를 따라다니는 낯선 등불 아래에서의 작별 인사로 인한 흥분으로 그의 기억에 새겨질 것이다. 곧 돌아갈 수 있다는 달콤함과 함께 말이다.

나는 볼을 베개의 부드러운 볼에 기대었다. 그것은 우리 어린 시절의 볼처럼 통통하고 신선했다. 나는 성냥을 그어 시계를 보았다. 곧 자정이 되었다. 이는 병든 사람이 여행을 떠나야 했고 낯선 호텔에서 잠을 자다가 발작으로 깨어났을 때, 문 아래로 한 줄기 빛을 보고 기뻐하는 순간이다. 얼마나 다행인가, 벌써 아침이다! 잠시 후면 하인들이 일어날 것이고, 그는 벨을 울릴 수 있을 것이며, 누군가 와서 그를 도와줄 것이다. 고통을 견딜 용기가 생긴다. 그는 발자국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진다. 그리고 문 아래에 있던 빛줄기가 사라졌다. 자정이다. 가스등을 끈 것이다. 마지막 하인이 떠났고, 이제 밤새도록 아무런 도움 없이 고통을 겪어야 할 것이다.

나는 다시 잠들었고, 때로는 아주 짧게 깨어나 목재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을 시간, 어둠의 만화경을 응시할 시간, 순간적인 의식의 빛으로 가구들과 방, 그리고 내가 작은 부분에 불과했던 전체가 빠져 있는 잠을 맛볼 시간만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곧 그 무감각에 다시 합류했다. 아니면 잠들어 있는 동안 노력 없이 영원히 지나간 원시적인 삶의 한 시기로 돌아가, 내 큰아버지가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것과 같은 어린 시절의 공포 중 하나를 다시 느꼈다. 그것은 내 인생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날, 즉 머리카락을 자른 날에 사라졌다. 나는 잠들어 있는 동안 이 사건을 잊고 있었지만, 큰아버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깨어나는 데 성공하자마자 그 기억을 되찾았다. 하지만 예방 차원에서 꿈의 세계로 돌아가기 전에 베개로 머리를 완전히 감쌌다.

때로는 이브가 아담의 갈비뼈에서 태어났듯이, 한 여자가 내 허벅지의 잘못된 자세에서 태어났다. 내가 막 맛보려던 쾌락에서 형성된 그녀가 나에게 그것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상상했다. 내 몸은 그녀의 몸에서 자신의 온기를 느끼며 그녀와 합치고 싶어 했고, 나는 깨어났다. 나머지 인간들은 불과 몇 분 전에 떠나온 이 여자에 비하면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 뺨은 여전히 그녀의 입맞춤으로 뜨거웠고, 내 몸은 그녀의 몸무게로 인해 아팠다. 때때로 그녀가 내가 실제 생활에서 알고 있던 여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면, 나는 그 목표에 온전히 몰두했다. 그녀를 다시 찾는 것 말이다. 마치 여행을 떠나 동경하던 도시를 직접 눈으로 보려는 사람들처럼, 꿈의 매력을 현실에서 맛볼 수 있다고 상상하면서 말이다. 점차 그녀의 기억이 사라졌고, 나는 내 꿈속 소녀를 잊어버렸다.

잠자는 사람은 자신의 주위에 시간의 실, 연도와 세계의 순서를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다. 그는 본능적으로 깨어나면서 그것들을 참고하여 1초 만에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지구상의 지점과 깨어날 때까지 흐른 시간을 읽는다. 하지만 그 순서는 뒤섞이거나 깨질 수 있다. 아침에 불면증 후에 독서를 하다가 평소와는 너무 다른 자세로 잠이 들면, 들어 올린 팔만으로도 태양을 멈추고 뒤로 물러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깨어난 첫 순간에는 시간을 알 수 없어서 방금 잠자리에 든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만약 더욱 어긋난 자세로, 예를 들어 저녁 식사 후 안락의자에 앉아 잠이 들면, 궤도를 벗어난 세계에서 완전한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마법의 안락의자가 그를 시간과 공간을 통해 최고 속도로 여행하게 할 것이고, 눈꺼풀을 열 때 그는 몇 달 전 다른 나라에 누워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내 침대에서 잠이 깊고 내 정신이 완전히 이완되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면 정신은 내가 잠든 장소의 계획을 놓쳤고, 한밤중에 깨어날 때 나는 어디에 있는지 몰랐고, 처음에는 내가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나는 단지 원시적인 단순함 속에서, 동물의 내면에서 떨릴 수 있는 것처럼 존재의 감각만을 가졌다. 나는 동굴인보다도 더 무지했다. 하지만 그때 기억이 – 아직 내가 있는 곳의 기억은 아니지만, 내가 살았던 몇몇 장소들의 기억이 – 위에서 내려온 도움처럼 찾아와 나를 혼자서는 빠져나올 수 없었을 허무에서 건져냈다. 나는 1초 만에 문명의 여러 세기를 뛰어넘었고, 석유램프의 모호하게 보이는 이미지, 그 다음에는 접힌 칼라의 셔츠가 서서히 내 원래의 자아의 특징들을 재구성했다.

아마도 우리 주변 사물들의 고정성은 그것들이 바로 그것들이지 다른 것이 아니라는 우리의 확신, 그것들 앞에서 우리 생각의 고정성에 의해 강요된 것일 것이다. 어쨌든, 내가 이렇게 깨어나 내 정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려고 애썼지만 실패할 때, 모든 것이 어둠 속에서 내 주위를 돌았다. 사물들, 나라들, 세월들이 말이다. 내 몸은 움직이기에는 너무 무감각해서, 피로의 형태에 따라 사지의 위치를 파악하려 했다. 그래서 벽의 방향, 가구들의 위치를 추론하고, 자신이 있는 거처를 재구성하고 이름 붙이려 했다. 그의 기억, 옆구리와 무릎의 기억은 과거에 살았던 여러 방의 형태를 차례로 제시했다. 그것들 속에서 그는 잠들어 있었고, 그 주위로 보이지 않는 벽들이, 가구의 위치에 따라 바뀌면서, 소용돌이쳤다. 그리고 그가 깨어나기 전에, 마치 바람에 휘둘리는 원통형 종이등처럼, 그것들은 서로 뒤섞이고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어깨에서 벗겨내며 그에게 차례로 여러 방을 보여주었다. 그 주위로 보이지 않는 벽들이 상상 속 방의 형태에 따라 자리를 바꾸며 어둠 속에서 빙빙 돌았다. 그리고 시간과 형태의 문턱에서 망설이던 내 생각이 상황들을 연결지어 거처를 확인하기도 전에, 그것 – 내 몸 – 이 각 방마다 침대의 종류와 문의 위치,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 복도의 존재를 기억해냈다. 잠들 때 가졌던 생각과 함께 깨어날 때 다시 찾아냈던 그 생각을. 굳어버린 내 몸은 자신의 방향을 알아내려 애쓰며 예를 들어 천개가 있는 큰 침대에서 벽을 향해 누워있다고 상상했고 나는 곧바로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런, 엄마가 안녕히 주무세요 하러 오시지 않았는데도 결국 잠들어버렸군.” 나는 시골에 있는 오래전 돌아가신 할아버지 댁에 있었다. 그리고 내 몸과 내가 기대고 있던 쪽, 내 정신이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과거의 충실한 수호자들은 천장에 체인으로 매달린 항아리 모양의 보헤미아 유리로 된 등불의 불꽃, 콩브레에 있는 할아버지 댁 내 침실의 시에나 대리석 벽난로를 떠올리게 했다. 그 먼 옛날은 지금 이 순간 정확히 떠올리지는 못하지만 현재인 것처럼 여겨졌고, 완전히 깨어났을 때 더 잘 보게 될 것이었다.

그러다 새로운 자세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벽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나는 생루프 부인 댁 시골집 내 방에 있었다. 세상에! 적어도 10시는 되었겠군. 저녁 식사가 끝났겠지! 생루프 부인과 산책을 다녀온 후 매일 저녁 정장을 입기 전에 하는 낮잠을 너무 오래 잔 것 같았다. 콩브레에서 아무리 늦게 돌아왔을 때도 내 창문 유리에 석양의 붉은 빛이 비치던 그 시절로부터 여러 해가 지났기 때문이다. 생루프 부인 댁이 있는 탕송빌에서는 다른 삶의 방식을 보내고 있었다. 밤에만 외출하고 예전에 햇빛 아래서 뛰놀던 그 길을 달빛 아래 거닐며 느끼는 또 다른 종류의 즐거움을 맛보고 있었다. 저녁 식사를 위해 옷을 갈아입는 대신 잠들어버린 방이 멀리서 보이곤 했다. 우리가 돌아올 때 램프 불빛이 비치는 것이, 밤의 유일한 등대처럼 보였다.

이 빙빙 도는 혼란스러운 회상은 결코 몇 초 이상 지속되지 않았다. 종종 내가 있는 장소에 대한 짧은 불확실함은 그것을 구성하는 여러 가정들을 서로 구분하지 못했다. 마치 우리가 말이 달리는 것을 볼 때 영사기가 보여주는 연속된 자세들을 분리해내지 못하는 것처럼. 하지만 나는 내 인생에서 살았던 방들을 때로는 이 방, 때로는 저 방을 다시 보았고, 결국 깨어난 후 길게 이어지는 몽상 속에서 그 모든 방들을 기억해냈다. 겨울 방들에서는 누워있을 때 가장 이질적인 것들로 둥지를 만들어 머리를 파묻는다. 베개의 한 구석, 이불의 윗부분, 숄의 한 끝, 침대 가장자리, 그리고 분홍색 ‘데바’ 신문 한 부를 새들의 기술을 따라 거기에 무한정 기대어 마침내 하나로 엮어낸다. 혹한의 날씨에 즐기는 기쁨은 (마치 바다제비가 지하의 따뜻한 땅속에 둥지를 튼 것처럼) 바깥세상과 분리되어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벽난로에는 밤새 불이 피워져 있어 큰 외투를 입은 듯 따뜻하고 연기 나는 공기 속에서 잠을 자는데, 다시 타오르는 장작의 불빛이 비쳐든다. 그것은 일종의 만질 수 없는 벽장이자, 방 한가운데에 파인 따뜻한 동굴이며, 열기가 가득한 공간으로 그 윤곽은 유동적이다. 우리의 얼굴을 시원하게 해주는 바람이 불어오는 구석들, 창가에 가까운 부분들, 또는 벽난로에서 멀어 식어버린 부분들로 통풍이 된다. 여름 방들에서는 따뜻한 밤과 하나가 되어 있기를 좋아한다. 반쯤 열린 덧문에 기대어 있는 달빛이 침대 발치까지 마법의 사다리를 드리운다. 거의 야외에서 자는 것 같았다.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 끝에 매달린 박새처럼. 때로는 루이 16세 양식의 방으로, 너무나 즐거워 첫날 밤에도 그리 불행하지 않았던 곳이었다. 천장을 가볍게 받치고 있던 작은 기둥들이 침대 자리를 보여주고 예약해두기 위해 우아하게 비켜섰다. 때로는 반대로 작고 천장이 높아 두 층의 높이로 피라미드 모양으로 파여 있으며 부분적으로 마호가니 나무로 덮인 방이었다. 첫 순간부터 베티버의 낯선 냄새에 정신적으로 중독되었고, 보라색 커튼의 적대감과 내가 없는 것처럼 큰 소리로 재잘거리는 시계의 무례한 무관심에 확신을 가졌다. 이상하고 무자비한 사각 다리가 달린 거울이 방의 한 모퉁이를 비스듬히 가로막고 있어, 내가 익숙한 시야의 부드러운 충만함 속에 예상치 못한 공간을 생생하게 파고들었다. 내 생각은 수 시간 동안 방의 모양에 정확히 맞추려 노력하며 분열되고 높이를 늘려 그 거대한 깔때기를 위쪽까지 채우려 했다. 나는 눈을 들어 귀를 기울이고 콧구멍을 열어 가슴이 뛰는 채로 침대에 누워 많은 힘든 밤을 보냈다. 마침내 습관이 커튼의 색을 바꾸고, 시계를 조용하게 만들고, 비스듬하고 잔인한 거울에게 연민을 가르치고, 베티버 냄새를 감추거나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지만 천장의 겉보기 높이를 상당히 낮추었다. 습관이여! 능숙하지만 매우 느린 정리꾼이여. 처음 몇 주 동안 우리의 정신을 임시 거처에서 고통받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나게 되어 참 기쁘구나. 습관이 없다면 우리의 능력만으로는 거처를 살만한 곳으로 만들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이제 나는 완전히 깨어 있었다. 몸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뒤척였고, 확신에 찬 천사가 내 주변의 모든 것을 멈추게 했다. 천사는 나를 이불 속에 눕혀주고 내 방에 있게 해주었다. 어둠 속에서 나는 대략적으로 서랍장, 책상, 벽난로, 거리를 향한 창문과 두 개의 문이 제자리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나는 막 깨어난 무지가 순간적으로 분명한 이미지는 아니더라도 그 존재 가능성을 믿게 했던 거처들 중 어느 곳에도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기억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통 나는 곧바로 다시 잠들려고 하지 않았다. 밤의 대부분을 우리의 옛 삶을 회상하는 데 보냈다. 콩브레에 있는 큰고모 댁에서, 발벡에서, 파리에서, 동시에르에서, 베네치아에서, 그리고 다른 곳들에서. 내가 알았던 장소들과 사람들, 내가 그들에 대해 본 것들, 내게 전해들은 이야기들을 기억해냈다.

콩브레에서는 매일 오후가 끝나갈 무렵, 침대에 들어가 잠들지 못한 채 엄마와 할머니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할 시간이 다가오기 훨씬 전부터, 내 침실은 다시 한번 내 걱정의 고정되고 고통스러운 지점이 되었다. 내가 너무 불행해 보이는 저녁이면 나를 달래기 위해 환등기를 주기로 했다. 저녁 식사 시간을 기다리며 내 램프 위에 씌워두었고, 고딕 시대의 초기 건축가들과 유리공들을 본떠 벽의 불투명함을 만질 수 없는 무지개 빛깔로, 초자연적인 환영으로 대체했다.

다채로운 색채로 가득 찬 환등기 속에서 전설들이 반짝이는 유리창처럼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내 슬픔은 더욱 깊어졌다. 조명의 변화만으로도 내 방에 대한 익숙함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 익숙함 덕분에 잠자리에 들 때의 고통을 제외하고는 방이 견딜 만했었다. 이제 나는 방을 알아보지 못했고, 마치 처음 기차에서 내려 도착한 호텔이나 ‘별장’의 방처럼 불안해했다.

끔찍한 의도로 가득 찬 골로가 말의 끊어진 걸음으로 짙은 녹색으로 언덕 비탈을 감싸고 있는 삼각형 모양의 작은 숲에서 나와 불쌍한 브라방의 쥬느비에브의 성으로 덜컹거리며 다가왔다. 이 성은 곡선을 따라 잘려 있었는데, 그것은 환등기 틀 사이로 밀어 넣는 유리판의 타원형 경계선이었다. 성의 일부분만 보였고, 그 앞에는 푸른 띠를 두른 쥬느비에브가 꿈꾸는 황야가 있었다. 성과 황야는 노란색이었다. 나는 그것을 보기도 전에 색깔을 알 수 있었다. 환등기 틀의 유리를 보기 전에 브라방이라는 이름의 금빛 울림이 그 색을 분명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골로는 잠시 멈춰 서서 슬픈 표정으로 내 할머니가 큰 소리로 읽는 해설을 듣고 있었다. 그는 그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 같았고, 어떤 위엄을 잃지 않으면서도 온순하게 텍스트의 지시에 따라 자세를 취했다. 그러고는 같은 끊어진 걸음으로 멀어져 갔다. 그의 느린 기마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환등기를 움직이면 골로의 말이 창문의 커튼 위로 계속 전진하는 것이 보였다. 커튼의 주름을 타고 오르내리며 틈새로 내려갔다. 골로의 몸 자체도 그의 말과 마찬가지로 초자연적인 본질을 지니고 있어서, 마주치는 모든 물질적 장애물이나 방해가 되는 물건을 뼈대로 삼아 내부로 흡수했다. 심지어 문 손잡이 위에서도 그의 붉은 옷이나 항상 고귀하고 우울해 보이는 얼굴이 즉시 적응하여 거침없이 떠올랐지만, 이런 변형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물론 나는 메로빙거 시대에서 발산되는 듯한 이 찬란한 투영들이 내 주위로 너무나 오래된 역사의 반영을 퍼뜨리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하지만 내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내 자아로 가득 채운 방에 신비와 아름다움이 침입하는 것이 어떤 불편함을 주었는지 말하기 어렵다. 습관의 마취 효과가 사라지자 나는 생각하고 느끼기 시작했고, 그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었다. 내 방의 문 손잡이는 세상의 다른 모든 문 손잡이와 달랐다. 그것을 돌릴 필요도 없이 저절로 열리는 것 같았고, 그 조작이 너무나 무의식적이 되어버렸다. 이제 그것은 골로의 영체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저녁 식사 종이 울리자마자 나는 식당으로 달려가고 싶어졌다. 그곳에서는 골로와 푸른수염을 모르는 큰 천장등이 매일 저녁 빛을 비추고 있었고, 그것은 내 부모님과 쇠고기 스튜를 알고 있었다. 나는 브라방의 쥬느비에브의 불행 때문에 더욱 소중해진 엄마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골로의 범죄는 나로 하여금 더욱 세심하게 내 양심을 살펴보게 만들었다.

저녁 식사가 끝난 후, 안타깝게도 나는 곧 엄마를 떠나야만 했다. 엄마는 날씨가 좋으면 정원에서, 날씨가 나쁘면 모두가 물러나는 작은 응접실에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남아 있었다. 모두가 그랬지만, 할머니는 예외였다. 할머니는 “시골에 갇혀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했고,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아버지와 끊임없이 논쟁을 벌였다. 아버지가 나를 밖에 있게 하는 대신 방에서 책을 읽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는 그 아이를 튼튼하고 활기차게 만들 수 없어요.” 할머니는 슬프게 말했다. “특히 저 아이는 체력과 의지력을 기를 필요가 많은데 말이에요.” 아버지는 어깨를 으쓱하며 기압계를 살펴보았다. 그는 기상학을 좋아했다. 엄마는 아버지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소리를 내지 않으며 애정 어린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우월함의 신비를 꿰뚫으려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할머니는 어떤 날씨에도, 심지어 비가 세차게 내리고 프랑수아즈가 귀중한 등나무 의자들을 젖을까 봐 서둘러 안으로 들여놓았을 때조차도 비어 있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정원에 있었다. 할머니는 흐트러진 회색 머리카락을 들어 올려 이마가 바람과 비의 건강함을 더 잘 흡수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말했다. “드디어 숨을 쉴 수 있구나!” 그리고는 젖은 산책로를 걸어 다녔다. 그 산책로는 자연에 대한 감각이 부족한 새 정원사가 너무 대칭적으로 정리해 놓은 것이었다. 아버지는 아침부터 그에게 날씨가 좋아질지 물어보곤 했다. 할머니는 짧고 열정적인 걸음으로 걸어 다녔다. 그 걸음은 폭풍우의 도취감, 위생의 힘, 내 교육의 어리석음, 정원의 대칭성에 의해 그녀의 영혼에 일어나는 다양한 움직임에 맞춰져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자주색 치마가 무릎까지 올라오는 진흙 얼룩으로 뒤덮이는 것을 피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 얼룩은 항상 그녀의 하녀에게 절망과 수수께끼였다.

저녁 식사 후 할머니는 늘 정원을 산책하셨다. 그런데 한 가지 일이 그녀를 집으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산책길이 주기적으로 응접실 앞 작은 정원으로 이어질 때였다. 카드 테이블 위에 술병이 놓여 있는 순간, 할머니는 외치곤 했다. “바틸드! 어서 와서 당신 남편이 코냑을 마시지 못하게 해요!” 사실 할머니를 놀리기 위한 것이었다. 할머니는 아버지의 가문과는 달리 술을 싫어하셨기 때문에, 모두가 그녀를 놀리고 괴롭혔다. 할아버지는 술을 마시지 못하게 되어 있었지만, 할머니는 그에게 몇 방울을 마시게 했다. 불쌍한 할머니는 응접실로 들어와 남편에게 코냑을 맛보지 말라고 애원했다. 할아버지는 화를 내며 한 모금을 마셨고, 할머니는 슬프고 낙담한 채, 그러나 여전히 미소 짓는 얼굴로 돌아갔다. 그녀의 마음은 너무나 겸손하고 온화해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자신의 고통을 하찮게 여기는 마음이 그녀의 눈빛에서 미소로 조화를 이루었다. 많은 사람들의 얼굴에서 볼 수 있는 것과는 달리, 그녀의 미소에는 자신에 대한 조소만 있었고, 우리 모두를 향한 그녀의 눈빛은 마치 키스와 같았다.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열정적으로 눈으로 어루만졌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가하는 이 고통, 할머니의 헛된 간청과 패배를 알고 있는 약함의 광경, 할아버지의 손에서 술잔을 빼앗으려는 쓸데없는 시도, 이런 것들을 보면서 나중에는 그것을 웃으며 바라보고 박해자의 편을 단호하고 명랑하게 들어 그것이 박해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설득할 정도로 익숙해지겠지만, 그때는 나에게 너무나 끔찍한 공포를 주었다. 나는 할머니를 때리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바틸드! 어서 와서 당신 남편이 코냑을 마시지 못하게 해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이미 겁쟁이가 된 어른처럼, 나는 우리가 크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우리 앞에는 고통과 불의가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공부방 옆 다락방, 지붕 밑에 있는 아이리스 향이 나는 작은 방으로 올라가 흐느꼈다. 그 방에는 담장 돌 사이로 자란 야생 까치밥나무가 반쯤 열린 창문으로 꽃가지를 들이밀어 향기를 더했다. 더 특별하고 세속적인 용도로 쓰이던 이 방은 낮에는 루생빌 르팽까지 보였다. 아마도 내가 열쇠로 잠글 수 있는 유일한 방이었기에, 오랫동안 나의 피난처가 되었다. 읽기, 공상, 눈물, 그리고 쾌락 등 침범할 수 없는 고독을 요구하는 모든 활동을 위한 피난처였다.

아아! 나는 몰랐다. 남편의 사소한 생활 습관의 일탈보다 더 슬프게도, 내 의지 부족과 연약한 건강, 그리고 그것들이 내 미래에 드리운 불확실성이 할머니를 괴롭혔다는 것을. 오후와 저녁의 끊임없는 산책 동안, 사람들은 하늘을 향해 비스듬히 올려진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았다. 나이가 들면서 거의 자줏빛이 된 갈색 뺨은 가을의 밭갈이처럼 고랑져 있었고, 외출할 때면 반쯤 올린 베일로 가려져 있었다. 추위나 슬픈 생각 때문에 그 뺨 위로는 항상 자기도 모르게 흘린 눈물이 말라가고 있었다.

내가 잠자리에 들 때 유일한 위안은 엄마가 내가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나를 안아주러 올 것이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 작별 인사는 너무 짧았고, 엄마는 너무 빨리 내려갔다. 엄마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복도를 지나는 푸른 모슬린 정원복 소리가 들리는 순간은 나에게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다. 그 정원복에는 작은 밀짚 끈이 달려 있었다. 그 순간은 엄마가 나를 떠나 다시 내려갈 순간을 예고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그 작별 인사가 가능한 한 늦게 오기를, 엄마가 아직 오지 않은 유예의 시간이 길어지기를 바라게 되었다.

때로는 엄마가 나를 안아주고 떠나려고 문을 열 때, 나는 그녀를 다시 불러 “한 번 더 안아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면 엄마가 곧 화난 얼굴을 할 것을 알고 있었다. 엄마가 내 슬픔과 불안에 대한 양보로 올라와 안아주고 평화의 입맞춤을 해주는 것이 아빠를 짜증나게 했기 때문이다. 아빠는 이런 의식을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내가 이런 필요성과 습관을 잃게 하려고 노력했고, 문간에 서 있을 때 한 번 더 입맞춤해 달라고 요구하는 습관을 들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가 화난 모습을 보면 조금 전 그녀가 내 침대 쪽으로 얼굴을 기울이고 사랑하는 얼굴을 내밀었을 때, 내 입술이 그녀의 실재와 잠들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평화의 성체처럼 주었던 모든 평온함이 파괴되었다.

하지만 엄마가 내 방에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만 머물렀던 그런 저녁들도, 손님들이 저녁 식사에 와서 엄마가 내게 작별 인사를 하러 올라오지 않았던 저녁들에 비하면 여전히 달콤했다. 손님들은 보통 스완 씨로 한정되었다. 그는 콩브레에서 우리 집에 오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때로는 이웃으로서 저녁 식사를 하러 왔고(그가 그 좋지 않은 결혼을 한 이후에는 더 드물어졌는데, 그 이유는 부모님이 그의 아내를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으셨기 때문), 때로는 저녁 식사 후 예고 없이 왔다.

우리가 큰 밤나무 아래 철제 탁자 주변에 앉아 있을 때, 정원 끝에서 “벨을 누르지 않고” 들어오는 집안 사람들을 쇠소리가 나는 끊임없고 차가운 소리로 귀를 먹먹하게 하고 지나가는 시끄러운 종소리가 아니라, 낯선 사람들을 위한 종의 수줍고 타원형의 황금빛 이중 울림을 들을 때면, 모든 사람들이 즉시 “손님이 왔네, 누구일까?”라고 물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스완 씨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큰고모는 본보기를 보이려는 듯 큰 소리로, 자연스럽게 들리려고 노력하는 어조로 말했다. 그렇게 속삭이지 말라고, 도착한 사람에게 그가 들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보다 더 무례한 것은 없다고 했다. 그리고 할머니를 정찰대로 보냈다. 할머니는 정원을 한 바퀴 더 돌 구실이 생겨 항상 기뻐했고, 그 기회를 이용해 지나가면서 몰래 장미 지지대 몇 개를 뽑아내어 장미들을 좀 더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마치 어머니가 미용사가 너무 납작하게 만든 아들의 머리를 부풀리려고 손을 대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모두는 할머니가 적에 대한 소식을 전해주기를 기다리며 긴장했다. 마치 여러 명의 가능한 공격자 중에서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곧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스완의 목소리를 알아듣겠어.” 실제로 그의 목소리만 알아들을 수 있었고, 구부러진 코와 녹색 눈을 가진 그의 얼굴은 잘 구별할 수 없었다. 그의 이마는 높았고, 거의 붉은 빛이 도는 금발 머리로 둘러싸여 있었다. 브레상 스타일로 빗어 넘긴 머리였다. 모기를 끌어들이지 않으려고 정원에 최소한의 빛만 유지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슬그머니 시럽을 가져오라고 말하러 갔다. 할머니는 시럽이 특별한 경우나 손님들을 위해서만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것이 더 친절해 보인다고 여겼다.

스완 씨는 할아버지보다 훨씬 젊었지만, 할아버지와 매우 친했다. 할아버지는 스완 씨의 아버지의 가장 절친한 친구 중 한 명이었다. 스완 씨의 아버지는 훌륭한 사람이었지만, 기이한 면이 있어서 작은 일에도 가끔 마음의 움직임이 멈추고 생각의 흐름이 바뀌곤 했다고 한다. 나는 일 년에 여러 번 저녁 식사 때 할아버지가 스완 씨의 아버지가 아내의 죽음 때 보였던 태도에 대한 일화를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스완 씨의 아버지는 아내를 밤낮으로 지켜보았다. 할아버지는 오랫동안 그를 보지 못했다가 콩브레 근처에 있는 스완 가의 영지로 달려갔고, 그가 관 넣는 것을 보지 않도록 잠시 시신이 있는 방에서 그를 데리고 나오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공원에서 몇 걸음 걸었는데, 그곳에는 약간의 햇빛이 있었다.

갑자기 스완 씨는 할아버지의 팔을 잡고 외쳤다. “아, 오랜 친구여, 이렇게 좋은 날씨에 함께 산책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네. 이 나무들, 이 산사나무들, 그리고 자네가 한 번도 칭찬해 주지 않은 내 연못이 예쁘지 않나? 자네 표정이 잠옷을 쓴 것 같아 보이네. 이 작은 바람을 느끼나? 아, 뭐라고 해도 인생은 좋은 점이 있지, 내 친애하는 아메데!” 갑자기 아내의 기억이 떠올랐고, 아마도 그런 순간에 기쁨의 감정에 빠진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너무 복잡하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익숙한 몸짓으로 이마에 손을 대고 눈과 안경을 닦았다. 그는 아내의 죽음을 위로받지 못했지만, 그녀를 생존한 2년 동안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내 불쌍한 아내를 자주 생각하지만, 한 번에 많이 생각하지는 못해.” “자주, 하지만 한 번에 조금씩, 불쌍한 스완처럼” 이라고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스완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가장 좋아하는 구절 중 하나가 되었다. 그는 가장 다양한 상황에서 이 말을 썼다. 스완의 아버지를 괴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최고의 판단자이며 그의 판결이 나에게 선례가 되어 후에 내가 비난하고 싶었던 잘못들을 용서하는 데 도움을 준 할아버지가 “하지만 어째서? 그는 금쪽같은 사람이었어!”라고 외쳤다.

수년 동안, 특히 결혼 전에 아들 스완 씨가 콩브레에 자주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큰고모와 조부모님들은 그가 더 이상 가족이 다니던 사회에 속해 있지 않다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스완이라는 이름이 우리 집에서 그에게 부여한 일종의 변장 아래, 그들은 – 유명한 강도를 모르고 숙박시키는 순진한 여관 주인처럼 완벽하게 무지한 채로 – 조키 클럽의 가장 우아한 회원 중 한 명이자 파리 백작과 웨일즈 왕자의 가장 친한 친구이며, 생제르맹 구역 상류 사회에서 가장 총애받는 사람들 중 하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스완의 화려한 사교계 생활에 대해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것은, 그의 신중하고 비밀스러운 성격 때문이기도 했지만, 당시 부르주아들이 사회를 바라보던 다소 힌두교적인 관념 때문이기도 했다. 그들은 사회를 폐쇄적인 카스트로 구성된 것으로 여겼고, 각 개인은 태어날 때부터 부모가 속한 계급에 배치된다고 생각했다. 예외적인 경력이나 예상치 못한 결혼으로 인한 행운이 아니고서는 그 계급에서 벗어나 상위 계급으로 진입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믿음이었다. 스완의 아버지는 증권 중개인이었다. “아들 스완”은 평생 동안 수입에 따라 재산이 다양한 납세자 카테고리처럼 한 계급에 속하게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들과 교류했는지 알고 있었고, 따라서 그의 교류 관계와 그가 “교제할 수 있는” 사람들도 알고 있었다. 만약 그가 다른 사람들을 알고 있다면, 그것은 젊은 시절의 관계였고, 내 부모님과 같은 가족의 오랜 친구들은 그가 고아가 된 후에도 매우 충실하게 우리를 방문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호의적으로 눈감아 주었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그가 만나는 사람들은 아마도 우리와 함께 있을 때 그가 인사조차 하지 못할 그런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스완에게 그의 부모와 동등한 지위의 다른 중개인의 아들들 사이에서 개인적인 사회적 계수를 적용하려 했다면, 그의 계수는 약간 낮았을 것이다. 그는 매우 소박한 태도를 지녔고 항상 골동품과 그림에 “집착”했기 때문에 지금은 그의 컬렉션을 쌓아두는 오래된 저택에 살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곳을 방문하고 싶어 했지만, 그곳은 오를레앙 부두에 있었고 큰고모는 그곳에 사는 것이 불명예스럽다고 생각했다. “당신은 정말로 감식가인가요? 당신의 이익을 위해 묻는 것입니다. 상인들에게 속아 엉터리 그림을 사들이고 있을 것 같아요.” 큰고모가 말했다. 그녀는 그에게 어떤 능력도 없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지적인 면에서도 대화 중 진지한 주제를 피하고 요리법을 아주 세세하게 설명할 때뿐만 아니라 할머니의 자매들이 예술적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매우 산문적인 정확성을 보이는 사람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지 않았다. 그의 의견을 물었을 때, 그림에 대한 감탄을 표현해달라고 요청받았을 때, 그는 거의 무례할 정도로 침묵을 지켰고, 그 대신 그림이 있는 박물관이나 그려진 날짜에 대한 물질적인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때 만회했다. 하지만 대개 그는 우리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골라 그에게 일어난 새로운 이야기를 매번 들려주며 우리를 즐겁게 하려고 노력했다. 콩브레의 약사, 우리 집 요리사, 마부와 관련된 이야기들이었다. 확실히 이 이야기들은 큰고모를 웃게 만들었지만, 그녀는 스완이 자신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는 것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이야기를 전하는 재치 때문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당신은 정말 특이한 사람이에요, 스완 씨!” 우리 가족 중 유일하게 약간 속물적인 그녀는 스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외부인들에게 그가 원한다면 오스만 대로나 오페라 거리에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언급하곤 했다. 그는 아마도 4~5백만 프랑을 물려받았을 스완 씨의 아들이었지만, 그것은 그의 변덕이었다. 그녀는 이 변덕이 다른 사람들에게 매우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파리에서 스완 씨가 1월 1일에 설탕에 절인 밤 자루를 가져왔을 때, 방문객이 있으면 그녀는 반드시 이렇게 말했다. “어머, 스완 씨, 당신은 여전히 와인 창고 근처에 살고 계시네요. 리옹행 기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그러시는 거죠?” 그리고 그녀는 눈 위로 안경을 치켜들고 다른 방문객들을 슬쩍 바라보았다.

하지만 만약 할머니에게 이 스완이 “아들 스완”으로서 파리의 가장 존경받는 공증인이나 변호사들을 포함한 모든 “훌륭한 부르주아”들에게 완벽하게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특권을 약간 소홀히 다루는 것 같았다), 마치 비밀리에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면, 그가 우리 집을 떠나 파리에서 잠자리에 들러 간다고 말한 후 길모퉁이를 돌자마자 발걸음을 돌려 어떤 중개인이나 그의 동업자의 눈도 결코 보지 못한 살롱으로 향한다고 말했다면, 그녀에게는 더 문학적인 여인이 아리스타이오스와 개인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놀라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아리스타이오스가 그녀와 대화를 나눈 후 테티스의 왕국 깊은 곳으로 잠수할 것이며, 그곳은 필멸의 인간의 눈에서 숨겨진 제국이고 버질이 그를 팔 벌려 맞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을 이해했을 것이다. 아니면 그녀의 마음에 떠오를 가능성이 더 높은 이미지를 사용하자면 (그녀는 그것을 콩브레의 작은 과자 접시에 그려진 것을 보았기 때문에) – 알리바바와 저녁 식사를 했는데, 그가 혼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 상상도 못할 보물로 가득 찬 동굴로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았다.

어느 날 그가 저녁 식사 후 파리에서 우리를 방문했을 때 정장 차림으로 와서 사과했다. 프랑수아즈가 그의 출발 후 마부로부터 그가 “공주와” 저녁을 먹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래, 사교계 공주지!” 큰고모가 뜨개질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어깨를 으쓱하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큰고모는 그를 거리낌 없이 대했다. 그가 우리의 초대를 영광으로 여겨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그가 여름에 정원에서 딴 복숭아나 라즈베리 바구니를 들고 오지 않고 우리를 방문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고, 이탈리아 여행에서 돌아올 때마다 내게 명화의 사진을 가져다주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했다.

처음 오는 외국인들에게 대접할 만큼 그를 충분히 위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초대하지 않은 큰 만찬을 위해 그리비슈 소스나 파인애플 샐러드 조리법이 필요할 때마다 그를 불러오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프랑스 왕가의 왕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우리가 결코 알지 못할 사람들이고 그들 없이도 살아갈 수 있어요, 그렇죠?”라고 큰고모는 트위컨햄에서 온 편지를 주머니에 넣고 있을지도 모르는 스완에게 말했다.

할머니의 여동생이 노래를 부르던 저녁이면 그는 피아노를 끌어당겨 악보를 넘겼다. 평소에는 매우 귀하게 여겨지던 이 물건을 다룰 때도 그는 값싼 물건을 다루듯 아이의 거친 태도로 대했다. 그 시기에 많은 클럽 회원들이 알고 있던 스완은 내 큰고모가 만들어낸 스완과는 분명 달랐다. 콩브레의 작은 정원에서 초인종이 망설이듯 두 번 울린 후, 큰고모는 스완 가문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주입하고 생기를 불어넣어 어둠 속에서 할머니를 따라 모습을 드러내는 그 모호하고 불확실한 인물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로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삶의 가장 사소한 것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누구나 가서 확인할 수 있는 사양서나 유언장처럼 물질적으로 구성된 전체가 아니다. 우리의 사회적 인격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만들어낸 창조물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을 ‘보는’ 것조차 부분적으로는 지적 행위다. 우리는 보고 있는 사람의 외모를 그 사람에 대해 우리가 가진 모든 관념으로 채운다. 그리고 우리가 표상하는 전체적인 모습에서 이 관념들이 확실히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것들은 결국 완벽하게 뺨을 부풀리고, 코의 선을 따라 정확하게 부착되며, 목소리의 음색에 너무나 잘 섞여 마치 목소리가 투명한 껍질에 불과한 것처럼 된다. 그래서 우리가 그 얼굴을 볼 때마다, 그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우리는 바로 그 관념들을 다시 발견하고 듣게 되는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내 부모님이 만들어낸 스완에는 그의 상류 사회 생활의 많은 세부사항이 무지로 인해 누락되어 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그의 앞에 있을 때 우아함이 그의 얼굴을 지배하고 그의 구부러진 코에서 자연스러운 경계처럼 멈추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또한 그 위신을 잃고 비어 있고 넓은 얼굴에, 그 평가 절하된 눈 밑에, 우리의 주간 저녁 식사 후 카드 테이블이나 정원에서 함께 보낸 한가로운 시간들의 애매하고 달콤한 잔재를 – 반은 기억, 반은 망각인 – 쌓을 수 있었다. 우리 친구의 육체적 외피는 그의 부모에 관한 몇몇 기억들과 함께 그렇게 잘 채워져 있어서, 이 스완은 완전하고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고, 내가 나중에 정확히 알게 된 스완에서 이 첫 번째 스완으로 기억 속에서 이동할 때, 나는 한 사람에서 다른 별개의 사람으로 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첫 번째 스완에서 나는 내 젊은 시절의 매력적인 오류들을 발견한다. 그는 다른 스완보다 같은 시기에 내가 알았던 사람들과 더 닮았다. 마치 우리의 삶이 같은 시대의 모든 초상화가 가족의 분위기, 같은 톤을 가지고 있는 박물관과 같은 것처럼 말이다. 이 첫 번째 스완은 여가로 가득 차 있고, 큰 밤나무와 라즈베리 바구니, 그리고 에스트라곤 한 줄기의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할머니가 성심 수녀원에서 알게 된 한 부인(우리의 계급 개념 때문에 서로 호감이 있음에도 관계를 유지하지 않기로 했던)에게 부탁을 하러 갔을 때, 유명한 부이용 가문 출신의 빌파리지 후작 부인이 그녀에게 말했다. “제 조카 드 로므 부부의 절친한 친구인 스완 씨를 잘 아시는 것 같군요.” 할머니는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집에 대해 열광하며 방문에서 돌아왔다. 빌파리지 부인은 그곳에 세를 들라고 권했다. 또한 할머니는 조끼 가게 주인과 그의 딸에 대해서도 열광했다. 그들은 안마당에 가게를 갖고 있었는데, 할머니는 계단에서 찢어진 치마를 고치러 그곳에 들어갔었다. 할머니는 이 사람들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어린 딸이 진주 같다고 말했고, 조끼 가게 주인이 자신이 본 사람들 중 가장 품위 있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선언했다. 할머니에게 품위란 사회적 지위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조끼 가게 주인이 한 대답에 감탄하며 엄마에게 말했다. “세비녜도 이보다 더 잘 말하지 못했을 거예요!” 반면에 빌파리지 부인의 조카를 그곳에서 만났을 때는 이렇게 말했다. “아, 얘야, 그 사람 정말 속물이더라!”

그런데 스완에 관한 이야기는 할머니의 마음속에서 스완의 위상을 높이는 대신 빌파리지 부인의 위상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왔다. 할머니의 말을 믿고 우리가 빌파리지 부인에게 부여했던 존경심이 그녀에게 그것에 걸맞은 행동을 할 의무를 지우는 것 같았고, 그녀는 스완의 존재를 알고 자신의 친척들이 그와 교제하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그 의무를 저버린 것 같았다. “스완을 안다고요? 당신이 맥마흔 원수의 친척이라고 했던 사람 맞아요?” 내 부모님의 이런 스완에 대한 견해는 나중에 그가 최악의 사회, 거의 창녀나 다름없는 여자와 결혼했을 때 확인된 것 같았다. 그는 그녀를 우리에게 소개하려고 하지 않았고, 점점 뜸해지긴 했지만 계속 혼자 우리 집에 왔다. 그들은 이를 통해 – 그가 그녀를 만난 곳이 바로 그곳이라고 가정하면서 – 그들이 알지 못하는 스완의 일상적인 환경을 판단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한 번은 할아버지가 신문에서 스완 씨가 X 공작의 일요일 점심 모임의 가장 충실한 단골 손님 중 한 명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X 공작의 아버지와 삼촌은 루이 필립 치하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인들이었다. 할아버지는 몰레, 파스키에 공작, 브로이 공작과 같은 인물들의 사생활을 상상해볼 수 있는 사소한 사실들에 호기심이 많았다. 그는 스완이 그들을 알았던 사람들과 교제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뻐했다. 반면에 큰고모는 이 소식을 스완에게 불리하게 해석했다. 자신의 계급, 자신의 ‘사회적 계층’ 밖에서 교제 상대를 선택하는 사람은 그녀의 눈에 불행한 타락을 겪는 것으로 보였다. 그녀는 그것이 지위가 좋은 사람들과의 모든 아름다운 관계를 한 번에 포기하는 것처럼 여겼다. 그 관계는 현명한 가문들이 자녀들을 위해 명예롭게 유지하고 축적해온 것이었다. (큰고모는 심지어 우리 친구의 아들과도 만나기를 그만두었는데, 그 이유는 그가 공작 부인과 결혼하여 그녀에게는 존경받는 공증인의 아들의 지위에서 왕비들이 때때로 호의를 베풀었다고 전해지는 옛 시종이나 마부 출신의 모험가 중 하나의 지위로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스완이 우리 집에 저녁 식사하러 올 다음날 밤 이 새로 발견한 그의 친구들에 대해 물어볼 계획이라는 할아버지의 의도를 비난했다. 반면에 할머니의 두 자매인 노처녀들은 할아버지와 같은 고귀한 성품을 지녔지만 그의 지성은 없었기에, 그들의 처남이 그런 하찮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서 어떤 즐거움을 찾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들은 고상한 포부를 가진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역사적 관심이 있는 것일지라도 ‘가십’이라고 불리는 것에 관심을 가질 수 없었으며, 일반적으로 미적이거나 덕성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저녁 식사 때 세속적인 삶과 관련된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에 대한 그들의 생각의 무관심은 너무나 컸기에, 그들의 청각 – 그것의 일시적인 무용함을 이해한 – 은

두 노처녀가 좋아하는 주제로 대화를 이끌어가지 못할 때면, 대화는 하찮은 일상이나 세속적인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서로를 쉬게 하고, 심지어 위축되도록 내버려 두었다. 할아버지가 두 자매의 관심을 끌어야 할 때는 정신과 의사들이 주의력이 산만한 환자에게 쓰는 물리적 경고 수단을 동원해야 했다. 칼날로 유리잔을 여러 번 두드리며 갑자기 목소리와 눈빛으로 말을 걸어야 했다. 이러한 폭력적인 방법은 정신과 의사들이 건강한 사람들과의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자주 사용했는데, 아마도 직업적 습관 때문이거나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는 미쳤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스완이 저녁 식사에 오기로 한 전날, 그는 직접 아스티 와인 한 상자를 보내왔다. 두 노처녀는 그제야 관심을 보였다. 고모는 피가로 신문을 들고 있었는데, 코로 그림 옆에 “샤를 스완 씨의 소장품에서”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녀는 “스완이 피가로 지의 ‘영광’을 차지했다는 걸 보셨나요?”라고 물었다. 할머니는 “그가 안목이 뛰어나다고 항상 말했잖아요.”라고 대답했다. 큰고모는 “당연하지. 네가 우리와 다른 의견을 내는 순간부터 말이야.”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항상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가 항상 자신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를 자신의 의견에 대한 전면적인 비난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침묵을 지켰다.

할머니의 자매들이 스완에게 피가로 기사에 대해 말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큰고모는 만류했다. “그에게 기쁨을 주지 않을 것 같아요. 나도 내 이름이 저렇게 신문에 대놓고 실리면 아주 불쾌할 것 같고, 누가 그것에 대해 말하면 전혀 기분 좋지 않을 거예요.” 그녀는 할머니의 자매들을 설득하는 데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그들은 저속함을 혐오한 나머지 개인적인 언급을 교묘하게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기술을 너무 멀리 밀고 나가, 종종 그것이 향하는 당사자에게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게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스완에게 그의 아내가 아닌 딸에 대해 말하도록 설득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그는 딸을 너무나 사랑해서 그 때문에 결혼했다고 했다. “한 마디만 해도 돼요. 그녀가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보세요. 그에게는 너무 잔인할 거예요.” 하지만 아버지는 화를 냈다. “아니야! 너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고 있어. 그건 우스운 일이 될 거야.”

하지만 스완의 방문이 고통스러운 걱정거리가 된 사람은 우리 중에서 나뿐이었다. 외부인이나 심지어 스완 씨가 있는 저녁에는 어머니가 내 방에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식탁에서 저녁을 먹지 않고 저녁 식사 후에 정원에 나갔다가 9시에 인사를 하고 자러 갔다. 나는 모든 사람보다 먼저 저녁을 먹고 나서 8시까지 식탁에 앉아 있었다. 그 시간이 되면 내가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 약속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보통 내가 잠들 때 내 침대에서 해주시던 그 소중하고 연약한 키스를 식당에서 내 방으로 옮겨야 했고, 내가 옷을 벗는 동안 그 달콤함이 깨지지 않고 그 휘발성 있는 덕이 퍼지거나 증발하지 않도록 간직해야 했다. 그리고 하필 내가 더 조심스럽게 받아야 할 그 저녁에 갑자기, 공개적으로 그것을 가져가야 했다. 문을 닫을 때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강박증 환자들처럼, 내가 하는 일에 필요한 주의와 정신의 자유를 가질 시간과 여유도 없이 말이다. 그들은 병적인 불확실성이 다시 찾아올 때 문을 닫은 순간의 기억을 승리의 무기로 삼고 싶어 한다.

우리 모두 정원에 있었고, 종소리가 두 번 망설이듯 울렸다. 모두가 스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서로를 의아한 듯이 쳐다보며 할머니를 정찰대로 보냈다. “그의 와인에 대해 똑똑하게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을 잊지 마세요. 와인이 아주 맛있고 상자도 엄청 크다고요.” 할아버지가 두 시누이에게 당부했다. “쉿, 하지 마세요.” 큰고모가 말했다. “모두가 속삭이는 집에 도착하면 얼마나 편안할까요.” “아, 스완 씨가 오셨군요. 내일 날씨가 좋을지 물어봐야겠어요.” 아버지가 말했다. 어머니는 우리 가족이 스완의 결혼 이후 그에게 줄 수 있었던 모든 고통을 자신의 한 마디로 지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를 잠시 따로 데려갈 방법을 찾았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따라갔다. 곧 그녀를 식당에 남겨두고 내 방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에 그녀를 한 걸음도 떠날 수 없었다. 다른 저녁처럼 그녀가 나를 포옹하러 올 것이라는 위안도 없이 말이다.

“자, 스완 씨,” 그녀가 말했다. “당신 딸 얘기 좀 해주세요. 그 아이도 아버지처럼 아름다운 작품들을 좋아하겠죠.” “자, 우리 모두 베란다에 앉읍시다.” 할아버지가 다가오며 말했다. 어머니는 말을 멈춰야 했지만, 이 제약에서 또 다른 섬세한 생각을 끌어냈다. 마치 좋은 시인들이 운율의 압제로 인해 가장 큰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스완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둘이 있을 때 다시 얘기하죠. 오직 엄마만이 당신을 이해할 자격이 있어요. 그녀의 어머니도 내 의견에 동의하실 거예요.” 우리는 모두 철제 테이블 주위에 앉았다. 나는 오늘 밤 내 방에서 혼자 잠들지 못하고 보낼 불안한 시간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내일 아침이면 그것들을 잊어버릴 테니 중요하지 않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려 했고, 나를 두렵게 하는 다가오는 심연을 다리처럼 건너갈 미래의 생각들에 매달리려 했다. 하지만 내 걱정으로 긴장된 내 마음, 어머니를 향한 응시처럼 볼록해진 내 마음은 어떤 외부의 인상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생각들은 물론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지만, 나를 감동시키거나 산만하게 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나 재미있는 요소를 모두 밖에 남겨두어야 한다는 조건으로만 그랬다. 마취제 덕분에 온전한 의식을 가지고 자신에게 행해지는 수술을 지켜보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환자처럼, 나는 내가 좋아하는 시를 암송하거나 할아버지가 스완에게 오디프레 파스키에 공작에 대해 말하려는 노력을 관찰할 수 있었지만, 전자에서 어떤 감동도, 후자에서 어떤 즐거움도 느끼지 못했다. 이 노력들은 헛된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스완에게 이 웅변가에 대한 질문을 하자마자, 할머니의 자매 중 한 명의 귀에 이 질문이 깊고 부적절한 침묵으로 울렸고, 그녀는 그것을 깨뜨리는 것이 예의바르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다른 자매에게 말을 걸었다. “셀린, 상상해 봐. 나는 스웨덴 출신의 젊은 가정교사를 알게 됐는데, 그녀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협동조합에 대해 아주 흥미로운 세부 사항들을 알려줬어. 그녀를 꼭 저녁 식사에 초대해야 해.”

“하루 저녁이었어.” “그럼요!” 그의 누이 플로라가 대답했다. “하지만 저도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어요. 뱅퇴유 씨 집에서 모방을 잘 아는 한 노학자를 만났는데, 모방이 어떻게 연극 역할을 만드는지 아주 자세히 설명해 주었대요.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였어요. 뱅퇴유 씨의 이웃이었는데, 전 전혀 몰랐어요. 그분은 아주 친절하더라고요.” “뱅퇴유 씨만 친절한 이웃이 있는 건 아니에요.” 내 고모 셀린이 수줍음 때문에 목소리를 높이고 미리 계획한 듯 인위적으로 외치며 스완에게 그녀가 ‘의미심장한 눈빛’이라고 부르는 것을 던졌다. 동시에 내 고모 플로라는 이 문장이 셀린의 아스티 와인에 대한 감사 인사라는 것을 이해하고, 마찬가지로 스완을 축하와 아이러니가 섞인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단순히 자매의 재치를 강조하기 위해서거나, 스완이 그것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에 질투를 느껴서거나, 아니면 그가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고 생각해 그를 놀리지 않을 수 없어서였다. “저는 그분을 저녁 식사에 초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플로라가 계속했다. “모방이나 마테르나 부인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분은 몇 시간이고 쉬지 않고 말씀하시거든요.” “그건 정말 즐거운 일이겠군요.” 할아버지가 한숨을 쉬었다. 불행히도 자연은 그의 정신에 스웨덴 협동조합이나 모방의 연극 역할 구성에 열정적으로 관심을 가질 가능성을 완전히 누락했다. 마치 할머니의 자매들에게 이야기에 맛을 더하기 위해 직접 넣어야 하는 작은 소금 알갱이를 제공하는 것을 잊은 것처럼 말이다. “보세요,” 스완이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리려는 것이 당신이 물으신 것과 생각보다 더 관련이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세상은 그리 크게 변하지 않았거든요. 오늘 아침 생시몽의 글을 다시 읽었는데, 당신이 재미있어하실 만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스페인 대사 시절에 관한 권인데, 최고의 작품은 아닙니다. 사실 일기에 가깝죠. 하지만 적어도 놀랍게 잘 쓰여진 일기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루한 신문들과는 큰 차이가 있죠.” “저는 당신 의견에 동의할 수 없어요. 신문 읽는 게 아주 즐거울 때도 있답니다…” 고모 플로라가 끼어들었다. 그녀가 피가로 지에서 스완의 코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우리의 관심사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말이에요!” 고모 셀린이 덧붙였다. “그렇지 않다고는 말씀 못 드리겠네요.” 스완이 놀라며 대답했다. “제가 신문에 대해 불평하는 점은 매일 사소한 일에 우리의 주의를 끌게 한다는 겁니다. 반면에 우리는 평생에 세 네 번 정도 중요한 것들이 담긴 책을 읽죠. 우리가 매일 아침 열병처럼 신문의 띠를 뜯는다면, 차라리 신문의 내용을 바꿔야 합니다.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지만… 파스칼의 ‘팡세’를 실어야 할 것 같아요!” (그는 학자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아이러니한 강조를 담아 이 단어를 발음했다.) “그리고 10년에 한 번씩 펴보는 금박 장정의 책에서 (그는 세속적인 것들에 대한 경멸을 보이며 덧붙였다) 그리스 여왕이 칸으로 갔다거나 레옹 공주가 가장무도회를 열었다는 소식을 읽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적절한 균형이 잡힐 거예요.” 하지만 진지한 것들에 대해 가볍게라도 말한 것을 후회하며 그는 말했다. “우리 대화가 참 고상하군요. 왜 이런 ‘고상한 주제’를 다루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할아버지를 향해 말했다. “그래서 생시몽은 몰르브리에가 자신의 아들들에게 손을 내밀 용기를 가졌다고 이야기합니다. 아시다시피, 그는 몰르브리에에 대해 이렇게 말했죠. ‘나는 이 뚱뚱한 병 안에서 불쾌함과 무례함, 어리석음밖에 본 적이 없다.’” “뚱뚱하든 아니든, 전 그 안에 전혀 다른 것이 들어 있는 병들도 알고 있어요.” 플로라가 재빨리 말했다. 그녀 역시 스완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싶어 했다. 아스티 와인 선물이 두 사람 모두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셀린이 웃기 시작했다. 스완은 당황하며 계속했다. “‘무지에서였는지 아니면 함정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생시몽이 쓰길, ‘그는 내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려고 했다. 나는 그것을 막기에 충분히 일찍 알아차렸다.’” 할아버지는 이미 ‘무지에서였는지 아니면 함정이었는지’라는 표현에 감탄하고 있었다. 하지만 셀린 아가씨는 생시몽이라는 이름 – 문학가라는 점 – 때문에 청각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지 않아 이미 분개하고 있었다. “뭐라고요? 당신은 그걸 칭찬하시는 건가요? 정말 대단하군요! 그게 무슨 뜻인가요? 한 사람이 다른 사람만큼 가치 있지 않다는 건가요? 그가 공작이든 마부든 무슨 상관이 있나요? 지성과 마음만 있다면 말이에요. 당신의 생시몽은 자녀 교육을 잘못하고 있어요. 모든 정직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라고 가르치지 않다니 말이에요. 정말 끔찍해요. 당신은 그걸 인용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할아버지는 이런 방해 때문에 스완에게 자신을 즐겁게 해줄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괴로워하며 작은 목소리로 엄마에게 말했다. “네가 가르쳐준 시구를 생각나게 해줘. 이런 순간에 나를 위로해주는 그 구절 말이야. 아, 그래: ‘주여, 당신은 우리가 미워하게 만드는 덕목이 얼마나 많은지!’ 정말 잘 썼지!” 나는 엄마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식탁에 앉으면 저녁 식사 내내 남아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를 귀찮게 하지 않기 위해 엄마는 사람들 앞에서 여러 번 나를 껴안게 하지 않을 것이다. 마치 내 방에 있을 때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식당에서, 저녁 식사가 시작되고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면서, 그 짧고 은밀한 키스를 미리 준비하기로 했다.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미리 해두기로 했다. 내 시선으로 키스할 볼의 위치를 고르고, 내 생각을 준비해서 이 정신적 키스의 시작으로, 엄마가 나에게 허락할 1분 동안 그녀의 볼을 내 입술에 느낄 수 있도록 하려고 했다. 마치 짧은 포즈 시간밖에 얻을 수 없는 화가가 팔레트를 준비하고 기억과 메모를 바탕으로 모델의 부재 시에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미리 해두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저녁 식사 종이 울리기도 전에 할아버지가 무의식적인 잔인함으로 말했다. “꼬마가 피곤해 보이는군. 올라가서 자야겠어. 오늘 저녁 식사가 늦기도 하고.” 아버지는 할머니나 엄마처럼 약속을 철저히 지키지 않았다. “그래, 가서 자거라.” 나는 엄마에게 키스하려 했지만, 그 순간 저녁 식사 종이 울렸다. “아니, 그만. 엄마와 충분히 작별 인사했잖니. 이런 과시는 우스꽝스러워. 어서 올라가.” 그래서 나는 위안도 없이 떠나야 했다. 나는 계단을 한 걸음씩, 속담처럼 ‘마음에 거슬리며’ 올라가야 했다. 내 마음은 엄마에게 돌아가고 싶어 했지만, 엄마는 키스로 내 마음이 따라올 수 있게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항상 그토록 슬프게 올라가던 이 미움받는 계단에서는 바니시 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매일 밤 내가 느끼던 특별한 슬픔을 어떻게든 흡수하고 고정시킨 듯했고, 아마도 후각적 형태로 내 지성이 더 이상 그 몫을 할 수 없게 되어 내 감수성에는 더욱 잔인하게 다가왔다. 우리가 잠들어 있고 치통이 아직

마치 200번이나 물에서 건져 올리려고 애썼던 소녀처럼, 또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몰리에르의 시구처럼 느껴졌던 것에서 벗어나 깨어나는 것은 큰 안도감을 주었다. 우리의 지성이 치통의 관념을 영웅적이거나 운율이 있는 모든 위장에서 벗겨낼 수 있다는 사실은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그러나 내 방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슬픔이 훨씬 더 빠르고, 거의 순간적으로, 교묘하면서도 갑작스럽게 나에게 닥쳐왔을 때, 나는 이 안도감과는 정반대의 것을 경험했다. 그것은 이 계단 특유의 니스 냄새를 들이마심으로써, 도덕적 침투보다 훨씬 더 독성이 강하게 느껴졌다. 내 방에 들어가자 모든 출구를 막고, 셔터를 닫고, 이불을 풀어 내 무덤을 파고, 잠옷이라는 수의를 입어야만 했다. 하지만 여름에는 레프스 커튼 아래에서 너무 더웠기 때문에, 방에 추가된 철제 침대에 묻히기 전에, 나는 반항의 움직임을 보였다. 사형수의 술책을 시도해 보고 싶었다. 나는 어머니께 편지를 썼다. 중요한 일 때문에 올라와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물론 편지에 쓸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두려워한 것은 콩브레에 있을 때 나를 돌보는 일을 맡았던 고모의 요리사 프랑수아즈가 내 메모를 전달하기를 거부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사람들이 있을 때 어머니께 심부름을 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배우가 무대에 있는 동안 편지를 전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해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엄격하고, 풍부하고, 미묘하며, 융통성 없는 규범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그녀에게 고대 법률의 모습을 주었다. 그 법률은 젖먹이 아이들을 학살하라는 잔인한 규정 옆에, 어미 염소의 젖에 새끼 염소를 삶는 것을 과도하게 섬세하게 금지하거나, 동물의 허벅지 근육을 먹는 것을 금지했다. 이 규범은, 우리가 그녀에게 주는 어떤 심부름을 하지 않으려는 그녀의 갑작스러운 고집을 보면, 그녀의 주변이나 시골 하인으로서의 삶에서는 결코 제안할 수 없었을 사회적 복잡성과 세속적 세련됨을 예견한 것 같았다. 그리고 옛날에 궁정 생활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오래된 저택들이 있고, 화학 제품 공장 노동자들이 성 테오필의 기적이나 네 아들 에몽을 묘사하는 섬세한 조각 사이에서 일하는 제조업 도시들처럼, 그녀 안에 오래되고 고귀하며 잘못 이해된 프랑스의 과거가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화재가 발생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프랑수아즈가 스완 씨가 있는 자리에서 나 같은 보잘것없는 사람 때문에 엄마를 방해할 가능성이 낮은 이유를 설명하는 규범의 조항은 단순히 그녀가 부모님뿐만 아니라 죽은 자, 사제, 왕들에 대해서도 가지고 있는 존경심을 표현한 것이었다. 또한 손님에 대한 존경심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책에서라면 나를 감동시켰을 수도 있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올 때는 항상 그것에 대해 말할 때 취하는 진지하고 감동받은 듯한 어조 때문에 나를 짜증나게 했다. 특히 오늘 저녁에는 그녀가 저녁 식사에 부여한 신성한 성격이 그 의식을 방해하기를 거부할 것이라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내 편에 기회를 두기 위해, 나는 망설이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내가 엄마께 편지를 쓰고 싶어한 게 아니라, 엄마가 나를 떠나면서 어떤 물건을 찾아보라고 부탁하셨던 것에 대한 답장을 보내는 것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셨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메모를 전달하지 않으면 엄마가 분명히 매우 화를 내실 거라고 했다. 프랑수아즈가 나를 믿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원시인들의 감각이 우리보다 더 강했던 것처럼, 그녀는 우리가 숨기고 싶어 하는 모든 진실을 우리에게는 포착할 수 없는 징후로 즉시 알아차렸다. 그녀는 5분 동안 봉투를 쳐다보았다. 마치 종이를 조사하고 필적을 관찰하는 것이 내용의 성격에 대해 알려주거나 그녀가 참조해야 할 규범의 조항을 알려줄 것처럼 말이다. 그러고는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나갔다. 그 표정은 “부모님들께 이런 아이가 있다니 얼마나 불행한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그녀는 돌아와서 아직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중이라 모든 사람 앞에서 집사가 편지를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구강 청결제를 마실 때쯤이면 엄마께 전달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곧바로 내 불안이 사라졌다. 이제 아까처럼 내일까지 엄마를 떠난 게 아니었다. 내 짧은 메모가 엄마를 화나게 할 것이지만(그리고 이 책략이 스완의 눈에는 나를 우스꽝스럽게 만들 것이기에 두 배로), 적어도 보이지 않게 기쁜 마음으로 엄마와 같은 방에 들어갈 수 있게 해줄 것이고, 엄마의 귀에 대고 나에 대해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금지되고 적대적이었던 식당, 심지어 아이스크림 – ‘그라니테’ – 와 구강 청결제까지도 엄마가 나 없이 즐기고 있어서 나에게는 해롭고 치명적으로 슬픈 즐거움을 품고 있는 것 같았던 그곳이 이제 나에게 열렸다. 그리고 달콤해진 과일이 껍질을 깨고 나오듯, 엄마가 내 글을 읽는 동안 엄마의 관심을 내 도취된 마음에 분출시키고 투사할 것이다. 이제 나는 엄마와 분리되지 않았다. 장벽이 무너졌고, 우리를 연결하는 아름다운 실이 있었다. 게다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엄마가 틀림없이 오실 것이다!

내가 막 겪은 고통을, 만약 스완이 내 편지를 읽고 그 의도를 알았다면 비웃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반대로,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비슷한 고통이 그의 삶에서 오랫동안 괴로움이었고, 아마도 그만큼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이 없는 즐거운 곳에 있고, 그곳에 갈 수 없다는 것을 느낄 때의 고통을, 그는 사랑으로 알았다. 사랑은 어떤 의미에서 그 고통을 예정하고, 그 고통에 사로잡히고 특별해지는 운명이다. 하지만 나처럼 그 고통이 우리 삶에 나타나기 전에 들어왔을 때, 그것은 그 고통을 기다리며 떠돌아다니고, 자유롭고, 특정한 애착 없이 하루는 자녀에 대한 애정으로, 다음 날은 친구에 대한 우정으로 봉사한다. 그리고 프랑수아즈가 돌아와 내 편지가 전달될 것이라고 말했을 때 내가 처음으로 경험한 기쁨을, 스완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여인의 어떤 친구나 친척이 그녀가 있는 호텔이나 극장에 도착했을 때, 그녀를 만날 무도회나 공연, 첫 공연에서 우리가 밖에서 방황하며 절망적으로 그녀와 소통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을 때 느끼는 거짓된 기쁨이었다. 그 친구는 우리를 알아보고 친근하게 다가와 우리가 거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는다. 그리고 우리가 그의 친척이나 친구에게 급히 할 말이 있다고 꾸며내자, 그는 아주 간단하다고 말하며 우리를 현관으로 데려가 5분 안에 그녀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한다. 우리는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 이 순간 내가 프랑수아즈를 사랑했듯이 – 한마디로 우리에게 견딜 수 없고 비인간적이며 거의 적대적이었던 축제를 견딜 만하고 인간적이며 거의 호의적으로 만들어준 호의적인 중개자를. 만약 우리가 그의 판단을 믿는다면, 우리가 사랑하는 여인 주변의 적대적이고 사악하고 매혹적인 소용돌이가 그녀를 우리에게서 멀리 데려가 우리를 비웃게 만들고 있다고 믿었던 그 축제 말이다. 그에 비하면 다른 사람들,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에 대해 그는 우리에게 말해준다. 심지어 그들의 결점에 대해서도,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여인이 그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주는 중요성에 대해서도. “자, ” 그는 우리에게 말한다, “난 가서 그녀를 좀 귀찮게 할 거예요. 그녀를 데려오라고 할 거예요. 그녀는 잠시 여기 나와야 할 거예요. 하지만 난 그녀가 빨리 돌아가게 할 거예요. 그녀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어 할 테니까요.” 아! 만약 우리가 사랑하는 여인의 행복이 우리의 행복보다 더 중요하다면, 우리는 그를 보면, 우리에게 다가와 잔인한 비밀의 신도임을 자처한 그 친척처럼 파티의 다른 손님들도 그다지 악마적인 면은 없을 것 같았다. 그녀가 알 수 없는 기쁨을 맛볼 그 닿을 수 없고 고통스러운 시간들, 예기치 못한 틈새로 우리가 그곳에 들어갔다. 그 시간들을 구성했을 순간들 중 하나, 다른 순간들만큼이나 실제적이고 어쩌면 우리에게는 더 중요할 수도 있는 순간, 우리의 연인이 더 깊이 관여하고 있는 순간을 우리는 상상하고, 소유하고, 개입하고, 거의 창조했다. 우리가 아래에 있다고 그녀에게 알릴 순간 말이다. 그리고 분명 파티의 다른 순간들도 그 순간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를 그토록 고통스럽게 할 만큼 더 즐거운 것은 없었을 것이다. 친절한 친구가 우리에게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내려오게 되어 기뻐할 거예요! 위에서 지루해하는 것보다 당신과 이야기하는 게 훨씬 더 즐거울 거예요.” 아! 스완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자신이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파티장까지 쫓겨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화를 내는 여자에게는 제삼자의 선의가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을. 종종 그 친구는 혼자 내려온다.

어머니는 오지 않으셨고, 내 자존심을 고려하지 않고 (내가 부탁했다고 여겨진 조사 결과를 그녀에게 말해달라는 이야기가 거짓말로 드러나지 않게 하는 데 걸려 있었다) 프랑수아즈를 통해 이런 말을 전하셨다. “대답이 없다.” 나는 이후 ‘팰리스’ 호텔의 안내원이나 도박장의 시종들이 어떤 불쌍한 소녀에게 전하는 것을 자주 들었다. 그 소녀는 놀라며 말한다. “뭐라고요, 아무 말도 안 했다고요? 그럴 리가 없어요! 제 편지 잘 전해 주셨죠? 알겠어요, 좀 더 기다려 볼게요.” 그리고 – 그녀는 변함없이 안내원이 그녀를 위해 켜려고 하는 추가 가스등이 필요 없다고 단언하며 그곳에 머문다. 날씨에 대한 드문 대화만 듣고 있다. 안내원은 시간을 깨닫고 갑자기 사냥꾼을 보내 얼음으로 고객의 음료를 식히게 한다. 프랑수아즈의 제안을 거절하고 나는 그녀에게 허브차를 만들거나 내 곁에 있어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녀를 주방으로 돌려보내고 나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정원에서 커피를 마시는 부모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몇 초 후, 어머니께 그 쪽지를 쓰고 그녀를 화나게 할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를 다시 볼 순간에 가까이 갔다고 느꼈기에, 그녀를 다시 보지 않고는 잠들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심장 박동이 점점 더 고통스러워졌다. 나는 내 불행을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스스로에게 설교하며 흥분을 더해갔기 때문이다. 갑자기 내 불안이 사라지고 행복감이 밀려왔다. 마치 강력한 약물이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해 고통을 없애는 것처럼. 나는 어머니를 다시 보지 않고는 잠들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녀가 잠자리에 들기 위해 올라올 때 그 후 오랫동안 그녀와 사이가 나빠질 것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녀를 안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끝난 고뇌로 인한 평온함이 나를 비상한 기쁨 속으로 이끌었다. 기다림, 갈증, 위험에 대한 두려움만큼이나. 나는 조용히 창문을 열고 침대 발치에 앉았다. 아래에서 내 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밖에서는 사물들도 달빛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조용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 같았다. 달빛은 각 사물 앞에 그 반사를 늘리고 물러나게 하여 더 짙고 구체적으로 만들었고, 동시에 풍경을 얇게 하고 확장시켰다. 마치 지금까지 접혀 있던 지도를 펼치는 것처럼. 움직일 필요가 있는 것, 어떤 밤나무 잎사귀는 움직였다. 하지만 그 세밀하고 완전한 떨림은 가장 작은 뉘앙스와 마지막 섬세함까지 실행되었지만 나머지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그것과 섞이지 않은 채 제한된 상태로 남았다. 이 침묵에 노출되어 아무것도 흡수되지 않은 채, 가장 먼 소리들, 분명 도시 반대편 정원에서 와야 할 소리들이 매우 상세하게 들렸다. 그 ‘완성도’는 오직 그들의 피아니시모 때문에만 멀리서 들리는 효과를 낸 것 같았다. 마치 콩세르바투아르 오케스트라가 너무나 잘 연주해서 한 음도 놓치지 않으면서도 콘서트홀에서 멀리 떨어져 들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약음 모티브처럼. 모든 오래된 정기회원들 – 스완이 자리를 양보했을 때 할머니의 자매들도 – 마치 아직 트레비즈 거리를 돌지 않은 행진하는 군대의 먼 발걸음 소리를 듣는 것처럼 귀를 기울였다.

나는 내가 처한 상황이 부모님께 가장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실, 외부인이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그는 오직 정말로 수치스러운 잘못만이 그러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받은 교육에서 잘못의 순서는 다른 아이들의 교육과 달랐다. 나는 다른 모든 잘못들보다 앞서, 분명 내가 가장 조심스럽게 보호받아야 할 잘못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 나는 그 공통적인 특징이 신경성 충동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잘못들을 두려워하도록 길들여졌다. 하지만 그때는 그 말을 발음하지 않았고, 그 기원을 밝히지 않았다. 그렇게 했다면 나는 그것에 굴복하는 것이 용서받을 수 있거나 어쩌면 저항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것들을 앞서는 불안과 뒤따르는 처벌의 엄격함으로 알아차렸다. 나는 내가 방금 저지른 잘못이 다른 잘못들과 같은 종류이며, 그것들보다 훨씬 더 심각하지만 내가 심하게 처벌받았던 다른 잘못들과 같은 계열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잠자리에 들기 위해 올라오실 때 그녀의 길목에 서 있다가, 그녀가 내가 인사를 다시 하려고 복도에 남아 있는 것을 보시면, 더 이상 집에 있을 수 없게 될 것이고 다음 날 기숙학교로 보내질 것이 확실했다. 좋다! 5분 후에 창문으로 뛰어내려야 한다 해도, 나는 그게 더 좋았다.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어머니였다.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싶었다. 나는 이 욕망을 실현하는 길에 너무 멀리 와버려서 되돌아갈 수 없었다.

나는 스완을 배웅하는 부모님의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현관문의 방울 소리가 그가 떠났음을 알렸을 때, 나는 창문으로 갔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랍스터가 맛있었는지, 스완 씨가 커피와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더 먹었는지 물으셨다. “별로 맛있지 않았어요,”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다음에는 다른 맛을 시도해 봐야겠어요.” “스완이 얼마나 변했는지 모르겠어요,” 큰고모가 말씀하셨다. “그는 정말 늙었어요!” 큰고모는 스완을 항상 같은 젊은이로 보는 데 너무 익숙해져서 그가 자신이 계속 생각하던 나이보다 덜 젊어 보이는 것에 놀라셨다. 그리고 부모님도 이제 그에게서 이 비정상적이고 과도하며 수치스럽고 독신자들이 받아 마땅한 노화를 발견하기 시작하셨다. 모든 독신자들에게 큰 날이 다음 날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그들에게는 그 날이 비어 있기 때문에 아침부터 순간들이 쌓여가고 이후 자녀들 사이에서 나누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그의 창녀 같은 아내 때문에 많은 걱정이 있는 것 같아요. 콩브레의 모든 사람들이 알다시피 그녀는 어떤 쇠랑 씨와 살고 있어요. 샤를뤼스 씨의 일이었죠. 온 마을의 소문거리였어요.” 어머니는 그가 얼마 전부터 덜 슬퍼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가 아버지처럼 눈을 닦고 이마를 만지는 동작을 하는 일도 줄었어요. 난 그가 속으로 더 이상 그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물론 더 이상 사랑하지 않지,”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오래 전에 그에게서 그 문제에 대한 편지를 받았는데, 난 서둘러 그 내용을 무시했지. 그 편지에는 그의 아내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이 분명했어. 자, 보세요, 당신들은 그에게 아스티 와인에 대해 감사 인사를 하지 않았군요,” 할아버지가 두 처제에게 말을 돌렸다. “뭐라고요? 감사 인사를 하지 않았다고요? 내 생각에는 꽤 섬세하게 표현했다고 봐요,” 플로라 고모가 대답했다. “그래, 네가 아주 잘 표현했어. 난 네가 자랑스러웠어,” 셀린 고모가 말했다. “네 말도 아주 좋았어.” “그래, 난 친절한 이웃들에 대한 내 문구가 꽤 마음에 들었어.” “그걸 감사 인사라고 하나?” 할아버지가 외쳤다. “난 그 말을 들었지만, 그게 스완을 위한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 그가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어.” “하지만 스완은 바보가 아니에요. 그가 이해했을 거라고 확신해요. 난 병 수와 와인 가격까지 말할 순 없었잖아요!” 아버지와 어머니만 남았고, 그들은 잠시 앉아 있었다. 그러자 아버지가 말했다. “자, 괜찮다면 우리 올라가서 자자.” “당신이 원한다면 여보, 난 전혀 졸리지 않아요. 이 카페인 없는 커피 아이스크림 때문은 아니겠지만, 난 아직 정신이 말짱해요. 하지만 부엌에 불이 켜져 있는 게 보이네요. 가엾은 프랑수아즈가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당신이 옷을 벗는 동안 내 코르셋을 풀어달라고 부탁해야겠어요.” 어머니는 계단으로 이어지는 격자무늬 문을 열었다. 곧 어머니가 올라가 창문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조용히 복도로 나갔다. 내 심장이 너무 세게 뛰어서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었지만, 더 이상 불안함 때문이 아니라 공포와 기쁨 때문이었다. 계단 난간에서 어머니의 촛불 빛이 비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어머니가 보였다. 나는 달려갔다. 첫 순간 어머니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그러더니 어머니의 얼굴에 화난 표정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실제로 이보다 더 작은 일로도 며칠 동안 말을 걸지 않곤 했다. 어머니가 한마디라도 했다면, 그건 다시 말을 걸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되었을 것이고, 어쩌면 그게 더 무서웠을지도 모른다. 마치 침묵과 냉담함이 아이 같아 보일 정도로 심각한 처벌이 준비되고 있다는 신호처럼 말이다. 한마디 말은 마치 해고하기로 결정한 하인에게 대답할 때의 침착함과 같았을 것이다. 또는 이틀 동안 화내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거절했을 입대하러 가는 아들에게 주는 키스와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화장실에서 옷을 벗고 있던 아버지가 올라오는 소리를 들었고, 아버지가 내게 할 말다툼을 피하기 위해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도망가, 도망가, 네 아버지가 너를 이렇게 미친 듯이 기다리고 있는 걸 보지 않게!”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와서 잘 자요 인사를 해주세요”라고 반복했다. 아버지의 촛불 빛이 벽에 비치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렸지만, 동시에 그의 접근을 협박 수단으로 삼아 어머니가 계속 거절한다면 아버지가 나를 여기서 발견할 것이라는 점을 이용해 “내 방으로 돌아가, 곧 갈게”라고 말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아버지가 우리 앞에 서 있었다. 나도 모르게 아무도 듣지 못할 만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난 끝장이야!”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아버지는 늘 어머니와 할머니가 허락한 더 관대한 약속들 속에서 내게 허락된 것들을 거부했다. 그는 ‘원칙’에 신경 쓰지 않았고, 그와는 ‘국제법’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혀 우연한 이유로, 혹은 아무 이유 없이 그는 마지막 순간에 거부하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습관적이고 신성한 산책을 금지했다. 또는 오늘 밤처럼 의례적인 시간보다 훨씬 일찍 “자, 올라가서 자라, 설명은 필요 없어!”라고 말했다. 하지만 또한 그는 원칙이 없었기 때문에(할머니의 의미에서) 엄밀히 말해 완고하지 않았다. 그는 잠시 놀라고 화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어머니가 당황한 목소리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자 그녀에게 말했다. “그럼 그와 함께 가봐, 네가 방금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잖아. 그의 방에서 잠시 있다 와, 난 아무것도 필요 없어.” “하지만 여보,” 어머니가 수줍게 대답했다. “내가 잠이 오든 안 오든 그건 상관없어요. 이 아이에게 그런 습관을 들이면 안 돼요…” “여기서 습관 들이는 게 아니야,” 아버지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이 꼬마가 슬퍼하는 게 보이잖아. 이 아이가 절망적으로 보여. 우리가 고문관은 아니잖아! 네가 그를 병들게 하면 뭐가 좋아? 그의 방에 침대가 두 개 있으니 프랑수아즈에게 큰 침대를 준비하라고 하고 오늘 밤은 그와 함께 자. 자, 잘 자요. 나는 너희처럼 신경질적이지 않으니 자러 가겠어.”

아버지에게 감사 인사를 할 수는 없었다. 그가 ‘감상적인 것’이라고 부르는 것에 짜증을 냈기 때문이다. 나는 움직이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여전히 우리 앞에 서 있었다. 키가 크고 흰 잠옷 위에 보라색과 분홍색의 인도 캐시미어를 두르고 있었다. 신경통이 있은 이후로 그는 그것을 머리에 감았다. 마치 스완 씨가 내게 준 베노초 고촐리의 판화 속 아브라함이 사라에게 이삭의 편에서 물러나라고 말하는 모습과 같았다. 그 일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내가 그의 촛불 반사광이 올라가는 것을 본 계단의 벽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내 안에서도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믿었던 많은 것들이 파괴되었고, 그때는 예측할 수 없었던 새로운 기쁨과 슬픔을 낳은 새로운 것들이 세워졌다. 마치 옛 것들이 이해하기 어려워진 것처럼 말이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꼬마와 함께 가봐”라고 말할 수 있었던 때도 이미 오래전 일이다. 그런 시간의 가능성은 내게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귀를 기울이면 아버지 앞에서 참았던 흐느낌을 아주 분명히 다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 흐느낌은 어머니와 단둘이 있게 되었을 때 터져 나왔다. 사실 그 흐느낌은 결코 멈춘 적이 없다. 단지 내 주변의 삶이 이제 더 조용해졌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듣게 된 것뿐이다. 마치 낮 동안에는 도시의 소음에 가려져 멈춘 것처럼 보이다가 저녁의 고요 속에서 다시 울리기 시작하는 수도원의 종소리처럼 말이다.

어머니는 그날 밤 내 방에서 보냈다. 내가 집에서 쫓겨날 만큼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했던 순간, 부모님은 내가 평소에 얻을 수 있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허락해 주셨다.

아름다운 행동에 대한 보상으로 아버지는 그중 하나를 내게 주셨다. 이런 은혜를 베풀 때도 아버지의 행동은 여전히 그 특유의 자의적이고 부당한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대개 미리 계획된 것이 아니라 우연한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자러 가라고 할 때 그의 ‘엄격함’이라고 불렀던 것은 어머니나 할머니의 그것보다 그 이름을 덜 받을 만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면에서 나와 더 다른 그의 성격은 아마도 지금까지 내가 매일 밤 얼마나 불행한지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이를 잘 알고 계셨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충분히 사랑했기에 고통을 덜어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내 신경 과민을 줄이고 의지를 강화하기 위해 고통을 극복하도록 가르치고 싶어 했다. 나에 대한 애정이 다른 종류였던 아버지는 그런 용기가 있었을지 모르겠다. 한 번은 내가 슬퍼하고 있다는 걸 이해하자마자 어머니에게 “가서 위로해주렴.”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날 밤 어머니는 내 방에 머물렀다.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이 시간들을 어떤 후회로도 망치고 싶지 않았던 듯, 프랑수아즈가 어머니가 내 곁에 앉아 내 손을 잡고 꾸짖지 않고 울게 두는 걸 보고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깨닫고 “부인,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도련님이 그렇게 우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애도 이유를 모르는 걸, 프랑수아즈. 신경이 예민해진 거야. 어서 큰 침대를 준비하고 자러 가렴.” 이렇게 처음으로 내 슬픔은 더 이상 처벌받아야 할 잘못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인정된 비자발적인 병, 내가 책임질 수 없는 신경 상태로 여겨졌다. 나는 더 이상 눈물의 쓰라림에 죄책감을 섞을 필요가 없어 안도감을 느꼈다. 이제 죄 없이 울 수 있었다. 한 시간 전 어머니가 내 방에 올라오기를 거절하고 경멸스럽게 자야 한다고 대답하게 했던 상황이 뒤바뀌어 이제는 나를 어른 취급하며 일종의 슬픔의 사춘기, 눈물의 해방에 이르게 한 것에 대해 프랑수아즈 앞에서 자부심을 느꼈다. 행복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어머니가 나를 위해 처음으로 양보한 것 같았고, 그것이 어머니에게는 고통스러웠을 것이며, 어머니가 나를 위해 생각했던 이상에 대한 첫 번째 포기였다고 여겨졌다. 내가 승리를 거둔 것 같다면 그것은 어머니를 상대로 한 것이었고, 마치 병이나 슬픔, 나이가 그랬을 법한 것처럼 나는 어머니의 의지를 약화시키고 이성을 꺾는 데 성공한 것 같았다. 이 저녁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 되어 슬픈 날짜로 남을 것 같았다. 지금 용기가 있었다면 어머니에게 “아니에요, 여기서 주무시지 마세요.”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의 열렬한 이상주의적 성격을 절제하는 그녀의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지혜를 알고 있었고, 이제 잘못은 저질러졌으니 적어도 그 평온한 즐거움을 맛보게 하고 아버지를 방해하고 싶어 하지 않으실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물론 그날 밤 어머니의 아름다운 얼굴은 여전히 젊음으로 빛났다. 어머니가 내 손을 부드럽게 잡고 눈물을 그치게 하려 할 때 말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의 분노가 이 새로운 다정함보다 내게는 덜 슬펐을 것이다. 마치 불경하고 은밀한 손으로 어머니의 영혼에 첫 주름을 그리고 첫 흰 머리카락을 나타나게 한 것 같았다. 이 생각에 흐느낌이 더욱 커졌고, 그러자 나와 어떤 감상에도 빠지지 않던 어머니가 갑자기 내 감정에 휩싸여 눈물을 참으려 하는 것을 보았다. 내가 알아차린 것을 느끼자 어머니는 웃으며 말씀하셨다. “여기 우리 꼬마 병아리, 꼬마 카나리아가 이대로 가다간 엄마를 자기만큼이나 바보로 만들 것 같구나. 자, 네도 잠이 안 오고 엄마도 그러니까 이렇게 초조해하지 말고 뭔가를 하자. 네 책 중 하나를 가져오렴.” 하지만 거기엔 책이 없었다. “할머니가 네 생일에 주시려고 하는 책들을 지금 꺼내면 덜 좋아할까? 잘 생각해 봐. 모레 아무것도 받지 못해 실망하지 않을 거니?” 오히려 나는 매우 기뻤고 어머니는 책 꾸러미를 가지러 가셨다. 포장지를 통해 그 짧고 넓은 크기만 알아볼 수 있었지만, 이 첫 모습만으로도 이미 새해 선물 그림 도구 상자와 작년의 누에를 압도했다. 그것은 ‘악마의 연못’, ‘프랑수아 르 샹피’, ‘꼬마 파데트’, ‘마스터 링거’였다. 할머니는 처음에 뮈세의 시집, 루소의 책 한 권, ‘인디아나’를 골랐다고 한다. 할머니는 가벼운 독서가 사탕이나 과자만큼이나 해롭다고 여기셨지만, 천재의 위대한 숨결이 아이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이 신체에 미치는 맑은 공기와 바닷바람의 영향보다 더 위험하고 덜 활력을 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아버지가 할머니가 주려고 한 책들을 듣고 거의 미쳤다고 하자 할머니는 내가 선물을 받지 못할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주이 르 비콩트의 서점으로 다시 가셨다 (날씨가 무척 더웠고 할머니는 너무 힘들어 하셔서 의사가 어머니에게 할머니를 그렇게 지치게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결국 조르주 상드의 시골 소설 네 편으로 바꾸셨다. “얘야,”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이 아이에게 형편없이 쓴 것을 줄 수는 없어.” 사실 할머니는 지적 이익을 얻을 수 없는 것은 절대 사지 않으셨다. 특히 아름다운 것들이 우리에게 주는 이익, 즉 안락과 허영의 만족이 아닌 다른 곳에서 우리의 즐거움을 찾도록 가르치는 그런 이익 말이다. 누군가에게 소위 ‘유용한’ 선물을 해야 할 때도, 안락의자나 식기, 지팡이를 줄 때도 ‘오래된’ 것을 찾으셨다. 마치 오랜 세월의 사용으로 그것들의 유용성이 지워져 현재의 필요보다는 과거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데 더 적합해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할머니는 내 방에 가장 아름다운 기념물이나 풍경의 사진이 있기를 바라셨다. 하지만 구매 시점에 이르면, 그것이 미학적 가치를 지닌다 해도 기계적 재현 방식에서 비속함과 유용성이 너무 빨리 자리를 차지한다고 여기셨다. 할머니는 교묘한 방법을 써서 상업적 진부함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해도 최소한 줄이고, 그 대신 대부분을 예술로 대체하려 했다. 여러 ‘겹’의 예술을 도입하려 했다. 샤르트르 대성당, 생클루의 분수, 베수비오 화산의 사진 대신 스완에게 위대한 화가가 이것들을 그린 적이 있는지 물어보고, 코로의 샤르트르 대성당, 위베르 로베르의 생클루 분수, 터너의 베수비오 화산 사진을 주는 것을 선호했다. 이는 예술의 단계를 한 단계 더한 것이었다. 하지만 걸작이나 자연을 재현하는 데서 사진작가가 배제되고 위대한 예술가로 대체되었다면, 그 해석을 재현하는 데 있어서는 사진작가가 다시 권리를 되찾았다.

할머니는 저속함의 위험이 닥칠 때마다 그것을 물리치려고 애썼다. 스완에게 작품이 판화로 제작되지 않았는지 물었고, 가능하다면 그녀는 단순히 의미 있는 것 이상의 흥미를 지닌 오래된 판화를 선호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오늘날 더 이상 볼 수 없는 상태의 걸작을 보여주는 판화, 모건이 복원하기 전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 판화 같은 것을 좋아했다. 선물을 고르는 할머니의 이런 방식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티치아노의 그림을 바탕으로 한 베네치아에 대한 내 인상은 단순한 사진들이 주었을 인상보다 확실히 덜 정확했다. 큰고모가 할머니를 비난하고자 할 때, 집에서는 더 이상 그녀가 젊은 약혼자들이나 나이 든 부부에게 선물한 안락의자들의 수를 헤아릴 수 없게 되었다. 그 의자들은 수령인 중 한 명이 앉으려고 처음 시도했을 때 즉시 무너져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작은 꽃 장식, 미소, 때로는 과거의 아름다운 상상력이 여전히 구분되는 목공품의 견고함에 대해 너무 신경 쓰는 것은 소심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가구들 중 어떤 필요에 부응하는 것들조차도, 우리가 더 이상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그녀를 매혹시켰다. 마치 우리가 현대 언어에서 습관의 마모로 지워진 은유를 보는 오래된 표현 방식처럼 말이다. 실제로, 그녀가 내 생일 선물로 주곤 했던 조르주 상드의 시골 소설들은 오래된 가구처럼 시대에 뒤떨어진 표현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제는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표현들 말이다. 할머니는 다른 것들보다 이런 책들을 더 선호했다. 마치 그녀가 고딕 양식의 비둘기 집이나 시간 속에서 불가능한 여행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오래된 물건들이 있는 집을 더 기꺼이 빌렸을 것처럼 말이다.

엄마가 내 침대 옆에 앉았다. 그녀는 붉은 표지와 이해할 수 없는 제목이 내게 독특한 개성과 신비로운 매력을 주는 ‘프랑수아 르 샹피’를 들고 있었다. 나는 아직 진짜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조르주 상드가 소설가의 전형이라고 들었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프랑수아 르 샹피’에서 뭔가 정의할 수 없고 즐거운 것을 상상하게 되었다. 호기심이나 연민을 자극하기 위한 서술 기법, 불안과 우울을 불러일으키는 특정한 말투, 그리고 약간의 지식이 있는 독자라면 많은 소설에 공통적으로 있다고 인식할 만한 것들이, 나에게는 단순해 보였다. 나는 새 책을 많은 유사한 것들을 가진 물건이 아니라 오직 자체로만 존재할 이유가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것은 ‘프랑수아 르 샹피’만의 특별한 본질에서 나오는 불안한 발산물이었다. 이 평범한 사건들, 이 흔한 것들, 이 일상적인 단어들 속에서 나는 마치 이상한 억양이나 강조를 느꼈다.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더욱 모호해 보였는데, 그 당시 나는 책을 읽을 때 종종 여러 페이지 동안 전혀 다른 생각에 빠져 있곤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산만함이 이야기에 남긴 공백에, 엄마가 소리 내어 읽어줄 때는 그녀가 모든 사랑 장면을 건너뛰는 것이 더해졌다. 그래서 제분소 주인의 아내와 아이 사이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이상한 변화들, 그리고 그것들이 싹트는 사랑의 진전에서만 설명을 찾을 수 있는 변화들이 내게는 깊은 신비로 가득 차 보였다. 나는 그 신비의 근원이 ‘샹피’라는 알 수 없지만 달콤한 이름에 있을 것이라고 기꺼이 상상했다. 그 이름은 내가 왜인지 모르게 그것을 지닌 아이에게 선명하고 붉은빛을 띠며 매력적인 색채를 부여했다. 엄마가 불충실한 낭독자였다면, 그녀는 또한 진실된 감정의 억양을 발견한 작품들에 대해서는 해석의 존중과 단순함, 소리의 아름다움과 부드러움으로 훌륭한 낭독자였다. 심지어 삶에서도, 예술 작품이 아닌 존재들이 그녀의 애정이나 감탄을 불러일으킬 때, 그녀가 자식을 잃은 적이 있는 어머니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그런 명랑함의 빛, 나이 든 노인에게 그의 고령을 상기시킬 수 있는 축제나 기념일에 대한 언급, 이 젊은 학자에게 지루해 보일 수 있는 가사에 대한 이야기를 그녀의 목소리, 몸짓, 대화에서 어떤 경의를 갖고 배제하는지 보는 것은 감동적이었다. 마찬가지로, 그녀가 조르주 상드의 산문을 읽을 때, 그것은 언제나 엄마가 할머니에게서 삶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배웠고, 내가 훨씬 나중에야 책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쳐야 했던 그런 선함과 도덕적 고결함을 담고 있었다. 그녀는 목소리에서 모든 소소함과 꾸밈을 배제하여 강력한 흐름이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그녀는 그녀의 목소리를 위해 쓰여진 것 같고 말하자면 그녀의 감성의 음역 안에 온전히 들어맞는 이 문장들이 요구하는 모든 자연스러운 애정, 모든 넓은 부드러움을 제공했다. 그녀는 그것들을 적절한 어조로 공격하기 위해 그것들에 선행하고 그것들을 지시한 진심 어린 억양을 찾아냈다. 그 덕분에 그녀는 지나가면서 동사 시제의 모든 거친 면을 부드럽게 했고, 반과거와 단순과거에 선함에 내재된 부드러움, 애정에 내재된 우울함을 부여했다. 그녀는 끝나가는 문장을 시작될 문장으로 이끌었고, 때로는 음절들의 진행을 서두르거나 늦추어 그것들의 양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균일한 리듬 속에 들어가게 했다. 그녀는 이 평범한 산문에 일종의 감성적이고 지속적인 생명을 불어넣었다.

내 후회는 진정되었고, 나는 엄마가 내 곁에 있는 이 밤의 달콤함에 빠져들었다. 나는 이런 밤이 다시 오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바라는 것, 이 슬픈 밤 시간 동안 엄마를 내 방에 두는 것은 삶의 필요성과 모든 이의 바람에 너무나 반하는 것이어서, 오늘 밤 허락된 이 성취는 인위적이고 예외적인 것일 수밖에 없었다. 내일이면 내 불안이 다시 시작될 것이고 엄마는 그곳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 불안이 진정되었을 때, 나는 더 이상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내일 밤은 아직 멀었다. 나는 시간이 있어 방법을 강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비록 그 시간이 내게 어떤 추가적인 힘도 줄 수 없고, 문제는 내 의지와 무관한 것들이었지만, 그것들을 나로부터 여전히 분리하고 있는 간격만이 그것들을 더 피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밤에 잠에서 깨어 콩브레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그곳의 어둠 속에서 잘려 나간 이 빛나는 부분만을 다시 보았다. 마치 벵갈 불꽃이 타오르거나 전기 투사기가 건물을 밝히고 나누는 것처럼, 다른 부분들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밑바닥은 꽤 넓었고, 작은 응접실과 식당, 그리고 우리의 슬픔을 무의식적으로 만들어낸 스완 씨가 도착할 어두운 복도의 시작, 그리고 내가 첫 계단으로 향하던 현관이 있었다. 그 계단은 오르기 너무나 괴로워서 그 자체로 이 불규칙한 피라미드의 매우 좁은 몸통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꼭대기에는 내 침실과 엄마가 들어오는 유리문이 달린 작은 복도가 있었다. 한마디로, 항상 같은 시간에 보이는, 주변에 있을 수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고립된 채, 어둠 속에서 뚜렷이 드러나고 혼자 떠 있는, 과거의 한 순간이었다.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드러나는 것은 내가 옷을 벗는 장면에 꼭 필요한 배경뿐이었다. 마치 시골에서 공연할 때 오래된 연극의 시작 부분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았다. 콩브레는 단지 좁은 계단으로 연결된 두 층으로만 이루어진 것 같았고, 항상 저녁 7시인 것 같았다.

사실, 누군가 물어봤다면 콩브레에는 다른 것들도 있고 다른 시간대도 있다고 대답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기억해낼 수 있는 것은 오직 의지적인 기억, 즉 지성의 기억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이 기억이 과거에 대해 주는 정보는 과거의 어떤 것도 보존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콩브레의 나머지 부분에 대해 생각해볼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실제로 나에게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영원히 죽은 것일까? 그럴 수도 있었다.

이 모든 것에는 많은 우연이 작용한다. 그리고 두 번째 우연, 즉 우리의 죽음이라는 우연은 종종 우리가 첫 번째 우연의 은혜를 오래 기다리지 못하게 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사람들의 영혼이 어떤 하등한 존재, 짐승이나 식물, 무생물 속에 갇혀 있다는 켈트족의 믿음은 매우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우리에게는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지만, 우리가 그들이 갇혀 있는 나무 옆을 지나거나 그 물건을 소유하게 되는 날, 많은 사람들에게 결코 오지 않는 그날까지 말이다. 그때 그들은 떨며 우리를 부르고, 우리가 그들을 알아차리는 순간 마법이 깨진다. 우리에 의해 해방된 그들은 죽음을 이기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돌아온다.

우리의 과거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그것을 떠올리려 노력하는 것은 헛된 일이며, 우리 지성의 모든 노력은 소용없다. 과거는 지성의 영역과 능력 밖에 숨겨져 있다. 어떤 물질적인 대상 속에,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그 물질적 대상이 주는 감각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우리가 죽기 전에 우연히 그 대상을 만나느냐 마느냐는 운에 달려 있다.

콩브레에서 내가 잠자리에 드는 장면과 그 드라마가 아닌 모든 것이 나에게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은 지 이미 여러 해가 지났다. 어느 겨울날,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내가 추위에 떠는 것을 보고 평소와 달리 차 한 잔을 마시라고 권하셨다. 나는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왜인지 마음을 바꿨다. 어머니는 쁘띠 마들렌이라 불리는 짧고 통통한 과자를 가져오라고 하셨다. 그것은 가리비 껍데기의 골이 있는 면에 찍어낸 것 같았다. 곧 나는 기계적으로, 우울한 하루와 우울한 내일을 생각하며 지쳐서, 마들렌 조각을 적신 차 한 숟가락을 입에 가져갔다. 그러나 과자 부스러기가 섞인 한 모금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몸을 떨며 내 안에서 일어나는 특별한 일에 주목했다. 기분 좋은 즐거움이 나를 사로잡았고,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것은 즉시 인생의 우여곡절을 무관심하게 만들고, 재앙을 무해하게 만들고, 삶의 짧음을 환상적으로 만들었다. 마치 사랑이 나를 귀중한 본질로 채우는 것처럼 말이다. 아니, 그 본질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나는 더 이상 자신을 평범하고, 우연적이고, 죽을 운명이라고 느끼지 않았다. 이 강렬한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일까? 나는 그것이 차와 과자의 맛과 관련이 있지만, 그것을 무한히 초월하며 같은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어디서 왔을까?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어디서 그것을 붙잡을 수 있을까?

나는 두 번째 모금을 마시지만 첫 번째보다 더 많은 것을 찾지 못했고, 세 번째 모금은 두 번째보다 조금 덜 가져다주었다. 이제 멈출 때가 되었다. 음료의 효과가 줄어드는 것 같았다. 내가 찾는 진실이 그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것이 분명했다. 그것이 그 진실을 일깨웠지만 알지는 못했고, 단지 내가 해석할 줄 모르는 같은 증거를 점점 더 약하게 반복할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그것을 다시 요구하고 온전히 찾아내어 결정적인 설명을 위해 곧바로 사용할 수 있기를 원했다. 나는 찻잔을 내려놓고 내 마음으로 향했다. 진실을 찾는 것은 마음의 몫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마음이 스스로를 넘어서는 것을 느낄 때마다 심각한 불확실성이 찾아왔다. 찾는 자인 마음 자체가 그가 찾아야 할 어두운 나라이며, 그의 모든 짐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곳이었다. 찾는 것? 그뿐만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마음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 오직 마음만이 실현할 수 있고 그 후에야 빛 속으로 들여보낼 수 있는 것과 마주하고 있다.

나는 다시 이 알 수 없는 상태가 무엇이었을지 자문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논리적인 증거를 제공하지 않았지만, 다른 모든 것들이 사라지게 만드는 그 행복감, 그 실재성의 증거를 제공했다. 나는 그것을 다시 나타나게 하려고 시도했다. 나는 생각으로 처음 차를 한 숟가락 마신 순간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같은 상태를 다시 찾았지만, 새로운 명확성은 없었다. 나는 내 마음에 한 번 더 노력해 달라고, 도망가는 감각을 다시 한 번 불러오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붙잡으려는 열정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나는 모든 장애물, 모든 이질적인 생각을 제거하고, 옆방의 소음으로부터 내 귀와 주의를 보호했다. 하지만 내 마음이 성공하지 못한 채 지치는 것을 느끼자, 나는 오히려 그것에게 내가 거부했던 주의를 돌리게 하고, 다른 것을 생각하게 하고, 최후의 시도 전에 회복하게 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나는 그 앞에 공허를 만들고, 그 첫 모금의 아직 신선한 맛을 다시 마주하게 했다. 그러자 내 안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며 올라오려 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큰 깊이에서 닻이 올려진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그것은 천천히 올라왔다. 나는 저항을 느꼈고 지나온 거리의 소리를 들었다.

분명 내 안 깊은 곳에서 떨리는 이것은 이 맛과 연결된 이미지, 시각적 기억일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 다가오려고 애썼다. 하지만 너무 멀리, 너무 모호하게 싸우고 있었다. 나는 겨우 움직이는 색채의 포착할 수 없는 소용돌이가 뒤섞인 중성적인 반사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형태를 구별할 수 없었고, 유일한 해석자인 그것에게 그의 동시대인이자 분리할 수 없는 동반자인 맛의 증언을 번역해달라고, 그것이 어떤 특별한 상황, 과거의 어떤 시기에 관한 것인지 알려달라고 요청할 수 없었다.

이 기억, 오래된 순간이 동일한 순간의 매력에 이끌려 그토록 멀리서 와서 내 깊은 곳에서 움직이고, 흔들고, 들어올린 것이 내 맑은 의식의 표면까지 도달할까? 나는 모르겠다. 이제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그것은 멈췄고, 아마도 다시 내려갔을 것이다. 그것이 다시 그 어둠에서 올라올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나는 열 번이나 그것을 향해 다시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 매번 모든 어려운 일, 모든 중요한 작업에서 우리를 멀어지게 하는 나약함이 나에게 그만두라고, 그저 차를 마시면서 오늘의 걱정과 쉽게 되새길 수 있는 내일의 욕망에 대해 생각하라고 속삭였다.

그리고 갑자기 기억이 나타났다. 그 맛은 일요일 아침 콩브레에서 (그날은 미사 시간 전에는 외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레오니 고모의 방에 인사하러 갔을 때, 그녀가 자신의 차나 린덴차에 적셔 주던 쁘띠 마들렌의 맛이었다. 작은 마들렌을 보는 것만으로는 맛보기 전까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도 그 후로 과자점 진열대에서 자주 보았지만 먹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미지가 콩브레의 그 날들에서 벗어나 다른 날들과 연결되었을 것이다.

콩브레와 연결되는 더 최근의 기억들을 떠올리려 했다. 어쩌면 너무 오랫동안 기억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분해되어 버렸다. 형태들도, 그리고 엄격하고 경건한 주름 아래 감각적으로 풍만했던 작은 조개 모양의 과자도 사라졌거나, 잠들어 의식에 다다를 수 있는 확장력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오래된 과거에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때, 존재들이 죽고 사물들이 파괴된 후에도, 유일하게 더 연약하지만 더 생생하고, 더 비물질적이며, 더 지속적이고 더 충실한 냄새와 맛이 오랫동안 남아 영혼처럼 기억하고, 기다리고, 희망하며, 다른 모든 것들의 폐허 위에서 거의 만질 수 없는 한 방울로 기억의 거대한 건축물을 흔들림 없이 지탱한다.

그리고 내가 고모가 주신 린덴차에 적신 마들렌 조각의 맛을 알아차리자마자(비록 왜 이 기억이 나를 그토록 행복하게 만드는지 아직 알지 못했고 그것을 발견하는 것을 훨씬 나중으로 미뤄야 했지만), 곧바로 그녀의 방이 있던 거리의 낡은 회색 집이 무대 장치처럼 나타나 뒤쪽에 부모님을 위해 지어진 정원이 내다보이는 작은 별채에 달라붙었다(그때까지 내가 본 유일한 잘린 부분이었다). 그리고 집과 함께 마을, 아침식사 전에 보내졌던 광장,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든 날씨에 심부름을 갔던 거리들, 날씨가 좋으면 걸었던 길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마치 일본인들이 물이 담긴 도자기 그릇에 그때까지는 구분할 수 없었던 작은 종이 조각들을 담그자 그것들이 펼쳐지고, 휘어지고, 색깔이 입혀지고, 차별화되어 꽃, 집, 일관된 인물들이 되는 놀이처럼, 지금 우리 정원의 모든 꽃들과 스완 씨의 공원의 꽃들, 비본느 강의 수련, 마을의 착한 사람들과 그들의 작은 집들, 교회와 콩브레 전체와 그 주변 모든 것이 형태와 견고함을 갖추고 내 찻잔에서 나왔다.

II.

멀리서 본 콩브레, 부활절 전 마지막 주에 우리가 기차를 타고 도착했을 때 십 리 둘레에서 본 콩브레는 마을 전체를 요약하고, 대표하며, 먼 곳에 말을 전하는 하나의 교회에 불과했다. 가까이 다가가면 마치 양치기가 양들을 모으듯이 바람을 막아주는 높은 어두운 망토 주변으로 회색 양털 같은 집들의 등을 모아 들판 한가운데 서 있었고, 중세 성벽의 흔적이 여기저기 원시화의 작은 마을처럼 완벽한 원을 그리며 둘러싸고 있었다. 실제로 살아보면 콩브레는 약간 슬픈 곳이었다. 그 거리의 집들은 지방의 검은 돌로 지어졌고, 외부 계단이 있었으며, 그림자를 앞으로 던지는 박공지붕이 있어서 해가 지기 시작하면 ‘거실’의 커튼을 올려야 할 정도로 어두웠다. 성인들의 이름을 딴 엄숙한 거리들(그 중 몇몇은 콩브레의 영주들의 이름이었다): 고모의 집이 있는 생틸레르 거리, 생자크 거리, 대문이 있는 생트일데가르드 거리, 그리고 정원의 작은 옆문이 열리는 생테스프리 거리. 그리고 이 콩브레의 거리들은 내 기억 속 아주 먼 부분에 존재하며, 지금 내 눈에 비치는 세상과는 너무나 다른 색채로 칠해져 있어서 실제로 그 거리들과 광장 위에서 그들을 지배하던 교회가 환등기의 영상보다도 더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때때로 아직도 생틸레르 거리를 건널 수 있고, 루아조 거리에 방을 빌릴 수 있다는 것이 – 옛 ‘푸른 새’ 여관의 통풍구에서 올라오던 요리 냄새가 지금도 가끔 내 안에서 그렇게 간헐적이고 따뜻하게 올라오는 – 골로를 만나고 브라방의 쥬느비에브와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더 놀랍고 초자연적인 저세상과의 접촉일 것 같다.

할아버지의 사촌이자 내 증조모인 레오니 고모의 어머니는 우리가 머물던 집의 주인이었다. 그녀는 남편인 옥타브 삼촌이 세상을 떠난 후 콩브레를 떠나지 않았다. 콩브레에서도 집을 떠나지 않았고, 집에서는 방을 떠나지 않았으며, 방에서는 침대를 떠나지 않았다. 더 이상 ‘내려오지’ 않았다. 그녀는 항상 슬픔, 육체적 약함, 질병, 고정 관념, 그리고 신앙심이 뒤섞인 불확실한 상태로 누워 있었다. 그녀의 개인 아파트는 콩브레 시내 중심부 세 거리 사이에 있는 녹색의 쁘띠프레와 대조적으로, 훨씬 멀리 그랑프레로 이어지는 생자크 거리에 면해 있었다. 그 거리는 평평하고 회색빛이었으며, 거의 모든 문 앞에 세 개의 높은 사암 계단이 있어 고딕 조각가가 돌을 깎아 만든 통로처럼 보였다. 마치 그 안에 말구유나 십자가의 길을 조각했을 법했다.

내 고모는 실제로 두 개의 인접한 방만을 사용했다. 오후에는 한 방에 머물면서 다른 방의 환기를 시켰다. 그 방들은 어떤 지방의 방들이었는데, 마치 특정 지역의 공기나 바다의 일부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원생동물들에 의해 밝혀지거나 향기를 입는 것처럼, 미덕, 지혜, 습관, 보이지 않고 풍부하고 도덕적인 모든 비밀스러운 삶이 공기 중에 떠다니며 발산하는 천 가지 냄새로 우리를 매혹시켰다. 물론 아직도 이웃 시골의 냄새처럼 자연스럽고 시간의 색깔을 띠고 있었지만, 이미 가정적이고 인간적이며 폐쇄적이었다. 과수원에서 옷장으로 옮겨진 그 해의 모든 과일들의 정교하고 투명한 젤리 같았다. 계절적이면서도 가구적이고 가정적이며, 서리의 날카로움을 따뜻한 빵의 부드러움으로 보완하고, 마을 시계처럼 한가하면서도 정확하고, 산만하면서도 정돈되어 있으며, 무심하면서도 신중하고, 린넨 냄새가 나고, 아침 냄새가 나며, 경건하고, 오직 불안감만을 더하는 평화와 산문적인 것에서 시의 거대한 저장소를 끌어내는 행복한 냄새였다.

공기는 너무나 영양가 있고 맛있는 고요의 정수로 가득 차 있어서 나는 일종의 탐욕스러움으로 그 안으로 들어갔다. 특히 아직 추운 부활절 첫 아침에 더욱 그랬는데, 그때 나는 막 콩브레에 도착했기 때문에 그것을 더 잘 맛볼 수 있었다. 고모에게 인사하러 들어가기 전에 첫 번째 방에서 잠시 기다리게 했는데, 그곳에는 아직 겨울의 태양이 이미 켜진 벽난로 앞에서 몸을 녹이고 있었고, 그 태양은 온 방을 그을음 냄새로 칠하고 있었다. 마치 시골의 큰 ‘오븐 앞’이나 성의 벽난로 아래처럼 밖에서 비나 눈, 심지어 대홍수 같은 재앙이 일어나기를 바라게 만드는 그런 곳이었다. 그래야 갇혀 있는 안락함에 겨울나기의 시적인 맛을 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코바늘로 만든 머리받침이 씌워진 벨벳 안락의자 사이를 서성거렸다. 그리고 불이 반죽처럼 구워내는 방안의 공기 속에 뭉쳐 있던 식욕을 돋우는 냄새들은 이미 아침의 습하고 햇빛 가득한 신선함이 부풀어 오르게 했고, 불은 그것들을 덧붙이고, 도금하고, 주름잡고, 부풀어 오르게 하여 보이지 않지만 만질 수 있는 시골 과자, 거대한 ‘슬리퍼’를 만들어냈다. 그 안에서 막 맛본 향기들은…

부스러기가 더 많고, 더 얇고, 더 유명하지만, 더 건조하기도 한

옷장, 서랍장, 꽃무늬 벽지에서 나는 냄새를 뒤로하고, 나는 언제나

꽃무늬 침대보에서 나는 중간 정도의 끈적끈적하고, 싱겁고,

소화되지 않은 듯한 과일 냄새에 빠져들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옆방에서는 고모가 혼잣말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머릿속에 깨지고 떠다니는 무언가가 있다고 믿어

큰 소리로 말하면 그것이 움직일까 봐 항상 조용히 말했지만,

혼자 있을 때조차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는 법이 없었다. 그녀는

목에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피가 목에 고이는 것을 막아

자주 겪는 숨막힘과 불안을 줄일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완전히 무기력한 삶을 살면서 자신의 사소한 감각에

엄청난 중요성을 부여했다. 그녀는 그 감각들에 움직임을 부여해

혼자 간직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털어놓을 상대가 없어서 스스로에게

끊임없는 독백으로 알리곤 했다. 이것이 그녀의 유일한 활동이었다.

불행히도 그녀는 큰 소리로 생각하는 습관이 들어 옆방에 아무도

없는지 항상 주의를 기울이지는 않았다. 나는 종종 그녀가 혼잣말로

“내가 잠을 자지 않았다는 걸 꼭 기억해야 해”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잠을 자지 않는 것이 그녀의 큰 자랑거리여서 우리 모두의 말에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아침에 프랑수아즈는 그녀를 ‘깨우러’ 오지 않고

그녀의 방에 ‘들어갔다’. 고모가 낮에 잠깐 눈을 붙이고 싶어 할 때는

그녀가 ‘생각하고’ 싶어 한다거나 ‘쉬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야기하다가 실수로 “날 깨웠어요” 또는 “꿈을 꿨어요”라고

말하면 얼굴을 붉히며 급히 말을 고쳤다.)

잠시 후 나는 들어가 그녀에게 입맞춤을 했다. 프랑수아즈는 차를 우려냈다.

고모가 불안해하면 차 대신 허브티를 달라고 했고, 그때는 내가

약봉지에서 필요한 양의 보리수나무 꽃을 꺼내 끓는 물에 넣어야 했다.

말라버린 줄기들은 구부러져 기묘한 격자 모양을 이루었고,

그 사이로 창백한 꽃들이 피어났다. 마치 화가가 장식용으로

배치한 것 같았다. 잎들은 원래의 모습을 잃거나 변해버려

가장 이질적인 것들처럼 보였다. 파리의 투명한 날개, 라벨의 흰 뒷면,

장미꽃잎 같았지만 마치 새 둥지를 만들 듯 쌓이고 부서지고 엮여 있었다.

약사의 매력적인 낭비로 인한 수많은 쓸모없는 세부 사항들은

아는 사람의 이름이 나오는 책을 보며 느끼는 기쁨처럼,

이것들이 역 앞 가로수길에서 보던 진짜 보리수나무 가지라는 걸

이해하는 즐거움을 주었다. 바로 그것들이기에, 복제품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기에 늙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새로운 특징은

옛 특징의 변형에 불과했다. 작은 회색 공에서 나는 제대로 자라지

못한 초록 꽃봉오리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꽃들이 매달린 가지의 연약한 숲에서 그 꽃들을 돋보이게 하는

분홍빛 달빛 같은 광채는 – 마치 벽에 남은 희미한 빛이 지워진

프레스코화의 위치를 알려주듯 – 나무의 ‘색깔이 있던’ 부분과

그렇지 않았던 부분의 차이를 보여주었다. 이 꽃잎들이 약봉지에서

피어나기 전 봄밤을 향기롭게 했던 바로 그것들임을 알 수 있었다.

촛불 같은 분홍빛 불꽃은 여전히 그들의 색이었지만, 반쯤 꺼지고

잠든 듯했다. 그것은 그들의 지금 삶, 꽃들의 황혼과도 같았다.

곧 고모는 마른 잎이나 시든 꽃 맛이 나는 뜨거운 차에 작은 마들렌을 적셔 내게 한 조각을 건넸다. 침대 한쪽에는 레몬나무로 만든 커다란 노란색 서랍장이 놓여 있었고, 약국 겸 제단 같은 탁자가 있었다. 성모 마리아상과 비시 셀레스탱 생수병 위에는 미사책과 약 처방전이 놓여 있었다. 침대에서 미사와 처방을 모두 따를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것이 있었다. 펩신을 챙기거나 저녁 기도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침대의 다른 쪽은 창가에 붙어 있었다. 그녀는 거리를 내다보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페르시아 왕자들처럼 지루함을 달래려 콩브레의 일상적이지만 오래된 연대기를 읽었고, 그것을 프랑수아즈와 함께 이야기했다.

나는 고모와 5분도 함께 있지 못하고 그녀를 지치게 할까 봐 쫓겨났다. 그녀는 이른 아침 시간에 아직 가발을 정리하지 않은 창백하고 슬픈 이마를 내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그 이마에서는 가시관의 가시나 묵주의 구슬처럼 척추가 비쳐 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가엾은 아이야, 가서 미사 준비를 하렴. 아래층에서 프랑수아즈를 만나면 너희와 너무 오래 놀지 말고 어서 올라와 내가 필요한 게 없는지 확인하라고 전해주렴.”

실제로 프랑수아즈는 수년간 그녀를 모시다가 우리 집에 완전히 들어올 줄은 꿈에도 모르고 우리가 있는 동안에는 고모를 좀 소홀히 했다. 우리가 콩브레에 가기 전, 레오니 고모가 아직 겨울을 파리에서 어머니와 함께 보내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프랑수아즈를 잘 몰라서 1월 1일에 큰고모 댁에 가기 전 어머니가 5프랑짜리 동전을 쥐어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실수하지 말고 기다려. 내가 ‘안녕하세요, 프랑수아즈’라고 말하면 네 팔을 살짝 건드릴 거야. 그때 돈을 주면 돼.” 우리가 고모의 어두운 현관에 도착하자마자 그림자 속에서 하얗고 뻣뻣하고 부서질 듯한 모자 아래로 (마치 설탕으로 만든 것 같았다) 감사의 미소가 동심원을 그리며 퍼지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프랑수아즈였다. 그녀는 성상이 벽감 속에 있듯 복도 입구에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눈이 예배당의 어둠에 익숙해지면 그녀의 얼굴에서 인류에 대한 이타적인 사랑, 상류 계급에 대한 경외심, 그리고 새해 선물에 대한 희망으로 고양된 마음을 볼 수 있었다.

엄마는 내 팔을 세게 꼬집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프랑수아즈.”

이 신호에 내 손가락이 열리고 동전이 떨어져 혼란스럽지만 뻗은 손 위에 놓였다. 하지만 우리가 콩브레에 가게 된 이후로 나는 프랑수아즈를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다. 우리는 그녀가 가장 아끼는 사람들이었다. 적어도 처음 몇 년 동안은 고모만큼이나 우리를 존경했고, 더 생생한 즐거움을 느꼈다. 우리가 가족의 일원이라는 위신에 (그녀는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 같은 피가 흐르며 맺어진 보이지 않는 유대에 대해 그리스 비극 작가만큼이나 존경심을 가졌다) 그녀의 평소 주인이 아니라는 매력을 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우리를 얼마나 기쁘게 맞이했는지! 날씨가 좋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하며, 우리가 도착하는 날, 그녀는

부활절 전날이 되면 보통 찬바람이 불었다. 엄마가 그녀에게 딸과 조카들 소식을 물었다. 손자가 얌전한지, 앞으로 어떻게 키울 계획인지, 할머니를 닮았는지 등을 물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떠나면, 엄마는 프랑수아즈가 여전히 수년 전에 돌아가신 부모님을 그리워한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들에 대해 부드럽게 이야기하며 그들의 삶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엄마는 프랑수아즈가 사위를 좋아하지 않고, 사위 때문에 딸과 함께 있는 즐거움이 반감된다는 것을 알아챘다. 사위가 있으면 딸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그래서 프랑수아즈가 콩브레에서 몇 리 떨어진 곳에 있는 그들을 방문할 때면 엄마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프랑수아즈, 쥘리앵이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비워서 마르그리트와 단둘이 하루 종일 있게 된다면 슬퍼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겠어요?” 그러면 프랑수아즈는 웃으며 대답했다. “마담은 모든 걸 다 아시네요. 마담은 엑스레이보다 더 대단하세요. (그녀는 ‘엑스’라는 말을 일부러 어려워하는 듯이 발음하고 미소 지으며 자신을 비웃었다. 무식한 사람이 이런 학술 용어를 쓰는 것을 비웃는 것이었다.) 옥타브 부인을 위해 가져온 엑스레이가 당신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리고 그녀는 자신에게 신경 쓰는 것이 부끄러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서둘러 나갔다. 엄마는 그녀에게 농부로서의 삶, 행복, 슬픔이 다른 사람에게 관심거리가 되고 기쁨이나 슬픔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감동을 준 첫 번째 사람이었다. 큰고모는 우리가 머무는 동안 그녀를 조금 덜 사용하기로 했다. 엄마가 이 지적이고 활동적인 하녀의 서비스를 얼마나 높이 평가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아침 5시부터 부엌에서 비스킷처럼 하얗고 딱딱한 주름진 모자를 쓰고 아름다웠고, 대미사에 갈 때도 마찬가지로 아름다웠다. 그녀는 모든 일을 잘 했고, 건강하든 아프든 말 같이 일했지만 소리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큰고모의 하녀들 중 유일하게 엄마가 뜨거운 물이나 블랙커피를 요구할 때 정말로 끓는 물을 가져왔다. 그녀는 처음에는 낯선 사람에게 가장 불쾌감을 주는 하인 중 하나였다. 아마도 그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그를 전혀 필요로 하지 않으며, 그를 내쫓느니 차라리 손님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반면에 주인들은 그녀의 실제 능력을 경험해 본 후에는 그녀에게 가장 애착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방문객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그런 피상적인 매력이나 노예적인 수다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 것들은 종종 교육받지 못한 무능함을 감추고 있을 뿐이었다.

프랑수아즈가 부모님이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셨는지 확인하고 처음으로 큰고모에게 올라가 펩신을 드리고 점심으로 무엇을 드실지 여쭤볼 때면, 이미 어떤 중요한 사건에 대해 의견을 말하거나 설명을 해야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프랑수아즈, 구필 부인이 여동생을 데리러 가는데 15분이나 늦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조금만 더 지체하면 성체 거양 후에 도착할 것 같아요.”

“그래도 전혀 이상할 게 없겠죠.” 프랑수아즈가 대답했다.

“프랑수아즈, 5분만 일찍 왔더라면 칼로 부인네 것보다 두 배나 큰 아스파라거스를 들고 가는 앵베르 부인을 봤을 텐데. 그녀의 하녀에게 어디서 구했는지 알아보세요. 올해 우리 손님들 요리에 아스파라거스를 많이 넣고 있으니 그런 걸 구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신부님 댁에서 온 거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겠죠.” 프랑수아즈가 말했다.

“아, 그럴 리가 없어요, 프랑수아즈.” 큰고모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신부님 댁에서요! 신부님은 작고 볼품없는 아스파라거스밖에 키우지 않는다는 걸 잘 알잖아요. 내가 말하는 건 팔뚝만큼 굵었다고요. 물론 당신 팔뚝만큼은 아니겠지만, 올해 더 말라버린 내 불쌍한 팔뚝만큼은 됐어요.”

“프랑수아즈, 내 머리를 아프게 한 그 종소리 안 들었어요?”

“아뇨, 옥타브 부인.”

“아이고, 불쌍한 아이, 당신 머리가 단단해서 다행이에요. 하느님께 감사해야 해요. 마글론이 피프로 박사를 데리러 왔어요. 그가 곧바로 그녀와 함께 나가서 새 거리로 돌아갔어요. 아픈 아이가 있나 봐요.”

“아이고, 저런.” 프랑수아즈는 멀리 떨어진 세상의 어느 부분에서 낯선 사람에게 일어난 불행에 대해 들을 때마다 한숨을 쉬었다.

“프랑수아즈, 누구를 위해 조종을 울렸을까요? 아, 세상에, 루소 부인을 위한 거겠죠. 저런, 그분이 어젯밤에 돌아가셨다는 걸 깜빡했네요. 아,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실 때가 됐어요. 내 불쌍한 옥타브가 죽은 뒤로 내가 무얼 했는지 기억도 못하겠어요. 하지만 당신 시간을 뺏고 있네요, 얘야.”

“아니에요, 옥타브 부인. 제 시간이 그렇게 소중한 건 아니에요. 그걸 만드신 분이 우리에게 팔아먹으라고 주신 게 아니잖아요. 제 불 꺼지지 않는지만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이렇게 프랑수아즈와 큰고모는 이 아침 시간에 함께 그날의 첫 사건들을 평가했다. 하지만 때로는 이 사건들이 너무나 신비롭고 중대해서 큰고모는 프랑수아즈가 올라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고 느꼈고, 집 안에 네 번의 무시무시한 종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옥타브 부인, 아직 펩신 드실 시간이 아닌데요.” 프랑수아즈가 말했다. “기운이 빠지신 건가요?”

“아니에요, 프랑수아즈.” 큰고모가 말했다. “그러니까, 그래요. 당신도 알다시피 이제 내가 기운 빠지지 않은 순간이 드물잖아요. 언젠가는 루소 부인처럼 정신 차릴 틈도 없이 가버릴 거예요. 하지만 그래서 종을 울린 게 아니에요. 내가 지금 보는 것처럼 구필 부인이 모르는 소녀와 함께 있는 걸 봤다고 믿지 않으세요? 카뮈네 가서 소금 2수 어치 사오세요. 테오도르가 누군지 말해줄 수 있을 거예요.”

“퓌팽 씨의 딸일 거예요.” 프랑수아즈는 이미 아침에 두 번이나 카뮈네에 다녀왔기 때문에 즉각적인 설명을 선호했다.

“퓌팽 씨의 딸이라고요! 오, 그럴 리가 없어요, 프랑수아즈! 내가 그 애를 못 알아볼 리가 있나요?”

“큰 딸 말고요, 옥타브 부인. 주이에 있는 학교에 다니는 꼬마 말이에요. 오늘 아침에 본 것 같아요.”

“아, 그렇다면 말이 되네요.” 큰고모가 말했다. “명절 때문에 왔겠죠. 그래요! 더 찾아볼 필요도 없어요. 명절 때문에 온 거예요. 그렇다면 곧 사즈라 부인이 여동생 집에 점심 먹으러 오는 걸 볼 수 있겠네요. 바로 그거예요! 갈로팽네 아이가 타르트를 들고 가는 걸 봤어요. 그 타르트는 구필 부인 집으로 가는 거였을 거예요.”

“구필 부인 댁에 손님이 오셨다면, 옥타브 부인, 곧 모든 사람들이 점심 먹으러 들어오는 걸 보실 거예요. 이제 시간이 꽤 늦었으니까요.” 프랑수아즈가 말했다. 그녀는 부엌으로 내려가고 싶어 했고 아침 식사 준비가 끝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요.” 큰고모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지만 이 축제 때문에 내 위장이 뒤집혀요.”

축제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부활절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방문이었다. 프랑수아즈는 이제 더 이상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부엌으로 내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가 막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곧바로 다시 올라갔다.

“실례합니다, 옥타브 부인.” 그녀가 살짝 문을 열며 말했다. “집주인께서 댁에 계신지 여쭤보라고 하셨어요.”

“어떻게, 벌써 11시야!” 큰고모가 소리쳤다. “하지만 종이 울리는 소리도 안 들었는데! 그래, 프랑수아즈, 당신 말이 맞아요. 내 머리가 단단해야 한다고. 그런데 그 소리를 못 들었

점심 준비를 하러 내려가느라 바빴던 프랑수아즈는 이 잠재적 기분전환을 고모에게 맡기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오, 정오 전에는 안 돼요.” 고모는 체념한 듯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보이는 자신이 구필 부인이 점심을 먹으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토록 큰 기쁨을 느낀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시계를 불안하고 은밀하게 힐끗 쳐다보았다. “게다가 그게 내 점심시간과 겹치겠네!” 그녀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점심은 그 자체로 충분한 기분전환이어서 다른 것을 동시에 바라지 않았다. “적어도 내 크림 달걀을 납작한 접시에 담아 주는 걸 잊지 말아요.” 그것들만이 장식이 되어 있어서, 고모는 매 식사 때마다 그날 자신에게 제공된 접시의 문구를 읽는 재미를 누렸다. 그녀는 안경을 쓰고 해독했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알라딘과 요술램프”. 그리고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주 좋아, 아주 좋아.”

“카뮈네 가게에 갔다 올까요…” 프랑수아즈가 고모가 자신을 더 이상 그곳에 보내지 않을 것을 알고 말했다.

“아뇨, 이제 그럴 필요 없어요. 분명 퓌팽 아가씨일 거예요. 가엾은 프랑수아즈, 헛수고를 시켜서 미안해요.”

하지만 고모는 프랑수아즈를 헛되이 불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콩브레에서 “모르는 사람”은 신화 속 신만큼이나 믿기 힘든 존재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생테스프리 거리나 광장에서 이런 놀라운 출현이 있을 때마다, 잘 수행된 조사 끝에 이 전설적인 인물이 결국 “아는 사람”의 범주로 축소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것은 개인적으로 알거나, 혹은 시민권을 통해 추상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으로, 콩브레 사람들과 어떤 친족 관계가 있는 사람이었다. 군대에서 돌아온 소통 부인의 아들이거나, 수녀원에서 나온 페르드로 신부의 조카, 혹은 샤토댕에서 은퇴하고 휴가를 보내러 온 신부의 형제였다. 그들을 처음 보았을 때는 단순히 알아보지 못하거나 바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콩브레에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소통 부인과 신부는 오래전부터 자신들의 “여행객들”이 올 것이라고 예고했었다. 저녁에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고모에게 이야기할 때, 내가 부주의하게도 오래된 다리 근처에서 할아버지가 모르는 사람을 만났다고 말하면 고모는 이렇게 외쳤다. “할아버지가 모르는 사람이라고! 그럴 리가 없지!” 그럼에도 이 새로운 소식에 약간 흥분한 그녀는 확실히 알고 싶어 했고, 할아버지를 불렀다. “오래된 다리 근처에서 누구를 만나셨나요, 삼촌? 모르는 사람이라고요?” “아니, 알고 있는 사람이야.”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부이유뵈프 부인 정원사의 동생인 프로스페르였어.” “아, 그렇군요.” 고모가 안심하고 약간 홍조를 띠며 말했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비꼬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그 애가 모르는 사람을 만났다고 하더라니까요!” 그리고 나에게는 다음에는 더 조심하고 경솔한 말로 고모를 더 이상 흔들지 말라고 당부했다.

콩브레에서는 짐승이건 사람이건 모든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만약 고모가 우연히 “모르는” 개를 지나가는 것을 보면, 그녀는 이 이해할 수 없는 사실에 대해 계속 생각하며 자신의 추리력과 여가 시간을 바치곤 했다. “사즈라 부인의 개일 거예요.” 프랑수아즈가 그다지 확신 없이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고모가 “머리를 쥐어짜지” 않도록 진정시키려는 목적으로 그렇게 말했다. “사즈라 부인의 개를 내가 모를 리가 있나요!” 고모가 대답했다. 그녀의 비판적인 정신은 그렇게 쉽게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 갈로팽 씨가 리지외에서 데려온 새 개일 거예요.”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테오도르에 의하면 아주 온순한 짐승이라고 해요.” 프랑수아즈가 덧붙였다. “영리하기가 사람 같고, 항상 기분 좋고, 항상 친절하고, 항상 뭔가 우아한 게 있대요. 그 나이의 짐승치고는 이렇게 예의 바른 경우가 드물죠. 옥타브 부인, 이제 가봐야겠어요. 시간이 없어요. 곧 10시가 되는데 아직 불도 안 켰고 아스파라거스도 다듬어야 해요.” “뭐라고요, 프랑수아즈, 또 아스파라거스라고요! 올해는 정말 아스파라거스 병에 걸리신 것 같아요. 우리 파리 손님들을 지치게 할 거예요!” “아니에요, 옥타브 부인. 그분들은 그걸 좋아해요. 교회에서 돌아오면 식욕이 돋을 거예요. 숟가락 뒷면으로 먹지 않을 거라고요.” “하지만 그들은 교회에 이미 가 있을 텐데요.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점심 준비나 보세요.”

고모가 프랑수아즈와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부모님과 함께 미사에 갔다. 얼마나 우리 교회를 사랑했는지, 얼마나 선명히 기억나는지! 우리가 들어가던 그 오래된 현관은 까맣고 구멍이 숭숭 뚫린 채반 같았다. 비뚤어지고 모퉁이가 깊이 패여 있었다(성수대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농부 아낙네들이 교회에 들어올 때 부드럽게 스치는 망토와 성수를 찍으려는 그들의 수줍은 손가락이, 수세기에 걸쳐 반복되면서 파괴력을 얻어 돌을 구부리고 마차 바퀴가 매일 부딪치는 경계석에 홈을 파는 것처럼 골을 파 놓은 듯했다. 콩브레의 수도원장들이 묻힌 묘비들은 고귀한 먼지로 성가대석에 영적인 포장을 만들어놓았다. 그것들은 더 이상 무감각하고 단단한 물질이 아니었다. 시간이 그것들을 부드럽게 만들어 꿀처럼 흐르게 했고, 그 한계를 넘어 여기저기로 흘러넘쳤다. 어떤 곳에서는 금빛 물결로 넘쳐 고딕 대문자를 꽃으로 만들고 대리석의 흰 제비꽃을 잠기게 했다. 다른 곳에서는 다시 응축되어 라틴어 비문을 더욱 압축하고, 이 축약된 글자들의 배열에 또 하나의 변덕을 도입하여, 과도하게 늘어난 단어의 다른 글자들을 더 가깝게 만들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해가 잘 보이지 않는 날일수록 더욱 빛났다. 그래서 밖이 흐린 날이면 교회 안은 맑을 것이 확실했다. 한 창문은 온통 트럼프 카드의 왕 같은 한 인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건축학적 천개 아래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평일 정오에 예배가 없을 때 그 비스듬한 푸른 빛 반사 속에서 – 교회가 환기되고 비어 있어 더 인간적이고 호화로우며, 햇빛이 비치는 풍부한 가구로 인해 마치 중세풍의 호텔 로비처럼 보이는 그런 드문 순간에 – 사즈라 부인이 잠시 무릎을 꿇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옆 의자에 방금 맞은편 제과점에서 산 작은 과자 꾸러미를 내려놓고는 점심을 위해 가져가려 했다.) 다른 창문에는 눈 덮인 분홍빛 산이 있었고, 그 기슭에서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듯했다.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에는 서리가 끼어 있었다. 마치 유리창에 눈송이가 붙어 있는 것처럼 창문을 부풀어 오르게 했다. 하지만 그 눈송이들은 어떤 새벽빛에 의해 밝혀진 듯했다. (아마도 제단의 제단화를 너무나 신선한 색조로 물들여 그 색채가 돌에 영원히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잠시 밖에서 비치는 빛에 의해 놓여진 것처럼 보이게 한 바로 그 빛일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너무나 오래되어 여기저기에서 그들의 은빛 노화가 세기의 먼지 속에서 반짝이는 것이 보였고, 그들의 부드러운 유리 태피스트리의 올이 빛나고 닳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중 하나는 100개의 작은 직사각형 유리창으로 나뉜 높은 구획이었는데, 파란색이 주를 이루었다. 마치 샤를 6세를 위로했을 법한 큰 카드 게임과 같았다. 하지만 한 줄기 빛이 비쳤든, 아니면 내 시선이 움직이면서 꺼졌다 다시 켜진 유리창을 가로질러 옮겨갔든, 그 순간 이어서 공작새의 꼬리처럼 변화무쌍한 광채를 띠었다. 그러다가 그것은 어두운 바위 천장 꼭대기에서 눈부신 불꽃비처럼 떨리고 물결치며 습한 벽을 따라 흘러내렸다. 마치 내가 부모님을 따라 기도서를 들고 무지개빛 종유석이 굽이치는 어떤 동굴의 내부를 걷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마름모꼴의 작은 유리창들은 마치 거대한 흉갑 위에 나란히 놓인 사파이어의 깊은 투명함과 부서질 수 없는 단단함을 띠었다. 하지만 그 뒤에서 이 모든 보물보다 더 사랑스러운 태양의 일시적인 미소가 느껴졌다. 그것은 보석들을 적시는 부드럽고 푸른 물결 속에서도, 광장의 포장도로나 시장의 짚더미 위에서도 똑같이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부활절 전에 도착했던 첫 번째 일요일에도, 그것은 아직 헐벗고 검은 대지를 위로해주었다. 마치 성 루이의 후계자들 시대의 역사적인 봄처럼, 유리로 된 물망초의 눈부시고 황금빛 양탄자를 피어나게 했다.

두 폭의 고급 태피스트리는 에스더의 대관식을 묘사하고 있었다. (전통에 따르면 아수에루스에게는 한 프랑스 왕의 특징을, 에스더에게는 그가 사랑에 빠졌던 한 게르망트 가문 귀부인의 특징을 부여했다고 한다.) 그 태피스트리들은 색채가 녹아들면서 표현, 부조, 조명을 더했다. 에스더의 입술에는 윤곽선을 넘어 약간의 분홍빛이 떠다녔고, 그녀의 드레스의 노란색은 너무나 기름지고 풍성하게 퍼져 있어서 일종의 질감을 띠며 주변의 공기를 밀어내는 듯했다. 비단과 양모로 된 패널의 아래쪽에 남아 있는 나무들의 푸른빛은 생생했지만, 위쪽에서는 ‘바랜’ 듯했다. 그래서 어두운 나무 기둥들 위로 더 창백하게, 누렇게 변한 높은 가지들이 보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태양의 갑작스럽고 비스듬한 조명에 의해 반쯤 지워진 듯했다. 이 모든 것과 더불어, 내게 거의 전설적인 인물들로부터 교회에 기증된 귀중한 물건들 (성 엘로이가 만들었다는 금십자가와 다고베르 왕이 기증했다고 하는 것, 루이 독일인의 아들들의 무덤, 자수정과 에나멜을 입힌 구리로 만든 것) 때문에, 나는 우리가 자리로 가는 동안 교회 안으로 들어설 때마다 마치 요정들이 방문한 계곡을 걷는 농부처럼 느꼈다. 그 농부는 바위나 나무, 연못에서 그들의 초자연적인 통과의 명백한 흔적을 보고 놀라워한다. 이 모든 것이 내게 교회를 도시의 나머지 부분과는 완전히 다른 무언가로 만들었다. 그것은 말하자면 4차원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건물이었다. 4번째 차원은 시간이었다. 교회는 여러 세기에 걸쳐 그 배를 펼쳐나갔고, 구역에서 구역으로, 예배당에서 예배당으로, 단지 몇 미터가 아니라 연속된 시대들을 정복하고 통과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시대들로부터 승리를 거두고 나왔다. 교회는 거칠고 사나운 11세기를 그 벽의 두께 속에 감추고 있었다. 그 11세기는 종탑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현관 근처에 파놓은 깊은 틈새에서만 그 무거운 아치와 거친 돌들로 막혀 있고 눈먼 채로 나타났다. 그리고 심지어 거기서도 우아한 고딕 아치들이 수줍은 듯이 그 앞에 몰려들어 가리고 있었다. 마치 더 큰 자매들이 거칢과 볼품없음, 나쁜 옷차림의 어린 동생을 낯선 사람들로부터 숨기려고 미소 지으며 그 앞에 서는 것처럼 말이다. 교회는 광장 위 하늘 높이 성 루이를 바라보았던, 그리고 아직도 그를 보고 있는 듯한 탑을 세웠다. 그리고 지하실과 함께 메로빙거 시대의 밤 속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거기서 테오도르와 그의 누이는 어둡고 강력하게 신경이 발달한 거대한 석조 박쥐의 막과 같은 천장 아래에서 우리를 더듬어 안내하며 촛불로 지거베르트의 어린 딸의 무덤을 비추었다. 그 무덤 위에는 깊은 홈이 파여 있었는데, 마치 화석의 흔적처럼 보였다. 그것은 ‘프랑크 공주가 살해된 밤, 현재의 내진이 있는 자리에 걸려 있던 금 사슬에서 스스로 떨어져 나와 수정이 깨지지 않고 불꽃이 꺼지지 않은 채 돌 속으로 파고들어 부드럽게 돌을 밀어낸 수정 램프에 의해’ 파였다고 한다.

콩브레 교회의 내진에 대해 정말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것은 너무나 조잡했고, 예술적 아름다움은 물론 종교적 열정조차 결여되어 있었다. 밖에서 보면, 그것이 위치한 도로의 교차로가 낮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 거친 벽은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자갈투성이 돌로 된 기초 위에 솟아 있었고, 특별히 교회다운 점은 없었다. 유리창들은 지나치게 높은 곳에 뚫려 있는 것 같았고, 전체적으로 교회보다는 감옥 벽 같아 보였다. 그리고 물론 나중에 내가 본 모든 영광스러운 내진들을 떠올릴 때, 콩브레의 내진을 그것들과 비교하는 것은 결코 생각조차 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작은 지방 도시의 길모퉁이에서, 세 개의 좁은 길이 교차하는 맞은편에 거칠고 높은 벽을 보았다. 그 벽에는 높은 곳에 유리창들이 뚫려 있었고, 콩브레 내진과 같은 비대칭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샤르트르나 랭스에서처럼 종교적 감정이 얼마나 강렬하게 표현되었는지를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나는 무의식적으로 “교회!”라고 외쳤다.

교회! 생틸레르 거리에 있는 북쪽 문은 라팽 씨의 약국과 루아조 부인의 집과 바로 맞닿아 있었다. 마치 콩브레의 다른 평범한 집들처럼 말이다. 만약 콩브레의 거리에 집 번호가 매겨져 있었다면, 교회도 하나의 번호를 가졌을 것이다. 우편배달부는 아침 배달을 할 때 루아조 부인 집에 들어가기 전과 라팽 씨 집에서 나온 후에 교회에 들르곤 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교회와 세상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경계가 있었다.

루아조 부인은 창가에 후크시아를 심어 놓았다. 그 꽃들은 늘 고개를 숙인 채 가지를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버릇이 있었다. 꽃이 무성해지면 가장 먼저 교회의 어두운 벽에 붉게 달아오른 꽃잎을 가져다 대고 식히곤 했다. 그렇지만 나에게 후크시아는 결코 신성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꽃과 검은 돌 사이에서, 내 눈은 분명히 구분을 할 수 있었지만, 내 마음은 그 사이의 틈을 느꼈다. 후크시아는 교회의 일부가 아니었다. 라팽 씨의 간판도 마찬가지였다. 금빛 글씨로 ‘콩브레 약국’이라고 쓰여 있고, 교회 문의 우편함 바로 위에 걸려 있어서 마치 교회의 거친 돌 위에 새겨진 글씨처럼 보였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라팽 씨를 두고 “그는 교회에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치 “그는 루아조 부인 집에 가지 않는다”거나 “그는 시청에 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는 성체를 받지 않는다”고 말할 때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마치 “그는 라팽 부인을 때린다”거나 “그는 도둑질을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그 틈을 느끼지 못했지만, 나의 마음은 심연을 품고 있었다.

생틸레르의 종탑은 콩브레가 아직 보이지 않는 지평선에 그 잊을 수 없는 모습을 새기고 있었다. 부활절 주간, 파리에서 콩브레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아버지는 철제 꼭대기를 사방으로 뻗으며 하늘의 고랑을 따라 움직이는 종탑을 발견하고는 “자, 담요를 챙겨라. 도착했다”고 말씀하셨다.

콩브레에서 가장 즐거웠던 산책 중 하나는 좁은 길이 갑자기 넓은 고원으로 이어지는 곳이었다. 고원은 지평선 너머 울퉁불퉁한 숲으로 가려져 있었고, 생틸레르 종탑의 가느다란 첨탑만이 하늘 위로 솟아 있었다. 첨탑은 너무나 가늘고 분홍빛이어서 마치 하늘에 손톱으로 그어 놓은 것 같았다. 마치 이 자연 풍경, 이 그림에 예술의 작은 표식, 유일한 인간의 흔적을 남기려는 듯했다.

가까이 다가가면 옆에 남아 있는, 덜 높지만 사각형의 반쯤 무너진 탑의 잔해를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돌의 붉은 빛깔과 어두운 색조에 놀랐다. 안개 낀 가을 아침이면 폭풍우 치는 포도밭 위로 솟아오른 그것은 마치 야생 포도나무 색깔과 비슷한 자주색 폐허 같았다.

우리가 광장으로 돌아올 때 할머니는 종종 나를 멈추게 하고 종탑을 바라보게 하셨다. 탑의 창문들은 서로 위아래로 두 개씩 배치되어 있었는데, 그 간격이 적절하고 독특해서 마치 인간의 얼굴에만 아름다움과 품위를 주는 것 같았다. 그곳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까마귀 무리를 풀어놓았다. 까마귀들은 잠시 울부짖으며 맴돌았고, 마치 오래된 돌들이 갑자기 살 수 없게 되어 무한한 동요의 원리를 내뿜으며 까마귀들을 때리고 밀어낸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저녁 하늘의 보라색 벨벳을 사방으로 가로지른 후, 갑자기 진정되어 다시 탑으로 흡수되었다. 불길했던 탑은 다시 우호적으로 변했고, 몇몇 까마귀들은 이곳저곳에 자리 잡아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지만, 아마도 첨탑 꼭대기에서 파도 마루에 멈춰 선 갈매기처럼 부동의 자세로 어떤 곤충을 낚아채고 있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생틸레르 종탑에서 저속함, 허세, 인색함의 부재를 발견했다. 그것 때문에 할머니는 자연을, 그리고 할머니의 큰고모의 정원사가 그랬던 것처럼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았을 때의 자연과 천재의 작품들을 사랑하고 유익한 영향력이 풍부하다고 믿게 되었다. 교회의 모든 부분이 다른 건물과는 다른 일종의 사상으로 구별되었지만, 종탑에서 교회는 자의식을 갖고 개별적이고 책임 있는 존재를 확언하는 것 같았다. 종탑이 교회를 대신해 말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할머니는 막연하게 콩브레의 종탑에서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것, 즉 자연스러움과 품위를 발견했다고 생각한다. 건축에 대해 무지했던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얘들아, 날 비웃어도 좋다. 규칙에 따르면 아름답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 오래된 이상한 모습이 마음에 든단다. 만약 피아노를 친다면 딱딱하게 치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종탑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듯이 모아진 손처럼 위로 올라가며 가까워지는 돌의 경사면들의 부드러운 긴장과 열렬한 기울기를 눈으로 따라가며, 할머니는 첨탑의 분출과 너무나 잘 어우러져서 그녀의 시선이 그것과 함께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동시에 할머니는 해가 지면서 더 이상 꼭대기만 비추는 닳은 오래된 돌들에게 친근하게 미소 지었다. 그 돌들은 햇빛이 비치는 영역에 들어서면서 빛에 의해 부드러워져 갑자기 훨씬 더 높이 올라간 것처럼 보였다. 마치 ‘머리 목소리’로 한 옥타브 위에서 다시 부른 노래처럼 멀리서 들려왔다.

생틸레르의 종탑은 도시의 모든 일, 모든 시간, 모든 전망에 그 모습과 왕관, 그리고 신성함을 부여했다. 내 방에서는 슬레이트로 덮인 기초부만 볼 수 있었지만, 일요일 뜨거운 여름 아침에 그것이 검은 태양처럼 불타오르는 것을 보면 이렇게 생각했다. “세상에! 9시야! 대미사에 갈 준비를 해야겠어. 레오니 고모에게 인사하러 갈 시간이 있으려면.” 그리고 나는 광장의 태양 빛깔, 시장의 열기와 먼지, 엄마가 미사 전에 들어갈지도 모르는 가게의 차양이 드리우는 그림자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생지 냄새 속에서 주인이 허리를 펴며 손수건을 보여줄 것이다. 그는 문을 닫을 준비를 하면서 뒤편으로 가서 일요일 외투를 입고 슬픈 상황에서도 5분마다 사업과 즐거움, 성공의 표정으로 비비는 습관이 있는 손을 비누칠하고 있을 것이다.

미사가 끝나고 테오도르에게 평소보다 더 큰 브리오슈를 가져오라고 말하러 갈 때, 우리 사촌들이 좋은 날씨를 이용해 티베르지에서 점심을 먹으러 왔기 때문에, 우리 앞에는 종탑이 우뚝 서 있었다. 마치 더 큰 축복받은 브리오슈처럼 황금빛으로 빛나고 구워진 듯했다. 끈적끈적한 비늘과 물방울이 맺힌 태양 아래, 종탑은 푸른 하늘에 날카로운 첨탑을 꽂고 있었다. 저녁에 산책에서 돌아와 곧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더 이상 볼 수 없게 될 순간을 생각할 때, 종탑은 끝나가는 하루 속에서 유난히 다정해 보였다. 마치 창백해진 하늘에 놓인 갈색 벨벳 쿠션처럼 말이다. 하늘은 그 압력에 굴복하여 살짝 움푹 들어가 자리를 내주고 가장자리로 밀려났다. 종탑 주위를 맴도는 새들의 울음소리는 그 침묵을 더욱 깊게 만들었고, 첨탑은 더욱 높이 솟아오른 듯했으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전해주는 듯했다.

교회 뒤에서 해야 할 심부름이 있을 때도, 교회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조차 모든 것이 집들 사이로 여기저기 솟아오른 종탑을 중심으로 정돈된 것 같았다. 교회 없이 나타날 때 오히려 더욱 감동적이었다. 물론 이런 식으로 보면 더 아름다운 종탑들도 많이 있고, 콩브레의 우울한 거리들이 만들어내는 것과는 다른 예술적 특징을 지닌 종탑 풍경들도 내 기억 속에 있다. 발벡 근처의 한 독특한 노르망디 마을에서 본 18세기의 매력적인 저택 두 채를 잊을 수 없다. 그 저택들은 여러모로 내게 소중하고 경외스럽다. 그 사이로 강가로 내려가는 아름다운 정원에서 바라보면, 저택들이 가리고 있던 교회의 고딕 첨탑이 솟아오른다. 마치 저택들의 정면을 마무리하고 장식하는 것 같지만, 그 재질이 너무나 다르고 귀하며, 둥글고, 분홍빛이고, 광택이 나서 저택의 일부가 아님이 분명했다. 마치 해변의 매끈한 조약돌 두 개 사이에 끼인, 첨탑 모양으로 뾰족하고 자줏빛을 띠는 에나멜을 입힌 조개껍데기와 같았다.

파리의 가장 추한 지역 중 하나에서도, 한 창문에서 보면 여러 거리의 지붕들이 첫 번째, 두 번째, 심지어 세 번째 층을 이루고 그 뒤에 생토귀스탱 돔이라고 불리는 이 파리의 전경에 피라네시의 로마 풍경화와 같은 성격을 부여했다. 보라색, 때로는 붉은빛을 띠고, 때로는 대기가 만들어내는 가장 고귀한 ‘인화’에서 재의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내 기억이 아무리 정성껏 만들어낸 이 작은 판화들 중 어느 것도, 오래전에 잃어버린 것, 즉 우리가 어떤 것을 구경거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동등한 것이 없는 존재로 믿게 만드는 감정을 담아낼 수 없었다. 그 중 어느 것도 교회 뒤편 거리에서 보이는 콩브레 종탑의 모습에 대한 기억이 지배하는 것처럼 내 삶의 깊은 부분 전체를 지배하지 못했다. 우체국에서 편지를 찾으러 갈 때 오후 5시에 보이는 모습이었다. 자신의 집에서 몇 채 떨어진 왼쪽에서, 갑자기 지붕 꼭대기 선 위로 고립된 첨탑을 솟구치며, 또는 반대로 사제라 부인의 안부를 묻기 위해 들어가려 할 때 다른 경사면을 따라 내려간 후 다시 낮아진 선을 눈으로 쫓으며 종탑 다음 두 번째 거리에서 돌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는 더 멀리 가서 기차역에 갈 때면 비스듬히 보이는 모습으로, 새로운 모서리와 면을 보여주며 마치 회전의 알 수 없는 순간에 포착된 입체처럼 보였다. 또는 비본느 강가에서 볼 때 근육질로 뭉친 후진이 원근법에 의해 솟아오르며 마치 종탑이 하늘 한가운데로 첨탑을 던지려는 노력에서 솟아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언제나 그곳으로 돌아가야 했고, 언제나 그것이 모든 것을 지배했다. 예상치 못한 첨탑으로 집들을 정복하고, 내 앞에 하나님의 손가락처럼 솟아올랐다. 그의 몸은 인간의 무리 속에 숨겨져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그들과 혼동하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내가 잘 모르는 지방 도시나 파리의 어느 구역에서 ‘길을 알려준’ 행인이 멀리 어떤 병원의 종탑이나 수도원의 종탑을 가리키며 내가 가야 할 거리 모퉁이에 교회 모자의 끝을 들어 올리는 것을 보여줄 때, 내 기억이 희미하게나마 사랑하고 사라진 형상과의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면, 길을 잃지 않았는지 확인하려고 뒤돌아보는 행인은 놀랍게도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작한 산책이나 꼭 해야 할 일을 잊고 그 자리에 서서 몇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고 종탑을 바라보며 기억하려 애쓰고, 망각으로부터 되찾은 땅이 내 안에서 마르고 다시 세워지는 것을 느끼며. 그리고 틀림없이 그때, 아까 그에게 길을 물었을 때보다 더 불안한 마음으로 나는 여전히 내 길을 찾고 있다. 한 거리를 돌아서지만… 그것은 내 마음속에서다.

미사에서 돌아오면서 우리는 종종 르그랑댕 씨를 만났다. 그는 기술자로서의 직업 때문에 파리에 묶여 있어 큰 휴가 기간을 제외하고는 토요일 저녁부터 월요일 아침까지만 콩브레에 있는 자신의 집에 올 수 있었다. 그는 과학적 경력 외에도 전혀 다른 교양, 즉 문학적, 예술적 교양을 지닌 사람 중 하나였다. 그의 직업적 전문성은 이를 활용하지 않았지만 대화에서 그 혜택을 누렸다. 많은 문인들보다 더 박식했고 (우리는 그 당시 르그랑댕 씨가 작가로서 어느 정도 명성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유명한 음악가가 그의 시에 곡을 붙였다는 것을 알고 매우 놀랐다), 많은 화가들보다 더 ‘재능’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삶이 자신들에게 맞지 않는다고 상상하며, 그들의 실제 직업에 환상이 섞인 무관심을 보이거나, 경멸적이고 쓰라린, 그리고 양심적인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키가 크고 멋진 체격에, 사려 깊고 섬세한 얼굴, 긴 금발 콧수염, 푸르고 환멸에 찬 눈빛, 세련된 예의범절, 우리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대화의 능력을 지닌 그는 우리 가족의 눈에는 항상 모범으로 인용되는 엘리트의 전형이었다. 그는 삶을 가장 고귀하고 섬세한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다만 그가 너무 잘 말한다고, 책에서 본 것처럼 말한다고, 그의 말에 늘 흐르는 라발리에르 넥타이나 거의 학생 같은 똑바른 재킷에서 볼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 없다고 비난했다. 그녀는 또한 그가 종종 시작하는 귀족, 사교계, 속물근성에 대한 격렬한 비난에 놀랐다. “확실히 성 바울이 말하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생각할 때 이것을 말하는 것 같다”고 했다.

세속적인 야망은 할머니가 느끼거나 거의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래서 할머니는 르그랑댕 씨가 그토록 열정적으로 세속적인 야망을 비난하는 것을 보며, 그저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할머니는 르그랑댕 씨의 누이가 노르망디의 하급 귀족과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르그랑댕 씨가 귀족들을 그토록 격렬하게 공격하는 것을 보며, 좋은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혁명이 그들을 모두 단두대에 보내지 않은 것을 비난하기까지 했다.

“안녕하세요, 친구들!” 르그랑댕 씨는 우리를 만나러 오면서 말했다. “여기서 많이 지낼 수 있어 행복하군요. 내일 저는 파리로, 제 둥지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 그는 부드럽지만 냉소적인, 약간 멍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물론 제 집에는 모든 쓸데없는 것들이 있지요. 다만 필요한 것, 이곳처럼 커다란 하늘 조각이 없을 뿐이에요. 항상 당신의 삶 위에 하늘 조각을 간직하세요, 꼬마야.” 그는 나를 향해 말했다. “당신은 아름다운 영혼을 가졌어요. 흔치 않은 품질의, 예술가적 성향을 가진. 그것이 필요로 하는 것을 놓치지 마세요.”

우리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고모는 구필 부인이 미사에 늦게 도착했는지 물었다. 하지만 우리는 대답할 수 없었다. 대신 우리는 한 화가가 악한 질베르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모사하기 위해 교회에서 작업하고 있다고 말하며 고모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프랑수아즈는 즉시 식료품점으로 보내졌지만, 테오도르가 없어 헛수고를 하고 돌아왔다. 테오도르는 성가대원으로서 교회 유지에 일부 관여하고 있었고, 식료품점 점원이라는 이중 직업으로 인해 온갖 세상일에 정통했다.

“아,” 고모는 한숨을 쉬었다. “묄랄리가 올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녀만이 정말로 그것을 말해줄 수 있을 거야.”

묄랄리는 절름발이지만 활동적이고 귀가 먼 소녀였다. 어린 시절부터 일했던 브르토느리 부인이 죽은 후, 묄랄리는 ‘은퇴’하여 교회 옆에 방을 얻었다. 그녀는 항상 예배나 예배 외 시간에 잠깐 기도를 드리거나 테오도르를 돕기 위해 교회에 내려왔다. 나머지 시간에는 레오니 고모와 같은 병든 사람들을 방문하여 미사나 저녁 기도에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묄랄리는 때때로 콩브레의 성직자 세계에서 중요한 인물인 신부의 속옷이나 다른 사람의 속옷을 방문하여 검사함으로써, 옛 주인 가족이 제공하는 작은 연금에 약간의 부수입을 더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그녀는 검은 망토 위에 거의 수녀와 같은 작은 흰 보닛을 쓰고 있었고, 피부병으로 인해 볼의 일부와 구부러진 코가 봉선화처럼 선명한 분홍빛을 띠고 있었다. 그녀의 방문은 신부님 외에는 거의 아무도 만나지 않는 레오니 고모에게 큰 기분 전환이었다. 고모는 점차 다른 모든 방문객들을 쫓아냈다. 그들은 그녀의 관점에서 볼 때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눈에는 자신이 혐오하는 두 부류의 사람들 중 하나에 속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그중 가장 나쁜 부류, 그녀가 가장 먼저 내쫓은 사람들은 그녀에게 ‘자신의 말을 듣지 말라’고 조언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부정적인 방식으로, 혹은 단지 못마땅한 침묵이나 의심스러운 미소로 그러한 태도를 드러냈을 뿐이지만, 그녀가 14시간 동안 비시 물 두 모금을 겨우 삼킬 때 햇볕 쬐며 산책하고 피가 뚝뚝 흐르는 스테이크를 먹는 것이 침대와 약보다 더 도움이 될 거라는 전복적인 교리를 주장했다. 다른 부류는 그녀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심각하게 아프다고 믿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망설이다가 프랑수아즈의 끈질긴 주선으로 올라오게 한 사람들 중에서도 방문 중에 자신들에게 베푼 호의를 누릴 자격이 없음을 드러낸 사람들, 즉 조심스럽게 “날씨 좋은 날 조금 움직여 보시는 게 어떨까요?”라고 말하거나, 반대로 그녀가 “난 정말 기력이 없어요, 정말 힘들어요, 이제 끝이에요, 불쌍한 친구들”이라고 말했을 때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죠! 하지만 그래도 당신은 이대로 오래 버틸 수 있을 거예요”라고 대답한 사람들은 두 부류 모두 다시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프랑수아즈는 큰고모가 침대에서 생테스프리 거리에 그녀를 방문하러 오는 것 같은 사람들 중 하나를 발견했을 때나 초인종 소리를 들었을 때 보이는 겁에 질린 표정을 보고 즐거워했다. 하지만 그녀는 큰고모가 그들을 쫓아내는 데 항상 성공하는 책략과 그들이 그녀를 보지 못하고 돌아갈 때의 낙담한 표정을 보고 더욱 즐거워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자신의 주인을 존경했는데, 그녀가 그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그들보다 우월하다고 판단했다. 요컨대 큰고모는 사람들이 자신의 요양 방식을 인정하고, 자신의 고통을 동정하며, 자신의 미래를 안심시켜 주기를 바랐다.

묄랄리는 이 점에서 뛰어났다. 큰고모가 1분에 20번이나 “이제 끝이에요, 불쌍한 묄랄리”라고 말해도 묄랄리는 20번 “당신은 자신의 병을 잘 알고 계시니까요, 옥타브 부인. 어제도 사즈라 부인이 제게 말씀하셨듯이 백 살까지 사실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묄랄리의 가장 확고한 믿음 중 하나는 사즈라 부인이 사즈랭 부인이라고 불린다는 것이었는데, 경험이 가져다준 수많은 반증에도 불구하고 이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난 백 살까지 살고 싶지 않아요.”라고 큰고모는 대답했다. 그녀는 자신의 삶에 정확한 기한이 정해지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묄랄리는 누구보다도 큰고모를 지치게 하지 않고 즐겁게 해주는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기치 못한 일이 없는 한 매주 일요일마다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그녀의 방문은 큰고모에게 즐거움이었다. 그 전망은 그날 내내 큰고모를 기분 좋게 만들었지만, 곧 묄랄리가 조금이라도 늦으면 과도한 기아감처럼 고통스러워졌다. 묄랄리를 기다리는 이 즐거움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고문으로 변했고, 큰고모는 계속해서 시계를 보며 하품을 하고 무력감을 느꼈다. 하루가 다 끝나갈 무렵 더 이상 기대하지 않을 때 묄랄리의 초인종 소리가 들리면 그녀는 거의 기절할 것 같았다. 사실 일요일에는 이 방문만을 생각했고, 점심 식사가 끝나자마자 프랑수아즈는 우리가 식당을 떠나기를 서둘렀다. 그래야 그녀가 올라가 큰고모를 ‘돌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히 콩브레에 좋은 날씨가 찾아오기 시작하면서부터) 성 힐라리우스의 탑에서 내려온 당당한 정오의 종소리가 순간적으로 12개의 꽃으로 장식된 소리의 왕관을 두르고 우리 식탁 주위에서 울려 퍼진 지 오래였다. 그것은 교회에서 친숙하게 나온 성체 옆에서 울렸고, 우리는 여전히 천일야화 접시 앞에 앉아 더위와 특히 식사로 인해 무기력해져 있었다. 왜냐하면 프랑수아즈는 더 이상 우리에게 알리지도 않는 달걀, 커틀릿, 감자, 잼, 비스킷의 기본 메뉴에 들판과 과수원의 작업, 바다의 수확물, 상업의 우연한 행운, 이웃들의 친절, 그리고 그녀 자신의 천재성에 따라 추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메뉴는 13세기 대성당 현관에 조각된 네 잎 클로버처럼 계절의 리듬과 삶의 에피소드를 어느 정도 반영했다. 생선 장수가 신선함을 보장했기에 넙치, 루생빌 르팽 시장에서 좋은 것을 보았기에 칠면조, 그런 방식으로 아직 요리해본 적이 없어서 골수를 넣은 아티초크, 신선한 공기가 식욕을 돋우고 7시까지는 충분히 소화될 시간이 있어서 구운 양다리 로스트, 변화를 주기 위해 시금치, 아직 귀한 것이어서 살구, 보름 후면 더 이상 구할 수 없어서 건포도, 스완 씨가 일부러 가져다준 산딸기, 2년 만에 처음으로 정원의 벚나무에서 열린 첫 체리, 내가 예전에 좋아했던 크림치즈, 그녀가 전날 주문했기 때문에 아몬드 케이크, 우리 차례였기 때문에 브리오슈. 이 모든 것이 끝나면, 특별히 우리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특히 미식가인 아버지를 위해 더 특별히 만들어진 초콜릿 크림이 프랑수아즈의 영감과 개인적인 관심의 산물로 제공되었다. 그것은 순간의 작품처럼 덧없고 가벼웠으며, 그녀는 거기에 모든 재능을 쏟아부었다. “다 먹었어요, 더는 못 먹겠어요.”라고 말하며 이것을 맛보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즉시 예술가가 선물한 작품을 받고도 무게와 재료만을 따지는 저속한 사람들의 대열에 끼게 될 것이다. 거기에는 오직 의도와 서명만이 가치가 있을 뿐이다. 접시에 한 방울이라도 남기는 것은 작곡가의 눈앞에서 곡이 끝나기 전에 일어나는 것과 같은 무례함을 보이는 것이었다.

마침내 어머니가 내게 말했다. “자, 여기 계속 있지 말고 네 방으로 올라가거라. 밖이 너무 덥다면 잠시 밖에 나가 공기를 쐬고 오너라. 식사 직후 나가지 말고.” 나는 펌프와 그 수조 옆에 가서 앉았다. 수조는 고딕 양식의 배경처럼 종종 도마뱀으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그 도마뱀은 거친 돌 위에 자신의 상징적이고 날렵한 몸의 움직이는 부조를 조각했다. 등받이 없는 벤치에 앉았는데, 그곳은 라일락 나무 그늘 아래였다. 그 작은 정원 구석에는 생테스프리 거리로 통하는 서비스용 문이 있었고, 잘 가꾸지 않은 땅에서 두 계단 올라간 곳에 집과는 별개의 건물처럼 보이는 뒷부엌이 있었다. 그곳의 붉고 광택 나는 타일 바닥이 보였다. 그곳은 프랑수아즈의 소굴이라기보다는 작은 비너스 신전 같았다. 그곳은 우유 장수, 과일 장수, 채소 장수들이 가져온 공물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들은 때로는 꽤 먼 마을에서 와서 그들 밭의 첫 수확물을 바쳤다. 그리고 그곳의 지붕 꼭대기에는 항상 비둘기의 구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예전에는 나는 그곳을 둘러싼 성스러운 숲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책을 읽으러 올라가기 전에 나는 1층에 있는 작은 휴게실에 들어갔다. 그곳은 내 할아버지의 형제인 아돌프 삼촌이 사용하던 곳이었다. 그는 사령관으로 은퇴한 전직 군인이었다. 창문을 열어도 태양 광선은 아니더라도 더위가 들어오는 그 방에서도 묘한 향기가 나는 어둠이 감돌았다.

거기까지 잘 도달하지 않았던 그 향기는 숲과 구체제의 냄새를 동시에 풍기는 모호하고 신선한 냄새를 끊임없이 내뿜었다. 사람들이 버려진 사냥용 별장에 들어갈 때 이 냄새는 콧구멍을 오랫동안 꿈꾸게 만들었다. 하지만 수년 동안 나는 더 이상 아돌프 삼촌의 집무실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내 잘못으로 우리 가족과 불화가 생겨 더 이상 콩브레에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한 달에 한두 번, 파리에서 나는 그를 방문하라고 보내졌다. 그가 점심 식사를 막 끝냈을 때, 단순한 잠옷 차림으로, 보라색과 흰색 줄무늬 면 작업복을 입은 하인이 그를 시중들고 있었다. 그는 투덜거리며 내가 오랫동안 오지 않았다고,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불평했다. 그는 나에게 마시팽이나 귤을 권했다. 우리는 결코 멈추지 않고 불을 때지 않는 거실을 지나갔다. 거실의 벽은 금박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고, 천장은 하늘을 모방하려는 듯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가구는 우리 조부모님 집처럼 새틴으로 감싸져 있었지만 노란색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작업실’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갔다. 그 벽에는 검은 배경 위에 살찐 분홍색 여신이 전차를 모는 모습이나 이마에 별을 달고 있는 모습을 그린 판화들이 걸려 있었다. 사람들은 제2제정 시대에 이러한 그림들을 좋아했는데, 그것들이 폼페이풍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후에는 싫어했다가, 다시 좋아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대는 다른 이유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제2제정 시대 풍으로 보인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마부가 마차를 언제 준비해야 하는지 묻기 위해 집사가 올 때까지 삼촌과 함께 있었다. 그러면 삼촌은 깊은 명상에 빠졌고, 놀란 집사는 그 결과를 호기심 있게 기다렸다. 마침내 최후의 망설임 끝에 삼촌은 변함없이 이렇게 말했다. “2시 15분.” 집사는 놀라워하며 반복했다. “2시 15분이요? 알겠습니다…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당시 나는 연극을 너무나 사랑했다. 순수한 사랑이었다. 부모님은 아직 내가 극장에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나는 극장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너무나 애매하게 상상했고, 각 관객이 마치 입체경으로 세상을 보듯, 천 명의 다른 관객들이 각자 보는 것과 비슷하지만 오직 자신만을 위한 무대 장치를 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매일 아침 모리스 기둥 앞으로 달려가 거기에 붙은 공연 포스터를 보았다. 각 작품의 제목을 이루는 단어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이미지들, 그리고 젖은 종이에 풀칠되어 부풀어 오른 포스터의 색깔은 내 상상력에 꿈을 불어넣었다. 그 무엇보다도 순수하고 행복한 꿈이었다. ‘세자르 지로도의 유언’이나 ‘오이디푸스 왕’과 같은 낯선 작품들은 코메디 프랑세즈의 포도주색 포스터에 적혀 있었다. 오페라 코미크의 녹색 포스터에 적힌 제목들은 왠지 어색했다. ‘왕관의 다이아몬드’의 반짝이는 하얀 깃털 장식만큼 ‘검은 도미노’의 매끄럽고 신비로운 새틴과 다른 것은 없어 보였다. 부모님은 내가 처음으로 극장에 갈 때 이 두 작품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각 제목을 차례로 곱씹으며, 그 작품들이 약속하는 즐거움을 가늠하고 비교해 보려고 애썼다. 눈부시고 화려한 작품과 부드럽고 벨벳 같은 작품, 마치 황후의 밥과 초콜릿 크림 중 하나를 디저트로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어느 쪽이 내 취향일지 결정할 수 없었다.

내 모든 대화는 배우들에 관한 것이었다. 그들의 연기는 아직 나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것은 내가 예술을 처음으로 감지하는 방식이었다. 배우들이 대사를 전달하고 뉘앙스를 주는 방식의 아주 미세한 차이조차 나에게는 무한한 의미를 지닌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배우들을 재능 순으로 목록에 적어놓고 하루 종일 암송했다. 그 목록은 마침내 내 머릿속에 굳어져 버렸고, 그 불변성은 내 생각을 방해하기까지 했다.

나중에 학교에 다닐 때, 수업 중 선생님이 고개를 돌리면 나는 곧바로 새 친구에게 달려가 그가 이미 극장에 가봤는지, 가장 위대한 배우가 정말로 고인지, 두 번째가 들로네인지 물었다. 그의 의견으로 페브르가 티롱 다음이고, 들로네가 코클랭 다음이라고 말하면, 내 마음속에서 코클랭이 돌처럼 굳어 있던 모습을 벗어던지고 2위로 올라서는 순간, 그리고 들로네가 4위로 물러나는 기적적인 민첩함은 내 졸린 정신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배우들이 나를 그렇게 사로잡았다면, 어느 오후 프랑스 극장에서 나오는 모방을 보는 것이 내게 사랑의 놀라움과 고통을 안겨주었다면, 극장 문에서 불타오르는 한 스타의 이름, 마차 유리창에 비치는 장미꽃으로 장식된 말들을 탄 여인의 얼굴을 보는 것은 나에게 얼마나 더 오래 지속되는 혼란과 그녀의 삶을 상상하려는 무력하고 고통스러운 노력을 남겼겠는가! 나는 가장 유명한 배우들을 재능 순으로 분류했다. 사라 베르나르, 라 베르마, 바르테, 마들렌 브로앙, 잔 사마리. 하지만 그들 모두가 나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내 삼촌은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었고, 배우들과 구분하기 힘든 고급 매춘부들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들을 자신의 집에서 접대했다. 우리가 특정한 날에만 삼촌을 방문했던 이유는, 다른 날에는 가족이 만날 수 없는 여자들이 그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적어도 가족의 관점에서는 그랬다. 반면 삼촌에게는 아마도 한 번도 결혼한 적이 없는 예쁜 과부들이나 화려한 이름을 가진 백작 부인들 (그것은 아마도 전쟁 시대의 이름에 불과했을 것이다)을 할머니께 소개하거나 심지어 가족의 보석을 그들에게 주는 그의 지나친 관대함이 이미 여러 번 할아버지와의 불화를 일으켰을 것이다.

종종 대화 중에 어떤 여배우의 이름이 나오면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미소 지으며 “네 삼촌의 친구야”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중요한 사람들이 아마도 수년간 어떤 여자의 문 앞에서 쓸데없이 기다리며, 그녀가 편지에 답장하지 않고 호텔 문지기를 시켜 그들을 쫓아내게 했을 때, 삼촌은 나 같은 꼬마를 그의 집에 데려가 그 여배우를 소개함으로써 그 기다림을 면제해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여배우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접근할 수 없는 존재였지만, 삼촌에게는 친밀한 친구였다.

그래서 – 이동된 수업이 지금은 너무 나쁜 시간에 있어서 여러 번 삼촌을 보지 못하게 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구실로 – 어느 날, 우리가 그를 방문하기로 정해진 날이 아닌 날에, 부모님이 일찍 점심을 드신 것을 이용해 나는 외출했다. 그리고

포스터 게시판을 보러 가던 중이었는데, 혼자 가도록 허락받았기에 나는 삼촌에게 달려갔다. 그의 문 앞에서 마차 한 대를 보았는데, 말 두 마리가 눈 가리개에 붉은 카네이션을 달고 있었고 마부도 단추 구멍에 같은 꽃을 꽂고 있었다. 계단에서 여자의 웃음소리와 목소리가 들렸고, 벨을 누르자 곧 침묵이 흐르더니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시종이 문을 열었고 나를 보더니 당황한 듯했다. 그는 삼촌이 매우 바쁘시니 아마 나를 만나주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삼촌께 알리러 가는 동안 아까 들었던 그 목소리가 말했다. “오! 들여보내세요. 잠깐이라도 좋아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책상 위의 사진을 보니 그 아이가 삼촌의 조카, 즉 그의 어머니와 너무 닮았어요. 옆에 있는 사진 말이에요. 그렇죠? 그 꼬마를 잠깐이라도 보고 싶어요.”

삼촌이 투덜거리며 화를 내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시종이 나를 들여보냈다.

테이블 위에는 늘 있던 것과 같은 마르치파노 접시가 놓여 있었다. 삼촌은 평소와 같은 집에서 입는 옷을 입고 있었고, 맞은편에는 분홍색 실크 드레스를 입고 목에 커다란 진주 목걸이를 한 젊은 여인이 앉아 귤을 먹고 있었다. 부인이라고 해야 할지 아가씨라고 해야 할지 몰라 얼굴이 붉어졌고, 그쪽을 바라보며 말을 걸어야 할까 봐 두려워 삼촌에게 가서 입맞춤을 했다. 그녀는 미소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고, 삼촌이 말했다. “내 조카다.” 그는 내 이름도, 그녀의 이름도 말하지 않았다. 아마도 할아버지와 겪었던 어려움 때문에 가족과 이런 종류의 관계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도 만들지 않으려 했던 것 같았다.

“어머니를 정말 닮았군요.”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내 조카를 사진으로만 봤잖소, 거칠게 말하는 투로 삼촌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친애하는 친구분. 작년에 당신이 많이 아프셨을 때 계단에서 우연히 마주쳤어요. 짧은 순간이었고 계단도 어두웠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죠. 이 꼬마 신사는 그녀의 아름다운 눈과 이것도 닮았네요.” 그녀는 손가락으로 이마 아랫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 조카의 아내 성이 당신과 같나요, 친구분?” 그녀가 삼촌에게 물었다.

“그는 아버지를 더 닮았소. 어머니의 이름을 말하며 멀리서 소개하는 것도, 가까이서 소개하는 것도 꺼리는 삼촌이 투덜거렸다. 완전히 아버지를 닮았고, 또 내 불쌍한 어머니도 닮았소.”

“저는 그의 아버지를 모르고, 당신의 불쌍한 어머니도 모릅니다, 친구분. 기억하시죠, 당신의 큰 슬픔 직후에 우리가 만났잖아요.” 분홍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나는 약간 실망했다. 이 젊은 여인은 내가 가족들 중에서 가끔 보았던 다른 예쁜 여인들과 다르지 않았다. 특히 매년 1월 1일에 방문하곤 했던 사촌 중 한 명의 딸과 비슷했다. 다만 삼촌의 친구는 옷을 더 잘 입었을 뿐이었다. 그녀는 같은 생기 있고 친절한 눈빛을 가졌고, 똑같이 솔직하고 다정해 보였다. 나는 그녀에게서 배우 사진에서 감탄했던 연극적인 모습이나, 그녀가 살았을 법한 삶과 어울리는 악마적인 표정을 찾을 수 없었다. 그녀가 고급 매춘부라고 믿기 어려웠고, 특히 두 마리 말이 끄는 마차와 분홍 드레스, 진주 목걸이를 보지 않았다면, 그리고 삼촌이 가장 고급스러운 매춘부만 알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면 그녀가 세련된 매춘부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마차와 저택, 보석을 제공하는 백만장자가 어떻게 이렇게 평범하고 품위 있어 보이는 사람을 위해 재산을 탕진할 수 있는지 의아했다. 그럼에도 그녀의 삶이 어떠할지 생각하니, 그 부도덕함이 특별한 모습으로 구체화되었다면 오히려 덜 불편했을 것이다. 그것이 보이지 않는 채로, 마치 어떤 소설이나 스캔들의 비밀처럼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녀를 부르주아 부모 곁에서 떠나게 하고 모든 이에게 바쳐지게 했으며, 아름다움으로 꽃피우고 상류 사교계로 끌어올렸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불편하게 했다. 그녀의 표정과 목소리 톤이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많은 이들과 비슷해서, 나는 그녀를 좋은 가정 출신의 아가씨로 여길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 그녀는 어느 가정에도 속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재”로 자리를 옮겼고, 내 존재에 다소 당황한 듯한 삼촌이 그녀에게 담배를 권했다.

“아니에요, 당신도 아시잖아요. 난 대공이 보내주는 담배에 익숙해져 있어요. 당신이 질투한다고 말했죠.” 그녀는 외국어로 쓰인 금색 글씨가 있는 담배 케이스에서 담배를 꺼냈다. “그런데 말이에요,” 그녀가 갑자기 말을 이었다. “이 꼬마의 아버님을 당신 집에서 만난 적이 있어요. 당신 조카 아닌가요? 어떻게 잊을 수 있었지! 그분은 정말 친절하고 너무나 훌륭하셨어요.” 그녀는 겸손하고 감동받은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말한 아버지의 훌륭했다는 환대가 아버지의 냉담함과 무뚝뚝함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불편했다. 마치 아버지가 무례한 짓을 저지른 것 같아 그녀에게 과도한 감사를 받는 것과 아버지의 불충분한 친절 사이의 불균형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나중에 이는 이런 한가하고 학구적인 여성들의 역할 중 감동적인 면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들은 예술가들처럼 자신의 관대함과 재능, 감성적 아름다움에 대한 사용 가능한 꿈을 – 그들은 그것을 실현하지 않고 일상적인 삶의 틀 안에 넣지 않기 때문에 – 그리고 그들에게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황금을 사용해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남자들의 삶을 귀중하고 섬세한 테두리로 풍요롭게 만드는 데 바친다는 것이었다. 이 여인이 삼촌을 맞이하기 위해 평상복을 입은 흡연실에서 그녀의 부드러운 몸과 분홍 실크 드레스, 진주, 대공과의 우정에서 나오는 우아함을 뿌리듯이, 그녀는 아버지의 무의미한 말 한마디를 가져다 정교하게 다듬고, 우아한 말투로 바꾸어, 그녀의 아름다운 눈빛에 겸손과 감사의 빛을 담아 그것을 예술적인 보석으로, “정말 훌륭한” 무언가로 변화시켜 돌려주었던 것이다.

“자, 이제 가야 할 시간이구나.” 삼촌이 말했다.

나는 일어났다. 분홍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손에 입 맞추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 없었지만, 그것이 마치 납치하는 것처럼 대담한 행동으로 여겨졌다. 내 심장이 뛰었고 나는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하고 자문했다. 그러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묻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맹목적이고 무감각한 동작으로, 조금 전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던 모든 이유를 벗어던지고, 그녀가 내밀어준 손에 입을 맞췄다.

“얼마나 귀여운지! 벌써 여성들에게 매력적이네요. 삼촌을 닮았어요. 완벽한 신사가 될 거예요.” 그녀는 이를 악물고 말했는데, 약간 영국식 억양을 내려는 듯했다. “우리 이웃 영국인들이 말하듯 ‘a cup of tea’를 마시러 한 번 오면 어떨까요? 아침에 ‘블루’만 보내주면 돼요.”

나는 ‘블루’가 무엇인지 몰랐다. 여인이 하는 말의 절반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속에 숨겨진 제안이 두려웠다.

무례하게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질문으로,

그들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고, 나는 그로 인해

큰 피로를 느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삼촌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 아이는 아주 성실하고 공부도 열심히 해. 수업에서 모든 상을 받았지.”

그는 내가 듣지 못하게 하려고, 그리고 내가 반박하지 못하게 하려고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누가 알겠어, 어쩌면 작은 빅토르 위고가 될지,

일종의 보라벨 같은 사람이 될지 말이야.”

“난 예술가들을 정말 좋아해요.” 분홍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대답했다.

“여자를 이해하는 건 오직 그들뿐이에요… 그들과 당신 같은 선택받은

사람들 말고는 말이죠. 제 무지함을 용서하세요, 친구여. 보라벨이 누구죠?

당신 담배실의 유리장 안에 있는 금박 장정의 책들인가요?

그 책들을 빌려주시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잘 간수하겠어요.”

책을 빌려주는 걸 싫어하는 삼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현관으로 데려갔다. 분홍 드레스를 입은 여인에 대한 사랑에 빠져,

나는 담배 냄새가 나는 늙은 삼촌의 볼에 열렬한 입맞춤을 했다.

그는 좀 난처한 듯이 이 방문에 대해 부모님께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고 돌려 말했다. 나는 눈물을

글썽이며 삼촌의 친절함에 대한 기억이 너무나 강렬해서 언젠가는

꼭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그 기억은 정말

너무 강렬해서 두 시간이 지난 후에도, 몇 마디 신비스러운 말로는 부모님께 내가 얻은 새로운 중요성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방금 다녀온 방문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는 것이 더 명확할 것 같았다. 나는 이렇게 해서 삼촌에게 문제를 일으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그런 의도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 방문에 대해 부모님이 나쁘게 생각할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친구가 어떤 여자에게 편지를 쓰지 못했다고 변명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우리가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니 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리라 여기고 소홀히 한 적이 없던가? 나는 모든 사람들처럼 다른 사람들의 뇌가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용기라고, 거기에 넣은 것에 대해 특별한 반응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삼촌이 나에게 소개해 준 지인에 대한 소식을 부모님의 뇌에 넣으면서, 내가 바라는 대로 그 만남에 대한 호의적인 판단도 함께 전달될 거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불행히도 부모님은 내가 제안한 것과는 전혀 다른 원칙에 따라 삼촌의 행동을 판단하셨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삼촌과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나는 간접적으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며칠 후, 마차를 타고 지나가는 삼촌을 마주쳤을 때, 나는 그에게 표현하고 싶었던 고통, 감사, 후회를 느꼈다. 그 감정들의 크기에 비해 모자를 벗는 것은 너무 소홀해 보였고, 삼촌에게 내가 단순한 예의만 지키려 한다고 생각하게 할 것 같았다. 나는 이 부족한 제스처를 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고개를 돌렸다. 삼촌은 내가 부모님의 명령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용서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 중 누구도 다시 만나지 못한 채 여러 해가 지나 세상을 떠나셨다.

그래서 나는 이제 닫혀 있는 아돌프 삼촌의 휴게실에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뒷부엌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다가 프랑수아즈가 현관에 나타나 “주방 도우미에게 커피를 대접하고 온수를 올리게 하고 옥타브 부인 댁에 다녀와야겠어요.”라고 말하면, 나는 곧장 내 방으로 올라가 책을 읽기로 했다. 주방 도우미는 도덕적 인격체, 영구적인 기관으로, 변함없는 임무가 그녀가 체현하는 일시적 형태들의 연속을 통해 일종의 연속성과 정체성을 보장했다. 우리는 2년 연속 같은 사람을 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스파라거스를 많이 먹었던 해에 주로 아스파라거스 ‘껍질 벗기기’를 맡았던 주방 도우미는 우리가 부활절에 도착했을 때 이미 꽤 진전된 임신 상태에 있던 병약한 가엾은 여자였다. 프랑수아즈가 그녀에게 그렇게 많은 심부름과 일을 시키는 것이 놀라웠다. 그녀는 넉넉한 앞치마 아래로 매일 더 가득 차 보이는 신비로운 바구니의 웅장한 형태를 어렵게 앞으로 내밀며 걸어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앞치마는 스완 씨가 나에게 사진을 주었던 조토의 상징적 인물들이 입고 있는 긴 겉옷을 연상시켰다. 그가 직접 우리에게 그 점을 지적해 주었고, 주방 도우미의 안부를 물을 때면 “조토의 ‘자선’은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다. 게다가 그녀 자신도, 불쌍한 여자는, 임신으로 살이 쪄서 얼굴까지, 곧게 떨어지는 네모난 뺨까지 살이 쪄서, 실제로 아레나에 있는 미덕들을 의인화한 강하고 남성적인 처녀들, 아니 오히려 산모들과 꽤 닮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파도바의 이 미덕들과 악덕들이 또 다른 면에서 그녀를 닮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주방 도우미의 모습이 배 앞에 붙인 상징물로 인해 커진 것처럼,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얼굴에 그 아름다움과 정신이 전혀 드러나지 않은 채, 단순하고 무거운 짐처럼 보이듯이, 아레나에서 ‘자선’이라는 이름 아래 묘사된 강력한 가정주부도 마찬가지로 자선에 대한 어떤 생각도 그녀의 힘찬 속물적인 얼굴에 표현된 적이 없다는 걸 모르는 듯 이 덕을 구현하고 있다. 화가의 아름다운 발상으로 그녀는 이 세상의 보물들을 발로 밟고 있지만, 마치 포도를 으깨어 즙을 짜내듯이, 아니 오히려 높이 올라가기 위해 자루 위에 올라선 것처럼 절대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하나님께 불타는 마음을 바치고 있는데, 더 정확히 말하면 그것을 ‘건네주고’ 있다. 마치 요리사가 지하실의 통풍구를 통해 1층 창문에서 요청한 사람에게 병따개를 건네주듯이 말이다. 질투는 어떤 질투의 표정을 더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 프레스코화에서도 상징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고 너무 실제적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질투의 입술에서 쉭쉭거리는 뱀이 너무 크고, 그녀의 크게 벌린 입을 완전히 채우고 있어서, 얼굴의 근육은 그것을 담기 위해 늘어나 있고, 마치 풍선을 불어 부풀리는 아이의 근육처럼 질투의 주의 – 그리고 동시에 우리의 주의 – 는 전적으로 입술의 행동에 집중되어 있어서 질투심 어린 생각을 할 여유가 거의 없다.

스완 씨가 이 조토의 인물들에 대해 표현한 모든 찬사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랫동안 우리 공부방에 걸려 있는, 그가 나에게 가져다준 복사본들을 보면서 아무런 즐거움도 느끼지 못했다. 자선 없는 이 자선, 이 질투는 마치 의학책에서 후두나 목젖이 혀의 종양이나 수술 기구의 삽입으로 압박받는 것을 설명하는 삽화처럼 보였다. 정의의 얼굴은 회색빛이고 초라하게 규칙적이어서, 콩브레에서는, 바로 콩브레에서는 미사에서 만난 어떤 경건하고 메마른 부르주아 여인들의 특징을 나타냈다. 그들 중 여러 명은 이미 불의의 예비군에 등록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나는 이 벽화들의 놀라운 이질감과 특별한 아름다움이 상징이 차지하는 큰 비중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이해했다. 상징화된 사상이 표현되지 않았기에 상징으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실제로 겪거나 물질적으로 다루어진 것으로 표현되었다는 사실이 작품의 의미를 더 문자 그대로, 더 정확하게 만들었고, 그 가르침을 더 구체적이고 인상적으로 만들었다. 불쌍한 부엌 하녀에게도 마찬가지로, 그녀의 배를 당기는 무게 때문에 그녀의 주의가 끊임없이 배로 향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마찬가지로, 매우 자주 죽어가는 사람들의 생각은 죽음의 실제적이고 고통스럽고 어두운 내장적인 면, 죽음이 그들에게 제시하는 바로 그 면, 죽음이 그들에게 거칠게 느끼게 하는 면으로 향한다. 그것은 우리가 죽음의 관념이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그들을 짓누르는 짐, 호흡의 어려움, 마시고 싶은 욕구와 훨씬 더 비슷하다.

파도바의 미덕과 악덕은 임신한 하녀만큼이나 생생하게 내게 나타났기에, 그 안에는 많은 현실성이 존재해야 했다. 하녀 자신도 내게 그리 덜 우화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도 이 존재의 영혼이 그를 통해 작용하는 덕목에 (적어도 외견상) 참여하지 않는 것은 미학적 가치 외에도, 심리학적이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관상학적이라고 말하는 현실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중에 내 삶에서, 예를 들어 수도원에서 적극적인 자선의 진정한 화신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을 때, 그들은 일반적으로 바쁜 외과 의사의 쾌활하고 긍정적이며 무관심하고 거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얼굴에서는 인간의 고통에 대한 어떤 동정심도, 어떤 연민도, 그것을 상하게 할 어떤 두려움도 읽을 수 없었다. 그것은 부드러움이 없는 얼굴, 진정한 선함의 반감을 사는 숭고한 얼굴이었다.

부엌 하녀가 프랑수아즈의 우월함을 무의식적으로 빛내며 – 마치 오류가 대조를 통해 진리의 승리를 더욱 빛나게 하듯이 – 엄마의 말씀으로는 그저 뜨거운 물에 불과한 커피를 대접하고, 이어서 우리 방으로 겨우 미지근한 뜨거운 물을 가져왔을 때, 나는 내 침대에 누워 책을 손에 들고 있었다. 내 방은 거의 닫힌 덧문 뒤에서 오후의 태양으로부터 그 투명하고 연약한 시원함을 떨며 보호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한 줄기 햇빛이 노란 날개를 지나가게 할 방법을 찾아 나무와 유리 사이의 한 구석에서 나비처럼 가만히 머물러 있었다. 읽기에는 거의 충분치 않은 밝기였고, 빛의 찬란함에 대한 감각은 오직 뀌레 거리에서 카뮈스가 (프랑수아즈가 내 고모가 “쉬고 있지 않다”고 알려줘서 소음을 낼 수 있다고 알려준) 먼지 묻은 상자들을 치는 소리로만 주어졌다. 그 소리는 더운 날씨에 특유한 울림이 있는 대기 속에서 울려 퍼져 멀리 주홍빛 별들을 날아가게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한 내 앞에서 작은 콘서트를 연주하는 파리들로 인해서였다. 그것은 마치 여름의 실내악과 같았다. 그것은 우연히 좋은 계절에 들었던 인간의 음악이 나중에 그 계절을 떠올리게 하는 방식으로 여름을 환기시키지 않는다. 그것은 여름과 더 필연적인 연결고리로 묶여 있다. 아름다운 날들에서 태어나 오직 그것들과 함께만 다시 태어나며, 그것들의 본질을 조금 담고 있어 우리 기억 속에 그 이미지를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그 회귀, 실제적이고 주변에 있으며 즉시 접근 가능한 존재를 확인한다.

내 방의 이 어두운 시원함은 거리의 햇살에 대해 그림자가 광선에 대해 갖는 관계와 같았다. 즉, 그것만큼이나 빛났고, 내가 산책을 나갔다면 감각으로는 조각조각밖에 즐길 수 없었을 여름의 총체적인 광경을 내 상상력에 제공했다. 그래서 그것은 내 휴식과 잘 어울렸다. 내 휴식은 (내 책들이 들려주는 모험들 덕분에 감동을 받아) 마치 흐르는 물 한가운데에서 움직이지 않는 손의 휴식처럼, 활동의 격류의 충격과 활기를 견뎌냈다.

하지만 날씨가 너무 더워져서 망가지거나, 폭풍우나 단순한 소나기라도 오면 할머니는 내게 나가라고 간청하러 오셨다. 그래서 나는 내 독서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 적어도 정원의 밤나무 아래에서 계속하러 갔다. 거기에는 작은 갈대와 천으로 된 오두막이 있었고, 그 안쪽 깊숙이 앉아 있으면 부모님을 방문하러 올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눈에 숨겨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생각 역시 다른 요람과 같아서, 그 안에 깊이 파묻혀 있으면서도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 있다고 느꼈다. 외부 물체를 볼 때, 그것을 보고 있다는 의식이 나와 그것 사이에 남아 있어 얇은 정신적 테두리로 그것을 둘러싸고 있었고, 그래서 나는 결코 그것의 물질을 직접 만질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젖은 물체에 가까이 가져간 백열체가 그 습기에 닿지 않고 항상 증발 구역이 앞서는 것처럼, 내가 그것과 접촉하기 전에 어떤 식으로든 휘발되었다. 내가 읽는 동안 내 의식이 동시에 펼쳐 보이는 다양한 상태의 일종의 스크린에서, 내 자신 안에 가장 깊이 숨겨진 열망에서부터 정원 끝에서 내 눈앞에 있는 지평선의 완전히 외부적인 시야에 이르기까지, 내 안에 가장 내밀한 것, 끊임없이 움직이며 나머지를 지배하는 손잡이는 내가 읽고 있는 책의 철학적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에 대한 나의 믿음이었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나의 욕망이었다. 왜냐하면 설령 내가 그것을 콩브레에서 샀다 하더라도, 프랑수아즈가 카뮈스네처럼 거기서 물건을 구할 수 없을 만큼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문구와 서적으로는 더 잘 갖춰진 보랑쥬 식료품점 앞에서 그것을 발견하고, 대성당 문보다 더 신비롭고 생각으로 가득 찬 그 두 개의 문짝을 덮고 있는 팸플릿과 연재물의 모자이크 속에 끈으로 묶여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것은 내게 그 당시 진리와 아름다움의 비밀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던 교수나 친구가 주목할 만한 작품이라고 인용했던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 지식은 내 사고의 모호하지만 영구적인 목표였다.

이 중심적인 믿음 다음으로, 내 독서 중에 안에서 밖으로 진리의 발견을 향해 끊임없는 움직임을 수행하던 것은 내가 참여하고 있는 행동이 주는 감동이었다. 그 오후들은 종종 전체 삶보다 더 많은 극적인 사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내가 읽고 있던 책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었다. 물론 프랑수아즈가 말하듯 그 사건들이 영향을 미치는 인물들은 “진짜”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 인물의 기쁨이나 불행을 겪을 때 느끼는 모든 감정은 오직 그 기쁨이나 불행의 이미지를 통해서만 우리 안에서 일어난다. 최초의 소설가의 독창성은 우리의 감정 장치에서 이미지만이 유일한 필수 요소라는 것을 이해한 데 있었다. 실제 인물들을 순전히 단순하게 제거하는 단순화가 결정적인 완성이 될 것이라는 점을 이해한 것이다. 아무리 깊이 공감한다 해도 실제 존재는 우리 감각으로 인식되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우리에게 불투명하게 남아 있고, 우리의 감수성이 들어올릴 수 없는 죽은 무게를 제공한다. 그에게 불행이 닥치면, 그것은 우리가 그에 대해 가진 전체 개념의 작은 부분에서만 우리를 감동시킬 수 있다.

우리는 그에 대한 우리의 관념의 일부에 의해서만 감동받을 수 있다. 더욱이 그 자신도 자신에 대한 총체적인 관념의 일부에 의해서만 감동받을 수 있을 것이다. 소설가의 발견은 영혼이 침투할 수 없는 이런 부분들을 동일한 양의 비물질적인 부분들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즉, 우리의 영혼이 동화할 수 있는 부분들로 말이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종류의 존재들의 행동과 감정이 우리에게 진실하게 보이는 것이 무슨 상관인가? 우리는 그것들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었고, 그것들은 우리 안에서 일어나며, 우리가 열정적으로 책의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우리의 호흡과 시선의 강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설가가 우리를 이런 상태로 만들면, 모든 순수하게 내적인 상태들처럼 모든 감정이 열 배로 증폭되는 이 상태에서, 그의 책은 우리를 꿈처럼 흔들어놓을 것이다. 하지만 잠잘 때 꾸는 꿈보다 더 선명하고 그 기억이 더 오래 지속될 꿈 말이다. 그러면 그는 한 시간 동안 우리 안에서 우리가 삶에서 몇 년에 걸쳐 겪을 수 있는 모든 가능한 행복과 불행을 풀어놓는다. 그중 가장 강렬한 것들은 우리에게 결코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일어나는 느림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은 삶 속에서 변하지만, 그것이 가장 큰 고통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읽을 때, 상상 속에서만 알 수 있다. 현실에서 우리의 마음은, 자연의 어떤 현상들이 일어나듯이, 매우 천천히 변해서 우리가 각각의 다른 상태를 연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반면에 변화 자체의 감각은 우리에게서 빼앗긴다.)

이제 등장인물들의 삶보다 덜 내밀한 것으로, 내 눈앞에 반쯤 투영된 풍경이 왔다. 그 풍경은 내가 책에서 눈을 들어 실제로 보고 있던 풍경보다 내 생각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해서 나는 두 여름 동안, 콩브레의 정원 더위 속에서, 당시 내가 읽고 있던 책 때문에 산과 강이 있는 지방에 대한 향수를 느꼈다. 그곳에서 나는 많은 제재소들을 보고, 맑은 물 밑에서는 통나무 조각들이 물냉이 덤불 아래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의 낮은 벽을 따라 보라색과 붉은색 꽃송이들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사랑했을 한 여인에 대한 꿈이 항상 내 생각 속에 있었기에, 그 여름들의 꿈은 흐르는 물의 시원함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내가 떠올리는 여인이 누구든, 보라색과 붉은색 꽃송이들이 마치 보색처럼 그녀의 양쪽에서 곧바로 솟아올랐다.

이는 단지 우리가 꿈꾸는 이미지가 항상 표시되어 있고, 우리의 꿈속에서 우연히 그것을 둘러싼 이국적인 색채의 반사로 아름다워지고 이익을 얻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읽던 책들 속의 풍경들은 내게 단순히 콩브레가 내 눈앞에 펼쳐놓은 것들보다 더 생생하게 상상력에 재현된 풍경들만은 아니었다. 그것들은 비슷했을 것이다. 작가가 선택한 것들로 인해, 내 생각이 그의 말을 계시처럼 맞이하는 믿음으로 인해, 그것들은 내게 – 내가 있던 지방, 특히 우리 정원이 주지 못했던 인상이었다. 우리 정원은 할머니가 경멸하던 정원사의 올바른 상상력의 평범한 산물이었다 – 자연 그 자체의 진정한 일부분으로 보였고, 연구하고 깊이 탐구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만약 부모님이 내가 책을 읽을 때 그 책이 묘사하는 지역을 방문하도록 허락해주셨다면, 나는 진실을 정복하는 데 있어 엄청난 발걸음을 내딛는다고 믿었을 것이다. 우리가 항상 자신의 영혼에 둘러싸여 있다는 감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움직이지 않는 감옥처럼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것과 함께 영원한 도약 속에서 그것을 넘어서려고, 외부에 도달하려고 하는 것 같다. 일종의 낙담과 함께, 언제나 우리 주위에서 동일한 울림을 듣는다. 그것은 외부의 메아리가 아니라 내적 진동의 울림이다. 우리는 그로 인해 귀중해진 사물들에서 우리의 영혼이 그것들에 투영한 반사를 찾으려고 한다. 우리는 그것들이 자연 속에서 우리의 생각 속에서 어떤 관념들과 이웃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져야 했던 매력을 상실한 것 같아 보이는 것을 확인하고 실망한다. 때로는 우리가 결코 도달할 수 없다고 느끼는 우리 외부에 위치한 존재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 이 영혼의 모든 힘을 기교와 광채로 전환한다.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여인 주변에 내가 그 당시 가장 열망하던 장소들을 항상 상상했다면, 만약 내가 그녀가 나를 그곳에 데려가주기를, 내게 미지의 세계에 대한 접근을 열어주기를 바랐다면, 그것은 단순한 생각의 우연한 연상 때문이 아니었다. 아니다, 그것은 내 여행과 사랑의 꿈들이 단지 순간들이었기 때문이다 – 오늘날 내가 무지개빛의 겉보기에 움직이지 않는 물줄기를 다른 높이에서 절단하듯이 인위적으로 분리하는 – 내 삶의 모든 힘들의 동일하고 구부러지지 않는 분출 속의 순간들 말이다.

마지막으로, 내 의식 속에 동시에 병치된 상태들을 내부에서 외부로 계속 따라가다 보면, 그것들을 감싸고 있는 실제 지평선에 도달하기 전에, 나는 다른 종류의 즐거움들을 발견한다. 편안히 앉아 있는 즐거움, 좋은 공기의 냄새를 맡는 즐거움, 방문객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 즐거움. 그리고 생틸레르 교회의 종탑에서 한 시간이 울릴 때마다, 이미 소비된 오후의 일부가 조각조각 떨어지는 것을 보는 즐거움. 마지막 종소리를 들을 때까지. 그 후에 이어지는 긴 침묵은 파란 하늘 속에서 프랑수아즈가 준비하는 맛있는 저녁 식사까지 책을 읽을 수 있는, 아직 나에게 허락된 모든 부분이 시작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저녁 식사는 책의 주인공을 따라다니며 느낀 피로를 달래줄 것이다. 그리고 매 시간마다 나는 이전 시간이 울린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가장 최근의 시간이 다른 시간 바로 옆에 하늘에 새겨졌고, 나는 60분이 그 두 개의 금빛 표시 사이의 작은 푸른 호에 담겨 있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때로는 이 이른 시간이 마지막 시간보다 두 번 더 울렸다. 그러면 내가 듣지 못한 시간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뭔가가 일어났지만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았다. 독서의 흥미가, 깊은 잠처럼 마법같이, 내 환청을 일으킨 귀를 속여 침묵의 푸른 표면 위의 금빛 종소리를 지워버렸던 것이다. 콩브레 정원의 마로니에 나무 아래에서 보낸 아름다운 일요일 오후들이여, 나는 너희들을 내 개인적 삶의 평범한 사건들로부터 주의 깊게 비워냈고, 그 대신 생동감 넘치는 물이 흐르는 나라 속에서의 모험과 이상한 열망의 삶으로 채웠다. 너희들은 여전히 그 삶을 내게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실제로 너희들은 그 삶을 담고 있다. 왜냐하면 너희들이 – 내가 독서를 진행하고 하루의 더위가 가라앉는 동안 – 그 삶을 점차 에워싸고 가두었기 때문이다. 너희들의 조용하고, 소리 나고, 향기로우며 투명한 시간들의 연속적이고 천천히 변화하는, 나뭇잎으로 가로막힌 수정 속에.

때때로 나는 오후 중반에 책을 덮었다. 정원사의 딸이 미친 듯이 달려와 오렌지 나무를 넘어뜨리고, 손가락을 베고, 이를 부러뜨리며 소리쳤다. “저기 온다, 저기 온다!” 프랑수아즈와 나는 달려가 구경거리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콩브레를 지나가는 군대는 주둔군의 훈련을 위해 오는 것이었다. 그들은 대개 생트일데가르드 거리를 지나갔다. 우리 하인들은 식탁에 올라가 커튼 사이로 바라보았다.

앞줄에 줄맞춰 의자에 앉아 콩브레의 일요일 산책객들을 바라보며 그들에게 보이고 있었다. 정원사의 딸은 기차역 거리의 먼 두 집 사이에 난 틈새로 투구의 번쩍임을 보았다. 하인들은 의자를 서둘러 들여놓았다. 기병들이 생틸데가르드 거리를 행진할 때면 거리 전체를 채웠고, 말들의 질주는 집들을 스쳐 지나갔으며 보도를 덮쳤다. 마치 제방이 너무 좁아 폭주하는 급류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불쌍한 아이들,” 프랑수아즈는 겨우 대문에 도착하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불쌍한 젊은이들, 들판처럼 베어질 거야. 생각만 해도 충격이야,” 그녀는 가슴에 손을 얹으며 덧붙였다. 그곳에서 그녀는 그 충격을 받았다.

“멋지지 않나요, 프랑수아즈 부인? 목숨을 아끼지 않는 젊은이들을 보는 게?” 정원사가 그녀를 ‘들쑤시기’ 위해 말했다.

그는 헛되이 말하지 않았다.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고? 그럼 뭘 아껴야 한단 말이에요, 목숨이 아니라면? 하느님께서 단 한 번만 주시는 유일한 선물인데. 아이고, 하느님! 그들이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니 정말 그렇군요! 나는 70년에 그들을 봤어요. 그들은 이 비참한 전쟁에서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그들은 미친 사람들이나 다름없어요. 그리고 그들은 목매달 줄도 아깝지.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 사자예요.” (프랑수아즈에게 사람을 사자에 비유하는 것은 전혀 칭찬이 아니었다.)

생틸데가르드 거리는 너무 짧아서 멀리서 오는 것을 볼 수 없었다. 기차역 거리의 두 집 사이 틈새로 계속해서 새로운 투구들이 달리며 햇빛에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정원사는 얼마나 더 많은 기병들이 지나갈지 알고 싶어 했고, 목이 말랐다.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그의 딸이 포위된 성채에서 튀어나오듯 달려 나가 거리 모퉁이에 도달했다. 그녀는 수백 번 죽음을 무릅쓰고 코코넛 주스 한 병을 들고 돌아와 티베르지와 메제글리즈 쪽에서 천 명이나 되는 기병들이 쉬지 않고 오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프랑수아즈와 정원사는 화해하고 전쟁이 일어날 경우의 대처 방법을 논의했다.

“보세요, 프랑수아즈,” 정원사가 말했다. “혁명이 더 나을 거예요. 혁명이 일어나면 가고 싶은 사람만 가니까요.”

“아, 네. 적어도 그건 이해가 돼요. 더 솔직하죠.”

정원사는 전쟁이 선포되면 모든 철도를 막는다고 생각했다.

“당연하죠,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고,” 프랑수아즈가 말했다.

그러자 정원사가 말했다. “아, 그들은 영악해.” 그는 전쟁이 국가가 국민에게 치려는 일종의 악랄한 장난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도망가지 않을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프랑수아즈는 서둘러 고모에게로 돌아갔고, 나는 내 책으로 돌아갔다. 하인들은 문 앞에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아 먼지와 병사들이 일으킨 흥분이 가라앉는 것을 지켜보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 평온이 찾아온 후에도 콩브레의 거리는 여전히 평소와 다른 산책객들로 검게 물들어 있었다. 각 집 앞에서는, 심지어 평소에는 그렇지 않던 집에서도, 하인들이나 주인들이 앉아서 바라보며 문지방을 장식했다. 마치 강한 조수가 멀어진 후 해변에 해초와 조개껍질의 검은 레이스와 자수를 남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 날들을 제외하고는 나는 보통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스완의 방문으로 인한 중단과 설명은 내가 읽고 있던 새로운 작가 베르고트의 책에 대한 해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오랫동안 내가 꿈꾸던 여인들 중 한 명의 이미지는 더 이상 보라색 꽃으로 장식된 벽 앞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배경, 고딕 성당의 정문 앞에서 떠오르게 되었다.

나는 베르고트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나보다 나이가 많고 내가 크게 존경하는 친구인 블로슈에게서 들었다. 내가 ’10월의 밤’에 대한 감탄을 고백하자 그는 나팔 소리처럼 큰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뮈세 씨에 대한 그 저급한 취향을 조심해. 그는 아주 나쁜 놈이자 꽤나 음울한 짐승이야. 그러나 나는 고백해야겠는데, 그와 라신이라는 자도 각자의 인생에서 꽤 잘 운율을 맞춘 시구를 하나씩 만들었어. 내 생각에 그것의 최고의 장점은 전혀 의미가 없다는 거야. 그건 ‘하얀 올로소네와 하얀 카미레’와 ‘미노스와 파시파에의 딸’이야. 이 두 악당을 변호하기 위해 내가 아주 사랑하는 스승인 르콩트 신부님의 글에서 알게 됐지. 그분은 불멸의 신들에게 사랑받으시지. 그런데 말이야, 여기 내가 지금 읽을 시간이 없는 책이 있는데, 이 대단한 분이 추천한 것 같아. 들리는 바로는 저자인 베르고트라는 사람을 아주 교묘한 놈으로 여기신대. 그가 때때로 이해하기 어려운 관용을 보이긴 하지만, 그의 말씀은 내게 델피의 신탁과 같아. 그러니 이 서정적인 산문을 읽어봐. 그리고 만약 ‘바가바드’와 ‘마그누스의 그레이하운드’를 쓴 위대한 운율의 창조자가 진실을 말했다면, 아폴론께 맹세코, 친애하는 선생님, 당신은 올림포스의 넥타르 같은 기쁨을 맛보게 될 거야.” 그는 비꼬는 어조로 나를 ‘친애하는 선생님’이라고 부르라고 했고, 자신도 나를 그렇게 불렀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이런 놀이를 꽤 즐겼다. 우리가 이름 붙이는 것을 창조한다고 믿는 나이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블로슈와 대화를 나누며 설명을 요구해도 그가 나를 빠뜨린 혼란을 풀 수는 없었다. 그는 아름다운 시구(나는 그것들에게서 진실의 계시 이상을 기대하지 않았다)가 아무런 의미도 없을 때 더욱 아름답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블로슈는 다시 집에 초대받지 못했다. 처음에는 환영받았었다. 사실 할아버지는 내가 친구들 중 한 명과 다른 친구들보다 더 친밀해져서 집에 데려올 때마다 그 친구는 항상 유대인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원칙적으로 할아버지를 불쾌하게 하지 않았다. 그의 친구 스완도 유대인 혈통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내가 보통 가장 좋은 친구들을 선택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새 친구를 데려올 때마다 그는 “오 우리 조상들의 신이시여”나 “이스라엘이여, 너의 사슬을 끊어라”를 흥얼거렸다. 물론 가사 없이 멜로디만 (타 라 람 타 람, 탈림)을 불렀지만, 나는 내 친구가 알아차리고 가사를 채워 넣을까 봐 두려웠다.

그들을 보기도 전에, 그들의 이름만 듣고도, 할아버지는 내 친구들 중 실제로 유대인인 사람들의 유대인 혈통뿐만 아니라 때로는 그들 가족의 좋지 않은 점까지도 알아차렸다.

“오늘 저녁에 오는 네 친구 이름이 뭐니?”

“뒤몽이에요, 할아버지.”

“뒤몽! 오! 난 경계해야겠어.”

그리고 그는 이렇게 노래했다:

“궁수들이여, 경계를 게을리하지 마라!

끊임없이 조용히 지켜보라”;

그리고 우리에게 교묘하게 몇 가지 더 구체적인 질문을 던진 후,

그는 외쳤다: “경계하라! 경계하라!” 또는, 만약 그가 이미 도착한 환자에게

교묘한 질문으로 그의 출신을 고백하게 만들었다면, 더 이상

의심할 것이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 그는 우리를 바라보며

희미하게 흥얼거리는 것으로 만족했다:

“이 소심한 이스라엘 사람의 무엇이!

당신은 여기서 발걸음을 인도합니까!”

또는:

“아버지의 들판, 헤브론, 달콤한 계곡.”

아니면:

“그래, 나는 선택받은 민족이다.”

할아버지의 이런 작은 버릇들은 내 친구들에 대한 어떤 악의도

내포하지 않았다. 그러나 블로슈는 다른 이유로 내 부모님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비에 젖은 채로 들어와 아버지를 짜증나게 했는데, 아버지는

그를 보고 관심있게 말했다:

“블로슈 씨, 도대체 날씨가 어떤가요, 비가 왔나요?

이해가 안 되는군요, 기압계는 아주 좋았는데 말이에요.”

그는 이런 대답만 했다:

“선생님, 비가 왔는지 전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저는 너무나

단호하게 물리적 우연성 밖에서 살고 있어서 제 감각이

그것들을 저에게 알려줄 수고를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 불쌍한 아들아, 네 친구는 바보구나,”라고 블로슈가 떠난 뒤

아버지가 말했다. “어떻게! 그는 날씨가 어떤지조차 말할 수 없다니!

그보다 더 흥미로운 게 어디 있겠니! 그는 바보야.”

그 다음 블로슈는 점심 식사 후 할머니가 좀 아프다고 말했을 때

흐느낌을 삼키고 눈물을 닦아 할머니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떻게 그게 진심일 수 있겠니, 그는 나를 모르는데,”라고 할머니가

내게 말했다. “아니면 그가 미쳤거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한 시간 반이나 늦게 진흙투성이로 점심 식사에

와서는 사과는커녕 이렇게 말해 모두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나는 결코 대기의 혼란이나 시간의 관습적 구분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나는 아편 파이프와 말레이 단검의 사용을 기꺼이 재활성화하겠지만,

그것들보다 훨씬 더 해롭고 또한 평범하게 속물적인 도구인 시계와

우산의 사용법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콩브레로 다시 왔을 것이다. 그는 내 부모님이

내게 원하는 친구는 아니었다. 그들은 결국 할머니의 몸이 좋지 않다는 말에

그가 흘린 눈물이 거짓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본능적으로

또는 경험을 통해 우리의 감수성의 충동이 우리의 행동과 삶의 방식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도덕적 의무의 준수, 친구에 대한 충실함,

작품의 실행, 체제의 준수가 이러한 순간적이고 열정적이며 불모의

격정보다는 맹목적인 습관에 더 확실한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내게 블로슈보다는 부르주아 도덕의 규칙에 따라 친구에게 주어야 할

것 이상을 주지 않을 친구들을 선호했을 것이다. 그들은 그날 나를

애정을 가지고 생각했기 때문에 갑자기 과일 바구니를 보내지 않을 것이며,

단순히 그들의 상상력과 감수성의 움직임으로 우정의 의무와 요구의

공정한 저울을 내 편으로 기울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마찬가지로

내게 불리하게 그것을 왜곡하지 않을 사람들을 선호했을 것이다. 우리의 잘못조차도

우리에게 빚진 것을 포기하게 하지 못하는 그런 성격들의 모델이 바로 내 대고모였다.

그녀는 수년간 말도 하지 않고 다툰 조카와 화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모든

재산을 남기는 유언장을 수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가 가장 가까운 친척이었고

그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블로슈를 좋아했고, 부모님은 나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 했다.

미노스와 파시파에의 의미 없는 아름다움에 대해 내가 제기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은 어머니가 해롭다고 판단한 그와의 새로운 대화보다 나를 더 피곤하게

하고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만약 그 저녁 식사 후, 그가 내게

모든 여자들은 오직 사랑만을 생각하며 저항할 수 없는 여자는 없다고

말해주지 않았다면 – 이 소식은 나중에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쳐 더 행복하게,

그리고 더 불행하게 만들었다 – 그를 콩브레에서 다시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내 대고모가 격정적인 젊은 시절을 보냈고 공공연히 유지되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들었다고 나에게 장담했다. 나는 이 말을

부모님에게 전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가 다시 왔을 때 그를 문밖으로 쫓아냈다.

그리고 내가 나중에 거리에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나에게 매우 차갑게 대했다.

하지만 베르고트에 대해서는 그가 진실을 말했다.

처음 며칠 동안은, 마치 나중에 열광하게 될 음악의 한 구절처럼,

내가 그토록 사랑하게 될 그의 문체에서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그의 소설을 놓을 수 없었지만, 마치 사랑의 첫 순간에 매일

어떤 모임이나 오락에서 한 여자를 만나러 가면서 자신이 그 오락의

즐거움에 이끌린다고 믿는 것처럼, 단지 주제에만 관심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나는 그가 어떤 순간에, 숨겨진 화음의 흐름, 내면의 전주곡이

그의 문체를 들어 올릴 때 사용하기를 좋아하는 희귀하고 거의 고풍스러운

표현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바로 그런 순간에 그는 “인생의 헛된 꿈”,

“아름다운 현상의 끝없는 흐름”, “이해하고 사랑하는 불모의 달콤한 고통”,

“대성당의 경건하고 매력적인 정면을 영원히 고귀하게 만드는 감동적인 초상”

등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런 놀라운 이미지들로 내게 완전히

새로운 철학을 표현했는데, 마치 그 이미지들이 바로 그때 울려 퍼지기 시작한

마치 하프의 노래를 깨운 것 같았고, 그 반주에 숭고함을 더해주는 것 같았다. 베르고트의 구절들 중 하나, 내가 나머지 부분에서 분리해 낸 세 번째나 네 번째 구절은 내게 처음 느낀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주었다. 나는 이 기쁨을 내 자신의 더 깊은 영역에서, 더 통일되고 더 넓은 영역에서 느끼고 있음을 알았다. 거기서는 장애물과 분리가 사라진 것 같았다. 그때 나는 희귀한 표현에 대한 같은 취향, 같은 음악적 흐름, 같은 이상주의 철학을 인식하고, 그것들이 이전에도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채 내 즐거움의 원인이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특정한 베르고트의 책의 한 구절, 내 생각의 표면에 순전히 선형적인 모습을 그리는 구절을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모든 책에 공통된 ‘이상적인 구절’을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와 유사한 모든 구절들이 이와 융합되어 일종의 두께와 부피를 주었고, 이로 인해 내 정신이 확장된 것 같았다.

나는 베르고트의 유일한 팬이 아니었다. 그는 또한 매우 교양 있는 어머니의 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였다. 마지막으로, 뒤 불봉 박사는 그의 최신 출간된 책을 읽기 위해 환자들을 기다리게 했다. 그리고 그의 진료실과 콩브레 근처의 공원에서 베르고트에 대한 이런 선호의 첫 씨앗들이 퍼져나갔다. 이 씨앗들은 당시에는 매우 희귀했지만, 오늘날에는 보편적으로 퍼져 있어 유럽과 미국 전역, 심지어 가장 작은 마을에서도 그 이상적이고 공통된 꽃을 볼 수 있다. 어머니의 친구와 뒤 불봉 박사가 베르고트의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과 같았다. 그것은 바로…

나는 이 같은 선율의 흐름, 이 오래된 표현들, 그리고 다른 매우 단순하고 잘 알려진 표현들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가 이들을 강조하는 위치는 그의 특별한 취향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슬픈 구절에서는 어떤 갑작스러움, 거의 쉰 듯한 어조가 있었다. 그리고 의심할 여지없이 그 자신도 이것들이 자신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이후의 책들에서, 만약 그가 어떤 위대한 진리나 유명한 성당의 이름을 만났다면, 그는 이야기를 멈추고 호소나 연설, 긴 기도를 통해 이러한 감정들을 자유롭게 표출했다. 이런 감정들은 그의 초기 작품에서는 산문 내부에 머물러 있었고, 단지 표면의 물결로만 드러났었다. 아마도 그때는 더 부드럽고, 더 조화로웠을 것이다. 그렇게 베일에 가려져 있을 때, 그 속삭임이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끝나는지 정확히 말하기 어려웠다. 그가 즐기던 이 부분들은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모두 외웠다. 그가 이야기를 계속할 때마다 나는 실망했다. 그가 내게 아직 숨겨진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소나무 숲이나 우박,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아탈리 또는 페드르에 대해 말할 때마다, 그는 한 이미지로 그 아름다움을 내게 폭발시켰다. 그래서 나는 내 불완전한 지각으로는 구별할 수 없는 우주의 많은 부분들을 그가 내게 가까이 가져다주는 것을 느끼며, 모든 것들에 대한 그의 의견, 그의 은유를 갖고 싶어 했다. 특히 내가 직접 볼 기회가 있을 것들에 대해, 그리고 그중에서도 특히 오래된 프랑스 건축물들과 특정 해안 풍경들에 대해 그랬다. 그가 책에서 그것들을 자주 인용한 것은 그가 그것들을 의미와 아름다움이 풍부한 것으로 여겼음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나는 거의 모든 것에 대한 그의 의견을 알지 못했다. 그의 의견이 내 것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라는 점은 의심하지 않았다. 그의 의견은 내가 올라가려고 노력하는 미지의 세계에서 내려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내 생각들이 이 완벽한 정신에게는 순전한 어리석음으로 보일 것이라고 확신하여, 나는 모든 생각을 완전히 비워버렸다. 그래서 우연히 그의 책에서 내가 이미 가졌던 생각을 발견했을 때, 마치 신이 자비로 그것을 내게 돌려주고, 그것을 정당하고 아름답다고 선언한 것처럼 내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때로는 그의 페이지 하나가 내가 자주 밤에 잠들지 못할 때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쓰곤 했던 것과 같은 말을 하고 있어서, 그 베르고트의 페이지가 마치 내 편지 앞에 놓일 명언 모음집 같아 보였다. 심지어 나중에 내가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 그 품질이 나로 하여금 계속 쓰게 할 만큼 충분하지 않았던 어떤 문장들의 동등한 것을 나는 베르고트에게서 발견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서 그것들을 읽을 때만 나는 그것들을 즐길 수 있었다. 내가 그것들을 쓸 때는, 그것들이 내 생각에서 본 것을 정확히 반영하는지에 집중하느라, ‘닮게 하지’ 못할까 두려워하느라, 내가 쓰는 것이 아름다운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실제로 나는 이런 종류의 문장, 이런 종류의 아이디어만을 진정으로 좋아했다. 내 불안하고 불만족스러운 노력들 자체가 사랑의 표시였다. 즐거움은 없지만 깊은 사랑이었다. 그래서 갑자기 다른 사람의 작품에서 그런 문장들을 발견했을 때, 즉 더 이상 양심의 가책이나 엄격함 없이, 더 이상 괴로워할 필요 없이, 나는 마침내 그것들에 대한 내 취향을 기쁘게 누릴 수 있었다. 마치 요리를 해야 할 때가 아닌 한 번쯤 맛있는 음식을 먹을 시간을 찾은 요리사처럼 말이다.

어느 날, 베르고트의 책에서 한 늙은 하녀에 관한 농담을 발견했는데, 작가의 웅장하고 장엄한 언어가 더욱 아이러니하게 만들었지만 그것은 내가 종종 프랑수아즈에 대해 말하면서 할머니에게 했던 것과 같은 농담이었다. 또 다른 때는 그가 우리 친구 르그랑댕 씨에 대해 내가 한 적 있는 것과 비슷한 언급을 그의 작품이라는 진실의 거울에 담기기에 부적합하지 않다고 여긴 것을 보았다 (프랑수아즈와 르그랑댕 씨에 대한 이 언급들은 내가 베르고트가 흥미 없다고 여길 것이라 확신하여 가장 기꺼이 포기했을 것들 중 하나였다). 갑자기 내 보잘것없는 삶과 진실의 왕국이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 그것들이 어떤 점에서는 일치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신뢰와 기쁨으로 마치 되찾은 아버지의 품에 안긴 것처럼 작가의 페이지 위에서 울었다.

그의 책들로 미루어 보아, 나는 베르고트를 자식을 잃고 한 번도 위로받지 못한 약하고 실망한 노인으로 상상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산문을 내면적으로 읽고 노래했다. 아마도 그가 쓴 것보다 더 ‘달콤하게’, 더 ‘느리게’ 읽었을 것이다. 가장 단순한 문장도 내게는 애틋한 어조로 다가왔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의 철학을 사랑했고, 영원히 그것에 자신을 바쳤다. 그것은 내가 철학이라 불리는 수업에 들어갈 나이가 되기를 갈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오직 베르고트의 사상으로만 살기를 원했고, 만약 내가 그때 애착을 갖게 될 형이상학자들이 그와 전혀 닮지 않았다고 누군가 말했다면, 나는 평생 사랑하고 싶어 하는 연인에게 나중에 가질 다른 애인들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은 사람처럼 절망했을 것이다.

어느 일요일, 정원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 스완이 부모님을 만나러 와서 방해를 받았다.

“무엇을 읽고 계십니까, 볼 수 있을까요? 아, 베르고트군요! 누가 그의 작품을 추천해 주었나요?” 나는 블로슈라고 대답했다.

“아, 그래요. 여기서 한 번 본 적이 있는 그 소년 말이군요. 벨리니가 그린 메메드 2세의 초상화와 너무나 닮았어요. 오, 정말 놀라워요. 같은 곡선형 눈썹, 같은 굽은 코, 같은 튀어나온 광대뼈를 가졌어요. 수염이 자라면 완전히 같은 사람이 될 거예요. 어쨌든 그는 취향이 있군요. 베르고트는 매력적인 정신의 소유자니까요.”

나는 베르고트를 얼마나 존경하는지 스완이 알아차린 듯, 스완은 평소 자신이 아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지만, 친절하게 예외를 두고 말했다.

“나는 그를 잘 알아요. 만약 당신의 책 앞에 그가 글을 써주는 것이 당신을 기쁘게 할 수 있다면, 내가 그에게 부탁할 수 있어요.”

나는 감히 수락하지 못했지만, 스완에게 베르고트에 대해 질문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가 누군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배우라…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가 어떤 남자 예술가도 라 베르마와 동등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건 알아요. 그는 그녀를 모든 것 위에 둡니다. 당신은 그녀를 보신 적이 있나요?”

“아니요. 부모님께서 극장에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세요.”

“안타깝군요. 그들에게 부탁해 보세요. ‘페드르’에서의 라 베르마, ‘르 시드’에서의 라 베르마, 그저 배우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예술의 위계’를 많이 믿지 않아요.” (그가 진지한 것들에 대해 말할 때, 중요한 주제에 대한 의견을 함축하는 듯한 표현을 사용할 때, 그가 그것을 특별한, 기계적이고 아이러니한 어조로 격리시키려 노력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 마치 그가 그것을 인용부호 안에 넣은 것처럼, 그것에 대해 책임지기를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예술의 위계, 아시다시피, 우스운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면 우스운 것이라면 왜 예술의 위계라고 말했을까?) 잠시 후 그는 덧붙였다. “그것은 당신에게 어떤 걸작만큼이나 고귀한 비전을 줄 거예요. 글쎄요… 예를 들면…”

“샤르트르 대성당의 여왕들!”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때까지 이런 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진지하게 표현하지 않는 것이 세련되고 파리적인 것이며, 할머니의 자매들의 독단적인 시골 방식과는 대조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이것이 스완이 속한 사교계의 정신 형태 중 하나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이전 세대의 서정적 표현에 대한 반작용으로 과거에는 저속하다고 여겨졌던 사소하고 정확한 사실들을 지나치게 복권시키고 ‘문구’를 금기시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스완의 이런 태도에서 충격적인 무언가를 느꼈다. 그는 의견을 갖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고, 꼼꼼하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때만 안심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세부사항의 정확성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 자체가 의견을 표명하는 것이며, 전제를 깔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 엄마가 내 방에 올라오지 않을 것이라 슬펐던 그 저녁 식사를 다시 떠올렸다. 그때 그는 레옹 공주의 무도회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는 정작 그런 종류의 즐거움에 자신의 삶을 바치고 있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모순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언제쯤 진지하게 사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인용부호 없이 판단을 내리며, 동시에 우스꽝스럽다고 여기는 활동에 꼼꼼한 예의를 갖춰 몰두하는 것을 그만둘 것인가? 나는 또한 스완이 베르고트에 대해 말하는 방식에서 그에게만 특별한 것이 아닌, 오히려 당시 그 작가의 모든 애호가들에게 공통된 무언가를 발견했다. 어머니의 친구나 뒤 불봉 박사처럼 말이다. 스완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베르고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매력적인 정신의 소유자예요. 아주 특별하죠. 그만의 독특한 말하기 방식이 있어요. 조금 꾸민 듯하지만 아주 즐겁죠. 서명을 볼 필요도 없어요. 곧바로 그의 글이라는 걸 알 수 있죠.” 하지만 그 누구도 “그는 위대한 작가예요. 그는 대단한 재능을 가졌어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가 재능이 있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그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로운 작가의 특별한 면모에서 우리의 일반적인 관념의 박물관에 ‘위대한 재능’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은 모델을 인식하는 데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 면모가 새롭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우리가 재능이라고 부르는 것과 완전히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히려 독창성, 매력, 섬세함, 힘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는 이 모든 것이 바로 재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베르고트의 작품 중에 라 베르마에 대해 언급한 것이 있나요?” 내가 스완 씨에게 물었다.

“라신에 대한 그의 작은 책자에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아마 절판됐을 거예요. 어쩌면 재판이 나왔을지도 모르겠네요. 알아볼게요. 그리고 베르고트에게 당신이 원하는 것은 뭐든 물어볼 수 있어요. 일 년 중 우리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지 않는 주가 없거든요. 그는 제 딸의 절친한 친구예요. 그들은 함께 옛 도시들과 대성당들, 성들을 방문하러 다녀요.”

나는 사회적 계급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기에, 오래전부터 아버지가 스완 부인과 그의 딸과의 교제를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것이 오히려 그들과 우리 사이에 큰 거리감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내 눈에 그들에게 위신을 부여하는 효과를 낳았다. 어머니는 이웃 사즈라 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자주 했는데, 스완 부인은 남편이 아닌 샤를뤼스 씨를 위해 머리를 염색하고 입술에 루주를 바른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런 모습을 보지 못해 아쉬워했고, 나는 우리가 스완 부인에게 멸시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아주 예쁜 소녀라고 들었던 스완 양 때문에 더욱 마음 아팠다. 나는 자주 그녀를 상상하며 매번 똑같은 임의의 매력적인 얼굴을 그려보곤 했다.

하지만 그날 나는 스완 양이 얼마나 특별한 환경에 있는 존재인지, 얼마나 많은 특권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저녁 식사에 누가 올 거냐고 부모님께 물으면, 빛으로 가득 찬 음절들로, 그녀에게 단지 가족의 오랜 친구일 뿐인 황금빛 손님의 이름으로 대답했다. 그녀에게 식탁에서의 친밀한 대화란, 내게 있어 증조모와의 대화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베르고트가 그의 책에서 다루지 못했던 모든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가 도시들을 방문할 때 베르고트가 그녀 옆에서 걸으며 동행한다는 사실, 마치 신들이 인간들 사이로 내려온 것처럼 알려지지 않은 채 영광스럽게. 그때 나는 스완 양 같은 존재의 가치와 동시에 내가 그녀에게 얼마나 거칠고 무지해 보일지를 느꼈다. 그녀의 친구가 되는 것의 달콤함과 불가능함을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 욕망과 절망으로 가득 찼다.

이제 대부분 그녀를 생각할 때면, 나는 그녀가 대성당 현관 앞에 서서 조각상들의 의미를 설명하고, 나를 향해 호의적인 미소를 지으며 베르고트에게 자신의 친구로 소개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언제나 대성당들이 내 마음속에 불러일으키는 모든 생각들의 매력, 일드프랑스의 언덕들과 노르망디 평원의 매력이 스완 양에 대해 내가 그리는 이미지에 반사되어 비치곤 했다. 그것은 그녀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우리가 어떤 존재가 우리가 모르는 삶에 참여하고 있으며, 그 사랑이 우리를 그곳으로 들어가게 해줄 것이라고 믿는 것, 그것이야말로 사랑이 태어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 중 사랑이 가장 집착하는 것이며, 나머지는 모두 가볍게 여기게 만드는 것이다. 심지어 외모만으로 남자를 판단한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조차도 그 외모에서 특별한 삶의 발현을 본다. 그래서 그들은 군인들과 소방관들을 좋아한다. 제복 때문에 얼굴에 대해 덜 까다로워지는 것이다. 그들은 갑옷 아래에서 모험적이면서도 부드러운 다른 심장을 키스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젊은 군주나 왕세자는 외국 방문 시 가장 아첨하는 정복을 하기 위해 어쩌면 증권 중개인에게는 필수적일지도 모르는 단정한 옆모습이 필요하지 않다.

내가 정원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 증조모는 일요일이 아닌 날에 그런 짓을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요일에는 심각한 일에 몰두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어서 그녀는 바느질도 하지 않았다. (평일에는 “아직도 책 읽고 노니? 일요일도 아닌데”라고 말하며 ‘논다’는 말에 유치함과 시간 낭비의 의미를 부여했을 것이다.) 레오니 고모는 묄랄리가 올 시간을 기다리며 프랑수아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프랑수아즈에게 구필 부인이 “우산도 없이, 샤토댕에서 만든 비단 드레스를 입고” 지나가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만약 저녁 기도 전에 멀리 가야 한다면 옷이 흠뻑 젖을지도 몰라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프랑수아즈는 더 나은 대안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기 위해 말했다.

“아,” 고모는 이마를 치며 말했다. “그녀가 성체 거양 후에 교회에 도착했는지 알아내지 못했네요. 묄랄리에게 꼭 물어봐야겠어요… 프랑수아즈, 저 교회 첨탑 뒤의 검은 구름 좀 보세요. 그리고 저 지붕 위의 나쁜 태양도요. 오늘 하루가 비 없이 지나가지는 않을 거예요. 이대로 계속될 리가 없어요. 날씨가 이렇게 후덥지근하니까요.”

“날씨가 너무 더웠어요. 그리고 빨리 하면 할수록 좋죠. 왜냐하면 폭풍이 오기 전까지는 내 비시 물이 내려가지 않을 테니까요.” 내 고모는 비시 물을 빨리 내려가게 하고 싶은 마음이 구피 부인의 옷이 망가질까 봐 걱정하는 마음보다 훨씬 더 컸다.

“그럴지도 모르죠, 그럴지도.”

“그리고 광장에 비가 오면 피할 곳이 많지 않아요.”

“뭐라고요, 3시라고요?” 고모는 갑자기 창백해지며 소리쳤다. “그럼 저녁 기도가 이미 시작됐겠네요. 내 펩신을 잊어버렸어요! 이제 내 비시 물이 왜 위에 남아있는지 알겠어요.”

그리고 자주색 벨벳으로 장정되고 금박을 입힌 미사책을 급히 집어 들었다. 서두르는 바람에 책에서 축일을 표시하는 누렇게 변한 종이 레이스로 테두리를 두른 성화들이 떨어져 나왔다. 고모는 물약을 삼키면서 비시 물을 마신 지 한참 후에 펩신을 먹으면 물약이 아직 효과가 있을지 확신하지 못해 약간 혼란스러운 채로 성스러운 텍스트를 최대한 빨리 읽기 시작했다. “3시라니,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가다니 믿을 수가 없어요!”

창문에 뭔가가 부딪힌 것 같은 작은 소리가 나더니, 위 창문에서 모래알을 떨어뜨린 것처럼 가벼운 소리가 크게 났다. 그 소리는 점점 퍼지며 리듬을 타기 시작했고, 유동적이고 음악적이며 셀 수 없이 많은 보편적인 소리가 되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저런! 프랑수아즈, 내가 뭐라고 했죠? 정말 쏟아지네요! 하지만 정원 문 방울 소리가 들린 것 같아요. 이런 날씨에 누가 밖에 있는지 보고 오세요.”

프랑수아즈가 돌아왔다.

“아메데 부인(제 할머니)이 산책을 하러 가셨대요. 비가 정말 많이 오는데 말이에요.”

“전혀 놀랍지 않네요.” 내 고모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 분은 항상 남들과는 다른 생각을 하신다고 말했잖아요. 지금 밖에 있는 게 그분이라 다행이에요.”

“아메데 부인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는 정반대예요.” 프랑수아즈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녀는 다른 하인들과 단둘이 있을 때 할머니가 약간 ‘이상하다’고 말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저녁 기도가 끝났군요! 얼랄리가 이제 오지 않을 거예요.” 내 고모는 한숨을 쉬었다. “날씨 때문에 겁이 났나 봐요.”

“하지만 옥타브 부인, 5시가 아니라 4시 반밖에 안 됐어요.”

“4시 반이라고요? 그런데 저는 조그만 빛 한 줄기라도 얻으려고 작은 커튼을 걷어야 했어요. 4시 반이라니! 로가티오 8일 전이에요! 아, 불쌍한 프랑수아즈, 우리가 착한 주님을 많이 화나게 했나 봐요. 요즘 세상 사람들이 너무 심하잖아요! 내 불쌍한 옥타브가 말했듯이, 사람들이 착한 주님을 너무 잊어버렸고 그분이 앙갚음을 하시는 거예요.”

고모의 뺨에는 생생한 홍조가 돌았다. 묄랄리였다. 안타깝게도 그녀가 막 들어오자마자 프랑수아즈가 돌아왔다. 그녀는 자신의 말이 고모에게 기쁨을 줄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았기에 미소를 지으며 음절을 또렷이 발음했다. 그녀는 좋은 하인답게 방문객이 사용한 바로 그 말을 간접화법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신부님께서 매우 기뻐하시며, 옥타브 부인께서 쉬고 계시지 않으시면 만나 뵙고 싶어 하십니다. 신부님께서는 방해하고 싶지 않으시대요. 신부님께서 아래층에 계시는데, 제가 응접실로 들어오시라고 말씀드렸어요.”

사실 신부의 방문은 프랑수아즈가 생각하는 것만큼 고모에게 큰 기쁨을 주지 않았다. 프랑수아즈는 신부를 알릴 때마다 자신의 얼굴에 기쁨의 표정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환자의 감정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았다. 신부(내가 더 많이 대화를 나누지 못해 아쉬운 훌륭한 사람으로, 예술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지만 어원학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었다)는 교회에 대한 정보를 중요한 방문객들에게 주는 데 익숙해져 있었고(그는 콩브레 교구에 대한 책을 쓸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끝없는 설명으로 고모를 지치게 했다. 게다가 그 설명은 항상 똑같았다. 하지만 그의 방문이 묄랄리의 방문과 같은 시간에 이루어질 때는 정말 불쾌해졌다. 고모는 묄랄리와 시간을 더 보내고 싶어 했고, 모든 사람을 한꺼번에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신부를 거절할 수 없었고, 단지 묄랄리에게 신부와 함께 가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신부가 떠난 후에 그녀를 잠시 혼자 남겨두겠다는 뜻이었다.

“신부님, 교회에 화가가 이젤을 설치하고 스테인드글라스를 모사하고 있다고 하던데요. 제가 이 나이까지 살면서 그런 일은 들어본 적이 없어요! 요즘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찾고 있는 걸까요! 그것도 교회에서 가장 볼품없는 것을요!”

“제가 그것이 가장 볼품없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생틸레르 성당에는 볼 만한 부분도 있지만, 낡은 부분도 있습니다. 제 가엾은 성당은 교구 전체에서 유일하게 복원되지 않은 곳이죠. 물론 현관은 지저분하고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위엄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에스더 태피스트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2수도 주지 않겠지만, 전문가들은 상스의 태피스트리 바로 다음으로 평가합니다. 사실 몇몇 현실적인 세부 묘사 옆에 진정한 관찰력을 보여주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스테인드글라스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아주세요. 빛도 들어오지 않고 착시까지 일으키는 창문을 그대로 두는 게 말이 됩니까? 게다가 교회 바닥은 높낮이가 제각각이고, 콩브레의 수도원장들과 게르망트 영주들, 즉 오늘날 게르망트 공작과 공작부인(그녀는 사촌과 결혼한 게르망트 가문 출신입니다)의 직계 조상들의 무덤이라는 구실로 교체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내 할머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잃어 모든 이름을 혼동하다가 게르망트 공작부인이라는 이름이 언급될 때마다 그녀가 빌파리지 부인의 친척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고, 그녀는 어떤 청첩장을 기억한다며 변명하려 했다. “게르망트라는 이름이 거기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한 번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녀에게 반대했다. 그녀의 기숙학교 친구와 브라방의 쥬느비에브의 후손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보세요, 루생빌은 오늘날 그저 농부들의 교구일 뿐이지만, 옛날에는 펠트 모자와 시계 거래로 큰 번영을 누렸답니다. (루생빌의 어원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원래 이름이 루빌(라둘피 빌라)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샤토루(카스트룸 라둘피)처럼 말이죠.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하죠.) 그런데 교회에는 훌륭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있어요. 대부분 현대 작품이지만요. 거기에는 루이 필립의 콩브레 입성이라는 인상적인 작품도 있는데, 사실 콩브레에 더 어울릴 것 같아요. 그 작품은 생스의 ‘성모 마리아의 삶’에 견줄 만하다고들 하죠.”

샤르트르의 유명한 스테인드글라스를 보았다. 어제는 심지어 퍼스피드 박사의 동생을 만났는데, 그는 아마추어 감상가로 그 작품을 더 뛰어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제가 그 예술가에게 말했듯이, 그는 매우 공손하고 붓의 진정한 대가인 것 같은데, 그 스테인드글라스에서 특별한 점이 무엇인가요? 다른 것들보다 조금 더 어둡기만 한데 말이에요.”

“만약 주교님께 여쭤본다면, 틀림없이 새로운 스테인드글라스를 거절하지 않으실 거예요.” 지치기 시작한 나의 고모는 약하게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큰 오산입니다, 옥타브 부인.” 신부가 대답했다. “하지만 주교님께서 바로 그 불행한 스테인드글라스에 대해 논란을 일으키셨죠. 그것이 게르망트의 영주이자 브라방의 쥬느비에브의 직계 후손인 길베르 르 모베가 생틸레르로부터 사면을 받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셨거든요.”

“하지만 저는 생틸레르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요, 스테인드글라스 구석에 노란 옷을 입은 여인을 본 적이 있나요? 바로 생틸레르예요. 어떤 지방에서는 생틸리에, 생텔리에, 심지어 쥐라 지방에서는 생틸리라고도 불리죠. 성 힐라리우스의 이런 다양한 이름 변형은 성인들의 이름에서 일어난 변화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당신의 수호성인인 묄랄리, 성 묄랄리아는 부르고뉴에서 어떻게 변했는지 아세요? 아주 간단히 성 엘로이가 되었죠. 성인이 되어버린 겁니다. 보세요, 묄랄리, 당신이 죽은 후에 남자가 되는 거예요.” “신부님은 항상 농담하시네요.” “길베르의 형제인 샤를 르 베그는 경건한 왕자였지만, 정신병으로 죽은 아버지 페팽 랭상세를 일찍 여의고 청년다운 오만함으로 최고 권력을 행사했죠. 어느 도시에서 한 사람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지막 주민까지 모두 학살했습니다. 길베르는 샤를에게 복수하기 위해 콩브레의 교회를 불태웠는데, 그것은 테오데베르가 부르군트족과 싸우러 가면서 성 힐라리우스의 무덤 위에 지을 것을 약속했던 원래의 교회였죠. 지하실만 남았는데, 테오도르가 당신을 데리고 내려갔을 겁니다. 길베르가 나머지를 모두 불태웠으니까요. 그 후 그는 정복왕 윌리엄의 도움으로 불운한 샤를을 물리쳤는데, 그래서 많은 영국인들이 방문하러 옵니다. 하지만 그는 콩브레 주민들의 호감을 얻지 못한 것 같아요. 그들은 미사가 끝난 후 그를 덮쳐 머리를 잘랐거든요. 테오도르가 설명이 담긴 작은 책자를 빌려줍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종탑에서 보이는 장관입니다. 물론 당신처럼 체력이 약한 분에게는 97개의 계단을 오르는 것을 추천하지 않겠어요. 밀라노의 유명한 돔의 정확히 절반이죠. 건강한 사람도 피곤할 만한 일입니다. 게다가 머리를 부딪치지 않으려면 몸을 구부린 채로 올라가야 하고, 옷에 계단의 모든 거미줄을 걸리게 됩니다. 어쨌든 잘 감싸야 해요.” 그는 고모가 종탑에 올라갈 수 있다는 생각에 분개하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채 덧붙였다. “거기 올라가면 죽을 듯한 추위를 느낄 수 있거든요. 그래도 일요일마다 멀리서 온 사람들이 아름다운 전망을 감상하러 와서 매우 만족하고 돌아갑니다. 다음 주 일요일에 날씨가 좋다면 틀림없이 사람들이 많이 올 거예요. 로가티오 축일이니까요. 게다가 거기서 보이는 풍경은 정말 환상적이에요. 평원으로의 독특한 전망이 펼쳐집니다. 날씨가 맑으면 베르뇌유까지 볼 수 있어요. 특히 평소에는 함께 볼 수 없는 것들을 한눈에 볼 수 있죠. 비본느 강의 흐름과 큰 나무들로 가려진 콩브레 근처 생타시스의 해자 같은 것들 말이에요. 또는 주이 르 비콩트의 여러 운하처럼요. 제가 주이 르 비콩트에 갈 때마다 운하의 한 부분을 보고, 길을 돌면 다른 부분을 보지만, 이전에 봤던 것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아요. 머릿속으로 이어 붙여봐도 별로 효과가 없었죠. 하지만 생틸레르 종탑에서는 다릅니다. 마을 전체가 하나의 네트워크처럼 보이죠. 다만 물은 보이지 않고, 마치 도시를 구역으로 나누는 큰 균열처럼 보입니다. 마치 이미 잘린 조각들이 붙어 있는 브리오슈 같아요. 제대로 보려면 생틸레르 종탑과 주이 르 비콩트에 동시에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신부의 말에 고모는 너무 지쳐서 그가 떠나자마자 묄랄리를 보내야 했다.

“자, 내 불쌍한 묄랄리.” 그녀는 손 가까이에 있던 작은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며 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의 기도에서 날 잊지 않도록 이걸 드려요.”

“아, 하지만 옥타브 부인, 제가 받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그걸 위해 온 게 아니라는 걸 잘 아시잖아요!” 묄랄리는 매번 처음인 것처럼 같은 망설임과 당혹감으로 말했다. 그녀의 불만스러운 표정은 고모를 즐겁게 했지만 불쾌하게 하지는 않았다. 어느 날 묄랄리가 동전을 받으면서 평소보다 덜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면 고모는 이렇게 말했다.

“묄랄리가 뭔가 이상했어. 평소와 똑같이 줬는데 별로 기뻐하지 않는 것 같았어.”

“그래도 불평할 건 없을 거예요.” 프랑수아즈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녀는 고모가 자신이나 자신의 아이들에게 주는 것은 모두 잔돈으로 여기고, 매주 일요일 묄랄리의 손에 몰래 쥐어주는 동전들은 배은망덕한 사람에게 낭비되는 보물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프랑수아즈는 고모가 묄랄리에게 주는 돈을 자신이 갖고 싶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고모의 재산으로 충분히 만족했다. 주인의 부가 그녀의 하인인 자신을 모든 사람의 눈에 높이고 아름답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 프랑수아즈는 콩브레, 주이 르 비콩트와 다른 곳에서 고모의 수많은 농장들, 신부의 잦고 긴 방문들, 소비되는 비시 물병의 특이한 숫자 때문에 유명하고 영광스러웠다. 그녀는 오직 고모를 위해서만 인색했다. 만약 그녀가 고모의 재산을 관리했다면, 그것이 그녀의 꿈이었는데, 모성애적인 잔인함으로 다른 사람들의 시도로부터 그것을 지켰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치유 불가능할 정도로 관대하다고 알고 있는 고모가 줄 수밖에 없다면, 적어도 부자들에게 주는 것을 크게 나쁘게 여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녀는 그들이 고모의 선물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고모를 사랑한다고 의심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레오니 고모에게는 이런 선물들이 낯설었다. 게다가 사즈라 부인, 스완 씨, 르그랑댕 씨, 구필 부인처럼 부유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는 것은 그녀에게 부자들의 이상하고 화려한 삶의 일부로 여겨졌다. 그들은 사냥을 하고, 무도회를 열고, 서로 방문을 하는데, 고모는 그것을 미소 지으며 감탄했다. 하지만 고모의 관대함의 수혜자가 프랑수아즈가 “나 같은 사람들, 나보다 나을 것 없는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이들일 때는 달랐다. 그녀가 가장 경멸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그녀를 ‘프랑수아즈 부인’이라고 부르며 자신들이 ‘그녀보다 못하다’고 여기지 않는 한 말이다. 그리고 고모가 충고에도 불구하고 제 멋대로 하며 돈을 – 적어도 프랑수아즈는 그렇게 믿었다 – 합당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주는 것을 보고, 그녀는 고모가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 묄랄리에게 후하게 주는 상상 속의 금액에 비해 너무 작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콩브레 근처에는 프랑수아즈가 묄랄리가 쉽게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큰 농장이 없었다. 묄랄리의 방문으로 얻는 수입으로 말이다. 사실 묄랄리도 프랑수아즈의 엄청나고 숨겨진 부에 대해 같은 추측을 했다. 보통 묄랄리가 떠나고 나면, 프랑수아즈는 그녀에 대해 악의적인 예언을 했다. 그녀는 묄랄리를 미워했지만, 두려워했고 그녀가 있을 때는 ‘좋은 얼굴’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떠나고 나면 만회했다. 그녀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전도서의 구절과 같은 일반적인 성격의 문장들을 말했는데, 그 적용이 누구인지 고모는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커튼 귀퉁이로 묄랄리가 문을 닫았는지 확인한 후에 그녀는 말했다. “아첨하는 사람들은 환심을 사고 돈을 모을 줄 알지만, 참으세요, 하느님께서 언젠가는 그들을 모두 벌하실 거예요.” 그녀는 아달리아만을 생각하며 말하는 요아스의 옆모습과 암시를 띤 채 이렇게 말했다:

“악인의 행복은 급류처럼 흘러간다.”

하지만 신부님도 오셔서 그의 길고 긴 방문으로 고모의 기력을 다 소진시켰을 때, 프랑수아즈는 묄랄리의 뒤를 따라 방에서 나오며 말했다.

“옥타브 부인, 이제 쉬세요. 많이 피곤해 보이세요.”

그러면 고모는 대답도 하지 않고 한숨을 내쉬었는데, 그것은 마지막 숨이 될 것 같았다. 눈을 감고 죽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프랑수아즈가 막 내려갔을 때 네 번의 매우 격렬한 종소리가 집 안에 울려 퍼졌고, 고모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묄랄리가 벌써 갔나요? 구필 부인이 성체 거양 전에 미사에 도착했는지 물어보는 걸 잊었어요! 빨리 그녀 뒤를 쫓아가세요!”

하지만 프랑수아즈는 묄랄리를 따라잡지 못하고 돌아왔다.

“참 안타깝네요.” 고모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가 그녀에게 물어볼 유일하게 중요한 것이었는데!”

이렇게 레오니 고모의 삶은 흘러갔다. 언제나 똑같이, 그녀가 애정 어린 경멸을 담아 ‘소소한 일상’이라고 부르는 것의 달콤한 단조로움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보호하는 이 일상은 집에서뿐만 아니라, 마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집에서는 모두가 그녀에게 더 나은 위생 상태를 조언하는 것이 소용없다는 것을 경험한 후 점차 그것을 존중하기로 결심했고, 마을에서도 세 거리 떨어진 곳에서 상자를 포장하는 사람이 프랑수아즈에게 고모가 ‘쉬고 있는지’ 물어보곤 했다. 하지만 이 일상은 그해에 한 번 방해를 받았다. 마치 아무도 모르게 익어 저절로 떨어지는 숨겨진 과일처럼, 어느 날 밤 부엌 하녀의 해산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녀의 고통이 너무 심해서, 콩브레에 산파가 없었기 때문에 프랑수아즈는 티베르지에 가서 산파를 데려오기 위해 새벽 전에 떠나야 했다. 고모는 하녀의 비명 때문에 쉴 수 없었고, 프랑수아즈는 거리가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늦게 돌아와 그녀를 많이 곤란하게 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아침에 나에게 말씀하셨다. “올라가서 네 고모가 뭐가 필요한지 보렴.” 나는 첫 번째 방에 들어가 열린 문을 통해 고모가 옆으로 누워 자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가볍게 코를 고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조용히 나가려고 했지만, 아마도 내가 낸 소음이 그녀의 잠에 영향을 미쳐 ‘속도를 바꾸었을’ 것이다. 자동차에 대해 말하듯이 말이다. 코고는 소리의 음악이 잠시 멈췄다가 더 낮은 음으로 다시 시작되었고, 그때 그녀가 깨어나 얼굴을 반쯤 돌렸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공포를 표현하고 있었다. 그녀는 분명 끔찍한 악몽을 꾸었던 것이다. 그녀는 누워있는 자세 때문에 나를 볼 수 없었고, 나는 앞으로 나가야 할지 물러서야 할지 몰라 그대로 서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현실감을 되찾은 것 같았고 자신을 두렵게 했던 환상이 거짓이라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 삶이 꿈보다 덜 잔인하다는 것을 허락하신 하느님에 대한 기쁨과 경건한 감사의 미소가 그녀의 얼굴을 희미하게 밝혔다. 그리고 그녀는 혼자라고 생각할 때 중얼거리는 습관으로 말했다. “하느님께 감사드려요! 우리에겐 부엌 하녀가 해산하는 것 말고는 걱정거리가 없어요. 내 불쌍한 옥타브가 다시 살아나서 매일 산책을 시키려고 한다는 꿈을 꾸다니!” 그녀의 손이 작은 탁자 위에 있는 묵주를 향해 뻗어갔지만, 다시 찾아온 잠이 그것을 잡을 힘을 주지 않았다. 그녀는 안심한 채 다시 잠들었고, 나는 발소리를 죽여 방에서 나왔다. 내가 들은 것을 그녀나 다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이 해산과 같은 매우 드문 사건을 제외하고는 고모의 일상은 변화를 겪지 않았다고 말할 때, 나는 항상 똑같이 규칙적인 간격으로 반복되어 단조로움 속에 일종의 2차적인 단조로움을 만들어내는 변화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모든 토요일마다 프랑수아즈가 오후에 루생빌 르팽 시장에 가야 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점심 시간이 한 시간 앞당겨졌다. 그리고 고모는 이 주간 일과 이탈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다른 습관들만큼이나 이 습관에 집착했다. 그녀는 프랑수아즈가 말하듯 이에 너무 ‘익숙해져서’, 만약 어느 토요일에 평소 시간까지 점심을 기다려야 했다면, 다른 날 점심을 토요일 시간으로 앞당기는 것만큼이나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사실 이 점심 시간 앞당김은 토요일에 우리 모두에게 특별하고, 관대하며, 꽤 호감 가는 모습을 주었다. 보통 식사의 해방감을 느끼기까지 한 시간을 더 살아야 할 때, 우리는 몇 초 후면 이른 엔다이브, 특별한 오믈렛, 의외의 비프스테이크를 보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이 비대칭적인 토요일의 반복은 조용한 삶과 폐쇄된 사회에서 일종의 국가적 유대감을 만들어내는 작은 내부적, 지역적, 거의 시민적인 사건들 중 하나였고, 대화, 농담, 과장된 이야기의 주제가 되었다. 우리 중 누군가가 서사시적인 머리를 가졌다면 전설적인 이야기의 핵심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침부터, 옷을 입기도 전에, 이유 없이, 단지 연대감의 힘을 느끼는 즐거움을 위해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기분으로 말했다.

명랑하고 친근하며 애국적인 어조로 말했다. “시간 낭비할 겨를이 없어. 오늘이 토요일이란 걸 잊지 말자!” 그러는 동안 나의 이모는 프랑수아즈와 의논하며 평소보다 긴 하루가 될 것을 생각하며 말했다. “토요일이니 맛있는 송아지 고기 요리를 해주면 어떨까요.” 10시 30분에 건성으로 시계를 보며 누군가 말했다. “자, 점심까지 1시간 30분 남았군.” 그러면 모두가 기뻐하며 이렇게 말했다. “뭘 생각하시는 거예요, 오늘이 토요일이란 걸 잊으셨나 봐요!” 15분 후에도 여전히 그 실수를 두고 웃으며 이모를 즐겁게 해주려고 그 이야기를 전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늘의 모습마저 달라 보였다. 점심 식사 후 태양은 토요일임을 알고 있다는 듯이 평소보다 한 시간 더 하늘 높이 머물렀고, 누군가 산책하기에 늦었다고 생각하며 “뭐라고요, 겨우 2시라고요?”라고 말하면 생틸레르 교회 종탑에서 두 번 울리는 종소리를 듣고 (점심 식사나 낮잠 때문에 아무도 없는 길가에서 낚시꾼조차 버린 맑고 하얀 강가를 따라 종소리만이 외롭게 울려 퍼지고 게으른 구름 몇 조각만이 남은 텅 빈 하늘을 가로질러 갔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을 혼란스럽게 하는 건 우리가 한 시간 일찍 점심을 먹었다는 거예요. 오늘이 토요일이란 걸 알잖아요!” 야만인(토요일의 특별함을 모르는 모든 사람을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의 놀라움, 즉 11시에 아버지와 이야기하러 왔다가 우리가 식탁에 앉아 있는 걸 보고 놀란 사람의 모습은 프랑수아즈의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일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녀는 방문객이 우리가 토요일에 더 일찍 점심을 먹는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버지가 이 야만인이 그 사실을 모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우리가 이미 식당에 있는 것에 대한 그의 놀라움에 다른 설명 없이 “당연하죠, 토요일이니까요!”라고 대답한 것이 더 우스웠다고 생각했다 (이 좁은 애국심에 마음 깊이 공감하면서도). 이야기의 이 지점에 이르면 그녀는 웃음의 눈물을 닦았고, 자신이 느끼는 즐거움을 더하기 위해 대화를 늘렸고, ‘토요일’이라는 말로는 아무것도 설명되지 않는 방문객이 대답했을 법한 말을 지어냈다. 우리는 그녀의 첨가에 불평하기는커녕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껴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가 다른 말도 했던 것 같아요. 처음에 이야기했을 때는 더 길었잖아요.” 나의 대고모조차 바느질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안경 너머로 쳐다보았다.

토요일에는 5월 동안 저녁 식사 후 ‘성모 성월’ 예배에 가는 특별함도 있었다.

뱅퇴유 씨를 자주 만났는데, 그는 “요즘 젊은이들은 방종에 젖어 사상에 매몰되었다”며 엄격한 태도를 보였다. 어머니는 그런 그에게 흠잡힐 데 없이 옷을 차려 입히려고 신경 쓰셨고, 우리는 교회로 향했다. 성모 성월이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서양 산딸기에 매료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것은 단순히 교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들어갈 권리가 있는 거룩한 공간, 제단 위에 놓여 있었다. 신성한 의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였다. 촛대와 성물 사이에 가지가 수평으로 뻗어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고, 잎사귀 화환에는 작고 하얀 꽃봉오리가 가득 피어 신부의 웨딩드레스처럼 아름다웠다. 하지만 나는 감히 자세히 보지 못하고 몰래 훔쳐볼 뿐이었다. 그 화려한 장식이 살아있는 듯했다. 마치 자연이 직접 잎사귀를 조각하고 하얀 꽃봉오리라는 최고의 장식을 더해 이 장식을 대중적인 축제이자 신비로운 의식에 걸맞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윗부분에서는 꽃잎이 여기저기서 무심한 우아함으로 피어나, 거미줄처럼 가는 수술 다발을 마지막 장식처럼 느슨하게 붙잡고 있어 꽃 전체를 뿌옇게 만들었다. 나는 그 개화의 몸짓을 따라하며 마음속으로 그 움직임을 상상했다. 산만하고 활기찬 하얀 소녀가 머리를 휙 돌리며 요염한 눈빛으로 동공을 좁히는 모습이었다. 뱅퇴유 씨가 딸과 함께 와서 우리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명문가 출신으로, 할머니의 자매들의 피아노 선생님이었다. 아내가 죽고 유산을 받은 후 콩브레 근처로 은퇴해 우리 집에 자주 초대받았다. 하지만 그는 지나치게 수줍음이 많아 스완이 “시대에 맞지 않는 결혼”이라고 부르는 것을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오지 않게 되었다. 어머니는 그가 작곡을 한다는 것을 알고 친절하게 말씀하셨다. “그를 방문할 때 그의 작품을 들려주셨으면 좋겠어요.” 뱅퇴유 씨는 매우 기뻐했겠지만, 그는 예의와 친절함을 극단적인 양심의 가책으로까지 밀고 가서 항상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느라 그들을 지루하게 만들거나 이기적으로 보일까 봐 자신의 욕망을 따르거나 그것을 알아차리게 하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부모님이 그를 방문하러 갔던 날, 나도 함께 갔지만 밖에 있도록 허락받았다. 뱅퇴유 씨의 집인 몽주뱅은 작은 덤불 언덕 아래에 있었고, 나는 그곳에 숨어 있었다. 2층 응접실과 같은 높이에서 창문에서 50센티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부모님이 도착했다고 알려주러 왔을 때, 나는 뱅퇴유 씨가 피아노 위에 악보를 눈에 띄게 올려놓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부모님이 들어오자 그는 그것을 치우고 구석에 놓았다. 아마도 그는 부모님에게 자신의 작품을 연주하기 위해서만 그들의 방문을 기뻐한다고 생각하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방문 내내 어머니가 계속해서 요청할 때마다 그는 여러 번 “누가 이걸 피아노 위에 올려놓았는지 모르겠어요. 여기가 있을 자리가 아닌데요.”라고 반복했고, 다른 주제로 대화를 돌렸다. 그의 유일한 열정은 딸에 대한 것이었다. 딸은 소년처럼 보일 정도로 강해 보였고, 아버지가 그녀의 어깨에 항상 여분의 숄을 둘러주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이 거친 아이의 눈빛에 얼마나 부드럽고 섬세하며 거의 수줍은 듯한 표정이 자주 스치는지 지적하곤 했다. 그녀가 말을 할 때면 자신의 말을 들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 말을 다시 듣고 있는 듯했고, 오해의 소지에 대해 걱정하는 듯했다. 그리고 우리는 ‘악동’의 남자다운 얼굴 아래에서 슬픔에 잠긴 소녀의 더 섬세한 특징들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교회를 떠날 때 제단 앞에 무릎을 꿇었다가 일어서면서 갑자기 서양 산딸기에서 쓰고 달콤한 아몬드 향이 나는 것을 느꼈고, 그때 꽃 위에 더 노란 부분들이 있는 것을 알아챘다. 그 아래에 프랑지판의 맛이나 뱅퇴유 양의 볼에 있는 주근깨 아래에 있는 것처럼 그 향기가 숨어 있을 거라고 상상했다. 서양 산딸기의 조용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이 간헐적인 열기는 그들의 강렬한 삶의 속삭임 같았다. 그것의 제단은 마치 생생한 더듬이들이 방문한 시골의 산울타리처럼 진동했다. 그 더듬이들은 거의 붉은빛을 띠며 봄의 맹렬함과 오늘날 꽃으로 변한 벌레들의 자극적인 힘을 간직한 듯한 어떤 수술들을 보면 떠오르곤 했다.

우리는 교회에서 나와 현관 앞에서 뱅퇴유 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광장에서 싸우는 아이들 사이에 끼어들어 어린 아이들을 변호하고 큰 아이들을 훈계했다. 그의 딸이 우리를 보게 되어 기뻤다고 굵직한 목소리로 말하면, 그녀 안의 더 섬세한 자매가 우리 집에 초대해달라고 간청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이 무심한 좋은 친구의 말에 대해 금세 얼굴을 붉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의 어깨에 외투를 걸쳐주었고, 그들은 그녀가 직접 운전하는 작은 마차를 타고 몽주벵으로 돌아갔다. 우리로 말하자면, 다음날이 일요일이고 대미사 때만 일어날 것이었기에, 달빛이 비치고 날씨가 따뜻하다면 우리를 곧장 집으로 들여보내는 대신 아버지는 영광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리를 갈보리를 지나 긴 산책을 시키곤 했다. 어머니는 방향 감각과 길을 찾는 능력이 부족해서 이를 전략적 천재의 위업으로 여겼다. 때로는 우리는 기차역에서 시작되는 석조 교각이 있는 고가교까지 갔다. 그것은 매년 파리에서 올 때마다 콩브레에 도착하면 역을 놓치지 않도록 미리 준비하라고 당부받았기 때문에, 내게는 문명 세계 밖의 망명과 고통을 나타냈다. 기차는 2분 만에 출발해 콩브레가 내게는 그 극한을 표시하는 기독교 국가들을 넘어 고가교로 들어갔다. 우리는 마을에서 가장 멋진 별장들이 있는 기차역 대로를 따라 돌아왔다. 각 정원에서 달빛은 마치 위베르 로베르처럼 부서진 하얀 대리석 계단과 분수, 반쯤 열린 대문을 뿌렸다. 그 빛은 전신국을 파괴해버렸다. 반쯤 부서진 기둥만이 남아 불멸의 폐허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졸음에 빠졌고, 보상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 같았던 보리수 향기가 가장 큰 피로의 대가로도 그만한 가치가 없어 보였다. 서로 멀리 떨어진 대문에서 우리의 고독한 발소리에 깨어난 개들이 짖어대기 시작했다. 지금도 가끔 저녁에 듣곤 하는 그 짖는 소리 사이로 (콩브레에 공원을 만들었을 때) 기차역 대로가 피신해 왔을 것이다. 그 소리가 울리기 시작하면 어디에 있든 나는 보리수가 있는 달빛 아래 비치는 인도와 함께 그 대로를 본다.

갑자기 아버지가 걸음을 멈추게 하고 어머니에게 물었다. “우리가 어디 있지?” 걷느라 지친 어머니는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며 자신은 전혀 모른다고 애정 어린 목소리로 고백했다. 아버지는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그리고는 재킷 주머니에서 열쇠와 함께 꺼낸 것처럼, 우리 앞에 서 있는 우리 정원의 작은 뒷문을 보여주었다. 그 문은 생테스프리 거리 모퉁이와 함께 이 낯선 길들의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감탄하며 말했다. “정말 대단해!” 그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한 걸음도 걸을 필요가 없었다. 오랫동안 내 행동이 의식적인 주의를 동반하지 않았던 이 정원에서 땅이 나를 위해 걸었다. 습관이 나를 팔에 안고 어린아이처럼 내 침대까지 데려다주었다.

토요일은 한 시간 일찍 시작되었고 프랑수아즈가 없어서 다른 날보다 더디게 지나갔지만, 레오니 고모는 그래도 주초부터 이 날의 귀환을 조바심 내며 기다렸다. 그것은 그녀의 약해진 편집증적인 몸이 견딜 수 있는 모든 새로움과 기분전환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가 때때로 더 큰 변화를 열망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에게도 지금과는 다른 무언가를 갈망하는 예외적인 시간들이 있었다. 에너지나 상상력의 부족으로 스스로 쇄신의 원리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가오는 순간이나 문을 두드리는 우편배달부에게 새로운 것을, 설령 그것이 최악의 것이라 해도, 감정이나 고통을 가져다주기를 요구한다. 행복으로 인해 조용해진 하프처럼 침묵한 감수성이 손길, 그것이 거칠더라도, 아래에서 울리기를 원하고, 설령 그로 인해 부서진다 해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어렵게 획득한 욕망과 고통에 방해받지 않고 몰두할 권리를 가진 의지가 잔인할지라도 강력한 사건들의 손에 고삐를 맡기고 싶어 한다. 물론 고모의 힘은 조금만 피로해도 고갈되어 휴식 중에 한 방울씩 돌아왔기에 저수지를 채우는 데 몇 달이 걸렸고, 그녀가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알지도 못하고 결정하지도 못하는 약간의 넘침이 있기 전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나는 매일 되돌아오는 으깬 감자에 ‘지치지’ 않았던 즐거움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베샤멜 감자로 대체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듯이, 그녀가 그토록 집착하는 이 단조로운 날들의 축적에서 순간적인 지속에 국한된 가정 대재앙에 대한 기대를 끌어냈을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는다. 그 재앙은 그녀가 스스로 결심할 수 없었던 변화들 중 하나를 한 번에 해내도록 강요할 것이고, 그녀는 그것이 자신에게 유익할 것임을 인정했다. 그녀는 우리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우리를 위해 울 수 있는 즐거움을 느꼈을 것이다. 몸 상태가 좋고 땀을 흘리지 않을 때, 우리가 이미 모두 죽고 곧 집의 벽돌 하나도 남지 않을 큰 화재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하지만 그녀는 서두르지 않고 지금 당장 일어나기만 하면 탈출할 시간이 충분하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그녀의 희망을 자주 스쳐 갔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 대한 그녀의 애정을 긴 후회 속에서 맛보고 마을 사람들을 놀라게 하며 용감하고 비탄에 잠긴 채 죽어가는 모습으로 우리의 장례식을 이끄는 부차적인 이점들과 함께, 시간 낭비 없이 망설임의 여지도 없이 좋은 시기에 그녀의 아름다운 미루그랭 농장에서 여름을 보내도록 강요하는 더욱 귀중한 이점을 결합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혼자 무수한 카드놀이에 몰두해 있을 때 확실히 성공을 묵상했던 이런 종류의 사건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그녀를 절망시켰을 것이다. 나쁜 소식을 알리는 그 말의 억양을 결코 잊을 수 없는, 실제 죽음의 흔적을 지닌 그 모든 예기치 못한 작은 사실들 중 첫 번째에서 말이다.) 그녀는 때때로 자신의 삶을 더 흥미롭게 만들기 위해 상상의 우여곡절을 도입하고 열정적으로 그것을 따랐다. 그녀는 프랑수아즈가 자신을 훔친다고 갑자기 가정하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책략을 사용하여 현장을 잡는 것을 즐겼다. 혼자서 카드게임을 할 때 자신의 패와 상대방의 패를 동시에 다루는 데 익숙해져 있었기에, 그녀는 스스로에게 프랑수아즈의 당황스러운 변명을 선언했다.

프랑수아즈는 그 말에 열정과 분개로 답했고, 누군가 그 순간 방에 들어왔다면 땀에 흠뻑 젖고 눈은 반짝이며 가발이 벗겨져 대머리가 드러난 그녀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아마도 프랑수아즈는 옆방에서 그녀를 향한 신랄한 비꼼을 들었을 것이다. 만약 그 비꼼이 순전히 정신적인 상태로 남아 있었다면 고모를 충분히 위로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모는 그것을 중얼거리며 더 현실감 있게 만들었다. 때로는 이 “침대 속 연극”도 고모에게 충분하지 않았고,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직접 공연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일요일이면 모든 문을 신비롭게 닫고, 묄랄리에게는 프랑수아즈의 정직성에 대한 의심과 그녀를 내쫓으려는 의도를, 또 다른 때는 프랑수아즈에게 묄랄리의 불충실함과 곧 그녀에게 문을 닫아걸 것이라는 의심을 털어놓았다. 며칠 후 그녀는 전날의 밀고자에게 진절머리가 나고 배신자와 화해했는데, 이들은 다음 공연을 위해 역할을 바꿀 것이었다. 하지만 묄랄리에 대한 의심은 단지 불꽃놀이에 지나지 않았고, 묄랄리가 집에 살지 않았기 때문에 양식이 없어 곧 사그라들었다. 프랑수아즈에 관한 의심은 달랐다. 고모는 그녀가 같은 지붕 아래 항상 있다고 느꼈지만, 침대에서 나와 감기에 걸릴까 봐 부엌으로 내려가 의심이 근거 있는지 확인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점차 그녀의 마음은 프랑수아즈가 매 순간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숨기려 하는지 알아내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이 없어졌다. 그녀는 프랑수아즈의 가장 은밀한 표정 변화, 그녀 말의 모순, 그녀가 숨기려는 듯한 욕망을 알아챘다. 그리고 프랑수아즈를 창백하게 만드는 한 마디로 그녀를 간파했음을 보여주었고, 고모는 그 불쌍한 여자의 마음을 찌르는 것에서 잔인한 즐거움을 느끼는 듯했다. 그리고 다음 일요일, 묄랄리의 폭로 – 그것은 마치 미개척 분야를 갑자기 열어젖히는 발견처럼 – 고모가 자신의 추측에서 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하지만 프랑수아즈는 이제 당신이 그녀에게 마차를 주었다는 걸 알고 있겠죠.” “내가 그녀에게 마차를 주었다고요!” 고모가 외쳤다. “아, 글쎄요, 저는 모르겠어요. 그녀가 지금 마차를 타고 으스대며 루생빌 시장에 가는 걸 봤거든요. 옥타브 부인이 주신 줄 알았어요.” 점차 프랑수아즈와 고모는 마치 짐승과 사냥꾼처럼 서로의 술책을 막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어머니는 프랑수아즈가 고모에 대해 진정한 증오심을 키울까 봐 걱정했다. 고모는 가능한 한 가장 모욕적으로 그녀를 대했다. 어쨌든 프랑수아즈는 고모의 사소한 말과 몸짓에 점점 더 특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그녀가 고모에게 부탁할 것이 있을 때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오랫동안 망설였다. 그리고 부탁을 말한 후에는 고모의 표정을 몰래 관찰하며 고모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결정할지 알아내려고 했다. 그리하여 – 17세기 회고록을 읽는 어떤 예술가가 위대한 왕에게 가까워지기를 원해 역사적 가문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족보를 만들거나 현재 유럽의 군주 중 한 명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자신이 잘못 찾고 있는 것을 정확히 동일하고 따라서 죽은 형태로 추구하는 반면에 – 단순히 저항할 수 없는 버릇과 무위에서 비롯된 악의에 진심으로 따르는 시골의 한 노부인은 루이 14세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이 자신의 하루 중 가장 사소한 일, 즉 기상, 아침 식사, 휴식 등이 독특한 전제적 성격으로 인해 생시몽이 베르사유 궁전의 “기계장치”라고 불렀던 것과 비슷한 관심을 끌게 되는 것을 보았고, 자신의 침묵이나 얼굴의 친절함이나 오만함의 미묘한 차이가 프랑수아즈에게 베르사유의 산책로 어귀에서 왕에게 탄원서를 제출한 궁정인이나 최고의 귀족들에게 왕의 침묵, 친절함, 오만함이 그랬던 것처럼 열정적이고 두려운 해석의 대상이 된다고 믿을 수 있었다.

어느 일요일, 고모가 신부님과 묄랄리의 동시 방문을 받고 나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우리는 모두 올라가 인사를 드렸고, 엄마는 방문객들이 항상 같은 시간에 오는 불운에 대해 위로의 말을 건넸다.

“레오니, 오늘도 일이 잘 안 풀렸군요. 손님들이 한꺼번에 다 오셨네요.” 엄마가 부드럽게 말했다.

할머니가 “재물이 넘치면…”이라고 말을 끊었다. 딸이 아픈 이후로 그녀는 항상 좋은 면을 보여주며 딸의 기운을 북돋우려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가족이 모두 모인 김에 이야기를 하나 하려고 합니다. 각자에게 따로 설명할 필요 없이요. 르그랑댕과 사이가 틀어질 것 같아요. 오늘 아침 그가 저에게 겨우 인사를 했어요.”

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리를 떴다. 미사 후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 르그랑댕 씨를 만났기 때문이다. 나는 부엌으로 내려가 저녁 메뉴를 물어보았다. 그것은 매일 나를 신문을 읽는 것처럼 즐겁게 했고 축제 프로그램처럼 흥분시켰다. 르그랑댕 씨가 교회에서 나올 때 우리 옆을 지나갔는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근처 성의 부인과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친근하면서도 절제된 인사를 했지만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르그랑댕 씨는 마치 우리를 알아보지 못한 것처럼 놀란 표정으로 겨우 인사를 했고, 불친절한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그런 시선으로, 갑자기 멀어진 눈 깊숙한 곳에서 우리를 보는 듯했다. 그는 우리를 끝없이 긴 길 끝에서,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바라보며 우리의 인형 같은 크기에 맞춰 아주 작은 고개 끄덕임으로 인사를 했다.

르그랑댕과 동행한 부인은 정숙하고 존경받는 사람이었다. 그가 밀회 중이어서 들킨 것을 당황해하는 것일 리가 없었고, 아버지는 어떻게 르그랑댕의 비위를 거슬렀는지 의아해했다. “그가 화가 났다면 더욱 유감이에요.” 아버지가 말했다. “그 모든 주일 복장을 한 사람들 사이에서 그의 작은 직선 재킷, 부드러운 넥타이는 꾸미지 않은, 정말 단순한 모습이에요. 거의 순진한 듯한 모습이 아주 호감이 가요.” 하지만 가족회의는 만장일치로 아버지가 착각했거나 르그랑댕이 그때 무언가에 골몰해 있었을 거라고 판단했다. 게다가 아버지의 걱정은 다음날 저녁 바로 사라졌다. 우리가 긴 산책에서 돌아올 때 구교 다리 근처에서 르그랑댕을 만났는데, 그는 축제 때문에 콩브레에 며칠 머물고 있었다. 그가 손을 내밀며 다가왔다. “독서가님, 폴 데자르댕의 이 구절을 아십니까?” 그가 나에게 물었다.

“숲은 이미 검어졌고, 하늘은 아직 푸르다.

지금 이 시간의 섬세한 묘사가 아닙니까? 아마도 당신은 한 번도”

나는 폴 데자르댕을 읽어본 적이 없다. 내 아이야, 그를 읽어봐. 오늘날 그는 설교하는 수사가 되었지만, 한때는 맑은 수채화가였다고 한다…

숲은 이미 어두워졌고, 하늘은 아직 푸르다…

젊은 친구야, 너에게 하늘이 언제나 푸르기를 바란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다가오는 시간, 숲이 이미 어두워지고 밤이 빨리 내리는 시간에도, 너는 나처럼 하늘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을 것이다. 그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오랫동안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안녕, 친구들”이라고 그가 갑자기 말하고는 우리를 떠났다.

내가 메뉴를 확인하러 내려갔을 때 저녁 식사는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프랑수아즈는 자연의 힘을 지휘하며 그것들을 자신의 조수로 삼았다. 마치 동화 속에서 거인들이 요리사로 고용된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석탄을 때고, 감자를 찌게 하고, 도자기 그릇에서 미리 준비된 요리의 걸작들을 불에 완성시켰다. 그 그릇들은 큰 항아리, 냄비, 솥, 생선 냄비부터 사냥감용 테린, 제과용 틀, 작은 크림 단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크기의 냄비들이었다. 나는 부엌 하녀가 껍질을 벗긴 완두콩이 녹색 구슬처럼 줄지어 있는 테이블 앞에 멈춰 섰다. 하지만 내 감탄은 아스파라거스 앞에서 절정에 달했다. 군청색과 분홍색으로 물들어 있고, 보라색과 하늘색으로 정교하게 장식된 꽃차례는 뿌리 쪽으로 갈수록 점점 옅어졌다. 하지만 뿌리는 여전히 심었던 흙으로 더럽혀져 있었다. 나는 이 천상의 색조가 자신들을 채소로 변신시키며 기뻐했던 사랑스러운 생물들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그들은 먹을 수 있는 단단한 살을 가장한 채로, 이 새벽의 색조, 이 무지개의 스케치, 이 푸른 저녁의 소멸을 통해 그 귀중한 본질을 엿보게 했다. 나는 그것을 먹은 저녁 식사 후 밤새도록 그들이 셰익스피어의 동화처럼 시적이고 거친 익살극을 벌이며 내 요강을 향수병으로 바꾸는 모습을 보며 여전히 알아볼 수 있었다.

프랑수아즈가 ‘불쌍한 조토의 자선’이라고 부르는 여인은 그녀의 명령으로 아스파라거스의 ‘깃털을 뽑고’ 있었다. 그녀는 바구니 옆에 있었고, 그녀의 표정은 마치 세상의 모든 불행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고통스러워 보였다. 아스파라거스 위쪽의 분홍색 튜닉 위에 있는 옅은 푸른 왕관은 마치 파도바의 아레나 예배당 프레스코화에서 이마 주변을 둘러싸거나 바구니에 꽂혀 있는 꽃들처럼 별 하나하나가 섬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러는 동안 프랑수아즈는 콩브레에 그녀의 공적의 향기를 멀리까지 퍼뜨린 그녀만의 방식으로 구운 닭 중 하나를 꼬치에 돌리고 있었다. 그녀가 우리에게 그것을 식탁에 내놓을 때, 그녀가 그토록 기름지고 부드럽게 만들 줄 아는 그 살의 향기는 내가 그녀의 성격에 대해 특별히 생각하는 부드러움을 우세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그녀의 미덕 중 하나의 고유한 향기일 뿐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르그랑댕과의 만남에 대해 가족 회의를 상의하는 동안 내가 부엌으로 내려간 날은 조토의 자선이 최근 출산으로 인해 몹시 아파 일어날 수 없는 날 중 하나였다. 프랑수아즈는 도움을 받지 못해 늦어지고 있었다. 내가 아래층에 내려갔을 때, 그녀는 뒷부엌에서 닭 한 마리를 죽이고 있었다. 닭은 필사적으로 저항했고, 이는 당연했다. 하지만 프랑수아즈는 귀 밑으로 목을 베려고 하면서 “더러운 짐승! 더러운 짐승!”이라고 소리쳤다. 이는 우리 하녀의 거룩한 부드러움과 기름짐을 다음날 저녁 식사에서 금실로 수놓은 가죽과 성배에서 떨어지는 귀중한 즙으로 드러내는 것보다는 덜 두드러지게 했다. 닭이 죽자 프랑수아즈는 그녀의 원한을 삼키지 않고 흐르는 피를 모았고, 여전히 분노에 차 있었다. 그녀는 적의 시체를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더러운 짐승!”이라고 말했다. 나는 떨면서 올라갔다. 프랑수아즈를 당장 내쫓고 싶었다. 하지만 누가 나에게 그렇게 따뜻한 롤빵과 향기로운 커피를 만들어 줄까? 그리고… 그 닭요리는? 사실, 이 비겁한 계산은 나처럼 모든 사람이 해야 했다. 왜냐하면 레오니 고모는 내가 아직 모르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수아즈는 자신의 딸과 조카들을 위해서는 불평 없이 목숨을 바칠 수 있지만, 다른 존재들에 대해서는 특별히 가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모는 그녀를 계속 고용했다. 그녀의 잔인함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서비스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나는 점차 프랑수아즈의 부드러움, 회한, 미덕이 부엌 뒤편의 비극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역사가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손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 왕과 왕비의 통치가 피비린내 나는 사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과 같았다. 나는 그녀의 친족 외의 인간들에 대해, 그들이 그녀로부터 멀리 살수록 그들의 불행에 대한 그녀의 연민이 더 커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신문을 읽으며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불행에 대해 흘리는 눈물의 홍수는 그 대상을 조금이라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면 빨리 마르곤 했다. 부엌 하녀가 출산한 후 어느 날 밤, 그녀는 극심한 복통에 시달렸다. 엄마가 그녀의 비명을 듣고 일어나 프랑수아즈를 깨웠지만, 그녀는 무감각하게 그 모든 비명이 연극일 뿐이며 그녀가 ‘주인 행세를 하려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의사는 이런 발작을 우려해 의학 책에 책갈피를 꽂아두었고, 거기에는 이런 발작이 설명되어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응급처치 방법을 찾으려면 그 페이지를 참조하라고 했다. 엄마는 프랑수아즈에게 책을 가져오라고 하면서 책갈피를 떨어뜨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한 시간이 지나도 프랑수아즈가 돌아오지 않자 화가 난 엄마는 내가 직접 서재에 가서 확인해보라고 했다. 나는 거기서 프랑수아즈를 발견했다. 그녀는 책갈피가 표시한 부분을 보려다가 발작에 대한 임상적 설명을 읽고 있었고, 이제 그녀가 모르는 표본 환자에 대해 흐느끼고 있었다. 저자가 언급한 고통스러운 증상마다 그녀는 외쳤다. “아이고! 성모 마리아여, 선하신 하나님께서 가련한 인간을 이렇게 고통받게 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 아, 불쌍한 사람!”

하지만 내가 그녀를 불러도 그녀는 조토의 자선이 누워 있는 침대로 돌아갔고, 눈물은 곧 그쳤다. 그녀는 신문을 읽을 때 자주 느꼈던 동정심과 감동의 즐거운 감각을 깨닫지 못했고, 밤중에 부엌 하녀를 위해 일어난 것에 대한 짜증과 분노 속에서 비슷한 즐거움을 느끼지도 못했다. 같은 고통을 목격하고도, 그 묘사를 읽었을 때는 울게 만들었던 것이 이제는 나쁜 기분의 투덜거림, 심지어 끔찍한 빈정거림만을 불러일으켰다. 우리가 떠나 더 이상 그녀의 말을 들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어! 그녀가 좋아했던 거잖아! 이제 와서 구질구질하게 굴지 마!”

마침내 한 소년이 그런 것과 어울릴 정도로 하느님을 저버렸다는 말이었다.

아, 그것은 내 불쌍한 어머니의 방언으로 하는 말과 똑같았다.

“개의 엉덩이에 반하면

그것이 장미처럼 보인다.”

그녀의 손자가 감기에 걸렸을 때, 그녀는 밤에 아프면서도 잠자리에 들기는커녕 떠났다. 그가 무언가 필요한 건 아닌지 보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일터에 돌아가기 위해 새벽 전에 4리그를 걸어갔다. 반면에 자신의 가족에 대한 이 같은 사랑과 자신의 집안을 미래에 더욱 위대하게 만들고자 하는 그녀의 욕망은 다른 하인들에 대한 그녀의 정책에서 변함없는 격언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내 고모의 집에 단 한 명의 하인도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아무도 고모의 곁에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는 데에서 일종의 자부심을 느꼈다. 그녀 자신이 아플 때에도 고모에게 비시 물을 떠다 주기 위해 일어나는 것이 부엌 하녀가 주인의 방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는 것보다 낫다고 여겼다. 그리고 파브르가 관찰한 그 벌레, 구덩이 파는 말벌처럼, 그녀의 자식들이 자신의 죽음 후에도 신선한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잔인함에 해부학을 도움 삼아, 바구미와 거미를 잡아 다리의 움직임을 관장하는 신경 중추만을 놀라운 지식과 기술로 찌르되 다른 생명 기능은 그대로 두어 마비된 곤충을 자신의 알 옆에 두면 새끼들이 부화했을 때 순종적이고 무해하며 도망가거나 저항할 수 없지만 결코 상하지 않은 먹잇감을 제공하듯이, 프랑수아즈는 집안의 모든 하인을 견딜 수 없게 만들려는 자신의 영구적인 의지를 위해 매우 교묘하고 무자비한 술책들을 찾아냈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해가 지난 후에야 그 여름에 우리가 거의 매일 아스파라거스를 먹었던 이유가 그것을 다듬는 불쌍한 부엌 하녀에게 그 냄새가 너무나 심한 천식 발작을 일으켜 결국 그녀가 떠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아! 우리는 르그랑댕에 대한 의견을 결정적으로 바꿔야만 했다. 퐁비외에서의 만남 이후 아버지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해야 했던 일요일 중 하나였다. 미사가 끝나갈 무렵이었고 태양과 바깥의 소음과 함께 너무나 세속적인 무언가가 교회로 들어와서 구필 부인과 페르스피에 부인(내가 조금 늦게 도착했을 때 기도에 몰두한 채 눈을 떼지 않고 있던 모든 사람들,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동시에 그들의 발이 내가 의자로 가는 것을 막고 있던 작은 의자를 살짝 밀어냈던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마치 우리가 이미 광장에 있는 것처럼 세속적인 주제들에 대해 큰 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현관의 불타는 문턱에서, 시장의 다채로운 소음을 압도하며, 르그랑댕을 보았다. 우리가 최근에 그와 함께 만났던 그 부인의 남편이 그를 이 지역의 또 다른 대지주의 아내에게 소개하고 있었다. 르그랑댕의 얼굴은 비상한 활기와 열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는 깊이 인사를 하며 뒤로 갑자기 몸을 젖혔다가 다시 원래 자세로 돌아왔다. 이는 그의 누이 캉브르메르 부인의 남편이 가르쳐 준 것임에 틀림없었다. 이 빠른 몸의 움직임은 르그랑댕의 엉덩이를 일종의 격렬하고 근육질의 파도처럼 밀어 올렸다. 나는 그의 엉덩이가 그렇게 살찐 줄 몰랐다. 그리고 나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 순수한 물질의 파동, 이 완전히 육체적인 물결, 정신성의 표현이 전혀 없고 비굴함으로 가득 찬 열성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것을 보며 갑자기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르그랑댕의 가능성을 마음속에 떠올렸다. 그 부인이 그에게 자신의 마부에게 뭔가를 말해달라고 부탁했고, 그가 마차로 가는 동안 소개받았을 때 그의 얼굴에 새겨졌던 수줍고 헌신적인 기쁨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일종의 꿈에 빠진 듯 그는 미소 지었고, 그러고 나서 부인에게로 서둘러 돌아왔다. 그는 평소보다 빠르게 걸었기 때문에 그의 두 어깨는 우스꽝스럽게 좌우로 흔들렸고, 그는 나머지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완전히 그것에만 몰두한 듯 보여 행복의 무기력하고 기계적인 장난감 같았다. 한편 우리는 현관을 나와 그의 옆을 지나가려고 했다. 그는 너무나 예의 바른 사람이라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그의 시선을 갑자기 깊은 명상으로 가득 찬 채 지평선의 너무나 먼 한 점에 고정시켜 우리를 볼 수 없었고 따라서 우리에게 인사할 필요도 없었다. 그의 얼굴은 순진한 채로 남아 있었고, 그의 부드럽고 곧은 재킷은 싫어하는 사치 속에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끼어든 것 같았다.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물방울무늬 넥타이는 르그랑댕의 위에서 그의 고고한 고립과 고귀한 독립의 깃발처럼 계속해서 펄럭였다. 우리가 집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생토노레 케이크를 잊었다는 것을 깨닫고 아버지에게 나와 함께 되돌아가 그것을 즉시 가져오라고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우리는 교회 근처에서 르그랑댕을 만났다. 그는 반대 방향으로 오면서 같은 부인을 그녀의 마차로 안내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 옆을 지나갔지만, 이웃과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푸른 눈의 구석으로 우리에게 일종의 눈꺼풀 안쪽의 작은 신호를 보냈다. 이는 그의 얼굴 근육을 전혀 움직이지 않아 그의 대화 상대방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표현의 범위를 좁게 한 것을 감정의 강도로 보상하려 했다. 우리에게 할당된 푸른 눈의 구석에서 그는 호의의 모든 열정을 반짝이게 했다. 그것은 즐거움을 넘어 교활함에 가까웠다. 그는 아주 섬세하게 호의를 표현했고, 눈짓과 반말, 함축, 공모의 신비에 이르렀다. 마침내 그는 우리에게만 보이는 비밀스럽고 보이지 않는 애정 어린 눈빛으로 얼음장 같은 얼굴 속에서 사랑에 빠진 눈동자를 반짝이며 우정의 확신을 애정의 선언에까지 고조시켰다.

그는 바로 전날 내 부모님께 오늘 저녁 나를 그와 함께 식사하러 보내 달라고 부탁했었다. “당신의 늙은 친구에게 동행해 주세요.” 그가 말했다. “우리가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나라에서 여행자가 우리에게 보내는 꽃다발처럼, 당신의 청춘의 멀리서 나도 여러 해 전에 지나왔던 그 봄의 꽃들을 나에게 맡게 해주세요. 앵초와 사제의 수염, 금잔화와 함께 오세요. 발자크 식물상의 애정 꽃다발을 만드는 세덤과 함께 오세요. 부활절의 꽃, 데이지와 정원의 눈덩이꽃과 함께 오세요. 그것들은 부활절 우박의 마지막 눈덩이들이 아직 녹지 않았을 때 당신의 큰고모의 골목길에서 향기를 풍기기 시작합니다. 솔로몬에 걸맞은 백합의 영광스러운 비단 옷과 팬지의 다채로운 에나멜과 함께 오세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아직 마지막 서리의 신선한 바람과 함께 오세요. 그 바람은 아침부터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두 마리 나비를 위해 예루살렘의 첫 번째 장미를 열어줄 것입니다.”

집에서는 내가 르그랑댕 씨와 저녁 식사를 하러 가도 될지 망설였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가 무례했다고 믿기를 거부했다. “당신도 알다시피 그는 거기에 아주 단순한 차림으로 오지 않습니까? 그건 사교계 사람의 차림새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녀는 어쨌든 최악의 경우라도 그것을 알아차린 척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선언했다. 사실 아버지조차도 르그랑댕의 태도에 대해 가장 화가 난 사람이었지만, 그 태도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에 대해 아마도 마지막 의혹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누군가의 깊고 숨겨진 성격이 드러나는 모든 태도나 행동과 같았다. 그것은 이전의 말과 연결되지 않았고, 우리는 그것을 범인의 증언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범인은 고백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감각의 증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고립되고 모순된 기억 앞에서 우리의 감각이 환상의 장난이 아니었는지 의문을 품었다. 그래서 그러한 태도들, 유일하게 중요한 것들이 우리에게 종종 약간의 의혹을 남겼다.

나는 르그랑댕과 그의 테라스에서 저녁을 먹었다. 달빛이 비치고 있었다. “침묵의 아름다운 질이 있지 않습니까,” 그가 내게 말했다. “내 것과 같이 상처받은 마음에는, 당신이 나중에 읽게 될 한 소설가가 말하길, 오직 그림자와 침묵만이 어울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세요, 내 아이여, 당신은 아직 멀리 있지만 삶에는 지친 눈이 오직 한 가지 빛만을 견딜 수 있는 시간이 옵니다. 이 아름다운 밤이 어둠과 함께 준비하고 증류하는 그 빛 말입니다. 그때 귀는 달빛이 침묵의 플루트로 연주하는 음악 외에는 들을 수 없게 됩니다.” 나는 항상 매우 즐겁게 들리는 르그랑댕 씨의 말을 들었다. 하지만 최근에 처음 본 한 여인의 기억으로 인해 혼란스러웠고, 이제 르그랑댕이 이 지역의 여러 귀족들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아마도 그녀를 알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용기를 내어 그에게 말했다. “선생님, 혹시 게르망트의… 성주 부인들을 아십니까?” 이 이름을 말하면서 그것을 내 꿈에서 끄집어내어 객관적이고 소리 나는 존재로 만듦으로써 그것에 대해 일종의 힘을 갖게 된 것에 대해서도 기뻤다.

하지만 “게르망트”라는 이름에 나는 우리 친구의 푸른 눈 한가운데에 작은 갈색 홈이 생기는 것을 보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뾰족한 것에 찔린 것 같았다. 동공의 나머지 부분은 푸른빛을 분비하며 반응했고, 눈꺼풀 주위가 검어지며 내려갔다. 쓴 주름이 생긴 그의 입은 더 빨리 정신을 차리며 미소 지었지만, 그의 눈빛은 화살로 가득 찬 아름다운 순교자의 눈처럼 고통스러워 보였다. “아니요, 나는 그들을 모릅니다.” 그가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정보, 그렇게 놀랍지 않은 대답을 하는 데 있어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어조를 사용하는 대신, 그는 단어를 강조하며, 고개를 숙이고 인사하며 말했다. 마치 믿기 어려운 주장을 믿게 하기 위해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강조했다. 그가 게르망트 가문을 모른다는 사실이 단지 특이한 우연의 결과일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또한 자신에게 고통스러운 상황을 숨길 수 없는 사람이 그것을 선언하는 것을 선호하여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고백이 어떤 당혹감도 주지 않고, 쉽고, 즐겁고, 자발적이라는 인상을 주려는 사람의 과장된 말투로 말했다. 마치 그 상황 자체가 – 게르망트 가문과의 관계 부재 – 그에 의해 겪어진 것이 아니라 원해서 그런 것일 수 있고, 어떤 가족 전통, 도덕 원칙 또는 신비로운 서약의 결과일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그 서약은 특히 게르망트 가문과의 교제를 금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요,” 그는 자신의 어조를 자신의 말로 설명하며 되풀이했다. “아니요, 나는 그들을 모릅니다. 나는 결코 알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항상 나의 완전한 독립성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사실, 나는 자코뱅파입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려 했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게르망트에 가지 않는 것이 잘못이라고, 내가 무례하고 고루한 사람처럼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평판은 나를 두렵게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사실이니까요! 사실, 나는 이 세상에서 몇몇 교회들, 두세 권의 책들, 겨우 그 이상의 그림들, 그리고 당신의 젊음의 바람이 내 늙은 눈에는 더 이상 구별할 수 없는 화단의 향기를 내게 가져다주는 달빛만을 사랑합니다.” 나는 모르는 사람들을 방문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독립성을 지켜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과 그것이 어떻게 당신을 야만인이나 곰처럼 보이게 할 수 있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이해한 것은 르그랑댕이 교회들과 달빛과 젊음만을 사랑한다고 말할 때 완전히 진실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는 성의 사람들을 매우 좋아했고 그들 앞에서 그들을 불쾌하게 할까봐 너무 두려워해서 그가 부르주아 친구들, 공증인이나 주식 중개인의 아들들이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지 못했다. 만약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면, 그는 자신이 없는 곳에서, 자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리고 ‘결석으로’ 밝혀지는 것을 선호했다. 그는 속물이었다. 물론 그는 내 부모님과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언어로 이런 것들을 결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게르망트 가문을 아십니까?”라고 물으면, 말하는 르그랑댕은 “아니요, 나는 그들을 알고 싶어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불행히도 그는 두 번째로만 그렇게 대답했다. 왜냐하면 그가 조심스럽게 숨기고 있는 또 다른 르그랑댕, 우리의 르그랑댕에 대해, 그의 속물근성에 대해 타협적인 이야기들을 알고 있어서 보여주지 않는 또 다른 르그랑댕이 이미 눈빛의 상처, 입술의 경련, 대답의 지나친 진지함, 천 개의 화살로 우리의 르그랑댕이 순식간에 찔리고 쇠약해진 것 같은 모습으로 대답했기 때문이다. 마치 속물근성의 성 세바스티안처럼 말이다. “아아! 당신은 나를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 모릅니다. 아니요, 나는 게르망트 가문을 모릅니다. 내 인생의 큰 슬픔을 일깨우지 마세요.” 그리고 이 말썽꾸러기 르그랑댕, 이 협박하는 르그랑댕은 다른 르그랑댕처럼 예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무한히 더 빠른 말을 가지고 있었고, ‘반사 작용’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말하는 르그랑댕이 그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싶어할 때, 다른 르그랑댕은 이미 말해버렸고 우리 친구는 자신의 다른 자아가 밝힌 것들이 분명 좋지 않은 인상을 주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저 그것을 완화하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것은 르그랑댕 씨가 속물들을 비난할 때 진실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는 적어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오직 다른 사람들의 열정만을 알 수 있고, 우리 자신의 것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오직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그것들은 오직 이차적인 방식으로, 상상력을 통해 작용한다. 상상력은 최초의 동기를 더 품위 있는 대체 동기로 바꾼다. 르그랑댕의 속물근성은 결코 그에게 공작부인을 자주 방문하라고 조언하지 않았다. 그것은 르그랑댕의 상상력에게 그 공작부인을 모든 우아함으로 장식된 모습으로 나타나게 했다. 르그랑댕은 공작부인에게 다가갔고, 비열한 속물들이 모르는 정신과 덕성의 매력에 굴복한다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오직 다른 사람들만이 그가 속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의 상상력의 중간 작업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르그랑댕의 사교 활동과 그것의 근본 원인을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제 집에서는 르그랑댕 씨에 대해 더 이상 어떤 환상도 없었고, 우리와의 관계는 매우 드물어졌다. 엄마는 르그랑댕이 자백하지 않는 죄, 그가 계속해서 용서받을 수 없는 죄라고 부르는 속물근성의 죄를 저지르는 것을 목격할 때마다 무한히 즐거워했다. 아버지는 르그랑댕을 겉으로는 예의 바르게 대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꼈다.

르그랑댕의 경멸적인 태도를 그렇게 초연하고 유쾌하게 받아들였다. 어느 해 내가 할머니와 함께 발벡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기로 했을 때, 아버지가 말했다. “르그랑댕에게 꼭 너희가 발벡에 간다고 알려야겠어. 그가 자기 누이와 연락하라고 제안할지 보자. 그는 누이가 거기서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산다고 말했던 걸 기억하지 못할 거야.” 할머니는 해변에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닷바람을 마시며 있어야 하고 아무도 만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방문이나 산책은 바닷바람을 쐴 시간을 뺏는다고 여겼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의 계획을 르그랑댕에게 말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그의 누이인 캉브르메르 부인이 우리가 낚시하러 갈 때 호텔에 나타나 우리를 방에 가두고 접견하게 될 것을 이미 보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녀의 걱정을 비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 위험은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을 것이고, 르그랑댕이 그의 누이와 우리를 소개시키는 데 그렇게 서두르지는 않을 거라고. 그런데 발벡에 대해 말할 필요도 없이, 르그랑댕 자신이 우리가 그쪽으로 갈 생각이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어느 저녁 비본느 강가에서 우리와 마주쳤을 때 스스로 함정에 빠졌다.

“오늘 저녁 하늘에 아름다운 보라색과 파란색이 가득하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친구분?” 그가 내 아버지에게 말했다. “특히 꽃처럼 곱디고운 파란색이 있어요. 하늘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시네라리아[1] 같은 파란색이죠. 그리고 저 작은 분홍 구름도 꽃과 닮은 색깔을 띠고 있지 않나요? 카네이션이나 수국[2] 같은? 노르망디와 브르타뉴 사이의 영국해협에서만 이런 종류의 대기 현상을 더 풍부하게 관찰할 수 있었답니다. 발벡[3] 근처, 황량한 해안가에 매력적인 작은 만이 있어요. 그곳에서 오주 지방의 일몰, 제가 결코 싫어하지 않는 붉고 금빛 일몰은 특징이 없고 무의미해 보입니다. 하지만 습하고 부드러운 대기 속에서 저녁이 되면 순식간에 하늘에 꽃다발이 피어납니다. 파란색과 분홍색으로, 그 아름다움은 비할 데 없죠. 그리고 종종 몇 시간 동안 시들지 않고 피어 있습니다. 어떤 구름들은 곧바로 꽃잎이 떨어지기도 하는데, 그때는 무수한 유황색이나 분홍색 꽃잎들이 온 하늘을 덮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오팔이라 불리는 그 만에서는 금빛 해변이 더욱 부드러워 보입니다. 인근 해안의 무시무시한 바위들, 그 불길한 해안에 금발의 안드로메다[4]처럼 묶여 있는 듯 말이죠. 그 해안은 많은 난파로 유명해서 매 겨울 많은 배들이 바다의 위험을 무릅쓰고 사라져 갑니다. 발벡! 우리 땅의 가장 오래된 지질학적 골격, 진정한 아르모르[5], 바다와 땅의 끝, 저주받은 지역이죠. 아나톨 프랑스[6] – 우리 어린 친구가 읽어 봐야 할 마법사죠 – 오디세이에서 영원한 안개 속에 있는 진정한 킴메리아인[7]들의 나라로 아주 잘 묘사했습니다. 특히 발벡에서는, 이미 호텔들이 지어지고 있습니다. 고대의 매력적인 땅 위에 겹쳐져 있지만, 그 아름다움을 변질시키지는 않습니다. 이 원시적이고 아름다운 지역을 바로 옆에서 여행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요.”

“아, 발벡에 아는 사람이 있나요?” 아버지가 물었다. “마침 이 꼬마가 할머니와 함께, 그리고 아마도 내 아내와 함께 그곳에서 두 달을 보내게 될 거예요.”

르그랑댕은 이 질문에 순간 당황했습니다. 그의 눈은 아버지에게 고정되어 있었고, 시선을 돌릴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더 강렬하게, 슬픈 웃음을 짓는 표정으로 대화 상대의 눈을 응시했습니다. 우정과 솔직함, 그리고 똑바로 쳐다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그는 마치 아버지의 얼굴이 투명해진 것처럼 꿰뚫어 보는 듯했습니다. 그 뒤로는 멀리 선명하게 색칠된 구름을 바라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 구름은 그에게 정신적인 알리바이를 제공해 주어, 발벡에 아는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서 질문을 듣지 못했다고 주장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보통 이런 눈빛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세요?”라고 말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호기심 많고 짜증스럽게, 잔인하게 되물었습니다.

“그쪽에 친구가 있나 봐요? 발벡을 그렇게 잘 아시는 것 같은데.”

마지막 필사적인 노력으로, 르그랑댕의 미소 띤 눈빛은 최대한의 다정함과 모호함, 진실됨과 산만함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대답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가 말했습니다.

“저는 상처받았지만 정복당하지 않은 나무들의 무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친구가 있어요. 그들은 함께 모여 병적인 고집으로 그들에게 연민을 보이지 않는 무정한 하늘에 간청하고 있죠.”

“그게 제가 묻고 싶었던 게 아니에요.” 아버지는 나무들만큼이나 완고하고 하늘만큼이나 무자비하게 끼어들었습니다. “제 장모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그곳에서 고립된 느낌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할 경우를 대비해서 물어본 거예요. 거기 아는 사람이 있나요?”

“거기나 어디나 마찬가지로, 저는 모든 사람을 알지만 아무도 모릅니다.” 르그랑댕은 쉽게 물러서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많은 것들을 알지만 사람은 거의 모르죠. 하지만 그곳의 것들조차 사람처럼 보여요. 희귀하고 섬세한 본질을 가진 사람들, 삶에 실망한 사람들 같아요. 때로는 절벽 위에서 마주치는 성이에요. 길가에 멈춰 서서 여전히 장밋빛인 저녁에 떠오르는 금빛 달과 자신의 슬픔을 대면하고 있죠. 그 앞에서 돌아오는 배들이 물결 무늬를 내며 돛대에 깃발을 올리고 색깔을 띠고 있어요. 때로는 외롭고 보기 흉한 집이에요. 수줍어 보이지만 로맨틱해 보이죠. 모든 사람의 눈으로부터 행복과 환멸의 영원한 비밀을 숨기고 있어요. 이 진실 없는 나라,” 그가 마키아벨리[8]적인 섬세함으로 덧붙였습니다. “이 순수한 허구의 나라는 아이에게는 나쁜 독서거리예요. 그리고 이미 슬픔에 젖어 있는 내 어린 친구에게는 확실히 선택하거나 추천하고 싶지 않아요. 그의 마음은 이미 슬픔에 젖어 있으니까요. 사랑의 고백과 쓸데없는 후회의 분위기는 저 같은 늙은 환멸한 사람에게는 어울릴 수 있지만, 형성되지 않은 기질에는 항상 해로워요. 저를 믿으세요,” 그가 강조했습니다. “이 만의 물은 이미 온전하지 않은 제 마음에는 진정 효과를 줄 수 있어요. 하지만 그 효과는 의심스럽죠. 더 이상 보상받지 못하는 마음의 병변에 말이에요. 하지만 당신 나이에는 금기예요, 꼬마야. 안녕히 가세요, 이웃들.” 그가 우리를 떠나며 평소의 회피적인 갑작스러움으로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의사처럼 진단을 요약했습니다. “발벡은 50세 전에는 안 돼요. 그리고 그때도 심장 상태에 달렸어요.” 그가 우리에게 외쳤습니다.

아버지는 이후의 만남에서 그에게 다시 이야기를 꺼냈고, 질문으로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것은 헛된 수고였습니다. 마치 위조된 양피지를 만드는 데 그 백분의 일만 들여도 더 수익성 있고 명예로운 지위를 얻을 수 있을 정도의 노력과 학식을 쏟아붓는 학식 있는 사기꾼처럼, 르그랑댕 씨는 우리가 더 추궁했다면 결국 노르망디 저지대의 전체 풍경 윤리와 천상 지리학을 만들어냈을 것입니다. 그럴지언정 발벡에서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자기 누이가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거나, 우리에게 소개장을 제공하는 것을 피하려 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에게 그렇게 공포의 대상이 되지 않았을 텐데, 할머니의 성격에 대해 경험했다면 그랬을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할머니 — 가 그것을 활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 시네라리아: 국화과의 한 속으로, 꽃이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많이 재배됩니다.

[2] 수국: 수국과의 낙엽 활엽 관목으로, 꽃이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많이 재배됩니다.

[3] 발벡: 프랑스 북부 코트 다쥐르 지역에 있는 해안 도시.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이 동경하는 장소로 등장합니다.

[4] 안드로메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티오피아 공주의 이름. 바다 괴물 케토에게 희생될 위기에 처했지만, 페르세우스에게 구출됩니다.

[5] 아르모르: 프랑스 브르타뉴 지역의 고대 이름.

[6] 아나톨 프랑스: 프랑스의 소설가, 시인, 극작가. 192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7] 킴메리아인: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북쪽 끝에 사는 민족. 영원한 어둠 속에 살며, 죽은 자들의 땅으로 여겨집니다.

[8] 마키아벨리: 이탈리아의 정치가, 철학자, 작가. ‘군주론’으로 유명하며, 현실주의 정치 사상을 대표합니다.

우리는 항상 저녁 식사 전에 레오니 고모를 방문할 수 있도록 산책에서 일찍 돌아왔다. 날이 일찍 저무는 계절 초반에는 생테스프리 거리에 도착할 때 집 유리창에 아직 석양빛이 비치고 있었고, 칼베르 숲 끝에는 자주색 띠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 붉은빛은 더 멀리 연못에 반사되어 있었는데, 종종 꽤 매서운 추위와 함께 나타나 내 마음속에서 산책이 주는 시적인 즐거움을 뒤이어 닭고기를 굽는 불 위의 붉은빛과 연관되어 미식의 즐거움, 따뜻함과 휴식의 즐거움으로 이어지곤 했다. 반면에 여름에는 우리가 돌아올 때 해가 아직 지지 않았다. 레오니 고모를 방문하는 동안 그 빛이 낮아져 창문에 닿았을 때, 커다란 커튼과 끈 사이에 멈춰 서서 나뉘고 가지를 치고 걸러져 화장대의 레몬나무 목재에 작은 금조각을 박아 넣은 듯했다. 그리고 숲속에서처럼 섬세하게 방을 비스듬히 비췄다. 그러나 매우 드문 날에는 우리가 돌아왔을 때 화장대가 일시적인 박음을 잃은 지 오래였고, 생테스프리 거리에 도착했을 때 유리창에는 석양빛이 전혀 없었다. 칼베르 밑의 연못은 붉은빛을 잃고 때로는 이미 오팔빛이 되어 있었으며, 달빛의 긴 줄기가 점점 넓어지며 물의 모든 주름에 갈라져 연못 전체를 가로질렀다. 그때 집 근처에 다다르면 우리는 현관에 한 형체를 발견했고 엄마는 내게 말했다.

“이런! 프랑수아즈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 네 고모가 걱정하고 있나 봐. 우리가 너무 늦게 들어왔어.”

우리는 옷을 벗을 시간도 없이 서둘러 레오니 고모의 방으로 올라가 그녀를 안심시키고 우리에게 아무 일도 없었음을 보여주었다. 다만 우리가 “게르망트 쪽으로” 갔던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산책을 할 때는 언제 돌아올지 확실히 알 수 없다는 것을 고모도 잘 알고 계셨다.

“거봐요, 프랑수아즈,” 고모가 말했다. “내가 그들이 게르망트 쪽으로 갔을 거라고 했잖아요! 세상에! 그들은 배가 고플 거예요! 그리고 당신의 양고기 구이는 기다리느라 다 말라버렸겠어요. 돌아오는 시간이 이렇게 늦을 수가! 어떻게, 게르망트 쪽으로 갔다고요!”

“하지만 레오니, 당신이 알고 계셨을 줄 알았어요,” 엄마가 말했다. “프랑수아즈가 우리가 채소밭의 작은 문으로 나가는 걸 봤다고 생각했어요.”

콩브레 주변에는 산책을 위한 두 “방향”이 있었고, 그 방향들은 너무 대조적이어서 우리는 실제로 한쪽이나 다른 쪽으로 가고 싶을 때 같은 문으로 나가지 않았다. 메제글리즈 라 비뇌즈 쪽은 스완 씨의 재산 앞을 지나가기 때문에 스완네 집 쪽이라고도 불렸고, 게르망트 쪽이 있었다. 사실 나는 메제글리즈 라 비뇌즈에 대해서는 “쪽”만 알고 있었고, 일요일에 콩브레로 산책을 온 외지인들, 이번에는 고모도 우리 모두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 그래서 “메제글리즈에서 온 사람들일 거야”라고 여겨지는 사람들만 알고 있었다. 게르망트에 대해서는 언젠가 더 많이 알게 될 것이었지만, 그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었다. 그리고 내 청소년기 내내 메제글리즈가 내게 이미 콩브레의 지형과 닮지 않은 지형의 굴곡에 의해 아무리 멀리 가도 시야에서 벗어나 있는 지평선처럼 접근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면, 게르망트는 내게 오직 자신의 “쪽”의 이상적이라기보다는 실제적인 종착점으로만 나타났다. 적도선이나 극, 동양과 같은 일종의 추상적인 지리적 표현이었다. 그래서 “게르망트를 거쳐” 메제글리즈로 가거나 그 반대로 가는 것은 내게 동쪽으로 가서 서쪽으로 가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한 표현으로 보였다. 아버지가 늘 메제글리즈 쪽을 자신이 아는 가장 아름다운 평원 전망이라고 말씀하셨고, 게르망트 쪽을 강가 풍경의 전형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나는 그것들을 두 개의 실체로 생각하며 우리 정신의 창조물에만 속하는 그 응집력, 그 통일성을 부여했다. 각각의 가장 작은 부분도 내게는 귀중해 보였고 그들의 특별한 우수성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반면에 그 옆에서, 둘 중 하나의 신성한 땅에 도달하기 전에, 평원 전망의 이상과 강가 풍경의 이상으로서 그들이 놓여 있는 그 순전히 물질적인 길들은, 연극 예술에 심취한 관객에게 극장 주변의 작은 거리들이 그러하듯 볼 가치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그들 사이에 킬로미터 거리보다 훨씬 더 큰 거리, 내 뇌의 두 부분 사이의 거리를 두었다. 그것은 단순히 멀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분리하고 다른 차원에 놓는 그런 정신적 거리였다. 그리고 이 구분은 우리가 결코 같은 날, 하나의 산책에서 두 쪽으로 가지 않는 습관 때문에 더욱 절대적이 되었다. 한 번은 메제글리즈 쪽으로, 한 번은 게르망트 쪽으로 가는 이 습관이 그들을 서로 멀리, 서로를 알 수 없게, 다른 오후의 밀폐되고 소통 없는 용기 속에 가두어 버렸다.

메제글리즈 쪽으로 가고 싶을 때는 (산책이 그리 길지 않아서 하늘이 흐려도 괜찮았다) 마치 어디로든 가듯이 고모의 집 생테스프리 거리에 있는 큰 문으로 나갔다. 우리는 무기상의 인사를 받았고, 우체통에 편지를 넣었으며, 지나가면서 프랑수아즈를 대신해 테오도르에게 기름이나 커피가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리고 스완 씨의 공원 흰 울타리를 따라 가는 길로 마을을 빠져나갔다.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우리는 라일락 향기를 맡았다. 그 향기는 낯선 이들을 맞이하러 나온 것 같았다. 라일락들은 푸르고 신선한 작은 심장 모양의 잎사귀 사이에서 호기심 어린 듯 공원 울타리 위로 자주색이나 흰색의 깃털 다발을 들어 올렸다. 그 깃털 다발은 그늘에 있어도 그들이 목욕했던 햇살에 윤이 났다. 몇몇은 ‘궁수의 집’이라 불리는 작은 기와집 뒤에 반쯤 숨어 있었는데, 그곳에는 공원 관리인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그 고딕 양식의 박공 지붕을 넘어 장미빛 미나렛처럼 솟아있었다. 봄의 님프들도 이 프랑스식 정원에서 페르시아 세밀화의 선명하고 순수한 색조를 지킨 이 젊은 후리들 앞에서는 속되어 보였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유연한 허리를 감싸고 향기로운 머리의 별 모양 고리를 내게로 끌어당기고 싶었지만, 우리는 멈추지 않고 지나갔다. 스완의 결혼 이후 부모님은 더 이상 탄송빌에 가지 않았고, 공원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울타리를 따라 곧장 들판으로 올라가는 길 대신 그곳으로 비스듬히 인도하는 다른 길을 택했다. 그 길은 우리를 너무 멀리 나가게 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말씀하셨다.

“스완이 어제 그의 아내와 딸이 랭스로 떠났기 때문에 24시간 동안 파리에 가기로 했다고 한 걸 기억하세요? 우리가 공원을 따라 갈 수 있겠네요. 그들이 없으니까…”

“부인들이 여기 없으니 우리는 그만큼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겠군요.”

우리는 잠시 정원 문 앞에 멈춰 섰다. 라일락 계절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몇몇 꽃은 아직도 높은 자줏빛 샹들리에처럼 섬세한 거품을 내뿜고 있었지만, 일주일 전만 해도 향기로운 거품으로 가득했던 잎사귀들은 대부분 시들고 작아져 검게 변해 있었다. 향기 없는 마른 거품만 남았다.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이곳의 모습이 어떤 점에서 예전과 같고 어떤 점에서 달라졌는지 설명하셨다. 그리고 부인이 돌아가신 날 스완 씨와 산책했던 이야기를 또 한 번 들려주셨다.

우리 앞으로 한 줄기 길이 태양빛 속에서 성으로 이어졌다. 그 길 양옆으로 금낭화가 줄지어 피어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평평한 땅이 공원처럼 펼쳐져 있었다. 주변의 큰 나무들이 드리운 그늘 아래에는 스완의 부모님이 파 놓은 연못이 있었다. 인간은 자연을 바탕으로 작업을 하지만, 어떤 장소들은 언제나 그들만의 특별한 지배력을 행사한다. 마치 인간의 개입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공원 한가운데서도, 그들을 둘러싼 고독 속에서도 태고의 표식을 드러낸다. 그 고독은 어디서나 그들을 에워싸며, 그들이 놓인 환경의 필연성에서 비롯되어 인간의 작품 위에 겹쳐진다. 그렇게 해서 인공 연못을 내려다보는 길 아래쪽에 두 줄로 늘어선 물망초와 줄기가 낮은 제비꽃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물가의 흐릿한 이마를 두르는 섬세하고 푸른 화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왕의 포기와도 같은 자태로 칼날을 늘어뜨린 창포는 습한 발밑의 물망초와 미나리 위로 자신의 호수 왕홀인 보라색과 노란색의 백합 꽃잎을 흩뿌리고 있었다.

스완 양의 부재로 인해 – 그녀가 어느 길목에서 나타나 나를 알아보고 경멸할 수도 있다는 끔찍한 가능성이 사라졌고, 베르고트와 친분이 있어 그와 함께 성당을 방문하는 그 특별한 소녀를 만날 기회도 없어졌기에 – 처음으로 허락된 탄송빌 구경이 무관심해졌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눈에는 오히려 이 저택이 편리함과 일시적인 즐거움을 더해주는 것 같았다. 마치 산악 지방으로 소풍을 갈 때 구름 한 점 없는 날씨가 그 날을 특별히 산책하기 좋게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그들의 계산이 빗나가기를 바랐다. 기적이 일어나 스완 양이 아버지와 함께 우리와 너무 가까이에 나타나 피할 시간도 없이 그녀와 알게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갑자기 잔디밭에서 그녀가 있을 수도 있다는 징표로 낚싯대 옆에 놓인 바구니를 보았을 때, 나는 서둘러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게다가 스완 씨가 집을 비우는 것이 잘못됐다고 말했다. 지금 손님들이 와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낚싯대는 어떤 손님의 것일 수도 있었다. 길에서는 발자국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나무의 높이를 가르며 보이지 않는 새 한 마리가 하루를 짧게 만들려는 듯 길게 울었다. 그 울음은 주변의 고독을 탐색하는 것 같았지만, 그에 대한 응답으로 너무나 일치된, 너무나 되풀이되는 침묵과 부동의 충격을 받아 마치 방금 전까지 지나가게 하려던 그 순간을 영원히 멈추게 한 것 같았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빛이 너무나 가차 없어서 그 주목에서 벗어나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잠자는 물도, 끊임없이 곤충들이 그 잠을 방해하고 있었지만, 아마도 어떤 상상 속의 소용돌이를 꿈꾸며 코르크 뜨개를 하늘의 고요한 수면 위로 빠르게 끌고 가는 것 같아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거의 수직으로 서 있던 뜨개가 곧 물속으로 빠질 것 같아 보였고, 나는 이미 스완 양을 알고 싶은 욕망과 두려움은 제쳐두고 그녀에게 물고기가 미끼를 물었다고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부르는 소리에 뛰어가야 했다. 그들은 내가 따라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며 들판으로 올라가는 작은 길로 들어섰던 것이다.

그 길에는 서향나무 향기가 가득했다. 울타리는 마치 일련의 예배당처럼 보였는데, 그 위로 꽃들이 제단처럼 쌓여 있었다. 그 아래로 태양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것처럼 바닥에 격자무늬의 빛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 향기는 마치 내가 성모 제단 앞에 서 있는 것처럼 기름지고 또렷했다. 꽃들은 각자 멍한 표정으로 빛나는 수술 다발을 들고 있었는데, 그 가느다고 빛나는 신경은 마치 교회에서 제단 난간이나 스테인드글라스 창의 틀을 장식하는 화려한 양식의 것들 같았고, 딸기꽃의 하얀 살로 피어나 있었다. 몇 주 후면 같은 시골길을 태양 아래로 올라갈 찔레꽃들이 얼마나 순박하고 시골스러워 보일까. 그들의 붉은 실크 코르사주는 바람 한 번에 흐트러질 테니.

그러나 아무리 서향나무 앞에 서서 냄새를 맡고, 그 보이지 않는 고정된 향기를 생각 앞으로 가져와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채로, 잃었다가 다시 찾고, 그 꽃들이 청춘의 기쁨으로 여기저기 뿌리는 리듬에 맞추려 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마치 백 번을 되풀이해 연주해도 더 깊이 그 비밀에 다가갈 수 없는 멜로디처럼, 끝없이 같은 매력을 무한한 풍요로움으로 내게 제공했지만, 더 깊이 파고들 수는 없게 했다. 나는 잠시 그들에게서 돌아섰다가 새로운 힘을 얻어 다시 다가갔다. 나는 울타리 뒤편으로 들판을 향해 가파르게 올라가는 비탈까지 쫓아가 뒤처진 양귀비 몇 송이와 게으른 수레국화 몇 송이를 찾았다. 그것들이 여기저기 꽃으로 장식하고 있었는데, 마치 태피스트리의 가장자리처럼 전체 패널을 지배할 시골 풍경의 모티브가 드문드문 나타나는 것 같았다. 아직은 드물고 마을의 시작을 알리는 외딴집들처럼 띄엄띄엄 있었지만, 그것들은 내게 밀이 넘실대고 구름이 몰려드는 광활한 들판을 예고해 주었다. 그리고 검고 기름진 부표 위로 붉은 깃발을 바람에 휘날리며 줄 끝에 매달린 양귀비 한 송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내 가슴이 뛰었다. 마치 낮은 땅에서 첫 번째 좌초된 배를 수리하는 선원을 발견하고 아직 보지도 않은 채 “바다다!”라고 외치는 여행자처럼 말이다.

그러고는 다시 서향나무 앞으로 돌아왔다. 마치 잠시 보지 않으면 더 잘 볼 수 있을 거라 믿고 걸작 앞을 떠났다 돌아오는 것처럼. 하지만 아무리 손으로 가리개를 만들어 오직 그것들만 보려 해도, 그들이 내 안에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여전히 모호하고 불분명했다. 그 감정은 벗어나려 하고 꽃에 달라붙으려 했지만 헛된 노력이었다. 그들은 내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고, 나는 다른 꽃들에게 그 감정을 만족시켜 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었다. 그때 우리가 좋아하는 화가의 작품 중 우리가 알고 있던 것들과는 다른 작품을 볼 때, 또는 우리를 어떤 그림 앞으로 이끌어 줄 때 느끼는 그런 기쁨이 찾아왔다.

연필 스케치가 오케스트라의 화려한 색채를 입은 곡으로 변모하듯, 할아버지께서 나를 부르시며 탄송빌의 생울타리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너 산사나무 좋아하지? 저 분홍 가시나무 좀 봐. 예쁘지 않니?”

사실 그것은 가시나무였지만, 흰색보다 더 아름다운 분홍색을 띠고 있었다. 마치 축제 장식처럼 화려했다. 진정한 축제, 종교적인 축제만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이었다. 특별한 날이 아닌, 우연한 변덕으로 열리는 세속적인 축제와는 달랐다. 하지만 이 가시나무는 더욱 풍성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가지마다 매달린 꽃들은 빈틈 없이 겹겹이 피어 있었다. 로코코 시대 양치기 지팡이를 장식하는 술처럼 ‘색깔’을 입고 있었고, 콩브레의 미학에 따르면 더욱 고급스러웠다. 마치 광장의 ‘상점’이나 카뮈네 가게에서 분홍색 비스킷이 더 비쌌던 것처럼 말이다. 나 역시 분홍색 크림 치즈를 더 좋아했다. 딸기를 으깨 먹을 때 허락받았던 치즈였다. 마치 이 꽃들이 먹을 수 있는 것들의 색깔을 선택했거나, 큰 축제를 위한 의상의 부드러운 장식을 선택한 것처럼 말이다. 이 꽃들은 아이들의 눈에 가장 아름답게 보였다. 아이들은 이 꽃들이 다른 색깔보다 더 생생하고 자연스러운 무언가를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꽃들이 먹을 수 없고 재단사가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해한 후에도 그랬다. 그리고 확실히 나는 즉시 느꼈다. 흰 산사나무 앞에서 느꼈던 것처럼, 하지만 더 큰 경이로움과 함께, 이 꽃들의 아름다움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간의 기술로 만들어진 축제 장식이 아니라, 자연이 스스로 만들어낸 아름다움이었다. 마치 마을의 상인이 성체 행렬을 위해 관목을 연한 톤의 장미색 로제트로 장식한 것처럼 말이다. 가지 끝에는, 마치 큰 축제 때 제단 위에 놓인 레이스 종이로 감싼 화분 속 작은 장미나무처럼, 더 옅은 색깔의 수천 개의 작은 꽃봉오리가 무성했다. 꽃봉오리들이 피어나면서 분홍색 대리석 잔 바닥처럼 붉은 핏빛을 드러냈고, 다른 꽃들보다 더욱 산사나무의 특별하고 저항할 수 없는 본질을 드러냈다. 이 산사나무는 어디에서 싹을 틔우든, 어디에서 꽃을 피우든, 오직 분홍색으로만 피어날 수 있었다.

생울타리에 끼어 있었지만, 집에 남아 있을 평상복 차림의 사람들 사이에서 축제 의상을 입은 소녀처럼 그토록 다른, 이미 5월의 달의 일부인 것 같았던 그 관목은 신선한 분홍 의상을 입고 미소 지으며 빛나고 있었다. 가톨릭적이고 매력적인 관목이었다.

생울타리는 공원 안쪽으로 재스민, 팬지, 버베나가 늘어선 길을 보여주었다. 그 사이로 금어초들이 신선한 지갑을 열고 있었는데, 그것은 오래된 코르도바 가죽처럼 향기로운 분홍빛을 띠고 있었다. 한편 자갈길 위로는 녹색으로 칠해진 긴 물뿌리개 호스가 구불구불 뻗어 있었고, 구멍이 뚫린 곳마다 꽃들 위로 올라가 그 향기를 적시며 다색의 물방울들의 수직적이고 프리즘 같은 부채를 세우고 있었다. 갑자기 나는 멈춰 섰다.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우리의 시선만이 아니라 더 깊은 지각을 요구하고 우리의 존재 전체를 지배하는 비전이 나타날 때처럼 말이다. 붉은 금발의 소녀 하나가 산책에서 돌아오는 듯했고, 손에는 정원용 삽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분홍 반점이 흩뿌려진 얼굴을 들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검은 눈이 반짝였다. 나는 그때 강한 인상을 객관적인 요소로 환원하는 법을 몰랐고, 그 후로도 배우지 못했기에, 흔히 말하는 ‘관찰력’이 충분하지 않아 그 색깔의 개념을 추출해내지 못했다. 오랫동안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그 눈동자의 반짝임에 대한 기억은 즉시 생생한 푸른빛의 기억으로 나에게 떠올랐다. 그녀가 금발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도 그녀의 눈이 그토록 검지 않았다면 – 그녀를 처음 봤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 – 나는 그랬던 것처럼 특별히 그녀의 푸른 눈에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눈의 대변인일 뿐만 아니라 모든 감각이 불안하고 굳어진 채로 기대어 있는 창문과 같은 그런 시선으로, 보고 있는 몸과 영혼을 만지고, 포획하고, 데려가고 싶어 하는 그런 시선으로 말이다. 그 다음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저 소녀를 발견하고 나더러 앞서 뛰어가라고 할까 봐 두려워 한 순간 다음 순간에, 무의식적으로 애원하는 듯한 두 번째 시선으로, 그녀가 나에게 주목하고 나를 알아봐 주기를 강요하려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알아보기 위해 눈동자를 앞으로, 옆으로 굴렸고, 틀림없이 우리가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녀는 무관심하고 경멸하는 듯한 태도로 옆으로 돌아서서 자신의 얼굴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가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 계속 걸어가며 그녀를 보지 못한 채 나를 지나친 그들과는 달리, 그녀는 특별한 표정 없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지도 않으면서 시선을 내 쪽으로 한껏 뻗었다. 하지만 그 고정된 시선과 감춰진 미소는 내가 배운 예의 범절로는 오직 모욕적인 경멸의 증거로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그녀의 손은 동시에 애매한 몸짓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가지고 다니던 작은 예의 사전에 따르면 모르는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행해질 때 오직 하나의 의미, 즉 무례한 의도만을 가졌다.

“자, 질베르트, 이리 와. 뭐하는 거니?” 하고 날카롭고 권위적인 목소리로 흰옷을 입은 한 부인이 외쳤다. 나는 그녀를 보지 못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약간 떨어진 곳에 내가 모르는 한 신사가 서 있었는데, 그는 눈알이 튀어나올 듯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소녀는 갑자기 미소 짓기를 멈추고 삽을 들고는 내 쪽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순종적이고 불가해하며 교활한 표정으로 멀어져 갔다.

그렇게 질베르트라는 이름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마치 부적처럼 주어진 것 같았다. 아마도 그 이름으로 나는 언젠가 방금 전까지 불확실한 이미지에 불과했던 그녀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그 이름은 지나갔다. 재스민과 금어초 위로 발음되어, 녹색 물뿌리개의 물방울처럼 날카롭고 신선했다. 그 이름은 맑은 공기를 지나며 향기를 남기고, 무지개빛으로 물들였다. 그리고 고립시키며 – 그녀를 지칭하는 존재들, 그녀와 함께 살고 여행하는 행복한 존재들을 위한 그녀의 삶의 신비로 가득 채웠다. 분홍 가시나무 아래, 내 어깨 높이에서, 그들의 친밀함의 정수를, 나에게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그녀와의 친밀함을, 그녀 삶의 미지의 영역을, 내가 결코 들어갈 수 없는 그곳을 펼쳐 보였다.

잠시 동안 (우리가 멀어지는 동안 할아버지가 중얼거렸다. “불쌍한 스완, 저들이 그를 어떤 역할을 하게 만드는지! 그를 보내버리고 그녀를 샤를뤼스와 단둘이 남겨두려고 하는군. 저 사람이 샤를뤼스야. 알아봤어! 그리고 저 어린 소녀까지 이 모든 추잡한 짓에 휘말리다니!”) 어머니가 딸에게 말했던 전제적인 어조에 대한 인상이 내게 남았다.

질베르트가 그녀에게 말을 했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에게 복종해야 하는 것처럼, 모든 것보다 우월하지 않은 것처럼 그녀를 보여주었다. 이는 내 고통을 조금 달래주었고, 내게 약간의 희망을 주었으며, 내 사랑을 줄여주었다. 그러나 곧 이 사랑은 다시 내 안에서 솟아올랐다. 마치 모욕당한 내 마음이 질베르트와 동등해지거나 그녀를 자신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려는 반응처럼 말이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를 모욕하고, 상처 주고, 나를 기억하게 할 시간과 영감이 없었음을 후회했다. 나는 그녀가 너무 아름다워서 돌아가 어깨를 으쓱하며 외치고 싶었다. “당신이 얼마나 못생기고 우스꽝스러운지 모르겠어요. 당신은 정말 혐오스러워요!” 하지만 나는 멀어져갔다. 내 종류의 아이들에게는 자연의 법칙으로 인해 범할 수 없는 행복의 첫 번째 유형으로, 빗자루를 들고 장난스럽고 무표정한 긴 시선을 나에게 던지며 웃고 있는, 분홍빛 반점이 있는 피부를 가진 빨간 머리 소녀의 이미지를 영원히 간직한 채 말이다. 그리고 이미 그녀와 내가 함께 들었던 그 장소의 분홍빛 가시나무 아래에서 그녀의 이름이 향기를 뿜어낸 매력이 그녀의 주변의 모든 것을 감싸고, 물들이고, 향기롭게 만들어갔다. 내 조부모님이 알고 지내는 행운을 가졌던 그녀의 조부모님들, 숭고한 주식 중개인이라는 직업, 그녀가 파리에 살고 있는 고통스러운 샹젤리제 지구까지 말이다.

“레오니,” 할아버지가 돌아오시며 말씀하셨다. “네가 우리와 함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탄송빌을 알아보지 못했을 거야. 내가 감히 했다면, 네가 그토록 좋아하던 그 분홍빛 가시나무 가지를 하나 잘라왔을 텐데.”

할아버지는 이렇게 우리의 산책을 레오니 고모에게 이야기하셨다. 그녀를 즐겁게 해주려는 것이었거나, 아니면 그녀를 밖으로 나오게 할 희망을 완전히 잃지 않으셨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녀는 예전에 그 저택을 무척 좋아했었고, 게다가 스완의 방문은 그녀가 모든 사람에게 문을 닫기 시작했을 때 받아들인 마지막 방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스완이 그녀의 안부를 묻기 위해 왔을 때(그는 우리 집에서 그녀만을 여전히 보기를 원했다), 그녀가 피곤하지만 다음에는 그를 들여보내겠다고 대답하게 했던 것처럼, 그녀는 이날 저녁에도 이렇게 말했다. “그래요, 날씨가 좋은 날에 마차를 타고 공원 입구까지 가보겠어요.” 그녀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스완과 탄송빌을 다시 보고 싶어 했지만, 그녀가 가진 욕망은 그녀에게 남은 힘으로 충분했다. 그 욕망의 실현은 그녀의 힘을 넘어섰을 것이다. 때때로 좋은 날씨가 그녀에게 약간의 기력을 돌려주면, 그녀는 일어나 옷을 입었다. 하지만 피로가 다른 방으로 가기도 전에 시작되었고 그녀는 침대로 돌아가기를 요구했다. 그녀에게 시작된 것은 – 단지 보통보다 더 일찍 시작되었을 뿐 – 죽음을 준비하며 자신의 고치에 싸이는 노년의 위대한 포기였다. 이는 늦게까지 삶이 이어지는 경우에도 관찰할 수 있는 것으로, 가장 사랑했던 옛 연인들 사이에서도, 가장 정신적인 유대로 맺어진 친구들 사이에서도, 어느 해부터인가 서로를 보기 위해 필요한 여행이나 외출을 하지 않게 되고, 편지를 쓰지 않게 되며,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소통하지 않을 것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내 고모는 스완을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며, 집을 떠나지 않을 것임을 완벽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최종적인 감금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그녀에게 더 고통스러웠을 것 같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녀에게 꽤 쉬웠을 것이다. 그녀는 매일 자신의 힘이 줄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이로 인해 모든 행동, 모든 움직임이 피로, 심지어 고통이 되었기에, 무위와 고립, 침묵에 회복의 달콤함과 축복을 부여했던 것이다.

고모는 분홍빛 가시나무 울타리를 보러 가지 않았지만, 나는 매 순간 부모님께 그녀가 가지 않을지, 예전에는 자주 탄송빌에 갔었는지 물어보았다. 스완 양의 부모님과 조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들은 내게 신처럼 위대해 보였다. 스완이라는 이름은 내게 거의 신화적인 존재가 되었고, 부모님과 이야기할 때 나는 그들이 그 이름을 말하는 것을 들을 필요성에 목말랐다. 감히 그 이름을 직접 입에 올리지 못했지만, 질베르트와 그녀의 가족, 또는 그들과 관련된 주제로 부모님을 이끌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그녀에게서 너무 멀리 추방되지 않았다고 느꼈다.

그리고 갑자기 나는 아버지를 강요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의 직책이 이미 우리 가족에게 있었다고 믿는 척하거나, 레오니 고모가 보고 싶어 하는 분홍빛 가시나무 울타리가 공유지에 있다고 믿는 척하면서 말이다. 그러면 아버지는 내 주장을 바로잡아 주셨다. 마치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그분 스스로 말씀하시는 것처럼. “아니야, 그 직책은 스완의 아버지 것이었고, 그 울타리는 스완의 공원 일부야.” 그때 나는 숨을 고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름이 항상 내 안에 쓰여 있던 자리에 놓이면서, 그것을 들을 때마다 다른 어떤 이름보다도 더 무겁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이름은 내가 미리 마음속으로 여러 번 발음했던 모든 순간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내게 즐거움을 주었지만, 나는 그 즐거움을 부모님께 요구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 즐거움이 너무나 컸기에 그들이 나에게 그것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많은 고통을 겪었을 것이고, 보상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에게는 즐거움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재치있게 대화 주제를 돌렸다. 또한 양심의 가책 때문이기도 했다. 내가 스완이라는 이름에 부여한 모든 독특한 매력들을 그들이 그 이름을 발음할 때마다 그 안에서 다시 발견했다. 그때 갑자기 부모님도 그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되었다. 그들도 내 관점에 서서, 내 꿈을 알아차리고,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마치 그들을 정복하고 타락시킨 것처럼 불행해졌다.

그해, 부모님이 평소보다 조금 일찍 파리로 돌아가는 날을 정했을 때, 출발 아침에 사진 찍기 위해 머리를 말게 하고,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모자를 조심스럽게 쓰고, 벨벳 외투를 입은 채로, 어머니는 나를 여기저기 찾아 결국 탄송빌 옆의 작은 오르막길에서 눈물을 흘리며 작별 인사를 하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가시 돋친 가지들을 팔로 감싸 안고 있었다. 마치 비극의 공주처럼 이 헛된 장식품들이 무겁게 느껴졌고, 내 이마 위에 모든 매듭을 만들며 머리를 모아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은 성가신 손에 대해 배은망덕하게도, 나는 뽑아낸 컬 종이와 새 모자를 발로 밟고 있었다. 어머니는 내 눈물에 감동하지 않으셨지만, 찌그러진 모자와 망가진 외투를 보고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으셨다. 나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오, 나의 불쌍한 작은 서향나무들이여,” 나는 울며 말했다. “당신들은 내게 슬픔을 주거나 떠나게 하고 싶어 하지 않아요. 당신들은 한 번도 나를 아프게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나는 항상 당신들을 사랑할 거예요.” 그리고 눈물을 닦으며, 내가 어른이 되면 다른 사람들의 무감각한 삶을 따르지 않겠다고, 파리에서도 봄날에 방문을 하거나 쓸데없는 이야기를 듣는 대신 시골로 나가 첫 번째 서향나무를 보러 가겠다고 그들에게 약속했다.

들판에 들어서면 메제글리즈 쪽으로 가는 나머지 산책 동안 더 이상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그곳은 마치 보이지 않는 방랑자에 의해 끊임없이 돌아다녀지는 것 같았다.

콩브레의 특별한 영혼인 바람이 내게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는 날마다 나는 콩브레에 와 있음을 실감하기 위해 그 바람을 찾아 언덕으로 올라갔다. 바람은 긴 풀밭을 뛰어다녔고 나는 그 뒤를 쫓아 달렸다. 메제글리즈 쪽으로 가는 길에는 언제나 바람이 불었다. 수 킬로미터에 걸쳐 아무런 장애물도 없는 둥근 평원 위로 바람이 불어왔다. 스완 양이 종종 라온에 며칠 동안 머물러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비록 수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지만, 장애물이 없어 거리가 상쇄되었기에, 더운 오후에 멀리 지평선에서 불어와 가장 먼 밀밭을 휘어잡고 파도처럼 온 평원을 휩쓸어 내 발치의 클로버와 세인트포인 사이로 따뜻하게 속삭이며 눕는 바람을 볼 때면, 우리 둘에게 공통된 이 평원이 우리를 가깝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나는 이 바람이 그녀 곁을 스쳐 지나왔으며, 그녀가 보낸 메시지를 내게 속삭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비록 그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 바람에 입맞춤을 했다. 왼쪽에는 샹피외(사제에 따르면 캄푸스 파가니)라는 마을이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밀밭 너머로 생타드레데샹의 두 개의 세공된 소박한 종탑이 보였다. 그 종탑들은 날카롭고 비늘 모양이었으며, 벌집 모양의 구멍이 나 있고, 마름모꼴로 새겨져 있었다. 또한 누렇고 거친 표면을 가진 두 개의 이삭 같았다.

대칭적인 간격으로, 다른 과일나무의 잎과는 구별되는 특유의 장식적인 잎사귀 사이로 사과나무들이 하얀 새틴 같은 꽃잎을 활짝 펴거나 붉게 물든 꽃봉오리를 수줍게 매달고 있었다. 메제글리즈 쪽에서 나는 처음으로 햇빛 아래 사과나무가 만드는 둥근 그림자와, 석양이 나뭇잎 아래로 비스듬히 짜내는 만질 수 없는 황금빛 실을 보았다. 아버지가 지팡이로 건드려도 결코 흐트러지지 않는 그 빛줄기를 보았다.

때때로 오후의 하늘에 달이 흰 구름처럼 지나갔다. 그것은 아무런 광채도 없이 은밀하게 지나가는 모습이 마치 자신의 출연 시간이 아닌데 객석에서 평상복 차림으로 동료들의 연기를 잠시 지켜보다 사라지는 배우 같았다. 나는 그림이나 책에서 달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런 예술 작품들은 – 적어도 초기에는, 블로슈가 내 눈과 생각을 더 섬세한 조화에 익숙하게 만들기 전까지는 – 지금 내가 달을 아름답다고 여기는 작품들과는 매우 달랐고, 그때의 나는 그런 작품들에서 달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생틴느의 소설이나, 은빛 초승달이 하늘에 선명하게 새겨진 글레르의 풍경화 같은 것들이었다. 이런 작품들은 내 인상만큼이나 순진하게 미완성된 것이어서 할머니의 자매들은 내가 그런 작품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분개했다. 그들은 어린이들 앞에 놓아야 할 작품, 그리고 어린이들이 먼저 좋아하는 것이 좋은 취향의 증거가 되는 작품은 성인이 되어서도 변함없이 감탄하게 되는 작품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틀림없이 그들은 미적 가치를 물질적 대상처럼 여겼을 것이다. 열린 눈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천천히 그에 상응하는 것을 키워내지 않고도 그것을 인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몽주벵이라는 집은 메제글리즈 쪽 큰 연못 옆, 덤불 언덕에 기대어 있었다. 뱅퇴유 씨는 그 집에 살았다. 우리는 종종 그의 딸이 마차를 전속력으로 몰고 지나가는 모습을 길에서 마주쳤다. 어느 해부터인가 그녀는 더 이상 혼자 다니지 않았다. 나이 든 여자 친구와 함께였다. 그 여자는 마을에서 좋은 평판을 얻지 못했다. 어느 날, 그 여자는 몽주벵에 아예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불쌍한 뱅퇴유 씨는 딸에 대한 애정에 눈이 멀어서 사람들이 하는 말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걸까? 그는 부적절한 말 한마디에도 화를 내는 사람인데, 어떻게 자기 딸이 그런 여자와 한집에서 살도록 허락할 수 있지? 그는 그 여자가 뛰어난 여성이고 훌륭한 마음을 지녔으며, 음악에 놀라운 재능이 있다고 말한다. 그 여자가 딸과 함께 음악 외에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건 분명해.” 뱅퇴유 씨는 그렇게 말했다. 사실, 어떤 사람이 육체적 관계를 맺고 있는 다른 사람의 부모에게 그 사람의 도덕적 자질에 대해 칭찬을 듣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육체적 사랑은 너무나 부당하게 비난받지만, 모든 존재로 하여금 자신이 가진 선함과 헌신의 가장 작은 부분까지 드러내도록 강요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눈에도 빛나 보인다. 페르스피드 박사는 굵은 목소리와 짙은 눈썹 덕분에 악역을 맡을 수 있었지만, 그의 확고하고 부당한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그런 역할을 맡을 수 있었다. 그는 거칠게 말하며 신부와 모든 사람을 눈물 나게 웃게 만들었다. “그래, 그녀가 친구와 음악을 한다더군. 당신들이 놀라는 것 같군. 난 모르겠소. 뱅퇴유가 어제 또 그렇게 말하더군. 결국, 그 아이가 음악을 좋아할 권리가 있지. 난 아이들의 예술적 재능을 억압하는 걸 반대하오. 뱅퇴유도 그렇고. 그도 딸 친구와 음악을 한다더군. 제기랄, 저 집에서 음악을 엄청 하는 모양이지. 하지만 뭘 웃는 거요? 저 사람들은 음악을 너무 많이 해. 며칠 전 묘지 근처에서 뱅퇴유를 만났는데, 그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더군.”

그 당시 우리처럼 뱅퇴유 씨를 본 사람들은 그가 아는 사람들을 피하고, 그들을 보면 돌아서는 모습, 몇 달 만에 늙어버린 모습, 슬픔에 빠져 있는 모습, 딸의 행복을 위한 일 외에는 어떤 노력도 할 수 없는 모습, 아내의 무덤 앞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았다. 그가 슬픔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가 떠도는 소문을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그는 그 소문을 알고 있었고, 어쩌면 그것을 믿기까지 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덕망 있는 사람이라도 상황의 복잡성 때문에 하루아침에 가장 강력히 비난하던 악행과 친숙하게 지내게 될 수 있다. 물론 그 악행을 완전히 인식하지는 못하겠지만, 그것이 특정한 모습으로 변장하고 그 사람과 접촉하여 고통을 줄 때 – 이상한 말, 설명할 수 없는 태도, 어느 저녁의 그 사람, 그 사람에게는 사랑할 이유가 너무나 많은 그 사람의 모습으로 –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뱅퇴유 씨 같은 사람에게는 보헤미안의 세계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상황에 굴복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은 자연이 아이에게 심어준 악덕이 자신의 자리와 안전을 확보해야 할 때마다 발생한다. 때로는 단순히 아버지와 어머니의 미덕을 섞는 것만으로도, 마치 눈의 색깔처럼 그런 일이 일어난다. 뱅퇴유 씨가 딸의 행실을 알고 있었다고 해서 그녀에 대한 숭배가 줄어들었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은 우리의 신념이 살아가는 세계에 침투하지 못한다. 사실들은 신념을 만들어내지 않았고, 그것들을 파괴하지도 않는다. 사실들은 끊임없이 신념을 부정하지만 그것들을 약화시키지는 못한다. 불행이나 질병의 폭풍이 연이어 닥쳐와도, 한 가족 안에서 끊임없이 병이 이어져도 그녀는 자신의 신의 선함이나 의사의 재능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뱅퇴유 씨가 세상의 관점에서, 즉 그들의 평판이라는 관점에서 자신과 딸을 생각할 때, 그는 그들이 차지하는 일반적인 평가의 위치를 찾으려 했다. 그때 그는 이 사회적 판단을 콩브레에서 그에게 가장 적대적인 사람이 내렸을 법한 그대로 내렸다. 그는 딸과 함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자신을 보았고, 그의 태도는 최근 그 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겸손과 존경을 띠게 되었다. 그는 그들을 아래에서 올려다보았다(그들이 지금까지 그보다 훨씬 아래에 있었다 하더라도). 그는 그들에게 다가가려는 경향을 보였는데, 이는 모든 몰락의 거의 기계적인 결과였다.

어느 날 우리가 스완과 함께 콩브레의 한 거리를 걸을 때, 뱅퇴유 씨가 다른 거리에서 나와 우리를 피할 시간도 없이 너무 갑자기 우리와 마주쳤다. 스완은 세상 물정에 밝은 사람 특유의 오만한 자비심으로, 모든 도덕적 편견이 무너진 가운데 타인의 불명예에서 그에 대한 호의를 베풀 이유만을 찾았다. 그 호의의 증거는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더욱 귀중하게 여겨질수록 그것을 주는 사람의 자존심을 더욱 간지럽혔다. 스완은 뱅퇴유 씨와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다. 그는 지금까지 뱅퇴유 씨에게 말을 걸지 않았었다. 그리고 우리와 헤어지기 전에 그는 뱅퇴유 씨에게 언젠가 딸을 탕송빌에 보내 연주하게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2년 전이었다면 이런 초대는 뱅퇴유 씨를 분노하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너무나 감사한 마음에 차 있어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무례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완의 딸에 대한 친절함은 그 자체로 너무나 영예롭고 즐거운 지지처럼 보여서, 그는 아마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순수하게 그것을 간직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얼마나 멋진 분인가요,” 스완이 우리와 헤어진 후 그가 말했다. 그의 말투에는 영리하고 예쁜 중산층 여인들이 미운 데다 멍청한 공작 부인을 존경하고 매료되어 하는 것과 같은 열렬한 경외심이 담겨 있었다. “얼마나 멋진 분인가요! 그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결혼을 했다는 게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그리고 나서, 가장 성실한 사람들조차도 위선이 섞여 있어 어떤 사람과 대화할 때는 그 사람에 대한 의견을 버리고 그 사람이 자리를 떠나자마자 표현한다는 것을 보여주듯, 내 부모님은 뱅퇴유 씨와 함께 스완의 결혼에 대해 원칙과 예의 차원에서 한탄했다. 그들이 뱅퇴유 씨와 공통으로 이를 언급했다는 사실 자체로(같은 부류의 정직한 사람들로서) 그들은 몽주뱅에서는 이를 어기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뱅퇴유 씨는 딸을 스완에게 보내지 않았다. 스완은 이를 가장 먼저 아쉬워했다. 뱅퇴유 씨와 헤어질 때마다 그는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 아마도 친척일 것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에 대해 얼마 전부터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는 걸 기억했다. 이번에는 뱅퇴유 씨가 딸을 탕송빌에 보낼 때 반드시 그에게 할 말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메세글리즈 쪽으로 향하는 산책길은 콩브레 주변에서 우리가 즐겨 걷던 두 길 중 더 짧았다. 그래서 날씨가 불안정할 때는 늘 그쪽을 선택했다. 메세글리즈 쪽은 비가 자주 내렸고, 우리는 울창한 루생빌 숲 가장자리를 늘 시야에 두고 있었다. 비를 피할 수 있도록 말이다.

종종 태양은 구름 뒤로 숨었다. 그러면 그 타원형 윤곽이 뒤틀리고 가장자리가 노랗게 물들었다. 시골 특유의 밝은 빛은 사라졌지만, 빛 자체는 여전히 존재했다. 모든 생명이 멈춘 듯 보이는 가운데, 작은 루생빌 마을은 하얀 능선을 하늘에 대고 있었다. 마치 압도적인 정밀함과 완성도로 조각된 듯했다. 바람이 살짝 불자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가 멀리 사라졌다. 하얀 하늘을 배경으로 먼 숲은 더욱 푸르게 보였다. 마치 옛 저택의 문설주를 장식하는 카마이유처럼 말이다.

하지만 어떤 때는 안경점 진열장에 있던 카푸친 수도사가 예고했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물방울들은 마치 함께 날개를 펼치는 철새 무리처럼 빽빽한 대열을 이루며 하늘에서 떨어졌다. 그들은 서로 떨어지지 않고 빠른 여행 중에 모험을 하지 않았다. 각자 자리를 지키며 뒤따르는 물방울을 끌어당겼고, 하늘은 제비들이 떠날 때보다 더 어두워졌다. 우리는 숲 속으로 피신했다. 그들의 여행이 끝난 것 같을 무렵, 몇몇 더 약하고 느린 물방울들이 아직도 도착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피난처에서 나왔다. 물방울들은 나뭇잎을 좋아했고, 땅은 이미 거의 말랐지만 한 방울이 나뭇잎의 맥 위에서 놀다가 끝에 매달려 쉬고 있다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다가 갑자기 가지 전체의 높이에서 미끄러져 우리 코 위로 떨어졌다.

우리는 종종 생탕드레 데 샹 교회 현관 아래로 피신하곤 했다. 성인들과 족장들의 석상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이 교회는 얼마나 프랑스적이었던가! 문 위에는 성인들, 기사 왕들, 백합 문양을 든 이들, 결혼식과 장례식 장면들이 묘사되어 있었다. 프랑수아즈가 꿈속에서 볼 법한 모습 그대로였다. 조각가는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와 베르길리우스에 관한 일화들을 묘사했다. 프랑수아즈가 부엌에서 성 루이에 대해 마치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이야기하고, 대개 내 조부모를 ‘정의롭지 못하다’고 비난하기 위해 비교하곤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말이다. 중세 예술가와 19세기까지 살아남은 중세 농부가 고대사나 기독교사에 대해 가지고 있던 관념은 부정확하면서도 순진했다. 그들은 그것을 책이 아닌 고대의, 직접적이고, 끊임없이 이어져 온 구전 전통에서 얻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전통은 왜곡되고 알아보기 힘들지만, 여전히 살아 있었다.

내가 생탕드레 데 샹의 고딕 조각에서 또 하나 알아볼 수 있었던 콩브레의 인물은 카뮈네 가게의 점원인 젊은 테오도르였다. 프랑수아즈는 그에게서 고향 사람이자 동시대인을 너무나 잘 느꼈다. 레오니 고모가 너무 아파서 프랑수아즈 혼자서는 그를 침대에서 일으키거나 안락의자로 옮길 수 없을 때, 그녀는 부엌 하녀가 올라가 고모의 ‘환심을 사는’ 것을 허용하느니 차라리 테오도르를 불렀다. 이 청년은 이유 있게 그토록 나쁜 평판을 가지고 있었지만, 생탕드레 데 샹을 장식했던 영혼으로 너무나 충만해 있었다. 특히 프랑수아즈가 ‘불쌍한 병자들’과 ‘그녀의 불쌍한 주인’에게 마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존경심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는 고모의 머리를 베개 위로 들어올릴 때 쓰러지는 성모 주위에서 촛불을 들고 서두르는 부조의 작은 천사들처럼 순진하고 열성적인 표정을 지었다. 마치 겨울의 나무들처럼 회색빛이 도는 벌거벗은 조각된 돌 얼굴들이 단지 잠들어 있는 것일 뿐이며, 테오도르의 얼굴처럼 경건하고 영리한 무수한 대중적 얼굴들로 다시 꽃 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얼굴은 익은 사과의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작은 천사들처럼 현관에 붙어있지 않고 현관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인간보다 더 큰 키에, 습한 땅에 발을 대지 않으려는 듯 받침대 위에 서 있는 성녀 조각상이 있었다. 그녀는 통통한 볼과 단단한 가슴을 지녔는데, 그 가슴은 마치 망사 주머니 속의 익은 포도송이처럼 옷 주름을 부풀리고 있었다. 그녀는 좁은 이마와 짧고 앙증맞은 코, 깊숙이 파인 눈동자를 가졌으며, 이 지방 농부 여인들의 건강하고 무감각하며 용감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 유사성은 내가 찾지 않았던 부드러움을 조각상에 불어넣었고, 우리처럼 비를 피해 온 시골 소녀들에 의해 자주 확인되곤 했다. 그들의 존재는 마치 조각된 나뭇잎 옆에서 자란 덩굴 식물처럼, 예술 작품의 진실성을 자연과 대조하여 판단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았다.

우리 앞 멀리, 약속의 땅 또는 저주받은 땅인 루생빌이 보였다. 나는 그곳의 성벽 안으로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루생빌은 때때로 우리에게는 비가 그쳤는데도 계속해서 성경 속 마을처럼 폭풍우의 모든 창들에 의해 비스듬히 채찍질당하는 주민들의 거처였다. 또는 이미 하나님 아버지께 용서받아 그분이 불규칙한 길이로 제단의 성체현시대 광선처럼 다시 나타난 태양의 술 달린 황금빛 줄기를 내려보내시는 곳이기도 했다.

때로는 날씨가 완전히 망가져 집으로 돌아가 갇혀 있어야 했다. 멀리 시골 곳곳에 어둠과 습기로 인해 마치 바다처럼 보이는 곳에, 밤과 물에 잠긴 언덕 기슭에 매달린 고립된 집들이 밤새 먼 바다에 정박해 있을 작은 배들처럼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비가 무슨 상관인가, 폭풍우가 무슨 상관인가! 여름에 악천후는 단지 기저에 있는 고정된 좋은 날씨의 일시적이고 표면적인 변덕일 뿐이었다. 이는 불안정하고 유동적인 겨울의 좋은 날씨와는 매우 달랐다. 오히려 땅에 자리 잡아 빗물이 영구적인 기쁨의 저항을 손상시키지 않고 떨어질 수 있는 빽빽한 잎사귀로 굳어진 여름은, 계절 내내 마을의 거리와 집들, 정원의 벽에 자주색이나 흰색 비단 깃발을 달아놓았다. 저녁 식사 시간을 기다리며 작은 응접실에 앉아 책을 읽고 있을 때, 나는 마로니에 나무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소나기는 단지 잎사귀에 광택을 내줄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들은 여름의 보증으로 비 오는 밤 내내 그곳에 머물며 좋은 날씨의 연속성을 보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내일 탄송빌의 하얀 울타리 위로 심장 모양의 작은 잎사귀들이 여전히 수없이 물결칠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슬픔 없이 페르샹 거리의 포플러 나무가 폭풍우에 필사적인 간청과 인사를 보내는 것을 바라보았다. 슬픔 없이 정원 깊숙한 곳에서 울리는 마지막 천둥소리가 라일락 속에서 구구 소리를 내는 것을 들었다.

아침부터 날씨가 나쁘면 부모님은 산책을 포기하셨고 나는 외출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에 나는 그런 날에 혼자 메제글리즈 라 비뇌즈 쪽으로 산책하는 습관을 들였다. 이는 우리가 레오니 고모의 유산 상속 때문에 콩브레[Combray]로 와야 했던 가을이었다. 그녀는 마침내 세상을 떠났는데, 이로써 그녀의 쇠약하게 만드는 생활 방식이 결국 그녀를 죽일 것이라고 주장했던 사람들과, 그녀가 상상 속의 병이 아닌 실제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항상 주장했던 다른 이들 모두의 승리를 동시에 이루어 냈다. 회의론자들은 그녀가 그 병으로 죽었을 때 그 증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죽음은 단 한 사람에게만 큰 슬픔을 안겨주었는데, 그 사람은 야만적이었다. 레오니 고모의 마지막 병이 15일 동안 지속되는 동안 프랑수아즈는 단 한 순간도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옷도 벗지 않고, 누구도 그녀를 돌보게 하지 않았으며, 시신이 매장될 때까지 떠나지 않았다. 그때 우리는 프랑수아즈가 고모의 나쁜 말과 의심, 분노 속에서 살아온 일종의 두려움이 그녀 안에 존경심과 사랑을 키웠다는 것을 이해했다. 우리가 미움이라고 생각했던 감정이 실은 존경과 사랑이었던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리고, 속임수를 쉽게 간파하며, 마음을 쉽게 움직일 수 있는 그녀의 진정한 주인, 그녀의 주권자이자 신비롭고 전능한 군주는 이제 없었다. 그녀 옆에서 우리는 거의 아무것도 아니나 다름없었다. 우리가 콩브레에서 휴가를 보내기 시작했을 때 프랑수아즈의 눈에 고모만큼 위신이 있었던 시절은 이미 멀어졌다. 그 가을, 부모님은 서류 작성과 공증인, 소작인들과의 면담으로 바빠 날씨도 좋지 않은데 산책할 여유가 거의 없으셨다. 그래서 그들은 내가 혼자 메제글리즈 쪽으로 산책을 가는 것을 허락하셨다. 나는 비를 피할 수 있는 큰 체크무늬 숄을 둘렀는데, 이는 프랑수아즈의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정신 속에는 옷의 색깔이 애도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생각을 집어넣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모의 죽음에 대한 우리의 슬픔이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리가 큰 장례식 만찬을 열지 않았고, 그녀에 대해 이야기할 때 특별한 목소리를 내지 않았으며, 때로는 내가 노래를 흥얼거리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나는 책에서라면 – 이 점에서 나는 프랑수아즈와 똑같았다 – 롤랑의 노래와 생탕드레 데 샹 포털에 따른 이런 애도 개념이 나에게 공감을 얻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프랑수아즈가 내 옆에 있을 때마다, 악마가 나를 부추겨 그녀를 화나게 하고 싶어졌다. 나는 사소한 구실을 잡아 고모가 우스운 점이 있었음에도 좋은 여자였기 때문에 그녀를 그리워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내 고모였기 때문이 아니라, 내 고모였더라도 나에게 혐오스러울 수 있었고 그녀의 죽음이 나에게 아무런 슬픔도 주지 않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말들은 책에서라면 나에게 어리석게 보였을 것이다.

그때 프랑수아즈는 시인처럼 슬픔과 가족의 추억에 대한 혼란스러운 생각들로 가득 차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줄 모른다고 변명했다. 나는 이런 고백을 페르세피에드 박사에 걸맞은 냉소적이고 잔인한 상식으로 승리했다. 그녀가 “그래도 그녀는 친족이었어요. 친족에게는 늘 존경심을 가져야 해요.”라고 덧붙이면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이런 실수를 하는 문맹과 토론하다니 내가 참 너그럽군.”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명상 속 공정함에서 가장 경멸하는 사람들의 관점을 채택하여 프랑수아즈를 판단했는데, 이는 그들이 삶의 저속한 장면들 중 하나를 연기할 때 매우 능숙하게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들의 관점이었다.

그 가을의 산책은 책을 읽은 후에 하는 것이어서 더욱 즐거웠다. 아침 내내 응접실에서 책을 읽다 지치면, 숄을 어깨에 두르고 나갔다.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제자리에서 활기와 속도를 축적한 내 몸은 마치 풀어놓은 팽이처럼 그 에너지를 사방으로 발산할 필요가 있었다. 집들의 벽, 탄송빌의 울타리, 루생빌 숲의 나무들, 몽주뱅에 기대어 있는 덤불들이 내 주먹질을 받아냈다.

우산이나 지팡이를 짚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고, 즐거운 외침 소리도 들렸다. 이 모든 것은 나를 들뜨게 하는 혼란스러운 생각에 불과했다. 그 생각들은 빛 속에서 안식을 얻지 못했다. 느리고 어려운 해명 대신 즉각적인 출구로 쉽게 빠져나가는 즐거움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느낀 것에 대한 대부분의 이른바 번역은 그것을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모호한 형태로 우리에게서 빠져나가게 함으로써 우리를 그것으로부터 해방시킬 뿐이다.

메세글리즈 쪽에서 얻은 것들, 그 우연한 틀이 되어준 소박한 발견들의 목록을 세워보려 할 때, 나는 그해 가을 산책 중 하나에서 몽주뱅을 보호하는 덤불 언덕 근처에서 우리의 인상과 그것의 일상적인 표현 사이의 불일치를 처음으로 깨달았던 순간을 기억한다. 한 시간 동안 비와 바람에 맞서 즐겁게 걸어간 후, 뱅퇴유 씨의 정원사가 정원 도구를 보관하는 작은 기와 오두막 앞 몽주뱅의 연못가에 도착했을 때 태양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소나기에 씻긴 태양의 금빛이 하늘과 나무, 오두막 벽과 아직 젖어 있는 기와 지붕 위에서 새롭게 빛났다. 지붕 꼭대기에서는 닭 한 마리가 산책하고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벽에서 자란 잡초와 닭의 솜털이 바람 따라 길게 늘어져 있었다. 태양이 다시 수면을 반사하게 만든 연못에는 기와 지붕이 분홍빛 대리석 무늬를 만들어냈다. 나는 그것을 전에 본 적이 없었다. 물과 벽면에 하늘의 미소에 답하는 듯한 창백한 미소를 보고, 나는 열정에 사로잡혀 접은 우산을 휘두르며 외쳤다. “아차, 아차, 아차, 아차.” 그러나 동시에 나는 이 불투명한 말에 그치지 말고 내 황홀감을 더 명확히 보려고 노력했어야 한다고 느꼈다.

그때 또한 – 지나가던 한 농부 덕분에, 그는 이미 꽤 심술궂은 표정이었는데 내 우산이 그의 얼굴에 거의 닿을 뻔해 더 심술이 났고, 내가 “날씨 좋죠, 걷기 좋아요”라고 말했을 때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 나는 같은 감정이 모든 사람에게 동시에, 미리 정해진 순서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후에 긴 독서로 대화하고 싶은 기분이 들 때마다, 내가 말을 걸고 싶어 하는 친구는 막 대화의 즐거움에 빠져 이제는 조용히 읽고 싶어 했다. 내가 부모님을 다정하게 생각하며 그분들을 기쁘게 해드릴 가장 현명한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할 때, 그분들은 같은 시간 동안 내가 잊고 있던 사소한 잘못을 알게 되어 내가 그분들을 안으려고 달려갈 때 엄하게 꾸짖으셨다. 때로는 고독이 주는 흥분에 다른 흥분이 더해져 그것을 명확히 구분할 수 없었는데, 그것은 내 팔에 안을 수 있는 농촌 처녀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욕망 때문이었다. 매우 다른 생각들 속에서 갑자기 생겨나 그 원인을 정확히 추적할 시간도 없이, 그것이 동반하는 즐거움은 단지 그 생각들이 주는 즐거움의 상위 단계로만 여겨졌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에 더 큰 가치를 부여했다. 기와 지붕의 분홍빛 반사, 잡초들, 오래전부터 가고 싶어 했던 루생빌 마을, 그 마을의 숲과 교회 종탑에, 이 새로운 감동이 그것들을 더욱 바람직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그것들이 이 감동을 일으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감동은 강력하고 알 수 없는 순풍으로 내 돛을 부풀려 더 빨리 그것들에게로 나아가게 하려는 듯했다.

하지만 여자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이 욕망이 자연의 매력에 더욱 흥분되는 무언가를 더한다면, 자연의 매력은 반대로 여자에 대한 욕망이 가질 수 있는 제한된 면을 확장시켰다. 나에게는 나무들의 아름다움이 여자의 아름다움이기도 한 것 같았고, 이 지평선과 루생빌 마을, 그해 내가 읽은 책들의 영혼을 그녀의 키스가 내게 전해줄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상상력은 감각의 접촉으로 힘을 얻고, 내 감각은 상상력의 모든 영역으로 퍼져나가 내 욕망은 한계가 없어졌다. 그것은 또한 – 자연 속에서 꿈꾸는 이런 순간들에 일어나듯이, 습관의 작용이 중단되고 사물에 대한 우리의 추상적 개념들이 제쳐져 우리가 있는 장소의 독창성과 개별적 삶을 깊이 믿게 될 때 – 내 욕망이 부르는 지나가는 여인이 단순히 ‘여자’라는 일반적 유형의 한 예가 아니라 이 땅의 필연적이고 자연스러운 산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는 나 자신이 아닌 모든 것, 땅과 존재들이 어른들에게 보이는 것보다 더 귀중하고 중요하며 더 실제적인 존재를 지닌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는 땅과 존재들을 분리하지 않았다. 나는 메세글리즈나 루생빌의 농촌 처녀, 발벡의 어부 소녀를 갈망했다. 마치 메세글리즈와 발벡을 갈망하듯이. 그들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은 내가 마음대로 조건을 바꾼다면 덜 진실해 보였을 것이고, 나는 그것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파리에서 발벡의 어부 소녀나 메세글리즈의 농촌 처녀를 알게 된다는 것은 해변에서 보지 못한 조개껍데기를 받거나 숲에서 찾지 못한 고사리를 받는 것과 같았을 것이다. 그것은 내 상상력이 그녀를 감싸고 있던 모든 즐거움을 여자가 주는 즐거움에서 빼앗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루생빌의 숲을 껴안을 처녀 없이 돌아다니는 것은 이 숲의 숨겨진 보물, 깊은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나뭇잎 사이로만 보이는 이 소녀는 내게 다른 식물들보다 더 높은 종류의 지역 식물 같았다. 그녀의 구조는 그 지방의 깊은 맛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이를 더욱 쉽게 믿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나를 그곳으로 이끌어줄 애무가 다른 여자에게서는 알 수 없는 특별한 종류의 즐거움일 것이라고). 나는 아직 오랫동안 그 즐거움을 맛보았던 다른 여자들로부터 추상화하지 않은 나이였고, 그것을 항상 동일한 즐거움의 호환 가능한 도구로 여기게 만드는 일반적인 개념으로 환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심지어 정신 속에서 고립되어 분리되고 공식화된 채로 존재하지 않았다. 여자에게 다가갈 때 추구하는 목표로서, 또는 미리 느끼는 동요의 원인으로서. 그것을 즐거움으로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그녀의 매력이라고 불렀다.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것만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렴풋이 기다려지고 내재되어 숨겨져 있던 그것은, 우리 곁에 있는 그녀의 다정한 눈길과 키스가 주는 다른 즐거움들을 그것이 이루어지는 순간에 극도로 고조시켜, 우리에게는 주로 우리 동반자의 선한 마음에 대한 일종의 감격의 표현으로 보이게 했다.

우리를 향한 감동적인 편애를 우리는 그녀가 베푸는 은혜와 행복으로 측정한다.

아, 나는 루생빌 르팽의 탑에 헛되이 애원했다. 마치 내 첫 욕망의 유일한 비밀 공모자에게 하듯이, 그 마을 아이들을 내게 보내 달라고 간청했었다. 콩브레 집 꼭대기, 아이리스 향이 나는 작은 방에서 반쯤 열린 창문의 네모진 틀 사이로 오직 그 탑만 보였다. 그때 나는 탐험을 시작하는 여행자나 자살을 결심한 절망한 사람처럼 망설였다. 기진맥진한 채 내 안에 미지의 길을 열었고, 그 길이 치명적일 것이라고 믿었다. 마치 달팽이가 남긴 자연스러운 흔적이 기울어진 야생 까치밥나무 잎사귀에 더해지는 것처럼. 이제 나는 헛되이 그 탑에 애원했다. 헛되이 시야 안의 공간을 붙잡고, 여자를 데려오고 싶어 하는 눈길로 그곳을 훑었다. 나는 생탕드레 데 샹의 현관까지 갈 수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함께 갔다면 꼭 만났을 농부 여인은 그곳에 없었고, 나는 그녀와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나는 먼 나무 줄기를 끝없이 응시했다. 그 뒤에서 그녀가 나타나 내게로 올 것만 같았다. 살펴본 지평선은 텅 비어 있었고, 밤이 내렸다. 희망 없이 내 주의는 그들이 품고 있을지 모를 생명체를 빨아들이려는 듯 이 메마른 땅, 이 소진된 대지에 매달렸다. 이제 더 이상 기쁨이 아닌 분노로 루생빌 숲의 나무들을 때렸다. 그 나무들 사이에서 살아있는 존재는 나오지 않았다. 마치 파노라마 천에 그려진 나무들인 양. 그토록 갈망했던 여인을 팔에 안아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없어 괴로워하면서도, 나는 결국 콩브레로 돌아가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를 내 길에 마주치게 할 우연의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고 있음을 인정하며. 게다가 그녀가 거기 있었더라도 내가 감히 말을 걸 수 있었을까? 그녀가 나를 미친 사람으로 여겼을 것 같았다. 나는 다른 존재들과 공유하고, 내 밖에서도 진실한 것으로 여겼던 산책 중에 품었던 욕망들이 실현되지 않자 그것들을 믿기를 그만두었다. 그 욕망들은 이제 나의 기질이 만들어낸 순전히 주관적이고, 무력하며, 환상적인 창조물로만 보였다. 그것들은 더 이상 자연, 현실과 어떤 연관도 없었다. 현실은 이제 모든 매력과 의미를 잃고 내 삶에서 그저 관습적인 틀에 불과했다. 마치 소설 속 허구를 위해 여행객이 시간을 때우려 책을 읽는 기차 좌석과도 같았다.

몽주방 근처에서 몇 년 후에 느낀 인상도 아마 이와 비슷했을 것이다. 그때는 모호하게 남아있던 그 인상이, 한참 후에 내가 사디즘에 대해 갖게 된 생각의 근원이 되었다. 나중에 보겠지만, 전혀 다른 이유로 이 인상에 대한 기억이 내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날씨가 무척 더웠다. 부모님은 하루 종일 외출하셔야 해서 내게 원하는 만큼 늦게 들어와도 된다고 하셨다. 나는 기와 지붕의 반사를 보는 걸 좋아하는 몽주방의 연못까지 갔다가, 집을 내려다보는 언덕의 덤불 속 그늘에 누워 잠들었다. 예전에 아버지가 뱅퇴유 씨를 만나러 가셨을 때 기다렸던 바로 그 자리였다. 잠에서 깼을 때는 거의 밤이 되어 있었다. 일어나려고 했지만 뱅퇴유 양을 보았다. (그녀를 알아볼 수 있는 한에서였다. 콩브레에서 그녀를 자주 보지 못했고, 그때는 아직 어린아이였는데 이제 막 젊은 여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아마도 막 돌아온 듯했다. 나와 불과 몇 센티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내 아버지를 맞이했던 그 방에서. 그녀는 그곳을 자신만의 작은 거실로 만들어놓았다. 창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램프에 불이 켜져 있어서 나는 그녀의 모든 움직임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보지 못했다. 내가 떠나려 하면 덤불이 바스락거려 그녀가 듣고 내가 그녀를 몰래 엿보려고 숨어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녀는 깊은 상복 차림이었다. 아버지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녀를 찾아가지 않았다. 어머니가 원치 않으셨다. 어머니의 선함을 제한하는 유일한 미덕인 수줍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녀를 깊이 동정하셨다. 어머니는 뱅퇴유 씨의 슬픈 말년을 떠올리셨다. 처음에는 딸에게 어머니와 보모 역할을 하느라 온통 정신이 팔려 있다가, 나중에는 그 딸이 안겨준 고통으로 괴로워했다. 어머니는 노인의 고통스러운 얼굴을 마지막 시기에 다시 보셨다. 그가 마지막 몇 년간의 작품을 정서하는 것을 영원히 포기했다는 것을 아셨다. 시골 오르간 연주자였던 노교수의 초라한 작품들. 우리는 그것들 자체로는 별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에게는 그것들이 살아갈 이유였기에 경멸하지 않았다. 그는 딸을 위해 그것들을 희생했다. 대부분은 기보조차 되지 않고 그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었고, 일부는 판독할 수 없는 낱장에 적혀 있어 알려지지 않은 채로 남을 것이다. 어머니는 뱅퇴유 씨가 강요당한 또 다른 더 잔인한 포기를 생각하셨다. 딸을 위한 정직하고 존경받는 행복한 미래에 대한 포기. 내 고모들의 옛 피아노 선생님의 이 극심한 고통을 떠올리실 때마다 어머니는 진정한 슬픔을 느끼셨고, 뱅퇴유 양이 겪고 있을 더욱 쓰라린 고통을 두려움과 함께 생각하셨다. 그 고통에는 아버지를 거의 죽음에 이르게 한 것에 대한 후회도 섞여 있었다. “불쌍한 뱅퇴유 씨,”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그는 딸을 위해 살고 죽었지만, 그 대가를 받지 못했어. 죽은 후에 그 대가를 받을 수 있을까? 어떤 형태로? 그것은 오직 그의 딸에게서만 올 수 있을 텐데.”

뱅퇴유 양의 거실 안쪽, 벽난로 위에는 아버지의 작은 초상화가 놓여 있었다. 도로에서 마차 바퀴 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재빨리 그것을 가지러 갔다. 그리고 소파에 몸을 던지듯 앉아 그 옆에 있는 작은 탁자를 가까이 끌어당겨 그 위에 초상화를 올려놓았다. 마치 예전에 뱅퇴유 씨가 내 부모님께 연주해드리고 싶어 하던 곡을 자기 옆에 두었던 것처럼. 곧 그녀의 친구가 들어왔다. 뱅퇴유 양은 일어나지 않고 그녀를 맞이했다. 두 손을 머리 뒤로 하고 소파의 반대쪽 끝으로 물러나 앉아 그녀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하지만 곧 그렇게 하면 친구에게 귀찮은 자세를 강요하는 것 같아 그녀는 친구가 소파에서 멀리 떨어진 의자에 앉는 것을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행동이 무례하다고 여겨 마음이 불편해졌다. 소파 전체를 차지하며 눈을 감고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잠이 오는 것이 소파에 그렇게 누운 유일한 이유라고 말하려는 듯이. 친구와의 거친 친밀함과 지배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에게서 아버지의 공손하고 조심스러운 몸짓, 갑작스러운 양심의 가책을 알아볼 수 있었다. 곧 그녀는 일어나 창문 덧문을 닫으려는 척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냥 다 열어둬, 덥잖아.” 친구가 말했다.

“하지만 짜증 나. 사람들이 우리를 볼 거야.” 뱅퇴유 양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마도 친구가 자신이 그 말을 한 이유가 단지 친구로 하여금 특정한 다른 말들을 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녀는 실제로 그 말을 듣고 싶어 했지만, 신중함 때문에 친구가 먼저 그 말을 꺼내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녀의 시선은, 내가 구별할 수는 없었지만, 내 할머니가 그토록 좋아하시던 표정을 지었음에 틀림없었다. 그녀는 재빨리 덧붙였다.

“우리가 본다고 할 때, 우리가 읽는 것을 본다는 뜻이에요. 아무리 하찮은 일을 하더라도 눈이 여러분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짜증 나요.”

본능적인 관대함과 무의식적인 예의로 그녀는 자신의 욕망을 완전히 실현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던 계획된 말들을 침묵했다. 그리고 매 순간 그녀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수줍고 애원하는 처녀가 거칠고 승리에 찬 불량배를 물리치며 간청했다.

“그래요, 이런 시간에 이 번화한 시골에서 우리를 보고 있을 가능성이 높죠.”라고 그녀의 친구가 냉소적으로 말했다. “그래서 어떻단 말이에요? 그녀는 덧붙였다(뱅퇴유 양에게 기쁨을 줄 것이라고 알고 있는 대사를 선의로 낭송하면서 장난기 어린 눈짓을 곁들이며, 냉소적인 투로 말하려고 애썼다). “설령 우리를 본다 해도 그게 더 좋은 거죠.”

뱅퇴유 양은 몸을 떨며 일어섰다. 그녀의 양심적이고 예민한 마음은 자신의 감각이 요구하는 장면에 자발적으로 맞춰야 할 말을 알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의 진정한 도덕적 본성에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자신이 되고 싶어 하는 방탕한 소녀의 언어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그 소녀가 진심으로 말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단어들이 그녀의 입에서는 거짓말처럼 들렸다. 그녀가 허용한 얼마 안 되는 말들은 그녀의 소심한 습관이 대담한 의지를 마비시키는 어색한 어조로 말해졌고, “춥지 않아? 너무 덥지 않아? 혼자 있고 싶지 않아? 읽고 싶지 않아?”라는 말들이 섞여 나왔다.

“아가씨의 생각이 오늘 밤 아주 음란한 것 같네요.”라고 그녀는 마침내 말했다. 아마도 전에 친구의 입에서 들었던 문장을 반복한 것이리라.

뱅퇴유 양은 크레이프 블라우스의 깊게 파인 부분에서 친구가 키스하는 것을 느끼고 작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그들은 서로를 쫓으며 뛰어다녔고, 그들의 넓은 소매는 날개처럼 펄럭였으며, 사랑에 빠진 새들처럼 꽥꽥거리고 지저귀었다.

마침내 뱅퇴유 양은 소파에 쓰러졌고, 친구의 몸이 그녀를 덮었다. 하지만 친구는 옛 피아노 선생님의 초상화가 놓여 있는 작은 탁자에 등을 돌리고 있었다. 뱅퇴유 양은 친구가 그것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녀의 주의를 끌기 위해 말했다. 마치 그때서야 그것을 눈치챈 것처럼.

“오!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의 초상화예요. 누가 거기에 놓았는지 모르겠어요. 난 저게 거기 있으면 안 된다고 스무 번이나 말했는데.”

나는 그것이 뱅퇴유 씨가 음악 작품에 대해 내 아버지에게 했던 말이라는 것을 기억했다. 이 초상화는 아마도 그들의 의식적인 모독을 위해 사용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의 친구가 의례적인 대답의 일부인 듯한 말로 대답했기 때문이다.

“그냥 거기 두세요. 이제 우리를 귀찮게 하지 않아요. 당신이 여기 있는 걸 본다면, 창문이 열린 채로, 그가 흐느껴 울거나 당신에게 외투를 입혀주려고 할 거라고 생각해요? 못생긴 원숭이 같으니.”

뱅퇴유 양은 부드러운 질책의 말로 대답했다. “그만해, 그만해.” 이는 그녀의 본성이 선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아버지에 대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 그녀에게 분노를 일으킬 수 있다는 감정 때문이 아니었다(분명히 그것은 그녀가 이런 순간에 어떤 궤변으로 억누르는 데 익숙해진 감정이었다). 그것은 그녀의 친구가 주려고 하는 즐거움에 대해 이기적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그녀 스스로가 걸어두는 제동장치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미소 띤 절제, 이 신성모독에 대한 대답, 이 위선적이고 부드러운 질책은 아마도 그녀의 솔직하고 선한 본성에게는 특별히 불경스러운 형태, 그녀가 동화하려고 노력하는 사악함의 달콤한 형태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무방비 상태의 죽은 자에 대해 그토록 무자비한 사람에게서 부드럽게 대우받는 즐거움의 유혹을 견딜 수 없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그녀의 딸이었던 것처럼 순결하게 이마에 키스하도록 친구의 무릎 위로 뛰어올랐다. 그들이 이렇게 함께 뱅퇴유 씨의 아버지로서의 지위를 무덤에서까지 빼앗는 잔인함의 극단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즐겁게 느꼈다. 그녀의 친구는 뱅퇴유 양에 대한 큰 애정과 이제는 너무나 슬픈 고아의 삶에 약간의 기분전환을 주고 싶은 욕구로 인해 쉽게 할 수 있었던 순종으로 그녀의 머리를 손에 들고 이마에 키스했다.

“이 끔찍한 늙은이에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아?”라고 그녀가 초상화를 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뱅퇴유 양의 귀에 대고 내가 들을 수 없는 무언가를 속삭였다.

“오! 당신은 감히 그러지 못할 거예요.”

“감히 그 위에 침을 뱉지 못할 거라고요? 저 위에?”라고 친구가 의도적인 거칠음으로 말했다.

나는 더 이상 듣지 못했다. 왜냐하면 뱅퇴유 양이 지친 듯, 어색하고, 바쁘고, 정직하고 슬픈 표정으로 셔터와 창문을 닫으러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뱅퇴유 씨가 살아생전 딸 때문에 겪었던 모든 고통에 대해, 그가 죽은 후 딸에게서 받은 보답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후로 뱅퇴유 씨가 이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면, 아직 딸의 선한 마음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을 것이고, 아마도 그것이 전적으로 잘못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뱅퇴유 양의 습관에서 악의 모습은 너무나 완벽한 수준으로 드러나서, 사디스트가 아니고서는 그 정도의 완벽함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아버지를 위해서만 살았던 아버지의 초상화에 친구가 침을 뱉도록 하는 딸의 모습은 시골집의 램프 아래보다는 대로변 극장의 무대 조명 아래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직 사디즘만이 멜로드라마의 미학에 실제 삶의 기반을 제공한다. 현실에서는, 사디즘의 경우를 제외하고, 한 소녀가 죽은 아버지의 기억과 의지에 대해 뱅퇴유 양만큼 잔인한 결점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녀는 그것을 이렇게 원시적이고 순진한 상징주의의 행위로 명시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의 행동이 범죄적인 면은 다른 이들의 눈에, 그리고 자신에게도 더 가려질 것이며, 그녀는 자신에게 고백하지 않은 채 악을 저지를 것이다. 하지만 표면적인 것을 넘어서, 뱅퇴유 양의 마음속에서 악은, 적어도 처음에는, 순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 같은 사디스트는 악의 예술가이다. 완전히 악한 사람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악이 그에게 외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여겨질 것이고, 그 자신과 구별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덕, 죽은 자들의 기억, 자식으로서의 애정에 대한 숭배가 없기 때문에 그것들을 모독하는 신성모독적인 즐거움을 찾지 못할 것이다. 뱅퇴유 양과 같은 종류의 사디스트들은 너무나 순수하게 감상적이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덕성스러워서 심지어 감각적 쾌락조차 나쁜 것, 악한 자들의 특권으로 여긴다. 그리고 그들이 잠시 자신에게 그것을 허용할 때, 그들은 악한 자들의 피부 속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하고, 그들의 공범자도 그렇게 하도록 한다. 이는 잠시나마 그들의 양심적이고 부드러운 영혼에서 벗어나 비인간적인 쾌락의 세계로 도망쳤다는 환상을 가질 수 있기 위해서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얼마나 그것을 갈망했는지를 이해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그것을 이루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지를 보았기 때문이다.

성공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아버지와 다르기를 원했던 바로 그 순간, 그녀가 내게 상기시킨 것은 그 늙은 피아노 교사의 생각과 말투였다. 그녀가 모독한 것은 사진보다도, 그녀의 쾌락을 위해 이용하면서도 그것들과 그녀 사이에 남아 직접적으로 즐기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것은 그녀 얼굴의 닮은꼴이었다. 그가 가보처럼 물려준 그의 어머니의 푸른 눈이었고, 뱅퇴유 양의 악덕과 그녀 사이에 관용구와 사고방식을 끼워 넣는 친절한 몸짓들이었다. 그것은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고 그녀가 평소에 헌신하던 수많은 예의범절과는 매우 다른 것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했다. 악이 그녀에게 쾌락의 관념을 주는 것이 아니었고, 그것이 즐거워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쾌락이 그녀에게는 사악해 보였다. 그리고 그녀가 거기에 빠질 때마다 그것은 그녀에게 나쁜 생각들을 동반했고, 그 외의 시간에는 그녀의 덕스러운 영혼에서 사라졌기에, 그녀는 결국 쾌락에서 악마적인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것을 악과 동일시하게 되었다. 아마도 뱅퇴유 양은 그녀의 친구가 근본적으로 나쁜 사람이 아니며, 그녀에게 그런 신성모독적인 말을 할 때 진심이 아니라고 느꼈을 것이다. 적어도 그녀는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와 눈빛을 볼 수 있는 즐거움을 가졌다. 그것들은 아마도 거짓일지 모르지만, 그 악덕적이고 저급한 표현에서 선함과 고통의 존재가 아닌 잔인함과 쾌락의 존재가 가졌을 표정과 유사했다. 그녀는 잠시 자신이 정말로 그녀의 아버지의 기억에 대해 야만적인 감정을 느꼈을 그런 타락한 공범자와 함께 그런 게임을 하고 있다고 상상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녀가 자신 안에서, 그리고 모든 사람들 안에서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잔인함의 끔찍하고 영속적인 형태인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을 분별할 수 있었다면, 악이 그토록 드물고 특별하며 이국적인 상태라고, 그곳으로 이주하는 것이 그토록 편안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메제글리즈 쪽으로 가는 것은 꽤 간단했지만, 게르망트 쪽으로 가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산책이 길었기 때문에 날씨가 좋을 것이라고 확신해야 했다. 좋은 날씨가 계속될 것 같았을 때, 프랑수아즈가 “불쌍한 수확물”을 위해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것에 절망하며, 고요하고 푸른 하늘 표면에 떠다니는 드문 흰 구름들만 보고 한탄하며 말했다. “저기 위에서 주둥이를 내밀고 노는 바다개들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아, 그들은 불쌍한 농부들을 위해 비를 내릴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어요! 그리고 밀이 자라면, 그때 비가 내리기 시작할 거예요. 잔잔한 비가 끊임없이 내리겠지요. 마치 바다에 내리듯 무엇에 내리는지도 모른 채 말이에요.” 아버지가 정원사와 기압계로부터 변함없이 좋은 대답을 받았을 때, 우리는 저녁 식사 때 이렇게 말했다. “내일 날씨가 이렇다면, 우리는 게르망트 쪽으로 갈 거예요.” 우리는 점심 식사 직후 정원의 작은 문으로 나가 페르샹 거리로 나섰다. 그곳은 좁고 예리한 각도를 이루고 있었으며, 중앙에는 풀들이 가득했고 그 사이로 두세 마리의 말벌이 하루 종일 식물 채집을 하고 있었다. 그 거리는 이름에서 유래한 듯한 기이한 특징과 까다로운 개성을 지니고 있었고, 오늘날의 콩브레에서는 그 옛 자취 위에 학교가 세워져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몽상은 (르네상스 시대의 제단과 17세기의 제단 아래에서 로마네스크 성가대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믿고 12세기의 모습으로 건물 전체를 되돌리는 비올레 르 뒥의 제자들과 같은 건축가들처럼) 새 건물의 돌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페르샹 거리를 다시 뚫고 “복원”한다. 게다가 이러한 재구성을 위해 그것은 보통의 복원가들보다 더 정확한 자료를 가지고 있다. 내 기억 속에 보존된 몇 가지 이미지들, 아마도 현재 존재하는 마지막 이미지들일 것이고, 곧 사라질 운명에 처한 내 어린 시절 콩브레의 모습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라지기 전에 그 자신이 내 안에 그려 넣은 것이기에 감동적이다. 만약 할머니가 내게 주기 좋아하셨던 영광스러운 초상화들과 비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마치 다 빈치의 걸작과 산 마르코 성당의 정문이 오늘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 보이는 최후의 만찬이나 젠틸레 벨리니의 그림 같은 것이다.

우리는 루아조 거리를 지나 루아조 플레셰의 오래된 여관 앞을 지났다. 17세기에 몽팡시에 공작 부인, 게르망트 공작 부인, 몽모랑시 공작 부인의 마차들이 그들의 소작인들과의 분쟁이나 봉신의 의무 문제로 콩브레에 올 때 그 커다란 안마당으로 들어갔었다. 우리는 나무들 사이로 생틸레르 교회의 종탑이 보이는 산책로에 도착했다. 나는 거기 앉아서 종소리를 들으며 하루 종일 책을 읽고 싶었다. 날씨가 너무나 좋고 고요해서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릴 때면 그것이 하루의 평온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안에 담긴 것을 해방시키는 것 같았다. 마치 종탑이 다른 할 일 없는 사람의 정확하고 태평스러운 모습으로 단지 열기가 서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쌓아 올린 몇 방울의 금빛 방울을 정해진 순간에 짜내어 침묵의 충만함을 표현하고 떨어뜨리는 것 같았다.

게르망트 쪽의 가장 큰 매력은 거의 항상 비본느 강 줄기를 옆에 두고 있다는 것이었다. 집을 떠난 지 10분 만에 옛다리라고 불리는 다리에서 처음으로 강을 건넜다. 우리가 도착한 다음 날, 부활절 날, 날씨가 좋으면 설교가 끝난 후 나는 그곳으로 달려갔다. 큰 축제의 아침의 혼란 속에서 여전히 널브러져 있는 가정용품들이 화려한 준비들로 인해 더욱 초라해 보이는 가운데, 아직 검고 헐벗은 땅들 사이로 이미 하늘빛으로 산책을 나온 강을 보기 위해서였다. 강은 너무 일찍 도착한 뻐꾸기 무리와 이른 앵초들만을 동반하고 있었고, 여기저기에서 푸른 부리를 가진 제비꽃 한 송이가 그 꽃잎에 담긴 향기 방울의 무게에 줄기를 휘어뜨리고 있었다. 옛다리는 여름에는 파란 개암나무 잎으로 덮인 강변 오솔길로 이어졌고, 그 아래에서는 밀짚모자를 쓴 낚시꾼 한 명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콩브레에서 나는 교회 안내인의 제복이나 복사의 제의 아래에 어떤 대장장이나 잡화점 점원의 개성이 숨겨져 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이 낚시꾼은 내가 그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틀림없이 우리 부모님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모자를 들어 올렸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이름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사람들은 물고기를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하라고 신호를 보냈다. 우리는 강물 위로 몇 피트 높이의 제방을 따라 이어지는 오솔길로 들어섰다. 반대편 강둑은 낮았고, 마을과 기차역까지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그 초원들에는 콩브레의 옛 백작들이 중세 시대에 게르망트의 영주들과 마르탱빌의 수도원장들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비본느 강의 이쪽 흐름을 요새화했던 성의 잔해가 풀속에 반쯤 묻혀 있었다. 이제는 몇 개의 파편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초원 위로 솟아오른 탑들은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그곳에서 한때 석궁 병사들이 돌을 던졌고, 파수꾼이 노브퐁, 클레르퐁텐, 마르탱빌 르 섹, 바이요 렉상프를 감시했다. 이 모든 곳은 게르망트의 영지였고 콩브레는 그 사이에 끼어 있었다. 지금은 풀밭 위로 낮아져 수도회 학교 아이들이 그곳에서 공부를 하거나 쉬는 시간에 놀았다. 거의 땅속으로 내려간 과거, 물가에 누워 쉬는 산책객처럼 누워있었지만,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나는 콩브레라는 이름에 오늘날의 작은 마을과는 매우 다른 도시를 덧붙였다. 그곳은 미나리아재비 아래 반쯤 숨겨진 이해할 수 없는 옛 모습으로 내 생각을 붙잡았다. 그들은 잔디 위에서 놀기 위해 선택한 그 장소에 매우 많았다. 외딴 곳에, 둘씩 짝지어, 무리지어 있었고, 달걀 노른자처럼 노랗고 더욱 빛났다. 그들을 보는 즐거움을 어떤 맛보고 싶은 욕구로도 전환할 수 없었기에, 나는 그 즐거움을 그들의 금빛 표면에 축적했다. 그렇게 하여 그것은 쓸모없는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만큼 강력해졌다. 이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당시 나는 끌船길에서 그들을 향해 팔을 뻗으며 프랑스 동화 속 왕자들이라는 그들의 예쁜 이름을 완전히 읽을 수 없었다. 그들은 아마도 수세기 전에 아시아에서 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마을에 영원히 정착해 소박한 지평선에 만족하고 태양과 물가를 사랑하며 기차역의 작은 풍경에 충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우리의 오래된 그림들처럼 소박한 민중성 속에 동양의 시적인 광채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작은 물고기를 잡으려고 비본느 강에 넣은 물병을 보며 즐거워했다. 그 물병들은 강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안에 다시 갇혀 있었다. 투명한 옆면을 가진 ‘담는 것’이자 더 큰 액체 크리스탈 용기에 잠긴 ‘담긴 것’으로, 흐르는 물속에서 신선함의 이미지를 차려진 식탁에서보다 더 즐겁고 자극적으로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일관성 없는 물 속에서 손으로 잡을 수 없고 유동성 없는 유리에서 입맛을 즐길 수 없는 그 영원한 발음유희 속에서 도망치는 모습으로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중에 낚싯대를 가지고 거기 오겠다고 약속했다. 간식거리에서 빵을 조금 꺼내게 했다. 나는 그것을 비본느 강에 동그랗게 뭉쳐 던졌다. 그러자 마치 과포화 현상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듯했다. 물은 즉시 그 주위로 굶주린 올챙이들의 난형 덩어리로 고체화되었다. 아마도 물은 그때까지 그것들을 용해 상태로, 보이지 않게, 결정화 직전의 상태로 유지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곧 비본느 강의 흐름은 수초에 막혔다. 처음에는 수련 몇 개가 고립되어 있었는데, 불행히도 그 자리의 물살이 너무 세서 마치 기계로 움직이는 나룻배처럼 한 강변에 닿자마자 다시 왔던 강변으로 돌아가 영원히 같은 왕복을 반복했다. 강변으로 밀려나면 그 줄기는 펴지고 늘어나 뻗어나가 긴장의 극한에 다다랐다가 물살에 다시 휩쓸려 초록 줄이 다시 접혀 불쌍한 식물을 출발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으로 되돌려 보냈다. 그러나 그곳에 1초도 머물지 않고 같은 동작의 반복으로 다시 떠났다. 나는 산책할 때마다 그것을 같은 상황에서 발견했다. 그것은 내 할아버지가 레오니 고모를 포함시켰던 어떤 신경쇠약 환자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들은 수년간 변함없이 자신들이 매번 떨쳐버릴 수 있다고 믿는 기이한 습관들의 광경을 우리에게 보여주지만 항상 그것들을 유지한다. 그들의 질병과 버릇의 톱니바퀴에 사로잡혀,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익하게 발버둥치는 노력은 오히려 그들의 기이하고 피할 수 없는 치명적인 식이요법의 작동을 보장하고 그 장치를 작동시킬 뿐이다. 이 수련도 그러했다. 그것은 또한 단테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어떤 불행한 사람들과 비슷했다. 그들의 특이한 고통은 영원히 반복되었고, 단테는 그 고통의 세부사항과 원인을 고문 받는 자 본인에게서 더 길게 들으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베르길리우스가 큰 걸음으로 멀어져 단테로 하여금 서둘러 그를 따라잡게 했듯이, 나의 부모님들도 그렇게 했다.

그러나 더 아래로 가면 물살이 느려졌다. 그곳은 어떤 사유지를 지나는데, 그 소유주가 대중에게 개방했고 수생 원예 작업을 즐겼다. 비본느 강이 만드는 작은 연못들에는 진짜 수련 정원이 꽃피었다. 이 지점의 강변은 매우 울창해서 나무들의 큰 그림자가 물에 짙은 녹색 바탕을 만들었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가 폭풍우 치는 오후 뒤의 맑아진 저녁에 귀갓길에 보면, 나는 그것이 짙고 선명한 파란색, 보라빛을 띠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칸막이를 한 듯한 모습이었고 일본풍의 맛이 났다. 여기저기 수면 위로 딸기처럼 붉은 수련 꽃이 피어 있었다. 중심은 진홍색이고 가장자리는 하얀 꽃이었다. 더 멀리 가면 꽃들이 더 많아졌고 더 창백해졌으며, 덜 매끄럽고 더 거칠어졌고, 더 주름졌다. 우연히 아름답게 감겨 있어서 마치 화려한 축제가 슬프게 끝난 후 떠다니는 듯한, 풀어진 화환 모양의 이끼 장미를 보는 것 같았다. 다른 곳에서는 한 구석이 보통 종들을 위해 따로 마련된 듯했다. 그곳에는 줄리엔느의 깔끔한 흰색과 분홍색이 보였는데, 마치 자기그릇처럼 가정적인 정성으로 씻긴 듯했다. 조금 더 멀리에는 서로 밀착되어 진짜 떠다니는 화단을 이루고 있었다. 마치 정원의 팬지꽃들이 나비처럼 날아와 이 투명한 물 화단의 경사면에 푸르스름하고 얼음 같은 날개를 얹은 것 같았다. 이는 또한 천상의 화단이기도 했다. 꽃들에게 꽃 자체의 색보다 더 귀중하고 감동적인 색의 토양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오후에는 수련 아래에서 주의 깊고 조용하며 유동적인 행복의 만화경을 반짝이게 하거나, 저녁에는 마치 어떤 먼 항구처럼 노을의 장미빛과 꿈결 같은 분위기로 가득 찼다. 끊임없이 변화하면서도 항상 더 고정된 색조의 꽃잎 주위와 조화를 이루며, 시간의 가장 깊고 덧없고 신비로운 것, 무한한 것과 조화를 이루었다. 그것은 마치 하늘 한가운데서 꽃을 피운 것 같았다.

이 공원을 벗어나면 비본느 강은 다시 빠르게 흘렀다. 내가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되면 모방하고 싶었던 한 노젓는 사람의 모습을 얼마나 자주 보았는지 모른다. 그는 노를 놓고 배 바닥에 머리를 아래로 향한 채 등을 대고 누워 배를 떠내려가게 두었다. 천천히 그의 위로 흘러가는 하늘만을 볼 수 있었고, 그의 얼굴에는 행복과 평화의 전조가 어려 있었다. 우리는 물가의 붓꽃 사이에 앉았다. 휴일의 하늘에는 게으른 구름 한 조각이 오래도록 떠돌았다. 때때로 지루함에 짓눌린 잉어 한 마리가 불안한 갈망으로 물 밖으로 치솟았다. 간식 시간이었다. 떠나기 전에 우리는 오랫동안 풀밭에 앉아 과일과 빵, 초콜릿을 먹었다.

생틸레르의 종소리가 우리에게 들려왔다. 수평으로 약해졌지만 여전히 밀도 있고 금속성을 띤 소리였다. 그 소리는 오랫동안 통과해 온 공기와 섞이지 않은 채 모든 음의 선들이 연속적으로 진동하며 우리 발치의 꽃들을 스치듯 지나갔다.

때때로 숲으로 둘러싸인 물가에서 우리는 ‘즐거움의 집’이라 불리는 고립된 집을 만났다. 그 집은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보지 못한 채 오직 발치를 적시는 강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에 잠긴 얼굴과 우아한 베일을 한 젊은 여인이 창가에 서 있었다. 그녀는 이 지방 출신이 아니었고, 아마도 대중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자신을 매장하러’ 이곳에 왔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 특히 자신이 지키지 못한 그의 마음을 가진 사람의 이름이 이곳에서는 알려지지 않았다는 쓰디쓴 기쁨을 맛보고 있었다. 그녀는 문 근처에 묶여 있는 배 너머를 볼 수 없는 창가에 서 있었다. 강변 나무들 뒤에서 들려오는 행인들의 목소리에 그녀는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그들의 얼굴을 보기도 전에 그녀는 그들이 결코 그 배신자를 알지 못했고, 앞으로도 알지 못할 것이며, 그들의 과거에 그의 흔적이 없고 미래에도 그를 만날 기회가 없을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가 자발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있는 곳을 떠나 그를 본 적 없는 이곳으로 온 것이 포기의 한 형태임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녀가 그가 지나가지 않을 것을 알고 있는 어떤 길을 산책하고 돌아와 체념한 손으로 쓸모없이 우아한 긴 장갑을 벗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게르망트 쪽으로 산책할 때 비본느 강의 발원지까지 가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곳에 대해 자주 생각했고, 그곳은 나에게 매우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존재였다. 그래서 그곳이 콩브레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도에 위치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고대에 지옥의 입구가 지구의 특정 지점에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만큼이나 놀랐다. 우리는 또한 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목적지인 게르망트까지 가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곳에 게르망트 공작과 공작 부인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나는 그들을 우리 교회의 ‘에스더의 대관식’에 나오는 게르망트 백작부인처럼 태피스트리 속 인물로, 또는 내가 성수를 뿌리는 곳에서 의자로 가는 동안 양배추 녹색에서 자두 파란색으로 변하는 스테인드글라스 속의 길베르 르 모베처럼 변화무쌍한 색채를 지닌 인물로, 또는 완전히 비물질적인 존재로 상상했다. 마치 환등기가 내 방의 커튼 위로 비추거나 천장으로 올려 보내는 게르망트 가문의 조상인 브라방의 쥬느비에브의 모습처럼 말이다. 그들은 언제나 메로빙거 시대의 신비에 휩싸여 있었고, ‘앙트’라는 음절에서 나오는 주황빛 석양의 빛 속에서 목욕을 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에게 공작과 공작 부인으로서 낯설지만 실재하는 존재였다. 반면에 그들의 공작으로서의 신분은 그들이 공작과 공작 부인인 게르망트를 담기 위해 엄청나게 팽창하고 비물질화되었다. 그 ‘게르망트 쪽’의 모든 것, 햇살 가득한 비본느 강의 흐름, 그 수련과 큰 나무들, 그리고 수많은 아름다운 오후들을 말이다. 나는 그들이 단순히 게르망트의 공작과 공작 부인이라는 칭호만 가진 것이 아니라, 14세기부터 그들의 옛 영주들을 물리치려다 실패한 뒤 그들과 결혼 동맹을 맺은 이래로 콩브레의 백작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콩브레 시민들 중 가장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그곳에 살지 않는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콩브레의 백작으로서 그들은 자신들의 이름과 인격 속에 콩브레를 품고 있었고, 아마도 콩브레 특유의 이상하고 경건한 슬픔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도시의 소유자였지만 특정한 집은 소유하지 않았고, 아마도 밖에서, 거리에서,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마치 내가 카뮈 집에서 소금을 사러 갈 때 고개를 들어 생틸레르 교회의 제단 뒤편에서 보았던 게르망트의 길베르처럼 검은 래커의 뒷면만 보이는 그런 모습으로 말이다.

그러다가 게르망트 쪽으로 가는 길에서 어두운 꽃송이들이 솟아오르는 작은 습지를 지나치게 되었다. 나는 멈춰 서서 귀중한 정보를 얻은 것 같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 묘사한 강변 지역의 한 부분을 눈앞에 보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게르망트는 내 생각 속에서 그 모습을 바꾸어 상상 속의 땅과 동일시되었다. 그곳은 끓어오르는 물줄기들이 가로지르는 곳이었다. 페르스피에 박사가 성의 공원에 있는 꽃들과 아름다운 생명력 넘치는 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후에 말이다. 나는 게르망트 부인이 갑작스러운 변덕으로 나를 그곳에 데려가 하루 종일 나와 함께 송어를 낚는 상상을 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그녀가 내 손을 잡고 그녀의 봉신들의 작은 정원들을 지나면서 낮은 담장을 따라 자라는 꽃들, 그들의 보라색과 붉은색 모양을 보여주며 그 이름들을 가르쳐주는 상상을 했다. 그녀는 내가 쓰고 싶어 하는 시의 주제를 말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이 꿈들은 내가 작가가 되고 싶다면 무엇을 쓸 것인지 알아야 할 때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생각하려고 할 때마다, 무한한 철학적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주제를 찾으려고 노력하면서, 내 정신은 작동을 멈추었고, 내 주의력 앞에는 오직 공허함만이 보였다. 나는 내게 재능이 없거나 어쩌면 뇌 질환이 그것의 출현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느꼈다. 때때로 나는 아버지가 이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매우 강력했고 유력 인사들의 신임을 받고 있어서 프랑수아즈가 내게 가르쳐준 삶과 죽음의 법칙보다 더 불가피한 법칙들을 우리가 어기도록 만들 수 있었다. 그는 우리 집만 구역 전체에서 ‘보수 공사’를 1년 미루게 하고, 온천에 가고 싶어 하는 사즈라 부인의 아들이 원래 ‘S’로 시작하는 후보자 순서를 기다려야 했지만 ‘A’로 시작하는 후보자들과 함께 2개월 먼저 바칼로레아 시험을 볼 수 있도록 장관의 허가를 받아냈다. 만약 내가 심각한 병에 걸리거나 강도들에게 잡혔다면, 아버지가 최고 권력자들과 너무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하느님께 보내는 추천장이 너무나 저항할 수 없는 것이어서 내 병이나 감금이 단순한 가장에 불과할 것이라고 확신하며, 나는 좋은 현실로 돌아가는 피할 수 없는 시간, 해방이나 치유의 시간을 차분히 기다렸을 것이다. 어쩌면 이 재능의 부재, 내가 미래의 글의 주제를 찾을 때마다 내 정신 속에 생기는 이 검은 구멍도 단순한 환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버지가 정부와 섭리와 협의해서 내가 시대의 첫 번째 작가가 될 것이라고 결정했다면 그것은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다른 때에는 부모님이 내가 뒤처져 그들을 따라가지 않는 것에 짜증을 내는 동안, 내 현재의 삶은 아버지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인위적인 창조물이 아니라 나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은 현실의 일부인 것처럼 보였다. 그 현실에 맞서 나는 무력했다.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동맹군도 없었고, 그 너머에는 아무것도 숨겨져 있지 않았다. 나는 그때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처럼 늙어갈 것이고, 그들처럼 죽을 것이며, 나는 그저 글을 쓸 재능이 없는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낙담한 나는 블로슈가 준 격려에도 불구하고 문학을 영원히 포기했다. 내 생각의 공허함에 대한 이 즉각적이고 내밀한 감정은 사람들이 나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아첨의 말보다 강했다. 마치 악인이 자신의 선행을 칭찬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과 같았다.

어느 날 어머니가 내게 말씀하셨다. “네가 늘 게르망트 부인에 대해 이야기하니 말인데, 4년 전 페르스피에 박사가 그녀를 아주 잘 치료했단다. 그녀가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콩브레에 올 거야. 너도 식에서 그녀를 볼 수 있을 거다.” 사실 나는 페르스피에 박사를 통해 게르망트 부인에 대해 가장 많이 들었다. 그는 심지어 레옹 공주의 가장무도회에서 그녀가 입었던 의상이 실린 잡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갑자기 결혼식 미사 중에 교회 관리인이 움직이는 바람에 나는 예배당에 앉아 있는 금발의 부인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큰 코에 날카로운 파란 눈을 가졌고, 부드럽고 새 것 같은 밝은 자주색 넥타이를 매고 있었으며, 코 옆에 작은 점이 있었다. 그녀의 붉은 얼굴에서 내가 본 초상화와 비슷한 부분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게다가 그녀에게서 발견한 특징들이 페르스피에 박사가 게르망트 공작 부인을 묘사할 때 사용했던 바로 그 단어들 – 큰 코, 파란 눈 – 로 표현되었기 때문에, 나는 생각했다. ‘이 부인이 게르망트 부인을 닮았군.’ 그녀가 미사를 듣고 있던 예배당은 길베르 르 모베의 것이었다. 그 아래에는 꿀벌집처럼 금빛으로 부풀어 오른 평평한 무덤들 밑에 브라방의 옛 백작들이 잠들어 있었다. 나는 이 예배당이 게르망트 가문의 누군가가 콩브레에서 의식에 참석할 때 사용한다고 들었던 것을 기억했다. 게르망트 부인의 초상화와 닮은 여인이 오늘, 바로 그녀가 올 것이라고 한 날에 이 예배당에 있을 리가 없었다. 그녀일 수밖에 없었다! 나의 실망은 컸다. 그것은 내가 게르망트 부인을 생각할 때 그녀를 태피스트리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다른 세기의, 다른 물질로 된 존재로 상상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가 사즈라 부인처럼 붉은 얼굴과 자주색 넥타이를 할 수 있다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볼의 타원형은 내가 집에서 본 사람들을 너무나 생각나게 해서, 이 부인이 본질적으로, 모든 분자에서 게르망트 공작 부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들었다가 곧 사라졌다. 그녀의 몸은 자신에게 붙여진 이름을 모른 채, 의사나 상인의 아내들도 포함하는 어떤 여성상에 속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거야, 게르망트 부인은 이것뿐이야!”라고 나는 이 이미지를 주의 깊고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며 생각했다. 물론 이 이미지는 내 꿈속에서 게르망트 부인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났던 것들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그것들은 내가 임의로 만들어낸 것이었지만, 이 이미지는 방금 전 교회에서 처음으로 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른 것들과 같은 성질의 것이 아니었고, 내 마음대로 색칠할 수 없었다. 그것들은 한 음절의 주황빛 색조에 물들 수 있었지만, 이것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코 옆의 작은 점까지도 생명의 법칙에 따르고 있음을 증명했다. 마치 연극의 절정에서 요정 드레스의 주름이나 작은 손가락의 떨림이 살아있는 배우의 물질적 존재를 드러내는 것처럼, 우리가 단순한 빛의 투영인지 아닌지 확신하지 못했던 곳에서 말이다.

동시에 나는 이 새롭고 변함없는 이미지에 ‘이것이 게르망트 부인이다’라는 생각을 적용하려 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이미지 앞에서 마치 간격을 두고 분리된 두 개의 원반처럼 움직일 뿐이었다. 내가 그토록 자주 꿈꾸었던 이 게르망트 부인이 이제 나 밖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보자, 그녀는 내 상상력에 더 큰 힘을 얻었다. 잠시 현실과의 접촉으로 마비되었던 상상력은 다시 반응하기 시작했다. “샤를마뉴 이전부터 영광스러웠던 게르망트 가문은 봉신들의 생사여탈권을 가졌다. 게르망트 공작 부인은 브라방의 쥬느비에브의 후손이다. 그녀는 여기 있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 오, 놀라운 인간의 시선의 독립성이여, 얼굴에 너무나 느슨하고 긴, 늘어날 수 있는 끈으로 매여 있어 혼자서 멀리 떨어질 수 있는 – 게르망트 부인이 죽은 선조들의 무덤 위 예배당에 앉아 있는 동안, 그녀의 시선은 이리저리 떠돌았다. 기둥을 따라 올라가다 나에게까지 머물렀다. 마치 성당을 떠도는 한 줄기 햇살처럼, 하지만 그 순간 나에게 닿은 햇살은 의식이 있는 것 같았다. 게르망트 부인 자신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마치 자신이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며 장난치는 아이들의 무례한 행동을 보지 못하는 척하는 어머니처럼 보였다. 나는 그녀가 자신의 시선의 방황을 승인하는지 비난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녀를 충분히 볼 때까지 그녀가 떠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수년간 그녀를 보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마치 내 시선 하나하나가 그녀의 얼굴에 대한 기억을 물질적으로 가져가 내 안에 저장할 수 있는 것처럼, 큰 코, 붉은 볼, 그녀의 얼굴에 대한 모든 특별한 정보를 귀중하고 진실하고 독특한 것으로 여겼다. 이제 내가 그녀의 얼굴을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은 그녀에 대한 모든 생각들이었다. 아마도 우리 자신의 가장 좋은 부분을 보존하려는 본능의 한 형태인, 실망하지 않으려는 욕구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녀를 (그녀와 내가 지금까지 떠올렸던 게르망트 공작 부인이 한 사람이었기에) 순수한 시각으로 그녀의 몸을 보았을 때 잠시 혼동했던 나머지 인류와는 구별되는 존재로 다시 자리매김했다. 주변에서 “그녀가 사즈라 부인이나 뱅퇴유 양보다 낫다”고 말하는 소리를 들으며 화가 났다. 마치 그녀를 그들과 비교할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내 시선은 그녀의 금발 머리, 파란 눈에 멈추었다.

목걸이만을 그리고 다른 얼굴들을 떠올리게 할 수 있는 특징들을 생략한 채, 나는 이 의도적으로 불완전한 스케치 앞에서 외쳤다. “정말 아름답군요! 얼마나 고귀한지! 내 앞에 있는 게르망트 가문의 자랑스러운 후손, 브라방의 쥬느비에브가 바로 이런 모습이었겠구나!” 그리고 나는 그녀의 얼굴을 비추는 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것은 그녀를 너무나 고립시켰다. 오늘날 그 순간을 떠올려보면, 그녀가 정말 게르망트 부인이냐고 물었을 때 긍정적으로 대답한 스위스인 외에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중 누구도 그녀를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특히 제의실에서의 행렬 순간에 선명하게 기억된다. 그곳은 바람과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의 간헐적이고 따뜻한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그 제의실에서 게르망트 부인은 콩브레의 모든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 그녀는 그들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지만, 그들의 열등함이 너무나 분명하게 그녀의 우월함을 드러내고 있어서 그들에 대해 진심 어린 호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친절과 소박함으로 그들에게 더 큰 인상을 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녀는 아는 사람에게 보내는 의도적이고 정확한 의미가 담긴 시선을 보낼 수 없었고, 단지 그녀 앞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푸른 빛의 물결 속에 산만한 생각들을 흘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이 빛이 지나가는 길에서 만나는 작은 사람들을 방해하거나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그녀의 보라색 비단 넥타이 위로 부드럽게 놀란 눈빛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녀는 거기에 누구를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모든 사람이 자신의 몫을 가져갈 수 있도록 약간 수줍은 영주의 미소를 더했다. 그 미소는 신하들 앞에서 사과하는 듯하면서도 그들을 사랑한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그 미소가 눈을 떼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떨어졌다. 그때 미사 중에 그녀가 나에게 멈춰 두었던 시선을 떠올리며, 그것은 길베르 르 모베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햇살처럼 푸른빛이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녀가 나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나를 좋아한다고 믿었고, 교회를 떠난 뒤에도 나를 생각할 것이며, 저녁에 게르망트에서 나 때문에 슬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곧바로 나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때로는 스완 양이 그랬다고 생각했듯이 여자가 우리를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고 우리가 그녀를 소유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그 여자를 사랑하기에 충분할 수 있지만, 때로는 게르망트 부인이 그랬듯이 여자가 우리를 친절하게 바라보고 우리가 그녀를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그녀의 눈은 따려해도 딸 수 없는 페르베시카처럼 푸르게 빛났고, 그녀가 나에게 바친 것 같았다. 구름에 가려 위협받던 태양이 여전히 온 힘을 다해 광장과 제의실을 비추고 있었고, 거기에 깔린 빨간 카펫에 제라늄 빛깔을 더했다. 게르망트 부인은 미소를 지으며 그 위를 걸어갔고, 태양은 카펫의 양모에 장밋빛 벨벳, 빛의 표피를 더했다. 그것은 일종의 부드러움이었고, 장엄함과 기쁨 속의 진지한 달콤함이었다. 이는 ‘로엔그린’의 특정 부분이나 카르파치오의 특정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이었고, 보들레르가 왜 트럼펫 소리에 ‘달콤한’이라는 형용사를 붙였는지 이해하게 해주었다.

그날 이후 게르망트 쪽으로 산책을 나갈 때마다, 문학에 소질이 없어 유명한 작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예전보다 더 슬프게 느껴졌다. 혼자 떨어져 잠시 꿈을 꾸며 느끼는 후회는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더 이상 그 감정을 느끼지 않기 위해 내 정신은 스스로 일종의 고통 앞의 억제를 통해 시와 소설, 재능 부족으로 기대할 수 없는 시적 미래에 대해 완전히 생각하기를 멈추었다. 그때 모든 문학적 고민과는 전혀 관계없이, 갑자기 지붕, 돌 위의 햇살 반사, 길의 냄새가 나를 멈추게 했다. 그것들이 주는 특별한 즐거움 때문이기도 했지만, 내가 보는 것 너머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아서 그것을 가져오라고 초대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것이 그들 안에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나는 거기 서서 움직이지 않고 바라보고 숨을 쉬며 생각으로 이미지나 냄새 너머로 가려고 노력했다. 할아버지를 따라잡아야 하거나 길을 계속 가야 할 때면, 나는 눈을 감고 그것들을 다시 찾으려 노력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가득 차 있고, 열릴 준비가 되어 있어 보이며, 그것의 덮개에 불과했던 지붕의 선, 돌의 색조를 정확히 기억하려고 애썼다.

물론 이런 종류의 인상들이 작가와 시인이 되고 싶다는 잃어버린 희망을 되찾게 해줄 수는 없었다. 그것들은 항상 특정한 대상과 연결되어 있었고 지적 가치가 없었으며 어떤 추상적 진리와도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들은 나에게 비합리적인 즐거움을 주었고, 일종의 다산성에 대한 환상을 주었다. 그래서 위대한 문학 작품을 위한 철학적 주제를 찾으려고 할 때마다 느꼈던 지루함, 무능력감에서 나를 벗어나게 해주었다. 하지만 이런 형태, 향기, 색채의 인상들이 부과하는 양심의 의무는 너무나 힘들었다. 그것들 뒤에 숨겨진 것을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나는 곧 이런 노력을 피하고 이 피로를 면하기 위한 변명을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부모님이 나를 불렀고, 나는 지금 이 탐구를 유용하게 계속할 수 있는 평온함이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집에 돌아갈 때까지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고, 미리 결과 없이 피곤해지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형태나 향기에 싸여 있는 이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을 집으로 가져가는 것에 대해 아주 편안했다. 그것은 내가 찾을 수 있는 이미지들의 덮개로 보호되어 있었고, 마치 낚시를 하러 갔다가 바구니에 가져온 물고기들이 신선함을 보존하기 위해 풀로 덮여 있는 것과 같았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다른 것들을 생각했고, 그렇게 내 마음속에는 (내 방에 산책하면서 꺾어온 꽃들이나 누군가 준 물건들처럼) 반사광이 노는 돌, 지붕, 종소리, 나뭇잎 냄새, 그리고 발견하려는 의지가 부족해서 오래전에 죽어버린 예감된 현실이 숨어 있는 많은 다른 이미지들이 쌓여갔다.

우리 마차의 움직임과 길의 굽이로 인해 자리를 바꾸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언덕과 계곡으로 분리된 뷔즈빅의 종탑이 더 높은 고원 위 멀리 있었지만 그들과 아주 가깝게 보였다.

그들의 첨탑 모양을 확인하고, 윤곽선의 움직임과 표면의 햇빛을 관찰하면서, 나는 내 인상의 끝까지 가지 못하고 있음을 느꼈다. 이 움직임과 이 밝음 뒤에 무언가가 있었고, 그들은 그것을 담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감추고 있는 것 같았다.

종탑들이 너무 멀리 있어 보였고, 우리는 거의 다가가지 못하는 것 같았기에 몇 분 후 마르탱빌 교회 앞에 멈췄을 때 나는 놀랐다. 지평선에서 종탑들을 보았을 때 느꼈던 즐거움의 이유를 알 수 없었고, 그 이유를 찾으려는 의무감이 고통스러웠다. 나는 햇빛 속에서 움직이는 종탑들의 윤곽을 머릿속에 간직하고 싶었고,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만약 내가 그렇게 했다면, 두 종탑은 아마도 영원히 그 모호한 즐거움을 주었던 수많은 나무, 지붕, 향기, 소리들과 함께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나는 의사를 기다리며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내렸다. 그리고 다시 출발했고, 나는 내 자리로 돌아가 고개를 돌려 종탑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잠시 후 길모퉁이에서 마지막으로 종탑들을 보았다. 마부는 대화할 기분이 아닌 듯 내 말에 거의 대답하지 않았고, 다른 동반자가 없어 나는 어쩔 수 없이 나 자신의 동반자가 되어 내 종탑들을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곧 그들의 윤곽과 햇빛을 받은 표면이 마치 일종의 껍질처럼 찢어졌고, 그들 안에 숨겨진 것의 일부가 내게 나타났다. 순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말로 형성되었고, 조금 전 종탑들을 보았을 때 느꼈던 즐거움이 너무나 커져서 일종의 도취감에 빠져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 순간 우리는 이미 마르탱빌에서 멀어져 있었고, 고개를 돌렸을 때 종탑들을 다시 보았는데, 이번에는 해가 이미 져서 새까맣게 보였다. 때때로 길의 굽이로 인해 종탑들이 가려졌다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였고, 마침내 나는 더 이상 종탑들을 볼 수 없었다.

마르탱빌의 종탑들 뒤에 숨겨진 것이 아름다운 문장과 비슷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나를 기쁘게 하는 말의 형태로 나타났기 때문에, 나는 의사에게 연필과 종이를 요청하여 마차의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내 양심을 덜고 열정에 따라 다음과 같은 작은 글을 썼다. 나중에 이 글을 다시 찾았고 약간의 수정만 가했다:

“평야의 수준에서 혼자 솟아오르고 마치 평원에 버려진 듯이, 마르탱빌의 두 종탑이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곧 우리는 세 개를 보았다. 대담한 회전으로 그들 앞에 자리를 잡은 뷔즈빅의 늦은 종탑이 그들과 합류했다. 시간이 흘렀고 우리는 빠르게 가고 있었지만, 세 종탑은 여전히 우리 앞 멀리 있었다. 마치 평원에 앉아 있는 세 마리의 새처럼 움직이지 않고 햇빛 속에서 구별되었다. 그리고 뷔즈빅의 종탑이 떨어져 나가 거리를 두었고, 마르탱빌의 종탑들만이 남아 석양의 빛을 받았다. 이 거리에서도 나는 그 빛이 그들의 경사면에서 놀며 미소 짓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그들에게 다가가는 데 너무 오래 걸렸기 때문에, 나는 그들에게 도달하는 데 얼마나 더 시간이 걸릴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마차가 돌았고, 우리를 그들 발치에 내려놓았다. 그들은 너무나 갑작스럽게 우리 앞으로 달려들어서 현관에 부딪히지 않으려면 멈추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우리는 계속 길을 갔다. 우리는 이미 마르탱빌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마을은 우리를 몇 초 동안 동행한 후 사라졌다. 지평선에 홀로 남아 우리가 도망치는 것을 바라보던 그곳의 종탑들과 뷔즈빅의 종탑은 여전히 햇빛을 받은 꼭대기를 흔들며 작별 인사를 하고 있었다. 때때로 하나가 사라져 다른 두 개가 우리를 잠시 더 볼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길이 방향을 바꾸자 그들은 빛 속에서 세 개의 황금 축으로 회전하며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조금 뒤 우리가 콩브레에 가까워졌을 때, 해가 이미 져서 나는 그들을 마지막으로 아주 멀리서 보았다. 이제 그들은 들판의 낮은 선 위 하늘에 그려진 세 송이의 꽃에 불과했다. 그들은 또한 내게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고독 속에 버려진 전설 속 세 소녀를 생각나게 했다. 우리가 빠르게 멀어지는 동안, 나는 그들이 수줍게 길을 찾는 것을 보았고, 고귀한 실루엣의 어색한 발걸음 후에 서로 가까이 모여들어 아직 장밋빛인 하늘에 하나의 검은 형태만을 만들고, 매력적이고 체념한 듯이 밤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 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의사의 마부가 보통 마르탱빌 시장에서 산 가금류를 담아두는 바구니가 있는 자리 구석에서 글을 다 쓰고 나니, 나는 매우 행복했다. 이 글이 나를 그 종탑들과 그들이 숨기고 있던 것으로부터 완벽하게 해방시켰다고 느꼈기 때문에, 마치 내가 암탉이 되어 달걀을 낳은 것처럼 목청껏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이 산책에서 나는 게르망트 공작부인의 친구가 되는 즐거움, 비본느 강에서 송어를 낚는 것, 보트를 타고 노니는 것에 대해 꿈꿀 수 있었고, 행복에 목마른 나는 그 순간 인생에 이런 행복한 오후들의 연속 외에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왼쪽으로 서로 매우 가까이 있는 두 농장과는 꽤 떨어져 있는 한 농장을 보았을 때, 그리고 그곳에서 콩브레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한쪽에 사과나무가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진 작은 울타리마다 초원이 있는 오크나무 가로수 길만 지나면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갑자기 내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30분 안에 집에 도착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게르망트 쪽으로 갔던 날에는 규칙적으로 저녁 식사가 늦게 제공되어 수프를 먹자마자 나를 자러 보낼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마치 손님이 저녁 식사에 온 것처럼 식탁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엄마는 내 침대에서 나에게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말하러 오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막 기쁨으로 뛰어들었던 지대는 방금 전의 지대와 너무나 구별되어, 마치 어떤 하늘에서 분홍색 띠가 선으로 녹색 띠나 검은색 띠와 분리되어 있는 것과 같았다. 우리는 분홍색에서 날아가는 새를 본다. 그 새는 곧 끝에 도달하여 거의 검은색에 닿았다가 이내 그 속으로 들어간다. 방금 전까지 나를 둘러싸고 있던 게르망트로 가고 싶은 욕망, 여행을 하고 싶은 욕망, 행복해지고 싶은 욕망, 이제 나는 그것들로부터 너무나 멀어져서 그것들이 이루어진다 해도 아무런 즐거움도 느끼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다.

엄마 품에 안겨 밤새도록 울고 싶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오늘 밤 내 방에 나타나지 않을 어머니의 불안한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이미 머릿속으로 그 상황을 그려보았고,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 불안은 다음 날까지 이어졌다. 아침 햇살이 정원사처럼 내 창문까지 타고 올라, 한련 덩굴이 덮인 벽에 빗장을 걸 때, 나는 침대에서 뛰어내려 정원으로 달려갔다. 저녁이 되면 다시 어머니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은 잊고 있었다. 그렇게 게르망트 쪽에서 나는 내 안에서 연이어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를 구분하는 법을 배웠다. 이 감정들은 어느 정도 시간 동안 지속되었고, 때로는 하루를 둘로 나누기도 했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밀어내는 과정은 마치 열병처럼 정확했다. 서로 인접해 있지만, 너무나 외부적인 존재라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한 감정에서 다른 감정으로 넘어가면서 내가 원했던 것, 두려워했던 것, 이루었던 것을 더 이상 이해할 수 없었고,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메제글리즈 쪽과 게르망트 쪽은 우리가 동시에 살아가는 다양한 삶들 중에서 가장 많은 우여곡절과 에피소드로 가득 찬 지적 생활과 관련된 작은 사건들과 연결되어 있다. 물론 그것은 우리 안에서 감지할 수 없게 진보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의미와 모습을 바꾸고, 새로운 길을 열어준 진실들은 우리가 오랫동안 그 발견을 준비해 왔지만, 그것을 알지 못한 채였다.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에게 가시화된 날, 그 순간부터만 우리에게 날짜가 매겨진다. 그때 풀밭에서 놀던 꽃들, 햇빛 아래로 흐르던 물, 그들의 출현을 둘러싼 모든 풍경은 그들의 기억에 무의식적이거나 산만한 얼굴로 계속 동반한다. 그리고 이 자연의 한 구석, 이 정원의 한 부분이 꿈꾸던 이 겸손한 행인, 이 아이에 의해 – 마치 군중 속의 한 역사가에 의한 왕처럼 – 오랫동안 관찰되었을 때, 그들은 자신들 덕분에 그들의 가장 일시적인 특성들이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산울타리를 따라 벌꿀을 모으는 서양 앵초의 향기, 자갈길 위에 메아리 없는 발자국 소리, 강물에 의해 수생 식물에 형성된 거품이 곧 터지는 것, 나의 흥분은 그것들을 지탱하고 수년 동안 건너가게 했다. 그 사이 주변의 길들은 사라지고, 그 길을 밟았던 사람들과 그들을 밟았던 사람들의 기억도 사라졌다. 때때로 이렇게 오늘날까지 가져온 풍경의 한 조각이 너무나 고립되어 떨어져 나와, 마치 꽃 피운 델로스 섬처럼 내 생각 속에서 불확실하게 떠다닌다. 나는 그것이 어느 나라의 것인지, 어느 시대의 것인지 – 아마도 단순히 어떤 꿈에서 온 것인지 – 말할 수 없다. 하지만 특히 메제글리즈 쪽과 게르망트 쪽을 내 정신의 깊은 퇴적층으로, 내가 아직도 의지하는 견고한 땅으로 생각해야 한다. 내가 그곳들을 지나다니면서 사물들과 존재들을 믿었기 때문에, 그들이 나에게 알게 해준 사물들과 존재들만이 내가 아직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나에게 기쁨을 주는 것들이다. 창조하는 믿음이 내 안에서 말라버렸든, 아니면 현실이 오직 기억 속에서만 형성되든, 오늘날 나에게 처음으로 보여주는 꽃들은 진짜 꽃들처럼 보이지 않는다. 라일락, 서양 앵초, 수레국화, 양귀비, 사과나무가 있는 메제글리즈 쪽, 올챙이가 있는 강, 수련, 미나리아재비가 있는 게르망트 쪽은 영원히 내가 살고 싶은 나라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그곳에서는 무엇보다도 낚시를 가고, 보트를 타고, 고딕 요새의 폐허를 볼 수 있어야 하며, 밀밭 한가운데서 생트앙드레데샹과 같은 기념비적이고 소박하며 황금빛 곡물 더미 같은 교회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여행할 때 들판에서 마주치는 수레국화, 서양 앵초, 사과나무들은 내 과거의 수준에서 같은 깊이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즉시 내 마음과 소통한다. 그러면서도 장소에는 개별적인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게르망트 쪽을 다시 보고 싶은 욕망이 생길 때, 비본느 강만큼이나 아름답고 더 아름다운 수련이 있는 강가로 나를 데려간다고 해서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저녁에 집에 돌아올 때 – 나중에 사랑으로 옮겨가고 영원히 그것과 분리될 수 없게 되는 그 불안이 내 안에서 깨어날 시간에 – 내 어머니보다 더 아름답고 더 지적인 어머니가 와서 내게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말해주기를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다. 내가 행복하게 잠들 수 있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그 이후로 어떤 연인도 나에게 주지 못한 그 흔들림 없는 평화와 함께 – 우리는 그들을 믿는 순간에도 여전히 의심하고, 그들의 마음을 결코 소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 그것은 바로 그녀여야 했다. 나는 어머니의 입맞춤에서 온전히 받았던 그 마음을, 뒷생각의 여지도 없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닌 의도의 잔여물도 없이 받았다. 그녀가 그래야 했고, 눈 아래에 결점이라고 하는 무언가가 있는 그 얼굴을 내게 기울여야 했다. 나는 그것을 다른 모든 것만큼이나 사랑했다. 마찬가지로 내가 다시 보고 싶은 것은 내가 알았던 게르망트 쪽이다. 두 개의 이웃한 농장이 서로 붙어있는 참나무 길 입구 근처에 있는 농장과 함께, 태양이 그것들을 연못처럼 반사하게 만들 때 사과나무 잎들의 윤곽이 그려지는 그 초원들, 때때로 밤에 내 꿈속에서 거의 환상적인 힘으로 그 개성이 나를 사로잡는 그 풍경, 그리고 내가 깨어날 때는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그 풍경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단순히 그들이 나에게 동시에 경험하게 해주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인상들을 영원히 분리할 수 없게 결합시켰기 때문에, 메제글리즈 쪽이나 게르망트 쪽은 나를 미래에 많은 실망과 심지어 많은 실수에 노출시켰다. 종종 나는 단순히 그녀가 나에게 서양 앵초 울타리를 상기시켰기 때문에 한 사람을 다시 보고 싶어 했고, 단순한 여행 욕구로 인해 애정의 재발을 믿고, 믿게 만들었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그리고 오늘날의 내 인상들 중 그들과 연결될 수 있는 것들에 현존함으로써, 그들은 다른 것들에는 없는 기반, 깊이, 또 다른 차원을 그것들에 제공한다. 그들은 또한 오직 나에게만 의미 있는 매력과 의미를 더해준다. 여름 저녁에 조화로운 하늘이 야수처럼 으르렁거리고 모두가 폭풍을 피할 때, 메제글리즈 쪽 덕분에 나는 홀로 황홀경에 빠져 떨어지는 비 소리 속에서 보이지 않는 지속적인 라일락 향기를 들이마시며 남아있을 수 있었다.

이렇게 나는 종종 아침까지 콩브레의 시절을 생각하며 깨어 있었다. 잠 못 이루던 슬픈 저녁들, 그리고 차 한 잔의 맛 – 콩브레에서는 “향기”라고 불렀을 – 에 의해 최근에 그 이미지가 되살아난 많은 날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기억의 연상 작용으로, 내가 그 작은 마을을 떠난 지 많은 해가 지난 후에 알게 된 것, 즉 내가 태어나기 전 스완이 겪었던 사랑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그 사랑에 대해서는 죽은 지 오래된 사람들의 삶에 대해 때때로 더 쉽게 얻을 수 있는 세부사항들의 정확성으로 알게 되었다.

수 세기 동안 우리의 가장 친한 친구들만이 누릴 수 있었던 일이, 마치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말을 전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던 것처럼 불가능해 보였다. 그 불가능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모르는 한에서 말이다. 이 모든 기억들이 쌓여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었지만, 그 사이에서 가장 오래된 기억들과 향기에서 태어난 더 최근의 기억들,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기억들 사이에서 적어도 어떤 암석이나 대리석에서 볼 수 있는 그 무늬와 색채의 변화를 구별할 수 있었다. 그것은 기원과 나이, ‘형성’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물론 아침이 다가올 때쯤에는 내 잠에서 깨어난 짧은 불확실함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나는 내가 실제로 어느 방에 있는지 알고 있었고, 어둠 속에서 그것을 다시 그려냈다. 단순히 기억만으로 방향을 잡거나, 발치에서 보이는 희미한 빛을 이용해 십자창의 커튼을 놓았다. 나는 그것을 완전히 재구성하고 가구를 배치했다. 마치 창문과 문에 원래의 개구부를 유지하는 건축가와 실내장식가처럼 말이다. 나는 거울을 제자리에 놓고 서랍장을 원래 있던 자리에 다시 놓았다. 하지만 날이 밝자마자 – 더 이상 내가 그것으로 착각했던 구리 봉에 비친 마지막 불씨의 반사가 아니라 – 어둠 속에서 마치 분필로 그린 듯 첫 번째 하얀 선을 그었고, 창문은 커튼과 함께 내가 실수로 놓았던 문틀에서 벗어났다. 그 자리를 내주기 위해 내 기억이 서툴게 설치했던 책상은 전속력으로 달아나며 벽난로를 밀치고 복도의 중간 벽을 밀어냈다. 화장실이 있던 자리에 작은 뜰이 자리 잡았고, 내가 어둠 속에서 재건했던 집은 깨어날 때의 소용돌이 속에서 엿보았던 집들과 합류하여 날이 밝으면서 그 창문 위로 그어진 희미한 표시에 쫓겨 달아났다.

두 번째 부분

스완의 사랑

베르뒤랭 부부의 ‘작은 핵심’, ‘작은 그룹’, ‘작은 클랜’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조건으로 충분했지만 그것은 필수적이었다. 암묵적으로 신조에 동의해야 했는데, 그 조항 중 하나는 그해 베르뒤랭 부인이 후원하는 젊은 피아니스트에 대해 “바그너를 저렇게 연주할 줄 아는 게 허용되어서는 안 돼!”라고 말하며, 그가 플랑테와 루빈스타인을 ‘능가한다’는 것이었고, 코타르 박사가 포탱보다 더 진단을 잘 한다는 것이었다. 베르뒤랭 부부가 자신들의 집에 가지 않는 사람들의 저녁 모임이 비 오듯 지루하다고 설득할 수 없는 모든 ‘새로운 신입’은 즉시 배제되었다. 이 점에서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더 세속적인 호기심과 다른 살롱의 즐거움에 대해 스스로 알아보고 싶어 하는 욕구를 버리기 어려웠기 때문에, 베르뒤랭 부부는 이러한 조사 정신과 경박함의 악마가 전염되어 작은 교회의 정통성에 치명적일 수 있다고 느껴 여성 ‘신도’들을 연이어 거부하게 되었다.

의사의 젊은 아내를 제외하고, 그들은 그해 거의 유일하게 (베르뒤랭 부인 자신이 정숙하고 존경받는 부르주아 가문 출신으로 극도로 부유하지만 완전히 무명이었고 그녀가 점차 자발적으로 모든 관계를 끊은 가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준 사교계 여성인 크레시 부인으로 축소되었다. 베르뒤랭 부인은 그녀를 애칭으로 오데트라고 불렀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선언했다. 또한 피아니스트의 고모가 있었는데, 그녀는 문지기 줄을 당겼을 것이다. 이들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진한 사람들이어서, 사간 공주와 게르망트 공작부인이 저녁 식사에 사람들을 초대하기 위해 불쌍한 사람들에게 돈을 지불해야 한다고 믿게 하기가 쉬웠다. 만약 그들에게 이 두 대귀족 부인의 집에 초대받을 기회를 제안했다면, 전직 문지기와 고급 매춘부는 경멸스럽게 거절했을 것이다.

베르뒤랭 부부는 저녁 식사에 초대하지 않았다. 그들의 집에서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저녁 모임에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었다. 젊은 피아니스트가 연주했지만, 오직 ‘그가 하고 싶을 때’만 그랬다. 왜냐하면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고 베르뒤랭 씨가 말하듯 “모든 것은 친구들을 위한 것이고, 동료들 만세!”였기 때문이다. 만약 피아니스트가 발퀴레의 기마나 트리스탄의 전주곡을 연주하고 싶어 한다면, 베르뒤랭 부인은 그 음악이 싫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강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항의했다. “그러면 당신은 내가 편두통에 시달리길 바라는 거예요? 그가 그걸 연주할 때마다 똑같다는 걸 잘 알잖아요. 내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아요! 내일 일어나려고 할 때, 안녕, 더 이상 아무도 없어!” 그가 연주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대화를 나눴고, 친구들 중 한 명, 주로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가 베르뒤랭 씨의 말대로 “터무니없는 말을 내뱉어 모든 사람을 웃게 만들었다”. 특히 베르뒤랭 부인은 – 그녀가 겪는 감정의 비유적 표현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습관이 너무 강해서 – 코타르 박사 (그 당시에는 젊은 초보자였다)가 어느 날 그녀의 턱을 다시 맞춰주어야 했다. 그녀가 너무 웃어서 턱이 빠졌기 때문이었다.

정장은 금지되었다. 왜냐하면 모두가 ‘친구’였고 전염병처럼 피하는 ‘지루한 사람들’과 같아 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오직 큰 저녁 모임에만 초대되었는데, 이는 가능한 한 드물게, 그리고 오직 화가를 즐겁게 하거나 음악가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될 때만 열렸다. 나머지 시간에는 수수께끼 놀이를 하고, 의상을 입고 저녁을 먹었지만, 오직 자신들끼리였고 작은 ‘핵심’에 어떤 외부인도 섞지 않았다.

하지만 ‘동료들’이 베르뒤랭 부인의 삶에서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서, 지루한 사람들, 배척된 사람들은 친구들을 그녀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모든 것, 때로는 그들이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이 되었다. 한 사람의 어머니, 다른 사람의 직업, 세 번째 사람의 시골집이나 건강 상태가 그랬다. 만약 코타르 박사가 식사를 마치고 위험한 환자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누가 알겠어요,” 베르뒤랭 부인이 말했다. “당신이 오늘 밤 그를 방해하지 않는 것이 그에게 훨씬 더 좋을 수도 있어요. 그는 당신 없이 좋은 밤을 보낼 거예요. 내일 아침 일찍 가보면 그가 나았을 거예요.” 12월 초부터 그녀는 크리스마스와 새해 첫날에 신도들이 ‘도망갈’ 것이라는 생각에 병이 났다. 피아니스트의 고모는 그가 그날 자신의 어머니 집에서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당신은 새해 첫날에 그녀와 함께 저녁을 먹지 않으면 당신 어머니가 죽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베르뒤랭 부인이 거칠게 외쳤다. “마치 시골에서처럼 말이에요!”

그녀의 걱정은 성주간에 다시 시작되었다.

“박사님, 당신은 학자이시고 자유로운 영혼이니까, 당연히 성금요일에도 다른 날처럼 오시겠죠?” 그녀는 첫해에 코타르에게 말했다. 그녀는 확신에 찬 어조였지만, 그의 대답을 기다리며 불안해했다. 그가 오지 않는다면, 그녀는 혼자 남겨질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는 성금요일에 갈 거예요… 작별 인사를 하러요. 우리는 부활절 휴가를 오베르뉴에서 보낼 거예요.”

“오베르뉴에서요? 벼룩과 해충에게 먹히러 가시는 건가요? 그럼 행운을 빕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녀가 말했다.

“미리 말씀해주셨더라면, 그걸 준비해서 편안하게 함께 여행할 수 있었을 텐데요.”

마치 단골 손님에게 친구가 있거나, 여성 단골에게 연인이 있어 때때로 ‘포기하게’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베르뒤랭 부부는 여자가 연인을 데려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의 집에서, 그들을 사랑하면서, 그들보다 그 연인을 더 좋아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좋아요, 당신의 친구를 데려오세요.” 그리고 그들은 그를 시험 삼아 초대했다. 베르뒤랭 부인에게 비밀을 갖지 않고, ‘작은 그룹’에 가입할 수 있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를 소개한 단골을 따로 불러 그의 친구나 애인과 그를 멀어지게 하는 호의를 베풀었다. 반대의 경우, ‘신입’은 차례로 단골이 되었다. 그래서 그해, 그 반세계 여인이 베르뒤랭 씨에게 매력적인 남자를 알게 되었다고 말하고 스완 씨를 소개하면서, 그가 그들의 집에 초대받기를 매우 기쁘게 생각할 것이라고 넌지시 말했을 때, 베르뒤랭 씨는 즉시 그 요청을 아내에게 전했다. (그는 아내의 의견을 들은 후에만 의견을 가졌다. 그의 특별한 역할은 단골들의 욕망뿐만 아니라 아내의 욕망을 큰 재치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었다.)

“이봐요, 크레시 부인이 당신에게 부탁할 게 있대요. 그녀의 친구 중 한 명인 스완 씨를 당신에게 소개하고 싶어 해요. 어떻게 생각해요?”

“그런 작고 완벽한 분에게 무언가를 거절할 수 있나요? 조용히 하세요, 당신의 의견은 묻지 않았어요. 당신이 완벽하다고 말하고 있어요.”

“당신이 원하신다면요,” 오데트가 애교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저는 ‘칭찬을 구걸하는’ 게 아니에요.”

“좋아요, 당신의 친구를 데려오세요, 그가 마음에 든다면요.”

물론 ‘작은 핵심 그룹’은 스완이 교제하는 사회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순수한 상류 사회 사람들은 베르뒤랭 부부의 집에 소개되기 위해 그처럼 특별한 위치를 차지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스완은 여자들을 너무나 좋아해서, 귀족 사회의 거의 모든 여자들을 알게 되고 그들에게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어진 날부터, 그는 생제르맹 구역이 그에게 부여한 귀화 증서, 거의 귀족 칭호와 같은 것들을 더 이상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일종의 교환 가치, 그 자체로는 가치가 없지만 시골의 작은 구석이나 파리의 어두운 곳에서 호베로의 딸이나 서기관의 딸이 예쁘다고 생각될 때 즉석에서 자리를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신용장과 같았다.

욕망이나 사랑은 그에게 일상생활에서는 이제 면제된 허영심을 되살려주었다. (물론 이것이 그를 세속적인 경력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정신적 재능을 하찮은 즐거움에 낭비하고, 미술에 대한 박식함을 상류 사회 여성들의 그림 구매와 저택 장식을 조언하는 데 사용했다.) 그는 사랑에 빠진 낯선 여인의 눈에 스완이라는 이름만으로는 암시되지 않는 우아함으로 빛나고 싶어 했다. 특히 그 낯선 이가 비천한 신분일 때 더욱 그랬다. 똑똑한 사람이 다른 똑똑한 사람 앞에서 바보처럼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듯이, 우아한 사람은 귀족 앞에서가 아니라 촌뜨기 앞에서 자신의 우아함이 인정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 세상이 생겨난 이래 그들을 오히려 격하시킨 사람들이 쏟아부은 정신적 노력과 허영심의 거짓말 중 4분의 3은 열등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스완은 공작 부인 앞에서는 단순하고 소홀했지만, 하녀 앞에서는 멸시당할까 봐 떨며 가장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처럼 게으름이나 사회적 지위가 만들어내는 의무감 때문에 죽을 때까지 자신이 살고 있는 세속적 위치에 머물러 있으면서, 그 안에 포함된 평범한 오락이나 참을 만한 지루함을 더 나은 게 없어서 결국에는 즐거움이라고 부르게 되는 그런 사람들과는 달랐다. 스완은 자신이 시간을 보내는 여자들을 예쁘다고 여기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에 예쁘다고 생각한 여자들과 시간을 보내려 했다. 그리고 그것은 종종 꽤 속된 아름다움을 가진 여자들이었다. 그가 무의식적으로 찾는 신체적 특징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대가들이 조각하거나 그린 여인들을 감탄스럽게 만드는 특징들과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었다. 깊이 있고 우울한 표정은 그의 감각을 얼어붙게 했다. 반대로 건강하고 풍만하며 장밋빛 살결은 그의 감각을 충분히 일깨웠다.

여행 중에 더 우아하게 알고 싶지 않은 가족을 만났을 때, 그 중 한 여자가 그에게 아직 알지 못했던 매력으로 눈에 띄었다면, 그는 ‘자기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서 그녀가 불러일으킨 욕망을 속이고, 옛 애인에게 편지를 써서 와달라고 하여 그녀와 알 수 있었을 즐거움 대신 다른 즐거움으로 대체하는 것은, 마치 그 나라를 방문하는 대신 자기 방에 틀어박혀 파리의 풍경을 보는 것처럼 삶 앞에서 비겁하게 항복하고 새로운 행복을 어리석게 포기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는 자신의 관계라는 건물 안에 갇혀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여자가 마음에 들 때마다 새롭게 재건축할 수 있도록 탐험가들이 가져가는 조립식 텐트 중 하나로 만들었다. 새로운 즐거움과 교환하거나 옮길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다른 이들에게 아무리 부러워 보이더라도 그는 공짜로 주었을 것이다. 공작 부인에 대한 그의 신용, 수년간 그녀가 그에게 호의를 베풀고 싶어 했지만 기회를 찾지 못했던 욕망으로 만들어진 신용을, 그는 단 한 번의 부적절한 전보로 소진시켰다. 그는 시골에서 본 그녀의 청지기 중 한 명의 딸과 즉시 관계를 맺게 해달라는 전보 추천을 요구했다. 마치 배고픈 사람이 다이아몬드를 빵 한 조각과 바꾸는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 나중에는 그것을 재미있어했다. 그에게는 드문 섬세함으로 보상받는 일종의 무례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게으름 속에서 살아온 지적인 사람들의 범주에 속했다. 그들은 이 게으름이 그들의 지성에 예술이나 학문만큼이나 관심 있는 대상을 제공한다는 생각, ‘인생’이 모든 소설보다 더 흥미롭고 로맨틱한 상황을 포함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위안을, 어쩌면 변명을 찾는다. 그는 적어도 그렇게 주장했고, 샤를뤼스 남작을 포함한 가장 세련된 친구들에게 쉽게 그것을 설득시켰다.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재미있는 모험들을 이야기하며 그를 즐겁게 했다. 예를 들어 기차에서 만난 여자를 집으로 데려갔다가 그녀가 당시 유럽 정치의 모든 실타래를 쥐고 있는 군주의 누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아주 즐거운 방식으로 정세를 알게 되었다든지, 아니면 복잡한 상황의 작용으로 교황청의 선택에 따라 그가 요리사의 애인이 될 수 있을지 여부가 결정될 것 같다든지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게다가 베르뒤랭 부부의 화려한 집단은…

콩브레의 현숙한 과부들, 장군들, 학술원 회원들과 특별히 친분이 있었던 스완은 그들에게 매우 냉소적으로 중매인 노릇을 강요했다. 그의 모든 친구들은 때때로 그에게서 추천장이나 소개장을 요청하는 편지를 받곤 했는데, 이는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여 쓰인 것이었다. 이러한 수완은 연이은 연애사와 다양한 구실들을 관통하며 지속되어, 서툰 행동보다 오히려 변함없는 성격과 동일한 목적을 더욱 분명히 드러냈다. 나는 여러 해가 지난 후 그의 성격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때, 그가 내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쓴 것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할아버지는 아직 할아버지가 되기 전이었는데, 스완의 대단한 연애가 시작된 것이 내가 태어날 무렵이었고 그로 인해 이런 관행들이 오랫동안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편지 봉투에서 친구의 필체를 알아보고 이렇게 외쳤다. “스완이 또 뭔가를 부탁하려고 하는군. 조심해야겠어!” 그리고 불신 때문인지, 아니면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만 무언가를 제공하고 싶어 하는 무의식적으로 사악한 감정 때문인지, 조부모님은 그가 요청한 가장 쉬운 부탁들에도 절대적인 거절로 응답했다. 예를 들어, 매주 일요일 저녁 우리 집에서 식사하는 한 젊은 여성을 그에게 소개해달라는 요청에 대해, 그들은 스완이 다시 언급할 때마다 그 여성을 더 이상 보지 못한 척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일주일 내내 그녀와 함께 초대할 만한 사람을 찾느라 고민하다가 결국 아무도 찾지 못해, 그토록 기뻐했을 사람에게 연락도 하지 않고 끝나곤 했다.

때로는 조부모님의 어떤 친구 부부가 스완을 전혀 보지 못한다고 불평하다가, 그가 자신들에게 더없이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 이제는 그들 곁을 떠나지 않는다고 만족스럽게, 그리고 아마도 약간의 질투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로 알려오곤 했다. 할아버지는 그들의 즐거움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할머니를 바라보며 이렇게 흥얼거렸다.

“도대체 이게 무슨 미스터리인가

난 아무것도 이해할 수가 없네.”

또는:

“덧없는 환영…”

또는:

“이런 일에선

아무것도 보지 않는 게 최선이지.”

몇 달 후, 만약 할아버지가 스완의 새로운 친구에게 “스완을 여전히 자주 보시나요?”라고 물으면, 상대방의 얼굴이 길어졌다. “제발 그의 이름을 내 앞에서 언급하지 마세요!” – “하지만 당신들이 아주 가깝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는 할머니의 사촌들과 몇 달 동안 친밀하게 지내며 거의 매일 그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갑자기 그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오지 않게 되었다. 그가 아프다고 생각한 할머니의 사촌은 그의 안부를 물으러 보내려고 했을 때, 부엌에서 우연히 요리사의 장부에 끼워져 있는 그의 편지를 발견했다. 그는 파리를 떠날 것이며 더 이상 올 수 없다고 그 여자에게 알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정부였고, 관계를 끝내면서 그는 오직 그녀에게만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반면 그의 현재 정부가 사교계 여성이거나, 적어도 너무 낮은 출신이나 불규칙한 처지 때문에 그가 사교계에 데리고 갈 수 없는 사람이 아닐 때는, 그녀를 위해 사교계로 돌아갔지만, 오직 그녀가 움직이는 특정한 궤도 안에서, 또는 그가 그녀를 끌어들인 곳에서만 그랬다. “오늘 저녁 스완을 기대하지 마세요. 그의 미국 여인의 오페라 날이라는 걸 알잖아요.”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그는 그녀를 자신이 습관적으로 다니는 특별히 폐쇄적인 살롱들, 매주 하는 저녁 식사들, 포커 모임에 초대하게 했다. 매일 저녁, 붉은 머리카락에 브러시를 살짝 더해 초록색 눈의 생기를 부드럽게 누그러뜨린 후, 그는 단추 구멍에 꽂을 꽃을 고르고 자신의 무리 중 한 여성의 집에서 정부와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출발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날, 자신이 좋고 싫음을 좌우하는 유행의 선두주자들이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자신에게 쏟아낼 찬사와 우정을 생각하며, 그는 이미 싫증이 난 사교계 생활에서 다시 매력을 발견했다. 그 생활의 실체는 새로운 사랑으로 물들고 따뜻하게 채색되어 그 안에서 춤추는 불꽃에 의해 침투되고 물들어, 그에게는 귀중하고 아름답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든 관계나 구애는 스완이 스스로, 아무런 노력 없이 매력적이라고 느낀 얼굴이나 몸에서 비롯된 꿈의 불완전한 실현에 불과했다. 그러나 어느 날 극장에서 스완은 옛 친구에게 오데트 드 크레시를 소개받았다. 친구는 그녀를 매혹적인 여성이라고 소개하며 스완과 뭔가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지만, 마치 자신이 더 호의적인 일을 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실제보다 그녀를 더 어렵게 묘사했다. 스완의 눈에 그녀는 분명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무관심한 종류의 아름다움이었다. 그녀는 어떤 욕망도 불러일으키지 않았고, 오히려 일종의 육체적 거부감을 느끼게 했다. 그녀는 모든 사람이 가진 그런 여성들 중 하나였다. 각자에게 다르게 느껴지지만, 우리의 감각이 원하는 유형과는 정반대였다. 스완의 마음에 들려면 그녀는 너무 뚜렷한 옆모습, 너무 연약한 피부, 너무 두드러진 광대뼈, 너무 긴장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아름다웠지만 너무 커서 그 무게로 인해 눈꺼풀이 축 처져 얼굴의 나머지 부분을 피곤하게 만들었고, 항상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기분이 나빠 보이게 했다. 극장에서의 소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오데트는 스완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녀는 스완의 소장품들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예쁜 것들을 좋아하는 무지한 사람”으로서 스완의 소장품들에 큰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스완의 “집”에서 그를 만나면 더 잘 알게 될 것 같다고 했는데, 그녀는 그곳을 “차와 책이 있는 아주 편안한 곳”으로 상상했다. 하지만 그녀는 스완이 사는 동네가 너무 우울할 것 같다며 놀라움을 숨기지 않았고, 그토록 세련된 스완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이라고 했다. 스완이 그녀의 방문을 허락한 후, 오데트는 떠나면서 그토록 짧은 시간밖에 머물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마치 스완이 다른 아는 사람들보다 그녀에게 더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말했고, 둘 사이에 일종의 로맨틱한 유대를 만들려는 듯했다. 이는 스완을 미소 짓게 했다. 하지만 스완이 접어들고 있던 다소 환멸을 느끼는 나이에는,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상대방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고 단순히 사랑에 빠지는 즐거움에 만족할 줄 아는 나이에는, 이러한 마음의 결합이 더 이상 젊은 시절처럼 사랑이 필연적으로 향하는 목표는 아니더라도, 여전히 관념의 연상에 의해 강하게 결부되어 있어 사랑의 원인이 될 수 있었다. 예전에는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소유하는 것을 꿈꾸었다면, 나중에는 어떤 여인의 마음을 소유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그녀를 사랑하게 되기에 충분할 수 있었다. 따라서 사랑에서 주관적인 즐거움을 주로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나이에,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취향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야 할 것 같은 때에, 사랑이 – 가장 육체적인 사랑조차도 – 여성에 대한 사전의 욕망 없이 태어날 수 있었다. 이 시기의 삶에서, 우리는 이미 여러 번 사랑에 빠졌었다. 사랑은 더 이상 우리의 놀란 수동적인 마음 앞에서 자신의 알 수 없고 운명적인 법칙에 따라 혼자 발전하지 않는다. 우리는 기억과 암시로 그것을 돕고 왜곡한다. 사랑의 한 증상을 인식하면서, 우리는 그것을 기억하고, 다시 살아나게 한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의 노래를 온전히 간직하고 있기에, 여인이 그 시작 부분을 말해줄 필요가 없었다. 아름다움에서 영감을 받는 찬사로 가득 찬 시작 부분을 듣지 않아도 뒷부분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녀가 중간부터 시작하더라도 – 마음이 가까워지고 서로를 위해서만 존재하겠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 우리는 이 음악에 충분히 익숙해서 파트너가 우리를 기다리는 구절로 바로 합류할 수 있었다.

오데트 드 크레시는 스완을 다시 찾아갔고, 그 후 방문 횟수를 늘렸다. 틀림없이 그녀의 방문마다 스완은 실망을 느꼈을 것이다. 그는 그 사이에 조금 잊고 있던 그녀 얼굴의 특징들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고, 그것이 생각했던 것만큼 표정 풍부하지도 않고, 젊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시들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오데트가 이야기하는 동안 그는 그녀의 큰 아름다움이 자신이 자발적으로 선호했을 유형이 아님을 아쉬워했다. 사실 오데트의 얼굴이 더 마르고 두드러져 보이는 이유는 이마와 볼의 윗부분, 그 평평하고 더 넓은 표면이 당시 유행하던 머리 스타일로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앞머리’로 늘어뜨리고 ‘크레페’로 부풀리고 귀 주변으로 흐트러진 머리카락들이 그 표면을 덮고 있었다. 그녀의 몸매는 훌륭했지만, 그 연속성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당시 유행과 그녀가 파리에서 가장 잘 차려입는 여성 중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코르사주가 마치 상상 속의 배 위로 튀어나와 갑자기 뾰족하게 끝나고 그 아래로 이중 치마의 풍선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면서, 여성이 서로 잘 맞지 않는 다른 부분들로 구성된 것처럼 보이게 했다. 프릴, 주름장식, 조끼가 각자의 디자인이나 천의 질감에 따라 독립적으로 리본, 레이스 주름, 수직의 제트 장식 술로 이어지거나 가슴 부위를 따라 흘러내리지만, 살아있는 존재와는 전혀 연결되지 않았다. 이런 장식품들의 구조가 그녀의 신체와 너무 가깝거나 멀어짐에 따라 그녀는 그 속에 갇히거나 길을 잃은 듯했다.

하지만 오데트가 떠나자 스완은 그녀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올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더디게 흘러갈지 생각하며 미소 지었다. 그는 그녀가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도록 걱정스럽고 수줍은 태도로 부탁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그녀는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그 눈빛은 검은 벨벳 리본이 장식된 하얀 밀짚 모자 아래에 꽂힌 인조 팬지 꽃다발 아래에서 더욱 빛났다. “집에 한 번 와서 차라도 마시지 않으실 건가요?”라고 그녀는 물었다. 그는 몇 년 전에 사실상 포기했던 델프트의 페르메이르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이라는 핑계를 대었다. “저 같은 보잘것없는 사람이 당신 같은 대학자들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알아요.”라고 그녀는 대답했다. “저는 아레오파고스 앞의 개구리 같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정말 배우고 싶고, 알고 싶고, 깨우치고 싶어요. 오래된 서류들을 뒤적거리고 거기에 코를 파묻는 게 얼마나 재미있을까요.”라고 그녀는 더러운 일을 겁내지 않고 즐기는 우아한 여성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덧붙였다. “당신은 저를 비웃으실 거예요. 저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그 화가(그녀는 페르메이르를 말하고 있었다), 저는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가 아직 살아있나요? 파리에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나요? 그래야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고, 그 열심히 일하는 큰 이마 아래에, 항상 생각에 잠겨 있는 그 머리 속에 무엇이 있는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신의 작업에 참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는 새로운 우정에 대한 두려움, 그가 예의상 불행해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불렀던 것을 핑계로 거절했다. “애정에 대해 두려워하세요? 정말 이상해요. 저는 그것만을 찾고 있어요. 그걸 찾기 위해 제 목숨이라도 바치겠어요.”라고 그녀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해서 그는 감동을 받았다. “당신은 여자 때문에 고통받으셨군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녀와 같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그녀는 당신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당신은 정말 특별한 사람이에요. 그게 제가 당신에게서 처음 좋아한 점이에요. 당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걸 금방 알아챘어요.” “그리고 당신도 마찬가지예요.”라고 그가 말했다. “저는 여자들이 어떤지 잘 알아요. 당신은 할 일이 많고 시간이 별로 없겠죠.” “저는 할 일이 전혀 없어요! 저는 항상 자유로워요, 당신을 위해서라면 언제나 자유로울 거예요. 낮이든 밤이든 당신이 편한 시간에 저를 부르세요. 저는 너무나 기쁘게 달려갈 거예요. 그렇게 해주실 건가요? 제안 하나 드릴게요. 제가 매일 저녁 가는 베르뒤랭 부인에게 당신을 소개해드리면 어떨까요? 상상해보세요! 만약 우리가 거기서 만난다면, 그리고 제가 당신이 조금은 저 때문에 오셨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틀림없이 그는 혼자 있을 때 이렇게 그들의 대화를 떠올리며 그녀에 대해 생각하면서, 단지 그녀의 이미지를 로맨틱한 상상 속 다른 여성들의 이미지 사이에서 움직이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어떤 상황 때문에 (또는 그것 때문이 아니더라도, 그때까지 잠재해 있던 상태가 드러나는 순간에 나타나는 상황은 그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오데트 드 크레시의 이미지가 이 모든 상상을 흡수하게 되고, 이 상상들이 더 이상 그녀에 대한 기억과 분리될 수 없게 된다면, 그녀 몸의 불완전함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스완의 취향에 따라 다른 몸보다 더 혹은 덜 아름다웠던 것도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사랑하는 여인의 몸이 되어, 이제 그에게 기쁨과 고통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 할아버지는 우연히도 그들의 현재 친구들 중 누구도 알지 못했던 이 베르뒤랭 가족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젊은 베르뒤랭’이라고 부르던 사람과의 관계를 모두 끊었다. 그는 그를 대략적으로 – 수백만 프랑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 보헤미안과 하층민 속으로 떨어진 것으로 여겼다. 어느 날 그는 스완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그 편지에서 스완은 자신을 베르뒤랭 부부와 연결시켜줄 수 있는지 물었다. “이런, 이런!” 할아버지는 외쳤다. “전혀 놀랍지 않아. 스완이 그렇게 될 줄 알았어. 좋은 환경은 아니지. 우선, 난 그가 요구하는 걸 할 수 없어. 난 더 이상 그 사람을 모르거든. 게다가 이건 틀림없이 여자와 관련된 일일 거야. 난 그런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아. 아, 스완이 작은 베르뒤랭들과 어울리게 된다면 우리는 정말 재미있는 일을 보게 될 거야.”

할아버지의 부정적인 대답에, 오데트가 직접 스완을 베르뒤랭 부부에게 데려갔다.

스완이 처음 방문한 날, 베르뒤랭 부부는 코타르 박사와 그의 부인, 젊은 피아니스트와 그의 이모, 그리고 당시 그들의 총애를 받고 있던 화가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저녁 무렵에는 다른 단골 손님들도 몇 명 합류했다.

코타르 박사는 자신의 대화 상대가 농담을 하는 것인지 진지한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항상 어떤 어조로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그는 모든 표현에 만약을 대비해 미소를 덧붙였다.

코타르 박사는 얼굴에 조건부이고 일시적인 미소를 띠며 기다렸다. 그 기대에 찬 미묘한 미소는 만약 상대방의 말이 농담이었다면 그를 순진하다는 비난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이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에 대비해 그는 그 미소가 얼굴에 확실히 자리 잡는 것을 감히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얼굴에는 끊임없이 불확실함이 떠돌았고, 거기서 그가 감히 묻지 못하는 질문을 읽을 수 있었다: “농담하시는 건가요?” 그는 거리에서, 그리고 일반적으로 삶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확신하지 못했고, 사교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 마차들, 사건들에 대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는데, 이는 미리 자신의 태도에서 부적절함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왜냐하면 그 미소는 만약 그의 태도가 적절하지 않다면, 그가 그것을 알고 있으며 장난으로 그런 태도를 취했다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솔직한 질문이 허용되는 모든 점에서, 박사는 자신의 의심의 범위를 좁히고 지식을 완성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그가 고향을 떠났을 때 현명한 어머니가 그에게 준 조언에 따라, 그는 자신이 모르는 관용구나 고유명사를 들을 때마다 그것에 대해 설명을 들으려고 노력하지 않고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관용구에 대해서는, 그는 설명을 듣는 것을 갈망했다. 때로는 관용구가 실제 의미보다 더 정확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이 가장 자주 듣는 표현들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싶어 했다. ‘악마의 아름다움’, ‘푸른 피’, ‘방탕한 생활’, ‘라블레의 15분’, ‘우아함의 왕자’, ‘백지 위임장’, ‘궁지에 몰리다’ 등의 표현들, 그리고 어떤 특정한 경우에 자신이 대화에서 그것들을 사용할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그런 관용구들이 없으면 그는 배운 말장난을 사용했다. 그의 앞에서 새로 언급된 사람들의 이름에 대해서는, 그는 단순히 의문의 어조로 그것들을 반복했는데, 이는 설명을 요청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면서도 설명을 얻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비판적 감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도움을 준 사람에게 빚을 졌다고 말하면서도 그렇게 믿기를 바라지 않는 정중함의 세련됨은 그에게는 헛수고였다. 그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베르뒤랭 부인이 그에 대해 얼마나 눈이 멀었든 간에, 그녀는 계속해서 그를 매우 영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결국에는 짜증이 났다. 그녀가 사라 베르나르를 보러 가는 아방스센에 그를 초대하면서 더 정중하게 말하기 위해 “박사님, 와주셔서 너무 고마워요. 특히 당신이 이미 사라 베르나르를 여러 번 보셨을 테고, 또 우리가 무대에 너무 가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래요”라고 말했을 때, 코타르 박사는 누군가 권위 있는 사람이 공연의 가치에 대해 알려주기를 기다리며 미소를 지으며 박스석에 들어왔다가 그녀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실제로 우리는 너무 가깝고 사라 베르나르에 지쳐가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이 제가 오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죠. 저에게 당신의 바람은 명령입니다. 저는 이 작은 서비스를 드릴 수 있어 너무 행복해요. 당신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어요. 당신은 정말 좋은 분이에요!”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사라 베르나르는 정말 ‘황금의 목소리’이지 않나요? 그녀가 무대를 불태운다고도 자주 쓰던데, 이상한 표현이지 않나요?” 그는 오지 않는 설명을 기대하며 말했다.

“난 우리가 박사에게 제공하는 것을 겸손하게 평가절하할 때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해.” 베르뒤랭 부인이 남편에게 말했다. “그는 실용적인 삶 밖에서 사는 학자야. 그는 스스로 사물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우리가 말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나도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감히 말하지 못했어.” 베르뒤랭 씨가 대답했다. 그래서 다음 해 새해에, 코타르 박사에게 3,000프랑짜리 루비를 보내면서 그것이 작은 선물이라고 말하는 대신, 베르뒤랭 씨는 300프랑짜리 인조 보석을 사서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보기 힘들 것이라고 넌지시 말했다.

베르뒤랭 부인이 저녁에 스완 씨가 올 것이라고 발표했을 때, “스완이요?” 하고 박사가 놀라움으로 거칠어진 어조로 외쳤다. 가장 작은 소식도 누구보다 그를 더 당황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는 “스완이라고요? 누구 스완 말입니까!” 하고 극도의 불안감으로 소리쳤다. 그 불안감은 베르뒤랭 부인이 “오데트가 우리에게 말했던 그 친구 말이에요.”라고 말하자 갑자기 풀어졌다. “아, 좋아요, 좋아요, 괜찮아요.” 박사는 안도하며 대답했다. 화가는 스완이 베르뒤랭 부인 집에 소개된 것을 기뻐했다. 그는 스완이 오데트와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했고, 그는 연인 관계를 주선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결혼을 주선하는 것만큼 재미있는 건 없죠.” 그는 코타르 박사의 귀에 대고 말했다. “나는 이미 여러 쌍을 성사시켰어요. 심지어 여자들 사이에서도요!”

오데트가 베르뒤랭 부부에게 스완이 매우 ‘스마트’하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지루한 사람’일 거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그들에게 아주 좋은 인상을 주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상류 사회에서 지낸 경험 때문이었다. 그는 실제로 한 번도 사교계에 가보지 못한 지적인 사람들에 비해 우월한 점이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사교계를 욕망이나 공포로 변형시키지 않고, 그것을 전혀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것이었다. 그의 친절함은 속물근성이나 너무 친절해 보일까 하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독립적이 되어, 마치 유연한 사지가 정확히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의 움직임처럼 그런 편안함과 우아함을 지니게 되었다. 자신에게 소개되는 낯선 젊은이에게 정중하게 손을 내밀고, 자신이 소개되는 대사 앞에서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이는 사교계 사람의 단순한 초보적 체조는 결국 스완의 모든 사회적 태도에 무의식적으로 스며들어, 자신보다 낮은 계층의 사람들인 베르뒤랭 부부와 그들의 친구들 앞에서 본능적으로 열의를 보이고 친근하게 대했다. 그들이 보기에 지루한 사람이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그는 코타르 박사에게만 잠시 차가운 태도를 보였다. 그들이 아직 말을 나누기도 전에 박사가 그에게 윙크를 하고 애매하게 웃는 것을 보고 (코타르는 이것을 ‘다가오게 하는 것’이라고 불렀다), 스완은 박사가 자신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그들이 어떤 유흥장소에서 만났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곳에 거의 가지 않았기 때문에, 특히 오데트 앞에서 자신에 대해 나쁜 인상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여 그 암시를 나쁘게 받아들이고 차가운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그 옆에 있는 여성이 코타르 부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는 그렇게 젊은 남편이 아내 앞에서 그런 종류의 오락을 암시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박사의 의미심장한 표정에 두려워했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화가는 즉시 스완을 오데트와 함께 자신의 아틀리에로 초대했고, 스완은 그가 친절하다고 생각했다. “당신이 더 우대받을지도 모르겠네요.” 베르뒤랭 부인이 약간 삐진 듯한 말투로 말했다. “어쩌면 당신에게는 주저하는 문을 보여줄지도 모르죠.”

코타르의 초상화, 그녀가 화가에게 의뢰한 것이었다. “선생님,” 그녀는 화가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관례가 된 농담을 상기시키며 말했다. “눈의 아름다운 표정, 그 섬세하고 재미있는 부분을 잘 표현해 주세요. 제가 가장 원하는 것은 그의 미소예요. 제가 부탁드린 것은 그의 미소의 초상화예요.” 그녀는 이 표현이 훌륭하다고 생각했고, 여러 초대 손님들이 들었을 것이라고 확신하기 위해 아주 큰 소리로 그것을 반복했다. 심지어 애매한 구실로 몇몇 손님들을 더 가까이 오게 했다. 스완은 모든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싶어 했다. 심지어 베르뒤랭 부부의 오랜 친구인 사니에트와도 인사를 나누었는데, 그의 수줍음과 단순함, 그리고 선한 마음 때문에 그는 문서 보관소 학자로서의 지식, 막대한 재산, 그리고 그가 속한 명문가 출신이라는 점이 그에게 가져다준 평판을 모두 잃었다. 그는 말할 때 입안에서 말을 우물거렸는데, 이는 혀의 결함이라기보다는 영혼의 특질, 즉 그가 한 번도 잃은 적이 없는 어린 시절의 순수함의 흔적이었기 때문에 귀엽게 여겨졌다. 그가 발음할 수 없는 모든 자음은 그가 감당할 수 없는 무언가를 나타내는 것 같았다. 사니에트 씨와의 소개를 요청하면서 스완은 베르뒤랭 부인에게 역할을 뒤바꾸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그래서 그녀는 대답으로 차이를 강조하며 말했다. “스완 씨, 우리 친구 사니에트를 소개해 드릴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이는 사니에트에게 열렬한 호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베르뒤랭 부부는 이를 결코 스완에게 알리지 않았다. 사니에트가 그들을 약간 짜증나게 했고 그들은 그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스완은 피아니스트의 고모와 인사를 나누게 해달라고 즉시 요청함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무한히 감동시켰다. 그녀는 항상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이는 검은색이 항상 잘 어울리고 가장 품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식사를 할 때마다 그렇듯이 얼굴이 매우 붉어져 있었다. 그녀는 스완 앞에서 공손히 고개를 숙였지만 위엄 있게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전혀 교육을 받지 못했고 프랑스어를 잘못 사용할까 봐 두려워했기 때문에 일부러 불분명하게 발음했다. 만약 실수를 하더라도 그것이 너무 모호해서 확실히 구별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의 대화는 불분명한 중얼거림에 불과했고, 그 속에서 때때로 그녀가 확신하는 몇 안 되는 단어들만이 튀어나왔다. 스완은 베르뒤랭 씨에게 말하면서 그녀를 약간 조롱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베르뒤랭 씨가 화를 냈다.

“그녀는 정말 훌륭한 여성입니다,” 그가 대답했다. “그녀가 놀랄 만큼 재치 있지는 않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녀와 단둘이 대화를 나누면 매우 즐겁다고 장담합니다.” “의심하지 않습니다,” 스완이 서둘러 인정했다. “그녀가 ‘탁월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이 형용사를 강조하며 덧붙였다. “결국 그것은 오히려 칭찬이에요!” “자,” 베르뒤랭 씨가 말했다. “제가 당신을 놀라게 해 드리죠. 그녀는 매우 매력적으로 글을 씁니다. 당신은 그녀의 조카의 연주를 들어본 적이 없나요? 정말 훌륭하지 않습니까, 박사님? 스완 씨, 제가 그에게 뭔가를 연주해 달라고 부탁해도 될까요?”

“그것은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스완이 대답하기 시작했을 때 의사가 조롱하는 표정으로 그를 가로막았다. 실제로 그는 대화에서 과장된 말이나 엄숙한 표현의 사용이 구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즐거움’이라는 단어를 진지하게 말하는 것을 들으면 그 말을 한 사람이 겉치레를 하는 것처럼 생각했다. 게다가 만약 그 단어가 우연히 그가 ‘오래된 클리셰’라고 부르는 것에 포함되어 있다면, 그 단어가 아무리 흔하다 하더라도 의사는 시작된 문장이 우스꽝스럽다고 가정하고 그의 대화 상대가 넣으려고 했다고 의심되는 상투어로 문장을 아이러니하게 끝맺었다. 하지만 사실 그 상대방은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프랑스를 위한 즐거움이군요!” 그는 과장되게 팔을 들며 악의적으로 외쳤다.

베르뒤랭 씨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이 사람들이 왜 그렇게 웃고 있는 거죠? 당신네 작은 모퉁이에서는 우울함을 만들어내지 않는 것 같아요,” 베르뒤랭 부인이 외쳤다. “제가 혼자 벌을 받으며 여기 있는 게 재미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녀는 아이처럼 입을 삐죽거리며 부루퉁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베르뒤랭 부인은 스웨덴산 왁스칠한 소나무로 만든 높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 의자는 그 나라의 어떤 바이올리니스트가 그녀에게 준 것이었다. 그녀는 그것이 발판 모양을 연상시키고 그녀가 가지고 있던 아름다운 고가구들과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대로 보관하고 있었다. 그녀는 충실한 친구들이 때때로 그녀에게 선물하는 것들을 눈에 띄는 곳에 두어 선물을 준 사람들이 방문했을 때 그것들을 알아볼 수 있게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녀는 최소한 꽃과 사탕으로 만족해 달라고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그녀의 집에는 발 따뜻이, 쿠션, 시계, 병풍, 기압계, 도자기 등이 쌓여 있어 반복되는 선물들이 어지럽게 모여 있었다.

그녀는 이 높은 자리에서 충실한 친구들의 대화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며 그들의 ‘농담’을 즐겼다. 하지만 턱에 생긴 사고 이후로 그녀는 실제로 웃음을 터뜨리는 것을 포기하고 대신 그녀에게 피로나 위험 없이 눈물 나게 웃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관례적인 몸짓을 하곤 했다. 단골손님 중 한 명이 지루한 사람이나 추방된 옛 단골에 대해 한 마디라도 할 때마다 – 베르뒤랭 씨의 큰 실망 속에서, 그는 오랫동안 아내만큼 상냥해지고 싶어 했지만 진심으로 웃다 보니 금방 숨이 차서 아내의 끊임없는 가짜 웃음이라는 책략에 의해 멀리 뒤처지고 패배했다 – 그녀는 작은 비명을 지르며, 백내장이 시작된 새의 눈을 완전히 감았다. 그리고 갑자기 마치 외설적인 광경을 숨기거나 치명적인 발작을 막으려는 것처럼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그녀는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기절할 정도로 웃음을 터뜨렸을 것 같은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충실한 친구들의 유쾌함에 현기증을 느끼고, 우정과 험담과 동의에 취한 베르뒤랭 부인은 그녀의 횟대 위에 앉아 있었다. 마치 따뜻한 포도주에 적신 먹이를 먹은 새처럼, 그녀는 상냥함에 흐느껴 울었다.

한편 베르뒤랭 씨는 스완에게 담배를 피워도 되는지 허락을 구한 후(“여기서는 격식을 차리지 않아요, 우리는 친구 사이니까요”) 젊은 예술가에게 피아노 앞에 앉아달라고 부탁했다.

“자, 보세요, 그를 귀찮게 하지 마세요. 그는 괴롭힘을 당하러 여기 온 게 아니에요,” 베르뒤랭 부인이 외쳤다. “나는 그가 괴롭힘을 당하는 걸 원하지 않아요!”

“하지만 왜 그가 귀찮아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베르뒤랭 씨가 물었다. “스완 씨는 아마도 우리가 발견한 파 디에즈 소나타를 모르실 거예요. 그가 피아노 편곡을 연주해 줄 거예요.”

“아, 안 돼요, 안 돼요. 제 소나타는 안 돼요!” 베르뒤랭 부인이 외쳤다. “지난번처럼 너무 많이 울어서 안면 신경통을 동반한 뇌감기에 걸리고 싶지 않아요. 고마워요, 그런 선물은 사양하겠어요.”

“다시 시작하세요. 당신들은 참 좋겠어요. 침대에서 8일이나 누워 있어야 하는 게 당신들이 아니라는 게 잘 보이네요!”

이런 작은 장면은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러 갈 때마다 반복되었고, 마치 새로운 것인 양 친구들을 즐겁게 했다. ‘안주인’의 매력적인 독창성과 음악적 감수성의 증거로 여겨졌다. 그녀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은 멀리서 담배를 피우거나 카드놀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흥미로운 순간에 제국의회에서 하듯이 “들어보세요, 들어보세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오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 장면이 평소보다 더 재미있었다고 아쉬워하며 말했다.

“자, 좋아요. 그럼 안단테만 연주하기로 하죠.” 베르뒤랭 씨가 말했다.

“‘안단테만이라니, 당신 참 대단하네요!’ 베르뒤랭 부인이 외쳤다. ‘안단테야말로 내 팔다리를 부러뜨리는 부분이에요. 정말 대단해요, 안주인님! 마치 ‘9번 교향곡’에서 피날레만 들어야 한다거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에서 서곡만 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네요.’”

의사는 계속해서 베르뒤랭 부인에게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도록 허락하라고 설득했다. 그는 음악이 그녀에게 주는 고통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거기서 특정한 신경쇠약 상태를 인식했다. 하지만 많은 의사들이 그렇듯이, 그들이 참여하는 사교 모임이 훨씬 더 중요해 보이는 일이 걸려 있을 때, 즉각적으로 처방의 엄격함을 완화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는 한 번쯤은 소화불량이나 독감을 잊으라고 조언하는 사람이 그 모임의 핵심 인물 중 하나일 때 그렇게 했다.

“이번에는 아프지 않을 거예요. 보세요.” 그는 눈빛으로 그녀를 설득하려 하며 말했다. “그리고 만약 아프시면 제가 치료해 드리죠.”

“정말요?” 베르뒤랭 부인이 대답했다. 마치 그런 호의의 희망 앞에서는 항복할 수밖에 없다는 듯이. 아마도 아플 거라고 계속 말하다 보니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걸 잊어버리고 환자의 마음을 갖게 되는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환자들은 항상 자신의 분별에 따라 발작의 빈도를 조절해야 하는 것에 지쳐, 보통은 해롭다고 여기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단 한 마디나 약 한 알로 그들을 다시 건강하게 해줄 수 있는 강력한 존재의 손에 자신을 맡기는 조건으로 말이다.

오데트는 피아노 옆에 있는 태피스트리 소파에 앉았다.

“저는 제 자리가 있어요.” 그녀가 베르뒤랭 부인에게 말했다.

베르뒤랭 부인은 의자에 앉아 있는 스완을 보고 그를 일어나게 했다.

“당신은 거기 있으면 안 돼요. 오데트 옆으로 가세요. 오데트, 스완 씨를 위해 자리를 좀 만들어 주세요, 그렇죠?”

“정말 아름다운 보베 직물이군요.” 스완이 앉기 전에 말했다. 그는 친절하게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했다.

“아, 제 소파를 알아봐 주셔서 기쁘네요.” 베르뒤랭 부인이 대답했다. “그리고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만큼 아름다운 걸 보고 싶으시다면 지금 포기하셔도 좋아요. 절대 이런 걸 다시는 만들지 않을 거예요. 작은 의자들도 걸작이에요. 조금 있다 보세요. 각 청동 장식은 의자의 작은 주제에 맞는 문양이에요. 보시면 즐거운 시간을 보내실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약속드릴게요. 테두리의 작은 장식만 봐도, 저기 붉은 배경에 곰과 포도 무늬가 있는 작은 덩굴 말이에요. 디자인이 어때요? 그들이 디자인을 꽤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이 덩굴이 얼마나 먹음직스러운가요! 제 남편은 제가 과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해요. 그가 저보다 덜 먹기 때문이죠. 하지만 아니에요, 저는 당신들 모두보다 더 탐식가예요. 하지만 입에 넣을 필요는 없어요. 눈으로 즐기면 되니까요. 다들 왜 웃으세요? 의사 선생님께 물어보세요. 그가 이 포도가 나를 설사하게 만든다고 말할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퐁텐블로에 가서 치료를 받지만, 저는 제 작은 보베 치료를 받아요. 하지만 스완 씨, 등받이의 작은 청동 장식들을 만져보지 않고 가시면 안 돼요. 이 광택이 얼마나 부드러운가요? 아니에요, 손바닥 전체로 제대로 만져보세요.”

“아, 베르뒤랭 부인이 청동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하면 오늘 밤엔 음악을 듣지 못할 거예요.” 화가가 말했다.

“조용히 하세요, 당신은 못된 사람이에요. 사실은,” 그녀가 스완을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우리 여자들에겐 이것보다 덜 관능적인 것들도 금지되어 있어요. 하지만 이런 느낌과 비교할 만한 살결은 없어요! 베르뒤랭 씨가 나를 질투하는 영광을 주셨을 때… 자, 적어도 예의 바르게 굴어요. 당신이 한 번도 질투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마세요…”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자, 의사 선생님, 당신이 증인이에요. 내가 뭐라고 말했나요?”

스완은 예의상 청동 장식을 만지작거렸고, 즉시 그만둘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자, 나중에 만지작거리세요. 지금은 당신이 애무를 받을 차례예요. 귀로 말이에요. 당신은 그걸 좋아하시죠? 저기 젊은이가 그걸 맡아줄 거예요.”

피아니스트가 연주를 마치자, 스완은 그곳에 있던 다른 사람들보다 그에게 더 친절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전년도 어느 저녁 모임에서 그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연주를 들었다. 처음에는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의 물질적인 아름다움에만 취해 있었다. 바이올린의 섬세하고 밀도 있는 선율 아래에서 갑자기 피아노의 부분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을 때, 이미 큰 즐거움을 느꼈다. 마치 달빛에 비친 보라색 파도가 부드럽게 춤추는 듯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윤곽을 분명히 알아볼 수 없었지만, 묘하게 매혹되어 그는 흘러가는 음악 구절이나 화음을 붙잡으려 했다. 그것은 그의 영혼을 더 크게 열어 주었다. 마치 저녁 공기 속에 퍼지는 장미 향기가 우리의 코를 자극하는 것처럼. 아마도 그는 음악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감정은 순수하게 음악적인 것이고, 예상치 못하며, 독창적이며, 다른 어떤 감정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순간적으로 ‘형태 없는’ 것과 같다. 물론 우리가 듣는 음표들은 이미 그 높낮이와 길이에 따라 우리 눈앞에 다양한 크기의 표면을 그리며, 아라베스크를 그리며, 우리에게 넓고 얇고 안정적이고 변덕스러운 감각을 주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감각들이 우리 내면에 제대로 자리 잡기도 전에 음표들은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뒤따르는 음표들이나 동시에 울리는 음표들이 불러일으키는 감각에 압도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감정은 계속해서 그 유동성과 ‘융해’로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모티브들을 감싸게 될 것이다. 이 모티브들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오직 그들이 주는 특별한 즐거움으로만 알 수 있고, 묘사하거나 기억하거나 이름 붙이는 것이 불가능하며,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마치 파도 속에서 견고한 기초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작업자처럼, 기억이 이 순간적인 구절들의 복제품을 만들어내 우리로 하여금 그것들을 뒤따르는 것들과 비교하고 구별할 수 있게 해주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래서 스완이 느꼈던 황홀한 감각이 사라지자마자, 그의 기억은 즉시 그것의 복제품을 제공했다.

스완은 대략적인 메모를 적었지만, 곡이 계속되는 동안 그것을 살펴보았기에, 같은 인상이 갑자기 다시 찾아왔을 때, 그것은 이미 붙잡을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 범위와 대칭적인 배열, 표기법, 표현력을 떠올렸다. 그는 이제 순수한 음악이 아닌, 디자인이고 건축이며 사상인, 음악을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가 소리의 파도 위로 잠깐 솟아오르는 구절을 분명히 구별했다. 그 구절은 즉시 그에게 특별한 쾌감을 선사했는데, 그는 그것을 듣기 전까지는 그런 쾌감에 대해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그에게 그런 쾌감을 알게 해줄 수 없다고 느꼈다. 그는 그 구절에 대해 알지 못했던 사랑 같은 것을 느꼈다.

느린 리듬으로 그 구절은 그를 처음에는 이쪽으로, 그다음에는 저쪽으로, 그리고 또 다른 곳으로 인도했는데, 고귀하고 이해할 수 없지만 정확한 행복을 향해 이끌었다. 그리고 갑자기 그 구절이 도달한 지점에서, 그가 그것을 따라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잠시 멈춘 후에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새롭고 더 빠르며 미세하고 우울하고 끊임없이 달콤한 움직임으로 그를 알 수 없는 전망으로 끌고 갔다. 그러고 나서 그 구절은 사라졌다. 그는 열정적으로 그것을 세 번째로 다시 보기를 원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 구절은 다시 나타났지만, 그에게 더 명확하게 말하지 않았고, 심지어 더 깊은 쾌감을 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그는 그 구절이 필요했다. 그는 마치 잠깐 본 행인이 새로운 아름다움의 이미지를 자신의 삶에 들여놓아 자신의 감수성에 더 큰 가치를 부여했지만, 사랑하게 된 그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조차 모르고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과 같았다.

음악 구절에 대한 이 사랑은 잠시 스완에게 일종의 젊어짐의 가능성을 불어넣어 줄 것 같았다.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삶을 이상적인 목표에 적용하는 것을 포기하고 일상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것으로 제한했기에, 그는 이것이 죽을 때까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마음속에 고상한 생각들이 더 이상 없다고 느껴 그는 그것들의 실재성을 믿는 것을 그만두었지만, 완전히 부인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중요하지 않은 생각들 속에 피신하는 습관을 들였는데, 이는 그에게 사물의 본질을 제쳐둘 수 있게 해주었다. 그는 사교계에 가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지 자문하지 않았지만, 반면에 초대를 받아들였다면 가야 한다는 것과 방문을 하지 않으면 명함을 남겨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그의 대화에서도 그는 사물에 대한 내밀한 의견을 절대 진심으로 표현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대신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물질적인 세부 사항들을 제공하여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그는 요리법이나 화가의 출생 또는 사망 날짜, 작품 목록에 대해 극도로 정확했다. 때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이나 삶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판단을 내리기도 했지만, 그때는 자신이 말하는 것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 것처럼 말에 풍자적인 어조를 주었다. 그런데 마치 어떤 병약자들이 갑자기 도착한 나라, 다른 식단, 때로는 자발적이고 신비로운 유기적 진화가 그들의 병에 너무나 큰 호전을 가져와 늦게나마 완전히 다른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고려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스완은 자신 안에서, 들었던 구절의 기억 속에서, 그리고 그 구절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해 연주해 달라고 한 몇몇 소나타에서, 그가 믿기를 그만두었던 보이지 않는 현실들 중 하나의 존재를 느꼈다. 마치 음악이 그가 겪고 있던 도덕적 건조함에 일종의 선택적 영향을 미친 것처럼, 그는 다시 그의 삶을 바칠 욕망과 거의 힘을 느꼈다. 그러나 그가 들었던 작품이 누구의 것인지 알아내지 못해 그것을 구할 수 없었고 결국 잊어버렸다. 그는 그 주에 그 모임에 있었던 몇몇 사람들을 만나 물어보았지만, 몇몇은 음악이 연주된 후에 도착했거나 연주 전에 떠났고, 어떤 이들은 연주되는 동안 있었지만 다른 방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듣고 있던 사람들도 처음 사람들보다 더 들은 것이 없었다. 주인들은 그들이 고용한 연주자들이 연주하기를 요청한 새로운 작품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연주자들은 순회공연을 떠났고, 스완은 더 이상 알아낼 수 없었다. 그는 음악가 친구들이 많았지만, 그 구절이 주었던 특별하고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을 기억하며, 눈앞에 그 구절이 그리는 형태들을 보면서도, 그들에게 그것을 노래해줄 수 없었다. 그러다가 그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런데 베르뒤랭 부인의 집에서 어린 피아니스트가 연주를 시작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갑자기 두 마디 동안 길게 이어지는 고음 뒤에, 그는 그 지속된 소리 아래에서 신비로운 부화를 숨기기 위한 소리의 장막처럼 빠져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공중에 떠 있는 듯하고 향기로운 구절을 비밀스럽고 소란스럽고 나뉜 채로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 특별했고,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어서, 스완에게는 마치 친구의 응접실에서 거리에서 감탄했던 사람을 만난 것 같았고,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절망했던 사람을 만난 것 같았다. 결국 그 구절은 멀어져갔다. 그것은 안내자였고, 부지런했으며, 그 향기의 가지들 사이에서 스완의 얼굴에 미소의 반영을 남겼다. 하지만 이제 그는 그의 미지의 여인의 이름을 물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그것이 뱅퇴유의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의 안단테라고 말했다.) 그는 그것을 손에 넣었고, 원할 때마다 집에서 그것을 가질 수 있었으며, 그것의 언어와 비밀을 배우려고 노력할 수 있었다.

그래서 피아니스트가 연주를 마쳤을 때, 스완은 그에게 다가가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는데, 이는 베르뒤랭 부인의 마음에 들었다.

“정말 매력적이지 않나요?” 베르뒤랭 부인이 스완에게 말했다. “그가 그의 소나타를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 아세요, 그 작은 악당이? 피아노가 그 정도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걸 몰랐죠. 그건 피아노를 제외한 모든 것이에요, 정말이에요! 매번 놀라워요, 오케스트라를 듣는 것 같아요. 오케스트라보다 더 아름답고, 더 완벽해요.”

젊은 피아니스트는 고개를 숙이고 미소 지으며, 마치 재치 있는 말을 한 것처럼 말을 강조하며 말했다. “당신은 저에게 너무 관대하십니다.”

그리고 베르뒤랭 부인이 남편에게 “자, 오렌지 주스를 주세요, 그가 정말 잘 해냈어요”라고 말하는 동안, 스완은 오데트에게 그가 어떻게 그 작은 구절에 사랑에 빠졌는지 이야기했다. 베르뒤랭 부인이 조금 멀리서 “어머, 당신에게 아름다운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네요, 오데트”라고 말하자, 그녀는 “네, 아주 아름다운 말이에요”라고 대답했고 스완은 그녀의 단순함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뱅퇴유와 그의 작품, 그가 이 소나타를 작곡했을 때의 시기, 그 작은 구절이 그에게 무엇을 의미했을지에 대한 정보를 요구했다. 그는 특히 그것을 알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 음악가를 존경한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은 (스완이 그의 소나타가 정말 아름답다고 말했을 때, 베르뒤랭 부인은 “그럼요! 아름답다고요! 하지만 뱅퇴유의 소나타를 모른다고 인정할 수는 없어요, 그것을 모를 권리가 없어요”라고 외쳤고, 화가는 “아, 그건 정말 대단한 작품이에요, 그렇죠? 원하신다면 ‘고급’스럽고 ‘대중적’인 작품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매우 존경받는 작품이에요”라고 덧붙였다) 전혀 그것에 대해 알지 못했다.

“예술가들에게 아주 커다란 인상을 준다”고 하는데, 이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은 대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스완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구절에 대해 한두 가지 특별한 언급을 했을 때조차:

“어머, 재밌네요. 전 한 번도 그런 걸 눈치채지 못했어요. 사실 저는 사소한 것들을 찾아다니며 바늘 끝을 쫓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여기서는 머리카락을 네 갈래로 쪼개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죠. 그건 우리 집 스타일이 아니에요.”라고 베르뒤랭 부인이 대답했다. 코타르 박사는 경이로운 감탄과 열성적인 열의로 그녀가 이런 상투적인 표현들 속에서 유영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와 코타르 부인은 어떤 서민들도 가지고 있는 일종의 상식으로, 집에 돌아가서 둘이서 이야기할 때 그들이 이해할 수 없다고 고백하는 음악이나 “비슈 씨”의 그림에 대해 의견을 내거나 감탄을 가장하지 않도록 조심했다. 대중이 자연의 매력, 우아함, 형태에 대해 아는 것이란 오직 천천히 동화된 예술의 진부한 표현을 통해 얻은 것뿐이며, 독창적인 예술가는 이러한 진부한 표현들을 거부하는 것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코타르 부부는 이점에서 대중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들은 뱅퇴유의 소나타에서도, 화가의 초상화에서도 그들에게는 음악의 조화나 그림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것을 찾지 못했다. 피아니스트가 소나타를 연주할 때 그가 무작위로 피아노 위에서 그들이 익숙한 형태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음표들을 연주하는 것처럼 보였고, 화가가 그의 캔버스에 무작위로 색을 던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이 그 그림들에서 어떤 형태를 알아볼 수 있을 때, 그들은 그것이 무겁고 저속해진 것(즉, 그들이 거리에서 실제 생물을 보는 화풍의 우아함이 결여된 것)처럼 보였고, 비슈 씨가 어깨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여자들의 머리카락이 자주색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진실성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충실한 사람들이 흩어지자, 박사는 거기에 적절한 기회가 있다고 느꼈다. 베르뒤랭 부인이 뱅퇴유의 소나타에 대해 마지막 말을 하는 동안, 그는 마치 수영을 배우기 위해 물에 뛰어드는 초보자처럼,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를 골라:

“그래서, 이게 바로 소위 일류 음악가라는 거군요!”라고 그는 갑작스러운 결심으로 외쳤다.

스완은 뱅퇴유의 소나타가 최근에 나타나 매우 진보적인 경향의 한 학파에서 큰 인상을 주었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완전히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만 알게 되었다.

“제가 뱅퇴유라는 이름의 사람을 잘 알고 있어요,”라고 스완이 말했다. 그는 할머니의 자매들의 피아노 선생님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사람일지도 모르죠,”라고 베르뒤랭 부인이 외쳤다.

“오, 아니에요,”라고 스완이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이 그를 2분만 봤다면, 그런 질문을 하지 않으셨을 거예요.”

“그렇다면 질문을 하는 것이 곧 해결하는 것인가요?”라고 박사가 말했다.

“하지만 그의 친척일 수도 있죠,”라고 스완이 다시 말했다. “그건 꽤 슬픈 일이겠지만, 결국 천재도 바보의 사촌일 수 있잖아요. 만약 그렇다면, 나는 그 바보가 나를 소나타의 작곡가에게 소개해주기 위해 어떤 고통도 감수할 것임을 고백합니다. 먼저 그 바보와 교제해야 하는 고통, 그건 정말 끔찍할 거예요.”

화가는 뱅퇴유가 현재 매우 아프다는 것과 포탱 박사가 그를 살릴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뭐라고요,”라고 베르뒤랭 부인이 외쳤다. “아직도 포탱한테 치료받는 사람들이 있나요!”

“아, 베르뒤랭 부인,”이라고 코타르가 매력적인 어조로 말했다. “당신은 제 동료 중 한 명, 아니 제 스승 중 한 분에 대해 말씀하고 계시다는 걸 잊고 계시네요.”

화가는 스완에게 뱅퇴유가 정신 이상의 위험에 처해 있다고 들었다고 했다. 그는 소나타의 특정 부분에서 그 증상을 알아챌 수 있다고 확신했다. 스완은 그 말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불안했다. 순수한 음악 작품에는 언어에서 광기를 드러내는 논리적 관계의 변화가 없기 때문에, 소나타에서 느껴지는 광기는 그에게 암캐의 광기나 말의 광기처럼 신비로운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런 것들도 실제로 관찰된다.

“제발 당신의 스승 이야기는 그만두세요. 당신이 그 사람보다 열 배는 더 잘 알고 있잖아요.” 베르뒤랭 부인이 코타르 박사에게 대답했다. 그녀의 어조는 자신의 의견에 확신에 찬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맞서는 것 같았다. “적어도 당신은 환자들을 죽이지는 않잖아요!”

“하지만 부인, 그는 아카데미 회원입니다.” 박사가 아이러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만약 환자가 과학계의 거장 중 한 명의 손에 죽기를 원한다면… 그건 훨씬 더 세련된 일이죠. ‘포탱 박사가 나를 치료하고 있어’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아, 그게 더 세련되었다고요?” 베르뒤랭 부인이 말했다. “이제 병에도 세련됨이 있나 봐요? 몰랐네요… 당신 정말 재밌어요.” 그녀는 갑자기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외쳤다. “그리고 나, 이 바보는 진지하게 토론하고 있었어요. 당신이 나를 놀리고 있다는 걸 몰랐네요.”

베르뒤랭 씨는 그렇게 사소한 일에 웃는 것이 좀 피곤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파이프에서 한 모금을 빨며 슬픈 표정으로 더 이상 아내의 유머에 맞춰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당신 친구가 우리 마음에 들어요.” 베르뒤랭 부인이 오데트에게 말했다. 오데트가 작별 인사를 하려는 순간이었다. “그는 순박하고 매력적이에요. 만약 당신이 우리에게 그런 친구들만 소개한다면, 언제든 데려오세요.”

베르뒤랭 씨는 그래도 스완이 피아니스트의 숙모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 사람이 좀 어색해했을 뿐이에요.” 베르뒤랭 부인이 대답했다. “당신도 코타르처럼 여러 해 동안 우리 작은 그룹의 일원이 된 사람이 첫날부터 이미 집 분위기에 익숙해지길 바라지는 않겠죠. 첫날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그건 서로 알아가는 시간이었죠. 오데트, 우리는 그가 내일 샤틀레에서 우리를 만나기로 했어요. 당신이 그를 데리러 가는 게 어때요?”

“아니요, 그는 원하지 않아요.”

“아, 좋아요.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하지만 그가 마지막 순간에 빠지지 않기만을 바랄게요!”

베르뒤랭 부인의 큰 놀라움에, 그는 결코 빠지지 않았다. 그는 어디든 그들과 함께 갔다. 때로는 아직 시즌이 아니어서 사람들이 거의 가지 않는 교외의 레스토랑에도 갔고, 더 자주는 극장에 갔다. 베르뒤랭 부인은 극장을 매우 좋아했다. 어느 날 그녀의 집에서 그녀는 그의 앞에서 초연이나 갈라 공연 때 출입증이 있으면 매우 유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감베타의 장례식 날 그들이 그것이 없어서 매우 불편했다고 했다. 스완은 자신의 화려한 관계에 대해서는 결코 말하지 않고, 오직 그가 숨기는 것이 별로 섬세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잘 알려지지 않은 관계에 대해서만 말했다. 그는 생제르맹 구역에서 공직자들과의 관계를 그런 범주에 넣는 습관이 있었다. 그는 대답했다:

“걱정 마세요, 그걸 처리하겠습니다. 당신은 ‘다니셰프’의 재공연 때 제 시간에 받으실 거예요. 내일 엘리제궁에서 경찰청장과 점심을 먹거든요.”

“엘리제궁에서요?” 코타르 박사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네, 그레비 씨 댁에서요.” 스완이 약간 당황해하며 대답했다.

그러자 화가가 농담 삼아 박사에게 말했다:

“자주 그러세요?”

일반적으로 설명이 주어지면, 코타르는 “아, 좋아요, 좋아요, 알겠어요.”라고 말하고 더 이상 감정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스완의 마지막 말이 그에게 평소와 같은 안도감을 주는 대신, 공식적인 직책도 없고 어떤 명성도 없는 사람이 국가 원수와 교류한다는 사실에 대한 그의 놀라움을 극대화시켰다.

“뭐라고요, 그레비 씨라고요? 그레비 씨를 아십니까?” 그는 공화국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고 요구하는 낯선 사람을 만난 경찰관의 우둔하고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스완에게 물었다. 그 경찰관은 신문에서 말하는 “누구를 상대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가엾은 정신 이상자에게 곧바로 접견될 것이라고 확신시키며 특별 구금소의 의무실로 안내한다.

“조금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공통의 친구가 있어요. (그는 웨일즈 왕자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는 아주 쉽게 초대하는 편이고, 제가 장담하건대 그 점심 식사들은 전혀 재미없습니다. 게다가 아주 단순해서 식탁에 8명 이상이 앉는 일이 없어요.” 스완은 공화국 대통령과의 관계가 대화 상대의 눈에 너무 화려해 보이는 것을 지우려고 노력하며 대답했다.

코타르는 즉시 스완의 말을 믿고 그레비 씨의 초대장의 가치에 대해, 그것이 전혀 대단치 않고 흔한 것이라는 의견을 채택했다. 그 순간부터 그는 스완이나 다른 사람이 엘리제궁에 다니는 것을 더 이상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초대받은 사람 스스로가 지루하다고 인정한 점심 식사에 가는 그를 약간 동정했다.

“아, 좋아요, 좋아요.” 그는 의심스러워하다가 당신의 설명을 듣고 비자를 주고 짐을 열어보지 않고 당신을 통과시키는 세관원의 어조로 말했다.

“저는 그 점심 식사들이 전혀 즐겁지 않을 거라고 믿어요. 당신은 거기 가는 데 덕이 있군요.” 베르뒤랭 부인이 말했다. 그녀에게 공화국 대통령은 충성스러운 사람들을 유혹하거나 강요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진, 특히 무서운 지루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가 귀가 먹은 항아리같고 손가락으로 먹는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그렇다면 당신이 거기 가는 게 그다지 즐겁지 않겠군요.” 의사가 동정의 뉘앙스를 담아 말했다. 그리고 8명의 손님 숫자를 기억하며 “그건 친밀한 점심 식사인가요?” 그는 언어학자의 열정보다는 호기심 많은 사람의 호기심으로 재빨리 물었다.

그러나 공화국 대통령이 그의 눈에 가진 위신은 결국 스완의 겸손함과 베르뒤랭 부인의 악의를 이겼고, 매번 저녁 식사 때마다 코타르는 관심을 갖고 물었다. “오늘 밤 스완 씨를 볼 수 있을까요? 그는 그레비 씨와 개인적인 관계가 있어요. 그게 바로 우리가 신사라고 부르는 사람 아닌가요?” 그는 심지어 치과 박람회 초대장을 그에게 제안하기까지 했다.

“당신과 함께 있는 사람들과 입장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개는 들어갈 수 없어요. 제가 이걸 말씀드리는 이유는 이를 모르고 후회한 친구들이 있었거든요.”

베르뒤랭 씨는 스완이 한 번도 말한 적 없는 강력한 친분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의 아내에게 나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아챘다.

만약 외출 계획이 없다면, 스완은 작은 그룹을 베르뒤랭 집에서 다시 만났지만, 그는 저녁에만 왔고 오데트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거의 저녁 식사에 응하지 않았다.

“원한다면 우리 둘이 저녁을 먹을 수도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베르뒤랭 부인은요?”

“아, 그건 간단해요. 드레스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거나 택시가 늦었다고 하면 돼요. 항상 방법은 있죠.”

“정말 친절하시군요.”

하지만 스완은 오데트에게 (저녁 식사 후에만 만나기로 동의함으로써) 그녀와 함께 있는 것보다 더 좋아하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그녀가 그에 대해 느끼는 호감이 오래도록 식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오데트의 아름다움보다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끼는, 장미처럼 싱싱하고 통통한 어린 여공의 아름다움에 빠져 있었기에, 오데트는 나중에 반드시 만나면 된다는 생각에 저녁의 시작을 그녀와 함께 보내는 것을 더 좋아했다. 같은 이유로 그는 오데트가 베르뒤랭 집으로 데리러 오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어린 여공은 그의 집 근처 코너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그의 마부 레미는 그 장소를 알고 있었다. 그녀는 스완 옆에 올라타 베르뒤랭 집 앞에 마차가 멈출 때까지 그의 팔에 안겨 있었다. 그가 들어서자, 베르뒤랭 부인은 그가 아침에 보낸 장미를 보여주며 “당신을 꾸짖어요.”라고 말하고 오데트 옆에 자리를 정해주는 동안, 피아니스트는 그들을 위해 뱅퇴유의 작은 악구를 연주했다. 그것은 그들의 사랑의 국가 노래와 같았다. 그는 바이올린의 트레몰로로 시작했는데, 몇 마디 동안 혼자 들리다가 갑자기 물러나는 것 같았고, 마치 피터르 드 호흐의 그림에서 좁은 문틀이 깊이를 더해주는 것처럼, 아주 멀리서 다른 색조로, 중간에 끼어든 빛의 벨벳 질감 속에서 작은 악구가 나타났다. 그것은 춤추는 듯하고 목가적이며, 우연히 끼어든 에피소드처럼, 다른 세계에 속한 것 같았다. 그것은 단순하고 불멸의 주름으로 지나갔고, 여기저기에 그 우아함의 선물을 똑같은 형언할 수 없는 미소로 나누어주었다. 하지만 스완은 이제 그 안에서 환멸을 느낄 수 있다고 믿었다. 그것은 자신이 보여주는 행복의 허망함을 아는 것 같았다. 그 가벼운 우아함 속에는 완성된 무언가가 있었고, 후회 뒤에 오는 초연함 같은 것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그 자체로 덜 고려했다. – 그것이 스완과 오데트의 존재를 모르는 음악가가 그것을 작곡했을 때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나, 앞으로 여러 세기 동안 그것을 들을 모든 사람들에게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는 – 그의 사랑의 증표, 기억으로 여겼다. 그것은 심지어 베르뒤랭 부부나 어린 피아니스트에게도 오데트와 그를 동시에 떠올리게 하고, 그들을 하나로 만들었다. 그래서 오데트가 변덕스럽게 부탁했기 때문에, 그는 예술가에게 소나타 전체를 연주하게 하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계속해서 이 구절만 알고 있었다. “나머지가 왜 필요해요?” 그녀가 말했다. “이게 우리의 곡이에요.” 그리고 심지어 그것이 그들에게 아주 가깝게 지나가면서도 무한히 멀리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고통스러워하면서, 그것이 그들에게 말을 걸면서도 그들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그는 그것이 내재적이고 고정된 의미, 그들과는 무관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거의 후회했다. 마치 사랑하는 여인이 준 보석이나 편지에서, 우리가 물의 보석이나 언어의 단어들이 오직 일시적인 관계와 특정한 존재의 본질로만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원망하는 것처럼.

종종 그는 어린 여공과 너무 오래 머물다가 베르뒤랭 집에 갔을 때, 피아니스트가 작은 악구를 연주한 후에야 오데트가 곧 돌아갈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녀를 개선문 뒤 라페루즈 거리에 있는 그녀의 작은 호텔 문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아마도 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모든 호의를 요구하지 않기 위해, 그녀를 더 일찍 보고 베르뒤랭 집에 그녀와 함께 도착하는 덜 필요한 즐거움을 희생하고, 그녀가 인정하는 함께 떠날 권리를 행사하는 것에 더 집착했을 것이다.

스완은 이것 덕분에 아무도 그녀를 보지 않고, 그들 사이에 끼어들지 않으며, 그가 그녀를 떠난 후에도 여전히 그녀와 함께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기에 이를 더 소중히 여겼다.

이렇게 그녀는 스완의 마차를 타고 돌아왔다. 어느 날 저녁, 그녀가 마차에서 내리고 그가 내일 보자고 말했을 때, 그녀는 집 앞 작은 정원에서 마지막 국화 한 송이를 급히 꺾어 그가 떠나기 전에 건넸다. 그는 돌아가는 길에 그것을 입술에 꼭 붙들고 있었고, 며칠 후 꽃이 시들자 소중히 서랍에 넣어두었다.

하지만 그는 결코 그녀의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오후에 두 번만 그녀에게 중요한 의식인 ‘차를 마시는 일’에 참여하러 갔을 뿐이었다. 그 고립되고 텅 빈 짧은 거리들(대부분 작은 저택들이 연이어 있고, 갑자기 어떤 불길한 가게가 그 단조로움을 깨뜨리곤 했는데, 이는 이 지역이 아직 평판이 좋지 않았던 시절의 역사적 증거이자 볼품없는 잔재였다), 정원과 나무에 남아있는 눈, 계절의 무심함, 자연과의 근접성이 그가 들어가면서 발견한 온기와 꽃들에 더욱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오데트의 침실은 왼쪽 높은 1층에 있었고, 뒤쪽의 작은 평행한 거리 쪽을 향하고 있었다. 어두운 색으로 칠해진 벽 사이로 곧게 뻗은 계단이 있었고, 그곳에는 동양풍 직물, 터키식 묵주 줄, 비단 끈에 매달린 큰 일본 등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서양 문명의 최신 편의를 빼앗지 않기 위해 가스등을 켰다. 이 계단은 응접실과 작은 응접실로 이어졌다. 그 앞에는 좁은 현관이 있었는데, 그 벽은 정원의 격자무늬였지만 금빛이었고, 전체 길이를 따라 직사각형 화분이 놓여 있어 마치 온실처럼 당시에는 아직 희귀했던 커다란 국화 한 줄이 피어 있었다. 그러나 이는 후에 원예가들이 성공적으로 만들어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스완은 작년부터 이에 대한 유행이 거슬렸지만, 이번에는 이 덧없는 별들의 향기로운 광선으로 회색빛 날들에 빛나는 방의 어둑한 곳이 분홍, 주황, 흰색으로 얼룩진 것을 보고 즐거웠다. 오데트는 분홍색 실크 가운을 입고, 목과 팔을 드러낸 채 그를 맞이했다. 그녀는 그를 자기 옆에 앉히고, 거대한 야자수가 담긴 중국산 화분이나 사진, 리본 매듭, 부채가 고정된 병풍으로 보호되는 응접실의 수많은 신비한 은신처 중 하나에 앉혔다. 그녀는 말했다. “그렇게 앉아서 편하지 않을 거예요. 잠깐만요, 제가 잘 정리해 드릴게요.” 그리고 자신만의 특별한 발명품에 대해 가졌을 법한 작은 허영심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스완의 머리 뒤와 발 밑에 일본 실크 쿠션을 설치했다. 마치 이런 부를 아낌없이 쓰고 그 가치를 무시하는 듯이 그녀는 그것들을 주물렀다. 그러나 하인이 차례로 수많은 등을 가져왔을 때, 그것들은 거의 모두 중국 도자기에 담겨 있었고, 가구마다 한 개씩 또는 두 개씩 따로 불을 밝히고 있었는데, 마치 제단 위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겨울 오후의 끝자락, 이미 거의 밤에 가까운 황혼 속에서 그것들은 더 지속적이고, 더 장밋빛이며, 더 인간적인 일몰을 재현했다. 아마도 길에서 불이 다시 켜진 창문 앞에 멈춰 선 어떤 연인에게 그 존재의 신비를 드러내고 동시에 감추게 했을 것이다. 그녀는 하인이 그것들을 정해진 자리에 잘 놓는지 눈초리로 엄격히 감시했다. 그녀는 하나라도 잘못된 곳에 두면 응접실 전체의 효과가 망가지고, 비스듬히 놓인 받침대 위에 있는 자신의 초상화가 제대로 조명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열정적으로 이 무뚝뚝한 남자의 움직임을 따라갔고, 그가 두 개의 화분 너무 가까이 지나갔을 때 그를 심하게 꾸짖었다. 그녀는 그것들이 망가질까 봐 두려워 직접 닦기로 하고 가까이 가서 흠집이 났는지 살펴보았다. 그녀는 모든 중국 장신구들이 ‘재미있는’ 형태를 가졌다고 생각했고, 난초들, 특히 카틀레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카틀레야는 국화와 함께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었는데, 그것들이 꽃 같지 않고 비단이나 새틴 같아 보이는 큰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내 외투 안감에서 잘라낸 것 같아요,” 그녀는 스완에게 난초 한 송이를 보여주며 말했다. 그 꽃이 얼마나 ‘세련되었는지’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자연이 그녀에게 준 이 우아하고 예상치 못한 자매에 대해, 존재의 계층에서 그녀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럼에도 세련되고 많은 여성들보다 더 가치 있어 응접실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는 뉘앙스로 말이다. 그녀는 도자기를 장식한 불꽃 혀를 가진 키메라들이나 병풍에 수놓인 것들, 난초 꽃다발의 꽃받침, 루비가 박힌 눈을 가진 은으로 만든 낙타 조각상(벽난로 위에서 옥으로 만든 두꺼비와 나란히 있었다)을 차례로 보여주며, 때로는 괴물들의 악의에 대해 두려워하는 척하고, 때로는 그들의 우스꽝스러움에 웃고, 때로는 꽃들의 외설스러움에 얼굴을 붉히고, 때로는 낙타와 두꺼비를 ‘사랑스러운 것들’이라 부르며 키스하고 싶은 저항할 수 없는 욕구를 느끼는 척했다. 이런 과장된 행동들은 그녀의 몇몇 신앙심과 대조를 이루었는데, 특히 니스에 살 때 치명적인 병에서 그녀를 치료해 준 라게의 성모에 대한 신앙심이 그러했다. 그녀는 항상 그 성모의 금메달을 지니고 다녔고, 그것에 무한한 힘이 있다고 믿었다.

오데트는 스완에게 ‘그녀의’ 차를 대접하며 물었다. “레몬이에요, 크림이에요?” 그가 “크림”이라고 대답하자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구름 한 조각!” 그가 차가 맛있다고 하자 그녀는 “보세요, 제가 당신이 좋아하는 걸 알고 있다는 걸요.”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차는 스완에게도 그녀에게도 귀중한 것처럼 여겨졌고, 사랑은 자신의 정당성과 지속성에 대한 보장을 찾을 필요가 너무나 절실해서 오히려 그것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고 그것과 함께 끝나버릴 즐거움 속에서 그것을 찾는다. 그래서 그가 7시에 옷을 갈아입으러 집으로 돌아갈 때, 마차를 타고 가는 내내 이 오후가 그에게 준 기쁨을 억누르지 못하고 계속해서 되뇌었다. “이렇게 좋은 차를 마실 수 있는 작은 사람이 있다는 게 정말 즐거운 일이군.” 한 시간 후, 그는 오데트에게서 쪽지를 받았고, 곧바로 그 큰 글씨를 알아보았다. 그 글씨에서는 영국식 뻣뻣함을 가장한 것이 규율적인 모습을 강요하고 있었지만, 편견 없는 눈에는 아마도 생각의 무질서, 교육의 부족, 솔직함과 의지의 결여를 의미했을 것이다. 스완은 오데트의 집에 담배 케이스를 두고 왔었다. “당신이 심장도 함께 두고 오지 않은 게 아쉬워요. 그랬다면 돌려주지 않았을 텐데.”

그가 두 번째로 그녀를 방문했을 때는 아마도 더 중요한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그날 그녀를 만나러 가면서, 그는 항상 그랬듯이 미리 그녀를 머릿속에 그렸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예쁘다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볼의 분홍빛 생기 있는 부분만을 떠올려야 했다. 그녀의 볼은 종종 누렇고 힘이 없었으며, 때로는 작은 붉은 점들이 찍혀 있었기 때문에 이는 이상이 도달할 수 없는 것이며 행복이 보잘것없다는 증거로 그를 슬프게 했다. 그는 그녀가 보고 싶어 하는 판화를 가져갔다. 그녀는 약간 아팠다. 그녀는 자주색 중국 크레이프 가운을 입고 그를 맞이했고, 가슴 위로 가운을 끌어당겼다. 그녀는 그에게 말했다. “그렇게 앉으면 편하지 않을 거예요. 잠깐만요, 제가 잘 정리해 드릴게요.” 그리고 자신만의 특별한 발명품에 대해 가졌을 법한 작은 허영심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스완의 머리 뒤와 발 밑에 일본 실크 쿠션을 놓았다. 마치 이런 부를 아낌없이 쓰고 그 가치를 무시하는 듯이 그녀는 그것들을 주물렀다. 그러나 하인이 차례로 수많은 등을 가져왔을 때,

가슴에 외투처럼 풍성하게 수놓은 천을 걸치고 있었다. 그의 옆에 서서 풀어헤친 머리카락을 뺨을 따라 늘어뜨리고, 한쪽 다리를 살짝 구부린 채 피로감 없이 그림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고개를 숙여 큰 눈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은 평소에 생기 없고 우울해 보이던 것과는 달랐다. 스완에게 그녀는 마치 시스티나 예배당 프레스코화에 있는 이드로의 딸 십포라와 닮아 보였다. 스완은 언제나 거장들의 그림에서 우리 주변의 현실에 대한 일반적인 특징뿐만 아니라 오히려 일반화하기 어려운 것,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얼굴들의 개성적인 특징을 찾아내는 특별한 취미가 있었다. 예를 들어 안토니오 리조의 도제 로레단 흉상에서 광대뼈의 돌출, 눈썹의 기울기, 그리고 그의 마부 레미와의 놀라운 닮음을, 기를란다요의 색채에서 팔랑시 씨의 코를, 틴토레토의 초상화에서 볼의 살집, 구레나룻의 시작, 코의 굽은 모양, 관통하는 듯한 눈빛, 뒤불봉 박사의 충혈된 눈꺼풀을 발견했다. 아마도 그는 늘 자신의 삶을 사교계 관계와 대화에만 국한시킨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어서, 위대한 예술가들 역시 즐거운 마음으로 그러한 얼굴들을 관찰하고 작품에 담아냈다는 사실에서 일종의 너그러운 용서를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얼굴들은 작품에 특별한 현실감과 생동감을 부여하고 현대적인 풍미를 더해주었다. 어쩌면 그는 상류 사회 사람들의 경박함에 너무 물들어서 오래된 작품에서 오늘날의 고유명사들을 미리 암시하고 새롭게 하는 그런 암시를 찾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그는 충분히 예술가적 본성을 간직하고 있어서, 이러한 개인적 특징들이 더 일반적인 의미를 띠게 되면서 즐거움을 느꼈을 수도 있다. 특히 그것들이 뿌리 뽑혀 해방되어, 그것이 재현하지 않는 원본과의 닮음 속에서 발견될 때 그러했다. 어쨌든 그리고 아마도 최근에 그가 음악에 대한 사랑을 통해 얻은 인상의 충만함이 그의 회화에 대한 취향까지 풍부하게 했기 때문에, 그 순간 오데트와 산드로 디 마리아노의 십포라 사이의 닮음에서 느낀 즐거움은 더욱 깊었고 스완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보티첼리라는 그의 대중적인 별명을 더 이상 기꺼이 사용하지 않는다. 그 이름이 화가의 진정한 작품 대신 그에 대한 평범하고 잘못된 관념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는 더 이상 오데트의 얼굴을 그녀의 볼의 좋고 나쁜 상태나, 만약 그가 감히 그녀에게 키스할 수 있다면 입술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던 순수한 육체적인 부드러움에 따라 평가하지 않았다. 대신 그것을 섬세하고 아름다운 선들의 실타래로 여겼고, 그의 시선은 그 선들을 풀어내며 목의 곡선을 따라가고 머리카락의 흐름과 눈꺼풀의 굽힘에 이르렀다. 마치 그녀의 초상화에서 그녀의 유형이 이해할 수 있고 명확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프레스코화의 한 부분이 그녀의 얼굴과 몸에 나타났고, 그 이후로 그는 오데트 곁에 있을 때나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항상 그것을 찾으려 했다. 비록 그가 그 피렌체의 걸작에 집착한 것은 단지 그것을 그녀에게서 발견했기 때문이었지만, 이 닮음은 그녀에게도 아름다움을 부여하고 그녀를 더욱 소중하게 만들었다. 스완은 위대한 산드로가 숭배할 만한 존재라고 여겼을 사람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것을 자책했고, 오데트를 보는 즐거움이 그의 미학적 교양에서 정당화를 찾게 된 것을 기뻐했다. 그는 오데트에 대한 생각을 자신의 행복의 꿈과 연관시키는 것이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만큼 불완전한 차선책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그의 가장 세련된 예술적 취향을 만족시켰기 때문이다. 그는 오데트가 그의 욕망에 따른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었다. 왜냐하면 그의 욕망은 항상 그의 미학적 취향과는 반대 방향으로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피렌체 작품’이라는 말은 스완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것은 제목처럼 오데트의 이미지를 그때까지 접근할 수 없었던 꿈의 세계로 들어가게 해주었고, 그곳에서 그녀는 고귀함을 띠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이 여자에 대해 순전히 육체적으로 보았던 시각이 그녀의 얼굴, 몸, 그리고 모든 아름다움의 질에 대한 의심을 끊임없이 갱신하면서 그의 사랑을 약화시켰던 반면, 이러한 의심들은 파괴되었고 그의 사랑은 확고해졌다. 그것은 확실한 미학의 자료를 기반으로 삼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키스와 소유, 그것들이 손상된 육체에 의해 허락된다면 자연스럽고 평범해 보였겠지만, 박물관 작품에 대한 숭배의 정점에 오게 된다면 초자연적이고 기분 좋은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그가 몇 달 동안 오데트를 만나기만 한 것을 후회하고 싶을 때면, 그는 귀중한 걸작을 감상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한 번 다른 특별히 맛있는 재료로 주조되어 그가 때로는 예술가의 겸손함과 영성, 그리고 이해관계 없음으로, 때로는 수집가의 자부심과 이기심, 그리고 관능으로 바라보는 매우 희귀한 표본이었다.

그는 작업 테이블 위에 이드로의 딸 사진을 오데트의 사진처럼 놓았다. 그는 큰 눈과 불완전한 피부를 짐작케 하는 섬세한 얼굴, 지친 뺨을 따라 흐르는 머리카락의 아름다운 곡선을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미학적으로만 아름답다고 여겼던 것을 살아있는 여인의 관념에 맞추어 그것을 육체적 장점으로 바꾸어, 자신이 소유할 수 있는 존재 안에서 그런 것들이 한데 모여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축하했다. 우리가 걸작을 바라볼 때 느끼는 그 막연한 공감이, 이제 그가 이드로의 딸의 육체적 원형을 알게 되면서, 처음에는 오데트의 몸이 그에게 불러일으키지 못했던 욕망으로 바뀌었다. 그는 오랫동안 이 보티첼리를 바라보다가 자신의 보티첼리를 생각했고, 그것이 더 아름답다고 여겼다. 그리고 십포라의 사진을 가슴에 가까이 대면서 오데트를 끌어안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오데트의 피로만을 막으려고 애쓴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자신의 피로도 마찬가지였다. 오데트가 그를 만나는 것이 너무 쉬워진 이후로, 그녀가 그에게 할 말이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느낌이 들면서, 그는 그들이 함께 있을 때 그녀가 보이는 다소 무의미하고 단조롭고 거의 확정적으로 굳어진 태도가 결국 그의 내면에서 언젠가 그녀가 자신의 열정을 고백하기를 바라는 낭만적인 희망을 죽여버릴까 봐 두려워했다. 그 희망만이 그를 사랑에 빠지게 하고 사랑을 유지하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오데트의 너무 굳어진 도덕적 모습을 조금이라도 새롭게 하기 위해, 그리고 그 모습에 지칠까 봐 두려워하면서, 그는 갑자기 가짜 실망과 분노로 가득 찬 편지를 써서 저녁 식사 전에 그녀에게 보냈다. 그는 그녀가 겁을 먹고 답장을 보낼 것을 알고 있었고, 그를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그녀의 영혼에 가할 압박 속에서 그녀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말들이 튀어나오기를 바랐다. 실제로 그는 이런 방식으로 그녀가 지금까지 보냈던 것 중 가장 다정한 편지들을 얻어냈다. 그 중 하나는 그녀가 그에게 보냈다.

스완은 오데트가 ‘황금의 집’에서 정오에 보낸 쪽지를 떠올렸다. (그날은 무르시아 수해 구제를 위한 파리-무르시아 축제가 열렸다.) 쪽지는 “친구여, 손이 너무 떨려 글을 쓰기가 힘듭니다”라는 말로 시작했고, 스완은 그 쪽지를 마른 국화꽃과 함께 서랍에 보관했다. 만약 오데트가 쪽지를 쓸 시간이 없었다면, 베르뒤랭 집에 도착했을 때 그에게 다가와 “할 말이 있어요”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스완은 그녀의 얼굴과 말에서 지금까지 숨겨왔던 마음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베르뒤랭 집에 가까워질 때마다 스완은 램프로 밝혀진 큰 창문들을 보며 (그들은 결코 덧문을 닫지 않았다) 그 황금빛 속에서 만날 매력적인 존재를 생각하며 감동했다. 때로는 손님들의 그림자가 램프 앞에서 가늘고 검은 실루엣으로 비쳤는데, 마치 반투명한 갓의 중간중간에 끼워 넣은 작은 판화처럼 보였다. 그는 오데트의 실루엣을 찾으려 했다. 그가 도착하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그의 눈은 너무나 기쁨에 빛나서 베르뒤랭 씨는 화가에게 말했다. “상황이 뜨거워지는 것 같군.” 실제로 오데트의 존재는 스완에게 그가 초대받은 다른 어떤 집에도 없는 것을 더해주었다. 그것은 일종의 감각 장치, 신경망이었고, 모든 방에 뻗어 있어 그의 심장에 끊임없는 자극을 주었다.

그래서 이 작은 ‘클랜’이라는 사회 조직의 단순한 기능은 자동적으로 스완에게 오데트와의 일상적인 만남을 제공했고, 그녀를 보는 것에 대한 무관심이나 심지어 그녀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욕망을 가장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것은 그에게 큰 위험을 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낮에 무엇을 썼든 간에, 저녁에는 그녀를 반드시 보게 될 것이고 그녀를 집으로 데려다 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언젠가 그는 이 불가피한 귀가를 불쾌하게 생각하며, 베르뒤랭 집에 가는 시간을 늦추기 위해 어린 직공 소녀를 숲까지 데려갔다. 그는 너무 늦게 도착해서 오데트는 그가 더 이상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떠나버렸다. 그녀가 더 이상 살롱에 없다는 것을 보고 스완은 가슴에 고통을 느꼈다. 그는 원할 때마다 그 기쁨을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기에, 모든 즐거움에 대해 그 크기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게 하거나 심지어 줄이게 만드는 그 기쁨을 빼앗길까 봐 떨었다.

“그가 그녀가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봤어?” 베르뒤랭 씨가 아내에게 말했다. “그가 푹 빠졌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어떤 표정을 지었다고요?” 코타르 박사가 격렬하게 물었다. 그는 잠시 환자를 보러 갔다가 아내를 데리러 돌아왔고, 누구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몰랐다.

“문 앞에서 가장 멋진 스완을 만나지 않으셨나요?”

“아니요. 스완 씨가 오셨나요?”

“네, 잠깐이었어요. 우리는 매우 흥분하고 긴장한 스완을 보았어요. 오데트가 떠났거든요.”

“당신은 그녀가 그와 매우 친밀하고, 그에게 목동의 시간을 보여주었다고 말하는 겁니까?” 박사가 조심스럽게 이 표현들의 의미를 시험하며 말했다.

“전혀 아니에요, 절대 아무 일도 없어요. 그리고 우리 사이에서 말하자면, 그녀가 크게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정말 바보 같아요.”

“그래, 그래, 그래,” 베르뒤랭 씨가 말했다. “아무 일도 없다는 걸 어떻게 알아? 우리가 가서 보지는 않았잖아.”

“그녀가 나에게 말했을 거예요,” 베르뒤랭 부인이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그녀는 모든 작은 일들을 나에게 말해요! 지금 그녀에게 아무도 없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그와 자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녀는 할 수 없다고 주장해요. 그를 매우 좋아하긴 했지만 그가 그녀와 함께 있을 때 수줍어한대요. 그래서 그녀도 수줍어진대요. 그리고 그를 그런 식으로 사랑하지 않는대요. 그는 그녀에게 이상적인 존재이고, 그에 대한 감정을 망치고 싶지 않대요. 내가 뭘 알겠어요? 하지만 그게 바로 그녀에게 필요한 거예요.”

“당신 의견에 동의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베르뒤랭 씨가 말했다. “그 사람이 나한테는 별로야. 그를 허세 부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베르뒤랭 부인은 움직이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마치 조각상이 된 것처럼 보였다. 이는 그들과 함께 ‘허세를 부릴’ 수 있다는 암시를 담고 있는 듯한, 그래서 그들보다 ‘위’에 있다는 뜻으로 들리는 ‘허세 부리는 사람’이라는 참을 수 없는 말을 듣지 않은 척하기 위한 연기였다.

“결국, 아무 일도 없다면 그 사람이 그녀를 정숙하다고 생각해서는 아닐 거야,” 베르뒤랭 씨가 비꼬듯 말했다. “그리고 결국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그가 그녀를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으니까. 네가 지난번에 그가 뱅퇴유의 소나타에 대해 그녀에게 늘어놓는 걸 들었는지 모르겠어. 나는 오데트를 진심으로 사랑해. 하지만 그녀에게 미학 이론을 설명하려면 정말 대단한 바보여야 해!”

“자, 오데트의 나쁜 점을 말하지 말아요,” 베르뒤랭 부인이 어린아이처럼 말했다. “그녀는 매력적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매력적이지 않다는 뜻은 아니에요. 우리는 그녀의 나쁜 점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녀가 미덕이나 지성은 아니라는 거예요. 결국,” 그가 화가에게 말했다. “그녀가 정숙한 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그렇지 않다면 그녀가 덜 매력적일지도 모르죠. 누가 알겠어요?”

계단 참에서 스완은 도착했을 때 없던 집사를 만났다. 집사는 오데트로부터 그가 또 온다면 그녀가 귀가하기 전에 프레보에 가서 초콜릿을 마실 것 같다고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하지만 그 말을 전한 지 이미 한 시간이나 지났다. 스완은 프레보로 향했다. 하지만 그의 마차는 매 걸음마다 다른 마차나 길을 건너는 사람들 때문에 멈춰 섰다. 그는 이 성가신 장애물들을 치워버리고 싶었지만, 경찰의 조서가 보행자를 치는 것보다 더 그를 지체시킬 것이기에 그럴 수 없었다. 그는 걸리는 시간을 계산했고, 모든 분에 몇 초를 더했다. 이는 시간을 너무 짧게 잡아 오데트를 만날 기회가 실제보다 더 크다고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마치 열에 들떠 잠들었다가 깨어난 사람이 자신이 곱씹던 망상의 터무니없음을 깨닫는 것처럼, 스완은 갑자기 자신 안에 있는 생각들의 이상함을 알아차렸다. 베르뒤랭 집에서 오데트가 이미 떠났다고 들은 순간부터 그가 품었던 생각들, 그가 겪고 있는 심장의 고통의 새로움, 그는 이제야 막 깨어난 것처럼 그것을 인식했다. 뭐라고? 이 모든 동요가 단지 내일 오데트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란 말인가? 바로 한 시간 전 베르뒤랭 부인 집으로 가면서 그가 바라던 바로 그것 아닌가. 그는 자신을 프레보로 데려가는 같은 마차 안에서 더 이상 혼자가 아니며, 새로운 존재가 그와 함께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존재는 그에게 달라붙어 있었고, 아마도 그는 그것을 떼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주인이나 병과 같이 그것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새로운 사람이 자신에게 더해졌음을 느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의 삶은 이제 더 흥미진진해 보였다.

스완은 프레보에 갈 때 이 만남이 (그 기대감이 그 전의 순간들을 너무나 황폐화시켜 그는 더 이상 생각이나 기억을 찾을 수 없을 정도였던 만남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별 것 아닐 거라고 간신히 생각했다. 매일 저녁 오데트와 함께 있을 때처럼, 그녀의 변덕스러운 얼굴을 흘깃 보다가 (그녀가 그의 욕망을 읽고 그의 무관심을 의심할까 봐) 곧 시선을 돌리고, 그녀에 대해 생각할 수 없게 될 것이었다. 그는 그녀를 당장 떠나지 않기 위한 구실을 찾느라 바빴고, 베르뒤랭 부부 집에서 내일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을 (관심 없는 척하면서) 얻으려 했다. 즉, 그는 가까이 하면서도 껴안을 수 없는 이 여자의 헛된 존재가 가져다주는 실망과 고통을 순간순간 연장하고 하루하루 갱신하려 했다.

그녀는 프레보에 없었다. 그는 대로변의 모든 레스토랑을 찾아보기로 했다. 시간을 벌기 위해 자신이 몇 군데를 방문하는 동안 다른 곳들은 마부 레미(리조의 도제 로레단)를 보내 찾아보게 했고, 그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채 레미를 지정된 장소에서 기다렸다. 마차가 돌아오지 않자 스완은 곧 다가올 순간을 상상했다. 레미가 “그 여자분이 저기 계십니다”라고 말하는 순간과 “그 여자분은 어느 카페에도 없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을. 그는 저녁의 끝이 하나이면서도 두 가지로 눈앞에 보였다. 오데트와의 만남으로 그의 불안이 사라지거나, 아니면 오늘 밤 그녀를 찾는 것을 강제로 포기하고 그녀를 보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마부가 돌아왔지만, 스완은 그가 멈추자 “그 여자분을 찾으셨습니까?”라고 묻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내일 장작을 주문하라고 일러주세요. 재고가 떨어지기 시작한 것 같아요.” 어쩌면 그는 레미가 오데트를 기다리고 있는 카페에서 발견했다면, 불길한 저녁의 끝은 이미 행복한 저녁의 끝이 실현되기 시작하면서 무너졌고, 이미 포획되어 도망갈 수 없는 행복에 도달하려고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관성의 힘 때문이기도 했다. 그의 영혼에는 몸에 유연성이 부족한 사람들이 가진 것과 같은 유연성 부족이 있었다. 충돌을 피하거나, 옷에서 불꽃을 떨어뜨리거나, 긴급한 동작을 할 때 시간을 끌고, 이전의 자세에서 1초 동안 머물러 있으면서 거기서 지지점과 탄력을 찾으려는 사람들 말이다. 그리고 분명 마부가 그의 말을 가로막고 “그 여자분이 저기 계십니다”라고 말했다면, 그는 “아, 그래요, 맞아요. 제가 시킨 일이었죠. 잊고 있었네요”라고 대답하고 계속해서 장작 재고에 대해 얘기했을 것이다. 그가 느낀 감정을 숨기고 불안에서 벗어나 행복에 빠질 시간을 스스로에게 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마부는 돌아와서 그녀를 어디에서도 찾지 못했다고 말했고, 오랜 하인답게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제 생각에는 나리께서 그만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레미가 더 이상 가져오는 대답을 바꿀 수 없을 때 스완이 쉽게 연기했던 무관심은 레미가 그의 희망과 수색을 포기시키려는 것을 보자 무너졌다.

“절대 아니에요,” 그는 외쳤다. “우리는 반드시 이 여자분을 찾아야 해요. 이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에요. 그녀는 어떤 일 때문에 매우 당황스러워할 것이고, 날 만나지 못했다면 기분이 상할 거예요.”

“저는 이 여자분이 어떻게 기분이 상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레미가 대답했다. “나리를 기다리지 않고 떠난 건 그녀였고, 프레보에 간다고 했는데 거기 없었잖습니까.”

게다가 이제 모든 곳에서 불을 끄기 시작했다. 대로변 나무들 아래, 신비로운 어둠 속에서 더 드물어진 행인들이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배회하고 있었다. 때때로 그에게 다가와 귓가에 뭔가를 속삭이며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요구하는 여자의 그림자에 스완은 깜짝 놀랐다. 그는 불안하게 이 모든 어두운 형체들을 스쳐 지나갔다. 마치 죽은 자들의 유령들 사이에서, 어두운 왕국에서 에우리디케를 찾는 것처럼.

사랑을 만들어내는 모든 방식들 중에서, 신성한 악의 전파 요인들 중에서, 때때로 우리를 스치는 이 거대한 동요의 숨결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그때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 운명은 정해졌고, 우리가 사랑할 사람은 바로 그 사람이다. 그때까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좋아하거나 심지어 똑같이 좋아할 필요도 없었다. 필요한 것은 우리의 그 사람에 대한 취향이 배타적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조건은 – 그 사람이 우리에게 부족할 때 – 그 사람의 매력이 주는 즐거움을 찾는 대신 갑자기 그 사람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불안한 욕구, 이 세상의 법칙상 만족시키기 불가능하고 치유하기 어려운 터무니없는 욕구, 그 사람을 소유하고자 하는 미친 듯하고 고통스러운 욕구로 대체될 때 실현된다.

스완은 마지막 레스토랑들을 향해 마차를 몰았다. 차분히 고려했던 유일한 행복의 가설이었다. 이제 그는 자신의 동요, 이 만남에 부여하는 가치를 더 이상 감추지 않았고, 성공할 경우 마부에게 상을 약속했다. 마치 자신이 가진 성공 욕구에 마부의 성공 욕구를 더함으로써, 오데트가 이미 잠자리에 들었더라도 대로변의 레스토랑에서 발견될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듯이. 그는 ‘황금의 집’까지 갔고, ‘토르토니’에 두 번 들어갔다가, 그녀를 더 이상 보지 못한 채 ‘영국 카페’에서 막 나왔다.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큰 걸음을 걸어 이탈리아 대로 모퉁이에서 기다리고 있는 마차로 향하던 중,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과 부딪혔다. 그것은 오데트였다. 그녀는 나중에 설명하기를, ‘프레보’에서 자리를 찾지 못해 ‘황금의 집’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그가 발견하지 못한 구석진 곳에 있었고, 이제 마차로 돌아가는 중이었다고 했다.

그녀는 그를 만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해서 놀란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는 파리를 뛰어다녔지만,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녀를 포기하기가 너무 고통스러워서였다. 하지만 이 기쁨은 그의 이성이 오늘 밤에는 실현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것이었고, 이제 그에게는 더욱 실제적으로 보였다. 그는 그럴듯한 것들을 예측하며 거기에 협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그에게 외부적인 것으로 남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정신에서 그것을 끌어내어 제공할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그녀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었고, 그녀 자신이 그에게 투사하는 것이었다. 그가 두려워했던 고립을 꿈처럼 흩어버리고, 그가 생각하지 않고 행복한 꿈을 기대고 쉬는 이 진실이 빛나고 있었다. 마치 좋은 날씨에 지중해 해변에 도착한 여행자가 방금 떠나온 나라들의 존재를 의심하며, 그들을 바라보기보다는 푸르고 빛나며 저항력 있는 물결이 그에게 보내는 광선에 눈이 부신 것처럼.

그는 그녀와 함께 그녀의 마차에 탔고, 자신의 마차에는 뒤따라오라고 했다.

그녀는 손에 카틀레야 꽃다발을 들고 있었고, 스완은 그녀의 레이스 보닛 아래 머리카락에 같은 종류의 꽃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오데트는 백조 깃털로 만든 깃털장식에 같은 카틀레야를 달고 있었다. 그녀는 만틸라 아래로 검은 벨벳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비스듬히 올라간 재단으로 넓은 삼각형 모양으로 하얀 파이유 실크 스커트가 드러났고, 깊게 파인 가슴팍에도 같은 하얀 파이유 실크가 보였다. 거기에도 다른 카틀레야 꽃들이 꽂혀 있었다. 스완이 준 놀람에서 겨우 회복되었을 때 말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그녀는 다시 놀랐다. 그들은 크게 흔들렸고,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숨을 헐떡였다.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그가 말했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자신에게 기대게 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했다.

“특히 말하지 마세요. 더 숨이 가빠질 테니 손짓으로만 대답하세요. 충격으로 흐트러진 가슴의 꽃들을 바로 잡아도 될까요? 꽃들을 잃을까 봐 걱정돼요. 좀 더 깊이 꽂아두고 싶어요.”

그녀는 남자들이 자신에게 이렇게 신경 쓰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니요, 전혀 괜찮아요.”

하지만 그는 그녀의 대답에 당황하여, 어쩌면 자신의 변명이 진실했음을 보여주기 위해, 또는 이미 그렇게 믿기 시작했기 때문에 소리쳤다.

“아, 안 돼요. 특히 말하지 마세요. 또 숨이 가빠질 거예요. 제스처로 대답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정말 괜찮으세요? 보세요, 여기 꽃가루가 좀 묻은 것 같아요. 제 손으로 닦아내도 될까요? 너무 세게 하진 않을게요. 너무 거칠진 않겠죠? 간지럽나요? 드레스의 벨벳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아서요. 하지만 보세요, 꽃들을 고정시켜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떨어질 거예요. 제가 좀 더 깊이 꽂아볼게요… 진심으로, 제가 불편하지 않으세요? 냄새를 맡아봐도 될까요? 냄새가 나는지 확인해보려고요. 한 번도 맡아본 적이 없어서요. 괜찮을까요?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그녀는 미소 지으며 어깨를 살짝 으쓱했다. 마치 “당신 미쳤어요. 저 좋아하는 게 보이잖아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는 다른 손을 오데트의 뺨을 따라 올렸다. 그녀는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가 닮았다고 생각했던 피렌체 화가의 여인들이 지닌 것과 같은 나른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의 눈꺼풀 가장자리로 몰린 그녀의 눈은 그들의 눈처럼 빛나고 크고 가느다랬으며, 마치 두 방울의 눈물처럼 떨어질 듯 보였다. 그녀는 이교도적 장면이나 종교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목을 굽혔다. 그리고 아마도 그녀에게 익숙한, 그런 순간에 적절하다고 알고 있는, 잊지 않으려고 주의를 기울이는 자세로, 그녀는 마치 보이지 않는 힘이 그녀의 얼굴을 스완 쪽으로 끌어당기는 것처럼 온 힘을 다해 얼굴을 붙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스완이, 그녀가 마치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의 입술 위로 떨어뜨리기 전에, 잠시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붙잡았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달려와 그토록 오랫동안 꿈꿔왔던 꿈을 인식하고 그 실현을 지켜볼 시간을 주고 싶었다. 마치 오랫동안 사랑해온 아이의 성공을 함께 나누도록 부르는 친척처럼. 아마도 스완은 아직 소유하지 못했고 심지어 키스조차 하지 않은 오데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는 것처럼 바라보았을 것이다. 마치 영원히 떠나야 할 풍경을 담아가고 싶어 하는 출발의 날의 시선으로.

하지만 그는 그녀와 함께 있을 때 너무나 수줍어서, 그날 밤 카틀레야를 정리하는 것으로 시작해 그녀를 소유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또는 소급적으로 거짓말을 한 것처럼 보일까 봐, 아니면 더 큰 요구를 할 용기가 부족해서 (그는 카틀레야를 정리하는 것이 오데트를 불쾌하게 하지 않았기에 이를 반복할 수 있었다), 다음 날들에도 같은 구실을 사용했다. 그녀의 가슴에 카틀레야가 있으면 그는 말했다. “오늘 밤엔 안타깝게도 카틀레야를 정리할 필요가 없네요. 지난번처럼 흐트러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 꽃이 좀 비뚤어진 것 같아요. 다른 꽃들보다 더 향기가 나는지 확인해 봐도 될까요?” 또는 카틀레야가 없으면 이렇게 말했다. “오, 오늘 밤엔 카틀레야가 없군요. 내 작은 정리를 할 수 없겠네요.” 그래서 한동안 그가 첫날 밤 따랐던 순서가 바뀌지 않았다. 오데트의 가슴에 손가락과 입술을 대는 것으로 시작해 매번 그의 애무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훨씬 나중에 카틀레야 정리(또는 정리 흉내)가 오래전에 폐기되었을 때에도, ‘카틀레야를 하다’라는 은유는 단순한 어휘가 되어 그들이 육체적 소유 행위를 의미할 때 생각 없이 사용하는 말이 되었다. 그리고 아마도 이 특별한 방식의 ‘사랑을 나누다’라는 표현은 그것의 동의어들과 정확히 같은 의미가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리 여자들에 대해 식상해하고, 서로 다른 여자들과의 관계를 항상 같고 미리 알려진 것으로 여길지라도, 그것은 오히려 새로운 즐거움이 된다. 만약 그 여자들이 꽤 난해하거나 – 또는 우리가 그렇게 여기는 – 우리가 그들과의 관계에서 예기치 못한 에피소드로부터 그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면 말이다. 스완에게 있어 첫 번째는 카틀레야 정리였다. 그는 그날 밤 (하지만 오데트는, 그가 생각하기에, 만약 그의 계략에 속았다면 그것을 알아차릴 수 없었을 것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이 여자를 소유하는 것이 그 넓은 자주색 꽃잎 사이에서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리고 그가 이미 느끼고 있던 즐거움, 오데트가 아마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용인하고 있다고 그가 생각한 즐거움은, 그 때문에 – 마치 지상 낙원의 꽃들 사이에서 그것을 처음 맛본 사람에게 그랬을 것처럼 – 그때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즐거움으로 보였다. 그는 그것을 창조하려고 노력했고, 그가 그것에 붙인 특별한 이름이 그 흔적을 간직하고 있듯이, 완전히 특별하고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이제 매일 밤, 그가 그녀를 집에 데려다준 후에는 집 안으로 들어가야 했고, 종종 그녀는 실내복 차림으로 다시 나와 마부가 보는 앞에서 그를 키스하며 말했다. “내가 뭘 신경 쓰겠어요,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어요.” 그가 베르뒤랭 부부의 집에 가지 않는 밤(이제 그가 다른 방법으로 그녀를 볼 수 있게 되어 종종 있었다), 그가 사교계에 나가는 점점 더 드문 밤에는, 그녀는 그에게 귀가하기 전에 몇 시든 상관없이 자신의 집에 들르라고 요청했다. 봄이었다. 맑고 차가운 봄이었다. 그는 파티에서 나와 자신의 마차에 올라 다리 위에 담요를 덮고, 함께 떠나면서 같이 가자고 요청하는 친구들에게 갈 수 없다고, 같은 방향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마부는 목적지를 알고 있었기에 빠른 속도로 출발했다. 친구들은 놀랐다. 실제로 스완은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더 이상 아무도 그에게서 여자를 소개해 달라는 편지를 받지 못했다. 그는 더 이상 어떤 여자에게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여자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에 가는 것을 자제했다. 레스토랑에서, 시골에서도 그의 태도는 정반대였다. 그는 이제 특별히 젊고 예쁜 웨이터를 골라 그에게만 주문하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습관은 특히 결혼한 남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데, 그들은 자신의 아내 외에 다른 여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오데트는 그에게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보러 갈 때마다 그녀의 얼굴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 애썼다. 그리고 그가 그녀의 집에 도착했을 때 “아, 그녀가 예쁘지 않다면!”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자신의 고통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친구 중 한 명에게 이렇게 말했다. “물론 그녀가 이상적인 여자는 아니에요. 하지만 그녀는 내게 편안해요. 결국 그

스완은 어제까지 보여주던 태도와는 정반대로 행동했다. 그것은 영원히 그의 것일 것처럼 느껴졌던 태도였다. 한 열정이 우리 안에서 일시적으로 다른 성격으로 바뀌면서, 그때까지 변치 않았던 징후들을 지워버리는 것이다! 반면에 이제 변하지 않는 것은 스완이 어디에 있든 오데트를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를 오데트와 갈라놓는 거리는 그가 꼭 지나야 하는 길이었고, 그의 삶의 저항할 수 없는 빠른 경사와도 같았다. 사실 그는 종종 사교계에 늦게까지 머물러 있다가 곧장 집으로 돌아가 그녀를 다음 날에나 보는 편이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비정상적인 시간에 그녀를 만나러 가는 것, 그를 떠나는 친구들이 “그는 매우 얽매여 있어, 틀림없이 어떤 여자가 그를 언제든 자기 집으로 오게 만드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자신이 사랑 문제를 가진 사람들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자신의 안녕과 이익을 관능적인 몽상을 위해 희생하며, 그로부터 내적인 매력이 생겨난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 그녀가 다른 이들과 함께 있지 않다는 확신, 그녀를 보지 않고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잊혀졌지만 언제든 다시 생길 수 있는 불안을 중화시켰다. 그 불안은 오데트가 베르뒤랭 부부의 집에 없었던 그 날 저녁에 그가 경험했던 것이었다. 현재의 평온함은 너무나 달콤해서 행복이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였다. 아마도 그는 이 불안 때문에 오데트가 그에게 그토록 중요해졌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우리에게 너무나 무관심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 중 한 사람에게 그런 고통과 기쁨의 가능성을 두었을 때, 그 사람은 우리에게 다른 세계에 속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우리의 삶을 감동적인 공간으로 만들어, 그곳에서 그 사람은 우리와 더 가까워지거나 멀어질 것이다. 스완은 앞으로 몇 년 동안 오데트가 자신에게 어떤 존재가 될지 생각하면 불안해졌다. 때때로 그는 빅토리아 마차를 타고 이 아름답고 차가운 밤에 그의 눈과 텅 빈 거리 사이로 빛나는 달을 보며, 달처럼 밝고 살짝 장밋빛을 띤 다른 얼굴을 생각했다. 그 얼굴은 어느 날 그의 생각 속에 떠올랐고, 그 이후로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신비로운 빛을 비추고 있었다. 오데트가 하인들을 잠자리에 들게 하는 시간이 지나서 도착하면, 그는 작은 정원 문을 두드리기 전에 먼저 거리로 갔다. 그곳에는 1층에 모두 똑같지만 어두운 인접한 호텔들의 창문 사이에 그녀의 방 창문만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유리창을 두드렸고, 그녀는 신호를 알아차리고 대답한 뒤 정문에서 그를 기다렸다. 그는 그녀가 좋아하는 악보 몇 개를 피아노 위에 펼쳐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장미의 왈츠’나 탈리아피코의 ‘가엾은 바보'(그녀의 유언에 따라 장례식에서 연주되어야 할 곡)였다. 그는 그녀에게 그 대신 뱅퇴유의 소나타에 나오는 작은 악구를 연주해달라고 부탁했다. 비록 오데트가 매우 서툴게 연주했지만, 어떤 작품에 대해 우리에게 남는 가장 아름다운 비전은 종종 서투른 손가락으로 조율이 잘못된 피아노에서 나오는 잘못된 음 위로 솟아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 악구는 계속해서 스완의 오데트에 대한 사랑과 연관되었다. 그는 이 사랑이 외부에 존재하는 어떤 것과도 일치하지 않고, 다른 이들이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오데트의 자질이 그가 그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에 그토록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종종, 긍정적인 지성만이 스완을 지배할 때, 그는 이런 상상의 즐거움을 위해 그토록 많은 지적, 사회적 이익을 희생하는 것을 그만두고 싶어 했다. 하지만 작은 악구는, 그가 그것을 들을 때마다, 그 안에 필요한 공간을 자유롭게 만들어냈다. 스완의 영혼의 비율이 변화되어, 그 안에 어떤 즐거움을 위한 여백이 생겼다. 이 즐거움 역시 어떤 외부 대상과 일치하지 않았지만, 사랑의 즐거움처럼 순수하게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스완에게 구체적인 것들보다 우월한 현실로 다가왔다. 이 알 수 없는 매력에 대한 갈증을 작은 악구는 그의 안에서 일깨웠지만, 그것을 해소할 만한 구체적인 것은 가져다주지 않았다. 그래서 작은 악구가 지워버린 스완의 영혼의 그 부분들, 즉 물질적 이익에 대한 걱정, 모든 이에게 유효한 인간적 고려사항들이 있던 자리는 비어 있고 백지 상태가 되어, 그는 자유롭게 그곳에 오데트의 이름을 새길 수 있었다. 게다가 오데트의 애정이 다소 짧고 실망스러울 수 있는 것에, 작은 악구는 그 신비로운 본질을 더하고 융합시켰다. 스완이 이 악구를 듣는 동안 그의 얼굴을 보면, 그가 호흡을 더 깊게 만드는 마취제를 흡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음악이 그에게 주는 즐거움은 곧 그에게 진정한 필요가 될 것이었다. 그 순간 그 즐거움은 향수를 맡거나 우리가 만들어지지 않은 세계와 접촉하는 즐거움과 비슷했다. 그 세계는 우리 눈에 형태가 없어 보이고, 우리의 지성을 벗어나 의미가 없어 보이며, 우리는 오직 한 가지 감각으로만 그것에 도달할 수 있다. 스완에게 이는 커다란 휴식이자 신비로운 새로움이었다. 그의 눈은 비록 섬세한 그림 애호가였고, 그의 정신은 예리한 풍습 관찰자였지만, 그의 삶의 건조함의 지울 수 없는 흔적을 영원히 지니고 있었다. 그런 그가 인류와는 무관한 생물, 맹인, 논리적 능력이 없는 존재, 거의 환상적인 유니콘, 오직 청각으로만 세상을 인식하는 기묘한 생물로 변모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작은 악구에서 그는 여전히 그의 지성이 도달할 수 없는 의미를 찾고 있었기에, 그의 가장 내면적인 영혼을 모든 이성의 도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여 소리의 어두운 통로와 필터를 홀로 통과하게 하는 이 이상한 도취감은 얼마나 대단했는가. 그는 이 악구의 달콤함 밑에 고통스러운 것, 어쩌면 영원히 해소되지 않을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지만, 그것 때문에 고통받을 수는 없었다. 그 악구가 사랑이 연약하다고 말한들 무슨 상관인가, 그의 사랑은 너무나 강했다! 그는 그 악구가 퍼뜨리는 슬픔을 가지고 놀았고, 그것이 자신을 스치는 것을 느꼈지만, 그것은 그의 행복감을 더욱 깊고 달콤하게 만드는 애무와 같았다. 그는 오데트에게 그 악구를 열 번, 스무 번 다시 연주하게 했고, 그 동안 그녀가 자신에게 키스하는 것을 멈추지 않기를 요구했다. 각각의 키스는 또 다른 키스를 부른다. 아, 사랑의 초기에 키스는 얼마나 자연스럽게 생겨나는가! 그것들은 서로 밀착되어 무성하게 자라나, 한 시간 동안 나눈 키스의 수를 세는 것은 5월의 들판에 핀 꽃의 수를 세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것이다. 그때 그녀는 연주를 멈추려는 척하며 말했다. “네가 나를 이렇게 붙잡고 있으면 어떻게 연주하겠니? 난 모든 걸 동시에 할 수 없어. 넌 뭘 원하는지 알아야 해. 내가 악구를 연주하길 원하니, 아니면 작은 애무를 하길 원하니?” 그가 화를 내자 그녀는 웃음을 터뜨렸고, 그 웃음은 변하여 키스의 비처럼 그에게 쏟아졌다. 아니면 그녀가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면, 그는 보티첼리의 ‘모세의 생애’에 나올 법한 얼굴을 다시 보았다. 그는 그 얼굴을 거기에 위치시키고, 오데트의 목에 필요한 기울기를 주었다. 그리고 그가 그녀를 충분히 그렸다고 생각했을 때,

프랑스 평야의 벽화에 15세기에 물감을 탄 천으로 그린 그림처럼, 그녀가 지금 이 순간 피아노 옆에 서 있다는 생각, 그녀를 품에 안고 소유할 수 있다는 생각, 그녀의 물질성과 생명력에 대한 생각이 그를 압도했다. 눈은 흐릿해지고 턱은 굳어진 채, 마치 뭔가를 삼키려는 듯 보티첼리의 처녀상에게 달려들어 볼을 꼬집었다. 그리고 그녀를 떠날 때도 그녀의 향기나 얼굴의 어떤 특징도 기억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다시 돌아와 입맞춤을 했다. 그는 빅토리아 마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오데트가 매일 이렇게 방문을 허락해 준 것에 감사했다. 그는 이런 방문이 그녀에게 큰 기쁨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느꼈지만, 그것이 자신을 질투로부터 보호해 주고 – 베르뒤랭 부부의 집에서 그녀를 만나지 못했을 때 그의 마음에 생겼던 아픔을 다시 겪지 않게 해주어 – 첫 번째 발작이 유일한 것으로 남을 수 있게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제 그의 삶의 이 특별한 시간들, 마치 달빛 아래 파리를 가로지르는 것처럼 거의 마법에 걸린 듯한 시간들의 끝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달이 이제 그에 대해 위치를 바꾸어 거의 지평선 끝에 있는 것을 보며, 그의 사랑도 변하지 않는 자연의 법칙에 따르고 있다고 느꼈다. 그는 자신이 들어선 이 시기가 얼마나 더 지속될지, 곧 그의 생각 속에서 사랑하는 얼굴이 멀리 떨어져 작아지고 매력을 잃게 될지 궁금해했다. 스완은 사랑에 빠진 이후로 사물들에서 매력을 발견했는데, 이는 청년기에 자신을 예술가라고 여겼을 때와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매력이 달랐다. 오데트만이 그것을 부여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젊은 시절의 영감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허튼 생활로 그 영감들이 사라졌었지만, 이제 그것들은 모두 한 특별한 존재의 반영과 흔적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이제 집에서 혼자 보내는 긴 시간들을 즐겁게 여겼고, 그의 영혼은 회복기에 접어들었다. 그는 점차 자신을 되찾아갔지만,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저녁에만 그녀를 찾아갔고, 그녀의 낮 시간이나 과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심지어 우리가 모르는 것을 상상하게 해주고 알고 싶어 하게 만드는 그 작은 정보조차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 그녀의 삶이 어떠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다만 가끔 미소 지으며 그녀를 알지 못했을 때, 몇 년 전에 누군가가 그에게 한 여자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 여자는 분명 오데트였을 것이고, 그녀를 창녀나 고급 매춘부로 묘사했다. 그는 그런 여자들과 거의 어울리지 않았기에, 일부 소설가들의 상상력이 오랫동안 그려낸 것처럼 그들에게 완전히 타락하고 근본적으로 사악한 성격을 부여했다. 그는 세상이 만들어낸 평판의 정반대를 취하면 한 사람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런 성격과 오데트의 성격을 비교했다. 오데트는 선하고 순진하며 이상을 좋아하고, 거의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한번은 그가 그녀와 단둘이 저녁을 먹기 위해 베르뒤랭 부부에게 아프다고 편지를 쓰라고 부탁했다. 다음날 베르뒤랭 부인이 그녀에게 괜찮아졌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얼굴을 붉히고 말을 더듬으며 거짓말하는 것에 대한 슬픔과 고통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냈다. 그녀는 전날 밤 가짜 병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대답하면서도, 눈빛과 슬픈 목소리로 거짓된 말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듯했다.

그러나 가끔, 하지만 드물게, 그녀는 오후에 그의 집으로 왔다. 그의 공상이나 최근 다시 시작한 페르메이르 연구를 방해했다. 누군가 크레시 부인이 작은 응접실에 와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는 그녀를 만나러 갔고, 문을 열자 오데트의 장밋빛 얼굴이 스완을 보고 – 입술의 모양, 눈빛, 볼의 윤곽을 바꾸며 – 미소를 지었다. 혼자 있을 때면 그는 그 미소를 다시 떠올렸다. 전날 밤의 미소, 어떤 때 그를 맞이했던 미소, 마차 안에서 카틀레야를 다시 정리하는 것이 불편하냐고 물었을 때 그녀가 보여준 미소 등을 기억했다. 그리고 그 외의 시간 동안 오데트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기에, 그것은 그에게 색채 없는 중립적인 배경으로 나타났다. 마치 와토의 습작 종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모든 곳에 황토색 종이 위에 세 가지 색연필로 그려진 수많은 미소들이 보이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때때로 스완이 텅 비어 있다고 생각했던 그녀의 삶의 한 구석에서, 그가 상상할 수 없기에 그의 마음이 비어 있지 않다고 말해주는 곳에서, 그들이 사랑하고 있다고 짐작하면서도 그녀에 대해 중요하지 않은 것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어떤 친구가 그에게 오데트의 모습을 묘사했다. 그 친구는 바로 그날 아침 오데트가 아바튀치 거리를 걸어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그녀는 ‘렘브란트 스타일’의 모자를 쓰고 스컹크 털로 장식된 ‘방문복’을 입고 있었으며, 가슴에는 제비꽃 다발을 달고 있었다. 이 간단한 스케치는 스완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것은 오데트가 그에게 속하지 않은 삶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갑자기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가 누구를 기쁘게 하려고 그가 알지 못하는 그런 옷차림을 했는지 알고 싶었다. 그는 그녀에게 그때 어디를 가고 있었는지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마치 그의 연인의 무색하고 거의 존재하지 않는 듯한 삶에서 (그에게는 보이지 않았기에) 그에게 보내는 모든 미소들 외에 오직 한 가지만 있는 것처럼 – 렘브란트 스타일의 모자를 쓰고 가슴에 제비꽃 다발을 단 채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

스완은 그녀에게 ‘장미의 왈츠’ 대신 뱅퇴유의 작은 소품을 연주해 달라고 요청한 것 외에는, 그가 좋아하는 음악이나 문학을 들려주거나 그녀의 나쁜 취향을 고치려 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지적이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위대한 시인들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고 하면서 곧바로 영웅적이고 로맨틱한 구절들을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보렐리 자작의 시보다 더 감동적인 것을. 델프트의 페르메이르에 대해서는 그가 어떤 여자 때문에 고통받았는지, 어떤 여자가 그에게 영감을 주었는지 물었다. 스완이 아무도 모른다고 말하자 그녀는 그 화가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 그녀는 자주 이렇게 말했다. “그래요, 시, 물론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아름다울 거예요. 시인들이 말하는 것을 정말로 생각한다면 말이에요. 하지만 그 사람들만큼 관심 없는 사람들도 없어요. 제가 잘 알아요. 제 친구 중 한 명이 일종의 시인을 사랑했거든요. 그의 시에서는 사랑과 하늘, 별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어요. 아, 그녀가 얼마나 속았는지 몰라요! 그는 그녀에게서 30만 프랑 이상을 뜯어갔어요.” 그때 스완이 예술적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어떻게 시나 그림을 감상해야 하는지 설명하려고 하면, 그녀는 잠시 후에 듣기를 그만두고 이렇게 말했다. “네… 그게 그런 거였다니 상상도 못 했어요.” 그리고 그는 그녀가 관심을 잃은 것을 느꼈다.

그녀가 너무 실망할 것 같아서 그는 차라리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그는 그녀에게 이 모든 것은 별것 아니며, 아직 사소한 것들뿐이고, 본질적인 것을 다룰 시간이 없었으며, 다른 것들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재빨리 물었다. “다른 것? 뭔데?… 말해 봐.” 그러나 그는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기대했던 것보다 얼마나 하찮고 다르게 들릴지, 얼마나 덜 충격적이고 감동적일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가 예술에 대해 환멸을 느끼면 사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까 봐 두려웠다.

사실 그녀는 스완이 지적으로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열등하다고 여겼다. “당신은 항상 침착하군요. 당신을 정의할 수가 없어요.” 그녀는 돈에 대한 그의 무관심, 모든 사람에 대한 친절, 그의 섬세함에 더 놀랐다. 사실 스완보다 더 위대한 사람들, 즉 학자나 예술가의 경우에도 그들 주변 사람들이 그들을 오해하지 않을 때, 그들의 지성의 우월성이 인정받았음을 보여주는 감정은 그들의 생각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그들의 생각은 주변 사람들의 이해를 벗어나기 때문에) 그들의 선함에 대한 존경인 경우가 자주 있다. 오데트가 스완의 사교계 위치에 대해 느끼는 것도 존경이었지만, 그녀는 스완이 자신을 그곳에 받아들이게 하려고 노력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느꼈거나, 심지어 그녀에 대해 말하는 것만으로도 그녀가 두려워하는 폭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두려워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녀는 그에게 절대로 그녀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게 했다. 그녀가 사교계에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는, 그녀가 그에게 말했듯이, 과거에 한 친구와 다툰 적이 있어서였다. 그 친구는 복수하기 위해 나중에 그녀에 대해 나쁜 소문을 퍼뜨렸다고 했다. 스완은 반박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당신 친구를 알지는 못할 거예요.” “그래요, 하지만 그건 기름 얼룩처럼 퍼져요. 세상 사람들은 너무 악의적이에요.” 한편으로 스완은 이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는 ‘세상 사람들은 너무 악의적이다’, ‘중상모략은 기름 얼룩처럼 퍼진다’와 같은 말들이 일반적으로 진실로 여겨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말들이 적용되는 경우들이 있을 것이다. 오데트의 경우가 그런 경우 중 하나일까? 그는 궁금해했지만, 오래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도 아버지처럼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면 정신이 무거워지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데트를 그토록 두렵게 하는 그 사교계는 아마도 그녀에게 큰 매력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알고 있는 세계와는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그것을 명확히 상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여러 면에서 정말 단순했음에도 불구하고 (예를 들어, 그녀는 가파르고 어둡고 악취 나는 계단을 거의 매일 오르내리며 은퇴한 작은 재봉사와 친구로 지냈다), 세련됨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사교계 사람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사교계 사람들에게 세련됨은 소수의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그들의 친밀한 관계의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 그들의 친구나 친구의 친구들의 범위 내에서 – 점점 약해지는 정도로 퍼져나가는 것이다. 사교계 사람들은 이를 기억 속에 지니고 있으며, 이런 문제에 대해 일종의 취향, 감각을 추출해낸 박식함을 가지고 있어서, 스완은 예를 들어 자신의 사교계 지식을 동원할 필요도 없이 신문에서 어떤 저녁 식사에 참석한 사람들의 이름을 읽고 그 저녁 식사의 세련됨의 뉘앙스를 즉시 말할 수 있었다. 마치 문인이 한 문장을 읽고 그 저자의 문학적 자질을 정확히 평가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오데트는 이런 개념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 중 하나였다 (사교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으며, 모든 사회 계층에 존재한다). 그들은 전혀 다른 세련됨을 상상하는데, 이는 그들이 속한 환경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띠지만, 공통적인 특징은 – 오데트가 꿈꾸는 것이든 코타르 부인이 존경하는 것이든 – 모든 사람이 직접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교계 사람들의 세련됨도 사실 접근 가능하지만,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오데트는 누군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오직 세련된 곳에만 가.”

스완이 그녀에게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그녀는 약간 멸시하는 듯이 대답했다.

“세련된 곳이라니, 당연하죠! 당신 나이에 세련된 곳이 뭔지 가르쳐줘야 한다면, 내가 뭘 말할 수 있겠어요. 예를 들어, 일요일 아침에는 앵페라트리스 거리, 오후 5시에는 호수 산책로, 목요일에는 에덴 극장, 금요일에는 히포드롬, 무도회…”

“어떤 무도회요?”

“파리에서 열리는 무도회들, 세련된 무도회들 말이에요. 예를 들어 에르뱅제, 당신도 알 거예요. 그는 증권 중개인이에요. 그래요, 당신은 알아야 해요. 그는 파리에서 가장 잘 나가는 사람들 중 하나예요. 키가 크고 금발인 젊은 남자로, 아주 스노브해요. 항상 단추 구멍에 꽃을 꽂고, 등에 가르마를 타고, 밝은 색 외투를 입어요. 그는 모든 초연에 데리고 다니는 늙은 그림과 함께 다녀요. 그가 며칠 전 무도회를 열었는데, 파리의 모든 세련된 사람들이 다 모였대요. 제가 얼마나 가고 싶었는지 몰라요! 하지만 문에서 초대장을 제시해야 했고 저는 구할 수 없었어요. 사실 가지 않은 게 더 나았을 수도 있어요. 너무 혼잡해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을 거예요. 에르뱅제의 집에 갔다고 말할 수 있으려고 하는 거죠. 당신도 알다시피, 저는 허영심이 있어요! 하지만 거기 갔다고 말하는 사람 백 명 중 절반은 거짓말일 거예요… 하지만 당신 같은 ‘뿌슈트’한 사람이 거기 없었다니 놀라워요.”

하지만 스완은 그녀의 세련됨에 대한 개념을 전혀 바꾸려 하지 않았다. 자신의 개념도 더 진실하지 않고 똑같이 어리석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그의 연인에게 그것을 가르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몇 달이 지나도 그녀는 그가 방문하는 사람들에 대해 오직 그들이 제공할 수 있는 경마장 출입증이나 공연 초대권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녀는 그가 유용한 관계를 유지하기를 바랐지만, 한편으로는 그것들이 별로 세련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빌파리지 후작 부인이 검은 모직 드레스와 보닛을 쓰고 거리를 지나가는 것을 본 이후로 그랬다.

“하녀나 늙은 문지기 같아 보여요, 다링! 저게 후작 부인이라고요? 나는 후작 부인이 아니지만, 저렇게 차려입고 나가려면 많은 돈을 줘야 할 거예요!”

그녀는 스완이 오를레앙 강변의 호텔에 사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감히 그에게 말하지 못했지만, 그런 집이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녀는 ‘골동품’을 좋아한다고 주장했고, 하루 종일 ‘골동품 수집’을 하며 ‘옛날 물건’을 찾는 것을 즐긴다고 말하며 기쁘고 영리한 표정을 지었다. 어떤 자존심 때문인지 (그리고 가족의 어떤 교훈을 따르는 것 같았다) 그녀는 질문에 절대 대답하지 않았고, 자신의 일과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 태도를 고집했다. 하지만 한번은 스완에게 그녀를 초대한 친구의 집에 모든 것이 ‘시대에 맞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스완은 그녀에게 그게 어떤 시대인지 말하게 할 수 없었다. 잠시 생각한 후 그녀는 ‘중세’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그곳에 목조 장식이 있었다는 뜻이었다. 얼마 후 그녀는 다시 그 친구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망설이는 말투와 전날 저녁 함께 식사를 했으나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을 인용할 때처럼 아는 체하는 표정으로 덧붙였다. 그는 마치 청자도 당연히 알 것이라 기대하면서도 주최측이 너무나 유명한 사람으로 여기는 것 같아 누구를 말하는지 잘 알 것이라고 기대하는 듯했다.

“그녀에겐 18세기 식당이… 있어요!”

그녀는 사실 그것이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마치 집이 완성되지 않은 것 같았고, 여자들은 그 안에서 끔찍해 보였으며, 그런 유행은 절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세 번째로 그 이야기를 꺼냈고, 스완에게 그 식당을 만든 사람의 주소를 보여주었다. 그녀는 돈이 생기면 그를 불러 식당을 만들어 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물론 똑같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꿈꾸는 식당을 만들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작은 저택 크기로는 불가능했지만, 높은 장식장과 르네상스 가구, 블루아 성의 벽난로 같은 것들을 갖추고 싶어 했다. 그날 그녀는 스완 앞에서 그의 오를레앙 부두 저택에 대한 생각을 무심코 내비쳤다. 스완이 오데트의 친구가 루이 16세 양식을 따르지 않는다고 비난하자 (그는 그것이 유행이 아니더라도 매력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그녀가 당신처럼 부서진 가구와 닳아빠진 양탄자 사이에서 살기를 바라나요?”

그녀는 부르주아의 체면이 창녀의 예술 애호보다 더 강했다.

그녀는 골동품을 수집하고, 시를 좋아하며, 저속한 계산을 경멸하고, 명예와 사랑을 꿈꾸는 사람들을 인류의 나머지 부분보다 우월한 엘리트로 여겼다. 실제로 그런 취향을 가질 필요는 없었고, 그저 그런 취향을 표방하기만 하면 됐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한 남자가 자신은 골동품 가게에서 손을 더럽히며 어슬렁거리기를 좋아하고, 이 상업적인 시대에는 절대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자신의 이해관계에는 관심이 없어서 다른 시대의 사람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정말 사랑스러운 영혼이에요.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죠. 전혀 몰랐어요!”

그리고 그녀는 그에게 갑자기 엄청난 우정을 느꼈다. 하지만 반대로 스완처럼 그런 취향을 가졌지만 말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물론 그녀는 스완이 돈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녀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다르죠.”

실제로 그녀의 상상력을 자극한 것은 이해관계를 초월하는 실천이 아니라 그것을 표현하는 어휘였다.

스완은 종종 그녀의 꿈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적어도 그녀가 자신과 함께 있을 때 즐겁게 해주려고 노력했다. 그녀의 속물근성과 나쁜 취향을 거스르지 않으려 했다. 사실 그는 그녀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을 사랑했다. 그것들이 그를 매혹했던 것은 그 특징들 덕분에 이 여자의 본질이 그에게 드러나고 가시화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여왕 토파즈’를 보러 간다고 행복해하거나, 꽃축제를 놓칠까 봐, 또는 단순히 ‘루아얄 거리의 티룸’에서 머핀과 토스트를 곁들인 차 시간을 놓칠까 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을 때면, 스완은 마치 우리가 아이의 순수함이나 말하려는 듯한 초상화의 진실성에 감동받듯이, 연인의 영혼이 얼굴에 드러나는 것을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 입술로 그것을 만지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아, 꼬마 오데트가 꽃축제에 가고 싶어 하는군. 사람들의 감탄을 받고 싶어 하는군. 좋아, 데려가 주지. 우리는 그저 따를 뿐이야.”

스완의 시력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집에서 일할 때는 안경을 쓰고, 사교계에 나갈 때는 얼굴을 덜 망가뜨리는 단안경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그의 눈에 단안경을 본 순간, 그녀는 기쁨을 참을 수 없었다.

“남자에게는 정말 멋져 보여요! 당신 정말 잘 어울려요! 진정한 신사 같아요. 작위만 없을 뿐이에요!”

그녀는 약간의 유감을 담아 덧붙였다. 그는 오데트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 만약 그가 브르타뉴 여자를 사랑했다면, 그녀가 모자를 쓰고 유령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기뻤을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남자들처럼, 그의 예술에 대한 취향은 관능성과는 별개로 발전해 왔다. 그래서 이상한 불일치가 존재했다. 그는 점점 더 저속한 여자들과 어울리면서 점점 더 세련된 작품들의 매력을 즐겼다. 그는 작은 하녀를 데리고 격자창이 있는 극장 객석에 가서 듣고 싶었던 퇴폐적인 연극을 보거나 인상파 그림 전시회에 갔다. 그는 교양 있는 상류층 여자라면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적어도 그렇게 귀엽게 침묵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데트를 사랑하게 된 이후로, 그녀와 공감하고 둘이 하나의 영혼을 갖는 것이 너무나 달콤해서, 그는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을 즐기려고 노력했다. 그는 그녀의 습관을 모방하고 의견을 받아들이는 데서 더 큰 즐거움을 느꼈다. 그것들이 그의 지성에 뿌리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그의 사랑을 상기시킬 뿐이었고, 그 사랑 때문에 그는 그것들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가 ‘세르주 파닌’을 다시 보러 가거나 올리비에 메트라의 지휘를 보러 갈 기회를 찾는 것은 오데트의 모든 생각을 공유하고 그녀의 모든 취향을 함께하는 달콤함 때문이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작품이나 장소가 그를 그녀에게 가깝게 해주는 매력은 그에게 더 아름답지만 그녀를 떠올리게 하지 않는 것들의 본질적인 매력보다 더 신비롭게 느껴졌다. 게다가 그는 젊은 시절의 지적 신념들을 약화시켰고, 그의 세련된 회의주의가 모르는 사이에 그것들에 스며들어, 그는 (적어도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기에 아직도 그렇게 말했다) 우리의 취향의 대상들이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지 않으며, 모든 것은 시대와 계급의 문제이고, 단지 유행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저속한 것들도 가장 세련된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오데트가 전시회 개막식 초대장을 받는 것에 부여하는 중요성이 그가 예전에 웨일즈 왕자와 점심을 먹는 것에서 느꼈던 즐거움만큼 우스운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마찬가지로 그는 그녀가 몬테 카를로나 리기에 대해 표현하는 찬탄이 그가 네덜란드에 대해 가진 취향(그녀는 그곳이 추하다고 상상했다)이나 베르사유에 대한 취향(그녀는 그곳이 슬프다고 생각했다)보다 더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곳에 가는 것을 자제했다. 그녀를 위해, 오직 그녀와 함께 느끼고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에 즐거워했다.

오데트를 둘러싼 모든 것들, 그녀를 볼 수 있고 그녀와 대화할 수 있는 방식에 불과했던 모든 것들처럼, 그는 베르뒤랭 부부의 사교 모임을 좋아했다. 그곳에서는 모든 오락, 식사, 음악, 게임, 가장 무도회, 소풍, 연극 관람, 심지어 ‘지루한 사람들’을 위해 가끔 열리는 ‘큰 저녁 모임’에서도 오데트의 존재, 오데트를 보는 것, 오데트와의 대화가 있었다. 베르뒤랭 부부는 스완을 초대함으로써 그에게 헤아릴 수 없는 선물을 주었고, 그는 다른 어느 곳보다도 그곳에서 더 즐거워했다.

“작은 모임”의 다른 곳에서도 그는 실제적인 장점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는 그곳을 평생 즐겨 찾게 될 것이라고 상상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오데트를 영원히 사랑할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적어도 베르뒤랭 부부를 계속 만나게 될 것이라고 가정함으로써 (이 가정은 원칙적으로 그의 지성에 덜 반대되었다) 앞으로도 매일 밤 오데트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것은 아마도 그녀를 영원히 사랑하는 것과 완전히 같지는 않았지만, 지금 그녀를 사랑하는 동안에는 그녀를 보는 것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 그가 원하는 전부였다. “정말 매력적인 환경이야,” 그는 생각했다. “이곳에서 사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삶이지! 여기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보다 훨씬 더 지적이고 예술적이야. 베르뒤랭 부인은 약간 우스운 과장이 있긴 하지만 그림과 음악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가지고 있어! 예술 작품에 대한 열정, 예술가들을 기쁘게 하려는 욕망이 대단해! 그녀는 상류 사회 사람들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상류 사회가 예술가들에 대해 가진 생각은 더 잘못되어 있잖아! 아마도 나는 대화에서 큰 지적 욕구를 충족시킬 필요는 없을 거야. 하지만 코타르와 함께 있으면 완벽하게 즐거워. 그가 바보 같은 말장난을 하긴 하지만 말이야. 그리고 화가는 놀라게 하려고 할 때 그의 허세가 불쾌하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지성 중 하나야.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기서는 자유롭게 느껴져.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고, 구속이나 격식이 없어. 이 살롱에서는 하루에 얼마나 많은 유쾌함이 쏟아져 나오는지! 결국, 몇몇 드문 예외를 제외하고는 이제 이 환경에서만 지내게 될 거야. 여기서 점점 더 내 습관과 삶이 형성될 거야.”

그는 베르뒤랭 부부에게서 본질적인 자질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사실 오데트에 대한 그의 사랑이 그들과 함께 나눈 즐거움의 반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즐거움이 더 진지하고 깊어지고 생명력을 얻을수록, 그 자질들도 그렇게 되었다. 베르뒤랭 부인이 때때로 스완에게 유일한 행복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어느 저녁, 스완은 오데트가 다른 손님과 자신보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불안해했고, 화가 났지만, 함께 돌아가자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때 베르뒤랭 부인이 자발적으로 “오데트, 스완 씨를 모셔다 드릴 거예요, 그렇죠?”라고 말하며 스완에게 평화와 기쁨을 안겨주었다. 또 다가오는 여름에 오데트가 그 없이 떠날지, 매일 그녀를 볼 수 있을지 걱정했을 때, 베르뒤랭 부인이 그들을 시골 별장으로 초대하려고 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스완은 모르는 사이에 감사와 관심이 그의 지성에 스며들어 그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결국 베르뒤랭 부인을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옛 루브르 학교 친구들이 세련되거나 뛰어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베르뒤랭 부부를 백 배는 더 좋아해.” 그리고 새로운 엄숙함으로 덧붙였다. “그들은 너그러운 사람들이야. 그리고 너그러움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중요하고 다른 것과 구별되는 것이지. 너도 알다시피,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밖에 없어: 너그러운 사람들과 그 외의 사람들. 나는 이제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를 경멸할지 결정해야 할 나이가 되었어.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머물고, 다른 사람들과 낭비한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그들을 떠나지 않을 거야. 자, 이제 운명은 정해졌어.” 그는 자신의 말이 진실이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것이 즐겁고, 자신의 목소리로 그 말을 듣는 것이 마치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 같아 약간의 감동을 느끼며 덧붙였다. “나는 오직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만 사랑하기로 했고, 앞으로는 너그러움 속에서만 살기로 했어. 넌 베르뒤랭 부인이 정말 지적이냐고 물었지. 내가 장담하건대 그녀는 내게 고귀한 마음과 영혼의 높이를 증명해 주었어. 그런 높이에는 동등한 사고의 높이 없이는 도달할 수 없지. 물론 그녀는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력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아마도 그게 그녀의 가장 놀라운 점은 아닐 거야. 그녀가 나를 위해 행한 작고 교묘하고 감동적으로 좋은 행동이나, 천재적인 관심, 친근하면서도 숭고한 몸짓은 모든 철학 논문보다 더 깊은 삶에 대한 이해를 보여주지.”

그는 베르뒤랭 부부만큼이나 소박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부모의 옛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그가 아는 다른 대단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소박함과 예술, 그리고 너그러움을 선택한 이후로 그들을 더 이상 만나지 않았다. 그들은 오데트를 알지 못했고, 알았다 해도 그녀를 그에게 소개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베르뒤랭의 모임에는 그들을 스완만큼 사랑하거나 사랑한다고 믿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르뒤랭 씨가 스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 그는 단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아내의 생각도 알아챈 것이었다. 물론 스완은 오데트에 대해 너무나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어서 베르뒤랭 부인에게 매일 그 애정을 고백하지 않았다. 물론 그가 베르뒤랭 부부의 환대를 이용하면서도 신중하게 행동하여, 그들이 짐작하지 못하는 이유로 종종 저녁 식사에 오지 않고 그 대신 “지루한 사람들”의 초대를 거절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물론 그가 자신의 화려한 사교계 지위를 숨기려고 아무리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점차 그것을 발견하게 된 것, 이 모든 것이 그들의 스완에 대한 분노에 기여했다. 하지만 그 깊은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그들은 곧 스완에게 예약된 공간, 침투할 수 없는 공간이 있음을 느꼈다. 그 공간에서 그는 사간 공주가 우스꽝스럽지 않다는 것과 코타르의 농담이 재미없다는 것을 조용히 자신에게 계속 말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결코 자신의 친절함을 잃지 않고 그들의 교리에 반항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에게 그것을 강요하고 완전히 개종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이전에 누구에게서도 그런 저항을 만난 적이 없었다. 만약 그가 충실한 사람들 앞에서 그들을 비난하는 데 동의했다면, 그들은 지루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용서했을 것이다 (사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베르뒤랭 부부와 작은 모임을 그들보다 천 배는 더 좋아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에게서 그런 철회를 끌어낼 수 없다는 것을 이해했다.

오데트가 몇 번 만난 적이 있어 초대해 달라고 부탁한 “새로운 사람”인 포르슈빌 백작과 얼마나 다른지! (마침 그는 사니에트의 매형이었는데, 이는 충실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늙은 기록 보관인은 너무나 겸손한 태도를 가지고 있어서 그들은 항상 그가 자신들보다 사회적으로 열등하다고 생각했고, 그가 부유하고 비교적 귀족적인 세계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물론 포르슈빌은 스완과는 달리 대단히 속물적이었고, 베르뒤랭의 환경을 다른 모든 환경보다 우위에 두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그들의 교리를 반박하거나 존경하지 않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스완은 본성의 섬세함 때문에 자신이 아는 사람들에 대해 베르뒤랭 부인이 하는 지나치게 거짓된 비난에 동조할 수 없었다. 화가가 어떤 날 내뱉는 과장되고 저속한 말이나, 코타르가 위험을 무릅쓰고 하는 외판원 같은 농담에 대해서도 스완은 두 사람을 모두 좋아했기에 쉽게 변명을 찾았지만 박수를 칠 용기와 위선은 없었다. 반면 포르슈빌은 지적 수준이 이런 농담들에 놀라워하고 감탄할 만큼은 되었지만, 그것들을 이해하지는 못했고, 다른 것들은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베르뒤랭 부부 집에서 포르슈빌이 처음 참석한 저녁 식사는 바로 이런 모든 차이점들을 두드러지게 했고, 그의 장점들을 부각시켰으며, 스완의 불명예를 촉진했다.

그날 저녁 식사에는 단골 손님들 외에 소르본 대학의 교수인 브리쇼가 있었다. 그는 온천에서 베르뒤랭 부부를 만났는데, 대학 일과 학술 연구 때문에 자유 시간이 많지 않았다면 훨씬 자주 그들을 방문했을 것이다. 그는 어떤 호기심, 삶에 대한 미신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그들의 연구 대상에 대한 일정한 회의주의와 결합되어, 어떤 직업에서든 의사들이 의학을 믿지 않고, 고등학교 교사들이 라틴어 작문을 믿지 않는 것처럼, 특정 지적인 사람들에게 폭넓고 빛나며 심지어 우월한 정신이라는 평판을 안겨주었다. 그는 베르뒤랭 부인 집에서 철학과 역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현대적인 것에서 비유를 찾으려 애썼다. 이는 첫째로 그가 철학과 역사가 단지 삶을 준비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믿었고, 지금까지 책에서만 알았던 것을 이 작은 집단에서 실제로 발견할 수 있다고 상상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아마도 과거에 주입받고 무의식중에 간직해온 특정 주제에 대한 존중 때문에, 그는 대학 교수의 틀에서 벗어나 과감한 태도를 취하려 했지만, 그것이 그에게 그렇게 보였던 것은 단지 그가 여전히 대학 교수였기 때문이었다.

식사가 시작되자마자 포르슈빌은 베르뒤랭 부인의 오른쪽에 앉았는데, 부인은 ‘새로운 사람’을 위해 화려한 옷차림을 했다. 그가 “이 흰 드레스가 독특하군요”라고 말하자, 의사는 그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있었다. 그는 ‘백작’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 하며 그의 관심을 끌고 더 가까이 접촉할 기회를 찾고 있었다. 그는 ‘흰’이라는 단어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접시에서 고개를 들지 않은 채 “흰색이라고요? 카스티야의 블랑슈인가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오른쪽과 왼쪽으로 불확실하고 미소 띤 눈길을 몰래 던졌다. 스완은 미소 짓기 위해 고통스럽고 헛된 노력을 하며 이 말장난이 어리석다고 판단했음을 보여주었지만, 포르슈빌은 그 재치를 음미하면서도 예의를 지키는 법을 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는 적절한 한계 내에서 즐거움을 억제했고, 그의 솔직함은 베르뒤랭 부인을 매혹시켰다.

“이런 학자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녀는 포르슈빌에게 물었다. “그와 함께 2분 동안 진지하게 대화를 나눌 수가 없어요. 당신도 병원에서 이런 식으로 말하나요?” 그녀는 의사를 향해 덧붙였다. “그렇다면 매일 지루하지 않겠네요. 제가 거기 입원해야겠어요.”

“저는 의사 선생님이 그 늙은 악녀 카스티야의 블랑슈에 대해 말씀하신 것 같아요. 제가 그렇게 표현해도 될까요, 부인?” 브리쇼가 베르뒤랭 부인에게 물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얼굴을 손에 묻으며 억눌린 비명을 내뱉었다.

“오, 부인, 이 테이블 주변에 경건한 영혼이 있다면 그들을 놀라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의 말할 수 없는 아테네 공화국이 – 얼마나! – 이 카페티앵 왕조의 무지한 여인을 첫 번째 강력한 경찰 대장으로 기릴 수 있다고 인정합니다. 그렇습니다, 친애하는 주인님, 그렇습니다.” 그는 베르뒤랭 씨의 반박에 대답하며 잘 울리는 목소리로 각 음절을 분명히 발음했다. “생드니 연대기는 이 점에 대해 의심의 여지를 남기지 않습니다. 성인의 어머니로서 그녀만큼 세속화된 프롤레타리아의 수호성인으로 더 잘 선택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실제로 그 아들에게 쓰라린 경험을 하게 했죠. 쉬제와 다른 성 베르나르가 말했듯이 말입니다. 그녀와 함께라면 모든 사람이 제 몫을 받았을 겁니다.”

“이 신사는 누구십니까?” 포르슈빌이 베르뒤랭 부인에게 물었다. “대단히 유능해 보이는데요.”

“뭐라고요, 당신은 유명한 브리쇼를 모르세요? 그는 전 유럽에서 유명합니다.”

“아, 브레쇼군요!” 포르슈빌이 제대로 듣지 못하고 외쳤다.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유명한 사람에게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저명한 사람과 식사를 하는 것은 항상 흥미롭죠. 하지만 말씀해 주세요, 당신은 우리를 선별된 손님들과 초대하시는군요. 여기서는 지루할 틈이 없어요.”

“오, 알잖아요. 가장 중요한 건 그들이 편안함을 느낀다는 거예요.” 베르뒤랭 부인이 겸손하게 말했다. “그들은 원하는 대로 이야기하고, 대화가 불꽃처럼 튀어 오르죠. 예를 들어 브리쇼는 오늘 밤 별로예요. 제가 그를 봤을 때는 앞에 무릎을 꿇고 싶을 정도로 눈부셨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 집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돼요. 재치가 없고, 말을 끌어내야 하고, 심지어 지루하기까지 해요.”

“정말 이상하군요!” 포르슈빌이 놀라워하며 말했다.

브리쇼와 같은 종류의 재치는 스완이 젊은 시절을 보낸 사교계에서는 순전한 어리석음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실제 지성과 양립할 수 있다. 그리고 교수의 지성은 활기차고 잘 길러진 것이어서 스완이 재치 있다고 여기는 많은 사교계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스완에게 자신들의 취향과 혐오감을 주입했고, 적어도 사교 생활과 그것의 부속 부분들, 즉 대화에 관한 한 스완은 브리쇼의 농담을 학구적이고 저속하며 역겨울 정도로 조잡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는 좋은 매너에 익숙해져 있어서 대학 교수다운 애국심을 가지고 각자에게 말을 거는 거친 군대식 어조에 충격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아마도 그날 밤 특히 오데트가 데려오기로 한 이상한 결정을 내린 이 포르슈빌에게 베르뒤랭 부인이 보여주는 친절함을 보면서 그의 관용을 많이 잃었을 것이다. 스완에 대해 약간 불편해하던 오데트는 도착하자마자 그에게 물었다.

“우리 초대 손님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리고 스완은 처음으로 포르슈빌이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사람임을 깨닫고 꽤 잘생긴 남자라는 것과 여자에게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역겹군요!”라고 대답했다. 물론 그는 오데트에 대해 질투할 생각은 없었지만, 평소만큼 행복하지 않았다. 브리쇼가 블랑슈 드 카스티유의 어머니 이야기를 시작하며 “그녀는 앙리 플랜태저넷과 결혼하기 몇 년 전부터 함께 있었다”고 말하고, 스완에게 이야기의 계속을 요청하며 “그렇죠, 스완 씨?”라고 말했을 때, 그는 농부에게 맞추거나 병사들에게 용기를 주려는 듯한 군대식 어조로 말했다. 스완은 브리쇼의 효과를 깨뜨리며 주인 여자의 큰 분노를 사면서 블랑슈 드 카스티유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용서해 달라고 말했다.

화가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고 했다. 오후에 화가는 베르뒤랭 부인의 친구이자 최근에 사망한 한 예술가의 전시회를 다녀왔는데, 스완은 그에게서 (화가의 안목을 높이 평가했기에) 정말로 그 마지막 작품들에 이전 작품들에서 이미 놀라웠던 기교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정말 놀라웠지만, 흔히 말하는 ‘고상한’ 예술은 아닌 것 같았다.” 스완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고상한… 기관의 수준만큼이나요.” 코타르가 팔을 들며 가짜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온 식탁이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진지할 수 없다고 했잖아요.” 베르뒤랭 부인이 포르슈빌에게 말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말장난을 하니 말이에요.”

하지만 그녀는 스완만 웃지 않은 것을 눈치챘다. 게다가 스완은 코타르가 포르슈빌 앞에서 자신을 비웃는 것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화가는 스완에게 흥미롭게 대답하는 대신 (아마도 스완과 단둘이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식탁 사람들에게 감탄받고 싶어 고인이 된 거장의 작품에 대해 한 토막 늘어놓는 것을 선호했다.

“가까이 다가가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려고 했죠. 코를 들이밀었어요. 아이고, 세상에! 아교로 만들어졌는지, 루비로 만들어졌는지, 비누로 만들어졌는지, 청동으로 만들어졌는지, 태양으로 만들어졌는지, 똥으로 만들어졌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더라고요!”

“그리고 하나가 열둘이 되는군요.” 의사가 너무 늦게 외쳤고 아무도 그의 끼어들기를 이해하지 못했다.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든 것 같아요.” 화가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야경’이나 ‘포목상 조합 이사들의 초상’에서처럼 기교를 알아낼 수 없었어요. 그리고 렘브란트나 할스보다 더 뛰어난 솜씨예요. 모든 게 다 있지만, 아니에요, 맹세코 말씀드리지만.”

그리고 가장 높은 음을 낸 후 가성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듯 노래하는 가수들처럼, 그는 마치 이 그림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우스울 정도라는 듯이 웃으며 중얼거렸다.

“좋은 냄새가 나요, 머리가 어지러워지고, 숨이 막히고, 간지러워요. 그런데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전혀 알 수 없어요. 이건 마법이에요, 속임수예요, 기적이에요 (완전히 폭소를 터뜨리며). 이건 정직하지 않아요!” 그는 멈추고 고개를 똑바로 들며 깊은 저음으로 화음을 맞추려 노력하며 덧붙였다. “그리고 이건 너무나 정직해요!”

그가 “‘야경’보다 뛰어나다”고 말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이는 ‘야경’을 ‘9번 교향곡’과 ‘사모트라케의 니케’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걸작으로 여기는 베르뒤랭 부인의 항의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똥으로 만들어졌다”고 했을 때 (이는 포르슈빌이 그 단어가 통용되는지 보려고 식탁을 둘러보게 했고, 이후 그의 입가에 점잖고 타협적인 미소를 띠게 했다), 스완을 제외한 모든 식객들은 경탄의 눈빛으로 화가를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저렇게 열광할 때 정말 재미있어요.” 그가 말을 마치자 베르뒤랭 부인이 외쳤다. 포르슈빌 씨가 처음으로 오는 날 식탁이 이토록 흥미진진한 것에 기뻐하며. “그런데 당신은 왜 그렇게 멍하니 입 벌리고 있어요?” 그녀가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도 알잖아요, 그가 말을 잘한다는 걸.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보여요. 그가 말하는 동안 당신을 봤다면, 당신이 그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을 거예요. 그리고 내일이면 당신은 한 마디도 빼놓지 않고 우리에게 그가 한 말을 모두 되풀이할 거예요.”

“아니에요, 그건 과장이 아니에요.” 자신의 성공에 도취된 화가가 말했다. “제가 허풍을 떨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네요. 과장하고 있다고요. 제가 데려가 보여드릴게요. 제가 과장했다고 하실 거예요. 내 말을 믿으세요, 당신들이 저보다 더 열광하실 거예요!”

“하지만 우리는 당신이 과장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는 당신이 식사하기를 바랄 뿐이에요. 그리고 제 남편도 식사하기를 바라고요. 선생님께 노르망디식 가자미를 다시 드리세요. 보시다시피 식어버렸어요. 우리는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요. 마치 불이 난 것처럼 서빙하고 있군요. 샐러드를 내기 전에 잠시만 기다리세요.”

코타르 부인은 수줍음이 많고 말수가 적었지만, 행운의 영감으로 적절한 말을 찾았을 때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녀는 그 말이 성공할 것임을 느꼈고, 이는 그녀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그녀가 그렇게 한 것은 빛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남편의 경력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그녀는 베르뒤랭 부인이 방금 말한 샐러드라는 단어를 놓치지 않았다.

“일본식 샐러드는 아니죠?” 그녀가 오데트를 향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뒤마의 새롭고 유명한 연극에 대해 이렇게 신중하면서도 분명하게 언급한 것의 적절함과 대담함에 기쁘고 당황한 그녀는 매력적인 순진함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조용했지만 너무나 억누를 수 없어서 잠시 동안 멈출 수 없었다. “저 부인은 누구죠? 재치가 있군요.” 포르슈빌이 말했다.

“아니에요, 하지만 금요일에 모두 저녁 식사하러 오시면 그걸 만들어 드릴게요.”

“저는 아주 시골스러워 보일 거예요, 선생님.” 코타르 부인이 스완에게 말했다. “하지만 저는 아직 모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그 유명한 ‘프랑실롱’을 보지 못했어요. 의사가 가봤어요 (그가 당신과 함께 저녁을 보내는 큰 즐거움을 가졌다고 말한 것도 기억나네요).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그가 저와 함께 다시 가기 위해 티켓을 예매한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물론 코메디 프랑세즈에서는 결코 저녁을 후회하지 않죠. 항상 연기가 너무 좋으니까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매우 친절한 친구들이 있어요 (코타르 부인은 고유명사를 거의 말하지 않고 ‘우리 친구들’, ‘내 친구 중 한 명’이라고만 말했다. 이는 ‘구별’을 위해서였고, 꾸며낸 어조와 중요한 사람만을 언급하는 사람의 태도로). 그들은 자주 박스석을 가지고 있고 우리를 모든 가치 있는 신작들에 데려가는 친절을 베풀어요. 그래서 저는 ‘프랑실롱’을 조금 일찍 혹은 조금 늦게 볼 수 있을 거라고 항상 확신해요. 그리고 제 의견을 형성할 수 있겠죠. 하지만 제가 방문하는 모든 살롱에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 불행한 일본식 샐러드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니 저 자신이 꽤 바보 같다고 고백해야 할 것 같아요. 사람들은 심지어 그것에 대해 약간 지쳐 있기 시작했어요.” 그녀는 스완이 생각했던 것만큼 흥미롭지 않아 보이는 것을 보고 덧붙였다. “하지만 때때로 그것이 꽤 재미있는 아이디어의 구실이 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해요. 예를 들어, 제 친구 중 한 명은 매우 독창적이에요. 매우 아름다운 여성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매우 인기가 있어요. 그녀는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가 연극에서 말한 모든 것을 넣어 집에서 이 일본식 샐러드를 만들게 했다고 주장해요. 그녀는 몇몇 친구들을 초대해 그것을 먹게 했어요. 불행히도 저는 선택받은 사람들 중에 없었어요. 하지만 그녀가 오늘 오후 모임에서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었어요. 그것은 끔찍했다고 해요. 그녀가 우리를 눈물 나게 웃겼어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모든 것은 이야기하는 방식에 달려 있어요.” 그녀는 스완이 심각한 표정을 유지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

그리고 아마도 그가 ‘프랑실롱’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그녀는 덧붙였다.

“그래도 저는 실망할 것 같아요. ‘세르주 파닌’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적어도 ‘세르주 파닌’은 깊이 있는 주제를 다루고,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잖아요. 코메디 프랑세즈 무대에서 샐러드 레시피를 보여주다니요! 게다가 ‘세르주 파닌’은 조르주 오네의 작품이잖아요. 정말…”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항상 너무나 잘 쓰여 있다. 저는 ‘대장장이’가 ‘세르주 파닌’보다 더 나은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용서하세요,” 스완이 냉소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저는 두 작품 모두에 대한 존경심이 거의 없습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두 작품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안 드세요? 편견 때문인가요? 아마도 조금 슬프다고 생각하시는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제가 항상 말하듯이, 소설이나 연극에 대해서는 논쟁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각자의 관점이 다르니까요. 당신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혐오할 수도 있습니다.”

그녀의 말은 스완에게 말을 거는 포르슈빌에 의해 중단되었다. 사실, 코타르 부인이 ‘프랑실롱’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포르슈빌은 화가가 한 ‘작은 연설’에 대한 자신의 감탄을 베르뒤랭 부인에게 표현하고 있었다.

“저 분은 정말 말하는 재주와 기억력이 대단하군요!” 화가가 말을 마쳤을 때 포르슈빌이 베르뒤랭 부인에게 말했다. “저런 능력을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젠장! 나도 저만큼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 분은 훌륭한 설교자가 될 거예요. 브레슈 씨와 함께 당신은 거기에 대등한 두 명의 인물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말하는 능력에서는 이 사람이 교수를 능가할 수도 있겠어요. 더 자연스럽고, 덜 인위적이에요. 물론 그가 가끔 약간 현실적인 단어들을 사용하긴 했지만, 요즘 유행이니까요. 저는 그런 재주로 말을 하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어요. 마치 우리가 군대에서 말하던 것처럼 말이죠. 그곳에서 저는 한 동료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이 분을 조금 생각나게 하네요. 어떤 주제에 대해서든, 예를 들어 이 유리잔에 대해서도 그는 몇 시간 동안이나 떠들 수 있었어요. 아니, 이 유리잔에 대해서가 아니라… 제 말이 바보 같군요. 하지만 워털루 전투에 대해서나, 당신이 원하는 어떤 것에 대해서나 그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들을 던져주곤 했죠. 그런데 스완도 같은 군대에 있었어요. 그는 그를 알고 있었을 거예요.”

“당신은 스완 씨를 자주 보세요?” 베르뒤랭 부인이 물었다.

“아니요,” 포르슈빌이 대답했다. 그는 오데트에게 더 쉽게 접근하기 위해 스완에게 호의적이길 원했고, 이 기회를 붙잡아 그의 멋진 인맥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세상 물정 아는 사람답게 친근한 비판의 어조로 말하고, 예기치 못한 성공을 축하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 했다. “그렇죠, 스완? 난 당신을 거의 볼 수가 없어요. 어떻게 그를 만날 수 있겠어요? 이 녀석은 늘 라 트레모이유 집이나 로므 집이나 그런 곳에 처박혀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주장은 사실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스완은 1년 동안 거의 베르뒤랭 집에만 다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름은 그들 사이에서 비난의 침묵으로 받아들여졌다. 베르뒤랭 씨는 이 ‘지루한 사람들’의 이름이, 특히 이렇게 무례하게 모든 단골들 앞에서 던져져 자신의 아내에게 불쾌한 인상을 주었을까 봐 두려워하며 몰래 그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는 그녀가 방금 통보받은 소식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심지어 침묵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아예 귀를 막은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았다. 우리가 잘못을 저지른 친구가 대화에 변명을 슬쩍 끼워 넣으려 할 때 그것을 들은 척도 하지 않거나, 또는 배은망덕한 사람의 이름이 우리 앞에서 언급될 때 우리가 하는 것처럼 말이다. 베르뒤랭 부인은 자신의 침묵이 동의로 보이지 않도록, 그저 무생물처럼 모르는 척하는 침묵으로 보이도록 하기 위해 갑자기 자신의 얼굴에서 모든 생명과 움직임을 제거해 버렸다. 그녀의 볼록한 이마는 이제 그저 아름다운 부조 연구에 불과했고, 거기에는 스완이 늘 처박혀 있다는 그 라 트레모이유라는 이름이 전혀 스며들 수 없었다. 그녀의 살짝 찡그린 코는 생명을 본뜬 듯한 홈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반쯤 열린 입이 말을 하려는 것 같았다. 이제 그것은 그저 잃어버린 밀랍 모형이나 석고 가면, 산업 궁전을 위한 기념비적 흉상에 불과했다. 그 앞에서 대중들은 분명 멈춰 서서 조각가가 라 트레모이유와 로므,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지루한 사람들과 대비되는 베르뒤랭의 변함없는 품위를 표현하면서 어떻게 돌의 흰색과 경직성에 거의 교황과 같은 위엄을 부여했는지 감탄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 대리석은 생기를 띠고 입을 열어 그런 사람들의 집에 가려면 역겨워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 여자는 항상 술에 취해 있고 남편은 너무 무식해서 복도를 ‘콜리도’라고 말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내게 돈을 준다 해도 그런 것들을 우리 집에 들이지 않을 거예요,” 베르뒤랭 부인이 스완을 위압적으로 쳐다보며 말을 맺었다.

물론 그녀는 그가 피아니스트의 숙모가 방금 외쳤던 것과 같은 성스러운 단순함에 굴복하길 바라지 않았다.

“저런 것들 좀 보세요! 그들이 아직도 그들과 대화하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다는 게 놀라워요. 저라면 무서울 것 같아요. 불상사는 금방 일어날 수 있잖아요! 어떻게 아직도 그들을 쫓아다니는 멍청한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가 적어도 포르슈빌처럼 “그래도 그녀는 공작 부인이에요. 아직도 그런 걸로 감명받는 사람들이 있죠.”라고 대답했다면, 베르뒤랭 부인이 적어도 “그들 좋을 대로 하세요!”라고 대꾸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 대신 스완은 그저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이 웃기만 했다. 베르뒤랭 씨는 계속해서 아내를 몰래 바라보며, 그녀가 이단을 근절시키지 못하는 대심문관의 분노를 느끼고 있음을 슬프게 이해했다. 스완을 철회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의견에 대한 용기가 항상 그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계산된 것이자 비겁함으로 보인다는 것을 알기에, 베르뒤랭 씨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솔직히 말씀해 보세요. 우리가 그들에게 말하진 않을 테니까요.”

이에 스완이 대답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공작 부인 때문이 아니에요. (라 트레모이유에 대해 말씀하시는 거라면요.) 제가 장담하건대,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집에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녀가 ‘깊이 있는 사람’이라고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는 ‘깊이 있는’이라는 말을 우스운 말인 것처럼 발음했다. 왜냐하면 그의 언어는 음악에 대한 사랑으로 특징지어지는 어떤 혁신에 의해 일시적으로 잃어버렸던 정신적 습관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는 때때로 열정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했다.) 하지만 매우 진실하게 말씀드리면, 그녀는 지적이고 그녀의 남편은 진정한 학자입니다. 그들은 매력적인 사람들이에요.”

베르뒤랭 부인은 이 한 명의 배신자 때문에 작은 집단의 도덕적 통일성을 실현할 수 없게 될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의 말이 그녀를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는지 알지 못하는 이 고집불통에 대한 분노로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신이 원한다면 그렇게 생각하세요. 하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지는 마세요.”

“모든 것은 당신이 지성이라고 부르는 것이 무엇이냐에 달려 있습니다,” 포르슈빌이 말했다. 그 역시 이제 빛나고 싶어 했다. “자, 스완, 당신은 지성을 무엇이라고 이해하시나요?”

“이것 봐요!” 오데트가 외쳤다. “내가 그에게 말해달라고 하는 중요한 것들이에요. 하지만 그는 절대 말하려 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래요…” 스완이 항의했다.

“그 농담 좀!” 오데트가 말했다.

“담배 농담인가요?” 의사가 물었다.

“당신에게 있어서,” 포르슈빌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지성이란 세상 물정이고,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 줄 아는 사람들을 말하는 건가요?”

“자, 이제 당신의 접시를 치울 수 있도록 디저트를 다 드세요,” 베르뒤랭 부인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베르뒤랭 부인은 사니에트에게 신랄한 어조로 말을 건넸다. 사니에트는 깊은 생각에 잠겨 식사를 멈추고 있었다. 그녀는 아마도 자신의 말투에 대해 약간 부끄러웠는지 이렇게 덧붙였다. “괜찮아요. 시간은 충분히 있으니까요. 하지만 당신에게 말하는 건 다른 사람들 때문이에요. 식사 진행에 방해가 되거든요.”

“온화한 무정부주의자 페늘롱의 지성에 대한 정의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브리쇼는 음절을 강조하며 말했다.

베르뒤랭 부인이 포르슈빌과 의사에게 말했다. “들어보세요! 페늘롱의 지성에 대한 정의를 말해줄 거예요. 흥미로워요. 이런 걸 배울 기회가 늘 있는 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브리쇼는 스완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를 기다렸다. 스완은 대답하지 않았고, 이를 회피함으로써 베르뒤랭 부인이 포르슈빌에게 보여주려 했던 화려한 말씨 대결을 무산시켰다.

“당연하죠, 저와도 마찬가지예요.” 오데트가 삐진 말투로 말했다. “나만 그의 수준에 못 미치는 게 아니라는 걸 보니 화가 나지는 않아요.”

“베르뒤랭 부인이 우리에게 보여준 그 라 트레무아유 가문 사람들은,” 브리쇼가 힘주어 발음하며 물었다. “그 좋은 속물 세비녜 부인이 농민들에게 잘 보이려고 알고 지내기를 자랑스러워했다는 그 사람들의 후손인가요? 물론 후작 부인에겐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죠. 그녀는 본질적으로 문필가였으니까요. 그녀에겐 무엇보다 원고가 중요했죠. 그녀가 딸에게 정기적으로 보내는 편지에서 라 트레무아유 부인이 고위 인사들과의 관계를 통해 얻은 정보로 국제 정세를 전하곤 했죠.”

“아니요, 같은 집안은 아닌 것 같아요.” 베르뒤랭 부인이 아무렇게나 말했다.

사니에트는 허겁지겁 집사에게 아직 가득 찬 접시를 돌려준 뒤 묵상에 잠겼다가 마침내 웃으며 라 트레무아유 공작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그 이야기에 따르면 공작은 조르주 상드가 여성의 필명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스완은 사니에트에게 동정심을 느꼈기에 공작의 교양 수준으로 봤을 때 그런 무지는 있을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세부 사항들을 알려주려 했다. 그러나 갑자기 그는 멈췄다. 사니에트가 그 이야기를 방금 지어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좋은 사람은 베르뒤랭 부부에게 너무 지루하게 여겨지는 것에 고통스러워했다. 그는 이번 저녁 식사에서 평소보다 더 재미없었다는 걸 알아차리고 사람들을 즐겁게 하지 않고는 식사를 끝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너무 빨리 항복했고, 기대했던 효과를 놓친 것에 대해 너무나 불행해 보였다. 스완이 더 이상 쓸모없는 반박을 하지 않도록 비굴한 어조로 대답했다. “좋아요, 좋아요. 설령 제가 착각했다 해도 그게 무슨 죄가 되나요?” 스완은 그 이야기가 진실이고 즐거웠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의사는 “진실이 아니라도”라고 말할 때라고 생각했지만, 정확한 단어를 몰라 혼란스러워할까 봐 두려워했다.

저녁 식사가 끝난 후 포르슈빌은 스스로 의사에게 다가갔다.

“베르뒤랭 부인은 꽤 매력적이었을 거예요. 게다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여자죠. 내게는 그게 가장 중요해요. 물론 그녀도 이제 나이가 좀 들었죠. 하지만 크레시 부인, 저 여자는 똑똑해 보이는 작은 여자예요. 아, 맙소사! 그녀의 눈빛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죠. 우리는 크레시 부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가 파이프를 입에 문 채 다가오는 베르뒤랭 씨에게 말했다. “여자의 몸매로 봤을 때…”

“번개보다 그녀를 내 침대에 두고 싶어요.” 코타르가 숨을 헐떡이며 급히 말했다. 그는 포르슈빌이 숨을 고를 때를 기다리며 이 오래된 농담을 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대화 주제가 바뀌면 적절한 순간을 놓칠까 봐 걱정했던 그는 암기한 대사를 말할 때 느끼는 차가움과 긴장을 감추려는 듯 지나치게 자연스럽고 확신에 찬 태도로 이 말을 내뱉었다. 포르슈빌은 이 농담을 알고 있었고, 이해했으며, 즐거워했다. 베르뒤랭 씨도 자신의 기쁨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최근 아내가 사용하는 것과는 다르지만 똑같이 간단하고 명확한 기쁨의 표현 방식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그는 크게 웃는 사람처럼 고개와 어깨를 움직이기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마치 너무 크게 웃다가 파이프 연기를 삼킨 것처럼 말이다. 그는 계속 파이프를 입가에 문 채로 질식과 웃음의 시늉을 계속했다. 그래서 그와 베르뒤랭 부인은 마치 연극의 두 가면처럼 보였다. 베르뒤랭 부인은 맞은편에서 화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을 감고 얼굴을 손에 파묻기 직전이었다. 그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즐거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베르뒤랭 씨는 파이프를 입에서 떼지 않은 것이 현명했다. 코타르는 잠시 자리를 비워야 했기 때문에 최근 배운 농담을 조용히 했다. 그는 같은 장소에 갈 때마다 이 농담을 반복했다. “오말 공작과 잠시 대화를 나눠야겠어요.” 그래서 베르뒤랭 씨의 기침이 다시 시작되었다.

“자, 이제 파이프를 입에서 떼세요. 그렇게 웃음을 참으려다 질식하겠어요.” 베르뒤랭 부인이 술을 가져오며 말했다.

“정말 매력적인 남편이군요. 그는 재치가 넘쳐요.” 포르슈빌이 코타르 부인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부인. 저 같은 노병은 한 잔 술을 거절하지 않죠.”

“포르슈빌 씨가 오데트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대요.” 베르뒤랭 씨가 아내에게 말했다.

“그래요, 그녀는 당신과 한 번 점심을 먹고 싶어 해요. 우리가 그걸 계획해봐야겠어요. 하지만 스완에게는 알리면 안 돼요. 알다시피 그는 분위기를 좀 서늘하게 만들거든요. 물론 그렇다고 저녁 식사에 오지 말라는 건 아니에요. 우리는 자주 당신을 초대하고 싶어요. 좋은 계절이 다가오니 야외에서 자주 저녁을 먹을 거예요. 작은 야외 저녁 식사가 싫지는 않으시죠? 좋아요, 좋아요, 아주 좋을 거예요. 자, 이제 당신 일을 하러 가지 않으시겠어요!” 그녀는 포르슈빌처럼 중요한 새 손님 앞에서 자신의 재치와 폭압적인 권력을 과시하려는 듯이 작은 피아니스트에게 소리쳤다.

“포르슈빌 씨가 당신의 험담을 하고 있었어요.” 코타르 부인이 살롱으로 돌아온 남편에게 말했다.

그는 저녁 내내 포르슈빌의 귀족적 혈통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기에 이렇게 말했다.

“지금 푸트뷔스 남작 부인을 치료하고 있어요. 푸트뷔스 가문은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죠, 그렇지 않나요? 그들은 포메라니아에 콩코드 광장의 열 배 크기의 호수를 가지고 있어요. 그녀의 건성 관절염을 치료하고 있는데, 매력적인 여성이에요. 그녀도 베르뒤랭 부인을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이를 통해 포르슈빌은 코타르 부인과 단둘이 있게 되자 남편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재미있어요. 그가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뭐, 의사들은 그렇게 많은 걸 알고 있죠.”

“스완 씨를 위해 소나타의 구절을 연주할게요.” 피아니스트가 말했다.

“아이고, 제발! 설마 ‘소나타 뱀’은 아니겠죠?” 베르뒤랭 씨가 물었다.

포르슈빌은 과시하려고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코타르 박사는 이 말장난을 전혀 들어본 적이 없어서 이해하지 못했고 포르슈빌 씨가 실수한 줄 알았다. 그는 서둘러 이를 바로잡으려 다가갔다.

“아니요, ‘소나타 뱀’이 아니라 ‘방울뱀’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가 열성적이고 조바심 나는 듯한, 그러면서도 득의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포르슈빌이 그에게 말장난을 설명해주었다. 박사는 얼굴을 붉혔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박사님?”

“오, 저는 그 말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코타르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바이올린의 트레몰로가 만들어내는 동요 아래에서 – 마치 산속에서 폭포의 겉보기에는 현기증 나는 부동성 뒤로, 200피트 아래에서 한 산책자의 작은 형체가 보이는 것처럼 – 작은 악구가 나타났다. 멀리서 우아하게, 끊임없이 울리는 투명한 장막의 긴 파도에 보호받으며. 그리고 스완은 마음속으로 그 작은 악구에게 말을 걸었다. 마치 그의 사랑의 비밀을 아는 사람에게, 오데트의 친구에게, 이 포르슈빌 따위는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해줄 사람에게 하듯이.

“아, 늦게 오셨군요.” 베르뒤랭 부인이 ‘이쑤시개’로만 초대했던 단골에게 말했다. “우리는 정말 훌륭한 브리쇼를 보았어요. 그의 웅변은 대단했죠! 그렇죠, 스완 씨? 당신이 그와 처음 만난 것 같은데요.” 그녀가 스완에게 브리쇼를 소개한 것이 자신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려는 듯이 말했다. “그가 멋지지 않았나요, 우리의 브리쇼가?”

스완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관심이 없으셨나요?” 베르뒤랭 부인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아니요, 부인.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저는 감동받았습니다. 그는 약간 독단적이고 제 취향에는 너무 쾌활한 면이 있긴 합니다만. 때로는 그에게 주저함과 부드러움이 좀 더 있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그가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고, 좋은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모두가 아주 늦게 돌아갔다. 코타르가 아내에게 한 첫 마디는 이러했다.

“오늘 밤만큼 베르뒤랭 부인이 기분 좋아하는 걸 본 적이 거의 없어.”

“베르뒤랭 부인이 대체 뭐하는 사람이지? 반쯤 떨어진 여자인가?” 포르슈빌이 화가에게 물었다. 그는 화가와 함께 돌아가자고 제안했다.

오데트는 그가 떠나는 걸 아쉬워하며 바라보았다. 그녀는 감히 스완과 함께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지만, 차 안에서 심술이 났고, 스완이 그녀의 집에 들어가도 되냐고 묻자 짜증을 내며 어깨를 으쓱하며 “당연하죠”라고 말했다. 모든 손님이 떠난 뒤, 베르뒤랭 부인이 남편에게 말했다.

“스완이 라 트레모이유 부인 얘기가 나왔을 때 바보같이 웃는 걸 봤어?”

그녀는 스완과 포르슈빌이 여러 번 작위를 생략하고 그 이름을 말하는 걸 눈치챘다. 그들이 작위에 위압당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고, 그들의 자부심을 모방하고 싶어 했지만, 그것이 정확히 어떤 문법적 형태로 표현되는지 잘 파악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의 잘못된 말하기 습관이 공화주의적 불굴의 정신을 이겨내 여전히 ‘드 라 트레모이유’라고 말했다. 아니 차라리 카페 콘서트 노래 가사나 풍자 만화의 설명에서 쓰이는 축약형을 써서 ‘드’를 감추고 ‘드라 트레모이유’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라 트레모이유 부인”이라고 말함으로써 만회했다. “스완이 말하는 공작 부인 말이에요.” 그녀가 비꼬듯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 그녀는 단지 인용할 뿐이며 그렇게 순진하고 우스운 호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를 아주 바보 같다고 생각해.”

베르뒤랭 씨가 대답했다.

“그는 솔직하지 않아. 교활한 사람이야. 항상 양다리를 걸치고 있지. 염소와 양배추를 다 살리려고 해. 포르슈빌과는 정말 다르지. 저 사람은 적어도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말해. 당신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다른 놈처럼 어중간하지 않아. 게다가 오데트가 포르슈빌을 훨씬 더 좋아하는 것 같아. 나는 그녀 편을 들어. 그리고 결국 스완이 상류 사회 인사인 척, 공작 부인들의 옹호자인 척하고 싶다면, 적어도 다른 놈은 작위가 있잖아. 그는 언제나 포르슈빌 백작이야.” 그가 섬세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마치 그 백작 작위의 역사를 알고 있어 그 특별한 가치를 세심히 따져보는 듯했다.

“내가 말해줄게.” 베르뒤랭 부인이 말했다. “그는 브리쇼에 대해 몇 가지 악의적인, 꽤 우스운 암시를 던진 것 같아. 물론 브리쇼가 우리 집에서 사랑받는 걸 봤으니까, 그건 우리를 공격하고 우리 저녁 식사를 깎아내리는 방법이었겠지. 나가면서 당신을 험담할 좋은 친구 같은 걸 느낄 수 있어.”

“하지만 내가 말했잖아.” 베르뒤랭 씨가 대답했다. “그는 실패자야. 위대한 것들을 질투하는 하찮은 인간이라고.”

사실 스완보다 더 악의적인 단골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험담에 잘 알려진 농담들, 약간의 감동과 친근함을 곁들이는 주의를 기울였다. 반면 스완이 허용하는 가장 작은 제한도 “우리가 나쁘게 말하는 건 아니에요” 같은 관용구를 붙이지 않은 채 (그는 그런 말을 하기에는 너무 품위 있다고 생각했다) 순수한 악의로 보였다. 독창적인 작가들 중에는 가장 작은 대담함도 대중의 취향을 먼저 달래고 익숙한 상투어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분노를 일으키는 이들이 있다. 스완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베르뒤랭 씨의 분노를 샀다. 스완에게도, 그들에게도, 그들 언어의 새로움이 그들의 의도의 사악함을 믿게 만들었다.

스완은 베르뒤랭 집에서 자신을 위협하는 실각에 대해 아직 몰랐고, 그들의 우스꽝스러운 면을 계속해서 사랑을 통해 아름답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대개 저녁에만 오데트와 약속이 있었지만, 낮에는 그녀를 피곤하게 할까 봐 그녀의 집에 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적어도 그녀의 생각을 계속 차지하고 싶어 했고, 매 순간 그녀의 생각에 개입할 기회를 찾으려 했다. 그것도 그녀에게 즐거운 방식으로. 만약 꽃집이나 보석상의 진열장에서 관목이나 보석을 보고 매력을 느끼면, 즉시 그것들을 오데트에게 보내고 싶어졌다. 그것들이 그에게 주었던 기쁨을, 그녀도 느끼고, 그녀가 그를 향한 애정이 커질 것이라고 상상하며, 그는 즉시 그것들을 라 페루즈 가로 보냈다. 그녀가 그에게서 무언가를 받는 순간, 그가 그녀 곁에 있는 것처럼 느끼는 그 순간을 지체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는 특히 그녀가 외출하기 전에 그것들을 받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녀가 느낄 감사의 마음이 베르뒤랭 집에서 그를 만날 때 더 다정한 환영으로 이어지기를, 아니면 공급자가 충분히 서둘러준다면, 어쩌면 저녁 식사 전에 그녀가 보내올 편지나, 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그녀가 직접 그를 방문하는 것으로 이어지기를 바랐다. 예전에 그가 오데트의 본성에 대해 분노의 반응을 실험했던 것처럼, 이제는 감사의 반응을 통해 그녀가 아직 그에게 드러내지 않은 감정의 조각들을 끌어내려 했다.

그녀는 종종 돈에 곤란을 겪었고, 빚에 시달려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이를 기쁘게 여겼다. 오데트에게 자신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영향력 있는지, 또는 자신이 얼마나 그녀에게 유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큰 인상을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기쁘게 여겼다. 물론 누군가가 그에게 처음에 이렇게 말했다면:

“그의 상황이 그녀를 끌어들인다”고 말하거나 “그의 재산 때문에 그녀가 그를 사랑한다”고 말했다면 그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그들이 속물근성이나 돈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여겨진다 해도 그리 불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설사 그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하더라도, 그가 오데트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매력이나 자질보다 더 지속적인 상태, 즉 이해관계가 그녀의 사랑의 바탕이 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해도 고통스러워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해관계야말로 그녀가 언젠가 그를 떠나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될 날이 오지 않도록 막아줄 터였다. 지금 그는 그녀에게 선물을 아낌없이 하고 도움을 베풀면서, 자신의 인격이나 지성과는 무관한 외적인 이점들을 통해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는 지난한 노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사랑에 빠져 사랑만으로 살아가는 쾌락, 그 현실성을 때로 의심하긴 했지만, 결국 그가 지불하는 대가는 비물질적 감각의 애호가로서 그 가치를 더욱 높여주었다. 마치 바다의 광경과 파도 소리가 즐거운지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즐기기 위해 하루에 백 프랑씩 내고 호텔 방을 빌림으로써 자신들의 탁월한 취향을 확신하게 되는 것처럼.

어느 날 이런 생각들이 그를 다시 과거로 이끌었다. 오데트가 화류계 여성이었다고 들었던 때를 떠올리며, 그는 다시 한 번 이 기이한 인물상, 즉 화류계 여성이라는 존재를 상상해보며 즐거워했다. 그것은 알 수 없는 악마적 요소들이 뒤섞인 매혹적인 혼합물로, 귀스타브 모로의 환영처럼 독초와 보석이 얽혀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이미지를 자신이 알고 있는 오데트와 대비시켰다. 그녀의 얼굴에서 그는 불행한 이에 대한 연민, 부당함에 대한 분노, 은혜에 대한 감사 등 자신의 어머니나 친구들에게서 보았던 것과 같은 감정들을 발견했다. 그녀의 말은 주로 그가 가장 잘 아는 것들, 즉 그의 수집품들, 그의 방, 그의 늙은 하인, 그의 주식을 보관하고 있는 은행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이 마지막 이미지, 즉 은행에 대한 생각이 그에게 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켰음을 깨달았다. 실제로 이번 달에 그가 지난달처럼 오데트의 물질적 어려움을 크게 도와주지 않는다면, 지난달에 그가 그녀에게 5천 프랑을 주었던 것처럼, 그리고 그녀가 원하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사주지 않는다면, 그의 관대함에 대한 그녀의 감탄과 감사, 그를 그토록 행복하게 만들었던 그 감정들을 새롭게 하지 못할 것이고, 심지어 그의 사랑이 줄어들었다고 그녀가 생각하게 만들 위험도 있었다. 그러자 그는 문득 이것이 바로 그녀를 ‘부양하는 것’이 아닌지 자문해보았다. (마치 정말로 이 ‘부양’이라는 개념이 신비롭거나 부도덕한 요소가 아닌, 그의 일상적이고 사적인 삶의 기본적인 요소들, 예를 들어 그의 하인이 한 달 치 계산서와 집세를 지불한 후 오래된 책상 서랍에 넣어둔, 찢어졌다 다시 붙인 친숙하고 가정적인 천 프랑 지폐 같은 것에서 추출될 수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는 오데트를 알게 된 이후로 (그녀가 그를 만나기 전에 누군가에게 돈을 받았을 거라고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적용할 수 있는, 그가 그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그 단어, ‘화류계 여성’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는지 자문해보았다. 그는 이 생각을 더 깊이 파고들 수 없었다. 그의 선천적이고 간헐적이며 섭리적인 정신적 나태함이 그 순간 그의 지성에서 모든 빛을 꺼버렸기 때문이다. 마치 나중에 전기 조명이 도처에 설치되었을 때 집 안의 전기를 끊을 수 있었던 것처럼 갑작스럽게 말이다. 그의 생각은 잠시 어둠 속에서 더듬거렸고, 그는 안경을 벗어 렌즈를 닦고 눈을 문질렀다. 그리고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은 완전히 다른 생각, 즉 다음 달에는 오데트에게 5천 프랑 대신 6천 내지 7천 프랑을 보내 그녀를 놀라게 하고 기쁘게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을 때였다.

저녁이 되면 그는 집에 머물러 베르뒤랭 부부의 집이나 그들이 즐겨 찾던 불로뉴 숲, 특히 생클루의 여름 레스토랑 중 한 곳에서 오데트를 만날 시간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예전에 단골이었던 고급 저택 중 한 곳에 가서 저녁 식사를 했다. 그는 혹시 오데트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과의 접촉을 잃고 싶지 않았고, 그들 덕분에 그는 종종 그녀를 기쁘게 해줄 수 있었다. 게다가 오랫동안 사교계와 사치에 익숙해져 있던 그는 그것들을 경멸하면서도 동시에 필요로 했기에, 가장 소박한 처소와 가장 호화로운 저택이 정확히 같은 수준으로 보이는 순간부터 그의 감각은 후자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어서 전자에서는 약간의 불편함을 느꼈다. 그는 5층 건물의 D계단 왼쪽에서 춤을 추는 소시민들에 대해서도, 파리에서 가장 화려한 파티를 여는 파르마 공작 부인에 대해서도 똑같은 존중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이런 동등함을 믿지 못했겠지만.) 하지만 그는 집주인의 침실에서 아버지들과 함께 있을 때 무도회장에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고, 수건으로 덮인 세면대와 침대보 위에 쌓인 외투와 모자들로 인해 옷걸이로 변한 침대를 보면 20년간 전기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그을음이 나는 램프나 기름이 떨어지는 등불에서 느끼는 것과 같은 답답함을 느꼈다.

그가 외출해서 저녁 식사를 하는 날이면 7시 30분에 마차를 준비시켰다. 그는 오데트를 생각하며 옷을 입었고, 그래서 혼자가 아니었다. 오데트에 대한 끊임없는 생각이 그가 그녀와 떨어져 있을 때도 그녀와 함께 있을 때와 같은 특별한 매력을 주었다. 그는 마차에 올랐지만, 그 생각도 함께 뛰어올라 그의 무릎 위에 자리 잡은 것 같았다. 마치 어디든 함께 데려가는 사랑하는 애완동물처럼, 그는 그것을 저녁 식사 자리에서도 손님들 모르게 곁에 두려 했다. 그는 그 생각을 어루만지고 그것에 따뜻함을 느꼈으며, 일종의 나른함을 느끼며 목과 코를 살짝 찡그리는 새로운 몸짓을 하면서 단추 구멍에 꽂은 아네모네 꽃다발을 바로잡았다. 그는 얼마 전부터 몸이 좋지 않고 우울했는데, 특히 오데트가 포르슈빌을 베르뒤랭 부부에게 소개한 이후로 더욱 그랬다. 스완은 시골에 가서 좀 쉬고 싶었다. 하지만 오데트가 파리에 있는 동안 하루라도 떠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날씨는 따뜻했고, 봄의 가장 아름다운 날들이었다. 그는 돌로 된 도시를 지나 폐쇄된 호텔로 가면서도, 눈앞에 끊임없이 떠오르는 것은 콩브레 근처에 있는 그의 공원이었다. 그곳에서는 4시가 되면 아스파라거스 밭에 도착하기도 전에 메제글리즈 들판에서 불어오는 바람 덕분에 연못가의 물망초와 아이리스 못지않게 시원한 날씨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저녁을 먹을 때면 정원사가 엮어 놓은 건포도와 장미가 식탁 주위를 달렸다.

저녁 식사 후, 만약 불로뉴 숲이나 생클루에서의 약속이 일찍 잡혀 있다면 (그리고 이는 스완에게 가장 즐거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그는 오데트와 함께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소극장인 오페라 코미크로 갔다. 왜냐하면 거기서 오데트를 볼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항상 그곳에 있었고, 그녀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저녁 일정을 미리 알리지 않았다. 스완은 먼저 오페라 코미크의 정문 앞으로 가서 문지기들이 횃불을 들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의 심장은 뛰기 시작했다. 그는 마차 바퀴가 콩코드 광장에서 반사되는 것을 보았고, 오데트의 마차가 저 멀리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문 앞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조금 후에 그녀의 마차가 멈추었고, 문지기가 “브뤼앙 부인의 마차입니다!”라고 외쳤다. (브뤼앙 부인은 그녀가 극장에 갈 때 쓰는 이름이었다.) 오데트는 내렸고, 스완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그는 너무나 빨리 떠났다. 특히 비가 올 것 같아 ‘충실한 자들’이 더 일찍 들어갈 것 같은 날에는 더욱 그랬다. 한번은 라움 공작 부인의 집에서 늦게까지 식사를 하다가 커피를 마시기도 전에 스완이 떠나 부아의 섬에 있는 베르뒤랭 부부를 만나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라움 공작 부인이 이렇게 말했다.

“정말이지, 스완이 서른 살이나 더 먹고 방광에 문제라도 있다면 이렇게 달아나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그는 정말 사람들을 우습게 여기는 것 같아요.”

그는 콩브레에서 즐길 수 없는 봄의 매력을 적어도 백조의 섬이나 생클루에서는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데트 생각밖에 할 수 없어서 나뭇잎 냄새를 맡았는지, 달빛이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는 레스토랑 정원의 피아노에서 연주되는 소나타의 짧은 악구로 맞이받았다. 거기에 피아노가 없으면 베르뒤랭 부부는 큰 수고를 들여 위층 방이나 식당에서 피아노를 가져오게 했다. 이는 스완이 그들의 총애를 다시 받게 되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하지만 누군가를 위해, 심지어 그들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서라도 교묘한 즐거움을 마련한다는 생각은 그 준비에 필요한 시간 동안 그들 안에 일시적이고 우연한 동정심과 친절함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때때로 그는 또 하나의 봄날 저녁이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며 나무와 하늘에 주의를 기울이려고 애썼다. 하지만 오데트의 존재로 인한 동요와 얼마 전부터 그를 거의 떠나지 않는 가벼운 열병 같은 불편함 때문에 자연이 주는 인상에 필수적인 평온과 안락을 누릴 수 없었다.

어느 날 저녁 스완이 베르뒤랭 부부와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을 때, 식사 중에 다음 날 옛 친구들과의 연회가 있다고 말하자 오데트가 식탁에서, 이제는 ‘충실한 자’ 중 한 명이 된 포르슈빌과 화가, 코타르 앞에서 이렇게 대답했다.

“네, 당신에게 연회가 있다는 걸 알아요. 그러니 저는 당신을 제 집에서만 볼 수 있겠네요. 하지만 너무 늦게 오지는 마세요.”

스완은 오데트가 이런저런 남자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심각하게 질투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 앞에서 태연하게 그들과의 저녁 만남과 그녀 집에서 누리는 특별한 대접, 그리고 그가 그녀에게 특별한 존재라는 암시를 듣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스완은 오데트가 결코 뛰어난 여성이 아니라고 자주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보다 훨씬 못한 존재에게 우월함을 과시하는 것이 ‘충실한 자들’ 앞에서 드러나는 것을 그렇게 기쁘게 여길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많은 남자들이 오데트를 매력적이고 바람직한 여성으로 여기는 것을 알게 된 후로, 그들이 그녀의 몸에 느끼는 매력은 그의 마음속에 그녀를 완전히 소유하고 싶은 고통스러운 욕망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무릎에 앉아 이것저것에 대해 생각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이제 그가 세상에서 소유하고 싶은 유일한 존재가 된 그녀와 함께 보내는 저녁 시간에 엄청난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저녁 식사 후에 그는 그녀를 따로 불러 열정적으로 감사를 표했다. 그는 그녀에게 줄 수 있는 기쁨의 정도가 그의 감사 표현의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했다. 그중 최고의 기쁨은 그의 사랑이 지속되는 동안, 그리고 그 사랑이 그를 취약하게 만드는 동안 질투의 고통으로부터 그를 보호하는 것이었다.

다음날 연회에서 나왔을 때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는 빅토리아 마차밖에 없었다. 한 친구가 쿠페를 타고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오데트가 그에게 오라고 했기 때문에 그녀가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비를 맞으며 가는 대신 집에 가서 잠자리에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그녀가 그가 항상 그녀와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그가 특별히 원하는 바로 그날 저녁을 그를 위해 비워두는 것을 소홀히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11시가 지나서야 그녀의 집에 도착했고, 더 일찍 오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하자 그녀는 정말 너무 늦었다고 불평했다. 폭풍우 때문에 몸이 아프고 두통이 있다며 30분 이상 머물지 못하게 할 거라고 그에게 미리 말했다. 자정이 되면 그를 돌려보낼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피곤함을 느끼고 잠들고 싶어했다.

“그럼 오늘 밤엔 카틀레야가 없겠군요?” 그가 물었다. “난 좋은 카틀레야를 기대했는데.”

그러자 그녀는 약간 짜증 섞인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에요, 아가. 오늘 밤엔 카틀레야 없어요. 내가 아프다는 걸 보잖아요!”

“그게 당신에게 좋았을지도 모르지만, 뭐 더는 고집부리지 않겠소.”

그녀는 그에게 떠나기 전에 불을 끄라고 부탁했다. 그는 직접 침대 커튼을 닫고 떠났다. 하지만 집에 돌아왔을 때 갑자기 오데트가 어쩌면 오늘 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단지 피곤한 척했을 뿐이고, 그가 잠들 것이라고 믿게 하려고 불을 끄라고 했을 뿐이며, 그가 떠나자마자 다시 불을 켜고 그녀와 밤을 보낼 사람을 들어오게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시계를 보았다. 그녀를 떠난 지 한 시간 반 정도 지났다. 그는 다시 나가 택시를 타고 그녀의 집 근처에서 내렸다. 그의 호텔 뒤쪽에 있는 작은 길에 내렸는데, 그는 가끔 그녀의 침실 창문을 두드려 문을 열어달라고 했던 곳이었다. 택시에서 내려 그 구역은 모두 텅 비고 어두웠다. 그는 걸어서 몇 발짝 가다가 거의 그녀의 집 앞에 도착했다. 거리의 모든 창문이 오래전부터 꺼져 있는 어둠 속에서 그는 단 하나의 창문만이 빛을 내뿜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신비롭고 황금빛 과육을 셔터가 누르고 있었다. 그 빛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많은 다른 저녁들처럼 거리에 들어서자마자 멀리서 그를 기쁘게 하며 “그녀가 거기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라고 알려주던 그 빛이 이제는 “그녀가 기다리던 사람과 함께 있어요”라고 말하며 그를 고문하고 있었다. 그는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창문 쪽으로 벽을 따라 슬그머니 다가갔지만, 셔터의 비스듬한 판자 사이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는 밤의 고요 속에서 대화의 속삭임만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그는 그 빛을 보는 것에 고통을 느꼈다. 그 황금빛 분위기 속에서 보이지 않는 혐오스러운 커플이 움직이고 있었고, 그 속삭임은 그가 떠난 후에 온 사람의 존재와 오데트의 거짓말, 그녀가 지금 맛보고 있는 행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왔다는 것이 기뻤다. 집을 나오게 만든 고통은 모호함을 잃으면서 날카로움도 잃었다. 이제 오데트의 다른 삶, 그가 그 순간 갑작스럽고 무력한 의심을 품었던 그 삶을, 그는 이제 거기에서, 램프 빛에 환하게 비춰진 채, 그 방에 갇혀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가 원할 때 들어가 그녀를 놀라게 하고 붙잡을 수 있는 그곳에. 아니, 오히려 그는 늘 하던 대로 셔터를 두드릴 참이었다.

그는 아주 늦게 도착했다. 그래서 적어도 오데트는 그가 알았다는 것을, 그가 불빛을 보고 대화 소리를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가 다른 사람과 함께 자신의 환상을 비웃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는 이제 그들을 보고 있었다. 그들의 착각을 믿고, 결국 그들이 여기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그에게 속고 있는 그들을. 그는 이미 창문을 두드리러 갈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이 순간 그가 느끼는 거의 즐거운 감정은 의심과 고통의 해소 외에도 다른 것이었다. 지적인 즐거움이었다. 그가 사랑에 빠진 이후로 사물들이 그에게 예전에 느꼈던 즐거운 관심을 조금 되찾았지만, 그것은 오데트의 기억으로 밝혀진 곳에서만 그랬다. 이제 그의 질투심이 되살리는 것은 그의 학구적인 청년 시절의 또 다른 능력, 진실에 대한 열정이었다. 그러나 그 진실 역시 그와 그의 연인 사이에 끼어들어 오직 그녀에게서만 빛을 받는 진실, 오데트의 행동, 그녀의 관계, 그녀의 계획, 그녀의 과거를 유일한 대상으로 하는, 무한한 가치와 거의 이해관계 없는 아름다움을 지닌 개인적인 진실이었다. 그의 인생의 다른 어느 시기에도 한 사람의 일상적인 작은 사실들과 행동들은 항상 스완에게 가치 없어 보였다. 누군가 그에게 그런 이야기를 전해주면 그는 그것을 하찮게 여겼고, 그것을 듣는 동안에도 그의 가장 저급한 주의력만이 그것에 관심을 가졌다. 그것은 그가 자신을 가장 평범하게 느끼는 순간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 이상한 사랑의 시기에는 개인적인 것이 매우 깊은 의미를 갖게 된다. 그래서 그가 한 여자의 가장 사소한 일에 대해 느끼는 이 호기심은 그가 예전에 역사에 대해 가졌던 호기심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가 부끄러워했을 모든 것, 창문 앞에서 엿보는 것, 내일은 어쩌면 무심한 사람들을 교묘하게 말하게 하고, 하인들을 매수하고, 문에 귀를 대고 듣는 것이 이제 그에게는 텍스트를 해독하고, 증언을 비교하고, 기념물을 해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진정한 지적 가치가 있고 진실을 찾는 데 적합한 과학적 조사 방법으로 보였다.

창문을 두드리려는 순간 그는 오데트가 그가 의심을 품었다는 것을, 그가 돌아왔다는 것을, 그가 거리에 서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잠시 부끄러워졌다. 그녀는 그에게 종종 질투하는 사람들, 엿보는 연인들에 대한 혐오감을 말했었다. 그가 하려는 일은 매우 서투른 것이었고, 그녀는 이제 그를 싫어하게 될 것이다. 반면에 지금 이 순간, 그가 두드리지 않는 한, 아마도 그를 속이면서도 그를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즉각적인 즐거움에 대한 욕구로 인해 얼마나 많은 가능한 행복을 희생하는지! 그러나 진실을 알고 싶은 욕망이 더 강했고 그에게는 더 고귀해 보였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정확히 복원하고 싶었던 상황의 현실이 이 줄무늬 빛의 창문 뒤에서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치 그것을 참조하는 학자가 무관심할 수 없는 예술적 풍요로움을 지닌 귀중한 필사본 중 하나의 금빛으로 장식된 표지 아래에서처럼. 그는 이 유일무이하고 덧없고 귀중한 예시에서 자신을 열광시키는 진실을 알게 되는 쾌감을 느꼈다. 그 예시는 반투명한 물질로 되어 있고, 너무나 따뜻하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가 그들에 대해 느끼는 우위—그가 절실히 필요로 했던 우위—는 아마도 아는 것보다는 그가 안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데 있었다.

그는 발끝으로 올라섰다. 그는 두드렸다. 아무도 듣지 못했다. 그는 더 세게 두드렸고, 대화가 멈췄다. 그가 아는 오데트의 친구들 중 누구의 것인지 구별하려고 노력한 남자의 목소리가 물었다.

“누구십니까?”

그는 그 목소리를 확실히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다시 한 번 두드렸다. 창문이 열리고, 그 다음 셔터가 열렸다. 이제 물러설 수 없었고, 그녀가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기에, 너무 불행해 보이거나 질투심 많고 호기심 많아 보이지 않기 위해 그는 무심하고 즐거운 목소리로 외쳤다.

“방해하지 마세요. 지나가다가 불빛을 보고 당신이 아직 아프지 않은지 알고 싶었어요.”

그는 보았다. 그의 앞에 두 노신사가 창가에 있었고, 한 사람이 램프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방을 보았다. 낯선 방이었다. 그는 오데트의 집에 아주 늦게 올 때면 그녀의 창문이 똑같은 창문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밝혀져 있는 것을 알아보는 습관이 있었는데, 잘못 알아보고 옆집의 창문을 두드린 것이었다. 그는 사과하며 물러나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의 호기심의 만족이 그들의 사랑을 온전하게 남겨두어 행복했다. 오랫동안 오데트에 대해 일종의 무관심을 가장한 후에, 그는 질투심으로 그녀를 너무 사랑한다는 증거를 그녀에게 주지 않았다. 그런 증거는 두 연인 사이에서 그것을 받는 사람이 충분히 사랑할 필요를 영원히 면제해준다. 그는 이 해프닝에 대해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고, 그 자신도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끔 그의 생각의 움직임이 그가 알아차리지 못한 기억과 마주치면, 그것을 밀어내고 더 깊이 파고들었고 스완은 갑작스럽고 깊은 고통을 느꼈다. 마치 그것이 육체적 고통이었던 것처럼, 스완의 생각들은 그것을 줄일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육체적 고통은 생각과 독립적이기 때문에, 생각은 그것에 멈춰 서서 그것이 줄어들었다는 것, 일시적으로 멈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고통은, 생각은 단지 그것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다시 만들어냈다. 그것을 생각하지 않으려는 것은 여전히 그것을 생각하는 것이었고, 여전히 그것으로 고통받는 것이었다. 그리고 친구들과 대화하며 그의 고통을 잊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에게 한 말이 그의 표정을 바꾸게 했다. 마치 부주의한 사람이 조심성 없이 아픈 부위를 건드린 부상자처럼. 그가 오데트를 떠날 때, 그는 행복했고 평온함을 느꼈다. 그는 그녀가 지었던 미소들을 떠올렸다. 다른 사람에 대해 말할 때는 조롱하는 듯한,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다정한 미소를. 그녀가 축을 벗어나 그의 입술 쪽으로 기울이고, 떨어뜨리고, 거의 본능적으로 했던 것처럼 보이는 그녀의 머리의 무게감을. 마치 그녀가 마차에서 처음 했던 것처럼. 그의 팔에 안겨 있는 동안 어깨에 오슬오슬 머리를 기울인 채 그에게 던졌던 힘없는 눈빛들.

그러나 곧 그의 질투심은 마치 사랑의 그림자처럼, 그녀가 그날 저녁 그에게 보낸 새로운 미소의 이중적인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이제 그 미소는 스완을 비웃는 듯했고,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머리를 기울였지만, 이번에는 다른 입술을 향해,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그에게 보여주었던 모든 애정의 표시들을 보였다. 그가 그녀의 집에서 가져온 모든 관능적인 기억들은 마치 장식가가 제출하는 ‘프로젝트’와 같은 스케치들이었고, 스완은 그것들을 통해 그녀가 다른 사람들과 가질 수 있는 열정적이거나 황홀한 자세들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그 결과 그는 그녀와 함께 즐기는 각각의 즐거움, 그녀에게 그 달콤함을 지적하는 경솔함을 보인 각각의 고안된 애무, 그녀에게서 발견하는 각각의 우아함을 후회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는 잠시 후 그것들이 새로운 도구들로 그의 고문을 풍부하게 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고문은 스완에게 며칠 전에 그가 포착한 짧은 시선의 기억이 떠오를 때 더욱 잔인해졌다.

오데트의 눈에서 처음으로 며칠 동안 보았다. 베르뒤랭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한 후였다. 포르슈빌이 자신의 매형인 사니에트가 그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고 느꼈든, 아니면 그가 방금 자신에게 한 서투른 말에 화가 났든, 혹은 그 말이 참석자들에게는 알아차리지 못한 불쾌한 암시를 담고 있었든, 아니면 그가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을 너무 잘 아는 사람을 집에서 내보내려고 기회를 찾고 있었든 간에, 포르슈빌은 사니에트의 서투른 말에 대해 극도로 무례하게 대답했다. 그는 사니에트를 모욕하기 시작했고, 고함을 지르면서 점점 더 담대해졌다. 상대방의 공포와 고통, 애원에 고무되어 불쌍한 사니에트는 베르뒤랭 부인에게 남아도 되는지 물었지만 대답을 듣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이며 중얼거리며 물러났다. 오데트는 이 장면을 무심히 지켜보았다. 하지만 사니에트가 문을 닫고 나가자, 그녀는 평소의 표정을 몇 단계 낮추어 포르슈빌과 같은 저급한 수준에 맞췄다. 그녀는 눈동자에 교활한 미소를 띠며 그의 대담함을 칭찬하고 피해자를 조롱했다. 그녀는 포르슈빌에게 악의에 찬 공모의 눈길을 보냈다. 그 눈빛은 “이건 정말 처형이군요. 아니면 내가 모르는 게 있나봐요. 그의 풀이 죽은 모습 보셨어요? 울고 있었어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포르슈빌은 그 눈빛을 마주치자 갑자기 화가 가라앉았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가 예의 바르게 굴었다면 아직도 여기 있었을 거예요. 어느 나이에나 좋은 훈계는 도움이 되죠.”

스완이 어느 날 오후에 방문차 외출했다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찾지 못하자, 오데트의 집에 들르기로 했다. 그는 평소에는 그 시간에 그녀의 집에 가지 않았지만, 그녀가 항상 집에서 낮잠을 자거나 차 시간 전에 편지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방해하지 않고 잠깐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지기는 그녀가 집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벨을 눌렀고,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발자국 소리도 들렸지만 아무도 문을 열지 않았다. 불안하고 짜증이 난 그는 호텔의 다른 쪽 면이 있는 작은 길로 가서 오데트의 방 창문 앞에 섰다. 커튼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는 세게 창문을 두드리고 불렀지만 아무도 열지 않았다. 이웃들이 그를 쳐다보는 것을 보고 그는 떠났다. 결국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너무 신경이 쓰여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한 시간 후 그는 돌아왔다. 그녀를 찾았다. 그녀는 그가 벨을 눌렀을 때 집에 있었지만 잠을 자고 있었다고 말했다. 벨 소리에 깨어나 스완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를 쫓아갔지만 이미 떠난 뒤였다고 했다. 그녀는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도 들었다고 했다. 스완은 즉시 이 말이 거짓말쟁이들이 궁지에 몰렸을 때 위안으로 삼는 사실의 파편 중 하나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이를 자신들이 지어내는 거짓 사실에 포함시켜 진실과의 유사성을 빼앗으려고 한다.

오데트가 숨기고 싶은 일을 한 경우, 그녀는 그것을 마음 깊숙이 간직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고 싶은 상대방 앞에 서면 혼란스러워졌다. 그녀의 모든 생각이 무너지고, 발명력과 추론 능력이 마비되어 머릿속이 텅 비었다. 그래도 뭔가 말해야 했고, 그녀는 바로 숨기고 싶었던 것을 발견했다. 그것이 진실이었기 때문에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중 작은 조각을 떼어내 그 자체로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것이 진실의 세부사항이었기 때문에 거짓 세부사항보다 덜 위험하다고 여겼다. “적어도 이건 사실이야,”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만큼은 얻은 거야. 그가 확인해 봐도 사실이라는 걸 알 거야. 적어도 이것 때문에 들통나진 않을 거야.” 그녀는 틀렸다. 바로 그것이 그녀를 배신했다. 그녀는 이 진실의 세부사항이 원래 속해 있던 진실한 사실의 인접한 세부사항들과만 맞물릴 수 있는 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녀가 임의로 분리해 낸 이 세부사항은, 그녀가 그 사이에 배치하는 어떤 꾸며낸 세부사항들 사이에서도, 넘치는 부분과 채워지지 않은 빈 공간으로 인해 그것이 그들 사이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항상 드러낼 것이다.

“그녀는 내가 벨을 누르고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고 인정하고, 나라고 생각했으며 나를 보고 싶어 했다고 말한다,”라고 스완은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문을 열지 않았다는 사실과 맞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이 모순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는 오데트가 혼자 있으면 어쩌면 진실의 작은 단서가 될 수 있는 거짓말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말을 계속했고, 그는 그녀를 방해하지 않았다. 그는 경건하고 고통스러운 열정으로 그녀가 하는 말을 수집했다. 그는 그녀가 말하는 동안 그 말들 뒤에 숨기고 있는 것을 (바로 그렇기 때문에) 희미하게나마 신성한 베일처럼 간직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3시경 그가 왔을 때 그녀가 하고 있던 일이라는, 무한히 귀중하지만 아아, 찾을 수 없는 현실의 불확실한 윤곽을 그리고 있었다. 그는 결코 그 현실을 소유하지 못할 것이다. 오직 이 거짓말들, 읽을 수 없는 신성한 흔적들만을 가질 뿐이었다. 그 현실은 이제 그것을 바라보면서도 그 가치를 알지 못하는 이 존재의 기억 속에만 존재했고, 그녀는 결코 그에게 그것을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는 가끔 오데트의 일상적인 행동들이 그 자체로는 열정적으로 흥미롭지 않다는 것을 의심했다. 그녀가 다른 남자들과 가질 수 있는 관계가 모든 사고하는 존재에게 자연스럽게 자살할 만큼의 병적인 슬픔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이 관심, 이 슬픔이 오직 그의 내면에만 존재하는 병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병이 치유되면 오데트의 행동들, 그녀가 줄 수 있었던 키스들이 다른 많은 여자들의 것처럼 무해해질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스완이 지금 느끼는 고통스러운 호기심이 오직 그 자신에게서 비롯된다는 사실이, 그가 이 호기심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을 만족시키기 위해 모든 것을 동원하는 것을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게 하지는 않았다. 스완은 이제 젊음의 철학이 아닌, 긍정적이고 거의 의학적인 철학을 가진 나이에 도달했다. 이는 그가 오랫동안 살았던 환경, 즉 라움 공주의 사교계의 철학에 의해 촉진되었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만큼 지적이라고 여겼고, 각자의 취향 외에는 실제적이고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나이의 사람들은 자신의 열망의 대상을 외부로 표출하는 대신, 이미 지나간 세월에서 습관과 열정의 고정된 잔재를 추출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이를 자신의 특징적이고 영구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의도적으로 자신이 선택한 삶의 방식이 이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스완은 자신의 삶에서 고통의 몫을 만드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오데트가 무엇을 했는지 모르는 것에 느끼는 고통과 습한 날씨가 그의 습진을 악화시키는 정도를 비교했다. 그는 예산에 상당한 금액을 배정했는데, 이는 오데트의 일과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 정보 없이는 불행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는 마치 그가 사랑에 빠지기 전에 즐겼던 다른 취미들, 예를 들어 수집이나 맛있는 요리를 위해 돈을 따로 떼어 놓는 것과 같았다.

그가 오데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가려 할 때, 그녀는 그에게 좀 더 머물러 달라고 요청했다. 그가 문을 열어 나가려는 순간 그의 팔을 세게 잡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이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대화를 채우는 수많은 몸짓, 말, 사소한 사건들 속에서 우리의 의심이 우연히 찾고 있는 진실을 숨기고 있는 것들을 주목하지 않고 지나치는 것은 불가피하며,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것들에 주목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 “오후에는 한 번도 오지 않던 네가 오늘 왔는데 못 만난 게 너무 안타까워.” 그는 그녀가 자신을 그렇게 사랑하지 않아서 그의 방문을 놓친 것에 대해 그토록 강한 후회를 느끼지는 않을 것이라고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친절하고, 그를 기쁘게 해주려 노력하며, 그를 화나게 했을 때 종종 슬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번에도 그녀가 그와 함께 한 시간을 보내는 즐거움을 놓쳤다는 것에 대해 슬퍼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는 그녀가 아닌 그에게 매우 큰 즐거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기에, 그녀가 계속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그를 놀라게 했다. 그녀는 평소보다 더 ‘봄’의 화가가 그린 여인들을 연상시켰다. 그녀는 지금 그들의 낙담하고 비통한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이는 마치 아기 예수가 석류를 가지고 노는 것을 보거나 모세가 물동이에 물을 붓는 것을 볼 때 너무 무거운 고통의 무게에 짓눌린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전에 한 번 그녀에게서 이런 슬픔을 본 적이 있었지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리고 갑자기 그는 기억해냈다. 그것은 오데트가 베르뒤랭 부인에게 거짓말을 했을 때였다. 그녀는 아픈 척하며 스완과 함께 있기 위해 저녁 식사에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물론 그녀가 가장 양심적인 여자였다 해도 이런 무해한 거짓말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데트가 일상적으로 하는 거짓말들은 그보다 덜 무해했고,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 끔찍한 어려움을 겪지 않기 위해 발견되는 것을 막는 데 사용되었다. 그래서 그녀가 거짓말을 할 때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자신을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성공을 확신하지 못한 채 울고 싶어 했다. 이는 마치 잠을 자지 못한 아이들처럼 피곤해서였다. 또한 그녀는 자신의 거짓말이 보통 그것을 듣는 남자에게 심각한 해를 끼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만약 거짓말을 잘못하면 그 남자의 손아귀에 떨어질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 남자 앞에서 겸손하고 죄책감을 느꼈다. 그리고 사소하고 세속적인 거짓말을 해야 할 때도, 감각과 기억의 연상 작용으로 인해 과로의 불편함과 악행에 대한 후회를 느꼈다.

스완은 그녀가 어떤 우울한 거짓말을 하고 있기에 저렇게 고통스러운 표정과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로 자신에게 강요하는 노력에 굴복하는 것 같은지 궁금해졌다. 그는 그녀가 오후의 사건에 대한 진실뿐만 아니라 더 현재의,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곧 일어날 수도 있는 무언가를 숨기려 하고 있으며, 이것이 그 진실을 밝혀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 그는 초인종 소리를 들었다. 오데트는 계속해서 말했지만, 그녀의 말은 이제 신음소리에 불과했다. 그녀가 오후에 스완을 보지 못하고 문을 열어주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이제 진정한 절망이 되어 있었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와 차가 떠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오데트가 외출했다고 말했던, 스완이 만나서는 안 되는 사람이 떠나는 것 같았다. 그는 평소와 다른 시간에 방문함으로써 그녀가 알리고 싶지 않았던 많은 일들을 방해했다는 것을 깨닫고 낙담과 거의 절망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오데트를 사랑했고, 모든 생각을 그녀에게 집중하는 습관이 있었기에, 자신에게 느꼈을 법한 연민을 그녀를 위해 느꼈고 “불쌍한 여자야!”라고 중얼거렸다. 그가 그녀와 헤어질 때, 그녀는 탁자 위에 있던 여러 통의 편지를 집어 들고 그에게 우체통에 넣어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그 편지들을 가지고 갔고, 집에 돌아와서야 자신이 그것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우체통까지 돌아가 주머니에서 편지들을 꺼내 우체통에 넣기 전에 주소들을 살펴보았다. 모두 공급업자들에게 보내는 것이었고, 단 한 통만 포르슈빌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그는 그 편지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이 안에 뭐가 있는지 본다면, 그녀가 그를 어떻게 부르고, 어떻게 말하는지, 그들 사이에 뭔가가 있는지 알 수 있을 텐데. 아마도 이 편지를 보지 않는 것이 오데트에 대한 무례일 수도 있어. 이것이 그녀에 대한 의심, 아마도 그녀를 비방하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텐데, 그 의심은 편지가 보내지고 나면 더 이상 없앨 수 없을 거야.’

그는 우체국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지만, 마지막 편지는 아직도 손에 들고 있었다. 촛불을 켜고, 열어보지 않은 봉투를 가까이 가져갔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지만, 봉투가 얇아서 안의 단단한 카드가 비쳐 보였다. 마지막 몇 단어를 읽을 수 있었다. 매우 차가운 인사말이었다. 만약 포르슈빌이 스완에게 보낸 편지를 읽었다면, 훨씬 더 다정한 말을 보았을 것이다! 그는 봉투보다 작은 카드를 엄지손가락으로 밀어 여러 줄을 차례로 봉투의 안감이 없는 부분, 즉 읽을 수 있는 유일한 부분 아래로 가져갔다.

그래도 잘 구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본 것만으로도 이것이 사랑의 관계와는 전혀 관련 없는 사소한 사건에 관한 것이며, 오데트의 삼촌과 관련된 무언가라는 것을 알았다. 스완은 줄의 시작 부분에서 “나는 옳았다”라고 읽었지만, 오데트가 무엇을 옳게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 갑자기 처음에는 해독하지 못했던 단어가 나타나 문장 전체의 의미를 밝혀주었다. “나는 문을 열어준 것이 옳았어요, 그건 내 삼촌이었어요.” 문을 열어준 것! 그렇다면 포르슈빌이 스완이 초인종을 눌렀을 때 거기 있었고, 그녀가 그를 보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들었던 소리였다.

그러고 나서 그는 편지 전체를 읽었다. 마지막에 그녀는 그에게 그렇게 격식 없이 대한 것에 대해 사과하며 그가 담배를 그녀의 집에 두고 갔다고 말했다. 이는 스완이 처음 그녀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녀가 썼던 것과 같은 문구였다. 하지만 스완에게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당신이 당신의 마음을 여기 두고 갔다면 좋겠어요. 그랬다면 돌려주지 않았을 거예요.” 포르슈빌에게는 그런 말이 없었다. 그들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고 추측할 만한 암시도 없었다. 사실, 포르슈빌이 이 모든 일에서 더 속고 있었다. 오데트는 그에게 방문자가 삼촌이었다고 믿게 하려고 편지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오데트는 스완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는 우체통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직도 그 마지막 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촛불을 켜고 감히 열어보지 못한 봉투를 가까이 가져갔다.

결국 그는 스완이었다. 오데트가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자, 그녀가 다른 사람을 내보내기 위해 선택한 남자였다. 하지만 오데트와 포르슈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면, 왜 그녀는 문을 바로 열지 않고 “문을 열어서 다행이에요. 삼촌이었거든요.”라고 말했을까? 그 순간 그녀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면, 포르슈빌은 그녀가 문을 열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스완은 오데트가 아무 걱정 없이 건넨 그 봉투 앞에서 슬프고 혼란스러웠지만 동시에 행복했다. 그녀가 그의 신중함을 절대적으로 신뢰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투명한 유리를 통해 그는 알 수 없었던 사건의 비밀과 함께 오데트의 삶의 일부를 엿볼 수 있었다. 마치 미지의 세계에서 잘라낸 작은 빛의 단면처럼 말이다. 그의 질투심은 이를 기뻐했다. 마치 이 질투심이 독립적인 생명력을 지닌 것처럼,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게 자신을 먹여 살릴 모든 것을 원했다. 설사 그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말이다. 이제 그것은 양식을 얻었고, 스완은 오데트가 오후 5시경에 받은 방문들에 대해 매일 걱정하기 시작할 수 있었다. 그 시간에 포르슈빌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아내려 노력할 수 있었다. 스완의 애정은 처음부터 오데트의 일상에 대한 무지와 그 무지를 상상력으로 보완하지 못하게 하는 정신적 게으름이 새겨준 특성을 계속 지니고 있었다. 그는 처음에는 오데트의 모든 삶에 대해 질투하지 않았다. 단지 어떤 상황이, 아마도 잘못 해석된 상황이 오데트가 그를 배신했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 순간들에 대해서만 질투했다. 그의 질투심은 문어가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발을 뻗는 것처럼 오후 5시라는 그 순간에 단단히 붙었다가 다른 순간으로, 또 다른 순간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스완은 자신의 고통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것은 단지 밖에서 온 고통의 기억, 영속화일 뿐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모든 것이 그에게 고통을 가져왔다. 그는 오데트를 포르슈빌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며칠 동안 남쪽으로 데려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는 호텔에 있는 모든 남자들이 그녀를 욕망한다고 믿었고, 그녀 역시 그들을 욕망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전에는 여행을 가면 새로운 사람들과 많은 모임을 찾아다녔던 그가 이제는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사회가 그를 잔인하게 상처 입힌 것처럼 말이다. 모든 남자에게서 오데트의 잠재적 연인을 보는 그가 어찌 인간 혐오자가 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그의 질투심은 처음에 오데트에 대해 가졌던 관능적이고 즐거운 취향보다 더 스완의 성격을 변화시켰다. 그의 성격이 표출되는 외적 징후들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의 눈에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오데트가 포르슈빌에게 보낸 편지를 읽은 지 한 달 후, 스완은 베르뒤랭 부부가 불로뉴 숲에서 여는 저녁 식사에 갔다. 사람들이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그는 베르뒤랭 부인과 여러 초대객들 사이의 은밀한 대화를 눈치챘다. 그는 그들이 피아니스트에게 내일 샤투에서 열리는 모임에 오라고 상기시키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스완은 초대받지 않았다.

베르뒤랭 부부는 작은 목소리로 모호하게 말했지만, 화가는 아마도 정신이 산만해서 소리쳤다.

“불을 전혀 켜지 말고 어둠 속에서 ‘월광 소나타’를 연주하게 해서 사물들이 밝아지는 걸 더 잘 보게 해야 해요.”

베르뒤랭 부인은 스완이 두어 걸음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말하는 사람을 조용히 시키고 듣는 사람 앞에서 순진한 척하려는 욕구가 강렬한 무표정함 속에서 중화되는 표정을 지었다. 거기에는 공모자의 움직이지 않는 지적인 표시가 순진한 사람의 미소 아래 숨겨져 있었다. 결국 이 표정은 실수를 한 사람들에게는 아니더라도 실수의 대상이 된 사람에게는 즉시 그 실수를 드러내는, 실수를 알아차린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된 표정이었다. 오데트는 갑자기 삶의 압도적인 어려움에 맞서 싸우기를 포기한 절망적인 모습을 지었다. 스완은 이 레스토랑을 떠난 후 그녀와 함께 돌아가는 동안 설명을 요구하고, 그녀가 내일 샤투에 가지 않도록 하거나 자신을 초대하게 하여 그의 품에서 그가 느끼는 불안을 달래줄 수 있는 순간까지 초조하게 시간을 세고 있었다. 마침내 그들은 차를 요청했다. 베르뒤랭 부인이 스완에게 말했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곧 만나요, 그렇죠?” 그녀는 지금까지 항상 했던 것처럼 “내일 샤투에서 만나요, 모레는 우리 집에서 봐요.”라고 말하지 않으려고 친절한 눈빛과 억지 미소로 노력하고 있었다.

베르뒤랭 부부는 포르슈빌을 자신들의 차에 태웠다. 스완의 차는 그들의 차 뒤에 서 있었고, 그는 오데트를 자신의 차에 태우기 위해 그들이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데트, 우리가 데려다줄게. 포르슈빌 씨 옆에 자리가 있어.” 베르뒤랭 부인이 말했다.

“네, 부인.” 오데트가 대답했다.

“어떻게 된 거죠? 제가 데려다주기로 했잖아요.” 스완은 숨김없이 말했다. 차 문은 열려 있었고,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그는 그녀 없이 돌아갈 수 없었다.

“하지만 베르뒤랭 부인이 부탁하셨어요…”

“자, 당신 혼자 돌아갈 수 있잖아요. 우리가 충분히 자주 그렇게 했잖아요.” 베르뒤랭 부인이 말했다.

“하지만 부인께 중요한 말씀을 드려야 해서요.”

“글쎄요, 그걸 편지로 쓰세요…”

“안녕히 가세요.” 오데트가 그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는 미소 짓기를 시도했지만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스완이 우리에게 허락하는 태도 봤어?” 그들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베르뒤랭 부인이 남편에게 말했다. “내가 오데트를 데려다준다고 하니까 그가 나를 잡아먹을 것 같았어. 정말 무례하더라고. 그럼 우리가 매춘굴이라도 운영하는 줄 아나 봐! 오데트가 어떻게 저런 태도를 참는지 모르겠어. 그는 완전히 ‘당신은 내 소유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 나는 오데트에게 내 생각을 말할 거야. 그녀가 이해하길 바라.”

그리고 그녀는 잠시 후 화를 내며 덧붙였다.

“아니, 저 더러운 짐승 좀 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아마도 콩브레에서 프랑수아즈가 닭이 죽지 않으려고 할 때 했던 것처럼, 농부가 죽어가는 무해한 동물을 짓밟을 때 그 동물의 마지막 몸부림이 끌어내는 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베르뒤랭 부인의 차가 떠나고 스완의 차가 앞으로 나왔을 때, 그의 마부는 그를 바라보며 그가 아프거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스완은 그를 돌려보냈다. 그는 걸어서 돌아가고 싶었고, 불로뉴 숲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혼자 큰 소리로 말했다. 그동안 작은 모임의 매력을 열거하고 베르뒤랭 부부의 관대함을 칭찬할 때 사용했던 것과 같은 약간 가식적인 어조였다. 하지만 오데트의 말, 미소, 키스가 다른 사람에게 향한다면 그에게 달콤했던 만큼이나 혐오스럽게 되는 것처럼, 베르뒤랭의 살롱도 이제 오데트가 그를 만나러 가는 곳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자유롭게 사랑하러 가는 곳이 되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재미있고 진정한 예술적 취향과 일종의 도덕적 고귀함을 지닌 것처럼 보였던 그곳이 이제는 그 우스꽝스러움, 어리석음, 추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샤투에서 다음 날 저녁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혐오감을 느꼈다.

“우선 샤투에 간다는 생각부터가! 가게 문을 막 닫은 소매상처럼! 정말 이 사람들은 부르주아적인 면에서 최고다. 그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라비슈의 연극에서 나온 것 같다!”

코타르 부부가 거기 있을 것이고, 아마도 브리쇼도 있을 것이다. “이런 소인배들의 삶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서로의 등을 긁어주며 살다가 내일 샤투에서 다시 만나지 못하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여길 테지!” 슬프게도 그 화가도 있을 것이다. ‘결혼 주선’을 즐기는 화가 말이다. 그는 포르슈빌에게 오데트를 데리고 자신의 아틀리에에 오라고 초대할 것이다. 그는 오데트가 시골 소풍에 맞지 않는 옷차림을 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녀는 정말 속물이고, 더구나 불쌍한 것, 그녀는 너무나 바보 같아!!!”

그는 베르뒤랭 부인이 저녁 식사 후에 할 농담들을 들었다. 그 농담들은 누구를 대상으로 하든 간에 항상 그를 즐겁게 했었다. 오데트가 웃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오데트가 그와 함께, 거의 그의 품 안에서 웃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 그는 오데트가 아마도 자신을 비웃게 될 것이라고 느꼈다. “얼마나 역겨운 유쾌함인가!” 그는 입술을 꽉 다물며 혐오감을 강하게 표현했다. 셔츠 칼라에 목을 비틀어 넣으며 그 찡그림의 근육 감각을 느꼈다. “어떻게 신의 형상을 한 얼굴을 가진 생명체가 이런 구역질 나는 농담거리를 웃을 수 있단 말인가? 조금이라도 섬세한 코라면 공포에 질려 돌아설 것이다. 그런 악취에 움츠러들지 않으려고 말이다. 인간이 자신에게 충실하게 손을 내밀었던 동료에 대해 미소를 짓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세상의 어떤 선의로도 그를 끌어올릴 수 없는 진흙탕으로 자신을 떨어뜨린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런 더러운 험담이 철벅거리고 짖어대는 저지대 위로 너무나 많은 미터의 고도에 살고 있어서 베르뒤랭의 농담으로 튀어오른 진흙이 나에게 튈 수 없다.”라고 그는 고개를 들고 몸을 뒤로 꼿꼿이 세우며 소리쳤다. “신은 내가 오데트를 그곳에서 빼내어 더 고귀하고 순수한 분위기로 끌어올리려고 진심으로 노력했다는 것을 알고 계신다. 하지만 인간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고, 내 인내심은 바닥났다.”라고 그는 말했다. 마치 오데트를 비웃음의 분위기에서 구해내려는 이 사명이 몇 분 전부터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시작된 것처럼, 그리고 그가 그 비웃음이 자신을 겨냥한 것일지도 모르며 오데트를 자신에게서 떼어놓으려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에 스스로에게 부여한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는 피아니스트가 ‘월광 소나타’를 연주할 준비를 하고, 베르뒤랭 부인이 베토벤 음악이 자신의 신경을 해칠 것이라며 겁먹은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보았다. “바보 같은 거짓말쟁이!” 그는 소리쳤다. “그리고 저것이 예술을 사랑한다고 믿는다!” 그녀는 포르슈빌에 대해 교묘하게 몇 마디 칭찬의 말을 넌지시 했던 것처럼, 오데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포르슈빌 씨 옆에 자리를 만들어 드려야겠어요.” “어둠 속에서! 포주 같으니, 중매쟁이 같으니!” “중매쟁이”, 이것은 그가 음악에도 붙인 이름이었다. 음악은 그들에게 침묵하고, 함께 꿈꾸고, 서로를 바라보고, 손을 잡도록 초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플라톤, 보쉬에, 그리고 옛 프랑스 교육의 예술에 대한 엄격함에서 좋은 점을 발견했다.

결국 베르뒤랭 집에서의 삶, 그가 종종 “진정한 삶”이라고 불렀던 것이 이제 그에게는 모든 삶 중 최악으로 보였다. 그들의 작은 그룹은 모든 환경 중 가장 저급한 것으로 보였다. “이것은 정말,” 그는 말했다. “사회적 계층의 가장 밑바닥이야, 단테의 마지막 원이지. 의심할 여지없이 그 위대한 본문은 베르뒤랭을 가리키고 있어! 결국, 사교계 사람들은 비난받을 수 있지만, 그래도 이런 불량배 무리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지. 그들은 이런 사람들을 알기를 거부하고 손끝 하나 더럽히지 않으려는 심오한 지혜를 보여주지. 생제르맹 구역의 이 ‘날 만지지 마라’에는 얼마나 신성한 예지가 있는가.” 그는 오래전에 불로뉴 숲의 산책로를 떠났고, 거의 집에 도착했지만, 아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의 거짓된 억양과 인위적인 음색이 그에게 순간순간 더욱 풍부하게 취기를 부어주는 부진실의 열기 속에서, 그는 밤의 적막 속에서 계속해서 혼잣말을 했다. “사교계 사람들에게는 결점이 있고, 그 누구보다도 내가 그것을 잘 알지만, 그래도 그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는 사람들이야. 내가 알았던 어떤 우아한 여인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녀에게는 어떤 섬세함의 기초, 행동의 충실함이 있었어. 그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를 배신할 수 없게 만들었고, 그녀와 베르뒤랭 같은 악녀 사이에 심연을 만들기에 충분했지. 베르뒤랭! 이름 참 잘 지었어! 그들이 완벽하고 자기 방식대로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어!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런 추악함, 이런 쓰레기와의 교제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때가 되었어.”

자신의 목소리의 모든 음역을 내려가는 음계를 따라 질서정연하게 자신의 깊은 곳까지 접었다. 그리고 베르뒤랭 집에서는 더 이상 스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때 스완과 오데트를 한데 모았던 그 살롱은 이제 그들의 만남에 장애물이 되었다. 그녀는 더 이상 그들의 사랑 초기처럼 “우리 내일 저녁에 어쨌든 만날 수 있어요, 베르뒤랭 집에서 저녁 식사가 있거든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우리 내일 저녁에는 만날 수 없어요, 베르뒤랭 집에서 저녁 식사가 있거든요.”라고 말했다. 아니면 베르뒤랭 부부가 그녀를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 데려가 ‘클레오파트라의 밤’을 보러 가야 했고, 스완은 오데트의 눈에서 자신이 가지 말라고 요구할까 봐 두려워하는 공포를 읽었다. 예전에는 그 공포를 애인의 얼굴에서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고 키스했겠지만, 지금은 그것이 그를 격분시켰다.

“내가 느끼는 것은 분노가 아니야,”라고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녀가 이 똥같은 음악을 주워 먹으러 가고 싶어 하는 것을 보고. 그건 슬픔이야, 물론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를 위해서지. 나와 매일 접촉하며 6개월 이상을 살았는데도 빅토르 마세를 자발적으로 제거할 만큼 다른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 슬픈 거야! 특히 약간 섬세한 본질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군가 요청했을 때 즐거움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게 슬프지. 그녀는 ‘가지 않겠어요’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해, 단지 지성 때문이라도. 왜냐하면 그녀의 대답에 따라 그녀의 영혼의 질을 영원히 분류할 테니까.” 그리고 그날 밤 그녀가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 가는 대신 자신과 함께 있기를 바라는 것은 단지 오데트의 정신적 가치에 대해 더 호의적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는 자신에게 했던 것과 같은 논리로, 같은 정도의 불성실함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그리고 심지어 더 나아가, 그때는 그녀의 자존심을 자극하려는 욕구에도 따랐다.

“맹세하지만,” 그는 그녀가 극장에 떠나기 몇 분 전에 말했다. “네게 외출하지 말라고 부탁하면서, 내가 이기적이라면 내 모든 소원은 네가 거절하는 것일 거야. 왜냐하면 오늘 밤 할 일이 천 가지나 있거든. 그리고 만약 예상 외로 네가 가지 않겠다고 대답한다면 나 자신이 함정에 빠져 매우 곤란해질 거야. 하지만 내 일, 내 즐거움이 전부는 아니야. 너를 생각해야 해. 언젠가 내가 너와 영원히 멀어진 것을 보고 네가 나를 비난할 권리가 있을 날이 올 수 있어. 내가 너에 대해 사랑이 오래 견디지 못하는 그런 엄격한 판단을 내리고 있다고 느끼는 결정적인 순간에 너에게 경고하지 않았다고 말이야. 봐, ‘클레오파트라의 밤'(이게 무슨 제목이야!)은 이 상황에서 아무것도 아니야. 알아야 할 것은 네가 정말로 정신과 매력의 최하위에 있는 그런 존재인지,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는 경멸할 만한 존재인지야. 만약 네가 그렇다면, 어떻게 너를 사랑할 수 있겠어? 너는 심지어 한 사람도 아니야, 정의된 피조물도 아니고, 불완전하지만 적어도 개선 가능한 존재도 아니야. 너는 제공된 경사를 따라 흐르는 무형의 물이야, 기억도 성찰도 없는 물고기야. 살아있는 동안 수족관에서 하루에 백 번씩 유리에 부딪히면서도 계속 물이라고 생각할 거야. 네 대답이 내가 즉시 너를 사랑하기를 그만둘 거라고 말하는 건 아니야, 물론 그렇지. 하지만 내 눈에 덜 매력적으로 만들 거야. 네가 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모든 것들보다 아래에 있고 어떤 것 위에도 설 줄 모른다는 걸 이해할 때 말이야. 분명히 나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클레오파트라의 밤’을 포기하라고 요청하고 싶었어 (네가 나로 하여금 이 혐오스러운 이름으로 입을 더럽히게 하니까). 네가 그래도 갈 거라는 희망으로 말이야. 하지만 네 대답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고, 그런 결과를 끌어내기로 결심했기에, 너에게 미리 경고하는 것이 더 정직하다고 생각했어.”

오데트는 한동안 감정과 불확실성의 징후를 보였다. 이 연설의 의미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것이 흔한 종류의 ‘설교’와 비난이나 간청의 장면에 속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남자들에 대한 그녀의 경험으로 볼 때, 단어의 세부 사항에 집중하지 않고도 그들이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고, 사랑에 빠졌다면 그들에게 복종하는 것이 무의미하며, 그 후에 더 사랑받을 것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큰 평온함으로 스완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있다는 것을 보고, 그가 조금만 더 말한다면 그녀가 부드럽고, 고집스럽고, 혼란스러운 미소로 말했듯이 “서곡을 놓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른 때라면 그녀가 거짓말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그를 사랑하지 않게 만들었을 것이다. “단순히 매력의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그는 말했다. “거짓말을 하면서 얼마나 매력을 잃는지 모르겠어? 한 번의 고백으로 얼마나 많은 잘못을 만회할 수 있는지! 정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덜 영리해!” 하지만 스완이 그녀에게 거짓말하지 말아야 할 모든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헛수고였다. 그 이유들은 오데트에게 거짓말의 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데트는 그런 체계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스완이 자신이 한 일을 모르기를 바랄 때마다 그에게 말하지 않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래서 거짓말은 그녀에게 특정한 상황에 따라 사용하는 도구였다. 그리고 그녀가 거짓말을 할지 아니면 진실을 고백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스완이 그녀의 거짓말을 알아챌 가능성이 얼마나 큰지에 달려 있었다.

육체적으로 그녀는 좋지 않은 시기를 겪고 있었다. 그녀는 살이 쪘다. 그리고 그녀가 예전에 지녔던 표현력 있고 슬픈 매력, 놀란 듯하고 꿈꾸는 듯한 눈빛은 그녀의 첫 번째 젊음과 함께 사라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가 스완에게 그토록 소중해진 것은, 말하자면 그가 그녀를 훨씬 덜 예쁘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그녀에게서 알았던 매력을 다시 찾으려고 오랫동안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외모 아래에 여전히 오데트가 살아있다는 것을, 여전히 같은 도망치려는, 잡을 수 없고 교활한 의지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스완에게는 그녀를 잡으려는 같은 열정을 계속 쏟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2년 전의 사진들을 보았고, 그녀가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를 기억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그녀를 위해 그토록 많은 수고를 하는 것에 대해 약간의 위안을 주었다.

베르뒤랭 부부가 그녀를 생제르맹, 샤토, 뫼랑으로 데려갈 때, 좋은 계절이라면 그 자리에서 며칠 묵고 다음날에나 돌아가자고 제안했다. 베르뒤랭 부인은 파리에 남아 있는 피아니스트의 고모의 걱정을 달래려고 했다.

“그녀는 당신이 하루 동안 없어서 기뻐할 거예요. 그리고 어떻게 걱정하겠어요, 당신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걸 알잖아요? 게다가 제가 모든 책임을 질게요.”

하지만 그녀가 성공하지 못하면, 베르뒤랭 씨가 나서서 전신국을 찾거나 전령을 보내 누군가에게 알려야 할 신도들을 찾았다. 하지만 오데트는 그에게 감사하며 누구에게도 전보를 보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스완에게 모든 사람들 앞에서 전보를 보내면 자신의 위신이 떨어질 것이라고 한 번에 말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며칠 동안 자리를 비웠고, 베르뒤랭 부부는 그녀를 데리고 갔다.

드뢰의 묘지나 컴피에뉴에서 화가의 조언에 따라 숲속의 일몰을 감상하러 갔고, 피에르퐁 성까지 가기도 했다.

“그녀가 나와 함께 진정한 기념물을 방문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보라. 나는 10년 동안 건축을 공부했고 최고의 사람들을 보베나 생루드나드로 안내해달라는 부탁을 끊임없이 받고 있지만 오직 그녀를 위해서만 그럴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대신 최악의 야만인들과 함께 가서 루이 필립의 배설물과 비올레 르 뒥의 배설물에 연이어 감탄하고 있다! 그것을 위해 예술가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특별히 뛰어난 후각이 없더라도, 배설물 냄새를 더 잘 맡기 위해 화장실에서 휴가를 보내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드뢰나 피에르퐁으로 떠났을 때 – 아아, 그에게 우연히라도 그곳에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채 – “그건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거예요”라고 그녀가 말했기 때문에 – 그는 가장 흥분되는 사랑의 소설, 기차 시간표에 빠져들었다. 그것은 그에게 오후에, 저녁에, 오늘 아침에도 그녀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방법? 그 이상이었다: 허가였다. 결국 시간표와 기차 자체는 개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만약 인쇄물을 통해 대중에게 아침 8시에 출발하여 10시에 피에르퐁에 도착하는 기차가 있다고 알린다면, 그것은 피에르퐁에 가는 것이 합법적인 행위이며, 이를 위해 오데트의 허가는 불필요하다는 뜻이었다. 또한 오데트를 만나고 싶어 하는 욕구 외에도 다른 동기가 있을 수 있는 행위였다. 그녀를 모르는 사람들도 매일 상당한 수로 그 행위를 하고 있어서 기관차에 불을 지피는 것이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그가 피에르퐁에 가고 싶어한다면 그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는 가고 싶어 한다고 느꼈고, 오데트를 알지 못했다면 분명히 그곳에 갔을 것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비올레 르 뒥의 복원 작업에 대해 더 정확한 생각을 갖고 싶어 했다. 그리고 이런 날씨에 그는 컴피에뉴 숲에서 산책을 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느꼈다.

정말 오늘 그를 유혹하는 유일한 장소를 그녀가 금지한다는 것은 운이 없는 일이었다. 오늘! 그가 그녀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간다면, 오늘 그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피에르퐁에서 무관심한 사람을 만났다면 기쁘게 “어머, 당신도 여기 있군요!”라고 말하고 그에게 베르뒤랭 부부와 함께 묵고 있는 호텔로 와달라고 부탁했을 텐데, 반대로 그녀가 그곳에서 그를, 스완을 만난다면 그녀는 기분이 상할 것이고 자신이 따라다녀졌다고 생각할 것이며, 그를 덜 사랑하게 될 것이고, 어쩌면 그를 보고 화를 내며 돌아설 것이다. “그럼 이제 나는 여행할 권리도 없나요!”라고 그녀는 돌아와서 말할 것이다. 실제로는 여행할 권리가 없는 것은 그였다!

그는 오데트를 만나려는 듯 보이지 않았다. 대신 컴피에뉴와 피에르퐁 근처에 성을 소유한 친구인 포르슈빌 후작에게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부탁할 생각을 했다. 그는 친구에게 아무런 설명 없이 자신의 계획을 알렸고, 친구는 15년 만에 처음으로 스완이 자신의 영지를 방문하기로 했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스완은 그곳에 머물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적어도 며칠 동안 함께 산책과 여행을 하기로 약속했다. 스완은 이미 포르슈빌 씨와 함께 그곳에 있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오데트를 보기 전에도, 그녀를 볼 수 없더라도, 그녀의 정확한 위치를 모르는 순간에도 그녀의 갑작스러운 등장 가능성이 느껴지는 그 땅을 밟는 것이 얼마나 행복할까. 그녀 때문에 아름다워진 성의 안뜰에서, 그에게 낭만적으로 보이는 도시의 모든 거리에서, 깊고 부드러운 황혼으로 물든 숲의 모든 길에서, 그의 행복한 마음, 방랑하는 마음, 여러 개로 나뉜 마음이 불확실한 편재성 속에서 동시에 피난처로 삼는 무수하고 교차하는 피난처들. “무엇보다도,” 그는 포르슈빌 씨에게 말할 것이다. “오데트와 베르뒤랭 부부를 만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해요. 그들이 오늘 마침 피에르퐁에 있다는 걸 방금 알았거든요. 파리에서 만날 시간은 충분하니, 서로를 한 걸음도 떼어놓지 못하고 파리를 떠난 보람이 없을 거예요.” 그의 친구는 왜 스완이 일단 그곳에 도착하면 스무 번이나 계획을 바꾸고, 베르뒤랭의 흔적이 없는데도 컴피에뉴의 모든 호텔 식당을 점검하면서 어느 곳에도 앉기로 결정하지 않는지, 피하고 싶다고 말했던 것을 찾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막상 찾으면 피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그가 작은 무리를 만났다면, 그는 일부러 그들을 피했을 것이고, 오데트를 보고 그녀가 그를 봤다는 것에, 특히 그녀가 그를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봤다는 것에 만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그녀는 그가 그녀 때문에 그곳에 있다는 것을 잘 알아차릴 것이다. 그리고 포르슈빌 씨가 출발하자고 그를 찾아왔을 때, 그는 말했다. “아아, 안 됩니다. 오늘은 피에르퐁에 갈 수 없어요. 오데트가 마침 거기 있거든요.” 그리고 스완은 모든 인간 중 오직 자신만이 오늘 피에르퐁에 갈 권리가 없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행복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가 실제로 오데트에게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존재, 그녀의 연인이라는 것을 의미했고, 이 보편적인 자유 이동의 권리에 대한 이런 제한은 그에게 너무나 소중한 노예 상태, 그 사랑의 한 형태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녀와 다투지 않고 그녀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더 나았다. 그는 컴피에뉴 숲의 지도를 들여다보며 하루를 보냈는데, 마치 그것이 사랑의 지도인 것처럼 말이다. 그는 피에르퐁 성의 사진들로 자신을 둘러쌌다. 그녀가 돌아올 수 있는 날이 되자, 그는 시간표를 다시 열어 그녀가 탔을 기차를 계산하고, 그녀가 지체했다면 아직 남아있는 기차들을 계산했다. 그는 전보를 놓칠까 봐 외출하지 않았고, 마지막 기차로 돌아와 한밤중에 그를 깜짝 놀라게 하러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바로 그때 그는 대문 종소리를 들었고, 문을 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아 문지기를 깨우고 싶었다. 만약 그녀라면 창문으로 오데트를 부르고 싶었다. 그가 직접 열 번 이상 내려가 한 지시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가 없다고 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인이 돌아왔다. 그는 이전에는 전혀 주목하지 않았던 끊임없이 지나가는 마차들의 소리에 주목했다. 그는 각각의 마차가 멀리서 오는 소리, 가까워지는 소리, 그의 문 앞을 지나 멈추지 않고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메시지를 더 멀리 전달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밤새도록 기다렸지만, 헛된 일이었다. 베르뒤랭 부부가 귀가를 앞당겼기 때문에 오데트는 정오부터 파리에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알릴 생각을 하지 않았고, 무엇을 할지 모르고 혼자서 극장에서 저녁을 보냈으며, 오래전에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그녀는 심지어 스완의 존재조차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스완의 존재를 잊어버리는 그런 순간들이 오데트에게는 더 유용했고, 그녀의 모든 교태보다도 스완을 그녀에게 더 애착을 갖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이렇게 스완은 그가 사랑을 느끼게 된 날 밤, 오데트가 베르뒤랭 부부의 집에 없어서 온 저녁 내내 그녀를 찾아다녔을 때 이미 충분히 강력했던 고통스러운 불안 속에서 살았다. 그는 내가 어린 시절 콩브레에서 누렸던 것과 같은 행복한 날들을 보내지 못했다. 그 행복한 날들은 저녁에 다시 태어날 고통들을 잊게 해주었다. 스완은 낮 시간을 오데트 없이 보냈다. 때때로 그는 그토록 아름다운 여자를 혼자 파리에 내보내는 것은 보석으로 가득 찬 상자를 거리 한복판에 놓아두는 것만큼이나 무모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그는 모든 행인들을 도둑처럼 분개하며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들의 집단적이고 형태 없는 얼굴은 그의 상상력에서 벗어나 그의 질투심을 자극하지 못했다. 그것은 스완의 생각을 지치게 할 뿐이었고, 그는 눈을 문지르며 “신의 뜻대로!”라고 외쳤다. 마치 외부 세계의 실재성이나 영혼의 불멸에 대한 문제를 고심하다 지친 뇌에 신앙의 휴식을 주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부재하는 그녀에 대한 생각은 언제나 스완 삶의 가장 단순한 행위들과 떼어놓을 수 없이 얽혀 있었다. 그것은 점심 식사를 하고, 우편물을 받고, 외출하고, 잠자리에 드는 일들이었다. 그녀 없이 이러한 일들을 해야 한다는 슬픔 때문이었다. 마치 브루의 교회에서 마르그리트 도트리슈가 필리베르 르 보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자신의 이니셜 곳곳에 그의 이니셜을 얽어 놓은 것처럼 말이다. 어떤 날은 집에 있는 대신 그는 예전에 요리가 맛있다고 생각했던 근처의 레스토랑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이제 그는 신비하면서도 엉뚱한, 소설 같은 이유로만 그곳에 갔다. 그 레스토랑(지금도 있다)이 오데트가 사는 거리와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페루즈였다.

때로는 오데트가 짧은 여행을 다녀온 후 며칠이 지나서야 스완에게 파리에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려주곤 했다. 그리고 그녀는 아주 평범하게, 예전처럼 진실을 숨기려는 노력 없이, 마치 아침 기차를 타고 돌아온 것처럼 말했다. 그 말은 거짓이었다. 적어도 오데트에게는 거짓이었고, 앞뒤가 맞지 않았다. 만약 그녀의 말이 사실이었다면 기차역에 도착했던 기억이 있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말을 하는 순간에도 기차역에 도착하는 장면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녀가 기차에서 내렸다고 주장하는 그 순간에 실제로 했던 전혀 다른 일에 대한 모순된 이미지 때문이었다.

하지만 스완의 마음속에서는 오히려 이 말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각인되어, 의심할 여지없는 진실로 받아들여졌다. 만약 어떤 친구가 그 기차를 타고 왔는데 오데트를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면, 그는 그 친구가 날짜나 시간을 착각했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말이 오데트의 말과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데트의 말은 마치 그가 처음부터 그것이 거짓일 수 있다고 의심했더라면 거짓말처럼 들렸을 것이다. 그가 오데트가 거짓말을 한다고 믿기 위해서는 사전에 의심이 필요했고, 그 의심은 오데트의 모든 말을 의심스럽게 만들었다. 그녀가 어떤 이름을 말하면, 그것은 틀림없이 그녀의 연인 중 한 명의 이름이었다.

이런 추측을 한 후, 스완은 몇 주 동안 괴로워했다. 한번은 심지어 탐정 사무소와 접촉하여 그를 숨 쉴 수 없게 만드는 그 낯선 사람의 주소와 일상을 알아내려고 했다. 그 사람이 여행을 떠나고 나서야 그는 안도할 수 있었는데, 결국 그가 알아낸 것은 그 사람이 20년 전에 죽은 오데트의 삼촌이라는 사실이었다.

오데트는 대체로 스완이 공공장소에서 자신과 만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스완이 초대받은 저녁 모임에 오데트도 함께 초대받은 경우가 있었다. 포르슈빌의 집이나 화가의 집, 혹은 어느 부처의 자선 무도회 같은 곳이었다. 스완은 그녀를 볼 수 있었지만, 그녀가 다른 사람들과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그녀를 화나게 할까봐 머물러 있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혼자 집으로 돌아가 불안한 채로 잠자리에 들었다. 마치 몇 년 후 스완이 우리 집에 저녁 식사하러 오는 날 밤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스완에게 오데트의 즐거움은 끝이 없어 보였다. 왜냐하면 그는 그 끝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두 번 그는 그런 저녁 모임을 통해 평온한 기쁨이라고 부르고 싶은 기쁨을 알게 되었다. 만약 그것이 갑자기 멈춘 불안의 격렬한 반동을 겪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것은 평온함으로 이루어진 기쁨이었기 때문이다. 스완은 화가의 집에서 열린 모임에 잠깐 들렀다가 떠나려고 했다. 그는 그곳에 오데트를 남겨두고 떠났다. 그녀는 눈부신 낯선 여인으로 변해 있었고, 그녀의 시선과 명랑함은 자신을 향하지 않은 남자들 사이에 있었다. 그 모습은 그에게 어떤 쾌락에 대해 말하는 것 같았다. 그 쾌락은 그곳이나 다른 곳에서 (아마도 ‘앵코에랑들의 무도회’에서, 그녀가 그곳에 갈까봐 그는 두려워했다) 맛보게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스완에게 육체적 결합 그 자체보다도 더 큰 질투심을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그는 그것을 더 어렵게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완은 이미 화실의 문을 나서려고 할 때 이런 말을 듣고 불려 돌아왔다. (이 말은 파티의 끝을 없애 그를 두렵게 했던 그 끝을 제거함으로써 소급적으로 무해한 것으로 만들었고, 오데트의 귀가를 더 이상 상상할 수 없고 끔찍한 것이 아니라 달콤하고 익숙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그의 일상생활의 일부처럼 그의 마차 안에서 그의 옆에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오데트 자신도 그녀의 지나치게 빛나고 명랑한 모습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것은 단지 그녀가 그를 위해 잠시 입은 변장에 불과했음을 보여주었다. 신비로운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녀는 이미 그것에 지쳐 있었다.) 오데트가 그가 이미 문턱에 있을 때 그에게 던진 이 말이었다. “5분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저도 곧 떠날 거예요. 우리 함께 돌아가요. 당신이 저를 집에 데려다 주세요.”

사실 어느 날 포르슈빌도 함께 태워달라고 요청했지만, 오데트의 집 문 앞에 도착해서 그도 함께 들어가도 되는지 물었을 때 오데트는 스완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아, 그건 이 분께 달렸어요. 그분께 물어보세요. 글쎄요, 잠깐 들어오시겠어요? 하지만 오래는 안 돼요. 제가 경고하는데, 이분은 조용히 대화하는 걸 좋아하시고 다른 사람이 방문할 때 별로 좋아하지 않으세요. 아, 당신이 이분을 제가 아는 만큼 안다면! 그렇죠, 내 사랑? 당신을 잘 아는 건 저뿐이에요?”

그리고 스완은 아마도 그녀가 포르슈빌 앞에서 이렇게 자신에게 애정과 선호의 말을 건네는 것보다 더 감동받았을 것이다. 또한 그녀가 “저는 당신이 일요일 저녁 식사 초대에 아직 답장하지 않으셨다고 확신해요. 가고 싶지 않으시면 가지 마세요. 하지만 적어도 예의는 지키세요.”라거나 “베르메르에 대한 에세이를 여기 두고 가셨나요? 내일 조금이라도 진전시킬 수 있게요. 게으른 사람! 제가 당신을 열심히 일하게 만들겠어요!”와 같은 비판을 하는 것에도 말이다. 이는 오데트가 그의 사교계 초대나 예술 연구에 대해 잘 알고 있음을 보여주었고, 그들이 둘만의 삶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그에게 미소를 지었고, 그 미소 속에서 그는 그녀가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느꼈다.

그런 순간, 그녀가 그들에게 오렌지에이드를 만들어주는 동안, 갑자기 제대로 조절되지 않은 반사경이 처음에는 물체 주변의 벽에 큰 환상적인 그림자를 던지다가 나중에는 그 그림자들이 다시 접혀 물체 속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스완의 모든 생각들도 그렇게 되었다.

오데트에 대한 스완의 끔찍하고 동요하는 상상들은 사라지고, 그의 앞에 있는 매력적인 육체와 합쳐졌다. 그는 오데트와 함께 램프 아래에서 보낸 이 시간이 어쩌면 그를 위해 만들어진 인위적인 시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갑작스러운 의심이 들었다. (그가 계속 생각하면서도 제대로 상상할 수 없었던 그 무서우면서도 매혹적인 것을 감추기 위해 만들어진, 오데트의 진짜 삶의 한 시간, 그가 없을 때의 오데트의 삶의 한 시간.) 무대의 소품들과 종이로 만든 과일들이 아니라, 어쩌면 오데트 삶의 진짜 한 시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가 여기 없었다면 그녀는 포르슈빌에게 같은 안락의자를 내주고 알 수 없는 음료 대신 바로 이 오렌지에이드를 따라줬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데트가 사는 세계는 그가 늘 그녀를 위치시키던 그 무시무시하고 초자연적인 다른 세계가 아니었다. 그 세계는 아마도 그의 상상 속에만 존재했을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특별한 슬픔을 자아내지 않는 실제 세계였다. 그 세계에는 그가 글을 쓸 수 있는 이 탁자와 그가 맛볼 수 있는 이 음료, 그가 호기심과 감탄, 그리고 감사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이 모든 물건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물건들은 그의 꿈을 흡수하여 그를 해방시켰고, 그 대신 그 꿈들로 풍성해져 그에게 그 꿈의 실현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 물건들은 그의 정신을 사로잡았고, 그의 시선 앞에서 두드러져 보였으며, 동시에 그의 마음을 안정시켰다. 아! 만약 운명이 허락해서 오데트와 단 하나의 집을 가질 수 있고, 그 집에서 그가 주인이 될 수 있다면, 하인에게 점심 메뉴를 물었을 때 오데트의 메뉴를 대답으로 들을 수 있다면, 오데트가 아침에 불로뉴 숲 가로 산책을 가고 싶어 할 때 좋은 남편으로서의 의무가 그를 강제로, 외출할 마음이 없더라도 그녀와 동행하게 하고 그녀가 너무 더워할 때 그녀의 코트를 들고 가게 한다면, 저녁 식사 후 그녀가 집에 머물고 싶어 할 때 간편한 옷차림으로 그녀 옆에 있어야 한다면,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야 한다면, 그렇다면 스완의 삶의 모든 사소한 것들이 그에게 너무나 슬프게 보였던 것들이 오히려 오데트의 삶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에, 심지어 가장 친숙한 것들까지도 – 이 램프, 이 오렌지에이드, 이 안락의자처럼 많은 꿈을 담고 있고 그토록 많은 욕망을 구체화한 – 일종의 넘치는 달콤함과 신비로운 밀도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아쉬워하는 것이 그의 사랑에 좋은 분위기가 되지 않을 평온과 평화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오데트가 더 이상 늘 부재중이고, 그리워하고, 상상 속의 존재가 아니게 될 때, 그가 그녀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더 이상 소나타의 악구가 그에게 주는 것과 같은 신비로운 동요가 아니라 애정이나 감사가 될 때, 그들 사이에 그의 광기와 슬픔을 끝내는 정상적인 관계가 형성될 때, 틀림없이 오데트의 삶의 행위들이 그 자체로는 그에게 별로 흥미롭지 않게 보일 것이다. 그는 이미 여러 번 그런 의심을 했었다. 예를 들어 포르슈빌에게 보내는 편지를 봉투 너머로 읽었던 날처럼. 그는 자신의 병을 마치 스스로 주사해서 연구하는 것처럼 예리하게 관찰하며 생각했다. 자신이 치유되면 오데트가 무엇을 하든 그에게 무관심할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는 병적인 상태에서 죽음만큼이나 그런 치유를 두려워했다. 그것은 실제로 현재의 그 자신의 죽음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평온한 저녁들 이후, 스완의 의심은 잠잠해졌다. 그는 오데트를 축복했고, 다음날 아침 그녀에게 가장 아름다운 보석들을 보냈다. 전날 밤의 그녀의 친절함이 그의 감사의 마음을 자극했거나, 그런 일들이 다시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또는 발산되어야 할 사랑의 절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른 순간들에는 그의 고통이 다시 찾아왔다. 그는 오데트가 포르슈빌의 정부이며, 전날 샤투 축제 전날 밤 불로뉴 숲에서 베르뒤랭 부부의 사륜마차 안에서 그들 둘이 그를 봤을 때, 그가 절망적인 표정으로 (마부까지도 알아챘던) 그녀에게 자신과 함께 돌아가 달라고 애원했지만 거절당하고 혼자 패배한 채 돌아갔을 때, 그녀가 포르슈빌에게 그를 가리키며 “저 사람 화난 거 봐!”라고 말했을 때 그녀가 지었던 것과 같은 눈빛, 반짝이고 악의에 찬, 내리깔고 교활한 눈빛을 지었을 거라고 상상했다. 그때 스완은 그녀를 증오했다. “나는 정말 바보야, 내 돈으로 다른 사람들의 즐거움을 사주고 있어. 그녀도 이제 조심해야 할 거야, 너무 심하게 나가다간 아무것도 주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어쨌든 당분간은 추가적인 친절은 그만두자. 어제도 그녀가 바이로이트 축제 시즌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바보같이 우리 둘을 위해 근처에 있는 바바리아 왕의 아름다운 성 중 하나를 빌리자고 제안했잖아. 그런데 그녀는 그다지 기뻐하는 것 같지도 않았어. 아직 예스나 노라고 대답하지 않았지. 제발 거절하기를 바라자! 오, 그녀와 함께 15일 동안 바그너 음악을 듣는다니, 그녀는 물고기가 사과를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관심이 없을 텐데, 얼마나 즐거울까!” 그의 증오는 사랑과 마찬가지로 표현되고 행동할 필요가 있어서, 그는 점점 더 악의적인 상상을 즐겼다. 오데트에게 더 많은 배신을 상상할수록 그는 그녀를 더 증오했고, 만약 – 그가 상상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 그것들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그녀를 벌하고 커져가는 분노를 풀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심지어 그녀에게서 편지를 받게 될 것이라고 상상했다. 그 편지에서 그녀는 바이로이트 근처의 성을 빌리기 위한 돈을 요청하면서도, 그가 올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포르슈빌과 베르뒤랭 부부를 초대하기로 약속했다고 알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 그녀가 그런 대담함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거절하고 복수의 답장을 쓸 때 얼마나 기쁠까! 그는 마치 실제로 편지를 받은 것처럼 그 답장의 문구를 선택하고 소리 내어 말하며 즐겼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녀는 그에게 편지를 보내 베르뒤랭 부부와 그들의 친구들이 바그너 공연을 보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만약 그가 돈을 보내준다면, 그들의 집에 자주 초대받았던 그녀가 마침내 그들을 초대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들의 존재가 그의 존재를 배제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그는 전날 밤 한 단어 한 단어 정성 들여 만들었던, 끔찍한 답장을 그녀에게 보낼 수 있는 기쁨을 누렸다. 언젠가 그런 답장을 쓰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답장이었다. 아! 그는 그녀가 가진 돈이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돈으로도 바이로이트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바이로이트는 독일의 도시로, 리하르트 바그너의 음악 축제로 유명하다. 그녀는 바흐와 클라피송을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클라피송은 프랑스의 작곡가이다. 하지만 그녀는 어쨌든 더 검소하게 지내야 할 것이다. 이번에 그가 몇 천 프랑을 보냈다면, 그녀가 할 수 있었을 것처럼 매일 밤 성에서 그런 정찬을 베풀 수는 없을 것이다. 그 후에 그녀는 아마도 (그녀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을지도 모르는) 포르슈빌의 품에 안기는 변덕을 부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이 증오스러운 여행을, 그 스완이 아닌 다른 사람이 돈을 대게 될 것이다! 아! 그가 그녀의 여행을 막을 수 있다면, 그녀가 발목을 삐기라도 한다면!

스완은 이 배신의 여인을 48시간 동안 생각했다. 그녀의 눈은 포르슈빌을 향해 공모의 미소를 담은 채 반짝였다. 그는 그녀가 기차역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 순간에라도 마차 운전사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녀를 어딘가에 숨겨두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며칠 후면 그 빛나고 교활한 눈빛은 광채와 거짓됨을 잃었다. “저 사람 화가 났네!”라며 포르슈빌에게 말하는 증오스러운 오데트의 모습도 점차 흐릿해지고 사라졌다. 그러면 서서히 다른 오데트의 얼굴이 나타나 밝게 빛났다. 그녀 역시 포르슈빌에게 미소를 지었지만, 그 미소에는 스완을 향한 애정만이 담겨 있었다. “오래 있지 마세요. 저 분은 제가 그와 함께 있고 싶을 때 방문객이 오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아, 당신이 그를 저만큼 안다면!”이라고 말하는 그 미소였다. 그녀가 스완의 세심함에 감사할 때, 또는 중요한 상황에서 그에게 조언을 구할 때 지었던 바로 그 미소였다.

그때 스완은 자신이 어떻게 그토록 모욕적인 편지를 쓸 수 있었는지 의아해했다. 그는 지금까지 오데트가 그런 편지를 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편지로 인해 그는 자신의 선함과 성실함으로 얻은 그녀의 존경에서 한 단계 떨어졌을 것이다. 그는 오데트에게 덜 소중한 사람이 될 것이었다. 그녀는 포르슈빌이나 다른 어떤 이에게서도 찾지 못하는 그런 자질 때문에 그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 자질들 때문에 오데트는 그에게 자주 친절을 베풀었다. 질투에 사로잡혔을 때는 그것을 하찮게 여겼지만, 그것은 욕망의 표시가 아니라 오히려 애정의 증거였다. 그의 의심이 자연스럽게 풀리고, 예술 서적을 읽거나 친구와 대화를 나누며 주의가 산만해지면서 그의 열정이 덜 요구하게 되자, 그는 그 친절의 중요성을 다시 느끼기 시작했다.

이제 이런 진동 끝에 오데트가 자연스럽게 스완의 질투로 인해 잠시 멀어졌던 자리, 그가 그녀를 매력적이라고 여겼던 그 자리로 돌아왔을 때, 그는 그녀를 상상했다. 그녀는 애정 어린 눈빛으로 동의의 표시를 보내고 있었다. 그녀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는 마치 그녀가 그 자리에 있어 키스할 수 있을 것처럼 입술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 매혹적이고 다정한 눈빛에 대해 마치 그녀가 실제로 그런 표정을 지은 것처럼 감사했다. 사실 그의 상상력이 그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려낸 것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그는 오데트에게 얼마나 고통을 주었을까! 물론 그녀에 대한 분노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가 그녀를 그토록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다른 여자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심각한 불만을 가진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들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에 기꺼이 도와줄 수 있었고 그들에 대해 분노하지 않았다. 언젠가 오데트에 대해서도 같은 무관심한 상태가 되면, 그는 자신의 질투심 때문에 그녀의 소망을 끔찍하고 용서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겼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자연스러운 소망이었다. 그것은 약간의 어린아이 같은 면과 일종의 섬세한 영혼에서 비롯된 것으로, 기회가 왔을 때 베르뒤랭 부부에게 예의를 갚고 안주인 역할을 해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었다.

그는 사랑과 질투와는 반대되는 관점으로 돌아갔다. 때때로 그는 일종의 지적 공정성을 위해 이 관점에서 오데트를 판단하려 했다. 마치 그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처럼, 마치 그녀가 그에게 다른 여자들과 다르지 않은 것처럼, 마치 그가 없을 때 오데트의 삶이 다르지 않고, 그를 배제하고 그를 향해 음모를 꾸미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왜 그녀가 포르슈빌이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와는 경험하지 못한 황홀한 즐거움을 맛볼 거라고 믿어야 하는가? 그의 질투만이 그런 즐거움을 완전히 꾸며낸 것이다. 바이로이트에서든 파리에서든, 만약 포르슈빌이 그를 생각한다면 오직 오데트의 삶에서 중요한 사람, 그들이 그녀의 집에서 만날 때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사람으로 여겼을 것이다. 만약 포르슈빌과 그녀가 그의 의지에 반해 그곳에 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면, 그것은 그가 그들의 여행을 막으려고 헛되이 노력했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그가 그녀의 계획을 승인했다면 – 그것은 충분히 변호할 만한 것이었다 – 그녀는 그의 조언에 따라 그곳에 간 것처럼 보일 것이고, 그가 보낸 것처럼, 그가 묵을 곳을 정해준 것처럼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많이 초대했던 사람들을 대접하는 데서 느끼는 기쁨에 대해 스완에게 감사할 것이다.

그녀가 그와 다투고 헤어진 채로 떠나는 대신, 만약 그가 그녀에게 돈을 보내고 여행을 격려하며 즐겁게 만들어 준다면, 그녀는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달려올 것이다. 그러면 그는 일주일 가까이 맛보지 못했고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그녀를 보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스완이 그녀를 혐오감 없이 떠올릴 수 있게 되자마자, 그녀의 미소에서 선함을 다시 보게 되고, 질투심이 더 이상 그의 사랑에 타인으로부터 그녀를 빼앗으려는 욕구를 더하지 않게 되자, 그 사랑은 다시 주로 오데트라는 사람이 주는 감각에 대한 취향이 되었다. 그것은 그녀의 눈빛이 떠오르는 모습, 미소가 만들어지는 과정, 목소리의 어조를 마치 장관이나 현상을 감상하고 탐구하듯 즐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즐거움은 다른 모든 즐거움과 달랐다. 결국 그의 내면에 오직 그녀의 존재나 편지로만 해소될 수 있는 욕구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거의 이해관계 없는, 거의 예술적인, 거의 변태적인 또 다른 욕구만큼이나 그러했다. 그 욕구는 스완의 삶의 새로운 시기를 특징짓는 것이었다. 이전 몇 년간의 메마름과 우울함 뒤에 일종의 정신적 과잉이 뒤따랐고, 그는 왜 자신의 내면 생활이 이렇게 예기치 못하게 풍요로워졌는지 알지 못했다. 마치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힘이 나고 살이 찌며 완전한 회복으로 향하는 것처럼 말이다. 현실 세계와는 별개로 발전하는 이 다른 욕구는 음악을 듣고 이해하고 싶은 욕구였다.

그래서 그의 병의 화학 작용으로 인해, 그가 사랑으로 질투를 만들어낸 후에는 다시 애정과 연민을 느끼기 시작했다. 오데트는 다시 매력적이고 착한 여인이 되었다. 그는 그녀에게 가혹했던 일들을 후회했다. 그녀가 곁에 있어 주기를 바랐다. 그 전에 그는 그녀에게 어떤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 그녀의 얼굴에 감사의 표정이 새겨지고 미소가 번지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오데트는 며칠 후면 그가 이전처럼 다정하고 순종적으로 화해를 요청하러 올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비위를 거스르거나 심지어 화나게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호의를 편할 때는 거절했다.

아마도 그녀는 그가 다툼 중에 돈을 보내지 않겠다고 말하고 그녀에게 해를 끼치려 했을 때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몰랐을 것이다. 아마도 그녀는 그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최소한 자신에 대해서는, 그들의 관계의 미래를 위해 그가 오데트 없이도 지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언제든 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 얼마간 그녀를 만나지 않기로 결심한 다른 경우들도 있었다.

때로는 그녀가 새로운 걱정거리를 주지 않은 지 며칠 후였다. 그는 앞으로 그녀를 만나러 갈 때 큰 기쁨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그의 평온을 깨뜨릴 슬픔만 느낄 것이라는 걸 알았기에, 그녀에게 매우 바빠서 그가 말한 날들 중 어느 날에도 만날 수 없다고 편지를 썼다. 그런데 그의 편지와 엇갈린 그녀의 편지에서 마침 약속을 변경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그는 왜 그러는지 의아해했다. 의심과 고통이 다시 그를 엄습했다. 새로운 동요 상태에서 그는 이전의 상대적 평온 상태에서 한 약속을 지킬 수 없었고, 그녀에게 달려가 다음 며칠 동안 매일 만나자고 요구했다. 그녀가 먼저 편지를 쓰지 않았더라도, 그녀가 단순히 답장만 보내도 그는 그녀를 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스완의 계산과는 달리, 오데트의 동의로 그의 모든 것이 변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것을 소유한 모든 사람들처럼, 그것을 잠시 소유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기 위해 그는 그것을 마음에서 지워버렸고, 나머지는 그것이 있을 때와 같은 상태로 두었다. 그러나 어떤 것의 부재는 단순히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순한 부분적 결핍이 아니라 나머지 전체의 혼란이었고, 이전 상태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상태였다.

하지만 다른 때는 반대로 – 오데트가 여행을 떠나려 할 때 – 그는 작은 말다툼 후에 그 핑계로 여행 전까지 그녀에게 편지를 쓰지 않고 만나지도 않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큰 불화의 모습과 이점을 주었다. 오데트는 이것이 아마도 결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여행으로 인해 불가피한 이별 중 가장 긴 부분을 그는 조금 더 일찍 시작하게 한 것뿐이었다. 그는 이미 오데트가 방문이나 편지를 받지 못해 걱정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이 이미지는 그의 질투심을 달래고 그녀를 보는 습관을 버리는 것을 쉽게 만들었다. 물론 때때로, 그의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서, 그의 결심이 세 주간의 받아들여진 이별의 길이만큼 멀리 밀어냈지만, 그는 오데트가 돌아왔을 때 그녀를 다시 볼 것이라는 생각을 기쁘게 여겼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적은 조바심으로 여겨져 그는 이렇게 쉬운 절제의 기간을 자발적으로 두 배로 늘릴 수 있을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아직 3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는 그가 오데트를 보지 않고 지냈던 때보다 훨씬 짧은 시간이었고, 지금처럼 미리 계획하지도 않았었다. 그런데도 약간의 짜증이나 신체적 불편함이 – 현재의 순간을 예외적인 순간으로 여기게 하고, 지혜조차도 즐거움이 가져다주는 평온을 받아들이고 노력의 유용한 재개까지 의지에 휴가를 주는 것을 허용할 것 같은 – 의지의 작용을 중단시켰다. 의지는 압박을 행사하는 것을 멈추었다. 아니면 그보다 더 작은 것, 그가 오데트에게 물어보는 것을 잊었던 정보에 대한 기억, 예를 들어 그녀가 마차를 다시 칠하기로 결정한 색깔이나 어떤 주식에 대해 그녀가 보통주를 원하는지 우선주를 원하는지 (그녀를 보지 않고 지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좋지만, 만약 그 후에 도색을 다시 해야 하거나 주식이 배당금을 주지 않는다면 그는 곤란해질 것이다), 이런 것들이 마치 늘어났다 놓아진 고무줄처럼, 또는 열린 공기 펌프 속의 공기처럼, 그녀를 다시 볼 생각이 멀리 유지되던 곳에서 현재와 즉각적인 가능성의 영역으로 한 번에 돌아왔다.

그 생각은 더 이상 저항을 만나지 않고 돌아왔고, 게다가 너무나 저항할 수 없어서 스완은 오데트와 떨어져 있어야 할 15일이 하루하루 다가오는 것을 느끼는 것보다 그녀에게 데려다 줄 마차를 마부가 준비하는 10분을 기다리는 것이 훨씬 더 힘들었다. 그는 그 10분을 조바심과 기쁨의 격정 속에서 보냈고,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수천 번이나 되새기며 그의 애정을 쏟아부었다. 그 생각은 그가 그것을 멀리 있다고 믿었을 때 갑자기 돌아와 그의 가장 가까운 의식 속에 다시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지체 없이 저항하려는 욕구를 장애물로 만나지 않았다. 이 욕구는 스완에게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 적어도 그는 그렇게 믿었다 – 그가 얼마나 쉽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증명했기 때문에, 이제 그가 원할 때마다 반드시 실행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이별 시도를 연기하는 데 더 이상 어떤 불편함도 보지 않았다. 또한 그녀를 다시 볼 생각이 그에게 새로움, 유혹, 습관이 무뎌지게 했던 힘을 다시 갖고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그것들은 3일이 아닌 15일간의 단절로 (포기의 기간은 정해진 기한을 예상하여 계산해야 한다) 다시 날카로워졌고, 지금까지 쉽게 희생할 수 있었던 기대된 즐거움에서 저항할 수 없는 예기치 못한 행복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스완이 오데트가 그에게 아무런 소식도 주지 않은 것에 대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행동을 했을지 모르는 무지에 의해 더욱 아름답게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가 발견하게 될 것은 거의 알지 못하는 오데트의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돈 거절이 단순한 속임수였다고 믿었던 것처럼, 스완이 그녀에게 와서 묻는 정보, 즉 마차를 다시 칠하는 것이나 구입할 주식에 대한 것도 단순한 구실이라고 여겼다. 그녀는 그가 겪는 이런 위기들의 다양한 단계를 재구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것에 대해 만든 생각에서, 그녀는 그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을 생략했고, 그녀가 미리 알고 있는 것, 즉 필연적이고 항상 동일한 결말만을 믿었다. 불완전한 생각이었지만 – 스완의 관점에서 판단한다면 아마도 더 깊은 것일 수도 있었다 – 그는 자신이 오데트에게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꼈을 것이다. 마치 오랜 습관에서 벗어나려던 순간에 외부 사건에 의해 멈춰졌다고 확신하는 모르핀 중독자나, 우연한 질병으로 인해 마침내 회복될 수 있었던 순간에 멈춰졌다고 확신하는 결핵 환자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의사를 느끼는 것처럼. 의사는 이런 소위 우연한 일들에 그들만큼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의사의 견해로는, 이는 단순한 가장에 불과하며, 환자들이 다시 느낄 수 있도록 중독과 병적 상태가 입은 것일 뿐이다. 실제로는 그들이 치유나 회복의 꿈을 꾸는 동안에도 그들에게 치유 불가능하게 계속 압박을 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스완의 사랑은 의사와, 어떤 질병에서는 가장 대담한 외과 의사도 환자의 중독을 빼앗거나 병을 제거하는 것이 여전히 합리적인지 혹은 가능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확실히 스완은 이 사랑의 범위에 대해 직접적인 의식이 없었다. 그가 그것을 측정하려고 할 때, 때때로 그것이 줄어들어 거의 없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그가 오데트를 사랑하기 전에 그녀의 표정 깊은 얼굴과 신선하지 않은 피부에 대해 느꼈던 약간의 호감, 거의 혐오감이 어떤 날에는 다시 떠올랐다. “정말 눈에 띄는 진전이 있어,” 그는 다음날 자신에게 말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나는 그녀에 대해 거의 아무런 매력도 느끼지 않았어.”

스완은 어제 그녀의 침대에 있는 것이 즐거웠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심지어 그녀가 못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분명 진심이었지만, 그의 사랑은 육체적 욕망의 영역을 훨씬 넘어섰다. 오데트 자신은 더 이상 그 안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지 않았다. 그가 시선으로 자신의 책상 위에 있는 오데트의 사진을 마주쳤을 때, 또는 그녀가 그를 보러 왔을 때, 그는 살과 브리스톨 종이로 된 이 얼굴을 그의 내면에 거주하는 고통스럽고 지속적인 혼란과 동일시하기 어려웠다. 그는 거의 놀라움을 가지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저게 그녀야.” 마치 갑자기 우리의 질병 중 하나를 우리 앞에 외부화시켜 보여주었는데 우리가 겪고 있는 것과 닮지 않았다고 느끼는 것처럼. “그녀”, 그는 그게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려 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랑과 죽음의 유사성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항상 반복하는 그토록 모호한 유사성보다는, 그 실재가 우리에게서 벗어날까 봐 두려워하며 인격의 신비를 더 깊이 파고들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스완의 사랑이라는 이 병은 너무나 증식되어, 스완의 모든 습관, 모든 행동, 그의 사고, 그의 건강, 그의 수면, 그의 삶, 심지어 그가 죽은 후를 위해 바라는 것과도 너무나 밀접하게 얽혀 있어서, 그것을 그에게서 떼어내려면 그 자신을 거의 완전히 파괴해야 할 정도였다. 외과에서 말하듯이, 그의 사랑은 더 이상 수술할 수 없었다.

이 사랑으로 인해 스완은 모든 관심사로부터 너무나 멀어져서, 우연히 사교계로 돌아갈 때면 그의 인맥이 오데트의 눈에 자신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높여줄 수 있는 우아한 장신구처럼 여겨질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리고 만약 그 사랑 자체가 오데트에게 그것이 접촉하는 모든 것을 평가절하시키지 않았다면 실제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는 그녀가 알지 못하는 장소와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괴로움 옆에서, 마치 한가한 계급의 오락을 그린 소설이나 그림에서 느낄 법한 초연한 즐거움을 경험했다. 그는 집에서 자신의 가정생활의 기능, 옷장과 시종복의 우아함, 그의 유가증권의 좋은 투자를 바라보며 만족하곤 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생시몽의 글에서 매뉴 드 멘트농 부인의 하루 일과와 식사 메뉴, 또는 뤼리의 신중한 인색함과 호화로운 생활 방식을 읽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 초연함이 절대적이지 않은 한에서, 스완이 맛보는 이 새로운 즐거움의 이유는 잠시나마 그의 사랑, 그의 슬픔에 거의 낯선 채로 남아있는 자신의 일부로 이주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내 할머니가 그에게 부여한 ‘스완의 아들’이라는 인격은 그의 더 개인적인 샤를 스완의 인격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그가 지금 가장 즐기는 인격이었다. 어느 날, 파르마 공작부인의 생일을 맞아 (그녀가 오데트에게 갈라쇼나 기념행사의 티켓을 구해줄 수 있어 간접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과일을 보내고 싶었지만 어떻게 주문해야 할지 몰라 어머니의 사촌에게 부탁했다. 그녀는 그를 위해 심부름을 하게 되어 기뻐하며 편지를 보내 보고했다. 그녀는 모든 과일을 같은 곳에서 사지 않았다고 했다. 포도는 크라포트에서 샀는데 그곳이 전문점이었고, 딸기는 조레에서, 배는 슈베에서 샀는데 그곳이 더 좋았다고 했다. “각 과일을 내가 직접 하나하나 살펴보고 선택했어요.” 그리고 실제로 공작부인의 감사 인사를 통해 그는 딸기의 향기와 배의 부드러움을 판단할 수 있었다. 하지만 특히 “각 과일을 내가 직접 하나하나 살펴보고 선택했어요”라는 말이 그의 고통을 달래주었다. 그의 의식을 그가 상속자로서 소유하고 있지만 거의 가보지 않는 영역으로 데려갔기 때문이다. 그 영역은 부유하고 훌륭한 부르주아 가문의 것으로, 그가 원할 때마다 그의 서비스를 위해 대기하고 있는 ‘좋은 주소’에 대한 지식과 주문을 잘하는 기술이 세습적으로 보존되어 있었다.

분명 그는 너무 오랫동안 자신이 ‘스완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았기 때문에, 잠시나마 그것을 다시 느낄 때면 그가 나머지 시간에 경험할 수 있었고 이미 무감각해진 즐거움보다 더 강렬한 즐거움을 느꼈다. 그리고 부르주아들의 우호적인 태도가 (그들에게 그는 여전히 주로 그것이었다) 귀족들의 것보다 덜 생생했지만 (하지만 더 아첨적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서는 적어도 그것이 존경심과 절대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왕족의 편지나 그녀가 제안하는 왕족다운 오락은 그의 부모의 오랜 친구들 가족의 결혼식에 증인이 되어달라거나 단순히 참석해달라는 요청만큼 즐겁지 않았다. 그 친구들 중 일부는 계속해서 그를 만나고 있었다 – 예를 들어 전년도에 내 어머니의 결혼식에 그를 초대했던 내 할아버지처럼 말이다. 그리고 다른 일부는 그를 개인적으로 거의 알지 못했지만 고인이 된 스완 씨의 아들이자 훌륭한 후계자에 대한 예의상 의무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그들 사이에서 이미 오랜 친분을 쌓아, 사교계 사람들도 어느 정도는 그의 집, 그의 하인, 그의 가족의 일부를 이루고 있었다. 자신의 화려한 친분을 생각할 때, 마치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은그릇, 아름다운 식탁보를 바라볼 때와 같은 외적인 지지와 위안을 느꼈다. 그리고 만약 그가 집에서 발작으로 쓰러진다면 그의 시종이 자연스럽게 샤르트르 공작, 로이스 공작, 룩셈부르크 공작, 샤를뤼스 남작을 찾아갈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의 늙은 프랑수아즈가 자신의 것인 고운 천으로, 표시가 되어 있고 꿰매지 않은 (또는 너무나 정교하게 꿰매어 있어서 오히려 재봉사의 세심함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수의로 묻힐 것을 아는 데서 얻는 것과 같은 위안을, 비록 안락함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자존심의 만족을 그에게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오데트와 관련된 그의 모든 행동과 생각에서 그랬듯이, 스완은 끊임없이 자신이 그녀에게 어쩌면 덜 소중하지만, 베르뒤랭 부부의 가장 지루한 단골보다도 덜 보기 좋을 수 있다는 인정하지 못한 감정에 지배되고 인도되었다. 그래서 그가 자신을 끌어들이기 위해 모든 것을 하고, 만나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세상, 그를 최고의 사람으로 여기는 세상으로 돌아갈 때면, 그는 더 행복한 삶의 존재를 다시 믿기 시작했고, 거의 그것에 대한 욕구를 느끼기 시작했다. 마치 몇 달 동안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 식이 요법을 하는 병자가 신문에서 공식 오찬의 메뉴나 시칠리아 크루즈 여행 광고를 보는 것과 같았다.

그는 사교계 사람들에게 방문하지 못한 것에 대해 변명해야 했다면, 오데트에게는 방문한 것에 대해 변명하려 노력했다. 그는 여전히 그녀에게 돈을 지불했다 (월말에 그녀의 인내심을 조금 남용하고 자주 그녀를 방문했다면 4천 프랑을 보내는 것으로 충분한지 자문하면서). 그리고 매번 그녀에게 가져갈 선물이나 그녀가 필요로 하는 정보, 또는 그녀를 방문하러 가다가 만난 샤를뤼스 씨가 자신을 동행하게 했다는 구실을 찾았다. 구실이 없을 때면 그는 샤를뤼스 씨에게 그녀에게 가서 대화 중에 마치 갑자기 생각난 듯이 스완과 할 얘기가 있다고 말하고 그녀에게 즉시 그의 집으로 오라고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스완은 말썽이었다.

스완은 헛되이 기다렸고 샤를뤼스 씨는 저녁에 그의 수단이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가 이제 자주 외출을 하고 파리에 머물 때도 그를 거의 보지 않았다. 그를 사랑할 때는 “나는 항상 시간이 있어요”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겠어요?”라고 말하던 그녀가 이제는 그가 그녀를 만나고 싶어 할 때마다 예의를 내세우거나 할 일이 있다고 핑계를 댔다. 그가 자선 행사나 전시회 개막식, 초연에 가자고 할 때 그녀는 그가 그들의 관계를 공개하려 한다며, 자신을 창녀 취급한다고 말했다. 스완은 그녀를 만나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 그녀가 잘 알고 좋아하는 자신의 대삼촌 아돌프를 찾아갔다. 그는 원래 아돌프의 친구였다. 그는 벨샤스 거리의 작은 아파트로 가서 오데트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스완에게 자신의 삼촌에 대해 말할 때마다 시적인 태도를 취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 그는 당신과는 달라요. 그의 우정은 너무나 아름답고 위대하고 멋진 거예요. 그는 절대 나를 모든 공공장소에 데리고 다니려 하지 않을 거예요.” 스완은 당황스러워 어떤 식으로 그녀에 대해 삼촌과 이야기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우선 오데트의 탁월함, 그녀의 초인적 천사 같음, 그녀의 증명할 수 없는 미덕들을 선험적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그 관념은 경험에서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어요. 당신은 모든 여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여자,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 천사 같은 오데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계시죠. 하지만 파리의 삶이 어떤지도 아시잖아요.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아는 것처럼 오데트를 알지는 못해요. 그래서 내가 좀 우스운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녀는 심지어 내가 밖에서, 극장에서 그녀를 만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아요. 그녀가 당신을 많이 신뢰하니 제 대신 그녀에게 몇 마디 해주실 수 없나요? 내가 인사하는 것이 그녀에게 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건 과장이라고 말해주세요.”

삼촌은 스완에게 당분간 오데트를 만나지 말라고 조언했다. 오데트가 그를 더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오데트에게는 스완이 원하는 곳에서 그를 만나도록 허락하라고 했다. 며칠 후 오데트는 스완에게 삼촌이 다른 모든 남자들과 같다며 실망했다고 말했다. 그가 자신을 강제로 취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처음에 그를 도발하려 했던 스완을 진정시켰지만, 스완은 삼촌을 만났을 때 악수를 거절했다. 그는 아돌프 삼촌과의 이 불화를 더욱 유감스러워했다. 만약 그를 가끔 만나 신뢰 속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면, 오데트가 과거에 니스에서 살았던 생활에 대한 소문들을 밝혀낼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돌프 삼촌은 겨울을 니스에서 보냈다. 스완은 아마도 그곳에서 오데트를 알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데트의 연인이었던 남자에 대해 누군가가 그의 앞에서 무심코 언급한 것이 스완을 뒤흔들어 놓았다. 하지만 그는 알기 전에는 가장 끔찍하고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일단 알고 나면 영원히 그의 슬픔의 일부가 되어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는 그것들을 인정했고, 그것들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더 이상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각각의 사실은 그가 연인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에 지울 수 없는 수정을 가했다. 그는 심지어 오데트의 그런 문란한 생활이 꽤 알려져 있었다고 이해하게 되었다. 바드와 니스에서 그녀가 예전에 몇 달씩 지낼 때 그녀는 일종의 화려한 명성을 얻었다고 했다. 그는 그녀에 대해 물어보기 위해 일부 노는 사람들에게 접근하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가 오데트를 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그들이 다시 그녀에 대해 생각하게 하거나, 그녀의 흔적을 쫓게 만들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그에게 바드나 니스의 국제적인 삶과 관련된 어떤 것도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데트가 그곳에서 예전에 즐겼을지도 모르는 생활에 대해 알게 되자, 그는 그녀가 이제 그 덕분에 더 이상 가지고 있지 않은 돈에 대한 필요 때문인지, 아니면 다시 생길 수 있는 변덕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제 그는 무력하고 눈먼 채 어지러운 심정으로 그 바닥없는 심연을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9월 7일 체제 초기의 해들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 시절 사람들은 겨울에는 영국인 산책로에서, 여름에는 바드의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는 그 시절에 고통스럽지만 웅장한 깊이를 느꼈다. 마치 시인이 그랬을 법한 깊이 말이다. 그는 당시 코트다쥐르의 작은 사건들을 재구성하는 데 열중했다. 그것이 오데트의 미소나 눈빛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녀의 미소와 눈빛은 매우 정직하고 단순해 보였다. 그는 15세기 플로렌스의 남아있는 문서들을 조사하며 보티첼리의 ‘봄’, ‘아름다운 반나’, ‘비너스’의 영혼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미학자보다 더 열정적으로 그 일에 매달렸다. 그는 종종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그에게 말했다. “당신 표정이 참 슬퍼 보여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그녀가 자신이 알고 있는 최고의 사람들과 비슷한 선한 존재라고 생각했다가 그녀가 유지되는 여자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반대로 그는 너무 유명한 파티광이자 바람둥이였던 오데트 드 크레시에서 때때로 매우 부드러운 표정을 짓는 얼굴, 매우 인간적인 본성으로 되돌아가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니스에서 모든 사람들이 오데트 드 크레시를 안다는 게 무슨 의미지? 그런 평판들은, 설사 사실이라 해도, 다른 사람들의 생각으로 만들어진 거야.” 그는 이 전설이 – 설사 진실이라 해도 – 오데트의 외부에 있는 것이며, 그녀 안에 환원할 수 없는 악의적인 개성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잘못을 저지르도록 이끌렸을 수도 있는 그 생물이 선한 눈을 가진 여자, 고통에 대해 연민의 마음을 가진 여자, 순종적인 몸을 가진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녀를 품에 안고 만졌던 여자, 언젠가는 완전히 소유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가 그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된다면 말이다. 그녀는 거기 있었다. 종종 피곤해 보였고, 얼굴에서는 잠시 스완을 고통스럽게 하는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열병 같은 걱정이 사라져 있었다. 그녀는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녀의 이마와 얼굴이 더 넓어 보였다. 그때 갑자기 어떤 단순히 인간적인 생각, 모든 생물에게 존재하는 어떤 선한 감정이 그녀의 눈에서 노란 빛줄기처럼 솟아났다. 그것은 그들이 휴식이나 내적 성찰의 순간에 자신들에게 맡겨졌을 때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러자 곧 그녀의 얼굴 전체가 밝아졌다. 마치 구름으로 뒤덮인 회색빛 시골이 갑자기 구름이 걷히면서 일몰 때 변모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 순간 오데트 안에 있던 삶, 그리고 그녀가 꿈꾸는 듯 바라보고 있던 미래까지도 스완은 그녀와 함께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떤 나쁜 동요도 그곳에 흔적을 남긴 것 같지 않았다. 그런 순간들이 점점 드물어졌지만, 그래도 그것들은 쓸모없지 않았다. 기억을 통해 스완은 이 조각들을 연결했고, 간격을 없앴으며, 선하고 평온한 오데트를 황금처럼 주조해냈다. 그는 나중에 (이 작품의 2부에서 볼 수 있듯이) 그녀를 위해 더 많은 것을 했다.

다른 오데트라면 하지 않았을 희생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런 순간은 드물었고, 이제 그는 그녀를 거의 볼 수 없었다. 저녁 약속에서조차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만날 수 있을지 말해주지 않았다. 그가 늘 시간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제안을 거절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매우 중요한 답변을 기다려야 한다고 핑계를 댔다. 스완을 오게 한 후에도 저녁 모임이 이미 시작된 뒤 친구들이 극장이나 저녁 식사에 같이 가자고 하면 그녀는 기쁘게 뛰어올라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그녀가 옷을 입는 동안 스완은 그녀와 헤어질 순간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고, 그녀가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떠나갈 것을 알았다. 마침내 준비를 마친 그녀는 거울에 긴장된 시선을 마지막으로 던지며 입술에 약간의 루주를 바르고 앞머리를 정리한 뒤 금색 장식이 달린 하늘색 이브닝 코트를 달라고 했다. 스완은 너무나 슬픈 표정을 지어 그녀는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네가 이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붙잡아줘서 고마워하는 거니? 내가 친절하게 굴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음번엔 알아두겠어!” 때로는 그녀를 화나게 할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내려고 애썼다. 그는 포르슈빌 백작과 동맹을 맺어 정보를 얻을 수 있기를 꿈꿨다. 그녀가 누구와 저녁을 보내는지 알게 되면, 자신의 지인들 중 누군가가 그 남자를 알고 있어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는 친구에게 편지를 써서 이런저런 점을 명확히 해달라고 부탁하며, 답 없는 질문들로 괴로워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질문의 피로를 전가할 수 있어 안도했다. 물론 스완은 어떤 정보를 얻어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아는 것이 언제나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가 아는 것들은 우리 손에 없더라도 머릿속에서 마음대로 배치할 수 있어 일종의 힘을 가진 듯한 착각을 준다. 그는 샤를뤼스가 오데트와 함께 있을 때마다 행복했다. 샤를뤼스와 그녀 사이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샤를뤼스가 그녀와 외출할 때는 그를 위한 우정 때문이고 그녀가 무엇을 했는지 기꺼이 말해줄 것임을 알고 있었다. 때로 그녀는 스완에게 어느 저녁에 만날 수 없다고 너무나 단호하게 말하고 외출에 대해 그토록 열중한 것 같아서, 스완은 샤를뤼스가 그녀와 동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다음 날, 샤를뤼스에게 많은 질문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도 그의 첫 대답을 잘 이해하지 못한 척하며 새로운 대답을 이끌어내려 했고, 그때마다 안도감을 느꼈다. 오데트가 가장 무해한 즐거움으로 저녁을 보냈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작은 메메, 잘 이해가 안 가네요… 그녀 집에서 나와 그레뱅 박물관에 간 게 아니라고요? 먼저 다른 곳에 갔던 거예요? 아니요? 아, 정말 재미있군요. 메메, 당신은 정말 날 즐겁게 해주는군요. 하지만 그녀가 그 후에 샤 누아르에 가자고 한 건 정말 그녀다운 생각이에요… 아니요? 당신 생각이었어요? 흥미롭군요. 결국 나쁜 생각은 아니었어요. 그녀가 거기서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었겠죠? 아니요? 아무와도 대화하지 않았다고요? 놀랍군요. 그럼 당신들 둘이서 그냥 그렇게 있었다는 거군요? 그 장면이 눈에 선합니다. 당신은 정말 친절해요, 내 작은 메메. 난 당신을 정말 좋아해요.” 스완은 안도감을 느꼈다. 그는 무관심한 사람들과 대화하며 거의 듣지 않았던 몇몇 문장들(“어제 크레시 부인을 봤어요. 내가 모르는 신사와 함께였죠.”)이 갑자기 그의 마음속에서 고체 상태로 변하여 박혀 버리고 움직이지 않아 그를 괴롭히곤 했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얼마나 달콤했는가: “그녀는 아무도 알지 못했어요, 아무와도 대화하지 않았어요.” 이 말들은 그의 내면에서 얼마나 쉽게 순환하고, 얼마나 유동적이고 쉽게 호흡할 수 있었는가! 그럼에도 잠시 후 그는 오데트가 자신을 매우 지루하게 여기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자신과 함께 있는 것보다 이런 즐거움을 선호한다니 말이다. 그 무의미함이 그를 안심시키긴 했지만, 동시에 배신감을 느끼게 했다.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을 때조차도, 그가 느끼는 고통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오데트의 존재, 그녀 곁에 있는 달콤함만으로 충분했다(이는 장기적으로는 많은 치료제와 마찬가지로 병을 악화시켰지만,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고통을 달래주었다). 만약 오데트가 허락만 했다면, 그녀가 돌아올 때까지 그녀의 집에 머물며 기다리는 것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그는 마법이나 주술로 인해 다른 시간들과 다르다고 여겼던 시간들이 귀가 시간의 평온 속에서 녹아들 때까지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걸 원하지 않았다.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 길을 가며 여러 계획을 세우려 애썼고, 오데트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옷을 벗으며 꽤 즐거운 생각들을 하기도 했다. 다음 날 어떤 걸작을 보러 갈 희망으로 가득 차 잠자리에 들어 불을 끄곤 했다. 하지만 잠들 준비를 하며 의식하지도 못할 만큼 습관이 된 자제력을 풀자마자, 갑자기 오한이 들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왜 그런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눈물을 닦으며 웃으며 말했다. “멋지군. 난 신경증 환자가 되어가고 있어.” 그러고는 내일도 오데트가 무엇을 했는지 알아내려 노력하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생각에 큰 피로감을 느꼈다. 이 끊임없고 단조로우며 결과 없는 활동의 필요성이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어느 날 배에서 혹을 발견하고는 치명적인 종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진정한 기쁨을 느꼈다. 이제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병이 그를 지배하고 장난감처럼 다룰 것이며, 곧 끝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 시기에 그가 자주 죽음을 원했다면, 그것은 고통의 강도를 피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노력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그럼에도 그는 그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될 때까지, 그녀가 그에게 거짓말할 이유가 없어질 때까지 살고 싶어 했다. 그래야 그가 오후에 그녀를 방문했을 때 그녀가 포르슈빌 백작과 함께 있었는지 마침내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종종 며칠 동안 그녀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의심이 포르슈빌 백작에 관한 이 질문에서 그의 주의를 돌리곤 했다. 마치 같은 병의 새로운 형태가 일시적으로 이전의 것들에서 우리를 해방시킨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는 날들도 있었다. 그는 자신이 치유되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자…

깨어났을 때, 그는 전날 하루 동안 다른 인상들의 홍수 속에서 희석시켰던 것 같은 그 감각을 같은 자리에서 같은 고통으로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그리고 더욱이 그 고통의 예리함이 스완을 깨웠던 것이다.

오데트는 그토록 매일 열중하는 중요한 일들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충분히 살아보아 그런 일들이 결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그것들을 상상해 볼 수 없었다. 그의 머릿속은 공허하게 텅 비어 있었다. 그때 그는 마치 안경 렌즈를 닦듯이 피곤한 눈꺼풀 위로 손가락을 문질렀다. 그는 완전히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그럼에도 그 알 수 없는 것들 위로 어떤 직업들이 때때로 떠올랐다. 그녀가 멀리 떨어진 친척이나 옛 친구들에 대한 의무와 어렴풋이 연관 지어 말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자주 그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유일한 이유로 그에게 언급했기 때문에, 스완에게는 그것들이 오데트의 삶의 고정되고 필수적인 틀을 형성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때때로 “내가 친구와 이포드롬에 가는 날”이라고 말하는 어조 때문에, 만약 그가 아프다고 느끼고 “오데트가 혹시 나를 보러 올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가 갑자기 그날이 바로 그날이라는 걸 기억한다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 아니야, 그녀에게 와달라고 부탁할 필요가 없어. 더 일찍 생각했어야 했는데, 그녀가 친구와 이포드롬에 가는 날이야. 가능한 일에 집중하자. 받아들여지지 않고 미리 거절될 일들을 제안하며 지치는 건 소용없어.” 그리고 오데트에게 부과된 이포드롬에 가야 하는 의무, 스완이 그렇게 굴복한 이 의무는 그에게 단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지닌 필연성의 특성은 그것과 가깝거나 멀리 관련된 모든 것을 그럴듯하고 정당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만약 오데트가 길에서 스완의 질투심을 자극한 어떤 행인의 인사를 받고, 그의 질문에 대답할 때 그 낯선 사람의 존재를 그녀가 말하는 두세 가지 중요한 의무 중 하나와 연관 지었다면, 예를 들어 그녀가 “그건 내가 이포드롬에 같이 가는 친구의 박스석에 있던 신사예요”라고 말했다면, 이 설명은 스완의 의심을 가라앉혔다. 실제로 그는 그 친구가 이포드롬의 박스석에 오데트 외에 다른 초대객들을 데려오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을 한 번도 상상해보거나 상상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아, 그는 그 이포드롬에 가는 친구를 알고 싶어 했고, 그녀가 오데트와 함께 그를 데려가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그는 오데트가 습관적으로 만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것이 매니큐어사나 가게 점원이라 해도 그의 모든 관계를 주고 싶어 했다. 그는 여왕들을 위해 하는 것보다 그들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들이 오데트의 삶에 대해 담고 있는 것들 속에서, 그의 고통에 대한 유일한 효과적인 진정제를 제공하지 않았겠는가? 그는 오데트가 이해관계나 진정한 단순함 때문에 관계를 유지하는 그런 소인물들 중 누구와라도 함께 하루를 보내러 얼마나 기쁘게 달려갔을까. 그는 오데트가 그를 데려가지 않는 어떤 누추한 집의 5층에 영원히 거주지를 정하고 싶어 했다. 그곳에서 그가 은퇴한 작은 재봉사와 함께 살면서 그녀의 연인인 척했다면, 거의 매일 오데트의 방문을 받았을 것이다. 이런 거의 서민적인 지역에서, 초라하고 비천하지만 평온하고 행복으로 가득 찬 삶을, 그는 무기한 살아가기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때때로 여전히, 스완을 만났을 때 그가 모르는 누군가가 그녀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면, 그는 포르슈빌이 있을 때 그를 보러 왔던 날 오데트가 지녔던 그 슬픈 표정을 그녀의 얼굴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드물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해야 할 일들과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지에 대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스완을 보러 오는 날들에는, 이제 그녀의 태도에서 지배적인 것은 확신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큰 대조를 이루었고, 어쩌면 그를 알게 된 초기에 그의 곁에서, 그리고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도 느꼈던 두려워하는 감정에 대한 무의식적인 복수나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을 것이다. 그때 그녀는 편지를 “내 친구여, 내 손이 너무 떨려 글을 쓸 수가 없어요”라는 말로 시작했다(적어도 그녀는 그렇게 주장했고, 그녀가 더 많은 감동을 꾸미고 싶어할 정도로 이 감동의 일부는 진실이어야 했다). 스완은 그때 그녀의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만 떤다. 우리의 행복이 더 이상 그들의 손에 있지 않을 때, 우리는 그들 곁에서 얼마나 평온하고, 편안하고, 대담해지는가! 그에게 말할 때, 그에게 편지를 쓸 때, 그녀는 더 이상 그가 그녀에게 속한다는 환상을 주려고 하는 말들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에 관해 ‘내’, ‘나의’라고 말할 기회를 만들지 않았다. “당신은 내 것이에요, 우리 우정의 향기예요. 나는 그것을 간직해요.” 그에게 미래에 대해, 심지어 죽음에 대해서도 그들 둘만의 것인 양 말하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그가 하는 말마다 그녀는 감탄하며 대답했다. “당신은 결코 다른 사람들처럼 되지 않을 거예요.” 그녀는 그의 약간 대머리인 긴 머리를 바라보았다. 스완의 성공을 아는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그는 정규적으로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세련됐어요. 그 머리칼, 그 단안경, 그 미소!” 그리고 아마도 그의 연인이 되고 싶은 것보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더 알고 싶어서, 그녀는 말했다.

“저 머리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있다면!”

이제 스완의 모든 말에 그녀는 때로는 짜증 난 듯이, 때로는 관대하게 대답했다.

“아, 당신은 절대 다른 사람들처럼 되지 않을 거예요!”

그녀는 걱정으로 조금 더 나이 들어 보이는 그 머리를 바라보았다(이제 모든 사람들은 같은 능력으로, 교향곡의 의도를 프로그램을 읽고 발견하듯이, 그리고 아이의 부모를 알고 나서 그 아이의 닮은 점을 발견하듯이, 이렇게 생각했다. “그는 꼭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우스꽝스러워요. 그 단안경, 그 머리칼, 그 미소!” 그들의 암시에 찬 상상력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와 바람둥이의 머리를 몇 달 간격으로 분리하는 비물질적 경계를 실현하면서). 그녀는 말했다.

“아, 저 머리 속에 있는 것을 바꿔서 합리적으로 만들 수 있다면!”

오데트의 태도가 그에게 의심의 여지를 남겼다면 항상 자신이 원하는 것을 믿을 준비가 되어 있던 스완은 열정적으로 이 말에 매달렸다.

“할 수 있어, 네가 원한다면,” 그가 그녀에게 말했다.

그는 그녀를 진정시키고, 인도하고, 일하게 만드는 것이 다른 여자들이 갈망하는 고귀한 임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물론 그 고귀한 임무는 그녀의 손에 달려 있다면 그의 자유에 대한 무례하고 참을 수 없는 침해로 여겨졌을 것이다. “만약 그녀가 나를 조금이라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나를 바꾸려고 하지 않을 거야. 나를 바꾸려면 나를 더 자주 봐야 할 거야.” 그래서 그는 그녀의 비난에서 관심의 표현, 어쩌면 사랑의 표현을 찾았다. 사실 그녀는 이제 그에게 너무 적은 관심을 보여서, 그는 그녀의 금지령들을 그런 것으로 간주해야만 했다. 어느 날 그녀는 그의 마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아마도 그는 그녀에 대해 험담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어쨌든 그는 마부와 함께 있을 때 정확하지 않다고 했다. 그녀는 덧붙였다.

오데트는 자신이 원하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느꼈다. 그녀는 그가 “제 집에 올 때 더 이상 그를 데려오지 마세요”라고 말해주기를 바랐다. 마치 키스를 원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가 그렇게 말해주자 그는 감동했다. 저녁에 샤를뤼스 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는 그녀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즐거움을 느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나를 사랑한다고 믿어요. 그녀는 나에게 너무나 친절해요. 내가 하는 일이 그녀에게 분명 무관심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녀의 집에 갈 때, 도중에 내려줘야 할 친구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그 친구가 말했다.

“어, 저기 운전석에 있는 사람 로레당 아니야?”

스완은 우울한 기쁨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아, 이런! 아니야. 라 페루즈 거리에 갈 때는 로레당을 데려갈 수 없어. 오데트가 내가 로레당을 데려가는 걸 좋아하지 않아. 그녀는 그가 나에게 좋지 않다고 생각해. 뭐, 여자들 말이야, 알잖아! 그녀가 매우 싫어할 거라는 걸 알아. 아, 그래! 내가 레미를 데려갔다면! 큰일 났겠지!”

오데트가 그에게 보이는 이런 새로운 무관심하고 산만하고 짜증나는 태도에 스완은 분명 고통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고통을 알지 못했다. 오데트가 그에 대해 점진적으로, 하루하루 차가워졌기 때문에, 오늘날의 그녀와 처음의 그녀를 비교해봐야만 그 변화의 깊이를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변화는 그의 깊고 비밀스러운 상처였다. 그것은 밤낮으로 그를 아프게 했고, 그의 생각이 그녀에게 너무 가까이 가려고 할 때마다 그는 너무 고통받지 않기 위해 재빨리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돌렸다. 그는 추상적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오데트가 나를 더 사랑했던 때가 있었지.” 하지만 그는 결코 그 시간을 다시 보지 않았다. 그의 서재에 그가 보지 않으려고 하는 서랍장이 있었던 것처럼, 그는 들어가고 나갈 때 돌아가서 피했다. 서랍에는 그녀가 그를 처음 데려다준 날 밤에 준 국화와 “당신의 마음도 거기에 두고 왔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당신이 그것을 되찾도록 두지 않았을 거예요”와 “밤낮 언제라도 나를 필요로 하면 신호를 보내세요. 내 삶을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라고 쓴 편지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마찬가지로 그의 마음속에도 그의 정신이 결코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는 장소가 있었다. 필요하다면 긴 추론의 우회로를 만들어 그 앞을 지나가지 않도록 했다. 그곳은 행복했던 날들의 기억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의 아주 조심스러운 신중함은 그가 사교계에 갔던 어느 저녁에 무너졌다.

그것은 생퇴베르트 후작 부인의 집이었다. 그녀가 자선 음악회를 위해 초청한 예술가들의 연주회가 있는 그해의 마지막 저녁 모임이었다. 스완은 이전의 모든 모임에 가고 싶어 했지만 결심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옷을 입고 있는 동안 샤를뤼스 남작의 방문을 받았다. 남작은 그와 함께 후작 부인의 집에 가겠다고 제안했다. 만약 그의 동행이 스완이 덜 지루해하고 덜 슬퍼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말이다. 하지만 스완은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의심하지 마세요. 하지만 제게 가장 큰 즐거움을 주실 수 있는 것은 오데트를 보러 가는 것입니다. 당신이 그녀에게 얼마나 좋은 영향을 미치는지 아시잖아요. 오늘 밤 그녀는 옛 재단사에게 가기 전에는 외출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녀가 당신과 동행하는 것을 분명 좋아할 거예요. 어쨌든 그녀의 집에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녀의 기분을 전환시켜 주시고 이성적으로 말해주세요. 내일 그녀가 좋아할 만한 것을 계획해 보세요. 우리 셋이 함께 할 수 있는 것으로요. 또 이번 여름에 대해서도 계획을 세워보세요. 그녀가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한다면, 우리 셋이 함께 할 수 있는 크루즈라든가, 뭐 그런 것 말이에요. 오늘 밤 그녀를 만날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그녀가 원한다면, 아니면 당신이 기회를 잡으셨다면 생퇴베르트 부인 집으로 자정까지 메시지를 보내주세요. 그 후에는 제 집으로요. 제게 해주시는 모든 것에 감사드립니다.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시잖아요.”

남작은 스완을 생퇴베르트 호텔 문 앞까지 데려다 준 후 그가 원하는 방문을 하기로 약속했다. 스완은 샤를뤼스 씨가 라 페루즈 거리에서 저녁을 보낼 것이라는 생각에 안심하며 도착했다. 그는 오데트와 관련되지 않은 모든 것들, 특히 사교계의 일들에 대해 우울한 무관심 상태였다. 그것들은 더 이상 우리의 의지의 목표가 아닌 것들이 가지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그는 주인들이 의례적인 날에 손님들에게 제공하려고 하는 그들의 가정생활의 허구적인 요약의 첫 번째 장면에서, 발자크의 ‘호랑이’들의 후계자인 마부들이 모자를 쓰고 부츠를 신은 채 호텔 밖 거리나 마구간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즐거워했다. 마치 정원사들이 화단 입구에 줄지어 서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가 항상 가졌던 생명체와 박물관의 초상화들 사이의 유사성을 찾으려는 특별한 성향은 여전히 발휘되었지만, 이제는 더 지속적이고 일반적인 방식으로 나타났다. 이제 그가 분리된 사교계 전체가 그에게 일련의 그림들로 보였다. 전실에서 그는 한때 사교인이었을 때 외투를 입은 채 들어갔다가 연미복 차림으로 나왔던 곳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그의 생각은 방금 떠나온 파티나 곧 참석할 파티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처음으로, 이렇게 늦게 도착한 손님의 예기치 않은 출현에 깨어난 화려하고 한가한 거대한 하인들의 무리가 여기저기 벤치와 상자 위에서 잠들어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고귀한 그레이하운드의 날카로운 얼굴을 들어올리며 일어나 모여들어 그를 둘러쌌다.

그들 중 한 명은 유난히 사나워 보였다. 마치 르네상스 시대 그림 속 처형인처럼. 그는 냉혹한 표정으로 스완에게 다가가 그의 물건을 가져갔다. 하지만 강철 같은 시선의 냉혹함은 부드러운 실 장갑으로 상쇄되었다. 그래서 스완에게 다가갈 때 그는 그의 인격에 대한 경멸과 그의 모자에 대한 배려를 동시에 보이는 것 같았다. 그는 모자를 조심스럽게 잡았고, 그의 정확한 몸짓은 섬세함을 더했다. 거의 감동적일 정도로 부드러운 힘으로 모자를 가져간 그는 그것을 새로 온 겁에 질린 조수에게 건넸다. 조수는 사납게 눈을 굴리며 공포를 드러냈고, 길들여진 지 얼마 안 된 야생 동물처럼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 한 건장한 하인이 제복을 입고 꿈을 꾸는 듯 서 있었다. 그는 마치 만테냐의 강렬한 그림 속 전사처럼 보였다. 그 전사는 사람들이 서로 밀치고 죽이는 옆에서 방패에 기대어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동료들 무리에서 떨어져 서 있었다. 동료들은 스완 주위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스완은 이 장면에 무관심한 듯 보였다. 그는 잔인하고 녹색을 띤 눈으로 흐릿하게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마치 무고한 자들의 학살이나 성 야고보의 순교를 보는 것처럼. 그는 정확히 사라진 종족에 속한 것 같았다. 아니면 산 제노의 제단화나 에레미타니 성당의 프레스코화에서만 볼 수 있는 종족일지도 모른다. 스완은 그곳에서 그 종족을 만났었다. 그 종족은 여전히 그곳에서 꿈을 꾸고 있다. 그들은 고대 조각상과 화가의 파도바 모델이나 뒤러의 작센 모델의 결합처럼 보였다. 그의 곱슬거리는 붉은 머리카락은 자연스럽게 말려 있었지만 브릴리언틴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것은 만토바의 화가가 끊임없이 연구했던 그리스 조각처럼 넓게 처리되어 있었다. 그 조각은 창조에 있어 오직 인간만을 표현하지만, 그 단순한 형태에서 살아있는 모든 자연에서 빌려온 듯한 다양한 풍요로움을 끌어낼 줄 안다. 그래서 그의 머리카락은 매끄러운 곡선과 뾰족한 고리의 감김으로, 또는 세 겹으로 겹쳐진 꽃 같은 왕관으로 인해 동시에 해초 뭉치, 비둘기 둥지, 히아신스 화환, 뱀의 꼬임처럼 보였다.

다른 사람들도 거대한 모습으로 기념비적인 계단에 서 있었다. 그들의 장식적인 존재와 대리석 같은 부동성으로 인해 그 계단은 도제의 궁전의 “거인의 계단”이라고 불릴 수 있었다. 스완은 오데트가 한 번도 올라가 본 적 없다는 것을 생각하며 슬픈 마음으로 그 계단에 발을 들였다. 아, 반대로 그는 얼마나 기쁘게 그 어두컴컴하고 악취 나는 위험한 계단을 올랐을까. 그 은퇴한 재봉사의 “5층”에서 그는 오페라의 주간 특별석보다 더 비싼 돈을 기꺼이 지불했을 것이다. 오데트가 오는 저녁에 그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해서였다. 심지어 그녀가 오지 않는 날에도 그는 그녀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녀가 자주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고 싶어 했다. 그 사람들은 그가 없을 때 그녀의 삶에 대해 뭔가 더 실제적이고, 더 접근하기 어렵고, 더 신비로운 것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옛 재봉사의 악취 나는 계단에는 다른 계단이 없어서 저녁이면 각 문 앞에 빈 우유병이 더러운 채로 문턱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스완이 지금 올라가고 있는 화려하고 멸시받는 계단에는 한쪽과 다른 쪽에, 서로 다른 높이에, 벽에 있는 각 창문이나 아파트 문 앞에, 그들이 지휘하는 내부 서비스를 대표하고 손님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문지기, 집사, 은그릇 관리인(이들은 일주일의 나머지 시간을 자신의 영역에서 약간 독립적으로 지내며, 그곳에서 식사를 하고, 아마도 내일은 의사나 사업가의 부르주아적 서비스를 할 것이다)이 서 있었다. 그들은 드문 간격으로만 입는 화려한 제복을 입기 전에 받은 지시를 놓치지 않으려고 주의를 기울였다. 그들은 그 제복을 입고 있을 때 편안하지 않아 보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문 아래에서 대중적인 선량함으로 절제된 화려함으로 서 있었다. 마치 성인들이 자신의 벽감에 있는 것처럼. 그리고 거대한 문지기는 교회에서처럼 옷을 입고 손님들이 지나갈 때마다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렸다. 계단 꼭대기에 도착한 스완은 창백한 얼굴에 고야의 성직자나 공증인처럼 뒤통수에 작은 꼬리 모양으로 묶인 머리카락을 한 하인을 따라갔다. 그는 공증인처럼 큰 장부 앞에 앉아 있는 하인들이 있는 사무실을 지나갔다. 하인들은 일어나 그의 이름을 기록했다. 그는 그때 작은 현관을 지나갔다. 그곳은 어떤 방들처럼 소유주가 단 하나의 예술 작품을 위한 틀로 꾸며놓고 그 작품의 이름을 붙인 것 같았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입구에는 마치 벤베누토 첼리니의 소중한 조각상처럼 경비병을 표현한 젊은 시종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의 몸은 약간 앞으로 굽혀 있었고, 붉은 목덜미 위로 더 붉은 얼굴을 들고 있었다. 그 얼굴에서는 불, 수줍음, 열정의 폭풍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음악을 듣고 있는 응접실 앞에 걸린 오뷔송 태피스트리를 뚫고 들어가는 듯한 열정적이고 경계하는 눈빛으로, 마치 군인다운 냉정함이나 초자연적인 신념을 가진 듯이 – 경보의 우화, 기대의 화신, 경종의 기념 – 적의 출현이나 심판의 시간을 감시하는 천사나 파수꾼처럼 보였다. 스완에게는 이제 사슬을 걸친 안내인이 문을 열어주며 고개를 숙이는 콘서트홀에 들어가는 것만 남았다. 마치 그에게 도시의 열쇠를 건네주는 것처럼. 하지만 그는 오데트가 허락했다면 지금 그곳에 있을 수 있었을 집을 생각했다. 문턱에 놓인 빈 우유병의 기억이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스완은 태피스트리 커튼 너머로 하인들의 모습과 초대받은 손님들의 모습을 보며, 남성들의 추함에 대한 감각을 다시금 깨달았다. 하지만 그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 얼굴들의 추함조차도 이제는 새롭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그 얼굴들은 그에게 단순한 실용적인 표지였을 뿐이었다. 그 표지들을 통해 그는 누군가를 식별하고, 그 사람이 자신에게 어떤 즐거움을 줄 수 있는지, 아니면 귀찮은 존재인지, 아니면 예의를 갖춰 대해야 할 사람인지를 판단했었다. 그러나 이제 그 얼굴들은 오직 미학적인 관계로만 재해석되었고, 그 선의 자율성 속에 놓여 있었다. 스완은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착용한 단안경조차도 (이전에는 그저 그들이 단안경을 착용하고 있다고만 생각했을 뿐이다) 이제는 모두에게 공통된 습관이라는 의미를 넘어, 그에게 일종의 개성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그는 입구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프로베르빌 장군과 브레오테 후작을 더 이상 조키 클럽에서 자신을 소개해 주고 결투에서 도와준 유용한 친구로 여기지 않고, 그림 속 인물로만 바라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장군의 단안경은 그의 평범하고 상처투성이이지만 승리에 찬 얼굴의 이마 한가운데에 박혀 있었다. 마치 포탄의 파편처럼, 외눈박이 키클롭스의 눈처럼 그의 이마를 가리고 있었다. 스완에게 그것은 받았다는 것 자체는 영광스러울 수 있지만, 드러내는 것은 부적절한 괴물 같은 상처로 보였다. 반면 브레오테 씨가 축제의 표시로 진주빛 장갑, 실크햇, 흰 넥타이에 더해 평소의 안경 대신 착용한 단안경은 (스완도 사교계에 갈 때 그렇게 했다) 그의 옷깃에 붙어 있었다. 마치 현미경 아래의 자연사 표본처럼, 천장의 높이, 파티의 아름다움, 프로그램의 흥미로움, 음료의 품질에 대해 끊임없이 미소 짓는 미세하고 꿈틀거리는 호의적인 시선을 담고 있었다.

“어이구, 당신이군요. 영원히 못 본 것 같았어요.”라고 장군이 말했다. 그는 스완의 수척한 모습을 보고 그것이 아마도 심각한 병 때문에 그가 사교계에서 멀어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고는 덧붙였다. “건강해 보이시는데요!” 한편 브레오테 씨는 물었다.

“이런, 당신이라니, 친구여. 여기서 뭘 하고 계신 거죠?”

사교계 소설가는 눈가에 단안경을 끼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유일한 심리 탐구와 무자비한 분석 도구였다. 그는 중요하고 신비로운 표정으로 ‘r’을 굴리며 대답했다.

“관찰하고 있습니다.”

포레스텔 후작의 단안경은 아주 작고 테두리가 없었다. 그것은 마치 불필요한 연골처럼 박혀 있어 눈을 끊임없이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 존재 이유를 알 수 없고 재질이 특이했다. 이 단안경은 후작의 얼굴에 우울한 섬세함을 주었고, 여자들은 그를 큰 사랑의 고통을 겪을 수 있는 사람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생캉데의 단안경은 토성처럼 거대한 테두리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것은 얼굴의 중심이 되어 모든 것이 그것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떨리는 붉은 코와 비꼬는 듯한 두꺼운 입술은 유리 원반에서 번쩍이는 재치의 연발에 걸맞게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세련되고 타락한 젊은 여성들은 그의 단안경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빛보다 더 선호했다. 그것은 그녀들에게 인위적인 매력과 정교한 쾌락을 꿈꾸게 했다. 한편 그 뒤에 있는 팔랑시는 둥근 눈을 가진 큰 잉어 머리로, 파티장을 천천히 돌아다녔다. 그는 마치 방향을 찾는 것처럼 때때로 턱을 벌렸다. 그는 마치 자신의 수족관 유리의 우연한, 아마도 순전히 상징적인 조각만을 가지고 다니는 것 같았다. 이는 전체를 대표하는 부분으로, 파도바의 조토의 ‘악덕과 미덕’을 열렬히 감상하는 스완에게 숲속에 은신처를 숨기고 있는 불의를 떠올리게 했다.

스완은 생퇴베르트 부인의 끈질긴 권유에 못 이겨 한쪽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르페우스 아리아를 연주하는 플루트 연주자의 곡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그는 불행히도 나란히 앉아 있는 두 중년 부인 외에는 볼 것이 없었다. 그들은 캉브르메르 후작 부인과 프랑크토 자작 부인이었다. 사촌 지간인 그들은 파티에서 항상 함께 다녔다. 마치 기차역에서 서로를 찾는 것처럼 가방을 들고 딸들을 데리고 다녔다. 그들은 부채나 손수건으로 나란한 두 자리를 확보해야만 마음이 놓였다. 캉브르메르 부인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 동반자가 있어 더욱 기뻤다. 반면에 사교계에서 매우 유명한 프랑크토 부인은 모든 아름다운 지인들에게 자신이 그들보다 젊은 시절의 추억을 공유하는 평범한 여인을 선호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우아하고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스완은 슬픈 아이러니로 가득 차 그들이 플루트 아리아 다음에 이어진 피아노 간주곡(리스트의 ‘새들에게 설교하는 성 프란체스코’)을 듣고 현란한 연주자의 연주를 따라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프랑크토 부인은 불안한 듯이, 마치 연주자가 재빠르게 달리는 건반이 80미터 높이에서 떨어질 수 있는 일련의 공중그네인 것처럼 정신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웃에게 놀라움과 부정의 시선을 보내며 “믿을 수 없어요. 한 사람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니 상상도 못했어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캉브르메르 부인은 음악 교육을 잘 받은 여성답게 머리로 박자를 맞추었다. 그녀의 머리는 메트로놈의 추처럼 변해 한 어깨에서 다른 어깨로 진폭과 속도가 커져갔다. (자신을 알지 못하고 제어하려 하지도 않는 고통이 가진 그런 종류의 방황과 포기의 표정으로) 그녀는 매 순간 귀걸이로 코르사주를 걸어 올리고 머리에 꽂은 검은 포도를 바로잡아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움직임을 가속화했다.

프랑크토 부인의 반대편, 조금 앞쪽에는 갈라르동 후작 부인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생각, 즉 게르망트 가문과의 혈연관계에 빠져 있었다. 이는 그녀에게 세상과 자신에게 많은 영광을 안겨주었지만 약간의 수치심도 주었다. 가장 화려한 게르망트 가문 사람들이 그녀를 조금 멀리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녀가 지루하거나, 악의적이거나, 하급 가문 출신이거나, 아니면 아무 이유 없이 그랬을 것이다. 그녀는 지금 프랑크토 부인 옆에 앉아 있는 것처럼 모르는 사람 옆에 있을 때마다 자신의 게르망트 가문과의 혈연관계를 외부적으로 드러낼 수 없어 고통스러워했다. 그녀는 비잔틴 교회의 모자이크에서 성인 옆에 그가 말했다고 여겨지는 단어들이 수직 열로 적혀 있는 것처럼 자신의 혈연관계가 눈에 보이는 글자로 나타나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녀는 이 순간 6년 전 결혼한 젊은 사촌 로움 공주로부터 한 번도 초대나 방문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잠겼다. 이 생각은 그녀를 분노와 자부심으로 가득 차게 했다. 로움 부인의 집에 가지 않는 이유가 마틸드 공주를 만날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그녀의 극도로 정통주의적인 가족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하는 동안, 그녀는 결국 그것이 정말로 자신이 젊은 사촌의 집에 가지 않는 이유라고 믿게 되었다. 그녀는 로움 부인에게 어떻게 하면 그녀를 만날 수 있는지 여러 번 물어봤던 것을 어렴풋이 기억했지만, 그 기억은 흐릿했고 “그래도 내가 20살이나 더 많은데 먼저 나서는 것은 옳지 않아”라고 중얼거리며 그 약간 창피한 기억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이 내면의 말의 힘으로 그녀는 어깨를 자랑스럽게 뒤로 젖혔고, 그 위에 거의 수평으로 놓인 그녀의 머리는 테이블에 올려진 오만한 꿩의 ‘덧붙여진’ 머리를 연상시켰다. 그녀는 본래 뚱뚱하고 남성적이며 땅딸막했지만, 수모들이 그녀를 바로 세웠다. 마치 나쁜 위치에서 자라 균형을 잡기 위해 뒤로 자라야 했던 나무들처럼 말이다. 다른 게르망트 가문 사람들과 완전히 대등하지 못한 것을 위로하기 위해 그들을 거의 만나지 않는 것이 원칙에 대한 고집과 자존심 때문이라고 끊임없이 되뇌어야 했고, 이 생각은 결국 그녀의 몸을 바꾸어 놓았다. 그녀에게 일종의 위엄을 부여했고, 이는 부르주아 여성들의 눈에는 고귀한 혈통의 징표로 보였으며, 사교계 남성들의 지친 눈빛에 순간적인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만약 갈라르동 부인의 대화를 분석하여 각 단어의 빈도수를 조사했다면, “내 게르망트 사촌들의 집에서”, “내 게르망트 고모의 집에서”, “엘제아르 드 게르망트의 건강”, “내 사촌 게르망트의 극장 관람석”이라는 표현이 가장 자주 사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유명한 인물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녀는 개인적으로는 모르지만 게르망트 고모의 집에서 천 번은 만났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나 차갑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해서,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녀의 어깨가 뒤로 닿는 모든 뿌리 깊고 고집스러운 원칙들 때문이라는 것이 분명했다. 마치 체육 선생님들이 가슴을 넓히기 위해 여러분을 뻗게 하는 그 사다리처럼 말이다.

라움 공작부인은 생퇴베르트 부인의 집에 도착했다. 그녀의 등장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경멸하는 사교계에 단지 관용으로 온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 어깨를 움츠리고 들어섰다. 그곳에는 밀치고 지나갈 군중도, 길을 비켜줄 사람도 없었다. 그녀는 일부러 가장 구석진 곳에 머물렀다. 마치 한 왕이 극장 입구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처럼, 그곳이 자신의 자리인 양 행동했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거나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단순히 양탄자의 무늬나 자신의 치마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가장 겸손해 보이는 곳, 즉 생퇴베르트 부인이 그녀를 발견하자마자 환호성을 지르며 데려갈 곳에 서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모르는 캉브르메르 부인 옆에 서 있었다. 그녀는 옆에 있는 음악 애호가의 몸짓을 관찰했지만, 따라 하지는 않았다. 생퇴베르트 부인 집에 5분 정도 머물기 위해 온 라움 공작부인은 자신의 예의가 두 배로 인정받기를 바라며 가능한 한 친절하게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본성적으로 ‘과장’이라고 부르는 것을 혐오했고, 자신이 속한 사교계의 ‘품격’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동시에 새로운 환경, 그것도 열등한 환경에서 가장 자신감 있는 사람들조차 느끼는 모방 충동에 따라 그녀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이 몸짓이 지금 연주되는 곡에 필요한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 지금까지 들어본 음악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만약 그렇다면 자제하는 것이 작품에 대한 이해 부족과 주인에 대한 무례함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상반된 감정을 ‘절충안’으로 표현하기 위해, 때로는 어깨끈을 올리거나 금발 속의 작고 분홍빛 나는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산호 구슬을 고정시키는 것으로 만족했다. 이는 그녀에게 단순하고 매력적인 머리 장식이 되었다. 그녀는 열정적인 옆 사람을 차가운 호기심으로 살펴보면서, 때로는 잠시 부채로 박자를 맞추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독립성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박자를 맞추지 않았다.

피아니스트가 리스트의 곡을 끝내고 쇼팽의 전주곡을 시작하자, 캉브르메르 부인은 프랑크토 부인에게 만족스러운 미소를 던졌다. 그녀는 젊었을 때 긴 목과 지나치게 큰 쇼팽의 구절들을 어루만지는 법을 배웠다. 그 구절들은 매우 자유롭고 유연하며 촉감이 좋아서, 처음에는 출발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리를 찾고 시도하다가, 터치가 도달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지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 환상적인 간격 속에서 놀다가 더욱 단호하게, 더욱 계획적으로 돌아온다. 마치 울리는 수정처럼 정확하게 당신의 마음을 치는 것이다.

시골의 교류가 적은 가정에서 자란 그녀는 자신의 영지에서 혼자 이 모든 상상 속의 커플들의 춤을 늦추거나 빠르게 하며, 그들을 꽃처럼 흩뿌리고, 잠시 무도회를 떠나 호숫가 전나무 사이로 바람이 부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그곳에 나타난, 지상의 연인들과는 전혀 다른, 하얀 장갑을 낀 마른 청년을 보았다. 그의 목소리는 약간 노래하는 듯하고 이상했다. 하지만 오늘날 이 음악의 구식 아름다움은 시들어 보였다. 몇 년 전부터 감식가들의 인정을 받지 못해 명예와 매력을 잃었고, 취향이 나쁜 사람들조차 더 이상 거기서 공공연하지 않은 평범한 즐거움을 찾지 못했다. 캉브르메르 부인은 뒤를 슬쩍 돌아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젊은 며느리, 새 가족에 대해 매우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화성학과 그리스어까지 아는 특별한 지식을 가진 정신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예외였다. 그녀는 쇼팽을 경멸하고 그의 음악을 들을 때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바그너 애호가는 자기 또래 사람들과 떨어져 있었기에, 캉브르메르 부인은 즐거운 감정에 빠져들었다. 라움 공작부인도 같은 감정을 느꼈다.

그녀는 본래 음악적 재능이 없었지만, 15년 전 생제르맹 지구의 한 피아노 선생에게서 레슨을 받았다. 그 선생은 천재적인 여성이었지만 말년에 빈곤에 빠져 70세의 나이에 옛 제자들의 딸과 손녀들에게 다시 레슨을 시작했다. 그녀는 지금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녀의 방법, 그녀의 아름다운 음색은 때때로 그녀의 제자들의 손가락 아래서 되살아났다. 심지어 그 외의 면에서는 평범해지고 음악을 포기하고 거의 피아노를 열지 않게 된 제자들의 손가락에서도 그랬다. 그래서 라움 부인은 자신이 외워서 알고 있는 이 전주곡을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방식에 대해 정확한 평가를 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시작된 구절의 끝이 그녀의 입술에서 저절로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녀는 “여전히 매력적이에요”라고 중얼거렸다. 단어의 시작 부분에 있는 이중 ‘ch’는 섬세함의 표시였고, 그녀는 자신의 입술이 아름다운 꽃처럼 로맨틱하게 구겨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는 본능적으로 그 순간 자신의 눈빛을 입술과 조화롭게 만들어 약간 감상적이고 몽롱한 표정을 지었다.

한편 갈라르동 부인은 라움 공작부인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다는 것이 유감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공작부인의 인사에 답하지 않음으로써 그녀에게 한 수 가르쳐주고 싶어 했다. 그녀는 사촌이 거기 있다는 것을 몰랐다. 프랑크토 부인의 고개 움직임이 그녀에게 사촌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그녀는 즉시 모든 사람을 밀치고 사촌에게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녀는 마틸드 공주와 마주칠 수 있는 사람과는 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는 것을 모두에게 상기시키는 고고하고 차가운 표정을 유지하고 싶었다. 그녀는 ‘동시대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먼저 다가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런 고고하고 냉담한 태도를 보상하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며 공작부인이 대화를 시작하도록 만들 수 있는 말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사촌 곁에 도착하자 갈라르동 부인은 굳은 표정으로 손을 내밀며 마치 강요된 카드처럼 말했다. “당신 남편은 어떠세요?” 그녀는 마치 공작이 심각하게 아픈 것처럼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공작부인은 자신만의 특유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 웃음은 다른 사람들에게 누군가를 조롱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입 주변과 반짝이는 눈 주위로 얼굴의 특징을 모아 자신을 더 예쁘게 보이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녀는 대답했다.

“아주 좋아요!”

그리고 그녀는 다시 웃었다. 그러나 여전히 자세를 바로 하고 표정을 차갑게 하며, 여전히 공작의 건강이 걱정되는 갈라르동 부인이 사촌에게 말했다.

“오리안.” (이때 라움 부인은 놀란 듯하고 즐거운 표정으로 보이지 않는 제3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 제3자에게 자신이 갈라르동 부인에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도록 허락한 적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했다.)

“내일 저녁에 잠깐 우리 집에 와서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오중주를 들어주시면 좋겠어요. 당신의 의견이 궁금해요.”

그녀는 초대장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부탁을 하는 것 같았다. 마치 새로운 요리사가 만든 요리에 대한 미식가의 의견을 듣고 싶어 하는 것처럼, 공주는 모차르트의 오중주에 대한 자신의 의견이 필요한 것 같았다.

“하지만 저는 그 오중주를 알아요. 지금 당장 말씀드릴 수 있어요… 제가 좋아한다고!”

“아시다시피, 제 남편의 건강이 좋지 않아요. 간이… 당신이 오시면 그에게 큰 기쁨이 될 거예요,” 갈라르동 부인이 말을 이었다. 이제 그녀는 공주에게 자선의 의무로서 저녁 모임에 나타나 달라고 요청하고 있었다.

공주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집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매일 그녀는 시어머니의 예기치 않은 방문, 시동생의 초대, 오페라, 시골 나들이 때문에, 그녀가 가고 싶은 생각도 하지 않았을 저녁 모임에 가지 못한 것을 유감스러워한다고 편지를 썼다. 그녀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들과 관계가 있다고 믿게 하는 기쁨을 주었다. 그녀가 기꺼이 그들의 집에 갔을 것이며, 그들의 저녁 모임과 경쟁하는 것을 그들이 기쁘게 여기는 귀족적인 방해 요소들 때문에 가지 못했다고 믿게 했다. 게다가 메리메에서 내려오고 – 마지막 표현을 메이악과 알레비의 연극에서 찾은 – 격언과 관습적인 감정을 벗어난 날카로운 정신이 여전히 살아있는 게르망트의 영리한 집단의 일원으로서, 그녀는 그것을 사회적 관계에도 적용했고, 심지어 그녀의 예의범절에까지 옮겼는데, 이는 긍정적이고 정확하며 겸손한 진실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저녁 모임에 가고 싶다는 마음을 집주인에게 길게 표현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곳에 갈 수 있는지 여부가 달려있는 몇 가지 작은 사실들을 설명하는 것이 더 친절하다고 생각했다.

“들어보세요, 말씀드릴게요,” 그녀가 갈라르동 부인에게 말했다. “내일 저녁에 오랫동안 약속해 놓은 친구의 집에 가야 해요. 그녀가 우리를 극장에 데려간다면, 아무리 좋은 의도가 있어도 당신 집에 갈 가능성은 없어요. 하지만 우리가 그녀의 집에 머문다면, 우리가 둘만 있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녀를 떠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당신의 친구 스완 씨를 보셨어요?”

“아니요, 그 사랑스러운 샤를, 그가 여기 있는 줄 몰랐어요. 그를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어요.”

“생트외베르트 부인의 집에도 간다니 이상하네요,” 갈라르동 부인이 말했다. “오, 그가 똑똑하다는 건 알아요,” 그녀는 똑똑하다는 말로 교활하다는 뜻을 전하며 덧붙였다. “하지만 그래도 말이야, 두 대주교의 누이와 올케의 집에 유대인이라니!”

“제가 부끄럽게도 그것에 충격받지 않았다는 걸 고백해야겠어요,” 로옴 공주가 말했다.

“그가 개종했다는 걸 알아요. 그의 부모님과 조부모님도 이미 그랬고. 하지만 개종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자신들의 종교에 집착한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가식이라나, 정말 그래요?”

“이 주제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요.”

피아니스트가 쇼팽의 두 곡을 연주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전주곡을 끝내자마자 곧바로 폴로네이즈를 시작했다. 하지만 갈라르동 부인이 사촌에게 스완의 존재를 알린 이후로, 쇼팽이 부활해서 직접 와서 자신의 모든 작품을 연주한다 해도 로옴 부인은 주의를 기울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인류의 반쪽에 속했는데, 그들에게는 다른 반쪽이 모르는 사람들에 대해 갖는 호기심이 아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으로 대체되었다. 생제르맹 구역의 많은 여성들처럼, 그녀가 있는 장소에 그녀의 사교계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그 사람에게 특별히 할 말이 없다는 것이, 다른 모든 것을 희생시키면서 그녀의 관심을 독점했다. 그 순간부터, 스완이 자신을 알아챌 것이라는 희망으로, 공주는 마치 사람들이 설탕 한 조각을 내밀었다가 빼앗는 길들여진 흰 쥐처럼, 쇼팽의 폴로네이즈와는 전혀 관계없는 수천 가지 공모의 표시로 가득 찬 얼굴을 스완이 있는 방향으로 돌리기만 했고, 만약 그가 자리를 옮기면 그녀는 자석에 끌린 듯한 미소를 평행하게 옮겼다.

“오리안, 화내지 마세요,” 갈라르동 부인이 다시 말을 꺼냈다. 그녀는 자신의 가장 큰 사교계 희망을 희생시키고 언젠가 세상을 놀라게 할 기회를 포기하면서까지, 불쾌한 말을 하는 즉각적이고 개인적인 어두운 즐거움을 억제할 수 없었다. “이 스완이라는 사람은 집에 초대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게 사실이니?”

“하지만… 당신이 그게 사실이라는 걸 잘 알고 있을 텐데요,” 로옴 공주가 대답했다. “당신은 그를 50번이나 초대했지만 그는 한 번도 오지 않았잖아요.”

그리고 그녀는 모욕당한 사촌을 떠나며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이 웃음소리에 음악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지만, 예의상 피아노 근처에 머물러 있던 생트외베르트 부인의 주의를 끌었고, 그녀는 그제서야 공주를 발견했다. 생트외베르트 부인은 로옴 부인을 보고 더욱 기뻐했는데, 그녀가 아직 게르망트에서 병든 시아버지를 간호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공주님, 여기 계셨군요?”

“네, 조용한 구석에 앉아 있었어요. 아름다운 음악을 들었죠.”

“뭐라고요, 이미 오래전부터 계셨다고요!”

“네, 꽤 오래 있었어요. 하지만 아주 짧게 느껴졌죠. 당신을 보지 못해서 길게 느껴졌을 뿐이에요.”

생트외베르트 부인은 공주에게 자신의 안락의자를 주려고 했지만 공주는 대답했다.

“전혀요! 왜 그러세요? 어디든 편해요!”

그리고 일부러 대귀족의 소박함을 과시하려는 듯이, 등받이 없는 작은 의자를 골랐다.

“이 푸프면 충분해요. 이게 나를 똑바로 앉게 해줄 거예요. 오, 이런, 또 소리를 내고 있네요. 욕먹겠어요.”

한편 피아니스트는 속도를 올려 음악적 감동이 최고조에 달했고, 하인이 쟁반에 다과를 나르며 숟가락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매주 그랬듯이 생트외베르트 부인은 그가 보지 못하게 떠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한 새신부는 젊은 여자는 싫증난 표정을 하면 안 된다고 배웠기 때문에 즐거운 듯이 미소 짓고 있었고, 주인의 배려에 감사하다는 뜻으로 그녀의 눈길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프랑크토 부인보다는 차분하게 곡을 따라가고 있었지만, 그녀의 불안은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피아노에 집중되어 있었다. 포르티시모 때마다 흔들리는 촛불이 갓에 불을 붙이거나 자단에 얼룩을 남길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참지 못하고 피아노가 놓인 단 두 계단을 올라가 촛대를 치우려고 달려갔다. 하지만 그녀의 손이 막 닿으려는 순간, 마지막 화음과 함께 곡이 끝나고 피아니스트가 일어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젊은 여성의 대담한 행동, 그리고 그로 인해 그녀와 연주자 사이에 생긴 짧은 친밀함은 대체로 좋은 인상을 주었다.

“공주님, 저 사람이 한 짓을 보셨습니까?” 프로베르빌 장군이 인사를 건네며 생트외베르트 부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로옴 공주에게 물었다. “흥미롭군요. 그녀가 예술가인가요?”

“아니요, 그녀는 작은 캉브르메르 부인이에요.” 로옴 공주가 무심하게 대답했다.

“아, 그 사랑스러운 샤를이 여기 있는 줄 몰랐어요. 그를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어요.”

“생트외베르트 부인의 집에도 간다니 이상하네요.” 갈라르동 부인이 말했다. “아, 그가 똑똑하다는 건 알아요.” 그녀는 ‘교활하다’는 뜻으로 덧붙였다. “하지만 그래도 말이에요, 두 대주교의 누이와 올케의 집에 유대인이라니!”

“부끄럽게도 그것에 충격받지 않았다는 걸 고백해야겠어요.” 로옴 공주가 말했다.

“그가 개종했다는 걸 알아요, 그의 부모님과 조부모님도 이미 그랬고요. 하지만 개종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자신들의 종교에 집착한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가식이라나요, 정말 그런가요?”

“이 주제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요.”

공주는 재빨리 덧붙였다. “내가 들은 말을 그저 전달할 뿐이에요. 저 사람들이 누군지 전혀 모르겠어요. 생트-외베르트 부인의 시골 이웃이라고 뒤에서 누군가 말하는 걸 들었지만, 아무도 그들을 아는 것 같지 않아요. 아마 ‘시골 사람들’일 거예요! 그나저나 당신은 여기 모인 화려한 사교계 사람들과 잘 아는 사이인가요? 저는 이 놀라운 사람들의 이름을 전혀 모르겠어요. 그들이 생트-외베르트 부인의 저녁 모임 외에 무엇을 하며 살까요? 아마 그녀가 음악가들, 의자들, 음료수와 함께 그들도 데려왔겠죠. 이 ‘벨루아 출신 손님들’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그녀가 정말로 매주 이런 엑스트라들을 고용할 용기가 있을까요? 그럴 리가 없어요!”

“아, 하지만 캉브르메르는 진짜 오래된 이름이에요.” 장군이 말했다.

“오래됐다고 해서 나쁠 건 없죠.” 공주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하지만 어쨌든 그리 듣기 좋은 이름은 아니에요.” 그녀는 ‘듣기 좋은’이라는 단어를 따옴표를 치듯 강조했다. 이는 게르망트 일당에게서 특히 볼 수 있는 짜증 섞인 과장된 태도였다.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녀는 정말 먹음직스러워 보이는데요.” 캉브르메르 부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장군이 말했다. “공주님 생각은 어떠세요?”

“그녀는 너무 앞에 나서는 것 같아요. 그렇게 젊은 여자가 그러는 건 좋지 않아요. 그녀가 내 또래일 리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데 로므 부인이 대답했다. 이 표현은 갈라르동 가와 게르망트 가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공주는 프로베르빌 씨가 계속해서 캉브르메르 부인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고 그녀에 대한 악의와 장군에 대한 친절함을 반반 섞어 덧붙였다. “좋지 않아요… 그녀의 남편에게는 말이에요! 당신이 그녀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으니 소개해드릴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유감이에요.” 공주는 아마도 그녀를 알았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작별 인사를 드려야겠어요. 친구의 축하해야 할 날이라 가봐야 하거든요.” 그녀는 겸손하고 진실한 어조로 말했다. 그녀가 가야 할 사교 모임을 단순한 의무적이고 감동적인 의식으로 축소시키며 말했다. “게다가 거기서 바쟁을 만나야 해요. 제가 여기 있는 동안 그는 당신도 아실 것 같은, 다리 이름을 가진 친구들을 보러 갔어요. 이에나 가문 말이에요.”

“처음에는 승리의 이름이었죠, 공주님.” 장군이 말했다. “제 같은 늙은 군인에게는 말이죠.” 그는 안경을 벗어 닦으며 말을 이었다. 마치 붕대를 갈아 끼우듯이 말이다. 그 사이 공주는 본능적으로 눈을 돌렸다. “이 제정 시대 귀족들, 물론 다른 차원이긴 하지만, 그들 나름대로는 아주 훌륭하죠. 결국 그들은 영웅적으로 싸운 사람들이에요.”

“저는 영웅들을 매우 존경해요.” 공주가 약간 비꼬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제가 바쟁과 함께 그 이에나 공주를 방문하지 않는 이유는 전혀 그런 게 아니에요. 단순히 그들을 모르기 때문이에요. 바쟁은 그들을 알고 아끼죠. 오, 아니에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에요. 그건 바람기가 아니에요! 제가 반대할 이유가 없죠! 게다가 제가 반대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녀는 우울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모두가 알다시피 데 로므 공작이 그의 매력적인 사촌과 결혼한 다음 날부터 그는 그녀를 속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그런 경우가 아니에요. 그가 예전부터 알던 사람들이고, 그는 그들을 매우 좋아해요. 저는 그게 아주 좋다고 생각해요. 우선 그가 그들의 집에 대해 말해준 것만 들어도… 그들의 모든 가구가 ‘제정 시대’ 스타일이라고 생각해보세요!”

“하지만 공주님, 당연히 그렇죠. 그건 그들 조부모의 가구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덜 추한 건 아니에요. 저는 예쁜 물건들을 가질 수 없다는 걸 잘 이해해요. 하지만 적어도 우스꽝스러운 물건은 갖지 말아야죠. 뭐라고 할까요? 저는 욕조처럼 백조 머리가 달린 서랍장이 있는 그 끔찍한 스타일보다 더 촌스럽고 중산층적인 것을 알지 못해요.”

“하지만 제 생각에는 그들도 아름다운 물건들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그들은 아마도 …의 조약이 서명된 유명한 모자이크 테이블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아, 역사적으로 흥미로운 물건들을 가지고 있다면 저는 뭐라고 할 수 없죠. 하지만 그게 아름다울 리가 없어요… 끔찍하니까요! 저도 바쟁이 몽테스키우 가에서 물려받은 그런 물건들이 있어요. 하지만 그것들은 아무도 보지 않는 게르망트의 다락방에 있죠. 어쨌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제가 그들을 안다면 바쟁과 함께 서둘러 그들을 방문할 거예요. 그들의 스핑크스와 청동 한가운데서라도 그들을 만나러 갈 거예요. 하지만… 저는 그들을 모르거든요! 어렸을 때 모르는 사람의 집에 가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배웠어요.” 그녀는 어린아이 같은 말투로 말했다. “그래서 저는 배운 대로 하고 있어요. 모르는 사람이 들어오는 걸 보면 그 좋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상상해보세요. 그들이 저를 아주 나쁘게 대할지도 몰라요!” 공주가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코케트리로 이런 가정이 자아내는 미소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며, 장군을 향한 꿈결 같고 다정한 표정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아, 공주님. 그들이 기뻐서 어쩔 줄 모를 거라는 걸 잘 아시잖아요…”

“아니에요, 왜요?”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마치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귀부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척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장군에게 직접 그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왜요? 어떻게 아세요? 그들에게는 매우 불쾌한 일일 수도 있어요. 저는 아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지겹다고 생각하는데, 모르는 사람들까지 만나야 한다면, 그것도 ‘영웅’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라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요. 게다가 오래된 친구인 당신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영웅이라는 타이틀이 사교계에서 그렇게 환영받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녁 식사를 대접하는 것만으로도 종종 지루한데, 스파르타쿠스와 팔짱을 끼고 식탁으로 가야 한다면… 아니요, 베르켕제토릭스를 열네 번째 손님으로 초대하고 싶지 않아요. 그를 큰 파티를 위해 남겨두겠어요. 그리고 저는 큰 파티를 열지 않으니까요…”

“아, 공주님. 당신은 정말 게르망트 가문의 사람이시네요. 게르망트 가문의 재치를 완벽하게 물려받으셨어요!”

“사람들은 항상 게르망트 가문의 재치를 말하지만, 저는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없어요. 당신은 그런 재치를 가진 다른 사람들을 알고 있나요?” 그녀는 환한 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생기 넘치는 표정으로 가득 찼고, 눈은 반짝이며 기쁨의 빛으로 빛났다. 오직 그녀의 재치나 미모를 칭찬하는 말만이, 그것이 공주 자신의 말이라 할지라도, 그녀를 이렇게 빛나게 할 수 있었다. “보세요, 스완이 당신의 캉브르메르에게 인사하는 것 같아요. 저기… 생트-외베르트 어머니 옆에 있어요. 보이지 않나요? 그에게 당신을 소개해달라고 하세요. 하지만 서둘러요. 그가 떠나려고 해요!”

“그의 모습이 얼마나 끔찍한지 보셨어요?” 장군이 말했다.

“나의 작은 샤를! 아, 드디어 오는군요. 그가 저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스완은 데 로므 공주를 매우 좋아했다. 그리고 그녀를 보는 것은 게르망트를 떠올리게 했으며, 콩브레 근처의 그 땅은 그가 너무나 사랑했던 곳이지만, 오데트에게서 멀어지지 않기 위해 더 이상 가지 않는 곳이었다. 그는 공작 부인을 기쁘게 할 줄 알았던 반예술적이고 반갤런트한 표현을 사용했다. 그는 잠시 자신의 옛 환경에 다시 젖어들면서 그런 표현을 아주 자연스럽게 되찾았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는 시골에 대한 향수를 표현하고 싶었다.

“아!” 그는 방백으로 말했다. 자신이 대화하고 있던 생퇴베르트 부인과 자신이 말하고 있던 데 로므 부인 양쪽 모두에게 들리도록 하면서. “매력적인 공작 부인이 오셨군요! 보세요, 그녀가 리스트의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를 듣기 위해 일부러 게르망트에서 오셨어요. 그녀는 예쁜 박새처럼 머리에 꽂을 작은 새 자두와 산사나무 열매를 따는 시간밖에 없었죠. 심지어 아직도 작은 이슬방울이, 공작 부인을 떨게 만들었을 서리가 조금 남아 있어요. 정말 아름답군요, 사랑하는 공작 부인.”

“공작 부인이 일부러 게르망트에서 오셨다고요? 그건 너무 과분해요! 전 몰랐어요, 너무 부끄럽네요.” 스완의 말투에 익숙하지 않은 생퇴베르트 부인이 순진하게 외쳤다. 그리고 공작 부인의 머리 장식을 살펴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래 보이네요… 뭐라고 해야 할까, 밤은 아니고, 아, 정말 멋진 아이디어예요. 하지만 공작 부인이 어떻게 제 프로그램을 아셨을까요? 음악가들도 저한테 알려주지 않았는데요.”

스완은 자신이 갤런트한 언어 습관을 유지해온 여성 곁에 있을 때처럼 많은 상류 사회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섬세한 말을 하는 데 익숙했기에, 생퇴베르트 부인에게 자신이 단지 비유적으로 말했을 뿐이라고 설명하는 수고를 들이지 않았다. 공작 부인은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스완의 재치가 그녀의 사교계에서 매우 높이 평가받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또한 그녀는 자신에게 향한 찬사를 들을 때마다 그것을 가장 섬세하고 저항할 수 없는 재치로 여기지 않고는 못 배겼기 때문이었다.

“글쎄요! 저는 기쁩니다, 샤를. 제 작은 산사나무 열매가 마음에 드신다니요. 왜 저 캉브르메르에게 인사하시는 거죠? 당신도 시골에서 그녀의 이웃인가요?”

생퇴베르트 부인은 공작 부인이 스완과 즐겁게 대화하는 것 같아 보이자 물러났다.

“하지만 공작 부인께서도 그렇지 않으신가요?”

“제가요? 하지만 저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에나 시골집이 있나 봐요! 제가 그들 자리에 있었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요!”

“그들은 캉브르메르가 아닙니다. 그녀의 친정 식구들이에요. 그녀는 콩브레에 오곤 했던 르그랑댕 가의 딸이죠. 공작 부인께서 콩브레 백작 부인이시고 교회 의회가 공작 부인께 세금을 내야 한다는 걸 아시나요?”

“제가 의회로부터 무엇을 받아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신부님께 매년 100프랑을 내고 있다는 건 알아요. 그것도 싫어요. 어쨌든 저 캉브르메르들은 정말 이상한 이름을 가졌네요. 제때 끝나긴 하지만, 안 좋게 끝나죠!”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시작도 그리 좋지 않아요.” 스완이 대답했다.

“정말이에요, 이 이중 축약은!”

“매우 화가 나고 매우 예의 바른 사람이 첫 번째 단어를 끝까지 말하지 못한 거예요.”

“하지만 두 번째 단어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면, 차라리 첫 번째를 끝내고 한 번에 끝냈으면 좋았을 텐데요. 우리 정말 매력적인 농담을 하고 있네요, 내 사랑하는 샤를. 하지만 당신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니 정말 슬퍼요.” 그녀가 애교 있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난 당신과 이야기하는 걸 너무 좋아해요. 캉브르메르라는 이름이 놀랍다는 걸 저 바보 프로베르빌에게 이해시킬 수도 없었을 거예요. 인생이 끔찍한 것이라고 인정하세요. 당신을 볼 때만 제가 지루해하지 않아요.”

그리고 틀림없이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하지만 스완과 공작 부인은 사소한 것들을 판단하는 방식이 같았고, 그 결과 – 아니면 그 원인으로 – 표현 방식과 심지어 발음에서도 큰 유사성이 있었다. 이 유사성은 그들의 목소리가 전혀 달랐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스완의 말에서 그것을 감싸고 있는 소리와, 그 말이 나오는 콧수염을 생각으로 제거할 수 있다면, 그것이 게르망트 파의 동일한 문구, 동일한 어조, 동일한 전환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스완과 공작 부인의 생각이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 하지만 스완이 너무 슬퍼진 이후로, 그는 울음이 터지기 직전의 그 떨림을 항상 느끼면서 살인자가 자신의 범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과 같은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공작 부인이 인생이 끔찍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그는 마치 그녀가 오데트에 대해 말한 것처럼 같은 달콤함을 느꼈다.

“아, 인생은 참 끔찍해요. 만나야 해요, 내 사랑하는 친구. 당신과 함께 있으면 좋은 점은 당신이 밝지 않다는 거예요. 저녁 식사를 함께 할 수 있을 거예요.”

“물론이죠, 게르망트에 오시는 건 어때요? 시어머니께서 정말 좋아하실 거예요. 그곳이 꽤 삭막하다는 건 알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그 지방이 싫지 않아요. 저는 ‘그림 같은’ 지방을 싫어하거든요.”

“알겠어요, 그곳은 정말 멋지죠.” 스완이 대답했다. “거의 너무 아름다워서, 지금의 저에게는 너무 생동감이 넘쳐요. 행복해지기 위한 곳이죠. 아마도 제가 그곳에서 살았기 때문일 거예요. 하지만 그곳의 모든 것이 저에게 말을 걸어요.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밀밭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누군가가 오는 것 같고, 소식을 받을 것 같아요. 그리고 강가의 작은 집들… 저는 너무 불행할 거예요!”

“오, 내 사랑하는 샤를, 조심하세요. 저 끔찍한 랑피용이 저를 봤어요. 숨겨주세요.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시 말해주세요. 저는 헷갈려요. 그녀가 딸을 결혼시켰나요, 아니면 애인을요? 아니면 둘 다… 함께? 아, 아니에요, 기억났어요. 그녀는 왕자에게 버림받았어요… 제가 당신과 이야기하는 척 해주세요. 그래야 베레니스가 저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저는 이만 가봐야겠어요. 들어보세요, 내 사랑하는 샤를, 오랜만에 당신을 보는데, 파르마 공작 부인께 데려가도 될까요? 그녀가 정말 좋아하실 거예요. 바생도 그곳에서 저를 만나기로 했어요. 메메를 통해 당신 소식을 듣지 않았다면… 생각해보세요, 저는 당신을 전혀 볼 수가 없어요!”

스완은 거절했다. 그는 생퇴베르트 부인의 집을 떠나면 바로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샤를뤼스 씨에게 미리 알려두었기 때문에, 파르마 공작 부인에게 가면 저녁 내내 기다렸던 쪽지를 받지 못할 위험이 있었고, 그 쪽지를 집에 돌아가면 문지기에게서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불쌍한 스완,” 그날 저녁 데 로므 부인이 남편에게 말했다. “그는 여전히 친절하지만, 너무 불행해 보여요. 당신도 보게 될 거예요. 그가 며칠 안에 저녁 식사하러 오기로 약속했거든요. 저는 그의 지성을 가진 사람이 그런 종류의, 심지어 재미도 없는 사람 때문에 고통받는 것이 우스워요.” 그녀는 사랑에 빠지지 않은 사람들의 지혜로 덧붙였다. 그들은 영리한 사람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아닌 이로 인해 불행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는 마치 콜레라균처럼 작은 생물 때문에 고통받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것과 같다.

스완은 떠나고 싶었지만, 막 나가려는 순간에 프로베르빌 장군이 그에게 캉브르메르 부인을 소개해달라고 요청했고, 그는 그녀를 찾기 위해 장군과 함께 응접실로 들어가야 했다.

“이봐요, 스완, 난 저 여자의 남편이 되느니 차라리 야만인들에게 학살당하고 말겠소. 당신 생각은 어떻소?”

“야만인들에게 학살당하다”라는 말이 스완의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그는 즉시 장군과 대화를 계속할 필요성을 느꼈다.

“아, 그렇게 끝난 아름다운 삶들이 많았죠.” 그가 말했다. “예를 들어, 뒤몽 뒤르빌이 유골을 가져온 그 항해사, 라페루즈를 아시죠…(스완은 마치 오데트에 대해 말한 것처럼 이미 행복해했다.) 라페루즈의 성격은 매우 아름답고 저를 매우 흥미롭게 합니다.” 그가 우울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아, 물론이죠, 라페루즈.” 장군이 말했다. “유명한 이름이죠. 그의 이름을 딴 거리도 있잖아요.”

“라페루즈 거리에 아는 사람이 있나요?” 스완이 흥분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샤리보 부인밖에 모릅니다. 그 용감한 쇼스피에르의 누이 말이오. 그녀가 얼마 전 우리에게 멋진 코메디 저녁 모임을 열어주었죠. 언젠가는 매우 우아한 살롱이 될 거예요, 두고 보시오!”

“아, 그녀가 라페루즈 거리에 살고 있군요. 정감 있고, 아름다운 거리죠, 너무 슬프지만.”

“아니오, 당신이 한동안 가보지 않은 모양이군요. 더 이상 슬프지 않아요. 그 지역 전체가 건설되기 시작했어요.”

스완이 마침내 프로베르빌 씨를 젊은 캉브르메르 부인에게 소개했을 때, 그녀는 처음 장군의 이름을 듣는 것이었기에, 마치 그 이름 외에 다른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다는 듯이 기쁨과 놀라움의 미소를 지었다. 새 가족의 친구들을 전혀 모르는 그녀는 소개받는 사람마다 그들 중 한 명이라고 믿었고, 결혼한 이후 그들에 대해 많이 들었던 것처럼 보이려고 노력하며 재치 있게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배운 대로 조심스럽게 극복해야 할 거리감과 그것을 이겨내는 자발적인 호감을 보여주기 위해 망설이는 듯한 태도로 손을 내밀었다. 그래서 그녀의 시부모들은 그녀를 천사라고 선언했다. 특히 그들은 아들과 결혼시키면서 그녀의 큰 재산보다는 자질에 끌려 양보한 것처럼 보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영혼의 음악가라는 게 보이는군요, 부인.” 장군이 무의식적으로 촛대 사건을 언급하며 말했다.

하지만 콘서트가 다시 시작되었고, 스완은 이 새로운 프로그램이 끝나기 전에는 떠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사랑을 모르고, 안다 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이 사람들 사이에 갇혀 있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그들은 그의 사랑을 어린아이 장난처럼 웃어넘기거나 광기로 여겨 안타까워할 뿐이었고, 그의 사랑을 오직 그에게만 존재하는 주관적인 상태로 보이게 했다. 그는 특히 악기 소리조차 비명을 지르고 싶게 만들 정도로 고통스러워했고, 오데트가 결코 오지 않을 이곳, 그녀를 아무도 모르고 아무것도 그녀를 알지 못하는 이 장소에서의 추방 생활을 연장하는 것이 괴로웠다.

그러나 갑자기 마치 그녀가 들어온 것 같았고, 이 출현이 그에게 너무나 가슴 찢는 고통을 안겨 주어 그는 가슴에 손을 얹어야 했다. 바이올린이 높은 음으로 올라가 마치 기다림을 위해 그 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기다림은 계속되었고, 바이올린은 이미 기다리던 대상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흥분한 채로 그 음을 계속 유지했다. 그리고 도착하기 전까지 버티려는 필사적인 노력으로, 마지막 힘을 다해 그가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두려 했다. 마치 누군가가 무너질 것 같은 문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스완이 이해하고 “이건 뱅퇴유의 소나타의 작은 악구야, 듣지 말자!”라고 생각할 시간도 없이, 오데트가 그를 사랑했던 시절의 모든 기억들이 그의 존재 깊숙한 곳에서 깨어났다. 그는 지금까지 그것들을 보이지 않게 유지하는 데 성공했지만, 사랑의 시간이 돌아온 줄 알고 속은 이 기억들은 날개를 펴고 날아올라 그의 현재의 불행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잊혀진 행복의 노래를 미친 듯이 그에게 불러주기 시작했다.

“내가 행복했던 시절”, “내가 사랑받았던 시절”이라는 추상적인 표현 대신, 그는 지금까지 자주 말했고 큰 고통을 받지 않았던 그 말들 대신, 그의 지성이 과거의 가짜 추출물만을 담아 아무것도 보존하지 않았던 그 말들 대신, 그는 이 잃어버린 행복의 특별하고 휘발성 있는 본질을 영원히 고정시켰던 모든 것을 다시 보았다. 그는 모든 것을 다시 보았다. 그녀가 그의 마차에 던져 그가 입술에 대고 있었던 국화의 눈 같고 곱슬거리는 꽃잎들, “내 손이 당신에게 편지를 쓰면서 너무 떨려요”라고 그가 읽었던 편지의 양각으로 된 ‘황금의 집’ 주소, 그녀가 애원하는 표정으로 “너무 오래 걸리지 않게 신호를 보내주실 거죠?”라고 말했을 때의 눈썹을 모으는 모습, 그는 로레당이 작은 여공을 데리러 가는 동안 자신의 “브러시”를 세우기 위해 갔던 이발사의 철 냄새를 맡았다. 그 봄에 자주 내렸던 폭풍우, 달빛 아래 빅토리아 마차를 타고 돌아온 차가운 귀갓길, 그의 몸이 다시 사로잡힌 균일한 그물을 여러 주에 걸쳐 펼쳤던 모든 정신적 습관, 계절적 인상, 피부 반응의 고리들.

그 순간, 그는 사랑으로 사는 사람들의 즐거움을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을 충족시켰다. 그는 거기서 멈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 고통을 배울 필요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오데트의 매력이 그에게 얼마나 작은 것인지, 그것을 연장하는 이 무시무시한 공포, 매 순간 그녀가 무엇을 했는지 알지 못하는 이 거대한 불안에 비하면! 아, 그는 그녀가 “하지만 저는 언제나 당신을 볼 수 있어요, 저는 항상 자유로워요!”라고 외쳤던 그 말투를 기억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결코 자유롭지 않았다! 그녀가 그의 삶에 대해 가졌던 관심과 호기심, 그가 그녀를 자신의 삶에 들어오게 해주기를 열렬히 바라던 그 소망 – 그 당시 그에게는 성가신 방해로 여겨졌던 – 을 떠올렸다. 그녀가 그를 베르뒤랭 집에 데려가도록 간청해야 했던 것, 그가 한 달에 한 번 그녀를 자신의 집에 오게 했을 때, 그가 마음을 돌리기 전에 그녀가 매일 만나는 습관이 얼마나 즐거울지 반복해서 말해야 했던 것을 기억했다. 그 당시 그에게는 성가신 번거로움으로만 여겨졌지만, 나중에 그녀는 싫증을 내고 결국 끊어버렸고, 지금은 그에게 너무나도 극복할 수 없고 고통스러운 필요가 되어버린 그 습관.

그가 그녀를 세 번째 만났을 때, 그녀가 “왜 저를 더 자주 오게 하지 않으세요?”라고 반복해서 묻자, 그는 웃으며 정중하게 “고통받을까 봐 두려워서요.”라고 말했던 것이 얼마나 진실이었는지 그는 몰랐다.

이제, 슬프게도, 그녀가 가끔 레스토랑이나 호텔에서 그곳의 이름이 인쇄된 편지지로 그에게 편지를 보내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를 불태우는 불의 편지 같았다. “이것은 부이몽 호텔에서 쓴 거야? 그녀가 거기서 뭘 하고 있을까? 누구와 함께?”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하게 그녀를 만났던 그 날 밤, 이탈리아 대로에서 가스등을 끄던 것을 떠올렸다. 그 밤은 그에게 거의 초자연적으로 여겨졌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녀를 찾아 나서거나 다시 만나는 것이 그녀를 불쾌하게 할지 걱정할 필요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녀를 만나고 함께 돌아가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다고 확신했던 그 시절의 밤이었다. 그 밤은 분명 문이 닫히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신비로운 세계에 속해 있었다. 스완은 그 되살아난 행복 앞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자신이 곧바로 알아보지 못해 연민을 느꼈던 한 불행한 사람을 보았다. 그는 눈물로 가득 찬 눈을 숙여야 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그가 이를 깨달았을 때, 그의 연민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는 그녀가 사랑했던 다른 자신을 질투했다. 그는 “그녀가 그들을 사랑할지도 몰라”라고 별 고통 없이 자주 말했던 사람들도 질투했다. 이제 그는 사랑한다는 애매한 생각을 국화꽃 꽃잎과 ‘황금의 집’ 편지지와 맞바꾸었고, 그것들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고통이 너무 심해지자, 그는 이마에 손을 얹고 단안경을 떨어뜨린 뒤 렌즈를 닦았다. 그 순간 자신을 봤다면, 그는 아마도 성가신 생각처럼 옮겨 다니는 단안경을, 주름진 얼굴 위에서 손수건으로 걱정을 지우려 하는 그 단안경을, 자신이 구별해 온 것들의 컬렉션에 추가했을 것이다.

바이올린에는 – 악기를 보지 않고 들으면 소리를 악기의 이미지와 연결할 수 없어 음색이 바뀌는데 – 어떤 알토 목소리와 너무나 공통된 음색이 있어서, 콘서트에 가수가 더해졌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눈을 들어보면 중국 상자처럼 귀중한 케이스만 보일 뿐이지만, 때로는 여전히 사이렌의 기만적인 부름에 속는다. 때로는 박식하고 떨리는 상자 깊숙이 갇힌 정령이 몸부림치는 소리를 듣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공기 중에 순수하고 초자연적인 존재가 보이지 않는 메시지를 펼치며 지나가는 것 같기도 하다.

마치 연주자들이 작은 악구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악구가 나타나도록 요구되는 의식을 행하고, 그 소환의 기적을 얻고 몇 순간 연장하기 위해 필요한 주문을 외우는 것 같았다. 스완은 마치 그것이 자외선 세계에 속한 것처럼 볼 수 없었지만, 그 악구에 가까이 갈 때 자신을 덮치는 일시적인 맹목에서 변신의 상쾌함을 느꼈다. 그는 그 악구가 자신의 사랑을 보호하고 함께하는 여신처럼 존재한다고 느꼈다. 그 여신은 군중 앞에서 그에게 다가와 따로 데려가 이야기하기 위해 이 소리의 모습을 가장했다. 그 악구가 가볍게, 달래듯이, 속삭이듯 지나갈 때, 스완은 그 악구가 자신에게 말해야 할 것을 말하고 있었고, 그는 모든 말을 주의 깊게 살폈다. 그 말들이 너무 빨리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그는 무의식적으로 입술로 지나가는 조화로운 몸체에 키스하는 동작을 했다. 그는 더 이상 추방되고 고립된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 악구가 그에게 말을 건네고 오데트에 대해 속삭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예전처럼 오데트와 자신이 그 작은 악구에게 알려지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 악구는 너무나 자주 그들의 기쁨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악구는 종종 그들의 연약함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그 당시에는 그 악구의 미소와 맑고 환멸에 찬 어조에서 고통을 감지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거의 명랑한 체념의 우아함을 발견했다. 그 악구가 전에 그에게 말했던 슬픔들, 그가 그 악구가 빠르고 구불구불한 흐름 속에 미소 지으며 끌고 가는 것을 보았지만 그를 건드리지 않았던 그 슬픔들, 이제는 그의 것이 되어 결코 벗어날 희망이 없는 그 슬픔들에 대해, 그 악구는 예전에 그의 행복에 대해 말했던 것처럼 말하는 것 같았다. “이게 뭐야? 이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스완의 생각은 처음으로 연민과 애정의 충동으로 뱅퇴유, 그 알려지지 않은 숭고한 형제에게로 향했다. 그 역시 틀림없이 많이 고통받았을 것이다. 그의 삶은 어떠했을까? 어떤 고통의 깊이에서 그는 이 신과 같은 힘, 이 무한한 창조력을 길어 올렸을까? 그의 고통의 헛됨에 대해 작은 악구가 말할 때, 스완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견딜 수 없었던 그 지혜에서 달콤함을 찾았다. 그의 사랑을 중요하지 않은 망상으로 여기는 무관심한 사람들의 표정에서 그 지혜를 읽었을 때 말이다. 반대로 작은 악구는 이런 영혼의 상태가 짧게 지속된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모든 사람들처럼 현실적인 삶보다 덜 심각한 것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만이 표현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겼다. 이 내밀한 슬픔의 매력을, 그 악구는 모방하고 재창조하려 했다. 그리고 그것의 본질인 전달 불가능함과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 외에는 하찮게 보이는 특성까지도 작은 악구는 포착하여 가시화했다. 그래서 그 악구는 모든 청중들, 적어도 약간의 음악성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인정하고 신성한 달콤함을 맛보게 했다. 그들은 나중에 실제 삶에서, 자신들 주변에서 피어나는 각각의 특별한 사랑을 보면서 이를 무시할 것이었다. 물론 그 악구가 이를 성문화한 형태는 추론으로 해결될 수 없었다. 하지만 1년 이상 동안 그의 영혼의 많은 풍요로움을 그에게 계시하면서, 적어도 한동안 음악에 대한 사랑이 그 안에 태어났을 때부터, 스완은 음악적 모티브를 다른 세계, 다른 질서의 진정한 사상으로 여겼다. 그것은 어둠에 가려진 사상이며, 알 수 없고, 지성으로는 꿰뚫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완벽하게 구별되며, 가치와 의미에서 불평등한 사상들이었다. 베르뒤랭 저녁 모임 후에 작은 악구를 다시 연주하게 하면서, 그것이 어떻게 향기처럼, 애무처럼 그를 에워싸고 감쌌는지 풀어내려고 했을 때, 그는 그것을 구성하는 다섯 음표 사이의 작은 간격과 그 중 두 음표의 지속적인 반복이 수축되고 움츠러든 달콤함의 인상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실제로 그는 자신이 이렇게 추론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악구 자체가 아니라 베르뒤랭을 알기 전, 그 소나타를 처음 들었던 그 저녁에 그가 인식했던 신비로운 존재를 대신하여 그의 지성의 편의를 위해 대체된 단순한 가치들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피아노의 기억조차도 그가 음악의 사물들을 보는 평면을 왜곡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음악가에게 열린 영역은 일곱 개의 음표로 이루어진 초라한 건반이 아니라, 거의 전체가 아직 알려지지 않은 헤아릴 수 없는 건반이었다. 그곳에서는 오직 여기저기, 두꺼운 미지의 어둠으로 분리된 채, 위대한 예술가들에 의해 발견된 수백만 개의 애정, 열정, 용기, 평온의 건반 중 일부만이 우리에게 그 주제에 상응하는 것을 깨워줌으로써 봉사하고 있었다. 각각은 다른 우주만큼이나 서로 다르다.

우리의 무의식 속에 숨겨진 풍부함과 다양성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예술가들의 임무였다. 우리는 이를 공허와 무(無)로 여기지만, 사실 우리 영혼의 광대하고 헤아릴 수 없으며 낙담케 하는 밤이었다. 뱅퇴유는 그런 음악가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작은 악구는 이성적으로 볼 때 모호한 표면을 보였지만, 그 안에 매우 일관된, 매우 명확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것은 매우 새롭고 독창적인 힘을 부여했고, 이를 들은 사람들은 지성의 관념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그것을 간직했다. 스완은 그 악구를 사랑과 행복에 대한 개념으로 여겼다. 그는 그것이 얼마나 특별한지를 즉시 알 수 있었는데, 마치 ‘클레브 공작 부인’이나 ‘르네’의 이름이 그의 기억에 떠오를 때처럼 말이다. 심지어 그 작은 악구를 생각하지 않을 때도, 그것은 빛, 소리, 부조, 육체적 쾌락의 개념처럼 그의 정신 속에 잠재적으로 존재했다. 이는 우리의 내면 세계를 다양하게 하고 장식하는 풍부한 소유물들이었다. 아마도 우리는 이것들을 잃을 것이고, 아마도 그것들은 우리가 무(無)로 돌아갈 때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있는 한, 우리는 그것들을 알지 못했다고 할 수 없다. 마치 우리 방의 변모된 물건들 앞에서 켜진 램프의 빛을 의심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로 인해 뱅퇴유의 악구는 트리스탄의 어떤 주제처럼 우리에게 특정한 감정적 획득을 나타내며, 우리의 죽음을 운명 지어진 조건을 받아들였고, 인간적인 무언가를 취했으며, 그것은 꽤 감동적이었다. 그것의 운명은 우리 영혼의 미래와 현실에 연결되어 있었고, 그것은 가장 특별하고 잘 구별되는 장식품 중 하나였다. 아마도 무(無)가 진실이고 우리의 모든 꿈이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이 음악적 악구들, 그것과 관련된 이 개념들도 무(無)여야 한다고 느낀다. 우리는 죽을 것이지만, 우리의 운명을 따를 이 신성한 포로들을 인질로 잡고 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죽음은 덜 쓰고, 덜 불명예스러우며, 아마도 덜 개연성 있는 것이 된다.

따라서 스완은 소나타의 악구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 틀리지 않았다. 물론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여전히 우리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초자연적 생명체들의 질서에 속했다. 하지만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탐험가가 그것을 포착하여, 그가 접근할 수 있는 신성한 세계에서 우리의 세계 위로 잠시 빛나게 할 때 황홀감과 함께 그것을 인식한다. 뱅퇴유가 그 작은 악구를 위해 한 일이 바로 이것이었다. 스완은 작곡가가 단순히 악기들을 통해 그것을 드러내고, 시각화하고, 윤곽을 따라가며 존중했다고 느꼈다. 그의 손길은 매우 부드럽고, 조심스럽고, 섬세하고 확실해서 소리는 매 순간 변화했다. 그림자를 나타내기 위해 흐려지고, 더 대담한 윤곽을 따라가야 할 때는 되살아났다. 스완이 이 악구의 실제 존재를 믿는 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는, 조금이라도 섬세한 애호가라면 뱅퇴유가 그 형태를 보고 표현할 능력이 부족해서 자신의 시야의 공백이나 손의 실수를 감추기 위해 여기저기에 자신의 창작을 더했다면 즉시 그 사기를 알아챘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 악구는 사라졌다. 스완은 그것이 마지막 악장의 끝에, 베르뒤랭 부인의 피아니스트가 항상 건너뛰는 긴 악절 뒤에 다시 나타날 것을 알고 있었다. 거기에는 스완이 처음 들었을 때는 구별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인식하는 훌륭한 아이디어들이 있었다. 마치 그의 기억의 옷장에서 새로움이라는 획일적인 변장을 벗어던진 것처럼 말이다. 스완은 그 악구의 구성에 들어갈 모든 흩어진 주제들을 들었다. 마치 결론에 이르는 전제들처럼 말이다. 그는 그것의 탄생을 목격했다. “오, 아마도 라부아지에나 앙페르의 대담함만큼이나 천재적인 대담함,” 그는 생각했다. “알려지지 않은 힘의 비밀 법칙들을 실험하고 발견하며, 유일하게 가능한 목표를 향해 미지의 영역을 통과하여, 결코 볼 수 없을 보이지 않는 마차를 신뢰하며 이끄는 뱅퇴유의 대담함.” 마지막 악장 시작 부분에서 스완이 들은 피아노와 바이올린 사이의 아름다운 대화! 인간의 말을 제거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상력이 지배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오히려 그것을 제거했다. 말로 된 언어가 이토록 철저하게 필요했던 적은 없었고, 질문의 적절성과 답변의 명백함을 이 정도로 알았던 적도 없었다. 처음에는 고독한 피아노가 짝을 잃은 새처럼 한탄했다. 바이올린은 그것을 듣고 이웃 나무에서 대답했다. 마치 세상의 시작처럼, 마치 그들 둘만이 지상에 있었던 것처럼. 아니 차라리 창조자의 논리로 만들어진, 그들 둘만이 영원히 존재할 이 폐쇄된 세상에서처럼 말이다. 이 소나타였다. 그것은 새였을까, 아직 불완전한 작은 악구의 영혼이었을까, 아니면 보이지 않고 신음하는 요정이었을까? 피아노가 이어서 그 한탄을 부드럽게 되풀이했다. 그 울음소리는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바이올리니스트는 활을 재빨리 움직여 그것을 잡아내야 했다. 놀라운 새여! 바이올리니스트는 그것을 매혹하고, 길들이고, 포획하려는 듯했다. 이미 그것은 그의 영혼 속으로 들어왔고, 이미 불러낸 작은 악구가 영매의 몸처럼 바이올리니스트의 진정으로 사로잡힌 몸을 흔들었다. 스완은 그것이 다시 한 번 더 말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너무나 이중화되어 있어서, 곧 그것과 마주하게 될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 그를 흔들어놓았다. 마치 아름다운 시구나 슬픈 소식이 우리를 흔드는 것처럼. 하지만 우리가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친구들에게 그것을 알릴 때, 우리는 그들의 감동이 예상되는 다른 사람으로서 우리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그것은 다시 나타났지만, 이번에는 공중에 매달려 잠시만 연주되다가, 마치 움직이지 않는 듯이, 그리고 곧 사라지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스완은 그것이 연장되는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아무것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것은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마치 지탱하는 무지개 빛 거품처럼. 마치 그 광채가 약해지고, 내려가고, 다시 올라가는 무지개처럼, 사라지기 전에 잠시 전보다 더 강렬하게 빛났다. 지금까지 드러났던 두 가지 색에 더해 다른 무지개 빛 현을 추가하고, 그것들을 모두 노래하게 했다. 스완은 움직이지 않으려 했고, 다른 사람들도 가만히 있게 하고 싶었다. 마치 가장 작은 움직임이라도 곧 사라질 것 같은 초자연적이고 즐거우며 연약한 존재감을 위협할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사실, 아무도 말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죽은 자일지도 모르는 (스완은 뱅퇴유가 아직 살아있는지 몰랐다) 한 부재자의 말할 수 없는 말이 이 의식을 집행하는 사람들 위로 퍼져나가며, 300명의 주의를 억제하기에 충분했고, 영혼이 이렇게 불려나온 이 무대를 초자연적인 의식이 행해질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제단 중 하나로 만들었다. 그래서 마침내 악구가 해체되어 이미 그 자리를 차지한 다음 주제들 사이에서 조각조각 떠다닐 때, 스완은 처음에는 단순함으로 유명한 몽테리앙데르 백작 부인이 소나타가 끝나기도 전에 그에게 고개를 숙여 자신의 감상을 털어놓는 것을 보고 짜증이 났지만, 미소 짓지 않을 수 없었고, 어쩌면 그녀의 말에서 깊은 의미를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사용한 말에서 볼 수 없었다. 연주자들의 기교에 감탄한 백작 부인은 스완에게 말을 걸며 외쳤다. “놀라워요. 이렇게 대단한 건 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정확성에 대한 양심의 가책으로 그녀는 이 첫 번째 주장을 수정하며 덧붙였다. “이렇게 대단한 건… 회전하는 탁자 이후로 본 적이 없어요!”

그날 저녁 이후, 스완은 오데트가 그에 대해 가졌던 감정이 다시는 되살아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행복에 대한 희망이 더 이상 실현되지 않을 것임을 이해했다. 그리고 우연히 그녀가 여전히 그에게 친절하고 다정했던 날, 그녀가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였다면, 그는 이러한 겉으로 드러나는 징후와 그를 향한 작은 회귀의 거짓된 표시를 기록했다. 그는 마지막 단계에 이른 불치병 환자를 돌보는 사람들의 애정 어린 회의적인 관심과 절망적인 기쁨으로 이를 기록했다. 그들은 귀중한 사실로 이렇게 전한다. “어제 그가 직접 계산을 했어요. 우리가 저지른 덧셈 실수를 그가 발견했죠. 그가 달걀을 맛있게 먹었어요. 소화가 잘된다면 내일은 작은 갈비를 시도해 볼 거예요.” 그들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앞두고 이것들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스완은 만약 그가 지금 오데트와 떨어져 살았다면, 그녀가 결국 그에게 무관심해졌을 것이며, 그래서 그녀가 영원히 파리를 떠나는 것을 기쁘게 여겼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머물 용기는 있었지만, 떠날 용기는 없었다.

그는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제 페르메이르에 대한 연구를 다시 시작했으니, 적어도 며칠 동안 헤이그, 드레스덴, 브룬즈윅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었다. 그는 골드슈미트 경매에서 마우리츠하이스 미술관이 니콜라 마스의 작품으로 구입한 ‘다이아나의 화장’이 사실은 페르메이르의 작품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자신의 확신을 뒷받침하기 위해 직접 그림을 살펴보고 싶었다. 하지만 오데트가 파리에 있는 동안, 심지어 그녀가 없는 동안에도 파리를 떠나는 것은 그에게 너무나 잔인한 일이었다. 새로운 장소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감각들이 고통을 다시 일깨워 활성화시키기 때문이었다. 그는 절대 실행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그 생각을 했다. 그러나 잠을 자는 동안, 여행의 의도가 다시 살아났다. 그 여행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은 채. 어느 날 그는 1년 동안 떠나는 꿈을 꾸었다. 기차 창문에 기대어 젊은이가 플랫폼에서 울며 작별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며 스완은 그를 데려가려고 설득했다. 기차가 움직이자 불안감이 그를 깨웠고, 그는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오늘 밤 오데트를 볼 것이며, 내일도, 거의 매일 그녀를 볼 것이라는 것을 기억했다. 그러자 여전히 꿈에 흔들리는 그는 자신을 독립적으로 만들어주는 특별한 환경에 감사했다. 그 덕분에 그는 오데트 곁에 머물 수 있었고, 또한 그녀가 때때로 그를 만나도록 허락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장점을 되새겼다. 그의 지위, 그의 재산 – 오데트가 종종 그를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것들 (심지어 그와 결혼하려는 숨은 생각이 있다고 했다) – 샤를뤼스 씨와의 우정 – 사실 그것으로 오데트로부터 큰 것을 얻어낸 적은 없었지만, 그녀가 그들의 공통 친구인 샤를뤼스를 통해 자신에 대해 아첨적으로 듣는다는 것을 느끼는 즐거움을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지성 – 그는 이를 모두 활용해 매일 새로운 계략을 짜내어 자신의 존재를 오데트에게 즐겁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필요하게 만들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했다. 만약 그가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가난하고, 겸손하고, 무일푼이어서 어떤 일이라도 받아들여야 했거나, 부모나 아내에게 얽매여 있었다면 오데트를 떠나야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공포스러운 꿈이 아직도 가까이 있었을 수도 있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모른다. 사람들은 결코 자신이 생각하는 만큼 불행하지 않다.” 하지만 그는 이런 삶이 이미 몇 년 동안 지속되었고, 그가 바랄 수 있는 것은 그저 이것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일, 즐거움, 친구들, 결국에는 자신의 모든 삶을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일상적인 만남을 기다리는 데 희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의 관계를 촉진하고 결별을 막았던 것들이 실제로는 그의 운명에 해를 끼친 것은 아닌지 의문을 품었다. 바람직한 사건은 오히려 꿈에서만 일어났던 그의 출발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불행을 모른다. 사람들은 결코 자신이 생각하는 만큼 행복하지 않다.”

때때로 그는 그녀가 고통 없이 사고로 죽기를 바랐다. 그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밖에서, 거리에서, 도로에서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녀가 무사히 돌아올 때마다, 그는 인간의 육체가 얼마나 유연하고 강한지, 끊임없이 그를 둘러싼 모든 위험을 견디고 물리칠 수 있는지 (스완은 그의 은밀한 욕망이 그것들을 계산한 이후로 셀 수 없이 많다고 생각했다) 감탄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매일 거의 처벌받지 않고 그들의 거짓말 작업과 쾌락 추구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스완은 벨리니가 그린 초상화를 좋아하는 메메드 2세가 자신의 마음 가까이에 있음을 느꼈다. 메메드 2세는 자신의 여인 중 한 명에게 미쳐버리게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깨닫고 그녀를 칼로 찔렀다. 그의 베네치아 전기 작가는 순진하게 말하길, 이는 그의 정신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스완은 자신만을 생각한 것에 대해 분개했고, 자신이 겪은 고통들이 어떤 동정도 받을 가치가 없다고 여겼다. 그 자신이 오데트의 생명을 그토록 가볍게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그녀와 영원히 헤어질 수 없다면, 적어도 그녀를 끊임없이 볼 수 있었다면 그의 고통은 결국 잦아들었을 것이고 아마도 그의 사랑도 꺼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영원히 파리를 떠나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그녀가 결코 파리를 떠나지 않기를 바랐다. 적어도 그는 그녀가 매년 8월과 9월에 하는 유일한 긴 부재를 알고 있었기에, 몇 달 전부터 그 쓰라린 생각을 미래의 모든 시간 속에 녹여낼 여유가 있었다. 그 시간은 현재의 날들과 동질적인 날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투명하고 차갑게 그의 정신 속을 순환하며 슬픔을 유지했지만 너무 강렬한 고통은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 내면의 미래, 이 무색하고 자유로운 강은 오데트의 한 마디 말에 의해 스완 안에서 얼음 조각처럼 변했고, 그 유동성을 고정시켰으며,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스완은 갑자기 자신의 존재의 내벽을 압박하여 터질 것 같은 거대하고 부서질 수 없는 덩어리로 가득 차 있음을 느꼈다. 오데트가 그에게 웃는 얼굴로 살짝 엿보듯 말했기 때문이었다. “포르슈빌이 성령 강림절에 멋진 여행을 갈 거예요. 이집트로 갈 거래요.” 그리고 스완은 즉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했다. “나는 성령 강림절에 포르슈빌과 함께 이집트로 갈 거예요.” 그리고 실제로, 며칠 후 스완이 그녀에게 말했을 때, “그런데 네가 포르슈빌과 함께 할 거라고 말했던 그 여행에 대해”, 그녀는 무심코 대답했다. “그래요, 우리는 19일에 출발해요. 피라미드 사진을 보내줄게요.” 그때 그는 그녀가 포르슈빌의 정부인지 알고 싶어 했고, 그녀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었다. 그는 그녀가 미신적이어서 하지 않을 거짓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한 지금까지 그를 억제했던 두려움, 즉 그녀를 화나게 하고 그녀에게 미움을 받아 그녀가 더 이상 그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은 이제 사라졌다.

오데트를 심문하여 짜증나게 하고 그녀에게 미움받을 것이라는 공포는 이제 그녀에게서 사랑받을 희망을 완전히 잃은 지금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익명의 편지를 받았다. 편지에는 오데트가 포르슈빌 백작, 브레오테 씨, 그리고 화가를 포함한 많은 남자들과 여자들의 정부였으며 매춘굴을 드나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는 친구 중 누군가가 이 편지를 보냈을 것이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편지에 적힌 세부 사항은 편지를 쓴 사람이 스완의 삶을 잘 알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는 누가 그랬을지 추측해 보려 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의 알려지지 않은 행동, 그들의 말과 눈에 보이는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샤를뤼스 씨, 데 로므 씨, 도르상 씨 중 누구의 겉으로 드러나는 성격 아래에 이 비열한 행위가 숨겨져 있을지 알고 싶었지만, 그 누구도 그의 앞에서 익명의 편지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들이 말한 모든 것이 오히려 이를 부인하는 듯했다. 그는 이 비열한 행위를 한 사람보다 다른 사람의 본성과 연결 지을 이유를 찾지 못했다. 샤를뤼스 씨의 성격은 다소 괴팍했지만 근본적으로 선하고 다정했다. 데 로므 씨의 성격은 다소 건조했지만 건전하고 정직했다. 도르상 씨에 대해서는, 스완은 가장 슬픈 상황에서도 그처럼 진심 어린 말과 적절한 행동으로 다가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도르상 씨가 부유한 여성과의 관계에서 맡았다는 우아하지 못한 역할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를 생각할 때마다 확실한 우아함의 증거들과 조화될 수 없는 이 나쁜 평판을 무시해야 했다. 잠시 스완은 자신의 정신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고, 약간의 정신을 되찾기 위해 다른 것을 생각했다. 그 후 그는 용기를 내어 다시 그 생각들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무도 의심할 수 없었던 후에는 모든 사람을 의심해야 했다. 결국 샤를뤼스 씨는 그를 사랑했고 마음이 좋았다. 하지만 그는 신경증 환자였고, 어쩌면 내일은 아프다는 것을 알고 울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질투심이나 분노, 갑작스러운 생각에 사로잡혀 그에게 해를 끼치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 가장 나쁘다. 물론, 데 로므 공작은 샤를뤼스 씨만큼 스완을 사랑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그는 스완에 대해 똑같은 민감함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차가운 성격이었지만, 비열한 행동이나 위대한 행동을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스완은 자신이 삶에서 그런 사람들에게만 애착을 가진 것을 후회했다. 그 후 그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는 것이 선함이라고 생각했고, 결국 자신의 것과 비슷한 본성, 예를 들어 마음에 관해서는 샤를뤼스 씨의 본성과 같은 것에 대해서만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스완에게 이런 고통을 주는 생각만으로도 샤를뤼스 씨는 분개했을 것이다. 하지만 데 로므 공작과 같은 다른 인류의 무감각한 사람과는, 어떤 다른 본질의 동기가 그를 어떤 행동으로 이끌 수 있을지 어떻게 예측할 수 있겠는가? 마음을 가지는 것이 전부이고, 샤를뤼스 씨는 그것을 가지고 있었다. 도르상 씨도 그것이 부족하지 않았고, 그와 스완의 따뜻하지만 그다지 친밀하지 않은 관계는 모든 것에 대해 같은 생각을 하며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에서 비롯된 것으로, 샤를뤼스 씨의 열정적인 애정보다 더 편안했다. 샤를뤼스 씨는 좋든 나쁘든 열정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만약 누군가가 스완을 이해하고 섬세하게 사랑한다고 항상 느꼈다면, 그것은 도르상 씨였다. 그래, 하지만 그가 살아가는 그 불명예스러운 삶은? 스완은 그것을 고려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고, 농담으로 자신이 악당의 사회에서 가장 강렬하게 공감과 존경의 감정을 느꼈다고 여러 번 고백한 것을 후회했다. 그는 이제 “사람들이 이웃을 판단한 이후로, 그의 행동만이 무언가를 의미하고, 우리가 말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샤를뤼스와 데 로므는 이런저런 결점을 가질 수 있지만, 그들은 정직한 사람들이다. 도르상은 아마도 그런 결점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정직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한 번 더 잘못 행동했을 수 있다. 그 후 스완은 레미를 의심했는데, 그는 물론 편지를 쓰게 할 수는 없었지만 이 단서가 잠시 맞는 것처럼 보였다. 우선 로레당은 오데트에게 원한을 품을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보다 낮은 지위에 있고, 우리의 재산과 결점에 상상의 부와 악덕을 더해 우리를 부러워하고 경멸하는 우리의 하인들이 필연적으로 우리 세계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행동하게 될 것이라고 어떻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는 또한 자신의 할아버지를 의심했다. 스완이 그에게 부탁할 때마다 항상 거절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의 부르주아적인 사고방식으로 스완을 위해 행동한다고 믿었을 수도 있다. 그는 또한 베르고트, 화가, 베르뒤랭 부부를 의심했고, 그런 예술가들의 환경에서 그런 일들이 가능하고 어쩌면 ‘좋은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인정되는 곳과 어울리기를 원하지 않는 상류 사회 사람들의 지혜를 다시 한 번 감탄했다. 하지만 그는 이 보헤미안들의 정직한 면모들을 떠올렸고, 그것을 돈의 부족, 사치에 대한 욕구, 쾌락의 타락이 종종 귀족들을 이끄는 편법과 사기에 가까운 삶과 비교했다. 요컨대 이 익명의 편지는 그가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을 알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지만, 그는 이 악행이 다른 사람의 성격의 – 탐구되지 않은 – 기반에 숨겨져 있을 이유를, 따뜻한 사람보다 차가운 사람의, 예술가보다 부르주아의, 하인보다 귀족의 성격에서 더 많이 볼 수 없었다. 사람들을 판단할 기준은 무엇인가? 결국 그가 아는 사람들 중 누구라도 비열한 행동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을 모두 만나지 말아야 할까? 그의 정신은 흐려졌다. 그는 두세 번 이마를 손으로 문질렀고, 안경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그리고 그와 동등한 사람들이 샤를뤼스 씨, 데 로므 공작,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교제한다는 것은, 그들이 비열한 행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것은 아마도 비열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이 삶의 필연성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의심했던 모든 친구들과 계속해서 악수를 나눴지만, 그들이 아마도 그를 절망시키려 했을 것이라는 순수한 형식적인 유보를 가지고 그렇게 했다. 편지의 내용 자체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데트에 대한 고발 중 어느 것도 그럴듯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처럼 스완은 게으른 정신을 가지고 있었고 상상력이 부족했다. 그는 일반적인 진실로 존재들의 삶이 대조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각각의 존재에 대해서는 그가 알고 있는 부분과 동일한 것으로 그가 모르는 삶의 부분을 상상했다. 그는 그에게 말해지지 않은 것을 그에게 말해진 것을 통해 상상했다. 오데트가 그와 함께 있을 때, 그들이 다른 사람이 저지른 부적절한 행동이나 느낀 부적절한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그녀는 그것들을 자신의 미덕을 근거로 비난했다.

스완은 부모님이 항상 강조하던 가치관을 듣고 자랐고, 그것을 굳게 지켰다. 오데트는 꽃을 정리하고 차를 마시며 스완의 일에 관심을 보였다. 스완은 이러한 오데트의 습관을 그녀의 삶 전체에 적용했고, 그녀가 자신과 떨어져 있는 모습을 상상할 때면 이러한 행동들을 떠올렸다. 누군가 그에게 오데트의 실제 모습, 혹은 오랫동안 함께 있었지만 다른 남자와 있을 때의 모습을 묘사했다면, 그는 고통스러워했을 것이다. 그 이미지가 너무나 그럴듯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매춘부들을 찾아다니고, 여자들과 난잡한 짓을 하고, 천박한 창녀의 추악한 삶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황당한 망상인가. 다행히도 상상 속의 국화꽃, 연이은 차 마시기, 고귀한 분노는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

때때로 스완은 오데트에게 누군가 그녀가 하는 모든 일을 자신에게 악의적으로 말해준다고 넌지시 말했다. 그리고 우연히 알게 된 중요하지 않지만 사실인 세부사항을 적절히 활용하여, 마치 그것이 오데트의 삶을 완벽하게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새어나온 유일한 조각인 것처럼 행동했다. 그는 그녀로 하여금 자신이 실제로는 알지 못하고 의심조차 하지 않는 일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스완이 자주 오데트에게 진실을 왜곡하지 말라고 간청했던 것은, 의식했든 그렇지 않든, 오데트가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말해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물론 스완이 오데트에게 말했듯이 그는 진실성을 사랑했지만, 그것은 마치 매춘부가 정부의 삶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따라서 그의 진실성에 대한 사랑은 이해관계가 없지 않았기에 그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지 못했다. 그가 소중히 여기는 진실은 오데트가 그에게 말해줄 진실이었다. 하지만 정작 스완 자신은 그 진실을 얻기 위해 거짓말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오데트에게 거짓말이 모든 인간을 타락으로 이끈다고 끊임없이 말하면서도 말이다. 결국 스완은 오데트만큼이나 거짓말을 했는데, 그것은 그가 그녀보다 더 불행했지만 이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데트는 스완이 자신이 했던 일들을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화가 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행동들 때문에 굴욕감을 느끼고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말이다.

어느 날, 질투의 발작에 다시 사로잡히지 않고 가장 긴 평온의 시기를 보내던 중에, 그는 저녁에 라움 공작 부인과 함께 극장에 가기로 했다. 그는 신문을 펴서 무엇을 공연하는지 찾아보다가 테오도르 바리에르의 ‘대리석 소녀들’이라는 제목을 보고 너무나 충격을 받아 몸을 뒤로 물리고 고개를 돌렸다. 무대 조명에 비추어진 것처럼, 그가 자주 보아 구별할 수 없게 된 ‘대리석’이라는 단어가 새로운 자리에 놓여 갑자기 다시 보이게 되었고, 오데트가 그에게 예전에 들려준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다. 그것은 그녀가 베르뒤랭 부인과 함께 산업궁전 살롱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었다. 베르뒤랭 부인이 그녀에게 “조심해, 난 네가 대리석이 아니라는 걸 잘 알아. 너를 녹여버릴 수 있을 거야.”라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오데트는 그것이 단순한 농담이었다고 단언했고, 그는 그때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는 지금보다 그녀를 더 신뢰했었다. 그리고 마침 익명의 편지는 그런 종류의 사랑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다. 그는 감히 신문을 쳐다보지 못한 채 펼쳐서 ‘대리석 소녀들’이라는 단어가 보이지 않도록 페이지를 넘겼고, 기계적으로 지방 소식을 읽기 시작했다. 영국 해협에 폭풍이 있었고, 디에프, 카부르, 뵈즈발에 피해가 보고되었다. 그는 즉시 다시 몸을 뒤로 물렸다.

뵈즈발이라는 이름이 그 지역의 다른 마을인 뵈즈빌을 떠올리게 했는데, 이 이름은 하이픈으로 연결된 또 다른 이름인 브레오테와 함께 있었다. 그는 이 이름을 지도에서 자주 보았지만, 처음으로 그것이 익명의 편지에서 오데트의 연인이었다고 말한 그의 친구 브레오테 씨의 이름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브레오테 씨에 대한 비난은 그럴듯해 보였다. 하지만 베르뒤랭 부인에 관해서는 불가능했다. 오데트가 때때로 거짓말을 한다고 해서 그녀가 결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었다. 그녀가 베르뒤랭 부인과 나눈 대화, 그리고 그녀가 스완에게 직접 들려준 이야기에서 그는 삶의 경험이 부족하고 악덕을 모르는 여성들이 하는 쓸데없고 위험한 농담을 인식했다. 그것은 오데트와 같은 여성들의 순수함을 드러내는 것으로, 그들은 다른 여성에 대한 열정적인 애정을 느끼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반면에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로 인해 잠시 그에게 의심을 불러일으켰을 때 그것을 강력히 부인한 것은 그가 알고 있는 그의 정부의 취향과 기질에 부합했다.

하지만 그 순간, 시인이나 과학자에게 운율이나 관찰 하나를 가져다주는 것과 유사한 질투심의 영감으로, 스완은 처음으로 2년 전 오데트가 그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오, 베르뒤랭 부인, 지금 그녀는 나밖에 모르는 것 같아요. 난 그녀의 사랑이에요. 그녀는 나를 껴안고, 나와 함께 쇼핑하러 가자고 하고, 나를 ‘너’라고 부르라고 해요.” 그때 그는 이 말에서 악덕을 가장하기 위한 터무니없는 이야기와 어떤 관련도 보지 못했고, 오히려 따뜻한 우정의 증거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제 베르뒤랭 부인의 이 애정에 대한 기억이 갑자기 그녀의 저속한 대화에 대한 기억과 만났다. 그는 더 이상 그것들을 머릿속에서 분리할 수 없었고, 현실에서도 그것들이 뒤섞여 있는 것을 보았다. 애정이 그 농담들에 심각하고 중요한 무언가를 부여하고, 반대로 그 농담들은 애정의 순수함을 잃게 만들었다. 그는 오데트의 집으로 갔다. 그는 그녀에게서 멀리 떨어져 앉았다. 그는 그녀에게 키스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녀 안에서, 또는 자신 안에서 키스가 불러일으킬 것이 애정인지 분노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말없이 그들의 사랑이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그는 결심을 했다.

“오데트, 내 사랑, 내가 얼마나 혐오스러운지 알지만 당신에게 몇 가지 물어봐야 해요. 당신과 베르뒤랭 부인에 대해 내가 생각했던 것 기억나요? 그게 사실이었나요, 그녀와 또는 다른 누군가와?”

그녀는 입술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이는 사람들이 “기병대 행진을 보러 가시겠어요, 열병식에 참석하시겠어요?”라고 물었을 때 “가지 않겠다, 그건 지루할 것 같다”고 대답할 때 자주 사용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미래의 사건에 대해 습관적으로 사용되는 고개 젓기는 그로 인해 과거 사건의 부인에 어느 정도 불확실성을 섞는다. 게다가 그것은 도덕적 불가능함보다는 개인적 편의의 이유를 떠올리게 한다. 오데트가 이렇게 거짓이라는 표시를 하는 것을 보고, 스완은 그것이 아마도 사실일 수도 있다고 이해했다.

“내가 당신에게 말했잖아요, 당신도 잘 알고 있어요.” 그녀는 짜증 나고 불행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그래, 알겠어. 하지만 정말 확실해? ‘당신도 잘 알잖아’라고 말하지 말고, ‘난 어떤 여자와도 그런 짓을 한 적이 없어’라고 말해줘.”

그녀는 마치 수업 시간에 배운 것을 되뇌는 듯, 그의 말을 무시하려는 듯 냉소적인 어조로 말했다.

“난 어떤 여자와도 그런 짓을 한 적이 없어.”

“라게의 성모 메달에 맹세할 수 있어?”

스완은 오데트가 그 메달에 대해서는 거짓 맹세를 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오, 당신 때문에 너무 괴로워요.” 그녀는 그의 질문에서 벗어나려는 듯 몸을 움츠리며 외쳤다. “이제 그만해요. 오늘 당신 왜 이래요? 내가 당신을 싫어하게 만들려고 작정했나요? 봐요, 예전처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이게 당신의 보답이에요!”

하지만 그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마치 수술 중 발작으로 중단된 시술을 포기하지 않는 의사처럼 그는 말했다.

“오데트, 내가 조금이라도 당신을 탓한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에요.” 그는 설득력 있고 거짓된 부드러움으로 말했다. “난 내가 아는 것만 말해요. 그리고 난 항상 말하는 것보다 더 많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오직 당신만이 당신의 고백으로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고발한 것 때문에 내가 당신을 미워하게 된 이유를 완화시킬 수 있어요. 당신에 대한 내 분노는 당신의 행동 때문이 아니에요. 난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걸 용서해요. 하지만 당신의 거짓말,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계속 부인하는 당신의 터무니없는 거짓말 때문이에요. 내가 알고 있는 거짓된 것을 당신이 맹세하며 주장하는 걸 볼 때 어떻게 내가 계속 당신을 사랑할 수 있겠어요? 오데트, 우리 둘 다에게 고통스러운 이 순간을 더 이상 연장하지 말아요. 원한다면 1초 만에 끝낼 수 있어요. 당신은 영원히 해방될 거예요. 메달에 맹세하고 말해요, 그런 일을 한 적이 있는지 없는지.”

“하지만 난 모르겠어요.” 그녀는 화를 내며 외쳤다. “아마도 오래전에, 내가 하는 일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두세 번 정도 했을 수도 있어요.”

스완은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 왔다. 현실은 가능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마치 우리 머리 위 구름의 가벼운 움직임과 우리가 받는 칼부림이 아무 관계가 없는 것처럼. ‘두세 번’이라는 말이 그의 마음에 십자가를 새기듯 생생하게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이상한 일이었다. ‘두세 번’이라는 말, 단순한 말, 공중에 발설된 말, 멀리서 들려온 말이 이렇게 마음을 찢을 수 있다니. 마치 실제로 마음을 건드리기라도 한 듯, 마치 독을 삼킨 것처럼 아프게 할 수 있다니. 스완은 무의식중에 생트-외베르트 부인 집에서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이건 내가 본 것 중 돌아가는 탁자 다음으로 가장 강력한 거예요.” 그가 느끼는 이 고통은 그가 상상했던 그 어떤 것과도 닮지 않았다. 단지 가장 의심스러운 순간에도 그가 이렇게 멀리 악의 영역으로 상상하지 않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이것을 상상했을 때조차 그것은 모호하고 불확실했으며, ‘아마도 두세 번’이라는 말에서 흘러나온 그 특별한 공포와는 거리가 멀었고, 그가 알고 있던 모든 것과는 전혀 다른 이 특별한 잔인함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악의 원천인 오데트는 그에게 덜 소중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귀중해졌다. 마치 고통이 커질수록 이 여자만이 가진 진정제, 해독제의 가치도 함께 커지는 것처럼. 그는 그녀를 더 잘 돌보고 싶어졌다. 마치 갑자기 더 심각해진 병을 발견한 것처럼. 그는 그녀가 ‘두세 번’ 했다고 말한 그 끔찍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데트를 감시해야만 했다. 종종 사람들은 친구에게 애인의 잘못을 고발하면 오히려 그 친구를 애인에게 더 가까이 가게 만들 뿐이라고 한다. 그 말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 말을 믿는다면 얼마나 더 그럴까. 하지만 스완은 생각했다. 어떻게 그녀를 보호할 수 있을까? 그는 아마도 특정한 여자로부터는 그녀를 보호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수백 명의 다른 여자들이 있었다. 그는 베르뒤랭 부부 집에서 오데트를 찾지 못했던 그 저녁, 다른 사람을 소유하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를 깨달았던 순간의 광기를 이해했다. 다행히도 스완에게는, 새로운 고통이 침입자의 무리처럼 그의 영혼 속으로 들어왔을 때, 더 오래되고 더 부드럽고 조용히 일하는 본성의 기초가 존재했다. 마치 부상당한 기관의 세포들이 즉시 손상된 조직을 재생하려 하거나, 마비된 사지의 근육이 움직임을 되찾으려 하는 것처럼. 이 더 오래되고 더 토착적인 그의 영혼의 주민들은 잠시 동안 스완의 모든 힘을 이 어둡고 복구적인 작업에 쏟았다. 이는 회복기의 환자나 수술을 받은 사람에게 휴식의 환상을 주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평소와 달리 스완의 뇌에서 이런 탈진으로 인한 이완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마음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한 번 존재했던 모든 것들은 다시 창조되려는 경향이 있다. 마치 끝난 줄 알았던 경련이 다시 움직이는 죽어가는 동물처럼, 잠시 고통에서 벗어났던 스완의 마음에 같은 고통이 다시 같은 십자가를 그렸다. 그는 달빛이 비치는 저녁들을 떠올렸다. 그때 그는 빅토리아 마차에 길게 누워 라페루즈가로 가면서 연인의 감정을 즐기며 키웠다. 그것들이 필연적으로 만들어낼 독이 든 열매를 알지 못한 채.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단 1초밖에 지속되지 않았다. 그는 가슴에 손을 얹고 숨을 고르며 고통을 감추기 위해 미소 지었다. 그리고 다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의 질투심은 적도 하지 않을 만큼의 노력을 들여 그에게 이 일격을 가하게 했고, 그가 지금까지 겪어본 적 없는 가장 잔인한 고통을 알게 했다. 그의 질투심은 그가 충분히 고통받지 않았다고 여겼고, 더 깊은 상처를 주려 했다. 마치 사악한 신처럼, 그의 질투심은 스완에게 영감을 주고 그를 파멸로 몰아갔다. 처음에는 그의 잘못이 아니라 오직 오데트의 잘못으로 그의 고문이 악화되지 않았다.

“사랑하는 이여, 다 끝났어요. 내가 아는 사람이었나요?”

“아니에요, 맹세해요. 게다가 내가 과장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까지 가지 않았어요.”

그는 미소 지으며 다시 말했다.

“어떻게 해요?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 사람의 이름을 말해줄 수 없다니 안타까워요. 그 사람을 상상할 수 있다면 더 이상 그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 텐데. 당신을 위해 하는 말이에요. 그러면 더 이상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까. 상황을 상상할 수 있다는 건 너무나 안심이 되는 일이에요. 상상할 수 없는 것이 정말 끔찍하죠. 하지만 당신은 이미 너무 친절했어요. 더 이상 당신을 피곤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당신이 해준 모든 것에 진심으로 감사해요. 이제 끝났어요. 단 한 가지만 더 물어볼게요. ‘얼마나 오래전이었죠?’”

“오, 샤를, 당신 날 죽이려고 해요? 그건 정말 오래전 일이에요. 한 번도 다시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당신이 그런 생각을 다시 불러일으키려 하는 것 같아요. 당신에게 도움이 될까요?” 그녀는 무의식적인 어리석음과 의도적인 악의를 담아 말했다.

“아, 그냥 당신을 알게 된 이후였는지 궁금했을 뿐이에요. 하지만 당연한 일이죠. 여기서 일어났나요? 특정한 저녁을 말해줄 수 없나요? 그때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상상해볼 수 있게.”

그날 저녁, 오데트, 나의 사랑, 당신은 누구와 함께였는지 기억나지 않을 리가 없다는 걸 당신은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저는 모르겠어요. 아마도 숲에서였을 거예요. 당신이 섬으로 우리를 만나러 왔던 날 저녁이었죠. 당신은 라움 공작 부인 집에서 저녁을 먹고 왔어요.” 그녀는 자신의 진실성을 입증하는 정확한 세부사항을 제공할 수 있어 기뻐하며 말했다. “근처 테이블에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여자가 있었어요. 그녀가 내게 말했죠. ‘작은 바위 뒤로 가서 달빛이 물에 비치는 모습을 보러 가요.’ 처음엔 하품을 하며 대답했어요. ‘아니요, 저는 피곤해요. 여기가 좋아요.’ 그녀는 그런 달빛은 본 적이 없다고 장담했죠. 저는 ‘말도 안 돼요!’라고 말했어요.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죠.”

오데트는 이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중요성을 줄이고 싶어서인지, 혹은 굴욕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해서인지 거의 웃으며 이야기했다. 스완의 표정을 보고 그녀는 어조를 바꾸었다.

“당신은 비열해요. 당신은 저를 고문하고 거짓말하게 만드는 걸 즐기는군요. 당신이 저를 그냥 내버려두게 하려고 그런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

스완에게 가해진 이 두 번째 타격은 첫 번째보다 더 잔인했다. 그는 이것이 그렇게 최근의 일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눈에 숨겨져 있었던 것, 그가 알지 못했던 과거가 아니라 그가 너무나 잘 기억하는 저녁들, 오데트와 함께 보냈다고 믿었던 저녁들, 그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저녁들이 이제 회고적으로 배신적이고 끔찍한 무언가를 띠게 되었다. 그 가운데 갑자기 이 구멍이 벌어졌다. 숲 속 섬에서의 그 순간. 오데트는 총명하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러움이라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너무나 단순하게 이 장면을 이야기하고 흉내 내었기에 스완은 숨을 헐떡이며 모든 것을 보았다. 오데트의 하품, 작은 바위. 그는 그녀가 대답하는 소리를 들었다 – 슬프게도 즐겁게: “말도 안 돼요!!!” 그는 그녀가 오늘 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며, 이 순간 더 이상의 새로운 폭로는 없을 것임을 느꼈다. 그는 침묵했다. 그는 그녀에게 말했다.

“나의 불쌍한 사랑, 용서해줘. 내가 너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는 걸 알아. 이제 끝났어. 더 이상 생각하지 않을게.”

하지만 그녀의 눈은 여전히 그가 알지 못하는 것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의 과거에 고정되어 있음을 그는 알았다. 그의 기억 속에서 단조롭고 달콤했던 그 과거는 흐릿해졌다. 하지만 지금은 라움 공작 부인 집에서의 저녁 식사 후, 달빛 아래 숲 속 섬에서의 그 순간이 상처처럼 그 과거를 찢어놓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삶을 흥미롭게 여기는 습관,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놀라운 것들을 감탄하는 습관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이 고통을 오래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믿을 만큼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자신에게 말했다. “삶은 정말 놀랍고 아름다운 놀라움을 예비하고 있어. 결국 악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널리 퍼져 있어. 여기 내가 신뢰했던 여자가 있어. 그녀는 너무나 순수하고 정직해 보였고, 설령 가벼운 여자였다 해도 그녀의 취향은 매우 정상적이고 건전해 보였어. 그런데 믿기 힘든 고발에 대해 그녀에게 물어보니, 그녀가 고백한 내용이 우리가 의심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드러내고 있어.” 하지만 그는 이런 초연한 관찰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그녀가 말한 것의 가치를 정확히 평가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이런 일들을 그녀가 자주 했는지, 앞으로도 반복될 것인지 결론을 내릴 수 있을지 알아보려 했다. 그는 그녀가 했던 말들을 되풀이했다. “난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죠”, “두세 번”, “말도 안 돼요!” 하지만 이 말들은 스완의 기억 속에서 무장 해제된 채로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각각은 칼을 들고 그에게 새로운 상처를 입혔다. 오랫동안, 마치 고통스러운 움직임을 매 순간 시도하지 않을 수 없는 환자처럼, 그는 “여기가 좋아요”, “말도 안 돼요!”라는 말들을 계속 되뇌었다. 하지만 고통이 너무 심해 멈춰야만 했다. 그는 항상 너무나 가볍게, 즐겁게 판단했던 행동들이 이제는 죽음에 이를 수 있는 병처럼 심각해졌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는 오데트를 감시해 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여자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그의 관점에서 볼 수 있을까? 그들은 오랫동안 그의 관점이었고 그의 쾌락적인 삶을 이끌어온 관점에 머물러 있지 않을까? 그들은 웃으며 말하지 않을까, “나쁜 질투쟁이, 다른 사람들의 즐거움을 빼앗으려고 하는군요.” 어떤 갑자기 내려진 함정을 통해 (이전에는 오데트에 대한 사랑에서 섬세한 즐거움만을 느꼈던 그가) 갑자기 지옥의 새로운 원으로 떨어져 그곳에서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을지 알 수 없게 된 것일까. 불쌍한 오데트! 그는 그녀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녀는 절반만 죄가 있을 뿐이었다. 그녀가 거의 어린 나이에 니스에서 자신의 어머니에 의해 부유한 영국인에게 넘겨졌다는 소문이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알프레드 드 비니의 ‘시인의 일기’에서 그가 예전에는 무관심하게 읽었던 이 구절들이 이제 얼마나 고통스러운 진실을 담고 있는가. “여자에 대한 사랑에 빠졌을 때, 이렇게 자문해봐야 해. 그녀는 어떤 환경에 있는가? 그녀의 삶은 어떠했는가? 인생의 모든 행복이 거기에 달려 있어.” 스완은 자신의 생각으로 철자를 맞춘 단순한 문구들, “말도 안 돼요!”, “난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죠”가 어떻게 그에게 그토록 고통을 줄 수 있는지 놀랐다. 하지만 그는 이것들이 단순한 문구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오데트의 이야기 동안 그가 겪었던 고통을 담고 있는, 그에게 다시 돌려줄 수 있는 구조물의 일부라는 것을 이해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그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알고 있었고, 심지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잊어버리고 용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들을 다시 떠올릴 때마다 옛 고통이 그를 오데트가 말하기 전의 상태로 되돌렸다. 무지하고 신뢰하는 상태로. 그의 잔인한 질투심은 오데트의 고백으로 인해 그를 아직 모르는 사람의 위치로 되돌려 놓았고, 몇 달이 지난 후에도 이 오래된 이야기는 여전히 그를 충격적인 폭로처럼 뒤흔들었다. 그는 자신의 기억력의 놀라운 재창조 능력에 감탄했다. 오직 나이가 들면서 이 생성기의 약화, 그 비옥함의 감소에서만 그는 자신의 고문에 대한 완화를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데트가 말한 단어들 중 하나가 그를 고통스럽게 하는 힘이 조금 고갈된 것처럼 보일 때, 그때까지 스완의 정신이 덜 주목했던 단어들 중 하나, 거의 새로운 단어가 다른 것들을 대신해 온전한 힘으로 그를 공격했다. 그가 라움 공작 부인 집에서 저녁을 먹은 밤의 기억은 고통스러웠지만, 그것은 단지 그의 고통의 중심일 뿐이었다. 그 고통은 주변의 모든 날들로 모호하게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의 기억 속 어느 지점을 건드리든, 베르뒤랭 부부가 자주 숲 속 섬에서 저녁을 먹었던 그 계절 전체가 그를 아프게 했다. 너무나 아프게 해서 점차 그의 질투심이 불러일으킨 호기심들은 새로운 고문을 스스로에게 가함으로써 만족시킬 수 있다는 두려움에 의해 중화되었다. 그는 오데트를 만나기 전에 그녀의 삶의 전 기간이 그가 모호하게 보았던 추상적인 기간이 아니라 특정한 해들로 이루어져 있고, 사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구체적인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것들을 알게 되면서, 그는 무색하고 유동적이며 견딜 만했던 과거가 유형의 추악한 모습을 띠고, 개별적이고 악마적인 얼굴을 갖게 될까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는 생각하기 귀찮아서가 아니라 고통받기 싫어서 계속해서 그것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부아 섬이나 로메 공주의 이름을 들어도 예전의 고통을 느끼지 않게 되길 바랐다. 그는 오데트에게 새로운 말들, 장소의 이름, 다른 상황들을 제공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아픔이 겨우 진정되었는데, 그것들이 다른 형태로 되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데트는 그가 알지 못하고, 이제는 알기를 두려워하는 것들을 무의식적으로 자발적으로 밝혀주곤 했다. 사실 오데트의 실제 삶과 스완이 그녀의 연인이라고 믿었고, 지금도 자주 믿고 있는 비교적 순수한 삶 사이의 간극, 그 간극의 크기를 오데트는 알지 못했다. 악덕에 물든 사람은 자신의 악덕을 의심받고 싶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 항상 동일한 덕을 가장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계속 자라나는 악덕이 자신을 정상적인 삶의 방식에서 얼마나 멀어지게 하는지 가늠할 수 없다. 오데트의 정신 속에서 스완에게 숨기는 행동들의 기억과 함께 살면서, 다른 것들도 점차 그 영향을 받아 오염되었지만, 그녀는 그것들에서 이상한 점을 찾지 못했고, 그것들이 그녀가 살아가는 특별한 환경에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그것들을 스완에게 이야기하면, 그는 그것들이 드러내는 환경의 폭로에 경악했다.

어느 날 그는 오데트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그녀가 중매인을 만난 적이 있는지 물어보려 했다. 사실 그는 그렇지 않다고 확신했다. 익명의 편지를 읽고 그의 지성에 그런 추측이 생겼지만, 그것은 기계적인 방식이었다. 그의 지성에서 그것은 어떤 믿음도 만나지 못했지만, 사실 그곳에 남아 있었고, 스완은 순전히 물질적이지만 여전히 성가신 의심의 존재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데트가 그것을 뿌리뽑기를 바랐다. “오! 아니에요.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 건 아니에요.” 그녀는 스완에게 더 이상 정당해 보이지 않을 수 있는 허영심의 만족을 미소로 드러내며 덧붙였다. “어제도 한 여자가 2시간 넘게 절 기다렸어요. 그 여자는 어떤 값이든 제안했죠. 어떤 대사가 그녀에게 ‘당신이 그녀를 데려오지 않으면 나는 죽겠소’라고 말했대요. 그들은 제가 외출했다고 말했고, 결국 제가 직접 가서 그녀에게 떠나라고 말해야 했어요. 당신이 내가 그녀를 어떻게 대했는지 봤으면 좋았을 텐데, 옆방에서 들은 내 하녀가 내가 소리를 지르는 걸 들었대요. ‘내가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잖아요! 그냥 그런 생각이에요, 그건 내 마음에 들지 않아요. 난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자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돈이 필요하다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문지기는 더 이상 그녀를 들여보내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어요. 내가 시골에 있다고 말할 거예요. 아, 당신이 어딘가에 숨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당신이 만족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내 사랑. 당신의 작은 오데트가 사람들이 그렇게 미워할 만하다고 생각하더라도 좋은 면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게다가 그녀의 고백조차도, 스완이 이미 발견했다고 생각하는 잘못에 대해 그녀가 고백할 때조차, 스완에게는 새로운 의심의 출발점이 되었을 뿐, 옛 의심을 종식시키지 못했다. 그것들은 결코 이전의 의심과 정확히 비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데트가 고백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모두 제거했다 해도, 부수적인 것에 스완이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무언가가 남아 있었고, 그것이 그를 새로움으로 압도하며 질투의 문제를 새롭게 바꿀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이러한 고백들을 그는 더 이상 잊을 수 없었다. 그의 영혼은 그것들을 실어 나르고, 내던지고, 흔들었다, 마치 시체처럼. 그리고 그의 영혼은 그것들로 인해 중독되었다.

한번은 그녀가 파리-무르시아 축제 날 포르슈빌이 그녀를 방문했다고 말했다. “뭐라고? 당신은 그를 이미 알고 있었어?” “아, 그래요, 맞아요.” 그는 자신이 그것을 몰랐던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바로 정정했다. 그리고 갑자기 그는 파리-무르시아 축제 날, 그가 그녀에게서 받아 소중히 간직했던 편지를 받은 그날, 그녀가 아마도 포르슈빌과 황금의 집에서 점심을 먹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떨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렇지 않다고 맹세했다. “하지만 황금의 집은 내가 사실이 아니라고 알게 된 뭔가를 떠올리게 해.” 그는 그녀를 놀라게 하려고 말했다. “그래요, 당신이 프레보에서 절 찾았을 때 내가 거기서 나왔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가지 않았다는 거죠.” 그녀는 (그의 태도로 보아 그가 알고 있다고 믿으며) 대답했다. 그녀의 결단에는 냉소보다는 스완을 화나게 하지 않으려는 두려움이 더 컸고, 자존심 때문에 숨기고 싶어 했지만, 그녀가 솔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욕구도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잔인함이 없는 형리의 정확성과 힘으로 말했다. 오데트는 자신이 스완에게 주는 고통을 의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녀는 웃기 시작했다. 아마도 사실 굴욕감을 느끼거나 당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건 사실이에요. 난 황금의 집에 가지 않았어요. 포르슈빌의 집에서 나왔죠. 정말로 프레보에 있었어요. 그건 거짓말이 아니에요. 그가 거기서 절 만나 그의 판화를 보러 오라고 했어요. 하지만 누군가가 그를 만나러 왔어요. 난 황금의 집에서 왔다고 말했어요. 당신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서요. 봐요, 그건 오히려 당신을 위한 거였어요. 내가 잘못했다고 치죠. 적어도 솔직하게 말하잖아요. 파리-무르시아 축제 날 그와 점심을 먹었다는 것도 사실이라면 왜 말하지 않겠어요? 게다가 그때는 우리가 서로 잘 알지도 못했잖아요, 그렇죠, 사랑?” 그는 그 압도적인 말들로 인해 갑자기 무력해진 사람의 비겁함으로 그녀에게 미소 지었다. 그래서 그가 다시는 감히 생각하지 못했던 달들, 너무나 행복했던 그 달들에도, 그녀가 그를 사랑했던 그 달들에도, 그녀는 이미 그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처음으로 “카틀레야를 했던” 그 순간(황금의 집에서 나왔다고 말했던 그 첫 저녁)만큼이나, 스완이 의심하지 않았던 거짓말을 숨기고 있는 다른 많은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그녀가 한 번 이렇게 말한 것을 기억했다. “베르뒤랭 부인에게 내 드레스가 준비되지 않았다거나 내 택시가 늦게 왔다고 말하기만 하면 돼요. 항상 변명할 방법은 있어요.” 아마도 그에게도 여러 번, 그녀가 약속 시간을 변경하거나 지각을 설명하기 위해 슬쩍 던진 그런 말들이, 그가 그때는 의심하지 않았던 뭔가를 숨기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다른 사람과 만나기로 한 일을 설명하면서 “스완에게 내 드레스가 준비되지 않았다거나 택시가 늦게 왔다고 말하기만 하면 돼요. 항상 변명할 방법은 있어요”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스완의 가장 달콤한 기억들 아래에, 오데트가 예전에 그에게 했던 가장 단순한 말들 아래에, 그가 복음서의 말씀처럼 믿었던 말들 아래에, 그녀가 그에게 이야기했던 일상적인 행동들 아래에, 가장 익숙한 장소들 아래에,

그가 가장 익숙한 장소들, 재봉사의 집, 불로뉴 숲길, 경마장에서 그는 (가장 세밀한 일상에서도 여전히 여유와 공간을 남기고 특정 행동을 숨길 수 있는 그 시간의 잉여분에 숨겨진) 거짓말의 가능성과 비밀스러운 존재가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그에게 가장 소중했던 모든 것을 역겨운 것으로 만들었다. 그의 최고의 저녁 식사들, 라 페루즈 거리 자체도, 오데트가 그에게 말했던 시간과는 다른 시간에 항상 떠나야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황금의 집에 관한 고백을 들었을 때 느꼈던 어두운 공포를 조금씩 퍼뜨렸고, 니느웨의 황폐 속 불결한 짐승들처럼 그의 과거를 돌덩이 하나하나 흔들어놓았다. 이제 그의 기억이 황금의 집이라는 잔인한 이름을 말할 때마다 그가 등을 돌리는 것은, 생트외베르트 부인의 저녁 모임에서처럼 최근에 잃어버린 행복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방금 알게 된 불행 때문이었다. 그리고 황금의 집이라는 이름에 대해서도, 불로뉴 숲의 섬이라는 이름과 마찬가지로, 점차 스완을 고통스럽게 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가 우리의 사랑, 우리의 질투라고 믿는 것은 연속적이고 분할할 수 없는 동일한 열정이 아니다. 그것들은 무수한 연속적인 사랑들, 서로 다른 질투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것들은 덧없지만 끊임없는 다수로 인해 연속성의 인상, 통일성의 환상을 준다. 스완의 사랑의 삶, 그의 질투의 충실함은 죽음, 불충실함, 무수한 욕망들, 무수한 의심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모든 것의 대상은 오데트였다. 만약 그가 그녀를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면, 죽어가는 것들이 다른 것들로 대체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데트의 존재는 계속해서 스완의 마음에 애정과 의심을 번갈아 가며 심어주었다. 어떤 저녁들 그녀는 갑자기 그와 함께 있을 때 그가 즉시 이용해야 한다고 가혹하게 경고하는 친절함을 보였다. 몇 년 동안 그것이 다시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즉시 그녀의 집으로 돌아가 “카틀레야를 하러” 가야 했다. 그리고 그녀가 주장하는 그에 대한 이 욕망은 너무나 갑작스럽고, 너무나 설명할 수 없고, 너무나 강압적이었으며, 그녀가 그에게 나중에 베푸는 애무는 너무나 과시적이고 비정상적이어서, 이 잔인하고 진실성 없는 애정은 스완에게 거짓말이나 악의만큼이나 슬픔을 안겨주었다.

어느 날 저녁, 그녀가 그에게 내린 명령에 따라 그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평소의 냉담함과 대조되는 열정적인 말들로 키스를 섞었다. 그는 갑자기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그는 일어나 도처를 찾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고, 그녀 옆에 다시 자리를 잡을 용기가 없었다. 그러자 그녀는 극도의 분노로 꽃병을 깨뜨리며 스완에게 말했다. “너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리고 그는 그녀가 질투심을 자극하거나 욕정을 불러일으키려고 누군가를 숨겼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때때로 그는 사창가에 가서 그녀에 대해 무언가를 알아내려고 했지만, 그녀의 이름을 언급할 용기는 없었다. “당신 마음에 들 작은 아가씨가 있어요,” 포주가 말했다. 그리고 그는 한 시간 동안 그가 더 이상의 행동을 하지 않는 것에 놀란 어떤 불쌍한 소녀와 슬프게 대화를 나누었다. 아주 젊고 매력적인 소녀가 어느 날 그에게 말했다. “제가 원하는 건 친구를 찾는 거예요. 그러면 그는 확신할 수 있을 거예요. 저는 더 이상 다른 사람과 함께 가지 않을 거예요.” “정말로 여자가 사랑받는 것에 감동하고 결코 배신하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니?” 스완이 불안하게 물었다. “물론이죠! 성격에 달렸어요!” 스완은 이 소녀들에게 라움 공주가 좋아할 만한 말들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를 찾고 있는 소녀에게 그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귀여워, 네 허리띠 색깔과 같은 파란 눈을 했구나.” “당신도 파란 커프스를 하고 계시네요.” “우리가 이런 장소에서 이렇게 멋진 대화를 나누다니! 내가 너를 지루하게 하진 않니? 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아뇨, 저는 시간이 많아요. 당신이 저를 지루하게 했다면 그렇다고 말했을 거예요. 오히려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아요.” “매우 기쁘군. 우리가 정말 즐겁게 대화하고 있지 않나?” 그가 막 들어온 포주에게 말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얼마나 점잖은지! 이제 사람들이 제 집에 와서 대화를 나누는군요. 왕자님도 얼마 전에 말씀하시길, 여기가 부인의 집보다 낫대요. 지금 세상의 여자들은 모두 별난 짓을 한다더군요. 정말 스캔들이에요! 이제 가보겠습니다. 저는 신중한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그녀는 파란 눈을 가진 소녀와 스완을 남겨두었다. 하지만 곧 그는 일어나 작별 인사를 했다. 그녀는 그에게 무관심했고, 오데트를 알지 못했다.

화가가 아팠을 때, 코타르 박사는 그에게 해상 여행을 권했다. 몇몇 충실한 사람들이 그와 함께 떠나겠다고 말했다. 베르뒤랭 부부는 혼자 남겨지는 것을 견딜 수 없어 요트를 빌렸고, 나중에는 그것을 구입했다. 그래서 오데트는 자주 크루즈 여행을 했다. 그녀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을 때마다 스완은 그녀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하고 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이 정신적 거리가 물리적 거리에 비례하는 것처럼, 오데트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자마자 그는 그녀를 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한번은 단 한 달만 떠난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도중에 유혹을 받았든, 아니면 베르뒤랭 씨가 아내를 기쁘게 하려고 은밀히 일을 꾸며놓고 충실한 사람들에게 조금씩 알려주었든, 알제에서 튀니스로, 그리고 이탈리아로, 그리스로, 콘스탄티노플로, 소아시아로 갔다. 여행은 거의 1년 동안 계속되었다. 스완은 완전히 평온하고 거의 행복했다. 베르뒤랭 씨가 피아니스트와 코타르 박사에게 한 사람의 고모와 다른 사람의 환자들이 그들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으며, 어쨌든 베르뒤랭 부인이 혁명 중이라고 주장하는 파리로 코타르 부인이 돌아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설득하려 했지만, 그는 콘스탄티노플에서 그들에게 자유를 돌려주어야 했다. 그리고 화가는 그들과 함께 떠났다.

이 세 여행자가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느 날, 스완은 룩셈부르크 공원으로 가는 옴니버스를 타고 볼일을 보러 갔다. 그는 코타르 부인과 마주 앉게 되었는데, 그녀는 ‘요일’ 방문을 위해 정장을 하고 있었다. 모자에는 깃털이 달려 있었고, 실크 드레스, 머프, 파라솔, 명함 지갑, 그리고 깨끗이 닦은 흰 장갑을 끼고 있었다. 이런 차림으로, 날씨가 좋을 때는 한 구역의 집에서 다른 집으로 걸어 다녔지만, 다른 구역으로 갈 때는 옴니버스를 갈아타고 이용했다. 처음 몇 순간 동안, 여성의 타고난 친절함이 소시민의 경직성을 뚫고 나오기 전에, 그리고 스완에게 베르뒤랭 부부에 대해 언급해야 할지 확신하지 못한 채, 그녀는 매우 자연스럽게 느리고 어색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때때로 옴니버스의 우르르 소리에 완전히 덮여버리는 목소리로, 하루에 25개의 집 계단을 오르내리며 듣고 반복하는 말들 중에서 선택된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께 여쭙지 않겠습니다. 유행에 밝은 분이시니 미를리통에서 마샤르의 초상화를 보셨겠죠. 온 파리가 떠들썩하답니다. 어떠세요? 선생님은 찬성하시는 쪽인가요?”

스완이 그 초상화를 보지 않았다고 대답하자, 코타르 부인은 그의 기분을 상하게 했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아, 그것 참 잘 되었군요. 적어도 당신은 솔직히 인정하시는군요. 마샤르의 초상화를 보지 않았다고 해서 불명예스럽게 여기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당신의 그런 태도가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자, 제가 그 초상화를 봤는데, 의견이 분분하더군요. 약간 너무 다듬어졌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생크림 같다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저는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우리 친구 비슈의 파란색과 노란색 여인들과는 닮지 않았죠.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당신은 제가 그다지 세기말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실 거예요. 하지만 저는 제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할 뿐이에요. 저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물론 제 남편의 초상화에 있는 장점들은 인정해요. 평소에 그가 그리는 것보다는 덜 이상하지만, 파란 콧수염을 그리게 했더군요. 반면에 마샤르는! 제가 지금 방문하려는 친구의 남편이 (그래서 당신과 함께 가는 큰 기쁨을 누리게 되었죠) 만약 아카데미에 선출된다면 (그는 박사님의 동료 중 한 명이에요) 마샤르에게 초상화를 그리게 하겠다고 약속했어요. 정말 멋진 꿈이죠! 제게는 르루아를 더 좋아한다는 다른 친구가 있어요. 저는 그저 문외한일 뿐이고, 르루아가 기술적으로는 더 뛰어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초상화의 첫 번째 자질은, 특히 10,000프랑이나 들었다면, 닮은 것이어야 하고 그것도 보기 좋게 닮은 것이어야 해요.”

코타르 부인은 자신의 깃털 장식의 높이, 명함 지갑의 숫자, 장갑에 세탁소에서 잉크로 쓴 작은 번호, 그리고 스완에게 베르뒤랭 부부에 대해 말하는 것의 당혹감에서 영감을 받아 이런 말을 했다. 그녀는 운전사가 그녀를 내려줄 보나파르트 거리 모퉁이까지 아직 멀었다는 것을 보고, 그녀의 마음이 권하는 다른 말들을 들었다.

“선생님, 우리가 베르뒤랭 부인과 여행하는 동안 귀가 울렸겠어요. 당신 얘기만 했거든요.”

스완은 매우 놀랐다. 그는 베르뒤랭 부부 앞에서 자신의 이름이 결코 언급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코타르 부인은 덧붙였다. “크레시 부인도 거기 있었어요. 그것으로 충분해요. 오데트가 어디 있든 당신 얘기를 하지 않고는 오래 있지 못해요. 그리고 당신은 그게 나쁜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하시죠. 뭐라고요! 의심하시나요?” 그녀는 스완의 회의적인 몸짓을 보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확신의 진실성에 휩싸여, 그녀는 이 말을 단지 친구들 사이의 애정을 말할 때 쓰는 의미로만 사용했다.

“하지만 그녀는 당신을 숭배해요! 아, 그녀 앞에서 당신에 대해 그렇게 말하면 안 될 것 같아요! 큰일 나겠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예를 들어 그림을 보면 그녀는 이렇게 말해요. ‘아, 그가 여기 있다면 그게 진품인지 아닌지 말해줄 수 있을 텐데. 그런 일에는 그만한 사람이 없어요.’ 그리고 계속해서 물어봐요. ‘지금 그가 뭘 하고 있을까? 조금이라도 일을 했으면 좋겠어. 재능 있는 사람이 그렇게 게으르다니 안타까워. (용서하세요, 그렇죠?)’ 지금 그를 보고 있어요. 우리 생각을 하고 있겠죠. 우리가 어디 있는지 궁금해하고 있을 거예요.’ 그녀가 한 말 중에 제가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 것이 있어요. 베르뒤랭 씨가 그녀에게 말했어요. ‘하지만 당신이 그와 800리나 떨어져 있는데 어떻게 그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나요?’ 그러자 오데트가 대답했죠. ‘친구의 눈에는 불가능한 것이 없어요.’ 정말이에요, 당신을 아첨하려고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당신에게는 정말 좋은 친구가 있어요. 많은 사람이 그런 친구를 갖지 못해요. 게다가 말씀드리자면, 당신이 모르신다면 당신이 유일한 사람이에요. 베르뒤랭 부인이 마지막 날 (당신도 알다시피 출발 전날에는 더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되죠) 저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오데트가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우리가 그녀에게 하는 말은 스완 씨가 그녀에게 할 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오, 세상에, 운전사가 저를 세우네요. 당신과 이야기하느라 보나파르트 거리를 지나칠 뻔했어요… 제 깃털 장식이 곧은지 봐주시겠어요?”

코타르 부인은 스완에게 흰 장갑을 낀 손을 내밀어 그녀의 머프에서 꺼냈다. 그 손에서 편지와 함께 버스 안에 가득 찬 고급스러운 삶의 모습이 새어 나왔고, 그것은 세탁소 냄새와 뒤섞였다. 그리고 스완은 그녀에 대한 애정이 넘쳐났다. 베르뒤랭 부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그리고 거의 오데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그가 오데트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더 이상 고통과 섞여 있지 않아서 거의 사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승강대에서 그녀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용감하게 보나파르트 거리로 들어섰고, 깃털 장식을 높이 들고, 한 손으로는 치마를 들어 올리고 다른 손으로는 우산과 번호가 보이는 명함 지갑을 들고 있었으며, 머프를 앞에서 흔들고 있었다.

스완이 오데트에 대한 병적인 감정에 맞서기 위해, 코타르 부인은 남편보다 더 뛰어난 치료사로서 스완 곁에 다른 감정들을 접목시켰다. 정상적인 감사와 우정의 감정들이 스완의 마음속에서 오데트를 더 인간적으로 만들 것이라고 믿었다. (다른 여성들도 스완에게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오데트를 다른 여성들과 더 비슷하게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결국 스완이 평화로운 애정으로 사랑받는 오데트로의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코타르 부인은 생각했다. 그녀는 어느 날 저녁 화가의 집에서 열린 파티 후 포르슈빌과 함께 스완을 데리고 오렌지 주스를 마시러 갔고, 스완은 그녀와 함께라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스완은 언젠가 오데트에 대한 사랑이 식을 것이라는 생각에 두려워하며 자신의 사랑이 시작될 때부터 경계하고 그것을 붙잡아두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의 사랑이 약해지면서 동시에 사랑에 빠져 있고 싶어 하는 욕망도 약해졌다. 우리는 변할 수 없다. 즉, 더 이상 자신이 아닌 사람의 감정에 계속 매달리며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때때로 스완은 신문에서 오데트의 연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남자들 중 한 명의 이름을 보면 질투심을 느꼈다. 하지만 그 질투심은 매우 가벼웠고, 그것은 스완이 아직 완전히 그 시기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했다. – 그가 너무나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너무나 관능적인 방식으로 느꼈던 그 시기를. 그리고 우연히 그 시기의 아름다움을 멀리서 잠깐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질투심은 오히려 그에게 즐거운 자극을 주었다. 마치 우울한 파리지앵이 베네치아를 떠나 프랑스로 돌아갈 때, 마지막 모기 한 마리가 이탈리아와 여름이 아직 멀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스완은 막 떠나온 그의 삶의 특별한 시기에, 그가 아직 할 수 있을 때 그곳에 머물려고 노력하거나 적어도 그것을 분명히 보려고 할 때, 이미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막 떠나온 그 사랑을 사라질 풍경처럼 바라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우리가 이중적인 존재가 되어 더 이상 소유하지 않은 감정의 진실된 모습을 스스로에게 보여주는 것은 매우 어렵다. 곧 스완의 뇌에 어둠이 깔리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고, 그는 더 이상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안경을 벗고 렌즈를 닦았다.

그는 안경을 통해 평소 모습을 보았다. 그는 조금 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중에도 시간은 충분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는 무관심하게 다시 몸을 움츠렸다. 마치 점점 더 빨리 고향을 멀리 떠나가는 기차 안에서 모자를 눈 위로 내려 잠들려는 졸린 여행객처럼, 그는 마지막 인사도 하지 않고 떠나겠다고 약속했던 그곳을 떠나고 있었다. 그 여행객이 프랑스에 도착해서야 깨어나는 것처럼, 스완은 우연히 포르슈빌이 오데트의 연인이었다는 증거를 발견했을 때, 더 이상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았다. 사랑은 이제 멀어졌고, 영원히 떠나버린 순간을 미리 알려주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오데트와 처음 키스하기 전에 그녀가 오랫동안 그에게 보여주었던, 그리고 그 키스로 바뀌게 될 얼굴을 기억 속에 새기려 했던 것처럼, 그는 적어도 생각으로나마 사랑과 질투를 불러일으키고 고통을 안겨주었던 오데트, 이제 다시는 보지 못할 오데트에게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는 착각했다. 그는 몇 주 후 한 번 더 그녀를 보게 될 것이었다.

꿈속 황혼에서 잠을 자며 그는 그녀를 보았다. 그는 베르뒤랭 부인, 코타르 박사, 페즈를 쓴 정체를 알 수 없는 젊은이, 화가, 오데트, 나폴레옹 3세, 그리고 자신의 할아버지와 함께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바다를 따라 때로는 아주 높이, 때로는 겨우 몇 미터 높이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계속해서 오르내리는 길을 걸었다. 이미 내려가고 있는 사람들은 아직 올라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았다. 남아있던 빛이 점점 약해지더니 곧 칠흑 같은 밤이 깔릴 것 같았다. 때때로 파도가 산책로 가장자리까지 덮쳤고 스완은 얼굴에 차가운 물방울이 튀는 것을 느꼈다. 오데트는 그에게 그것을 닦으라고 말했지만, 그는 할 수 없었고 그녀 앞에서 당황스러웠다. 잠옷 차림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어둠 때문에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베르뒤랭 부인이 놀란 눈으로 오랫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그 동안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코가 길어지며 큰 콧수염이 생기는 것을 보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오데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뺨은 창백했고 작은 붉은 점들이 있었으며, 얼굴은 피곤해 보이고 눈 주위가 거뭇했다. 하지만 그녀는 눈물처럼 떨어질 것 같은 애정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그는 그녀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당장 그녀를 데리고 가고 싶었다.

갑자기 오데트가 손목을 돌려 작은 시계를 보더니 “가봐야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작별 인사를 했고, 스완에게 따로 어디서 그를 다시 만날지 말하지 않았다. 그는 감히 그녀에게 물어볼 수 없었다. 그녀를 따라가고 싶었지만, 그녀에게 등을 돌린 채 베르뒤랭 부인의 질문에 미소 지으며 대답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의 심장은 끔찍하게 뛰었고, 오데트를 미워했다. 조금 전까지 그토록 사랑했던 그녀의 눈을 찌르고 싶었고, 생기 없는 뺨을 짓이기고 싶었다. 그는 베르뒤랭 부인과 계속 올라갔다. 즉, 매 걸음마다 반대 방향으로 내려가는 오데트에게서 멀어져 갔다. 1초 후 그녀가 떠난 지 이미 여러 시간이 지났다. 화가는 나폴레옹 3세도 그녀가 떠난 직후에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분명 미리 약속이 되어 있었을 겁니다. 예의상 함께 작별 인사를 하지 않으려고 했겠죠. 그녀는 그의 정부입니다.” 정체불명의 젊은이가 울기 시작했다. 스완은 그를 위로하려 했다. “결국 그녀가 옳아요.” 그의 눈물을 닦아주며 페즈를 벗겨 편하게 해주면서 말했다. “내가 열 번이나 그렇게 조언했잖아요. 왜 슬퍼하세요? 그녀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었죠.” 이렇게 스완은 자신에게 말하고 있었다. 처음에 알아보지 못했던 그 젊은이도 역시 그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소설가들처럼 그는 자신의 성격을 두 인물로 나누어 놓았다. 꿈을 꾸는 사람과 페즈를 쓴 채 눈앞에 보이는 사람이었다.

나폴레옹 3세는 흐릿한 연상 작용과 남작의 평소 모습과 훈장을 걸친 모습 때문에 포르슈빌이라는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꿈속에 존재하는 인물이 그에게 나타내고 상기시키는 모든 것은 포르슈빌이었다. 잠든 스완은 불완전하고 변화무쌍한 이미지에서 잘못된 결론을 이끌어냈다. 그는 일시적으로 강력한 창조력을 지녀 단순 분열로 스스로를 재생산했다. 마치 하등 생물처럼 말이다. 그는 자신의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온기로 잡고 있다고 생각하는 낯선 손의 움푹 파인 곳을 만들어냈다. 아직 의식하지 못한 감정과 인상으로 논리적 연쇄를 통해 스완의 꿈속에서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거나 깨어나게 할 필요한 인물을 제때 등장시키는 사건들을 만들어냈다. 갑자기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렸고, 경종이 울렸다. 주민들이 불타는 집에서 뛰쳐나와 달려갔다. 스완은 파도 소리를 들었고, 가슴에서 불안감으로 인해 심장이 마찬가지로 격렬하게 뛰는 소리를 들었다. 갑자기 심장 박동이 빨라졌고, 설명할 수 없는 고통과 구토감을 느꼈다. 화상을 입은 농부가 지나가며 소리쳤다. “샤를뤼스에게 가서 오데트가 어디서 밤을 보냈는지 물어보세요. 그는 전에 그녀와 관계가 있었고, 그녀는 그에게 모든 걸 말합니다. 그들이 불을 질렀어요.” 그의 시종이 그를 깨우러 왔다.

“나리, 8시입니다. 미용사가 왔습니다. 한 시간 후에 다시 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말들은 스완이 빠져 있던 수면의 물결 속으로 들어가면서 의식에 도달하기 전에 왜곡되었다. 마치 물속에서 빛줄기가 태양처럼 보이는 것처럼, 조금 전 초인종 소리가 그 심연 속에서 종소리로 변해 화재 장면을 만들어냈던 것과 같았다. 그러나 눈앞의 풍경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눈을 떴고, 마지막으로 멀어지는 파도 소리를 들었다. 그는 뺨을 만졌다. 건조했다. 하지만 그는 차가운 물의 감촉과 소금 맛을 기억했다. 그는 일어나 옷을 입었다. 그는 전날 밤 할아버지에게 오후에 콩브레에 가겠다고 편지를 썼기 때문에 미용사를 일찍 오게 했다. 카브르메르 부인, 르그랑댕 양이 며칠간 그곳에 머물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젊은 얼굴의 매력과 오랫동안 가보지 못한 시골의 매력을 기억 속에서 연관 지으며, 그는 마침내 파리를 떠나 며칠 동안 여행을 가기로 결심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나게 되는 여러 우연한 기회들이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는 시기와 일치하지 않고, 그 시기를 앞서거나 뒤따를 수 있듯이, 우리 삶에서 나중에 우리를 기쁘게 할 존재의 첫 출현은 우리 눈에는 지나고 나서야 그것들이 경고나 예언의 가치를 지녔다고 회고적으로 여겨진다. 스완은 그를 다시 만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그 첫날 밤 극장에서 만난 오데트의 모습을, 그리고 지금은 프로베르빌 장군을 캉브르메르 부인에게 소개했던 생퇴베르트 부인의 저녁 모임을 이런 식으로 되돌아보곤 했다. 우리 삶의 이해관계는 너무나 다양해서 아직 존재하지 않는 행복의 이정표가 우리가 겪고 있는 슬픔의 악화 옆에 놓이는 일이 드물지 않다. 물론 이런 일은 스완에게 생퇴베르트 부인의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날 저녁 그가 다른 곳에 있었다면, 다른 행복들과 다른 슬픔들이 그에게 닥치지 않았을까? 그리고 나중에 그것들이 불가피했다고 여겨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에게 그랬던 것처럼 보였던 것은 일어났던 일이었고, 그는 삶의 풍부한 창의력을 감탄하고자 하는 마음과 무엇이 가장 바람직했을지와 같은 어려운 질문을 오래 붙들지 못하는 그의 정신 때문에, 그날 밤 겪었던 고통과 아직 짐작조차 못 했던 즐거움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가 너무 어려웠던 일종의 필연적인 연쇄를 보는 데 거의 이르렀다.

그가 깨어난 지 한 시간 후, 기차에서 머리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미용사에게 지시를 내리면서 그는 자신의 꿈을 다시 생각했다. 그는 오데트의 창백한 안색, 너무 여윈 뺨, 피곤한 표정, 충혈된 눈, 그가 오데트에 대한 지속적인 사랑을 오랫동안 잊게 만들었던 연속적인 애정 속에서 그가 더 이상 주목하지 않게 된 모든 것을, 그들의 관계 초기에 그가 받았던 첫인상을 그의 기억이 잠들어 있는 동안 정확한 감각을 찾아간 것을 마치 바로 옆에서 느낀 것처럼 다시 보았다. 그리고 그가 더 이상 불행하지 않을 때 그에게서 다시 나타나는 간헐적인 비열함과 함께, 그의 도덕성 수준도 같이 낮아지면서 그는 속으로 외쳤다. “내 인생의 몇 년을 낭비했군.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워했고, 내 가장 큰 사랑을 바쳤는데, 그건 나의 취향도 아니었던 여자를 위해서였어!”

제3부

지명들: 이름

불면의 밤에 내가 가장 자주 떠올리던 방들 중 어느 것도 콩브레의 방들, 즉 알갱이 같고 꽃가루 같으며 먹을 수 있고 경건한 분위기로 뿌려진 방들과 덜 닮았던 것은 없었다. 그것은 발벡 해변 대호텔의 방으로, 그 벽은 리폴린으로 칠해져 있어 마치 물이 파란 수영장의 매끄러운 벽처럼 맑고 푸르고 짭짤한 공기를 담고 있었다. 이 호텔의 설비를 맡았던 바이에른 출신 장식업자는 방의 장식을 다양화했고, 내가 머물게 된 방의 세 벽면을 따라 유리문이 달린 낮은 책장을 설치했다. 그 책장들이 차지한 위치에 따라, 그가 예상하지 못했던 효과로 인해, 변화무쌍한 바다 풍경의 이런저런 부분이 반사되어 밝은 해양 장식띠를 펼쳤고, 이는 마호가니 나무의 단단한 부분에 의해서만 중단되었다. 그래서 전체 방은 가구 ‘모던 스타일’ 전시회에서 볼 수 있는 모범적인 침실 중 하나처럼 보였다. 그곳에서는 거주자의 눈을 즐겁게 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예술 작품들로 장식되어 있었고, 그 작품들의 주제는 주택이 위치할 장소의 특성과 관련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 발벡은 내가 꿈꿔왔던 발벡과 전혀 달랐다. 폭풍우 치는 날, 바람이 너무 거세서 프랑수아즈가 나를 샹젤리제로 데려갈 때 기와가 머리에 떨어질까 봐 벽에서 너무 가까이 걷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며, 신문에 실린 큰 재난과 난파 소식을 한탄하며 말하던 그 발벡이었다. 나는 바다에서 폭풍우를 보는 것보다 더 큰 소원이 없었다. 아름다운 광경으로서가 아니라 자연의 실제 삶의 한 순간이 드러나는 것으로서 말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에게 아름다운 광경이란 내 즐거움을 위해 인위적으로 조합된 것이 아니라 필연적이고 불변하는 것, 즉 풍경의 아름다움이나 위대한 예술의 아름다움뿐이었다. 나는 내 자신보다 더 진실하다고 믿는 것, 즉 위대한 천재의 사상이나 자연이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를 드러낼 때의 힘 또는 우아함을 조금이라도 보여줄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호기심을 가지고 알고 싶어 했다. 어머니를 잃은 우리를 음성만을 따로 재생하는 축음기가 위로할 수 없듯이, 기계적으로 모방된 폭풍우는 나를 전시회의 조명 분수만큼이나 무관심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또한 폭풍우가 절대적으로 진실하기를 바랐고, 해안도 시의회가 최근에 만든 제방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해안이기를 바랐다. 게다가 자연은 그것이 내 안에 불러일으키는 모든 감정으로 인해 내게는 인간의 기계적 생산물과 가장 대조되는 것으로 보였다. 자연이 인간의 흔적을 덜 지닐수록 내 마음이 펼쳐질 공간을 더 많이 제공했다. 그런데 나는 르그랑댕이 언급했던 발벡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6개월 동안 안개의 수의와 파도의 물거품으로 뒤덮인, 수많은 난파로 유명한 그 음산한 해안”과 아주 가까운 해변이라고 말했다.

“그곳에서는,” 그가 말했다. “피니스테르에서보다도 더 (지금은 호텔들이 거기에 들어섰다 해도 땅의 가장 오래된 골격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발 아래에서 진정한 프랑스 땅의 끝, 유럽의 끝, 고대 땅의 끝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은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살아온 모든 어부들과 같은 어부들의 마지막 야영지로, 영원한 안개와 바다의 그림자의 왕국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콩브레에서 내가 가장 강한 폭풍우를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인지 알아보기 위해 스완 씨 앞에서 이 발벡 해변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물론 내가 발벡을 알고 있지요! 발벡 교회는 12세기와 13세기의 것으로, 아직 반은 로마네스크 양식인데, 아마도 노르만 고딕 양식의 가장 흥미로운 표본일 겁니다. 그리고 아주 독특해서 마치 페르시아 예술 같다고 할 수 있죠.” 그리고 그때까지 내게 단지 태고의 자연으로만, 위대한 지질학적 현상들과 동시대에 남아있는 것으로만, 대양이나 큰곰자리처럼 인류 역사의 밖에 있는 것으로만 보였던 이 장소들이, 고래들에게와 마찬가지로 중세라는 것이 없었던 야만적인 어부들과 함께, 갑자기 여러 세기의 연속성 속으로 들어가 로마네스크 시대를 알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내게 큰 매력이었다. 그리고 고딕 양식의 세잎 무늬가 봄이 되면 극지방의 눈 위에 별처럼 피어나는 연약하지만 생명력 있는 식물들처럼, 정해진 시간에 이 야생의 바위들을 장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만약 고딕 양식이 이 장소들과 사람들에게 그들에게 부족했던 규정을 가져다주었다면, 그들 역시 고딕 양식에 되돌려주는 규정이 있었다. 나는 이 어부들이 어떻게

중세 시대에 지옥의 해안에서, 죽음의 절벽 아래에서 그들이 시도했던 사회적 관계의 소극적이고 의심받지 않은 시도를 거기서 살아온 것 같았다. 그리고 고딕 양식은 이제 내가 그때까지 항상 상상했던 도시들에서 분리되어, 한 특정한 경우에 야생의 바위 위에서 어떻게 싹트고 꽃피웠는지를 볼 수 있게 되어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다. 나는 발벡의 가장 유명한 조각상들의 복제품을 보러 갔다. 양 같은 얼굴의 사도들, 현관의 성모 마리아상을 보고, 영원하고 짠 안개 속에서 그것들이 부조로 만들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쁨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그러면 2월의 폭풍우 치는 부드러운 저녁에, 바람은 – 내 방의 굴뚝만큼이나 세게 떨리게 하는 내 마음속에서, 발벡으로의 여행 계획을 불어넣었고 – 고딕 건축에 대한 욕망과 바다의 폭풍에 대한 욕망을 내 안에서 뒤섞었다.

나는 다음날 바로 1시 22분 열차를 타고 싶었다. 철도회사 광고나 여행 안내 책자에서 그 시간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시간은 마치 오후의 한 지점에 신비로운 표시를 새기는 것 같았다. 그 시간부터 시간은 여전히 저녁으로, 다음날 아침으로 이어졌지만, 나는 파리가 아닌, 기차가 지나가는 도시들 중 한 곳에서 그 시간을 맞이할 것이다. 왜냐하면 기차는 바요, 쿠탕스, 비트레, 케스탕베르, 퐁토르송, 발벡, 라니옹, 랑발, 브노데, 퐁타벵, 캥페를레에 정차했고, 그 이름들은 나에게 매력적인 여정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어느 곳 하나 포기할 수 없어서 어디를 더 선호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부모님이 허락만 해주신다면, 그날 저녁 서둘러 옷을 입고 떠나 새벽이 밝아올 무렵 발벡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거기서 나는 몰아치는 파도를 피해 페르시아 양식의 교회로 피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부활절 방학이 다가오고 부모님이 북부 이탈리아 여행을 약속하시자, 갑자기 발벡에 대한 모든 생각은 사라졌다. 이탈리아의 매력적인 봄 풍경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콩브레의 봄이 아닌, 피에솔레 들판을 백합과 아네모네로 뒤덮고 안젤리코의 그림처럼 금빛 배경으로 피렌체를 눈부시게 하는 봄이었다. 그때부터 빛, 향기, 색채만이 가치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음악에서 갑작스러운 조성 변화가 일어나는 것처럼, 내 감수성에 완전한 변화가 일어났다.

이후로는 계절의 변화를 기다릴 필요 없이, 단순한 대기의 변화만으로도 내 마음속에 계절의 변화가 일어났다. 왜냐하면 우리는 종종 한 계절에서 다른 계절의 하루를 발견하게 되고, 그것은 우리를 그 계절 속에서 살게 하고, 그 특별한 즐거움을 갈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마치 행복의 달력에서 떨어진 페이지를 제자리에 놓거나, 혹은 다른 장의 페이지를 제 차례보다 더 일찍 혹은 더 늦게 배치하는 것처럼, 우리의 꿈은 중단되었다.

하지만 과학이 자연 현상을 장악하고, 의지대로 생산하여 그 출현 가능성을 우리 손에 넣게 되면서, 이러한 자연 현상들은 더 이상 우리의 편안함이나 건강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발벡과 이탈리아에 대한 나의 꿈은 더 이상 계절과 날씨의 변화에만 종속되지 않게 되었다. 나는 발벡, 베네치아, 피렌체라는 이름만 발음해도 그 꿈을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그 이름들 안에는 결국 그 장소들이 내게 불어넣었던 욕망이 축적되어 있었다. 봄에도 책에서 발벡이라는 이름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폭풍우와 노르망 고딕 양식에 대한 욕망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폭풍우 치는 날에도 피렌체나 베네치아라는 이름은 내게 태양과 백합, 도제의 궁전과 산타 마리아 데이 피오리에 대한 욕망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이 이름들이 영원히 그 도시들에 대한 나의 이미지를 흡수했다면, 그것은 단지 그것을 변형시키고, 그것이 내 안에 다시 나타나는 것을 그들만의 법칙에 따르게 함으로써였다. 그 결과 그 이미지는 더욱 아름다워졌지만, 동시에 노르망디나 토스카나의 도시들이 실제로 될 수 있는 것과는 더욱 달라졌다. 상상력의 기쁨을 증폭시킴으로써 미래의 여행에서 실망감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 이름들은 지구의 특정 장소들에 대한 나의 생각을 고양시켰고, 그것들을 더 특별하게, 따라서 더 실제적으로 만들었다. 나는 그때 도시들, 풍경들, 기념물들을 잘라낸 그림들로 표현하지 않았다. 오히려 각각을 본질적으로 다른 것들과 다른 미지의 것으로, 내 영혼이 갈망하고 알게 되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표현했다.

그 이름들이 사람들이 가진 것과 같은 이름으로 지정되었을 때, 얼마나 더 개성적이 되었는가! 단어들은 우리에게 사물들의 작고 명확한 이미지를 제시한다. 마치 학교 벽에 걸려 있어 아이들에게 작업대가 무엇인지, 새가 무엇인지, 개미집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그림들처럼, 같은 종류의 모든 것들과 비슷하게 생각되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름들은 우리에게 사람들의 – 그리고 우리가 개인적이고 유일한 것으로 믿게 되는 도시들의 – 혼란스러운 이미지를 제시한다. 그것은 그들로부터, 그들의 밝거나 어두운 음색으로부터 색채를 끌어내어 균일하게 칠해진 이미지이다. 마치 포스터처럼, 사용된 과정의 한계나 장식가의 변덕으로 인해 하늘과 바다뿐만 아니라 배, 교회, 행인들까지도 파란색이나 빨간색으로 칠해진 것처럼 말이다.

파르마라는 이름은, 내가 샤르트뢰즈를 읽은 이후로 가장 가고 싶어했던 도시 중 하나였는데, 내게 조밀하고, 매끄럽고, 연보라색이고 부드럽게 나타났다. 누군가 내가 묵을 수 있는 파르마의 어떤 집에 대해 말한다면, 그들은 내게 조밀하고, 매끄럽고, 연보라색이고 부드러운 거처에 살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기쁨을 주었다. 그것은 이탈리아의 어떤 도시의 거처와도 관계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오직 공기가 순환하지 않는 파르마라는 이름의 무거운 음절과 내가 그것에 흡수시킨 모든 스탕달적인 부드러움과 제비꽃 반사광을 통해서만 그것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렌체를 생각할 때, 그것은 기적적으로 향기로운 도시였고 꽃 같았다. 왜냐하면 그곳은 백합의 도시라고 불렸고 그곳의 대성당은 산타 마리아 데이 피오리였기 때문이다.

발벡에 관해서는, 그것은 오래된 노르만 도자기처럼 토지의 색깔을 간직하고 있는 이름들 중 하나였다. 그 이름이 끌어내진 땅을 보면, 이미 사라진 어떤 관습이나 봉건적 권리, 과거의 장소 상태, 이제는 쓰이지 않는 발음 방식이 그 특이한 음절들을 형성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도착해서 카페오레를 대접할 여관 주인에게서도 그런 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의심치 않았다. 그는 나를 교회 앞 사나운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안내하며, 우화집에 나오는 인물처럼 논쟁적이고 엄숙하며 중세적인 모습을 보일 것이다.

건강이 좋아지고 부모님께서 허락만 해주신다면, 발벡에 머물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한 번쯤은 노르망디나 브르타뉴의 건축과 풍경을 보기 위해 그 1시간 22분짜리 기차를 타고 싶었다. 나는 상상 속에서 그 기차를 여러 번 탔다. 가장 아름다운 도시들에 멈추고 싶었지만, 아무리 비교해 봐도 개성 넘치는 존재들 중에서 어느 하나를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고귀한 붉은빛 레이스로 높이 솟아오른 바예, 꼭대기가 마지막 음절처럼 빛나는 오래된 금빛의 바예, 날카로운 액센트가 오래된 유리창을 검은 나무로 마름모꼴로 만든 비트레, 달걀 노른자색에서 진주빛 회색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람발, 노르망디 대성당인 쿠탕스와 그 마지막 이중모음이 기름지고 노랗게 버터탑을 덮은 모습, 시골스러운 침묵 속에서 마차와 파리 소리가 들리는 라니옹, 우스꽝스럽고 순진한 케스탕베르와 퐁토르송은 강가와 시적인 장소들로 가는 길에 흩뿌려진 하얀 깃털과 노란 부리 같았다. 강의 해초 사이로 끌려가려는 듯 겨우 묶여 있는 브노데, 가벼운 모자 날개가 운하의 푸른 물에 떨리며 비치는 하얀색과 분홍색의 퐁타벵, 그리고 중세 이후로 개울들 사이에서 속삭이며 은빛으로 빛나는 캥페를레는 거미줄 낀 유리창을 통과한 햇살이 무디어진 광택 있는 은색 끝으로 변한 것 같은 회색빛을 띠고 있었다.

이 이미지들은 또 다른 이유로도 거짓이었다. 그것들은 필연적으로 매우 단순화되어 있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내 상상력이 갈망하고 감각이 현재에서 불완전하고 즐겁지 않게 인식하는 것을 나는 이름들의 피난처에 가두어 두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내가 거기에 꿈을 축적했기에 그것들은 이제 내 욕망을 자석처럼 끌어당겼다. 하지만 이름들은 그리 넓지 않다. 겨우 도시의 주요 ‘볼거리’ 두세 가지를 그 안에 집어넣을 수 있을 뿐이었고, 그것들은 매개체 없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발벡이라는 이름 속에서, 마치 해수욕장에서 파는 돋보기가 달린 펜 속에서처럼, 나는 페르시아 양식의 교회 주변에서 솟아오르는 파도를 보았다.

아마도 이 이미지들의 단순화가 그것들이 나에게 미친 영향력의 원인 중 하나였을 것이다. 아버지가 어느 해 부활절 휴가를 피렌체와 베네치아에서 보내기로 결정하셨을 때, 피렌체라는 이름 안에 보통 도시들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집어넣을 자리가 없었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내가 조토의 천재성이라고 믿는 것의 본질과 어떤 봄의 향기들의 수정으로부터 초자연적인 도시를 만들어내야 했다. 기껏해야 – 이름 안에 공간만큼 많은 시간을 담을 수 없기 때문에 – 마치 조토의 그림들 중 일부가 같은 인물을 서로 다른 순간에 보여주듯이, 여기서는 침대에 누워 있고 저기서는 말에 오르려 하는 것처럼, 피렌체라는 이름은 두 구획으로 나뉘어 있었다. 한 구획에서는 건축적인 천개 아래에서 아침 햇살의 먼지 낀, 비스듬하고 점진적인 커튼이 부분적으로 겹쳐진 프레스코화를 바라보았다. 다른 구획에서는 (이름을 닿을 수 없는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내가 빠져들 실제적인 환경으로 여겼기에, 그 안에 가두어 둔 아직 살지 않은 삶, 온전하고 순수한 삶이 원시주의 작품들에서처럼 가장 물질적인 즐거움과 가장 단순한 장면들에 매력을 부여했으므로) 나는 키안티 와인과 과일이 기다리는 점심을 더 빨리 찾기 위해 수선화와 수선과 아네모네로 가득한 베키오 다리를 빠르게 건넜다. 이것이 (비록 내가 파리에 있었지만) 내가 보는 것이었고, 내 주변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우리가 갈망하는 나라들은 우리가 실제로 있는 나라보다 우리의 진정한 삶에서 매 순간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한다. 물론 그때 내가 “피렌체에 가기, 파르마에 가기, 피사에 가기, 베네치아에 가기”라는 말을 할 때 내 생각 속에 무엇이 있었는지 더 주의 깊게 살펴봤다면, 내가 보는 것이 결코 도시가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과는 전혀 다른 것, 겨울 오후의 끝자락에서만 살아온 인류에게 알려지지 않은 경이로움인 봄날 아침처럼 황홀한 것이라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이 비현실적이고 고정된, 언제나 같은 이미지들이 나의 밤과 낮을 채우며 이 시기의 내 삶을 그 이전의 시기들과 구분 지었다. (그 이전 시기들은 외부에서만 사물을 보는, 즉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관찰자의 눈에는 혼동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마치 오페라에서 멜로디 모티프가 대본만 읽어서는 짐작할 수 없는, 더구나 극장 밖에 머물러 흐르는 15분만 세고 있다면 전혀 의심할 수 없는 새로움을 도입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단순한 양의 관점에서도, 우리 삶에서 날들은 평등하지 않다. 나와 같은 약간 신경질적인 성격의 사람들은 날들을 지나가기 위해 자동차처럼 다른 ‘속도’들을 가지고 있다. 오르는 데 무한한 시간이 걸리는 험한 날들이 있고, 노래를 부르며 전속력으로 내려갈 수 있는 경사진 날들이 있다. 이 한 달 동안 – 내가 그것들이 불러일으키는 욕망이 마치 한 사람에 대한 사랑처럼 깊이 개인적인 무언가를 간직한 피렌체, 베네치아, 피사의 이미지들을 멜로디처럼 되풀이하며 그것에 싫증을 내지 않았던 한 달 동안 – 나는 그것들이 나와는 독립적인 현실에 상응한다고 믿기를 멈추지 않았고, 그것들은 나에게 천국에 들어가기 직전의 초기 기독교인이 품을 수 있는 만큼이나 아름다운 희망을 알게 해주었다. 그래서 감각 기관으로 꿈에 의해 만들어지고 감각으로 인식되지 않은 것을 보고 만지려는 모순에 신경 쓰지 않고 – 그것들이 알고 있는 것과 너무나 다르기에 감각 기관들에게는 더욱 유혹적이었다 – 이 이미지들의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내 욕망을 가장 불태웠다. 그것은 마치 그 욕망이 충족될 것이라는 약속 같았다. 내 고조된 감정이 예술적 즐거움에 대한 욕망을 동기로 삼고 있었지만, 안내서들은 미학 서적들보다 더 그것을 유지시켰고, 안내서들보다는 기차 시간표가 더 그랬다. 내 상상 속에서 가깝지만 닿을 수 없는 피렌체, 내 안에서 그곳까지의 여정이 실현 불가능하다면, 우회로를 통해, ‘육로’를 택해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감동했다. 물론 나는 그렇게 많은 가치를 부여하며 되뇌었다.

나는 베네치아가 “조르조네의 학교이자 티치아노의 거처이며, 중세 가옥 건축의 가장 완벽한 박물관”이라는 것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하지만 심부름을 나섰을 때 더욱 행복했다. 조기 봄이 지나고 다시 겨울 날씨가 찾아온 탓에 (우리가 콩브레에서 성주간에 늘 겪던 날씨였다) 나는 빠르게 걸었다. 대로변의 마로니에 나무들은 차가운 공기에 잠겨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을 맞이할 준비를 마친 듯, 굳어진 땅에서 억누르지 못할 초록빛을 밀어 올리고 있었다. 폰테 베키오는 이미 풍성한 히아신스와 아네모네로 뒤덮였을 것이고, 봄 햇살이 대운하의 물결을 짙은 청색과 에메랄드 빛으로 물들여 티치아노의 그림과 어울릴 것이라고 상상했다. 아버지가 기압계를 보며 추위를 한탄하면서도 가장 좋은 기차를 찾기 시작했을 때, 나는 더 이상 기쁨을 억누를 수 없었다. 점심 식사 후, 숯가루 날리는 실험실, 마법의 방에 들어가면 다음 날 아침 “벽옥으로 장식되고 에메랄드로 포장된” 대리석과 황금의 도시에서 깨어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더욱 행복했다. 그곳과 백합의 도시는 단순히 상상 속의 그림이 아니라, 파리에서 일정 거리에 떨어진 실제 존재하는 장소였다. 아버지가 “결국, 4월 20일부터 29일까지 베네치아에 머물다가 부활절 아침에 피렌체에 도착할 수 있겠구나”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도시들은 내게 더욱 실제가 되었다. 그 말씀은 두 도시를 단순히 추상적인 공간에서 끄집어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상상 속에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시간에서 끄집어낸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 도시들에 특정한 날짜를 할애했다. 그 날짜들은 그 도시들의 실제성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 유일무이한 날들은 사용함으로써 소비되고, 다시 돌아오지 않으며, 한 곳에서 보냈다면 다른 곳에서는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흰 조끼를 세탁소 아주머니가 가져다줄 월요일부터 시작되는 주간을 향해, 아직 존재하지 않던 이상적인 시간에서 두 여왕의 도시가 향하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가장 감동적인 기하학을 통해 그 도시들의 돔과 탑을 내 삶의 계획 속에 새겨 넣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기쁨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마침내 그곳에 도달했을 때 (그제서야 깨달은 것은, 조르조네의 프레스코화 반사로 붉게 물든 출렁이는 거리에서, 내가 그토록 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계속 상상했던 것처럼 “바다처럼 장엄하고 무서운, 피묻은 망토 주름 아래 청동빛 갑옷을 입은 사람들”이 다음 주 부활절 전날 베네치아를 거닐 것이 아니라, 내게 빌려준 산마르코 대성당의 큰 사진에서 삽화가가 성당 앞에 중절모를 쓰고 서 있는 것으로 그린 작은 인물이 바로 나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대운하는 아직 추울 테니, 혹시 모르니 겨울 외투와 두꺼운 재킷을 가방에 넣어가는 게 좋겠다.” 이 말을 듣자 나는 일종의 황홀경에 빠졌다. 그때까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것, 나는 정말로 “인도양의 암초 같은 자수정 바위” 사이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초인적인 체조를 하듯 내 방의 무의미한 공기를 껍질처럼 벗어던지고, 그것을 베네치아의 공기로 대체했다. 그것은 내 상상력이 베네치아라는 이름 속에 가두어 둔 꿈과도 같은 특별하고 형언할 수 없는 해양성 대기였다. 나는 내 안에서 기적 같은 육체 이탈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곧바로 심한 인후염에 걸렸을 때 느끼는 구토감으로 이어졌고, 결국 나는 침대에 눕혀졌다. 열이 너무 심해 의사는 지금 피렌체와 베네치아로 보내는 것은 고사하고, 완전히 회복된 후에도 적어도 1년간은 모든 여행 계획과 흥분을 유발할 만한 일을 피해야 한다고 선고했다.

슬프게도 의사는 라 베르마의 공연을 보러 극장에 가는 것도 절대 금지했다. 베르고트가 천재성을 인정한 그 숭고한 예술가는 어쩌면 피렌체와 베네치아에 가지 못한 것, 발벡에 가지 못한 것을 위로해줄 만큼 중요하고 아름다운 무언가를 내게 알려줄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매일 나를 샹젤리제 공원에 보내기로 했다. 피로하지 않도록 감시할 사람의 보호 아래 보내기로 했는데, 그 사람은 레오니 고모가 돌아가신 후 우리 집에 들어온 프랑수아즈였다. 샹젤리제에 가는 것은 견딜 수 없었다. 만약 베르고트가 그의 책 중 하나에서 샹젤리제를 묘사했다면, 틀림없이 나는 그곳을 알고 싶어 했을 것이다. 내 상상력 속에 ‘복제’를 만들어 넣은 모든 것들처럼 말이다. 상상력은 그것들을 따뜻하게 하고, 살아나게 하고, 개성을 부여했다. 나는 그것들을 현실에서 찾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 공공 정원에서는 아무것도 내 꿈과 연결되지 않았다.

어느 날, 회전목마 옆 우리의 익숙한 자리에서 지루함을 느끼고 있을 때, 프랑수아즈가 나를 원정으로 데려갔다. 사탕 장수들의 작은 요새가 일정한 간격으로 지키고 있는 경계선을 넘어, 얼굴이 낯선 이웃하지만 이국적인 지역으로 갔다. 그곳에서는 염소차가 지나갔다. 그녀는 월계수 덤불에 기대어 있는 의자로 돌아가 짐을 챙기러 갔다. 그녀를 기다리며 나는 태양에 누렇게 바랜 크고 메마른 잔디를 밟고 있었다. 그 끝에는 분수대가 있고 그 위에 동상이 있었다. 그때 산책로에서 빨간 머리 소녀가 분수대 앞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는데, 외투를 입고 라켓을 정리하던 다른 소녀가 짧게 외쳤다. “안녕, 질베르트, 난 이만 가볼게. 우리 저녁 식사 후에 네 집에 온다는 거 잊지 마.” 이 질베르트라는 이름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단순히 부재중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때처럼 그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 말을 걸고 있었기에, 그녀의 존재를 더욱 생생하게 떠올리게 했다. 그것은 그렇게 내 곁을 지나갔다. 말하자면 행동 속에서, 그 궤적의 곡선과 목표의 접근으로 인해 힘이 더해진 채로 말이다. 그 이름은 자신의 내부에, 그것을 부르는 친구가 가진, 내가 아닌 그녀가 가진 지식과 개념들을 실어 날랐다. 나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친구가 그 이름을 발음하는 동안 그녀가 다시 보거나 적어도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던 그들의 일상적인 친밀함, 서로 나누는 방문들에 대한 모든 것을.

다른 사람의 모든 알 수 없는 것들, 내게는 더욱 접근할 수 없고 고통스러운 그것들이 이 행복한 소녀에게는 오히려 너무나 친숙하고 다루기 쉬워서 나는 거기에 들어갈 수 없는데, 그녀는 그것을 공중에 던져 외치며 지나갔다. 그녀는 이미 공기 중에 황홀한 냄새를 남겼고, 그것은 스완의 삶에서 몇몇 보이지 않는 지점들을 정확하게 건드리며 저녁 식사 후 그녀의 집에서 있을 저녁 시간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아이들과 유모들 사이를 지나는 천상의 나그네처럼, 푸생의 아름다운 정원 위에 솟아오른 구름이 오페라의 구름처럼 신들의 삶의 모습을 자세히 반영하듯이, 귀중한 색채의 작은 구름을 형성했다. 마침내 그 헐벗은 풀밭 위에, 그곳이 시들어버린 잔디의 한 조각이자 금발의 배드민턴 선수의 오후 한 순간이었던 곳에 (그녀는 파란 깃털 달린 가정교사가 그녀를 부를 때까지 셔틀콕을 던지고 받기를 멈추지 않았다), 반영처럼 만질 수 없고 카펫처럼 겹쳐진 헬리오트로프 색의 작은 경이로운 띠를 던졌다. 나는 그 위를 지체하고 향수에 젖어 불경스럽게 걸음을 멈추지 않고 거닐 수 없었다. 그동안 프랑수아즈는 내게 소리쳤다. “자, 외투 단추를 잠그고 가시지요.” 나는 처음으로 짜증나게도 그녀가 저속한 말을 한다는 것과, 아아, 그녀의 모자에 파란 깃털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샹젤리제로 다시 돌아올까? 다음 날 그녀는 거기 없었다. 하지만 그 다음 며칠 동안 나는 그녀를 보았다. 나는 그녀가 친구들과 노는 곳 주변을 계속 맴돌았고, 그래서 한번은 그들이 술래잡기를 하기에 인원이 부족했을 때 그녀가 나에게 그들의 팀에 합류하고 싶은지 물어보게 했다. 그 후로 그녀가 거기 있을 때마다 나는 그녀와 함께 놀았다. 하지만 그것이 매일은 아니었다. 수업, 교리 문답, 티 파티, 나의 삶과 분리된 그녀의 모든 삶 때문에 그녀가 올 수 없는 날들이 있었다. 그 삶은 두 번, 질베르트라는 이름으로 응축되어 내 옆을 아주 고통스럽게 스쳐 지나갔었다. 콩브레의 비탈길과 샹젤리제의 잔디밭에서. 그런 날에는 그녀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알려주었다. 공부 때문이라면 그녀는 말했다. “짜증 나. 내일 못 갈 거예요. 여러분은 나 없이 즐겁게 놀겠네요.” 그녀는 슬픈 표정을 지었고 그것은 나를 조금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반대로 그녀가 오후 모임에 초대받았을 때, 내가 그것을 모르고 그녀에게 놀러 올 수 있는지 물으면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길 바라요! 엄마가 친구 집에 가게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적어도 그런 날에는 그녀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다른 때는 갑자기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를 데리고 장을 보러 갔고, 다음날 그녀는 말했다. “아, 맞아요. 어제 엄마랑 외출했어요.” 마치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고, 누군가에게는 가장 큰 불행이 아니었던 것처럼. 또한 날씨가 나쁜 날도 있었는데, 그녀의 가정교사는 자신도 비를 싫어해서 그녀를 샹젤리제로 데려가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하늘이 흐리면 아침부터 계속 하늘을 살펴보며 모든 징조를 주시했다. 맞은편 부인이 창가에서 모자를 쓰는 것을 보면 나는 생각했다. ‘저 부인은 외출할 거야. 그러니 밖에 나갈 만한 날씨군. 왜 질베르트는 저 부인처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날씨가 흐려지면 어머니는 아직 맑아질 수 있다고 하셨다. 햇빛만 있으면 충분할 거라고. 하지만 더 가능성 있는 건 비가 올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비가 오면 샹젤리제에 가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래서 점심 식사 이후 내 불안한 시선은 흐린 하늘을 떠나지 않았다. 계속 어두웠다. 창 앞의 발코니는 회색이었다. 갑자기 그 우울한 돌 위에서 나는 덜 음울한 색을 보지는 못했지만, 덜 음울한 색을 향한 노력, 빛을 해방시키려는 망설이는 광선의 맥동을 느꼈다. 잠시 후 발코니는 창백해졌고 아침 물처럼 반짝였으며, 난간의 철제 장식에서 천 개의 반사광이 거기에 내려앉았다. 바람 한 줄기가 그것들을 흩트렸고, 돌은 다시 어두워졌지만, 마치 길들여진 듯이 그것들은 돌아왔다. 돌은 다시 희미하게 하얘지기 시작했고, 음악에서 서곡의 끝에 한 음을 최고조의 포르티시모로 이끌 때처럼 모든 중간 단계를 빠르게 거치게 하는 그런 지속적인 크레셴도로, 나는 그것이 좋은 날의 변함없고 고정된 황금빛에 도달하는 것을 보았다. 그 위에 난간의 정교한 받침대의 그림자가 기묘한 식물처럼 검게 떠올랐고, 가장 작은 세부까지 묘사하는 데 있어 정교함은 마치 세심한 의식, 예술가의 만족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그 어두운 덩어리들의 휴식에서 그런 선명함과 부드러움으로, 사실 이 태양의 호수 위에 쉬고 있는 이 넓고 잎이 무성한 반사들은 자신들이 평온과 행복의 보증인 것을 아는 것 같았다.

순간의 담쟁이, 벽과 창문을 장식하는 덧없는 식물! 많은 사람들에게는 가장 칙칙하고 슬픈 존재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무언가가 되었다. 그날 이후 우리 발코니에 나타난 담쟁이는, 마치 질베르트의 존재 자체의 그림자 같았다. 어쩌면 그녀는 이미 샹젤리제에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도착하면 “자, 술래잡기 시작해요. 당신은 우리 팀이에요.”라고 말할 것이다.

담쟁이는 쉽게 부러지고 바람에 휩쓸리지만, 계절이 아닌 시간과 연결되어 있다. 마치 그날의 거부하거나 이룰 수 있는 즉각적인 행복, 그중에서도 최고의 행복인 사랑의 행복을 약속하는 것처럼. 이끼보다도 돌 위에서 더 부드럽고 따뜻하며, 겨울 한가운데서도 한 줄기 빛으로 태어나 기쁨을 피어나게 할 만큼 생명력이 넘친다.

모든 식물이 사라진 날에도, 늙은 나무들의 줄기를 감싸고 있는 아름다운 초록 가죽은 눈 아래 숨어 있었다. 눈이 그치고 날씨가 흐려 질베르트가 나올 기대를 할 수 없을 때, 어머니가 갑자기 말씀하셨다. “보세요, 날씨가 좋아졌어요. 샹젤리제에 한번 가보는 게 어때요?” 발코니를 덮고 있던 눈 덮인 외투 위에 나타난 태양은 금실을 엮고 검은 반사를 수놓았다.

그날 우리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아니,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한 소녀만을 만났다. 그녀는 질베르트가 오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가정교사들이 앉았던 의자들은 비어 있었다. 잔디밭 근처에 혼자 앉아 있던 것은 나이 든 부인이었다. 그녀는 항상 화려하고 어두운 옷차림으로 나왔다. 그 당시 내가 그녀와 알고 지낼 수 있었다면, 내 미래의 가장 큰 이점들을 모두 희생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질베르트는 매일 그녀에게 인사를 하러 갔기 때문이다. 그녀는 질베르트에게 “그녀의 사랑스러운 어머니”의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알고 있었다면 질베르트에게 완전히 다른 사람, 그녀 부모의 관계를 아는 누군가가 되었을 것 같았다. 손자들이 멀리서 놀고 있는 동안, 그녀는 항상 ‘데바’지를 읽고 있었다.

그녀가 “내 옛 데바”라고 부르던 것처럼, 귀족적인 태도로 경찰관이나 의자 대여인을 가리켜 “내 오랜 친구 경찰관”, “의자 대여인과 나는 오랜 친구”라고 말하곤 했다.

프랑수아즈는 가만히 서 있기에는 너무 추웠기에, 우리는 콩코르드 다리까지 가서 얼어붙은 센 강을 보러 갔다. 어린아이들조차 두려움 없이 강에 다가갔다. 거대한 고래가 좌초되어 무방비 상태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그것을 해체하려 하고 있었다. 우리는 샹젤리제로 돌아왔다. 나는 움직이지 않는 목마들과 눈이 치워진 산책로의 검은 그물망 속에 갇힌 흰 잔디 사이에서 고통스러웠다. 동상은 손에 얼음 덩어리를 들고 있어 마치 그 동작을 설명하는 것 같았다.

노부인은 데바를 접더니 지나가는 아이 돌보미에게 시간을 물었다. 그녀는 “정말 친절하시군요!”라고 말하며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도로 관리인에게 아이들을 데려오라고 부탁하며 “너무 춥네요”라고 덧붙였다. “정말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갑자기 하늘이 찢어졌다. 꼭두각시 극장과 서커스 사이, 아름다운 지평선 위로 열린 하늘에서 나는 마치 신비로운 징조처럼 마드모아젤의 푸른 깃털을 보았다. 그리고 질베르트가 내 쪽으로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그녀는 사각형 모피 모자 아래 반짝이며 붉게 상기된 얼굴로, 추위와 지각, 그리고 놀이에 대한 욕망으로 활기찼다. 내 앞에 도착하기 직전 그녀는 얼음 위로 미끄러졌다. 균형을 잡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더 우아해 보이려는 것인지, 혹은 스케이트 타는 자세를 흉내 내려는 것인지, 팔을 크게 벌린 채 미소 지으며 다가왔다. 마치 나를 껴안으려는 듯했다.

“브라보! 브라보! 정말 잘했어요. 옛날 사람이 아니라면 멋지다, 대단하다고 말하고 싶네요.”라고 노부인이 샹젤리제를 대신해 말하며 질베르트에게 감사를 표했다. “당신도 저처럼 우리의 오래된 샹젤리제에 충실하군요. 우리는 두 명의 용감한 사람이에요. 이렇게 말해도 웃지 마세요. 이 눈이 저에게는 흰담비 털을 연상시켜요!” 그러고는 노부인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 날들 중 첫날은, 질베르트를 만나지 못하게 할 수 있는 힘들의 이미지인 눈이 이별의 날 슬픔을, 심지어 떠나는 날의 모습까지 주었다. 우리의 유일한 만남의 장소였던 곳의 모습을 바꾸고 사용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날은 모든 것이 덮개로 싸여 있었지만, 내 사랑을 진전시켰다. 그것은 그녀와 내가 함께 나눈 첫 번째 슬픔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 무리 중 우리 둘뿐이었고, 그녀와 단둘이 있다는 것은 친밀함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그녀 편에서도 – 마치 그녀가 이런 날씨에 오직 나를 위해 온 것처럼, 그녀가 초대받은 파티에 가는 대신 샹젤리제에서 나를 만나기 위해 온 것처럼 –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우리 우정의 생명력과 미래에 대해 더 큰 확신을 가졌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무기력해지고 고립되고 파괴되는 와중에도 우리 우정은 살아남았다. 그녀가 내 목에 눈덩이를 넣을 때, 나는 감동으로 미소 지었다. 그것은 내가 이 겨울 나라의 여행 동반자로 인정받은 것 같은 특별한 대우이자, 불행 속에서도 나에 대한 일종의 충실함을 지키는 것처럼 보였다.

곧 한 명씩, 망설이는 참새들처럼, 그녀의 친구들이 눈 위에 까맣게 도착했다. 우리는 놀이를 시작했고, 이렇게 슬프게 시작한 날이 기쁨 속에서 끝나게 되었다. 술래잡기를 하기 전에 내가 첫날 질베르트의 이름을 외치는 것을 들었던 날카로운 목소리의 친구에게 다가갔을 때, 그녀가 말했다. “아니에요, 당신이 질베르트 팀에 있는 걸 더 좋아한다는 거 다들 알아요. 게다가 보세요, 그녀가 당신을 부르고 있어요.” 그녀는 실제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 그녀의 눈 덮인 잔디밭으로, 그녀의 진영으로 오라고. 태양이 그곳에 장미빛 반사와 고대 브로케이드의 금속성 광택을 주어 마치 황금 천막 같았다.

내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이 날은 오히려 내가 그다지 불행하지 않았던 몇 안 되는 날 중 하나였다.

나는 이제 질베르트를 하루라도 보지 못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었다. 할머니가 저녁 식사 시간에 돌아오지 않았을 때, 나는 곧바로 그녀가 차에 치였다면 한동안 샹젤리제에 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랑에 빠지면 더 이상 아무도 사랑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 있던 그 순간들, 전날부터 그토록 조바심 내며 기다렸고 그것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었던 그 순간들은 결코 행복한 순간들이 아니었다.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내가 꼼꼼하고 집요한 주의를 기울이는 유일한 순간들이었고, 그 속에서 나는 조금의 즐거움도 발견하지 못했다.

질베르트와 떨어져 있을 때마다 나는 그녀를 볼 필요가 있었다. 끊임없이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려 노력하다 보면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내 사랑이 무엇에 해당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는 아직 한 번도 나를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녀는 종종 나보다 더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다고 주장했고, 나를 함께 놀기 좋아하는 좋은 친구라고 했지만 너무 산만하고 게임에 몰두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그녀는 종종 냉담함을 나타내는 듯한 태도를 보였는데, 이는 내가 그녀에게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존재라는 믿음을 흔들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이 믿음이 질베르트가 나에 대해 가진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렇지 않았고, 내가 그녀에 대해 가진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었기에 훨씬 더 강했다. 그것은 내가 질베르트에 대해 생각해야만 하는 방식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그녀에 대해 느끼는 감정들을 나는 아직 그녀에게 고백하지 않았다. 물론 내 공책의 모든 페이지에 끊임없이 그녀의 이름과 주소를 적었지만, 내가 그린 그 애매한 선들을 보면서 그녀는 그것 때문에 나를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그것들이 내 주변에 그녀의 존재감을 만들어내지만 실제로 그녀는 내 삶과 더 깊이 연관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선들은 질베르트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고 그녀는 그것들을 보지도 않을 것이었다. 오히려 그것들은 내 욕망을 마치 순전히 개인적이고 비현실적이며 지루하고 무력한 것처럼 보여주는 것 같아 낙담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질베르트와 내가 만나 서로의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우리의 사랑은 말하자면 시작조차 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녀를 보고 싶어 하는 다양한 이유들이 성숙한 사람에게는 그렇게 절박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중에는 우리가 쾌락을 가꾸는 데 능숙해져서 내가 질베르트를 생각하는 것처럼 한 여자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게 되고, 그 이미지가 현실과 일치하는지 걱정하지 않게 된다. 또한 그녀를 사랑하는 즐거움을 느끼면서도 그녀가 우리를 사랑한다는 확신이 필요 없게 된다. 혹은 그녀에게 우리의 사랑을 고백하는 즐거움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녀에 대한 우리의 호감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그녀가 우리에게 갖는 호감을 더욱 생생하게 유지하기 위해, 더 아름다운 꽃을 얻기 위해 다른 여러 꽃을 희생시키는 일본 정원사들을 모방했다. 하지만 내가 질베르트를 사랑했던 그 시절에, 나는 사랑이 우리 밖에 실제로 존재한다고 여전히 믿었다. 사랑은 기껏해야 우리가 장애물을 제거하도록 허용할 뿐, 우리가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순서대로 행복을 제공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임의로 고백의 달콤함을 무관심의 가장으로 대체했다면, 내가 가장 꿈꿨던 기쁨 중 하나를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내 마음대로 만들어낸 인위적이고 가치 없는 사랑을 만들어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것은 진정한 사랑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나는 그 신비롭고 미리 정해진 길을 따르기를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샹젤리제에 도착했을 때 – 우선 나는 내 사랑을 직면하고 그것의 살아있는 원인과는 독립적인 필요한 수정을 가할 수 있었다 – 내가 어제 함께 놀았던 그 질베르트 스완, 내 지친 기억이 더 이상 찾아내지 못하는 이미지들을 새롭게 하기 위해 보기로 계산했던 그 질베르트 스완 앞에 서자마자, 우리가 생각할 시간도 없이 걸을 때 한 발을 다른 발 앞에 내딛게 하는 맹목적인 본능이 나를 인사하고 알아보게 한 직후, 모든 것이 마치 그녀와 내 꿈의 대상이었던 소녀가 두 개의 다른 존재인 것처럼 진행되었다. 예를 들어, 전날부터 내 기억 속에 불타는 두 눈과 통통하고 빛나는 볼을 간직하고 있었다면, 질베르트의 얼굴은 이제 내가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던 어떤 것을 끈질기게 제시했다. 그것은 코의 예리한 윤곽으로, 즉시 다른 특징들과 연관되어 자연사에서 한 종을 정의하는 특성들의 중요성을 띠며, 그녀를 뾰족한 주둥이를 가진 종류의 소녀로 변모시켰다. 나는 이 기다리던 순간을 이용하여 혼자 있는 긴 시간 동안 내가 기억하는 것이 정말 그녀라는 것을 확신하고, 내가 조금씩 늘려가는 작품처럼 그녀에 대한 내 사랑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질베르트의 이미지를 머릿속에서 정확히 맞추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내게 공을 건넸고, 그의 지성이 믿지 않는 외부 세계를 육체가 고려하는 관념론 철학자처럼, 내가 그녀를 알아보기도 전에 그녀에게 인사하게 했던 그 같은 나는 서둘러 그녀가 건네는 공을 잡게 했다. 마치 함께 놀러 온 친구인 것처럼, 그리고 영혼의 동반자를 만나러 온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녀가 떠날 때까지 예의상 수천 가지의 상냥하고 무의미한 말을 건네게 했고, 그래서 나는 절실하고 잃어버린 이미지를 다시 붙잡거나, 우리의 사랑을 결정적으로 진전시킬 수 있는 말을 그녀에게 할 수 있는 침묵을 지키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매번 다음 오후에나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사랑은 조금씩 진전을 이뤘다.

어느 날 우리는 질베르트와 함께 우리의 가게 주인 여자의 가판대까지 갔다. 그녀는 우리에게 특별히 친절했는데, 스완 씨가 그녀에게서 진저브레드를 사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많이 먹었는데, 민족적 습진과 예언자들의 변비로 고통받고 있었다. 질베르트는 웃으면서 두 명의 어린 소년들을 내게 가리켰다. 그들은 마치 어린이 책의 작은 색채화가와 작은 박물학자 같았다. 한 아이는 보라색을 더 좋아한다며 빨간 설탕과자를 거부했고, 다른 아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유모가 사주려는 자두를 거절했다. 그 아이는 결국 열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자두가 더 좋아요. 벌레가 있거든요!” 나는 1수 동전짜리 구슬 두 개를 샀다. 나는 경외심을 가지고 분리된 접시에 담긴 밝고 갇힌 마노 구슬들을 바라보았다. 그것들은 내게 귀중해 보였다. 웃고 있는 금발 소녀들 같았고, 개당 50센트나 했기 때문이다. 질베르트는 나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받았기에 내게 어떤 구슬이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것들은 생명의 투명함과 부드러움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어느 하나도 희생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녀가 모든 구슬을 사서 해방시킬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도 나는 그녀의 눈동자 색깔과 같은 하나를 가리켰다. 질베르트는 그것을 집어 들고 황금빛 광채를 찾았다. 그것을 쓰다듬더니 대가를 치르고는 곧바로 그 포로를 내게 건네며 말했다. “자, 이건 당신 거예요. 선물로 드릴게요. 기념품으로 간직하세요.”

또 다른 날, 여전히 고전극에서 라 베르마를 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나는 그녀에게 베르고트가 라신에 대해 쓴 소책자가 있는지 물었다. 그 책은 더 이상 서점에서 구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내게 정확한 제목을 상기시켜 달라고 부탁했고, 저녁에 나는 그녀에게 작은 전보를 보냈다. 봉투에는 내가 공책에 수없이 써왔던 질베르트 스완이라는 이름을 썼다. 다음날 그녀는 보라색 리본으로 묶고 흰 밀랍으로 봉인한 꾸러미를 가져왔다. 그 안에는 그녀가 찾아달라고 한 소책자가 들어 있었다. “보세요, 당신이 부탁한 바로 그것이에요.” 그녀는 머프에서 내가 보낸 전보를 꺼내며 말했다. 하지만 이 속달 우편의 주소에서 –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아니었고, 내가 쓴 작은 쪽지에 불과했던 것이, 전보 배달부가 그것을 질베르트의 문지기에게 건네고 하인이 그녀의 방까지 가져다준 이후로는 그날 그녀가 받은 소중한 쪽지들 중 하나가 되어버린 그것에서 – 나는 내 필적의 공허하고 고독한 선들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우체국이 찍은 동그라미들, 우체부가 연필로 추가한 표시들, 실제 이행의 징표들, 외부 세계의 도장들, 상징적인 보라색 띠들이 처음으로 내 꿈을 감싸고, 유지하고, 들어 올리고, 기쁘게 했다.

그리고 또 어느 날 그녀가 내게 말했다. “당신도 알다시피, 당신은 내 이름을 질베르트라고 불러도 돼요. 어쨌든 나는 당신을 세례명으로 부를 거예요. 그게 너무 어색해요.” 그러나 그녀는 잠시 동안 계속해서 나를 ‘당신’이라고 불렀고, 내가 그것을 지적하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외국어 문법책에서 새로운 단어를 사용하게 하려는 목적으로만 문장을 만드는 것처럼 문장을 구성하고 만들어 내 이름으로 끝맺었다. 그리고 나중에 그때 내가 느꼈던 것을 기억하며, 나는 그 안에서 그녀의 입 속에 잠시 동안 나 자신이, 벌거벗은 채로, 다른 친구들이나 그녀가 내 성을 부를 때처럼 내 부모에게 속했던 어떤 사회적 양식도 없이 있었다는 인상을 느꼈다. 그녀의 입술은 – 아버지처럼 강조하고 싶은 단어를 분명히 발음하려는 노력 속에서 – 마치 껍질을 벗기고 속살만 삼킬 수 있는 과일처럼 나를 그런 것들로부터 벗겨내는 것 같았다. 한편 그녀의 시선은 말의 새로운 친밀도에 맞춰 나에게 더 직접적으로 다가왔고, 의식과 기쁨, 심지어 감사의 마음까지 보이며 미소를 동반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이 새로운 즐거움의 가치를 평가할 수 없었다. 그것은 내가 사랑하는 소녀가 나를 사랑하는 나에게 준 것이 아니라, 내가 함께 놀던 다른 소녀가 다른 나에게 준 것이었다.

진정한 질베르트의 기억도, 행복의 가치를 알 수 있는 얽매이지 않은 마음도 없는 또 다른 나는 그것을 맛볼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나는 그것을 음미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매일 나는 내일이면 질베르트를 정확하고 평온하고 행복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그녀가 마침내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고 지금까지 그것을 숨겨야 했던 이유를 설명해 줄 것이라는 희망 때문에 과거를 무시하고 앞만 보며, 그녀가 나에게 준 작은 호의들을 그저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직 만나지 못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게 해줄 새로운 발판으로만 여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가끔 그런 우정의 표시를 보여줄 때도 있었지만, 나를 만나는 것이 즐겁지 않아 보이는 듯한 태도로 나를 슬프게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는 종종 내가 가장 기대를 걸었던 바로 그날 일어났다. 나는 질베르트가 샹젤리제에 올 것이라고 확신했고, 아침 일찍 거실에 들어가 이미 완전히 준비를 마치고 검은 머리를 높이 올려 묶은 채 하얗고 통통한 손에서 아직 비누 냄새가 나는 엄마에게 키스를 하러 갔을 때 느꼈던 기쁨은 단지 큰 행복의 막연한 예감일 뿐이었다. 피아노 위에 먼지 기둥이 홀로 서 있는 것을 보고, 창 밑에서 수금이 “열병에서 돌아와”를 연주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겨울이 저녁까지 뜻밖의 화창한 봄날의 방문을 받게 될 것임을 알았다. 우리가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 맞은편 부인이 창문을 열자 순식간에 내 의자 옆에서 – 우리 식당 전체를 가로질러 한 번에 – 낮잠을 자던 햇살이 사라졌다가 곧바로 돌아와 다시 낮잠을 자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1시 수업 시간에 햇살이 내 책상까지 황금빛 광채를 끌고 와 3시까지 축제에 갈 수 없는 나를 지루함과 초조함으로 애태우게 했다. 그러다 프랑수아즈가 나를 데리러 왔고, 우리는 빛으로 장식되고 군중으로 북적이는 거리를 지나 샹젤리제로 향했다. 발코니들은 햇살에 녹아 증기처럼 되어 집 앞에서 황금 구름처럼 떠다녔다. 하지만 아아! 샹젤리제에서 나는 질베르트를 찾지 못했다. 그녀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던 것이다. 보이지 않는 태양이 여기저기서 풀잎 끝을 타오르게 하는 잔디밭 위에 나는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그곳에 앉아 있던 비둘기들은 정원사의 곡괭이가 위엄 있는 땅의 표면으로 끌어올린 고대 조각 작품처럼 보였다. 나는 지평선을 응시하며 매 순간 질베르트의 모습이 가정교사를 따라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녀는 아이를 안고 태양의 축복을 받아 빛나는 듯한 동상 뒤에서 나타날 것 같았다.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있던 ‘데바’ 신문의 늙은 독자는 경비원에게 친근한 손짓을 하며 외쳤다. “정말 좋은 날씨예요!” 그리고 요금을 받으러 온 의자 관리인에게 그녀는 온갖 교태를 부리며 장갑 틈새에 10생팀짜리 티켓을 꽂았다. 마치 그것이 꽃다발인 양 증정자에 대한 배려로 가장 좋은 자리를 찾는 듯했다. 그녀는 자리를 찾자 목을 빙글빙글 돌리고 보아를 바로잡은 뒤, 의자 관리인에게 손목에서 삐져나온 노란 종이 조각을 보여주며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마치 한 여인이 젊은 남자에게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당신의 장미꽃을 알아보시겠어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나는 프랑수아즈와 함께 개선문까지 질베르트를 맞으러 갔지만, 그녀를 만나지 못하고 잔디밭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더 이상 오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을 때, 회전목마 앞에서 날카로운 목소리의 소녀가 나에게 달려들었다. “어서 오세요, 질베르트가 온 지 벌써 15분이나 됐어요. 곧 떠나려고 해요. 술래잡기를 하려고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어요.” 내가 샹젤리제 대로를 올라가는 동안 질베르트는 부아시 당글라 거리로 왔던 것이다. 가정교사가 날씨 좋은 날 심부름을 시켜서, 스완 씨가 곧 딸을 데리러 올 참이었다. 그러니 내 잘못이었다. 나는 잔디밭에서 멀리 떨어지지 말았어야 했다. 질베르트가 어느 쪽에서 올지, 더 일찍 올지 늦게 올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기다림은 결국 샹젤리제 전체와 오후 내내를 더욱 감동적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광활한 공간과 시간의 모든 지점과 순간마다 질베르트의 모습이 나타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 자체도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그 모습 뒤에는 2시 반이 아니라 4시에 내 가슴 한가운데를 맞추고 놀이용 모자가 아닌 외출용 모자를 쓰고 두 인형극장 사이가 아닌 ‘앙바사됴르’ 앞에 나타난 이유가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질베르트를 따라갈 수 없는 어떤 일, 그녀를 외출하게 하거나 집에 머물게 하는 일들을 짐작할 수 있었고, 그녀의 알 수 없는 삶의 신비와 접촉하고 있었다. 날카로운 목소리의 소녀의 명령에 따라 술래잡기를 시작하러 달려가다가 질베르트를 보았을 때도 그 신비는 나를 괴롭혔다. 우리에게는 활발하고 거친 태도를 보이던 그녀가 ‘데바’ 부인에게 (그 부인은 “정말 좋은 날씨네요, 마치 불같아요”라고 말했다)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점잖게 말하는 모습은 부모님과 함께 있을 때, 부모님의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방문객을 맞이할 때 등 내가 알지 못하는 그녀의 다른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존재 중 누구도 딸을 데리러 조금 늦게 오는 스완 씨만큼 그런 인상을 주지 않았다. 그와 스완 부인은 – 딸이 그들과 함께 살고 있고, 그녀의 공부와 놀이, 친구 관계가 그들에 달려 있기 때문에 – 내게는 질베르트만큼이나, 어쩌면 질베르트보다도 더, 그녀에 대해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존재로서 마땅히 그래야 하듯이 접근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 고통스러운 매력을 담고 있었다. 그들과 관련된 모든 것은 내게 끊임없는 관심의 대상이었기에, 스완 씨(내가 부모님과 친하게 지낼 때는 그를 보아도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았다)가 샹젤리제에서 질베르트를 데리러 오는 그런 날에는 그의 회색 모자와 망토를 한 모습을 보고 느꼈던 심장의 고동이 진정된 후에도 여전히 그의 모습은 우리가 방금 일련의 저서를 읽은 역사적 인물을 보는 것처럼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파리 백작과의 관계는 콩브레에서 들었을 때는 무관심했지만 이제는 나에게 경이로운 것이 되었다. 마치 오를레앙 가문을 아는 사람이 그 외에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의 모습은 샹젤리제의 이 길을 가득 메운 여러 계층의 평범한 산책객들 사이에서 뚜렷이 두드러졌다.

나는 그가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지 않고 그저 참여하는 것에 감탄했다. 어느 누구도 그에게 특별한 대우를 해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가 완벽한 변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질베르트의 친구들의 인사에 정중히 답했다. 우리 가족과 불화 중임에도 내 인사에도 답했지만, 나를 알아보는 기색은 없었다. (이것은 그가 시골에서 나를 여러 번 봤다는 것을 떠올리게 했다. 그 기억은 간직하고 있었지만 흐릿했다. 질베르트를 다시 만난 이후로 내게 스완은 무엇보다도 그녀의 아버지였고, 더 이상 콩브레의 스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그의 이름에 연결하는 생각들은 과거에 그와 관련되어 있던 생각들의 망과는 달랐고, 이제는 그에 대해 생각할 때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는 새로운 인물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인위적이고 부차적이며 가로지르는 선으로 우리의 옛 손님과 연결했다. 내 사랑이 이득을 볼 수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가치가 없었기에, 지금 샹젤리제에서 내 앞에 있는 바로 이 스완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행히도 질베르트는 그에게 내 이름을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수치심과 후회의 감정으로 그 시절을 떠올렸다. 그 시절 나는 저녁마다 어머니가 정원 테이블에서 그와 아버지, 조부모님들과 커피를 마시는 동안 내 방에 올라와 잘 자라고 말해달라고 보내달라고 해서 스스로를 우스꽝스럽게 만들었다.)

그는 질베르트에게 한 게임을 해도 좋다고 했다. 15분 정도 기다릴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들처럼 철제 의자에 앉아 필립 7세가 자주 잡았던 그 손으로 입장권 값을 치렀다. 우리는 잔디밭에서 놀기 시작했고, 비둘기들이 날아올랐다. 그들의 아름다운 무지개빛 몸은 하트 모양을 하고 있었고, 마치 새들의 세계의 라일락 같았다. 그들은 피난처를 찾아 날아갔다. 어떤 비둘기는 커다란 돌 항아리 위에 앉았는데, 그 부리가 항아리 속으로 사라지면서 마치 그곳에 풍성한 과일이나 씨앗을 담아 놓은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또 다른 비둘기는 동상의 이마에 앉아 마치 고대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다채로운 에나멜 장식품 중 하나처럼 보였다. 그것은 석조 작품의 단조로움에 변화를 주는 것이었고, 여신이 그것을 지니고 있을 때는 특별한 수식어를 얻게 되어, 마치 필멸자에게 다른 이름이 붙는 것처럼 새로운 신성이 되는 것이었다.

내 기대를 실현시키지 못한 어느 햇살 좋은 날, 나는 실망을 숨길 용기가 없어 질베르트에게 말했다.

“당신에게 물어볼 게 많았어요. 오늘이 우리 우정에 중요한 날이 될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당신이 오자마자 곧 가버리네요! 내일 일찍 와주세요. 제발 당신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요.”

그녀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고, 기쁨에 넘쳐 뛰면서 대답했다.

“내일요, 기대하세요, 내 멋진 친구. 하지만 전 오지 않을 거예요! 큰 파티에 가거든요. 모레도 안 돼요. 친구 집에 가서 테오도스 왕의 도착을 볼 거예요. 굉장할 거예요. 그 다음날은 ‘미하일 스트로고프’를 보러 가고, 그 다음엔 곧 크리스마스와 새해 방학이에요. 어쩌면 남쪽으로 데려갈지도 모르겠어요. 정말 멋질 거예요! 크리스마스 트리를 못 보게 되겠지만요. 어쨌든 파리에 있게 되더라도 여기 오지 않을 거예요. 엄마랑 방문할 데가 있거든요. 안녕히 계세요. 아빠가 부르네요.”

나는 프랑수아즈와 함께 아직 축제가 끝난 저녁처럼 햇살이 가득한 거리를 걸어 돌아왔다. 나는 다리를 끌며 걸었다.

“놀랄 일도 아니에요,” 프랑수아즈가 말했다. “계절에 맞지 않는 날씨예요. 너무 덥죠. 아이고, 저런. 도처에 가엾은 병자들이 많을 텐데, 하늘에서도 모든 게 뒤죽박죽이 된 것 같아요.”

나는 흐느낌을 삼키며 질베르트가 오랫동안 샹젤리제에 오지 않을 거라며 기쁨에 넘쳐 말했던 말들을 되뇌었다. 하지만 이미 그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을 채우는 매력, 그녀와 관련된 특별하고 유일한 위치 – 그것이 괴롭더라도 – 정신적 습관의 내적 강제력이 이 무관심의 표시에도 로맨틱한 면을 더하기 시작했다. 눈물 속에서 미소가 형성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수줍은 키스의 시작에 불과했다. 저녁 우편 시간이 되자 나는 그날 저녁에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생각했다. 질베르트에게서 편지를 받을 거야. 그녀는 마침내 나를 사랑하기를 멈춘 적이 없다고 말할 거야. 그동안 그것을 숨겨야 했던 신비로운 이유를 설명할 거야. 나를 만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는 척해야 했던 이유, 그저 단순한 친구인 척했던 질베르트의 모습을 취해야 했던 이유를 말이야.

매일 저녁 나는 이 편지를 상상하는 것을 즐겼다. 나는 그 편지를 읽는 것 같았고, 한 문장 한 문장을 암송했다. 갑자기 나는 겁에 질려 멈췄다. 만약 질베르트에게서 편지를 받는다면, 그것은 결코 내가 방금 작성한 편지일 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내게 쓰기를 바라는 말들을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 말들을 떠올림으로써 – 가장 소중하고 가장 바라는 말들을 – 실현 가능성에서 제외시킬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설령 믿기 힘든 우연으로 내가 상상한 바로 그 편지를 질베르트가 보냈다 해도, 그것이 내 작품임을 알아차리고 나면 나 자신으로부터 오지 않은 것, 실제로 새로운 것, 내 정신 밖의 것, 내 의지와 무관한 것, 진정으로 사랑이 준 행복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동안 나는 질베르트가 쓰지 않은 글, 하지만 그녀에게서 온 것인 베르고트의 글을 다시 읽었다. 그것은 장엄한 고대 신화의 아름다움에 대한 내용이었다. 나는 그것을 마노 구슬 옆에 두고 항상 가지고 다녔다. 나는 그것을 찾아주려 애써준 내 친구의 친절함에 감동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자신의 열정에 대한 이유를 찾아야 하듯이, 문학이나 대화를 통해 사랑을 불러일으키기에 합당하다고 배운 자질들을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발견하고 행복해하며, 그것들을 모방을 통해 동화시켜 새로운 사랑의 이유로 삼는다. 이는 그 사랑이 자발적이었을 때 찾았을 자질들과 정반대일지라도 말이다. 스완이 예전에 오데트의 아름다움의 미학적 특성을 그랬듯이, 나 역시 처음에는 질베르트를 콩브레에서부터 사랑했다. 그녀의 삶의 모든 미지의 것들 때문이었고, 나는 그것에 뛰어들어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내 삶은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내가 너무나 잘 알고 경멸했던 이 내 삶이 질베르트에게는 언젠가 겸손한 하녀가 될 수 있다고, 편안하고 유용한 협력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저녁에 내 작업을 도와 소책자들을 대조해줄 수 있을 것이다. 베르고트에 대해서는, 그 무한히 현명하고 거의 신적인 노인은 내가 질베르트를 만나기 전에 그녀 때문에 사랑했지만, 이제는 무엇보다도 질베르트 때문에 사랑했다. 그가 라신에 대해 쓴 글만큼이나 즐겁게 나는 그녀가 그것을 보내줬을 때 사용한 큰 하얀 밀랍 도장이 찍힌 종이와 보라색 리본으로 묶인 것을 바라보았다.

나는 내 친구의 마음에서 가장 좋은 부분, 경박하지 않고 충실한 부분인 마노구슬에 입을 맞추었다. 그것은 질베르트의 삶의 신비로운 매력으로 치장되어 있으면서도 내 곁에 남아 내 방에 살고 내 침대에서 잤다. 하지만 이 돌의 아름다움과 베르고트의 이 페이지들의 아름다움은 – 내가 질베르트에 대한 내 사랑의 관념과 연관 짓는 것을 기뻐했던 – 마치 그 사랑이 무(無)로만 보일 때 그것에 일종의 일관성을 부여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것들이 이 사랑보다 앞선 것이며, 그것과 닮지 않았고, 그 요소들이 질베르트가 나를 알기 전에 재능이나 광물학의 법칙에 의해 고정되었다는 것을, 책이나 돌에서 질베르트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달라졌을 것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따라서 그것들에서 행복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는 권한이 내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 사랑이 끊임없이 내일의 질베르트의 사랑 고백을 기다리며 매일 밤 그날의 잘못된 작업을 취소하고 무효화하는 동안, 내 그림자 속에서 알 수 없는 일꾼이 버려진 실들을 그대로 두지 않고 나를 기쁘게 하거나 내 행복을 위해 일하는 것에는 관심 없이 그의 모든 작품에 부여하는 다른 질서로 배열했다. 내 사랑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내가 사랑받고 있다고 미리 결정하지 않은 채, 그는 설명할 수 없어 보였던 질베르트의 행동들과 내가 변명했던 그녀의 잘못들을 수집했다. 그러면 그것들은 서로 의미를 가졌다.

이 새로운 질서는 질베르트가 샹젤리제에 오는 대신 오전 모임에 가고, 가정교사와 함께 쇼핑을 하고, 새해 휴가를 준비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그녀는 경박하거나 순종적이야”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녀가 나를 사랑했다면 그 둘 중 어느 것도 아니었을 것이고, 그녀가 복종하도록 강요받았다면 내가 그녀를 보지 못하는 날들과 같은 절망감을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질서는 또한 내가 질베르트를 사랑하기에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내가 그녀의 눈에 가치 있게 보이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지적했다. 그 때문에 나는 어머니에게 프랑수아즈를 위해 고무신과 파란 깃털 달린 모자를 사달라고 설득하려 했고, 아니면 차라리 그 하녀 때문에 부끄러워하는 나를 더 이상 샹젤리제에 보내지 말아 달라고 했다(어머니는 내가 프랑수아즈에게 불공평하다고, 그녀는 우리에게 헌신적인 훌륭한 여자라고 대답했다). 또한 그것은 질베르트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욕구를 지적했다. 그 욕구 때문에 나는 몇 달 전부터 그녀가 파리를 떠나는 시기와 어디로 갈지 알아내려고만 노력했고, 그녀가 없다면 가장 즐거운 곳도 유배지처럼 여겼으며, 샹젤리제에서 그녀를 볼 수 있는 한 파리에 계속 머물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런 걱정이나 욕구를 질베르트의 행동에서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쉽게 보여주었다. 그녀는 반대로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지 않고 가정교사를 좋아했다. 그녀는 가정교사와 쇼핑을 가기 위해 샹젤리제에 오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고, 어머니와 외출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그리고 설령 그녀가 나에게 그녀와 같은 곳에서 휴가를 보내도록 허락했다 하더라도, 그녀는 그 장소를 선택할 때 부모님의 바람, 그녀에게 이야기해준 수많은 즐거움에 대해 생각했지, 우리 가족이 나를 보내려고 하는 곳이 어디인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가 가끔 자신의 친구 중 한 명보다 나를 덜 사랑한다고, 또는 내가 부주의로 그녀의 게임에서 지게 만들어서 전날보다 나를 덜 사랑한다고 말할 때, 나는 용서를 빌었고 그녀가 나를 다시 예전만큼 사랑하게 하려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사랑하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었다. 나는 그것이 이미 이루어졌다고 그녀가 말해주기를 원했고, 마치 그녀가 자신의 의지대로, 내 의지대로,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 단지 그녀가 말하는 단어들로 나에 대한 그녀의 애정을 수정할 수 있는 것처럼 그녀에게 간청했다. 내가 그녀에 대해 느끼는 것이 그녀의 행동이나 내 의지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일까?

마지막으로, 보이지 않는 일꾼이 그린 새로운 질서는 말했다. 우리를 지금까지 괴롭혔던 사람의 행동들이 진실하지 않기를 바랄 수 있지만, 그 행동들의 연속성에는 우리의 바람이 어찌할 수 없는 명확성이 있으며, 우리는 그 바람보다는 그 명확성에 내일의 그 사람의 행동이 어떨지 물어야 한다고.

내 사랑은 이 새로운 말들을 들었다. 그것들은 내일도 다른 모든 날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나에 대한 질베르트의 감정이 이미 너무 오래되어 변할 수 없으며, 그것은 무관심이라고, 질베르트와의 우정에서 오직 나만이 사랑한다고 내 사랑을 설득했다. “그건 사실이야, 이 우정에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건 변하지 않을 거야”라고 내 사랑이 대답했다. 그러면 다음 날부터(또는 가까운 축제나, 기념일이나, 새해와 같이 평범한 날들과는 다른 날들, 시간이 과거의 유산을 버리고 그 슬픔의 유산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새롭게 시작하는 날들을 기다리며) 나는 질베르트에게 우리의 옛 우정을 포기하고 새로운 우정의 기초를 놓자고 요청했다.

나는 항상 스완 씨와 부인이 사는 거리를 구별할 수 있는 파리 지도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 지도는 내게 보물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즐거움으로, 또 일종의 기사도적 충실함으로, 나는 아무 때나 그 거리의 이름을 말했다. 그래서 내 아버지는 내 사랑을 알고 있는 어머니와 할머니와는 달리 내게 물었다.

“왜 계속 그 거리 얘기를 하니? 특별할 것 없는 거리야. 불로뉴 숲에서 가까워서 살기 좋긴 하지만, 그런 거리가 열 개는 더 있어.”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부모님이 스완이라는 이름을 발음하게 만들었다. 물론 나는 그 이름을 계속 마음속으로 되뇌었지만, 그 달콤한 소리를 듣고 그 음악을 연주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조용히 읽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게다가 내가 오랫동안 알고 있던 이 스완이라는 이름은 이제 어떤 실어증 환자들에게 가장 흔한 단어들이 그렇듯이 나에게 새로운 이름이 되었다. 그것은 항상 내 생각 속에 있었지만 내 생각은 그것에 익숙해질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을 분해하고 철자를 확인했다. 그 철자는 나에게 놀라움이었다. 그리고 친숙함과 동시에 그것은 더 이상 무구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 이름을 듣는 즐거움이 너무나 죄스럽게 여겨져서, 내가 그 이름을 대화에 끌어들이려고 하면 사람들이 내 생각을 알아채고 화제를 바꾸는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질베르트와 관련된 주제들로 되돌아갔고, 같은 말들을 끝없이 되풀이했다. 그리고 그것들이 단지 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녀에게서 멀리 떨어져 그녀가 듣지 못하는 곳에서 발음된 말들, 현재의 상태를 반복할 뿐 그것을 바꿀 수 없는 효력 없는 말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질베르트 주변의 모든 것을 계속 다루고 휘젓다 보면 어쩌면 그 속에서 행복한 무언가를 끌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부모님에게 질베르트가 가정교사를 좋아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마치 이 말이 마법처럼 질베르트로 하여금 실제로 가정교사를 좋아하게 만들고 그래서 그녀를 더 자주 볼 수 있게 해줄 것처럼 말이다. 내가 질베르트를 여러 번 칭찬하면 그녀가 나를 더 좋아하게 될 거라고 굳게 믿으면서 말이다.

백번째로 말하는 이 제안이 마침내 질베르트를 영원히 우리와 함께 살게 할 것이라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데바’지를 읽는 노부인에 대한 찬사를 다시 시작했다. (부모님에게 그녀가 대사의 아내이거나 귀족일 수도 있다고 넌지시 말했었다.) 나는 계속해서 그녀의 아름다움, 화려함, 고귀함을 칭송하다가 질베르트가 말한 이름으로 보아 그녀의 이름이 블라탱 부인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아, 이제 알겠구나.” 내가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는 동안 어머니가 외쳤다. “네 불쌍한 할아버지 말씀대로 ‘경계하라! 경계하라!’네. 그래서 네가 아름답다고 생각한 사람이 그 여자였구나! 그녀는 끔찍해, 항상 그랬어. 그녀는 집행관의 미망인이야. 네가 어렸을 때 체육 수업에서 그녀를 피하려고 내가 얼마나 애썼는지 기억 안 나니? 나를 모르면서도 ‘남자아이치고는 너무 예쁘다’는 핑계로 나에게 말을 걸려고 했었지. 그녀는 항상 사교계에 끼고 싶어 했고, 내가 항상 생각했듯이 그녀가 정말로 스완 부인을 안다면 그녀는 일종의 미친 사람임에 틀림없어. 그녀가 아주 평범한 환경 출신이라고 해도,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그녀에 대해 나쁘게 말할 건 없었어. 하지만 그녀는 항상 인맥을 만들려고 했지. 그녀는 끔찍하고, 지독히 저속하며, 게다가 곤란한 상황을 만드는 사람이야.”

스완을 닮으려고 나는 식탁에서 계속 코를 만지작거리고 눈을 비볐다. 아버지는 “이 아이는 바보야, 추하게 될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무엇보다도 스완처럼 대머리가 되고 싶었다. 그는 너무나 비범한 존재로 보여서, 내가 아는 사람들도 그를 알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어느 평범한 날에 우연히 그를 만날 수도 있다는 것이 경이로웠다. 그리고 한번은 어머니가 매일 저녁 식사 때처럼 오후에 했던 심부름에 대해 이야기하시다가 “그런데 말이야, 누구를 만났는지 맞춰보렴. 트루아 카르티에 백화점 우산 부서에서 스완을 만났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내게는 매우 건조한 이야기 중에 신비로운 꽃을 피어나게 했다. 그날 오후 군중 속에서 초자연적인 모습으로 우산을 사러 왔던 스완의 모습을 상상하니 얼마나 우울하고 관능적인 느낌이 들었는지 모른다. 크고 작은 사건들 사이에서, 나에게는 모두 무관심했던 그 사건들 중에서 이것만이 질베르트에 대한 나의 사랑을 영원히 흔들어놓았다. 아버지는 내가 테오도스 왕의 방문이 가져올 수 있는 정치적 결과에 대해 이야기할 때 듣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테오도스 왕은 현재 프랑스의 손님이자 동맹국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스완이 망토를 입고 있었는지 알고 싶었다.

“인사는 하셨어요?” 내가 물었다.

“물론이지,” 어머니가 대답했다. 그녀는 항상 우리가 스완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인정하면 누군가가 우리를 화해시키려 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스완 부인을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가 먼저 와서 인사했어. 난 그를 보지 못했거든.”

“그럼 당신들은 서로 멀어진 게 아니네요?”

“멀어졌다고? 왜 우리가 멀어졌을 거라고 생각하니?” 그녀는 마치 내가 그녀와 스완의 좋은 관계라는 환상을 깨뜨리려 하고 ‘화해’를 시도하려는 것처럼 재빨리 대답했다.

“그를 더 이상 초대하지 않아서 당신에게 화가 날 수도 있잖아요.”

“모든 사람을 다 초대할 필요는 없어. 그가 나를 초대하니? 난 그의 아내를 모르잖아.”

“하지만 그는 콩브레에 오곤 했잖아요.”

“그래, 콩브레에는 왔지. 하지만 파리에서는 그도 할 일이 있고 나도 할 일이 있어. 하지만 우리가 서로 멀어진 사람들처럼 보이지는 않았다고 확신해. 우리는 그의 소포가 오지 않아서 잠시 함께 있었어. 그가 네 소식을 물었고, 네가 그의 딸과 노는 걸 안다고 하더라.” 어머니는 내가 스완의 머릿속에 존재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말했다. 더욱이 샹젤리제에서 그 앞에서 사랑에 떨고 있을 때, 그가 내 이름을 알고, 내 어머니가 누구인지 알고, 내 조부모와 가족, 우리가 사는 곳, 우리의 과거 생활의 특정한 세부사항들(어쩌면 내가 모르는 것들까지도)을 그의 딸의 친구라는 내 신분과 함께 결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하지만 어머니는 스완이 그녀를 보았을 때 공통의 기억을 가진 특정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다가와 인사했던 트루아 카르티에의 그 부서에서 특별한 매력을 느끼지 않은 것 같았다.

그녀도, 아버지도 스완의 조부모나 명예 증권 중개인이라는 그의 직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서 다른 어떤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지 않았다. 내 상상력은 파리의 돌 중에서 어떤 집을 분리하고 신성시했듯이, 파리의 사교계에서도 어떤 가문을 분리하고 신성시했다. 하지만 나만이 이런 장식을 볼 수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스완이 사는 집을 부아 지역에 같은 시기에 지어진 다른 집들과 똑같이 여기듯이, 스완의 가문도 그들에게는 다른 많은 증권 중개인 가문들과 같은 부류로 보였다. 그들은 그 가문이 우주의 나머지 부분과 공통된 장점에 얼마나 참여했는지에 따라 더 호의적으로 또는 덜 호의적으로 판단했고, 그 안에서 독특한 점을 찾지 못했다. 반대로 그들이 그 안에서 높이 평가한 것들은 다른 곳에서도 똑같은 정도로, 또는 더 높은 정도로 발견했다. 그래서 집이 잘 위치해 있다고 생각한 후에는 질베르트와는 아무 상관없는 더 좋은 위치의 다른 집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녀의 할아버지보다 한 단계 위의 금융인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이 잠시 나와 같은 의견인 것처럼 보였다면, 그것은 곧 사라질 오해 때문이었다. 질베르트를 둘러싼 모든 것에서, 색의 세계에서 적외선과 같은 미지의 특질을 감지하기 위해서는, 사랑이 나에게 부여한 추가적이고 일시적인 감각이 부모님에게는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질베르트가 샹젤리제에 오지 않을 거라고 말한 날에는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려고 산책을 했다. 때때로 나는 프랑수아즈를 데리고 스완 가족이 사는 집 앞으로 순례를 갔다. 나는 그녀에게 가정교사로부터 들은 스완 부인에 관한 이야기를 끝없이 반복하게 했다. “그녀는 메달을 많이 믿는다고 해요. 올빼미 소리를 들었거나, 자정에 고양이를 보았거나, 벽에서 시계 소리 같은 것이 들리거나, 가구에서 나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면 절대 여행을 떠나지 않는대요. 아, 그녀는 정말 미신을 많이 믿는 사람이에요!” 나는 질베르트를 너무나 사랑해서 길에서 그들의 늙은 집사가 개를 산책시키는 것을 보면 감정에 휩싸여 멈춰 서서 그의 흰 구레나룻을 열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다. 프랑수아즈는 나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세요?”

그러고 나서 우리는 그들의 대문 앞까지 걸어갔다. 거기에는 다른 문지기들과는 다른 문지기가 있었는데, 그의 제복의 금장식에까지 스며든 질베르트라는 이름에서 내가 느꼈던 것과 같은 고통스러운 매력이 배어 있었다. 그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원죄로 인해 영원히 그 집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가 지켜야 할 신비로운 삶이 펼쳐진 2층의 창문들은 마치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듯이 닫혀 있었다. 그 창문들은 모슬린 커튼의 우아한 드리움 아래 다른 어떤 창문보다도 질베르트의 눈빛을 더 많이 닮아 있었다. 때로는 우리는 대로로 나가 뒤포 거리 입구에 자리를 잡았다. 스완이 치과 의사를 찾아가는 모습을 그곳에서 자주 볼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 상상력은 질베르트의 아버지를 나머지 인류와 너무나 다르게 구별 지었고, 현실 세계 속 그의 존재는 너무나 많은 경이로움을 자아냈기에, 마들렌 성당에 도착하기도 전에 나는 초자연적인 출현이 일어날 수 있는 거리에 접근한다는 생각에 흥분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 질베르를 만나지 못할 때는 – 나는 스완 부인이 거의 매일 ‘아카시아 가로수길’과 큰 호수 주변, 그리고 ‘마르그리트 왕비 가로수길’을 산책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프랑수아즈를 불로뉴 숲 쪽으로 데려갔다. 그곳은 내게 동물원과 같았다. 다양한 식물들과 대조되는 풍경들이 한데 모여 있는 곳, 언덕 뒤에 동굴이 있고, 초원과 바위, 강과 웅덩이, 언덕과 습지가 있는 곳. 하지만 나는 그것들이 하마와 얼룩말, 악어, 러시아 토끼, 곰과 왜가리의 놀이터나 아름다운 배경을 제공하기 위해서만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불로뉴 숲도 마찬가지로 복잡했다. 서로 다른 작은 세계들이 폐쇄적으로 모여 있었다. 버지니아의 농장처럼 붉은 나무들과 미국 참나무가 심어진 농장이 호숫가의 전나무 숲이나 갑자기 부드러운 털과 아름다운 짐승의 눈을 가진 빠른 산책자가 나타나는 울창한 숲과 이어졌다. 그곳은 여인들의 정원이었다. 그리고 –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 나오는 도금양 가로수길처럼 – 한 종류의 나무로만 심어진 아카시아 가로수길은 유명한 미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었다. 마치 멀리서 바위 정상에서 물속으로 뛰어드는 바다표범을 보게 될 것을 알고 기뻐하는 아이들처럼, 아카시아 가로수길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 향기가 주변으로 퍼져 강력하고 부드러운 개성을 지닌 식물의 접근과 독특함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내가 가까이 다가갈 때, 가볍고 우아한 나뭇가지 꼭대기가 보였다. 그것은 쉽게 우아함을 뽐내는 듯했고, 섬세하고 얇은 잎사귀 위로 수백 개의 꽃들이 날개 달린 진귀한 기생충 군락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 여성스럽고, 한가롭고 부드러운 이름까지도 내 마음을 뛰게 했다. 하지만 그것은 무도회장 입구에서 안내원이 발표하는 아름다운 초대객의 이름만을 떠올리게 하는 왈츠처럼 세속적인 욕망 때문이었다. 나는 그 가로수길에서 모두 결혼한 것은 아니지만 보통 스완 부인과 함께 언급되는 몇몇 우아한 여인들을 볼 수 있을 거라고 들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예명으로 불렸고, 새 이름이 있다 해도 그저 그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정체를 밝히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가명에 불과했다. 아름다움이 – 여성적 우아함의 영역에서 – 그들이 입문된 비밀스러운 법칙에 의해 지배되며, 그들에게는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그들의 옷차림, 마차, 그리고 수많은 세부사항의 출현을 미리 계시처럼 받아들였다. 그 안에 나는 이 덧없고 움직이는 전체에 걸작의 일관성을 부여하는 내면의 영혼처럼 나의 믿음을 두었다. 하지만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스완 부인이었고, 나는 그녀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마치 질베르트를 기다리는 것처럼 흥분되었다. 질베르트를 둘러싼 모든 것에 그녀의 매력이 배어 있어서 그녀의 부모님은 내게 질베르트만큼이나 많은 사랑을, 심지어 더 고통스러운 혼란을 (그들이 질베르트와 접촉하는 지점이 내게 금지된 그녀 삶의 내밀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불러일으켰고, 마지막으로 (나는 곧 그들이 내가 질베르트와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를 해칠 수 있는 무제한의 힘을 가진 이들에게 우리가 항상 바치는 그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스완 부인이 걸어가는 모습을 볼 때 단순함에 가장 높은 미적 가치와 세속적 위대함을 부여했다. 그녀는 모직 폴로네즈를 입고, 작은 토크 모자에 로포포르 새의 깃털 장식을 하고, 가슴에는 제비꽃 다발을 꽂은 채 서둘러 아카시아 가로수길을 가로질러 갔다. 마치 그곳이 집으로 돌아가는 가장 짧은 길일 뿐인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멀리서 그녀의 실루엣을 알아본 마차 탄 신사들의 인사를 눈짓으로 답했고, 그들은 서로에게 말했다. “아무도 그녀만큼 멋진 사람은 없어.” 하지만 단순함 대신 화려함을 가장 높이 평가하게 된 것은, 내가 프랑수아즈를 강제로 한 시간 동안 백 번이나 왔다 갔다 하게 한 후 (그녀는 지쳐서 다리가 “안으로 들어간다”고 말했다) 마침내 도핀 문에서 오는 가로수길에서 나타나는 모습을 보았을 때였다. 그것은 내게 왕족의 위엄, 어떤 진짜 여왕도 그 후에 나에게 그런 인상을 주지 못했던 군주의 도착을 상징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의 권력에 대해 더 모호하지 않고 경험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마리의 열정적이고 날씬하며 꼬불꼬불한 말들이 끄는 마차가 나타났다. 그 말들은 콘스탄틴 귀의 그림에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마차 좌석에는 코사크처럼 털옷을 입은 거대한 마부가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옆에는 ‘고 보드노르’의 ‘호랑이’를 연상시키는 작은 마부가 있었다. 나는 – 아니 차라리 내 가슴에 선명하고 고통스러운 상처로 그 형태가 새겨지는 것을 느꼈다 – 비할 데 없는 빅토리아 마차를 보았다. 그것은 의도적으로 약간 높았고, ‘최신 유행’의 사치를 통해 옛 형태를 암시하고 있었다. 그 안에는 스완 부인이 편안하게 앉아 있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이제 금발이 되었고 한 줄기의 회색 머리카락만이 남아 있었다. 가는 꽃 띠로 둘러싸인 머리에서 긴 베일이 내려왔고, 손에는 보라색 파라솔을 들고 있었다. 입술에는 애매한 미소를 띠고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왕비의 자비로움으로만 보았지만 사실 그 안에는 매춘부의 도발도 있었다. 그녀는 그 미소를 자신을 향해 인사하는 사람들에게 부드럽게 기울였다. 이 미소는 실제로 어떤 이들에게는 “기억하고 있어요, 정말 멋졌죠!”라고 말했고, 다른 이들에게는 “얼마나 좋았을까요! 운이 나빴네요!”라고, 또 다른 이들에게는 “그러시겠어요! 저는 조금 더 줄을 따라가다가 기회가 되면 빠져나갈게요.”라고 말했다. 모르는 사람들이 지나갈 때는 그녀의 입가에 게으른 미소가 머물렀다. 그것은 마치 친구를 기다리거나 회상하는 듯한 표정이었고, 사람들은 “정말 아름답군!”이라고 말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특정 남성들에게만 그녀는 신랄하고, 억지스럽고, 수줍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이런 뜻이었다. “그래요, 악당 양반, 당신이 독사의 혀를 가지고 있어서 말을 참지 못한다는 걸 알아요! 내가 당신 걱정이나 하겠어요?” 코클랭이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이야기하며 지나갔다. 그는 마차에 탄 사람들에게 극장식 큰 인사를 보냈다. 하지만 나는 오직 스완 부인만을 생각했고, 그녀를 보지 않은 척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비둘기 사격장 높이에 이르면 마부에게 줄을 벗어나 멈추라고 할 것이고, 그녀가 가로수길을 걸어 내려올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발. 그리고 그녀 옆을 지나갈 용기가 생기는 날이면, 나는 프랑수아즈를 그 방향으로 데려갔다. 실제로 어느 순간, 보행자 길에서 우리를 향해 걸어오는 스완 부인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보라색 드레스의 긴 자락을 뒤로 늘어뜨리고 있었다. 마치 일반 사람들이 상상하는 여왕처럼, 다른 여자들은 입지 않는 값비싼 옷감과 장신구로 치장하고 있었다. 때때로 양산 손잡이를 내려다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마치 그녀의 중요한 일과 목적이 운동을 하는 것이었고, 자신이 보여지고 있다는 것과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려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때때로 그레이하운드를 부르기 위해 돌아설 때, 그녀는 거의 눈에 띄지 않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조차 특별하고 과도한 무언가에 의해 – 또는 라 베르마가 절정에 달했을 때 무지한 군중 속에서 박수갈채를 터뜨리게 하는 텔레파시 같은 방사에 의해 – 그녀가 유명한 사람임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저 사람이 누구지?”라고 물었고, 때로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또는 더 잘 아는 친구들에게 바로 알려줄 수 있도록 그녀의 옷차림을 기억하기로 약속했다. 다른 산책객들은 반쯤 멈춰 서서 말했다.

“아시나요? 스완 부인이에요. 아무 말도 하지 않나요? 오데트 드 크레시 말이에요.”

“오데트 드 크레시라고요? 그래서 그런 슬픈 눈을 하고 있군요… 하지만 그녀도 이제 젊지만은 않겠어요! 저는 막 마옹 대통령이 사임한 날 그녀와 잤던 기억이 나는데요.”

“그녀에게 그 말을 상기시키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그녀는 이제 스완 부인이에요. 웨일즈 왕자의 친구인 조키 클럽의 한 신사와 결혼했어요.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워요.”

“그래요, 하지만 당신이 그때 그녀를 알았더라면, 얼마나 예뻤는지 알 텐데요! 그녀는 중국풍의 장식이 있는 아주 특이한 저택에 살았어요. 신문 팔이들의 소리에 우리가 얼마나 짜증났는지 기억나요. 결국 그녀가 저를 일어나게 했죠.”

나는 그 말들을 듣지 못했지만, 그녀 주변에서 명성의 불분명한 속삭임을 느꼈다. 내 마음은 초조함으로 뛰었다. 이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 중에 내가 멸시당한다고 느끼는 혼혈 은행가가 없다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이 낯선 청년이, (사실 그녀를 알지는 못했지만, 내 부모님이 그녀의 남편을 알고 있고 내가 그녀의 딸의 친구였기 때문에 그렇게 할 자격이 있다고 믿었던) 아름다움과 부도덕과 우아함으로 유명한 이 여인에게 인사를 하기까지 잠시 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미 나는 스완 부인 가까이에 있었고, 나는 그녀에게 너무나 크고 넓고 오래 지속되는 인사를 해서 그녀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웃었다. 그녀는 나를 질베르트와 함께 본 적이 없었고 내 이름도 몰랐지만, 나는 그녀에게 – 마치 숲의 경비원이나 뱃사공, 또는 그녀가 빵을 던져주는 호수의 오리들처럼 – 그녀의 산책에서 ‘극장의 단역’ 만큼이나 개성이 없는, 익숙하고 익명의 부차적 인물 중 하나였다. 어떤 날은 내가 그녀를 아카시아 가로수길에서 보지 못했을 때, 마르그리트 여왕 가로수길에서 그녀를 만나기도 했다. 그곳은 혼자 있고 싶어 하거나 혼자 있는 척하고 싶어 하는 여자들이 가는 곳이었다. 그녀는 오래 혼자 있지 않았다. 곧 회색 ‘실크해트’를 쓴 친구가 그녀와 합류해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나는 그를 알지 못했다. 그들의 마차 두 대가 뒤따랐다.

이 불로뉴 숲의 복잡성은 그곳을 인위적인 장소로 만들었고, 동물학적 또는 신화학적 의미에서의 정원으로 만들었다. 나는 이것을 올해 트리아농으로 가기 위해 숲을 가로질러 가던 11월의 첫 아침들 중 하나에 다시 느꼈다. 파리의 집들에서는 너무 빨리 끝나버리는 가을의 광경을 가까이에서 볼 수 없어 그리움과 낙엽에 대한 진정한 열병을 느끼게 되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한 달 동안 내 닫힌 방에서, 그것들을 보고 싶은 욕망에 의해 불러일으켜진 낙엽들이 내가 집중하려는 어떤 대상과 내 생각 사이에 끼어들었고, 때로는 우리가 무엇을 보든 눈앞에서 춤추는 노란 얼룩들처럼 소용돌이쳤다. 그리고 이 아침에, 더 이상 전날들처럼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을 듣고, 닫힌 커튼 구석에서 미소 짓는 좋은 날씨를 보며 – 마치 닫힌 입술 사이로 행복의 비밀을 새어나오게 하는 것처럼 – 나는 이 노란 잎들을, 그들의 최후의 아름다움 속에서 빛에 비춰진 채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예전에 바람이 굴뚝에서 너무 세게 불 때 바다로 떠나고 싶었던 것처럼, 나는 더 이상 나무들을 보지 않고 견딜 수 없어서 불로뉴 숲을 지나 트리아농으로 가기 위해 나섰다. 그때가 불로뉴 숲이 가장 다양해 보이는 시간이자 계절이었다. 단지 더 세분화되어 있어서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세분화되어 있어서였다. 심지어 트인 곳에서도 넓은 공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에서, 여기저기 멀리 있는 나무들의 어두운 덩어리 앞에 잎이 없거나 여름 잎을 그대로 가진 나무들이 있었고, 주황색 마로니에 나무 두 줄이 마치 겨우 시작된 그림에서 장식가가 아직 나머지에 색을 칠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중에 추가될 인물들의 일화적인 산책을 위해 한가운데 빛나는 길을 내밀고 있었다.

더 멀리, 모든 초록 잎이 나무들을 덮고 있는 곳에서, 한 그루의 작고 뚱뚱하고 잘린 듯한 고집 센 나무가 바람에 붉은 머리카락 같은 잎사귀를 흔들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5월의 첫 깨어남이 있었고, 놀랍고 미소 짓는 겨울 장미 같은 덩굴식물의 잎들이 아침부터 활짝 피어 있었다. 그리고 이 숲은 식물학적 관심에서든 축제 준비를 위해서든, 아직 옮겨 심지 않은 평범한 나무들 사이에 두세 종류의 진귀한 환상적인 잎을 가진 나무들을 설치해 놓은 듯한 임시적이고 인위적인 모습의 묘목장이나 공원 같았다. 그 나무들은 주변에 빈 공간을 만들고, 공기를 통하게 하고, 빛을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것은 불로뉴 숲이 가장 다채로운 모습을 드러내고 가장 뚜렷한 부분들을 나란히 배치하여 복잡한 풍경을 만들어내는 계절이었다. 그리고 또한 그런 시간이기도 했다. 아직 잎이 남아 있는 나무들은 아침의 거의 수평적인 햇살에 닿는 부분부터 변화를 겪는 듯했다. 그 빛은 몇 시간 후 황혼이 시작될 때 다시 그렇게 될 것이다. 그때 그 빛은 마치 램프처럼 켜져서 멀리 있는 나뭇잎에 인위적이고 따뜻한 빛을 비추고, 꼭대기는 타지 않은 채 그대로 있는 나무의 마지막 잎들을 불타오르게 할 것이다. 여기서는 그 빛이 벽돌처럼 두껍게, 그리고 파란 무늬가 있는 노란 페르시아 벽돌처럼 마로니에 나무의 잎들을 하늘에 대고 거칠게 시멘트로 발랐다. 반면에 저기서는 그 잎들을 하늘로부터 떼어내 그들이 황금빛 손가락을 오그리게 했다. 나무 중간 높이에서는 담쟁이덩굴로 덮인 나무에 눈부심 속에서 분명히 구별할 수 없는 거대한 꽃다발을 접목시키고 피어나게 했는데, 아마도 붉은 카네이션의 한 품종일 것이다.

불로뉴 숲의 다양한 부분들은 여름에 나무들이 무성하고 단조로운 녹음에 더 잘 섞여 있던 숲이 이제 드러났다. 더 환하게 트인 공간들이 거의 모든 입구를 보여주었고, 혹은 화려한 잎사귀가 군기처럼 그것을 가리켰다. 마치 색채 지도에서처럼 아르메농빌, 프레 카틀랑, 마드리드, 경마장, 호수 주변을 구별할 수 있었다. 때때로 어떤 쓸모없는 건축물, 가짜 동굴, 나무들이 비켜서서 자리를 내어준 풍차, 또는 잔디밭이 부드러운 대지 위에 내민 풍차가 나타났다. 숲이 단순히 숲이 아니라 나무들의 생명과는 무관한 목적에 부합한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느끼는 고양감은 단지 가을에 대한 감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어떤 욕망 때문이었다. 영혼이 처음에는 그 원인을 인식하지 못하고, 외부의 어떤 것도 그것을 동기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느끼는 큰 기쁨의 원천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무들을 만족스럽지 못한 애정으로 바라보았다. 그 애정은 나무들을 넘어서 매일 몇 시간 동안 그들이 품고 있는 아름다운 산책자들의 걸작으로 무의식중에 향했다. 나는 아카시아 가로수 쪽으로 갔다. 나는 아침 빛이 새로운 구분을 부여하고, 나무들을 가지치기하고, 다양한 줄기들을 서로 결합시키고 꽃다발을 만드는 숲을 지나갔다. 그것은 두 나무를 교묘하게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빛줄기와 그림자의 강력한 가위를 이용하여 각각의 줄기와 가지의 절반을 잘라내고, 남은 두 절반을 함께 엮어 주변의 햇볕이 경계를 짓는 단일한 그림자 기둥을 만들거나, 검은 그림자의 그물이 가짜 떨리는 윤곽을 둘러싼 단일한 밝음의 환영을 만들었다. 햇빛이 가장 높은 가지들을 황금빛으로 물들일 때, 그것들은 반짝이는 습기에 젖은 듯 보였고, 마치 바다 아래에 잠긴 것처럼 숲 전체가 잠겨 있는 에메랄드 빛의 액체 대기에서 홀로 떠오르는 것 같았다. 나무들은 계속해서 자신들의 삶을 살았고, 잎이 더 이상 없을 때는 그들의 줄기를 감싸는 녹색 벨벳 덮개나 미켈란젤로의 창조에서 해와 달처럼 둥근 포플러 나무 꼭대기에 뿌려진 겨우살이 흰 구슬에서 더 잘 빛났다. 하지만 그들은 여성과 함께 살도록 일종의 접목에 의해 수년간 강요받아 왔기에, 나에게 드리아드, 빠르고 화려한 아름다운 여성을 떠올리게 했다. 그들은 지나갈 때 그녀를 가지로 덮고 그녀로 하여금 그들처럼 계절의 힘을 느끼게 했다. 그들은 내가 여성의 우아함의 걸작들이 잠시 동안 무의식적이고 공모적인 나뭇잎 사이에서 실현될 곳으로 열심히 왔던 믿음 깊은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불로뉴 숲의 전나무와 아카시아가 욕망하게 했던 아름다움은, 내가 보러 갔던 트리아농의 밤나무와 라일락보다 더 동요시키는 것이었다. 그것은 역사적 시대의 기억 속에, 예술 작품 속에, 그 발치에 황금빛 나뭇잎들이 쌓이는 작은 사랑의 신전 속에 나 밖에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호수 가장자리에 도착했고, 비둘기 사격장까지 갔다. 내가 마음속에 품고 있던 완벽함의 관념을, 나는 그때 빅토리아 마차의 높이, 말벌처럼 가볍고 광포한 말들의 마른 모습, 디오메데스의 잔인한 말들처럼 핏발 선 눈에 빌려주었다. 지금은 그것을 다시 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수년 전 같은 길을 걸었을 때만큼이나 열렬하게, 스완 부인의 거대한 마부가 주먹만 한 어린아이 같은 작은 마부에 의해 감시받으며 놀라 날갯짓하는 강철 날개를 제어하려고 노력하는 순간에 다시 눈앞에 두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제는 콧수염 난 기술자들이 운전하는 자동차들만 있었고, 그들을 큰 시종들이 동행했다. 나는 내 기억의 눈에 보이던 것처럼 매력적인지 확인하기 위해 내 육체의 눈으로 단순한 왕관처럼 보이는 낮은 여성용 모자들을 보고 싶었다. 지금은 모두 거대해져서 과일과 꽃, 다양한 새들로 덮여 있었다. 스완 부인이 여왕처럼 보이던 아름다운 드레스 대신, 그리스-색슨 풍의 튜닉이 타나그라의 주름으로 올라가 있었고, 때로는 총재정부 스타일의 자유 시폰이 벽지처럼 꽃무늬로 장식되어 있었다. 스완 부인과 함께 마르그리트 여왕 가로수 길을 산책할 수 있었을 신사들의 머리에서 나는 예전의 회색 모자도, 다른 어떤 모자도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맨머리로 외출했다. 그리고 이 모든 새로운 광경의 부분들에 대해, 나는 더 이상 그것들에 일관성, 통일성, 존재를 부여할 믿음이 없었다. 그것들은 진실 없이, 무작위로, 산발적으로 내 앞을 지나갔고, 내 눈이 예전처럼 구성하려고 시도할 수 있는 어떤 아름다움도 담고 있지 않았다. 그것들은 그저 아무런 여자들이었고, 나는 그들의 우아함을 전혀 믿지 않았으며, 그들의 옷차림은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믿음이 사라질 때, 그것은 살아남는다 – 그리고 우리가 새로운 것들에 현실성을 부여할 수 있는 잃어버린 힘의 부족을 감추기 위해 점점 더 생생하게 – 그것이 생명을 불어넣었던 옛 것들에 대한 물신적 애착이, 마치 신성함이 우리 안에 있지 않고 그것들 안에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우리의 현재의 불신이 우연한 원인, 신들의 죽음에 있는 것처럼.

얼마나 끔찍한가! 나는 생각했다. 이 자동차들을 옛날의 마차처럼 우아하다고 여길 수 있을까? 아마도 나는 이미 너무 늙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자들이 옷감도 아닌 드레스에 얽매이는 세상에 맞지 않는다. 이 나무들 아래로 오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만약 이 섬세한 붉은 나뭇잎 아래에 모였던 그 정제된 것들 중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면? 만약 저속함과 어리석음이 그들이 둘러싸고 있던 우아한 것을 대체했다면? 얼마나 끔찍한가! 내 위안은 내가 알았던 여자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아함이 더 이상 없을 때. 하지만 새장이나 채소밭으로 덮인 모자 아래의 이 끔찍한 생물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어떻게 스완 부인이 단순한 자주색 보닛이나 곧게 선 한 송이 아이리스만 튀어나온 작은 모자를 쓴 모습이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를 느낄 수 있겠는가? 내가 겨울 아침에 스완 부인을 만났을 때 느꼈던 감동을 그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었을까? 그녀는 수달 외투를 입고, 두 개의 메추라기 깃털 칼이 튀어나온 단순한 베레모를 쓰고 걸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아파트의 인공적인 따뜻함은 단지 그녀의 가슴에 눌려 있는 제비꽃 다발에 의해 환기되었다. 그 생생하고 푸른 꽃들이 회색 하늘, 얼어붙은 공기, 나뭇가지가 벗겨진 나무들 앞에서 계절과 시간을 단지 틀로 삼아, 이 여인의 분위기, 인간적인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그녀의 거실의 꽃병과 화분에, 불이 켜진 벽난로 앞, 비단 소파 옆에 있는 꽃들이 닫힌 창문을 통해 눈이 내리는 것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매력을 지녔다. 게다가 옷차림이 그 시절과 같다고 해서 충분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억의 다른 부분들 사이의 연대성 때문에, 그리고 우리의 기억이 우리가 어떤 것도 제거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조립체에서 균형을 유지하기 때문에, 나는 스완 부인이 아들러와 열광적인 추종자들, 말 한 마리를 타고 돌아다니는 건달들, 코트 길이, 에나멜을 바른 작은 신발, 그리고 당시에는 우아하다고 여겨졌지만 지금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다시 입을 수 없을 것 같은 모든 것들로 둘러싸여 있기를 바랐을 것이다.

한 여인의 집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두운 색으로 칠해진 벽이 있는 아파트에서 말이다. 스완 부인의 집이 아직 그랬다 (이 이야기의 첫 번째 부분이 끝나는 다음 해에). 11월의 황혼 속에서 국화꽃들의 주황빛 불꽃, 붉은 연소, 분홍과 흰색 불꽃이 빛나는 순간들. 그때 (나중에 보겠지만) 내가 갈망하던 즐거움을 발견하지 못했던 순간들과 비슷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 순간들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나는 그 순간들을 기억 속 그대로 다시 찾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이제는 하얀색 루이 16세 양식 아파트만 있었고, 푸른 수국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게다가 사람들은 아주 늦게야 파리로 돌아왔다. 내가 스완 부인에게 그 기억의 요소들을 재현해 달라고 부탁했다면, 그녀는 성에서 2월에야 돌아온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국화꽃의 계절이 한참 지난 뒤였다. 나는 먼 과거의 한 해, 되돌아갈 수 없는 어느 시기와 연관된 그 기억의 요소들을 재현해달라고 부탁했을 것이다. 한때 헛되이 추구했던 즐거움처럼 이제는 닿을 수 없게 된 그 욕망의 요소들 말이다.

또한 그때와 똑같은 여인들이어야 했다. 내가 아직 믿음을 가졌을 때 상상력이 개성을 부여하고 전설을 만들어낸 그 여인들의 의상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 아카시아 가로수길, 아니 치자나무 가로수길에서 그 중 몇몇을 다시 보았다. 늙어버린 그들은 이제 옛날의 모습의 끔찍한 그림자일 뿐이었다. 버질의 숲 속을 헤매며 무엇인가를 절망적으로 찾고 있었다. 그들이 떠난 지 오래였지만 나는 여전히 텅 빈 길을 헛되이 찾아 헤매고 있었다.

해는 저물었다. 자연이 다시 숲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여인의 낙원이라는 생각은 날아가 버렸다. 가짜 풍차 위로 진짜 회색 하늘이 펼쳐졌다. 바람이 큰 호수에 작은 파도를 일으켰다. 마치 진짜 호수처럼 말이다. 큰 새들이 숲을 빠르게 가로질러 날아갔다. 마치 진짜 숲처럼 말이다. 그들은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며 거대한 참나무들 위에 차례로 내려앉았다. 참나무들은 드루이드 제사장의 관을 쓰고 도도네의 위엄을 지닌 채 버림받은 숲의 비인간적인 공허함을 선포하는 듯했다. 그리고 이는 내가 기억 속 그림들을 현실에서 찾으려는 것이 모순임을 더 잘 이해하게 해주었다. 그 그림들에는 기억 자체에서 오는 매력, 그리고 감각으로 지각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는 매력이 항상 결여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알았던 현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스완 부인이 똑같은 모습으로 같은 순간에 도착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가로수길은 달라졌다. 우리가 알았던 장소들은 우리가 편의상 그것들을 위치시키는 공간의 세계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우리의 당시 삶을 형성했던 인접한 인상들 사이의 얇은 조각에 불과했다. 특정 이미지에 대한 기억은 단지 특정 순간에 대한 그리움일 뿐이다. 그리고 집들, 길들, 가로수길들은 아! 세월처럼 덧없는 것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