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Q정전 阿Q正傳 by 루쉰 鲁迅

팔만대장경 프로젝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고려 시대에 우리 조상들은 당대의 지식을 집대성하여 팔만대장경을 편찬하였습니다. 오늘날의 팔만대장경은 동서양의 수많은 고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21세기의 팔만대장경을 만들어 고전 문헌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자 합니다.

생성형 AI 기술인 LLM의 발전으로 팔만대장경 프로젝트가 가능해졌습니다. LLM은 거의 전문가 수준의 매끄러운 번역을 제공하며, 이를 통해 한국어 사용자 누구나 고전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Anthropic의 Claude-3.5 Sonnet Google의 Gemini-1.5 Pro와 Gemini-1.5 Flash, 그리고 Microsoft의 Text 분석 기술을 MAIDEPOT의 AI 자동 융복합 기능으로 결합하여 활용하였습니다. 번역에 사용된 도구와 프롬프트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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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LLM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생성형 AI의 특성상 일부 어색하거나 틀린 번역이 있을 수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우리의 목표는 최대한 많은 고전 서적을 번역하여 지식의 문턱을 낮추는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날 것의 상태로 프로젝트의 양과 질과 높이는 일에 여러분들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프로젝트에 번역 또는 편집으로 도움을 주실 수 있다면 contact@maidepot.com 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원문 정보: 이 텍스트는 루쉰(鲁迅, Lu Xun)의 소설 《아큐정전(阿Q正傳)》의 일부입니다. 이 소설은 신해혁명 전후 중국 사회의 모순과 당시 중국인들의 무지하고 낙후된 정신 상태를 풍자적으로 그린 작품입니다. 본문은 소설의 첫 부분으로, 작가가 ‘나’라는 인물로 등장하여 아큐(阿Q)라는 인물의 ‘전기’를 쓰는 데 어려움을 토로하는 내용입니다.


번역 시 고려사항:

  1. 원문의 풍자적인 어조를 살려 번역해야 합니다.
  2. 당시 중국 사회의 분위기를 잘 드러낼 수 있도록 배경 지식을 참고하여 번역합니다.
  3. 아큐의 독백과 행동에서 드러나는 그의 비뚤어진 자존심과 자기 합리화를 잘 표현해야 합니다.
  4. 작가 특유의 간결하고 날카로운 문체를 살려 번역해야 합니다.
  5. 원문에 사용된 고사성어나 관용구는 최대한 한국어의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바꿔서 번역하되, 필요한 경우 괄호 안에 원문을 병기합니다.
  6. 지명이나 고유 명사의 경우, 한글 음차 후 괄호 안에 원문을 병기합니다.
  7. 옛 중국 화폐 단위는 적절한 한국어로 바꿔서 번역합니다. 예: 문(文) – 푼,
  8. 본문은 서술자가 ‘나’로 설정되어 있으나,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거는 듯한 표현들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부분들은 한국어 어법에 맞게 자연스럽게 번역합니다.


모든 등장인물 정보:

  • 아큐(阿Q) : 아큐 –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밑바닥 계층의 날품팔이꾼입니다. 그는 무지하고 비굴하며, 현실 도피적인 성격을 지녔지만, 자존심만은 매우 강하여 스스로를 속이며 정신 승리법을 통해 현실의 고통을 잊으려 합니다.
  • 조어르신(趙太爺): 조 어르신 – 마을의 유지이자 부자인 지주입니다. 아큐에게는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지만, 아큐는 속으로는 그를 두려워하고 동경합니다.
  • 왕호(王胡): 왕호 – 아큐 마을 사람으로, 아큐에게 무시당하는 인물입니다.
  • 가짜양귀자(假洋鬼子): 가짜 양놈 – 서양식 교육을 받은 인물로, 아큐가 혁명당으로 여기는 인물입니다.
  • 오마(吳媽): 오씨 – 조어르신 집의 하녀입니다.
  • 지보(地保): 지보 – 마을의 치안을 담당하는 말단 관리입니다.


모든 중요 용어 번역어:

  • 阿Q正傳(ā q zhèng zhuàn): 아큐정전 – 주인공 ‘아큐’의 ‘바른 전기’라는 뜻으로, 전기 형식을 빌려 당시 중국 사회를 풍자한 소설입니다.
  • 秀才(xiù cai): 수재 – 과거 시험의 초시에 합격한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오늘날의 대학교 입학 자격과 비슷합니다.
  • 舉人(jǔ rén): 거인 – 과거 시험에서 수재를 거쳐 다음 단계 시험에 합격한 사람을 일컫습니다.
  • 土谷祠(tǔ gǔ cí): 토곡사 – 토지와 오곡의 신을 모시는 사당으로, 아큐가 기거하는 곳입니다.
  • 長凳(cháng dèng): 긴 의자 – 원문에서는 도시 사람들이 ‘条凳'(조등)이라고 부르는 것을 ‘长凳’이라고 하는 것을 아큐가 비웃는 장면이 나옵니다.
  • 癩瘡疤(lài chuāng bā): 옴 자국 – 아큐의 머리에 있는 옴 자국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아큐는 이 옴 자국 때문에 놀림을 받는 것을 싫어하여 ‘癩'(옴)와 발음이 비슷한 단어들을 모두 피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 辮子(biàn zi): 변발 – 청나라 남자들이 의무적으로 길렀던 머리 모양입니다. 작품 속에서 변발은 청나라의 전통과 권위, 그리고 아큐의 정체성을 상징합니다.
  • 精神勝利法(jīng shén shèng lì fǎ): 정신 승리법 – 자신의 처지를 합리화하고, 패배를 승리로 왜곡하여 자존심을 지키려는 아큐의 행동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어입니다.
  • 假洋鬼子(jiǎ yáng guǐ zi): 가짜 양놈 – 서양식 교육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서양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을 비꼬는 말입니다. 아큐는 가짜 양놈을 혁명당으로 생각하고 그를 통해 혁명에 참여하려는 욕망을 드러냅니다.
  • 哭喪棒(kū sāng bàng): 상장 – 장례식 때 상주가 짚는 지팡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아큐는 가짜 양놈이 들고 있는 지팡이를 보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큐정전

제1장 서문

나는 아큐의 정전을 쓰려고 한 지 이미 1, 2년이 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쓰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망설여졌다. 이는 내가 ‘입언’하는 사람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준다. 왜냐하면 예로부터 불후의 글은 반드시 불후의 인물을 전해야 하고, 그래서 사람은 글로써 전해지고 글은 사람으로 인해 전해진다. 결국 누가 누구를 의지해 전해지는지 점점 모호해져, 마침내 아큐를 전기로 쓰게 된 것은 마치 생각 속에 귀신이 들어온 것 같았다.

그러나 이 덧없는 글을 쓰려고 붓을 잡는 순간 만분의 어려움을 느꼈다. 첫째는 글의 명목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않다”고 하셨다. 이는 당연히 매우 주의해야 할 점이다. 전기의 명목은 매우 다양하다. 열전, 자전, 내전, 외전, 별전, 가전, 소전… 하지만 아쉽게도 모두 적합하지 않다. ‘열전’이라고 하자니, 이 글이 많은 귀한 사람들과 함께 ‘정사’에 실리는 것도 아니고, ‘자전’이라고 하자니, 나는 결코 아큐가 아니다. ‘외전’이라고 한다면, ‘내전’은 어디 있단 말인가? 만약 ‘내전’이라고 쓴다면, 아큐는 결코 신선이 아니다. ‘별전’이라고 하자니, 아큐는 실제로 대총통의 상유로 국사관에 ‘본전’을 세우라는 명을 받은 적이 없다. 비록 영국 정사에는 ‘도박꾼 열전’이 없지만, 문호 디킨스가 ‘도박꾼 별전’이라는 책을 쓴 적이 있다고는 하나, 문호라면 가능할지 모르지만 우리 같은 사람은 안 된다. 다음으로 ‘가전’이라고 하자니, 나는 아큐와 같은 종족인지도 모르고 그의 자손에게서 부탁을 받은 적도 없다. ‘소전’이라고 하자니, 아큐에게는 더 이상 다른 ‘대전’이 없다. 결론적으로 이 글은 ‘본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내 글을 생각해보면 문체가 비천하여 ‘수레 끄는 장사치들이 쓰는 말’이기 때문에 감히 그렇게 부르지 못하고, 삼교구류에도 들지 못하는 소설가들이 말하는 “잡담은 그만하고 본론으로 돌아가자”는 상투적인 말에서 ‘정전’ 두 글자를 따와 명목으로 삼았다. 설령 옛 사람들이 지은 ‘서법정전’의 ‘정전’과 글자 상으로 매우 혼동된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둘째, 전기를 쓰는 일반적인 관례로는 첫머리에 대개 “아무개는 자가 아무개이고 아무 지방 사람이다”라고 써야 하는데, 나는 아큐의 성이 무엇인지 모른다. 한번은 그가 조씨인 것 같았지만, 다음 날 곧 모호해졌다. 그것은 조 어르신의 아들이 수재(秀才)가 되었을 때였다. 징소리가 땅땅 울리며 마을에 소식이 전해졌을 때, 아큐는 막 황주를 두 사발 마신 참이었다. 그는 손발을 춤추듯 흔들며 말했다. 이는 그에게도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왜냐하면 그는 조 어르신과 원래 같은 집안이고, 자세히 따져보면 그가 수재보다 3대나 위라고 했다. 그때 몇몇 방청객들도 오히려 숙연히 약간 경의를 표하는 듯했다. 그런데 다음 날, 지보(地保)가 아큐를 조 어르신의 집으로 불렀다. 어르신은 아큐를 보자마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며 고함을 쳤다.

“아큐, 이 못된 놈아! 네가 감히 내가 네 친척이라고 했느냐?”

아큐는 입을 열지 않았다.

조 어르신은 점점 더 화가 나서 몇 걸음 다가와 말했다.

“네가 감히 헛소리를! 내가 어떻게 너 같은 친척이 있겠느냐? 네가 조씨냐?”

아큐는 입을 열지 않고 뒤로 물러서려 했다. 조 어르신이 뛰어와 그의 뺨을 한 대 때렸다.

“네가 어떻게 조씨일 수 있어! – 네가 어디서 감히 조씨 성을 붙이느냐!”

아큐는 자신이 확실히 조씨라고 항변하지 않았다. 다만 왼쪽 뺨을 손으로 만지며 지보(地保)와 함께 물러났다. 밖에서 또 지보(地保)에게 한바탕 꾸중을 들었고, 지보(地保)에게 술값으로 200문(文)을 주었다. 아는 사람들은 모두 아큐가 너무 황당하다며, 스스로 매를 자초했다고 했다. 그는 아마도 조씨가 아닐 것이고, 설령 정말 조씨라 해도 여기에 조 어르신이 있는데 그렇게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 후로는 다시는 아무도 그의 성씨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끝내 아큐가 도대체 무슨 성인지 알지 못했다.

셋째, 나는 아Q의 이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그가 살아 있을 때는 사람들이 모두 그를 아Quei라고 불렀다. 하지만 죽고 나서는 아무도 아Quei라고 부르지 않았으니, ‘죽죽에 기록’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만약 ‘죽죽에 기록’된다면 이 글이 처음일 테니, 첫 번째 난관에 부딪힌 셈이다. 나는 아Quei를 아계(阿啓)로 써야 할지 아귀(阿貴)로 써야 할지 모르겠다. 만약 그의 호가 월정(月亭)이거나 8월에 생일이 있었다면 분명 아계일 텐데, 그에게는 호가 없었고 – 아마도 있었겠지만 아무도 모를 뿐이겠지 – 생일 축하 글을 받은 적도 없었다. 아계라고 쓰는 것은 너무 독단적인 것 같다. 또 만약 그에게 아부(阿父)라는 형이나 동생이 있었다면 분명 아귀일 텐데, 그는 혼자였다. 아귀라고 쓰는 것도 근거가 없다. 그 밖의 Quei 발음을 가진 희귀한 글자들은 더욱 맞지 않는다. 전에 조 어르신의 아들인 수재 선생에게 물어본 적이 있는데, 뜻밖에도 그처럼 박학한 분도 모르겠다고 하면서, 결론적으로 진독수(陳獨秀)가 《신청년(新青年)》을 만들어 서양 문자를 제창했기 때문에 국수(國粹)가 망하여 고증할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내 마지막 수단은 동향 사람에게 부탁해서 아Q의 범죄 기록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8개월 후에야 답장이 왔는데, 기록에 아Quei와 발음이 비슷한 사람이 없다고 했다. 정말 없는 건지 찾지 않은 건지 모르겠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주음자모(注音字母)가 아직 통용되지 않을까 봐 ‘양자(洋字)’를 써서 영국식 표기법에 따라 아Quei라고 쓰고 줄여서 아Q라고 했다. 이는 《신청년》을 맹목적으로 따른 것 같아 미안하지만, 수재 선생도 모르는데 내가 무슨 좋은 방법이 있겠는가.

넷째, 아Q의 본적 문제다. 만약 그가 조씨라면 지금 유행하는 본관 자랑하기 풍습에 따라 《군명백가성(郡名百家姓)》의 주석대로 “농서 천수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성씨가 확실치 않아 본적도 정확히 알 수 없다. 그가 미장(彌城)에 오래 살긴 했지만 다른 곳에서도 자주 묵었기에 미장 사람이라고 할 수 없고, “미장 사람이다”라고 해도 역사 서술법에 어긋난다.

내가 약간 위안을 삼는 것은 ‘아’자 하나는 매우 정확하여 억지로 끼워 맞춘 흠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이는 충분히 식자들의 비평을 받을 만하다. 나머지는 얕은 학식으로는 억측할 수 없으니, 다만 ‘역사광이자 고증광’인 후스(胡適) 선생의 제자들이 앞으로 많은 새로운 실마리를 찾아내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그때쯤이면 이 《아Q정전(阿Q正傳)》은 이미 사라져버렸을지도 모른다.

이상으로 서문을 대신한다.

제2장 승리의 기록

아Q는 이름과 본적뿐만 아니라 그의 이전 ‘행적’도 모호했다. 미장 사람들에게 아Q는 그저 일꾼이자 놀림감일 뿐, 그의 ‘행적’에 관심을 둔 사람은 없었다. 아Q 자신도 말하지 않았고, 다만 남들과 다툴 때면 간혹 눈을 부라리며 “우리가 예전에는 너희보다 훨씬 잘 살았다! 넌 뭐 대단한 것도 아니면서!”라고 했다. 아Q는 집이 없어서 미장의 토곡사(土谷祠)에 살았다. 고정된 직업도 없이 남의 일을 해주는 날품팔이였다. 밀을 베면 밀을 베고, 쌀을 찧으면 쌀을 찧고, 배를 젓게 되면 배를 저었다. 일이 좀 오래 계속되면 임시 주인 집에 묵기도 했지만, 일이 끝나면 떠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쁠 때는 아Q를 기억했지만, 그건 일 때문이지 ‘행적’ 때문이 아니었다. 한가해지면 아Q조차 잊어버리고 ‘행적’은 더더욱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한 번은 어떤 노인이 “아Q는 정말 일을 잘한다!”고 칭찬한 적이 있었다. 그때 아Q는 상의를 벗고 게으르게 마른 몸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 말이 진심인지 조롱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아Q는 매우 좋아했다.

아큐는 또한 자존심이 매우 강해서 웨이좡(魏莊) 마을의 모든 주민들을 그의 안중에 두지 않았고, 심지어 두 명의 수재(秀才)에 대해서도 비웃을 만한 것이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수재란 앞으로 진사(進士)가 될 수 있는 자들이다. 조 어르신과 전 전 어르신이 주민들에게 크게 존경받는 이유는 돈이 많은 것 외에도 모두 수재의 아버지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큐는 정신적으로 특별한 존경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생각했다. ‘내 아들은 훨씬 더 부자가 될 거야!’ 게다가 몇 번 성안에 들어갔다 온 아큐는 당연히 더욱 자만심에 빠졌다. 그러나 그는 또한 성안 사람들을 매우 얕잡아보았다. 예를 들어 3척 길이에 3촌 너비의 나무판자로 만든 의자를 웨이좡에서는 ‘긴 의자’라고 부르는데, 그도 ‘긴 의자’라고 불렀다. 하지만 성안 사람들은 ‘조등(条凳)’이라고 불렀다. 그는 생각했다. ‘이건 틀렸어, 웃기는군!’ 기름에 튀긴 대두어(大豆芽)는 웨이좡에서는 모두 반촌 길이의 파 잎을 얹었지만, 성안에서는 잘게 썬 파를 얹었다. 그는 생각했다. ‘이것도 틀렸어, 웃기는군!’ 그러나 웨이좡 사람들은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웃기는 시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성안의 튀긴 생선을 본 적이 없었다!

아큐는 ‘예전에 부자였고’, 견문이 넓으며, 게다가 ‘정말 일을 잘한다’. 본래 거의 ‘완벽한 사람’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의 체질에 몇 가지 결점이 있었다. 가장 짜증 나는 것은 그의 머리 피부에 언제부터인지 모를 옴 자국이 꽤 많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비록 그의 몸에 있지만, 아큐의 태도로 볼 때 그다지 귀중하게 여기지 않는 듯했다. 그는 ‘癩'(옴)와 ‘賴'(라이)와 비슷한 소리를 모두 금기시했고, 나중에는 더 나아가 ‘光'(광)도 금기시하고 ‘亮'(량)도 금기시했으며, 결국에는 ‘燈'(등)과 ‘燭'(촉)까지도 금기시했다. 한 번 금기를 어기면, 고의든 실수든 상관없이 아큐는 온 얼굴이 붉어지며 화를 냈다. 상대방의 힘을 가늠해 보고 말을 더듬는 사람에게는 욕을 했고, 힘이 약한 사람은 때렸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결국에는 아큐가 손해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그는 점점 전략을 바꿔 대체로 노려보는 것으로 바꾸었다.

누가 알았겠는가, 아큐가 노려보기 전략을 채택한 후에 웨이좡의 한량들이 더욱 그를 놀리기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을. 그들은 아큐를 만나면 놀란 척하며 말했다. “와, 밝아졌네.”

아큐는 여전히 화를 냈고, 그들을 노려보았다.

“여기에 안전등이 있었군!” 그들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큐는 어쩔 수 없이 다른 보복의 말을 생각해냈다. “너희는 아직 자격이 안 돼…” 이때 그의 머리 위에 있는 것이 마치 고귀하고 영광스러운 옴 자국인 것 같았고, 평범한 옴 자국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위에서 말했듯이 아큐는 식견이 있어서 곧바로 이것이 ‘금기’와 조금 충돌한다는 것을 알았고,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한량들은 아직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를 자극했고, 결국에는 싸움으로 번졌다. 아큐는 형식상 패배했고, 사람들에게 노란 변발을 잡혀 벽에 네다섯 번 머리를 부딪쳤다. 한량들은 이제야 만족스럽게 승리의 기쁨을 안고 갔다. 아큐는 잠시 서 있다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결국 아들에게 맞은 셈이지. 요즘 세상은 정말 말이 아니야…” 그래서 그도 만족스럽게 승리의 기쁨을 안고 갔다.

아큐가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을 나중에는 자주 입 밖으로 내뱉었기 때문에 아큐와 장난치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그가 이런 정신적 승리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그의 노란 변발을 잡을 때마다 사람들은 먼저 그에게 말했다. “아큐, 이건 아들이 아비를 때리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짐승을 때리는 거야. 너 스스로 말해봐. 사람이 짐승을 때리는 거라고!”

아큐는 두 손으로 자신의 변발 뿌리를 잡고 고개를 비틀며 말했다. “벌레를 때리는 거라고 하면 어때? 난 벌레야. 이제 놓아줄 거야?”

그러나 비록 벌레라고 했지만 한량들은 여전히 놓아주지 않았고, 여전히 가까이에 있는 어떤 곳에 그의 머리를 다섯 여섯 번 부딪치게 한 뒤에야 만족스럽게 승리의 기쁨을 안고 갔다. 그들은 이번에 아큐가 정말 재수 없는 일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0초도 채 지나지 않아 아큐도 만족스럽게 승리의 기쁨을 안고 갔다. 그는 자신이 가장 자기를 낮추고 비하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자기를 낮추고 비하하는 것’을 제외하면 남은 것은 ‘가장’이었다. 상원 장원 급제자도 ‘가장’이 아닌가? “너희가 뭐라고?”

아큐는 이와 같은 묘한 방법으로 원수를 물리친 후에는 기분 좋게 술집으로 달려가 술을 몇 잔 마시고, 또 다른 사람들과 한바탕 농담을 하고 말다툼을 하고 또 승리를 거두고 나서 기분 좋게 토곡사(土谷祠)로 돌아와 누워 잠들었다. 만약 돈이 있으면 그는 도박을 하러 갔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있고, 아큐는 땀을 흘리며 그 사이에 끼어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가장 컸다.

“청룡 사백!”

“자, 열었다!” 장(莊家)이 상자 뚜껑을 열며 역시 땀을 흘리며 외쳤다. “천문이다, 각회다! 인화가 관통했구나! 아큐의 동전 가져와!”

“관통 백… 백오십!”

아큐의 돈은 이런 노랫소리 속에서 점점 땀을 뻘뻘 흘리는 다른 이들의 허리춤으로 옮겨갔다. 그는 결국 무리에서 밀려나 뒤에 서서 구경만 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조바심을 내며 끝날 때까지 지켜보다가 아쉬운 마음으로 토곡사로 돌아와 다음 날 부은 눈으로 일하러 갔다.

하지만 정말로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아큐는 불행 중 다행으로 한 번 이겼는데, 오히려 거의 실패할 뻔했다.

미장의 신을 모시는 날 저녁이었다. 이날 저녁에는 관례대로 연극 공연이 있었고, 무대 주변에도 역시 관례대로 많은 도박판이 벌어졌다. 연극의 꽹과리 소리가 아큐의 귀에는 마치 십 리 밖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그는 오직 도박판 주인의 노래만 들렸다. 그는 이기고 또 이겼다. 동전이 은전이 되고, 은전이 큰 은전이 되고, 큰 은전이 또 쌓여갔다. 그는 무척 들떠서 외쳤다. “천문 두 장!”

그는 누가 누구와 왜 싸우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었다. 욕설과 주먹질 소리, 발자국 소리가 뒤섞여 들리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도박판도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온몸이 쑤시는 것이 주먹과 발길질을 맞은 것 같았다. 몇몇 사람들이 그를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 토곡사(土谷祠)로 들어갔다. 정신을 차려 보니 그의 한 뭉치 은전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축제 때 벌어진 도박판은 대부분 외지인들이 벌인 것이었다. 어디 가서 그 뿌리를 찾겠는가?

아주 하얗고 빛나는 한 뭉치 은전! 게다가 그의 것이었는데 – 이제 사라졌다! 아들에게 빼앗겼다고 치더라도 여전히 억울했다. 자신이 벌레라고 생각해도 여전히 억울했다. 이번에야말로 그는 실패의 고통을 조금 느꼈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패배를 승리로 바꾸었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힘껏 자신의 얼굴을 두 번 연달아 때렸다. 얼얼하고 아팠다. 때린 후에는 마음이 평온해졌다. 마치 때린 것은 자신이지만 맞은 것은 다른 자신인 것 같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다른 사람을 때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얼얼함은 남아 있었지만 만족스럽게 승리한 채로 누웠다.

그는 잠들었다.

제3장 승리의 기록 이어서

그러나 아큐는 늘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조 어르신에게 뺨을 맞은 후에야 비로소 유명해졌다.

그는 지보에게 200푼의 술값을 치르고 분개하며 누웠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요즘 세상이 말이 아니구나. 아들이 아비를 때리다니…” 그러다 문득 조 어르신의 위풍당당한 모습이 떠올랐고, 이제 자신이 그의 아들이 되었다는 생각에 점점 우쭐해졌다. 그는 일어나 ‘어린 과부의 성묘’ 노래를 부르며 술집으로 갔다. 이때 그는 다시 조 어르신이 남들보다 한 수 위라고 느꼈다.

이상하게도 이후로 사람들이 그를 더욱 존경하는 것 같았다. 아큐는 자신이 조 어르신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미장의 관례에 따르면 아칠이 아팔을 때리거나 이사가 장삼을 때리는 일은 원래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반드시 조 어르신 같은 유명인과 관련이 있어야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일단 소문이 나면 때린 사람도 유명해지고 맞은 사람도 덕분에 유명해졌다. 잘못이 아큐에게 있다는 건 당연히 말할 필요도 없었다. 왜 그럴까? 조 어르신은 잘못을 저지를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큐가 잘못했다면 왜 사람들이 그를 더 존경하는 것 같았을까? 이는 설명하기 어렵다. 깊이 따져보면 아큐가 조 어르신의 본가라고 말했기 때문에, 비록 맞기는 했지만 사람들은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른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존경하는 편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공자 사당의 제물처럼, 비록 돼지와 양과 같은 짐승이지만 성인이 먹은 것이라 선비들이 감히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아큐는 이후로 몇 년 동안 得意양양했다.

어느 해 봄, 그는 술에 취해 거리를 걸어가다가 담벼락 밑의 햇빛 아래에서 왕호가 웃통을 벗고 이를 잡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문득 자신의 몸도 가려워지는 것 같았다. 이 왕호는 옴병에 걸린 데다 수염까지 났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를 왕옴호라고 불렀다. 아큐는 ‘옴’자를 빼고 불렀지만 그를 무척 경멸했다. 아큐가 생각하기에 옴은 별로 특이할 것도 없고, 다만 이 긴 수염이 너무 신기해서 보기 싫었다. 그래서 그는 왕호 옆에 나란히 앉았다. 다른 한가한 사람들 옆이라면 아큐는 감히 대수롭지 않게 앉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왕호 옆이라면 무엇이 두려울 게 있겠는가? 솔직히 말해서 그가 옆에 앉아준 것만 해도 왕호에게는 영광이었다.

아큐도 낡은 겹옷을 벗어 뒤집어보았다. 새로 빨았는지 아니면 부주의해서인지 한참을 뒤져봐도 서너 마리밖에 잡지 못했다. 그는 왕호를 보니 한 마리, 또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를 잡아 입안에서 ‘딱딱’ 소리를 내며 깨물고 있었다.

아Q는 처음에는 실망했지만 나중에는 불만이 생겼다. 보잘것없는 왕호도 그렇게 많은데, 자신은 오히려 이렇게 적다니, 이건 얼마나 체면을 구기는 일인가! 그는 큰 것을 한두 개 찾고 싶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겨우 중간 크기의 것을 하나 잡아 원망스럽게 두꺼운 입술에 밀어 넣고 힘껏 깨물었다. 뚝 하고 소리가 났지만 왕호만큼 크게 나지 않았다. 그의 옴 자국이 하나하나 붉어졌다. 그는 옷을 바닥에 내던지고 침을 뱉으며 말했다. “이 벌레 같은 놈!”

“옴쟁이 개야, 누구 욕하는 거야?” 왕호가 경멸하듯 눈을 들어 말했다.

아Q는 최근 비교적 존경받게 되어 자신도 더 오만해졌지만, 평소에 싸움을 걸던 한량들을 만나면 여전히 겁을 먹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매우 용감했다. 이런 수염 덥수룩한 것이 감히 무례하게 말하다니?

“누구 찔리면 그놈 욕하는 거지!” 그가 일어서서 두 손을 허리에 짚고 말했다.

“뼈가 근질근질하냐?” 왕호도 일어서며 옷을 걸치고 말했다.

아Q는 그가 도망갈 줄 알고 달려들어 주먹을 날렸다. 그 주먹이 몸에 닿기도 전에 이미 잡혔고, 한 번 잡아당기자 아Q는 비틀비틀 넘어졌다. 즉시 왕호에게 변발을 잡혀 벽에 머리를 박으려 했다. “군자는 말로 하지 손을 쓰지 않는 법이오!” 아Q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왕호는 군자가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연달아 다섯 번이나 머리를 박게 한 뒤 힘껏 밀쳐 아Q를 6척이나 떨어뜨리고서야 만족스럽게 떠났다.

아Q의 기억으로는 이것이 평생 첫 번째 큰 굴욕이었다. 왕호는 덥수룩한 수염 때문에 늘 그에게 조롱당했지, 그를 조롱한 적은 없었고 손을 댄 적은 더더욱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가 손을 댔다니, 정말 뜻밖이었다. 정말 시장에서 말하는 대로 황제가 이미 과거를 폐지해 수재(秀才)와 거인(舉人)을 뽑지 않아서 조씨 집안의 위세가 약해지고, 그래서 그들도 자신을 얕보게 된 걸까?

아Q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었다.

멀리서 한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적이 또 나타났다. 이 사람도 아Q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 중 하나였는데, 바로 돈 선생의 큰아들이었다. 그는 전에 도시로 가서 서양 학교에 다녔다가 어쩐 일인지 동양으로 갔다 왔다. 반년 후 그가 집에 돌아왔을 때 다리도 곧아지고 변발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열 번 넘게 대성통곡을 했고, 그의 아내는 세 번이나 우물에 뛰어들었다. 나중에 그의 어머니는 여기저기 다니며 말했다. “이 변발은 나쁜 사람들이 술을 먹여 취하게 한 뒤 잘라버린 거예요. 원래는 큰 관리가 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다시 기르기만을 기다려야 해요.” 하지만 아Q는 믿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가짜 양놈’이라 부르고 ‘외국과 내통한 사람’이라고도 불렀다. 그를 볼 때마다 속으로 조용히 저주를 했다.

아Q가 특히 ‘깊이 증오하고 통렬히 배척하는’ 것은 그의 가짜 변발이었다. 변발이 가짜라니, 그건 사람 구실을 할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 그의 아내가 네 번째로 우물에 뛰어들지 않은 것도 좋은 여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 ‘가짜 양놈’이 가까이 왔다.

“대머리 놈. 당나귀…” 아Q는 평소에는 속으로만 욕을 했지 소리 내어 말한 적이 없었다. 이번에는 화가 나서 복수하고 싶은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살짝 내뱉고 말았다.

뜻밖에 이 대머리 놈이 노란색 칠을 한 막대기 – 아Q가 말하는 상장(哭喪棒) – 를 들고 성큼성큼 걸어왔다. 아Q는 순간 맞을 것 같아 재빨리 몸을 움츠리고 어깨를 들썩이며 기다렸다. 과연 탁 하고 소리가 나더니 확실히 자신의 머리를 때린 것 같았다.

“저 애요!” 아Q가 근처에 있던 아이를 가리키며 변명했다. 탁! 탁탁!

아Q의 기억으로는 이것이 평생 두 번째 큰 굴욕이었다. 다행히 탁탁 소리가 난 후에는 그에게 일이 끝난 것 같았고, 오히려 약간 홀가분해졌다. 게다가 ‘망각’이라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도 효과를 발휘해 그는 천천히 걸어가다 술집 문 앞에 이르자 벌써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맞은편에서 정수암의 어린 비구니가 걸어오고 있었다. 아Q는 평소에도 그녀를 보면 반드시 침을 뱉고 욕을 했는데, 하물며 굴욕을 당한 후에야? 그는 기억을 떠올렸고, 또 적개심이 생겼다.

“내가 오늘 왜 이렇게 재수가 없는지 모르겠더니, 원래 너를 봤기 때문이구나!” 그는 생각했다.

그는 다가가 큰 소리로 침을 뱉었다. “에이, 퉤!”

어린 비구니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걸어갔다. 아Q는 그녀 옆으로 다가가 갑자기 손을 뻗어 그녀의 새로 깎은 머리를 만지며 멍하니 웃으며 말했다. “대머리! 빨리 돌아가. 스님이 기다리고 있어…”

“왜 이렇게 손을 대고 그래요…” 비구니가 얼굴을 붉히며 말하고는 서둘러 걸어갔다.

술집 안의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아Q는 자신의 공적이 인정받은 것을 보고 더욱 의기양양해졌다.

“스님은 만져도 되고 나는 안 된다고?” 그가 그녀의 뺨을 잡았다.

주점 안의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아큐는 더욱 으쓱해졌고, 그 구경꾼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한 번 더 힘을 주어 꼬집고 나서야 손을 놓았다.

이번 싸움에서 그는 왕호도 잊었고 가짜 양놈도 잊었다. 마치 오늘의 모든 ‘재수 없는 일’에 복수를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온몸이 툭툭 털고 난 뒤보다 더 가벼워진 듯했고, 둥실둥실 날아갈 것만 같았다. “자식 새끼도 못 볼 아큐 놈!” 멀리서 작은 여승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하하하!” 아큐는 아주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하하하!” 주점 안의 사람들도 아주 신나게 웃었다.

제4장 사랑의 비극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승리자 중에는 적이 호랑이나 독수리 같기를 바라는 자가 있어, 그래야 승리의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만약 양이나 병아리 같다면 오히려 승리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또 어떤 승리자들은 모든 것을 정복한 뒤에 죽을 자는 죽고 항복할 자는 항복하여 “신하는 진실로 두렵고 죄스럽습니다”라고 하면, 그때부터 적도 없고 대적할 자도 없고 친구도 없이 오직 자신만이 위에 홀로 외롭고 쓸쓸하게 남아 도리어 승리의 슬픔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아큐는 그렇게 무료하지 않았다. 그는 영원히 득의양양했다. 이것이야말로 중국의 정신문명이 세계 제일임을 증명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보라, 그가 둥실둥실 날아갈 것만 같지 않은가!

하지만 이번 승리는 그에게 약간 이상한 기분을 주었다. 그는 둥실둥실 날아다니다가 토곡사(土谷祠)로 들어갔고, 늘 하던 대로 누워서 코를 골아야 했다. 그런데 이 날 밤, 그는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엄지손가락과 검지가 좀 이상하다고 느꼈다. 평소보다 미끈거리는 것 같았다. 작은 여승의 얼굴에 미끈거리는 것이 묻어 손가락에 묻은 것인지, 아니면 그의 손가락이 작은 여승의 얼굴에 문질러져 미끈거리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자식 새끼도 못 볼 아큐 놈!”

아큐의 귓가에 다시 이 말이 들렸다. 그는 생각했다. 맞아, 여자가 있어야 해. 자식 새끼가 없으면 제사상에 밥 한 그릇 올려줄 사람도 없지… 여자가 있어야 해. “불효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후손이 없는 것이 가장 크다”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여오의 귀신이 굶주린다”는 것도 인생의 큰 슬픔이니, 그의 생각은 사실 성현의 가르침에 모두 부합했다. 다만 나중에 “그 마음을 거두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여자, 여자!…” 그는 생각했다.

“…스님도 할 수 있는데… 여자, 여자!… 여자!” 그는 또 생각했다.

우리는 이 밤에 아큐가 언제 코를 골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아마도 그때부터 그는 늘 손가락이 미끈거린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때부터 늘 둥실둥실한 기분이었다. “여자…” 그는 생각했다.

이 한 가지만 봐도 우리는 여자가 해로운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의 남자들은 본래 대부분 성인군자가 될 수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모두 여자 때문에 망쳐버렸다. 상나라는 달기 때문에 망했고, 주나라는 포사 때문에 망했다. 진나라는… 비록 역사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우리가 여자 때문이라고 가정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동탁은 분명히 초선 때문에 죽었다.

아큐도 본래는 올바른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가 어떤 현명한 스승의 가르침을 받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남녀의 큰 도리”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매우 엄격했다. 또한 작은 여승이나 가짜 양놈 같은 이단을 배척하는 정기도 있었다. 그의 학설은 이랬다. 여승은 반드시 스님과 사통한다. 밖에서 돌아다니는 여자는 반드시 야한 남자를 유혹하려 한다. 남녀가 어디서 이야기를 나누면 반드시 무슨 일이 있을 것이다. 그들을 징계하기 위해 그는 자주 노려보거나 큰 소리로 몇 마디 ‘마음을 꾸짖는’ 말을 하곤 했다. 또는 인적이 드문 곳에서는 뒤에서 작은 돌을 던지기도 했다.

누가 알았겠는가, 그가 서른 살이 되어갈 무렵, 작은 여승 때문에 둥실둥실한 기분이 들게 될 줄을. 이 둥실둥실한 기분은 예의와 도덕상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여자는 정말 나쁜 존재다. 만약 작은 여승의 얼굴이 미끈거리지 않았다면 아큐는 홀리지 않았을 것이고, 또 만약 작은 여승의 얼굴에 천 한 장을 씌웠다면 아큐는 역시 홀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5, 6년 전에 극장 아래 사람들 사이에서 한 여자의 허벅지를 꼬집은 적이 있었지만, 바지 한 겹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그 후에도 둥실둥실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작은 여승은 그렇지 않았으니, 이것으로도 이단의 나쁜 점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여자…” 아큐는 생각했다.

그는 “반드시 야한 남자를 유혹하려 한다”고 여겼던 여자들을 자주 유심히 보았지만, 그녀들은 그에게 웃어주지 않았다. 그는 또 자기와 이야기를 나누는 여자들의 말을 자주 유심히 들었지만, 그녀들 역시 무슨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 이것도 여자의 나쁜 점 중 하나다. 그녀들은 모두 ‘가짜 점잖은 척’하려고 한다.

이날 아큐는 조 어르신 집에서 하루 종일 쌀을 찧고, 저녁을 먹은 뒤 부엌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다른 집이었다면 저녁을 먹고 나서 돌아갈 수 있었겠지만, 조府(조府)의 저녁 식사는 이르고 불을 켜는 것이 금지되어 있어 식사가 끝나면 바로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하지만 가끔 예외도 있었다. 첫째는 조大爺(조大爺)가 수재(秀才)가 되기 전에 불을 켜고 글을 읽을 수 있었고, 둘째는 아큐가 단기 일을 하러 왔을 때 불을 켜고 쌀을 찧을 수 있었다. 이 예외 규정 때문에 아큐는 쌀을 찧기 전에 부엌에 앉아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

오씨는 조 어르신 댁의 유일한 하녀였다. 그녀는 그릇을 씻고 긴 의자에 앉아 아큐와 잡담을 나누었다. “마님께서 이틀째 식사를 안 하시네요. 어르신께서 첩을 들이려고 하시나 봐요…” “여자… 오씨… 이 과부…” 아큐는 생각했다.

“우리 少奶奶(소나이)께서 8월에 아이를 낳으실 거예요…”

“여자…” 아큐는 생각했다.

아큐는 담뱃대를 내려놓고 일어섰다.

“우리 少奶奶(소나이)께서는…” 오씨는 계속 중얼거렸다.

“나랑 자자, 나랑 자자!” 아큐가 갑자기 달려들어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아이고!” 오씨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떨면서 크게 소리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뛰면서 소리치다가 나중에는 울음소리가 섞인 것 같았다.

아큐는 벽을 향해 무릎 꿇은 채로 멍하니 있다가 두 손으로 빈 의자를 짚고 천천히 일어났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낀 듯했다. 이때 그는 정말 불안해졌고, 당황해서 담뱃대를 바지에 꽂고 쌀을 찧으러 가려고 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에 세게 한 방 맞았다. 그가 급히 몸을 돌리자 수재가 큰 대나무 막대기를 들고 그의 앞에 서 있었다.

“네가 반항해? … 이 놈…”

큰 대나무 막대기가 다시 그에게 내리쳐졌다. 아큐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고, 막대기가 손가락 마디를 정통으로 때렸다. 이번엔 꽤나 아팠다. 그는 부엌 문을 뛰쳐나갔고, 등에 또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개자식!” 수재가 뒤에서 관화로 이렇게 욕했다.

아큐는 쌀 찧는 곳으로 달려갔다. 혼자 서서 손가락이 아직 아프다고 느꼈고, “개자식”이라는 말도 기억났다. 이 말은 웨이좡(魏莊)의 시골 사람들은 쓰지 않고 관청을 경험한 부유한 사람들만 쓰는 말이어서 특히 무서웠고 인상도 깊었다. 하지만 이때 그의 “여자…”에 대한 생각은 사라졌다. 게다가 맞고 욕을 먹은 후에는 마치 일이 끝난 것 같아 오히려 아무 걸림돌이 없어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쌀을 찧기 시작했다. 한동안 찧더니 더워져서 손을 멈추고 옷을 벗었다.

옷을 벗을 때 그는 밖이 매우 시끄러운 것을 들었다. 아큐는 평생 구경하기를 가장 좋아했기 때문에 곧바로 소리를 따라 나갔다. 소리를 따라 점점 조 어르신 댁의 안채로 갔다. 어슴푸레한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조府(조씨 집안) 식구들은 물론 이틀째 식사를 하지 않은 마님도 있었고, 옆집의 저우칠수, 진짜 본가의 조백안, 조사신도 있었다.

少奶奶(소나이)가 오씨를 끌고 아랫방에서 나오면서 말했다. “밖으로 나와… 네 방에 숨어서 생각하지 마…”

“누구나 네가 정직한 걸 알지… 절대로 극단적인 생각은 하지 마.” 저우칠수도 옆에서 말했다.

오씨는 계속 울기만 했고, 뭔가 말을 섞었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아큐는 생각했다. “흥, 재미있군. 이 과부가 무슨 장난을 치는 거지?” 그는 알아보고 싶어 조사신 옆으로 다가갔다. 그때 그는 갑자기 조大爺(조대爷)가 자기에게 달려오는 것을 보았고, 게다가 손에 큰 대나무 막대기를 들고 있었다. 그는 이 대나무 막대기를 보자 갑자기 자신이 맞았다는 것과 이 소동이 자신과 관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돌아서서 쌀 찧는 곳으로 도망가려 했지만, 이 대나무 막대기가 그의 길을 막았다. 그래서 그는 다시 돌아서서 자연스럽게 뒷문으로 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토곡사(土谷祠) 안에 있었다.

아큐는 잠시 앉아 있다가 피부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춥다고 느꼈다. 봄이었지만 밤에는 꽤 쌀쌀해서 맨몸으로 있기에는 적당하지 않았다. 그는 옷이 조家(조씨 집안)에 있다는 것도 기억났지만, 만약 가서 가져오려면 수재의 대나무 막대기가 무서웠다. 그런데 지보가 들어왔다.

“아큐, 이 망할 놈! 조家(조씨 집안)의 하인까지 건드리다니, 이건 반역이야. 네 때문에 밤잠을 설쳤잖아, 이 망할 놈!…”

이렇게 한바탕 훈계를 하고 나서, 아큐는 당연히 할 말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밤이었기 때문에 지보에게 두 배의 술값인 400문(푼)을 줘야 했다. 아큐는 현금이 없어서 펠트 모자를 담보로 주고 다섯 가지 조건을 약속했다.

첫째, 내일 붉은 초(1근짜리여야 함) 한 쌍과 향 한 봉지를 가지고 조府(조씨 집안)에 가서 사죄한다.

둘째, 조府(조씨 집안)에서 도사를 불러 목맨 귀신을 쫓는 비용은 아큐가 부담한다.

셋째, 아큐는 앞으로 조씨 저택의 문턱을 밟지 못하게 되었다.

넷째, 앞으로 오씨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오직 아큐에게만 책임을 물을 것이다.

다섯째, 아큐는 더 이상 임금과 옷을 요구할 수 없다.

아큐는 물론 모든 것을 수긍했지만, 안타깝게도 돈이 없었다. 다행히 봄이 와서 이불이 필요 없게 되어, 이천 푼에 전당 잡혔다. 그리고 계약을 이행했다. 맨몸으로 고개를 조아린 후에도 몇 푼이 남아서, 그는 더 이상 모자를 되찾지 않고 전부 술을 마셨다. 하지만 조씨 집안에서는 향을 피우거나 초를 켜지 않았다. 왜냐하면 안주인이 불공 드릴 때 쓸 수 있어서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그 낡은 옷은 대부분 작은 마나님이 8월에 낳은 아이의 기저귀로 쓰였고, 나머지 조각은 오씨의 신발 밑창이 되었다.

제5장 생계 문제

아큐는 의식을 마치고 다시 토곡사(土谷祠)로 돌아왔다. 해가 지고 점점 세상이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자세히 생각해보고 마침내 깨달았다. 그 이유는 자신이 맨몸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낡은 겹옷이 아직 있다는 걸 기억하고 그것을 걸쳤다. 그리고 누웠다가 눈을 떴을 때 해가 이미 서쪽 벽 위에 비치고 있었다. 그는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어머니의…”

그는 일어난 후에도 여전히 거리를 배회했다. 맨몸일 때처럼 살을 에는 고통은 없었지만, 점점 세상이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이날부터 웨이좡(魏莊)의 여자들이 갑자기 모두 부끄러움을 타게 된 것 같았다. 그들은 아큐가 오는 것을 보면 모두 문 안으로 숨어버렸다. 심지어 50세에 가까운 저우칠수(周七叔)도 다른 사람들을 따라 허둥지둥 숨어들었고, 11살 된 딸까지 불러들였다. 아큐는 매우 이상하게 여겼고 생각했다. “이 놈들이 갑자기 다 아가씨 흉내를 내는군. 이 창녀들…”

하지만 그가 세상이 더욱 이상해졌다고 느낀 것은 그로부터 며칠 후의 일이었다. 첫째, 술집에서 외상을 해주지 않았다. 둘째, 토곡사를 관리하는 노인이 쓸데없는 말을 하며 그를 내쫓으려는 것 같았다. 셋째, 그는 정확히 며칠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확실히 오랫동안 아무도 그를 불러 일당일을 시키지 않았다. 술집에서 외상을 안 해주는 건 참을 수 있었고, 노인이 그를 쫓아내려 해도 한바탕 투덜거리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불러 일당일을 시키지 않아 아큐의 배가 고팠다. 이건 정말 ‘어머니의…’ 같은 일이었다.

아큐는 참을 수 없어서 단골집들을 찾아가 물어보러 갔다. 물론 조씨 저택의 문턱은 밟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이 이상했다. 반드시 남자가 나와서 매우 귀찮은 표정으로 거지를 대하듯 손을 흔들며 말했다.

“없어, 없다고! 나가!”

아큐는 점점 더 이상하게 여겼다. 그는 생각했다. 이 집들은 원래 도움이 필요 없을 리가 없는데, 갑자기 모두 일거리가 없을 리가 없다. 이건 분명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을 것이다. 그는 주의 깊게 알아보다가 그들이 일이 있으면 모두 작은 동(小丁)을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작은 동은 가난한 놈으로, 말랐고 힘도 없어서 아큐의 눈에는 왕호(王胡)보다 못한 존재였다. 그런데 뜻밖에 이 녀석이 그의 밥그릇을 빼앗아 갔다. 그래서 아큐는 이번에 더욱 화가 나서 분노에 차서 걸어가다가 갑자기 손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내 손에 쇠채찍을 들고 너를 때려주마!…”

며칠 후, 그는 전씨 집 담벼락 앞에서 작은 동과 마주쳤다. ‘원수를 만나니 눈이 더욱 밝아졌다.’ 아큐는 그에게 다가갔고, 작은 동도 멈춰 섰다.

“짐승 같은 놈!” 아큐가 노려보며 말했고, 입가에서 침이 튀었다.

“제가 벌레라도 좋습니까?” 작은 동이 말했다.

이 겸손한 태도가 오히려 아큐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손에는 쇠채찍이 없었기에 그저 달려들어 작은 동의 변발(辮子)을 잡아당기려 했다. 작은 동은 한 손으로 자신의 변발 뿌리를 감싸고 다른 한 손으로 아큐의 변발을 잡아당겼다. 아큐도 빈 손으로 자신의 변발 뿌리를 감쌌다. 예전의 아큐가 보기에 작은 동은 안중에도 없는 존재였지만, 그는 최근에 굶주려 말랐고 기력도 작은 동 못지않게 약해져서 이제는 서로 비등한 상황이 되었다. 네 개의 손이 두 개의 머리를 잡아당기며 허리를 구부리고 있었고, 전씨 집 흰 담벼락에 푸른색 무지개 모양이 비치는 모습이 30분이나 계속되었다.

“됐어, 됐어!” 구경꾼들이 말했다. 아마도 말리는 것 같았다.

“좋아, 좋아!” 구경꾼들이 말했다. 말리는 건지, 칭찬하는 건지, 아니면 부추기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듣지 않았다. 아큐가 세 걸음 전진하면 작은 동이 세 걸음 후퇴하며 서 있었다. 작은 동이 세 걸음 전진하면 아큐가 세 걸음 후퇴하며 다시 서 있었다. 대략 30분 정도 – 미장에는 자명종이 거의 없어서 정확히 말하기 어렵지만, 아마도 20분 정도 – 그들의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이마에 땀이 흘렀다. 아큐의 손이 느슨해졌을 때, 같은 순간 작은 동의 손도 느슨해졌다. 동시에 몸을 일으키고 동시에 물러나 군중 속으로 빠져나갔다.

“기억해 둬, 이 새끼야…” 아큐가 돌아서며 말했다.

“이 새끼야, 기억해 둬…” 작은 동도 돌아서며 말했다.

이 ‘용호 대결’은 승부가 없는 것 같았고, 구경꾼들이 만족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특별한 평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큐에게는 여전히 일거리를 주는 사람이 없었다.

어느 날 날씨가 매우 온화해져 미풍이 살랑살랑 불어 여름 기운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큐는 오히려 추위를 느꼈다. 이건 견딜 만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배고픔이었다. 솜이불, 털모자, 무명옷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였고, 그 다음으로 솜저고리도 팔았다. 지금 바지는 있지만 절대 벗을 수 없었다. 낡은 겹옷도 있었지만 누군가에게 신발 깔창으로 줄 수는 있어도 팔면 돈이 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는 오래전부터 길에서 돈 뭉치를 주워 올 수 있기를 바랐지만 아직 찾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낡은 집에서 갑자기 돈 뭉치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당황해하며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집 안은 텅 비어 있고 훤히 보였다. 그래서 그는 밖으로 나가 음식을 구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길을 걸으며 ‘음식을 구하려’ 했다. 익숙한 주점을 보고, 익숙한 만두를 보았지만 모두 지나쳤다. 잠시 멈추지도 않았고 그것들을 원하지도 않았다. 그가 구하는 것은 이런 종류의 것들이 아니었다. 그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자신도 알지 못했다.

미장(彌津)은 본래 큰 마을이 아니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다 걸어 나왔다. 마을 밖은 대부분 논이었다. 눈에 가득한 새로 심은 모의 연한 초록색 사이로 몇 개의 둥근 움직이는 검은 점이 보였는데, 그것은 밭을 가는 농부들이었다. 아큐는 이런 농촌의 즐거움을 감상하지 않고 그저 걸었다. 그는 직감적으로 이것이 자신의 ‘음식 구하기’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정수암(淨水庵)의 담장 밖에 도착했다.

절 주변도 논이었다. 흰 담장이 새로운 초록 속에 튀어나와 있었고, 뒤쪽의 낮은 흙담 안은 채소밭이었다. 아큐는 잠시 망설이다가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는 이 낮은 담을 기어올랐다. 하수오 줄기를 잡아당겼지만 흙이 계속 후두둑 떨어졌고, 아큐의 발도 부들부들 떨렸다. 마침내 뽕나무 가지를 붙잡고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안은 정말 무성했지만 황주나 만두, 그 외에 먹을 만한 것들은 없어 보였다. 서쪽 담장 옆에는 대나무 숲이 있었고 그 아래에 죽순이 많았지만 안타깝게도 모두 익히지 않은 것이었다. 유채는 이미 씨가 맺혔고, 갓은 거의 꽃이 피었으며, 배추도 많이 늙어 있었다.

아큐는 과거 시험에 떨어진 서생처럼 억울함을 느꼈다. 그는 천천히 정원 문 쪽으로 걸어갔다가 갑자기 매우 기뻐졌다. 이것은 분명히 무 밭이었다. 그는 즉시 쪼그리고 앉아 뽑기 시작했다. 그때 문에서 갑자기 둥근 머리가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는데, 이는 분명 어린 비구니였다. 비구니 같은 것들은 아큐가 본래 잡초처럼 여기던 존재였지만, 세상일은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해야’ 했기에 그는 서둘러 무 네 개를 뽑아 잎사귀를 꺾어 윗옷 자락에 싸 넣었다. 하지만 늙은 비구니가 이미 나왔다.

“아미타불, 아큐, 어떻게 담을 넘어 정원에 들어와 무를 훔치느냐!… 아이고, 죄받을 짓이여, 아이고, 아미타불!”

“내가 언제 네 정원에 들어와 무를 훔쳤다는 거야?” 아큐가 걸어가며 말했다.

“지금… 이게 뭐야?” 늙은 비구니가 그의 옷자락을 가리켰다.

“이게 네 거야? 네가 부르면 대답할 수 있어? 너…”

아큐는 말을 끝내지 못하고 뛰기 시작했다. 뒤쫓아온 것은 매우 크고 살찐 검은 개였다. 이 개는 원래 정문에 있었는데 어떻게 뒤뜰로 왔는지 모르겠다. 검은 개가 으르렁거리며 쫓아와 이미 아큐의 다리를 물려고 했다. 다행히 옷자락에서 무 하나가 떨어져 개가 잠시 놀라 멈칫하는 사이, 아큐는 이미 뽕나무에 올라 담장을 넘어 무와 함께 담 밖으로 굴러떨어졌다. 검은 개만 여전히 뽕나무를 향해 짖고 있었고, 늙은 비구니는 염불을 외고 있었다.

아큐는 비구니가 다시 검은 개를 풀어놓을까 봐 무를 주워 들고 걸었다. 가는 길에 작은 돌 몇 개도 주웠지만 검은 개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아큐는 돌을 버리고 걸으면서 무를 먹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여기에는 찾을 만한 것이 별로 없으니 성으로 들어가는 게 좋겠다…

세 개의 무를 다 먹었을 때, 그는 이미 성으로 들어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제6장 중흥(中興)에서 말로(馬路)까지

웨이좡에서 아큐가 다시 나타난 것은 그해 중추절이 막 지난 후였다. 사람들은 모두 놀라며 아큐가 돌아왔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가 이전에 어디로 갔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아큐는 이전에 상경할 때마다 대개 흥분해서 사람들에게 떠들었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기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토곡사(土谷祠)를 관리하는 노인에게 말했을 수도 있지만, 웨이좡의 오랜 관습에 따르면 조 어르신, 전 어르신, 수재 나리가 상경할 때만 일이 되는 것이었다. 가짜 양놈조차 대수롭지 않은데 하물며 아큐야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노인도 그를 위해 소문을 퍼뜨리지 않았고, 웨이좡 사회에서도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아큐의 이번 귀향은 이전과 크게 달랐고, 정말 놀랄 만했다. 해가 질 무렵, 그는 잠에 취한 듯 술집 문 앞에 나타났다. 그는 계산대로 다가가 허리에서 손을 뻗어 은전과 동전을 한 움큼 꺼내 탁자 위에 던지며 말했다. “현금이다! 술 내놓아라!” 그는 새 누비옷을 입고 있었고, 허리에는 큰 전대까지 차고 있어 바지띠가 매우 휘어진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웨이좡의 오랜 관습에 따르면, 조금이라도 눈에 띄는 사람을 보면 천천히 공경하는 것이 좋았다. 지금 비록 아큐인 줄 알지만, 낡은 누비옷을 입은 아큐와는 좀 달랐기에, 옛 사람이 말하길 “삼일만에 다시 보면 눈을 비비고 봐야 한다”고 했듯이, 종업원, 주인, 손님, 행인들은 자연스럽게 의심스럽고도 공경하는 태도를 보였다. 주인은 먼저 고개를 끄덕이고 이어서 말을 걸었다. “아큐, 돌아왔구나!”

“돌아왔지.”

“돈 벌었구나, 넌 어디서…”

“상경했었지!”

이 소식은 다음 날 온 웨이좡에 퍼졌다. 모두가 현금과 새 누비옷을 입은 아큐의 부흥사를 알고 싶어 했다. 그래서 술집, 다방, 사원 처마 밑에서 차츰 탐문해 냈다. 그 결과 아큐는 새로운 존경을 받게 되었다.

아큐의 말에 따르면, 그는 거인 나리 집에서 일을 도왔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숙연해졌다. 이 나리의 본 성은 바이였지만, 온 성에서 그만이 유일한 거인(舉人)이었기에 성을 붙일 필요가 없었다. 거인을 말하면 바로 그였다. 이는 웨이좡뿐만 아니라 사방 백 리 안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사람들은 거의 그의 이름이 거인 나리라고 생각했다. 이런 사람의 저택에서 일을 돕는 것은 당연히 존경받을 만했다. 그러나 아큐의 말에 따르면, 그는 더 이상 돕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 거인 나리가 너무 ‘욕할 놈’이었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한숨을 쉬면서도 마음이 편했다. 아큐는 본래 거인 나리 집에서 일할 자격이 없었고, 일하지 않는 것이 아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큐의 말에 따르면, 그의 귀향은 도시 사람들에 대한 불만 때문인 것 같았다. 그들이 긴 의자를 ‘조등'(条凳)이라 부르고, 생선을 볶을 때 파를 써는 것, 그리고 최근 관찰한 결과 여자들의 걸음걸이도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때로는 매우 감탄할 만한 점도 있었다. 예를 들어 웨이좡의 시골 사람들은 32장의 죽패밖에 치지 못하고 가짜 양놈만이 마작을 할 수 있었지만, 도시에서는 어린아이들도 마작을 능숙하게 쳤다. 무슨 가짜 양놈(假洋鬼子)이라도 도시의 열 살 남짓한 아이들 손에 들어가면 곧바로 ‘귀신 앞의 새앙쥐’가 되고 말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낯을 붉혔다. “너희들은 참수하는 걸 본 적 있느냐?” 아큐가 말했다. “흥, 볼 만하다. 혁명당을 죽이는 거지. 아, 볼 만해, 볼 만해…”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맞은편에 있던 조사신의 얼굴에 침을 날렸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전율했다. 그러나 아큐는 다시 사방을 둘러보더니 갑자기 오른손을 들어 목을 쭉 빼고 열중해서 듣고 있던 왕호의 뒷목을 내리쳤다.

“찰칵!”

왕호는 놀라서 펄쩍 뛰며 동시에 번개같이 빠르게 고개를 움츠렸고, 듣고 있던 사람들도 모두 소름이 돋으면서도 기뻐했다. 이후 왕호는 며칠 동안 멍하니 지냈고, 다시는 감히 아큐 근처에 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때 웨이좡 사람들 눈에 비친 아큐의 지위는 감히 조 어르신을 넘어섰다고 할 수는 없지만, 거의 비슷하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아큐(阿Q)라는 이름이 갑자기 웨이장(魏庄) 마을에 퍼져 나갔다. 웨이장에는 진(陈)과 조(赵) 두 집만 큰 집이었고, 나머지는 열에 아홉이 작은 집이었지만, 어쨌든 규중(闺中)에 그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여자들은 만나면 반드시 이렇게 말했다. “주씨 칠(周七) 형수가 아큐에게서 청색 비단 치마를 샀는데, 낡기는 했지만 겨우 90전(九十文)이었다고 한다.” 또 조백안(赵白安)의 어머니도, – 일설에는 조사신(赵四婶)의 어머니라고 하는데, 확실치 않다 – 아이가 입을 진홍색 양사(羊纱) 저고리를 샀는데, 칠 할(七成)은 새것이고 겨우 300문(三百文) 92꿰미(九十二꿰미)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들은 모두 아큐를 보고 싶어 했다. 비단 치마가 필요한 사람은 그에게 비단 치마를 사고 싶어 했고, 양사 저고리가 필요한 사람은 그에게 양사 저고리를 사고 싶어 했다. 그를 보고도 피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아큐가 이미 지나갔는데도 그를 쫓아가 부르며 물었다. “아큐, 비단 치마 아직 있어요? 없어요? 양사 저고리라도 좋아요, 있죠?”

나중에는 이것이 결국 작은 집에서 큰 집으로 전해졌다. 저우 칠 형수가 득의양양하여 그녀의 비단 치마를 조부인(赵夫人)에게 감상하게 했고, 자오 부인은 또 조 어르신에게 말하면서 실제로 한바탕 칭찬했기 때문이다. 조 어르신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수재(秀才) 도련님과 의논하며 아큐가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집 문과 창문을 조심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의 물건 중에 아직 살 만한 것이 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좋은 물건이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주 부인도 마침 저렴하고 좋은 가죽 조끼를 사고 싶어 했다. 그래서 가족들은 의논 끝에 즉시 주씨 칠 형수에게 아큐를 찾아오라고 부탁했고, 이를 위해 세 번째 예외를 새로 만들었다. 이날 밤에는 임시로 등불을 켜도 좋다고 특별히 허락했다.

등불이 꽤 타들어갔는데도 아큐는 오지 않았다. 자오 집안 식구들은 모두 초조해하며 하품을 하거나 아큐가 너무 들떠 있다고 원망하거나 주씨 칠 형수가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조 부인은 그가 봄날의 조건 때문에 감히 오지 못할까 봐 걱정했지만, 조 어르신은 걱정할 것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가 그를 부르러 간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조 어르신은 안목이 있었다. 아큐는 결국 주씨 칠 형수를 따라 들어왔다.

“그는 계속 없다고만 하더라고요. 내가 말했죠, 당신이 직접 가서 말하라고. 그는 또 말하려고 했는데, 내가 말했어요…” 저우 칠 형수가 숨을 헐떡이며 걸어오면서 말했다.

“어르신!” 아큐가 씩 웃으며 한 마디 외치고는 처마 밑에 서 있었다.

“아큐, 네가 밖에서 돈을 벌었다고 들었다.” 조 어르신이 걸어 나오며 그의 전신을 훑어보면서 말했다. “그거 참 좋구나, 아주 좋아. 그런데… 네게 낡은 물건들이 있다고 하던데… 다 가져와서 보여줄 수 있겠니… 이건 별 뜻이 있는 게 아니야, 내가 좀…”

“주씨 칠 형수에게 말했습니다. 다 팔렸어요.”

“다 팔렸다고?” 조 어르신이 놀라 소리쳤다. “그렇게 빨리 다 팔릴 리가 없잖아?”

“그건 친구 것이었어요, 원래 많지 않았어요. 그들이 좀 사갔고…”

“그래도 조금은 남아있겠지.”

“지금은 문발 하나만 남았어요.”

“그럼 문발이라도 가져와 보여주게.” 조 부인이 서둘러 말했다.

“그럼 내일 가져오면 되겠네.” 조 어르신은 그다지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아큐, 앞으로 무슨 물건이 있으면 먼저 우리에게 보여주게…”

“가격은 절대 다른 집보다 적게 주지 않을 거야!” 수재가 말했다. 수재 부인은 서둘러 아큐의 얼굴을 힐끗 보며 그가 감동했는지 확인했다.

“나는 가죽 조끼 하나가 필요해.” 자오 부인이 말했다.

아큐는 대답은 했지만 느릿느릿 나가버렸다. 그가 이를 마음에 두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는 조 어르신을 매우 실망시키고 분노하게 했으며 걱정하게 만들어 하품도 그쳤다. 수재도 아큐의 태도에 매우 불쾌해하며 말했다. “이 잡놈을 조심해야 한다고, 아니면 차라리 지보(地保)에게 명령해 그가 웨이장에 살지 못하게 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그러나 조 어르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하면 원한을 살 수 있고, 게다가 이런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대개 ‘독수리는 제 둥지 밑의 먹이는 먹지 않는다(鹰不食窝边草)’고 하니 본 마을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다만 밤에 자신이 조금 더 경계하면 된다고 했다. 수재는 이 ‘가르침’을 듣고 매우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즉시 아큐를 쫓아내자는 제안을 철회하고 주씨 칠 형수에게 당부했다. “절대로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다음 날, 저우 칠 형수는 그 청색 치마를 검은색으로 물들이고 아큐에 대한 의심스러운 이야기를 퍼뜨렸다. 하지만 아큐가 수재(秀才)에게 쫓겨났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이미 아큐에게 매우 불리했다. 가장 먼저 지보(地保)가 그를 찾아와 그의 문발(門閥)을 가져갔다. 아큐는 자오 부인이 보고 싶어 한다고 말했지만 지보는 돌려주지 않고 매달 바쳐야 할 돈을 정하려 했다. 다음으로 마을 사람들의 아큐에 대한 경외심이 갑자기 변했다. 아직 감히 무례하게 굴지는 않았지만 멀리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 기색은 이전에 그가 ‘찰싹’ 하고 올 것을 두려워하던 때와는 또 달랐다. 꽤 ‘공경하되 멀리하는’ 분위기가 섞여 있었다.

그러나 한가한 사람들 중 몇몇은 아직도 아큐의 내력을 캐고 싶어 했다. 아큐도 숨기지 않고 거만하게 자신의 경험을 말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그는 그저 하찮은 존재일 뿐이었다. 담장을 넘을 수도 없고, 구멍으로 들어갈 수도 없어서 그저 구멍 밖에서 물건을 받아내기만 했다는 것을. 어느 날 밤, 그가 막 꾸러미 하나를 받았을 때 안에서 갑자기 큰 소리가 났고, 그는 급히 도망쳐 밤새 성을 빠져나와 웨이좡(魏莊)으로 돌아왔다. 그 뒤로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아큐에게 더욱 불리하게 작용했다. 마을 사람들이 아큐를 ‘경외하면서도 멀리하던’ 이유는 원한을 맺을까 봐 두려워서였는데, 그가 더 이상 도둑질도 못하는 도둑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나니 ‘이 또한 두려워할 것이 못 된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제7장 혁명

선통(宣統) 3년 9월 14일 – 아큐가 연(煙)을 조백안(趙柏安)에게 팔아넘긴 바로 그날 – 새벽 3시경, 큰 검은 천막을 씌운 배 한 척이 조부(趙府)의 강가 선착장에 도착했다. 이 배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떠왔고, 시골 사람들은 깊이 잠들어 있어 아무도 몰랐다. 떠날 때는 동이 틀 무렵이었는데, 몇 사람이 목격했다. 기웃거리며 조사한 결과, 그것이 바로 거인(擧人) 나리의 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배는 웨이좡에 큰 불안을 가져왔다. 정오가 되기도 전에 온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흔들렸다. 배의 사명에 대해 조家(趙家)에서는 매우 비밀스럽게 했지만, 찻집과 술집에서는 모두 혁명당이 성으로 들어올 것이고, 거인 나리가 우리 시골로 피난 왔다고 말했다. 오직 저우 칠촌 아주머니만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몇 개의 낡은 옷 상자일 뿐이며, 거인 나리가 맡기러 왔다가 조 어르신에게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사실 거인 나리와 조수재(趙秀才)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고, 이치상 ‘환난을 함께할’ 정도의 우정은 없었다. 게다가 저우 칠촌 아주머니는 조家의 이웃이라 상황을 더 잘 알고 있었기에 아마도 그녀 말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소문은 무성했다. 거인 나리가 직접 오지는 않았지만 긴 편지를 보내 조家와 ‘멀고도 가까운 친척’ 관계를 맺었다는 말이 돌았다. 조 어르신은 속으로 이리저리 생각해보니 자신에게 해로울 것은 없다고 판단하여 상자들을 받아두었고, 지금 태太(太太)가 침대 밑에 숨겨두었다. 혁명당에 대해서는 어떤 이들은 그날 밤 이미 성으로 들어왔다고 했고, 모두가 흰 투구와 흰 갑옷을 입고 숭정 황제의 상복을 입었다고 했다.

아큐의 귀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혁명당이라는 말이 들려왔고, 올해는 혁명당이 처형되는 것도 직접 목격했다. 그러나 그는 어디서 왔는지 모를 의견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혁명당이란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고, 반란은 그와 맞서는 것이라고 생각해 늘 ‘깊이 증오하고 혐오했다’. 뜻밖에도 이것이 백리에 이름난 거인 나리를 이토록 두렵게 만들다니, 그는 자신도 모르게 ‘동경’하게 되었다. 게다가 웨이좡의 남녀노소들이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니 아큐는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혁명도 좋겠군,” 아큐는 생각했다. “이 놈의 새끼들의 목숨을 혁명해버려야지, 너무 가증스러워! 너무 미워! … 나도 혁명당에 투항해야겠어.”

아큐는 최근 생활이 궁핍해져 약간 불만이 있었다. 거기에 점심때 빈속에 술을 두 잔이나 마셔 취기가 빨리 올랐다. 생각에 잠겨 걸어가다 보니 다시 들뜬 기분이 들었다. 어느새 혁명당이 자기 자신인 것 같고, 웨이좡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포로가 된 것 같았다. 그는 득의양양하여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반란이다! 반란이다!”

웨이좡 사람들은 모두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런 불쌍한 눈빛은 아큐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이를 보자 그는 6월에 눈 녹은 물을 마신 것처럼 시원했다. 그는 더욱 신이 나서 걸으며 소리쳤다. “좋아, … 내가 원하는 게 뭐든 다 내 거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든 그 사람이야. 득득, 쨍쨍!

후회해도 소용없지, 술 취해 정현제(鄭玄帝)를 잘못 참수했네, 후회해도 소용없지, 야야야…

득득, 쨍쨍, 득, 쨍령쨍!

내 손에 철편 들고 너를 때려주마…”

조府의 두 남자와 두 명의 진짜 친척들이 대문 앞에 서서 혁명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아큐는 보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계속 노래를 부르며 지나갔다.

“득득, …”

“노큐,” 조 어른신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쨍쨍,” 아큐는 자기 이름 앞에 ‘노’자가 붙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른 말인 줄 알고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여겼다. 그저 계속 노래를 불렀다. “득, 쨍, 쨍령쨍, 쨍!”

“노큐.”

“후회해도 소용없지…”

“아큐!” 수재는 할 수 없이 그의 이름을 직접 불렀다.

아큐는 그제야 멈춰 서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뭐요?”

“노큐, … 지금 …” 조 어르신은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 … 돈 좀 벌었나?”

“돈이요? 당연하죠. 뭐든 갖고 싶은 대로 가질 수 있어요…”

“아… 큐 형님, 우리 같은 가난한 친구는 상관없습니다…” 조백안이 두려워하며 말했다. 마치 혁명당의 속내를 알아보려는 듯했다.

“가난한 친구? 너는 나보다 돈이 더 많잖아.” 아큐가 말하고는 가버렸다.

모두들 멍하니 있었고, 할 말이 없었다. 조太爺 부자는 집으로 돌아가 저녁에 등불을 켜고 의논했다. 조백안은 집에 돌아가자마자 허리에서 배띠를 풀어 아내에게 주어 상자 밑에 숨기게 했다.

아큐는 의기양양하게 한바탕 휘젓고 다니다가 토곡사(土谷祠)로 돌아왔다. 술은 이미 완전히 깼다. 그날 밤, 사당을 관리하는 노인도 뜻밖에 친절해져서 그에게 차를 대접했다. 아큐는 그에게 과자 두 개를 달라고 해서 먹은 뒤, 다시 불 붙인 4냥짜리 초와 나무 촛대 하나를 달라고 했다. 그것을 켜고 자기 작은 방에 홀로 누웠다.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신선하고 기분이 좋았다. 촛불이 정월 대보름날처럼 반짝반짝 뛰놀았고, 그의 생각도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반란? 재미있군… 백색 투구와 백색 갑옷을 입은 혁명당이 왔어. 모두 판도, 쇠채찍, 폭탄, 양포, 삼첨이도, 갈고리창을 들고 토곡사를 지나가며 외쳤지. ‘아큐! 함께 가자!’ 그래서 함께 갔어…” 이때 웨이좡의 한 무리 새들 같은 남녀들이 우스워졌다. 무릎 꿇고 외쳤다. “아큐, 살려주세요!” 누가 들어주겠어! 제일 먼저 죽어야 할 놈은 작은 동과 조太爺야. 그리고 수재, 가짜 양놈도… 몇 명은 살려둘까? 왕호는 원래 살려둘 만했지만, 그것도 필요 없어…

“물건들… 곧장 들어가서 상자를 열어: 금덩이, 양은, 양복… 수재 마누라의 닝보식 침대부터 토곡사로 옮기고, 그 외에는 전부 첸 집의 탁자와 의자로 채워. 아니면 그냥 조 집의 것을 쓰자. 자신은 손대지 않고, 작은 동을 불러 옮기게 해. 빨리 옮기라고 해. 느리게 옮기면 따귀를 때릴 거야…” 조사신의 여동생은 정말 못생겼어. 저우칠서의 딸은 몇 년 후에 다시 말하자. 가짜 양놈의 아내는 변발 없는 남자와 잘 수 있대. 흥, 좋은 물건이 아니야! 수재의 아내는 눈꺼풀에 흉터가 있어… 오마는 오래전부터 보이지 않았어.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 발이 너무 커서 아쉽군.

아큐는 생각을 완전히 정리하지 못한 채 코를 골기 시작했다. 4냥짜리 초는 아직 반 치도 타지 않았고, 붉은 불꽃이 그의 벌어진 입을 비추고 있었다.

“하하!” 아큐가 갑자기 크게 외치며 머리를 들고 당황해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4냥짜리 초를 보고는 다시 고개를 떨구고 잠들었다.

다음 날 그는 아주 늦게 일어났다. 거리로 나가 보니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였다. 그는 여전히 배가 고팠다. 그는 생각에 잠겼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했다.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무심코 정수암으로 향했다.

암자는 봄철과 같이 조용했고, 하얀 담장과 칠흑 같은 문이 있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문을 두드렸다. 개 한 마리가 안에서 짖었다. 그는 급히 부서진 벽돌 몇 개를 주워 더 세게 문을 두드렸다. 검은 문에 얼룩점이 생길 때쯤 누군가 문을 열러 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큐는 서둘러 벽돌을 쥐고 마부 자세를 취하며 검은 개와 싸울 준비를 했다. 하지만 암자 문은 조금만 열렸고, 검은 개는 튀어나오지 않았다. 안을 들여다보니 늙은 여승 한 명뿐이었다.

“너 또 무슨 일이냐?” 그녀가 크게 놀라며 말했다.

“혁명이 일어났어… 알고 있어?…” 아큐가 어물거리며 말했다.

“혁명 혁명, 한 번 혁명했잖아… 너희들은 우리를 어떻게 혁명하려는 거냐?” 늙은 여승이 두 눈을 붉게 물들이며 말했다.

“뭐라고?…” 아큐가 의아해했다.

“너 모르는 거야? 그들이 벌써 와서 혁명했다고!”

“누가?…” 아큐는 더욱 의아해졌다.

“그 수재랑 양놈이!”

아큐는 뜻밖의 일에 당황했다. 늙은 여승은 그가 기세를 잃은 것을 보고 재빨리 문을 닫았다. 아큐가 다시 밀어봐도 꼼짝하지 않았고, 두드려봐도 대답이 없었다.

그건 아직 오전의 일이었다. 조수재(趙秀才)는 정보에 밝아서 혁명당이 이미 밤중에 성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알자마자 변발을 정수리에 말아 올리고 일찍 그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던 첸 양놈(假洋鬼子)을 방문했다. 이제 “모두가 새로워지는” 때였기에 그들은 매우 의기투합해서 곧바로 마음이 맞는 동지가 되었고, 함께 혁명하기로 약속했다. 그들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정수암(靜修庵)에 “황제 만세 만만세”라는 용 현판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고, 그것을 서둘러 혁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즉시 함께 암자로 가서 혁명을 했다. 늙은 여승이 저지하려 했지만 세 마디 말을 하자 그들은 그녀를 청나라 정부로 여기고 머리에 적지 않은 몽둥이질과 주먹질을 가했다. 여승은 그들이 간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용 현판은 이미 바닥에 부서져 있었고, 게다가 관음보살 앞에 있던 선덕 향로도 사라져 버렸다.

이 일을 아큐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자신이 잠들었던 것을 크게 후회했지만, 동시에 그들이 와서 자신을 불러주지 않은 것에 대해 깊이 원망했다. 그는 다시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했다. “혹시 그들이 내가 이미 혁명당에 투항했다는 걸 아직 모르는 걸까?”

제8장 혁명 금지

미장(米莊) 사람들의 마음은 날로 안정되어갔다. 들려오는 소식에 따르면, 혁명당이 성에 들어왔지만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고 한다. 현감 대인은 여전히 원래 관직을 유지하고 있었고, 다만 직함만 바뀌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거인(擧人) 나리도 무슨 직책을 맡았다고 한다. 이런 명목들은 미장 사람들이 모두 정확히 말하기 어려워했다. 관리와 병사를 이끄는 사람도 여전히 예전의 노포총(老砲總)이었다. 다만 한 가지 무서운 일은 그 사이에 몇몇 나쁜 혁명당이 끼어들어 소란을 피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튿날부터 바로 변발을 자르기 시작했다는데, 소문에 의하면 이웃 마을의 항선칠근(抗線七斤)이 변발을 잘려 사람 꼴이 아니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도 그다지 큰 공포는 아니었다. 미장 사람들은 원래 성에 잘 올라가지 않았고, 혹시라도 성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면 즉시 계획을 바꿔 이런 위험을 피했기 때문이다. 아큐도 본래 성에 가서 그의 옛 친구들을 찾아보고 싶었지만, 이 소식을 듣자 어쩔 수 없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미장에도 개혁이 없었다고 말할 순 없었다. 며칠 후, 변발을 머리 위로 감아올린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이미 말했듯이 가장 먼저 그렇게 한 사람은 당연히 모재공(木匠)이었고, 그 다음은 조사신(趙傻子)과 조백안(趙白眼)이었으며, 그 뒤를 이어 아큐였다. 만약 여름이었다면 모두가 변발을 머리 위로 감아올리거나 매듭을 짓는 것이 별로 특이한 일이 아니었겠지만, 지금은 늦가을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가을에 여름 풍속을 따르는” 상황은 변발을 감아올린 사람들에게는 매우 용감한 결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고, 미장에서도 개혁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조사신이 뒷머리가 텅 빈 채로 걸어오자, 그를 본 사람들이 큰 소리로 외쳤다. “혁명당이 왔다!”

아큐는 이 말을 듣고 매우 부러워했다. 그는 일찍이 수재가 변발을 감아올렸다는 큰 뉴스를 알고 있었지만, 자신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이제 조사신도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따라 해 볼 생각이 들었고, 실행에 옮길 결심을 했다. 그는 대나무 젓가락 하나로 변발을 머리 위에 감아올리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밖으로 나갔다.

그가 거리를 걸어가자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큐는 처음에는 매우 불쾌했지만, 나중에는 매우 불만스러워졌다. 그는 요즘 들어 쉽게 화를 내곤 했다. 사실 그의 생활은 혁명 전보다 더 어려워지지는 않았고, 사람들도 그를 대할 때 공손했으며, 가게에서도 현금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큐는 자신이 너무 실망스럽다고 느꼈다. 혁명을 했는데 이것뿐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한번은 작은 동(小東)을 보고 더욱 화가 치밀었다.

작은 동도 변발을 머리 위로 감아올렸는데, 게다가 대나무 젓가락을 사용했다. 아큐는 그가 감히 이렇게 할 줄은 꿈에도 몰랐고, 자신도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작은 동이 무슨 대단한 존재란 말인가? 그는 당장 작은 동을 붙잡아 그의 대나무 젓가락을 부러뜨리고 변발을 내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의 뺨을 몇 대 때려 자신의 신분을 잊고 감히 혁명당이 되려고 한 죄를 가볍게 벌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용서했고, 단지 노려보며 침을 뱉으며 “풉!”하고 말했다.

이 며칠 동안 성에 올라간 사람은 가짜 양놈뿐이었다. 조수재도 원래 상자를 맡긴 인연을 이용해 직접 거인 나리를 방문하고 싶었지만, 변발을 자를 위험이 있어서 포기했다. 그는 “황산 형식”의 편지를 써서 가짜 양놈에게 성으로 가져가게 했고, 또한 그에게 자유당에 들어갈 수 있도록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가짜 양놈이 돌아왔을 때, 수재에게 양전 네 냥을 받았고, 수재는 은도자 하나를 큰 옷깃에 달았다. 미장 사람들은 모두 놀라워하며 이것이 시유당의 관모 장식이라고 말했다. 한림 하나와 맞먹는다고 했다. 조 어르신은 이로 인해 갑자기 매우 거만해져서 아들이 처음 수재에 합격했을 때보다 더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고, 아큐를 보고도 그다지 눈에 띄게 여기지 않았다. 아큐는 원래 불만스러웠는데, 또 시시각각 소외감을 느꼈다. 이 은도자에 대한 소문을 듣자마자 그는 즉시 자신이 소외된 이유를 깨달았다. 혁명을 하려면 단순히 투항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변발을 감아올리는 것만으로도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전히 혁명당과 친분을 쌓는 것이었다. 그가 평생 알고 있는 혁명당은 단 두 명뿐이었다. 성에 있던 한 명은 이미 “촤악” 하고 죽였고, 이제 남은 건 가짜 양놈 하나뿐이었다. 그는 서둘러 가짜 양놈과 의논하러 가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전가의 대문이 열려 있어서 아큐는 겁먹은 채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크게 놀랐다. 가짜 양놈이 마당 한가운데 서 있었는데, 온몸에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는데 아마도 양복인 것 같았다. 몸에도 은도자 하나를 달고 있었고, 손에는 아큐가 이미 경험해본 적 있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1척이 넘게 자란 변발을 모두 풀어 어깨와 등에 늘어뜨리고 있어서 마치 유해선처럼 보였다. 맞은편에는 조백안과 세 명의 한가한 사람들이 꼿꼿이 서서 매우 공손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아큐는 조용히 다가가 조백안의 뒤에 섰다. 인사를 건네고 싶었지만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랐다. 가짜 양놈이라고 부를 수는 없고, 양인도 적절치 않고, 혁명당도 맞지 않았다. 아마도 양선생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양선생은 그를 보지 못했다. 백안이 열심히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성격이 급해서 만날 때마다 ‘홍형! 우리 시작합시다!’라고 말하지만, 그는 항상 ‘No!’라고 합니다. 이건 양말인데 여러분은 못 알아들으실 거예요.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성공했을 텐데요. 하지만 이게 바로 그가 일을 신중하게 하는 점이죠. 그는 계속해서 저더러 후베이로 가라고 하지만 저는 아직 승낙하지 않았어요. 누가 이런 작은 현성에서 일하고 싶겠습니까…”

“음… 저기…” 아큐는 그가 잠시 말을 멈추자 온 용기를 짜내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를 양선생이라 부르지는 않았다.

말을 듣고 있던 네 사람이 놀라서 그를 돌아보았다. 양선생도 그제서야 그를 보았다. “뭐야?”

“저는…”

“나가!”

“저도 혁명에…”

“당장 꺼져!” 양선생이 상장을 들어 올렸다.

조백안과 구경꾼들이 소리쳤다. “선생님이 나가라고 하시잖아! 안 들려?”

아큐는 손으로 머리를 가리며 무의식적으로 문 밖으로 도망쳤다. 양선생은 그를 쫓아오지 않았다. 그는 60보 정도를 빨리 달린 후에야 천천히 걸었다. 그러자 마음속에 근심이 밀려왔다. 양선생이 그의 혁명 참여를 허락하지 않았으니 이제 그에게는 다른 길이 없었다. 이제 흰 투구와 갑옷을 입은 사람들이 와서 그를 부를 일은 영영 없을 것이다. 그의 모든 포부, 지향, 희망, 앞날이 한 번에 무너져 버렸다. 구경꾼들이 소문을 퍼뜨려 작은 동이나 왕호 같은 놈들이 비웃는 것은 오히려 사소한 일이었다.

그는 이렇게 무료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자신의 변발도 무의미하고 경멸스럽게 여겨졌다. 복수를 위해 당장 변발을 풀어버리고 싶었지만 그러지도 못했다. 그는 밤이 될 때까지 돌아다니다가 술을 외상으로 두 잔 마시고 조금씩 기분이 좋아졌다. 그의 머릿속에는 다시 흰 투구와 갑옷의 파편들이 나타났다.

어느 날, 그는 늘 그랬듯이 밤늦게까지 어슬렁거리다가 술집이 문을 닫을 때쯤 토곡사로 돌아갔다.

팡, 탁!

그는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폭죽 소리는 아니었다. 아큐는 원래 구경하기를 좋아하고 남의 일에 참견하기를 좋아해서 어둠 속에서 소리를 따라갔다. 앞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가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 갑자기 맞은편에서 누군가가 도망쳐 왔다. 아큐는 그를 보자마자 재빨리 몸을 돌려 함께 도망쳤다. 그 사람이 모퉁이를 돌자 아큐도 따라 돌았다. 모퉁이를 돌자 그 사람이 멈춰 섰고 아큐도 멈춰 섰다. 뒤를 보니 아무것도 없었고, 그 사람을 보니 작은 동이었다. “무슨 일이야?” 아큐가 불만스럽게 물었다.

“조… 조 어르신 댁이 털렸대!” 작은 동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아큐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작은 동이 말하고 걸어갔다. 하지만 아큐는 두세 번 도망치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이런 일’을 해본 사람이라 특별히 담이 컸다. 그래서 □□□□□□□□□□□□□□□□□□□□□□□□□ 흰 투구와 갑옷을 입은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이 줄지어 상자를 날라 나오고, 물건들을 날라 나오고, 수재 마님의 남경식 침대도 날라 나왔다. 하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그는 더 가까이 가고 싶었지만 두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이 날 밤에는 달이 없었다. 미장은 어둠 속에서 무척 고요했다. 마치 태평성대처럼 고요했다. 아큐는 서서 보다가 지루해질 때까지 봤지만 여전히 처음과 같았다. 거기서 사람들이 오가며 물건을 나르고 있었다. 상자가 나오고, 물건들이 나오고, 수재 마님의 남경식 침대도 나오고…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되었다. 하지만 더는 다가가지 않기로 하고 자신의 사당으로 돌아갔다.

토곡사 안은 더 어두웠다. 그는 대문을 잘 닫고 자기 방으로 더듬어 들어갔다. 한동안 누워 있다가 정신을 차렸고, 자신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흰 투구와 갑옷을 입은 사람들이 분명히 왔는데 나한테는 인사도 않고, 좋은 물건들을 많이 가져갔는데 내 몫은 없고… 이 모든 게 가짜 양놈 때문이다. 내가 혁명하는 걸 허락하지 않았으니 이번에 내 몫이 없는 게 당연하지. 아큐는 생각할수록 화가 났고, 결국 마음속에 증오가 가득 차 독기 어린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혁명하는 건 안 되고 너희들만 되냐? 양놈의 새끼들, 좋다. 너희들이나 혁명해봐라! 혁명은 목 베는 죄야. 내가 한번 고발해서 너희들이 현으로 끌려가 목 베이는 걸 보고 말겠어. 집안 식구들까지 모조리 죽이는 거야. 촤악! 촤악!”

제9장 대단원

조씨 집안이 털린 후, 웨이장 사람들은 대체로 아주 기뻐하면서도 두려워했고, 아큐 역시 기쁘면서도 두려워했다. 그러나 나흘 후, 아큐는 한밤중에 갑자기 현성으로 끌려갔다. 때마침 어두운 밤이었는데, 한 무리의 병사들과 단정들, 그리고 경찰들, 다섯 명의 탐정들이 조용히 웨이장에 도착해 토곡사를 둘러쌌다. 정문 맞은편에 기관총을 설치했지만, 아큐는 뛰쳐나오지 않았다. 한참 동안 아무 동정이 없자 총책임자가 초조해져 20냥의 현상금을 걸었다. 그제서야 두 명의 단정이 위험을 무릅쓰고 입을 다문 채 안으로 들어가 내응외합으로 한 떼가 되어 들이닥쳐 아큐를 끌어냈다. 사당 밖의 기관총 근처로 끌려 나올 때야 그는 겨우 정신이 좀 들었다.

성안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정오였다. 아큐는 자신이 한 허름한 관청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다섯 여섯 번 굽이를 돌더니 그를 작은 방으로 밀어 넣었다. 그가 비틀거리는 사이에 통나무로 만든 철창문이 그의 발뒤꿈치에 맞춰 닫혔다. 나머지 세 면은 모두 벽이었고, 자세히 보니 방 구석에 두 사람이 더 있었다.

아큐는 약간 불안했지만 그다지 괴롭지는 않았다. 그의 토곡사 침실도 이 방보다 더 나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두 사람도 시골 사람처럼 보였고, 점차 그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한 사람은 거인 나리가 그의 할아버지가 진 옛 빚을 독촉한다고 했고, 다른 한 사람은 무슨 일 때문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들이 아큐에게 물었고, 아큐는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내가 반란을 일으키려고 했기 때문이오.”

그날 오후 늦게 그는 다시 철창문 밖으로 끌려나갔다. 대청에 도착하니 위에는 머리를 반들반들하게 깎은 노인이 앉아 있었다. 아큐는 그를 승려로 의심했지만, 아래에 한 줄로 서 있는 병사들과 양옆에 서 있는 십여 명의 장삼 차림의 인물들을 보았다. 그들 중에는 이 노인처럼 머리를 반들반들하게 깎은 사람도 있고, 1자 정도 되는 긴 머리를 등 뒤로 늘어뜨린 가짜 양놈 같은 사람도 있었다. 모두 험상궂은 얼굴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이 사람이 분명 대단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고, 무릎 관절이 저절로 느슨해져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일어서서 말해! 무릎 꿇지 마!”라고 장삼 차림의 사람들이 모두 소리쳤다.

아큐는 이해한 것 같았지만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쪼그리고 앉았다가 결국 기회를 틈타 무릎을 꿇었다.

“노예 근성!…” 장삼 차림의 사람들이 경멸하듯 말했지만, 그를 일으키라고 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자백하게. 고생하지 말고. 나는 이미 다 알고 있네. 자백하면 풀어줄 수 있어.” 대머리 노인이 아큐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며 차분하고 또렷하게 말했다.

“자백하시오!” 장삼 차림의 사람들도 큰 소리로 말했다.

“저는 원래… 투항하러…” 아큐는 정신없이 생각을 하다가 말을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렇다면 왜 오지 않았나?” 노인이 온화하게 물었다.

“가짜 양놈이 저를 못 오게 했습니다!”

“헛소리 말게! 지금 와서 말해봤자 늦었어. 지금 자네 동료들은 어디 있나?”

“뭐라고요?…”

“그날 밤 조씨 집을 털었던 일당 말일세.”

“그들은 저를 부르러 오지 않았어요. 그들이 알아서 옮겨갔어요.” 아큐는 말하자마자 분노가 치밀었다.

“어디로 갔나? 말하면 풀어주겠네.” 노인의 목소리가 더욱 온화해졌다.

“저는 모릅니다… 그들이 저를 부르러 오지 않았어요…”

그러나 노인이 눈짓을 하자 아큐는 다시 철창문 안으로 끌려갔다. 그가 두 번째로 철창문 밖으로 끌려 나온 것은 다음날 오전이었다.

대청의 상황은 모두 그대로였다. 위에는 여전히 대머리 노인이 앉아 있었고, 아큐도 여전히 무릎을 꿇었다.

노인이 온화하게 물었다. “할 말이 더 있나?”

아큐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할 말이 없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한 장삼 차림의 인물이 종이 한 장과 붓 한 자루를 가져와 아큐의 앞에 놓고 그의 손에 붓을 쥐어주려 했다. 아큐는 이때 매우 놀라 거의 혼비백산할 지경이었다. 그의 손과 붓이 관계를 맺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모르고 있는데, 그 사람이 또 한 곳을 가리키며 그에게 화압을 하라고 가르쳤다.

“저… 저는… 글자를 모릅니다.” 아큐는 붓을 꽉 쥐고 당황하면서도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너에게 편하게 해주마. 동그라미 하나만 그려!”

아큐가 동그라미를 그리려고 하자 붓을 쥔 손이 떨리기만 했다. 그래서 그 사람이 그를 위해 종이를 바닥에 펴주었고, 아큐는 엎드려 평생의 힘을 다해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는 사람들이 비웃을까 봐 두려워 원을 그리려고 애썼지만, 이 가증스러운 붓은 너무 무거울 뿐만 아니라 말을 듣지 않았다. 겨우 떨리는 손으로 선을 이으려 했지만 또다시 밖으로 튀어나가 호박씨 모양이 되고 말았다.

아큐가 자신이 그린 원이 둥글지 않아 부끄러워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은 개의치 않고 이미 종이와 붓을 빼앗아갔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두 번째로 철창문 안으로 끌고 갔다.

그가 두 번째로 우리 안에 갇혔을 때는 그리 낙담하지 않았다. 그는 인생이란 원래 잡혔다 풀려났다 하는 것이고, 때로는 종이에 동그라미를 그려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동그라미를 완벽하게 그리지 못한 것이 그의 ‘행적’에 오점으로 남은 것이 유감이었다. 하지만 곧 마음을 놓았다. 그는 생각했다. 어린아이도 동그라미를 완벽하게 그리지 못하는 법이지. 그렇게 생각하고 그는 잠들었다.

그러나 이 날 밤, 거인 나으리는 오히려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가 파총과 언쟁을 벌였기 때문이었다. 거인 나으리는 우선 도둑맞은 물건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파총은 우선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총은 요즘 거인 나으리를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다. 그는 탁자를 치며 소리쳤다. “본보기를 보여 경각심을 일으켜야 합니다! 보십시오, 내가 혁명당이 된 지 이십 일도 안 됐는데 강도 사건이 십여 건이나 일어났고 하나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내 체면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건을 해결했는데 당신은 또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군요. 안 됩니다! 이건 내가 담당하는 일입니다!” 거인 나으리는 궁색해졌으나 여전히 고집을 부렸다. 만약 도둑맞은 물건을 찾지 않는다면 자신은 당장 민정 보좌관직을 사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파총은 “그러시죠!”라고 대꾸했다. 그래서 거인 나으리는 이 날 밤 끝내 잠들지 못했지만, 다행히 다음 날에도 사임하지는 않았다.

아큐가 세 번째로 우리 밖으로 끌려 나온 것은 바로 거인 나으리가 잠 못 이루던 그 날 밤 다음 날 오전이었다. 그가 대청에 도착하자 여전히 대머리 노인이 앉아 있었다. 아큐도 여느 때처럼 무릎을 꿇었다.

노인은 매우 온화한 목소리로 물었다. “할 말 있나?”

아큐는 생각해 보았지만 할 말이 없어서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갑자기 많은 장삼과 단삼을 입은 사람들이 그에게 검은 글씨가 쓰인 양복 천으로 만든 흰 조끼를 입혔다. 아큐는 매우 속상했다. 이것이 상복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상복을 입는 것은 불길한 일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두 손이 뒤로 묶였고, 그는 곧바로 관청 밖으로 끌려나갔다.

아큐는 천막이 없는 수레에 실렸고, 몇몇 짧은 옷을 입은 사람들도 그와 함께 앉았다. 수레는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에는 양식 총을 맨 병사들과 단정들이 있었고, 양옆으로는 입을 벌리고 있는 구경꾼들이 많았다. 뒤에는 어떤지 아큐는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깨달았다. 이게 머리를 자르러 가는 게 아닌가? 그는 당황해서 눈앞이 캄캄해지고 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그는 완전히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때로는 당황했지만 때로는 침착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인생이란 원래 때로는 머리를 자르는 일도 피할 수 없는 법이지.

그는 아직 길을 알아볼 수 있었기에 약간 의아했다. 어째서 처형장으로 가지 않는 걸까? 그는 이것이 거리를 행진하며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하지만 알았다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는 그저 인생이란 때로는 거리를 행진하고 사람들에게 보이는 일도 피할 수 없는 법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는 깨달았다. 이것은 처형장으로 가는 길을 돌아가는 것이고, 틀림없이 ‘촤악’ 하고 머리를 자르러 가는 것이다. 그는 멍하니 좌우를 둘러보았다. 모두가 개미떼처럼 따라오고 있었다. 그러다 무심코 길가의 사람들 속에서 오씨를 발견했다. 오랜만에 보니 그녀는 성안에서 일하고 있었다. 아큐는 갑자기 자신이 기개가 없다는 것이 매우 부끄러워졌다. 노래 몇 소절도 부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의 생각이 머릿속에서 회오리바람처럼 빙빙 돌았다. ‘소과부 상여 따라가기’는 격에 맞지 않고, ‘용호대전’ 중 “후회해도 소용없다…”도 너무 시시하고, 그래도 “쇠채찍 들고 너를 때리리라”가 낫겠다. 그는 동시에 손을 들어 올리려 했지만, 두 손이 묶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쇠채찍 들고”도 부르지 않았다.

“이십 년이 지나면 또 다른…”이라고 아큐는 바쁜 와중에 ‘독학으로’ 평소에 하지 않던 말을 반 토막 내뱉었다.

“좋아!!!” 군중 속에서 하이에나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수레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아큐는 환호성 속에서 눈을 굴려 오씨를 보았다. 그녀는 줄곧 그를 보지 않은 것 같았고, 그저 멍하니 병사들이 맨 양식 총만 보고 있었다. 아큐는 다시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이 순간, 그의 생각이 또다시 머릿속에서 회오리바람처럼 빙빙 돌았다. 4년 전, 그는 산기슭에서 굶주린 늑대를 만났었다. 늑대는 계속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그를 따라다니며 그의 살을 먹으려 했다. 그는 그때 거의 죽을 뻔했지만, 다행히 손에 장작을 패는 도끼가 있어서 용기를 내어 미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영원히 그 늑대의 눈을 잊지 못했다. 그 눈은 사납고도 겁에 질린 듯했으며, 귀신불처럼 반짝이며 멀리서 그의 살과 뼈를 꿰뚫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에 그는 전에 본 적 없는 더 무서운 눈을 보았다. 그 눈은 무디면서도 날카로웠고, 그의 말을 씹어 먹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살과 뼈 바깥의 것까지도 씹어 먹으려 했다. 그 눈들은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그를 따라왔다.

이 눈들은 마치 하나로 연결된 것처럼 이미 그의 영혼을 물어뜯고 있었다. “살려주세요…”

하지만 아큐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눈앞이 캄캄해지고 귀에서 윙 하는 소리가 났으며, 온몸이 마치 먼지처럼 흩어지는 것 같았다.

당시의 영향에 대해 말하자면, 가장 큰 영향은 오히려 거인 나으리에게 있었다. 결국 돈을 되찾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온 가족이 울부짖었다. 그 다음은 조씨 집안이었다. 수재가 관청에 고발하러 성으로 올라갔다가 나쁜 혁명당에게 변발을 잘렸을 뿐만 아니라, 20냥의 상금도 날렸기 때문에 온 가족이 울부짖었다. 이날 이후로 그들은 점차 유로(遺老)의 기운을 풍기기 시작했다.

여론에 관해서는, 웨이좡에서는 이견이 없었다. 당연히 모두 아큐가 나쁘다고 했다. 총살당한 것이 바로 그의 나쁨의 증거였다. 나쁘지 않았다면 어찌 총살당했겠는가? 그러나 성안의 여론은 좋지 않았다. 그들 대부분은 만족스럽지 않아했다. 총살은 참수만큼 볼만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게 무슨 우스운 사형수인가, 그렇게 오래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노래 한 소절 부르지 않다니. 그들은 헛되이 따라다녔던 것이다.

1921년 12월.

[13] 천두슈(陳獨秀, Chén Dúxiù)가 《신청년(新青年)》을 만들어 서양 문자를 제창했다는 것은 1918년 전후 첸쉬안퉁(錢玄同, Qián Xuántóng) 등이 《신청년》 잡지에서 한자를 폐지하고 로마자 알파벳 병음을 사용하자는 토론을 벌인 일을 가리킨다. 1931년 3월 3일 저자는 야마가미 마사요시에게 보낸 교정 주석에서 “로마자 알파벳 사용을 주장한 사람은 첸쉬안퉁인데, 여기서 천두슈라고 한 것은 모재공의 실수다.”라고 말했다.

[14] 《군명백가성(郡名百家姓)》은 《백가성(百家姓)》이 예전에 서당에서 사용하던 한자 학습 교재 중 하나로, 송 초에 편찬되었다. 읽기 쉽도록 성씨를 사언 운어로 연결했다. 《군명백가성》은 각 성씨 위에 군(고대 지방 행정구역의 명칭) 이름을 덧붙여 어떤 성씨의 명문가가 고대 어느 지역에 살았는지를 표시했다. 예를 들어 조(趙)는 ‘천수(天水)’, 전(錢)은 ‘팽성(彭城)’ 등이다.

[15] 후스즈(胡適之, Hú Shìzhī)는 곧 후스(胡適, Hú Shì)이다. 그는 1920년 7월에 쓴 《수호전 고증(水滸傳考證)》에서 스스로를 “역사광과 고증광이 있다”고 했다.

[16] ‘행장(行狀)’은 원래 봉건 시대에 죽은 사람의 계보, 본적, 생몰년, 사적을 기록한 글로, 보통 유족이 썼다. 여기서는 경력을 뜻한다.

[17] 토곡사는 바로 토지묘다. 토곡은 토지신과 오곡신을 가리킨다.

[18] ‘문동’은 ‘동생’이라고도 하며, 옛날에는 과거 공부를 하지만 아직 수재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사람을 가리켰다.

[19] 장원은 옛날에 황제가 직접 주관하는 전시에서 1등으로 합격한 진사를 일컫는 말이다.

[20] 압패보는 일종의 도박이다. 도박장에서 주도하는 사람을 ‘주가’라고 한다. 아래에 나오는 ‘청룡’, ‘천문’, ‘관통’ 등은 모두 압패보의 용어로, 베팅하는 위치를 가리킨다. ‘400’, ‘150’은 베팅하는 돈이다.

[21] ‘새옹지마’는 《회남자·인간훈》에 나오는 고사다. “변방 사람 중에 말 기르는 기술이 뛰어난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말이 까닭 없이 달아나 오랑캐 땅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모두 위로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이것이 어찌 복이 되지 않을 줄 알겠는가?’라고 말했다. 몇 달 후 그 말이 오랑캐의 준마를 데리고 돌아왔다. 사람들이 모두 축하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이것이 어찌 화가 되지 않을 줄 알겠는가?’라고 말했다. 집이 부자가 되고 말이 좋아지자 그의 아들이 말 타기를 좋아해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사람들이 모두 위로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이것이 어찌 복이 되지 않을 줄 알겠는가?’라고 말했다. 1년 후 오랑캐가 대거 침입해 왔는데, 젊은이들은 모두 활을 메고 싸웠고 변방 사람들은 열에 아홉이 죽었다. 그러나 이 집은 아들이 절름발이였기 때문에 부자가 서로 의지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복이 화가 되고 화가 복이 되는 것은 변화를 헤아릴 수 없고 깊이를 측량할 수 없는 것이다.”

[22] 새신은 신을 맞이하는 축제를 말한다. 본권 337쪽의 주석 [3]을 참고하라.

[23] 《소고상상분》은 당시 유행하던 샤오싱 지방극의 한 작품이다.

[24] 태뢰는 고대 제사 의례에 따르면 원래 소, 양, 돼지 세 가지 희생을 가리켰지만, 후에는 소만을 태뢰라고 불렀다.

[25] 황제가 이미 과거를 폐지했다는 것은 광서 31년(1905년)에 청 정부가 명령을 내려 병오과부터 과거 시험을 폐지한다고 한 것을 말한다.

[26] 곡상봉은 옛날 부모의 장례 때 아들이 ‘효장’을 짚고 가서 슬픔을 이기지 못함을 표현했다. 아Q는 가짜 양귀신을 싫어해서 그의 지팡이를 ‘곡상봉’이라고 저주했다.

[27] ‘불효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후사가 없는 것이 가장 크다’는 말은 《맹자·이루》에 나온다. 본권 143쪽의 주석 [22]를 참고하라.

[28] ‘약오지귀뇌이’라는 말은 《좌전》 선공 4년에 나온다. 초나라 영군자량(약오씨)의 아들 월추가 흉악하게 생겼는데, 자량의 형 자문이 월추가 자라면 멸족의 화를 부를 것이라고 생각해 자량에게 그를 죽이라고 했다. 자량은 따르지 않았다. 자문은 죽을 때 “귀신도 먹을 것을 찾는데, 약오씨의 귀신은 굶주리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이는 약오씨가 후에 자손이 없어 제사를 지낼 사람이 없어 귀신들이 모두 굶주릴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어조사다.

[29] ‘그 방종한 마음을 거두지 못한다’는 말은 《상서·필명》에 “비록 방종한 마음을 거두려 해도 그것을 제어하기는 매우 어렵다.”라는 구절에서 온 것이다. 방심은 마음에 제약이 없다는 뜻이다.

[30] 달기는 은 주왕의 비빈이다. 아래의 포사는 주 유왕의 비빈이다. 《사기》에는 상나라가 달기 때문에 망하고, 주나라가 포사 때문에 쇠퇴했다는 기록이 있다. 초선은 《삼국연의》에 나오는 왕윤 집의 가기로, 소설에는 여포가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동탁을 죽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저자는 여기서 역사상 나라를 망치고 집안을 망친 원인을 모두 여자 탓으로 돌리는 관점을 풍자하고 있다.

[31] ‘남녀의 큰 방’은 봉건 예교가 남녀 사이에 규정한 엄격한 경계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남자는 바깥에 있고 여자는 안에 있다”(《예기·내칙》), “남녀가 물건을 주고받을 때 손이 닿지 않게 한다”(《맹자·이루》) 등이 있다.

[32] ‘주심(誅心)’은 ‘주의(誅意)’와 같은 말이다. 《후한서·곽전》에 “《춘추》의 정신은 사정을 헤아려 과오를 판단하고, 행위는 용서하되 의도를 처벌한다.”라고 했다. 주심과 주의는 실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주관적으로 타인의 의도를 추측하는 것을 가리킨다.

[33] ‘이립(而立)’이라는 말은 《논어·위정》의 “삼십이립(三十而立)”에서 나왔다. 본래는 공자가 자신이 30세에 학문적으로 자립했다는 말이었는데, 후에 ‘이립’은 30세를 가리키는 말로 자주 사용되었다.

[34] 작은 돈은 작은 동을 가리킨다. 작가는 《차개정잡문·극주간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의 이름은 ‘작은 동’인데, 크면 아Q와 같아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35] “내 손에 쇠채찍 들고 너를 때리리!”와 “후회막급이로다, 술에 취해 정현제를 잘못 베었구나”라는 구절은 모두 당시 소흥 지방극 《용호투(龍虎鬪)》의 노래 가사다. 이 극은 송태조 조광윤(趙匡胤)과 호연찬(胡延贊)의 전투 이야기를 다룬다. 정현제(鄭賢濟)는 조광윤 부하의 용맹한 장수 정자명(鄭子明)을 가리킨다.

[36] “선비를 사흘만 떠나 있어도 눈을 비비고 다시 봐야 한다”는 말은 《삼국지(三國志)·오서(吳書)·여몽전(呂蒙傳)》 배송지(裴松之) 주에서 나왔다. “선비를 사흘만 떠나 있어도 곧 눈을 비비고 다시 봐야 한다.” 눈을 비빈다는 것은 눈을 씻는다는 뜻이다.

[37] 32장의 죽패(竹牌)는 일종의 도박 도구다. 즉 아패(牙牌)나 골패(骨牌)로, 상아(象牙)나 짐승의 뼈로 만들며, 간단한 것은 대나무로 만든다. 아래에 나오는 ‘마장(麻將)’은 마작패를 가리키며, 속칭 마작이라고도 하는데, 이 또한 일종의 도박 도구다. 아Q는 ‘마작’을 ‘마장’으로 잘못 발음했다.

[38] 삼백 대전(大錢) 구이삭(九一索)은 “삼백 대전을 구십이 문(文)으로 백으로 계산한다”는 뜻이다(《화개집 속편(華蓋集續編)·아Q정전의 성인(阿Q正傳的聖人)》 참조). 옛날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던 동전은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어 줄에 꿸 수 있었는데, 천 개(혹은 ‘당십(當十)’하는 대전 백 개)를 한 꿰미로 하여 일삭(一索)이라 불렀지만, 실제로는 자주 수가 모자랐다.

[39] ‘정훈(庭訓)’은 《논어(論語)·계씨(季氏)》에 공자가 “홀로 서 있을 때 이(鯉, 공자의 아들)가 뜰을 지나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공자가 그에게 ‘시(詩)’와 ‘예(禮)’를 배우라고 했다. 이후 사람들은 흔히 아버지의 가르침을 ‘정훈’ 또는 ‘과정지훈(過庭之訓)’이라고 불렀다.

[40] “이 또한 두려워할 것이 없도다”라는 말은 《논어·자한(子罕)》에 나온다.

[41] 선통(宣統) 3년 9월 14일은 서기 1911년 11월 4일로, 신해혁명(辛亥革命) 무창기(武昌起義)의 후 25일째 되는 날이다. 《중국혁명기(中國革命記)》 제3책(1911년 상해자유사(上海自由社) 편인)의 기록에 따르면, 신해 9월 14일 항주부(杭州府)가 민군(民軍)에 의해 점령되었고, 소흥부(紹興府)도 그날 광복을 선언했다.

[42] 숭정(崇禎) 황제의 소복(素服)을 입다. 숭정은 작품 속 인물들이 숭정을 잘못 발음한 것이다. 숭정은 명사종(朱由檢)의 연호다. 명나라가 청나라에 의해 멸망한 후, 일부 농민 봉기군은 흔히 ‘반청복명(反清復明)’이라는 구호를 내세워 청나라 통치에 반대했기 때문에, 청나라 말기까지도 혁명군의 봉기가 숭정 황제의 원수를 갚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43] 닝식(寧式) 침대는 절강성(浙江省) 닝보(寧波) 일대에서 제작된 비교적 정교한 침대다.

[44] “모두가 유신(有神)에 동참하다”라는 말은 《상서(尙書)·윤정(允政)》에 나온다. 본권 278쪽의 주 [9]를 참조하라.

[45] 선덕로(宣德爐)는 명 선종(宣宗) 선덕(宣德) 연간(1426-1435)에 제작된 비교적 귀한 소형 동제(銅製) 향로로, 로 바닥에 “대명 선덕년제(大明宣德年製)”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46] 파총(把總)은 청나라 때 가장 낮은 계급의 무관이다.

[47] ‘황산격(黃傘格)’은 편지를 쓰는 한 형식이다. 8행으로 된 세로쓰기 편지지에 각 행마다 칭찬이나 경의를 표하는 문구를 쓰는데, 이 문구들은 모두 윗부분에 쓰지만 끝까지 쓰지는 않는다. 중앙 부근의 한 행에 수신인의 이름과 호칭을 쓰는데, 이 행은 더 높이 올려 쓰고 아래쪽의 글자도 더 많이 쓴다. 이 행이 양쪽의 짧은 행 사이에 우뚝 서 있어 보이는데, 마치 황색 우산의 우산대처럼 보인다. 황산은 봉건 시대의 고귀한 의장 중 하나였기 때문에 이런 쓰기 방식을 ‘황산격’이라고 불렀다. 이런 편지는 상대방에 대한 공경을 표현한다.

[48] 시유당(施愚堂)의 정자(頂子)는 ‘자유당(自由黨)’의 동음어로, 작가는 《화개집 속편·아Q정전의 성인》에서 “‘시유당’은… 원래 ‘자유당’인데, 시골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해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시유당’으로 잘못 발음하게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자는 청나라 관원 모자 꼭대기에 관직의 등급을 나타내는 모자 구슬이다. 여기서는 미장(米莊) 사람들이 자유당의 휘장을 관원의 ‘정자’에 비유한 것이다.

[49] 한림(翰林)은 당나라 이래로 황제의 문학 시종(侍從)을 일컫는 명칭이다. 명·청 시대에는 진사(進士)로 뽑혀 한림원(翰林院)에서 일하는 사람을 모두 한림이라고 불렀는데, 국사(國史) 편찬, 문서 초안 작성 등의 업무를 담당했으며, 명망이 높은 문관직이었다.

[50] 유해선(劉海蟾): 오대(五代) 시대의 유해섬(劉海蟾)을 가리킨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는 종남산(終南山)에서 도를 닦아 신선이 되었다. 민간에 유행하는 그의 초상화는 일반적으로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앞이마에는 짧은 머리가 덮인 모습이다.

[51] 홍형: 아마도 리위안홍(李元洪)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는 원래 청나라 신군 제21혼성협의 협통(여단장에 해당)이었다. 1911년 우창 봉기 때 그는 혁명군의 어군도독으로 끌려 나왔다. 그는 우창 봉기의 모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52] No: 영어로, ‘아니오’라는 뜻이다.

[53] 희황: 복희씨를 가리킨다. 전설 속 우리나라 상고 시대의 제왕이다. 그의 시대는 과거에 태평성세로 묘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