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 프로젝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고려 시대에 우리 조상들은 당대의 지식을 집대성하여 팔만대장경을 편찬하였습니다. 오늘날의 팔만대장경은 동서양의 수많은 고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21세기의 팔만대장경을 만들어 고전 문헌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자 합니다.
생성형 AI 기술인 LLM의 발전으로 팔만대장경 프로젝트가 가능해졌습니다. LLM은 거의 전문가 수준의 매끄러운 번역을 제공하며, 이를 통해 한국어 사용자 누구나 고전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OpenAI 의 GPT-4o, Anthropic의 Claude-3.5 Sonnet Google의 Gemini-1.5 Pro와 Gemini-1.5 Flash, Stable Diffusion 의 Stable Image Ultra 및 Microsoft의 Text 분석 기술을 MAIDEPOT의 AI 자동 융복합 기능으로 결합하여 활용하였습니다. 번역에 사용된 도구와 프롬프트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링크: PDF 300페이지 번역 전문가 수준의 초벌 번역"
물론 LLM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생성형 AI의 특성상 일부 어색하거나 틀린 번역이 있을 수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우리의 목표는 최대한 많은 고전 서적을 번역하여 지식의 문턱을 낮추는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날 것의 상태로 프로젝트의 양과 질과 높이는 일에 여러분들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프로젝트에 번역 또는 편집으로 도움을 주실 수 있다면 contact@maidepot.com 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원문 정보: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의 영문판 전자책입니다. 소설은 쾌락주의를 신봉하는 헨리 워튼 경의 영향으로 젊음과 아름다움에 집착하게 된 도리안 그레이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도리안의 초상화가 그의 죄와 타락을 대신 짊어지게 되면서 벌어지는 비극적인 사건들을 담고 있습니다.
본문은 소설의 서문, 20개의 챕터, 그리고 저작권 정보와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라이선스에 대한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번역 시 고려사항:
- 19세기 후반 영국 상류 사회의 분위기를 살려 번역해야 합니다.
-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도록 번역해야 합니다. 특히 헨리 워튼 경의 재치 넘치고 냉소적인 말투를 잘 살려야 합니다.
- 미학, 예술, 쾌락주의 등 소설의 주요 주제와 관련된 용어들을 정확하고 일관성 있게 번역해야 합니다.
- 극적인 장면 묘사, 특히 도리안 그레이의 심리 묘사를 생생하게 번역해야 합니다.
- 고유 명사와 지명은 가능한 한 원어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되, 이미 널리 알려진 번역명이 있다면 그것을 사용합니다.
- 본문에 자주 등장하는 성경 구절은 한국어 성경에서 사용하는 표현을 따릅니다.
- 단순 서술은 ‘-했다.’와 같이 짧게 끝나는 문체로 번역합니다.
모든 등장인물 정보:
- Lord Henry Wotton: 헨리 워튼 경 – 냉소적이고 재치 넘치는 쾌락주의자. 도리안에게 쾌락주의 사상을 주입시키는 인물.
- Dorian Gray: 도리안 그레이 – 아름다운 외모에 매료되어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영혼을 팔게 되는 인물.
- Basil Hallward: 베이즐 홀워드 – 도리안 그레이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화가. 도리안의 초상화를 그림.
- Sibyl Vane: 시빌 베인 – 가난한 배우로 도리안의 사랑을 받지만, 그의 냉혹함에 결국 자살을 선택하는 인물.
- James Vane: 제임스 베인 – 시빌 베인의 동생. 누나의 복수를 위해 도리안을 찾아다니는 인물.
- Alan Campbell: 앨런 캠벨 – 도리안의 친구이자 화학자. 도리안의 부탁으로 베이즐의 시체를 처리하지만, 죄책감에 시달리다 자살한다.
- Lady Agatha: 애거사 부인 – 헨리 워튼 경의 고모. 자선 활동에 열심인 인물.
- Duchess of Harley: 할리 공작부인 – 사교계의 유명 인사.
- Lord Fermor: 퍼모 경 – 헨리 워튼 경의 삼촌.
- Lady Gwendolen: 그웬돌린 부인 – 헨리 워튼 경의 여동생.
- Mrs. Vane: 베인 부인 – 시빌 베인과 제임스 베인의 어머니.
모든 중요 용어 번역어:
- The Albany: 올버니 – 런던의 고급 아파트
- Grosvenor: 그로스브너 – 런던의 미술 전시회
- The Academy: 아카데미 – 영국 왕립 예술원
- Narcissus: 나르키소스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반한 청년.
- Adonis: 아도니스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
- Caliban: 캘리번 –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에 나오는 흉측한 괴물.
- bric-à-brac shop: 골동품 가게
- the Orleans: 오를레앙 – 레스토랑 이름 (가상)
- Curzon Street: 커존 스트리트 – 런던의 거리 이름
- Whitechapel: 화이트채플 – 런던의 빈민가
- précis: 요약
- salon: 살롱 – 상류층의 사교 모임
- penny newspapers: 페니 신문 – 19세기 영국에서 유행한 저렴한 신문
- stock-broker: 주식 중개인
- Grosvenor Square: 그로스브너 광장 – 런던의 광장 이름
- South Audley Street: 사우스 오들리 스트리트 – 런던의 거리 이름
- Mayfair: 메이페어 – 런던의 부촌
- Wardour Street: 워더 스트리트 – 런던의 거리 이름
- Berkeley Square: 버클리 광장 – 런던의 광장 이름
- protégé: 후원을 받는 사람
- Willis’s Rooms: 윌리스 룸 – 런던의 유명한 연회장
- les grandpères ont toujours tort: 할아버지들은 항상 틀렸다.
- Philistine: 필리스틴 – 교양 없는 사람
- Imogen: 이모젠 – 셰익스피어의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에 나오는 여주인공.
- Rosalind: 로잘린드 – 셰익스피어의 희곡 ‘뜻대로 하세요’에 나오는 여주인공.
- rouge: 루즈 – 붉은색 화장품
- esprit: 재치
- Piccadilly: 피카딜리 – 런던의 번화가
- hautboy: 오보에
- Tanagra figurine: 타나그라 작은 조각상 – 고대 그리스의 타나그라 지역에서 만들어진 테라코타 작은 조각상.
- début: 데뷔
- gags: 즉흥 연기
- greenroom: 분장실
- tableau: 그림, 장면
- Euston Road: 유스턴 로드 – 런던의 거리 이름
- supercargo: 화물 감독관
- bushranger: 부시레인저 – 19세기 호주에서 활동하던 무장 강도.
- Achilles Statue: 아킬레스 동상 – 런던 하이드 파크에 있는 동상.
- Marble Arch: 마블 아치 – 런던 하이드 파크에 있는 대리석 아치.
- omnibus: 옴니버스 – 19세기 영국에서 운행된 대중 마차.
- asphodel: 아스포델 – 백합과의 꽃. 그리스 신화에서 저승에 핀다고 알려져 있음.
- chaud-froid: 쇼프루아 – 차갑게 식힌 요리.
- Lohengrin: 로엔그린 – 바그너의 오페라.
- édition de luxe: 호화판
- Messalina: 메살리나 –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세 번째 황후. 방탕한 생활로 유명.
- arbiter elegantiarum: 우아함의 심판자 – 패션과 취향을 결정하는 사람.
- Dryad: 드라이어드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무의 요정.
- Satyricon: 사티리콘 – 고대 로마 작가 페트로니우스가 쓴 풍자 소설.
- Neronian: 네로 황제 시대의
- Symbolistes: 상징주의자
- argot: 은어
- panis cælestis: 하늘의 양식 – 성체를 가리키는 말.
- Darwinismus: 다위니즘 – 찰스 다윈의 진화론.
- juruparis: 주루파리스 – 아마존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악기.
- Alfonso de Ovalle: 알폰소 데 오발레 – 17세기 칠레에서 활동한 예수회 선교사.
- clarin: 클라린 – 멕시코의 관악기.
- ture: 투레 – 아마존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나팔.
- teponaztli: 테포나츠틀리 – 아즈텍의 타악기.
- yotl-bells: 요틀 벨 – 아즈텍의 방울.
- Bernal Diaz: 베르날 디아스 – 멕시코 정복에 참여했던 스페인 군인.
- Clericalis Disciplina: 클레리칼리스 디스플리나 – 12세기 스페인에서 쓰인 설교집.
- John the Priest: 요한 사제 – 중세 시대의 인물.
- A Margarite of America: 아메리카의 마거리트 – 16세기 영국 작가 토마스 로지가 쓴 소설.
- Zipangu: 지팡구 – 마르코 폴로가 일본을 지칭했던 이름.
- King Perozes: 페로제스 왕 – 5세기 페르시아의 왕.
- Procopius: 프로코피우스 – 6세기 비잔틴 제국의 역사가.
- Brantome: 브랑톰 – 16세기 프랑스의 작가.
- Charles of England: 찰스 1세 – 17세기 영국의 왕.
- Richard II: 리처드 2세 – 14세기 영국의 왕.
- balas rubies: 발라스 루비 – 옅은 붉은색을 띠는 루비.
- bauderike: 보드릭 – 어깨에 두르는 띠.
- Piers Gaveston: 피어스 개버스턴 – 14세기 영국 귀족. 에드워드 2세의 총신.
- parsemé: 흩뿌려진
- Henry II: 헨리 2세 – 12세기 영국의 왕.
- orients: 오리엔트 진주 – 훌륭한 품질의 진주.
- Charles the Rash: 용담공 샤를 – 15세기 부르고뉴 공작.
- Joan of Burgundy: 부르고뉴의 조안 – 14세기 프랑스 왕비.
- Catherine de Medicis: 카트린 드 메디시스 – 16세기 프랑스 왕비.
- Louis XIV: 루이 14세 – 17세기 프랑스의 왕.
- Sobieski: 소비에스키 – 17세기 폴란드의 왕.
- Delhi muslins: 델리 무슬린 – 인도 델리에서 생산되는 고급 무슬린.
- Dacca gauzes: 다카 거즈 –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생산되는 고급 거즈.
- lacis: 레이스의 일종.
- Foukousas: 후쿠사 – 일본의 전통적인 직물.
- cope: 코프 – 사제가 미사 때 입는 긴 망토.
- pomegranate: 석류
- orphrey: 오프리 – 코프의 앞부분에 장식된 띠.
- morse: 모스 – 코프를 여미는 데 사용되는 장식 단추.
- chasuble: 제의 – 사제가 미사 때 입는 겉옷.
- dalmatic: 달마티카 – 부제가 미사 때 입는 옷.
- altar frontal: 제대포 – 제대 앞면을 덮는 천.
- corporal: 성체포 – 성체를 놓는 사각형의 흰 천.
- chalice-veil: 성작포 – 성작을 덮는 천.
- sudarium: 수다리움 – 성작과 성반을 닦는 천.
- lilas blanc: 흰 라일락
- nocturne: 녹턴 – 쇼팽이 작곡한 서정적인 피아노곡.
- Majorca: 마요르카 – 스페인의 섬.
- Waterbury watch: 워터베리 시계 – 19세기 미국에서 생산된 저렴한 시계.
- Scotland Yard: 스코틀랜드 야드 – 런던 경찰청.
- San Francisco: 샌프란시스코 –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도시.
- Hamlet: 햄릿 – 셰익스피어의 희곡.
- Ophelia: 오필리아 –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에 나오는 여주인공.
- Browning: 브라우닝 – 19세기 영국의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
- lilas blanc: 흰 라일락
- White’s: 화이트 – 런던의 상류층 클럽.
- Lord Poole: 풀 경
- Bournemouth: 본머스 – 영국의 도시.
- Lady Branksome: 브랭크섬 부인
- Monte Carlo: 몬테카를로 – 모나코의 도시.
- Java parrot: 자바 앵무새
- Parma violets: 파르마 제비꽃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 저
목차
서문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제6장
제7장
제8장
제9장
제10장
제11장
제12장
제13장
제14장
제15장
제16장
제17장
제18장
제19장
제20장
서문
예술가는 아름다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예술을 드러내고 예술가를 감추는 것이 예술의 목적이다. 비평가는 아름다운 것에 대한 자신의 인상을 다른 방식이나 새로운 재료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다.
최고의 비평과 최악의 비평은 모두 자서전의 한 형태다.
아름다운 것에서 추한 의미를 찾는 사람들은 타락했지만 매력은 없다. 이는 결점이다.
아름다운 것에서 아름다운 의미를 찾는 사람들은 교양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희망이 있다. 그들은 아름다운 것이 오직 아름다움만을 의미한다고 믿는 선택받은 사람들이다.
도덕적인 책이나 비도덕적인 책은 없다. 책은 잘 쓰였거나 못 쓰였을 뿐이다. 그게 전부다.
19세기의 사실주의에 대한 혐오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는 캘리번의 분노와 같다.
19세기의 낭만주의에 대한 혐오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캘리번의 분노와 같다. 인간의 도덕적 삶은 예술가의 소재의 일부를 이루지만, 예술의 도덕성은 불완전한 매체를 완벽하게 사용하는 데 있다. 어떤 예술가도 무언가를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진실조차도 증명할 수 있다. 어떤 예술가도 윤리적 동정심을 갖지 않는다. 예술가의 윤리적 동정심은 용서할 수 없는 문체상의 버릇이다. 어떤 예술가도 결코 병적이지 않다. 예술가는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 사상과 언어는 예술가에게 예술의 도구다. 악덕과 미덕은 예술가에게 예술의 재료다. 형식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예술의 전형은 음악가의 예술이다. 감정의 관점에서 보면 배우의 기술이 전형이다. 모든 예술은 동시에 표면이자 상징이다. 표면 아래로 내려가는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다. 상징을 읽는 사람들도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다. 예술이 실제로 비추는 것은 삶이 아니라 관객이다.
예술 작품에 대한 의견의 다양성은 그 작품이 새롭고 복잡하며 생동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평가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 예술가는 자신과 조화를 이룬다. 우리는 유용한 것을 만든 사람을 용서할 수 있다. 단, 그가 그것을 감탄하지 않는 한에서 그렇다. 쓸모없는 것을 만드는 유일한 변명은 그것을 열렬히 감탄하는 것이다.
모든 예술은 전적으로 쓸모없다.
오스카 와일드
제1장
화실은 장미 향기로 가득했다. 가벼운 여름 바람이 정원의 나무들 사이로 불어올 때마다 열린 문으로 라일락의 진한 향기나 분홍빛 가시나무의 더 섬세한 향기가 들어왔다.
페르시아 안장 가방으로 만든 소파 모퉁이에 누워 평소처럼 무수한 담배를 피우던 헨리 워튼 경은 불꽃같이 아름다운 꽃을 감당하기에 가녀린 듯한 가지를 가진 개나리의 꿀처럼 달콤하고 꿀빛인 꽃송이들을 겨우 볼 수 있었다. 때때로 거대한 창문 앞에 드리운 긴 명주 커튼 위로 날아가는 새들의 기이한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일종의 순간적인 일본풍 효과를 만들어냈고, 그에게 동경의 옥빛 얼굴을 한 화가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들은 필연적으로 정지된 예술을 통해 민첩함과 움직임의 감각을 전달하려 한다. 길게 자란 풀을 비집고 나아가거나 먼지 낀 금빛 털을 가진 덩굴 인동의 주변을 단조로운 집요함으로 맴도는 벌들의 낮은 웅웅거림은 정적을 더욱 억압적으로 만드는 듯했다. 런던의 희미한 소음은 멀리 있는 오르간의 저음과 같았다.
방 중앙에는 세워진 이젤에 고정된 젊고 놀랍도록 아름다운 청년의 전신 초상화가 있었고, 그 앞 조금 떨어진 곳에는 화가 자신인 베이즐 홀워드가 앉아 있었다. 그는 몇 년 전 갑자기 사라져 당시 대중의 흥분을 일으키고 많은 기이한 추측을 낳았다.
화가는 자신이 그토록 능숙하게 예술로 옮긴 우아하고 매력적인 모습을 바라보며 기쁨의 미소를 지었고, 그 미소가 얼굴에 머물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갑자기 일어나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눈꺼풀을 눌렀다. 마치 깨어나기 두려운 어떤 기이한 꿈을 뇌리에 가두려는 듯했다.
“베이즐, 이건 네 최고 걸작이야. 지금껏 네가 만든 것 중 최고라고.” 헨리 경이 느긋하게 말했다. “내년에 꼭 그로스브너에 출품해야 해. 아카데미는 너무 크고 너무 시끄러워. 내가 갈 때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림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어. 끔찍했지. 아니면 그림이 너무 많아서 사람들을 볼 수가 없었는데, 그건 더 끔찍했어. 그로스브너가 진짜 유일한 장소야.”
“난 어디에도 보내지 않을 거야.” 그가 고개를 뒤로 젖히며 대답했다. 옥스퍼드 시절 친구들을 웃게 만들던 그 특유의 방식으로. “아니, 어디에도 보내지 않을 거야.”
헨리 경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놀란 듯 그를 바라보았다. 푸른 연기 고리가 그의 무거운 아편 향 담배에서 기이한 소용돌이를 그리며 피어오르는 사이로. “어디에도 보내지 않는다고? 왜 그래, 친구? 무슨 이유라도 있어? 너희 화가들은 정말 이상한 녀석들이야! 명성을 얻기 위해 온갖 일을 다 하지. 그런데 명성을 얻자마자 그걸 버리려 하는 것 같아. 어리석은 짓이야. 세상에 네 이름이 너무 유명해지는 것만큼 나쁜 것은 없으니까. 그렇게 되면 중산층의 지위를 얻게 되는 거야. 그건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과 다름없어.”
세상에서 입방아에 오르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입방아에 오르지 않는 것이다. 이런 초상화라면 자네를 영국의 모든 젊은이들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올려놓을 것이고, 노인들도 질투를 하게 만들 거야. 물론 노인들이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말이지.”
“네가 비웃을 줄 알았어.” 그가 대답했다. “하지만 난 정말 이 그림을 전시할 수 없어. 내 자신을 너무 많이 담아냈거든.”
헨리 경은 소파에 길게 누워 웃었다.
“그럴 줄 알았어. 하지만 그게 사실이야.”
“너무 많은 자신을 담아냈다고! 말도 안 돼, 베이즐. 네가 그렇게 허영심 강한 줄 몰랐어. 난 정말 네 거친 강인한 얼굴과 칠흑 같은 머리카락을 가진 너와 상아와 장미잎으로 만든 것 같은 이 젊은 아도니스 사이에서 어떤 닮은 점도 찾을 수 없어. 왜 말이야, 베이즐, 그는 나르키소스야. 그리고 너는… 물론 너는 지적인 표정을 하고 있지. 하지만 아름다움, 진정한 아름다움은 지적인 표정이 시작되는 곳에서 끝나. 지성은 그 자체로 과장의 한 형태이며, 어떤 얼굴의 조화로움도 파괴해. 생각하기 위해 앉는 순간, 사람은 온통 코가 되거나, 이마가 되거나, 뭔가 끔찍한 것이 돼버려. 학문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봐. 그들이 얼마나 완벽하게 흉측한지! 물론 교회는 예외지. 하지만 교회에서는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80세의 주교가 18세 소년 시절에 말하라고 들은 것을 계속해서 말하고 있고, 당연한 결과로 그는 항상 절대적으로 매력적으로 보이지. 네가 이름도 말해주지 않은 신비로운 젊은 친구, 그의 초상화가 나를 정말 매혹시키는데, 그는 결코 생각하지 않아. 난 그걸 확신해. 그는 꽃이 없을 때 겨울에 우리가 늘 바라보고 싶어 하는, 그리고 우리의 지성을 식혀줄 무언가가 필요할 때 여름에 늘 여기 있어야 할 어떤 무뇌의 아름다운 생명체야. 자화자찬하지 마, 베이즐. 넌 전혀 그와 닮지 않았어.”
“넌 날 이해 못 해, 해리.” 화가가 대답했다. “물론 난 그와 닮지 않았어. 그건 잘 알아. 사실, 그와 닮았다면 유감스러울 거야. 어깨를 으쓱거리니? 난 네게 진실을 말하고 있어. 모든 육체적, 지적 특성에는 숙명이 있어. 마치 역사를 통해 왕들의 불안정한 발걸음을 쫓아다니는 그런 종류의 숙명 말이야. 우리는 동료들과 다르지 않은 게 더 나아. 추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이 세상에서 최고의 시간을 보내. 그들은 편안히 앉아서 인생이라는 연극을 멍하니 바라볼 수 있지. 승리를 모른다면 적어도 패배의 쓰라림은 면하는 법이야. 그들은 우리 모두가 살아야 할 대로 살아. 방해받지 않고, 무관심하게, 불안 없이. 그들은 다른 이에게 파멸을 가져오지도 않고, 남의 손에서 그것을 받지도 않아. 네 지위와 부, 해리, 내 두뇌, 그게 무엇이든 간에 내 예술, 도리안 그레이의 아름다움—우리는 모두 신들이 준 것 때문에 고통받을 거야, 끔찍하게 고통받을 거야.”
“도리안 그레이라고? 그게 그의 이름이야?” 헨리 경이 베이즐 홀워드를 향해 화실을 가로질러 걸어가며 물었다.
“그래, 그게 그의 이름이야. 네게 말하려고 하지 않았어.”
“하지만 왜?”
“오, 설명할 수가 없어. 사람들을 무척 좋아하게 되면, 난 절대 그들의 이름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아. 그건 마치 그들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 같아. 난 비밀을 사랑하게 됐어. 그게 현대 생활을 우리에게 신비롭고 경이롭게 만드는 유일한 것 같아. 가장 평범한 것도 숨기기만 하면 매력적이 돼. 요즘 나는 떠날 때 내가 어디로 가는지 절대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아. 그랬다간 모든 즐거움을 잃게 될 테니까. 어리석은 습관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삶에 로맨스를 한껏 더해주는 것 같아. 넌 내가 이것 때문에 매우 바보 같다고 생각하겠지?”
“전혀 그렇지 않아,” 헨리 워튼 경이 대답했다. “전혀 그렇지 않아, 베이즐. 넌 내가 결혼했다는 걸 잊은 것 같아. 결혼의 유일한 매력은 양측 모두에게 속임수의 삶을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만든다는 거야. 난 내 아내가 어디 있는지 전혀 모르고, 내 아내는 내가 무얼 하는지 전혀 모르지. 우리가 만날 때—우리는 가끔 만나, 함께 저녁 식사를 하거나 공작의 집에 갈 때—우리는 가장 진지한 표정으로 서로에게 가장 터무니없는 이야기들을 해. 내 아내는 그걸 아주 잘해—사실, 나보다 훨씬 더 잘해. 그녀는 날짜를 혼동하는 법이 없어. 난 항상 그래. 하지만 그녀가 날 들통나게 하면, 전혀 짜증을 내지 않아. 가끔은 그랬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녀는 그저 날 비웃을 뿐이야.”
“난 네가 결혼 생활에 대해 말하는 방식이 싫어, 해리,” 베이즐 홀워드가 정원으로 이어지는 문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난 네가 정말 좋은 남편이지만 자신의 미덕을 철저히 부끄러워한다고 믿어. 넌 정말 특이한 사람이야. 넌 결코 도덕적인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결코 잘못된 행동은 하지 않아. 네 냉소주의는 그저 포즈일 뿐이야.”
“자연스러움 자체가 포즈야, 그것도 내가 아는 가장 짜증나는 포즈지,” 헨리 워튼 경이 웃으며 외쳤다. 그러자 두 젊은이는 함께 정원으로 나가 키 큰 월계수 덤불 그늘에 있는 긴 대나무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햇빛이 윤이 나는 잎사귀 위로 미끄러졌다. 잔디 위에서는 하얀 데이지들이 떨리고 있었다.
잠시 후, 헨리 워튼 경이 시계를 꺼냈다. “난 가봐야겠어, 베이즐,” 그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가기 전에 내가 얼마 전에 네게 했던 질문에 대답해 주길 바라.”
“무슨 질문이었지?” 화가가 눈을 땅에 고정한 채 물었다.
“잘 알잖아.”
“모르겠는데, 해리.”
“좋아, 그럼 말해주지. 난 네가 왜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화를 전시하지 않으려 하는지 설명해 주길 바라. 진짜 이유를 알고 싶어.”
“난 네게 진짜 이유를 말했어.”
“아니, 넌 그러지 않았어. 넌 그 그림에 네 자신이 너무 많이 담겨 있어서라고 했지. 그건 유치한 말이야.”
“해리,” 베이즐 홀워드가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감정을 담아 그린 모든 초상화는 화가의 초상화지, 모델의 초상화가 아니야. 모델은 단지 우연일 뿐이고, 계기일 뿐이야. 화가에 의해 드러나는 건 모델이 아니라, 오히려 화가 자신이 색칠한 캔버스 위에 자신을 드러내는 거야. 내가 이 그림을 전시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그 안에 내 영혼의 비밀을 보여주었다는 두려움 때문이야.”
헨리 워튼 경이 웃었다. “그게 뭐지?” 그가 물었다.
“말해주지,” 홀워드가 말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모든 걸 기대하고 있어, 베이즐,” 그의 동료가 그를 힐끗 보며 말을 이었다.
“오, 사실 말해줄 게 별로 없어, 해리,” 화가가 대답했다.
“그리고 당신이 이해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믿기도 힘들겠죠.”
헨리 워튼 경이 미소를 지으며 몸을 숙여 잔디에서 분홍빛 꽃잎의 데이지를 뽑아 살펴보았다. “내가 이해하지 못할 리가 없어요,” 그가 작은 금빛의 하얀 깃털 같은 꽃반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리고 믿는 것에 관해서라면, 완전히 믿기 힘든 것이라면 무엇이든 믿을 수 있죠.”
바람이 나무에서 꽃잎 몇 개를 떨어뜨렸고, 무거운 라일락 꽃송이들이 별 모양의 꽃잎을 모아 나른한 공기 속에서 흔들렸다. 벽 옆에서 귀뚜라미가 울기 시작했고, 긴 얇은 잠자리 한 마리가 갈색 거즈 날개를 펄럭이며 푸른 실처럼 날아갔다. 헨리 워튼 경은 마치 베이즐 홀워드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 같았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했다.
“간단해,” 화가가 잠시 후 말했다. “두 달 전에 브랜든 부인의 파티에 갔어. 가난한 예술가들도 가끔 사교계에 나가서 우리가 야만인이 아니라는 걸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걸 알잖아. 당신이 한 번 말했듯이, 이브닝코트와 흰 나비넥타이만 있으면 누구든, 심지어 주식 중개인조차도 교양 있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을 수 있어. 그래서 방에 들어가서 십 분쯤 지났을까, 과하게 치장한 뚱뚱한 귀부인들과 지루한 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걸 느꼈어. 몸을 반쯤 돌려 도리안 그레이를 처음 보았지. 우리 눈이 마주쳤을 때, 난 창백해지는 걸 느꼈어. 이상한 공포감이 밀려왔지. 나는 단순히 그의 성격만으로도 매혹적이어서, 만약 허용한다면 내 본성 전체, 내 영혼 전체, 심지어 내 예술 자체를 흡수할 수 있는 사람과 마주쳤다는 걸 알았어. 난 내 삶에 어떤 외부 영향도 원하지 않았어. 해리, 당신도 알다시피 난 원래 독립적인 성격이야. 난 항상 내 자신의 주인이었지. 적어도 도리안 그레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어. 그런 다음… 하지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뭔가가 내 인생의 끔찍한 위기의 순간에 도달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어. 운명이 나를 위해 절묘한 기쁨과 절묘한 슬픔을 준비했다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 난 두려워졌고 방을 나가려고 했어. 양심 때문이 아니었어. 일종의 비겁함 때문이었지. 도망치려 한 것에 대해 자랑할 만한 게 없어.”
“양심과 비겁함은 실제로 같은 거야, 베이즐. 양심은 회사의 상호일 뿐이지. 그게 전부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해리.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내 동기가 무엇이었든 간에 – 자존심 때문일 수도 있어, 난 한때 매우 자존심이 강했으니까 – 난 확실히 문 쪽으로 가려고 애썼어. 물론 거기서 브랜든 부인과 부딪혔지. ‘벌써 가려고 하시는 건 아니죠, 홀워드 씨?’ 그녀가 소리쳤어. 그녀의 이상하게 날카로운 목소리 알지?”
“그래, 그녀는 아름다움을 제외한 모든 면에서 공작새 같아,” 헨리 경이 긴 신경질적인 손가락으로 데이지를 뜯으며 말했다.
“난 그녀를 떨쳐낼 수 없었어. 그녀는 나를 왕족들과 훈장과 가터를 단 사람들, 그리고 거대한 티아라와 앵무새 코를 가진 나이 든 숙녀들에게 데려갔지. 그녀는 나를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소개했어. 난 그녀를 단 한 번 만났었는데, 그녀는 나를 유명인사로 만들기로 마음먹었던 거야. 내 그림 중 하나가 그때 큰 성공을 거뒀던 것 같아. 적어도 페니 신문들에서 떠들썩했지. 그게 19세기의 불멸의 기준이니까. 갑자기 나는 내 성격을 이상하게 흔들어 놓았던 젊은이와 마주쳤어. 우리는 아주 가까이 있었고, 거의 맞닿을 듯했지. 우리 눈이 다시 마주쳤어. 무모한 행동이었지만, 난 브랜든 부인에게 그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어. 아마도 그렇게 무모한 행동은 아니었을지도 몰라. 그건 단순히 불가피한 일이었어. 우리는 소개 없이도 서로 말을 걸었을 거야. 난 그걸 확신해. 도리안도 나중에 그렇게 말했어. 그도 우리가 서로 알게 될 운명이었다고 느꼈대.”
“그래서 브랜든 부인은 이 놀라운 젊은이를 어떻게 설명했나?” 그의 동료가 물었다. “그녀가 모든 손님들의 신속한 약력을 제공하는 걸로 알고 있어. 그녀가 훈장과 리본으로 뒤덮인 붉은 얼굴의 난폭한 노신사를 내게 데려와 방 안의 모든 사람이 완벽히 들을 수 있는 비극적인 속삭임으로 내 귀에 가장 놀라운 세부사항들을 쏟아내던 걸 기억해. 난 그냥 도망쳤어. 난 사람들을 직접 알아가는 걸 좋아하거든. 하지만 브랜든 부인은 손님들을 마치 경매인이 물건을 대하듯 취급해. 그녀는 그들에 대해 완전히 설명해 버리거든. 아니면 알고 싶은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말해주지.”
“가엾은 브랜든 부인! 너무 가혹하군, 해리!” 홀워드가 무심하게 말했다.
“내 친구, 그녀는 살롱을 만들려고 했지만 레스토랑을 여는 데 그쳤어. 어떻게 그녀를 존경할 수 있겠어? 하지만 말해봐, 그녀가 도리안 그레이에 대해 뭐라고 했나?”
“아, 뭐 이런 식이었지. ‘매력적인 소년 – 가엾은 어머니와 난 정말 떨어질 수 없어요. 그가 뭘 하는지 완전히 잊었어요 –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닐까 걱정돼요 – 아, 맞아요, 피아노를 쳐요 – 아니면 바이올린이었나요, 친애하는 그레이 씨?’ 우리 둘 다 웃음을 참을 수 없었고, 곧바로 친구가 되었어.”
“웃음은 우정의 시작으로 나쁘지 않아. 그리고 우정의 가장 좋은 끝이기도 하지,” 젊은 귀족이 다른 데이지를 뽑으며 말했다.
홀워드가 고개를 저었다. “넌 우정이 뭔지 모르는구나, 해리,” 그가 중얼거렸다. “적의가 뭔지도 모르고. 넌 모든 사람을 좋아해. 즉, 모든 사람에게 무관심하다는 뜻이지.”
“얼마나 불공평한 일인가!” 헨리 워튼 경은 모자를 뒤로 젖히고 터키석빛 여름 하늘을 가득 채운 흰 비단실 뭉치 같은 작은 구름들을 올려다보며 외쳤다. “그래, 정말 불공평해. 난 사람들을 세 가지 기준으로 나눠. 외모로 친구를, 성격으로 지인을, 그리고 지성으로 적을 선택하지. 적을 선택할 땐 신중해야 해. 난 바보인 적은 단 한 명도 없어. 그들은 모두 어느 정도 지적인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고, 그래서 나를 인정하지. 이게 너무 허영심이 강한 걸까? 난 그게 좀 허영심이 강하다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해리. 하지만 당신의 분류 기준에 따르면 전 그저 지인일 뿐이겠네요.”
“내 사랑하는 베이즐, 넌 지인 이상이야.”
“그리고 친구 이하인 거죠. 일종의 형제 같은 건가?”
“오, 형제들! 난 형제들 따위 신경 쓰지 않아. 형은 죽지도 않고, 동생들은 죽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아.”
“해리!” 홀워드가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친구야, 난 그렇게 심각하게 말한 게 아니야. 하지만 난 내 친척들을 혐오하지 않을 수 없어. 아마도 우리 누구도 다른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결점을 가지고 있는 걸 견딜 수 없기 때문일 거야. 난 소위 상류층의 악덕이라 불리는 것에 대한 영국 민주주의의 분노에 완전히 공감해. 대중은 술 취함, 어리석음, 부도덕이 그들만의 특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그래서 우리 중 누군가가 바보짓을 하면, 그들은 마치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한 것처럼 느끼지. 가엾은 사우스워크가 이혼 법정에 섰을 때, 그들의 분노는 정말 장관이었어. 하지만 난 프롤레타리아의 10퍼센트도 올바르게 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당신이 한 말 중 단 한 마디도 동의할 수 없어. 그리고 해리,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확신해.”
헨리 워튼 경은 뾰족한 갈색 수염을 쓰다듬으며 술 달린 흑단 지팡이로 특허 가죽 부츠의 발끝을 톡톡 두드렸다. “베이즐, 넌 정말 영국적이구나! 그건 네가 두 번째로 그런 말을 한 거야. 진정한 영국인에게 어떤 생각을 제시하면—늘 무모한 짓이지만—그는 그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 고려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아.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유일한 것은 그 사람이 그것을 믿느냐 하는 거지. 하지만 생각의 가치는 그것을 표현하는 사람의 진실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사실, 그 사람이 더 불성실할수록 그 생각은 더 순수하게 지적일 가능성이 높아. 그런 경우에는 그의 욕망이나 욕구, 편견으로 인해 색칠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난 너와 정치, 사회학, 형이상학을 논하고 싶지 않아. 난 원칙보다는 사람을 더 좋아하고, 원칙이 전혀 없는 사람을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좋아해. 도리안 그레이에 대해 더 얘기해 봐. 얼마나 자주 만나?”
“매일. 매일 그를 보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어. 그는 내게 절대적으로 필요해.”
“정말 놀랍군! 난 네가 예술 말고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을 줄 알았어.”
“그는 이제 내 모든 예술이야.” 화가가 진지하게 말했다. “해리, 가끔 세계 역사에서 중요한 시기는 단 두 가지뿐이라고 생각해. 첫 번째는 예술을 위한 새로운 매체의 등장이고, 두 번째는 예술을 위한 새로운 개성의 등장이지. 유화가 베네치아인들에게 그랬듯이, 안티노우스의 얼굴이 후기 그리스 조각에 그랬듯이, 도리안 그레이의 얼굴이 언젠가 나에게 그럴 거야. 단순히 내가 그를 그리고, 스케치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만이 아니야. 물론 그런 것들도 다 했지. 하지만 그는 나에게 모델이나 포즈를 취하는 사람 이상이야. 내가 그를 그린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거나 그의 아름다움이 너무 커서 예술이 표현할 수 없다고 말하지는 않을게. 예술이 표현할 수 없는 것은 없어. 그리고 도리안 그레이를 만난 이후에 내가 한 작품이 좋은 작품이고, 내 인생 최고의 작품이라는 걸 알아. 하지만 어떤 특별한 방식으로—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그의 개성이 내게 완전히 새로운 예술 방식,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을 제시했어. 난 모든 것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해. 이제 난 전에는 숨겨져 있던 방식으로 삶을 재창조할 수 있어. ‘사색의 나날 속 형태의 꿈’—누가 그런 말을 했더라? 잊어버렸어. 하지만 그게 바로 도리안 그레이가 내게 해준 거야. 이 소년의 단순한 존재만으로도—그는 내게 소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20세가 넘었어—그의 단순한 존재만으로도—아! 네가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두 이해할 수 있을까? 그는 무의식적으로 새로운 학파의 선을 내게 정의해줬어. 그 학파는 모든 낭만주의 정신의 열정과 그리스 정신의 모든 완벽함을 담고 있지. 영혼과 육체의 조화—그게 얼마나 대단한 거야! 우리는 광기 속에서 둘을 분리했고, 저속한 현실주의와 공허한 이상주의를 발명했어. 해리! 네가 도리안 그레이가 내게 어떤 의미인지 안다면! 내가 그린 풍경화를 기억하지? 애그뉴가 엄청난 가격을 제안했지만 난 팔지 않았어. 그건 내가 지금까지 그린 것 중 가장 좋은 작품 중 하나야. 그런데 왜 그럴까? 그건 내가 그 그림을 그릴 때 도리안 그레이가 내 옆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야. 어떤 미묘한 영향이 그에게서 내게로 전해졌고, 난 생애 처음으로 평범한 숲속에서 내가 항상 찾았지만 늘 놓쳤던 경이로움을 보았어.”
“베이즐,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야! 난 도리안 그레이를 만나봐야겠어.”
홀워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원을 왔다 갔다 했다. 잠시 후 그가 돌아왔다. “해리,” 그가 말했다. “도리안 그레이는 내게 단순히 예술의 동기일 뿐이야. 넌 그에게서 아무것도 보지 못할 수도 있어. 하지만 난 그에게서 모든 것을 봐. 그는 내 작품에 그의 이미지가 없을 때 가장 많이 존재해. 그는 내가 말했듯이 새로운 방식의 제안이야. 난 그를 특정 선의 곡선에서, 특정 색채의 사랑스러움과 미묘함에서 발견해. 그게 전부야.”
“그렇다면 왜 그의 초상화를 전시하지 않는 거야?” 헨리 경이 물었다.
“의도치 않게 이 모든 예술적 우상 숭배를 그 속에 담아버렸기 때문이야. 물론 그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은 없어.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 앞으로도 절대 알게 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세상이 이를 짐작할지도 몰라. 난 내 영혼을 그들의 얕은 호기심 앞에 드러내고 싶지 않아. 내 마음을 그들의 현미경 아래 놓고 싶지 않아. 해리, 그 그림에는 너무 많은 내 자신이 담겨 있어—너무 많은 내 자신이!”
“시인들은 네처럼 꼼꼼하지 않아. 그들은 열정이 출판에 얼마나 유용한지 알지. 요즘은 상한 마음이 여러 판을 거듭해.”
“난 그들이 그래서 싫어.” 홀워드가 외쳤다. “예술가는 아름다운 것들을 창조해야 해. 하지만 자신의 삶을 그 속에 넣어서는 안 돼. 우리는 예술을 자서전의 한 형태로 다루는 시대에 살고 있어. 우리는 추상적인 미의 감각을 잃어버렸어. 언젠가 난 세상에 그게 무엇인지 보여줄 거야. 그래서 세상은 절대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화를 보지 못할 거야.”
“베이즐, 넌 틀렸어. 하지만 난 너와 논쟁하지 않을게. 오직 지적으로 길을 잃은 사람들만이 논쟁을 해. 말해봐, 도리안 그레이는 너를 매우 좋아하니?”
화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나를 좋아해.” 그가 대답했다.
잠시 후 그가 말했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는 걸 알아요. 물론 내가 그를 몹시 추켜세우긴 하지만요. 그에게 곧 후회할 말들을 하는 데서 이상한 쾌감을 느껴요. 대체로 그는 나를 매력적으로 대해주고, 우리는 작업실에 앉아 천가지 이야기를 나누죠. 하지만 가끔 그는 끔찍하게 무신경해서 내게 상처 주는 걸 즐기는 것 같아요. 그럴 때면 해리, 내가 온 영혼을 그에게 주었는데 그는 그걸 마치 옷깃에 꽂을 꽃이나 허영심을 만족시킬 장식품, 한여름의 장신구처럼 다루는 것 같아 괴로워요.”
“여름날은 길잖아, 베이즐.” 헨리 경이 중얼거렸다. “아마 네가 먼저 지쳐. 생각만 해도 슬프지만, 천재성은 미모보다 오래가는 건 분명해. 그래서 우리 모두 지나치게 배우려고 애쓰는 거지.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영원히 남는 무언가를 원하잖아. 그래서 우리는 쓰레기 같은 지식과 잡다한 사실들로 머리를 채우고, 어리석게도 자리를 지키려고 하는 거야. 철저히 박식한 사람, 그것이 현대의 이상이지. 그리고 철저히 박식한 사람의 머리는 끔찍해. 마치 진열된 물건마다 제값보다 비싸게 매겨진 골동품 가게 같아. 그래도 넌 먼저 지쳐. 언젠가 네 친구를 보면 그의 균형이 맞지 않아 보이거나 색깔이 마음에 안 들 거야. 속으로 그를 비난하고, 그가 너에게 나쁘게 대했다고 생각할 거야. 다음에 그가 찾아오면 완전히 냉담하고 무관심할 거야. 그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될 거야. 네가 변할 테니까. 네가 나에게 말한 건 꽤 로맨틱해, 예술의 로맨스라고 할 수 있겠지. 그리고 어떤 종류의 로맨스든 가장 나쁜 점은 사람을 전혀 로맨틱하지 않게 만든다는 거야.”
“해리, 그런 말 하지 마. 내가 살아있는 한, 도리안 그레이의 성격은 나를 지배할 거야. 넌 내 감정을 이해할 수 없어. 너무 자주 변하니까.”
“아, 내 사랑하는 베이즐, 그게 바로 내가 그걸 느낄 수 있는 이유야. 충실한 사람들은 사랑의 사소한 면만 알지. 변덕스러운 사람들이야말로 사랑의 비극을 아는 법이지.” 헨리 경은 우아한 은제 케이스에서 성냥을 켜고, 자의식 넘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마치 한 문장으로 세상을 요약한 것처럼 보였다. 담쟁이 잎의 녹색 래커 위로 참새가 짹짹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푸른 구름 그림자가 제비처럼 잔디 위를 쫓아다녔다. 정원은 얼마나 즐거웠던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감정은 얼마나 즐거웠던가! 그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즐거웠다. 자신의 영혼과 친구들의 열정, 그것들이야말로 인생에서 매혹적인 것들이었다. 그는 베이즐 홀워드와 너무 오래 머물러 놓친 지루한 점심 식사를 조용히 즐겁게 상상했다. 고모에게 갔다면 분명 거기서 굿바디 경을 만났을 것이고, 대화는 온통 가난한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것과 모범 숙소의 필요성에 관한 것이었을 것이다. 각 계급은 자신들의 삶에서 필요 없는 미덕의 중요성을 설교했을 것이다. 부자들은 절약의 가치를 말하고, 게으른 자들은 노동의 존엄성에 대해 열변을 토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피한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고모 생각을 하다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는 홀워드에게 돌아서서 말했다. “내 사랑하는 친구, 방금 기억났어.”
“무엇을 기억했니, 해리?”
“도리안 그레이라는 이름을 어디서 들었는지 말이야.”
“어디서였지?” 홀워드가 살짝 찌푸린 채 물었다.
“그렇게 화내지 마, 베이즐. 내 고모인 애거사 부인 집에서였어. 그녀는 동부 런던에서 도와줄 놀라운 청년을 발견했다며, 그의 이름이 도리안 그레이라고 말했어. 물론 그가 잘생겼다는 말은 전혀 하지 않았지. 여자들은 외모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해. 적어도 착한 여자들은 그래. 그녀는 그가 매우 진지하고 아름다운 성품을 가졌다고 했어. 나는 즉시 안경을 쓰고 기름진 머리에 끔찍하게 주근깨 많은, 커다란 발로 돌아다니는 생물을 상상했지. 그가 네 친구라는 걸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를 알지 못했던 게 정말 다행이야, 해리.”
“왜?”
“난 네가 그를 만나길 원하지 않아.”
“네가 그를 만나길 원하지 않는다고?”
“그래.”
“도리안 그레이 씨가 스튜디오에 와 계십니다, 나리.” 집사가 정원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이제 나를 소개해 줘야겠군.” 헨리 경이 웃으며 외쳤다.
화가는 햇빛 속에서 눈을 깜빡이는 하인에게 고개를 돌렸다. “파커, 그레이 씨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해. 곧 들어가겠다고 전해.” 그 남자는 인사하고 정원 길을 따라 올라갔다.
그러고 나서 그는 헨리 경을 바라보았다. “도리안 그레이는 내 가장 소중한 친구야.” 그가 말했다. “그는 단순하고 아름다운 성품을 가졌어. 네 고모가 그에 대해 말한 것은 모두 옳아. 그를 망치지 마. 그에게 영향을 주려 하지 마. 네 영향력은 나쁠 거야. 세상은 넓고 그 안에는 놀라운 사람들이 많아. 내 예술에 매력을 주는 유일한 사람을 내게서 빼앗지 마. 내 예술가로서의 인생은 그에게 달려 있어. 명심해, 해리, 나는 널 믿어.” 그는 아주 천천히 말했고, 그 말은 거의 자기 의지와는 반대로 짜내어진 것 같았다.
“넌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헨리 경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는 홀워드의 팔을 잡고 그를 거의 집 안으로 이끌었다.
제 2장
그들이 들어서자 도리안 그레이가 보였다. 그는 피아노 앞에 등을 돌린 채 앉아 슈만의 ‘숲의 정경’ 악보를 넘기고 있었다. “이것들 빌려줘야겠어, 베이즐.” 그가 외쳤다. “배우고 싶어. 정말 매력적이야.”
“그건 전적으로 오늘 네가 어떻게 포즈를 취하느냐에 달렸어, 도리안.”
“오, 저는 포즈 취하는 게 지겨워요. 그리고 실물 크기의 초상화는 원하지 않아요.” 소년이 고집스럽고 변덕스럽게 음악 의자를 빙글 돌리며 대답했다. 헨리 경을 보자 그의 뺨에 잠시 홍조가 돌았고, 그는 벌떡 일어났다. “제가 실례했군요, 베이즐. 누가 같이 있는 줄 몰랐어요.”
“이쪽은 헨리 워튼 경이야, 도리안. 내 옥스퍼드 시절 오랜 친구지. 방금 네가 얼마나 훌륭한 모델인지 말하고 있었는데, 이제 넌 모든 걸 망쳐버렸구나.”
“그레이 씨, 당신을 만나 뵙게 되어 기쁨이 전혀 손상되지 않았습니다,” 헨리 워튼 경이 앞으로 나서며 손을 내밀며 말했다. “제 고모께서 당신에 대해 자주 말씀하셨죠. 당신은 고모의 총애를 받는 분이자, 제가 걱정하기로는 고모의 희생자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현재 저는 애거사 부인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습니다,” 도리안이 우스운 참회의 표정으로 대답했다. “지난 화요일에 고모님과 함께 화이트채플의 한 클럽에 가기로 약속했는데 정말 깜빡 잊어버렸거든요. 우리는 이중주를 연주하기로 했었죠. 아마 3중주였을 거예요. 고모님이 저에게 뭐라고 하실지 모르겠어요. 너무 무서워서 연락도 못 하고 있습니다.”
“오, 내가 고모와 당신 사이를 화해시켜 드리죠. 고모는 당신에게 완전히 빠져 계시거든요. 그리고 당신이 거기 없었다고 해서 실제로 큰 문제가 되진 않았을 거예요. 청중들은 아마도 이중주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애거사 고모가 피아노 앞에 앉으면 두 사람 몫의 소리를 내거든요.”
“그건 고모님께 너무 모진 말이고, 저에게도 그리 좋은 말은 아니군요,” 도리안이 웃으며 대답했다.
헨리 워튼 경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분명 놀랍도록 잘생겼다. 섬세하게 휘어진 진홍빛 입술, 솔직한 푸른 눈, 곱슬거리는 금빛 머리카락. 그의 얼굴에는 사람들이 한눈에 믿음을 주는 무언가가 있었다. 거기엔 청춘의 모든 솔직함과 함께 청춘의 열정적인 순수함이 있었다. 그가 세상의 때를 타지 않고 자신을 지켜왔다는 것이 느껴졌다. 베이즐 홀워드가 그를 숭배한 것도 당연했다.
“당신은 자선 사업을 하기에는 너무 매력적이에요, 그레이 씨. 훨씬 더 매력적이죠.” 그리고 헨리 워튼 경은 소파에 몸을 던지며 담배 케이스를 열었다.
화가는 색을 섞고 붓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그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고, 헨리 워튼 경의 마지막 말을 듣자 그를 힐끗 보더니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해리, 오늘 이 그림을 끝내고 싶어. 내가 당신에게 가달라고 하면 너무 무례한 걸까요?”
헨리 워튼 경은 미소 지으며 도리안 그레이를 바라보았다. “제가 가야 할까요, 그레이 씨?” 그가 물었다.
“오, 제발 가지 마세요, 헨리 경. 베이즐이 또 심술궂은 기분에 빠진 것 같아요. 그가 심술을 부리면 저는 견딜 수가 없거든요. 게다가, 제가 왜 자선 사업을 하면 안 되는지 당신이 말해주셨으면 해요.”
“그것에 대해 말씀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레이 씨. 너무 지루한 주제라 진지하게 이야기해야 할 테니까요. 하지만 이제 당신이 저더러 머물러 달라고 하셨으니 절대 가지 않겠습니다. 당신 정말 괜찮겠어요, 베이즐? 당신은 종종 모델들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게 좋다고 말했잖아요.”
홀워드는 입술을 깨물었다. “도리안이 원한다면, 물론 당신이 머물러야겠죠. 도리안의 변덕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에게 법이나 다름없으니까요.”
헨리 워튼 경은 모자와 장갑을 집어 들었다. “당신 말이 너무 강압적이군요, 베이즐. 하지만 난 가봐야겠어. 오를레앙에서 한 사람과 만나기로 약속했거든. 안녕히, 그레이 씨. 언젠가 오후에 커존 가로 놀러 오세요. 나는 거의 항상 5시에 집에 있습니다. 오실 때 미리 편지 좀 주세요. 당신을 놓치면 아쉬울 것 같아요.”
“베이즐,” 도리안 그레이가 외쳤다. “헨리 워튼 경이 가신다면 저도 가겠어요. 당신은 그림 그릴 때 입을 열지 않잖아요. 그리고 무대에 서서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도 너무 지루해요. 그에게 머물러 달라고 하세요. 꼭 그래야 해요.”
“도리안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머물러 주게, 해리,” 홀워드가 그의 그림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이야, 난 일할 때 말을 하지 않고 듣지도 않아. 그래서 불쌍한 모델들에게 너무 지루할 거야. 제발 머물러 주게.”
“그럼 오를레앙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은 어떡하지?”
화가가 웃었다. “아무 문제 없을 거야. 다시 앉아, 해리. 그리고 도리안, 이제 무대로 올라가 봐. 너무 많이 움직이거나 헨리 경이 하는 말에 신경 쓰지 마. 그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친구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거든.”
도리안 그레이는 젊은 그리스 순교자의 표정을 하고 무대에 올라갔다. 헨리 경을 향해 약간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베이즐과는 너무나 달랐다. 둘은 멋진 대조를 이뤘다. 헨리 경은 정말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잠시 후 도리안이 그에게 물었다. “헨리 경, 당신은 정말로 나쁜 영향력을 가지고 있나요? 베이즐이 말하는 것처럼 나쁜가요?”
“좋은 영향력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레이 씨. 모든 영향력은 비도덕적입니다.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말이죠.”
“왜죠?”
“왜냐하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자신의 영혼을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자연스러운 생각을 하지 않고, 자신의 자연스러운 열정으로 불타지 않습니다. 그의 덕목은 그에게 실제적이지 않습니다. 그의 죄악들, 만약 죄악이란 게 있다면, 빌려온 것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음악의 메아리가 되고, 자신을 위해 쓰여지지 않은 역할의 배우가 됩니다. 인생의 목적은 자기 발전입니다. 자신의 본성을 완벽하게 실현하는 것, 그것이 우리 각자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을 두려워합니다. 그들은 가장 중요한 의무, 즉 자신에 대한 의무를 잊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자선을 베풉니다. 그들은 배고픈 자를 먹이고 거지에게 옷을 입힙니다. 하지만 그들 자신의 영혼은 굶주리고 벌거벗은 채로 있습니다. 우리 인종에서 용기가 사라졌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것을 진정으로 가진 적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도덕의 기초인 사회에 대한 공포, 종교의 비밀인 신에 대한 공포, 이 두 가지가 우리를 지배합니다. 그렇지만…”
“도리안, 착한 아이처럼 고개를 오른쪽으로 조금만 더 돌려봐.” 화가가 작업에 몰두한 채 말했다. 그는 전에 본 적 없는 표정이 소년의 얼굴에 나타났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헨리 워튼 경이 낮고 음악적인 목소리로 계속했다. 그는 항상 그랬듯이, 심지어 이튼 시절에도 그랬듯이 우아한 손짓을 하며 말했다. “내 생각에는 만약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완전하고 온전하게 살아간다면, 모든 감정에 형태를 부여하고, 모든 생각에 표현을 주고, 모든 꿈을 현실로 만든다면, 세상은 새로운 기쁨의 충동을 얻어 중세의 모든 병폐를 잊고 헬레니즘의 이상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어쩌면 헬레니즘의 이상보다 더 아름답고 풍성한 무언가로 말이죠. 하지만 우리 중 가장 용감한 사람도 자기 자신을 두려워합니다. 야만인의 자기 절단이 종교적 자기 부정이라는 비극적 형태로 현대에 남아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망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부의 대가를 치릅니다. 억누르려고 애쓰는 모든 충동은 마음속에서 자라나 우리를 중독시킵니다. 육체는 한 번 죄를 짓고 나면 그 죄와 용서받습니다. 행위는 정화의 한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면 쾌락의 기억이나 후회의 사치만이 남을 뿐입니다. 유혹을 떨쳐버리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저항하면 영혼이 그 괴물 같은 법이 괴물스럽고 불법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린, 자신이 금지한 것들을 갈망하며 병들어갑니다. 세상의 위대한 사건들은 두뇌에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세상의 위대한 죄악들 역시 두뇌에서, 오직 두뇌에서만 일어납니다. 그레이 씨, 당신은 장미빛 젊음과 순백의 소년 시절을 지나며 두려워하게 만든 열정들, 공포로 가득 채운 생각들, 그리고 단순히 기억만으로도 당신의 뺨을 수치스럽게 물들일 수 있는 깨어있는 꿈과 잠든 꿈들을 가졌소—”
“그만!” 도리안 그레이가 말을 더듬었다. “그만하세요! 당신이 날 혼란스럽게 해요.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당신에게 할 말이 있는데 찾을 수가 없어요. 말하지 마세요.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아니, 차라리 생각하지 않게 해주세요.”
그는 거의 10분 동안 그 자리에 서서 꼼짝도 않고 입술을 반쯤 벌린 채 이상하게 빛나는 눈으로 서 있었다. 그는 완전히 새로운 영향력이 자신 안에서 작용하고 있음을 어렴풋이 의식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정말로 자신으로부터 온 것처럼 느껴졌다. 베이즐의 친구가 그에게 한 몇 마디 말—의심할 여지없이 우연히, 그리고 고의적인 역설을 담아 한 말—이 전에 한 번도 건드려지지 않았던 어떤 비밀의 현을 건드렸고, 그는 지금 그것이 이상한 맥박으로 진동하고 떨리는 것을 느꼈다.
음악이 그를 그렇게 흔들어놓은 적이 있었다. 음악은 그를 여러 번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음악은 분명하지 않았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안에 또 다른 혼돈을 만들어냈다. 말! 단순한 말들! 그것들이 얼마나 끔찍한가! 얼마나 분명하고, 생생하고, 잔인한가! 그것들로부터 도망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것들 안에는 얼마나 미묘한 마법이 있는가! 그것들은 형태 없는 것들에 형태를 부여하고, 비올라나 리ュ트의 소리만큼이나 달콤한 자신만의 음악을 가진 것 같았다. 단순한 말들! 말들만큼 실제적인 것이 있었던가?
그렇다. 그의 소년 시절에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이 있었다. 이제 그는 그것들을 이해했다. 삶이 갑자기 그에게 불타는 듯한 색채를 띠었다. 그는 자신이 불 속을 걸어왔던 것 같았다. 왜 그는 그것을 알지 못했을까?
헨리 경은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지켜보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야 할 정확한 심리적 순간을 알고 있었다. 그는 강렬한 흥미를 느꼈다. 그는 자신의 말이 만들어낸 갑작스러운 인상에 놀랐고, 16살 때 읽었던 책, 그가 전에 알지 못했던 많은 것을 알려준 책을 기억하며, 도리안 그레이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그는 단지 화살을 공중에 쏘아올렸을 뿐이었다. 과연 그것이 목표물을 맞혔을까? 이 청년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홀워드는 놀라운 대담한 터치로 계속 그림을 그렸다. 그것은 예술에서, 적어도 힘에서만 오는 진정한 세련미와 완벽한 섬세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침묵을 의식하지 못했다.
“베이즐, 난 서 있는 게 지겹네.” 도리안 그레이가 갑자기 외쳤다. “밖에 나가서 정원에 앉아있어야겠어. 여기 공기가 답답해.”
“내 친구여, 정말 미안해. 그림을 그릴 땐 다른 건 생각할 수가 없어. 하지만 네가 전에 없이 잘 서 있었어. 너는 완벽하게 정지해 있었지. 그리고 내가 원하던 효과를 잡아냈어—반쯤 벌어진 입술과 눈의 밝은 표정. 해리가 네게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너에게 가장 멋진 표정을 갖게 만든 건 확실해. 아마 그가 너에게 칭찬을 했겠지. 그가 하는 말은 한 마디도 믿지 마.”
“그는 분명 내게 칭찬을 하지 않았어요. 아마도 그래서 그가 말한 것을 하나도 믿지 않는 이유일 거예요.”
“넌 그걸 다 믿고 있다는 걸 알잖아.” 헨리 경이 꿈결 같은 나른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난 너와 함께 정원으로 나가겠어. 스튜디오가 끔찍하게 더워. 베이즐, 우리에게 차가운 음료를 좀 주겠나, 딸기가 들어간 것으로?”
“물론이지, 해리. 벨을 누르면 파커가 올 테니 그에게 말하마. 난 이 배경을 더 손봐야 해서 나중에 너희와 합류하겠어. 도리안을 너무 오래 붙잡지 말아줘. 난 오늘처럼 그림 그리기 좋은 상태는 처음이야. 이것은 내 걸작이 될 거야. 지금 모습 그대로 이미 걸작이지.”
헨리 경은 정원으로 나가 도리안 그레이가 커다랗고 시원한 라일락 꽃송이에 얼굴을 파묻고 열병에 걸린 듯 그 향기를 마시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그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당신이 그렇게 하는 것이 정말 맞아요.” 그가 중얼거렸다.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감각뿐이고, 감각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영혼뿐이에요.”
그 청년은 소스라치며 물러섰다. 그는 모자를 쓰지 않았고, 나뭇잎들이 그의 반항적인 곱슬머리를 헝클어뜨리고 금빛 실들을 모두 엉키게 했다. 그의 눈에는 두려움의 표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갑자기 깨어났을 때 보이는 것과 같았다. 그의 섬세하게 조각된 콧구멍이 떨렸고, 어떤 숨겨진 신경이 그의 입술의 진홍빛을 흔들어 떨리게 만들었다.
“그래요,” 헨리 경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것이 인생의 위대한 비밀 중 하나예요—감각을 통해 영혼을 치유하고, 영혼을 통해 감각을 치유하는 것 말이에요. 당신은 놀라운 창조물이에요.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알고 있고, 당신이 알고 싶어 하는 것보다는 덜 알고 있어요.”
도리안 그레이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는 자신 옆에 서 있는 키 크고 우아한 청년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낭만적이고 올리브색 얼굴과 지친 표정이 그를 흥미롭게 만들었다. 그의 낮고 나른한 목소리에는 절대적으로 매혹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그의 차갑고 하얗고 꽃 같은 손조차도 이상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손은 말할 때 음악처럼 움직였고, 그들만의 언어를 가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그를 두려워했고, 두려워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왜 낯선 사람이 와서 그에게 자신을 드러내게 했을까? 그는 베이즐 홀워드를 몇 달 동안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우정은 그를 전혀 변화시키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그의 삶에 들어와 인생의 신비를 드러낸 것 같았다. 그러나 두려워할 것이 뭐가 있을까? 그는 학생도 소녀도 아니었다. 두려워하는 것은 터무니없었다.
“그늘로 가서 앉읍시다.” 헨리 경이 말했다. “파커가 음료를 가져왔어요.”
“음료를 가져다주고, 이 눈부신 빛 속에 더 오래 있으면 완전히 망가질 거예요. 베이즐이 다시는 당신을 그리지 못할 거예요. 햇볕에 그을리면 안 돼요. 어울리지 않을 거예요.”
“무슨 상관이야?” 도리안 그레이가 웃으며 말했다. 그는 정원 끝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레이 씨에겐 모든 것이 중요할 거예요.”
“왜죠?”
“당신은 가장 놀라운 젊음을 가졌기 때문이에요. 젊음은 가질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이죠.”
“저는 그렇게 느끼지 않아요, 헨리 경.”
“아니, 지금은 그렇게 느끼지 못할 거예요. 언젠가 당신이 늙고 주름지고 못생겨졌을 때, 생각이 이마에 선을 그리고 정념이 입술에 추한 불꽃을 새겼을 때, 당신은 그것을 느낄 거예요. 무섭도록 느낄 거예요. 지금 당신은 어디를 가든 세상을 매료시키죠. 항상 그럴까요? … 당신은 놀랍도록 아름다운 얼굴을 가졌어요, 그레이 씨. 찡그리지 마세요. 정말 그래요. 아름다움은 천재성의 한 형태예요. 사실 천재성보다 더 높은 거죠. 설명이 필요 없으니까요. 그것은 세상의 위대한 사실들 중 하나예요. 햇빛이나 봄, 또는 달이라 부르는 은빛 조개가 어두운 물에 비치는 것처럼 말이에요. 의심할 여지가 없죠. 그것은 신성한 주권을 가지고 있어요. 그것을 가진 사람들을 왕자로 만들죠. 웃으시나요? 아! 그것을 잃었을 때 당신은 웃지 않을 거예요…. 사람들은 때때로 아름다움이 피상적일 뿐이라고 말하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생각만큼 피상적이진 않아요. 내게 아름다움은 경이로움 중의 경이로움이에요.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 사람들만이 얕은 사람들이죠. 세상의 진정한 신비는 보이는 것이지,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요, 그레이 씨, 신들은 당신에게 관대했어요. 하지만 신들이 주는 것은 빨리 가져가기도 해요. 당신에겐 정말로, 완벽하게, 충만하게 살 수 있는 몇 년밖에 없어요. 젊음이 가면 아름다움도 함께 갈 거예요. 그러면 당신은 갑자기 승리할 것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거예요. 아니면 과거의 기억이 더 쓰라리게 만드는 하찮은 승리에 만족해야 할 거예요. 매달 그것이 기울어갈수록 당신은 무언가 끔찍한 것에 더 가까워질 거예요. 시간은 당신을 질투하고, 당신의 백합과 장미를 파괴할 거예요. 당신은 창백해지고, 볼이 홀쭉해지고, 눈이 흐려질 거예요. 당신은 끔찍하게 고통받을 거예요…. 아! 젊음이 있을 때 그것을 실현하세요. 지루한 것을 들으며, 희망 없는 실패를 개선하려 하거나, 무지하고 평범하고 저속한 사람들에게 인생을 바치며 당신 날의 황금을 낭비하지 마세요. 이것들은 우리 시대의 병든 목표이자 거짓된 이상이에요. 살아요! 당신 안에 있는 놀라운 인생을 살아요! 아무것도 놓치지 마세요. 항상 새로운 감각을 찾으세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마세요…. 새로운 쾌락주의, 그것이 우리 세기가 원하는 거예요. 당신이 그것의 가시적 상징이 될 수 있어요. 당신의 개성으로 할 수 없는 일은 없어요. 세상은 한 철 동안 당신의 것이에요…. 당신을 만난 순간 나는 당신이 진정 누구인지, 진정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전혀 모른다는 것을 알았어요. 당신에게는 나를 매혹시키는 것이 너무 많아서 당신에 대해 뭔가 말해줘야 한다고 느꼈어요. 당신이 낭비된다면 얼마나 비극적일까 생각했죠. 당신의 젊음이 지속될 시간이 너무 짧아요, 너무 짧아요. 흔한 언덕의 꽃들은 시들지만 다시 피어나요. 라부르넘은 내년 6월에도 지금처럼 노랗게 필 거예요. 한 달 후면 클레마티스에 보라색 별들이 피어날 거고, 해마다 그 잎사귀들의 초록 밤에서 보라색 별들을 품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는 결코 젊음을 되찾지 못해요. 20대에 우리 안에서 뛰던 기쁨의 맥박은 느려지죠. 우리의 사지는 약해지고, 감각은 무뎌져요. 우리는 추한 꼭두각시로 퇴화하고, 우리가 너무 두려워했던 열정의 기억과 우리가 굴복할 용기가 없었던 절묘한 유혹들에 사로잡혀요. 젊음! 젊음! 세상에는 젊음 외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도리안 그레이는 눈을 크게 뜨고 경이로워하며 들었다. 라일락 가지가 그의 손에서 미끄러져 자갈 위로 떨어졌다. 털복숭이 벌 한 마리가 와서 잠시 그 주위를 윙윙거렸다. 그러더니 작은 꽃송이들의 타원형 별 모양 덩어리 위를 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는 중요한 일들이 우리를 두렵게 하거나, 우리가 표현할 수 없는 새로운 감정에 휩싸이거나, 우리를 놀라게 하는 어떤 생각이 갑자기 두뇌를 점령하고 항복을 요구할 때 우리가 발전시키려고 노력하는 사소한 것들에 대한 이상한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지켜보았다. 잠시 후 벌이 날아갔다. 그는 그것이 티리안 나팔꽃의 얼룩진 트럼펫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꽃이 떨리더니 가볍게 앞뒤로 흔들렸다.
갑자기 화가가 스튜디오 문에 나타나 그들에게 들어오라는 짧은 신호를 보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기다리고 있어요.” 그가 외쳤다. “들어오세요. 빛이 완벽해요. 음료도 가져올 수 있어요.”
그들은 일어나 함께 산책로를 따라 내려갔다. 녹색과 흰색의 나비 두 마리가 그들 옆으로 날아갔고, 정원 모퉁이의 배나무에서 찌르레기 한 마리가 노래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저를 만나서 기쁘죠, 그레이 씨?” 헨리 경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지금은 기뻐요. 항상 기쁠지 궁금하네요.”
“항상! 끔찍한 말이야. 소름이 끼쳐. 여자들은 그 말을 너무 좋아해. 영원히 지속되는 로맨스를 꿈꾸다가 망쳐버리지. 무의미한 말이기도 하고. 변덕과 평생의 열정의 차이점은 변덕이 조금 더 오래 간다는 것뿐이야.”
그들이 스튜디오로 들어서자, 도리안 그레이는 헨리 경의 팔에 손을 얹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우정은 변덕이 되게 해요.” 그가 중얼거렸다. 자신의 대담함에 얼굴을 붉히며. 그리고 단상으로 올라가 자세를 잡았다.
헨리 경은 큰 등나무 안락의자에 몸을 던지고 그를 지켜보았다. 캔버스 위를 휩쓰는 붓의 움직임만이 고요를 깨는 유일한 소리였다. 가끔 홀워드가 뒤로 물러나 자신의 작품을 멀리서 바라볼 때를 제외하고는. 열린 문을 통해 들어오는 비스듬한 빛줄기 속에서 먼지가 춤추며 황금빛을 띠었다. 장미들의 짙은 향기가 모든 것을 감싸는 듯했다.
약 15분이 지나자 홀워드는 그림 그리기를 멈추고 도리안 그레이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림을 바라보며 자신의 거대한 붓 중 하나의 끝을 깨물고 눈썹을 찌푸렸다. “다 됐어
“끝났어!” 그가 마침내 외쳤다. 그리고 몸을 숙여 캔버스의 왼쪽 아래 모서리에 긴 주홍색 글씨로 자신의 이름을 썼다.
헨리 워튼 경이 다가와 그림을 살펴보았다. 그것은 확실히 놀라운 예술 작품이었고, 놀라운 닮음새이기도 했다.
“축하해, 자네 정말 대단해.” 그가 말했다. “이건 현대의 가장 훌륭한 초상화야. 도리안, 이리 와서 자네 자신을 한번 봐.”
소년은 마치 어떤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흠칫 놀랐다.
“정말 다 끝난 건가요?” 그가 중얼거리며 받침대에서 내려왔다.
“완전히 끝났어.” 화가가 말했다. “자네 오늘 정말 훌륭하게 모델을 서줬어. 정말 고마워.”
“그건 전적으로 내 덕분이지.” 헨리 워튼 경이 끼어들었다. “그렇지 않나, 도리안?”
도리안은 대답하지 않고 무심코 자신의 초상화 앞으로 가서 그것을 향해 돌아섰다. 그림을 보자 그는 뒤로 물러섰고, 잠시 그의 뺨이 기쁨으로 상기되었다. 그의 눈에 기쁨의 빛이 스쳤다. 마치 처음으로 자신을 인식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거기 움직이지 않고 경이로움에 빠져 서 있었다. 홀워드가 자신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희미하게 의식했지만, 그 말의 의미는 알아채지 못했다.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이 계시처럼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전에는 그것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베이즐 홀워드의 찬사는 그에게 단순히 우정의 매력적인 과장으로만 여겨졌다. 그는 그 말을 들었고, 웃었고, 잊었다. 그것들은 그의 본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러다가 헨리 워튼 경이 와서 청춘에 대한 기이한 찬가를 불렀고, 그 짧음에 대한 끔찍한 경고를 했다. 그것이 당시에는 그를 흔들어 놓았고, 지금 자신의 아름다움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서 있자니, 그 묘사의 완벽한 실재가 그를 스쳐 지나갔다. 그래, 언젠가는 그의 얼굴이 주름지고 시들어 버릴 것이고, 그의 눈은 흐릿해지고 색을 잃을 것이며, 그의 체형의 우아함은 깨지고 일그러질 것이다. 그의 입술에서 주홍빛이 사라지고 그의 머리카락에서 황금빛이 빠져나갈 것이다. 그의 영혼을 만들어낼 삶이 그의 육체를 망가뜨릴 것이다. 그는 끔찍하고, 추하고, 괴상해질 것이다.
이를 생각하자 날카로운 고통의 찌르는 듯한 느낌이 칼처럼 그를 관통해 그의 섬세한 본성의 모든 섬유를 떨게 했다. 그의 눈은 자수정빛으로 깊어졌고, 눈앞에 눈물의 안개가 끼었다. 그는 마치 얼음 같은 손이 그의 심장을 짓누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음에 들지 않나?” 홀워드가 마침내 외쳤다. 소년의 침묵에 약간 상처를 받아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물론 마음에 들어 할 거야.” 헨리 워튼 경이 말했다. “누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겠어? 이건 현대 예술의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야. 자네가 원하는 것은 뭐든 줄 테니 이걸 가져야겠어.”
“이건 내 소유가 아니야, 해리.”
“그럼 누구의 소유지?”
“물론 도리안의 것이지.” 화가가 대답했다.
“그는 정말 운이 좋군.”
“얼마나 슬픈 일인가!” 도리안 그레이가 여전히 자신의 초상화에 눈을 고정한 채 중얼거렸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나는 늙고, 끔찍하고, 무서워질 거야. 하지만 이 그림은 언제나 젊음을 유지할 거야. 이 특별한 6월의 날보다 더 늙지 않을 거야… 만약 반대였다면 좋았을 텐데! 내가 항상 젊음을 유지하고 그림이 늙어간다면! 그것을 위해서라면… 그것을 위해서라면 난 모든 걸 바칠 거야! 그래,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아끼지 않을 거야! 난 그것을 위해 내 영혼을 바칠 거야!”
“그런 약속은 자네에겐 별로 좋지 않을 텐데, 베이즐.” 헨리 워튼 경이 웃으며 말했다. “자네 작품에겐 꽤나 가혹한 일이 될 거야.”
“난 강하게 반대할 거야, 해리.” 홀워드가 말했다.
도리안 그레이는 돌아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럴 줄 알았어, 베이즐. 자넨 자네의 예술을 친구들보다 더 사랑하지. 난 자네에게 녹색 청동상만큼의 의미도 없어. 아마 그만큼도 안 될 거야, 감히 말하건대.”
화가는 놀라서 그를 응시했다. 도리안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너무나 어울리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는 꽤 화가 난 것 같았다. 그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고 뺨은 달아올라 있었다.
“그래,”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난 자네에게 자네의 상아로 만든 헤르메스나 은으로 만든 파우누스보다 덜 중요해. 자넨 그것들을 항상 좋아할 거야. 나를 얼마나 오래 좋아할까? 내 첫 번째 주름이 생길 때까지겠지. 이제 알겠어. 사람이 자신의 외모를 잃을 때, 그게 무엇이든 간에, 모든 것을 잃는다는 걸. 자네의 그림이 그걸 가르쳐줬어. 헨리 워튼 경의 말이 완전히 맞아. 청춘이야말로 가질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이야.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난 자살할 거야.”
홀워드는 창백해지며 그의 손을 붙잡았다. “도리안! 도리안!” 그가 외쳤다. “그렇게 말하지 마. 난 자네 같은 친구를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자넨 물질적인 것들에 질투하지 않잖아? 자넨 그 어떤 것보다도 훌륭해!”
“난 아름다움이 죽지 않는 모든 것들을 질투해. 내가 그린 자네의 초상화를 질투해. 왜 그것은 내가 잃어야 할 것들을 간직하고 있는 거지? 매 순간이 내게서 무언가를 빼앗아가고 그것에게 무언가를 줘. 오, 반대였다면 좋았을 텐데! 그림이 변하고 내가 항상 지금 이대로일 수 있다면! 왜 자넨 그걸 그렸지? 언젠가 그것은 날 조롱할 거야… 끔찍하게 조롱할 거야!” 뜨거운 눈물이 그의 눈에 고였다. 그는 손을 뿌리치고 소파에 몸을 던져 얼굴을 쿠션에 파묻었다. 마치 기도하는 것처럼.
“이건 자네 짓이야, 해리.” 화가가 쓰게 말했다.
워튼 경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게 바로 진짜 도리안 그레이야. 그게 전부지.”
“아니야.”
“만약 아니라면, 내가 무슨 상관이지?”
“자네가 떠나라고 했을 때 떠났어야 했어.” 그가 중얼거렸다.
“내가 부탁했을 때 남은 거야.” 헨리 워튼 경이 대답했다.
“해리, 난 내 가장 친한 두 친구와 한꺼번에 다툴 순 없어. 하지만 너희 둘이 내가 지금까지 한 가장 훌륭한 작품을 혐오하게 만들었어. 난 그걸 파괴할 거야. 그게 뭐라고? 그저 캔버스와 물감일 뿐이야. 난 그것이 우리 셋의 삶을 가로질러 망치는 걸 용납하지 않을 거야.”
도리안 그레이는 베개에서 황금빛 머리를 들어올렸다. 창백한 얼굴과 눈물에 젖은 눈으로 그가 높은 커튼이 드리워진 창문 아래에 놓인 소나무 그림 탁자로 걸어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가 거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그의 손가락이 주석 튜브와 마른 붓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래, 긴 팔레트 나이프를 찾고 있었다. 유연한 강철 날을 가진. 마침내 그는 그것을 찾았다. 그는 캔버스를 찢으려고 했다.
흐느끼며 소년은 소파에서 뛰어올랐다. 그리고 홀워드에게 달려가
홀워드는 그의 손에서 칼을 빼앗아 작업실 끝으로 던졌다. “하지 마, 베이즐, 하지 마!” 그가 외쳤다. “그건 살인이야!”
“내 작품을 마침내 알아봐 주셔서 기쁘군요, 도리안.” 화가는 놀라움에서 벗어나자 차갑게 말했다. “당신이 그럴 줄은 몰랐어요.”
“알아보다니요? 난 그걸 사랑해요, 베이즐. 그건 내 일부예요. 그걸 느껴요.”
“좋아요, 당신이 마르면 바니시를 칠하고 액자에 넣어 집으로 보내드리죠. 그러면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그는 방을 가로질러 가 차를 부르는 종을 울렸다. “물론 차를 드시겠죠, 도리안? 해리도 마시겠지? 아니면 그런 단순한 즐거움은 싫어하나?”
“난 단순한 즐거움을 숭배해요.” 헨리 경이 말했다. “그것들은 복잡한 사람의 마지막 피난처죠. 하지만 난 무대 위가 아니면 장면을 좋아하지 않아요. 당신들 둘 다 얼마나 우스운 친구들인지! 인간을 이성적 동물이라고 정의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궁금하군요. 그건 너무 성급한 정의였어요. 인간은 많은 것이지만, 이성적이진 않아요. 그렇지 않다는 게 다행이에요. 그래도 난 당신들이 그림 때문에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베이즐, 그걸 내게 주는 게 낫겠어요. 이 바보 같은 소년은 정말로 그걸 원하지 않아요. 하지만 난 정말 원해요.”
“네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줘버리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베이즐!” 도리안 그레이가 외쳤다. “그리고 난 사람들이 날 바보 소년이라고 부르는 걸 용납하지 않아.”
“도리안, 당신도 알다시피 그 그림은 당신 거예요. 그게 존재하기도 전에 당신에게 줬어요.”
“그레이 씨, 당신이 조금 바보 같았다는 건 알고 있잖아요. 그리고 당신이 아주 젊다는 걸 상기시키는 걸 정말로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도요.”
“오늘 아침엔 정말 강하게 반대했을 거예요, 헨리 경.”
“아! 오늘 아침이라니! 당신은 그 이후로 살아왔어요.”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집사가 차 쟁반을 들고 들어와 작은 일본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찻잔과 받침 그릇이 덜그럭거리는 소리와 주름진 조지아 시대의 주전자에서 쉿쉿 소리가 났다. 시종이 둥근 모양의 중국 접시 두 개를 가져왔다. 도리안 그레이가 다가가 차를 따랐다. 두 남자는 느릿느릿 탁자로 다가가 뚜껑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오늘 밤 극장에 가자.” 헨리 경이 말했다. “어딘가에 뭔가 볼 만한 게 있을 거야. 화이트에서 저녁 식사하기로 약속했는데, 오래된 친구와의 약속이라 아프다거나 후속 약속 때문에 못 간다고 전보를 보낼 수 있어. 그게 꽤 괜찮은 변명이 될 것 같아. 정직의 놀라움을 모두 갖추고 있지.”
“정장을 입는 게 너무 지루해.” 홀워드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입고 나면 너무 끔찍하고.”
“그래,” 헨리 경이 멍하니 대답했다. “19세기의 의상은 끔찍해. 너무 우울하고 침울해. 죄는 현대 생활에 남은 유일한 진정한 색채 요소야.”
“도리안 앞에서 그런 말을 해선 안 돼, 해리.”
“어느 도리안 앞에서? 우리에게 차를 따르고 있는 도리안? 아니면 그림 속의 도리안?”
“둘 다.”
“헨리 경, 저도 극장에 가고 싶어요.” 소년이 말했다.
“그럼 가자. 너도 올 거지, 베이즐?”
“정말 갈 수 없어. 안 가는 게 나을 것 같아. 할 일이 많아.”
“좋아, 그럼 당신과 내가 둘이 가죠, 그레이 씨.”
“정말 가고 싶어요.”
화가는 입술을 깨물며 찻잔을 든 채 그림 쪽으로 걸어갔다. “난 진짜 도리안과 함께 있겠어.” 그가 슬프게 말했다.
“진짜 도리안이라고?” 초상화의 원본이 되는 사람이 그에게 걸어오며 외쳤다. “내가 정말 저렇게 생겼나요?”
“그래, 넌 정확히 저렇게 생겼어.”
“얼마나 놀라운지, 베이즐!”
“적어도 외모는 그래.” 홀워드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건 절대 변하지 않을 거야. 그게 무언가지.”
“사람들은 충실함에 대해 얼마나 야단법석을 떠는지!” 헨리 경이 외쳤다. “사랑에서조차 그건 순전히 생리학의 문제야. 우리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 젊은이들은 충실하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고, 노인들은 불충실하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어. 그게 전부야.”
“오늘 밤엔 극장에 가지 마, 도리안.” 홀워드가 말했다. “나랑 저녁 먹자.”
“못 가, 베이즐.”
“왜?”
“헨리 워튼 경과 함께 가기로 약속했거든.”
“그가 약속을 지킨다고 해서 널 더 좋아하진 않을 거야. 그는 항상 자신의 약속을 어기니까. 가지 말라고 부탁해.”
도리안 그레이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발 부탁이야.”
소년은 망설이더니 차 테이블에서 그들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고 있는 헨리 경을 바라보았다.
“가야 해, 베이즐.” 그가 대답했다.
“좋아.” 홀워드가 말하고는 찻잔을 들어 쟁반에 내려놓았다. “꽤 늦었고, 옷을 갈아입어야 하니 시간을 낭비하지 마. 안녕, 해리. 안녕, 도리안. 곧 다시 와. 내일 와.”
“물론이죠.”
“잊지 않겠지?”
“아니요, 물론 아니죠.” 도리안이 외쳤다.
“그리고… 해리!”
“네, 베이즐?”
“오늘 아침 정원에서 내가 부탁한 걸 기억해.”
“잊어버렸어.”
“난 네가 믿어.”
“내 자신을 믿을 수 있다면 좋겠어.” 헨리 경이 웃으며 말했다. “자, 그레이 씨, 내 마차가 밖에 있으니 당신을 집에 데려다 줄 수 있어요. 안녕, 베이즐. 정말 흥미로운 오후였어.”
문이 닫히자 화가는 소파에 몸을 던졌고, 고통스러운 표정이 그의 얼굴에 나타났다.
제3장
다음날 정오가 조금 지나 헨리 워튼 경은 커존 가에서 올버니로 걸어가 삼촌인 퍼모 경을 방문했다. 퍼모 경은 외부 세계에서 이기적이라고 불렀지만, 사교계에서는 관대하다고 여겨지는 상냥하지만 다소 거친 말투의 노총각이었다. 그는 자신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이사벨라가 젊고 프림이 생각지도 못했을 때 마드리드에서 대사를 지냈지만, 파리 대사관 자리를 제안받지 못한 것에 분노하여 변덕스러운 순간에 외교 서비스에서 은퇴했다. 그는 자신의 출생, 게으름, 영어로 쓴 훌륭한 전보문, 그리고 쾌락에 대한 비정상적인 열정 때문에 그 자리에 충분히 자격이 있다고 여겼다. 아들은 아버지의 비서로 일하다가 상관과 함께 사임했는데,
당시에는 어리석다고 여겨졌지만, 몇 달 뒤 작위를 상속받자 그는 고귀한 귀족의 예술인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기술을 열심히 익히기 시작했다. 큰 저택을 두 채나 가지고 있었지만 신경 쓸 일이 적어 독신자 숙소에 머물며 대부분의 식사를 클럽에서 해결했다. 미들랜드 지방의 탄광 관리에 약간의 관심을 기울였는데, 이런 산업적 취미에 대해 신사라면 자기 벽난로에서 장작을 태울 여유는 있어야 한다는 구실을 대며 변명했다. 정치적으로는 보수당 지지자였지만, 보수당이 집권하면 그들이 급진파 무리라며 신랄하게 비난했다. 그는 자신을 괴롭히는 하인에게는 영웅이었고, 자신이 괴롭히는 친척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오직 영국만이 그같은 인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고, 그는 늘 나라가 망해간다고 말했다. 그의 원칙은 시대에 뒤떨어졌지만, 그의 편견에는 일리가 있었다.
헨리 경이 방에 들어섰을 때, 삼촌은 거친 사냥복 차림으로 시가를 물고 ‘타임스’를 읽으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어이, 해리,” 노신사가 말했다. “이 이른 시간에 무슨 일이냐? 너희 멋쟁이들은 두 시까지 일어나지 않고 다섯 시 전엔 얼굴도 못 볼 줄 알았는데.”
“순수한 가족애 때문입니다, 조지 삼촌. 삼촌에게서 뭔가를 얻어내려고요.”
“돈이겠지,” 퍼모 경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자, 앉아서 다 말해봐라. 요즘 젊은이들은 돈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군.”
“그렇죠,” 헨리 경이 코트의 단추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나이 들면 그게 사실임을 알게 되죠. 하지만 전 돈이 필요 없어요. 청구서를 내는 사람들만 돈이 필요한 법이죠, 조지 삼촌. 난 내 청구서를 절대 내지 않아요. 신용이야말로 차남의 자본이고, 그걸로 멋지게 살 수 있어요. 게다가 난 항상 다트무어의 상인들과 거래하니까 그들이 절 귀찮게 하지 않아요. 제가 원하는 건 정보예요. 물론 쓸모 있는 정보가 아니라 쓸모없는 정보죠.”
“글쎄, 해리, 난 영국 관보에 있는 건 뭐든 말해줄 수 있지. 요즘 그 작자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잔뜩 써대긴 하지만 말이야. 내가 외교관이었을 때는 상황이 훨씬 나았어. 하지만 지금은 시험으로 뽑는다더군. 뭘 기대하겠나? 시험이란 게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한 사기야. 신사라면 충분히 알고 있고, 신사가 아니라면 아는 것도 다 해로울 뿐이지.”
“도리안 그레이는 관보와는 상관없는 사람이에요, 조지 삼촌,” 헨리 경이 나른하게 말했다.
“도리안 그레이? 그게 누구지?” 퍼모 경이 하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게 바로 제가 알아내러 온 거예요, 조지 삼촌. 아니, 정확히는 그가 누군지 알고 있어요. 그는 켈소 경의 외손자예요. 어머니는 마가렛 디브루 부인이었죠. 그의 어머니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어떤 분이었나요? 누구와 결혼했죠? 삼촌은 당신 시대의 거의 모든 사람을 아셨을 테니 그녀도 알고 계셨을 거예요. 저는 지금 그레이 씨에게 무척 관심이 있어요. 그를 방금 만났거든요.”
“켈소의 외손자!” 노신사가 되풀이했다. “켈소의 외손자! … 그래 … 물론이지 … 난 그의 어머니를 잘 알았어. 세례식에도 참석했던 것 같아. 마가렛 디브루는 아주 아름다운 소녀였지. 무일푼 젊은이와 도망가 모든 남자들을 미치게 했어. 그냥 아무나였어, 보병 연대의 소위인가 그런 사람이었지. 물론이야. 마치 어제 일처럼 기억나는군. 가엾은 친구는 결혼 몇 달 후 스파에서 결투로 죽었어. 그 일에 대해 추한 소문이 있었지. 켈소가 어떤 악당을, 벨기에 놈을 고용해 사위를 공개적으로 모욕하게 했다더군. 돈을 주고 시켰대, 돈을 줬다고. 그 자가 그를 비둘기처럼 꿰뚫어 버렸지. 일은 무마됐지만, 세상에, 켈소는 한동안 클럽에서 혼자 저녁을 먹더군. 딸을 데리고 돌아왔다고 들었는데, 그 후론 아버지와 말도 하지 않았대. 아, 그래, 아주 나쁜 일이었지. 그 소녀도 죽었어, 일 년 안에 죽었다더군. 그래서 아들을 남겼다고? 그걸 잊고 있었네. 어떤 소년이지? 어머니를 닮았다면 잘생긴 친구겠군.”
“아주 잘생겼어요,” 헨리 경이 동의했다.
“올바른 손에 들어가길 바라네,” 노신사가 말을 이었다. “켈소가 제대로 해줬다면 많은 돈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어머니도 돈이 있었지. 셀비 재산이 모두 그녀에게 왔어, 할아버지를 통해서 말이야. 할아버지는 켈소를 싫어했지, 그를 비열한 개자식이라고 생각했거든. 실제로도 그랬고. 내가 마드리드에 있을 때 한 번 왔었는데, 세상에, 그 때문에 창피했다니까. 여왕이 택시 요금 때문에 항상 다투는 영국 귀족에 대해 내게 물어보곤 했지. 그들은 그걸로 한바탕 소동을 벌였어. 한 달 동안 궁정에 얼굴을 들이밀 수가 없었지. 그가 손자는 마부들보다는 더 잘 대해줬길 바라네.”
“모르겠어요,” 헨리 경이 대답했다. “그 소년은 돈 걱정은 없을 거예요. 아직 성인도 아니고. 셀비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가 그렇게 말했어요. 그리고… 어머니는 정말 아름다웠나요?”
“마가렛 디브루는 내가 본 여자들 중 가장 아름다운 여자 중 하나였어, 해리. 그녀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 그녀는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와도 결혼할 수 있었어. 칼링턴은 그녀에게 미쳐 있었지. 하지만 그녀는 낭만적이었어. 그 집안 여자들은 모두 그랬지. 남자들은 형편없었지만, 여자들은 놀라웠어. 칼링턴은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어. 그가 직접 내게 말해줬지. 그녀는 그를 비웃었고, 당시 런던에는 그를 쫓지 않는 여자가 없었는데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해리, 바보 같은 결혼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네 아버지가 다트무어가 미국 여자랑 결혼하려 한다는 게 무슨 헛소리야? 영국 여자들로는 부족한가?”
“요즘은 미국 여자랑 결혼하는 게 유행이에요, 조지 삼촌.”
“영국 여자들이라면 세상 어느 여자들과도 맞설 수 있어, 해리,” 퍼모 경이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말했다.
“미국 여자들에게 베팅이 몰리고 있어요.”
“지속력이 없다고 들었네,” 삼촌이 중얼거렸다.
“긴 약혼은 그들을 지치게 하지만, 단기전에서는 끝내주죠.”
그는 장애물 경주를 말했다. “그들은 뛰어넘는 걸 즐기지. 다트무어는 아무 기회도 없을 거야.”
“그 여자의 가족은 누구지?” 노신사가 투덜거렸다. “가족이라도 있나?”
헨리 경은 고개를 저었다. “미국 여자들은 자신의 부모를 숨기는 데 영국 여자들이 자신의 과거를 숨기는 것만큼이나 능숙해.” 그가 일어서며 말했다.
“돼지고기 포장업자겠지?”
“그랬으면 좋겠어, 조지 삼촌. 다트무어를 위해서라도. 미국에서는 정치 다음으로 돼지고기 포장업이 가장 돈벌이가 된다고 하더군.”
“예쁘기라도 한가?”
“마치 아름다운 것처럼 행동해. 대부분의 미국 여자들이 그래. 그게 바로 그들의 매력의 비결이지.”
“왜 이 미국 여자들은 자기 나라에 있지 않는 거지? 그들은 늘 자기 나라가 여자들의 천국이라고 하잖아.”
“그래서 그런 거야. 이브처럼, 그들은 천국에서 벗어나고 싶어 안달이 난 거지.” 헨리 경이 말했다. “안녕히, 조지 삼촌. 더 있다간 점심에 늦겠어. 원하던 정보를 주셔서 고마워요. 난 새 친구들에 대해서는 모든 걸 알고 싶어하지만, 오래된 친구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고 싶어 하지 않아요.”
“어디서 점심 먹니, 해리?”
“애거서 고모 댁이야. 나 자신과 그레이 씨를 초대했어. 그가 고모의 최근 피후견인이거든.”
“흠! 해리, 네 애거서 고모한테 자선 호소로 날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말라고 전해. 난 그것들에 질렸어. 그 좋은 여자는 내가 할 일이라곤 그녀의 바보 같은 변덕을 위해 수표를 써주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알겠어요, 조지 삼촌.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하지만 효과는 없을 거예요. 자선가들은 인간성을 모두 잃어버려요. 그게 그들의 특징이죠.”
노신사는 만족스럽게 으르렁거리며 하인을 부르는 종을 울렸다. 헨리 경은 낮은 아케이드를 지나 벌링턴 가로 나와 버클리 광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서 도리안 그레이의 출생 배경이었다. 그에게 거칠게 전해졌지만, 이상하고 거의 현대적인 로맨스를 암시하며 그를 흥분시켰다. 모든 것을 건 아름다운 여자의 광적인 열정. 짧고 광란의 행복의 몇 주가 끔찍하고 배신적인 범죄로 끝나 버렸다. 몇 달간의 말 없는 고통, 그리고 고통 속에서 태어난 아이. 어머니는 죽음에 의해 빼앗기고, 소년은 고독과 무정한 노인의 폭정에 맡겨졌다. 그래, 흥미로운 배경이었다. 그것은 소년을 돋보이게 하고, 더 완벽하게 만들었다. 존재하는 모든 아름다운 것 뒤에는 비극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세상은 가장 하찮은 꽃이 피어나기 위해 진통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어젯밤 저녁 식사 때 그는 얼마나 매력적이었던가. 놀란 눈과 공포에 찬 기쁨으로 벌어진 입술로 클럽에서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있을 때, 붉은 촛대 갓이 그의 얼굴에 깨어나는 경이로움을 더 짙은 장미빛으로 물들였다. 그와 대화하는 것은 정교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과 같았다. 그는 활의 모든 터치와 떨림에 반응했다…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는 무언가 끔찍하게 매혹적인 것이 있었다. 다른 어떤 활동도 그와 같지 않았다. 자신의 영혼을 우아한 형태로 투영하여 잠시 머물게 하는 것, 자신의 지적 견해가 열정과 젊음의 음악이 더해져 메아리치는 것을 듣는 것, 자신의 기질을 마치 미묘한 유동체나 이상한 향수처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 그것에는 진정한 기쁨이 있었다. 아마도 우리의 시대처럼 제한되고 저속한 시대, 그 쾌락은 육체적이고 그 목표는 천박한 시대에 남겨진 가장 만족스러운 기쁨일 것이다… 그는 또한 놀라운 유형이었다. 이 소년은, 그가 베이즐의 스튜디오에서 이상한 우연으로 만났거나, 적어도 놀라운 유형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우아함과 소년다운 순수함, 그리고 고대 그리스 조각이 간직한 아름다움이 그의 것이었다. 그를 가지고 할 수 없는 것은 없었다. 그는 타이탄이나 장난감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이런 아름다움이 사라질 운명이라니 얼마나 안타까운가!… 그리고 베이즐은? 심리학적 관점에서 얼마나 흥미로웠던가! 새로운 예술 방식,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 그 모든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단순히 눈에 보이는 존재로 인해 이상하게 제안된 것, 어두운 숲에 거주하고 열린 들판을 보이지 않게 걸어다니다 갑자기 드라이어드처럼 나타나 두려워하지 않는 조용한 영혼, 그녀를 찾는 사람의 영혼 속에서 오직 경이로운 것들만이 드러나는 그 놀라운 비전이 깨어났기 때문에, 사물의 단순한 형태와 패턴이 마치 정제되어 어떤 다른 더 완벽한 형태의 패턴인 것처럼 상징적 가치를 얻고 그것들의 그림자를 실제로 만드는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이상한가! 그는 역사에서 그와 비슷한 것을 기억했다. 그것을 처음으로 분석한 것은 사상의 예술가인 플라톤이 아니었던가? 미켈란젤로가 그것을 채색된 대리석의 소네트 연작으로 조각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우리 세기에는 이상했다… 그래, 그는 도리안 그레이에게 화가가 그 놀라운 초상화를 만든 소년에게 그랬던 것처럼 되어주려고 할 것이다. 그를 지배하려고 할 것이다 – 이미 절반은 그렇게 했다. 그는 그 놀라운 정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것이다. 이 사랑과 죽음의 아들에게는 매혹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갑자기 그는 멈추고 집들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이 고모의 집을 지나쳤다는 것을 깨닫고 웃으며 되돌아갔다. 그가 다소 음울한 홀에 들어섰을 때, 집사는 그들이 이미 점심 식사를 하러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는 하인 중 한 명에게 모자와 지팡이를 건네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늘 그렇듯이 늦었구나, 해리.” 고모가 머리를 흔들며 그를 꾸짖었다.
그는 간단한 변명을 지어내고 고모 옆의 빈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며 누가 있는지 살폈다. 도리안이 테이블 끝에서 수줍게 그에게 인사했고, 그의 뺨에 기쁨의 홍조가 스며들었다. 맞은편에는 할리 공작 부인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훌륭한 성품과 좋은 기질의 여성으로, 공작 부인이 아닌 여성들에게는 당대의 역사가들이 비만이라고 표현하는 풍만한 건축학적 비율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녀 오른쪽에는 토마스 버든 경이 앉아 있었다. 그는 급진당 국회의원으로, 공적인 삶에서는 지도자를 따르고 사적인 삶에서는 최고의 요리사를 따랐으며, 현명하고 잘 알려진 규칙에 따라 보수당과 식사를 하고 자유당과 생각했다. 그녀의 왼쪽 자리는 트레들리의 어스킨 씨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상당한 교양을 갖춘 노신사로,
매력과 교양을 갖추었지만 침묵의 나쁜 버릇에 빠진 사람이었다. 그는 한때 애거사 부인에게 설명했듯이 서른 살이 되기 전에 할 말을 다 했다고 했다. 그의 옆자리에는 반델뢰르 부인이 앉아 있었는데, 그녀는 고모의 오랜 친구 중 한 명으로 여인들 중에서는 완벽한 성녀였지만 너무나 초라한 차림새여서 형편없이 제본된 찬송가를 연상시켰다. 다행히도 그녀의 다른 쪽에는 포델 경이 앉아 있었다. 그는 매우 지적인 중년의 평범한 사람으로, 하원의 각료 성명만큼이나 대머리였다. 그녀는 그와 매우 진지한 태도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자신이 한때 말했듯이, 그것은 모든 진정으로 좋은 사람들이 빠지는 유일하게 용서할 수 없는 실수였고, 그들 중 누구도 그것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는 불쌍한 다트무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헨리 경.” 공작 부인이 테이블 건너편에서 그에게 유쾌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그가 정말로 이 매력적인 젊은이와 결혼할 것 같나요?”
“그녀가 그에게 청혼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아요, 공작 부인.”
“얼마나 끔찍한 일이에요!” 애거사 부인이 외쳤다. “정말로 누군가가 막아야 해요.”
“제가 들은 바로는 아주 좋은 소식통에 의하면 그녀의 아버지가 미국 잡화점을 운영한대요.” 토머스 버던 경이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삼촌은 이미 돼지고기 포장업을 제안했어요, 토머스 경.”
“잡화! 미국 잡화가 뭐죠?” 공작 부인이 커다란 손을 들어 올리며 놀라움을 표하고 동사를 강조하며 물었다.
“미국 소설이죠.” 헨리 경이 메추라기를 집으며 대답했다.
공작 부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말을 신경 쓰지 마세요, 애정하는 분.” 애거사 부인이 속삭였다. “그는 자신이 하는 말을 진심으로 하지 않아요.”
“미국이 발견되었을 때,” 급진파 의원이 말을 시작했고 그는 지루한 사실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주제를 완전히 소진시키려는 모든 사람들처럼, 그는 청중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공작 부인은 한숨을 쉬며 자신의 대화를 중단시킬 특권을 행사했다. “하느님 맙소사, 아예 발견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녀가 외쳤다. “정말이지, 우리 아가씨들은 요즘 기회가 없어요. 너무 불공평해요.”
“아마도 결국 미국은 발견된 적이 없을지도 몰라요.” 어스킨 씨가 말했다. “저는 단지 감지된 것뿐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오! 하지만 저는 그곳 주민들의 표본을 봤어요.” 공작 부인이 모호하게 대답했다. “고백하건대 그들 대부분은 매우 예쁘더군요. 그리고 옷도 잘 입어요. 모든 옷을 파리에서 구해요. 저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좋은 미국인들은 죽으면 파리로 간다고들 하죠.” 토머스 경이 킬킬거렸다. 그는 유머의 옷장에 버려진 옷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정말요! 그럼 나쁜 미국인들은 죽으면 어디로 가나요?” 공작 부인이 물었다.
“그들은 미국으로 가죠.” 헨리 경이 중얼거렸다.
토머스 경이 눈살을 찌푸렸다. “조카분이 그 위대한 나라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가 애거사 부인에게 말했다. “저는 그곳을 여행했어요. 이사들이 제공한 기차를 타고 다녔는데, 그런 문제에 있어서는 매우 예의 바르더군요. 그곳을 방문하는 것이 교육이 된다고 장담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시카고를 봐야 교육받는 건가요?” 어스킨 씨가 불평하듯 물었다. “여행할 기분이 나지 않아요.”
토머스 경이 손을 흔들었다. “트레들리의 어스킨 씨는 책장에 세상을 가지고 있죠. 우리 실용적인 사람들은 보고 싶어 해요, 읽고 싶어 하지 않아요. 미국인들은 매우 흥미로운 사람들이에요. 그들은 완전히 이성적이에요. 그게 그들의 특징이라고 생각해요. 네, 어스킨 씨, 완전히 이성적인 사람들이에요. 장담하건대 미국인들에게는 어리석음이 없어요.”
“얼마나 끔찍한가!” 헨리 경이 외쳤다. “난 무식한 힘은 참을 수 있지만, 무식한 이성은 정말 견딜 수 없어.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불공평해. 그건 지성 아래를 치는 거야.”
“당신 말을 이해할 수 없군요.” 토머스 경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제가 이해하겠습니다, 헨리 경.” 어스킨 씨가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역설은 그 나름대로 좋지만…” 남작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게 역설이었나요?” 어스킨 씨가 물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요. 아마도 그랬나 보죠. 음, 역설의 길이 진리의 길이죠. 현실을 시험하려면 줄타기를 해봐야 해요. 진실이 곡예사가 되면 우리는 그것을 판단할 수 있어요.”
“맙소사!” 애거사 부인이 말했다. “당신 남자분들은 얼마나 논쟁을 좋아하시는지! 저는 당신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오! 해리, 당신 때문에 정말 화가 나요. 왜 우리의 좋은 도리안 그레이 씨가 이스트 엔드를 포기하도록 설득하려고 하세요? 그가 거기서 정말 귀중한 존재가 될 거라고 장담해요. 그들은 그의 연주를 좋아할 거예요.”
“그가 내게 연주해 주길 원해.” 헨리 경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는 테이블 아래로 눈을 내리며 밝게 응답하는 시선을 잡았다.
“하지만 화이트채플에 있는 그들은 너무 불행해요.” 애거사 부인이 이어 말했다.
“나는 고통을 제외한 모든 것에 공감할 수 있어.” 헨리 경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것에는 공감할 수 없어. 그건 너무 추하고, 너무 끔찍하고, 너무 고통스러워. 현대의 고통에 대한 공감에는 뭔가 끔찍하게 병적인 게 있어. 색깔, 아름다움, 인생의 기쁨에 공감해야 해. 인생의 상처에 대해서는 말할수록 좋지 않아.”
“그래도 이스트 엔드는 매우 중요한 문제예요.” 토마스 경이 고개를 심각하게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이죠.” 젊은 귀족이 대답했다. “그건 노예제의 문제죠. 우리는 노예들을 즐겁게 함으로써 그것을 해결하려고 해요.”
정치인이 그를 날카롭게 바라보았다. “그럼 당신은 어떤 변화를 제안하시나요?” 그가 물었다.
헨리 경이 웃었다. “나는 영국에서 날씨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바꾸고 싶지 않아요.” 그가 대답했다. “나는 철학적인 관조에 만족해요. 하지만 19세기가 공감의 과도한 지출로 파산했기 때문에, 우리를 바로잡기 위해 과학에 호소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싶어요. 감정의 장점은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한다는 것이고, 과학의 장점은 감정적이지 않다는 거죠.”
“하지만 우리에겐 너무나 중대한 책임이 있어요.” 반델뢰르 부인이 수줍게 말했다.
“끔찍하게 중대해요.” 애거사 부인이 되풀이했다.
헨리 경이 어스킨 씨를 바라보았다. “인류는 자신을 너무 심각하게 여겨요. 그게 세상의 원죄예요. 만약 동굴인이 웃는 법을 알았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거예요.”
“당신은 정말 위로가 되는군요.” 공작 부인이 흥얼거렸다. “저는 항상 당신의 사랑하는 고모를 뵈러 올 때마다 약간 죄책감을 느꼈어요. 이스트 엔드에 전혀 관심이 없거든요. 앞으로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녀를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부끄러움은 매우 매력적이에요, 공작 부인.” 헨리 경이 말했다.
“오직 젊을 때만 그래요.” 그녀가 대답했다. “나 같은 노파가”
얼굴을 붉히는 것은 매우 나쁜 징조입니다. 아, 헨리 경, 어떻게 하면 다시 젊어질 수 있는지 알려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당신이 젊은 시절에 저지른 큰 실수를 기억하십니까, 공작부인?” 그가 식탁 너머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마도 많이 있을 거예요.” 그녀가 외쳤다.
“그럼 그것들을 다시 저지르세요.” 그가 진지하게 말했다. “젊음을 되찾으려면 단순히 자신의 어리석음을 반복하기만 하면 됩니다.”
“정말 멋진 이론이에요!” 그녀가 감탄했다. “꼭 실천해 봐야겠어요.”
“위험한 이론이군요!” 토마스 경의 꽉 다문 입술에서 말이 나왔다. 애거사 부인은 고개를 저었지만, 재미있어하는 것을 숨기지 못했다. 어스킨 씨는 귀를 기울였다.
“그렇습니다.”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것이 인생의 위대한 비밀 중 하나죠.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종의 서서히 스며드는 상식으로 죽어갑니다. 그리고 너무 늦게서야 후회하지 않는 유일한 것들이 자신의 실수라는 것을 깨닫죠.”
식탁 주위로 웃음이 퍼졌다.
그는 그 생각을 가지고 놀았고 고집스러워졌다. 그것을 공중에 던져 올리고 변형시켰다. 그것이 도망가게 두었다가 다시 잡았다. 그것을 상상력으로 무지개빛으로 만들고 역설로 날개를 달았다. 그가 계속 말하자 어리석음에 대한 찬사는 철학으로 고양되었고, 철학 자체가 젊어졌다. 쾌락의 광란의 음악을 듣고, 포도주에 물든 옷과 담쟁이 화관을 쓴 철학이 인생의 언덕 위를 박카스 여신처럼 춤추며, 술에 취하지 않은 실레노스를 조롱했다. 사실들은 그녀 앞에서 겁에 질린 숲속 생물들처럼 도망갔다. 그녀의 하얀 발은 현명한 오마르가 앉아있는 거대한 포도즙 틀을 밟았고, 끓어오르는 포도즙이 그녀의 맨 다리 주위로 보라색 거품 파도처럼 솟아올랐다. 또는 통의 검고 흘러내리는 경사진 옆면 위로 붉은 거품으로 기어갔다. 그것은 놀라운 즉흥 연설이었다. 그는 도리안 그레이의 눈이 자신에게 고정되어 있음을 느꼈고, 청중 중에 자신이 매혹시키고 싶은 기질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의식이 그의 재치에 날카로움을 더하고 상상력에 색채를 더하는 듯했다. 그는 빛났고, 환상적이었으며, 무책임했다. 그는 청중들을 자신들에게서 벗어나게 했고, 그들은 웃으며 그의 피리 소리를 따랐다. 도리안 그레이는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마법에 걸린 듯 앉아있었고, 미소가 입술 위로 서로를 쫓았으며, 점점 어두워지는 눈에는 놀라움이 깊어졌다.
마침내 현실이 시대의 옷을 입고 하인의 모습으로 방에 들어와 공작부인에게 마차가 기다리고 있다고 알렸다. 그녀는 가짜 절망으로 손을 비틀었다. “정말 귀찮은 일이네!” 그녀가 외쳤다. “가봐야겠어. 클럽에 들러 남편을 데리고 윌리스의 룸에서 열리는 어떤 터무니없는 모임에 가야 해. 거기서 그가 의장을 맡기로 했거든. 내가 늦으면 분명 화를 낼 거야. 이 모자를 쓰고 있는데 말다툼을 할 순 없어. 너무 연약해서. 거친 말 한마디면 망가져 버릴 거야. 아니야, 가봐야겠어, 애거사. 안녕히 계세요, 헨리 경. 당신은 정말 매력적이고 끔찍하게 타락했어요. 당신의 견해에 대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꼭 우리 집에 와서 저녁 식사를 하세요. 화요일은 어떠세요? 화요일에 시간 되세요?”
“당신을 위해서라면 누구든 버리겠습니다, 공작부인.” 헨리 경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 정말 친절하고 정말 나쁜 말이에요.” 그녀가 외쳤다. “꼭 오세요.” 그녀는 애거사 부인과 다른 숙녀들을 따라 방에서 나갔다.
헨리 경이 다시 앉자, 어스킨 씨가 다가와 그의 옆 의자에 앉아 팔을 잡았다.
“당신은 책들을 말로 없애 버리는군요.” 그가 말했다. “왜 책을 쓰지 않으세요?”
“책을 읽는 걸 너무 좋아해서 쓸 생각은 없습니다, 어스킨 씨. 물론 소설을 쓰고 싶긴 합니다. 페르시아 양탄자처럼 아름답고 비현실적인 소설 말이죠. 하지만 영국에는 신문과 초급 교과서, 백과사전 외에는 문학적 대중이 없습니다. 세계의 모든 민족 중에서 영국인들이 문학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이 가장 부족합니다.”
“두려워하건대 당신 말이 맞을 것 같습니다.” 어스킨 씨가 대답했다. “저도 한때 문학적 야망이 있었지만, 오래 전에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내 젊은 친구여, 당신이 그렇게 부르는 것을 허락한다면, 점심 때 우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정말로 의미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헨리 경이 미소 지었다. “아주 나쁜 말이었나요?”
“매우 나쁜 말이었죠. 사실 저는 당신이 극도로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좋은 공작부인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우리 모두 당신을 주요 책임자로 여길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제가 태어난 세대는 지루했습니다. 언젠가 런던에 싫증이 나면 트레들리에 와서 제가 가진 훌륭한 부르고뉴 와인과 함께 당신의 쾌락 철학을 설명해 주세요.”
“기쁘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트레들리를 방문하는 것은 큰 특권이 될 것입니다. 완벽한 주인과 완벽한 도서관이 있으니까요.”
“당신이 그것을 완성할 것입니다.” 노신사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이제 당신의 훌륭한 숙모에게 작별 인사를 해야겠습니다. 애서니엄에 가야 합니다. 우리가 거기서 잠을 자는 시간이거든요.”
“모두 다요, 어스킨 씨?”
“40명의 우리가 40개의 안락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우리는 영국 문학 아카데미를 위해 연습하고 있습니다.”
헨리 경은 웃으며 일어섰다. “저는 공원에 가야겠습니다.” 그가 외쳤다.
그가 문을 나서려 할 때, 도리안 그레이가 그의 팔을 만졌다. “저도 함께 가도 될까요?” 그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베이즐 홀워드를 만나러 가기로 약속하지 않았나요?” 헨리 경이 대답했다.
“당신과 함께 가고 싶어요. 네, 꼭 함께 가야 할 것 같아요. 함께 가도 되죠? 그리고 계속 저와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아무도 당신처럼 멋지게 말하지 않아요.”
“아, 오늘은 충분히 말했어요.” 헨리 경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제 난 삶을 바라보기만 하고 싶어요. 원한다면 함께 와서 바라볼 수 있어요.”
제 4 장
한 달 후 어느 오후, 도리안 그레이는 메이페어에 있는 헨리 경의 집 작은 도서관의 호화로운 안락의자에 기대어 있었다. 그것은 나름대로 매우 매력적인 방이었다. 올리브색으로 착색된 오크나무로 만든 높은 패널 벽면과 크림색 프리즈, 천장의 돋을새김 회반죽 장식, 그리고 벽돌 빛 펠트 카펫 위에 흩뿌려진 긴 술이 달린 실크 페르시아 러그가 있었다. 작은 새틴우드 탁자 위에는 클로디옹의 작은 조각상이 있었고, 그 옆에는 마르거리트 드 나바르를 위해 제본된 레 상 누벨의 사본이 놓여 있었다.
마가렛 드 발루아가 선택한 금색 데이지 꽃들이 그녀의 상징물처럼 새겨져 있는 클로비스 이브의 작품이었다. 큰 청색 도자기 항아리와 앵무 튤립들이 벽난로 선반 위에 나란히 놓여 있었고, 작은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통해 런던의 여름날 살구색 빛이 흘러들어왔다.
헨리 경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는 항상 원칙적으로 늦었는데, 그 원칙이란 시간 엄수는 시간 도둑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소년은 약간 심술이 난 듯했고, 책장에서 찾아낸 화려하게 삽화가 그려진 마농 레스코 판본의 페이지를 무기력한 손가락으로 넘기고 있었다. 루이 14세 시계의 형식적이고 단조로운 똑딱거림이 그를 짜증나게 했다. 한두 번 그는 나가버릴까 생각했다.
마침내 그는 밖에서 발소리를 들었다. 문이 열렸다. “해리, 늦었잖아!” 그는 중얼거렸다.
“해리가 아니에요, 워튼 경.” 날카로운 목소리가 답했다.
그는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고 일어섰다.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했던—”
“남편인 줄 아셨군요. 그의 아내일 뿐이에요. 소개해야겠네요. 전 사진으로 당신을 잘 알고 있어요. 제 남편이 당신 사진을 열일곱 장이나 가지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열일곱 장은 아닐 텐데요, 헨리 부인?”
“글쎄요, 열여덟 장이겠죠 그럼. 그리고 지난번 밤 오페라에서 당신과 함께 있는 걸 봤어요.” 그녀는 말하면서 신경질적으로 웃었고, 그를 흐릿한 물망초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상한 여자였는데, 그녀의 옷은 언제나 분노 속에서 디자인되고 폭풍우 속에서 입은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보통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열정은 결코 보답받지 못했기에 모든 환상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림 같은 모습을 연출하려 했지만, 단지 단정치 못해 보일 뿐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빅토리아였고, 교회에 가는 것에 완벽히 집착하고 있었다.
“로엔그린이었죠, 헨리 부인?”
“그래요, 소중한 로엔그린이었어요. 전 바그너의 음악을 누구보다 좋아해요. 너무 시끄러워서 대화를 하는 내내 다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듣지 못하거든요. 그게 큰 장점이에요, 그렇지 않나요, 워튼 경?”
그녀의 얇은 입술에서 같은 신경질적인 스타카토 웃음이 터져 나왔고, 그녀의 손가락은 긴 거북껍질 종이칼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도리안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헨리 부인. 저는 음악 중에 절대 말을 하지 않아요. 적어도 좋은 음악일 때는요. 나쁜 음악을 들을 때는 대화로 그것을 덮어버리는 게 우리의 의무죠.”
“아! 그건 해리의 견해 중 하나군요, 그렇죠, 워튼 경? 전 항상 해리의 견해를 그의 친구들에게서 듣게 돼요. 그게 내가 그의 견해를 알게 되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하지만 제가 좋은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전 그걸 숭배해요, 하지만 두려워요. 너무 로맨틱하게 만들거든요. 전 피아니스트들을 단순히 숭배했어요. 때로는 두 명을 동시에요. 해리가 말하더라고요. 그들에 대해 뭔가 있는 것 같아요. 아마도 외국인이라서 그럴 거예요. 그들 모두 그렇죠, 안 그런가요? 심지어 영국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 외국인이 되죠, 그렇지 않나요? 그건 정말 영리하고, 예술에 대한 큰 찬사예요. 그걸 완전히 국제적으로 만들죠, 그렇지 않나요? 당신은 제 파티에 한 번도 오지 않으셨죠, 워튼 경? 꼭 오셔야 해요. 난 난초는 살 여유가 없지만, 외국인에겐 돈을 아끼지 않아요. 그들이 방을 정말 그림 같이 만들어주거든요. 하지만 여기 해리가 왔네요! 해리, 난 당신을 찾으러 왔어요, 뭔가를 물어보려고요. 뭐였는지 잊었네요. 워튼 경을 여기서 만났어요. 우리는 음악에 대해 즐거운 대화를 나눴어요. 우리는 완전히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아니에요, 우리의 생각은 완전히 다른 것 같아요. 하지만 그는 정말 즐거웠어요. 그를 만나서 정말 기뻐요.”
“함께 가는 거야.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어. 여자가 자기 딸보다 10살은 어려 보이기만 하면 완전히 만족하지. 대화 상대로 말하자면, 런던에 대화할 만한 여자는 다섯 명밖에 없어. 그중 두 명은 상류 사회에 들어올 수조차 없지만. 그건 그렇고, 네 천재에 대해 말해봐. 얼마나 오래 알았어?”
“아, 해리, 네 관점이 무섭군.”
“신경 쓰지 마. 얼마나 오래 알았어?”
“약 3주 정도.”
“그녀를 어디서 만났어?”
“말해줄게, 해리. 하지만 너무 꼬투리 잡지 마. 사실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너는 내 안에 삶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싶은 광적인 욕망을 불어넣었어. 너를 만난 후 며칠 동안 내 혈관에서 무언가가 맥박치는 것 같았다. 공원을 어슬렁거리거나 피카딜리를 걸을 때면 지나가는 모든 사람을 보고 그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 미친 듯이 궁금해했지. 어떤 사람들은 나를 매혹시켰어. 다른 사람들은 공포에 떨게 했고. 공기 중에는 아름다운 독이 있었어. 나는 감각에 대한 열정을 가졌지… 그러다 어느 날 저녁 7시쯤, 모험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했어. 이 거대하고 괴물 같은 우리의 런던이, 수많은 사람들과 천박한 죄인들, 그리고 화려한 죄악들로 가득 찬 이 도시가 내게 뭔가를 준비해두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난 천 가지 상상을 했지. 그저 위험하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황홀감을 느꼈어. 우리가 처음 함께 저녁을 먹었을 때 네가 한 말이 생각났어.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 인생의 진정한 비밀이라고 했지. 뭘 기대했는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나는 밖으로 나가 동쪽으로 배회했고, 곧 허름한 거리와 검은 잔디 없는 광장의 미로에서 길을 잃었어. 8시 30분쯤 터무니없이 작은 극장을 지나갔는데, 커다란 가스등과 화려한 포스터가 있었어. 내 평생 본 것 중 가장 놀라운 조끼를 입은 끔찍한 유대인이 입구에 서서 역겨운 시가를 피우고 있었지. 기름진 곱슬머리에 더러운 셔츠 한가운데 거대한 다이아몬드가 번쩍였지. ‘박스석은 어떠세요, 나리?’ 그가 날 보고 말하더니 굉장히 노예 같은 태도로 모자를 벗었어. 그에게서 뭔가 재미있는 게 있었어, 해리. 그는 정말 괴물 같았거든. 넌 날 비웃겠지만, 난 정말로 들어가서 한 기니를 주고 무대 옆 박스석을 샀어. 지금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면… 오, 해리,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내 인생 최고의 로맨스를 놓쳤을 거야. 넌 웃고 있군. 끔찍하군!”
“난 웃고 있지 않아, 도리안. 적어도 널 비웃는 게 아니야. 하지만 네 인생 최고의 로맨스라고 말해선 안 돼. 네 인생 첫 로맨스라고 해야지. 넌 항상 사랑받을 거고, 항상 사랑에 빠질 거야. 대단한 열정은 한가한 사람들의 특권이지. 그게 바로 한 나라의 게으른 계층의 유일한 쓸모야. 두려워하지 마. 너를 위해 멋진 일들이 준비되어 있어. 이건 그저 시작일 뿐이야.”
“내 본성이 그렇게 얕다고 생각하나요?” 도리안 그레이가 화를 내며 외쳤다.
“아니, 네 본성이 아주 깊다고 생각해.”
“그게 무슨 뜻이죠?”
“내 사랑하는 소년아, 인생에서 단 한 번만 사랑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정말 얕은 사람들이야. 그들이 충성심이나 신실함이라고 부르는 것, 난 그걸 습관의 무기력함이나 상상력의 부족이라고 불러. 신실함은 감정적인 삶에서 일관성이 지적인 삶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같아. 단순히 실패의 고백일 뿐이지. 신실함! 언젠가 분석해봐야겠어. 소유욕이 그 안에 있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주워가지 않을까 두려워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 하지만 네 이야기를 방해하고 싶진 않아. 계속해.”
“음, 난 끔찍하게 작은 개인 박스에 앉아 있었고, 눈앞에는 저속한 배경막이 있었어. 난 커튼 뒤에서 객석을 살펴봤지. 그건 정말 삼류 결혼 케이크 같은 초라한 곳이었어. 천사들과 풍요의 뿔 장식으로 가득했지. 갤러리와 입석은 꽤 찼지만, 두 줄의 초라한 스톨은 텅 비어 있었고, 드레스 서클이라고 부르는 곳에는 거의 아무도 없었어. 여자들이 오렌지와 생강 맥주를 들고 돌아다녔고, 땅콩을 끊임없이 먹어대고 있었어.”
“영국 연극의 전성기 때와 똑같았겠군.”
“아마도 그랬을 거야. 정말 우울했어. 난 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지. 그때 포스터를 보게 됐어. 해리, 넌 그 연극이 뭐였을 거 같아?”
“아마도 ‘바보 소년’이나 ‘벙어리지만 순진한’이었겠지. 우리 아버지들은 그런 종류의 작품을 좋아하셨다고 해. 도리안, 내가 오래 살면 살수록 우리 아버지들에게 충분히 좋았던 것들이 우리에겐 충분하지 않다는 걸 더욱 절실히 느껴. 예술에서도, 정치에서도 할아버지들은 항상 틀렸어.”
“이 연극은 우리에겐 충분히 좋았어, 해리. 로미오와 줄리엣이었거든. 솔직히 말하면 그런 형편없는 곳에서 셰익스피어를 보게 될 거란 생각에 좀 짜증이 났어. 그래도 어떤 면에선 흥미가 생겼지. 어쨌든 첫 막은 기다려보기로 했어. 끔찍한 오케스트라가 있었는데, 젊은 히브리인이 금이 간 피아노를 치고 있었어. 거의 도망가고 싶었지만 결국 막이 올랐고 연극이 시작됐어. 로미오는 뚱뚱한 노신사였어. 눈썹에 코르크를 발랐고, 쉰 목소리로 비극을 연기했지. 맥주통 같은 몸매였어. 머큐쇼도 거의 똑같이 형편없었어. 코미디언이 연기했는데, 자기가 만든 유머를 넣고 객석과 매우 친밀한 관계였지. 둘 다 무대 배경만큼이나 우스꽝스러웠어. 시골 장터에서 나온 것 같았거든. 하지만 줄리엣이 나왔어! 해리, 17살 정도밖에 안 된 소녀를 상상해봐. 작은 꽃 같은 얼굴에 그리스 조각상 같은 작은 머리, 짙은 갈색 머리를 땋아 올렸지. 눈은 열정의 보랏빛 우물 같았고, 입술은 장미꽃잎 같았어. 내 평생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존재였어. 넌 한번 비극은 네게 감동을 주지 않지만, 순수한 아름다움은 네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다고 말했지. 해리, 난 이 소녀를 눈물의 안개 너머로 겨우 볼 수 있었어.
내 앞에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나는 그런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처음에는 아주 낮았고, 깊고 부드러운 음이 귀에 하나씩 떨어지는 것 같았어. 그다음에는 조금 더 커져서 플루트나 먼 오보에 소리 같았어. 정원 장면에서는 새벽 직전 나이팅게일이 노래할 때 듣는 것 같은 떨리는 황홀감이 있었어. 나중에는 바이올린의 격정적인 열정을 담은 순간들도 있었어. 목소리가 사람을 어떻게 흔들 수 있는지 너도 알잖아. 네 목소리와 시빌 베인의 목소리는 내가 절대 잊지 못할 두 가지야. 눈을 감으면 그 목소리들이 들리고, 각각 다른 말을 하지. 어느 쪽을 따라야 할지 모르겠어. 왜 내가 그녀를 사랑하면 안 되지? 해리, 난 정말 그녀를 사랑해. 그녀는 내 인생의 전부야. 밤마다 그녀의 연기를 보러 가. 어느 날 저녁엔 로잘린드고, 다음 날 저녁엔 이모젠이야. 난 그녀가 이탈리아 무덤의 어둠 속에서 연인의 입술에서 독을 빨아들이며 죽는 걸 봤어. 아덴 숲을 가로질러 바지와 더블릿, 귀여운 모자를 쓴 예쁜 소년으로 변장한 채 배회하는 그녀를 지켜봤지. 그녀는 미쳐서 죄 지은 왕 앞에 나타나 루를 주고 쓴 약초를 맛보게 했어. 그녀는 순수했고, 질투의 검은 손이 그녀의 갈대 같은 목을 짓눌렀지. 난 그녀를 모든 시대와 모든 의상을 입은 모습으로 봤어. 평범한 여자들은 결코 상상력을 자극하지 않아. 그들은 자기 세기에 국한돼 있지. 어떤 매력도 그들을 변모시키지 못해. 그들의 마음은 모자만큼이나 쉽게 알 수 있어. 언제나 그들을 찾을 수 있지. 그들에겐 아무런 신비도 없어. 아침엔 공원에서 말을 타고, 오후엔 티파티에서 수다를 떨어. 그들은 틀에 박힌 미소와 유행하는 매너를 가지고 있어. 너무나 뻔해. 하지만 여배우라니! 여배우는 얼마나 다른가! 해리! 왜 여배우만이 사랑할 가치가 있다고 말해주지 않았어?”
“내가 그들을 너무 많이 사랑해서 그래, 도리안.”
“오, 그래, 염색한 머리와 화장한 얼굴을 한 끔찍한 사람들 말이지.”
“염색한 머리와 화장한 얼굴을 깎아내리지 마. 때때로 그것들에는 특별한 매력이 있어,” 헨리 경이 말했다.
“시빌 베인에 대해 말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네가 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거야, 도리안. 네 인생 내내 넌 네가 하는 모든 일을 나에게 말할 거야.”
“그래요, 해리, 그게 사실인 것 같아요. 난 당신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어요. 당신은 내게 이상한 영향력이 있어요. 내가 만약 죄를 지었다면, 와서 당신에게 고백할 거예요. 당신은 날 이해할 거예요.”
“인생의 제멋대로인 햇살 같은 사람들은 죄를 짓지 않아, 도리안. 하지만 그래도 칭찬해줘서 고마워. 이제 말해봐—성냥 좀 건네줘, 착한 애야—고마워—너와 시빌 베인의 실제 관계는 어떤 거야?”
도리안 그레이는 홍조를 띤 뺨과 불타는 눈으로 벌떡 일어났다.
“해리! 시빌 베인은 신성해!”
“오직 신성한 것들만이 만질 가치가 있어, 도리안,” 헨리 경이 이상하게 애달픈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왜 화를 내지? 언젠가는 그녀가 네 것이 될 거라고 생각해. 사랑에 빠지면 항상 자신을 속이는 것으로 시작해서 항상 다른 사람들을 속이는 것으로 끝나지. 세상은 그걸 로맨스라고 부르지. 어쨌든 넌 그녀를 알고 있겠지, 안 그래?”
“물론 알고 있죠. 첫날 밤 극장에 갔을 때, 공연이 끝나자마자 그 끔찍한 늙은 유대인이 박스석으로 와서 무대 뒤로 데려가 그녀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했어요. 난 그에게 화를 냈고, 줄리엣은 수백 년 전에 죽었으며 그녀의 시신은 베로나의 대리석 무덤에 묻혔다고 말했죠. 그의 멍한 놀란 표정을 보니, 내가 샴페인을 너무 많이 마셨거나 그런 인상을 준 것 같아요.”
“놀랍지 않아.”
“그러더니 그가 내가 신문사에 글을 쓰는지 물었어요. 난 신문도 읽지 않는다고 했죠. 그 말에 그는 끔찍하게 실망한 것 같았어요. 그리고 모든 극평가들이 자기를 음모로 괴롭히고 있으며, 그들 모두가 매수할 수 있다고 내게 털어놓았어요.”
“그 말이 꽤 맞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들의 외모로 봐선, 대부분이 그리 비싸지는 않을 것 같아.”
“글쎄요, 그는 그들이 자기 능력 밖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도리안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때 극장의 불이 꺼지기 시작해서 가야 했어요. 그는 자기가 강력히 추천하는 시가를 한번 피워보라고 했지만, 난 거절했죠. 다음 날 밤, 물론 다시 그곳에 갔어요. 날 보자 그는 깊이 고개를 숙이며 내가 예술의 관대한 후원자라고 장담했어요. 그는 아주 무례한 짐승이었지만, 셰익스피어에 대한 특별한 열정이 있었어요. 한번은 자랑스럽게 자신의 다섯 번의 파산이 모두 ‘바드’ 때문이라고 말했어요. 그는 그걸 자랑거리로 여기는 것 같았어요.”
“그건 자랑할 만한 일이야, 도리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산문에 너무 많이 투자해서 파산하지. 시로 인해 파산한 것은 영광이야. 그런데 시빌 베인과 언제 처음 대화를 나눴어?”
“세 번째 밤이었어요. 그녀가 로잘린드를 연기하고 있었죠. 난 그녀에게 꽃을 던졌고, 그녀가 나를 봤어요.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죠. 그 늙은 유대인이 고집을 부렸어요. 그는 내가 무대 뒤로 가는 걸 꼭 원하는 것 같아서 동의했어요. 그녀를 알고 싶어 하지 않은 게 이상하지 않나요?”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내 친애하는 해리, 왜?”
“나중에 말해주지. 지금은 그 소녀에 대해 알고 싶어.”
“시빌? 오, 그녀는 너무나 수줍고 온화해요. 그녀에겐 어린아이 같은 면이 있어요. 내가 그녀의 연기에 대해 생각한 바를 말했을 때 그녀의 눈이 놀라움으로 크게 떠졌어요.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우리 둘 다 꽤 긴장했던 것 같아요. 그 늙은 유대인은 먼지 쌓인 분장실 문간에 서서 우리 둘에 대해 과장된 연설을 하는 동안 우리는 어린아이들처럼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는 내게 ‘경’이라고 부르길 고집해서, 난 시빌에게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안심시켜야 했어요. 그녀는 내게 아주 단순하게 말했어요. ‘당신은 왕자님처럼 보여요. 난 당신을 ‘매력적인 왕자님’이라고 불러야겠어요.’”
“말해 봐, 도리안, 시빌 양은 정말 아부하는 법을 알더군.”
“해리, 넌 그녀를 이해하지 못해. 그녀는 날 그저 연극 속 인물로만 여겼어. 그녀는 인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살아. 그녀의 어머니는 지쳐 보이는 시들어버린 여자야. 초연 때 마젠타색 드레싱가운을 입고 캐풀렛 부인 역을 했는데, 더 나은 시절을 봤던 것 같아 보이더라.”
“그런 모습은 알아. 나를 우울하게 만들지.” 헨리 경은 자신의 반지들을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유대인이 그녀의 내력을 말해주려고 했지만, 난 관심 없다고 했어.”
“넌 아주 옳았어. 다른 사람들의 비극에는 항상 뭔가 끔찍하게 천박한 게 있지.”
“시빌만이 내가 신경 쓰는 유일한 존재야. 그녀가 어디서 왔는지가 내게 무슨 상관이야? 그녀의 작은 머리부터 작은 발끝까지, 그녀는 절대적으로 완전히 신성해. 매일 밤 난 그녀의 연기를 보러 가. 그리고 매일 밤 그녀는 더욱 놀라워.”
“그래서 이제 나와 저녁을 먹지 않는 이유겠군. 넌 뭔가 흥미로운 로맨스를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랬구나. 하지만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좀 다르군.”
“해리, 우리는 매일 점심이나 저녁을 함께 먹잖아. 그리고 난 몇 번이나 너와 오페라를 보러 갔고.” 도리안이 푸른 눈을 놀라움으로 크게 뜨며 말했다.
“넌 항상 끔찍하게 늦게 와.”
“글쎄, 난 시빌의 연기를 보러 가지 않을 수 없어.” 그가 외쳤다. “단 한 막이라도 말이야. 난 그녀의 존재에 굶주려. 그 작은 상아 같은 몸에 숨겨진 놀라운 영혼을 생각하면, 경외감에 휩싸여.”
“오늘 밤 나와 저녁을 먹을 수 있겠니, 도리안?”
그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 밤 그녀는 이모젠이야.” 그가 대답했다. “그리고 내일 밤엔 줄리엣이 될 거야.”
“그녀가 시빌 베인일 때는 언제지?”
“절대 그럴 일 없어.”
“축하해.”
“끔찍하다니! 그녀는 세상 모든 위대한 여배우를 한 몸에 담고 있어. 그녀는 단순한 사람이 아니야. 웃기긴 하지만, 내 말이야, 그녀는 재능이 있어. 난 그녀를 사랑해, 그리고 그녀를 내게 반하게 해야만 해. 넌 인생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잖아. 어떻게 하면 시빌 베인이 날 사랑하게 할 수 있을지 말해줘! 로미오가 질투할 만큼, 세상 모든 죽은 연인들이 우리의 웃음소리에 슬퍼할 만큼. 우리 열정의 숨결이 그들의 먼지를 깨워 의식으로 돌려놓고, 재를 깨워 고통으로 가득 채우길 바라. 세상에, 해리, 난 그녀를 얼마나 숭배하는지!” 그는 말하며 방 안을 서성였다. 뺨에는 열병처럼 붉은 반점이 타올랐다. 그는 엄청나게 흥분해 있었다.
헨리 경은 미묘한 즐거움을 느끼며 그를 지켜보았다. 베이즐 홀워드의 스튜디오에서 만났을 때의 수줍고 겁 많은 소년과는 얼마나 달랐는가! 그의 본성은 꽃처럼 피어나 주홍빛 불꽃의 꽃을 피웠다. 그의 영혼은 비밀스러운 은신처에서 기어 나와 욕망이 그것을 만나러 왔다.
“그래서 넌 뭘 하려고 하니?” 헨리 경이 마침내 물었다.
“너와 베이즐이 어느 날 밤 나와 함께 가서 그녀의 연기를 보길 바라. 결과에 대해선 전혀 두렵지 않아. 넌 분명 그녀의 재능을 인정할 거야. 그다음엔 그녀를 유대인의 손아귀에서 빼내야 해. 그녀는 3년 계약을 했어. 적어도 2년 8개월은 남았지. 물론 난 그에게 돈을 줘야 할 거야. 모든 게 해결되면, 웨스트엔드에 극장을 하나 임대해서 그녀를 제대로 데뷔시킬 거야. 그녀는 날 미치게 만든 것처럼 세상을 미치게 할 거야.”
“그건 불가능할 거야, 내 사랑하는 친구.”
“그녀는 그럴 거야. 그녀는 단순히 예술, 완벽한 예술적 본능뿐만 아니라 개성도 있어. 넌 자주 내게 말했지, 시대를 움직이는 건 원칙이 아니라 개성이라고.”
“좋아, 그럼 우린 언제 갈까?”
“잠깐만. 오늘이 화요일이지. 내일로 하자. 그녀는 내일 줄리엣을 연기해.”
“좋아. 브리스톨에서 8시에 만나. 난 베이즐을 데려갈게.”
“8시가 아니라 6시 반에, 해리, 제발. 막이 오르기 전에 거기 있어야 해. 넌 그녀가 로미오를 만나는 첫 막을 봐야 해.”
“6시 반이라고! 말도 안 돼! 마치 고기 샌드위치를 먹거나 영어 소설을 읽는 것 같잖아. 7시는 돼야지. 신사는 7시 전에 저녁을 먹지 않아. 넌 그때까지 베이즐을 볼 거야? 아니면 내가 그에게 편지를 쓸까?”
“사랑하는 베이즐! 난 일주일 동안 그를 보지 못했어. 내가 좀 끔찍하긴 하지. 그가 내 초상화를 아주 멋진 액자에 넣어 보냈거든. 그가 직접 디자인한 거야. 그 그림이 나보다 한 달이나 더 젊어서 좀 질투가 나긴 하지만, 그래도 그걸 즐기고 있어. 아마 네가 그에게 편지를 쓰는 게 좋겠어. 난 그를 혼자 만나고 싶지 않아. 그는 날 짜증나게 하는 말을 해. 그는 좋은 조언을 해주지.”
헨리 경이 미소 지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아주 기꺼이 남에게 주지. 이걸 난 관대함의 깊이라고 부르지.”
“오, 베이즐은 최고의 친구야. 하지만 그는 약간 속물 같아. 난 네가 그걸 알려준 이후로 그걸 알게 됐어, 해리.”
“베이즐은, 내 사랑하는 친구야, 자신의 모든 매력을 작품에 쏟아 붓지. 그 결과 그의 삶에는 편견, 원칙, 상식밖에 남지 않아. 내가 아는 중에 개인적으로 매력적인 유일한 예술가들은 형편없는 예술가들뿐이야. 훌륭한 예술가들은 오직 자신들이 만드는 것 속에서만 존재해.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들은 개인으로서는 완전히 재미없지. 위대한 시인, 정말로 위대한 시인은 모든 생물 중에서 가장 시적이지 않아. 하지만 열등한 시인들은 절대적으로 매혹적이야. 그들의 시가 나쁠수록, 그들은 더 그림같아 보여. 이류 소네트집을 출판했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한 남자를 완전히 저항할 수 없게 만들지. 그는 쓸 수 없는 시를 살아. 다른 이들은 실현하지 못할 시를 쓰고.”
“그게 정말 그런지 모르겠어, 해리.” 도리안 그레이가 테이블 위에 있는 큰 금색 뚜껑의 병에서 향수를 손수건에 뿌리며 말했다. “그래야겠지,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이제 난 가봐야 해. 이모젠이 기다리고 있어. 내일 잊지 마. 안녕.”
그가 방을 나가자 헨리 경의 무거운 눈꺼풀이 내려앉았고, 그는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도리안 그레이만큼 그를 흥미롭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그 소년의 누군가에 대한 미친 듯한 숭배가 그에게 조금의 짜증이나 질투심도 일으키지 않았다. 그는 그것이 기쁘다. 그것은 그를 더 흥미로운 연구 대상으로 만들었다. 그는 항상 자연과학의 방법에 매료되어 왔지만, 일반적인 주제는
과학이 그에게는 하찮고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해부하는 것으로 시작해 결국에는 다른 이들을 해부하게 되었다.
인간의 삶, 그것만이 그에게 연구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으로 보였다. 다른 것들은 아무 가치가 없었다. 삶의 신비로운 도가니 속에서 고통과 쾌락을 지켜보면서도 유리 가면을 쓰고 있을 수는 없었고, 유황 연기가 두뇌를 괴롭히고 상상력을 괴물 같은 공상과 기괴한 꿈으로 혼탁하게 만드는 것을 막을 수도 없었다. 그 성질을 알기 위해서는 중독될 수밖에 없는 너무나 미묘한 독이 있었다. 그 본질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겪어야만 하는 너무나 이상한 질병도 있었다. 하지만 얼마나 큰 보상을 받았는가! 온 세상이 얼마나 경이롭게 변했는가! 열정의 기이하고 강철 같은 논리와 지성의 감정이 물든 삶을 관찰하는 것, 그것들이 어디서 만나고 어디서 갈라지는지, 어느 지점에서 화합하고 어느 지점에서 불협화음을 내는지 주목하는 것, 거기에 얼마나 큰 기쁨이 있었던가! 그 대가가 무엇인들 어떠했겠는가? 어떤 감각을 위해서라도 값을 치르는 것은 결코 과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어떤 말들, 음악적인 어조로 말해진 음악 같은 말들로 인해 도리안 그레이의 영혼이 이 하얀 소녀에게로 향하고 그녀 앞에 무릎 꿇고 경배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생각에 그의 갈색 마노 눈에 기쁨의 빛이 스쳤다. 상당 부분 그 젊은이는 그의 창조물이었다. 그는 그를 조숙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무언가였다. 평범한 사람들은 인생이 그 비밀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렸지만, 소수의 선택받은 자들에게는 베일이 벗겨지기도 전에 인생의 신비가 드러났다. 때로는 이것이 예술의 영향이었고, 주로 문학 예술의 영향이었다. 문학은 열정과 지성을 직접 다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따금 복잡한 성격이 예술의 자리를 대신해 그 역할을 맡았고, 실제로 그 자체로 하나의 진정한 예술 작품이 되었다. 삶에도 시와 조각, 회화처럼 정교한 걸작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그 젊은이는 조숙했다. 그는 아직 봄인데도 수확을 거두고 있었다. 젊음의 맥박과 열정이 그 안에 있었지만, 그는 자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그를 지켜보는 것은 즐거웠다. 아름다운 얼굴과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그는 경이로운 존재였다. 이 모든 것이 어떻게 끝나든, 또는 끝나도록 운명 지어져 있든 상관없었다. 그는 마치 행렬이나 연극에 등장하는 우아한 인물들 같았다. 그들의 기쁨은 우리와 동떨어져 보이지만, 그들의 슬픔은 우리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을 자극하고, 그들의 상처는 붉은 장미 같았다.
영혼과 육체, 육체와 영혼, 얼마나 신비로운가! 영혼에는 동물성이 있었고, 육체에는 영성의 순간이 있었다. 감각은 정화될 수 있었고, 지성은 타락할 수 있었다. 육체적 충동이 어디서 끝나고 정신적 충동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평범한 심리학자들의 임의적인 정의는 얼마나 피상적인가! 그러나 여러 학파의 주장들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영혼은 죄의 집에 자리 잡은 그림자일까? 아니면 조르다노 브루노가 생각했듯이 육체가 실제로 영혼 안에 있는 것일까? 영과 물질의 분리는 신비였고, 영과 물질의 결합 또한 신비였다.
그는 우리가 과연 심리학을 절대적인 과학으로 만들어 삶의 모든 작은 원천을 밝혀낼 수 있을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현재로서는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을 오해하고 다른 사람들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경험은 윤리적 가치가 없었다. 그것은 단지 사람들이 자신의 실수에 붙인 이름일 뿐이었다. 도덕주의자들은 대체로 그것을 경고의 한 방식으로 여겼고, 성격 형성에 있어 어떤 윤리적 효능이 있다고 주장했으며, 무엇을 따라야 하고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 가르쳐 준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경험에는 동력이 없었다. 그것은 양심 자체만큼이나 활동적인 원인이 되지 못했다. 그것이 실제로 보여준 것은 우리의 미래가 우리의 과거와 같을 것이라는 점과, 한 번 혐오하며 저질렀던 죄를 우리가 여러 번 기쁘게 저지를 것이라는 점뿐이었다.
그에게는 실험적 방법만이 열정에 대한 과학적 분석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확실히 도리안 그레이는 그의 손에 맞춤한 대상이었고, 풍부하고 결실 있는 결과를 약속하는 것 같았다. 시빌 베인에 대한 그의 갑작스럽고 광적인 사랑은 흥미로운 심리적 현상이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호기심이 거기에 많은 역할을 했다. 호기심과 새로운 경험에 대한 욕구가 있었지만, 그것은 단순한 열정이 아니라 매우 복잡한 열정이었다. 그 안에 있던 순수한 감각적 본능은 상상력의 작용에 의해 변형되어 소년 자신에게도 감각과는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게 되었고, 바로 그 이유로 더욱 위험해졌다. 우리가 그 기원에 대해 스스로를 속이는 열정들이 우리를 가장 강하게 지배했다. 우리의 가장 약한 동기들은 우리가 그 본질을 의식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실험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실제로는 우리 자신을 실험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헨리 경은 그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의 하인이 들어와 저녁 식사 준비를 할 시간이라고 알렸다. 그는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았다. 석양이 맞은편 건물들의 위쪽 창문을 주홍빛 금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유리창들은 달궈진 금속판처럼 빛났다. 하늘은 시든 장미 같았다. 그는 친구의 젊고 불꽃 같은 삶을 생각하며 그것이 어떻게 끝날지 궁금해했다.
그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자정을 넘어 한 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는 현관 탁자 위에 놓인 전보를 보았다. 전보를 뜯어보니 도리안 그레이가 보낸 것이었다. 그는 시빌 베인과 약혼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제5장
“어머니, 어머니, 저 정말 행복해요!” 소녀는 얼굴을 쇠약하고 피곤해 보이는 여인의 무릎에 묻었다. 그 여인은 날카롭고 귀찮은 빛을 등지고 초라한 거실의 유일한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저 정말 행복해요!” 그녀가 다시 말했다. “그리고 어머니도 행복하셔야 해요!”
베인 부인은 움찔하며 마른 비스무스 화장을 한 손을 딸의 머리에 얹었다. “행복하다고!” 그녀가 되풀이했다. “시빌, 난 네가 연기할 때만 행복하단다. 연기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면 안 돼. 아이작스 씨가 우리에게 매우 친절했고, 우리는 그에게 돈을 빚졌어.”
소녀가 고개를 들어 입을 삐죽거렸다. “돈이요, 어머니?” 그녀가 외쳤다. “돈이 무슨 소용이에요? 사랑은 돈보다 더 중요해요.”
“아이작스 씨가 우리 빚 50파운드를 갚아주겠다고 했어. 그걸로 빚을 청산하고 제임스를 위해 적절한 옷을 장만해야 해요. 시빌, 그걸 잊어선 안 돼. 50파운드는 매우 큰 금액이에요. 아이작스 씨는 정말 사려 깊었어요.”
“그는 신사가 아니에요, 어머니. 그가 저한테 말하는 방식이 싫어요.” 소녀가 일어나 창가로 가며 말했다.
“그 사람 없이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겠구나.” 나이 든 여자가 불평하듯 대답했다.
시빌 베인은 고개를 돌리며 웃었다. “우린 더 이상 그가 필요 없어요, 어머니. 이제 매력적인 왕자님이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니까요.” 그러고는 그녀는 잠시 멈췄다. 장미 빛이 그녀의 혈관을 타고 흘러 뺨을 물들였다. 가쁜 숨이 그녀의 입술 꽃잎을 갈랐다. 그것들은 떨렸다. 정열의 남풍이 그녀를 스쳐 지나가며 그녀의 우아한 옷주름을 흔들었다. “저는 그를 사랑해요.” 그녀가 간단히 말했다.
“어리석은 아이! 어리석은 아이!”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구부러진 손가락에 달린 가짜 보석들이 흔들리며 그 말에 괴상한 느낌을 더했다.
소녀는 다시 웃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새장 속 새의 기쁨이 담겨 있었다. 그녀의 눈은 그 선율을 포착하고 빛나며 메아리쳤다가, 잠시 감겼다. 마치 그 비밀을 숨기려는 듯이. 그것들이 다시 열렸을 때, 꿈의 안개가 그 위로 지나갔다.
닳은 의자에서 얇은 입술의 지혜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조심성을 암시하고, 상식이라는 이름을 가장한 비겁함의 책에서 인용했다. 그녀는 듣지 않았다. 그녀는 열정의 감옥에서 자유로웠다. 그녀의 왕자, 매력적인 왕자가 그녀와 함께 있었다. 그녀는 기억을 불러 그를 재창조했다. 그녀는 그를 찾으러 영혼을 보냈고, 그것은 그를 데려왔다. 그의 입맞춤이 다시 그녀의 입술을 태웠다. 그녀의 눈꺼풀은 그의 숨결로 따뜻했다.
그러자 지혜는 그 방법을 바꾸어 정탐과 발각에 대해 말했다. 이 젊은이는 부자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결혼을 고려해야 한다. 세속적인 교활함의 파도가 그녀의 귓가를 때렸다. 술책의 화살이 그녀 옆으로 날아갔다. 그녀는 움직이는 얇은 입술을 보고 미소 지었다.
갑자기 그녀는 말할 필요를 느꼈다. 말 많은 침묵이 그녀를 괴롭혔다. “어머니, 어머니,” 그녀가 외쳤다. “왜 그분은 저를 그렇게 사랑하시는 걸까요? 저는 제가 왜 그분을 사랑하는지 알아요. 그분이 사랑 그 자체와 같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그분은 제게서 무엇을 보시는 걸까요? 전 그분의 가치가 없어요. 그런데도 – 왜인지 모르겠지만 – 그분보다 낮다고 느끼면서도, 겸손하지가 않아요. 자랑스러워요, 너무나 자랑스러워요. 어머니, 어머니께서는 아버지를 제가 매력적인 왕자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셨나요?”
나이 든 여자는 뺨에 바른 거친 분 아래로 창백해졌고, 그녀의 마른 입술이 고통의 경련으로 떨렸다. 시빌이 그녀에게 달려가 팔로 목을 감싸 안고 키스했다. “어머니, 용서해 주세요. 아버지 얘기를 하면 어머니께 고통스럽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그건 어머니가 아버지를 너무 사랑하셨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슬퍼하지 마세요. 저는 오늘 어머니가 20년 전에 행복하셨던 것만큼 행복해요. 아, 영원히 행복하게 해주세요!”
“얘야, 너는 사랑에 빠질 나이가 아니야. 게다가, 그 젊은이에 대해 뭘 알고 있니? 이름조차 모르잖아. 이 모든 게 불편해. 게다가 제임스가 호주로 떠나려는 참에, 내가 신경 써야 할 일이 너무 많은데, 넌 좀 더 배려심을 보였어야 했어. 하지만 내가 전에 말했듯이, 만약 그가 부자라면…”
“아, 어머니, 어머니, 저를 행복하게 해주세요!”
베인 부인은 시빌을 흘끗 보더니, 무대 배우에게 종종 두 번째 본성이 되는 거짓된 연극적 제스처로 그녀를 팔에 안았다. 그 순간, 문이 열리고 거친 갈색 머리를 한 젊은이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체격이 좋았고, 손과 발이 컸으며 움직임이 다소 서툴렀다. 그는 누이만큼 세련되지 못했다. 둘 사이의 가까운 관계를 짐작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베인 부인은 그에게 눈길을 고정하고 미소를 더 강하게 지었다. 그녀는 정신적으로 아들을 관객의 품위로 끌어올렸다. 그녀는 이 장면이 흥미롭다고 확신했다.
“시빌, 네 키스 좀 나한테도 남겨둘 수 있잖아.” 젊은이가 선의의 투정을 하며 말했다.
“아, 하지만 넌 키스 받는 걸 좋아하지 않잖아, 짐.” 그녀가 외쳤다. “넌 무서운 곰 같아.” 그리고 그녀는 방을 가로질러 달려가 그를 껴안았다.
제임스 베인은 누이의 얼굴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난 너랑 산책하러 나가고 싶어, 시빌. 이 끔찍한 런던을 다시 볼 일은 없을 거야. 정말 보고 싶지도 않아.”
“아들아, 그렇게 끔찍한 말을 하지 마.” 베인 부인이 중얼거리며 낡은 무대 의상을 한숨을 쉬며 집어 들고 수선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들이 그룹에 합류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약간 실망했다. 그랬다면 상황의 연극적 그림이 더 좋아졌을 텐데.
“왜 안 돼요, 어머니? 전 그 말이 진심이에요.”
“넌 날 아프게 해, 아들아. 네가 호주에서 부유한 지위로 돌아오길 바란다. 식민지에는 사회라고 할 만한 게 전혀 없다고 믿어 – 내가 사회라고 부를 만한 것은 없어 – 그러니 네가 재산을 모으면, 런던으로 돌아와 자신의 위치를 주장해야 해.”
“사회!” 젊은이가 중얼거렸다. “난 그런 걸 알고 싶지 않아요. 난 돈을 벌어서 어머니와 시빌을 무대에서 데려오고 싶어요. 난 그게 싫어요.”
“오, 짐!” 시빌이 웃으며 말했다. “얼마나 불친절한 거야! 하지만 정말로 나랑 산책하러 갈 거야? 그거 좋겠다! 난 네가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하러 갈까 봐 걱정했어 – 그 끔찍한 파이프를 준 톰 하디나, 네가 그걸 피운다고 놀리는 네드 랭턴 같은 사람들 말이야. 네 마지막 오후를 나와 함께 보내게 해줘서 정말 고마워. 어디로 갈까? 공원에 가자.”
“난 너무 초라해.” 그가 찡그리며 대답했다. “멋진 사람들만 공원에 가.”
“말도 안 돼, 짐.” 그녀가 그의 코트 소매를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그는 잠시 망설였다. “좋아.” 마침내 그가 말했다. “하지만 옷 입는 데 너무 오래 걸리지 마.” 그녀는 문밖으로 춤추듯 나갔다. 그녀가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노래 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작은 발이 위층에서 들렸다.
그는 방 안을 두세 번 왔다 갔다 했다. 그러고는 의자에 앉아 있는 조용한 인물에게로 돌아섰다. “어머니, 제 물건들 준비되었나요?” 그가 물었다.
“다 준비됐단다, 제임스.” 그녀가 작업에 눈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몇 달 동안 그녀는 이 젊은이와 단둘이 있을 때면 불편함을 느꼈다.
베인 부인의 거친 아들이었다. 그들의 눈이 마주쳤을 때 그녀의 얕은 비밀스러운 성격은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그가 뭔가를 의심하고 있는지 궁금해 했다. 그가 다른 말을 하지 않아 침묵이 그녀에게는 견딜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여자들은 공격함으로써 자신을 방어하고, 갑작스럽고 이상한 항복으로 공격한다. “제임스, 네가 선택한 선원 생활에 만족하길 바란다,” 그녀가 말했다. “그게 네 선택이라는 걸 명심해야 해. 넌 법무사 사무실에 들어갈 수도 있었어. 법무사들은 아주 존경받는 직업이고, 시골에서는 종종 최고의 가문들과 저녁 식사를 하기도 해.”
“난 사무실이 싫고, 사무원들도 싫어요,” 그가 대답했다. “하지만 당신 말씀이 맞아요. 제가 제 삶을 선택했죠. 제가 말씀드리는 건, 시빌을 잘 지켜봐 달라는 거예요. 그 애가 해를 당하지 않게 해주세요. 어머니, 그 애를 꼭 지켜봐 주세요.”
“제임스, 넌 정말 이상하게 말하는구나. 물론 내가 시빌을 지켜보고 있지.”
“매일 밤 극장에 신사가 와서 그 애와 이야기하러 뒤로 간다고 들었어요. 그게 맞나요? 그건 어떻게 된 거죠?”
“너는 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어, 제임스. 우리 직업에서는 아주 감사한 많은 관심을 받는 게 익숙해. 나도 한때 많은 꽃다발을 받곤 했단다. 그때는 연기가 정말로 이해받던 시절이었지. 시빌에 관해서는 지금 그 애의 애정이 진지한지 아닌지 모르겠어. 하지만 그 젊은이가 완벽한 신사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어. 그는 항상 내게 아주 공손하단다. 게다가 그는 부자인 것 같고, 그가 보내는 꽃들도 아름답단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의 이름도 모르잖아요,” 그 청년이 거칠게 말했다.
“아니,” 그의 어머니가 얼굴에 평온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는 아직 자신의 진짜 이름을 밝히지 않았어. 그게 꽤 로맨틱하다고 생각해. 그는 아마도 귀족일 거야.”
제임스 베인은 입술을 깨물었다. “시빌을 지켜봐 주세요, 어머니,” 그가 외쳤다. “그 애를 지켜봐 주세요.”
“아들아, 넌 날 너무 괴롭히는구나. 시빌은 항상 내 특별한 보살핌 아래 있어. 물론, 이 신사가 부자라면 그 애가 그와 관계를 맺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지. 그가 귀족 중 한 명이길 바라. 그는 정말 그렇게 보여, 말해야겠다. 시빌에게는 아주 훌륭한 결혼이 될 수 있어. 그들은 매력적인 커플이 될 거야. 그의 외모는 정말 아주 뛰어나단다. 모든 사람이 그걸 알아채지.”
그 청년은 혼자 뭔가를 중얼거리며 거친 손가락으로 창문을 두드렸다. 그가 막 뭔가를 말하려고 돌아섰을 때 문이 열리고 시빌이 뛰어들어왔다.
“너희 둘 다 너무 심각해!” 그녀가 외쳤다. “무슨 일이야?”
“아무것도 아니야,” 그가 대답했다. “때로는 심각해져야 할 때도 있잖아. 안녕히 계세요, 어머니. 5시에 저녁을 먹을게요. 셔츠만 빼고 다 챙겼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안녕히, 아들아,” 그녀가 억지로 위엄 있는 인사를 하며 대답했다. 그녀는 그가 자신에게 취한 태도에 매우 화가 났고, 그의 눈빛에서 뭔가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있었다.
“날 뽀뽀해 줘, 어머니,” 소녀가 말했다. 그녀의 꽃 같은 입술이 시든 뺨에 닿아 그 서리를 녹였다.
“내 아이야! 내 아이야!” 베인 부인이 천장을 올려다보며 상상의 갤러리를 찾았다.
“이리 와, 시빌,” 그녀의 오빠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그는 어머니의 과장된 행동을 싫어했다.
그들은 깜박이는, 바람에 흔들리는 햇빛 속으로 나가 우울한 유스턴 로드를 따라 걸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거칠고 헐렁한 옷을 입은 우울한 청년이 그토록 우아하고 세련된 소녀와 함께 있는 것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그는 장미와 함께 걷는 평범한 정원사 같았다.
짐은 낯선 사람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을 때마다 가끔 찡그렸다. 그는 쳐다보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었는데, 이는 천재들에게 늦게 찾아오고 평범한 사람들은 결코 떠나지 않는 특성이다. 하지만 시빌은 자신이 만들어내는 효과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그녀의 사랑은 입술에서 웃음으로 떨고 있었다. 그녀는 매력적인 왕자를 생각하고 있었고, 그를 더 많이 생각하기 위해 그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대신 짐이 타고 갈 배, 그가 분명히 찾을 금, 그가 목숨을 구해줄 악랄한 붉은 셔츠를 입은 부시레인저들로부터 도망치는 멋진 상속녀에 대해 재잘거렸다. 그는 선원이나 화물 감독관, 혹은 그가 될 것이라고 한 그 무엇으로 남지 않을 것이다. 오, 아니! 선원의 삶은 끔찍하다. 무시무시한 배에 갇혀 있다니, 거친 혹 모양의 파도가 안으로 들어오려 하고, 검은 바람이 돛대를 쓰러뜨리고 돛을 길게 비명 지르는 리본으로 찢어버리는 것을 상상해 봐! 그는 멜버른에서 배에서 내려 선장에게 공손히 작별 인사를 하고 곧바로 금광으로 갈 것이다. 일주일도 안 돼 그는 순금으로 된 커다란 덩어리를 발견할 것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큰 덩어리를. 그는 그것을 여섯 명의 기마 경찰이 지키는 마차에 실어 해안으로 가져올 것이다. 부시레인저들이 세 번이나 공격할 것이고, 엄청난 살육으로 패배할 것이다. 아니면 금광으로 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곳은 끔찍한 곳이야. 사람들이 술에 취해 서로를 술집에서 쏘고 나쁜 말을 사용하는 곳. 그는 멋진 양치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저녁, 집으로 말을 타고 돌아오다가 검은 말을 탄 강도에게 납치되는 아름다운 상속녀를 보고 그녀를 쫓아가 구출할 것이다. 물론 그녀는 그와 사랑에 빠질 것이고, 그도 그녀와 사랑에 빠질 것이다. 그들은 결혼해서 집으로 돌아와 런던의 거대한 집에서 살 것이다. 그래, 그를 기다리고 있는 멋진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주 착해야 하고, 화를 내거나 돈을 어리석게 쓰지 말아야 한다. 그녀는 그보다 겨우 한 살 더 많았지만, 인생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었다. 그는 또한 모든 우편으로 편지를 보내고 매일 밤 잠들기 전에 기도를 해야 한다. 신은 매우 선하시고 그를 지켜주실 것이다. 그녀도 그를 위해 기도할 것이고, 몇 년 후에 그는 아주 부자가 되어 행복하게 돌아올 것이다.
그 청년은 우울하게 그녀의 말을 듣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집을 떠나는 것이 마음 아팠다.
그러나 그를 우울하고 슬프게 만든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경험은 부족했지만, 그는 시빌의 처지가 위험하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다. 그녀에게 구애하는 이 젊은 멋쟁이는 그녀에게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신사였고, 그는 그 때문에 그를 미워했다. 미워했다.
그는 이상한 인종적 본능으로 인해 그를 경멸했다.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기에 그 감정은 그의 내면에서 더욱 지배적이었다. 그는 또한 어머니의 천박하고 허영심 많은 성격을 인식하고 있었고, 거기에서 시빌과 시빌의 행복에 대한 무한한 위험을 보았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부모를 사랑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들을 판단하게 된다. 때로는 용서하기도 한다.
그의 어머니! 그는 그녀에게 물어볼 것이 있었다. 몇 달 동안 침묵 속에서 곱씹어온 무언가였다. 극장에서 우연히 들은 말 한 마디, 어느 날 밤 무대 출입구에서 기다리다 그의 귀에 들어온 속삭이는 듯한 비웃음이 끔찍한 생각들을 풀어놓았다. 그는 마치 채찍으로 얼굴을 후려친 것처럼 그 말을 기억했다. 그의 눈썹은 쐐기 모양의 주름으로 찌푸려졌고, 고통스러운 떨림과 함께 그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넌 내 말을 하나도 듣고 있지 않구나, 짐,” 시빌이 외쳤다. “난 네 미래를 위해 가장 멋진 계획들을 세우고 있는데. 뭐라도 좀 말해봐.”
“뭘 말하길 원하니?”
“오! 넌 착한 아이가 되어서 우리를 잊지 않겠다고 말해줘,” 그녀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네가 날 잊을 가능성이 내가 널 잊을 가능성보다 더 크단다, 시빌.”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 “짐, 그게 무슨 말이니?” 그녀가 물었다.
“넌 새 친구가 생겼다고 들었어. 그 사람이 누구니? 왜 나한테 그 사람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어? 그 사람은 널 위해 좋은 일을 하지 않을 거야.”
“그만해, 짐!” 그녀가 외쳤다. “그 사람에 대해 나쁘게 말하면 안 돼. 난 그를 사랑해.”
“왜, 넌 그의 이름조차 모르잖아,” 소년이 대답했다. “그가 누구야? 내가 알 권리가 있어.”
“그는 매력적인 왕자님이라고 불려. 그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니? 오! 너 바보 같은 아이! 절대 잊지 말아야 해. 만약 네가 그를 봤다면, 그가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사람이라고 생각할 거야. 언젠가 너는 그를 만나게 될 거야—호주에서 돌아오면. 넌 그를 무척 좋아하게 될 거야. 모든 사람이 그를 좋아하고, 나는… 그를 사랑해. 오늘 밤 네가 극장에 올 수 있다면 좋겠어. 그가 거기 있을 거고, 난 줄리엣 역을 맡았어. 오! 내가 어떻게 연기할지 상상해봐! 사랑에 빠져서 줄리엣을 연기한다니! 그가 거기 앉아있다니! 그의 기쁨을 위해 연기한다니! 나는 극단 사람들을 놀라게 하거나 매혹시킬까 봐 두려워. 사랑에 빠지는 것은 자신을 뛰어넘는 거야. 가엾은 끔찍한 아이작스 씨가 술집에 있는 어중이떠중이들에게 ‘천재’라고 외칠 거야. 그는 나를 교리처럼 설교해왔어. 오늘 밤 그는 나를 계시처럼 선언할 거야. 난 그걸 느껴. 그리고 이 모든 건 그의 것이야, 오직 그의 것, 매력적인 왕자님, 내 멋진 연인, 우아함의 신이야. 하지만 난 그에 비하면 가난해. 가난해? 그게 무슨 상관이야? 가난이 문으로 들어올 때, 사랑은 창문으로 날아 들어와. 우리의 속담들은 다시 쓰여야 해. 그것들은 겨울에 만들어졌어, 이제 여름이야. 내겐 봄이지, 파란 하늘에 꽃들이 춤추는 것 같아.”
“그는 신사야,” 소년이 불퉁하게 말했다.
“왕자님이야!” 그녀가 음악적으로 외쳤다. “더 이상 뭘 원하니?”
“그는 널 노예로 만들려고 해.”
“난 자유로워질 생각에 떨린단다.”
“넌 그를 조심해야 해.”
“그를 보는 것은 그를 숭배하는 것이고, 그를 아는 것은 그를 신뢰하는 거야.”
“시빌, 넌 그에게 미쳤어.”
그녀는 웃으며 그의 팔을 잡았다. “너 이 사랑스러운 짐, 마치 네가 백 살이나 된 것처럼 말하는구나. 언젠가 너도 사랑에 빠질 거야. 그때 넌 그게 무엇인지 알게 될 거야. 그렇게 뚱한 표정 짓지 마. 네가 떠나가지만 나를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게 남겨둔다는 걸 생각하면 기뻐해야지. 인생은 우리 둘 다에게 힘들었어, 무섭도록 힘들고 어려웠지. 하지만 이제 달라질 거야. 넌 새로운 세계로 가고, 난 하나를 찾았어. 여기 의자 두 개가 있네. 앉아서 멋진 사람들이 지나가는 걸 보자.”
그들은 구경꾼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길 건너편의 튤립 화단이 불타는 불꽃 고리처럼 타올랐다. 흰 먼지—오리스 뿌리의 떨리는 구름 같았다—가 숨 가쁜 공기 속에 떠 있었다. 화려한 색깔의 파라솔들이 거대한 나비처럼 춤추고 내려앉았다.
그녀는 오빠에게 자신의 이야기, 희망, 미래에 대한 얘기를 털어놓았다. 그는 천천히, 힘겹게 말했다. 그들은 마치 체스 게임에서 말을 주고받듯이 단어를 주고받았다. 시빌은 압박감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의 기쁨을 전할 수 없었다. 그 굳은 입가에 어렴풋이 떠오른 미소가 그녀가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반응이었다. 잠시 후 그녀는 말을 멈추었다. 갑자기 그녀는 금발 머리와 웃는 입술을 봤다. 도리안 그레이가 두 숙녀와 함께 탄 마차에서 지나갔다.
그녀는 벌떡 일어섰다. “저기 있어!” 그녀가 외쳤다.
“누구?” 짐 베인이 물었다.
“매력적인 왕자님,” 그녀가 빅토리아 마차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는 벌떡 일어나 거칠게 그녀의 팔을 잡았다. “그를 내게 보여줘. 누구야? 가리켜 봐. 내가 봐야겠어!” 그가 외쳤다. 하지만 그 순간 버윅 공작의 사두마차가 사이에 끼어들었고, 그 마차가 지나간 후에는 도리안의 마차가 공원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가 가버렸어,” 시빌이 슬프게 중얼거렸다. “네가 그를 봤으면 좋았을 텐데.”
“나도 그랬으면 좋았겠다. 하늘에 신이 있다면, 그가 너에게 어떤 해라도 끼친다면 내가 그를 죽일 테니까.”
그녀는 그를 공포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말을 반복했다. 그 말은 단검처럼 공기를 갈랐다. 주변 사람들이 입을 벌리고 쳐다보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 서 있던 한 부인이 키득거렸다.
“가자, 짐, 가자,” 그녀가 속삭였다. 그는 그녀가 군중을 뚫고 지나갈 때 고집스럽게 그녀를 따라갔다. 그는 자신이 한 말에 대해 기뻐했다.
그들이 아킬레스 동상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돌아섰다. 그녀의 눈에는 연민이 있었고, 그것은 그녀의 입술에서 웃음이 되었다. 그녀는 그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너 바보 같아, 짐, 완전히 바보 같아. 성질 나쁜 아이, 그게 전부야. 어떻게 그렇게 끔찍한 말을 할 수 있니? 넌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라. 넌 그저 질투심 많고 불친절할 뿐이야. 아! 네가 사랑에 빠졌으면 좋겠어. 사랑은 사람을 좋게 만들고, 네가 한 말은 사악했어.”
“난 열여섯 살이야,” 그가 대답했다. “그리고 내가 뭘 하는지 알아. 엄마는 널 도와줄 수 없어. 엄마는 널 어떻게 돌봐야 할지 몰라. 이제 호주에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했을 거야.”
“오, 그렇게 심각해하지 마, 짐. 넌 마치 그 진지한 멜로드라마의 주인공들 중 하나 같아.
어머니가 그토록 좋아하던 우스꽝스러운 멜로드라마들에 대해 말했다. 나는 당신과 싸우고 싶지 않아요. 그를 만났어요, 오!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완벽한 행복이에요. 우리 싸우지 말아요. 당신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해치지 않을 거란 걸 알아요, 그렇죠?”
“당신이 그를 사랑하는 한은 그렇겠지,” 하고 그는 언짢은 듯이 대답했다.
“난 영원히 그를 사랑할 거예요!” 그녀가 외쳤다.
“그는?”
“그도 영원히요!”
“그러길 바라지.”
그녀는 그에게서 움츠러들었다. 그러다 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팔에 손을 얹었다. 그는 그저 소년에 불과했다.
마블 아치에서 그들은 옴니버스를 잡아탔고, 그것은 그들을 유스턴 로드의 초라한 집 근처에 내려주었다. 5시가 넘었고, 시빌은 연기를 하기 전에 두 시간 정도 누워 있어야 했다. 짐은 그녀가 그렇게 하길 고집했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을 때 그녀와 헤어지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는 분명 장면을 만들 것이고, 그는 모든 종류의 장면을 싫어했다.
시빌의 방에서 그들은 헤어졌다. 소년의 마음속에는 질투심이 있었고, 자신들 사이에 끼어든 것 같은 그 낯선 사람에 대한 격렬하고 살인적인 증오심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팔이 그의 목을 감싸고 그녀의 손가락이 그의 머리카락을 헤집을 때, 그는 부드러워져 진정한 애정으로 그녀에게 키스했다. 그가 계단을 내려갈 때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아래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들어오자 그녀는 그의 지각에 대해 불평했다. 그는 대답하지 않고 초라한 식사 자리에 앉았다. 파리들이 식탁 주위를 윙윙거리며 얼룩진 식탁보 위를 기어 다녔다. 옴니버스의 덜컹거리는 소리와 거리의 마차 소리를 통해, 그는 그에게 남은 시간을 삼키는 단조로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잠시 후, 그는 접시를 밀어내고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그는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가 의심한 대로라면 그에게 먼저 말했어야 했다. 두려움에 짓눌린 그의 어머니는 그를 지켜보았다. 말들이 기계적으로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낡은 레이스 손수건이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서 꼼지락거렸다. 시계가 6시를 알렸을 때, 그는 일어나 문으로 갔다. 그러다 돌아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에서 그는 자비를 구하는 필사적인 호소를 보았다. 그것이 그를 분노하게 했다.
“어머니, 물어볼 게 있어요.” 그가 말했다. 그녀의 눈은 방안을 막연히 헤맸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을 말해 주세요. 알 권리가 있어요. 아버지와 결혼하셨나요?”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도의 한숨이었다. 무서운 순간, 밤낮으로 몇 주, 몇 달 동안 두려워했던 그 순간이 마침내 왔지만, 그녀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그녀에게 실망이었다. 질문의 저속한 직설함은 직접적인 대답을 요구했다. 상황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잡했다. 그녀에게는 나쁜 리허설을 떠올리게 했다.
“아니요.” 그녀는 인생의 거친 단순함에 놀라며 대답했다.
“그럼 아버지는 악당이었군요!” 소년은 주먹을 움켜쥐며 소리쳤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자유롭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어. 우리는 서로를 무척 사랑했어. 그가 살아있었다면, 우리를 위해 준비해 줬을 거야. 아들아, 그를 욕하지 마. 그는 네 아버지였고, 신사였어. 사실, 그는 매우 좋은 집안 출신이었어.”
그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나는 상관없어요.” 그가 외쳤다. “하지만 시빌은…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는, 아니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는 그 남자도 신사겠죠? 좋은 집안 출신이고?”
잠시 끔찍한 치욕감이 그 여자를 덮쳤다. 그녀의 머리가 숙여졌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시빌에겐 어머니가 있어.” 그녀가 중얼거렸다. “나에겐 없었어.”
그 소년은 감동을 받았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몸을 굽혀 그녀에게 키스했다. “아버지에 대해 물어봐서 죄송해요.” 그가 말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이제 가봐야 해요. 안녕히 계세요. 이제 돌볼 자식이 하나밖에 없다는 걸 잊지 마세요. 그리고 만약 그 남자가 누나를 해친다면, 난 그가 누군지 알아내고, 추적해서, 개처럼 죽일 거예요. 맹세해요.”
그 과장된 위협의 어리석음, 그것을 동반한 격렬한 몸짓, 그 미친 멜로드라마 같은 말들이 그녀의 삶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이런 분위기에 익숙했다. 그녀는 더 자유롭게 숨을 쉬었고, 처음으로 몇 달 만에 정말로 아들을 존경했다. 그녀는 같은 감정적 수준에서 장면을 계속하고 싶었지만, 그가 그녀를 제지했다. 트렁크를 내려야 했고 목도리를 찾아야 했다. 하숙집 하녀가 분주히 들락거렸다. 마부와 흥정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은 속된 세부사항들 속에서 사라졌다. 아들이 떠나갈 때 그녀가 창문에서 낡은 레이스 손수건을 흔들었을 때, 그녀는 다시 실망감을 느꼈다. 그녀는 중요한 기회를 놓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돌볼 자식이 하나밖에 없다고 시빌에게 말함으로써 위안을 삼았다. 그녀는 그 문구를 기억했다.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위협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생생하고 극적으로 표현되었다. 그녀는 그들 모두가 언젠가 그것을 비웃을 것이라고 느꼈다.
6장
“베이즐, 소식 들었나?” 그날 저녁 홀워드가 세 사람을 위해 저녁 식사가 차려진 브리스톨의 작은 개인실로 안내되었을 때 헨리 경이 말했다.
“아니, 해리.” 화가는 모자와 코트를 인사하는 웨이터에게 건네며 대답했다. “무슨 일이야? 정치에 관한 건 아니길 바라네. 그런 건 관심 없어. 하원에는 그림 그릴 만한 사람이 거의 없어. 물론 많은 사람들이 약간의 회칠을 하면 좋아지겠지만.”
“도리안 그레이가 약혼했다네.” 헨리 경이 그를 지켜보며 말했다.
홀워드는 움찔하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도리안이 약혼을 했다고? 말도 안 돼!”
“절대적으로 사실이야.”
“누구와?”
“어떤 작은 여배우와.”
“그럴 리가 없어. 도리안은 그렇게 어리석지 않아.”
“도리안은 가끔 어리석은 짓을 하기에는 너무 현명하지, 베이즐.”
“결혼은 가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해리.”
“미국을 제외하고 말이지.” 헨리 경이 느긋하게 대꾸했다. “하지만 난 그가 결혼했다고 하지 않았어. 약혼했다고 했지. 거기엔 큰 차이가 있어. 난 결혼한 것을 분명히 기억하지만, 약혼한 적이 있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
“약혼했다는 기억이 전혀 없어. 아마도 나는 결코 약혼하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도리안의 출신과 지위, 그리고 재산을 생각해 봐. 그가 그렇게 신분이 낮은 사람과 결혼한다는 건 말도 안 되지.”
“그를 그 소녀와 결혼시키고 싶다면, 그렇게 말해 봐, 베이즐. 그러면 그는 틀림없이 그렇게 할 거야. 남자가 완전히 어리석은 짓을 할 때는 언제나 가장 고귀한 동기에서 비롯되지.”
“그 소녀가 좋은 아이였으면 좋겠어, 해리. 도리안이 그의 본성을 타락시키고 지성을 망칠 수 있는 저속한 피조물에게 얽매이는 걸 보고 싶지 않아.”
“오, 그녀는 그냥 좋은 게 아니라 아름다워.” 헨리 경이 베르무트와 오렌지 비터를 한 모금 마시며 중얼거렸다. “도리안이 그녀가 아름답다고 말했지. 그는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틀리지 않아. 네가 그린 그의 초상화가 다른 사람들의 외모에 대한 그의 감상을 빠르게 바꿔 놓았어.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좋은 효과를 가져왔지. 그 소년이 약속을 잊지 않는다면 오늘 밤 그녀를 보게 될 거야.”
“정말이야?”
“물론 진심이야, 베이즐. 지금 이 순간보다 더 진지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난 비참할 거야.”
“하지만 너는 이걸 인정하는 거야, 해리?” 화가가 방 안을 서성이며 입술을 깨물고 물었다. “너는 이걸 인정할 수 없을 거야, 당연히. 이건 어리석은 열병일 뿐이야.”
“나는 이제 아무것도 인정하거나 반대하지 않아. 그건 인생에 대해 터무니없는 태도를 취하는 거야. 우리는 우리의 도덕적 편견을 드러내기 위해 이 세상에 보내진 게 아니야. 난 보통 사람들이 하는 말에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매력적인 사람들이 하는 일에 절대 간섭하지 않아. 만약 어떤 성격이 나를 매혹시킨다면, 그 성격이 선택한 어떤 표현 방식도 내게는 절대적으로 즐거워. 도리안 그레이가 줄리엣 역을 하는 아름다운 소녀와 사랑에 빠져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제안한다. 왜 안 되겠어? 그가 메살리나와 결혼한다 해도, 그는 여전히 흥미로울 거야. 너도 알다시피 난 결혼의 옹호자가 아니야. 결혼의 진정한 단점은 그것이 사람을 이타적으로 만든다는 거야. 그리고 이타적인 사람들은 색깔이 없어. 그들은 개성이 부족해. 하지만 결혼이 더 복잡하게 만드는 기질들이 있어. 그들은 자신의 이기심을 유지하고 여기에 다른 많은 자아를 더해. 그들은 하나 이상의 삶을 살도록 강요받아. 그들은 더 고도로 조직화되고, 고도로 조직화되는 것이 인간 존재의 목적이라고 생각해. 게다가 모든 경험은 가치가 있고, 결혼에 대해 무엇을 말하든 간에 그것은 확실히 하나의 경험이야. 난 도리안 그레이가 이 소녀를 아내로 맞이하고, 6개월 동안 열정적으로 그녀를 숭배하다가 갑자기 다른 사람에게 매혹되기를 바라. 그는 훌륭한 연구 대상이 될 거야.”
“너는 그 말의 단 한 마디도 진심으로 하는 게 아니야, 해리. 너도 알잖아. 만약 도리안 그레이의 인생이 망가진다면, 누구보다도 너 자신이 가장 유감스러워할 거야. 너는 네가 가장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이야.”
헨리 경이 웃었다. “우리가 모두 다른 사람들에 대해 그렇게 좋게 생각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우리 자신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야. 낙관주의의 기초는 순전한 공포야. 우리는 우리에게 이익이 될 가능성이 있는 미덕들을 우리 이웃이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관대하다고 생각해. 우리는 은행가를 칭찬하여 우리 계좌에서 초과 인출을 할 수 있기를 바라고, 강도에게서 좋은 자질을 찾아 우리 주머니를 살려주기를 바라지. 난 내가 말한 모든 것을 진심으로 하는 거야. 난 낙관주의에 대해 최고의 경멸감을 가지고 있어. 망가진 인생에 대해 말하자면, 성장이 멈춘 인생만이 망가진 거야. 만약 네가 본성을 망치고 싶다면, 그저 그것을 개혁하면 돼. 결혼에 관해서는, 물론 그것은 어리석을 테지만, 남녀 사이에는 다른 더 흥미로운 유대 관계들이 있어. 난 분명히 그것들을 장려할 거야. 그것들은 유행하는 매력이 있거든. 하지만 여기 도리안 자신이 왔군. 그가 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줄 거야.”
“내 사랑하는 해리, 내 사랑하는 베이즐, 두 분 모두 나를 축하해 주셔야 해요!” 소년이 새틴 안감이 달린 이브닝 케이프를 벗으며 말했다. 그는 차례로 두 친구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난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없어요. 물론 갑작스럽죠. 정말로 즐거운 일들은 모두 그렇잖아요. 하지만 동시에 내 인생에서 줄곧 찾아왔던 유일한 것인 것 같아요.” 그는 흥분과 기쁨으로 상기되어 있었고 놀랍도록 잘생겨 보였다.
“난 당신이 항상 매우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도리안.” 홀워드가 말했다. “하지만 당신의 약혼 소식을 제게 알리지 않은 것에 대해 완전히 용서하지는 않아요. 해리에게는 알렸잖아요.”
“그리고 난 당신이 저녁 식사에 늦은 것을 용서하지 않아요.” 헨리 경이 소년의 어깨에 손을 얹고 미소 지으며 끼어들었다. “자, 앉아서 이 새로운 요리사가 어떤지 한번 보고, 그 다음에 어떻게 모든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에게 말해주세요.”
“정말 할 말이 많지 않아.” 도리안이 작은 원형 테이블에 자리를 잡으며 외쳤다. “일어난 일은 이렇다. 어제 저녁 너를 떠난 후, 해리, 옷을 갈아입고 네가 소개해 준 루퍼트 스트리트의 그 작은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어. 그리고 8시에 극장으로 갔지. 시빌이 로잘린드 역을 맡았어. 물론 무대 장치는 끔찍했고 올랜도는 터무니없었어. 하지만 시빌! 네가 그녀를 봤어야 해! 그녀가 소년 의상을 입고 등장했을 때, 그녀는 정말 놀라웠어. 그녀는 계피색 소매가 달린 이끼색 벨벳 더블릿을 입고, 날씬하고 갈색의 십자가 무늬 스타킹을 신고, 매의 깃털이 보석으로 고정된 귀여운 초록색 모자를 쓰고, 칙칙한 빨간색으로 안감을 댄 후드 망토를 걸치고 있었어. 그녀가 그토록 아름다워 보인 적이 없었어. 그녀는 베이즐, 너의 스튜디오에 있는 그 타나그라 조각상의 모든 섬세한 우아함을 지니고 있었어. 그녀의 머리카락은 어두운 장미 주변의 어두운 잎사귀처럼 그녀의 얼굴 주위에 모여 있었어. 그녀의 연기에 대해서는, 글쎄, 너는 오늘 밤 직접 보게 될 거야. 그녀는 순수한 예술가야. 난 지저분한 박스석에 앉아 완전히 매료되었어. 런던에 있다는 것도, 19세기에 있다는 것도 잊었어. 난 내 사랑과 함께 아무도 본 적 없는 숲 속에 있었어. 공연이 끝난 후, 난 뒤로 가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눴어. 우리가 함께 앉아 있을 때, 갑자기 그녀의 눈에 내가 전에 본 적 없는 표정이 나타났어. 내 입술이 그녀의 입술로 향했어. 우리는 키스했어. 그 순간 내가 느낀 것을 너에게 설명할 수 없어. 내 모든 인생이 장미빛 기쁨의 완벽한 한 점으로 좁혀진 것 같았어. 그녀는 온몸을 떨었고 하얀 수선화처럼 흔들렸어. 그리고 그녀는 무릎을 꿇고 내 손에 키스했어. 이 모든 걸 너에게 말해선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어쩔 수 없어. 물론
“물론 우리의 약혼은 철저한 비밀이야.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에게조차 말하지 않았어. 내 후견인들이 뭐라고 할지 모르겠어. 래들리 경은 틀림없이 분노할 거야. 하지만 난 상관없어. 일 년도 안 되어 성년이 되니까 그때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 내가 시를 떠나 사랑을 찾고 셰익스피어의 극에서 아내를 찾은 것이 옳았지, 베이즐? 셰익스피어가 말하도록 가르친 입술이 내 귀에 비밀을 속삭였어. 로잘린드의 팔이 나를 감쌌고, 난 줄리엣의 입술에 키스했어.”
“그래, 도리안, 네가 옳았던 것 같아,” 홀워드가 천천히 말했다.
“오늘 그녀를 만났니?” 헨리 경이 물었다.
도리안 그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덴의 숲에 그녀를 남겨두고 왔어. 베로나의 과수원에서 그녀를 찾을 거야.”
헨리 경은 생각에 잠겨 샴페인을 홀짝였다. “정확히 어느 시점에 결혼이란 단어를 언급했니, 도리안? 그녀는 뭐라고 대답했지? 아마 넌 그걸 완전히 잊어버렸을 수도 있겠구나.”
“내 사랑하는 해리, 난 그걸 사업 거래처럼 다루지 않았어. 정식으로 청혼하지도 않았고. 난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했고, 그녀는 자신이 내 아내가 될 자격이 없다고 했어. 자격이 없다니! 내게는 그녀에 비하면 온 세상이 아무것도 아니야.”
“여자들은 놀랍도록 실용적이야,” 헨리 경이 중얼거렸다. “우리보다 훨씬 더 실용적이지.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종종 결혼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들은 항상 우리에게 상기시키지.”
홀워드가 그의 팔을 잡았다. “그만해, 해리. 넌 도리안을 화나게 했어. 그는 다른 남자들과 달라. 그는 절대 누구에게도 불행을 안기지 않을 거야. 그의 본성이 너무 고결해.”
헨리 경은 테이블 너머로 쳐다보았다. “도리안은 절대 나에게 화내지 않아,” 그가 대답했다. “난 가장 좋은 이유로 그 질문을 했어. 사실, 질문을 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유일한 이유지.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야. 내겐 이론이 하나 있어. 항상 여자들이 우리에게 청혼하는 거지, 우리가 여자들에게 청혼하는 게 아니라고. 물론, 중산층의 삶에선 예외지. 하지만 중산층은 시대에 뒤떨어졌으니까.”
도리안 그레이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 고칠 수 없는 거야, 해리. 하지만 난 신경 쓰지 않아. 널 화나게 할 수 없어. 네가 시빌 베인을 보면, 그녀를 해치려는 사람은 짐승, 심장 없는 짐승이라는 걸 알게 될 거야. 어떻게 누군가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수치를 주고 싶어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어. 난 시빌 베인을 사랑해. 난 그녀를 황금 받침대 위에 올려놓고 내가 사랑하는 여인을 세상이 숭배하는 걸 보고 싶어. 결혼이 뭐지? 취소할 수 없는 맹세. 넌 그것 때문에 비웃지. 아, 비웃지 마. 난 취소할 수 없는 맹세를 하고 싶어. 그녀의 신뢰가 날 충실하게 만들고, 그녀의 믿음이 날 선하게 만들어. 그녀와 함께 있을 때, 난 네가 가르쳐 준 모든 것을 후회해. 난 네가 알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돼. 난 변했어. 그리고 시빌 베인의 손길만으로도 난 너와 네 모든 잘못되고, 매혹적이고, 독성 있고, 즐거운 이론들을 잊게 돼.”
“그리고 그것들은…?” 헨리 경이 샐러드를 덜면서 물었다.
“오, 삶에 대한 네 이론들, 사랑에 대한 네 이론들, 쾌락에 대한 네 이론들. 사실상 네 모든 이론들, 해리.”
“쾌락은 이론을 가질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이야,” 그가 느리고 선율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내 이론이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을 것 같아. 그것은 자연에 속한 거지, 내게 속한 게 아니야. 쾌락은 자연의 시험이고, 그것의 승인 표시야. 우리가 행복할 때 우린 항상 선하지만, 우리가 선할 때 우린 항상 행복한 건 아니야.”
“하지만 선하다는 게 무슨 뜻이지?” 베이즐 홀워드가 외쳤다.
“그래,” 도리안이 의자에 기대어 앉아 테이블 중앙에 놓인 짙은 보라색 홍채 꽃다발 너머로 헨리 경을 바라보며 메아리쳤다. “선하다는 게 무슨 뜻이야, 해리?”
“선하다는 것은 자신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야,” 그가 창백하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얇은 와인 잔 줄기를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불협화음은 다른 이들과 조화를 이루도록 강요당하는 거야. 자신의 삶, 그것이 중요한 거야. 이웃들의 삶에 대해서는, 만약 누군가가 속물이나 청교도가 되고 싶다면 그들에 대한 도덕적 견해를 과시할 수 있겠지만, 그것들은 우리와 상관없어. 게다가, 개인주의는 실제로 더 높은 목표를 갖고 있어. 현대의 도덕성은 자기 시대의 기준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어. 나는 교양 있는 사람이 자기 시대의 기준을 받아들이는 것을 가장 저속한 부도덕의 형태라고 생각해.”
“하지만 해리, 만약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산다면, 끔찍한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을까?” 화가가 제안했다.
“그래, 우리는 요즘 모든 것에 대해 과도한 요금을 지불하고 있어. 내 생각에 가난한 자들의 진정한 비극은 자기 부정 외에는 아무것도 감당할 수 없다는 거야. 아름다운 죄들은, 아름다운 것들처럼, 부자들의 특권이야.”
“돈 말고 다른 방식으로 대가를 치러야 해.”
“어떤 방식으로, 베이즐?”
“오! 후회로, 고통으로… 글쎄, 타락의 의식으로.”
헨리 경은 어깨를 으쓱했다. “내 친구, 중세 예술은 매력적이지만, 중세의 감정은 시대에 뒤떨어졌어. 물론 소설에서는 그것들을 사용할 수 있지. 하지만 소설에서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은 실제로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들뿐이야. 믿어 봐, 문명인은 결코 쾌락을 후회하지 않고, 미개인은 결코 쾌락이 무엇인지 모르지.”
“난 쾌락이 뭔지 알아,” 도리안 그레이가 외쳤다. “누군가를 숭배하는 거야.”
“그건 확실히 숭배받는 것보다 낫지,” 그가 과일을 가지고 장난치며 대답했다. “숭배받는 건 성가신 일이야. 여자들은 우리를 인류가 신들을 대하는 것처럼 대해. 그들은 우리를 숭배하지만, 항상 우리에게 뭔가를 해달라고 귀찮게 해.”
“내가 보기엔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먼저 우리에게 준 것이라고 말했어야 해,” 소년이 진지하게 중얼거렸다. “그들은 우리 본성에 사랑을 창조해. 그들은 그것을 되돌려 받을 권리가 있어.”
“그건 정말 맞아, 도리안!” 홀워드가 외쳤다.
“아무것도 완전히 진실하진 않아,” 헨리 경이 말했다.
“이건 그래,” 도리안이 말을 끊었다. “넌 인정해야 해, 해리,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그들 삶의 순금을 줘.”
“아마도,” 그가 한숨 쉬며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항상 그것을 아주 작은 잔돈으로 돌려받길 원해. 그게 문제야. 여자들은, 어떤 재치 있는 프랑스인이 한 번 말했듯이, 우리에게 걸작을 만들고자 하는 욕망을 불어넣지만 항상 그것을 실행하지 못하게 해.”
“해리, 넌 끔찍해! 난 왜 네가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어.”
“당신은 항상 나를 좋아할 거야, 도리안.” 그가 말했다. “자네들, 커피 마시겠나? 웨이터, 커피와 화인 샴페인, 그리고 담배 좀 가져다주게. 아니, 담배는 신경 쓰지 마. 내가 가지고 있어. 베이즐, 당신이 시가를 피우는 건 허락할 수 없어. 담배를 피워야 해. 담배는 완벽한 즐거움의 완벽한 유형이야. 그것은 절묘하고, 사람을 불만족스럽게 만들지. 더 바랄 게 뭐가 있겠어? 그래, 도리안, 자네는 항상 나를 좋아할 거야. 나는 자네에게 자네가 한 번도 저지를 용기가 없었던 모든 죄를 대변하니까.”
“해리, 넌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소년이 소리쳤다. 그는 웨이터가 테이블에 놓은 불을 뿜는 은색 용에서 불을 붙였다. “극장에 가자. 시빌이 무대에 오르면 자네는 인생에 대한 새로운 이상을 갖게 될 거야. 그녀는 자네가 한 번도 알지 못했던 어떤 것을 대변할 거야.”
“난 모든 것을 알아,” 헨리 경이 눈에 지친 표정을 띠며 말했다. “하지만 난 언제나 새로운 감정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런 게 없을 것 같아. 그래도 자네의 놀라운 소녀가 나를 흥분시킬 수 있을 거야. 난 연기를 좋아해. 그건 인생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니까. 가자. 도리안, 자네는 나와 함께 갈 거야. 베이즐, 정말 미안하지만 마차에는 둘만 탈 수 있어. 자네는 우리 뒤를 따라와야 할 거야.”
그들은 일어나 코트를 입고 서서 커피를 마셨다. 화가는 조용하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에게는 우울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이 결혼을 견딜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일어날 수 있었던 다른 많은 일들보다는 나은 것 같았다. 몇 분 후, 그들은 모두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는 약속대로 혼자 차를 몰고 갔고, 앞서 가는 작은 마차의 번쩍이는 불빛을 지켜보았다. 이상한 상실감이 그를 엄습했다. 그는 도리안 그레이가 다시는 과거처럼 그에게 모든 것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느꼈다. 인생이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의 눈이 어두워졌고, 붐비는 번화한 거리가 그의 눈에 흐릿해졌다. 택시가 극장 앞에 멈췄을 때, 그는 마치 수년은 더 나이를 먹은 것 같았다.
제7장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날 밤 극장은 붐볐고, 문에서 그들을 맞이한 뚱뚱한 유대인 지배인은 기름진 떨리는 미소를 지으며 귀에서 귀까지 활짝 웃고 있었다. 그는 뚱뚱한 보석 달린 손을 흔들며 큰 소리로 떠들면서 일종의 거만한 겸손함으로 그들을 그들의 박스석으로 안내했다. 도리안 그레이는 그를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혐오했다. 그는 마치 미란다를 찾으러 왔다가 캘리번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반면에 헨리 경은 그를 꽤 좋아했다. 적어도 그는 그렇다고 선언했고, 그와 악수하며 진정한 천재를 발견하고 시인 때문에 파산한 사람을 만나게 되어 자랑스럽다고 그를 안심시키기를 고집했다. 홀워드는 객석의 얼굴들을 보며 자신을 즐겁게 했다. 열기는 끔찍하게 압박적이었고, 거대한 중앙 샹들리에가 노란 불꽃의 꽃잎을 가진 괴물 같은 달리아처럼 타올랐다. 갤러리의 젊은이들은 코트와 조끼를 벗어 옆에 걸쳐두었다. 그들은 극장을 가로질러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옆에 앉은 화려한 소녀들과 오렌지를 나눠 먹었다. 객석에서 몇몇 여자들이 웃고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끔찍하게 날카롭고 불협화음이었다. 바에서 코르크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곳에서 자신의 신성함을 찾다니!” 헨리 경이 말했다.
“그래!” 도리안 그레이가 대답했다. “바로 여기서 그녀를 찾았어. 그녀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초월하는 신성함을 지녔지. 그녀가 연기할 때, 넌 모든 것을 잊게 될 거야. 이 거칠고 저속한 얼굴과 거친 몸짓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은 그녀가 무대에 오르면 완전히 달라져. 그들은 조용히 앉아서 그녀를 지켜봐. 그녀가 원하는 대로 그들은 울고 웃어. 그녀는 그들을 바이올린처럼 반응하게 만들어. 그녀는 그들을 영적으로 만들고, 그들이 우리와 같은 살과 피를 가진 존재라고 느끼게 해.”
“우리와 같은 살과 피라고! 오, 그러지 않기를 바라!” 헨리 경이 갤러리의 관객들을 오페라글라스로 살펴보며 외쳤다.
“신경 쓰지 마, 도리안,” 화가가 말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그리고 난 그 소녀를 믿어.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놀라울 거야. 그리고 네가 묘사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소녀라면 훌륭하고 고귀할 거야. 자신의 시대를 영적으로 만드는 것, 그건 가치 있는 일이야. 만약 이 소녀가 영혼 없이 살아온 사람들에게 영혼을 줄 수 있다면, 만약 그녀가 삶이 초라하고 추했던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의 감각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만약 그녀가 그들의 이기심을 벗겨내고 자신의 것이 아닌 슬픔에 대해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다면, 그녀는 네 모든 숭배를 받을 만해, 세상의 숭배를 받을 만해. 이 결혼은 아주 옳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인정해. 신들이 시빌 베인을 너를 위해 만들었어. 그녀 없이는 네가 불완전했을 거야.”
“고마워, 베이즐,” 도리안 그레이가 그의 손을 꼭 쥐며 대답했다. “난 네가 날 이해해줄 줄 알았어. 해리는 너무 냉소적이라 날 겁나게 해. 하지만 여기 오케스트라가 있어. 끔찍하지만 5분 정도밖에 지속되지 않아. 그 다음에 커튼이 올라가고, 넌 내가 내 모든 삶을 바치려는 소녀를, 내가 가진 모든 좋은 것을 준 소녀를 보게 될 거야.”
15분 후, 엄청난 박수 갈채 속에 시빌 베인이 무대에 등장했다. 그래, 그녀는 분명 보기에 사랑스러웠다. 헨리 경이 생각하기에 그가 본 것 중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 중 하나였다. 그녀의 수줍은 우아함과 놀란 듯한 눈빛에는 어린 사슴 같은 무언가가 있었다. 열광적인 관객들을 바라보자 그녀의 뺨에 은빛 거울에 비친 장미 그림자 같은 희미한 홍조가 돌았다. 그녀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났고 그녀의 입술이 떨리는 것 같았다. 베이즐 홀워드가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움직이지 않은 채, 마치 꿈속에 있는 사람처럼 도리안 그레이는 그녀를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헨리 경은 안경을 통해 들여다보며 “매력적이야! 매력적이야!”라고 중얼거렸다.
장면은 카풀렛 가의 홀이었고, 로미오는 순례자 복장을 하고 머큐쇼와 다른 친구들과 함께 들어왔다. 밴드는 음악 몇 마디를 연주했고 춤이 시작되었다. 어색하고 초라하게 옷을 입은 배우들 사이로 시빌 베인은 더 고귀한 세계에서 온 생명체처럼 움직였다. 그녀의 몸은 춤을 추며 흔들렸다.
식물이 물에 흔들렸다. 그녀의 목선은 하얀 백합의 곡선이었다. 그녀의 손은 서늘한 상아로 만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상하게 무기력했다. 그녀의 눈이 로미오에게 머물 때도 기쁨의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해야 할 짧은 대사 —
“착한 순례자여, 당신은 손에 너무 잘못을 범하고 있어요,
경건한 헌신을 이렇게 보이시네요.
성인들도 순례자의 손을 만지는 손이 있고,
손바닥과 손바닥을 맞대는 것이 거룩한 순례자의 입맞춤이에요.”
와 뒤이어 나오는 짧은 대화는 완전히 인위적인 방식으로 말해졌다. 목소리는 아름다웠지만, 어조의 관점에서 보면 절대적으로 잘못됐다. 색조가 잘못됐다. 그것은 시구에서 모든 생명력을 앗아갔다. 그것은 열정을 비현실적으로 만들었다.
도리안 그레이는 그녀를 지켜보며 창백해졌다. 그는 당혹스럽고 불안했다. 그의 친구들 중 누구도 그에게 뭔가를 말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녀는 그들에게 완전히 무능해 보였다. 그들은 끔찍하게 실망했다.
하지만 그들은 줄리엣의 진정한 시험대는 2막의 발코니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 장면을 기다렸다. 만약 그녀가 거기서 실패한다면,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녀는 달빛 아래 나왔을 때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연기의 과장된 모습은 참을 수 없었고, 계속될수록 더 나빠졌다. 그녀의 몸짓은 터무니없이 인위적이 되었다. 그녀는 말해야 할 모든 것을 과장했다. 아름다운 구절 —
“당신도 알다시피 밤의 가면이 내 얼굴을 가리고 있어요.
그렇지 않다면 처녀의 홍조가 내 뺨을 물들였을 거예요.
당신이 오늘 밤 내가 한 말을 들었기에.”
는 2류 웅변 교수에게 낭송을 배운 여학생의 고통스러운 정확성으로 낭송되었다. 그녀가 발코니에 기대어 그 놀라운 대사에 이르렀을 때 —
“당신을 기쁘게 여기지만,
오늘 밤의 이 약속은 기쁘지 않아요.
너무 성급하고, 너무 준비되지 않았고, 너무 갑작스러워요.
번개와 같아요, ‘번쩍한다’고 말하기도 전에 사라지는.
내 사랑, 안녕히!
이 사랑의 꽃봉오리가 여름의 숨결로 무르익어
우리가 다시 만날 때는 아름다운 꽃이 되길.”
그녀는 마치 그 말들이 그녀에게 아무런 의미도 전달하지 않는 것처럼 말했다. 그것은 긴장감 때문이 아니었다. 사실, 긴장하기는커녕 그녀는 완전히 자기 자신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나쁜 예술이었다. 그녀는 완전한 실패작이었다.
심지어 객석과 2층의 평범한, 교육받지 못한 관객들조차 연극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 그들은 지루해지기 시작했고, 크게 떠들고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유대인 지배인은 특별석 뒤에 서서 발을 구르며 분노로 욕설을 퍼부었다. 소녀만이 유일하게 동요하지 않았다.
2막이 끝났을 때, 야유 소리가 폭풍처럼 일었다. 헨리 경은 의자에서 일어나 코트를 입었다. “그녀는 정말 아름답지만, 연기를 못해. 가자.” 그가 말했다.
“나는 연극을 끝까지 보겠어.” 그 젊은이가 거칠고 쓰라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해리, 네게 저녁을 낭비하게 해서 정말 미안해. 너희 둘 다에게 사과해.”
“내 친애하는 도리안, 베인 양이 아픈 것 같아.” 홀워드가 끼어들었다. “우리는 다음에 와야겠어.”
“그녀가 아팠으면 좋겠어.” 그가 대꾸했다. “하지만 그녀는 단순히 무감각하고 차가운 것 같아. 그녀는 완전히 변했어. 어젯밤에는 위대한 예술가였어. 오늘 저녁에는 그저 평범하고 중간 수준의 배우일 뿐이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그렇게 말하지 마, 도리안. 사랑은 예술보다 더 훌륭한 거야.”
“둘 다 단순히 모방의 형태일 뿐이야.” 헨리 경이 말했다. “하지만 가자. 도리안, 넌 더 이상 여기 있으면 안 돼. 나쁜 연기를 보는 것은 도덕에 좋지 않아. 게다가, 난 네가 네 아내가 연기하기를 원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 그녀가 줄리엣을 나무인형처럼 연기한다고 해서 무슨 상관이야? 그녀는 아주 사랑스러워. 그리고 그녀가 인생에 대해 연기만큼 모른다면, 그녀는 매력적인 경험이 될 거야. 정말로 매력적인 사람은 두 종류뿐이야 — 모든 것을 아는 사람들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 하느님, 내 친애하는 소년, 그렇게 비극적으로 보지 마!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은 절대 부적절한 감정을 갖지 않는 거야. 베이즐과 나와 함께 클럽에 가자. 담배를 피우고 시빌 베인의 아름다움에 건배하자. 그녀는 아름다워. 넌 뭘 더 원하니?”
“가, 해리.” 그 젊은이가 외쳤다. “혼자 있고 싶어. 베이즐, 넌 가야 해. 아, 내 마음이 찢어지는 걸 못 보겠니?” 뜨거운 눈물이 그의 눈에 고였다. 그의 입술이 떨렸고, 박스 뒤로 달려가 벽에 기대어 얼굴을 손에 묻었다.
“가자, 베이즐.” 헨리 경이 이상한 부드러움으로 말했고, 두 젊은이는 함께 나갔다.
몇 순간 후 조명이 밝아지고 3막의 막이 올랐다. 도리안 그레이는 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창백하고, 오만하고, 무관심해 보였다. 연극은 질질 끌며 계속되었고, 끝없이 길어 보였다. 관객의 절반이 나갔고, 무거운 장화를 신고 걸으며 웃었다. 모든 것이 실패작이었다. 마지막 막은 거의 텅 빈 객석 앞에서 연기되었다. 막이 내려가자 키득거림과 신음 소리가 들렸다.
막이 내리자마자 도리안 그레이는 무대 뒤 분장실로 달려갔다. 소녀는 그곳에 홀로 서 있었고, 얼굴에는 승리의 표정이 있었다. 그녀의 눈은 멋진 불꽃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녀에게서 광채가 났다. 그녀의 벌어진 입술은 그들만의 비밀을 웃고 있었다.
그가 들어갔을 때, 그녀는 그를 바라보았고, 무한한 기쁨의 표정이 그녀의 얼굴을 스쳤다. “오늘밤 내가 얼마나 형편없이 연기했는지, 도리안!” 그녀가 외쳤다.
“끔찍했어!” 그가 그녀를 놀란 듯이 쳐다보며 대답했다. “끔찍했어! 정말 끔찍했어. 너 아픈 거야? 넌 그게 어땠는지 모를 거야. 난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너는 상상도 못할 거야.”
소녀가 미소지었다. “도리안,” 그녀가 대답했다. 그의 이름을 길게 끌며 마치 그 이름이 그녀의 붉은 꽃잎 같은 입술에 꿀보다 더 달콤한 듯이 목소리에 음악을 담았다. “도리안, 넌 이해했어야 해. 하지만 이제 이해하지, 그렇지?”
“무엇을 이해한다는 거야?” 그가 화를 내며 물었다.
“왜 내가 오늘 밤 그렇게 형편없었는지. 왜 나는 항상 형편없을 것인지. 왜 나는 다시는 잘 연기하지 못할 것인지.”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넌 아픈 거야, 내 생각에. 아플 때는 연기하면 안 돼. 넌 스스로를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내 친구들은 지루해했어. 나도 지루했어.”
그녀는 그의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기쁨으로 변모했다. 행복의 황홀경이 그녀를 지배했다.
“도리안, 도리안,” 그녀가 외쳤다.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연기가 내 인생의 유일한 현실이었어요. 오직 무대 위에서만 살았죠. 그게 모두 진실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느 날 밤엔 로잘린드였다가 다른 날 밤엔 포샤였어요. 베아트리체의 기쁨은 내 기쁨이었고, 코델리아의 슬픔도 내 것이었죠. 모든 걸 믿었어요. 나와 함께 연기한 평범한 사람들이 신같이 보였어요. 그려진 무대 세트가 내 세상이었죠. 그림자밖에 몰랐지만, 그것들이 진짜라고 생각했어요. 그때 당신이 왔어요. 오, 내 아름다운 사랑! 당신은 내 영혼을 감옥에서 해방시켰어요. 당신은 현실이 무엇인지 가르쳐줬어요. 오늘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가 항상 연기했던 공허한 구경거리의 허망함, 거짓됨, 어리석음을 꿰뚫어 봤어요. 오늘밤, 처음으로 로미오가 추하고, 늙고, 분장을 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과수원의 달빛이 거짓이고, 무대 세트가 저속하며, 내가 말해야 했던 대사들이 비현실적이고, 내 말이 아니며,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당신은 내게 더 높은 것을 가져다줬어요. 모든 예술이 단지 그 반영일 뿐인 무언가를요. 당신은 내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해줬어요. 내 사랑! 내 사랑! 매력적인 왕자님! 인생의 왕자님! 난 그림자에 질렸어요. 당신은 모든 예술보다 내게 더 소중해요. 연극의 인형들과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오늘밤 무대에 올랐을 때, 모든 게 내게서 사라졌다는 걸 이해할 수 없었어요. 멋진 연기를 할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알았어요. 갑자기 이 모든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어요. 그 깨달음은 너무나 황홀했어요. 관객들이 야유하는 걸 들었지만, 난 미소 지었어요. 우리의 사랑 같은 걸 그들이 어떻게 알겠어요? 날 데려가 줘요, 도리안. 우리 둘만 있을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가 줘요. 난 무대가 싫어요. 느끼지 않는 열정을 흉내 낼 순 있지만, 불처럼 나를 태우는 열정은 흉내 낼 수 없어요. 오, 도리안, 도리안, 이제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겠죠? 설사 할 수 있다 해도, 사랑에 빠진 척하는 건 모독일 거예요. 당신이 내게 그걸 보게 해줬어요.”
그는 소파에 몸을 던지고 얼굴을 돌렸다. “넌 내 사랑을 죽였어,” 그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그를 놀란 듯이 바라보며 웃었다.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에게 다가가 작은 손가락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그의 손을 입술에 눌렀다. 그는 손을 뿌리치며 몸을 떨었다.
그러고는 벌떡 일어나 문으로 갔다. “그래,” 그가 외쳤다. “넌 내 사랑을 죽였어. 넌 전에는 내 상상력을 자극했지. 이제는 내 호기심조차 자극하지 못해. 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아. 난 널 사랑했어. 넌 경이로웠고, 재능과 지성이 있었기 때문이야. 넌 위대한 시인들의 꿈을 실현시켰고 예술의 그림자에 형태와 실체를 부여했어. 넌 그걸 모두 던져버렸어. 넌 얕고 어리석어. 세상에! 널 사랑한 게 얼마나 미친 짓이었나! 내가 얼마나 바보였던가! 넌 이제 내겐 아무것도 아니야. 다시는 널 보지 않을 거야. 다시는 널 생각하지 않을 거야. 네 이름을 입에 올리지도 않을 거야. 넌 내게 무엇이었는지 모를 거야. 한때… 오, 그걸 생각하기도 싫어! 널 본 적 없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넌 내 인생의 로맨스를 망쳐버렸어. 사랑이 네 예술을 해친다고 말하다니, 사랑에 대해 얼마나 모르는 거야! 네 예술 없이 넌 아무것도 아니야. 난 널 유명하고 화려하고 훌륭하게 만들어줬을 거야. 세상이 널 숭배했을 거고, 넌 내 이름을 가졌을 거야. 넌 지금 뭐지? 예쁜 얼굴을 가진 삼류 배우에 불과해.”
소녀는 창백해지며 떨었다. 그녀는 두 손을 꽉 쥐었고, 목소리가 목에 걸린 듯했다. “당신 진심이 아니죠, 도리안?” 그녀가 중얼거렸다. “당신도 연기하고 있는 거예요.”
“연기라고! 그건 네 몫이야. 넌 그걸 너무 잘하잖아,” 그가 쓰게 대답했다.
그녀는 무릎에서 일어나 얼굴에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방을 가로질러 그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그의 팔에 손을 얹고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그녀를 밀쳐냈다. “날 만지지 마!” 그가 외쳤다.
그녀는 낮게 신음하며 그의 발 아래 쓰러졌다. 밟힌 꽃처럼 나뒹굴었다. “도리안, 도리안, 날 떠나지 마!” 그녀가 속삭였다. “내 연기가 형편없었던 건 너무 미안해요. 계속 당신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노력할게요. 정말로 노력할게요.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이 너무 갑자기 찾아왔어요. 당신이 날 키스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서로 키스하지 않았다면 그걸 알지 못했을 거예요. 다시 한 번 키스해 줘요, 내 사랑. 날 떠나지 마세요. 견딜 수 없어요. 오! 날 떠나지 마세요. 내 오빠는…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그는 농담을 한 거예요… 하지만 당신은, 오! 오늘밤 일을 용서할 수 없나요? 열심히 일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할게요. 내가 당신을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랑하기 때문에 나에게 잔인하게 굴지 마세요. 결국, 당신을 실망시킨 건 단 한 번뿐이에요. 하지만 당신 말이 맞아요, 도리안. 난 더 예술가다워야 했어요. 어리석었죠,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오, 날 떠나지 마세요, 날 떠나지 마세요.” 격렬한 흐느낌이 그녀를 숨 막히게 했다. 그녀는 상처 입은 동물처럼 바닥에 웅크렸고, 도리안 그레이는 아름다운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조각 같은 입술은 멋진 경멸로 휘어졌다. 사랑이 식은 사람들의 감정에는 항상 우스운 점이 있다. 시빌 베인은 그에게 터무니없이 멜로드라마틱해 보였다. 그녀의 눈물과 흐느낌이 그를 짜증나게 했다.
“난 가겠어,” 그가 마침내 침착하고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잔인하게 굴고 싶진 않지만, 더 이상 널 볼 순 없어. 넌 날 실망시켰어.”
그녀는 조용히 울며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의 작은 손이 맹목적으로 뻗어 그를 찾는 듯했다. 그는 뒤꿈치를 돌려 방을 나갔다. 잠시 후 그는 극장을 빠져나왔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 거의 알지 못했다. 그는 어둑한 거리를 지나 음산한 검은 아치와 불길해 보이는 집들을 지나 방황했다는 것을 기억했다. 쉰 목소리와 거친 웃음소리를 가진 여자들이 그를 불렀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비틀거리며 지나갔다. 그들은 괴물 같은 원숭이처럼 욕설을 내뱉고 중얼거렸다. 그는 현관 계단에 웅크리고 있는 기괴한 아이들을 보았고, 음침한 뒷골목에서 비명과 욕설을 들었다.
동이 트기 시작할 무렵, 그는 코벤트 가든 근처에 도착했다. 어둠이 걷히고 희미한 불꽃으로 물든 하늘이 완벽한 진주빛으로 둥글게 패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백합으로 가득 찬 거대한 수레들이 텅 빈 반들반들한 거리를 천천히 내려갔다. 공기는 꽃향기로 무거웠고, 그 아름다움은 그에게 고통을 잊게 해주는 진통제 같았다. 그는 시장으로 따라 들어가 사람들이 짐차에서 물건을 내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흰 작업복을 입은 짐꾼이 그에게 체리를 건넸다. 그는 고마워하며 왜 돈을 받지 않으려 하는지 의아해하며 무심코 먹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한밤중에 따진 것이었고, 달의 차가움이 배어 있었다. 줄무늬 튤립과 노란색, 빨간색 장미가 든 상자를 나르는 소년들의 긴 행렬이 그의 앞을 지나갔다. 그들은 거대한 옥색 채소 더미 사이를 헤치고 나아갔다. 회색의 햇볕에 바랜 기둥이 있는 현관 아래에서는 흐트러진 차림의 맨머리 소녀들이 경매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어슬렁거렸다. 다른 이들은 광장에 있는 커피하우스의 흔들리는 문 주변에 몰려 있었다. 무거운 짐마차용 말들이 거친 돌 위에서 미끄러지고 발을 구르며 방울과 마구를 흔들었다. 일부 마부들은 마대 더미 위에서 잠들어 있었다. 비둘기들은 무지개빛 목과 분홍빛 발로 씨앗을 쪼아 먹으며 돌아다녔다.
잠시 후 그는 마차를 불러 집으로 향했다. 그는 잠시 현관 계단에 서서 고요한 광장을 둘러보았다. 창문들은 모두 닫혀 있었고 블라인드가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하늘은 이제 순수한 오팔빛이었고, 집들의 지붕은 그 위로 은빛으로 반짝였다. 맞은편 어떤 굴뚝에서 연기가 가늘게 피어올랐다. 그것은 보랏빛 리본처럼 진주빛 공기를 가로질러 구불거렸다.
거대한 참나무 판벽으로 된 현관 홀 천장에 걸린 어느 총독의 배에서 약탈한 거대한 도금된 베네치아 등불에서는 여전히 세 개의 깜박이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흰 불꽃으로 테를 두른 얇은 푸른 꽃잎 같았다. 그는 그것들을 껐고, 모자와 망토를 테이블 위에 던진 뒤 서재를 지나 침실 문으로 향했다. 그의 침실은 1층에 있는 커다란 8각형 방이었다. 최근 사치에 대한 열망으로 그는 셀비 로열의 사용하지 않던 다락방에서 발견된 몇 가지 특이한 르네상스 양식의 태피스트리로 장식했다. 그가 문 손잡이를 돌리려는 순간, 눈이 베이즐 홀워드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에 멈췄다. 그는 깜짝 놀란 듯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는 약간 당황한 듯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코트에서 부토니에를 뺀 후 그는 망설이는 듯했다. 마침내 그는 돌아와 그림 앞으로 가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크림색 실크 블라인드를 통해 들어오는 희미한 빛 속에서 얼굴이 약간 변한 것처럼 보였다. 표정이 달라 보였다. 입가에 잔인함의 기미가 있는 것 같았다. 확실히 이상했다.
그는 돌아서서 창문으로 걸어가 블라인드를 올렸다. 밝은 새벽빛이 방 안을 가득 채우며 기괴한 그림자들을 어두운 구석으로 밀어냈다. 그러나 그가 초상화의 얼굴에서 보았던 그 이상한 표정은 여전히 그대로 있는 것 같았고, 오히려 더 강렬해 보였다. 떨리는 열렬한 햇빛은 그가 끔찍한 일을 저지른 후 거울을 들여다본 것처럼 입가의 잔인한 주름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움찔하며 탁자에서 헨리 경이 선물한 여러 개 중 하나인 상아로 된 큐피드 모양의 타원형 거울을 집어 들고 그 광택 나는 표면을 서둘러 들여다보았다. 그의 붉은 입술에는 그런 선이 없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그는 눈을 비비고 그림 가까이 다가가 다시 살펴보았다. 실제 그림을 보면 아무런 변화의 흔적도 없었지만, 전체적인 표정이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이는 단순히 그의 상상이 아니었다. 끔찍하게도 분명했다.
그는 의자에 몸을 던지고 생각에 잠겼다. 갑자기 베이즐 홀워드의 화실에서 그림이 완성된 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그것을 완벽하게 기억했다. 그는 자신은 젊음을 유지하고 초상화가 늙어가기를 바란다는 미친 소원을 빌었다. 자신의 아름다움은 손상되지 않고 캔버스 위의 얼굴이 그의 정욕과 죄의 짐을 짊어지기를. 그려진 이미지가 고통과 생각의 주름으로 얼룩지고, 자신은 당시 막 깨달은 소년 시절의 섬세한 꽃과 아름다움을 간직하기를. 설마 그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일까? 그런 일은 불가능했다. 그런 것을 생각하는 것조차 끔찍했다. 그러나 거기에 입가에 잔인함의 흔적이 있는 그림이 있었다.
잔인함! 그가 잔인했던가? 그건 그 소녀의 잘못이지,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는 그녀를 위대한 예술가로 꿈꾸었고, 그녀가 위대하다고 생각했기에 그의 사랑을 주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를 실망시켰다. 그녀는 얄팍하고 가치 없는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그의 발치에서 어린아이처럼 흐느끼며 누워있는 것을 생각하니 무한한 후회가 밀려왔다. 그는 그녀를 얼마나 냉담하게 바라보았는지 기억했다. 왜 그는 그렇게 만들어졌을까? 왜 그런 영혼이 그에게 주어졌을까? 하지만 그도 고통받았다. 연극이 지속된 3시간 동안 그는 수세기의 고통, 영겁의 고문을 겪었다. 그의 인생은 그녀의 인생보다 훨씬 더 가치 있었다. 그녀는 잠시 그를 상처 입혔을 뿐이지만, 그는 그녀를 영원히 상처 입혔다. 게다가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슬픔을 더 잘 견딘다. 그들은 감정 속에서 살아간다. 오직 그들의 감정만을 생각한다. 그들이 연인을 만드는 것은 단지 장면을 연출할 사람이 필요해서일 뿐이다. 헨리 경이 그에게 그렇게 말했고, 헨리 경은 여자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왜 시빌 베인에 대해 걱정해야 하는가? 그녀는 이제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그림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그의 인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고, 그의 이야기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것은 그에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도록 가르쳐주었다. 그것이 그에게 자신의 영혼을 증오하도록 가르칠 것인가? 그는 다시 그것을 볼 수 있을까?
아니, 그것은 단지 불안정한 감각에 의해 만들어진 환상에 불과했다. 그가 보낸 끔찍한 밤이 환영을 남겼을 뿐이었다. 갑자기
그의 뇌에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작은 주홍빛 반점이 생겼다. 그림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었다.
하지만 그림은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름답지만 상처 입은 얼굴과 잔인한 미소를 띤 채로. 밝은 금발이 이른 아침 햇살에 반짝였다. 푸른 눈이 그의 눈을 응시했다. 자신이 아닌 자신의 그려진 모습에 대한 무한한 연민이 그를 휩쓸었다. 이미 변해 있었고, 앞으로 더 변할 것이다. 금빛은 회색으로 바래고, 붉고 흰 장미는 시들 것이다. 그가 저지르는 모든 죄마다 얼룩이 생겨 아름다움을 망쳐 놓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죄를 짓지 않을 것이다. 그림은 변하든 변하지 않든 그에게 양심의 가시 같은 상징이 될 것이다. 그는 유혹을 물리칠 것이다. 헨리 경을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베이즐 홀워드의 정원에서 처음으로 그의 내면에 불가능한 것들에 대한 열정을 불어넣었던 그 미묘하고 독성 있는 이론들에 더 이상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는 시빌 베인에게 돌아가 그녀를 보상하고 결혼하여 다시 사랑하려 노력할 것이다. 그렇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의 의무였다. 그녀는 그보다 더 고통받았을 것이다. 가엾은 아이! 그는 이기적이고 잔인했다. 그녀가 그에게 행사했던 매력이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들은 함께 행복해질 것이다. 그녀와의 삶은 아름답고 순수할 것이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커다란 스크린을 초상화 바로 앞에 놓았다. 그것을 힐끗 보며 몸을 떨었다. “얼마나 끔찍한가!”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고 창가로 걸어가 창문을 열었다. 잔디 위로 나가자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신선한 아침 공기가 그의 모든 우울한 열정을 몰아내는 듯했다. 그는 오직 시빌만을 생각했다. 그의 사랑의 희미한 메아리가 그에게 돌아왔다. 그는 그녀의 이름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이슬에 젖은 정원에서 노래하는 새들은 꽃들에게 그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제8장
그가 깨어났을 때는 정오가 한참 지나 있었다. 그의 시종이 여러 번 발끝으로 조용히 방에 들어와 그가 깨어났는지 확인했고, 젊은 주인이 이렇게 늦잠을 자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했다. 마침내 그의 벨소리가 들렸고, 빅터가 조용히 들어와 오래된 세브르 도자기로 만든 작은 쟁반 위에 차 한 잔과 편지 더미를 가져왔다. 그리고 세 개의 큰 창문 앞에 걸려 있는 올리브색 새틴 커튼을 젖혔다. 커튼 안쪽은 반짝이는 파란색이었다.
“무슈가 오늘 아침에 잘 주무셨군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몇 시죠, 빅터?” 도리안 그레이가 졸린 듯이 물었다.
“한 시 십오 분입니다, 무슈.”
얼마나 늦었는가! 그는 일어나 앉아 차를 조금 마시고 편지들을 뒤적거렸다. 그중 하나는 헨리 경으로부터 온 것이었고 그날 아침 손으로 배달되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옆으로 치워두었다. 나머지는 무심히 열어보았다. 그것들은 흔히 유행하는 젊은이들에게 매일 아침 시즌 동안 쏟아지는 카드, 저녁 식사 초대장, 개인 관람권, 자선 음악회 프로그램 등의 평범한 모음이었다. 그는 아직 후견인들에게 보낼 용기를 내지 못한 루이 15세 양식의 은장식 화장대 세트에 대한 꽤 무거운 청구서도 있었다. 후견인들은 매우 구식인 사람들이어서 불필요한 것들이 우리의 유일한 필수품인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또한 제미인 스트리트의 돈을 빌려주는 사람들로부터 온 매우 정중한 말투의 서신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언제든지 즉시 어떤 금액이라도 가장 합리적인 이자율로 빌려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약 10분 후 그는 일어나 정교하게 수놓은 캐시미어 울로 만든 화려한 드레싱 가운을 걸치고 오닉스로 포장된 욕실로 갔다. 차가운 물이 긴 잠 후에 그를 상쾌하게 했다. 그는 자신이 겪었던 모든 것을 잊은 것 같았다. 이상한 비극에 참여했던 희미한 감각이 한두 번 그에게 떠올랐지만, 그것에는 꿈과 같은 비현실성이 있었다.
옷을 입자마자 그는 서재로 가서 열린 창문 옆에 있는 작은 원형 테이블에 차려진 가벼운 프랑스식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앉았다. 날씨는 매우 좋았다. 따뜻한 공기는 향신료 냄새로 가득한 듯했다. 한 마리의 벌이 날아와 그 앞에 있는 유황색 장미가 가득 찬 푸른 용 무늬 사발 주위를 윙윙거렸다. 그는 완벽하게 행복했다.
갑자기 그의 눈이 초상화 앞에 놓아둔 스크린에 멈췄고, 그는 움찔했다.
“무슈가 춥습니까?” 그의 시종이 물었다. 그는 오믈렛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창문을 닫을까요?”
도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춥지 않아.” 그가 중얼거렸다.
그것이 모두 사실이었을까? 초상화가 정말로 변했던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그의 상상력이 기쁨의 표정이 있었던 곳에서 사악한 표정을 보게 만든 것일까? 분명 그려진 캔버스는 변할 수 없다. 그것은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언젠가 베이즐에게 이야기해줄 좋은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를 미소 짓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을 얼마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는가! 처음에는 흐릿한 황혼 속에서, 그리고 밝은 새벽에 일그러진 입술 주위의 잔인함을 보았다. 그는 시종이 방을 떠나는 것을 거의 두려워했다. 혼자 있을 때 초상화를 조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확실성이 두려웠다. 커피와 담배가 들어오고 하인이 나가려고 할 때, 그는 미친 듯이 그에게 남아 있으라고 말하고 싶었다. 문이 그의 뒤에서 닫히려 할 때, 그는 그를 다시 불렀다. 하인은 명령을 기다리며 서 있었다. 도리안은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빅터, 나는 아무도 만나지 않을 거야.” 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인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그러고 나서 그는 테이블에서 일어나 담배에 불을 붙이고 스크린과 마주 보고 있는 호화롭게 쿠션이 깔린 소파에 몸을 던졌다. 스크린은 오래된 것이었고, 금박을 입힌 스페인 가죽으로 만들어졌으며, 다소 화려한 루이 14세 양식의 패턴이 찍혀 있고 새겨져 있었다. 그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스크린을 살펴보며 이전에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의 비밀을 숨긴 적이 있었는지 궁금해했다.
결국 그것을 치워야 할까? 왜 그대로 두지 않을까? 알아내서 무엇하나?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끔찍한 일이었다.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왜 그것에 대해 걱정할까? 하지만 만약 어떤 운명이나 더 치명적인 우연으로 인해 다른 사람의 눈이 뒤를 엿보고 끔찍한 변화를 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 베이즐 홀워드가 와서 자신의 그림을 보고 싶어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베이즐은 틀림없이 그렇게 할 것이다. 아니, 그 물건을 조사해야 했다. 그것도 당장. 이 끔찍한 의심의 상태보다는 무엇이든 나을 것이다.
그는 일어나 양쪽 문을 모두 잠갔다. 적어도 그림을 볼 때는 혼자여야 했다.
그는 자신의 수치의 가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스크린을 옆으로 밀고 자신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것은 정말이었다. 초상화가 변했다.
나중에 자주 회상했듯이, 그는 처음에 거의 과학적인 관심을 가지고 초상화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항상 적지 않은 경이로움을 느꼈다. 그런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은 그에게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캔버스 위에서 형태와 색채로 나타난 화학적 원자들과 그의 내면의 영혼 사이에 어떤 미묘한 유사성이 있었던 걸까? 그 영혼이 생각한 것을 그들이 실현했을까? 그 영혼이 꿈꾼 것을 그들이 현실로 만들었을까? 아니면 더 끔찍한 이유가 있었을까? 그는 몸을 떨었고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소파로 돌아가 누워 혐오감에 사로잡힌 채 그림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것이 그에게 깨달음을 주었다는 점이었다. 그는 시빌 베인에게 얼마나 부당하고 잔인했는지 깨달았다. 그녀에게 보상할 시간은 아직 늦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그의 아내가 될 수 있었다. 그의 비현실적이고 이기적인 사랑은 더 높은 영향력에 굴복하여 더 고귀한 열정으로 변화될 것이고, 베이즐 홀워드가 그린 초상화는 그의 인생의 안내자가 되어 어떤 이에게는 신성함이, 다른 이에게는 양심이, 우리 모두에게는 신에 대한 두려움이 되어줄 것이다. 후회를 잠재울 아편과 도덕심을 잠재울 약물이 있었다. 하지만 여기 죄의 타락을 보여주는 가시적인 상징이 있었다. 여기 인간이 자신의 영혼에 가져온 파멸의 영원한 표식이 있었다.
3시가 치고 4시가 쳤다. 그리고 30분을 알리는 종소리가 두 번 울렸지만, 도리안 그레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인생의 주홍빛 실타래를 모아 무늬를 짜려 했다. 그가 헤매고 있는 정열의 핏빛 미로를 빠져나갈 길을 찾으려 했다. 그는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몰랐다. 마침내 그는 책상으로 가서 사랑했던 소녀에게 열정적인 편지를 썼다. 그는 용서를 구하고 자신의 광기를 비난했다. 그는 슬픔의 격한 말과 더 격렬한 고통의 말들로 페이지를 채웠다. 자기 비난에는 사치스러움이 있다. 우리가 자신을 비난할 때, 우리는 다른 누구도 우리를 비난할 권리가 없다고 느낀다. 고해성사를 통해 우리는 사제가 아닌 고백 자체로부터 사죄를 받는다. 도리안이 편지를 다 쓰고 나서, 그는 용서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고, 그는 밖에서 헨리 경의 목소리를 들었다. “얘야, 꼭 너를 봐야겠어. 어서 들여보내 줘. 네가 이렇게 문을 닫고 있는 걸 견딜 수가 없어.”
그는 처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노크 소리는 계속되고 점점 커졌다. 그래, 헨리 경을 들여보내고 새로운 삶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필요하다면 그와 다투고, 헤어짐이 불가피하다면 헤어지기로 했다. 그는 벌떡 일어나 서둘러 스크린을 그림 앞으로 당기고 문을 열었다.
“정말 미안해, 도리안,” 헨리 경이 들어오며 말했다. “하지만 너무 신경 쓰지 마.”
“시빌 베인 얘기야?” 청년이 물었다.
“그래, 물론이지,” 헨리 경이 의자에 앉아 천천히 노란 장갑을 벗으며 대답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끔찍한 일이지만, 네 잘못은 아니야. 말해봐, 연극이 끝난 후 무대 뒤로 가서 그녀를 만났니?”
“그래.”
“그럴 줄 알았어. 그녀와 말다툼을 했니?”
“난 잔인했어, 해리. 완전히 잔인했지. 하지만 이제 괜찮아. 일어난 일에 대해 전혀 후회하지 않아. 그 일로 내 자신을 더 잘 알게 됐으니까.”
“아, 도리안, 네가 그렇게 받아들이다니 정말 기쁘구나! 난 네가 후회에 빠져 그 예쁜 곱슬머리를 뜯고 있을까 봐 걱정했어.”
“그런 건 다 지났어,” 도리안이 고개를 흔들며 미소 지었다. “이제 난 완전히 행복해. 무엇보다도 양심이 뭔지 알게 됐어. 네가 말한 것과는 달라. 그건 우리 안에 있는 가장 신성한 것이야. 해리, 앞으로는 그걸 비웃지 마. 적어도 내 앞에서는 말이야. 난 선한 사람이 되고 싶어. 내 영혼이 추해지는 걸 견딜 수 없어.”
“도리안, 정말 매력적인 예술적 윤리의 기초로구나! 축하해. 그런데 어떻게 시작할 거야?”
“시빌 베인과 결혼함으로써.”
“시빌 베인과 결혼이라고!” 헨리 경이 일어서서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외쳤다. “하지만 도리안, 내 사랑…”
“그래, 해리, 네가 뭘 말하려는지 알아. 결혼에 대해 끔찍한 얘기겠지. 하지만 그런 말은 하지 마. 앞으로 그런 말 다시는 하지 마. 이틀 전 나는 시빌에게 청혼했어. 그녀와의 약속을 어기지 않을 거야. 그녀는 내 아내가 될 거야.”
“네 아내라고! 도리안! … 내 편지 안 받았니? 오늘 아침에 편지를 써서 내 하인에게 보냈는데.”
“네 편지? 아, 그래, 기억나. 아직 읽지 않았어, 해리. 거기 내가 좋아하지 않을 만한 게 있을까 봐 걱정됐거든. 너는 네 경구로 인생을 조각내니까.”
“그럼 아무것도 모르는 거구나?”
“무슨 말이야?”
헨리 경은 방을 가로질러 걸어가 도리안 그레이 옆에 앉아 그의 두 손을 잡고 꼭 쥐었다. “도리안,” 그가 말했다. “내 편지는… 놀라지 마… 시빌 베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려고 한 거야.”
청년의 입에서 고통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는 벌떡 일어나 헨리 경의 손아귀에서 자신의 손을 뿌리쳤다. “죽었다고! 시빌이 죽었다고! 그건 사실이 아니야! 끔찍한 거짓말이야!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사실이야, 도리안,” 헨리 경이 심각하게 말했다. “모든 아침 신문에 나와 있어. 내가 너에게 편지를 쓴 건 누구도 만나지 말라고 하려고 했어. 물론 조사가 있을 거고, 넌 그 일에 휘말려선 안 돼. 파리에선 그런 일이 사람을 유행의 중심에 서게 하지만, 런던에선 사람들의 편견이 너무 심해. 여기선 스캔들로 데뷔해선 안 돼. 그건 노년에 흥미를 더하기 위해 아껴둬야 해. 극장에선 네 이름을 모르겠지? 모른다면 괜찮아. 누군가 너를 그녀의 방으로 가는 걸 봤니? 그게 중요한 점이야.”
도리안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공포에 휩싸여 멍한 상태였다.
마침내 그는 억눌린 목소리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해리, 검시라고 했나? 그게 무슨 뜻이지? 시빌이—? 오, 해리, 난 견딜 수가 없어! 하지만 빨리 말해줘. 모든 걸 한 번에 말해줘.”
“사고가 아니었다고 확신해, 도리안. 하지만 대중에게는 그렇게 알려져야 해. 시빌이 어머니와 함께 자정 무렵 극장을 나서면서 위층에 뭔가를 두고 왔다고 말했대. 그들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그녀가 내려오지 않았어. 결국 그들은 그녀가 분장실 바닥에 죽어 있는 걸 발견했지. 그녀가 실수로 뭔가를 삼켰대. 극장에서 쓰는 끔찍한 것 말이야.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청산가리나 백연이 들어있었을 거야. 아마도 청산가리였을 텐데, 그녀가 순식간에 죽은 것 같거든.”
“해리, 해리, 이건 끔찍해!” 소년이 외쳤다.
“그래, 물론 매우 비극적이지. 하지만 넌 이 일에 휘말리면 안 돼. 스탠더드 지에 의하면 그녀의 나이가 열일곱이래. 난 그보다 더 어렸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정말 어린아이 같아 보였고 연기에 대해서도 거의 모르는 것 같았어. 도리안, 이런 일에 신경 쓰지 마. 나와 함께 저녁을 먹으러 와. 그리고 나서 오페라에 들르자. 오늘 밤은 파티 공연이야. 모든 사람들이 올 거야. 내 누나의 박스석에 올 수 있어. 그녀가 몇몇 멋진 여성들을 데려올 거야.”
“그러니까 내가 시빌 베인을 죽인 거야,” 도리안 그레이가 중얼거렸다. “칼로 목을 긋듯이 확실하게 죽였어. 하지만 장미는 여전히 아름답고, 새들은 정원에서 노래하지. 오늘 밤 너와 저녁을 먹고, 오페라에 가고, 또 저녁을 먹겠지. 인생이 얼마나 극적인지! 이걸 책에서 읽었다면, 해리, 아마 울었을 거야. 하지만 실제로 일어났고, 나에게 일어났기 때문에, 너무나 놀라워서 눈물이 나오지 않아. 이건 내가 쓴 첫 번째 열정적인 연애편지야. 이상하게도 죽은 소녀에게 쓴 첫 번째 편지라는 게. 죽은 자라고 부르는 하얗고 조용한 사람들이 느낄 수 있을까? 시빌! 그녀가 느끼거나, 알거나, 들을 수 있을까? 오, 해리, 한때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지금은 몇 년 전 일처럼 느껴져. 그녀는 나에게 모든 것이었어. 그리고 그 끔찍한 밤이 왔지—정말 어젯밤이었나?—그녀가 너무 형편없이 연기해서 내 마음이 거의 부서졌어. 그녀가 모든 걸 설명했어. 정말 가슴 아픈 일이었어. 하지만 난 전혀 감동받지 않았어. 난 그녀가 얕다고 생각했지. 그러다 갑자기 무언가가 일어나서 날 두렵게 만들었어. 뭐였는지 말할 수 없어. 하지만 끔찍했어. 난 그녀에게 돌아가겠다고 했어. 내가 잘못했다고 느꼈거든. 그리고 이제 그녀는 죽었어. 세상에! 세상에! 해리, 난 어떻게 해야 하지? 넌 내가 처한 위험을 모르고, 날 바로잡아줄 것도 없어. 그녀가 그렇게 해줬을 텐데. 그녀는 자살할 권리가 없었어. 그건 이기적인 행동이었어.”
“내 사랑하는 도리안,” 헨리 경이 담배 케이스에서 담배를 꺼내며 대답했다. 그는 금도금된 성냥갑을 꺼내며 말을 이었다. “여자가 남자를 개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를 완전히 지루하게 만들어 인생에 대한 모든 흥미를 잃게 하는 거야. 네가 이 소녀와 결혼했다면, 비참해졌을 거야. 물론, 넌 그녀를 친절하게 대했겠지. 자신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친절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곧 네가 그녀에게 완전히 무관심하다는 걸 알아차렸을 거야. 그리고 여자가 남편에 대해 그런 사실을 알게 되면, 그녀는 아주 초라해지거나 다른 남자의 남편이 지불해야 할 매우 세련된 모자를 쓰게 되지. 사회적 실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어. 그건 지독했을 테니까—물론 난 그걸 허용하지 않았겠지만—하지만 어쨌든 그 모든 것이 완전한 실패로 끝났을 거라고 장담해.”
“그랬겠지,” 소년이 방 안을 서성이며 끔찍하게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난 그게 내 의무라고 생각했어. 이 끔찍한 비극이 내가 옳은 일을 하는 것을 막았다는 게 내 잘못은 아니야. 네가 한 번 말했던 게 기억나. 선한 결심에는 운명이 있다고. 그것들은 항상 너무 늦게 만들어진다고. 내 것들도 확실히 그랬어.”
“선한 결심은 과학적 법칙을 방해하려는 쓸모없는 시도야. 그것들의 기원은 순수한 허영심이야. 그 결과는 절대적으로 무(無)야. 그것들은 가끔 우리에게 사치스럽고 불모의 감정을 주는데, 그건 약한 사람들에겐 일종의 매력이 있지. 그게 그것들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전부야. 그것들은 단순히 사람들이 계좌가 없는 은행에 쓴 수표일 뿐이야.”
“해리,” 도리안 그레이가 다가와 그 옆에 앉으며 외쳤다. “왜 난 이 비극을 내가 원하는 만큼 느끼지 못하는 걸까? 난 무정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하니?”
“넌 지난 2주 동안 너무 많은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붙일 자격이 없어, 도리안,” 헨리 경이 달콤하고 우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소년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 설명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해리,” 그가 반박했다. “하지만 네가 날 무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기쁘군. 난 전혀 그렇지 않아.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 그래도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 내가 그래야 할 만큼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걸 인정해야 해. 이건 마치 훌륭한 연극의 놀라운 결말 같아. 그리스 비극의 끔찍한 아름다움이 있어. 내가 중요한 역할을 맡았지만 상처받지 않은 비극 말이야.”
“흥미로운 문제로군,” 헨리 경이 말했다. 그는 소년의 무의식적인 이기심을 가지고 노는 데서 극도의 즐거움을 느꼈다. “매우 흥미로운 문제야. 내 생각에 진짜 설명은 이래. 종종 인생의 진정한 비극들은 너무 비예술적인 방식으로 일어나서 우리를 그들의 조악한 폭력, 절대적인 일관성 부족, 터무니없는 의미 없음, 완전한 스타일 결여로 다치게 해. 그들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마치 저속함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말이야. 그들은 우리에게 순수한 야만적인 힘의 인상을 주고, 우리는 그것에 반발해. 때때로 우리의 삶에 예술적인 아름다움의 요소를 지닌 비극이 일어나. 만약 이런 아름다움의 요소들이 진짜라면, 그 전체는 단순히 우리의 극적 효과에 대한 감각에 호소할 뿐이야. 갑자기 우리는 더 이상 배우가 아니라 관객이 되는 것을 발견해. 아니, 오히려 둘 다가 되지.
둘 다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지켜보고, 그 장관의 단순한 경이로움에 매료됩니다. 현재의 경우,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누군가가 당신을 사랑해 자살했습니다. 나도 그런 경험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그랬다면 내 남은 인생 동안 사랑에 빠지게 되었을 겁니다. 나를 숭배했던 사람들은 –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몇몇은 있었죠 – 항상 내가 그들에 대해 관심을 잃고, 그들도 나에 대해 관심을 잃은 후에도 계속 살아가기를 고집했습니다. 그들은 뚱뚱하고 지루해졌고, 그들을 만나면 곧바로 회상에 빠집니다. 여자의 그 끔찍한 기억력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완전한 지적 정체를 드러내는지! 사람은 인생의 색채를 흡수해야 하지만, 그 세부사항은 절대 기억해선 안 됩니다. 세부사항은 항상 저속합니다.
“내 정원에 양귀비를 심어야겠어요,” 도리안이 한숨을 쉬었다.
“그럴 필요 없어,” 그의 동료가 대답했다. “인생은 항상 손에 양귀비를 들고 있지. 물론, 가끔은 일들이 끈질기게 남아있기도 해. 나는 한때 한 계절 내내 제비꽃만 착용했어, 죽지 않으려는 로맨스에 대한 예술적 애도의 형태로. 하지만 결국 그것도 죽었지. 무엇이 그것을 죽였는지 기억이 안 나네. 아마도 그녀가 나를 위해 온 세상을 희생하겠다고 제안한 것 같아. 그건 항상 끔찍한 순간이야. 영원의 공포로 가득 차게 되지. 믿겠어? – 일주일 전 햄프셔 부인 댁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데 그 여자 옆에 앉게 되었어. 그녀는 모든 것을 다시 들춰내고, 과거를 파헤치고, 미래를 긁어모으길 고집했지. 난 내 로맨스를 아스포델 꽃밭에 묻었는데. 그녀는 그것을 다시 끄집어내고 내가 그녀의 인생을 망쳤다고 확신시켰지. 그녀가 엄청난 저녁 식사를 했다고 말해야겠네. 그래서 난 전혀 불안해하지 않았어. 하지만 그녀가 보여준 취향의 부족함이란! 과거의 유일한 매력은 그것이 과거라는 점이야. 하지만 여자들은 막이 내렸을 때를 모르지. 그들은 항상 6막을 원하고, 연극의 흥미가 완전히 사라지면 그것을 계속하자고 제안해. 만약 그들이 자기 방식대로 하도록 허용된다면, 모든 희극은 비극적 결말을 맞이할 것이고, 모든 비극은 희극으로 끝날 거야. 그들은 매력적으로 인위적이지만, 예술 감각이 전혀 없어. 넌 나보다 더 운이 좋아. 도리안, 내가 알았던 여자들 중 어느 누구도 시빌 베인이 너를 위해 한 일을 나를 위해 하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해. 평범한 여자들은 항상 자신을 위로해. 그들 중 일부는 감상적인 색깔을 입음으로써 그렇게 해. 나이에 상관없이 자주색을 입는 여자나 35세가 넘어 분홍 리본을 좋아하는 여자를 절대 믿지 마. 그것은 항상 그들에게 과거가 있다는 뜻이야. 다른 이들은 갑자기 자신의 남편들의 좋은 자질을 발견하는 데서 큰 위안을 찾아. 그들은 마치 그것이 가장 매혹적인 죄인 양 부부의 행복을 사람들 앞에서 과시하지. 종교는 일부를 위로해. 한 여자가 내게 말하길 종교의 신비는 모두 연애의 매력을 지녔다고 하더군. 나는 그걸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게다가, 죄인이라고 들으면 우쭐해지지 않는 사람이 없지. 양심은 우리 모두를 자기중심적으로 만들어. 그래, 현대 생활에서 여자들이 찾는 위안거리는 정말 끝이 없어.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언급하지 않았네.”
“그게 뭔데, 해리?” 청년이 무심히 물었다.
“오, 당연한 위안이지. 자신의 연인을 잃었을 때 다른 사람의 연인을 빼앗는 거야. 상류 사회에서 그건 항상 여자의 명예를 회복시켜주지. 하지만 정말이지, 도리안, 시빌 베인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여자들과 얼마나 달랐을까! 그녀의 죽음에는 내게 정말 아름다운 무언가가 있어. 이런 경이로운 일들이 일어나는 세기에 살고 있다는 게 기쁘네. 그것들은 우리가 모두 가지고 노는 것들, 즉 로맨스, 열정, 사랑의 실재를 믿게 만들어.”
“난 그녀에게 너무나 잔인했어. 넌 그걸 잊고 있어.”
“여자들은 잔인함, 정말로 잔인한 것을 다른 무엇보다도 더 높이 평가한다고 봐.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원시적인 본능을 가지고 있어. 우리가 그들을 해방시켰지만, 그들은 여전히 주인을 찾는 노예로 남아있어. 그들은 지배당하는 걸 좋아해. 난 네가 훌륭했을 거라고 확신해. 난 네가 정말로 완전히 화난 모습을 본 적이 없지만, 얼마나 매력적으로 보였을지 상상할 수 있어. 그리고 결국, 그저 허황된 생각이라고만 여겼던 그저께 네가 한 말이 절대적으로 진실이었고, 모든 것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걸 이제 알겠어.”
“그게 뭐였지, 해리?”
“넌 내게 시빌 베인이 네게 모든 로맨스의 여주인공들을 대표한다고 말했어 – 어느 날 밤엔 데스데모나였고, 다른 날엔 오필리아였다고. 만약 그녀가 줄리엣으로 죽었다면, 이모젠으로 다시 살아났을 거라고.”
“이제 그녀는 다시는 살아나지 않을 거야,” 청년이 얼굴을 손에 묻으며 중얼거렸다.
“아니, 그녀는 다시는 살아나지 않을 거야. 그녀는 마지막 역할을 연기했어. 하지만 너는 그 초라한 분장실에서의 외로운 죽음을 단순히 어떤 야코비안 비극의 이상한 강렬한 단편으로, 웹스터나 포드, 혹은 시릴 터너의 놀라운 장면으로 생각해야 해. 그 소녀는 실제로 한 번도 살지 않았어, 그래서 그녀는 실제로 죽지도 않았어. 적어도 너에게 그녀는 항상 꿈이었고, 셰익스피어의 연극들을 떠돌며 그 존재로 인해 연극들을 더욱 사랑스럽게 만든 환영이었어. 셰익스피어의 음악이 더욱 풍부하고 기쁨에 찬 소리를 낼 수 있게 한 갈대였지. 그녀가 실제 삶에 닿는 순간, 그녀는 그것을 망쳤고, 그것도 그녀를 망쳤어. 그래서 그녀는 사라졌어. 오필리아를 위해 애도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 코델리아가 목 졸려 죽었기 때문에 재에 머리를 덮어. 브라반시오의 딸이 죽었다고 하늘을 향해 외쳐. 하지만 시빌 베인을 위해 눈물을 낭비하지 마. 그녀는 그들보다 덜 실제적이었어.”
침묵이 흘렀다. 저녁이 어두워졌다. 소리 없이, 은빛 발로, 그림자들이 정원에서 기어들어왔다. 사물들의 색채가 지쳐 사라졌다.
잠시 후 도리안 그레이가 고개를 들었다. “당신은 나를 내 자신에게 설명해주었어요, 해리,” 그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당신이 말한 모든 것을 느꼈지만, 어떻게든 두려워했고, 스스로에게 표현할 수 없었어요. 당신은 나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하지만 우리는 일어난 일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지 말아요. 그것은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그게 전부예요. 인생이 나를 위해 여전히 그렇게 놀라운 것을 준비하고 있을지 궁금해요.”
“인생은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어요, 도리안. 당신의 놀라운 외모로 할 수 없는 것은 없을 거예요.”
“하지만 해리, 만약 내가 초췌하고 늙고 주름진다면 어떻게 될까?”
“아, 그렇게 되면,” 헨리 워튼 경이 일어서며 말했다. “그때는 내 친애하는 도리안, 승리를 위해 싸워야 할 거야. 지금은 승리가 너에게 주어지지만 말이야. 아니야, 넌 네 아름다움을 유지해야 해. 우리는 너무 많이 읽어서 현명해지기 힘들고, 너무 많이 생각해서 아름다워지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어. 우리는 너를 놓칠 수 없어. 이제 옷을 갈아입고 클럽으로 가는 게 좋겠어. 우리는 이미 좀 늦었어.”
“해리, 오페라에서 너와 합류할게. 너무 피곤해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 네 누이의 박스 번호가 뭐지?”
“27번인 것 같아. 그랜드 티어에 있어. 문에 이름이 써 있을 거야. 하지만 네가 저녁 식사에 오지 않는다니 유감이야.”
“그럴 기분이 안 돼,” 도리안이 무기력하게 말했다. “하지만 네가 내게 해준 모든 말에 정말 고마워. 넌 정말 내 가장 친한 친구야. 아무도 날 너처럼 이해하지 못했어.”
“우리 우정은 이제 시작일 뿐이야, 도리안,” 헨리 워튼 경이 그의 손을 잡으며 대답했다. “안녕. 9시 30분 전에 볼 수 있길 바라. 파티가 노래한다는 걸 잊지 마.”
그가 문을 닫고 나가자 도리안 그레이는 벨을 눌렀고, 잠시 후 빅터가 램프를 들고 나타나 블라인드를 내렸다. 그는 빅터가 가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 하인은 모든 일을 끝없이 오래 하는 것 같았다.
그가 나가자마자 그는 스크린으로 달려가 뒤로 밀쳤다. 아니, 그림에는 더 이상의 변화가 없었다. 그림은 시빌 베인의 죽음 소식을 그 자신보다 먼저 받아들인 것이다. 그림은 삶의 사건들이 일어나는 대로 인식하고 있었다. 입술의 아름다운 선을 망치는 잔인함은 분명 그 소녀가 독약을 마신 바로 그 순간에 나타났을 것이다. 아니면 결과에 무관심한 것일까? 그저 영혼 속에서 일어나는 일만을 인식하는 것일까? 그는 궁금해하며, 언젠가 그 변화가 자신의 눈앞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기를 바랐다. 그 희망에 전율을 느꼈다.
불쌍한 시빌! 얼마나 로맨틱한 일이었던가! 그녀는 무대에서 죽음을 자주 흉내 냈다. 그리고 이제 죽음 자체가 그녀를 만져 데려갔다. 그녀는 그 끔찍한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연기했을까? 죽어가면서 그를 저주했을까? 아니, 그녀는 그를 사랑해서 죽었고, 이제 사랑은 그에게 항상 성스러운 것이 될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생명을 희생함으로써 모든 것을 보상했다. 그는 그 끔찍한 극장의 밤에 그녀가 그에게 겪게 한 일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를 생각할 때면, 사랑의 지고한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 세상의 무대에 보내진 경이로운 비극적 인물로 생각할 것이다. 경이로운 비극적 인물? 그녀의 아이 같은 표정과 사랑스럽고 환상적인 방식, 수줍고 떨리는 우아함을 기억하며 눈물이 그의 눈에 고였다. 그는 급히 눈물을 닦아내고 다시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제 정말로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왔다고 느꼈다. 아니면 이미 선택은 끝난 것일까? 그렇다, 인생이 그를 위해 결정했다 – 인생과 그의 무한한 인생에 대한 호기심이. 영원한 젊음, 무한한 열정, 미묘하고 은밀한 쾌락, 격렬한 기쁨과 더욱 격렬한 죄 – 그는 이 모든 것을 가질 것이다. 초상화가 그의 수치의 짐을 져야 할 것이다. 그것뿐이었다.
캔버스 위의 아름다운 얼굴이 겪게 될 모독을 생각하자 고통스러운 느낌이 그를 엄습했다. 한때 소년 시절 나르키소스를 흉내 내며 그는 지금 그에게 그토록 잔인하게 미소 짓는 그 그려진 입술에 키스했거나 키스하는 척했었다. 아침마다 그는 초상화 앞에 앉아 그 아름다움에 감탄했고, 때로는 그것에 거의 사랑에 빠진 듯했다. 이제 그것이 그가 굴복하는 모든 기분에 따라 변할 것인가? 그것이 숨겨져 잠긴 방에 감춰져야 할 괴물 같고 혐오스러운 것이 되어, 그 물결치는 금빛 머리카락을 더 밝게 만들었던 햇빛으로부터 차단되어야 할 것인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순간 그는 그와 그림 사이에 존재하는 끔찍한 공감이 멈추기를 기도하고 싶었다. 그것은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변했다. 어쩌면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변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그 기회가 얼마나 환상적이든, 어떤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든 간에 영원히 젊음을 유지할 기회를 포기할 수 있을까? 게다가 그것이 정말 그의 통제 하에 있었을까? 정말로 기도가 그 대체를 일으켰을까? 이 모든 것에 대한 어떤 이상한 과학적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사고가 살아있는 유기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사고가 죽은 무기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없을까? 아니, 사고나 의식적인 욕망 없이도, 우리 외부의 것들이 우리의 기분과 열정에 맞춰 진동하며, 원자가 원자를 비밀스러운 사랑이나 이상한 친화력으로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는 기도로 어떤 끔찍한 힘을 유혹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림이 변해야 한다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것뿐이다. 왜 그것에 대해 너무 깊이 파고들어야 하는가?
그것을 지켜보는 것은 진정한 즐거움이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마음의 비밀스러운 곳을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초상화는 그에게 가장 마법 같은 거울이 될 것이다. 그것이 그에게 그의 육체를 보여주었듯이, 이제 그의 영혼을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겨울이 그것에 찾아올 때, 그는 여전히 봄이 여름의 경계에서 떨고 있는 곳에 서 있을 것이다. 피가 그 얼굴에서 빠져나가 창백한 분필 같은 가면과 납빛 눈을 남길 때, 그는 소년 시절의 매력을 간직할 것이다. 그의 아름다움의 꽃 한 송이도 시들지 않을 것이다. 그의 생명의 맥박 하나도 약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의 신들처럼, 그는 강하고 빠르고 즐거울 것이다. 캔버스 위의 색칠된 이미지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다. 그는 안전할 것이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스크린을 다시 그림 앞으로 끌어당겼고, 침실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이미 그의 시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시간 후 그는 오페라에 있었고, 헨리 워튼 경이 그의 의자 위로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9장
다음 날 아침 그가 아침 식사를 하고 있을 때, 베이즐 홀워드가 방으로 들어왔다.
“도리안, 네가 여기 있어 정말 다행이야,” 그가 심각하게 말했다. “어젯밤에 들렀는데, 네가 오페라에 갔다고 하더군. 물론 그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지. 하지만 네가 실제로 어디 갔었는지 알려줬으면 좋았겠어.”
갔더군요. 무서운 저녁을 보냈습니다. 한 비극이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질까 봐 반쯤 겁에 질렸죠. 첫 소식을 들었을 때 전보라도 보냈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저는 우연히 클럽에서 집어든 글로브 지 늦은 판에서 그 소식을 알게 됐어요. 곧바로 이리로 왔지만 당신을 못 찾아서 비참했습니다. 이 모든 일에 대해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군요. 당신이 겪었을 고통이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당신은 어디 있었나요? 그 소녀의 어머니를 만나러 갔었나요? 잠시 당신을 따라갈까 생각도 했습니다. 신문에 주소가 나와 있더군요. 유스턴 로드 어딘가죠, 맞나요? 하지만 내가 덜어줄 수 없는 슬픔에 끼어들까 봐 두려웠습니다. 불쌍한 여자! 그녀가 얼마나 괴로워했을까요! 그것도 외동딸이었잖아요! 그녀가 이 모든 일에 대해 뭐라고 말하던가요?”
“베이즐, 내가 어떻게 알겠어?” 도리안 그레이가 중얼거렸다. 그는 베네치아 유리로 된 섬세한 금장식 거품 모양의 잔에서 연노란 와인을 홀짝이며 지독하게 지루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오페라에 있었어. 자네도 거기 왔어야 했는데. 난 처음으로 해리의 누이 그웬돌린 부인을 만났어. 우리는 그녀의 박스석에 있었지. 그녀는 정말 매력적이야. 그리고 파티는 신들린 듯이 노래했어. 끔찍한 주제에 대해 말하지 말게. 어떤 일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그 일은 일어나지 않은 거야. 해리가 말하듯이, 표현만이 사물에 실재성을 부여하는 거야. 그런데 그 소녀가 그 여자의 외동딸이 아니라는 점을 언급해야겠군. 아들이 하나 있어. 매력적인 청년이라고 들었어. 하지만 그는 무대에 서지 않아. 선원이거나 뭐 그런 거야. 그리고 이제, 자네와 자네가 그리고 있는 그림에 대해 얘기해 보세.”
“오페라에 갔다고?” 홀워드가 아주 천천히, 고통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시빌 베인이 어떤 음침한 숙소에서 죽어 있는데 오페라에 갔다고? 자네가 사랑했던 소녀가 잠들 무덤조차 갖기 전에, 다른 여자들이 매력적이라느니 파티가 신들린 듯이 노래했다느니 말할 수 있어? 이봐, 저 작은 하얀 몸에는 끔찍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그만해, 베이즐! 더는 듣고 싶지 않아!” 도리안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그런 것들에 대해 말하지 마. 이미 일어난 일이야. 지나간 건 지나간 거야.”
“어제를 과거라고 부르나?”
“시간의 실제 경과가 그것과 무슨 상관이 있지? 감정을 떨쳐내는 데 몇 년이 걸리는 건 얕은 사람들뿐이야. 자신을 지배하는 사람은 슬픔을 끝내는 것도, 쾌락을 만들어내는 것도 쉽게 할 수 있어. 나는 내 감정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아. 그것들을 이용하고, 즐기고, 지배하고 싶어.”
“도리안, 이건 끔찍해! 뭔가가 자네를 완전히 바꿔놓았어. 자네는 여전히 날마다 내 작업실에 와서 초상화를 그리던 그 멋진 소년처럼 보여. 하지만 그때 자네는 단순하고, 자연스럽고, 애정 어린 사람이었어. 자네는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존재였지. 지금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어. 마치 가슴도, 연민도 없는 사람처럼 말하고 있어. 이건 모두 해리의 영향이야. 그게 보여.”
그 청년은 얼굴을 붉히며 창가로 가서 잠시 동안 초록빛으로 반짝이는, 햇살이 비치는 정원을 바라보았다. “베이즐, 난 해리에게 많은 빚을 졌어,” 그가 마침내 말했다. “자네에게 진 것보다 더 많이. 자네는 나를 허영심 많게 만들었을 뿐이야.”
“그래, 나는 그것 때문에 벌을 받고 있어, 도리안. 아니면 언젠가는 벌을 받게 되겠지.”
“베이즐,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가 돌아서며 외쳤다. “자네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어. 뭘 원하는 거야?”
“내가 그리던 도리안 그레이를 원해,” 화가가 슬프게 말했다.
“베이즐,” 청년이 그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자네는 너무 늦게 왔어. 어제, 시빌 베인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자살이라고! 세상에! 그게 확실한 거야?” 홀워드가 공포에 찬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외쳤다.
“베이즐! 설마 그게 평범한 사고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물론 그녀는 자살한 거야.”
나이 든 남자는 얼굴을 손에 묻었다.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가 중얼거렸고, 전율이 그를 스쳐 지나갔다.
“아니야,” 도리안 그레이가 말했다. “그것에 대해 끔찍한 건 아무것도 없어. 이 시대의 위대한 로맨틱 비극 중 하나야. 보통 연기하는 사람들은 아주 평범한 삶을 살아. 좋은 남편이거나 충실한 아내, 아니면 뭔가 지루한 존재지. 자네도 알잖아, 내 말은 중산층의 미덕과 그런 종류의 것들 말이야. 시빌은 얼마나 달랐던가! 그녀는 자신의 가장 훌륭한 비극을 살았어. 그녀는 항상 여주인공이었지. 그녀가 마지막으로 연기한 밤, 자네가 그녀를 본 그 밤, 그녀는 형편없이 연기했어. 왜냐하면 사랑의 실체를 알았기 때문이야. 사랑의 비현실성을 알게 되자, 그녀는 죽었어. 줄리엣이 죽었을 수도 있었던 것처럼 말이야. 그녀는 다시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갔어. 그녀에게는 순교자다운 면이 있어. 그녀의 죽음에는 순교의 모든 무의미한 비극성과 낭비된 아름다움이 있어. 하지만 내가 말했듯이, 자네는 내가 고통받지 않았다고 생각해선 안 돼. 만약 자네가 어제 특정 시간에 왔다면, 아마도 오후 5시 반쯤이나 6시 15분쯤, 자네는 나를 울고 있는 모습으로 발견했을 거야. 심지어 해리도, 여기 와서 그 소식을 전해준 해리조차도 내가 무엇을 겪고 있는지 알지 못했어. 나는 엄청나게 고통받았어. 그러고 나서 그것은 지나갔어. 나는 감정을 반복할 수 없어. 아무도 할 수 없어, 감상주의자들을 제외하고는. 그리고 자네는 너무 불공평해, 베이즐. 자네는 나를 위로하러 여기 왔어. 그건 정말 자상한 일이야. 자네는 내가 위로받은 것을 발견하고는 화를 내고 있어. 얼마나 동정심 있는 사람다운가! 자네는 내게 해리가 말해준 어떤 자선가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리게 해. 그는 20년 동안 어떤 불만을 해소하거나 부당한 법을 바꾸려고 노력했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잊었어. 마침내 그는 성공했고, 그의 실망만큼 큰 것은 없었어. 그는 할 일이 전혀 없어서 거의 권태로 죽을 뻔했고, 확고한 인간혐오자가 되었지. 그리고 내 사랑하는 베이즐, 만약 자네가 정말로 나를 위로하고 싶다면, 차라리 일어난 일을 잊는 법을 가르치거나 그것을 적절한 예술적 관점에서 보는 법을 가르쳐줘. 고티에가 ‘예술의 위로’에 대해 쓰지 않았던가? 기억나는데, 언젠가 자네 작업실에서 작은 벨벳 표지의 책을 집어 들었다가 그 멋진 문구를 발견했어. 글쎄, 나는 자네가 말로 항구에서 만났던 그 젊은이처럼 되고 싶지 않아. 그 젊은이는 노란 새틴이 인생을 위로할 수 있다고 말하곤 했지.
인생의 모든 고통을 위한 위안이었다. 나는 만지고 다룰 수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한다. 오래된 비단, 녹색 청동, 칠기, 조각된 상아, 멋진 환경, 호사, 화려함 – 이 모든 것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많다. 하지만 그것들이 만들어내거나 적어도 드러내는 예술적 기질이 내게는 더욱 중요하다. 해리가 말하듯 자신의 인생의 관객이 되는 것, 그것이 인생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걸 듣고 놀랐겠지. 내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네가 알지 못했기 때문이야. 네가 날 알 때는 내가 학생이었지. 이제 난 남자가 됐어. 새로운 열정, 새로운 생각,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겼어. 난 달라졌어. 하지만 날 덜 좋아하지는 마. 난 변했지만, 넌 항상 내 친구여야 해. 물론 난 해리를 매우 좋아해. 하지만 네가 그보다 낫다는 걸 알아. 넌 그만큼 강하지는 않아 – 넌 인생을 너무 두려워하지 – 하지만 넌 더 나은 사람이야. 우리가 예전에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날 떠나지 마, 베이즐. 그리고 나와 싸우지 마. 난 내가 그런 사람이야. 더 이상 할 말은 없어.”
화가는 이상하게 감동을 받았다. 그 청년은 그에게 무한히 소중했고, 그의 개성은 자신의 예술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더 이상 그를 비난할 생각을 견딜 수 없었다. 결국, 그의 무관심은 아마도 곧 지나갈 기분일 뿐일 것이다. 그에게는 좋은 점이 너무나 많았고, 고귀한 점도 많았다.
“그래, 도리안,” 그는 마침내 슬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 이후로는 이 끔찍한 일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겠네. 단지 자네 이름이 그 일과 관련해 언급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 검시는 오늘 오후에 열릴 거야. 자네를 소환했나?”
도리안은 고개를 저었고, ‘검시’라는 단어를 듣자 짜증난 표정이 얼굴을 스쳤다. 그런 종류의 모든 것에는 너무나 조잡하고 저속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들은 내 이름을 모르고 있어,” 그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겠지?”
“내 이름 중 세례명만 알았어. 그녀가 그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확신해. 그녀는 한번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어. 그녀는 항상 내 이름이 ‘매력적인 왕자’라고 그들에게 말했대. 그녀답게 예쁜 말이었지. 베이즐, 시빌의 그림을 그려줘야 해. 몇 번의 키스와 몇 마디 슬픈 말의 기억 외에 그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
“도리안, 네게 뭔가를 그려보도록 하지, 네가 원한다면. 하지만 네가 직접 와서 다시 내 모델이 되어줘야 해. 너 없이는 일을 할 수가 없어.”
“난 절대 다시는 네게 모델이 될 수 없어, 베이즐. 그건 불가능해!” 그가 뒤로 물러서며 외쳤다.
화가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가 외쳤다. “내가 너를 그린 게 마음에 안 든다는 뜻이니? 어디 있지? 왜 그 앞에 스크린을 쳐놓은 거야? 좀 보여줘. 내가 지금까지 한 것 중 최고의 작품이야. 제발 스크린을 치워, 도리안. 네 하인이 내 작품을 저렇게 숨겨놓은 건 정말 창피한 일이야. 방에 들어왔을 때 뭔가 달라 보이더라고.”
“내 하인은 이 일과 아무 상관이 없어, 베이즐. 내가 방을 정리하게 한다고 생각하니? 그는 가끔 내 꽃을 정리해줄 뿐이야. 아니야, 내가 직접 한 거야. 초상화에 빛이 너무 강하게 비쳤거든.”
“너무 강해? 절대 그럴 리 없어, 친구. 거기는 초상화를 놓기에 아주 좋은 자리야. 좀 보여줘.” 그리고 홀워드는 방 구석으로 걸어갔다.
도리안 그레이의 입에서 공포의 외침이 터져 나왔고, 그는 화가와 스크린 사이로 달려갔다. “베이즐,” 그가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넌 그걸 보면 안 돼. 난 그러길 원하지 않아.”
“내 작품을 보지 말라고? 농담하는 거지? 왜 내가 그걸 보면 안 되는데?” 홀워드가 웃으며 외쳤다.
“베이즐, 네가 그걸 보려고 하면, 내 명예를 걸고 맹세하지만 평생 다시는 너와 말도 하지 않을 거야. 난 정말 진지해. 어떤 설명도 하지 않을 거고, 넌 어떤 설명도 요구하지 마. 하지만 기억해, 네가 이 스크린을 건드린다면, 우리 사이의 모든 게 끝나는 거야.”
홀워드는 깜짝 놀랐다. 그는 도리안 그레이를 절대적인 놀라움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전에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 청년은 실제로 분노로 창백해져 있었다. 그의 손은 꽉 쥐어져 있었고, 그의 눈동자는 파란 불꽃 같은 원반 같았다. 그는 온몸을 떨고 있었다.
“도리안!”
“말하지 마!”
“하지만 대체 무슨 일이야? 물론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보지 않을게,” 그가 다소 차갑게 말하며 뒤돌아 창문 쪽으로 갔다. “하지만 정말로 내 작품을 보지 못하게 하는 건 터무니없어 보이는구나. 특히 내가 가을에 파리에서 전시회를 열 예정이라서 말이야. 아마 그 전에 다시 광택을 내야 할 텐데, 그러려면 언젠가는 봐야 할 거 아니야? 왜 오늘이 안 되는 거지?”
“전시회에 출품하겠다고? 네가 그걸 전시하고 싶다고?” 도리안 그레이가 외쳤고, 이상한 공포감이 그를 엄습했다. 세상이 그의 비밀을 보게 되는 건가? 사람들이 그의 인생의 신비를 들여다보게 되는 건가? 그건 불가능했다. 뭔가를 – 그는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 당장 해야만 했다.
“그래, 네가 반대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조르주 프티가 내 최고의 그림들을 모아 10월 첫째 주에 열릴 특별 전시회를 위해 세즈 거리에서 전시할 예정이야. 초상화는 한 달만 떠나 있을 거야. 그 정도 시간은 쉽게 빌려줄 수 있을 거야. 사실, 넌 그 때 분명 런던을 떠나 있을 테고. 항상 스크린 뒤에 숨겨두고 있다면, 그걸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아.”
도리안 그레이는 이마를 손으로 쓸어 넘겼다. 거기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는 끔찍한 위험의 벼랑 끝에 서 있다고 느꼈다. “한 달 전에 넌 그걸 절대 전시하지 않겠다고 했잖아,” 그가 외쳤다. “왜 마음을 바꾼 거야? 너희 일관성 있는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만큼이나 변덕스러워. 단지 너희의 변덕이 좀 더 의미 없을 뿐이야. 넌 세상의 어떤 것도 널 설득해 전시회에 보내지 않을 거라고 가장 엄숙하게 약속했다는 걸 잊지 않았을 거야. 해리에게도 똑같이 말했잖아.” 그는 갑자기 말을 멈추었고, 그의 눈에 빛이 번쩍였다. 그는 헨리 경이 한번 반은 진지하게, 반은 농담으로 그에게 말했던 것을 기억했다. “베이즐이 왜 네 초상화를 전시하지 않으려 하는지 그 이유를 말해달라고 해봐. 그러면 이상한 15분을 보내게 될 거야.”
“왜 전시하지 않겠다고 하는지 말해 주었는데, 그것이 내게는 충격이었어.” 그렇다, 아마도 베이즐에게도 비밀이 있는 것 같았다. 그에게 물어보고 확인해 보기로 했다.
“베이즐,” 그가 아주 가까이 다가가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 둘 다 비밀이 있어. 네 비밀을 알려줘. 그러면 내 비밀도 말해 줄게. 내 초상화를 전시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뭐였어?”
화가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도리안, 내가 말하면 넌 날 덜 좋아하게 될 거야. 그리고 분명 날 비웃을 거고. 난 네가 그 둘 중 어느 것도 하는 걸 견딜 수 없어. 네가 내 그림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면, 난 그걸로 만족해. 난 언제나 널 볼 수 있으니까. 네가 내가 지금까지 그린 최고의 작품을 세상에서 숨기길 원한다면, 난 만족해. 네 우정은 나에게 어떤 명성이나 평판보다 소중하니까.”
“아니야, 베이즐, 너는 말해줘야 해,” 도리안 그레이가 고집을 부렸다. “나는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 그의 공포감은 사라지고 호기심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는 베이즐 홀워드의 비밀을 알아내기로 결심했다.
“앉아, 도리안,” 화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앉아서 내 질문 하나만 대답해 줘. 그림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니?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았지만 갑자기 드러난 무언가 말이야?”
“베이즐!” 소년이 의자 팔걸이를 떨리는 손으로 움켜쥐고 놀란 눈으로 그를 응시하며 소리쳤다.
“알겠어, 봤구나. 말하지 마. 내가 할 말을 들을 때까지 기다려. 도리안, 널 처음 만난 순간부터 네 성격이 나에게 가장 놀라운 영향을 미쳤어. 넌 내 영혼, 머리, 그리고 능력을 지배했지. 넌 내게 우리 예술가들의 기억을 아름다운 꿈처럼 괴롭히는 그 보이지 않는 이상의 가시적인 화신이 되었어. 난 널 숭배했어. 네가 말을 걸던 모든 사람을 질투했지. 난 너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어. 너와 함께 있을 때만 행복했어. 네가 내 곁을 떠났을 때도, 넌 여전히 내 예술 속에 존재했어…. 물론, 난 이런 걸 네게 전혀 알리지 않았어. 그건 불가능했을 거야. 넌 이해하지 못했을 테니까. 나 자신도 거의 이해하지 못했어. 난 완벽을 직접 마주했다는 것과 세상이 내 눈에 경이롭게 변했다는 것만 알았어. 아마도 너무 경이로웠을지도 몰라. 그런 광적인 숭배에는 위험이 있으니까. 그것들을 잃을 위험도, 지킬 위험도 있지…. 몇 주, 몇 달이 지나고 난 점점 더 너에게 빠져들었어. 그러다 새로운 국면이 찾아왔지. 난 너를 우아한 갑옷을 입은 파리스로, 사냥꾼의 망토와 광택 나는 멧돼지 창을 든 아도니스로 그렸어. 무거운 연꽃 화관을 쓰고 아드리아누스의 바지선 뱃머리에 앉아 초록빛 탁한 나일 강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그렸지. 넌 그리스 숲의 고요한 연못 위로 몸을 굽혀 물의 조용한 은빛 속에서 네 얼굴의 경이로움을 보기도 했어.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예술이 되어야 할 모습 그대로였어. 무의식적이고 이상적이며 멀리 있는. 어느 날, 내가 가끔 운명의 날이라고 생각하는 그날, 난 너를 실제 모습 그대로 그리기로 결심했어. 죽은 시대의 의상이 아닌, 네 own시대의 옷을 입은 너 자신의 모습으로 말이야. 그게 사실주의적 방식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네 성격의 경이로움이 안개나 베일 없이 직접 내게 드러났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난 그림을 그리면서 모든 색의 조각과 막이 내 비밀을 드러내는 것 같았어. 난 다른 사람들이 내 우상 숭배를 알게 될까 봐 두려워졌어. 도리안, 난 너무 많은 걸 말했다고, 너무 많은 내 자신을 그 속에 담았다고 느꼈어. 그때 난 그 그림을 절대 전시하지 않기로 결심했어. 넌 약간 화를 냈지. 하지만 그때 넌 그게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지 못했어. 해리는 내가 그 얘기를 했을 때 날 비웃었어. 하지만 난 신경 쓰지 않았어. 그림이 완성되고 나 혼자 그것과 마주 앉았을 때, 난 내가 옳다고 느꼈어…. 며칠 후 그림은 내 작업실을 떠났고, 그 견딜 수 없는 매력에서 벗어나자마자, 난 그 속에서 뭔가를 봤다고 상상한 것이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었어. 넌 매우 잘생겼고 내가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다는 것 말고는 말이야. 지금도 난 창작 과정에서 느끼는 열정이 실제로 만들어낸 작품에 나타난다고 생각하는 것이 실수라고 여겨. 예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항상 더 추상적이야. 형태와 색채는 형태와 색채에 대해 말해줄 뿐이야. 내게는 종종 예술이 예술가를 드러내는 것보다 더 완벽하게 숨긴다고 여겨져. 그래서 파리에서 이 제안을 받았을 때, 난 네 초상화를 내 전시회의 주요 작품으로 삼기로 결심했어. 네가 거절할 거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어. 이제 보니 넌 옳았어. 그 그림은 전시될 수 없어. 도리안, 내가 말한 것에 대해 화내지 마. 해리에게 한 번 말했듯이, 넌 숭배받도록 만들어졌어.”
도리안 그레이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뺨에 혈색이 돌아왔고 입가에 미소가 맴돌았다. 위험은 지나갔다. 그는 당분간 안전했다. 하지만 그는 방금 이런 이상한 고백을 한 화가에 대해 무한한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 과연 자신도 언젠가 친구의 성격에 그렇게 지배당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헨리 경은 매우 위험한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는 너무 영리하고 너무 냉소적이어서 진정으로 좋아할 수 없었다. 과연 자신을 이상한 우상 숭배로 가득 채울 누군가가 있을까? 그것이 인생이 준비해 둔 것들 중 하나일까?
“도리안, 네가 그림에서 이걸 봤다니 정말 놀라워,” 홀워드가 말했다. “정말로 그걸 봤니?”
“난 뭔가를 봤어,” 그가 대답했다. “뭔가 매우 이상해 보이는 것 말이야.”
“음, 이제 내가 그걸 봐도 괜찮겠니?”
도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베이즐. 난 절대로 당신이 그 그림 앞에 서는 걸 허락할 수 없어요.”
“언젠가는 허락해 주겠지?”
“절대로요.”
“음, 아마도 네 말이 맞을지도 몰라. 이제 안녕, 도리안. 넌 내 인생에서 내 예술에 진정으로 영향을 준 유일한 사람이야. 내가 좋은 것을 만들었다면, 그건 모두 네 덕분이야. 아, 넌 내가 네게 말한 모든 것을 얘기하는 데 얼마나 큰 대가를 치렀는지 모를 거야.”
“내 사랑하는 베이즐,” 도리안이 말했다. “넌 내게 뭘 말해준 거지? 단지 날 너무 많이 찬양한다고 느꼈다는 것뿐이잖아. 그건 심지어 칭찬도 아니야.”
“그건 칭찬이 아니었어. 고백이었지. 이제 그 말을 했으니 내 안에서 뭔가가 빠져나간 것 같아. 아마도 자신의 숭배를 말로 표현해서는 안 되는 건지도 몰라.”
“아주 실망스러운 고백이었군.”
“왜, 뭘 기대했던 거야, 도리안? 그림에서 다른 건 보이지 않았어? 다른 건 볼 게 없었어?”
“아니, 다른 건 볼 게 없었어. 왜 물어? 하지만 숭배 같은 말은 하지 마. 바보 같아. 너와 나는 친구야, 베이즐. 우리는 항상 그래야 해.”
“너에겐 해리가 있잖아,” 화가가 슬프게 말했다.
“오, 해리!” 소년이 웃음을 터뜨리며 외쳤다. “해리는 낮에는 믿을 수 없는 말을 하고 밤에는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을 하지. 내가 살고 싶은 그런 삶이야. 하지만 난 곤경에 처하면 해리에게 가고 싶지 않을 것 같아. 차라리 네게 갈 거야, 베이즐.”
“다시 내 모델이 되어 줄 거니?”
“불가능해!”
“도리안, 네가 거절하면 내 예술가로서의 삶을 망치는 거야. 누구도 두 개의 이상적인 것을 만나지 못해. 하나를 만나기도 힘들어.”
“베이즐, 설명할 순 없지만, 난 더 이상 네 모델이 될 수 없어. 초상화에는 뭔가 치명적인 게 있어. 그것만의 삶이 있지. 차 마시러 갈게. 그것도 즐거울 거야.”
“너한테는 더 즐거울 테지, 난 두려워,” 홀워드가 유감스럽게 중얼거렸다. “이제 안녕. 그림을 다시 보여주지 않는다니 유감이야.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네가 그것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잘 알겠어.”
그가 방을 나가자 도리안 그레이는 혼자 미소 지었다. 가엾은 베이즐! 그가 진짜 이유를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의 비밀을 밝히도록 강요당하는 대신, 우연히 친구의 비밀을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니 얼마나 이상한가! 그 이상한 고백이 그에게 얼마나 많은 걸 설명해주었는지! 화가의 터무니없는 질투, 광적인 헌신, 과장된 찬사, 이상한 침묵들. 이제 그는 그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리고 안타까웠다. 로맨스로 물든 우정에 비극적인 면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한숨을 쉬고 종을 울렸다. 초상화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숨겨야 했다. 다시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순 없었다. 친구들이 접근할 수 있는 방에 그것을 단 한 시간이라도 남겨두었다니 미친 짓이었다.
제10장
하인이 들어오자, 그는 하인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하인이 가림막 뒤를 들여다보았는지 궁금해했다. 하인은 완전히 무표정하고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리안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거울로 걸어가 들여다보았다. 빅터의 얼굴 반영이 완벽하게 보였다. 그것은 온순한 하인의 가면 같았다. 두려워할 것은 없었다. 그래도 경계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천천히 말하며, 그는 하인에게 가정부에게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고 전하라고 했다. 그리고 액자 제작자에게 가서 그의 직원 둘을 즉시 보내달라고 요청하라고 했다. 하인이 방을 나가면서 그의 눈이 가림막 쪽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그저 그의 상상일 뿐일까?
잠시 후, 검은 실크 드레스를 입고 주름진 손에 구식 실 장갑을 낀 리프 부인이 서둘러 도서관으로 들어왔다. 그는 그녀에게 교실 열쇠를 달라고 했다.
“옛 교실 말씀이세요, 도리안 나리?” 그녀가 외쳤다. “아이고, 거긴 먼지투성이예요. 정리하고 깨끗이 치워야 들어가실 수 있어요. 지금은 보시기에 적합하지 않아요, 도련님. 정말 그래요.”
“정리할 필요 없어요, 리프. 그저 열쇠만 주세요.”
“글쎄요, 도련님, 들어가시면 거미줄 투성이가 되실 거예요. 그곳은 거의 5년 동안 열리지 않았어요. 영주님이 돌아가신 이후로요.”
할아버지 얘기가 나오자 그는 움찔했다. 그에 대한 불쾌한 기억이 있었다. “상관없어요,” 그가 대답했다. “그저 그곳을 보고 싶을 뿐이에요. 열쇠만 주세요.”
“여기 열쇠가 있어요, 도련님,” 노부인이 떨리는 불확실한 손으로 열쇠뭉치를 뒤적이며 말했다. “여기 있어요. 금방 열쇠뭉치에서 빼겠어요. 하지만 설마 거기서 살려고 하시는 건 아니죠, 도련님? 여기가 이렇게 편안한데 말이에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가 짜증스럽게 외쳤다. “고마워요, 리프. 이제 됐어요.”
그녀는 잠시 머물며 집안일의 어떤 세부사항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그는 한숨을 쉬며 그녀에게 적당히 알아서 하라고 말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자 도리안은 열쇠를 주머니에 넣고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이 큰 자주색 새틴 덮개에 멈췄다. 금색으로 화려하게 수놓인 17세기 후반 베네치아 작품으로, 할아버지가 볼로냐 근처의 수도원에서 발견한 훌륭한 작품이었다. 그래, 그것으로 끔찍한 것을 감싸면 되겠다. 아마도 이미 여러 번 죽은 자를 위한 장례 보자기로 쓰였을 것이다. 이제 그것은 죽음 자체의 부패보다 더 끔찍한 것, 공포를 낳고 결코 죽지 않을 무언가를 숨기게 될 것이다. 벌레가 시체에 하는 일을, 그의 죄는 캔버스 위의 그림에 할 것이다. 그림의 아름다움을 망치고 우아함을 갉아먹을 것이다. 그것을 더럽히고 수치스럽게 만들 것이다. 그래도 그 물건은 계속 살아있을 것이다. 항상 살아있을 것이다.
그는 몸을 떨었고, 잠시 베이즐에게 그림을 숨기고 싶었던 진짜 이유를 말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베이즐은 헨리 경의 영향과 그의 성격에서 나오는 더욱 유독한 영향들을 견디는 데 도움을 줬을 것이다. 베이즐이 그에게 품은 사랑은, 정말로 사랑이었는데, 고귀하고 지적인 것이었다. 단순히 감각에서 태어나 감각이 지치면 죽는 육체적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미켈란젤로가 알았고, 몽테뉴가 알았고, 빙켈만이 알았고, 셰익스피어 자신도 알았던 그런 사랑이었다. 그래, 베이즐은 그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늦었다. 과거는 항상 지워질 수 있다. 후회, 부정, 혹은 망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미래는 불가피했다. 그의 안에는 출구를 찾을 끔찍한 열정들이 있었고, 그 악의 그림자를 현실로 만들 꿈들이 있었다.
그는 소파에서 거대한 자주색과 금색 천을 들어 올렸다. 그것을 손에 들고 가림막 뒤로 갔다. 그림의 얼굴이
캔버스의 얼굴이 더 추악해졌는가? 도리안에게는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에 대한 혐오감은 더욱 심해졌다. 금발, 푸른 눈, 장미빛 입술 – 모두 그대로였다. 단지 표정만 달라졌을 뿐이었다. 그것의 잔인함은 끔찍했다. 그 속에서 보이는 비난과 질책에 비하면 베이즐이 시빌 베인에 대해 했던 비난이 얼마나 얕고 하찮은 것이었던가! 그의 영혼이 캔버스에서 그를 바라보며 심판하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표정이 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고, 그는 값비싼 천을 그림 위로 던졌다. 그 순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하인이 들어오자 밖으로 나갔다.
“손님들이 도착하셨습니다, 나리.”
그는 그 사람을 즉시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림이 어디로 옮겨지는지 알아서는 안 됐다. 그에게는 뭔가 교활한 구석이 있었고, 그의 눈은 생각에 잠긴 듯 배신의 기색이 보였다. 도리안은 책상에 앉아 헨리 경에게 짧은 쪽지를 써서 읽을거리를 보내달라고 부탁하고 오늘 저녁 8시 15분에 만나기로 한 것을 상기시켰다.
“답장을 기다리세요,” 그는 쪽지를 건네며 말했다. “그리고 손님들을 이리로 안내하세요.”
2-3분 후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렸고, 사우스 오들리 거리의 유명한 액자 제작자인 허버드 씨가 다소 거친 모습의 젊은 조수와 함께 들어왔다. 허버드 씨는 붉은 구레나룻을 가진 혈색 좋은 작은 사내였는데, 그의 예술에 대한 찬미는 그와 거래하는 대부분의 예술가들의 고질적인 빈곤으로 인해 상당히 완화되어 있었다. 통상 그는 가게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도리안 그레이를 위해서는 항상 예외를 두었다. 도리안에게는 모든 사람을 매혹시키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제가 어떤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요, 그레이 씨?” 그는 살찐 주근깨 손을 비비며 말했다. “제가 직접 찾아뵙는 영광을 누리고 싶었습니다. 아름다운 액자를 하나 구했습니다, 나리. 경매에서 얻은 겁니다. 옛 플로렌틴 양식이죠. 폰트힐에서 온 것 같습니다. 종교화에 아주 잘 어울릴 겁니다, 그레이 씨.”
“허버드 씨, 직접 찾아와 주셔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꼭 들러서 그 액자를 보겠습니다. 지금은 종교화에 그다지 관심이 없지만요. 하지만 오늘은 그림 하나를 집 꼭대기로 옮기고 싶어서요. 꽤 무거워서 두 분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전혀 문제없습니다, 그레이 씨. 어떤 도움이라도 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어느 작품인가요, 나리?”
“이겁니다,” 도리안이 가리개를 치우며 대답했다. “그대로 옮길 수 있겠습니까? 덮개째 말입니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긁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전혀 문제없을 겁니다, 나리,” 조수의 도움을 받아 그림을 긴 놋쇠 사슬에서 풀어내기 시작하며 상냥한 액자 제작자가 말했다. “그럼 어디로 옮겨드릴까요, 그레이 씨?”
“제가 길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허버드 씨. 아니면 제 뒤를 따라오시는 게 좋겠습니다. 아쉽게도 집 꼭대기에 있거든요. 정면 계단으로 올라가야겠습니다. 폭이 더 넓으니까요.”
그는 그들을 위해 문을 열어 주었고, 그들은 복도로 나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정교한 액자 때문에 그림이 매우 무거워졌고, 때때로 도리안은 허버드 씨의 공손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손을 대어 그들을 도왔다. 허버드 씨는 신사가 유용한 일을 하는 것을 보는 것을 진정으로 싫어하는 상인다운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꽤나 무거운 짐이군요, 나리,” 작은 사내가 숨을 헐떡이며 맨 위층에 도착했을 때 말했다. 그는 반짝이는 이마를 닦았다.
“네, 꽤 무거운 것 같습니다,” 도리안은 그의 삶의 기이한 비밀을 간직하고 그의 영혼을 인간의 눈으로부터 숨길 방으로 통하는 문을 열며 중얼거렸다.
그는 4년 이상 이곳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실, 그가 어린 시절 놀이방으로 처음 사용한 이후, 그리고 조금 더 자랐을 때 서재로 사용한 이후로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것은 마지막 켈소 경이 그의 어린 손자를 위해 특별히 지은 넓고 균형 잡힌 방이었다. 켈소 경은 손자가 그의 어머니와 놀랍도록 닮았다는 이유로, 그리고 다른 이유들로 인해 항상 그를 미워하고 멀리하고 싶어 했다. 도리안에게는 거의 변한 것이 없어 보였다. 그가 소년 시절 자주 숨었던 화려한 그림이 그려진 패널과 녹슨 금박 장식이 있는 거대한 이탈리아식 cassone가 있었다. 그의 헌 교과서들로 가득 찬 새틴 우드 책장도 있었다. 그 뒤 벽에는 정원에서 체스를 두는 바랜 왕과 여왕, 그리고 매를 장갑 낀 손목에 얹고 지나가는 매사냥꾼들의 일행이 묘사된 낡은 플랑드르 태피스트리가 걸려 있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모든 것을 얼마나 잘 기억하고 있는지 놀랐다! 외로웠던 어린 시절의 모든 순간이 그에게 되살아났다. 그는 소년 시절의 순수함을 떠올렸고, 운명의 초상화를 여기에 숨겨야 한다는 사실이 그에게 끔찍하게 여겨졌다. 그 죽은 과거에 자신에게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얼마나 적게 생각했던가!
하지만 집 안에 이보다 더 안전한 곳은 없었다. 그는 열쇠를 가지고 있었고, 다른 누구도 들어올 수 없었다. 보라색 천 아래에서 캔버스에 그려진 얼굴은 짐승 같고, 취한 듯하고, 더러워질 수 있었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 아무도 볼 수 없었다. 그 자신도 보지 않을 것이다. 왜 자신의 영혼의 끔찍한 부패를 지켜봐야 하는가? 그는 젊음을 유지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게다가 그의 성품이 결국에는 더 고귀해질 수도 있지 않은가? 미래가 수치로 가득 찰 이유는 없었다. 어떤 사랑이 그의 삶에 찾아와 그를 정화하고, 이미 영혼과 육체에서 꿈틀거리는 것 같은 죄들, 그 신비로움이 그들에게 미묘함과 매력을 부여하는 그 기이하고 그려지지 않은 죄들로부터 그를 보호할 수도 있었다. 어쩌면 언젠가 잔인한 표정이 붉고 민감한 입에서 사라지고, 그는 세상에 베이즐 홀워드의 걸작을 보여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은 불가능했다. 시간이 흐르고 주가 지날수록 캔버스 위의 형상은 늙어갈 것이다. 그것은 죄의 추함을 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늙음의 추함이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뺨은 움푹 들어가거나 늘어질 것이다. 누렇게 변한 눈가 주름이 어두워지는 눈 주위로 기어들어 그것을 끔찍하게 만들 것이다. 머리카락은 광택을 잃고, 입은 벌어지거나 처질 것이며, 노인들의 입처럼 어리석고 추하게 변할 것이다. 목에는 주름이 잡히고, 차갑고 푸른 핏줄이 도드라진 손과, 어린 시절 그에게 엄격했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뒤틀린 몸이 있을 것이다. 그림은 숨겨야만 했다. 어쩔 수 없었다.
“들어오세요, 허버드 씨.” 그가 지친 듯 돌아서며 말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언제나 쉬어갈 수 있어 기쁩니다, 그레이 씨.” 아직도 숨을 헐떡이며 액자 제작자가 대답했다. “어디에 놓을까요, 선생님?”
“아, 어디든 상관없어요. 여기요. 이 자리면 되겠네요. 걸어 놓고 싶지는 않아요. 그냥 벽에 기대어 놓으세요. 고마워요.”
“작품을 한번 볼 수 있을까요, 선생님?”
도리안은 깜짝 놀랐다. “허버드 씨, 당신에겐 흥미롭지 않을 거예요.” 그가 그 남자를 주시하며 말했다. 그는 그의 인생의 비밀을 숨기고 있는 화려한 커튼을 들어올리려 한다면 그에게 달려들어 바닥에 내동댕이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제 더 귀찮게 하지 않을게요.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전혀요, 전혀요, 그레이 씨. 언제든 선생님을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허버드 씨는 조수를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조수는 거친 못생긴 얼굴로 도리안을 향해 수줍은 듯 놀란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그는 이렇게 놀라운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의 발소리가 사라지자 도리안은 문을 잠그고 열쇠를 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안전하다고 느꼈다. 아무도 그 끔찍한 물건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의 눈 외에는 어떤 눈도 그의 수치를 보지 못할 것이다.
서재에 도착하니 5시가 조금 넘었고, 차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레이디 래들리, 그의 후견인의 아내이자 아름다운 직업적 환자인 그녀가 선물한 진주 장식으로 두껍게 장식된 어두운 향나무 작은 탁자 위에 헨리 경의 쪽지가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노란 종이로 제본된 책이 있었다. 표지가 약간 찢어지고 가장자리가 더러워져 있었다. 차 쟁반 위에는 세인트 제임스 가제트 3판이 놓여 있었다. 빅터가 돌아온 것이 분명했다. 그는 그들이 집을 나설 때 홀에서 만났는지,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캐물었는지 궁금했다. 그는 분명 그림이 없어진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이미 차를 준비하는 동안 알아챘을 것이다. 스크린이 제자리에 있지 않았고, 벽에 빈 공간이 보였다. 어쩌면 어느 날 밤 그가 위층으로 몰래 올라와 방문을 열려고 하는 것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집안에 스파이가 있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그는 편지를 읽었거나, 대화를 엿들었거나, 주소가 적힌 카드를 주웠거나, 베개 밑에서 시든 꽃이나 구겨진 레이스 조각을 발견한 하인에게 평생 협박당한 부자들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는 한숨을 쉬고 차를 따른 뒤 헨리 경의 쪽지를 열었다. 그저 저녁 신문과 그를 흥미롭게 할 만한 책을 보냈다는 내용이었고, 8시 15분에 클럽에 있을 거라고 했다. 그는 무심히 세인트 제임스를 펼쳐 훑어보았다. 5페이지에 있는 빨간 연필 표시가 그의 눈에 띄었다. 그것은 다음 문단에 주의를 끌었다.
여배우 사망 조사. – 이날 아침 벨 타번, 혹스턴 로드에서 댄비 지방 검시관이 최근 홀본의 로열 극장에 출연했던 젊은 여배우 시빌 베인의 시신에 대한 검시를 진행했다. 사고사 판결이 내려졌다. 고인의 어머니에 대한 상당한 동정이 표현되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증언과 버렐 박사의 사후 검시 중에 크게 괴로워했다.
그는 찡그린 얼굴로 신문을 찢어 두 조각으로 나누고 방을 가로질러 가서 조각들을 내던졌다.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추했던가! 그리고 추함이 얼마나 현실적으로 만드는지! 그는 헨리 경이 그 보도를 보낸 것에 대해 약간 짜증이 났다. 그리고 확실히 빨간 연필로 표시한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빅터가 그것을 읽었을 수도 있다. 그 남자는 그것을 읽기에 충분한 영어를 알고 있었다.
아마도 그가 읽고 의심하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도리안 그레이가 시빌 베인의 죽음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두려워할 것은 없었다. 도리안 그레이가 그녀를 죽이지 않았다.
그의 눈은 헨리 경이 보낸 노란 책으로 향했다. 그것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그는 은으로 일하는 이상한 이집트 벌들의 작품처럼 보이는 진주빛 8각형 받침대로 다가가 책을 집어 들고 안락의자에 몸을 던져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몇 분 후 그는 푹 빠져들었다. 그가 읽어본 것 중 가장 이상한 책이었다. 정교한 의상을 입고 플루트의 섬세한 소리와 함께 세상의 죄악들이 그의 앞을 무언의 행렬로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가 희미하게 꿈꾸었던 것들이 갑자기 현실이 되었다. 그가 한 번도 꿈꾸지 못했던 것들이 점차 드러났다.
그것은 줄거리도 없고 한 명의 등장인물만 있는 소설이었다. 사실 그것은 19세기에 자신의 세기를 제외한 모든 세기의 열정과 사고방식을 실현하려 노력하고, 세계 정신이 지나온 다양한 기분을 자신 안에 집약하려 한 젊은 파리지앵에 대한 심리 연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이 어리석게도 미덕이라 부르는 포기를 그 인위성 때문에 사랑했고, 현명한 사람들이 여전히 죄라고 부르는 자연스러운 반항도 마찬가지로 사랑했다. 그 책의 문체는 그 독특한 보석 같은 스타일로, 생생하면서도 모호하고, 은어와 고어, 전문용어와 정교한 언어유희로 가득 차 있었다. 이는 프랑스 상징주의 학파의 가장 뛰어난 예술가들의 작품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 안에는 난초처럼 괴이하고 색채가 미묘한 은유들이 있었다. 감각의 삶이 신비주의 철학의 용어로 묘사되었다. 때때로 무엇을 읽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중세 성인의 종교적 황홀경이나 현대 죄인의 병적인 고백과도 같았다. 그것은 독이 든 책이었다. 무거운 향의 냄새가 페이지에 배어 뇌를 어지럽게 했다. 문장의 운율, 복잡한 후렴구와 정교하게 반복되는 움직임으로 가득한 그 미묘한 단조로움은 소년이 장을 넘길 때마다 그의 마음속에 일종의 몽상, 꿈을 꾸는 병을 만들어냈고, 그로 인해 그는 해가 지고 그림자가 기어오는 것도 의식하지 못했다.
구름 한 점 없는 구리빛 녹색 하늘에 외로운 별 하나가 빛났다. 그 희미한 빛이 창문을 통해 비쳤다. 그는 그 빛을 받으며 책을 읽었다. 빛이 너무 희미해져 더 이상 읽을 수 없게 되자 그는 책을 덮었다. 시종이 몇 번이나 시간이 늦었다고 알려주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일어나 옆방으로 가서 책을 침대 옆 작은 플로렌티노 탁자 위에 놓았다. 그리고 저녁 식사를 위해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그가 클럽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9시였다. 그는 거기서 헨리 경이 아침 방에 혼자 앉아 지루해하는 것을 발견했다.
“정말 미안해요, 해리.” 그가 외쳤다. “하지만 이건 전적으로 당신 잘못이에요. 당신이 보내준 책이 너무 매혹적이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네가 그 책을 좋아할 줄 알았어.” 그의 주인이 의자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난 그 책이 좋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해리. 매혹됐다고 했죠. 그건 큰 차이가 있어요.”
“아, 넌 그걸 발견했구나?” 헨리 경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들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제11장
수년 동안 도리안 그레이는 그 책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그는 그 책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는 파리에서 초판의 대형 종이 사본을 아홉 권이나 구해 와서 각기 다른 색으로 장정을 했다. 그의 다양한 기분과 때로는 거의 통제력을 잃은 것 같은 본성의 변화무쌍한 공상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그 소설의 주인공, 낭만적 기질과 과학적 기질이 기묘하게 뒤섞인 놀라운 젊은 파리지앵은 그에게 일종의 예표적 유형이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책 전체가 그의 인생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살기도 전에 쓰여진 것 같았다.
한 가지 점에서 그는 소설의 환상적인 주인공보다 더 행운아였다. 그는 한 번도 – 실제로 한 번도 그럴 이유가 없었다 – 거울과 광택 나는 금속 표면, 고요한 물에 대한 다소 괴이한 공포를 알지 못했다. 그것은 젊은 파리지앵에게 삶의 초기에 찾아왔고, 한때 분명히 매우 뛰어났던 미모의 갑작스러운 쇠퇴로 인한 것이었다. 그는 거의 잔인한 기쁨으로 – 아마도 거의 모든 기쁨 속에, 확실히 모든 쾌락 속에 잔인함이 자리 잡고 있듯이 – 책의 후반부를 읽곤 했다. 그곳에는 자신이 다른 이들과 세상에서 가장 소중히 여겼던 것을 잃은 사람의 슬픔과 절망에 대한, 약간 과장되긴 했지만 정말로 비극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베이즐 홀워드와 그 외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던 그 놀라운 아름다움은 그를 결코 떠나지 않는 것 같았다. 심지어 그에 대해 가장 나쁜 소문을 들은 사람들도 – 때때로 그의 삶의 방식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런던을 통해 퍼지고 클럽의 가십거리가 되었다 – 그를 볼 때 그의 명예를 의심할 수 없었다. 그는 언제나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다. 저속한 말을 하던 사람들도 도리안 그레이가 방에 들어오면 조용해졌다. 그의 얼굴의 순수함에는 그들을 꾸짖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의 존재만으로도 그들이 더럽힌 순수함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 같았다. 그들은 그처럼 매력적이고 우아한 사람이 어떻게 이토록 추하고 관능적인 시대의 오명을 벗어날 수 있었는지 의아해했다.
종종 그는 그의 친구들이거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상한 추측을 불러일으키는 그 신비롭고 길어진 부재에서 돌아와 몰래 위층으로 올라가 잠긴 방의 문을 이제는 결코 떠나지 않는 열쇠로 열고 거울을 들고 서서, 베이즐 홀워드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 앞에 섰다. 때로는 캔버스의 사악하고 늙어가는 얼굴을 보다가, 때로는 광택 나는 유리에서 자신을 향해 웃고 있는 아름답고 젊은 얼굴을 보았다. 그 대조의 날카로움이 그의 쾌감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점점 더 빠져들었고, 자신의 영혼의 타락에 점점 더 관심을 가졌다. 그는 주름진 이마를 가로지르는 추한 선이나 무거운 관능적인 입 주변을 기어 다니는 선들을 때로는 괴물 같고 끔찍한 기쁨으로 세심하게 관찰했다. 때로는 죄의 흔적과 나이의 흔적 중 어느 것이 더 끔찍한지 궁금해하며. 그는 자신의 하얀 손을 그림 속의 거칠고 부푼 손 옆에 대보고 미소 지었다. 그는 기형적인 몸과 쇠약해진 팔다리를 조롱했다.
밤에 그의 향기 나는 방에서 잠 못 이루고 누워 있거나, 가명으로 변장한 채 그가 자주 찾던 부두 근처의 악명 높은 작은 술집의 더러운 방에서, 그는 자신의 영혼에 가져온 파멸을 순전히 이기적인 연민으로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그런 순간은 드물었다. 그들의 친구의 정원에서 함께 앉아 있을 때 헨리 경이 처음 그에게 불러일으켰던 삶에 대한 호기심은 만족을 얻을수록 증가하는 것 같았다. 그는 더 많이 알수록 더 많이 알고 싶어 했다. 그는 먹일수록 더욱 굶주려가는 미친 듯한 갈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적어도 사회와의 관계에서는 정말 무모하지 않았다. 겨울에는 한두 번, 그리고 시즌 중에는 매주 수요일 저녁마다 그는 자신의 아름다운 집을 세상에 개방하고 당대 가장 유명한 음악가들을 초청해 그들의 예술의 경이로움으로 손님들을 매혹시켰다. 헨리 경이 항상 그를 도와 준 그의 작은 만찬회는 초대된 사람들의 신중한 선택과 배치만큼이나 이국적인 꽃, 수놓은 천, 골동품 금은 식기 등으로 꾸민 테이블의 장식에서 보여준 뛰어난 취향으로도 유명했다. 실제로 특히 아주 젊은 남자들 중에는 도리안 그레이에게서 그들이 종종 이튼이나 옥스퍼드 시절에 꿈꾸었던 유형의 진정한 실현을 보거나 그렇게 상상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에게 그는 학자의 진정한 교양과 세계 시민의 모든 우아함과 완벽한 매너를 겸비한 것처럼 보였다. 그들에게 그는 단테가 묘사한 “아름다움의 숭배를 통해 자신을 완벽하게 만들고자 한” 사람들과 어울렸다. 고티에처럼 그는 “가시적인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있어 인생 자체가 첫 번째이자 가장 위대한 예술이었고, 다른 모든 예술은 그것을 위한 준비에 불과한 것 같았다. 잠시나마 환상적인 것을 보편적으로 만드는 유행과, 나름의 방식으로 아름다움의 절대적 현대성을 주장하려는 댄디즘은 물론 그를 매혹시켰다. 그의 옷 입는 방식과 때때로 선보이는 특별한 스타일은 메이페어 무도회장과 팰멀 클럽 창가의 젊은 멋쟁이들에게 뚜렷한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그가 하는 모든 것을 따라 했고, 그에게는 반쯤 진지한 것에 불과했던 우아한 허세의 우연한 매력을 재현하려 노력했다.
그는 성년이 되자마자 거의 즉시 제안받은 위치를 받아들일 준비가 너무나 되어 있었고, 실제로 그의 시대 런던에서 제국 시대 네로 황제의 로마에서 사티리콘의 저자가 그랬던 것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미묘한 즐거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단순한 우아함의 심판자 이상의 존재가 되고 싶어 했다. 그는 보석을 착용하는 방법이나 넥타이를 매는 방법, 지팡이를 드는 방법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정도에 그치고 싶지 않았다. 그는 합리적인 철학과 체계적인 원칙을 갖추고, 감각의 영성화에서 가장 높은 실현을 찾는 새로운 인생의 계획을 정교하게 만들고자 했다.
감각의 숭배는 종종 정당하게 비난받아 왔다.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강해 보이는 열정과 감각에 대해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고, 자신들이 덜 고도로 조직화된 생명체와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리안 그레이는 감각의 진정한 본질이 한 번도 이해된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세상이 감각을 굶주림으로 복종시키거나 고통으로 죽이려 했기 때문에, 감각은 야만적이고 동물적으로 남아 있었다. 세상은 감각을 새로운 영성의 요소로 만들어, 아름다움에 대한 섬세한 본능이 지배적 특성이 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았다. 그는 역사를 통해 인간을 되돌아보며 상실감에 사로잡혔다. 너무나 많은 것이 포기되었고, 그것도 너무나 하찮은 목적을 위해서였다! 광기 어린 고집스러운 거부가 있었고, 괴물 같은 자기 고문과 자기 부정의 형태가 있었다. 그 기원은 두려움이었고, 그 결과는 무지 속에서 도망치려 했던 상상 속 타락보다 훨씬 더 끔찍한 타락이었다. 자연은 그 놀라운 아이러니로 은둔자를 사막의 야생 동물들과 함께 먹게 하고, 수도사에게 들판의 짐승들을 동반자로 주었다.
그렇다. 헨리 경이 예언했듯이, 삶을 재창조하고 우리 시대에 기이하게 부활하고 있는 그 가혹하고 보기 흉한 청교도주의로부터 삶을 구원할 새로운 쾌락주의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분명 지성의 봉사를 받겠지만, 어떤 형태의 열정적 경험도 희생하게 만드는 이론이나 체계는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그 목표는 경험 자체이며, 달콤하든 쓰든 경험의 결과가 아니다. 감각을 무디게 하는 금욕주의나 감각을 둔하게 하는 저속한 방탕은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순간에 불과한 삶의 순간들에 집중하는 법을 인간에게 가르칠 것이다.
우리 중 대부분은 새벽 전에 깨어난 적이 있다. 꿈 없는 밤을 보내거나, 뇌를 휘감는 환영들이 현실보다 더 무서운 공포와 기형적인 기쁨을 선사하는 밤을 보낸 후에 말이다. 이 환영들은 모든 그로테스크한 것들에 숨겨진 생생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서, 고딕 예술에 지속적인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이 예술은 특히 몽상의 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점차 하얀 손가락들이 커튼 사이로 기어 들어오고, 그 손가락들은 떨리는 듯 보인다. 검은 환상적인 형태로, 말없는 그림자들이 방의 구석으로 기어들어가 웅크린다. 밖에서는 나뭇잎 사이로 새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고, 일하러 가는 사람들의 소리나 산에서 내려와 잠자는 사람들을 깨울까 봐 두려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잠을 자신의 보랏빛 동굴에서 불러내야만 하는 바람의 한숨과 흐느낌 소리가 들린다. 얇고 어두운 베일이 하나씩 걷히고, 점차 사물들의 형태와 색채가 되돌아온다. 우리는 새벽이 세상을 그 고대의 모습으로 다시 만드는 것을 지켜본다. 창백한 거울들은 다시 그들의 모조 생명을 되찾는다. 불 꺼진 촛대들은 우리가 놓아둔 곳에 그대로 서 있고, 그 옆에는 우리가 공부하던 반쯤 읽은 책이나 무도회에서 달고 있던 시들어버린 꽃, 또는 우리가 읽기를 두려워했거나 너무 자주 읽었던 편지가 놓여 있다. 우리에겐 아무것도 변한 것 같지 않다. 밤의 비현실적인 그림자에서 우리가 알고 있던 진짜 삶이 돌아온다. 우리는 중단했던 곳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고, 우리를 엄습하는 것은 똑같은 지루한 관습화된 습관의 연속에 대한 끔찍한 필요성이거나, 어쩌면 우리의 눈꺼풀이 어느 날 아침 우리의 즐거움을 위해 어둠 속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세상을 향해 열릴지도 모른다는 거친 갈망이다. 그 세상에서는 사물들이 새로운 형태와 색을 가지고 변화하거나 다른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과거는 거의 혹은 전혀 자리를 차지하지 않거나, 적어도 의무나 후회의 의식적인 형태로는 살아남지 않을 것이며, 기쁨의 기억조차 쓰라림을 지니고 즐거움의 추억도 고통을 지닐 것이다.
이런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도리안 그레이에게는 인생의 진정한 목적, 또는 진정한 목적들 중 하나로 보였다. 그는 새롭고 즐거우면서도 낯선 요소를 지닌 감각을 찾아 나섰다. 그는 자신의 본성과는 실제로 이질적인 특정한 사고방식을 종종 채택했고, 그것들의 미묘한 영향력에 몸을 맡겼다가, 말하자면 그것들의 색채를 포착하고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킨 뒤에는 그것들을 떠났다. 그는 진정한 기질의 열정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닌 그 특유의 무관심으로 그것들을 떠났고, 실제로 현대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그것은 종종 그런 열정의 조건이 되기도 한다.
한때 그가 로마
가톨릭 성체성사, 특히 로마 의식은 언제나 그를 크게 매료시켰다. 매일의 제사는 고대 세계의 모든 제사보다 실로 더 경외스러웠다. 그것은 그 요소들의 원초적인 단순함과 그것이 상징하고자 하는 인간 비극의 영원한 애달픔만큼이나, 감각의 증거에 대한 그 굉장한 거부로 그를 감동시켰다. 그는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무릎을 꿇고 뻣뻣한 꽃무늬 달마티카를 입은 사제가 천천히 하얀 손으로 성체 안치소의 휘장을 젖히거나, 진정 ‘하늘의 양식’, 천사들의 빵이라 여겨지는 그 창백한 성체를 담은 보석 박힌 등잔 모양의 성광을 높이 들어 올리는 것을 지켜보기를 좋아했다. 또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상징하는 제의를 입고 성작에 성체를 쪼개어 넣고 자신의 죄를 위해 가슴을 치는 것을 보기를 좋아했다. 레이스와 주홍색 옷을 입은 엄숙한 소년들이 공중에 높이 던지는, 마치 거대한 금빛 꽃 같은 향로들은 그에게 미묘한 매력을 주었다. 나가면서 그는 검은 고해소들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그 중 하나의 희미한 그늘에 앉아 남자들과 여자들이 닳아빠진 쇠창살을 통해 그들 삶의 진실한 이야기를 속삭이는 것을 듣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는 결코 신념이나 체계를 형식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지적 발전을 가로막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또한 별 하나 없는, 달이 산고를 겪는 밤에 단 하룻밤이나 몇 시간 머물기에 적합한 여관을, 살 집으로 착각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신비주의는 평범한 것들을 우리에게 낯설게 만드는 놀라운 힘과, 그것을 항상 동반하는 듯한 미묘한 반율법주의로 한동안 그를 사로잡았다. 또 한동안 그는 독일의 다위니즘 운동의 유물론적 교리에 기울어, 인간의 생각과 열정을 뇌의 어떤 진주빛 세포나 몸의 어떤 흰 신경으로 추적하는 데서 기이한 즐거움을 찾았다. 정신이 특정한 신체 조건, 병적이든 건강하든, 정상이든 비정상이든, 그것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는 개념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전에 말했듯이, 어떤 인생 이론도 삶 그 자체에 비하면 그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행동과 실험에서 분리된 모든 지적 사변이 얼마나 불모한 것인지 예리하게 의식했다. 그는 감각이 영혼 못지않게 그들만의 영적 신비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제 그는 향수와 그 제조법의 비밀을 연구하며, 진한 향기의 기름을 증류하고 동방의 향기로운 고무를 태웠다. 그는 마음의 모든 상태가 감각적 삶에서 그 대응물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고, 그 진정한 관계를 발견하려 했다. 유향이 사람을 신비주의자로 만들고, 용연향이 사람의 정열을 자극하며, 제비꽃이 죽은 로맨스의 기억을 일깨우고, 사향이 뇌를 혼란스럽게 하며, 참파카가 상상력을 물들이는 데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했다. 그는 종종 향수의 실제 심리학을 만들어내고, 달콤한 냄새가 나는 뿌리와 향기로운 꽃가루를 머금은 꽃들의 여러 영향을 평가하려 했다. 방향성 발삼과 어둡고 향기로운 나무들, 메스꺼움을 유발하는 스파이크나드, 사람을 미치게 하는 호베니아, 그리고 영혼에서 우울함을 쫓아낼 수 있다고 하는 알로에의 영향을 연구하려 했다.
다른 때에는 그는 전적으로 음악에 몰두했다. 주홍색과 금색 천장, 올리브 녹색 래커 벽으로 된 긴 격자창 방에서 그는 기이한 콘서트를 열었다. 그곳에서 미친 집시들이 작은 치터에서 야성적인 음악을 뽑아내거나, 엄숙한 노란 숄을 두른 튀니지 사람들이 거대한 류트의 팽팽한 현을 뜯었다. 그리고 히죽거리는 흑인들이 단조롭게 구리 북을 두드리는 동안, 주홍색 매트 위에 웅크린 터번을 쓴 마른 인도인들이 긴 갈대나 황동 파이프를 불며 큰 뿔 달린 독사와 무시무시한 뿔 달린 뱀을 매혹시키거나 매혹시키는 척했다. 야만적인 음악의 거친 간격과 날카로운 불협화음은 때때로 그를 자극했다. 슈베르트의 우아함, 쇼팽의 아름다운 슬픔, 심지어 베토벤 자신의 강력한 화음도 그의 귀에 무심히 스쳐 지나갈 때가 있었다. 그는 죽은 민족들의 무덤이나 서양 문명과의 접촉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야만 부족들 사이에서 발견될 수 있는 가장 기이한 악기들을 세계 각지에서 모았고, 그것들을 만지고 시험해 보기를 좋아했다. 그는 리오 네그로 인디언들의 신비로운 주루파리스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은 여자들이 보는 것이 허락되지 않고 젊은이들도 금식과 채찍질을 겪은 후에야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또한 새들의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는 페루의 토기 항아리들과 알폰소 데 오발레가 칠레에서 들었던 인골로 만든 피리들, 그리고 쿠스코 근처에서 발견되는 특이하게 달콤한 음을 내는 울림이 좋은 녹색 비취들도 있었다. 그는 흔들면 덜그럭거리는 조약돌이 든 채색한 박을 가지고 있었다. 연주자가 불지 않고 공기를 들이마시는 멕시코인들의 긴 클라린, 아마존 부족의 거친 투레(하루 종일 높은 나무에 앉아 있는 보초병들이 부는 것으로, 3리그 떨어진 곳에서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식물의 젖같은 즙에서 얻은 탄성 고무를 바른 막대기로 두드리는 두 개의 진동하는 나무 혀를 가진 테포나츠틀리, 포도송이처럼 뭉쳐 있는 아즈텍인들의 요틀 방울, 그리고 코르테스와 함께 멕시코 신전에 갔을 때 베르날 디아스가 보고 그 우울한 소리에 대해 생생한 묘사를 남긴 것과 같은, 거대한 뱀의 가죽으로 덮인 거대한 원통형 북도 있었다. 이 악기들의 환상적인 특성은 그를 매혹시켰고, 그는 예술도 자연처럼 괴물을, 짐승 같은 모양과 끔찍한 목소리를 가진 것들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 기이한 즐거움을 느꼈다. 그러나 얼마 후 그는 그것들에 싫증이 났고, 그의 오페라 박스에 앉아 혼자 또는 헨리 경과 함께 탄호이저를 황홀한 기쁨으로 들으며, 그 위대한 예술 작품의 서곡에서 자신의 영혼의 비극을 보는 것 같았다.
한번은 보석 연구에 몰두하여, 프랑스의 해군 제독 안느 드 조이외즈로 분장하고 오백육십 개의 진주로 덮인 옷을 입고 가장무도회에 나타났다. 이러한 취미는 그를 수년간
수년이나 지속되었고, 사실상 그를 떠난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종종 하루 종일 수집한 다양한 보석들을 케이스에 넣었다 뺐다 하며 시간을 보냈다. 램프 불빛에 붉게 변하는 올리브 녹색의 크리소베릴, 은색 줄무늬가 있는 사이모페인, 피스타치오 색의 페리도트, 장미빛 분홍과 포도주 색의 토파즈, 떨리는 네 갈래 별이 있는 불같이 붉은 카브런클, 붉은 시나몬 스톤, 주황색과 보라색 스피넬, 루비와 사파이어가 번갈아 층을 이루는 자수정 등이었다. 그는 선스톤의 붉은 금빛과 문스톤의 진주 같은 흰색, 그리고 오팔의 깨진 무지개를 좋아했다. 암스테르담에서 특별히 크고 색이 풍부한 에메랄드 세 개를 구했고, 모든 감정가들이 탐내는 터키석도 하나 가지고 있었다.
그는 보석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들도 발견했다. 알폰소의 클레리칼리스 디스플리나에는 진짜 자신트로 된 눈을 가진 뱀이 언급되었고, 알렉산더 대왕의 로맨틱한 역사에는 요르단 계곡에서 “등에 진짜 에메랄드 목걸이가 자라는” 뱀들을 발견했다고 적혀 있었다. 필로스트라투스는 용의 뇌에 보석이 있다고 말했고, “황금 글자와 주홍빛 옷을 보여주면” 괴물을 마법의 잠에 빠뜨려 죽일 수 있다고 했다. 위대한 연금술사 피에르 드 보니파스에 따르면, 다이아몬드는 사람을 보이지 않게 만들고 인도의 마노는 사람을 웅변가로 만든다고 했다. 홍옥수는 분노를 진정시키고, 히아신스는 잠을 유도하며, 자수정은 술의 기운을 없앤다고 했다. 석류석은 악마를 쫓아내고, 히드로피쿠스는 달의 색을 빼앗는다고 했다. 셀레나이트는 달과 함께 차고 기울었고, 도둑을 발견하는 멜로세우스는 오직 아기 염소의 피에만 영향을 받았다.
레오나르두스 카밀루스는 새로 죽인 두꺼비의 뇌에서 꺼낸 하얀 돌이 독에 대한 확실한 해독제가 된다는 것을 보았다. 아라비아 사슴의 심장에서 발견되는 베조아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부적이었다. 데모크리투스에 따르면, 아라비아 새들의 둥지에서 발견되는 아스필라테스는 착용자를 화재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한다고 했다.
세일런의 왕은 대관식 의식 때 큰 루비를 손에 들고 도시를 돌았다. 요한 사제의 궁전 문은 “뿔 달린 뱀의 뿔이 박힌 사르디우스로 만들어져 아무도 독을 가지고 들어올 수 없었다.” 박공 위에는 “두 개의 금사과가 있었고, 그 안에 두 개의 카브런클이 있어” 낮에는 금이, 밤에는 카브런클이 빛났다. 로지의 기묘한 로맨스 ‘아메리카의 마거리트’에는 여왕의 방에서 “은으로 만든 세상의 모든 정숙한 숙녀들이 크리솔라이트, 카브런클, 사파이어, 녹색 에메랄드로 된 아름다운 거울을 통해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마르코 폴로는 지팡구의 주민들이 죽은 자의 입에 장미빛 진주를 넣는 것을 보았다. 페로제스 왕에게 가져온 진주를 사랑한 바다 괴물이 도둑을 죽이고 7달 동안 그 손실을 슬퍼했다. 훈족이 왕을 큰 구덩이로 유인했을 때, 그는 그것을 던져버렸다. 프로코피우스가 그 이야기를 전하는데, 그 후로 다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황제 아나스타시우스가 500중량의 금화를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말라바르의 왕은 어떤 베네치아인에게 304개의 진주로 된 묵주를 보여주었는데, 그가 숭배하는 신 하나당 하나씩이었다.
알렉산더 6세의 아들인 발렌티누아 공작이 프랑스의 루이 12세를 방문했을 때, 그의 말은 브랑톰에 따르면 금박으로 덮여 있었고, 모자에는 이중으로 된 루비 줄이 있어 큰 빛을 발했다. 영국의 찰스는 421개의 다이아몬드가 달린 등자를 타고 다녔다. 리처드 2세는 3만 마크의 가치가 있는 외투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발라스 루비로 뒤덮여 있었다. 홀은 대관식 전 탑으로 가는 헨리 8세의 모습을 “돋을새김한 금으로 된 재킷을 입고, 가슴받이에는 다이아몬드와 다른 귀한 돌들이 수놓아져 있으며, 목에는 큰 발라스로 된 큰 보드릭을 두르고 있었다”고 묘사했다. 제임스 1세의 총신들은 금 세공으로 만든 에메랄드 귀걸이를 착용했다. 에드워드 2세는 피어스 개버스턴에게 자신트가 박힌 붉은 금 갑옷 한 벌과 터키석이 박힌 금장미 목걸이, 그리고 진주가 흩뿌려진 두건을 주었다. 헨리 2세는 팔꿈치까지 오는 보석 장식 장갑을 끼고 있었고, 12개의 루비와 52개의 큰 오리엔트 진주가 박힌 매사냥 장갑을 가지고 있었다. 그 가문의 마지막 부르고뉴 공작인 용담공 샤를의 공작 모자에는 배 모양의 진주가 걸려 있고 사파이어가 박혀 있었다.
인생이 한때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그 화려함과 장식에서 얼마나 호화로웠던가! 죽은 자들의 사치에 대해 읽는 것조차 놀라웠다.
그는 이제 자수와 태피스트리에 관심을 돌렸다. 태피스트리는 북유럽 국가들의 차가운 방에서 프레스코화 역할을 했다. 그는 이 주제를 연구하면서 – 그는 언제나 잠시 동안 완전히 몰두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있었다 – 시간이 아름답고 놀라운 것들에 가져오는 파괴에 대해 생각하며 거의 슬퍼졌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그것을 피했다. 여름이 지나고 또 지나며, 노란 수선화가 피었다 시들었고, 끔찍한 밤들이 그들의 수치스러운 이야기를 반복했지만, 그는 변하지 않았다. 어떤 겨울도 그의 얼굴을 망가뜨리거나 꽃 같은 아름다움을 더럽히지 않았다. 물질적인 것들과는 얼마나 다른가! 그것들은 어디로 갔을까? 아테나를 위해 갈색 소녀들이 만든, 신들이 거인들과 싸우는 모습이 그려진 큰 크로커스 빛 로브는 어디 있을까? 네로가 로마의 콜로세움에 펼쳤던 거대한 자주색 천막은 어디 있을까? 그것은 하늘의 별들과 흰 말들이 끄는 전차를 모는 아폴로의 모습이 그려진 거대한 보라색 돛이었다. 그는 태양신의 사제들을 위해 만들어진 기이한 식탁보를 보고 싶어 했다. 그 위에는 연회에 필요한 모든 맛있는 음식과 요리가 그려져 있었다. 킬페릭 왕의 장례용 천에는 300개의 금빛 벌이 수놓아져 있었다. 교황의 분노를 자아냈던 기괴한 로브들도 보고 싶었다.
폰투스와 “사자, 표범, 곰, 개, 숲, 바위, 사냥꾼 – 사실상 화가가 자연에서 모방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샤를 도를레앙이 한때 입었던 코트의 소매에는 “Madame, je suis tout joyeux“로 시작하는 노래의 가사가 수놓아져 있었는데, 가사의 음악 반주는 금실로 새겨져 있었고, 당시에는 사각형이었던 각 음표는 네 개의 진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는 부르고뉴의 조안 여왕을 위해 랭스 궁전에 준비된 방에 대해 읽었는데, 그 방은 “1321개의 앵무새와 561개의 나비로 장식되어 있었다. 앵무새는 수놓아져 있었고 왕의 문장으로 치장되어 있었으며, 나비의 날개도 마찬가지로 여왕의 문장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모두 금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카트린 드 메디시스는 초승달과 태양이 흩뿌려진 검은 벨벳으로 상복 침대를 만들게 했다. 그 커튼은 금은 바탕에 나뭇잎 화환과 화환이 그려진 다마스크 천이었고, 가장자리에는 진주 자수가 장식되어 있었다. 그 침대는 여왕의 문장이 은색 천 위에 검은 벨벳으로 오려 붙여진 줄들이 걸려 있는 방에 놓여 있었다. 루이 14세는 그의 방에 15피트 높이의 금으로 수놓아진 카리아티드 기둥을 세웠다. 폴란드 왕 소비에스키의 국가 침대는 코란의 구절들이 터키석으로 수놓아진 스미르나 금 브로케이드로 만들어졌다. 그 지지대는 은도금된 것으로,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었고, 에나멜을 입히고 보석이 박힌 메달로 풍부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그것은 빈 근처의 터키 진영에서 가져온 것이었고, 무함마드의 깃발이 그 천막의 떨리는 금빛 아래 서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일 년 내내 직물과 자수 작품의 가장 뛰어난 표본들을 모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금실 야자수 잎 무늬로 정교하게 짜여지고 무지개빛 딱정벌레 날개로 꿰매어진 섬세한 델리 무슬린을 구했다. 동양에서 ‘짜여진 공기’, ‘흐르는 물’, ‘저녁 이슬’이라고 불리는 투명성 때문에 유명한 다카 거즈도 구했다. 자바에서 온 이상한 무늬의 천들, 정교한 노란색 중국 커튼들, 백합 문양과 새, 형상들이 수놓아진 붉은 갈색 새틴이나 연한 푸른색 실크로 장정된 책들, 헝가리 포인트로 만든 레이스 베일들, 시칠리아 브로케이드와 뻣뻣한 스페인 벨벳들, 금화가 달린 조지아 작품들, 녹색 빛이 도는 금색과 놀랍도록 깃털이 화려한 새들이 그려진 일본 후쿠사들을 구했다.
그는 또한 교회 의식에 대해 특별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그는 교회 예배와 관련된 모든 것에 열정적이었다. 그의 집 서쪽 갤러리에 줄지어 있는 긴 향나무 상자들 안에, 그는 많은 희귀하고 아름다운 표본들을 보관하고 있었다. 그것은 실제로 그리스도의 신부의 의복이었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자신이 추구하는 고통으로 인해 창백하고 수척해진 몸을 감추기 위해 자주색과 보석과 고운 린넨을 입어야 했다. 그는 진홍색 실크와 금실 다마스크로 만든 화려한 코프를 소장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여섯 개의 꽃잎으로 된 정형화된 꽃 안에 금색 석류가 반복적으로 배치된 무늬로 장식되어 있었고, 양쪽에는 씨앗 진주로 만든 파인애플 장식이 있었다. 오프리는 성모 마리아의 생애를 묘사하는 장면들로 나뉘어 있었고, 성모 대관식이 후드에 색실로 수놓아져 있었다. 이것은 15세기 이탈리아 작품이었다. 또 다른 코프는 녹색 벨벳으로 만들어졌는데, 아칸서스 잎으로 이루어진 하트 모양의 무늬가 수놓아져 있었고, 그 사이로 은실과 색 크리스탈로 세부 장식이 된 긴 줄기의 흰 꽃들이 뻗어 나와 있었다. 모스에는 금실 부조 작업으로 만든 세라핌의 머리가 있었다. 오프리는 붉은색과 금색 실크로 다이아몬드 무늬로 짜여져 있었고, 많은 성인들과 순교자들의 메달이 박혀 있었는데, 그 중에는 성 세바스티안도 있었다. 그는 또한 호박색 실크, 파란색 실크와 금 브로케이드,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형을 묘사한 노란색 실크 다마스크와 금직으로 만든 제의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들은 사자와 공작, 그리고 다른 문장들로 수놓아져 있었다. 또한 튤립과 돌고래, 백합 문양으로 장식된 흰색 새틴과 분홍색 실크 다마스크로 만든 달마티카, 진홍색 벨벳과 파란색 린넨으로 만든 제대포, 그리고 많은 성체포와 성작포, 수다리움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것들이 사용되는 신비로운 의식들 속에는 그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가 수집한 이 보물들과 그의 아름다운 집에 있는 모든 것들은 그에게 망각의 수단이 되어야 했다. 그것들은 때때로 그에게 너무나 크게 느껴지는 공포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는 소년 시절을 보냈던 외롭고 잠겨 있는 방의 벽에 자신의 손으로 그 끔찍한 초상화를 걸어두었다. 그 초상화의 변화하는 얼굴은 그의 삶의 실제 타락을 보여주었고, 그 앞에는 보라색과 금색 장막을 커튼처럼 드리웠다. 몇 주 동안 그는 그곳에 가지 않았고, 그 흉측한 그림을 잊고 다시 그의 가벼운 마음과 놀라운 즐거움, 단순한 존재에 대한 열정적인 몰두를 되찾곤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느 날 밤, 그는 집에서 몰래 빠져나가 블루 게이트 필즈 근처의 끔찍한 장소들로 가서는 쫓겨날 때까지 며칠씩 그곳에 머물렀다. 돌아와서는 그 초상화 앞에 앉아 때로는 그것과 자신을 혐오하면서도, 다른 때에는 죄의 매력의 절반을 차지하는 개인주의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자신이 져야 할 짐을 대신 짊어진 기형적인 그림자를 보며 은밀한 쾌감을 느끼며 미소 지었다.
몇 년이 지나자 그는 오랫동안 영국을 떠나 있는 것을 참을 수 없게 되었고, 트루빌에서 헨리 경과 함께 지냈던 별장과 알제에서 여러 번 겨울을 보냈던 작은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집을 포기했다. 그는 자신의 삶의 일부가 된 그 초상화와 떨어져 있는 것을 싫어했고, 또한 자신이 없는 동안 누군가가 문에 설치해 놓은 정교한 잠금장치에도 불구하고 그 방에 들어갈 수 있을까 봐 두려워했다.
그는 이것이 그들에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초상화가 얼굴의 모든 추함과 혐오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과의 뚜렷한 닮음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들이 그것으로부터 무엇을 알 수 있겠는가? 그는 자신을 조롱하려는 사람을 비웃을 것이다. 그가 그것을 그린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얼마나 추하고 부끄러운 모습을 하고 있든 그에게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설령 그가 그들에게 말한다 해도, 그들이 그것을 믿을까?
하지만 그는 두려웠다. 때때로 그는 노팅엄셔에 있는 자신의 큰 저택에서 자신의 계급의 젊고 유행을 따르는 남자들을 접대하고 사치스럽고 화려한 생활 방식으로 지방을 놀라게 하다가 갑자기 손님들을 떠나 런던으로 달려가 문이 훼손되지 않았는지, 그림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지 확인했다. 만약 그림이 도난당한다면? 그 생각만으로도 공포에 떨었다. 세상이 그의 비밀을 알게 될 것이다. 아마도 세상은 이미 의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많은 사람을 매혹시켰지만, 그를 불신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웨스트 엔드의 한 클럽에서 그는 출신과 사회적 지위로 볼 때 당연히 회원이 될 자격이 있었지만, 거의 입회가 거부될 뻔했다. 한때 친구가 그를 처칠의 흡연실로 데려갔을 때 버윅 공작과 다른 신사들이 눈에 띄게 일어나 나갔다고 한다. 그가 스물다섯 살을 넘어서자 그에 대한 기이한 소문들이 돌기 시작했다. 화이트채플의 외딴 곳에 있는 저급한 술집에서 외국 선원들과 싸우는 모습이 목격되었다는 소문이 돌았고, 도둑들 및 위조범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기술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그의 특이한 실종이 악명 높아졌고, 다시 사교계에 나타나면 사람들은 구석에서 서로 속삭이거나 그를 비웃으며 지나치거나 차갑고 탐색하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그의 비밀을 밝혀내려 했다.
물론 그는 그런 무례함과 모욕적인 시도들을 무시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눈에는 그의 솔직하고 쾌활한 태도, 매력적인 소년 같은 미소, 그리고 그를 떠나지 않는 것 같은 놀라운 젊음의 무한한 우아함이 그에 대해 떠도는 중상모략(그들은 그렇게 불렀다)에 대한 충분한 답변이었다. 하지만 그와 가장 친밀했던 사람들 중 일부가 시간이 지나면서 그를 피하는 것 같다는 점이 주목되었다. 그를 광적으로 숭배하고 그를 위해 모든 사회적 비난을 무릅쓰고 관습을 무시했던 여성들이 도리안 그레이가 방에 들어오면 수치심이나 공포로 창백해지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하지만 이런 속삭여지는 스캔들들은 많은 사람들의 눈에 그의 기이하고 위험한 매력을 오히려 증가시켰다. 그의 막대한 재산은 확실한 안전 요소였다. 사회는, 적어도 문명화된 사회는, 부유하고 매력적인 사람들에 대해 불리한 것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사회는 본능적으로 매너가 도덕보다 더 중요하다고 느끼며, 사회의 의견으로는 최고의 요리사를 두는 것이 가장 높은 존경성보다 더 가치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결국, 나쁜 저녁 식사나 질 낮은 와인을 대접한 사람의 사생활이 비난할 데 없다는 말을 들어도 위안이 되지 않는다. 헨리 경이 한번 이 주제에 대한 토론에서 언급했듯이, 추기경의 덕목도 반쯤 식은 앙트레를 보상할 수 없으며, 그의 견해에는 상당한 타당성이 있을 수 있다. 사교계의 규범은 예술의 규범과 같거나 그래야 한다. 형식은 절대적으로 필수적이다. 그것은 의식의 품위와 비현실성을 모두 가져야 하며, 로맨틱한 연극의 불성실한 특성과 그러한 연극을 우리에게 매력적으로 만드는 재치와 아름다움을 결합해야 한다. 불성실이 그렇게 끔찍한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우리의 인격을 다양화할 수 있는 방법일 뿐이다.
적어도 도리안 그레이의 생각은 그랬다. 그는 인간의 자아를 단순하고 영구적이며 신뢰할 수 있고 단일한 본질의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얄팍한 심리에 놀라워했다. 그에게 인간은 무수한 삶과 감각을 가진 존재였고,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의 생물이었으며, 그 안에 기이한 사고의 유산과 열정을 품고 있었고, 그 육체조차 죽은 자들의 괴이한 질병으로 오염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시골 저택의 차갑고 황량한 그림 갤러리를 거닐며 자신의 혈통에 속한 다양한 인물들의 초상화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여기에 프란시스 오즈번이 그의 ‘엘리자베스 여왕과 제임스 왕 시대의 회고록’에서 “잘생긴 얼굴 때문에 궁정의 총애를 받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고 묘사한 필립 허버트가 있었다. 때때로 그가 이끌었던 것이 젊은 허버트의 삶이었을까? 어떤 기이한 독성 있는 세균이 몸에서 몸으로 기어 들어와 마침내 자신의 몸에 도달했을까? 그 파괴된 우아함에 대한 어렴풋한 감각이 베이즐 홀워드의 작업실에서 갑자기, 거의 이유 없이 그의 인생을 바꾼 미친 기도를 하게 만들었을까? 여기 금빛 자수가 놓인 붉은 더블릿, 보석 장식된 외투, 금박과 레이스로 장식된 깃과 소매 장식을 한 앤서니 셰라드 경이 서 있고, 그의 발치에는 은색과 검은색 갑옷이 쌓여 있었다. 이 사람의 유산은 무엇이었을까? 나폴리의 지오반나의 연인이 그에게 죄와 수치의 유산을 남겼을까? 그의 행동들은 단지 죽은 사람이 감히 실현하지 못한 꿈들이었을까? 여기 바래가는 캔버스에서 엘리자베스 데버럭스 부인이 가제 후드, 진주 장식 가슴받이, 분홍색 슬래시 소매를 입고 미소 짓고 있다. 그녀의 오른손에는 꽃이 들려 있고, 왼손은 하얀색과 담홍색 장미로 장식된 에나멜 목걸이를 잡고 있다. 그녀 옆 탁자 위에는 만돌린과 사과가 놓여 있다. 그녀의 작은 뾰족한 신발에는 큰 초록색 로제트가 달려 있다. 그는 그녀의 삶과 그녀의 연인들에 대해 전해지는 기이한 이야기들을 알고 있었다. 그에게 그녀의 기질이 있었을까? 이 타원형의 무거운 눈꺼풀을 가진 눈들이 그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것 같았다. 분칠한 머리와 기이한 반점을 가진 조지 윌로비는 어떨까? 그는 얼마나 악해 보이는가! 그의 얼굴은 음침하고 검었으며, 관능적인 입술은 경멸로 일그러져 있는 것 같았다. 섬세한 레이스 주름이 마른 노란 손 위로 떨어졌고, 그 손에는 반지가 너무 많이 끼워져 있었다. 그는 18세기의 멋쟁이였고, 젊은 시절 페라스 경의 친구였다. 왕자 섭정의 가장 방탕한 시절의 동반자이자 피츠허버트 부인과의 비밀 결혼의 증인 중 한 명이었던 두 번째 베컴햄 경은 어떨까? 그는 얼마나 자랑스럽고 잘생겼는가, 그의 갈색 곱슬머리와 거만한 자세와 함께! 그가 물려준 열정은 무엇이었을까? 세상은 그를 악명 높은 사람으로 여겼다. 그는 칼턴 하우스의 향연을 이끌었다. 가터 훈장이 그의 가슴에서 빛났다. 그 옆에는 그의 아내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는데, 창백하고 입술이 얇은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었다. 그녀의 피도 또한 꿈틀거렸다.
그의 내면에서 일었다. 얼마나 기이한 일인가! 그리고 해밀턴 부인의 얼굴을 닮은 그의 어머니와 그녀의 축축하고 와인에 젖은 입술 – 그는 자신이 어머니에게서 무엇을 물려받았는지 알았다. 그는 어머니에게서 아름다움과 타인의 아름다움에 대한 열정을 물려받았다. 어머니는 헐렁한 바카날 복장을 하고 그를 보며 웃었다. 그녀의 머리에는 포도 넝쿨이 있었다. 그녀가 들고 있던 잔에서 자주색 와인이 흘러내렸다. 그림 속 카네이션은 시들었지만, 눈은 여전히 깊이와 색채의 광채로 놀라웠다. 그 눈은 그가 어디를 가든 그를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인종만큼이나 문학에서도 조상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유형과 기질에서 더 가깝고, 확실히 더 절대적으로 의식하는 영향력을 가진 조상들이 많이 있었다. 때때로 도리안 그레이에게는 전 세계 역사가 단순히 그의 인생의 기록일 뿐이라고 생각되었다. 그가 행동과 상황 속에서 살아온 대로가 아니라, 그의 상상력이 그를 위해 만들어낸 대로, 그의 뇌와 열정 속에 있었던 대로 말이다. 그는 자신이 그들 모두를 알고 있었다고 느꼈다. 세상의 무대를 가로질러 지나가며 죄를 너무나 경이롭게 만들고 악을 아주 교묘하게 만든 그 이상하고 끔찍한 인물들을. 어떤 신비로운 방식으로 그들의 삶이 그의 삶이었던 것 같았다.
그의 인생에 그토록 큰 영향을 미친 그 놀라운 소설의 주인공도 이 기묘한 상상을 경험했다. 7장에서 그는 어떻게 번개가 그를 치지 않도록 월계관을 쓰고, 티베리우스로서 카프리의 정원에 앉아 엘레판티스의 추잡한 책들을 읽었는지, 그 주위로 난쟁이들과 공작새들이 활보하고 피리 부는 사람이 향로를 흔드는 사람을 조롱했는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칼리굴라로서 녹색 셔츠를 입은 마부들과 마구간에서 흥청망청 놀았고 보석으로 장식된 말과 상아 구유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도미티아누스로서 대리석 거울이 늘어선 복도를 배회하며, 그의 생을 마감할 단검의 반영을 초조한 눈으로 찾았고, 삶이 아무것도 거절하지 않는 이들에게 찾아오는 권태, 그 끔찍한 삶의 권태에 시달렸다. 그리고 맑은 에메랄드를 통해 서커스의 붉은 도살장을 들여다보았고, 은으로 만든 말발굽을 단 노새들이 끄는 진주와 자주색 가마를 타고 석류의 거리를 지나 황금의 집으로 옮겨졌으며, 지나갈 때 사람들이 네로 황제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엘라가발루스로서 얼굴에 색을 칠하고 여자들 사이에서 물레를 돌렸으며, 카르타고에서 달을 가져와 신비한 결혼식으로 태양에게 바쳤다.
도리안은 이 환상적인 장과 그 뒤에 이어지는 두 장을 반복해서 읽곤 했다. 그 장들에는 마치 기묘한 태피스트리나 교묘하게 만들어진 에나멜처럼 악덕과 피와 권태가 괴물이나 광인으로 만든 이들의 끔찍하고 아름다운 형상들이 묘사되어 있었다. 밀라노 공작 필리포, 그의 아내를 죽이고 그녀의 입술에 진홍색 독을 발라 그녀의 연인이 죽은 것에서 죽음을 빨아들이게 한 자. 베네치아의 피에트로 바르비, 교황 바오로 2세로 알려진 자로, 그의 허영심에 포르모수스라는 칭호를 가지려 했고, 그의 티아라는 20만 플로린의 가치가 있었으며 끔찍한 죄의 대가로 구입되었다. 살아있는 사람들을 사냥개로 쫓던 지안 마리아 비스콘티, 그의 시신은 그를 사랑했던 창녀가 장미꽃으로 덮었다. 형제 살해자가 옆에 타고 있고 페로토의 피로 얼룩진 망토를 입은 채 흰 말을 탄 보르지아. 피렌체의 젊은 추기경 대주교 피에트로 리아리오, 식스투스 4세의 아들이자 총아로, 그의 아름다움은 그의 방탕함과 맞먹었고, 백색과 진홍색 비단으로 만든 천막에서 아라곤의 레오노라를 맞이했는데, 그 천막은 요정들과 켄타우로스로 가득 차 있었고, 소년을 도금해 가니메데스나 힐라스로 연회에 시중들게 했다. 에젤리노, 그의 우울함은 오직 죽음의 광경으로만 치유될 수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붉은 포도주에 열광하듯 붉은 피에 열광했던 자 – 악마의 아들이라고 전해지며, 자신의 영혼을 걸고 아버지와 주사위 놀이를 하다 아버지를 속인 자. 조반니 바티스타 치보, 조롱하듯 이노첸시오라는 이름을 택했고 그의 무기력한 혈관에 유대인 의사가 세 소년의 피를 주입했던 자. 시지스몬도 말라테스타, 이소타의 연인이자 리미니의 영주로, 그의 조각상은 로마에서 신과 인간의 적으로 불태워졌고, 폴리세나를 손수건으로 목 졸라 죽이고 지네브라 데스테에게 에메랄드 잔에 독을 주었으며, 부끄러운 열정을 기념하기 위해 기독교 예배를 위한 이교도 교회를 지었다. 샤를 6세, 형제의 아내를 너무나 광적으로 사랑한 나머지 나병 환자가 그에게 다가올 광기를 경고했고, 그의 뇌가 병들어 이상해졌을 때 오직 사랑과 죽음과 광기의 이미지가 그려진 사라센 카드로만 달랠 수 있었던 자. 그리고 장식된 저킨과 보석 박힌 모자와 아칸서스 잎 모양의 곱슬머리를 한 그리포네토 발리오니, 그는 신부와 함께 아스토레를, 시모네토를 시동과 함께 죽였고, 그의 아름다움은 너무나 커서 그가 페루자의 노란 광장에서 죽어갈 때 그를 증오했던 사람들조차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고, 그를 저주했던 아탈란타도 그를 축복했다.
그들 모두에게는 끔찍한 매력이 있었다. 그는 그들을 밤에 보았고, 낮에는 그들이 그의 상상력을 괴롭혔다. 르네상스는 기이한 독살 방법들을 알고 있었다 – 투구와 불 붙은 횃불로 독살하는 법, 수놓은 장갑과 보석 박힌 부채로, 도금된 향료 상자와 호박 목걸이로. 도리안 그레이는 책으로 독살되었다. 그에게는 단순히 악을 아름다움에 대한 그의 개념을 실현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보는 순간들이 있었다.
제12장
그가 나중에 자주 기억했듯이, 그것은 11월 9일, 그의 38번째 생일 전날이었다.
그는 저녁 식사를 했던 헨리 경의 집에서 11시경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밤이 춥고 안개가 짙게 끼어 그는 두꺼운 모피 코트를 둘렀다. 그로스브너 광장과 사우스 오들리 거리의 모퉁이에서 안개 속에서 한 남자가 그를 지나쳐 갔다. 그 남자는 매우 빠르게 걸었고 회색 얼스터 코트의 칼라를 올렸다. 그는 손에 가방을 들고 있었다. 도리안은 그를 알아보았다. 베이즐 홀워드였다.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두려움이 그를 엄습했다. 그는 알아보았다는 표시를 하지 않고 계속 걸어갔다.
자신의 집 방향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하지만 홀워드가 그를 보았다. 도리안은 먼저 보도에 멈춰 서는 소리를 들었고, 그 다음 자신을 따라오는 발소리를 들었다. 잠시 후 홀워드의 손이 그의 팔을 잡았다.
“도리안! 이런 우연이! 9시부터 네 서재에서 널 기다리고 있었어. 결국 지친 네 하인이 불쌍해서 그를 잠자리에 들게 했지. 그가 나를 내보내며 그렇게 했어. 자정 기차로 파리에 가는데, 떠나기 전에 꼭 널 보고 싶었어. 네가 지나갈 때 너인 줄 알았어. 아니, 정확히는 네 모피 코트를 본 거지. 하지만 확신은 없었어. 날 알아보지 못했니?”
“이 안개 속에서 말이야, 베이즐? 난 그로스브너 광장도 알아보지 못하겠어. 내 집이 이 근처 어딘가에 있는 것 같은데, 그것조차 확신이 없어. 네가 떠난다니 유감이야. 오랫동안 널 못 봤거든. 하지만 곧 돌아오겠지?”
“아니, 6개월 동안 영국을 떠나 있을 거야. 파리에 작업실을 얻어서 머릿속에 있는 대작을 완성할 때까지 칩거할 생각이야. 하지만 내 얘기를 하려고 온 게 아니야. 여기가 네 집이군. 잠깐 들어가도 될까? 할 말이 있어.”
“물론이지. 하지만 기차를 놓치지 않을까?” 도리안 그레이는 무심한 듯 계단을 올라가며 열쇠로 문을 열었다.
램프 불빛이 안개를 뚫고 새어 나왔고, 홀워드는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이 충분해,” 그가 대답했다. “기차는 12시 15분에 떠나고 지금 겨우 11시야. 사실 클럽에 가서 널 찾으려던 참에 네게 우연히 마주쳤어. 보다시피, 짐 때문에 지체될 일도 없어. 무거운 짐은 이미 부쳤거든. 내게 있는 건 이 가방뿐이야. 20분이면 빅토리아 역에 충분히 갈 수 있어.”
도리안은 그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유명한 화가 치고는 참 소박하게 여행하는군! 글래드스톤 가방에 얼스터 코트라니! 어서 들어와. 안개가 집안으로 들어올라. 그리고 심각한 얘기는 하지 말아줘. 요즘엔 아무것도 심각하지 않아. 적어도 그래야 해.”
홀워드는 고개를 저으며 들어와 도리안을 따라 서재로 갔다. 커다란 열린 벽난로에는 밝은 장작불이 타고 있었다. 램프에 불이 켜져 있었고, 작은 마케트리 테이블 위에는 네덜란드산 은제 주병과 소다수 사이폰, 그리고 크리스털 유리잔이 놓여 있었다.
“보다시피 네 하인이 날 편하게 해줬어, 도리안. 필요한 건 다 줬지. 네가 가장 좋아하는 금색 필터 담배까지. 정말 친절한 녀석이야. 네가 전에 두었던 프랑스인보다 훨씬 마음에 들어. 그런데 그 프랑스인은 어떻게 됐지?”
도리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래들리 부인의 하녀와 결혼해서 파리에서 영국식 양장점을 차렸다고 들었어. 앵글로매니아가 거기서 유행이라더군. 프랑스인들 참 바보 같지 않아? 하지만, 알아? 그는 그다지 나쁜 하인은 아니었어. 난 그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불평할 건 없었어. 가끔 터무니없는 상상을 하게 되지. 그는 정말 나에게 헌신적이었고 떠날 때 꽤 슬퍼하는 것 같았어. 브랜디에 소다 한잔 더 할래? 아니면 호크와 젤처를 마실래? 난 항상 호크와 젤처를 마셔. 옆방에 분명 있을 거야.”
“고마워. 더 이상 마시지 않을게,” 화가가 말했다. 그는 모자와 코트를 벗어 구석에 놓아둔 가방 위에 던졌다. “그리고 이제, 내 소중한 친구, 심각한 얘기를 하고 싶어. 그렇게 찡그리지 마. 내가 할 말을 더 어렵게 만들 뿐이야.”
“무슨 얘긴데?” 도리안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외치며 소파에 몸을 던졌다. “오늘 밤은 나 자신이 지겨워.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그건 네 자신에 관한 얘기야,” 홀워드가 깊고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난 그걸 네게 말해야만 해. 30분만 시간을 내줘.”
도리안은 한숨을 쉬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30분이라고!” 그가 중얼거렸다.
“그렇게 많이 요구하는 게 아니야, 도리안. 그리고 이건 전적으로 네 이익을 위해 하는 말이야. 런던에서 너에 대해 아주 끔찍한 소문들이 돌고 있다는 걸 네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난 그런 거 알고 싶지 않아. 난 다른 사람들의 스캔들은 좋아하지만, 내 스캔들엔 관심이 없어. 새롭지도 않잖아.”
“도리안, 네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네. 모든 신사는 자신의 명예에 관심을 가지지. 넌 사람들이 널 비열하고 타락한 인간으로 여기는 걸 원치 않을 거야. 물론 네겐 지위와 재산, 그런 것들이 있지. 하지만 지위와 재산이 전부는 아니야. 내 말 좀 들어봐. 난 이런 소문들을 전혀 믿지 않아. 적어도 널 볼 때는 믿을 수가 없어. 죄는 사람의 얼굴에 새겨지는 거야. 숨길 수가 없지. 사람들은 가끔 은밀한 악습에 대해 얘기하지만, 그런 건 없어. 만약 비참한 사람이 악습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입술의 선, 눈꺼풀의 처짐, 손의 모양새에까지 드러나. 누군가가—이름은 말하지 않겠지만 넌 그를 알 거야—작년에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왔었어. 난 그를 전에 본 적도 없었고, 그때까지 그에 대해 들은 적도 없었어. 그 뒤로 많이 들었지만. 그는 엄청난 금액을 제안했어. 난 거절했어. 그의 손가락 모양에서 뭔가 혐오스러운 게 있었거든. 이제 난 내가 그에 대해 상상했던 게 옳았다는 걸 알아. 그의 인생은 끔찍해. 하지만 너, 도리안, 너의 순수하고 밝고 순진한 얼굴, 그리고 네 놀라울 정도로 평온한 젊음과 함께—난 너에 대해 나쁜 얘기를 믿을 수 없어. 그런데도 난 너를 아주 가끔 보고, 너는 이제 작업실에 오지도 않아. 그리고 내가 너를 떠나 있을 때, 사람들이 너에 대해 속삭이는 이 모든 끔찍한 것들을 듣게 되면, 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도리안, 왜 버윅 공작 같은 사람이 네가 클럽에 들어설 때 자리를 피하는 거지? 왜 런던의 많은 신사들이 네 집에 가지도 않고 너를 자신의 집에 초대하지도 않는 거야? 넌 스테이블리 경의 친구였잖아. 지난주 저녁 식사에서 그를 만났어. 네 이름이 언급되자 그는… 도리안, 네 친구로서 말하는데, 난 네가 왜 열일곱 살 소년의 평판을 망치려 했는지 알고 싶어. 그 소년은 누구지? 그리고 왜 컨드릴 빌에서 만난 그 젊은이는 네 친구가 되길 거부했지? 넌 전에 헨리 애쉬턴의 친구였어. 작년 내가 마르게이트에 있을 때 애쉬턴이 왔었는데, 네 얘기가 나왔어. 도리안, 그때 그가 한 말을… 나는…아, 넌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 필요가 없어. 하지만 그는 왜 그렇게 말했을까? 왜 그들 모두가 그렇게 말하는 거지? 넌 그들 중 많은 사람들과 친했어. 그런데 이제 그들을 만나면 그들은 가장 차가운 목례만 하고 지나가. 이 모든 일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왜 네 이름이 사교계에서 속삭임의 대상이 된 거지? 네가 어디 가든 사람들이 서로 귓속말을 하고 비웃는 걸 봤어. 내게 진실을 말해줘. 난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게 더 놀라워. 런던의 가장 저속한 매춘부들과 가장 나이 든 귀족들이 똑같이 말하는 이야기들이 무엇인지 설명해줘.”
“네가 한 말 중에 한 마디도 이해할 수 없어, 베이즐,” 도리안 그레이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극도의 경멸감이 서려 있었다. “넌 내게 질문을 하고 있어. 내가 왜 대답해야 하지? 하지만 네가 정말로 알고 싶다면 말해주지. 내가 그 소년의 평판을 망쳤다고 들었다고? 그건 내가 한 일이야. 그 젊은이가 내 친구가 되길 거부했다고? 그는 내게 무릎을 꿇고 애원했어. 헨리 애쉬턴이 내 이름을 들으면 창백해진다고? 그가 감히 그럴 순 없어. 네가 말한 그 모든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까지, 그들이 나를 만나면 가장 차가운 인사만 하고 지나간다고? 아마도 내 눈에는 그들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보이기 때문일 거야. 정말 이상해, 베이즐. 넌 내게 와서 내 삶에 대해 설명을 요구해. 넌 내 친구야. 넌 내 초상화를 그렸어. 내 삶은 내 거야. 내가 원하는 대로 살 거야.”
“당신 이름이 더들리 전시회에 출품한 미니어처와 관련해 화제에 올랐더군요. 스테이블리가 입술을 비죽이며 말하길, 당신이 아무리 예술적 취향을 가졌다 해도 순수한 소녀들이 알아서는 안 될 사람이며, 정숙한 여인들은 당신과 같은 방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더군요. 내가 당신의 친구라고 말하며 무슨 뜻이냐고 물었죠. 그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말했어요. 끔찍했어요! 왜 당신의 우정은 젊은이들에게 그토록 치명적인 거죠? 근위대의 그 불쌍한 청년은 자살했잖아요. 당신은 그의 절친한 친구였죠. 헨리 애쉬턴 경은 오명을 쓴 채 영국을 떠나야 했고요. 당신과 그는 떨어질 줄 모르는 사이였죠. 에이드리언 싱글턴과 그의 비참한 최후는 어떻고요? 켄트 경의 외아들과 그의 경력은요? 어제 세인트 제임스 거리에서 그의 아버지를 만났는데, 수치심과 슬픔으로 망가진 것 같더군요. 젊은 퍼스 공작은요? 그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죠? 어떤 신사가 그와 어울리려 하겠어요?”
“그만해요, 베이즐. 모르는 소리 하지 마세요.” 도리안 그레이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경멸이 담겨 있었다. “버윅이 내가 방을 나가는 이유를 물어보더군요. 내가 그의 삶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는 내 삶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러는 거죠? 그의 혈통으로 어떻게 그의 기록이 깨끗할 수 있겠어요? 헨리 애쉬턴과 젊은 퍼스에 대해 물어보더군요. 내가 한 사람에게 악덕을, 다른 사람에게 방탕함을 가르쳤단 말입니까? 켄트의 바보 같은 아들이 아내를 거리에서 데려왔다면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죠? 에이드리언 싱글턴이 친구 이름으로 어음을 썼다면, 내가 그의 보호자입니까? 영국 사람들이 어떻게 수다를 떠는지 알아요. 중산층은 저들의 저속한 식탁에서 도덕적 편견을 늘어놓고, 자신들이 상류 사회에 있고 비방하는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라고 가장하기 위해 그들이 말하는 상류층의 방탕함에 대해 속삭이죠. 이 나라에서는 남다른 재능과 지성을 가진 사람이면 충분히 모든 평범한 입들이 그를 헐뜯기 시작하죠. 그리고 도덕적이라고 자처하는 이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죠? 친구여, 우리가 위선자의 고향에 있다는 걸 잊고 있어요.”
“도리안,” 홀워드가 외쳤다. “문제는 그게 아니에요. 영국이 충분히 나쁘다는 건 알아요. 영국 사회가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도요. 그래서 내가 당신이 훌륭해지길 바라는 거예요. 당신은 훌륭하지 않았어요. 사람은 친구들에게 미치는 영향으로 판단받을 권리가 있어요. 당신의 친구들은 명예감, 선함, 순수함에 대한 모든 감각을 잃은 것 같아요. 당신은 그들에게 쾌락에 대한 광기를 심어줬어요. 그들은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죠. 당신이 그들을 그곳으로 이끌었어요. 그래요, 당신이 그들을 그곳으로 이끌었어요. 그런데도 당신은 지금 웃고 있는 것처럼 웃을 수 있어요. 그리고 더 나쁜 게 있어요. 나는 당신과 해리가 떨어질 수 없다는 걸 알아요. 적어도 그 이유 때문에라도, 당신은 그의 여동생의 이름을 입에 오르내리게 해서는 안 됐어요.”
“조심해요, 베이즐. 당신은 너무 나가고 있어요.”
“말해야 해요. 그리고 당신은 들어야 해요. 들으셔야 해요. 당신이 그웬돌린 부인을 만났을 때, 그녀에게는 스캔들의 그림자 하나 없었어요. 지금 런던에 그녀와 함께 공원을 산책할 제대로 된 여성이 한 명이라도 있나요? 그녀의 아이들조차 그녀와 함께 살 수 없대요. 그리고 다른 이야기들도 있어요. 당신이 새벽에 끔찍한 집들에서 몰래 빠져나와 변장한 채 런던의 가장 더러운 소굴로 몰래 들어가는 모습을 봤다는 이야기들 말이에요. 그게 사실인가요? 사실일 수 있나요?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웃었어요. 지금 그 얘기를 들으면 몸서리가 쳐요. 당신의 별장은 어떻고, 거기서 벌어지는 일들은요? 도리안, 당신은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지 모르는 거예요. 설교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 않겠어요. 해리가 한 번 말하길, 잠시 아마추어 설교자 행세를 하는 사람은 항상 그렇게 말하고 시작해서 곧바로 약속을 어긴다고 하더군요. 나는 당신에게 설교하고 싶어요. 당신이 세상의 존경을 받을 만한 삶을 살기를 바라요. 당신이 깨끗한 이름과 순결한 기록을 갖기를 바라요. 당신이 어울리는 끔찍한 사람들을 떠나기를 바라요. 그렇게 어깨를 으쓱거리지 마세요. 그렇게 무관심하지 마세요. 당신은 엄청난 영향력이 있어요. 그것을 선하게 사용하세요, 악하게 말고요. 사람들은 당신이 친밀해지는 모든 사람을 타락시키고, 당신이 어떤 집에 들어가기만 해도 수치스러운 일이 뒤따른다고 말해요.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나는 모르겠어요.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하지만 그렇게 말해지고 있어요. 의심할 여지없이 사실인 것 같은 일들을 들었어요. 글로스터 경은 옥스퍼드에서 내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었어요. 그는 그의 아내가 멘톤의 빌라에서 혼자 죽어가며 쓴 편지를 내게 보여줬어요. 당신의 이름이 내가 읽어본 가장 끔찍한 고백에 연루되어 있었어요. 나는 그에게 그건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내가 당신을 잘 알고 있으며 당신은 그런 종류의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했어요. 당신을 안다고요? 당신을 아는지 의문이 들어요. 그 질문에 답하기 전에 나는 당신의 영혼을 봐야 할 것 같아요.”
“내 영혼을 보겠다고!” 도리안 그레이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거의 공포에 질려 하얗게 질린 채 중얼거렸다.
“그래요,” 홀워드가 진지하게, 깊은 슬픔이 담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의 영혼을 보겠다고요. 하지만 그건 오직 신만이 하실 수 있죠.”
젊은 남자의 입에서 비웃음 섞인 쓰라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당신이 직접 오늘 밤에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는 탁자에서 램프를 집어 들며 외쳤다. “와요, 그건 당신 자신의 작품이에요. 왜 보면 안 되죠? 나중에 당신이 원한다면 세상에 모든 걸 말할 수 있어요. 아무도 당신을 믿지 않을 거예요. 만약 그들이 믿는다면, 그들은 나를 더 좋아하게 될 거예요. 나는 이 시대를 당신보다 더 잘 알아요. 당신이 지루하게 떠들어대겠지만 말이에요. 와요, 내가 말하잖아요. 당신은 타락에 대해 충분히 지껄였어요. 이제 그것을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보게 될 거예요.”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미친 듯한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그는 소년 같은 오만한 태도로 발을 쾅 굴렀다.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비밀을 공유하게 될 거라는 생각에 그는 무시무시한 기쁨을 느꼈다. 그의 모든 수치심의 근원이 된 초상화를 그린 사람이 이제 남은 인생 동안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끔찍한 기억을 짊어지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그래요,” 그는 더 가까이 다가가 홀워드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의 엄한 눈으로, “내 영혼을 당신에게 보여주겠소. 신만이 볼 수 있다고 당신이 생각하는 것을 보게 될 거요.”
홀워드는 뒤로 물러섰다. “이건 신성모독이오, 도리안!” 그는 외쳤다. “그런 말을 해선 안 되오. 끔찍하고 아무 의미 없는 말이오.”
“그렇게 생각하시오?” 그는 다시 웃었다.
“그렇다는 걸 알고 있소. 오늘 밤 당신에게 한 말은 모두 당신을 위해서였소.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늘 당신의 충실한 친구였소.”
“날 만지지 마시오. 할 말을 마저 하시오.”
고통의 일그러진 섬광이 화가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그는 잠시 멈추었고, 격한 연민의 감정이 그를 휩쓸었다. 결국, 도리안 그레이의 삶을 캐물을 무슨 권리가 있단 말인가? 만약 그가 소문의 십분의 일이라도 저질렀다면, 그가 얼마나 많이 고통받았을까! 그러고 나서 그는 몸을 곧게 폈고, 벽난로로 걸어가 그곳에 서서 서리 같은 재와 불꽃이 일렁이는 심지를 가진 타오르는 장작들을 바라보았다.
“기다리고 있소, 베이즐,” 젊은이가 냉정하고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몸을 돌렸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이오,” 그는 외쳤다. “당신에 대해 제기된 이 끔찍한 혐의들에 대해 어떤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소. 만약 당신이 그것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절대적으로 거짓이라고 말한다면, 난 당신을 믿겠소. 그것들을 부인하시오, 도리안, 부인하시오! 내가 무엇을 겪고 있는지 모르겠소? 맙소사! 당신이 나쁘고, 타락하고, 수치스럽다고 말하지 마시오.”
도리안 그레이는 미소 지었다. 그의 입술에는 경멸의 곡선이 있었다. “위층으로 올라가시오, 베이즐,” 그는 조용히 말했다. “나는 매일 내 삶의 일기를 쓰고 있소, 그리고 그것은 쓰여진 방을 절대 떠나지 않소. 당신이 나와 함께 온다면 그것을 보여주겠소.”
“당신이 원한다면 함께 가겠소, 도리안. 기차를 놓쳤군요. 하지만 그건 상관없소. 내일 갈 수 있소. 하지만 오늘 밤에는 아무것도 읽어달라고 하지 마시오. 내가 원하는 건 단순한 질문에 대한 대답뿐이오.”
“그건 위층에서 당신에게 주어질 거요. 여기서는 줄 수 없소. 읽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을 거요.”
13장
그는 방을 나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고, 베이즐 홀워드가 바로 뒤를 따랐다. 그들은 부드럽게 걸었는데, 밤에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그러듯이. 램프는 벽과 계단에 기괴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커지는 바람에 몇몇 창문이 덜그럭거렸다.
그들이 맨 위 층에 도착했을 때, 도리안은 램프를 바닥에 내려놓고 열쇠를 꺼내 자물쇠에 넣었다. “꼭 알고 싶으신 거요, 베이즐?” 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소.”
“기쁘군요,” 그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나서 다소 거칠게 덧붙였다. “당신은 내 모든 것을 알 자격이 있는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이오. 당신은 내 삶에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영향을 끼쳤소.” 그리고 램프를 들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차가운 공기가 그들을 스쳐 지나갔고, 불빛이 잠시 탁한 주황색 불꽃으로 치솟았다. 그는 몸을 떨었다. “문을 닫으시오,” 그는 램프를 테이블 위에 놓으며 속삭였다.
홀워드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은 수년간 사람이 살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바랜 플랑드르 태피스트리, 커튼이 쳐진 그림, 오래된 이탈리아 카소네, 그리고 거의 비어 있는 책장 – 이것들이 의자와 테이블 외에 방 안에 있는 모든 것 같았다. 도리안 그레이가 벽난로 선반 위에 있는 반쯤 탄 초에 불을 붙이자, 그는 온 방이 먼지로 덮여 있고 카펫에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보았다. 쥐 한 마리가 벽 판자 뒤에서 달그락거리며 달려갔다. 곰팡이 냄새가 났다.
“그래서 당신은 오직 신만이 영혼을 본다고 생각하시오, 베이즐? 저 커튼을 젖히시오, 그러면 내 영혼을 보게 될 거요.”
그 목소리는 차갑고 잔인했다. “당신은 미쳤소, 도리안, 아니면 연기를 하고 있는 거요,” 홀워드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원치 않으시오? 그럼 내가 직접 해야겠군,” 젊은이가 말했고, 그는 커튼을 막대에서 잡아당겨 바닥에 던졌다.
화가의 입에서 공포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는 흐릿한 불빛 속에서 캔버스 위의 끔찍한 얼굴이 자신을 향해 씩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표정에는 그를 혐오와 증오로 가득 채우는 무언가가 있었다. 맙소사! 그가 보고 있는 것은 도리안 그레이 자신의 얼굴이었다! 공포,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아직 그 놀라운 아름다움을 완전히 망치지는 않았다. 희미해지는 머리카락에는 여전히 금빛이 있었고, 관능적인 입술에는 여전히 진홍빛이 있었다. 흐릿한 눈은 여전히 그 푸른빛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고, 고상한 곡선은 다듬어진 콧날과 유연한 목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 그것은 도리안 자신이었다. 하지만 누가 이것을 했을까? 그는 자신의 붓놀림을 알아보는 것 같았고, 액자도 자신이 디자인한 것이었다. 그 생각은 괴물 같았지만, 그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는 불 붙은 촛불을 잡아 그림 가까이 가져갔다. 왼쪽 구석에 그의 이름이 밝은 주홍색 긴 글씨로 적혀 있었다.
그것은 어떤 저열한 풍자화, 어떤 끔찍하고 비열한 조롱이었다. 그는 결코 그런 것을 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그의 그림이었다. 그는 그것을 알았고, 그의 피가 순식간에 불에서 느릿한 얼음으로 변한 것 같았다. 그의 그림! 무슨 의미일까? 왜 변했을까? 그는 몸을 돌려 병든 사람의 눈으로 도리안 그레이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이 떨렸고, 메마른 혀는 말을 잇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손을 이마에 갖다 댔다. 그것은 끈적한 땀으로 축축했다.
젊은이는 벽난로 선반에 기대어 서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위대한 배우가 연기할 때 관객의 얼굴에서 볼 수 있는 그 이상한 표정이 있었다. 그곳에는 진정한 슬픔도 진정한 기쁨도 없었다. 단지 관객의 열정만이 있었고, 아마도 그의 눈에는 승리의 섬광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코트에서 꽃을 꺼내 냄새를 맡고 있었다. 아니면 냄새를 맡는 척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의미요?” 홀워드가 마침내 외쳤다. 그의 목소리는 그의 귀에 날카롭고 이상하게 들렸다.
“수년 전, 내가 소년이었을 때,” 도리안 그레이가 꽃을 손에 쥐어 부수며 말했다. “당신은 나를 만났고, 아첨했으며, 내 잘생긴 외모를 자랑스러워하도록 가르쳤소. 어느 날 당신은 나를 당신 친구에게 소개했는데, 그는 내게 젊음의 경이로움을 설명해 주었소. 그리고 당신은 내게 아름다움의 경이로움을 보여준 초상화를 완성했소. 광기의 순간, 지금도 내가 후회하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나는 소원을 빌었소. 아마 당신은 그것을 기도라고 부를 수도 있겠죠.”
“이제 나는 후회하는지 아닌지 모르겠어. 나는 소원을 빌었어. 아마 너라면 그걸 기도라고 부르겠지….”
“기억나! 오,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나! 아니! 그건 불가능해. 방이 축축해. 곰팡이가 캔버스에 스며들었어. 내가 쓴 물감에 무슨 지독한 독이 들어있었나 봐. 말했듯이 그건 불가능해.”
“아, 무엇이 불가능하다는 거지?” 젊은 남자가 중얼거리며 창가로 가 이마를 차갑고 안개 낀 유리에 기대었다.
“네가 그걸 파괴했다고 말했잖아.”
“내가 틀렸어. 그게 날 파괴했지.”
“그게 내 초상화라고는 믿을 수 없어.”
“네 이상을 그 안에서 볼 수 없니?” 도리안이 씁쓸하게 말했다.
“내 이상이라고 네가 부르는 거…”
“네가 부르던 거지.”
“거기엔 사악한 게 없었어, 부끄러운 것도 없었고. 넌 내게 다시는 만날 수 없을 이상이었어. 이건 사티로스의 얼굴이야.”
“이건 내 영혼의 얼굴이야.”
“세상에! 내가 숭배했던 게 저런 거였다니! 악마의 눈을 가졌어.”
“우리 각자 안에는 천국과 지옥이 있어, 베이즐,” 도리안이 절망적인 몸짓으로 외쳤다.
홀워드는 다시 초상화로 돌아가 그것을 응시했다. “맙소사!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가 외쳤다, “그리고 이게 네가 네 인생으로 한 일이라면, 왜, 넌 너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더 나쁜 놈이구나!” 그는 다시 불빛을 캔버스에 비추고 살펴보았다. 표면은 전혀 손상되지 않은 것 같았고 그가 남겨둔 그대로였다. 더러움과 공포는 안에서 나온 것 같았다. 어떤 이상한 내면의 삶의 빠른 작용을 통해 죄의 나병이 천천히 그것을 갉아먹고 있었다. 물 속 무덤에서 썩어가는 시체도 이렇게 무섭지는 않을 것이다.
그의 손이 떨렸다. 촛대가 받침대에서 떨어져 바닥에 쿵 하고 쓰러졌고,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는 재빨리 발로 촛불을 밟아 껐다. 그리고는 테이블 옆에 놓인 삐걱거리는 의자에 몸을 던지고 얼굴을 손에 묻었다.
“맙소사, 도리안, 이 얼마나 무서운 교훈인가! 이 얼마나 무서운 교훈인가!” 대답은 없었지만, 그는 젊은이가 창가에서 흐느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기도해, 도리안, 기도해,” 그가 중얼거렸다. “어렸을 때 우리가 배운 게 뭐였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의 죄악을 씻어 주소서.’ 함께 그걸 말해보자. 네 오만의 기도는 응답받았어. 네 회개의 기도도 응답받을 거야. 난 너를 너무 숭배했어. 그것에 대한 벌을 받고 있어. 넌 네 자신을 너무 숭배했지. 우리 둘 다 벌을 받고 있어.”
도리안 그레이는 천천히 돌아서서 눈물에 젖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너무 늦었어, 베이즐,” 그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너무 늦은 건 없어, 도리안. 무릎을 꿇고 기도를 기억해내보자. 어딘가에 구절이 있지 않나, ‘네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내가 눈과 같이 희게 하리라’?”
“그 말들은 이제 내게 아무 의미가 없어.”
“쉿! 그런 말 하지 마. 넌 인생에서 충분히 악을 저질렀어. 맙소사! 저 저주받은 것이 우리를 비웃고 있는 게 보이지 않아?”
도리안 그레이는 초상화를 힐끗 보았다. 갑자기 베이즐 홀워드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증오감이 그를 엄습했다. 마치 캔버스의 이미지가 그에게 제안한 것처럼, 그 히죽거리는 입술이 그의 귀에 속삭이는 것처럼 말이다. 사냥당한 짐승의 미친 열정이 그의 내면에서 꿈틀거렸고, 그는 테이블에 앉아 있는 남자를 평생 그 어느 때보다도 증오했다. 그는 미친 듯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주 보고 있는 그려진 상자 위에서 무언가가 반짝였다. 그의 시선이 그것에 닿았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며칠 전에 끈을 자르려고 가져왔다가 가져가는 것을 잊은 칼이었다. 그는 천천히 그쪽으로 움직였다. 홀워드를 지나쳤다. 그의 뒤에 오자마자 칼을 집어 들고 돌아섰다. 홀워드가 의자에서 움직이려는 듯했다. 그는 그에게 달려들어 칼을 귀 뒤의 큰 동맥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는 남자의 머리를 테이블로 내리누르며 계속해서 찔렀다.
숨 막히는 신음 소리와 피를 토하는 끔찍한 소리가 들렸다. 세 번이나 뻗은 팔이 경련적으로 위로 치솟았고, 그로테스크한 뻣뻣한 손가락들이 허공에서 흔들렸다. 그는 두 번 더 찔렀지만 남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잠시 기다렸고, 여전히 머리를 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칼을 테이블 위에 던지고 귀를 기울였다.
그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단지 닳아빠진 카펫 위로 똑똑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다. 그는 문을 열고 계단 참으로 나갔다. 집은 완전히 조용했다. 아무도 없었다. 몇 초 동안 그는 난간 위로 몸을 기울이고 어둠의 검은 소용돌이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열쇠를 꺼내 방으로 돌아가 문을 잠갔다.
그것은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로 몸을 굽히고 머리를 숙인 채, 등은 굽고 긴 팔이 기괴하게 뻗어 있었다. 목의 붉고 들쭉날쭉한 상처와 테이블 위에서 천천히 넓어지고 있는 검은 핏자국이 아니었다면, 그 남자가 그저 잠들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얼마나 빨리 다 끝났는지! 그는 이상하게 차분함을 느꼈고, 창가로 걸어가 창문을 열고 발코니로 나갔다. 바람이 안개를 날려 보냈고, 하늘은 황금빛 눈동자로 가득 찬 거대한 공작의 꼬리 같았다. 그는 아래를 내려다보았고 순찰 중인 경찰관이 긴 손전등 빔을 조용한 집들의 문에 비추는 것을 보았다. 배회하는 마차의 붉은 점이 모퉁이에서 빛났다가 사라졌다. 헐렁한 숄을 두른 여자가 난간을 따라 비틀거리며 천천히 기어가고 있었다. 때때로 그녀는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한번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경찰관이 다가가 그녀에게 뭔가 말했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웃으며 가버렸다. 매서운 바람이 광장을 휩쓸었다. 가스등이 깜빡이며 파랗게 변했고, 앙상한 나무들이 검은 철제 가지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는 몸을 떨며 뒤로 물러나 창문을 닫았다.
문가에 도착해서 열쇠를 돌려 문을 열었다. 그는 살해된 남자를 힐끗도 보지 않았다. 그는 상황을 실감하지 않는 것이 이 모든 일의 비밀이라고 느꼈다. 그림을 그린 친구는
그의 모든 불행의 원인이 되었던 그 치명적인 초상화는 그의 인생에서 사라졌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때 그는 램프를 떠올렸다. 그것은 무어인들의 작품으로 꽤 특이한 것이었다. 무딘 은색에 광을 낸 강철로 아라베스크 무늬를 새기고 조악한 터키석을 박아 넣은 것이었다. 아마도 하인이 그것을 찾지 못해 질문을 할지도 모른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 돌아가 탁자에서 램프를 가져왔다. 죽은 것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나 고요한가! 그 긴 손이 얼마나 끔찍하게 하얘 보이는지! 그것은 무시무시한 밀랍 인형 같았다.
문을 잠근 후 그는 조용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나무 바닥이 삐걱거리며 마치 고통받는 것처럼 소리를 냈다. 그는 여러 번 멈춰 서서 기다렸다. 아니다. 모든 것이 고요했다. 그것은 단지 그의 발자국 소리일 뿐이었다.
서재에 도착했을 때 그는 구석에 있는 가방과 코트를 보았다. 그것들을 어딘가에 숨겨야 했다. 그는 벽에 있는 비밀 수납장의 잠금을 열었다. 그가 특이한 변장 도구들을 보관하는 수납장이었다. 그는 그것들을 그 안에 넣었다. 나중에 쉽게 태워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는 시계를 꺼내 보았다. 2시 20분 전이었다.
그는 앉아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매년, 거의 매달 영국에서는 그가 저지른 일로 사람들이 교수형을 당했다. 공기 중에는 살인의 광기가 있었다. 어떤 붉은 별이 지구에 너무 가까이 다가온 것 같았다. … 하지만 그를 향한 증거가 있었던가? 베이즐 홀워드는 11시에 집을 나갔다. 아무도 그가 다시 들어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대부분의 하인들은 셀비 로열에 있었다. 그의 시종은 잠자리에 들었다. … 파리! 그렇다. 베이즐은 파리로 갔고, 그가 의도했던 대로 자정 기차를 탔다. 그의 독특하고 은둔적인 습관으로 볼 때, 어떤 의심이 생기려면 몇 달은 걸릴 것이다. 몇 달! 그때까지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을 것이다.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모피 코트와 모자를 쓰고 현관으로 나갔다. 그곳에서 그는 잠시 멈춰 서서 보도 위를 천천히 무겁게 걷는 경찰관의 발소리를 듣고 창문에 비치는 손전등 불빛을 보았다. 그는 기다리며 숨을 참았다.
잠시 후 그는 문을 살짝 열고 빠져나와 매우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나서 현관 벨을 울리기 시작했다. 약 5분 후 그의 시종이 반쯤 옷을 입은 채 매우 졸린 듯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프랜시스, 깨워서 미안해요.” 그가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열쇠를 깜빡했어요. 지금 몇 시죠?”
“2시 10분입니다, 나리.” 시계를 보며 눈을 깜빡이던 하인이 대답했다.
“2시 10분이라고요? 너무 늦었군요! 내일 9시에 깨워주세요. 할 일이 좀 있어요.”
“알겠습니다, 나리.”
“오늘 저녁에 누가 왔었나요?”
“홀워드 씨가 오셨습니다, 나리. 11시까지 계시다가 기차를 타러 가셨습니다.”
“아! 그를 만나지 못해 아쉽군요. 무슨 말을 남기고 갔나요?”
“아니요, 나리. 클럽에서 나리를 만나지 못하면 파리에서 편지를 보내겠다고 하셨습니다.”
“알겠어요, 프랜시스. 내일 9시에 깨우는 걸 잊지 마세요.”
“네, 나리.”
하인은 슬리퍼를 신은 채 복도를 따라 느릿느릿 걸어갔다.
도리안 그레이는 모자와 코트를 탁자 위에 던지고 서재로 들어갔다. 15분 동안 그는 입술을 깨물며 생각에 잠겨 방 안을 왔다 갔다 했다. 그리고 나서 책장에서 블루북을 꺼내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앨런 캠벨, 허트퍼드 가 152번지, 메이페어.” 그렇다. 그가 원하는 사람이었다.
제14장
다음날 아침 9시에 그의 하인이 쟁반에 초콜릿을 들고 들어와 셔터를 열었다. 도리안은 오른쪽으로 누워 한 손을 볼 아래에 대고 아주 평화롭게 잠들어 있었다. 그는 놀이나 공부에 지친 소년처럼 보였다. 하인이 그의 어깨를 두 번 건드려야 그가 깼고, 눈을 뜨자 그의 입술에 희미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마치 기분 좋은 꿈에서 빠져나온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전혀 꿈을 꾸지 않았다. 그의 밤은 기쁨이나 고통의 이미지로 방해받지 않았다. 하지만 젊음은 아무 이유 없이 미소 짓는다. 그것이 젊음의 가장 매력적인 특징 중 하나다.
그는 몸을 돌려 팔꿈치를 짚고 초콜릿을 마시기 시작했다. 11월의 부드러운 햇살이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하늘은 맑았고 공기 중에는 온화한 따스함이 있었다. 거의 5월 아침 같았다.
점차 전날 밤의 사건들이 조용히 피 묻은 발로 그의 뇌로 기어들어와 끔찍한 선명함으로 그곳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는 자신이 겪었던 모든 것을 기억하며 움찔했고, 잠시 동안 의자에 앉아 있던 베이즐 홀워드를 죽이게 만들었던 그 이상한 혐오감이 다시 그에게 밀려왔다. 그는 열정으로 몸을 떨었다. 죽은 남자는 여전히 그곳에 앉아 있었고, 이제는 햇빛 아래에 있었다. 얼마나 끔찍한가! 그런 끔찍한 것들은 어둠을 위한 것이지, 낮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일을 곱씹으면 병이 나거나 미칠 것 같았다. 기억 속에는 더 매력적인 죄들이 있었다. 기괴한 승리들이 자부심을 채워주고 열정보다는 지성에 더 큰 기쁨을 주는, 감각에 가져다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을 주는 그런 죄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그런 것들 중 하나가 아니었다. 이것은 마음에서 쫓아내야 할 것이었고, 양귀비로 마취시켜야 할 것이었으며,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자신을 질식시킬 수 있기에 목을 조여야 할 것이었다.
반 시간이 지나자 그는 이마를 쓸어내리고 서둘러 일어나 평소보다 더 주의를 기울여 옷을 입었다. 넥타이와 스카프 핀 선택에 많은 신경을 쓰고 반지도 여러 번 바꿔 꼈다. 그는 아침 식사에도 많은 시간을 들였다. 여러 요리를 맛보고 하인과 셀비에 있는 하인들을 위해 만들 생각인 새로운 제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편지들을 살펴보았다. 몇몇 편지에 그는 미소를 지었다. 세 통은 그를 지루하게 했다. 한 통은 여러 번 읽고 나서 살짝 짜증난 표정으로 찢어버렸다. “여자의 기억이란 끔찍한 것이지!” 헨리 경이 한번 말했었다.
그는 블랙커피를 마신 후 냅킨으로 입술을 천천히 닦고 하인에게 기다리라고 손짓한 다음 탁자로 가서 앉아 두 통의 편지를 썼다. 하나는 주머니에 넣고 다른 하나는 하인에게 건넸다.
“프랜시스, 이번 차례는 허트퍼드 가 152번지로 가주게. 만약 캠벨 씨가 외출 중이라면 그의 주소를 알아오게.”
그는 혼자 남자 담배에 불을 붙이고 종이에 스케치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꽃과 건축물의 일부를 그리다가 이내 사람 얼굴을 그렸다. 갑자기 그는 자신이 그린 모든 얼굴이 베이즐 홀워드와 놀랍도록 닮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고 일어나 책장으로 가서 아무 책이나 꺼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생각해야 할 때까지는 일어난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소파에 몸을 뻗고 누워 책의 표지를 보았다. 그것은 고티에의 ‘에모와 카메’였다. 샤르팡티에 출판사에서 나온 일본 종이로 만든 판본이었고 자크마르의 에칭이 들어있었다. 표지는 레몬-녹색 가죽에 금박으로 격자무늬와 점을 찍은 석류 문양이 장식되어 있었다. 에이드리언 싱글턴이 그에게 선물한 책이었다. 페이지를 넘기다 그의 눈에 라세네르의 손에 대한 시가 들어왔다. 그 차가운 노란 손은 “아직 형벌의 흔적이 씻겨나가지 않은” 손으로, 붉은 솜털이 나 있고 “농신의 손가락”을 가진 손이었다. 그는 자신의 가느다란 하얀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살짝 전율하며 계속 페이지를 넘겨 베네치아에 대한 아름다운 연을 발견했다.
크로마틱 음계 위에서,
진주가 쏟아지는 가슴,
아드리아 해의 비너스가
분홍빛 하얀 몸을 물 밖으로 드러낸다.
둥근 가슴처럼 부풀어 오른 돔들이
사랑의 한숨에 들썩이며
물결 위 푸른 하늘을 따라
순수한 윤곽의 문장을 이룬다.
배가 닻을 기둥에 던지며 접안하여
나를 내려놓는다,
분홍빛 외관 앞
대리석 계단 위에.
얼마나 절묘한가! 그것을 읽으며 마치 분홍빛 진주 도시의 초록빛 수로를 따라 은빛 뱃머리와 늘어진 커튼이 달린 검은 곤돌라를 타고 떠다니는 듯했다. 그 단순한 시구들이 마치 리도 섬으로 나아갈 때 뒤따르는 청록색 직선들처럼 보였다. 갑작스런 색채의 섬광은 높다란 벌집 모양의 종탑 주위를 날아다니거나 어둑하고 먼지 낀 아케이드를 위풍당당하게 걸어가는 오팔빛 무지개빛 목을 가진 새들의 반짝임을 떠올리게 했다. 눈을 반쯤 감고 뒤로 기대앉아 그는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분홍빛 외관 앞
대리석 계단 위에.”
그 두 줄에 베네치아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보냈던 가을과, 그를 미치도록 즐겁게 했던 멋진 사랑을 떠올렸다. 모든 곳에 로맨스가 있었다. 하지만 베네치아는 옥스퍼드처럼 로맨스를 위한 배경을 간직하고 있었고, 진정한 낭만주의자에게 배경은 전부였거나 거의 전부나 다름없었다. 베이즐이 그와 함께 있었던 때가 있었고, 틴토레토에 미쳐 있었다. 가엾은 베이즐! 얼마나 끔찍한 방식으로 죽었는가!
그는 한숨을 쉬고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잊으려고 애썼다. 그는 스미르나의 작은 카페에서 날아다니는 제비들에 대한 글을 읽었다. 하지들이 앉아 호박 구슬을 세고, 터번을 쓴 상인들이 긴 술 달린 파이프를 피우며 서로 엄숙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었다. 그는 콩코르드 광장의 오벨리스크에 대한 글을 읽었다. 그것은 외로운 태양 없는 유배 생활 속에서 화강암 눈물을 흘리며 뜨거운 연꽃으로 뒤덮인 나일 강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곳에는 스핑크스와 장밋빛 붉은 갈매기, 금빛 발톱을 가진 하얀 독수리, 작은 녹주석 눈을 가진 악어들이 초록빛 증기 나는 진흙 위를 기어 다닌다. 그는 입맞춤으로 얼룩진 대리석에서 음악을 이끌어내는 시구들을 되새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루브르의 자주색 방에 누워있는 “매력적인 괴물”, 고티에가 콘트랄토 목소리에 비유한 그 기묘한 조각상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잠시 후 책이 그의 손에서 떨어졌다. 그는 초조해졌고 끔찍한 공포감이 엄습했다. 앨런 캠벨이 영국에 없다면? 그는 돌아오려면 며칠이 걸릴 것이다. 어쩌면 오기를 거부할지도 모른다.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매 순간이 매우 중요했다.
그들은 한때 5년 전에 절친한 친구였다. 사실상 거의 떨어질 줄 모르는 사이였다. 그러다 갑자기 그 친밀함이 끝났다. 이제 사교 모임에서 만나면 도리안 그레이만 미소 짓고 앨런 캠벨은 결코 그러지 않았다.
그는 매우 영리한 젊은이였지만, 시각 예술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없었고, 시의 아름다움에 대한 약간의 감각도 전적으로 도리안에게서 얻은 것이었다. 그의 지배적인 지적 열정은 과학이었다. 케임브리지에서 그는 실험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해 자연과학 3등급 우등을 받았다. 사실 그는 여전히 화학 연구에 전념하고 있었고, 자신만의 실험실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하루 종일 그곳에 틀어박혀 있곤 했는데, 이는 그가 의회에 출마하기를 바라고 화학자란 처방전을 조제하는 사람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진 어머니의 큰 불만을 샀다. 하지만 그는 또한 훌륭한 음악가였고,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대부분의 아마추어보다 잘 연주했다. 사실 음악이 그와 도리안 그레이를 처음 만나게 해준 것이었다. 음악과 도리안이 원할 때마다 행사할 수 있는, 그리고 종종 무의식적으로 행사하는 그 정의할 수 없는 매력이 그랬다. 그들은 루빈스타인이 연주하던 날 밤 레이디 버크셔의 집에서 만났고, 그 후로 항상 오페라와 좋은 음악이 있는 곳에서 함께 있었다. 18개월 동안 그들의 친밀함은 지속되었다. 캠벨은 항상 셀비 로열이나 그로스버너 스퀘어에 있었다. 그에게도, 많은 다른 이들에게도 도리안 그레이는 인생에서 경이롭고 매혹적인 모든 것의 전형이었다. 그들 사이에 말다툼이 있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갑자기 사람들은 그들이 만나도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챘고, 캠벨은 도리안 그레이가 참석한 파티에서 항상 일찍 떠나는 것 같았다. 그는 또한 변했다. 때때로 이상하게 우울해 보였고, 음악을 듣는 것을 거의 싫어하는 것 같았으며, 자신도 연주하지 않았다. 부탁받았을 때 과학에 너무 몰두해 연습할 시간이 없다고 변명했다. 그리고 이는 분명 사실이었다. 그는 매일 생물학에 더욱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았고, 그의 이름이 한두 번
과학 연구와 관련된 특정한 기이한 실험들에 대한 리뷰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도리안 그레이가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바로 이 남자였다. 그는 매 순간 시계를 힐끗거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끔찍하게 초조해졌다. 마침내 그는 일어나 방 안을 서성거리기 시작했고, 아름다운 우리에 갇힌 동물 같아 보였다. 그는 긴 발걸음으로 살금살금 걸었다. 그의 손은 이상하게도 차가웠다.
기다림은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시간은 그에게 납덩이 같은 발로 기어가는 것 같았고, 한편 그는 괴물 같은 바람에 휩쓸려 어떤 검은 절벽의 톱니 모양 가장자리로 떠밀려가는 것 같았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실제로 그것을 보았고, 몸서리치며 축축한 손으로 불타는 눈꺼풀을 꽉 눌렀다. 마치 뇌에서 시력을 빼앗고 안구를 동굴 속으로 밀어 넣으려는 듯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뇌는 자신만의 먹이를 가지고 있었고, 공포로 기괴해진 상상력은 고통으로 뒤틀리고 일그러진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어떤 불결한 꼭두각시처럼 춤을 추고 움직이는 가면을 통해 히죽거렸다. 그러다 갑자기 그에게 시간이 멈췄다. 그렇다. 그 눈먼, 느리게 숨쉬는 것은 더 이상 기어가지 않았고, 시간이 죽자 끔찍한 생각들이 재빨리 앞으로 달려나가 무서운 미래를 무덤에서 끌어내어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그것을 응시했다. 그 공포가 그를 돌로 만들었다.
마침내 문이 열리고 하인이 들어왔다. 그는 멍한 눈으로 하인을 바라보았다.
“캠벨 씨가 오셨습니다, 나리.” 하인이 말했다.
마른 입술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고, 그의 뺨에 혈색이 돌아왔다.
“프랜시스, 그를 즉시 들여보내.” 그는 자신이 다시 제 정신을 차렸다는 것을 느꼈다. 겁에 질렸던 기분은 사라졌다.
하인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잠시 후 앨런 캠벨이 들어왔다. 그는 매우 엄숙하고 다소 창백해 보였는데, 그의 창백함은 석탄처럼 검은 머리와 짙은 눈썹으로 인해 더욱 돋보였다.
“앨런! 와줘서 고맙네. 정말 친절하군.”
“난 네 집에 다시는 들어오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었어, 그레이. 하지만 넌 이게 생사가 걸린 문제라고 했지.” 그의 목소리는 딱딱하고 차가웠다. 그는 천천히 신중하게 말했다. 도리안을 향한 그의 끊임없고 탐색적인 시선에는 경멸의 기색이 있었다. 그는 아스트라칸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있었고, 자신을 맞이하는 도리안의 손짓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그래, 생사가 걸린 문제야, 앨런. 그것도 한 사람 이상의 문제지. 앉아.”
캠벨은 탁자 옆의 의자에 앉았고, 도리안은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도리안의 눈에는 무한한 연민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하려는 일이 끔찍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긴장된 침묵의 순간이 지나고, 그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아주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부른 사람의 얼굴에 각 단어가 미치는 영향을 주시했다. “앨런, 이 집 맨 위층에 잠겨 있는 방이 있어. 그 방에는 나 말고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지. 그 방의 탁자에 죽은 남자가 앉아 있어. 그는 10시간 전에 죽었어. 가만히 있어, 그리고 그렇게 나를 쳐다보지 마. 그 남자가 누구인지, 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는 네게 중요하지 않아. 네가 해야 할 일은 이거야-“
“그만해, 그레이. 난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아. 네가 말한 게 사실이든 아니든 나와는 상관없어. 난 네 삶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 네 끔찍한 비밀은 너 혼자 간직해. 더 이상 내 관심사가 아니야.”
“앨런, 넌 관심을 가져야 해. 이 일은 네가 관심을 가져야 해. 난 네게 미안해, 앨런.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넌 날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야. 난 이 일에 널 끌어들일 수밖에 없어. 난 선택의 여지가 없어. 앨런, 넌 과학자야. 넌 화학이나 그런 것들을 알고 있지. 넌 실험도 해봤고. 네가 해야 할 일은 위층에 있는 그것을 없애는 거야. 흔적도 남기지 말고 파괴해야 해. 아무도 그 사람이 이 집에 들어오는 걸 보지 못했어. 사실 지금 그는 파리에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지. 그는 몇 달 동안 찾는 사람이 없을 거야. 그가 찾아질 때, 여기서 그의 흔적이 발견되어선 안 돼. 앨런, 넌 그를, 그리고 그에 속한 모든 것을 재로 만들어야 해. 내가 공중에 뿌릴 수 있을 정도의 재로 말이야.”
“넌 미쳤어, 도리안.”
“아! 난 네가 나를 도리안이라고 부르길 기다리고 있었어.”
“넌 미쳤어. 내가 너를 돕겠다고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할 거라고 상상하다니 미친 짓이야. 이런 끔찍한 고백을 하다니 미친 거지. 난 이 일에 전혀 관여하고 싶지 않아, 무슨 일이든 간에. 네가 무슨 악마의 짓을 저질렀든 내가 알 바 아니야. 너를 위해 내 명성을 위험에 빠뜨릴 거라고 생각하나?”
“그는 자살했어, 앨런.”
“다행이군. 하지만 누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지? 너겠지, 내 생각엔.”
“넌 아직도 이 일을 나를 위해 하기를 거부하나?”
“물론 거부하지. 난 절대로 이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아. 네게 어떤 치욕이 닥치든 상관없어. 넌 그런 대우를 받아 마땅해. 난 네가 공개적으로 망신당하는 걸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하진 않겠어. 어떻게 감히 나에게, 세상의 모든 사람 중에서 나에게 이런 끔찍한 일에 휘말리라고 요구할 수 있지? 난 네가 사람들의 성격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네 친구 헨리 워튼 경이 심리학에 대해 많이 가르쳐주진 않은 모양이군, 다른 것들은 뭘 가르쳤든 간에. 아무것도 날 움직여 너를 돕게 하지 못할 거야. 넌 잘못된 사람을 찾아왔어. 네 친구들에게 가봐. 나한테 오지 마.”
“앨런, 그건 살인이었어. 내가 그를 죽였어. 넌 그가 나를 얼마나 고통스럽게 했는지 모르잖아. 내 인생이 어떻든 간에, 그는 불쌍한 해리보다 내 인생을 만들거나 망치는 데 더 큰 역할을 했어. 그가 의도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야.”
“살인이라고! 세상에, 도리안, 그 지경까지 갔단 말이야? 난 널 고발하지 않을 거야. 그건 내 일이 아니야. 게다가, 내가 나서지 않아도 넌 틀림없이 체포될 거야. 아무도 범죄를 저지르고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은 채로 있지 않아. 하지만 난 이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아.”
“넌 이 일에 관여해야만 해. 잠깐만 기다려, 잠깐만 내 말을 들어봐, 앨런. 내가 네게 요구하는 건 특정한 과학 실험을 수행하는 것뿐이야. 넌 병원이나 시체 안치소에 가지 않나? 그곳에서 네가 하는 끔찍한 일들이 널 괴롭히지 않잖아. 만약 네가 어떤 끔찍한 해부실이나 악취 나는 실험실에서 이 남자가 납으로 된 탁자 위에 누워있는 걸 발견했다면, 그 탁자에는 붉은 홈이 파여 있어 피가 흐르도록 되어 있는…”
그저 훌륭한 연구 대상으로만 볼 것이다.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을 것이다. 잘못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인류에 이바지하고 있다거나, 세상의 지식을 증진시키고 있다거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내가 당신에게 요구하는 것은 당신이 전에 자주 해왔던 일에 불과합니다. 사실, 시체를 파괴하는 것은 당신이 평소에 하던 일보다 훨씬 덜 끔찍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나에 대한 유일한 증거라는 걸 기억하세요. 발견되면 난 끝장입니다. 당신이 도와주지 않으면 반드시 발견될 것입니다.
“난 당신을 도울 생각이 없어요. 그걸 잊으셨나 봐요. 난 이 모든 일에 무관심할 뿐입니다.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에요.”
“앨런, 부탁이야. 내가 처한 상황을 생각해봐. 당신이 오기 직전에 난 공포 때문에 거의 기절할 뻔했어. 당신도 언젠가는 그런 공포를 느낄지도 몰라. 아니, 그런 생각은 하지 마. 순수하게 과학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봐. 당신은 실험에 사용하는 시체들이 어디서 왔는지 묻지 않잖아. 지금도 묻지 마. 이미 난 너무 많은 걸 말해버렸어. 하지만 이 일을 해주길 간곡히 부탁해. 우리는 한때 친구였잖아, 앨런.”
“그 시절 얘기는 하지 마, 도리안. 그건 이미 지나간 일이야.”
“죽은 자들은 때때로 머무르지. 위층의 그 사람은 가지 않을 거야. 그는 고개를 숙이고 팔을 뻗은 채 테이블에 앉아 있어. 앨런! 앨런! 당신이 도와주지 않으면 난 파멸이야. 왜 그런지 알아? 그들이 날 교수형에 처할 거야, 앨런! 이해하지 못하겠어? 내가 저지른 일 때문에 그들이 날 교수형에 처할 거라고!”
“이 상황을 더 이상 끌어가봤자 소용없어. 난 절대로 이 일에 관여하지 않겠어. 당신이 나에게 이런 걸 요구하다니 미친 짓이야.”
“거절하는 거야?”
“그래.”
“앨런, 제발 부탁이야.”
“소용없어.”
도리안 그레이의 눈에 다시 한 번 연민의 빛이 스쳤다. 그는 손을 뻗어 종이 한 장을 집어 들고 무언가를 적었다. 그는 그것을 두 번 읽어본 뒤 조심스럽게 접어 테이블 위로 밀어보냈다. 그리고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캠벨은 놀란 듯 그를 바라보다가 종이를 집어 들고 펼쳤다. 그것을 읽자 그의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의자에 푹 주저앉았다. 끔찍한 메스꺼움이 밀려왔다. 그는 마치 심장이 텅 빈 공간에서 죽을 듯이 뛰고 있는 것 같았다.
2-3분간 끔찍한 침묵이 흘렀다. 도리안은 돌아서서 그의 뒤로 와 손을 그의 어깨에 얹었다.
“앨런, 정말 미안해,” 그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넌 내게 다른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았어. 난 이미 편지를 써놨어. 여기 있어. 주소도 봐. 네가 도와주지 않으면 난 이걸 보내야만 해. 네가 도와주지 않으면, 난 이걸 보낼 거야. 그 결과가 어떨지 넌 알고 있어. 하지만 넌 날 도와줄 거야. 이제 거절하는 건 불가능해. 난 너를 아끼려고 노력했어. 그건 인정해줘야 해. 넌 냉담하고, 매정하고, 모욕적이었지. 아무도 감히 그런 식으로 날 대하지 않았어. 적어도 살아있는 사람 중에는. 난 그 모든 걸 참았어. 이제는 내가 조건을 제시할 차례야.”
캠벨은 얼굴을 손에 묻고 전율했다.
“그래, 이제는 내가 조건을 제시할 차례야, 앨런. 넌 그게 뭔지 알고 있어. 매우 간단해. 자, 이런 열병에 빠지지 마. 이 일은 반드시 해야 해. 직면하고, 그냥 해.”
캠벨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고, 그는 온몸을 떨었다. 벽난로 위 시계의 똑딱거리는 소리가 시간을 고통스러운 원자들로 나누는 것 같았고, 각각의 원자는 견디기에 너무나 끔찍했다. 그는 마치 이마 주위로 쇠고리가 천천히 조여지는 것 같았고, 그가 위협받고 있는 치욕이 이미 그에게 닥친 것만 같았다. 어깨 위의 손이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참을 수가 없었다. 그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자, 앨런, 당장 결정해야 해.”
“못 하겠어,” 그가 기계적으로 말했다. 마치 말로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듯이.
“해야만 해. 선택의 여지가 없어. 지체하지 마.”
그는 잠시 망설였다. “위층 방에 불이 있나?”
“응, 석면으로 된 가스난로가 있어.”
“집에 가서 실험실에서 뭔가를 가져와야겠어.”
“아니, 앨런, 집을 나가면 안 돼. 필요한 것을 종이에 적어. 내 하인이 택시를 타고 가서 가져올 거야.”
캠벨은 몇 줄을 휘갈겨 쓰고 지웠다. 그리고 조수에게 보내는 봉투에 주소를 적었다. 도리안은 쪽지를 집어 들고 주의 깊게 읽었다. 그리고 종을 울려 하인을 불러 쪽지를 건네며 가능한 한 빨리 돌아와 물건들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현관문이 닫히자 캠벨은 신경질적으로 움찔했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벽난로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일종의 오한으로 떨고 있었다. 거의 20분 동안 두 사람 모두 말이 없었다. 파리 한 마리가 시끄럽게 방안을 날아다녔고, 시계 소리는 망치 소리처럼 들렸다.
1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자 캠벨은 돌아섰다. 그는 도리안 그레이를 바라보다가 그의 눈에 눈물이 고인 것을 보았다. 그 슬픈 얼굴의 순수함과 우아함에서 뭔가가 그를 격분시키는 듯했다.
“너는 비열해, 절대적으로 비열해!” 그가 중얼거렸다.
“조용히, 앨런. 넌 내 목숨을 구했어,” 도리안이 말했다.
“네 목숨이라고? 맙소사! 그게 어떤 삶이지? 넌 타락에서 타락으로 치달았고, 이제 범죄로 절정에 이르렀어. 내가 지금 하려는 일—네가 나를 강요하는 이 일을 하면서—난 네 삶을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야.”
“아, 앨런,” 도리안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네가 나를 위해 느끼는 연민의 천분의 일만이라도 내가 너를 위해 느낄 수 있다면 좋겠어.” 그는 말을 하며 돌아서서 정원을 내다보았다. 캠벨은 대답하지 않았다.
약 10분 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하인이 들어와 큰 마호가니 화학 상자와 길다란 강철과 백금 와이어 코일, 그리고 두 개의 기이한 모양의 쇠 집게를 가지고 왔다.
“이것들을 여기 놓으면 될까요, 선생님?” 그가 캠벨에게 물었다.
“그래,” 도리안이 대답했다. “그리고 프란시스, 내가 당신에게 부탁할 일이 또 있을 것 같아요. 셀비에게 난을 공급하는 리치먼드의 그 남자 이름이 뭐지요?”
“하든이요, 선생님.”
“그래, 하든. 당신은 지금 당장 리치먼드로 가서 하든을 직접 만나 내가 주문한 것보다 두 배의 난을 보내달라고 해요.”
“흰 꽃은 최대한 적게, 사실 하나도 없으면 좋겠어요. 프란시스, 오늘은 날씨가 아주 좋고 리치먼드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에요. 그렇지 않다면 이런 부탁은 하지 않았을 거예요.”
“걱정 마십시오, 나리. 몇 시까지 돌아오면 될까요?”
도리안은 캠벨을 바라보았다. “앨런, 실험은 얼마나 걸릴까?” 그가 차분하고 무관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에 제3자가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 특별한 용기를 준 것 같았다.
캠벨은 눈살을 찌푸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약 5시간 정도 걸릴 겁니다.” 그가 대답했다.
“그럼 프란시스, 7시 30분까지 돌아오면 충분할 거예요. 아니면 이렇게 하죠. 그냥 내 옷만 꺼내 놓으세요. 저녁에는 자유 시간을 가져도 좋아요. 오늘 밤 집에서 식사하지 않을 테니 당신이 필요하지 않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나리.” 하인이 말하고 방을 나갔다.
“자, 앨런, 시간이 없어요. 이 상자가 얼마나 무거운지! 내가 들어줄게요. 당신은 다른 물건들을 가져오세요.” 그가 빠르고 권위적인 어조로 말했다. 캠벨은 그에게 지배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은 함께 방을 나섰다.
그들이 맨 위층에 도착했을 때, 도리안은 열쇠를 꺼내 자물쇠를 열었다. 그러고는 멈춰 서서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몸을 떨었다. “앨런, 난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아.” 그가 중얼거렸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오. 당신이 필요한 게 아니오.” 캠벨이 차갑게 말했다.
도리안은 문을 반쯤 열었다. 그렇게 하면서 그는 햇빛 속에서 자신의 초상화가 씩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앞 바닥에는 찢어진 커튼이 놓여 있었다. 그는 어젯밤에 평생 처음으로 운명의 캔버스를 숨기는 것을 잊었다는 걸 기억했고, 앞으로 달려가려다가 소스라치게 몸을 떨며 뒤로 물러섰다.
그 역겨운 붉은 이슬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마치 캔버스가 피를 흘린 것처럼 손 중 하나에서 젖어서 반짝이고 있었다. 얼마나 끔찍한가! 그 순간 그에게는 테이블 위에 펼쳐져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조용한 물체보다 더 끔찍해 보였다. 그 물체의 기괴하고 일그러진 그림자가 얼룩진 카펫 위에 드리워져 있었고, 그것은 움직이지 않은 채 그가 놓고 간 그대로 있었다.
그는 깊이 숨을 들이쉬고 문을 조금 더 열었다. 반쯤 감은 눈과 고개를 돌린 채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죽은 사람을 단 한 번도 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런 다음 몸을 굽혀 금색과 자주색 커튼을 집어 들고 그림 위로 던졌다.
그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뒤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았고, 눈은 앞에 있는 무늬의 복잡한 모양에 고정되었다. 그는 캠벨이 무거운 상자와 쇠, 그리고 그가 요구한 다른 물건들을 가지고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자신과 베이즐 홀워드가 만난 적이 있는지, 그랬다면 서로를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이제 나가주시오.” 그의 뒤에서 엄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돌아서서 서둘러 나갔다. 죽은 사람이 의자에 다시 밀어 넣어져 있고 캠벨이 반짝이는 노란 얼굴을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희미하게 의식했다. 그가 계단을 내려가고 있을 때, 자물쇠에 열쇠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캠벨이 서재로 돌아왔을 때는 7시가 한참 지난 후였다. 그는 창백했지만 완전히 침착했다. “내가 요구받은 일을 했소.” 그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제, 안녕히.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도록 합시다.”
“앨런, 당신은 나를 파멸에서 구해줬어요. 그걸 잊을 수 없을 거예요.” 도리안이 단순히 말했다.
캠벨이 떠나자마자 그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방에는 질산 냄새가 끔찍하게 났다. 하지만 테이블에 앉아 있던 물건은 사라졌다.
제15장
그날 저녁 8시 30분, 우아한 차림에 파르마 제비꽃 꽃다발을 단 도리안 그레이가 나보로 부인의 응접실로 안내되었다. 그의 이마는 광기 어린 신경으로 욱신거렸고 그는 극도로 흥분해 있었지만, 여주인의 손에 입을 맞출 때 그의 태도는 여느 때처럼 우아하고 자연스러웠다. 아마도 연기를 해야 할 때 사람은 그토록 편안해 보이는 것 같다. 확실히 그날 밤 도리안 그레이를 바라보는 사람 중 그가 우리 시대의 어떤 비극만큼이나 끔찍한 비극을 겪었다고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 섬세하게 생긴 손가락들이 죄를 위해 칼을 움켜쥐었을 리 없고, 그 미소 짓는 입술이 신과 선을 저주했을 리 없었다. 그 자신도 자신의 태도가 이토록 침착한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잠시 이중생활의 무서운 쾌감을 강렬하게 느꼈다.
이것은 나보로 부인이 급히 마련한 작은 모임이었다. 그녀는 헨리 경이 정말 주목할 만한 추함의 잔재라고 묘사하곤 했던 아주 영리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우리의 가장 지루한 대사 중 한 명의 훌륭한 아내였음이 입증되었고, 남편을 대리석 묘비 아래 제대로 묻은 후(그녀가 직접 디자인한), 딸들을 부자이긴 하지만 다소 나이 든 남자들과 결혼시켰다. 이제 그녀는 프랑스 소설과 프랑스 요리, 그리고 구할 수 있을 때마다 프랑스식 재치에 전념했다.
도리안은 그녀가 특별히 아끼는 사람 중 하나였고, 그녀는 항상 그를 만난 것이 젊었을 때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사랑하는 그대, 당신 때문에 미친 듯이 사랑에 빠져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렸을 거예요. 당신이 그때 생각나지 않았다니 정말 다행이에요. 우리의 모자는 너무나 보기 흉했고, 바람을 일으키려고 애쓰는 방앗간들 때문에 단 한 번의 연애도 할 수 없었거든요. 하지만 그건 모두 나보로의 잘못이에요. 그는 너무 근시여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남편을 데려가는 데서 즐거움을 찾을 수가 없었죠.”
그녀의 손님들은 이날 저녁 다소 지루했다. 사실, 그녀가 도리안에게 매우 낡은 부채 뒤에서 설명한 바로는, 그녀의 결혼한 딸들 중 하나가 갑자기 그녀와 함께 지내러 왔고, 더 나쁜 것은 실제로 남편까지 데려왔다는 것이었다. “그 아이가 그렇게 한 것은 정말 불친절해요, 사랑하는 그대.” 그녀가 속삭였다. “물론 난 매년 여름 홈부르크에서 돌아온 후 그들과 함께 지내러 가지만, 나 같은 노파도 가끔은 신선한 공기가 필요하답니다. 게다가 난 정말 그들을 깨우죠. 그들이 거기서 어떤 삶을 사는지 당신은 모를 거예요. 순수한 시골 생활이죠. 그들은 할 일이 많아서 일찍 일어나고, 할 일이 거의 없어서 일찍 잠자리에 듭니다. 1760년 이후로 그 지역에서는 스캔들이 일어난 적이 없어요. 결과적으로 그들은 모두 잠들어 버리죠. 당신도 내일 저녁에 올 거예요, 그렇죠? 오페라에 갈 거예요. 브라운부인의 박스에 가려고 해요. 그녀는 매력적인 여성이에요. 그리고 그녀의 드레스는 항상 버튼을 너무 많이 달아요. 그녀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아름다운 영국소설처럼 들릴 거예요. 그녀는 세 번째 남편과 도망갔답니다. 하지만 브라운부인은 이제 그녀의 네 번째니까요. 어쨌든 당신이 말했듯이, 그녀는 정말 우아한 여성이에요.”
생각할 게 없다.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 이후로 이웃에서 스캔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저녁 식사 후에 잠이 든다. 당신은 그들 옆에 앉지 않을 거예요. 내 옆에 앉아서 날 즐겁게 해주세요.”
도리안은 우아한 칭찬을 중얼거리며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렇다. 확실히 지루한 파티였다. 그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 두 명 있었고, 나머지는 어니스트 해로든, 런던 클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년의 평범한 사람들로 적이 없지만 친구들에게 완전히 미움을 받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럭스턴 부인, 47세의 후크 코를 가진 과하게 치장한 여자로, 항상 자신을 타락시키려 하지만 너무나 평범해서 아무도 그녀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을 믿지 않아 크게 실망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얼린 부인, 사교계에 밀고 들어온 아무개로 사랑스러운 말더듬과 베네치아 붉은 머리를 가졌다. 레이디 앨리스 채프먼, 그의 주인의 딸로 전형적인 영국인의 얼굴을 가진 멍청하고 지루한 소녀로, 한 번 보면 절대 기억나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 붉은 뺨에 흰 수염을 가진 생물로, 그의 계급의 많은 사람들처럼 과도한 쾌활함이 생각의 완전한 부재를 보상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는 오지 않았어야 했다고 약간 후회했다. 그때 레이디 나보로가 보라색 장식된 벽난로 선반 위에 화려하게 굽이치는 거대한 금도금 시계를 보며 외쳤다. “헨리 워튼이 이렇게 늦어서 얼마나 끔찍한가요! 오늘 아침에 그에게 연락해서 약속을 어기지 않겠다고 굳게 약속받았는데 말이에요.”
해리가 올 것이라는 사실이 어느 정도 위안이 되었다. 문이 열리고 그의 느린 음악적인 목소리로 진실하지 않은 사과를 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는 더 이상 지루함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저녁 식사 때 그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접시 위의 음식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지나갔다. 레이디 나보로는 계속해서 그를 꾸짖었다. 그녀는 그것을 “가엾은 아돌프에 대한 모욕”이라고 불렀다. “그가 특별히 당신을 위해 메뉴를 만들었는데 말이에요.” 그리고 가끔 헨리 경이 그를 바라보며 그의 침묵과 멍한 태도를 의아해했다. 때때로 집사가 그의 잔에 샴페인을 채웠다. 그는 열심히 마셨고 그의 갈증은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도리안,” 헨리 경이 마침내 말했다. 쇼프루아가 돌려지고 있을 때였다. “오늘 밤 무슨 일이 있나? 완전히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그가 사랑에 빠졌다고 믿어요,” 레이디 나보로가 외쳤다. “그리고 그가 내가 질투할까 봐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거예요. 그의 말이 맞아요. 난 분명 그럴 거예요.”
“사랑하는 레이디 나보로,” 도리안이 미소 지으며 중얼거렸다. “난 일주일 내내 사랑에 빠지지 않았어요. 사실, 드 페롤 부인이 런던을 떠난 이후로요.”
“남자들이 어떻게 그 여자를 사랑할 수 있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 노부인이 외쳤다.
“그건 단순히 그녀가 당신이 어린 소녀였을 때를 기억하기 때문이에요, 레이디 나보로,” 헨리 경이 말했다. “그녀는 우리와 당신의 짧은 치마 사이의 유일한 연결고리예요.”
“그녀는 내 짧은 치마를 전혀 기억하지 못해요, 헨리 경. 하지만 난 30년 전 비엔나에서 그녀를 아주 잘 기억해요. 그때 그녀는 얼마나 데콜테였는지 말이에요.”
“그녀는 여전히 데콜테예요,” 그가 대답했다. 긴 손가락으로 올리브를 집으며. “그리고 그녀가 아주 세련된 드레스를 입으면 나쁜 프랑스 소설의 호화판처럼 보여요. 그녀는 정말 놀라워요. 그리고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죠. 그녀의 가족애는 정말 놀랍습니다. 세 번째 남편이 죽었을 때, 그녀의 머리카락은 슬픔으로 완전히 금색으로 변했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니, 해리!” 도리안이 외쳤다.
“정말 로맨틱한 설명이네요,” 여주인이 웃었다. “하지만 그녀의 세 번째 남편이라고요, 헨리 경! 설마 페롤이 네 번째라고 말하는 건 아니겠죠?”
“물론이죠, 레이디 나보로.”
“한 마디도 믿을 수 없어요.”
“글쎄요, 그레이 씨에게 물어보세요. 그는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에요.”
“그게 사실인가요, 그레이 씨?”
“그녀가 그렇게 말하더군요, 레이디 나보로,” 도리안이 말했다. “난 그녀에게 나바르의 마르그리트처럼 그들의 심장을 방부 처리해서 허리에 걸어두었는지 물었어요.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고 했어요. 그들 중 누구도 심장이 없었기 때문이래요.”
“남편이 넷이나! 말도 안 돼요, 그건 너무 과한 열정이에요.”
“너무 대담해요, 내가 그녀에게 말했죠,” 도리안이 말했다.
“오! 그녀는 무엇이든 대담하게 할 수 있어요, 내 사랑. 그런데 페롤은 어떤 사람이니? 난 그를 모르거든.”
“아주 아름다운 여인의 남편들은 범죄자 계급에 속해요,” 헨리 경이 와인을 홀짝이며 말했다.
레이디 나보로가 부채로 그를 때렸다. “헨리 경, 당신이 매우 사악하다고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도 전혀 놀랍지 않아요.”
“하지만 어떤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나요?” 헨리 경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그건 내세일 수밖에 없어요. 이 세상과 나는 아주 좋은 사이거든요.”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매우 사악하다고 말해요,” 노부인이 고개를 흔들며 외쳤다.
헨리 경은 잠시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요즘 사람들이 등 뒤에서 절대적으로 진실한 말을 하고 다니는 방식은 정말 끔찍해.” 그가 마침내 말했다.
“그는 정말 고칠 수 없는 사람 아닌가요?” 도리안이 의자에 기대며 외쳤다.
“그랬으면 좋겠어요.” 여주인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정말로, 여러분 모두가 이렇게 터무니없이 드 페롤 부인을 숭배한다면, 나도 다시 결혼해야 할 것 같아요. 유행을 따라가려면 말이에요.”
“당신은 절대 다시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 레이디 나보로.” 헨리 경이 끼어들었다. “당신은 너무 행복했어요. 여자가 다시 결혼할 때는 첫 번째 남편을 싫어했기 때문이에요. 남자가 다시 결혼할 때는 첫 번째 아내를 숭배했기 때문이죠. 여자들은 운을 시험해보고, 남자들은 자신들의 운을 걸어요.”
“나보로가 완벽하지는 않았어요.” 노부인이 외쳤다.
“만약 그랬다면, 당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았을 거예요, 내 사랑.” 그가 대답했다. “여자들은 우리를 우리의 결점 때문에 사랑해요. 만약 우리에게 충분한 결점이 있다면, 그들은 우리의 모든 것을 용서할 거예요. 심지어 우리의 지성까지도 말이에요. 이 말을 한 후에는 다시는 저녁 식사에 초대하지 않으실 것 같아 두렵네요, 레이디 나보로. 하지만 이건 완전히 사실이에요.”
“물론 사실이에요, 헨리 경. 만약 우리 여자들이 당신들의 결점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다 어디에 있겠어요? 당신들 중 누구도 결혼하지 못할 거예요. 당신들은 불행한 독신자들의 무리가 되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들이 많이 바뀌지는 않을 거예요. 요즘은 모든 기혼 남자들이 독신자처럼 살고, 모든 독신자들이 기혼 남자처럼 살아요.”
“세기말이군요.” 헨리 경이 중얼거렸다.
“지구 종말이에요.” 여주인이 대답했다.
“지구 종말이었으면 좋겠어요.” 도리안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인생은 큰 실망이에요.”
“아, 내 친애하는 분.” 나버러 부인이 장갑을 끼며 외쳤다. “인생을 다 겪으셨다고 말씀하지 마세요. 남자가 그런 말을 하면 인생이 그를 지치게 했다는 걸 알 수 있죠. 헨리 경은 아주 사악하고, 가끔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당신은 선한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졌어요. 그렇게 보이니까요. 당신에게 좋은 아내를 찾아드려야겠어요. 헨리 경, 그레이 씨가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항상 그렇게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나버러 부인.” 헨리 경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좋아요, 우리가 그에게 적당한 상대를 찾아봐야겠어요. 오늘 밤 데브렛을 자세히 살펴보고 모든 적격한 젊은 숙녀들의 명단을 작성해볼 거예요.”
“그들의 나이도 포함해서 말인가요, 나버러 부인?” 도리안이 물었다.
“물론이죠, 나이도 포함해서요. 살짝 수정해서 말이에요. 하지만 서두르면 안 돼요. 나는 그것이 ‘모닝 포스트’지가 말하는 적절한 결혼이 되길 바라요. 그리고 당신 둘 다 행복하길 바라고요.”
“사람들이 행복한 결혼에 대해 얼마나 터무니없는 얘기를 하는지!” 헨리 경이 외쳤다. “남자는 어떤 여자와도 행복할 수 있어요.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한 말이죠.”
“아! 당신 정말 냉소적이군요!” 노부인이 의자를 뒤로 밀며 럭스턴 부인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곧 다시 와서 저와 함께 식사하셔야 해요. 당신은 정말 훌륭한 강장제예요. 앤드류 경이 내게 처방해준 것보다 훨씬 나아요.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알려주셔야 해요. 즐거운 모임이 되길 바라거든요.”
“나는 미래가 있는 남자들과 과거가 있는 여자들을 좋아해요.” 그가 대답했다. “아니면 그렇게 하면 여성들만의 모임이 될까요?”
“그럴 것 같아요.” 그녀가 일어서며 웃었다. “천 번이나 용서를 구해요, 내 사랑하는 럭스턴 부인.” 그녀가 덧붙였다. “담배를 다 피우지 않으셨더군요.”
“괜찮아요, 나버러 부인. 나는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워요. 앞으로는 자제하려고요.”
“제발 그러지 마세요, 럭스턴 부인.” 헨리 경이 말했다. “절제는 치명적인 것이에요. 충분한 것은 식사만큼이나 나빠요. 그 이상은 축제만큼 좋죠.”
럭스턴 부인이 그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언젠가 오후에 그것에 대해 설명해 주셔야겠어요, 헨리 경. 매력적인 이론 같아요.” 그녀가 방을 나가며 중얼거렸다.
“자, 정치와 스캔들에 너무 오래 매달리지 말아요.” 나버러 부인이 문간에서 외쳤다. “그러다간 위층에서 틀림없이 다툼이 일어날 거예요.”
남자들이 웃었고, 채프먼 씨가 엄숙하게 식탁 끝에서 일어나 자리에서 일어섰다. 도리안 그레이는 자리를 옮겨 헨리 경 옆에 앉았다. 채프먼 씨가 하원의 상황에 대해 큰 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적들을 비웃었다. ‘교조주의자’라는 단어가 – 영국인의 마음에 공포를 주는 단어 – 그의 폭발적인 말 사이에서 때때로 나타났다. 두운법이 수사의 장식으로 사용되었다. 그는 사상의 첨탑에 영국 국기를 올렸다. 영국인 특유의 우둔함 – 그는 그것을 유쾌하게 건전한 영국적 상식이라고 불렀다 – 가 사회의 적절한 방벽으로 제시되었다.
웃음이 헨리 경의 입술을 굽혔고, 그는 몸을 돌려 도리안을 바라보았다.
“좀 나아졌나, 내 친구?” 그가 물었다. “식사 때 좀 기분이 안 좋아 보이던데.”
“난 괜찮아, 해리. 피곤할 뿐이야. 그게 다야.”
“어젯밤에 넌 매력적이었어. 작은 공작 부인이 너에게 완전히 매료되었더군. 그녀가 셀비로 내려간다고 하더군.”
“그녀는 20일에 오기로 약속했어.”
“몬머스도 같이 올 거니?”
“응, 해리.”
“그는 나를 지독하게 지루하게 해, 그녀를 지루하게 하는 것만큼이나. 그녀는 매우 영리해, 여자치고는 너무 영리해. 그녀에겐 약점의 불분명한 매력이 부족해. 황금 조각상을 귀중하게 만드는 건 진흙 발이지. 그녀의 발은 매우 예쁘지만, 진흙 발은 아니야. 원한다면 흰 도자기 발이라고 할 수 있지. 그들은 불을 통과했고, 불이 파괴하지 않는 것은 단단하게 만들지. 그녀는 경험이 있어.”
“그녀가 결혼한 지 얼마나 됐지?” 도리안이 물었다.
“영원이라고 그녀가 말하더군. 족보에 따르면 10년이지만, 몬머스와의 10년은 영원과 같았을 거야, 거기에 시간까지 더해서. 누가 더 올 거니?”
“오, 윌러비 부부, 럭비 경과 그의 아내, 우리의 여주인, 제프리 클라우스턴, 늘 오는 사람들이야. 나는 그로트리안 경을 초대했어.”
“그를 좋아해.” 헨리 경이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지 않지만, 나는 그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해. 가끔 과하게 옷을 입긴 하지만, 항상 과하게 교육받은 것으로 보상해. 그는 아주 현대적인 유형이야.”
“그가 올 수 있을지 모르겠어, 해리. 아버지와 함께 몬테카를로에 가야 할 수도 있대.”
“아! 사람들의 부모님들은 얼마나 성가신지! 그를 오게 해봐. 그런데 도리안, 넌 어젯밤에 아주 일찍 가버렸어. 11시 전에 갔잖아. 그 후에 뭘 했니? 곧장 집으로 갔어?”
도리안이 그를 휙 쳐다보고 눈썹을 찌푸렸다.
“아니, 해리.” 그가 마침내 말했다. “거의 3시까지 집에 가지 않았어.”
“클럽에 갔었니?”
“그래.” 그가 대답했다. 그리고 입술을 깨물었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야. 클럽에 가지 않았어. 걸어다녔어. 뭘 했는지 기억이 안 나… 넌 참 호기심이 많구나, 해리! 넌 항상 사람들이 뭘 했는지 알고 싶어 하지. 난 항상 내가 뭘 했는지 잊고 싶어 해. 2시 30분에 들어왔어, 정확한 시간을 알고 싶다면. 집에 열쇠를 두고 와서 하인이 문을 열어줘야 했어. 이 문제에 대해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면, 그에게 물어볼 수 있어.”
헨리 경이 어깨를 으쓱했다. “내 친구여, 내가 그런 걸 신경 쓸 리가! 우리 응접실로 올라가자. 셰리는 됐어, 채프먼 씨. 고마워요. 도리안, 너에게 무슨 일이 있었구나. 말해봐. 넌 오늘 밤 평소와 달라.”
“신경 쓰지 마, 해리. 나는 짜증 나고 기분이 안 좋아. 내일이나 모레 가서 너를 보러 갈게. 나버러 부인에게 내 사과를 전해줘. 난 위층에 올라가지 않을 거야. 집에 가야 해. 꼭 가봐야 해.”
“좋아, 도리안. 내일 차 시간에 너를 볼 수 있겠지. 공작 부인이 올 거야.”
“최선을 다해볼게, 해리.” 그가 방을 나가며 말했다. 그가 자신의 집으로 차를 몰고 가면서, 그가 느꼈던 공포감이 – 목을 조른 줄 알았던 그 생각이 – 그에게 다시 찾아왔다. 헨리 경의 무심한 질문으로 그는 잠시 정신을 잃었고, 지금도 여전히 정신을 차려야 했다. 위험한 것들은 반드시 없애야 했다. 그는 움찔했다. 그것들을 건드리는 것조차 싫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만 했다. 그는 그것을 깨달았고, 서재 문을 잠근 뒤 베이즐 홀워드의 코트와 가방을 밀어 넣었던 비밀 수납장을 열었다. 커다란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장작을 하나 더 올려놓았다. 그을리는 옷과 타는 가죽 냄새가 끔찍했다. 모든 것을 태우는 데 45분이 걸렸다. 끝나자 그는 어지럽고 메스꺼웠다. 구멍 뚫린 구리 화로에 알제리 향을 피운 뒤, 시원한 사향 냄새 나는 식초로 손과 이마를 씻었다.
갑자기 그는 흠칫 놀랐다. 눈이 이상하게 빛났고, 그는 초조하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두 창문 사이에는 커다란 플로렌틴 캐비닛이 놓여 있었다. 흑단으로 만들어졌고, 상아와 청금석이 박혀 있었다. 그는 그것을 응시했다. 마치 매혹적이면서도 두려운 무언가를 보는 듯, 마치 그가 갈망하면서도 거의 혐오하는 무언가를 담고 있는 것처럼. 숨이 가빠졌다. 미친 듯한 갈망이 그를 엄습했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가 곧 던져버렸다. 눈꺼풀이 내려와 긴 속눈썹이 거의 뺨에 닿을 듯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캐비닛을 응시했다. 마침내 그는 소파에서 일어나 캐비닛으로 다가갔다. 문을 열고 숨겨진 스프링을 눌렀다. 삼각형 모양의 서랍이 천천히 빠져나왔다. 그의 손가락이 본능적으로 그쪽으로 움직여 안으로 들어가 무언가를 잡았다. 작은 중국산 상자였다. 검은색과 금빛 먼지 래커로 정교하게 만들어졌고, 측면에는 곡선 파도 무늬가 있었다. 비단 끈에는 둥근 수정과 꼰 금속 실로 만든 술이 달려 있었다. 그는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초록색 연고가 들어 있었다. 왁스 광택이 나고 냄새가 묘하게 무겁고 지속적이었다.
그는 얼굴에 이상하게 굳은 미소를 지은 채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 떨면서, 방 안의 공기가 무척 뜨거웠음에도 불구하고 몸을 일으켜 시계를 보았다. 11시 40분이었다. 그는 상자를 다시 넣고 캐비닛 문을 닫았다. 그리고 침실로 갔다.
한밤중을 알리는 청동 종소리가 어두운 공기를 울릴 때, 도리안 그레이는 평범한 차림에 목에 머플러를 두른 채 조용히 집을 빠져나왔다. 본드 가에서 그는 좋은 말이 끄는 마차를 발견했다. 그는 마차를 불러 세우고 낮은 목소리로 마부에게 주소를 알려주었다.
마부는 고개를 저었다. “너무 멀어요,” 그가 중얼거렸다.
“여기 1파운드요,” 도리안이 말했다. “빨리 가면 하나 더 드리죠.”
“좋습니다, 나리,” 마부가 대답했다. “한 시간 안에 도착할 겁니다.” 그리고 손님이 타자 말을 돌려 강 쪽으로 빠르게 달렸다.
제16장
차가운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흐릿한 가로등이 축축한 안개 속에서 불길하게 보였다. 술집들이 막 문을 닫고 있었고, 희미한 남녀들이 술집 문 주변에 깨진 무리를 지어 모여 있었다. 몇몇 술집에서는 끔찍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곳에서는 술 취한 사람들이 싸우고 소리 지르고 있었다.
마차 뒤에 기대앉아 모자를 이마까지 눌러 쓴 채, 도리안 그레이는 무심한 눈으로 거대한 도시의 추한 수치를 바라보았다. 때때로 그는 헨리 경이 그들이 처음 만난 날 했던 말을 되뇌었다. “영혼을 감각으로 치유하고, 감각을 영혼으로 치유하는 것.” 그렇다, 그것이 비밀이었다. 그는 자주 그것을 시도했고, 지금도 다시 시도할 참이었다. 망각을 살 수 있는 아편굴들이 있었다. 오래된 죄의 기억을 새로운 죄의 광기로 없앨 수 있는 공포의 소굴들이 있었다.
달은 하늘에 노란 해골처럼 걸려 있었다. 때때로 거대하고 기형적인 구름이 긴 팔을 뻗어 달을 가렸다. 가스등은 점점 더 드물어졌고, 거리는 더욱 좁고 음침해졌다. 한번은 마부가 길을 잃어 800미터나 되돌아가야 했다. 말에서 증기가 올랐다. 말이 웅덩이를 튀기며 달렸다. 마차의 옆창은 회색 플란넬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영혼을 감각으로 치유하고, 감각을 영혼으로 치유하는 것!” 그 말이 그의 귓가에 울렸다! 그의 영혼은 확실히 병들어 죽어가고 있었다. 감각이 그것을 치유할 수 있을까? 무고한 피가 흘렸다. 그것을 어떻게 속죄할 수 있을까? 아! 그것에 대해서는 속죄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용서는 불가능해도 망각은 여전히 가능했고, 그는 그것을 잊기로, 짓밟아버리기로, 사람을 물었던 독사를 밟아 죽이듯 그것을 짓이기기로 결심했다. 실제로 베이즐이 그에게 그런 식으로 말할 권리가 어디 있었단 말인가? 누가 그를 다른 사람들의 재판관으로 만들었단 말인가? 그는 견딜 수 없는 끔찍하고 무서운 말들을 했다.
마차는 계속 달렸다. 그에게는 매 순간 더 느리게 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트랩을 열고 마부에게 더 빨리 가라고 소리쳤다. 끔찍한 아편에 대한 갈망이 그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목이 타들어갔고 섬세한 손이 신경질적으로 떨렸다. 그는 미친 듯이 지팡이로 말을 때렸다. 마부가 웃으며 채찍질했다. 그도 웃음으로 화답했고, 마부는 입을 다물었다.
길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 같았고, 거리는 거대한 거미의 검은 거미줄 같았다. 단조로움이 견딜 수 없어졌고, 안개가 짙어지자 그는 두려워졌다.
그들은 외딴 벽돌 공장들을 지나갔다. 안개가 덜 짙어 이상한 병 모양의 가마와 주황색 부채 모양의 불꽃이 보였다. 개 한 마리가 그들이 지나갈 때 짖었고, 멀리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갈매기가 비명을 질렀다. 말이 웅덩이에 걸려 비틀거리더니 옆으로 비켜 질주했다.
잠시 후 그들은 흙길을 벗어나 다시 울퉁불퉁한 포장도로로 들어섰다. 대부분의 창문은 어두웠지만, 때때로 괴상한 그림자들이 불 켜진 블라인드에 비쳤다. 그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것들을 지켜보았다. 괴물 같은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며 살아있는 것처럼 몸짓을 했다. 그는 그것들을 혐오했다. 가슴속에 둔한 분노가 일었다. 그들이 모퉁이를 돌자 어떤 여자가 열린 문에서 그들에게 뭔가를 소리쳤고, 두 남자가 약 100미터쯤 마차를 쫓아왔다. 마부가 채찍으로 그들을 때렸다.
열정은 사람을 동그라미 안에서 생각하게 한다고들 한다. 도리안 그레이의 깨물린 입술은 끔찍한 반복으로 영혼과 감각에 관한 그 교묘한 말들을 되풀이했다. 마침내 그는 그 말들 속에서 자신의 기분을 완전히 표현한 듯했고, 지적인 승인으로 그의 성정을 지배했을 열정들을 정당화했다. 그의 뇌세포 하나하나를 한 가지 생각이 기어 다녔다. 그리고 살고자 하는 야생의 욕망, 인간의 욕망 중 가장 무서운 그것이 떨리는 신경과 섬유 하나하나를 자극했다.
한때 그가 증오했던 추함, 그것이 사물을 현실적으로 만들기에 증오했던 그 추함이 이제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에게 소중해졌다. 추함은 유일한 현실이었다. 거친 싸움, 혐오스러운 소굴, 무질서한 삶의 날것의 폭력, 도둑과 부랑자들의 비열함까지도, 그 강렬한 인상의 실제성 속에서 예술의 모든 우아한 형태나 노래의 몽롱한 그림자보다 더 생생했다. 그것들은 그가 망각을 위해 필요로 하는 것들이었다. 3일 후면 그는 자유의 몸이 될 것이다.
갑자기 마부가 어두운 골목 끝에서 마차를 멈췄다. 낮은 지붕과 들쭉날쭉한 굴뚝 너머로 배들의 검은 돛대가 보였다. 흰 안개 덩어리가 유령 같은 돛처럼 삭구에 달라붙어 있었다.
“이 근처에요, 나리?” 그가 승합 문을 통해 쉰 목소리로 물었다.
도리안은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서 좋아.” 그가 대답하고 서둘러 내린 뒤 약속했던 추가 요금을 마부에게 주고 부두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이곳저곳에 거대한 상선의 선미에 등불이 깜빡였다. 그 빛이 웅덩이에 비쳐 깜빡이며 부서졌다. 석탄을 싣고 있는 외항 선박에서 붉은 불빛이 새어 나왔다. 미끄러운 포장도로는 젖은 우비 같았다.
그는 왼쪽으로 서둘러 갔고, 가끔 뒤를 돌아보며 누군가 따라오는지 확인했다. 7-8분 후 그는 두 허름한 공장 사이에 끼어 있는 작고 초라한 집에 도착했다. 위층 창문 하나에 등불이 켜져 있었다. 그는 멈춰 서서 특이한 방식으로 노크했다.
잠시 후 그는 복도에서 발소리를 들었고 쇠사슬이 풀리는 소리가 났다. 문이 조용히 열렸고, 그가 지나갈 때 그림자 속으로 납작하게 몸을 숨긴 작고 기형적인 인영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복도 끝에는 너덜너덜한 초록색 커튼이 걸려 있었고, 그가 들어올 때 따라온 거친 바람에 흔들렸다. 그는 그것을 옆으로 제치고 긴 천장이 낮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은 한때 3류 댄스홀이었던 것 같았다. 벽을 따라 날카롭게 타오르는 가스등들이 줄지어 있었고, 그 맞은편에 있는 파리 똥 묻은 거울에 흐릿하고 일그러진 모습으로 비쳤다. 주름진 양철 반사판이 그 뒤에 있어 흔들리는 빛의 원반을 만들어냈다. 바닥은 황토색 톱밥으로 덮여 있었고, 이곳저곳에서 진흙으로 밟혀 있었으며, 흘린 술로 생긴 어두운 얼룩들이 있었다. 말레이인 몇 명이 작은 숯불 난로 옆에 웅크리고 앉아 뼈 조각으로 놀이를 하며 하얀 이를 드러내며 떠들고 있었다. 한 구석에는 선원 한 명이 테이블 위로 머리를 파묻고 늘어져 있었고, 한쪽 벽을 가로지르는 칠이 벗겨진 바 옆에는 두 명의 초췌한 여자가 서 있었다. 그들은 코트 소매를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털고 있는 노인을 비웃고 있었다. “저 사람은 자기 몸에 빨간 개미가 있다고 생각하나 봐.” 도리안이 지나갈 때 한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 남자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방 끝에는 어두컴컴한 방으로 이어지는 작은 계단이 있었다. 도리안이 삐걱거리는 세 개의 계단을 올라갈 때 아편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켰고, 코가 기쁨으로 떨렸다. 그가 방 안으로 들어서자 부드러운 금발의 젊은 남자가 램프 위로 몸을 굽혀 길고 가느다란 파이프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젊은 남자는 고개를 들어 도리안을 보며 망설이는 듯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 여기 있었구나, 에이드리언?” 도리안이 중얼거렸다.
“내가 어디 있겠어?” 그가 무기력하게 대답했다. “이제 아무도 나랑 말을 하지 않아.”
“난 네가 영국을 떠났다고 생각했어.”
“달링턴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 내 형이 마침내 돈을 갚았어. 조지도 나랑 말을 하지 않아… 상관없어.” 그가 한숨을 쉬며 덧붙였다. “이 물건만 있으면 친구는 필요 없어. 내 생각엔 난 친구가 너무 많았던 것 같아.”
도리안은 움찔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너덜너덜한 매트리스 위에 기괴한 자세로 누워있는 괴물 같은 것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뒤틀린 사지, 벌어진 입, 멍한 눈들이 그를 매혹시켰다. 그는 그들이 어떤 이상한 천국에서 고통받고 있는지, 어떤 무미건조한 지옥에서 어떤 새로운 기쁨의 비밀을 배우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보다 나았다. 그는 사고의 감옥에 갇혀 있었다. 기억이 끔찍한 병처럼 그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었다. 때때로 그는 베이즐 홀워드의 눈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여기 머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에이드리언 싱글턴의 존재가 그를 불편하게 했다. 그는 아무도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곳에 있고 싶었다. 그는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난 다른 곳으로 갈 거야.” 그가 잠시 후 말했다.
“부둣가로?”
“그래.”
“그 미친 고양이는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야. 이제 그들은 여기서 그녀를 받아주지 않아.”
도리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난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들이 지겨워. 자신을 증오하는 여자들이 훨씬 더 흥미로워. 게다가, 그쪽 물건이 더 좋아.”
“거의 똑같아.”
“난 그게 더 좋아. 와서 뭐 좀 마시자. 난 뭔가를 마셔야겠어.”
“난 아무것도 필요 없어.” 젊은 남자가 중얼거렸다.
“상관없어.”
에이드리언 싱글턴은 힘없이 일어나 도리안을 따라 바로 갔다. 너덜너덜한 터번을 쓰고 초라한 외투를 입은 혼혈인이 그들 앞에 브랜디 병과 두 개의 텀블러를 내밀며 흉측한 미소를 지었다. 여자들이 다가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도리안은 등을 돌리고 에이드리언 싱글턴에게 낮은 목소리로 뭔가를 말했다.
말레이 주름살 같은 비뚤어진 미소가 여자들 중 한 명의 얼굴을 가로질렀다. “오늘 밤엔 아주 거만하시네요.” 그녀가 비웃었다.
“제발 나한테 말 걸지 마.” 도리안이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뭘 원하는 거야? 돈? 여기 있어. 다시는 나한테 말 걸지 마.”
두 개의 붉은 불꽃이 잠시 여자의 흐릿한 눈에서 번쩍였다가 이내 사그라들어 다시 탁하고 유리 같은 눈이 되었다. 그녀는 고개를 홱 돌리며 탐욕스러운 손가락으로 계산대 위의 동전을 긁어모았다. 그녀의 동료가 부러운 듯이 그녀를 지켜보았다.
“소용없어요,” 에이드리언 싱글턴이 한숨을 쉬었다.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무슨 상관이겠어요? 저는 여기서 꽤 행복해요.”
“뭔가 필요한 게 있으면 편지 보내겠지?” 도리안이 잠시 후에 말했다.
“아마도요.”
“그럼 안녕히.”
“안녕히 계세요,” 젊은 남자가 대답하며 계단을 올라가 말라붙은 입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도리안은 얼굴에 고통스러운 표정을 띤 채 문 쪽으로 걸어갔다. 커튼을 밀어제치자 그의 돈을 가져간 여자의 화장한 입술에서 끔찍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악마의 거래가 끝났군!” 그녀가 쉰 목소리로 딸꾹질을 하며 말했다.
“제기랄!” 그가 대답했다. “날 그렇게 부르지 마.”
그녀는 손가락을 튕겼다. “매력적인 왕자님이라고 불리고 싶으시겠죠, 안 그래요?” 그녀가 그의 뒤에 대고 소리쳤다.
졸고 있던 선원이 그녀가 말하자 벌떡 일어나 미친 듯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그의 귀에 들렸다. 그는 마치 뒤쫓는 듯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도리안 그레이는 보슬비가 내리는 부두를 서둘러 걸었다. 에이드리언 싱글턴과의 만남은 그를 이상하게 움직였고, 그는 베이즐 홀워드가 그토록 모욕적으로 말했듯이 그 젊은이의 인생 파멸이 정말로 자신의 탓인지 궁금했다. 그는 입술을 깨물었고, 잠시 동안 그의 눈에 슬픔이 깃들었다. 하지만 결국, 그에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인생은 너무 짧아서 다른 사람의 실수를 자신의 짐으로 질 수 없다. 각자는 자신의 삶을 살고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유일한 안타까움은 하나의 잘못에 대해 너무 자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로 계속해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인간을 다루는 데 있어 운명은 결코 장부를 닫지 않았다.
심리학자들은 우리에게 죄에 대한 열정, 또는 세상이 죄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열정이 본성을 지배하는 순간이 있어 몸의 모든 섬유와 뇌의 모든 세포가 무서운 충동으로 가득 차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런 순간 남녀는 의지의 자유를 잃는다. 그들은 자동인형처럼 끔찍한 결말을 향해 움직인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지고, 양심은 죽거나, 살아있다 해도 반항에 매력을 주고 불순종에 매력을 주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신학자들이 우리에게 지치지 않고 상기시키듯이, 모든 죄는 불순종의 죄다. 그 고귀한 정신, 악의 새벽별이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 그것은 반역자로서 떨어졌다.
냉담하고 악에 집중하며, 오염된 마음과 반항에 굶주린 영혼을 지닌 채, 도리안 그레이는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그가 자주 지름길로 사용했던 어두운 아치길로 들어섰을 때, 갑자기 뒤에서 붙잡혔고, 자신을 방어할 틈도 없이 벽으로 밀쳐졌다. 그의 목에는 거친 손이 감겼다.
그는 미친 듯이 생명을 위해 몸부림쳤고, 끔찍한 노력 끝에 조여오는 손가락을 떼어냈다. 순간 그는 리볼버의 딸깍거리는 소리를 듣고, 자신의 머리를 겨누고 있는 광택 나는 총열과 짧고 다부진 남자의 어두운 형체를 보았다.
“뭘 원하시나요?” 그가 숨을 헐떡였다.
“조용히 해,” 그 남자가 말했다. “움직이면 쏘겠소.”
“당신 미쳤군요. 내가 당신에게 무슨 짓을 했다고요?”
“당신은 시빌 베인의 인생을 망쳤소,” 그가 대답했다. “시빌 베인은 내 여동생이오. 그녀는 자살했소. 나는 알고 있소. 그녀의 죽음은 당신 탓이오. 나는 당신을 죽이겠다고 맹세했소. 몇 년 동안 당신을 찾아다녔소. 단서도, 흔적도 없었소. 당신을 묘사할 수 있는 두 사람은 죽었고. 당신에 대해 아는 것은 그녀가 당신을 부르던 애칭뿐이었소. 오늘 밤 우연히 그걸 들었소. 신과 화해하시오. 오늘 밤 당신은 죽을 테니까.”
도리안 그레이는 공포로 몸이 아팠다. “난 그녀를 몰라요,” 그가 더듬거렸다. “그녀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어요. 당신이 미쳤군요.”
“차라리 죄를 고백하는 게 나을 거요. 내가 제임스 베인이라는 걸 맹세하지만, 당신은 죽을 거요.” 끔찍한 순간이었다. 도리안은 무슨 말을 하거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무릎 꿇어!” 그 남자가 으르렁거렸다. “1분을 줄 테니 기도나 하시오. 더는 안 돼. 난 오늘 밤 인도로 떠나야 하고, 먼저 이 일을 끝내야 해. 1분. 그게 전부요.”
도리안의 팔이 옆으로 떨어졌다. 공포로 마비되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갑자기 희망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멈춰요!” 그가 외쳤다. “당신 여동생이 죽은 지 얼마나 됐죠? 빨리 말해봐요!”
“18년 됐소,” 그 남자가 말했다. “왜 묻는 거요? 세월이 무슨 상관이오?”
“18년,” 도리안 그레이가 승리의 기색을 띠며 웃었다. “18년이라고! 날 램프 밑으로 데려가 내 얼굴을 봐요!”
제임스 베인은 잠시 망설였다.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고는 도리안 그레이를 붙잡아 아치 밖으로 끌어냈다.
희미하고 흔들리는 바람에 날리는 불빛이었지만, 그가 빠진 끔찍한 실수를 보여주기에는 충분했다. 그가 죽이려 했던 사람의 얼굴에는 소년 시절의 모든 꽃과 청춘의 모든 순수함이 있었다. 그는 20년 여름을 보낸 청년처럼 보였고, 그들이 헤어졌을 때의 여동생보다 나이가 더 많아 보이지 않았다. 이 사람이 그녀의 인생을 파괴한 사람이 아님이 분명했다.
그는 손을 풀고 뒤로 물러났다. “맙소사! 맙소사!” 그가 외쳤다. “그리고 내가 당신을 죽일 뻔했어요!”
도리안 그레이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당신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뻔했소, 이 사람아,” 그가 엄숙하게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것이 복수를 자기 손으로 하지 말라는 경고가 되길 바라오.”
“용서해 주십시오, 나리,” 제임스 베인이 중얼거렸다. “속았습니다. 그 저주받은 곳에서 들은 우연한 말 한마디가 저를 잘못된 길로 이끌었습니다.”
“집에 가서 그 권총을 치우는 게 좋을 거요. 안 그러면 문제가 생길 수 있소,” 도리안이 뒤돌아서서 천천히 거리를 내려가며 말했다.
제임스 베인은 공포에 질려 보도 위에 서 있었다.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떨고 있었다. 잠시 후, 축축한 벽을 따라 기어가던 검은 그림자가 빛 속으로 나와 그에게 다가왔다.
살금살금 발소리를 내며 걸었다. 그의 팔에 손이 닿는 것을 느끼고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여자 중 한 명이었다.
“왜 그를 죽이지 않았어요?” 여자가 핼쑥한 얼굴을 그의 얼굴 가까이 들이대며 쉭쉭거렸다. “당신이 데일리에서 뛰쳐나갈 때 그를 따라가는 걸 알았어요. 바보 같으니! 그를 죽였어야 했어요. 그는 돈이 많고 악당 중의 악당이에요.”
“그는 내가 찾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가 대답했다. “나는 누구의 돈도 원하지 않소. 난 한 사람의 목숨을 원할 뿐이오. 내가 원하는 사람의 나이는 이제 거의 40이 되었을 거요. 이 사람은 소년에 불과해. 그의 피를 내 손에 묻히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리오.”
여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소년이라고요!” 그녀가 비웃었다. “이봐요, 아가씨를 이렇게 만든 게 벌써 18년이나 됐다고요.”
“당신 거짓말하는 거요!” 제임스 베인이 소리쳤다.
그녀는 하늘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하나님 앞에 맹세코 진실을 말하고 있어요.” 그녀가 외쳤다.
“하나님 앞에서?”
“내 말이 거짓이라면 벙어리가 되게 해 주세요. 그는 여기 오는 사람들 중 최악이에요. 예쁜 얼굴 때문에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대요. 그를 만난 지 18년이 다 되어 가요. 그는 그때부터 별로 변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난 변했지.” 그녀가 병적인 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당신 맹세하시오?”
“맹세해요.” 그녀의 편평한 입에서 쉰 목소리로 메아리쳤다. “하지만 그에게 날 팔지 마세요.” 그녀가 애원했다. “그가 무서워요. 하룻밤 묵을 돈 좀 주세요.”
그는 욕설을 내뱉으며 그녀에게서 벗어나 거리 모퉁이로 달려갔지만, 도리안 그레이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뒤돌아보니 여자도 없어졌다.
17장
일주일 후 도리안 그레이는 셀비 로열의 온실에 앉아 예쁜 몬머스 공작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공작 부인의 남편인 60세의 피곤해 보이는 남자도 손님들 중에 있었다. 차 시간이었고, 테이블 위에 놓인 거대한 레이스 덮개를 씌운 램프의 부드러운 불빛이 공작 부인이 주관하는 정교한 도자기와 망치로 두들겨 만든 은제 차 세트를 비추고 있었다. 공작 부인의 하얀 손이 우아하게 찻잔 사이를 오갔고, 그녀의 붉은 입술은 도리안이 귓속말로 한 말에 미소 짓고 있었다. 헨리 경은 비단 천으로 감싼 등나무 의자에 기대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복숭아 빛 긴 의자에는 나버러 부인이 앉아 공작이 자신의 수집품에 최근 추가한 브라질 딱정벌레에 대한 설명을 듣는 척하고 있었다. 화려한 흡연복을 입은 젊은 남자 셋이 여성들에게 차 케이크를 건네고 있었다. 저택 파티에는 12명이 참석했고, 다음 날 더 많은 사람들이 도착할 예정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계신 거죠?” 헨리 경이 테이블로 다가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도리안이 모든 것의 이름을 바꾸자는 내 계획에 대해 말해줬길 바라요, 글래디스. 정말 멋진 아이디어예요.”
“하지만 전 이름을 바꾸고 싶지 않아요, 해리.” 공작 부인이 그를 향해 놀라운 눈으로 올려다보며 대꾸했다. “제 이름에 만족하고 있어요. 그레이 씨도 자신의 이름에 만족해야 할 거예요.”
“글래디스, 둘 중 어느 이름도 바꾸고 싶지 않아요. 둘 다 완벽하니까요. 주로 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요. 어제 단추구멍에 꽂을 난초를 하나 잘랐죠. 7대 죄악만큼이나 효과적인, 놀랍도록 얼룩덜룩한 꽃이었어요. 무심코 정원사에게 이름을 물었더니 로빈소니아나, 아니면 그런 끔찍한 이름이라고 하더군요. 슬픈 진실이지만, 우리는 아름다운 이름을 붙이는 능력을 잃어버렸어요. 이름은 모든 것이에요. 난 행동과는 다투지 않아요. 내가 다투는 건 오직 말뿐이죠. 그래서 문학에서 저속한 사실주의를 싫어하는 겁니다. 삽을 삽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삽을 사용하도록 강요받아야 해요. 그게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요.”
“그럼 우리가 당신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해리?” 그녀가 물었다.
“그의 이름은 역설의 왕자예요.” 도리안이 말했다.
“순식간에 알아챘어요!” 공작 부인이 외쳤다.
“그건 안 돼요.” 헨리 경이 의자에 앉으며 웃었다. “이름표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그 칭호는 거절하겠어요.”
“왕족은 퇴위할 수 없어요.” 예쁜 입술에서 경고의 말이 떨어졌다.
“그럼 제 왕좌를 지켜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그래요.”
“난 내일의 진리를 전하지.”
“난 오늘의 실수를 선호해요.” 그녀가 대답했다.
“날 무장 해제시키는군, 글래디스.” 그가 말하며 그녀의 변덕스러운 기분에 맞춰 말했다.
“당신의 방패만 빼앗았을 뿐이에요, 해리. 창은 아니에요.”
“난 결코 아름다움과 맞서 싸우지 않아.” 그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게 당신의 실수예요, 해리. 믿어주세요. 당신은 아름다움을 너무 높이 평가해요.”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죠? 난 아름다운 것이 선한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추한 것보다 선한 것이 낫다는 걸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
“그럼 추함은 7대 죄악 중 하나인가요?” 공작 부인이 외쳤다. “난초에 대한 당신의 비유는 어떻게 된 거죠?”
“추함은 7대 덕목 중 하나예요, 글래디스. 당신은 좋은 보수당으로서 그것들을 과소평가해선 안 돼요. 맥주와 성경, 그리고 7대 덕목이 우리 영국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었어요.”
“그럼 당신은 조국을 좋아하지 않나 봐요?” 그녀가 물었다.
“난 여기서 살고 있어요.”
“그래서 더 잘 비난할 수 있겠군요.”
“유럽의 판단을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가 물었다.
“우리에 대해 뭐라고 하나요?”
“타르튀프가 영국으로 이민 와서 가게를 열었대요.”
“그게 당신 말이에요, 해리?”
“당신에게 드리는 거예요.”
“난 그걸 사용할 수 없어요. 너무 사실적이에요.”
“걱정 마세요. 우리 국민들은 결코 설명을 알아채지 못해요.”
“그들은 실용적이에요.”
“그들은 실용적이라기보다는 교활해요. 장부를 정리할 때 어리석음은 부로, 악덕은 위선으로 상쇄하죠.”
“그래도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해냈어요.”
“위대한 일들이 우리에게 떠밀려왔어요, 글래디스.”
“우리가 그 짐을 짊어졌어요.”
“주식 거래소까지만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난 인종을 믿어요.” 그녀가 외쳤다.
“그건 밀어붙이는 자들의 생존을 의미하죠.”
“그건 발전이에요.”
“쇠퇴가 나를 더 매혹시켜요.”
“예술은 어떻죠?” 그녀가 물었다.
“그건 병이에요.”
“사랑은?”
“환상이죠.”
“종교는?”
“믿음의 유행하는 대체물이에요.”
“당신은 회의론자군요.”
“절대 아니에요! 회의주의는 신앙의 시작이에요.”
“당신은 무엇인가요?”
“정의하는 것은 한계를 짓는 거예요.”
“실마리를 주세요.”
“실은 끊어져요. 당신은 미로에서 길을 잃을 거예요.”
“당신은 날 혼란스럽게 해요. 다른 사람 얘기를 해요.”
“우리의 주인은 흥미로운 주제야. 몇 년 전 그에게 매력적인 왕자라는 별명이 붙었지.”
“아! 그 얘기는 그만해 주세요.” 도리안 그레이가 외쳤다.
“오늘 밤 우리 주인은 꽤 불쾌하군요.” 공작부인이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그는 몬머스가 순전히 과학적인 원칙에 따라 나와 결혼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현대적인 나비의 가장 좋은 표본으로 말이죠.”
“글쎄요, 공작부인께 핀을 꽂지 않기를 바랍니다.” 도리안이 웃으며 말했다.
“오! 제 하녀가 이미 그러고 있어요, 그레이 씨. 제게 화가 났을 때 말이죠.”
“그런데 하녀가 무엇 때문에 화를 내나요, 공작부인?”
“아주 사소한 일들 때문이에요, 그레이 씨. 보통은 제가 8시 50분에 들어와서 8시 30분까지 옷을 입혀야 한다고 말할 때죠.”
“얼마나 비합리적인가요! 그녀에게 경고를 주셔야겠어요.”
“감히 그럴 수가 없어요, 그레이 씨. 그녀가 제 모자를 만들거든요. 힐스톤 부인의 정원 파티 때 제가 쓴 모자 기억하세요? 기억 못 하시겠지만, 기억한 척해 주셔서 고마워요. 그녀가 그걸 없는 것에서 만들어냈어요. 모든 좋은 모자는 없는 것에서 만들어지죠.”
“모든 좋은 평판과 마찬가지로 말이야, 글래디스.” 헨리 경이 끼어들었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모든 효과는 적을 만들어내지. 인기를 얻으려면 평범해야 해.”
“여자들에겐 해당되지 않아요.” 공작부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여자들이 세상을 지배하죠. 우리는 평범함을 견딜 수 없어요. 우리 여자들은 누군가 말했듯이 귀로 사랑하죠. 당신들 남자들이 눈으로 사랑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만약 당신들이 정말로 사랑한다면 말이죠.”
“우리는 다른 어떤 것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도리안이 중얼거렸다.
“아! 그렇다면 당신은 결코 진정으로 사랑해 본 적이 없군요, 그레이 씨.” 공작부인이 슬픈 척하며 대답했다.
“글래디스, 이런 말씀을!” 헨리 경이 외쳤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하실 수 있죠? 로맨스는 반복으로 살아남고, 반복은 욕구를 예술로 변화시키죠. 게다가 사랑할 때마다 그것은 사랑해 본 유일한 때예요. 대상의 차이는 열정의 유일성을 바꾸지 않아요. 단지 그것을 강화할 뿐이죠. 우리는 인생에서 기껏해야 하나의 위대한 경험을 할 수 있을 뿐이고, 인생의 비밀은 그 경험을 가능한 한 자주 재현하는 거예요.”
“심지어 그것에 상처받았을 때도 말인가요, 해리?” 공작부인이 잠시 후에 물었다.
“특히 그때 더욱 그렇죠.” 헨리 경이 대답했다.
공작부인은 돌아서서 이상한 표정으로 도리안 그레이를 바라보았다. “그레이 씨, 당신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녀가 물었다.
도리안은 잠시 망설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웃었다. “저는 항상 해리의 의견에 동의해요, 공작부인.”
“심지어 그가 틀렸을 때도요?”
“해리는 절대 틀리지 않아요, 공작부인.”
“그의 철학이 당신을 행복하게 만드나요?”
“저는 한 번도 행복을 찾아본 적이 없어요. 누가 행복을 원하겠어요? 저는 쾌락을 찾았죠.”
“그리고 찾으셨나요, 그레이 씨?”
“자주요. 너무 자주 말이에요.”
공작부인은 한숨을 쉬었다. “저는 평화를 찾고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제가 가서 옷을 갈아입지 않으면, 오늘 밤엔 평화를 얻지 못할 것 같네요.”
“제가 공작부인께 난초를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도리안이 일어서며 온실 쪽으로 걸어갔다.
“당신은 그와 너무 노골적으로 flirt하고 있어요.” 헨리 경이 사촌에게 말했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 그는 매우 매력적이에요.”
“그렇지 않다면 싸움도 없겠죠.”
“그러면 그리스인과 그리스인의 만남인가요?”
“저는 트로이 편이에요. 그들은 여자를 위해 싸웠죠.”
“그들은 패배했어요.”
“포로가 되는 것보다 더 나쁜 일들이 있어요.” 그녀가 대답했다.
“당신은 고삐 풀린 말처럼 달리고 있어요.”
“속도가 생명을 주죠.” 그녀가 받아쳤다.
“오늘 밤 일기에 적어둬야겠어요.”
“뭐라고요?”
“불에 데인 아이가 불을 좋아한다고.”
“저는 그을리지도 않았어요. 제 날개는 멀쩡해요.”
“당신은 그것들을 비행 외의 모든 것에 사용하죠.”
“용기가 남자에서 여자로 옮겨갔어요. 우리에겐 새로운 경험이죠.”
“당신에겐 경쟁자가 있어요.”
“누구죠?”
그가 웃었다. “너버러 부인이에요.” 그가 속삭였다. “그녀는 그를 완전히 숭배해요.”
“당신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어요. 우리 낭만주의자들에게 고대의 호소는 치명적이에요.”
“낭만주의자라고요! 당신은 과학의 모든 방법을 가지고 있어요.”
“남자들이 우리를 교육시켰어요.”
“하지만 우리를 설명하지는 못했죠.”
“우리 성별을 설명해 보세요.” 그녀가 도전했다.
“비밀 없는 스핑크스들.”
그녀는 그를 보며 미소 지었다. “도리안 그레이 씨가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모르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가서 그를 도와줍시다. 아직 제 드레스 색깔을 말하지 않았거든요.”
“아! 당신은 드레스를 그의 꽃에 맞춰야 해요, 글래디스.”
“그건 너무 이른 항복이 될 거예요.”
“낭만적인 예술은 절정으로 시작해요.”
“후퇴할 기회는 남겨둬야겠어요.”
“파르티아 식으로 말인가요?”
“그들은 사막에서 안전을 찾았어요. 저는 그럴 수 없겠어요.”
“여자들에게는 항상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아요.” 그가 대답했지만, 그 말을 끝내기도 전에 온실 저쪽 끝에서 억눌린 신음 소리가 들리더니 무거운 물체가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모두가 벌떡 일어났다. 공작부인은 공포에 질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헨리 경은 펄럭이는 야자수 사이를 뚫고 달려가 도리안 그레이가 사망한 듯이 기절한 채 타일 바닥에 얼굴을 아래로 하고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즉시 파란 응접실로 옮겨져 소파 위에 눕혀졌다. 잠시 후 그는 정신을 차리고 멍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슨 일이 있었죠?” 그가 물었다. “아! 기억났어요. 여기 안전한가요, 해리?” 그는 떨기 시작했다.
“내 친애하는 도리안,” 헨리 경이 대답했다. “넌 그저 기절했을 뿐이야. 그게 전부야. 너무 무리했나 봐. 저녁 식사에 내려오지 않는 게 좋겠어. 내가 네 자리를 대신할게.”
“아니요, 내려갈게요.” 그가 힘겹게 일어서며 말했다. “차라리 내려가는 게 좋겠어요. 혼자 있고 싶지 않아요.”
그는 자기 방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식탁에 앉았을 때 그의 태도에는 광적인 흥분이 감돌았지만, 가끔 공포의 전율이 그를 관통했다. 온실 창문에 하얀 손수건처럼 눌러 붙어 있던 제임스 베인의 얼굴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18장
다음날 그는 집을 나가지 않았고, 사실 대부분의 시간을 자기 방에서 보냈다. 죽음에 대한 광기 어린 공포에 시달리면서도 동시에 삶 자체에는 무관심했다. 추적당하고, 함정에 빠지고, 쫓기고 있다는 의식이 그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바람에 태피스트리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그는 떨었다. 창문의 납으로 된 창살에 부딪히는 마른 나뭇잎들은 그에게 자신의 헛된 결심과 후회를 떠올리게 했다. 눈을 감으면 다시 안개 낀 유리를 통해 들여다보는 선원의 얼굴이 보였고, 공포가 다시 한번 그의 가슴을 움켜쥐는 것 같았다.
하지만 복수의 신이 밤으로부터 그를 불러내어 끔찍한 형벌의 모습을 그의 앞에 드러낸 것은 아마도 그의 상상일 뿐이었다. 실제 삶은 혼돈이었지만, 상상 속에는 무언가 무시무시하게 논리적인 것이 있었다. 죄의 발걸음을 뒤쫓는 회한을 만들어낸 것은 상상력이었다. 각각의 범죄가 기형적인 자식을 낳게 한 것도 상상력이었다. 현실 세계에서 악인은 벌받지 않았고, 선인은 보상받지 않았다. 성공은 강자에게 주어지고, 실패는 약자에게 떠밀렸다. 그것이 전부였다. 게다가 집 주변을 배회하던 낯선 사람이 있었다면, 하인들이나 관리인들이 봤을 것이다. 화단에 발자국이 있었다면 정원사들이 보고했을 것이다. 그래, 그것은 단순한 상상일 뿐이었다. 시빌 베인의 오빠는 그를 죽이러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배를 타고 떠나 어느 겨울 바다에서 침몰했을 것이다. 그로부터는, 적어도 안전했다. 그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고, 알 수도 없었다. 젊음의 가면이 그를 구했다.
그런데도 그것이 단순한 환상이었다면, 양심이 그토록 무서운 환영들을 불러일으키고, 그것들에게 가시적인 형태를 부여하며, 그의 앞에서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얼마나 끔찍한가! 그의 범죄의 그림자들이 밤낮으로 조용한 구석에서 그를 엿보고, 은밀한 장소에서 그를 조롱하며, 연회에 앉아 있을 때 그의 귓가에 속삭이고, 잠자리에 누워 있을 때 차가운 손가락으로 그를 깨운다면 그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자, 그는 공포로 창백해졌고, 갑자기 공기가 차가워진 것 같았다. 오! 얼마나 광기 어린 순간에 그는 친구를 죽였던가! 그 장면의 기억이 얼마나 소름 끼치는가! 그는 모든 것을 다시 보았다. 끔찍한 세부사항 하나하나가 더욱 끔찍해져 그에게 되돌아왔다. 시간의 검은 동굴에서, 붉은 천에 싸인 채로 그의 죄의 형상이 무섭게 떠올랐다. 헨리 경이 6시에 들어왔을 때, 그는 가슴이 터질 듯 울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3일이 지나서야 그는 밖으로 나갈 용기를 냈다. 그 겨울 아침의 맑고 소나무 향 가득한 공기에는 그에게 즐거움과 삶에 대한 열정을 되돌려주는 무언가가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환경의 물리적 조건만이 변화를 일으킨 것은 아니었다. 그의 본성 자체가 고요함의 완벽함을 해치고 손상시키려 했던 과도한 고통에 반발했던 것이다. 미묘하고 섬세하게 만들어진 기질을 가진 사람들은 항상 그렇다. 그들의 강렬한 열정은 상처를 입히거나 굽혀야 한다. 그들은 사람을 죽이거나 아니면 스스로 죽는다. 얕은 슬픔과 얕은 사랑은 계속 살아간다. 위대한 사랑과 슬픔은 그들 자신의 충만함으로 인해 파괴된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공포에 질린 상상력의 희생자였다고 확신했고, 이제 자신의 두려움을 약간의 연민과 상당한 경멸을 가지고 되돌아보았다.
아침 식사 후, 그는 공작 부인과 함께 정원을 한 시간 동안 산책했고, 그런 다음 사냥 파티와 합류하기 위해 공원을 가로질러 차를 몰았다. 서리가 소금처럼 초록 잔디 위에 바삭하게 내려앉았다. 하늘은 뒤집어진 파란 금속 잔이었다. 얇은 얼음막이 갈대가 무성한 평평한 호수의 가장자리를 둘렀다.
소나무 숲 모퉁이에서 그는 공작 부인의 오빠인 제프리 클라우스턴 경이 두 개의 다 쓴 카트리지를 총에서 꺼내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마차에서 뛰어내려 마부에게 암말을 집으로 데려가라고 말한 뒤, 시든 고사리와 거친 덤불을 지나 손님을 향해 걸어갔다.
“제프리, 사냥은 잘 되고 있나?” 그가 물었다.
“별로 좋지 않아, 도리안. 대부분의 새들이 들판으로 날아간 것 같아. 점심 후에 새로운 장소로 가면 더 나아질 거야.”
도리안은 그의 옆에서 천천히 걸었다. 향긋한 공기, 숲에서 반짝이는 갈색과 붉은색 불빛, 때때로 울려 퍼지는 사냥꾼들의 거친 외침,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총소리의 날카로운 파열음이 그를 매혹시키고 자유로운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그는 행복의 부주의함과 기쁨의 고귀한 무관심에 사로잡혔다.
갑자기 그들 앞 20야드쯤 떨어진 곳의 덤성덤성한 잔디 더미에서 검은 귀끝을 쫑긋 세우고 긴 뒷다리로 앞으로 튀어나오는 토끼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토끼는 오리나무 숲을 향해 달렸다. 제프리 경이 총을 어깨에 들어 올렸지만, 토끼의 우아한 움직임에 이상하게 매료된 도리안 그레이는 급히 외쳤다. “쏘지 마, 제프리. 살려두게.”
“도리안, 무슨 헛소리야!” 그의 동료가 웃으며 말했고, 토끼가 숲으로 뛰어들어갈 때 그는 발포했다. 두 번의 외침이 들렸다. 토끼의 비명 소리는 끔찍했고, 고통 속의 인간의 외침은 더 끔찍했다.
“맙소사! 사냥꾼을 맞췄어!” 제프리 경이 외쳤다. “그 바보 같은 놈이 총 앞으로 들어오다니! 사격을 멈춰!” 그는 목청껏 외쳤다. “누군가 다쳤어.”
사냥터 감독관이 손에 막대기를 들고 달려왔다.
“어디십니까, 나리? 어디 계십니까?” 그가 소리쳤다. 동시에 사격이 전선을 따라 멈췄다.
“여기다,” 제프리 경이 화를 내며 숲으로 달려가며 대답했다. “왜 당신네 사람들을 뒤로 물리지 않는 거야? 오늘 사냥을 망쳤잖아.”
도리안은 그들이 오리나무 숲으로 뛰어들어가 유연한 가지들을 밀어내는 것을 지켜보았다. 잠시 후 그들은 다시 나타났고, 시체를 햇빛 속으로 끌어냈다. 그는 공포에 질려 돌아섰다. 그가 가는 곳마다 불행이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그는 제프리 경이 그 남자가 정말 죽었는지 묻는 소리를 들었고, 감독관의 긍정적인 대답을 들었다. 숲이 갑자기 얼굴들로 가득 차 살아난 것 같았다. 수많은 발소리와 낮은 목소리 소리가 들렸다. 커다란 구리빛 가슴을 가진 꿩 한 마리가 머리 위 나뭇가지를 치며 날아갔다.
그에게는 고통스러운 끝없는 시간처럼 느껴지는 몇 분 후, 그는 어깨에 손이 닿는 것을 느꼈다. 그는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도리안,” 헨리 경이 말했다. “오늘은 사냥을 중단하는 게 좋겠어. 계속하는 건 좋지 않을 거야.”
“해리, 난 이게 영원히 중단됐으면 좋겠어,” 그가 쓰게 대답했다. “이 모든 게 끔찍하고 잔인해. 그 사람이…?”
그는 문장을 끝맺지 못했다.
“그래, 안타깝게도,” 헨리 경이 대답했다. “그는 온몸에 산탄을 맞았어. 그의 가슴에서 찾았다. 거의 즉사했을 것이다. 자, 집으로 돌아가자.”
그들은 거의 50미터를 옆으로 나란히 걸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도리안이 헨리 경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이건 나쁜 징조야, 해리. 아주 나쁜 징조라고.”
“무엇이?” 헨리 경이 물었다. “오! 이 사고 말이군. 내 친구여,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 사람 자신의 잘못이지. 왜 총구 앞으로 나왔겠어? 게다가 우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야. 물론 제프리에게는 좀 곤란한 일이겠지. 사냥꾼들에게 총을 쏘는 건 좋지 않아. 사람들이 난폭한 사냥꾼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하지만 제프리는 그렇지 않아. 그는 아주 정확하게 쏘지. 하지만 이 일에 대해 더 이상 말할 필요는 없어.”
도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이건 나쁜 징조야, 해리. 우리 중 누군가에게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 같아. 아마도 나에게 말이야,” 그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손으로 눈을 가리며 덧붙였다.
나이 든 남자가 웃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끔찍한 것은 권태뿐이야, 도리안. 그것이 용서받을 수 없는 유일한 죄지. 하지만 이 친구들이 저녁 식사 때 이 일에 대해 계속 떠들지 않는 한 우리가 그걸 겪을 일은 없을 거야. 그들에게 이 주제는 금기라고 말해야겠어. 징조에 관해 말하자면, 그런 건 없어. 운명은 우리에게 전령을 보내지 않아. 그녀는 너무 현명하거나 너무 잔인해서 그럴 리 없지. 게다가 도리안, 네게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겠어? 너는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잖아. 누구나 너와 자리를 바꾸고 싶어 할 거야.”
“해리, 난 누구와도 자리를 바꾸고 싶지 않아. 그렇게 웃지 마. 난 진실을 말하고 있어. 방금 죽은 그 불쌍한 농부가 나보다 더 나아. 난 죽음이 두렵지 않아. 죽음이 다가오는 게 두려울 뿐이야. 그 괴물 같은 날개가 내 주위의 납빛 공기를 휘젓는 것 같아. 세상에! 저기 나무 뒤에서 움직이는 사람 안 보여? 날 지켜보고 기다리고 있어!”
헨리 경은 떨리는 장갑 낀 손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정원사가 너를 기다리고 있는 게 보이는군. 아마도 오늘 밤 식탁에 어떤 꽃을 놓고 싶은지 물어보려는 것 같아. 내 친구여, 넌 정말 터무니없이 긴장하고 있어! 우리가 도시로 돌아가면 내 의사를 만나봐야 할 거야.”
도리안은 정원사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남자는 모자를 만지며 잠시 헨리 경을 머뭇거리며 쳐다보더니 편지 한 통을 꺼내 주인에게 건넸다. “공작 부인께서 답장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중얼거렸다.
도리안은 편지를 주머니에 넣었다. “공작 부인께 곧 들어가겠다고 전해,” 그가 차갑게 말했다. 그 남자는 돌아서서 집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여자들은 위험한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헨리 경이 웃으며 말했다. “그게 내가 그들에게서 가장 존경하는 자질 중 하나야. 여자는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는 한 세상 누구와도 flirt할 거야.”
“해리, 넌 위험한 말을 하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지금의 경우엔 완전히 잘못 짚었어. 난 공작 부인을 아주 좋아하지만, 사랑하진 않아.”
“그리고 공작 부인은 널 아주 사랑하지만, 그다지 좋아하진 않아. 그래서 너희 둘은 아주 잘 어울려.”
“넌 스캔들을 떠들고 있어, 해리. 스캔들에는 절대 근거가 없어.”
“모든 스캔들의 근거는 부도덕한 확신이지,” 헨리 경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넌 누구라도 희생시킬 거야, 해리. 그저 재치 있는 말 한마디를 위해서 말이야.”
“세상은 스스로 제단으로 걸어가,” 그가 대답했다.
“사랑할 수 있다면 좋겠어,” 도리안 그레이가 깊은 슬픔이 담긴 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난 열정을 잃은 것 같아. 욕망도 잊어버린 것 같고. 난 나 자신에게 너무 집중해 있어. 내 인격이 내게 짐이 되어버렸어. 난 도망치고 싶어, 떠나고 싶어, 잊고 싶어. 여기 내려온 게 바보 같았어. 하비에게 전보를 보내 요트를 준비하라고 해야겠어. 요트에 있으면 안전할 거야.”
“도리안, 무엇으로부터 안전하다는 거야? 넌 무슨 곤경에 빠진 거야. 왜 내게 말해주지 않는 거야? 내가 도와줄 수 있다는 걸 알잖아.”
“말할 수 없어, 해리,” 그가 슬프게 대답했다. “그리고 아마 내 상상일 뿐일 거야. 이 불행한 사고로 기분이 좋지 않아.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끔찍한 예감이 들어.”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랬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런 느낌을 떨칠 수가 없어. 아, 여기 공작 부인이 아르테미스처럼 테일러메이드 가운을 입고 오시는군. 보다시피 우리가 돌아왔어요, 공작 부인.”
“모든 걸 들었어요, 그레이 씨,” 그녀가 대답했다. “불쌍한 제프리는 몹시 속상해하고 있어요. 그리고 당신이 그에게 토끼를 쏘지 말라고 했다던데. 정말 이상하네요!”
“그래요, 정말 이상했어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어떤 변덕이었겠죠. 그건 정말 살아있는 작은 생물 중에서 가장 사랑스러워 보였거든요. 하지만 그들이 당신에게 그 남자에 대해 말한 것이 유감이에요. 그건 끔찍한 주제예요.”
“짜증 나는 주제지,” 헨리 경이 끼어들었다. “심리학적 가치가 전혀 없어. 만약 제프리가 일부러 그랬다면, 얼마나 흥미로울까! 난 진짜 살인을 저지른 사람을 알고 싶어.”
“해리, 정말 끔찍해요!” 공작 부인이 외쳤다. “그렇지 않나요, 그레이 씨? 해리, 그레이 씨가 또 아파요. 기절할 것 같아요.”
도리안은 힘겹게 일어나 미소 지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공작 부인,” 그가 중얼거렸다. “제 신경이 너무 예민해져서요. 그게 다예요. 오늘 아침에 너무 멀리 걸었나 봐요. 해리가 뭐라고 했는지 못 들었어요. 아주 나쁜 말이었나요? 나중에 알려주세요. 이제 가서 좀 누워야 할 것 같아요. 용서해 주시겠죠?”
그들은 온실에서 테라스로 이어지는 큰 계단에 도착했다. 도리안 뒤로 유리문이 닫히자 헨리 경은 돌아서서 나른한 눈으로 공작 부인을 바라보았다. “그를 많이 사랑하나요?” 그가 물었다.
그녀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고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걸 알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녀가 마침내 말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앎은 치명적일 거예요. 불확실성이 매력적이죠. 안개는 모든 것을 경이롭게 만들어요.”
“길을 잃을 수도 있어요.”
“모든 길은 같은 지점으로 이어져요, 내 사랑하는 글래디스.”
“어디로요?”
“환멸로.”
“인생에서의 데뷔였죠.”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당신에게는 화관을 쓴 채로 왔군요.”
“나는 딸기 잎에 지쳤어요.”
“그래도 잘 어울리는데요.”
“사람들 앞에서만요.”
“그걸 놓치면 아쉬워할 텐데요.” 헨리 경이 말했다.
“한 장도 떼어내지 않을 거예요.”
“몬머스는 귀가 있답니다.”
“노인은 귀가 어둡죠.”
“그가 질투한 적은 없나요?”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요.”
그는 마치 무언가를 찾는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얼 찾으시나요?” 그녀가 물었다.
“당신의 펜싱 검에 달린 단추요.” 그가 대답했다. “떨어뜨리셨더군요.”
그녀가 웃었다. “나는 여전히 가면을 쓰고 있어요.”
“그건 당신의 눈을 더 아름답게 만들죠.” 그가 대답했다.
그녀가 다시 웃었다. 그녀의 이는 붉은 과일 속의 하얀 씨앗처럼 보였다.
위층, 자신의 방에서 도리안 그레이는 소파에 누워 있었다. 그의 온몸의 신경 하나하나가 공포로 떨리고 있었다. 삶이 갑자기 그가 견디기에는 너무나 끔찍한 짐이 되어버렸다. 덤불 속에서 야생 동물처럼 쏘아 죽인 불운한 사냥꾼의 끔찍한 죽음이 그에게는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헨리 경이 냉소적인 농담으로 한 말에 거의 기절할 뻔했다.
5시에 그는 종을 울려 하인을 불러 밤 급행열차로 도시로 가기 위해 짐을 싸라고 지시했고, 8시 30분까지 마차를 문 앞에 대기시키라고 했다. 그는 셀비 로열에서 하룻밤 더 자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곳은 불길한 장소였다. 죽음이 그곳의 햇빛 속을 걸어 다녔다. 숲의 풀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그리고 그는 헨리 경에게 편지를 써서 의사와 상담하기 위해 도시로 간다고 알리고, 자신이 없는 동안 손님들을 잘 대접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편지를 봉투에 넣으려는 순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의 시종이 사냥터 관리인이 그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 알려왔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고 입술을 깨물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들어오라고 해.” 하고 중얼거렸다.
사냥터 관리인이 들어오자마자 도리안은 서랍에서 수표책을 꺼내 펼쳤다.
“아마도 오늘 아침의 불행한 사고에 대해 왔겠죠, 손튼?” 그가 펜을 들며 말했다.
“네, 나리.” 사냥터 관리인이 대답했다.
“그 불쌍한 사람에게 가족이 있었나요? 그에게 의지하는 사람이 있었나요?” 도리안이 지루한 표정으로 물었다. “만약 그렇다면, 그들이 궁핍해지는 걸 원치 않으니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만큼의 돈을 보내겠습니다.”
“우리는 그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나리. 그래서 제가 감히 나리께 찾아뵙게 된 겁니다.”
“누구인지 모른다고요?” 도리안이 무심하게 말했다. “무슨 뜻이죠? 당신네 사람 중 하나가 아니었나요?”
“아닙니다, 나리. 전에 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선원처럼 보입니다, 나리.”
도리안의 손에서 펜이 떨어졌고, 그는 마치 심장이 갑자기 멈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선원이라고요?” 그가 외쳤다. “선원이라고 했나요?”
“네, 나리. 선원 같아 보입니다. 양팔에 문신이 있고 그런 식이죠.”
“그에게서 뭔가 발견된 게 있나요?” 도리안이 앞으로 몸을 기울이며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이름을 알려줄 만한 것이라도?”
“약간의 돈이 있었습니다, 나리 – 많지 않습니다 – 그리고 6연발 권총이요. 이름 같은 건 전혀 없었습니다.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거칠어 보였습니다. 일종의 선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리안은 벌떡 일어났다. 끔찍한 희망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미친 듯이 그것을 붙잡았다. “시체는 어디 있죠?” 그가 외쳤다. “빨리! 당장 봐야겠소.”
“홈 팜의 빈 마구간에 있습니다, 나리. 사람들은 그런 것을 집에 두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시체가 불운을 가져온다고들 하죠.”
“홈 팜이라고요! 즉시 그리로 가서 나를 만나세요. 마부 중 한 명에게 내 말을 가져오라고 하세요. 아니, 됐어요. 내가 직접 마구간으로 가겠소.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거요.”
15분도 채 되지 않아 도리안 그레이는 긴 가로수 길을 따라 할 수 있는 한 빠르게 말을 달리고 있었다. 나무들이 유령 행렬처럼 그를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고, 야생의 그림자들이 그의 길을 가로질러 던져지는 듯했다. 한 번은 암말이 하얀 대문 기둥을 보고 놀라 뒷걸음질 쳤고, 그를 거의 떨어뜨릴 뻔했다. 그는 채찍으로 말의 목을 후려쳤다. 말은 화살처럼 어두운 공기를 가르며 달렸다. 돌들이 말발굽 아래서 날아갔다.
마침내 그는 홈 팜에 도착했다. 두 남자가 마당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는 안장에서 뛰어내려 고삐를 그들 중 한 명에게 던졌다. 가장 먼 마구간에서 불빛이 깜박이고 있었다. 뭔가가 그에게 시체가 거기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고, 그는 문으로 서둘러 가 손을 빗장에 얹었다.
그는 거기서 잠시 멈췄다. 자신의 인생을 만들거나 망칠 발견의 벼랑 끝에 서 있음을 느끼며. 그리고는 문을 밀어 열고 들어갔다.
구석에 있는 마대 더미 위에 거친 셔츠와 파란 바지를 입은 남자의 시체가 누워있었다. 얼룩진 손수건이 얼굴 위에 놓여 있었다. 병에 꽂힌 조악한 양초가 그 옆에서 깜박거리고 있었다.
도리안 그레이는 몸을 떨었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손수건을 치울 수 없음을 느꼈고, 농장 일꾼 중 한 명을 불러 자신에게 오게 했다.
“저 물건을 얼굴에서 치워요. 보고 싶소.” 그가 문설주를 붙잡으며 말했다.
농장 일꾼이 그렇게 하자 그가 앞으로 나섰다. 기쁨의 외침이 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덤불에서 총에 맞은 남자는 제임스 베인이었다.
그는 몇 분 동안 시체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집으로 말을 타고 가면서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찼다. 그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제 19장
“당신이 착해질 거라고 말해봤자 소용없어요.” 헨리 경이 장미수로 가득 찬 붉은 구리 그릇에 하얀 손가락을 담그며 외쳤다. “당신은 완벽해요. 제발 변하지 마세요.”
도리안 그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해리, 난 너무 많은 끔찍한 일들을 저질렀어요. 더 이상은 하지 않을 거예요. 어제부터 선행을 시작했죠.”
“어제 어디 있었나요?”
“시골이었어요, 해리. 작은 여관에 혼자 머물렀죠.”
“친애하는 소년이여,” 헨리 경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시골에서는 누구나 착해질 수 있어요. 유혹이 없으니까요. 그게 시골 사람들이 완전히 미개한 이유죠. 문명이란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인간이 그것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은 단 두 가지뿐이죠. 하나는 교양 있는 삶을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타락하는 것이에요.”
“타락이죠. 시골 사람들은 그 둘 다 경험할 기회가 없어서 그저 정체되어 있을 뿐이에요.”
“문화와 타락이라.” 도리안이 되뇌었다. “둘 다 경험해 봤지. 이제 와서 보니 그 둘이 함께 있다는 게 끔찍하게 느껴져. 해리, 나에게 새로운 이상이 생겼어. 난 변할 거야. 이미 변했다고 생각해.”
“네가 한 선행이 뭔지 아직 말해주지 않았군. 아니면 하나 이상 했다고 했나?” 그의 동료가 물었다. 그는 접시에 씨 박힌 딸기를 작은 붉은 피라미드 모양으로 쏟아 붓고, 구멍 뚫린 조개 모양의 숟가락으로 하얀 설탕을 뿌렸다.
“말해줄 수 있어, 해리. 다른 사람에겐 말할 수 없는 이야기야. 난 누군가를 살려줬어. 자랑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내 말뜻을 이해할 거야. 그녀는 정말 아름다웠고 시빌 베인과 놀랍도록 닮았어. 그게 내가 처음 그녀에게 끌린 이유였던 것 같아. 시빌 기억하지? 얼마나 오래전 일처럼 느껴지는지. 헤티는 물론 우리 계급의 사람은 아니었어. 그저 시골 마을의 소녀였지. 하지만 난 정말 그녀를 사랑했어. 확실히 사랑했다고 믿어. 우리가 보냈던 이 놀라운 5월 내내, 난 일주일에 두세 번씩 그녀를 보러 내려갔어. 어제 그녀는 작은 과수원에서 나를 만났어. 사과꽃이 계속 그녀의 머리카락 위로 떨어졌고, 그녀는 웃고 있었어. 우리는 오늘 새벽에 함께 떠나기로 했었어. 갑자기 난 그녀를 내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꽃같이 순수한 채로 두기로 결심했어.”
“이 새로운 감정이 너에게 진정한 즐거움의 전율을 주었겠구나, 도리안.” 헨리 경이 끼어들었다. “하지만 난 네 목가적 이야기를 마무리할 수 있겠어. 넌 그녀에게 좋은 충고를 해주고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지. 그게 네 개혁의 시작이었군.”
“해리, 넌 끔찍해! 그런 무서운 말을 해선 안 돼. 헤티의 마음은 아프지 않아. 물론 그녀는 울고 그랬겠지. 하지만 그녀에겐 아무런 치욕도 없어. 그녀는 페르디타처럼 박하와 금잔화가 있는 정원에서 살 수 있어.”
“그리고 배신한 플로리젤을 위해 울겠지.” 헨리 경이 의자에 기대며 웃으며 말했다. “도리안, 넌 정말 기이하게 소년 같은 기분을 가지고 있구나. 이 소녀가 이제 자기 계급의 누구와도 정말로 만족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아마 그녀는 언젠가 거친 마부나 히히 웃는 농부와 결혼하겠지. 글쎄, 널 만나고 사랑했다는 사실이 그녀로 하여금 남편을 경멸하게 만들 거야, 그래서 그녀는 불행해질 거야. 도덕적 관점에서 보면, 난 네 위대한 포기를 그다지 높이 평가할 수 없어. 시작으로서도 형편없어. 게다가 헤티가 지금 이 순간 별이 빛나는 물방앗간 연못에 떠 있지 않다고 어떻게 알아? 오필리아처럼 아름다운 수련에 둘러싸여 말이야.”
“난 이걸 견딜 수 없어, 해리! 넌 모든 것을 조롱하고, 그러고는 가장 심각한 비극들을 제안해. 이제 네게 말한 걸 후회해. 네가 뭐라고 하든 상관없어. 내가 한 행동이 옳았다는 걸 알아. 가엾은 헤티! 오늘 아침 농장을 말 타고 지나갈 때 창가에 있는 그녀의 하얀 얼굴을 봤어, 마치 자스민 한 송이 같았어. 더 이상 그 얘기는 하지 말자. 그리고 내가 수년 만에 처음으로 한 선한 행동, 내가 경험한 첫 번째 작은 자기희생이 정말로 일종의 죄라고 설득하려 하지 마. 난 더 나아지고 싶어. 더 나아질 거야. 네 자신에 대해 뭔가 얘기해 줘. 도시에선 무슨 일이 있어? 난 며칠 동안 클럽에 가지 않았어.”
“사람들은 여전히 불쌍한 베이즐의 실종에 대해 논의하고 있어.”
“이제 그 얘기에 질렸을 줄 알았는데.” 도리안이 와인을 따르며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내 사랑하는 친구, 그들은 겨우 6주 동안 그 얘기를 하고 있을 뿐이야. 영국 대중은 정말로 3개월마다 하나 이상의 화제를 감당할 정신적 여유가 없어. 하지만 그들은 최근에 운이 좋았지. 내 이혼 소송과 앨런 캠벨의 자살이 있었으니까. 이제 그들은 예술가의 신비한 실종을 가지게 됐어. 스코틀랜드 야드는 여전히 11월 9일 자정 열차로 파리로 떠난 회색 얼스터를 입은 남자가 불쌍한 베이즐이었다고 주장하고, 프랑스 경찰은 베이즐이 파리에 전혀 도착하지 않았다고 선언해. 아마 2주 쯤 후에는 그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목격됐다는 얘기를 듣게 될 거야. 사라진 사람은 모두 샌프란시스코에서 목격된다고 하더라. 정말 매력적인 도시일 거야, 저세상의 모든 매력을 지니고 있겠지.”
“베이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해?” 도리안이 버건디 와인을 빛에 비춰 보며 물었다. 그는 이 문제를 이렇게 차분하게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난 전혀 모르겠어. 베이즐이 숨고 싶어 한다면, 그건 내 일이 아니야. 그가 죽었다면, 난 그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아. 죽음은 내게 공포를 주는 유일한 것이야. 난 그걸 증오해.”
“왜?” 젊은 남자가 지친 듯이 말했다.
“왜냐하면,” 헨리 경이 열린 식초병의 금빛 격자를 코에 대고 말했다. “요즘엔 그것 말고는 모든 걸 견딜 수 있거든. 죽음과 저속함, 이 두 가지가 19세기의 유일한 사실이야. 설명할 수 없는. 우리 커피를 음악실에서 마시자, 도리안. 넌 나에게 쇼팽을 연주해 줘야 해. 내 아내가 도망간 남자는 쇼팽을 정말 멋지게 연주했어. 불쌍한 빅토리아! 난 그녀를 정말 좋아했어. 그녀 없이 집이 꽤 외롭군. 물론 결혼 생활은 단지 습관일 뿐이야, 나쁜 습관. 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최악의 습관의 상실조차 후회하지. 아마도 그것들을 가장 많이 후회하겠지. 그것들은 우리 성격의 필수적인 부분이니까.”
도리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테이블에서 일어나 옆방으로 가서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의 손가락이 하얀 검은 상아 건반을 스쳐 지나갔다. 커피가 들어온 후 그는 멈추고 헨리 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해리, 베이즐이 살해됐다는 생각이 든 적 있어?”
헨리 경이 하품을 했다. “베이즐은 매우 인기 있었고, 항상 워터베리 시계를 차고 다녔어. 왜 그가 살해됐겠어? 그는 적을 만들 만큼 똑똑하지 않았어. 물론 그는 그림 그리는 데 대단한 재능이 있었지. 하지만 사람은 벨라스케스처럼 그림을 그리면서도 지루할 정도로 둔할 수 있어. 베이즐은 정말 꽤 지루했어. 그가 나를 흥미롭게 한 건 단 한 번뿐이야, 그가 수년 전 네게 광적으로 매료되어 있다고 말하고 넌 그의 예술의 지배적인 모티브라고 했을 때였지.”
“베이즐을 매우 좋아했어요.” 도리안이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가 살해당했다고들 하지 않나요?”
“오, 일부 신문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지. 하지만 내겐 그다지 그럴 듯해 보이지 않아. 파리에 끔찍한 장소들이 있다는 건 알지만, 베이즐은 그런 곳에 갈 만한 사람이 아니었어. 그는 호기심이 없었거든. 그게 그의 주된 결점이었지.”
“해리, 내가 베이즐을 살해했다고 말한다면 뭐라고 하겠어?” 젊은 남자가 말했다. 그는 말을 한 후 그를 집중해서 지켜보았다.
“내 친구여, 난 네가 어울리지 않는 역할을 연기하고 있다고 말하겠어. 모든 범죄는 저속해. 모든 저속함이 범죄인 것처럼 말이야. 도리안, 넌 살인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야. 이렇게 말해서 네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면 미안하지만, 그건 사실이야. 범죄는 오로지 하층민들의 것이지. 난 그들을 조금도 비난하지 않아. 내 생각에 범죄는 그들에게 예술이 우리에게 그런 것처럼, 단순히 특별한 감각을 얻는 방법일 뿐이야.”
“감각을 얻는 방법이라고? 그럼 한 번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같은 범죄를 또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게 말하지 마.”
“오! 너무 자주 하면 뭐든 즐거움이 되지.” 헨리 경이 웃으며 외쳤다. “그게 인생의 가장 중요한 비밀 중 하나야. 하지만 내 생각에 살인은 언제나 실수야. 저녁 식사 후에 이야기할 수 없는 일은 절대 하면 안 돼. 하지만 불쌍한 베이즐 얘기는 그만하자. 네가 제안한 것처럼 그가 정말 그렇게 로맨틱한 최후를 맞았다고 믿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난 그럴 수가 없어. 내 생각엔 그가 옴니버스에서 떨어져 센 강에 빠졌고, 차장이 그 스캔들을 은폐했을 거야. 그래, 그게 그의 최후였을 거야. 지금 그가 그 칙칙한 녹색 물 아래 등을 대고 누워있는 모습이 보여. 무거운 바지선들이 그 위로 떠다니고 긴 수초가 그의 머리카락에 걸려 있겠지. 알아? 그가 더 이상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 지난 10년간 그의 그림 실력이 많이 떨어졌거든.”
도리안이 한숨을 쉬었고, 헨리 경은 방을 가로질러 걸어가 커다란 회색 깃털에 분홍색 볏과 꼬리를 가진 특이한 자바 앵무새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 새는 대나무 횃대 위에서 균형을 잡고 있었다. 그의 뾰족한 손가락이 앵무새에 닿자, 새는 까만 유리 같은 눈 위로 주름진 흰 눈꺼풀을 내리고 앞뒤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래,” 그가 돌아서며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며 말했다. “그의 그림 실력이 완전히 떨어졌어. 내겐 뭔가를 잃어버린 것 같았지. 이상을 잃은 거야. 너와 그가 더 이상 친하지 않게 되자, 그는 위대한 예술가가 되기를 그만뒀어. 무엇이 너희를 갈라놓았지? 아마 그가 너를 지루하게 했겠지. 만약 그랬다면, 그는 절대 너를 용서하지 않았을 거야. 그건 지루한 사람들의 습관이지. 그런데 말이야, 그가 너의 멋진 초상화를 그렸잖아. 그게 어떻게 됐지? 그가 완성한 이후로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오! 몇 년 전에 네가 그걸 셀비로 보냈다가 길에서 분실되거나 도난당했다고 말했던 게 기억나는군. 결국 되찾지 못했니? 정말 안타깝군! 정말 걸작이었어. 기억나, 내가 그걸 사고 싶어 했었지. 지금도 그랬으면 좋겠어. 그건 베이즐의 전성기 작품이었지. 그 이후로 그의 작품은 나쁜 그림과 좋은 의도가 기묘하게 섞인 것이었지. 그래서 항상 대표적인 영국 화가로 불렸던 거고. 그 그림을 찾는다고 광고라도 냈니? 그랬어야 했는데.”
“기억이 안 나.” 도리안이 말했다. “아마도 그랬겠지. 하지만 난 그 그림을 정말 좋아하지 않았어. 그걸 위해 포즈를 취했던 게 후회돼. 그 물건에 대한 기억이 혐오스러워. 왜 그걸 얘기하는 거야? 그건 나에게 어떤 연극에 나오는 이상한 대사들을 떠올리게 해. 햄릿인가? 어떻게 가는지 기억나? ‘슬픔을 그린 그림처럼, 마음 없는 얼굴.’ 그래, 그게 바로 그랬어.”
헨리 경이 웃었다. “사람이 인생을 예술적으로 대한다면, 그의 뇌가 곧 그의 마음이야.” 그가 안락의자에 앉으며 대답했다.
도리안 그레이는 고개를 저으며 피아노에서 부드러운 화음을 쳤다. “‘슬픔을 그린 그림처럼,’” 그가 반복했다. “‘마음 없는 얼굴.’”
나이 든 남자는 뒤로 기대앉아 반쯤 감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말이야, 도리안,” 그가 잠시 후에 말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 인용구가 어떻게 이어지더라? – 자기 영혼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음악이 귀에 거슬렸고, 도리안 그레이는 흠칫 놀라며 친구를 응시했다. “왜 그걸 물어보는 거야, 해리?”
“내 친구여,” 헨리 경이 놀란 듯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네가 대답해줄 수 있을 거 같아서 물어본 거야. 그게 전부야. 지난 일요일에 공원을 지나가다가 마블 아치 근처에 초라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걸 봤어. 그들은 어떤 저속한 길거리 설교자의 말을 듣고 있었지. 지나가면서 그 남자가 청중들에게 그 질문을 고함치는 걸 들었어. 꽤 극적이라는 생각이 들더군. 런던은 그런 종류의 기묘한 효과로 가득해. 비 오는 일요일, 방수복을 입은 볼품없는 기독교인, 물방울 떨어지는 우산들 아래 병든 듯한 하얀 얼굴들의 고리, 그리고 날카롭고 히스테릭한 입술에서 던져지는 멋진 문구. 정말 나름대로 좋았어. 그 예언자에게 예술에는 영혼이 있지만 인간에게는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어. 하지만 아마 그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거야.”
“말하지 마, 해리. 영혼은 끔찍한 현실이야. 그것은 사고 팔 수 있고, 거래될 수 있어. 그것은 독살될 수도 있고, 완벽해질 수도 있어. 우리 각자 안에 영혼이 있어. 난 그걸 알아.”
“그걸 확신하니, 도리안?”
“완전히 확신해.”
“아! 그렇다면 그건 환상일 거야. 사람이 절대적으로 확신하는 것들은 절대 진실이 아니야. 그게 신앙의 숙명이고, 로맨스의 교훈이지. 넌 정말 진지하구나! 그렇게 심각해하지 마. 우리가 우리 시대의 미신과 무슨 상관이 있겠어? 아니야, 우리는 영혼에 대한 믿음을 포기했어. 노크턴을 좀 연주해 줘, 도리안. 그리고 연주하면서 네가 어떻게 젊음을 유지했는지 작은 목소리로 말해줘. 넌 분명 어떤 비밀을 갖고 있을 거야. 난 너보다 겨우 10살 많은데, 주름지고 닳아 있고 누렇게 변했어. 넌 정말 놀라워, 도리안. 네가 오늘밤처럼 매력적으로 보인 적이 없어. 널 처음 본 날이 떠오르는구나. 넌 꽤 건방지고, 아주 수줍고, 절대적으로 특별했어.”
“정말 놀랍군요. 물론 당신은 변했지만, 외모는 그대로예요. 비결을 말해주면 좋겠어요. 젊음을 되찾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어요. 운동하고 일찍 일어나고 품행이 단정해지는 것만 빼고 말이죠. 젊음! 그것만큼 좋은 건 없죠. 젊은이들의 무지를 말하는 건 말도 안 됩니다. 요즘 내가 존중하며 듣는 의견은 나보다 훨씬 젊은 사람들의 의견뿐이에요. 그들이 내 앞에 있는 것 같아요. 인생이 그들에게 최신의 놀라운 것들을 보여주었거든요. 노인들에 관해서라면, 난 항상 반대합니다. 원칙적으로 그렇게 해요. 어제 일어난 일에 대해 그들의 의견을 물어보면, 그들은 1820년의 의견을 엄숙하게 말하죠. 그 때는 사람들이 높은 칼라를 하고 모든 걸 믿었지만 아무것도 몰랐을 때예요. 당신이 연주하는 곡이 정말 아름답군요! 쇼팽이 마요르카에서 이 곡을 썼을까요? 바다가 별장 주위에서 울고 있고 소금기 있는 물보라가 창문을 때리고 있을 때 말이에요? 정말 낭만적이에요. 모방적이지 않은 예술이 하나 남아있다니 정말 다행이군요. 그만두지 마세요. 오늘밤 음악이 필요해요. 당신이 젊은 아폴로고 내가 당신의 연주를 듣고 있는 마르시아스 같아요. 도리안, 나는 당신도 모르는 나만의 슬픔이 있어요. 노년의 비극은 늙었다는 게 아니라 젊다는 거예요. 가끔 내 솔직함에 놀라곤 해요. 아, 도리안, 당신은 얼마나 행복한가요! 당신은 얼마나 멋진 인생을 살았나요! 모든 것을 깊이 마셨죠. 포도를 당신의 입천장에 대고 으깼어요. 당신에게서 숨겨진 건 없었어요.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당신에겐 음악 소리에 불과했어요. 당신을 해치지 않았죠. 당신은 여전히 같아요.”
“난 같지 않아, 해리.”
“그래요, 당신은 같아요. 당신의 남은 인생이 어떨지 궁금하군요. 자제로 망치지 마세요. 지금 당신은 완벽한 유형이에요. 자신을 불완전하게 만들지 마세요. 당신은 지금 완벽해요. 고개를 젓지 마세요.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게다가 도리안, 자신을 속이지 마세요. 인생은 의지나 의도로 좌우되지 않아요. 인생은 신경과 섬유, 그리고 생각이 숨어 있고 열정이 꿈꾸는 천천히 만들어진 세포의 문제예요. 당신은 자신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강하다고 여길지 모르죠. 하지만 방 안의 우연한 색조나 아침 하늘, 한때 사랑했던 특별한 향기가 미묘한 기억을 불러일으키거나, 다시 마주친 잊혀진 시의 한 구절, 더 이상 연주하지 않던 음악의 선율 – 도리안, 이런 것들이 우리의 인생을 좌우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브라우닝이 어딘가에서 그것에 대해 쓴 적이 있죠. 하지만 우리의 감각이 그것들을 상상해 줄 거예요. 흰 라일락 향기가 갑자기 스쳐 지나가면서 내 인생에서 가장 이상한 달을 다시 살게 하는 순간이 있어요. 당신과 자리를 바꿀 수 있으면 좋겠어요, 도리안. 세상은 우리 둘 다를 비난했지만, 항상 당신을 숭배했죠. 앞으로도 영원히 당신을 숭배할 거예요. 당신은 이 시대가 찾고 있는 것의 전형이에요. 그리고 그것을 발견했다고 생각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거죠.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게 정말 기쁩니다. 조각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자신 밖의 어떤 것도 만들지 않았죠! 인생이 당신의 예술이었어요. 당신은 자신을 음악으로 만들었죠. 당신의 나날은 당신의 소네트예요.”
도리안은 피아노에서 일어나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래, 인생은 환상적이었어,” 그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난 같은 인생을 살지 않을 거야, 해리. 그리고 넌 나에 대해 그런 과장된 말을 해선 안 돼. 넌 나에 대해 모든 걸 알지 못해. 네가 안다면, 너조차도 나에게서 등을 돌릴 거야. 넌 웃고 있군. 웃지 마.”
“왜 연주를 멈췄어, 도리안? 다시 돌아가서 녹턴을 다시 쳐줘. 저기 어두운 공기 속에 걸려 있는 저 큰 꿀색 달을 봐. 그녀는 당신이 매혹하기를 기다리고 있어. 당신이 연주하면 그녀는 지구에 더 가까이 다가올 거야. 안 할 거야? 그럼 클럽에 가자. 정말 멋진 저녁이었어. 멋지게 끝내야지. 화이트에 당신을 정말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어 – 젊은 풀 경이야. 본머스의 장남이지. 그는 이미 당신의 넥타이를 따라 했고, 내게 당신을 소개해 달라고 간청했어. 그는 정말 매력적이고 당신을 약간 떠올리게 해.”
“그랬으면 좋겠어,” 도리안이 슬픈 눈빛으로 말했다. “하지만 오늘 밤 피곤해, 해리. 클럽에 가지 않을래. 거의 11시야. 일찍 자고 싶어.”
“제발 머물러. 당신은 오늘 밤처럼 잘 연주한 적이 없어. 당신의 터치에는 뭔가 놀라운 게 있었어. 전에 들어본 적 없는 표현력이 있었어.”
“그건 내가 착해질 거라서 그래,” 그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난 이미 조금 변했어.”
“넌 나에게 변할 수 없어, 도리안,” 헨리 경이 말했다. “너와 나는 항상 친구일 거야.”
“하지만 넌 한때 책으로 나를 독살했잖아. 그걸 용서해선 안 되는데. 해리, 그 책을 누구에게도 빌려주지 않겠다고 약속해. 해로워.”
“내 사랑하는 소년, 넌 정말 도덕적으로 변하기 시작하는구나. 곧 개종자나 부흥론자처럼 돌아다니며 네가 싫증난 모든 죄들에 대해 사람들에게 경고하겠군. 그러기엔 너무 매력적이야. 게다가 소용없어. 너와 나는 우리가 지금 그대로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책에 독살되는 건 없어. 예술은 행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 행동하고자 하는 욕망을 없애버리지. 완벽하게 불임이야. 세상이 부도덕하다고 부르는 책들은 세상에 자신의 수치를 보여주는 책들이야. 그게 전부야. 하지만 우린 문학을 논하지 말자. 내일 다시 와. 11시에 말을 탈 거야. 우리 함께 가서 그 후에 브랭크섬 부인과 점심을 먹자. 그녀는 매력적인 여자야. 그녀가 사려고 하는 태피스트리에 대해 당신의 조언을 구하고 싶어 해. 꼭 와. 아니면 우리 작은 공작 부인과 점심을 먹을까? 그녀는 이제 당신을 전혀 보지 못한다고 해. 글래디스에 싫증이 났나? 그럴 줄 알았어. 그녀의 영리한 혀가 신경을 건드리지. 어쨌든 11시에 여기로 와.”
“꼭 와야 해, 해리?”
“물론이지. 공원이 지금 정말 아름다워. 내가 당신을 만난 해 이후로 이렇게 라일락이 많이 핀 적이 없었어.”
“좋아. 11시에 여기 있을게,” 도리안이 말했다. “잘 자, 해리.”
“해리.” 문에 도착했을 때, 그는 잠시 망설였다. 마치 할 말이 더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는 한숨을 쉬고 나갔다.
제20장
날씨가 따뜻해서 그는 코트를 팔에 걸치고 실크 스카프도 목에 두르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며 집으로 걸어가는데, 정장 차림의 두 젊은이가 지나갔다. 그중 한 명이 다른 이에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저 사람이 도리안 그레이야.” 그는 예전에 사람들이 자신을 가리키거나 쳐다보거나 얘기하는 것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기억했다. 이제는 자신의 이름을 듣는 것조차 지겨웠다. 최근 자주 갔던 작은 마을의 매력은 아무도 그가 누군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그는 자신을 사랑하게 만든 소녀에게 자신이 가난하다고 여러 번 말했고, 그녀는 그 말을 믿었다. 한번은 자신이 악하다고 말했더니 그녀는 웃으며 악한 사람들은 항상 나이 들고 못생겼다고 대답했다. 그녀의 웃음소리는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마치 지빠귀가 노래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면 드레스와 큰 모자를 쓴 모습이 얼마나 예뻤던가! 그녀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가 잃어버린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 하인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하인을 잠자리에 들게 했다. 그리고 서재의 소파에 몸을 던지고 헨리 경이 그에게 했던 말들을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정말로 사람은 절대 변할 수 없는 걸까? 그는 자신의 순수했던 소년 시절, 헨리 경이 한때 장미빛 소년 시절이라고 불렀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강렬한 열망을 느꼈다. 그는 자신이 더럽혀졌다는 것을, 마음을 타락으로 가득 채우고 상상력에 공포를 안겼다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쳤고 그렇게 하는 것에 끔찍한 기쁨을 느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의 삶과 얽혔던 삶들 중 가장 아름답고 가장 희망에 찬 삶을 수치스럽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는 것일까? 그에게 희망은 없는 것일까?
아아! 얼마나 끔찍한 교만과 열정의 순간에 그는 초상화가 자신의 날들의 짐을 짊어지게 해달라고, 그리고 자신은 영원한 젊음의 때묻지 않은 찬란함을 간직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던가! 그의 모든 실패는 그 때문이었다. 그의 인생의 각 죄가 확실하고 빠른 형벌을 가져왔다면 그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형벌에는 정화의 힘이 있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소서”가 아니라 “우리의 죄악을 벌하소서”가 가장 정의로운 신에게 인간이 드려야 할 기도였다.
헨리 경이 그에게 수년 전에 준 기묘하게 조각된 거울이 탁자 위에 놓여 있었고, 흰 팔다리의 큐피드들이 예전처럼 그 주위에서 웃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 끔찍한 밤, 그가 처음으로 운명적인 초상화의 변화를 알아챘던 그 밤에 했던 것처럼. 그리고 눈물로 흐려진 눈으로 광택 나는 표면을 들여다보았다. 한때 그를 너무나 사랑했던 누군가가 그에게 미친 듯한 편지를 써 보냈는데, 그 편지는 이런 우상 숭배적인 말로 끝났다. “세상이 변했어요. 당신이 상아와 황금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에요. 당신 입술의 곡선이 역사를 다시 쓰고 있어요.” 그 구절들이 기억 속에서 되살아났고, 그는 그것들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증오했고, 거울을 바닥에 던져 발꿈치로 은빛 조각들로 부숴버렸다. 그를 망친 것은 그의 아름다움이었고, 그가 기도했던 아름다움과 젊음이었다. 그 두 가지만 아니었다면, 그의 인생은 오점 없이 깨끗했을 것이다. 그의 아름다움은 그에게 가면에 불과했고, 그의 젊음은 조롱거리에 불과했다. 결국 젊음이란 무엇인가? 미숙하고 얕은 시기, 병든 생각들의 시기에 불과했다. 왜 그는 그것의 옷을 입었던 것일까? 젊음이 그를 망쳤다.
과거는 잊는 게 좋았다. 어차피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다. 그는 자신과 미래만 생각해야 했다. 제임스 베인은 셀비 교회 묘지의 무덤에 묻혔다. 앨런 캠벨은 어느 날 밤 실험실에서 자살했지만, 그가 알게 된 비밀은 밝혀지지 않았다. 베이즐 홀워드의 실종에 대한 소란도 곧 사그라질 것이다. 이미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는 이제 안전했다. 사실, 베이즐 홀워드의 죽음이 그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를 괴롭히는 것은 그의 영혼의 죽음이었다. 베이즐은 그를 망친 초상화를 그렸다. 그는 베이즐을 용서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은 초상화 때문이었다. 베이즐은 참을 수 없는 말들을 했고, 그는 그것을 참아냈다. 살인은 순간의 광기였다. 앨런 캠벨의 자살은 그의 자유 의지였다. 그가 선택한 것이었다. 그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새로운 삶! 그것이 그가 원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가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는 이미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는 적어도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은 살렸다. 그는 다시는 순진함을 유혹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선해질 것이다.
헤티 머튼을 생각하며, 그는 잠긴 방의 초상화가 변했는지 궁금해졌다. 분명 예전처럼 끔찍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의 삶이 순수해진다면, 그는 초상화의 얼굴에서 모든 악한 열정의 흔적을 지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악의 흔적들이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가서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탁자에서 등을 돌리고 살금살금 위층으로 올라갔다. 문의 걸쇠를 풀자 그의 얼굴에 기쁨의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그렇다, 그는 선해질 것이다. 그가 숨겨 둔 끔찍한 것은 더 이상 그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마치 짐이 이미 자신에게서 벗겨진 것처럼 느꼈다.
그는 조용히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리고 초상화에서 자주색 커튼을 벗겼다. 고통과 분노의 외침이 그에게서 터져 나왔다. 그는 변화를 볼 수 없었다. 다만 눈에 교활함이 더해졌고 입에는 위선자의 주름이 생겼을 뿐이었다. 그것은 여전히 혐오스러웠다. 이전보다 더 혐오스러웠다. 그리고 손을 얼룩지게 한 주홍색 이슬방울은 더 밝아 보였다. 마치 방금 흘린 피처럼 보였다. 그때 그는 떨었다. 그가 한 선한 행동이 단순히 허영심 때문이었던 걸까? 아니면 헨리 경이 비웃으며 암시했던 것처럼, 새로운 감각에 대한 욕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때때로 우리가 자신보다 더 고귀한 일을 하게 만드는 연기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 모든 것 때문이었을까? 그리고 왜 붉은 얼룩이 전보다 더 커진 것일까? 그것은 마치
쭈글쭈글한 손가락 위에 끔찍한 병이 있었다. 마치 그것이 흘러내린 듯 그려진 발에도 피가 묻어 있었고, 심지어 칼을 잡지 않은 손에도 피가 있었다. 자백? 그것이 자백을 하라는 뜻일까? 자수하고 사형을 당하라는 것일까?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그 생각이 터무니없다고 느꼈다. 게다가 설령 자백한다 해도 누가 그를 믿겠는가? 살해된 남자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그 자신이 아래층에 있던 것들을 불태웠다. 세상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할 뿐일 것이다.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고집한다면 그들은 그를 가두어 버릴 것이다… 하지만 자백하는 것이 그의 의무였다. 공개적인 수치를 겪고 공개적인 속죄를 해야 했다. 인간에게 자신의 죄를 하늘뿐만 아니라 땅에도 고백하라고 요구하는 신이 있었다. 자신의 죄를 고백할 때까지 그가 무엇을 하든 그를 정화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죄?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베이즐 홀워드의 죽음은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헤티 머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바라보고 있던 이 영혼의 거울은 불공정한 거울이었기 때문이다. 허영심? 호기심? 위선? 그의 포기에는 그것 이상의 것이 없었을까? 뭔가 더 있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 아니다. 더 이상은 없었다. 허영심 때문에 그는 그녀를 아꼈다. 위선 때문에 그는 선함의 가면을 썼다. 호기심 때문에 그는 자기 부정을 시도했다. 그는 이제 그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 살인은 평생 그를 따라다닐 것인가? 그는 항상 과거에 짓눌려야 할 것인가? 그가 정말로 자백해야 할까? 절대 안 된다. 그를 상대로 남은 증거는 단 하나뿐이었다. 그림 자체가 증거였다. 그는 그것을 파괴할 것이다. 왜 그는 그것을 그렇게 오래 간직했을까? 한때 그는 그것이 변하고 늙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데서 즐거움을 얻었다. 최근에는 그런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것은 그를 밤에 잠들지 못하게 했다. 그가 외출했을 때, 다른 사람들의 눈에 그것이 띄지 않을까 하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그의 열정에 우울함을 가져왔다. 그것의 단순한 기억만으로도 많은 기쁨의 순간들이 망쳐졌다. 그것은 그에게 양심과 같았다. 그렇다, 그것은 양심이었다. 그는 그것을 파괴할 것이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베이즐 홀워드를 찔렀던 칼이 눈에 들어왔다. 여러 번 닦아서 얼룩 하나 남지 않았다. 칼은 빛나고 반짝였다. 화가를 죽였듯이, 이제 화가의 작품과 그 의미를 모두 죽일 것이다. 과거를 죽일 것이고, 과거가 죽으면 그는 자유로워질 것이다. 이 끔찍한 영혼의 삶을 죽일 것이고, 그 끔찍한 경고 없이 그는 평화를 찾을 것이다. 그는 칼을 움켜쥐고 그림을 찔렀다.
비명 소리와 충돌 소리가 들렸다. 그 고통스러운 비명은 너무나 끔찍해서 겁에 질린 하인들이 잠에서 깨어 방에서 기어 나왔다. 아래 광장을 지나가던 두 신사가 걸음을 멈추고 큰 저택을 올려다보았다. 그들은 경찰관을 만날 때까지 걸어갔고 그를 데려왔다. 그 남자는 여러 번 벨을 눌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맨 위 창문 하나에 불빛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집 전체가 어두웠다. 잠시 후 그는 떠나 인접한 현관에 서서 지켜보았다.
“저 집은 누구 집입니까, 경관님?” 두 신사 중 나이 든 사람이 물었다.
“도리안 그레이 씨의 집입니다, 나리.” 경찰관이 대답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걸어가면서 비웃었다. 그들 중 한 명은 헨리 애쉬턴 경의 삼촌이었다.
집 안의 하인들 구역에서는 반쯤 옷을 입은 하인들이 서로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고 있었다. 늙은 리프 부인은 울면서 손을 비틀고 있었다. 프랜시스는 죽은 사람처럼 창백했다.
약 15분 후, 그는 마부와 한 명의 하인을 데리고 위층으로 살금살금 올라갔다. 그들은 문을 두드렸지만 대답이 없었다. 그들은 소리쳤다. 모든 것이 조용했다. 마침내 문을 강제로 열려고 헛되이 시도한 후, 그들은 지붕으로 올라가 발코니로 내려갔다. 창문은 쉽게 열렸다. 걸쇠가 오래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들어갔을 때, 벽에 걸린 그들의 주인의 훌륭한 초상화를 발견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본 그대로, 그의 뛰어난 젊음과 아름다움의 모든 경이로움 속에 있었다. 바닥에는 저녁 정장 차림의 죽은 남자가 누워 있었고, 그의 가슴에는 칼이 꽂혀 있었다. 그는 시들고 주름지고 혐오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반지를 살펴본 후에야 그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